<초행한줄 관람평


이지윤 | 언제나 처음으로 가는 길어디로 가든 함께 걸을 당신이 있다면

조휴연 | 공고한 구조의 안에서 성실하게 방황하다

최대한 | 올해 느낀 가장 위대한 경이로움삶과 감정을 영화에 그대로 담아내다.

이가영 | 관조적 태도로 대상을 비추어보는 진지함

김신 | 아직은 조금 헤매도 괜찮아

남선우 | 그러나 어딘가에 우리의 식탁도 있었으면 하니까







 <초행> 리뷰: 아직은 조금 헤매도 괜찮아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엄혹한 세상과 모진 시련 앞에서 영화는 무엇을 있을까.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1991) 주인공 세상은 바뀌지 않아.”라는 외마디를 내뱉고 되돌아올 없는 강을 건넌다. 같은 곳에서(대만) 유사한 시기에 영화를 만들었던 차이밍 량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세상의 내일을 걱정하면 상업영화이고, 나의 내일을 걱정하면 예술영화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도 예술이 세상을 구원할  있으리라 믿었다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영화들이 도처에 널려있다하지만 어른이 되며 우리는 깨닫는다영미권 백인남성집단으로만 이뤄진 과학자들이 운석 충돌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거나 현실에는 존재할  없는 슈퍼 히어로의 전능한 살상능력이 외계 생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광경 앞에서 우리는 현실을 보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보지 않기 위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이제는 장르영화의 소품으로 전락해버린 귀여운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위험보다  때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월세에 대한 버거움이 오늘을 짓누른다는 사실을 안다그러므로 좋은 영화는 세상이 바뀐다는 섣부른 낙관을 시각적 페티시즘으로 번안하는 영화가 아니라  '바뀌지 않는 세상' 오늘을 직시하며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일 것이다지지부진했던 2017년의 한국영화계의 끄트머리에 선물처럼 찾아온 <초행> 명백히 후자에 해당하는 영화일 것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얼마 전 개봉한 임대형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또한 그런 영화다.)

 




무엇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전하는 감흥을 잊기 어렵다. 영화 내내 시종 폐쇄된 공간에서 미래를 더듬던 '수현'과 '지영'은 처음으로 탁 트인 광장 밖으로 나가 시민들의 대열을 마주한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는 상투구로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의 온기 어린 감동을 형용하기 어렵다. 바로 시퀀스에서 영화는 만취하고 주정을 부리는 수현의 아버지로 인해 갈등한 주인공들이 자동차 바깥으로 나가 기적 같은 화해를 겪는 장면을 보여준 있다. 자동차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가 유리창을 통해 이들이 화해하는 광경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장면이 너무나도 감동적이라면, 그것은 마침내 답답한 공간 바깥으로 나간 이들 앞에 아련하게 명멸하는 여명의 경치와 자동차 내부를 갈라놓는 장방형의 유리창이 영화의 외부와 내부의 층위를 갈라놓는 영화스크린에 대한 은유로 기능하기 때문이었다. <녹색 광선>(1986) <클로즈 업>(1990) 동시에 오마주를 바치는 듯한 장면은 명백히 영화가 현실에 대한 답을 제공해줄 없다는 겸양에 연원을 감동이다. 이는 너와 갈라놓을 밖에 없는 카메라라는 도구의 근원적 제약을 숙고해야 하는 자의 영원한 숙명이자 윤리다.

 

광화문 장면의 감동은 조금 색다르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화한다는 대전제는 공유되지만, 여기에서는 광장이라는 사회사적 함의를 짙게 지닌 공간이 틈입하며 경계가 적극적으로 와해되고 있으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저기로 가야하는 건가? 여기로 가야하는 건가?"라고 중얼거리며 헤매는 수현과 지영의 발걸음을, 거기에 뒤따르는 카메라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다. 그 동안 한국독립영화계에서 많은 경우에 카메라의 트래블링 숏은 인물들에게 다가갈 없다는 거리감과 불가지함을 형성하는 대신 인물들이 겪는 통각을 증축시키기 위한 가학적 페티시즘의 도구로 남용되어왔다. <초행> 마지막 트래블링 숏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겨울 바람을 맞으며 운동하는 카메라의 분방한 기운이 시종일관 영화에 누적되어온 폐소공포의 증상을 사진적 존재론의 불가측한 감흥을 통해 효과적으로 해소할 아니라 그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인물들의 불안감을 불가해한 영화적 감각의 아름다움으로 변환하는 데 성공해냈기 때문이다. 이를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이후 한국영화계에서 잠시 동안 사라져버렸던 트래블링 숏의 아름다움을 복권하는 영화사적 사건이라 말하지 않을 없다.


하지만 카메라의 수사학적 표현이 읽히기 이전에 이 장면은 2017년의 한국에서만 출몰할 수 있는 익숙한 장면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전(前)언어적 감흥을 전한다. 언젠가 우리는 고단했던 2017년의 한 해를 기억하며 <초행>이라는 한 편의 영화가 우리와 시대를 함께했다는 우정 어린 추억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에드워드 양과 차이밍 량의 영화가 대만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거리의 누군가에게 <초행>은 앞으로의 삶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소박한 위로와 함께 "아직은 조금 헤매도 괜찮아."라고 나지막이 속삭여주고 있다. 여전히 영화가 공동체의 예술일 수 있을까. <초행>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의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초행>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영화계 외곽 어딘가에서 촛불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프레스> 한줄 관람평


이지윤 | 숨 막히게 마음을 짓누르는

조휴연 | 때로는 크게 엇나가는 의지

이가영 | 행사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잠재성

김신 | '리얼한소재와 장면의 매혹을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이유

남선우 | 인물이 고립될수록 의미가 확장된다





 <프레스> 리뷰: 누가 기계를 고칠 것인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그가 갇힌 '마법의 성'


누구도 동전을 소중히 대하지 않는 시대지만 영일에겐 동전이 필요했다. 그는 동전으로 버스비를 계산했고, 동전을 넣고 노래를 불렀다. 동전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 만큼이 사회가 그에게 허락한 공간인 것 마냥 <프레스>는 시작과 함께 동전을 쓰는 영일의 모습을 비춘다. 비좁은 동전 노래방에서 영일이 홀로 부르는 노래는 마법의 성이다. ‘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속에서. 너는 마법에 빠진 공주란 걸. 언제나 너를 향한 몸짓에 수많은 어려움뿐이지만이라고 노래하는 그의 음성은 꾸밈이 없다. 꿈꾸는 소년의 목소리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 노래는 그의 연배를 짐작케 하는 동시에 동전을 애용하는 그의 일상적인 행동들이 단순한 취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언젠가 하고 싶은 나의 옛날이야기


영일은 누구인가. 영일은 왜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가. 관객이 영화에 질문을 던질 때쯤, ‘현수는 영일을 보는 외부의 시선을 대변하고 나선다. 밤거리의 화려한 조명들 아래 어설픈 대화를 이어가는 영일과 현수는 아마도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 사이일 것이다. 현수는 어떻게든 이 대화를 끝내려고 노력하고, 영일은 친구와 한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수는 영일에게 자신에게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하고 떠난다.

현수를 떠나 보내고 영일은 다시 동전 노래방에 자신을 가둔다. 현수를 떠나 보낸 것이 단순히 친구 한 명과의 작별이 아니라는 것은 눈물로 노래하는 그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꺼이 꺼이 울면서 나의 옛날이야기를 부르는 그를 보며 관객은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친구에게 버림받은 영일이 안쓰럽지만, 도대체 영일이 과거에 어떤 일을 저질렀기에 현수는 몇 마디 나눠보지도 않고 그를 떠나버리는 것인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 이중적인 마음은 영화의 초점이 영일에게 맞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내 관객이 영일에 대해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게 만든다.


영일은 현수와의 작별 이후 출소자들의 사회적응을 돕기 위해 일하는 보라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따르기 시작한다. 그녀는 이전에도 영일을 찾아온 적이 있지만 영일은 그녀를 피해 다녔다. 하지만 자신에게 전부였던 존재마저 잃은 후였기 때문일까, 영화는 별다른 설명 없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보라와 영일의 사이를 담는다. 보라의 교육에 따라 영일은 점점 동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된다. 그는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화면을 읽을 줄 알게 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전송할 줄도 알게 된다.

관객은 이때 이중적인 두 개의 마음 중 영일을 안쓰럽게 여기던 마음이 조금씩 우세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출소자이기에 낡은 행동들을 보여 왔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보라를 통한 그의 사회 적응을 자못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관객은 죄에 대한 인식, 출소자에 대한 거부감을 잠시 접어둘 수 있다. 영일이 자신의 과거를 충분히 의식하고 있고 보라에게도 그 부분에 있어서 솔직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이 영화에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는 영일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설명되지 않는데, 영일은 보라에게 자신이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음을 고백하고 보라는 그런 영일에게 앞으로의 시간을 약속하며 조급해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보라는 죄인을 포용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껴안는 종교의 자비를 실천하려 한다.






나는 문제없어라고 말 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문제는 영일이 그런 보라에게 연정을 품게 되면서부터다. 영일은 자신에게 유일한 존재가 된 보라가 또 다른 출소자 구범과도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자 질투한다. 그는 보라를 미행하고 구범과 실랑이를 벌인다. 실랑이 끝에 결국 영일과 보라가 애정 관계에 있었다는 식의 소문이 나게 되고 보라는 영일에게 크게 실망한다.

현수에게도 보라에게도, 영일은 관계에 있어서 주체적일 수 없었다. 진심을 전하는 적당한 방법을 찾지 못해 가만히 있었던 것인데, 세상은 영일을 몰아붙여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표현해버리게 했고, 그렇게 그의 감정은 왜곡된 모양으로 터져버렸다. 영일의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영일이 서툴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보라의 입장에서 불쾌함을 느꼈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도 영일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에게는 사과를 할 기회도, 진심을 설명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영일을 알기에 기회를 줄 수 있었던 피해자(보라)는 불쾌함 뒤로 숨어버렸고 영일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구범, 경찰, 교회 사람들)은 영일의 20년 복역 경험만으로 영일의 행동을 설명하려 했다.

관객을 계속해서 괴롭히던 두 개의 마음은 이때 정면으로 충돌한다. 관객은 내가 보라라면 어땠을까생각하게 되는데, 자신이 보라였어도 영화 속 보라와 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무력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영일이라는 사회 부적응자를 낳은 것은 영일 그 자체의 문제를 넘어 보라와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라를 탓할 수 없다는 감정적 진실을 무시할 수 없기에 관객은 이 충돌을 수습하지 못한 채 그대로 끌어안아야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프레스 기계의 틈에 손을 넣어 자해를 시도하다 공장 사장과도 싸움을 벌이고 마는 영일은 홀로 동전 노래방에 향한다. 음정 박자를 다 무시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이것이 세상에 대한 영일의 다짐인지 반항인지는 알 길이 없다.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다음 곡으로 ‘You are my sunshine’이 나오지만 영일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이 노래는 보라와의 행복한 시간을 수놓았던 노래고, 그 자체로 자신에게 유일했던 보라를 의미한다. 영일은 가사를 뱉으며 행복을 복기해내기 보다는, 가만히 그 반주를 듣는다. 따뜻한 음악에 맞추어 자신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몰라야 마땅한 사람이 바로 영일 자신인 것처럼 말이다.







신음하는 기계를 돌볼 수 있다면


교회, 고물상을 거쳐 영일이 일하던 공장에서 펼쳐지는 <프레스>의 마지막 시퀀스는 긴장감과 모호함으로 가득 차있다. 영화 내내 싸우던 두 개의 마음을 잠재우고, 관객은 영일의 선택을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다. 공장의 기계들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영일이 부품들과 기름통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영일이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기 힘들다. 사장과의 실랑이 장면이 영일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던져주긴 하지만, 그마저도 지금 공장에서 영일이 벌이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사장과의 실랑이가 끝나면 시퀀스는 다시 기계의 거친 소음과 영일의 짧은 신음들로 점철된다. 그러다가 급격히 찾아온 <프레스>의 라스트 씬은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누군가는 이를 영일이 자살을 준비하는 행위로 보지만, 사실 이 장면은 영일이 프레스 기계를 고치려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

극 초반 영일은 공장의 망가진 프레스 기계로 인해 고생한다. 고쳐보려고도 하지만 비생산적인 일이라며 오히려 제지 당한다. 사장은 네가 고치려 하는 그 기계가 잘라먹은 손이 몇 갠 줄 아냐.’, ‘네가 기계를 고치기 전에 기계가 널 고치겠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사회로부터 배제된, 자신을 고립시키는 사회로부터 도리어 혼자가 되는 법을 배운 영일의 모습을 잔인하게 은유하는 것만 같다.



영일은 몇 번이고 이 기계를 고쳐보려 시도하다 모든 걸 포기한 듯 기계에 자신의 손을 넣어 자해를 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고장 난 기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조차 자신뿐이라는 것을 인식한 영일의 숭고한 의식(儀式)을 담아낸다. 그렇게 <프레스>의 결말은 이야기 내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 두 개의 마음이 비로소 하나로 용해될 수 있도록 돕는다. 매우 관념적이고 상징적이며 비현실적으로 읽힐 여지도 충분하다. 이것은 사회 문제를 설명하는 원리가 될 수도,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허구적 이야기가 사회와 인물을 충돌시킴으로써 끝내 어떠한 가치를 제안해야 한다는 믿음이 유효하다면 영화 <프레스>는 매우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그 믿음을 수행해낸다고 볼 수 있다. <프레스>는 무엇보다 이야기를 대하는 그러한 태도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반복되는 일상에 찾아온 선물같은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임대형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친절하게 언어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주된 시선은 배우 기주봉이 연기하는 무뚝뚝한 모금산에 집중된다. 카메라는 모금산의 반복적인 일상을 그리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의 세계를 담담하게 바라본다.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인물들과 사건들은 단순하게 압축되어 프레임 안에 담기는데, 그럼에도 미스터 모는 영화 내내 우리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잊고 있던 꿈을 상기시켜 주기도 하고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적 선물을 안겨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임대형 감독을 만나보았다

 






Q: 첫 장편영화 데뷔입니다. 영화 개봉을 앞둔 심정은 어떠신가요? (인터뷰를 개봉 이전에 진행했습니다)


A: 사실 작년 겨울에 개봉하고자 했지만 미뤄져서 올해 개봉을 하게 되었어요. 소수의 관객이라도 극장에서 만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관객을 만나야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젠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영화라 칭할 수 있게 되었어요.

 



Q: 먼저, 영화를 계획하고 기획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해봤으면 합니다. 다섯 개의 챕터로 된 이야기 전개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처음부터 챕터를 나눠서 시나리오를 쓴 건가요?


A: 제가 처음부터 장을 나눴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얘기도 했는데, 초고를 다시 보니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었어요. 정확히는 촬영 들어가기 한 달 전에 장을 나누게 되었어요. 시나리오를 발전시키다 보니 시퀀스가 명확하게 나눠져 있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장을 나누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고 스탭들과도 시퀀스라고 하지 않고 이라고 부르면서 촬영을 했습니다.

 



Q: 가장 좋아하는 챕터, 혹은 촬영에 중점을 둔 챕터가 있나요?


A: 번째 챕터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래서 번째 챕터가 좋다는 분을 만나면 반갑더라고요. 동지를 만난 같고.(웃음) 사실 제가 찍고 싶었던 것이 번째 안에 있어요. 복되는 일상을 촘촘한 씬들로 구성하고 인물의 움직임이나 대사를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를 보면 인물들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쇼트가 많은데, 그런 장면들을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Q: 인물 뿐만 아니라 화면 구도도 굉장히 절제되어 있습니다. 구상한 콘티를 구현하기 위한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이 과정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합니다.


A: 모금산이라는 사람은 자기만의 루틴이 정확하게 있는 사람이고 물건들도 항상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을 찍는 영화도 숏을 엄격하게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콘티가 정말 중요한 영화였고 촬영감독님과 함께 정확히 콘티를 짜서 그 계획대로만 찍었어요. 실내 촬영 때는 내부가 좁아 카메라로 원하는 앵글을 잡아내기 힘들 때도 있었고 현장에서 조금씩 바뀐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 콘티를 지켜나갔던 것 같아요. 촬영감독님께서 정말 섬세하게 앵글을 잡아주셨고 미술이나 조명도 명확하게 설계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좋은 화면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Q: 고정된 카메라가 구축한 프레임 안에서 인물 혹은 사물만 움직이는 장면들이 많아요. 모금산이 트리를 들고 아파트 복도를 걸어가는 씬,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이발소 전경 씬처럼요. 이런 촬영 방식을 의도한 이유가 있다면?


A: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모금산이라는 사람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촬영도 그에 맞출 필요가 있었어요. 모금산은 정확한 사람이고 수영할 때 빼고는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인물상을 중심에 두고 촬영, 미술을 세팅했어요.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에는 가만히 있는 인물의 얼굴과 손짓 하나에도 캐릭터를 표현하는 디테일이 다 있더라고요. 기주봉 배우도 사연이 많아 보이고 인상 깊은 마스크거든요. 인물이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를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이제 본격적으로 스토리 내부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주인공의 이름과 영화 배경 모두 금산입니다. 금산을 중요 배경으로 설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A: 원래 다른 시나리오의 조연 캐릭터로 모금산이라는 인물을 처음 구상했어요. 작명이 재미있어서 이번 시나리오에 메인 캐릭터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금산은 유년기를 보낸 고향, 제가 사랑하는 공간이에요. 제가 잘 알고 좋아하는 공간을 카메라를 통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정말 아름답기도 하고요.


 


Q: 영화에는 모금산 외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어요. 바로 모금산의 아들 스데반과 그의 여자친구 예원인데요, 둘은 일반적인 연인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어요. 서로 감정표현도 잘 안 하고 다정하지도 않아요. 둘은 어떤 관계일까요? 두 인물의 전사도 궁금합니다.


A: 단물이 다 빠져서 우정 밖에 남지 않은 연애 관계 아닐까요? 이 커플의 전사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고 시나리오에 표현도 했지만, 생략을 많이 했어요. 이 영화는 모금산의 이야기니까 커플의 연애 이야기로 확장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한때는 스데반한테도 예원이 좋아할 만한 부분이 있었겠죠.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를 편집하다가)“컷이 잘 붙네.”하고 울먹이는 순간처럼요. 그래도 제가 보기에 이 영화에서의 스데반은 빨리 이별을 당해야 하는 남자가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Q: 대사와 행동이 절제된 만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선 연기가 중요했을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 합은 어떻게 맞춰나갔나요?


A: 캐스팅도 연출이란 말이 있는데, 시나리오 쓸 때부터 기주봉 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그렇게 기주봉 선생님을 필두로 해서 대사 톤, 생김새, 키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하여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했습니다. 그렇게 캐스팅을 하니 연출할 때도 용이했죠. 배우들과 모든 디테일을 다 상의해서 연출했습니다. 이를테면 모금산이 술잔에 검지를 올린다거나 하는 세세한 행동들도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전에 배우들과 약속을 하고 촬영한 것입니다.

 



Q: 그렇다면 배우들의 애드립도 없었을 것 같은데요?


A: 대사 애드립은 하나도 없었고 행동에서 애드립이 조금 있었어요. 가령 치킨집 사장이 모금산 영화 상영회 초대장을 올려놓고 툭 떨어트려서 받거든요. 이런 액팅은 유재명 배우의 아이디어에요. 그렇게 추가된 액팅 외에는 다 합을 맞춘 것입니다.

 



Q: 합을 맞추는 데 있어서 대사가 굉장히 큰 역할을 했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대사들이 흔히 하는 말로 굉장히 차져요. 쓴 사람의 고뇌가 느껴졌어요. 대사 쓸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A: 원래는 되게 수다스러운 영화였는데, 계속해서 말을 줄여 나갔습니다. 영화의 단초가 된 것이 무성영화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순간에 어떤 대사를 쳐야 이게 클리셰처럼 보이지 않을까 고민을 했고 그러다 보니 장황하게 말하기 보다는 정확한 순간에 하는 말이 필요했어요

 







Q: 실제 영화배우들을 거론하는 대사도 많이 나오잖아요? 스데반과 모금산의 대사 속에 영화배우들이 언급되곤 하는데, 이런 대사를 넣은 이유가 있나요?


A: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영화입니다. 계속 배우와 감독들을 언급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오정환 배우가 실제로 라이언 고슬링이 담배 피우는 모습에 대해 언젠가 제 앞에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시나리오에 써도 되냐고 허락을 받고 썼습니다.(웃음)

 



Q: 영화 속의 영화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에서부터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가 시작되었다고 들었는데, 구상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혹시 레퍼런스 삼은 작품이 있나요?


A: 한 작품만을 레퍼런스 삼지는 않았고요, 여기저기서 차용했습니다. 무성영화에 통용되는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찰리 채플린의 <경찰>(1916)에서 경찰에게 쫓기는 추격장면이나 버스터 키튼 영화들을 참고했어요. <모던 타임즈>(1936) 결말의 정서도 이 영화의 주된 정서에 영향을 줬습니다. 채플린이 길에 앉아서 낙담하고 있으니까 폴레트 고다드가 '우리 할 수 있어! 힘내!'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채플린이 '그래! 나도 할 수 있어!'라고 하면서 길을 걸어가요. 그런 낙관의 정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Q: 그런데 정작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라는 무성영화에 대해서는 해당 영화가 직접 나오기 전 까지는 정보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요. 모금산이 시나리오를 썼고 강냉이 폭탄이 나오고 채플린을 닮은 주인공이 나온다는 사실만 인물간의 대사를 통해 간간히 언급됩니다. 이에 대한 이유가 있나요?


A: 영화 찍는 과정에 너무 집중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영화가 너무 뻔해질 위험성을 고려했어요. 사전 언급을 최소화 하면서도 힌트를 줄 수 있는 중간지점을 고민했습니다. (인물들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다룰 때) 너무 쿨하게 넘어가도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깊숙이 들어가도 안 될 것 같았어요. 생략을 하더라도 꼭 필요한 부분들을 남겨놓다 보니 지금의 영화가 됐죠.




Q: 극 중 영화 일은 잘 하고 있어?”, “영화는 왜 찍으려고 해?”와 같은 영화 일에 관한 대사가 많이 등장해요. 이 질문에 대한 감독님만의 답이 있나요?


A: 이 영화를 찍은 이유가 그 질문에 대한 제 답이기도 해요. 영화를 준비하고 엎어지는 과정에서 나는 왜 영화를 하려고 할까? 영화가 뭘까?’하면서 제 자신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많이 던졌어요. 그때마다 답을 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 사진에 관한 노트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이 없었으면 이 영화가 나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어머니와 이별한 바르트가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잖아요. 오로지 어머니와 시간을 함께한 바르트만 알고있는 거죠. 이 영화에서도 모금산의 영화(<사제폭탄을 삼킨 남자>)를 마주하고 있는 관객들이 다 다른 감상을 가졌을 것 같아요. 모금산이 계단에서 구역질하는 씬이 있는데, 다들 웃을 때 예원은 그 장면을 보고 웃지 못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영화가 사적인 매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영화의 이론적 배경으로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를 들 수도 있겠네요.


 







Q: 모금산은 위암에 걸렸음에도 담배를 피우고 스데반, 예원도 계속해서 담배를 피웁니다. 감독님께 담배란 무엇인가요?


A: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제가 담배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해요. 그런 영화를 보면 담배를 끊었더라도 피우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렇게 흡연을 권장하는 영화를 찍고 싶었어요.(웃음) 그리고 영화의 계절적 배경이 겨울이다 보니 입김이 많이 나야 했는데, 영화를 3월에 찍었어요. 입김이 많이 안 나서 추워 보이게 연기를 이용하자는 속셈도 있었습니다.

 



Q: 조금은 불편한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모금산의 아들 스데반의 출생의 비밀과 관련한 내용이 내러티브 상 다소 돌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비밀이 스데반의 성장통을 강화시키거나 감정을 극적으로 끌어냈다기보다 그저 딱딱한 부자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로 남은 경향이 있는 것 같거든요. 이런 설정들과 관련하여 감독님이 고민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요.


A: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그런 소재가 많아요. 출생의 비밀, 재미없는 부자관계, 영화를 찍는 영화라는 설정. 모두 기존에 너무 많이 나왔던 소재고 물릴 수 있는 부분이죠. 하지만 그런 클리셰들을 모아서 새로운 걸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신인감독의 패기 같은 건데, 예상 가능한 소재들로 특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앞으로 더 좋은 영화를 찍는 감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상투적인 소재가 남의 이야기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면 거리를 두고 뻔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게 나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비극이 되잖아요. 그런 지점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희비극적인 톤과 어울릴 것 같았어요. 연출하기 난감한 소재였지만 돌파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좀 아쉬운 부분도 있으나 평범한 소재로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습니다.

 



Q: 클리셰적인 상황에서 클리셰를 벗어난 리액션이 필요했던 거네요?


A: 클리셰적인 순간이 관객에게 감동으로 다가가려면 설계가 필요한 것 같아요. 대사나 행동이 뻔한 순간에 나온다면 클리셰가 되지만, 뻔하지 않은 어떤 순간이 있어요. 그걸 찾는게 목표였고, 그러려면 시나리오에서 정확한 지점을 잡는 게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정확하게 표현을 하려 했고 현장에서는 이정도의 뉘앙스로 표현하자면서 배우들과 액팅을 조절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Q: 엔딩이 인상적입니다. 모금산이 미소를 짓는 순간 영화 내내 절제됐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감정으로 시나리오의 엔딩을 썼는지 궁금하고 혹시 고민했던 다른 결말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엔딩은 초고에서부터 같았습니다. 그건 제가 지키고 싶었던 부분이에요. 모금산에게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폭죽이 터질 때 그 병실 내의 다른 환자들은 모두 잠들었지만 깨어있는 모금산만 불꽃놀이를 목격하거든요. 모금산에게만 허락된 순간, 그 순간이 그에게 위안이 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제가 해피엔딩을 좋아해요. 누군가는 해피엔딩이 기만이라고도 하지만, 저는 필요한 기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영화의 엔딩을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지만, 모금산이 웃는 얼굴에서 끝난다는 점에서 희망의 뉘앙스를 주고 싶었어요.

 



Q: 혹시 작업하면서 장편과 단편의 차이를 느낀 부분이 있나요?


A: 장편도 단편과 같지만 좀 더 길게만 찍은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좀 더 어려운 점이 있다면 체력 관리인 것 같아요. 이 영화를 21회차로 찍었습니다. 어제 이명세 감독님을 만났는데, 감독님 영화 중에 이발사도 나오고 채플린 분장을 한 개그맨도 나오는 <개그맨>(1988)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그 영화도 21회차로 찍었다고 하더라고요. 약간 통한 것 같아 놀랐습니다.(웃음)

 



Q: 차기작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준비를 하고 있고요, 시나리오는 완성된 상태입니다. 한일 합작 영화로 지원을 받아서 내년 겨울쯤 일본 북해도에서 찍게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엄마와 딸이 여행을 하는 영화고 표면적으로 엄마의 첫사랑 찾기 이야기인데, 한 여성이 단순한 엄마의 역할에서 벗어나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Q: 이제 곧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크리스마스 영화가 정말 많잖아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모>도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영화로 남을 것 같은데요, 감독님이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있다면요?


A: <캐롤>(2015)이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정말 사랑하는 영화입니다. <캐롤>은 모든 장면이 완벽하게 설계된,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인 것 같아요. 한 씬 한 씬 끊어서 봤는데, 인물과 인물 주변의 세팅, 미장센이 다 의미가 있어요. 예를 들면 캐롤과 테레즈가 사랑에 빠지기 전의 통화 장면이 있어요. 캐롤의 옆으로 주방 아주머니가 일하고 있고 테레즈의 옆으로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는데, 그 한 씬으로 당시 여성들의 모습이 한 화면에 다 들어온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세세한 디테일들까지 모두 의미를 지닌 영화입니다.

 



Q: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한 마디 해주시겠어요?


A: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남성 감독이 찍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화라서 좀 꺼려하시는 관객들도 계실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시면 딱딱한 부자 관계에 대한 영화라기 보다 외로운 개인들에 대한, 그리고 영화 매체에 대한 영화인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편하게 극장에 와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차별화된 임대형 감독만의 독특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름아닌 사람에 대한 애정, 연민과 위로의 시선이었다. 이 영화에는 한 사람의 감정까지 소중하게 포용하는 힘이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단순히 영화가 아닌, 연말에 예기치 못한 선물같은 순간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회 부적응자와 그를 만든 사람들  <프레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127() 오후 730분 상영 후

참석 최정민 감독 | 배우 진용욱, 목규리  

진행 오동진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영어 사전에 ‘press’를 검색하면 명사로만 아홉 개의 정의가 등장한다. 언론, 언론인, 인쇄, 출판, 압축 기계. 그리고 동사로는 누르다, 찍다, 강조하다의 의미까지. 물론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압축 기계인 프레스를 제일 먼저 보여주기 때문에 제목의 의미가 분명하긴 하지만, 영화 <프레스>는 그 제목을 처음 보는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준다. 자유로운 해석의 가능성은 이야기 내내 모습을 달리하며 지속된다. 인물에 대해서, 전사에 대해서, 결말에 대해서 <프레스>는 무엇이 정답이라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관객이 오롯이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관객만의 답을 만들어가길 기다려준다. 이 과정이 흥미로우면서도 쉽지 않았을 관객들을 위해 <프레스>의 최정민 감독과 진용욱, 목규리 배우가 인디토크에 함께 했다.

 







오동진이 영화는 중반까지 이 남자(주인공 영일)가 도대체 누군지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계속 의문부호를 가지고 갑니다감독님이 어디서부터 이런 이야기를 생성하고 인물을 창조한 건지 궁금합니다.


최정민처음에는 세대 간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나이 든 사람과 어린 사람이 만났을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프레스 기계를 보게 됐어요기계 하나가 공장을 꽉 채울 만큼 큰 기계였는데그걸 카메라로 찍을 때의 느낌이 굉장히 강하게 다가왔어요기계가 작동되듯외부의 압박에 의해 변화되는 남자의 움직임을 이야기로 만들면 흥미로울 것 같았습니다.

 

오동진그렇다면 20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한 재소자라는 설정은 어디서 가져온 건가요?


최정민단순히 사회생활을 꾸준히 했을 때보다 고립된 삶을 살다가 어린 친구를 만날 때 생길 감정이 더 깊고 크리라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이 남자가 어떻게 고립된 것일까를 고민하다가 우연히 교회에서 운영하는 재소자 적응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이런 이야기라면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고 남자의 변화도 다양하게 펼쳐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오동진영일이 교회 안으로 들어갈 때 울면서 헤매는 모습이 있습니다세상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남자가 그를 부적응자로 만든 사회의 벽에 부딪혀서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정민그래서 일부러 영일이 담을 넘을 때 다리를 다치는 설정도 넣은 것입니다고립되었던 남자가 사회의 일원으로 들어갈 때의 장벽들이 굉장히 두껍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오동진그 장면에서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 보라의 모습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요.


최정민그 장면에서는 영일의 감정을 더 진하게 담고 싶었습니다영일이 보라가 좋아했던 십자가를 보라에게 주고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오동진사람한테 다가설 때 진정성 있게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잖아요보라의 그 이중적인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텐데목규리 배우가 생각하기에 보라는 어떤 사람입니까?


목규리전주국제영화제에서부터 많은 관객 분들이 보라에 대해 질문해주셨습니다정말 영일에게 마음이 없었던 건지 묻는 관객 분도 있었어요.(웃음저 같은 경우는 보라가 독실한 크리스천인 동시에 직업적인 정신이 투철한, 그리고 20대 초반이기 때문에 내가 진심으로 다가가면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교만함을 갖고 있는 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동진중간에 등장하는 사장의 기도문처럼 교만하지 않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그걸 실천하기가 참 어려운 거잖아요개인의 잘못만으로 몰아세우기도 어려운 것 같고요그래서 전 보라가 우리가 이해 못할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영일 역의 진용욱 배우가 혼자 느꼈을 압박감도 굉장히 심했을 것 같습니다내밀한 고통을 다 끌어와서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진용욱처음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정말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반면에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영화의 99%를 채우는 역할을 해보겠냐 싶었습니다이 기회에 감사하면서 연기하지 말고 그냥 영일이가 되어보자,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자기가 다 감내하는 영일이라는 사람이 되어보자 했습니다. 영일에게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하면서 그 인물이 되어보려고 했습니다.





 


관객: 감독님께서 이야기를 너무 잘 풀어내셔서 영화적인 해석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기 보다는 촬영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인공이 사람을 만날 때 주인공 단독 숏으로 가다가 약간 지체한 후 상대방을 보여주는 장면을 여러 차례 쓰셨잖아요. 어떤 의도인 건지 궁금합니다.


오동진: 원 숏으로 가다가 나중에 프레임 바깥에 있던 사람을 안으로 불러들인다는 거죠?


최정민: , 맞습니다. 그런데 보라 같은 경우는 영일과 있을 때 대부분 투 숏으로 잡았고요, 영일과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서부터 단독으로 잡았습니다. 콘티가 없었기 때문에 촬영감독님과 현장에서 결정하면서 찍었습니다. 그 날 그 날 시나리오를 보고 체크하면서 결정한 겁니다. 외부 인물이 등장할 때 우선 관객들의 시선에 맞춰서 영일만 보여주다가 외부의 목소리가 들릴 때 관객이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고 나중에 보여준 거죠. 관객 분들께 더 흥미롭게 보여드리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관객: 결말 부분에 영일이 사건명을 대고 자신이 집에 들어가는 걸 봤냐고 사장에게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혹시 남자 주인공이 누명을 썼던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사장이 거짓 증언을 해서 영일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 건 아닌지요?


최정민: 영화상으로는 약간의 모호성이 있습니다. 제가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명확했죠. 영일의 성격을 봤을 때 그 친구가 범죄를 저지를 성격은 못 되죠. 그리고 영일이 출소하고 공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사장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 드러나는데, 결국 사장이 거짓진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겠죠. 그 일에 대해 영일은 사장에게 꼭 묻고 싶었지만 직접적으로 묻지는 못하다가 마지막에 확실하게 마음을 먹고 물어봤을 것입니다.


오동진: 명쾌하게 보여주지 않는 부분입니다만, (거짓 증언에 대한) 사장의 죄의식으로 영일을 취직시켜준 것일 수 있겠죠.


최정민: 사장의 기도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사장이 가진 응어리도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기도 장면에서 사장의 심정에 대한 조금의 개연성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동진: 그런데 (사장이 영일에게) 택시비는 너무 적게 주던데요? 천 원짜리 다섯 장인가?


진용욱: 4천원이었습니다.(웃음)

 


관객: 제가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이 영일과 보라가 교회의 센터 사무실에서 언쟁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그때 보라가 영일에게 너는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말하잖아요. 그 발언이 큰 사건을 겪은 보라에게 생긴 변화를 설명해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영일 중심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보라의 뒷이야기도 많이 궁금한데요, 이후에도 출소자들을 대해야 했을 보라가 직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어떻게 변화했을지 궁금합니다.


목규리: 저도 많이 상상하고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보라가 일에 대해 회의감도 가졌겠지만, 영일이라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을 더 크게 가졌을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자신이 100% 피해자라고 여겼을 것이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영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을 것 같습니다. 자신만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도 가해했고 교만했다는 걸 받아들일 것 같고, 보라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 일을 계속 해나갈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최정민: 이 이야기가 영일 중심이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의 에피소드에 대해서는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많이 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영일도 주변에 의해 변하지만, 개개인의 외부인들도 영일에 의한 변화가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사장도, 보라도, 다른 사람들도. 결국 외부인들의 입장이 우리의 입장이죠. 보라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좋게 말하면 나름대로의 성숙의 과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직업적으로는 (영일에게 했던 것처럼) 사적으로 엮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의 의식을 키우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오동진: 이 질문은 영일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굉장히 조마조마했거든요. 기계가 고장 난 상태니 사고가 날 것도 같고 영일이 자해를 할 것도 같은 상황에서 이야기가 끝으로 가는데, 마지막 장면 이후 영일은 어떤 변화를 맞았을까요?


진용욱: 자살했을 거라고 생각한 분도 계셨고 견디면서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분도 계셨어요. 저는 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일이 누명 때문에 복역을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영일은 고아로 쭉 살아오다가 누명을 쓴 거고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외로운 삶을 산 사람이에요. 내가 뭘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이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면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냥 버티면서 살아갔을 것 같습니다.


오동진: 저도 그랬을 것 같아요. 앞서 첫 번째 질문해주신 관객 분께서 이 텍스트가 난해해지지 않게 감독님이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고 하셨는데, 사실 주제 자체는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잖아요? 구원의 주체, 용서의 주체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보는 사람에 따라 매우 상대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어요. 신실한 신자가 봤을 때, 무신론자가 봤을 때, 사회적 활동을 하는 분이 봤을 때 매우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해석할 수 있는 영화는 또 아닙니다.

 


관객: 진용욱 배우님이 영일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영일이라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진용욱: 처음 출연 제의를 받은 게 20154월이었고요, 처음 촬영을 들어간 게 20157월이었어요. 저는 그때 시나리오를 보면서 살을 빼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일은 배가 나오면 안 될 것 같아서 77kg에서 67kg까지 살을 열심히 뺐습니다.


오동진: 그리고 대사나 행동보다는 표정 속에서 많은 걸 읽어낼 수 있게 연기하지 않았나 싶어요.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잖아요. 어떻게 그런 표정을 만들어낸 건지도 관객 분들이 궁금할 것 같아요.


진용욱: 감독님하고 참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감독님이 저한테 많이 맡겨주셨어요. 그래서 좀 더 편하게 제가 느끼는 대로 표정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가 남자 주인공의 전사를 처음부터 알려주었다면 관객이 이야기를 이해하기엔 더 쉬웠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정민: 이 이야기를 감독의 설명을 통해서 관객이 이해하기보다는, 영일을 보고 따라가면서 하나하나 이해해나가는 게 더 흥미로울 것이고 나중에 느끼는 바도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진행했습니다. 시나리오 쓸 때는 당연히 전사를 많이 썼죠.

 


오동진: 오늘 한 분 한 분의 관객들과 이야기하니까 훨씬 재미있네요. <프레스> 함께 관람해주시고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는 것  인디포럼 월례비행 <우경>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11월 29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응수 감독, 유운성 평론가

진행 변성찬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월례비행의 11월 작품은 김응수 감독의 <우경>이었다. 10년 전에 이미 촬영을 마쳤지만 이제서야 뒤늦게 관객들을 방문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경>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한겨울에 영화를 마주할 수 있었다. 상영이 끝나고 김응수 감독, 유운성 평론가와 변성찬 평론가의 대담이 있었다.

 

 





변성찬 평론가(이하 ) : 영화에 제작연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는데요, 올해 공개된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에 촬영된 영화라고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언제 촬영했는지, 어떤 계기로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응수 감독(이하 ) : 제작연도를 써넣지 않는 태도는 앞으로도 유지하려고 합니다. 인생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항상 써놓으면 바꾸고 그래야 하더라고요. 실제로 찍은 건 10년 전입니다. 영화를 제작한 배경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야 할 같은데, 전작인 <과거는 낯선 나라다> 찍고 나서 후반작업을 진행할  유운성 평론가가 사적으로 후반작업을 돕고 싶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때는 마다했는데, <우경> 찍고 싶어졌을  연락을 했죠. 보내주겠다던 돈, 지금 주면 안되겠냐고.(웃음당시에 정말 사적인 동기로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영화는 사실상 유운성 씨가 제작의 실비를 대주신 영화입니다. 자막에 기재되어있죠. 그런데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이 몰려서 최종 작업이 늦어졌고 10년 만에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 그런 과정이 있었군요. 제가 영화를 처음 알게 계기도 유운성 평론가를 통해서였는데요, 당시에 마디를 하시더라고요. “좋아요.” 그래서 궁금합니다. 영화에 대해서 마디 해주시죠.

 

유운성 평론가(이하 ) : 영화 내적인 이야기는 이따가 자세히  있을 같아요. 영화를 처음 것도 벌써 오래 전입니다.  10 정도 같습니다. 김응수 감독님이 충주에 계실 적에 집을 방문해서 감독님이 만든  편의 가편집본을 내리 봤던 기억이 있는데 좋게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도 오늘 처음 겁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데 차근차근 얘기해보겠습니다.

 


: 영화는 정말 제목에 충실한 영화죠. 장면을 빼고는 '우경'이라는 인물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우경이 눈이 안보인다는건 알겠는데, 사실이 애매하게 표현된 부분이 있습니다. 스틱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 후반부에는 맹인에게 할애되기 힘든 시점숏이 활용되기도 했고요.

 

: 주인공은 실제로 유전적인 이유가 있어서 앞을  봐. 희미하게 보인다고 했는데 지금은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동네에 직선으로 나있는, 장애물이 없는 길은 그냥 걸어가기도 하는데, 모르는 길의 경우에는 저희가 가이드를 하기도 하고, 본인이 어떤 식으로든 감지를 했습니다. 우경이 실제로 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닌데, 스틱을 보여주는 순간 영화의 어떤 지점이 와해되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각장애인에 대한 영화구나' 식으로  닫혀버릴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 영화에는 그런 명확한 단서들보다 낯선 것들을 많이 담으려고 했는데, 과정 속에서 사실 저도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았어요. 촬영 날부터 해야 하고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몰라서 당황을 많이 했고 그런 흔적이 영화 안에도 녹아있는 같습니다. 찍으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화를 만들 때 사용하는 수단들이 무용지물로 변해버리는 같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음악을 부가적으로 더했다면 내면에 대한 묘사를 더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영화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거. 저는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까요그리고 시점 숏에 관해서는, 숏을 인물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같습니다. 장면은 우연하게 포착한 느낌이 살아있어서 사적으로 좋아하는데요, 짜여진 듯한 일관성을 깨뜨리는 부분도 있는 같아서 마음에 들기도 합니다.

 

: 영화의 사운드 편집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감독님은 영화에서 음악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기도 한데요, 영화의 경우는 소리가 거의 없습니다. 유일하게 삽입된 같은 소리가 시계가 작동하는 소리인데요, 이런 부분에 대한 코멘트도 부탁드립니다.

 

: 특별한 의미는 습니다. 처음에는 잉마르 베리만 <침묵>(1963) 시계소리와 같은 압도적인 느낌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그런 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던 같아요.

 






관객 : 영화를 얼마나 오랫동안 찍은 건지 궁금합니다.

 

: 10회 정도 찍은 같아요. 주말마다 내려가서 찍었습니다.

 

: 그럼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여행은 며칠인건가요?

 

: 그것도 한 번에 가지는 못하고 번에 나눠서 갔던 같습니다. 생업에 종사하는 친구이기에 길게 나가있을 수도 없어서 주말에 시간을 내서 갔죠.

 

: 여행을 간다는 설정은 먼저 제안을 하신 건가요

 

: 여행을 해야 한다는 정확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제가 영화 제작을 하면서 처음과 끝을 분명하게 설정해서 만든 영화는 없습니다. 저는 항상 제작 과정을 즐기려고 하는데 그런 성격이 영화에 투영된 같기도 해요. 다만 이런저런 장소들을 방문한 데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습니다. 가령 우경이 이전에 자살시도를 하다가 실패를 하고  이후에 고향에 내려가 술만 마시면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수녀님이 우경에게 주일학교 교사를 시켜서 그걸 계기로 마음을 다잡아 안마를 하는 법도 배우고 공부도 시작했다고 해요. 그런 이야기 때문에 성당을 방문하는 장면이 영화 안에 있어. 절은 우경이 아버지를 떠올릴 있는 공간이라고 하더라고요. 눈병이 아버지 쪽 유전이라고 해요. 아버지도 약시고요. 그래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주 계시던 절을 방문한 것입니. 바다와 강은 헤어진 여자친구와의 인연이 있는 장소라고 했습니다. 여자친구도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었는데, 동반자까지  그렇게 살기는 어려워서 헤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모두 일관성 있거나 의미 있는 이야기 단위로 환원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그런 시도를 애초에 크게 염두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면 영화가 우경이라는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처럼 들리는 부분이 없지 않은데, 사실 영화는 통상적인 기준에서 사용하는 연출의 정의를 생각해본다고 해도 다큐멘터리보다는 극영화의 문법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후반부에서 새떼를 보는 시점숏뿐만 아니라 초반부에 방안에서 이런 저런 행위를 하는 장면에서도 카메라가 주인공 삶을 많이 관찰해서 재구성해낸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령 커피를 끓이는 장면에서 우경의 손만이 클로즈업된 인서트숏이 그렇죠. 맹인이 아니라면 행위자의 주관적인 인상으로 다가올 있는 장면은 우경이 맹인이기 때문에 카메라가 호기심을 가지고 인물을 관찰하는 같다는 인상을 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내 장면의 연출 전반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 영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영화를 찍고 이후에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야 '아, 이게 그런 행위였구나.'라고 깨달은 점도 많습니다. 분의 세계에 대해서 제가 알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호기심 어린 태도로 촬영을 장면도 많은 같아요. 설거지를 하는 장면의 경우는 제가 설거지를 하던 때의 경험이 떠올라서 주의 깊게 것도 있는 같네요.

 

: 영화에서 생략된 우경의 행위들도 많은데요,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하는 장면은 나오는데 밥을 먹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거나, 지하철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은 있는데 걸음을 걸어 내려가는 장면은 없습니다.

 

: 장면들은 의도적으로 배제한 게 맞습니다. 밥을 먹거나 우경이 구걸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장면이라던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제가 보여주기 싫은 장면은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천상고원이외에 감독님의 작품들을 보면 밥을 먹는 장면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천상고원>에서 식사장면이 있는데요,  영화는 감독님이 주연을 한 영화여서 스스로 밥을 먹는 장면이 들어가있죠. 영화를 제외하면 감독님은 거의 남이 먹는걸 본다고 생각될 정도로 먹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더라고요.

 

: 분과 대화를 하면서 생각해보니까 제가 그런 장면들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뭐랄까, 리얼해 보이거나 삶이 이런거야 강변하는 듯한 장면들을 지극히 싫어하는 같습니다. '삶은 고통스러운 건데 왜 계속 그런 보여주지? 영화는 다른 걸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있는 같아요. 그래서 <우경> 경우도 우경이 처한 현실보다는 우경에 대한 존엄성 같은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 또한 저는 우경에게 다가가려고 노력을 했는데 실패를 했다면 했을 뿐, 우경과 거리를 두려는 식의 기획에서 나온 건 아닙니다. 그런 한계가 영화의 일부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 한마디씩 듣고 자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 분과 함께 이런 자리에 있게 되어서 예전 생각도 나면서 울컥하네요. 앞으로도 자주 있으면 좋겠습니다.

 

: 저도 마침내 영화가 완성돼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겨울이라는 시기에 맞춰서 보게 된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는 올해가 십 년 뒤에 복기를 해보면 굉장히 한국영화사에서 암울한 시기라고 기록될 정도로 추락한 해라고 생각합니다. 별별 해괴한 망작들을  보았는, 영화들을 일일이 언급하는 건 활동에 장애가 있기 때문에 안 하겠지만,(웃음그런 와중에도 편의 영화가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같습니다. <우경> < 친구 정일우> 편인데요, 멋이 없어서 좋아하는 같습니다. <우경> 경우는 영화가 같은 것들이 영화가 되기 직전에 끝나는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인물이 애초에 많이 등장하지도 않고 이야기도 거의 없다시피하고요저는 영화가 미학적이라 좋아하는 건 아니고 뭔가 상쾌하거나 멋이 없어서 좋아하기도 합니다. 지적이고 머리를 쓰는 분들이 아마추어적인 자세로 만든 영화가 <우경> < 친구 정일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2017년의 한국영화는 영화만으로도 괜찮은 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국정교과서 516일: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한줄 관람평


조휴연 | 계속될 전쟁을 앞두고,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의 기록들

김신 | 토론이 오고가는 교실의 경치는 인상깊다만 섣부른 낙관과 의제간 동일화 전략은 결국 또 다른 응고된 '정치'의 형태로 화석화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

남선우 |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고 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최대한 | 취지는 좋았지만, 중구난방







<국정교과서 516일: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리뷰 : 계속될 전쟁을 앞두고,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의 기록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 역사는 대화가 아니라 전쟁이 되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경우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전쟁이었으며, 어느 순간 그 전쟁에는 국정교과서가 있었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를 사이에 두고 한 편에는 보수정권과 그 정권의 부역자들이, 반대편에는 시민들과 선생들, 학자들이 있었다. <국정교과서 516일: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은 이전 정권이 시도한, 단 한가지의 역사 교과서로 역사를 교육하는 일의 문제점을 학자들의 입을 빌려 비판한다. 카메라의 시선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전 정권이 만든 국정화 교과서에 담긴 뜻, 역사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의 구도, 해외의 역사 갈등,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것의 의미, 역사 교육의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뻗어나간다.



 




영화는 역사 재건축을 시도한 전 정권의 터무니없는 노력의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전 정권은 역사 전쟁이 아니라 역사 재건축을 하려 했다. 그 재건축은 전 대통령이 그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제사와 비슷한 의미였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자료가 교과서에 사용됐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자료로 전 대통령의 아버지를 미화한 내용이 교과서에 담겼다. 전 정권은 이런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을 넘어, 이 교과서만으로 중, 고등학생에게 역사 수업을 시킬 것을 강요하려 했다. 일본에 후소샤 교과서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국정교과서(다행히 성공하지는 못했지만)가 있었다.

 

국정교과서의 시범 모델격이었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가 등장하자 재건축은 전쟁으로 바뀌었다. 전쟁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완성된 재건축 교과서 안에서 학생들은 과거와 대화하는 법은커녕 과거에 대해 회의하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거창한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과거에 대해 회의하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 세대가 자라나 어떤 세계관으로 스스로의 세계를 바라볼 지는 자명하다.



 




영화 안에서 감독이 주목해 바라본 독일의 68세대는 2차세계대전을 치룬 부모세대와 부모세대가 가진 역사적 가치관에 대해 회의하면서 기존세대에 반항했다. 68세대가 일으킨 '68년 운동(68혁명)'은 반 권위주의적인 운동으로 현재까지 독일인들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화는 독일의 68세대를 통해 역사전쟁은 필연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감독은 역사전쟁의 필연성에서 나아가 어떤 역사여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역사를 위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이런 고민은 다시 교육으로 돌아간다. 학교에서 토론과 대화를 통해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앞으로 나아갈 한국 역사교육의 방향을 모색해본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채워진, 아이들의 만족도 역시 높은 역사 수업을 계획하고 고민한 선생들의 목소리는 감독 본인의 고민과도 맥이 닿아 있다.

 






대화가 아니라 전쟁에 훨씬 더 가까운 몇 년이었다.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는 아직 한국의 상황에서 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역사전쟁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에 등장한대로, 다른 역사관을 가진 두 세계가 강렬하게 충돌하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