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쏭의 기적 한줄 관람평


오채영 | 남은 날들을 바꾸는 순간의 경험에 대하여

박마리솔 | 선율을 가진 언어로 사람과 사람이 맞닿을 때

임종우 |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만드는 이야기

윤영지 | 마음이 노래가 될 때, 노래가 기적이 될 때

최대한 | 국적을 초월한 연대, 그 아름다움에 대해서







 <바나나쏭의 기적 리뷰: 남은 날들을 바꾸는 순간의 경험에 대하여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채영 님의 글입니다. 






 

어느 날, 태어나서 처음 보는 외국인이 불현듯 당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상상해보자. 아이들은 즐거워 보이지만, 빠듯한 살림 속에 음악이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이 합창단이 내 자식들의 미래에 어떤 도움을 주는 지 조차 알 수 없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극장을 나선 후에도 영화가 주는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일에 작은 권태를 느꼈던 요즘, <바나나쏭의 기적>은 가족에게 느끼는 본질적인 감정에 대한 공감만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도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반가운 영화다.







우리가 매일 카페에서, 또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 만 가지의 것. 이미 우리의 삶 속에 너무 깊숙하게 자리 잡아 있어도 없는 듯 대기중을 떠도는 것.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화, 바로 음악이다. 하지만 인도의 어느 빈민가에 사는 어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의 삶을 비집고 들어온 이 음악이 너무나도 어색하다. 이들은 음악을 정식으로 배워 본 적도, 즐겨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불가촉천민이라는 타고난 신분을 거스를 수 없어 기본적인 배움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자식들 만큼은 공부에 열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밤낮 없이 일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다큐멘터리 <바나나쏭의 기적>은 우리가 이토록 당연하게 여겨왔던 음악의 이름에 무게를 부여한다.


은퇴한 성악가 김재창은 몇 년 전 최하층민들이 모여 사는 인도의 한 빈민촌에 들어와 이 바나나 합창단을 심었다. 낮은 흙빛의 집들이 모인 판자촌 옆에 웅장하게 지어진 현대식 빌딩의 위용은 마치 그곳이 사람들에게 신세계를 보여줄 것만 같다. 신두자, 라훌, 마날리를 비롯한 빈민촌의 아이들은 모두 그 곳을 좋아한다. 그렇게 몇 번의 콘서트를 거쳐 무럭무럭 자라나는가 싶었던 바나나 합창단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합창단의 성장에 제동이 걸린다. 부모들이 학업을 위해 아이들을 합창단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 김재창은 아이들이 합창단에 다시 나오도록 부모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고, 그들에게 직접 음악이 삶을 바꾸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곧 있을 콘서트 무대에 부모들이 함께 서는 것을 목표로 노래를 가르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세 가족의 모습을 통해 인도 하층민의 삶과 애환을 영화는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음악이 주는 경험을 통해 어른들은 점차 내면의 성장을 이룩한다. 돈이나 생활력에서 오는 안식이 아닌 음악과 춤의 향유에서 기인하는 마음의 여유는 어른들에게 또 다른 행복을 알려주고, 무대 경험과 그들을 향한 박수갈채는 자식이나 남편의 인생이 아닌 당신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언제나 두 자매의 엄마이자 도망간 남편의 아내로만 살았을 메리는 무대에서 솔로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가창하며 그녀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주체적인 삶에 대한 용기를 얻는다. 공연 당일, 무대를 위해 자신의 하루치 일당을 포기하는 메리의 대담함은 비교적 많은 것이 갖추어진 삶 속에서도 인생의 주도권을 찾지 못하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가 각 인물들의 스토리를 충실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관객은 등장인물이 흘리는 눈물, 용기를 담아 내지르는 목소리에 담긴 정서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보게 된다. 음에 감정을 담아 노래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라고 할 때, 이들은 바나나 합창단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좀 더 '인간'다운 삶의 새로운 한 층위를 스스로 발견한다. 빈민가가 노래로 채워지며 변해가는 그 순간들의 포착은 매우 흥미롭게 느껴진다.

 






최근 주목 받는 신선한 포맷의 다큐멘터리 영화들 사이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크고 작은 웃음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가족적인 이야기를 통해 가슴 한 켠을 훈훈하게 데운다. 과장도, 억지스러운 쥐어 짜냄도 없이 음악이 그들의 삶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것만으로 영화는 일상 속의 작은 변화에 목마른 우리들에게 잔잔한 치유와 감동을 건넨다. 악습의 잔재에서 오는 신분의 차이는 그들에게 어려운 환경을 주었지만 개개인의 삶의 귀천까지 규정하지는 못한다. 노래하는 목소리는 똑같이 아름답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빈민촌에도 따뜻한 볕이 드는 모습을 발견한다. 황폐하게만 보이던 마을의 첫인상은 온데간데 없이 어느새 아늑하고 평화로운 누군가의 삶의 터전만이 스크린을 채운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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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순간  인디포럼 월례비행 <빨간 벽돌>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2월 28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주현숙 감독ㅣ주연 성훈화 

진행 백재호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기 님의 글입니다.




구로동맹파업은 여성과 연대라는 키워드만으로도 지금 이 시기에 새롭게 읽을만한 텍스트처럼 보인다. 여성들의 용기와 선택이 모여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요즘, 30년 전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연대했던 구로동맹파업을 다룬 <빨간 벽돌>이 인디포럼 월례비행에서 상영되었다. 그 현장에 두 발 딛고 서 있던 민주 인사들이 참석했고 그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과 공간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백재호 감독(이하 백재호) : 오늘 진행을 맡은 인디포럼 소속의 백재호입니다. 주현숙 감독님과 성훈화 님 모시고 대담을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간단한 인사 한 마디씩 부탁드리겠습니다.

 

주현숙 감독(이하 주현숙) : 날도 궂은데 오시고 봐주셔서 감사하고요, <빨간 벽돌> 만든 주현숙입니다. 반갑습니다.

 

성훈화 주연 (이하 성훈화) : 안녕하세요. 구로동맹 파업 때 가리봉전자에 근무했던 성훈화입니다.



백재호 : 먼저 <빨간 벽돌>을 어떻게 기획하고 만들게 되었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주현숙 : 의도를 파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영화예요. 오늘은 자학을 안 해야지 마음을 다지고 왔는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이 영화 만들 때 내가 염세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획할 때 많이 우울했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잊어버렸을 수도 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을 보내면서 앞으로 30년은 이런 보수적인 정부안에서 살아야 하나 보다이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서 많이 우울했어요. 괴롭기도 하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어요. 그 때 사람의 마음에는 어떤 결정적인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결정적인 순간의 마음의 풍경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어요. 드라마틱한 선택의 순간에 대해서 몰두하다가 구로동맹파업을 한번 얘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20살 초반의 여성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리고 노동운동사에서도 아주 특이한 일이거든요. 물론 60, 70년대 노동운동의 결과물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선택에서 봤을 때 연대 파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사건 직후 보다는 한 30년 정도 지나서 그때는 어땠지하면서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제가 그 시기에 갱년기 같은 것이 왔는데 오히려 그분들을 만나면서 많이 위로 받았어요. 그렇게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를 거창하고 멋지게 표현 안 해도 쿨하게 받아 주실 거 같았어요.(웃음)

 






백재호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좋은 영화를 많이 탄생시킨 거 같습니다. 성훈화 님께 여쭤볼게요. 인상 깊었던 것이 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였어요. 서울대 학생이 와서 노동운동을 하는 걸 보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데 학생들이 와서 하는구나여러 가지 감정이 생겼다고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성훈화 : 중학교 졸업하고 구로공단에 들어갔어요. 도자기로 인형을 만드는 공장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산업체 특별학급 고등학교를 다녔어요중학교 졸업과 고등학교 졸업의 차이가 엄청나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굉장히 강하게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구로공단에서 벗어나려고 회사를 그만뒀죠. 그러고 나서 시골에 내려가 있는데 일할 곳이 없는 거예요. 저랑 같이 고등학교 다녔던 친구가 공단에 조건이 좋은 회사가 있는데 같이 들어가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공단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서 며칠을 버텼는데 갈 데가 없더라고요. 결국 회사에 가게 됐어요. 84년에 구로공단 가리봉전자에 들어갔습니다. 근데 조건이 다른 회사들과는 달랐어요. 공장도 새로 지어서 깨끗했고 직원도 고졸 이상을 뽑았어요. 그리고 잔업이 없는 거예요. 다른 데는 일이 끝나면 기본적으로 잔업을 서너 시간은 해야 했어요. 근데 가리봉전자는 그런 게 없었어요. 8시간, 3교대로 꼭 돌아가기 때문에 근무조건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공단을 벗어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그때도 야간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가리봉전자가 1년이 막 돼 가는 시기였고 노조가 생겨났어요. 같이 하자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바빠서 안 된다며 항상 빠져나갔던 거예요. 관심도 별로 없었고요.

그러다가 노동조합에서 나오는 노고(勞稿)’라는 게 있는데 어느 날 거기에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그 친구 글씨가 있더라고요.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편집부에서 일하는데 굉장히 괜찮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독서모임에 들어와보라고 하는 거예요. 그 친구의 꼬임에 빠져서 독서모임에 들어가게 됐어요. 사람들이 교대 근무를 하고 부서도 다 다르기 때문에 만나기가 어려운데 이 안에서 다 만날 수가 있었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같은 기계를 쓰는 친구가 모임을 이끌고 있었어요. 그 친구가 그냥 너무 좋았어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무언가 생산할 때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만약 다른 사람이 10개를 했으면 저는 12개를 해야 하는 거예요. 이기기 위해서 늘 더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하루는 저한테 쪽지를 남겼어요.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내가 너무 힘들다.’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내가 혼자 이렇게 열심히 하면 안 되나 보다 싶었어요. 그 친구가 저한테 자기가 서울대학교 나와서 수학 선생을 하다가 공장에 들어왔다는 얘기를 했는데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생각을 다르게 하게 되었어요.

노동조합 활동을 두 달도 안 하고 동맹파업에 들어갔어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대의원이 됐어요. 사람들이 하라니까 한다고 그랬던 거 같아요. 동맹파업에 사람들이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짧은 기간에 70년대 노동운동했던 사람들이 각개 격파되고 민주노조가 깨졌던 부분들이 학습이 돼 있었어요. 그래서 당연히 동맹파업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백재호 이 자리에 영화에 출연한 분들이 몇 분 오셨어요. 감독님, 소개 부탁드릴게요.

 

주현숙 제가 되게 좋아하는 장면인 마지막 장면에서 노래 불러주신 권영자 님 와 계시고요, 그 옆에는 같이 투쟁한 정영인 님 계십니다. 계속 일하시느라 작품을 못 보셨는데 오늘 마침 와주셨습니다.

 

 




 

관객 : 극 후반부에 젊은 사람들이 가상 토론을 하고 결과를 안 보여주잖아요, 그 결과 내용이 궁금해요. 감독님이 의도한 바가 있었는지, 의도한 대로 흘러갔는지 궁금합니다.

 

주현숙 논쟁적으로 만들려고 한 게 아닌데 논쟁적으로 되어버린 게 있어요. 기본적으로 제 역사관은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 따로 있지는 않다는 거예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따로 있지도 않고, 선택하지 못한 사람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한 선택이 있더라도 이후에는 그 선택에 반하는, 자기 선택을 책임지지 못하는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투쟁이라는 선택은 고민이 되더라고요. ‘투쟁하면 블랙리스트가 되고 먹고 살 데도 없고 당장 취직도 못하는데 왜 투쟁을 할까?’ 생존권 투쟁이라고 얘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빨리 관두고 다른 회사에 취직하는 게 더 자기 생존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다면 투쟁을 한다는 건 이타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선택을 하는 어떤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그 선택의 순간을 눈으로 직면하고 싶었어요. 그런 조건을 만들어서 선택의 순간을 담아보겠다는 욕망이었던 거죠. 말씀하신 장면은 처음부터 기획안에 있었는데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해봤어요. 여러 안들을 생각했는데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자는 게 저희의 기본 원칙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더 곤란한 상황이 연출이 된 거예요. 저 사람이 나쁘게 보이면 안 되는데, 그러려고 만든 영화가 아닌데, 고민을 하면서 모니터링을 많이 했어요. 저보다는 청년 세대에게 모니터링을 부탁했는데 콧방귀를 뀌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척박한데 저 정도 가지고 못됐다 그러냐고요.

실제로 몇 번 안 만난 사이에 누군가를 위해 그만두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저는 그게 좋고 어떤 '순간'처럼 느껴졌어요. 일부러 한 사업장의 노조가 아닌 각각 다른 곳에서 참여자 분들을 데리고 왔고 이런 결과가 나왔어요. 고민했지만 넣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 때 많이 배웠어요. 청년들의 현실, 객관적인 삶의 조건 같은 것들이요. 그것까지 구구절절 넣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약간 위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부분은 청년에게 맡기고 단호하게 이 부분만 보여주자는 내부적인 판단이 있었습니다.

 

백재호 : 그럼 토론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섭외를 했나요?

 

주현숙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하고 만나서 우선 기본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흥미로워하는 분들을 섭외했어요. 한 번 더 하자고 한 분도 있었어요. 저는 힘들어서 못하겠는데 되게 재미있어하시더라고요. 조합을 잘 구성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어떤 사람은 수용적인 사람, 어떤 사람은 까칠한 사람, 어떤 사람은 조용하더라도 묵직한 사람. 사람을 범주화하면 안 되는데 작업을 하다 보면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어요.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백재호 성훈화 님이 그 장면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어쨌든 30년 전에 그런 비슷한, 혹은 더 어려운 선택의 순간에 있었던 분인데 젊은 친구들이 이걸 가지고 토론하는 걸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성훈화 :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저만 보였어요. 다른 사람들이 안보이더라고요. 구로동맹파업에 나왔던 사람들은 보이는데 젊은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입은 잘 안됐어요근데 오늘 다시 보면서 이 사람들에게서 연대 의식이 만들어지길 바랐던 거 같아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관객 : 일주일 동안 파업을 하다가 경찰에 강제로 해산된 이후에는 평범한 삶을 살아온 걸로 표현이 돼 있는데요, 살아오면서 본인들의 가치관 등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치하는 분들 중에 보면 노동운동을 하다가 변절해서 악독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 50세 이상의 연배에는 태극기 부대에 가까운 분들이 많잖아요. 주변에서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본인의 가치관과 주변의 가치관의 충돌이 상당히 많았을 거 같아요.

 

성훈화 : 가리봉전자에서 해고되고 90년에 결혼할 때까지, 지쳐서 운동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까지 계속 운동권에 있었어요. 원래 일하던 도자기 회사에 노조를 만들려고 다시 들어갔다가 해고되기도 하고 블랙리스트 때문에 취직이 안 되기도 했어요. 이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노동운동을 한 거 같아요. 저는 저를 자생적 사회주의자라고 얘기하는데, 운동권이 무너지면서 제가 꿈꾸던 사회주의가 무너졌어요. 갈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어요. 이정표로 삼고 갔던 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결혼하고 집으로 들어갔어요

저는 그때 굉장히 선명한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말을 아예 안 했어요. 저랑 의식적으로 맞지 않는 친구하고는 안 만났어요. 왜냐하면 만나서 말해봐야 싸움만 하니까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런데 결혼을 했고, 집에서 어울려 살아야 하는데 어울리지를 못했어요. 정치 이야기만 하면 눈에 불을 켜니까 사람들이 다 저를 피했어요.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아이 친구들 엄마하고 정치 얘기는 안 하고 살았던 거 같아요. 구로동맹파업 20주년 행사할 때 앞에 패널로 나갔는데 제가 너무 울어서 말을 못 했어요. 제 안에 풀어지지 않은 응어리 같은 게 남았던 거 같아요. 후회도 하고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20주년 행사하면서 다시 운동권 사람들하고 어울리게 되었어요. 구로동맹파업도 민주유공자법이 만들어지면서 유공자 인증서를 받았거든요. 그거 받고 마치 제가 문익환 목사라도 된 것처럼 감격했어요. 민주인사로 당당하게 살아야겠다, 정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항상 옆에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주현숙 흥미로웠던 것은 구로동맹파업이 대우어패럴의 지도부 3명이 잡혀가면서 벌어진 연대투쟁이었거든요. 근데 대우어패럴의 위원장님은 지금 자유한국당에 있어요. 박종철 열사가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 박종훈 씨인데 그 사람도 자유한국당에 있거든요.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면서 사는 게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계속 투쟁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자기 삶 안에서 그 기준들을 지켜가려고 하는 거요.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는 방식 같은 것이 있겠죠. 그런 방식으로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면서 사는 게 되게 어렵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들의 선택을 모두 이해하거나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누가 변절했다고 얘기할 때 어떤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백재호 권영자 님과 정영인 님께도 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영인 : 그 투쟁이 우리들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달랐지만 같이 합숙을 하면서 운동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노조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 같이 논의도 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대우어패럴의 세 동지들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것은 노조를 파괴하려는 음모라고 생각을 했어요. 대우어패럴부터 쳤지만 우리 회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고 같이 동맹파업을 한 것이죠. 이런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참 감사한데 영화로 만들 정도로 큰일이라고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그때는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았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가 만들어진 건 참 뜻밖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영자 : 사실은 주현숙 감독이 저를 2년 동안 쫓아다녔는데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어요. 2년 동안 도망 다녔어요구로동맹파업의 구술 작업이나 기록 작업이 많았는데 결과를 보면 화가 나는 일들도 있어서 나는 안 하고 싶다고 했어요. 대우어패럴 나와서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라는 걸 하기도 하고 경찰서에도 몇 번 가고 계속 싸우다가 서울노동연합으로 이어지면서 조직생활을 했어요. 여성단체에서도 일했어요. 계속 이렇게 살아온 거 같아요. 최근은 아파서 집에 있다 보니까 너무 무기력하고 힘들었는데, 분명한 건 내가 잘 살아왔기 때문에 무기력해도 잠깐만 무기력한 거다라는 힘이 있어요. 앞으로도 참여할 수 있는 곳에 함께 하며 그렇게 살 거라고 믿습니다.

 

주현숙 권영자 님이 2년간 촬영을 거부하면서 내가 지금 뭐 하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거든요. 자기가 이 사회에 책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서지 않으신 분들도 많이 있고요. 영화에 담고 싶었지만 못 담은 것 중 하나가 경찰 혹은 그 주변 사람들이 노동운동하는 분들께 너네 다 학생 출신들한테 이용당한 거야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그것 때문에 많이 상처받은 분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 때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냐고 물어보면 모두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시거든요. 사람이 살다 보면 계산 없이 죽어도 후회하지 않아라고 마음먹게 되는 순간이 한 번 정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잘 안되기는 했지만 그런 게 잘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실제로 이 분들이 상처도 받고 여러 이유 때문에 관두기도 했지만 일상이 권태로워도 잘 영위하며 자기가 선택했던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그래서 주인공 분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거고요. 학출(학생 출신)과 노출(노동자 출신)간에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사이 좋게 살아온 분들도 있거든요. 실제로 어떤 연구자 분들은 구로동맹파업은 아름다운 연대이고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이야기해요.



 



백재호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현숙 이 영화와 비슷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어느 포지션에서 싸워야 할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올해가 세월호 참사 4주기잖아요. 4주기 정도 되면 새로이 할 수 있는 말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세월호 참사를 사회적 참사로 바라보고 이 사회가 겪은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진행한 4주기 프로젝트를 3월 말쯤에 상영합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훈화 : 구로동맹파업이 30년 전의 일인데 기억해주시고 영화로 기록해주셔서 주현숙 감독님한테 감사드려요. 저도 처음에 안 나오려고 했는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있다는 것이 저희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구로동맹파업이나 70, 80년대 노동운동했던 사람들 중 변절해서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민의식을 가지고 사회 저변에서,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재호 아까 별 것 아닌, 며칠 안 되는 파업이었다고 말씀하셨지만 노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고 그때 하셨던 선택들이 지금 저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제목이 왜 빨간 벽돌일까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가 빨간 벽돌 같네요. 빨간 벽돌로 이루어진 자리를 하나하나 채워주시고 경청해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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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절기 한줄 관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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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절기 리뷰: 몰랐던 계절과 얼굴을 마주할 때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영지 님의 글입니다. 



 

카메라의 시선은 태생적으로 비윤리적이다.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 우리는 모든 사건으로부터 분리된 3자의 입장이 된다. 영화의 시선은 감독이 선택하고 부여한 시선이다. 관객은 시선으로 타인의 고통과 비극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라는 매체는 이야기와 인물을 바라보는 연출자의 시선과 태도가 핵심적일 수밖에 없다. 편의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있어 형식에 대한 연출자의 치열한 고민은 어느 것보다 우선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가치이. 좋은 영화는 응당 그런 고민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이동은 감독의 영화 <환절기> 사려 깊은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다.

 






<환절기> 한국 영화 속에서 지극히 대상화되고 범주화된 그저 엄마라는 역할로서 등장하고 사라지며 소비되던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러니까 영화는 엄마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그녀의 이름은 미경이다.

 

미경은 아들 '수현'과 친아들처럼 보듬었던 수현의 친구 '용준'이 연인 사이였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식물인간 상태의 수현을 돌보며 용준을 외면하는 현재의 미경을 중심으로 사고 이전 인물의 관계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방식은 대게 관객의 흥미나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기능을 하지만 <환절기> 경우 그와 상반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치하면 극적으로 작용될 만한 사건과 정보를 인물보다 관객이 먼저 인지하도록 한다. 영화는 오프닝 장면을 통해 미경이 수현과 용준의 관계를 알기 관객에게 이미 그들이 연인이라는 사실을 려준. 따라서 관객은 충격적인 사건이나 예상치 못한 전개에 동요되지 않고  사건에 던져진 인물에게, 오롯이 앓는 주체로서의 인물에게 집중할 있게 된다.

 

또한 <환절기> 인물들을 표현하고 묘사하는 데에 있어 쉽고 간편한 표현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 중태에 빠진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는 죽을 사람처럼 식음을 전폐한다던지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지 않는다. 남편의 외도 사실을  머리채를 잡고 육탄전을 벌이지도 않는다. 영화는 다소 밋밋하게 보일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현실의 미묘한 결들을 영화에 최대한 옮겨 놓기 위해 애쓴다. 자신이 생명력을 부여한 인물이 극적 재미를 위해 예측 불가능하고 자극적인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를 통해 관객은 타인의 고통을 구경하는 데에 그치거나 스스로를 고통의 세계와 분리하여 자기만족과 연민을 느끼지 않을 있게 된다. 다만 그들이 처한 문제들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확장하고 숙고해 있게 된다.

 






동성애라는 소재를 다루는 태도에 있어서도 <환절기> 여타의 영화들과 궤를 달리한다. <환절기> 동성애를 소수자의 사랑으로, 특별한 사랑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이는 실제로 동성애를 특이한 사랑, 평범치 않는 이들의 사랑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독의 지극히 상식적인 인식에서 기인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미경이 아들 수현의 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 보일 수도 있으나 핵심은 그녀가 아들의 몰랐던 면모들을 알게 되는 데에 있다. 이는 실제로 영화 여러 가지 장면들로 뒷받침된다. 용준은 수현의 연인이기도 하지만, 미경으로 하여금 그녀가 알지 못했던 아들의 수많은 모습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일례로 용준은 미경에게 녹음해 두었던 수현의 노래를 들려주고 미경은 아니 이게 우리 아들 목소리야?’하며 놀란다. 또한 용준을 통해 수현이 옷을 입을 고수했던 순서가 있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미경은 안다고, 안다고 생각했던 아들 수현의 새로운 얼굴과 목소리를,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한 용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끊임없이 알아가게 된다


그러니까 <환절기> 굳이 칭하자면 퀴어 영화라기보다는 성장 영화에 가깝다. 미경의 성장은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사실상 <환절기> 다루는 거의 모든 크고 작은 서사와 장면들은 몰랐던 타인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에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가를 반추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모든 인물들은 각각의 변화와 각각의 성장을 맞이한다. 영화는 미경만큼 용준의 변화에도 주목한다. 단적인 예로 수현의 면회를 갔을 용준은 그들과 떨어진 자리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며 알게 모르게 겉돈다. 하지만 극의 말미에 다시 사람이 모였을 용준은 담배를 끊은 상태로 등장한다. 장면에서 미경과 용준은 정말 모자 사이 같아 보인다. 용준은 수현의 부재를 겪는 동안 미경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성장을 이루어 것이다. 더불어 미경은 용준을 통해 수현을 이해한다. 이렇듯 환절기 속의 인물 간의 관계는 어떤 관계가 다른 관계를 반추시키는 식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다.


수현이 잠들어 있던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이 수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듯이 수현은 잠든 미경과 용준의 사이에 누워 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이야기를 맺는 방식이 불친절하고 다소 뜬금없게 보여질 수도 있으나  결말은 수현의 성장을 의미한다.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마주하는 . 감독은 이것이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결말은, 영화를 끝내며 인물들의 미래를 판단하고 매듭짓는 것은 어쩌면 감독의 영역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관객 각자에게, 혹은 영화 속에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라 믿는 인물들에게 직접 그들의 삶을 이어 나가도록 .






앞서 연출자의 윤리에 대해 언급했다. <환절기> 이렇듯 모든 인물에게 애정을 쏟으며 우리가 응당 어떠할 것이라고 속단하는 이미지를 고심하고 스스로 반문하며 현실의 미묘한 결을 살리려 애쓴다. 선택한 소재를 영화 속에 차용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비약이나 과장을 허용하지 않는다감독의 평소 고민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담긴 보인다. 예술을 신격화하고 신성시 여기며 수많은 불합리와 부조리를 저지르고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위무하는 다른 상처와 폭력을 교묘히 생산해 내는 작품과 작가들의 틈바구니에서 <환절기>라는 영화는 우리에게 영화 이상의 무엇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한다. 카메라의 시선은 비윤리적이지만, 카메라를 사람들의 시선은 윤리를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한다. 영화 내내 드러나는 예쁜 마음들에, 그리고 어디선가 계속 살아가고 있을 인물에게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가득 담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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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겪었을 환절기에 대해  <환절기>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22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동은 감독ㅣ배우 이원근, 지윤호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권소연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계절과 계절이 바뀌는 시기, 환절기를 서로 다르게 보낸 세 사람이 있다. 즐거운 한 때도 잠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심해야 하는 감기를 미처 피하지 못한 것 마냥 세 사람은 다른 모습으로 아파한다. 왜 아파해야 하는지 서로에게 이유를 묻다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그들은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받아들인다<환절기>가 개봉한 222일, 졸업식이 연상될 만큼 많은 꽃다발과 함께 인디스페이스에서 <환절기>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작품을 연출한 이동은 감독, ‘용준역의 이원근 배우 그리고 수현역의 지윤호 배우가 함께했다.

 






진명현 대표(이하 진행): 영화가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이후에 여러 계절을 거치고 지금, 딱 환절기에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감독님의 머릿속에서 이야기로 탄생하고 시간이 지나 스크린으로 관객을 만나게 된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동은 감독님의 장편 데뷔작이기 때문에 여러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초의 <환절기>의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동은 감독(이하 이동은): 201212월 겨울에 처음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그 해 3월 즈음에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제목을 지을 시기가 환절기였고 주인공들이 겪는 계절이 환절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제목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화는 처음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고 제 자신이 보고 싶은 이야기를 써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추운 계절에 혼자 외롭다고 느끼면서 썼던 시나리오인데 운 좋게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이원근이라는 배우를 만나면서 영화가 생명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배종옥 배우님의 열연이나 굉장히 도발적인 역할이었던 지윤호 배우의 수현까지, 굉장히 캐스팅을 공들여서 한 것 같은데, 두 배우님은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지윤호 배우(이하 지윤호): 처음에는 제가 수현을 맡는다는 소식을 모른 채 시나리오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일단 작품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습니다. 이렇게 참여하게 되어서 기분이 좋아요. 좋다고만 하기엔 영화가 많은 슬픔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에 함께 했다는 사실은 마냥 좋습니다.(웃음)

 

진행: 이원근 배우님은 전작들에서 의도 없이 남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캐릭터를 많이 맡았는데, 이번에는 그걸 다 받아내는 물 같은 역할이었어요. 어땠나요?

 

이원근 배우(이하 이원근):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용준을 마주했을 때, 그의 먹먹함이 너무 좋았어요. 또 영화에서 세 명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선이 너무나 좋아서 이 작품을 꼭 해야겠다는 강력한 마음이 들었어요. 영화가 조금은 무거운 내용이지만 행복하게 찍었습니다. 잊지 못할 현장이 아닐까 싶어요. <환절기>라는 작품이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되고, 또 큰 지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행: 굉장히 훈훈합니다. 곧 봄이 올 것 같네요.(웃음감독님도 첫 장편 데뷔작을 함께해 준 두 배우가 각별할 수밖에 없을 텐데 촬영 현장에서나 완성된 작품에서 용준수현에게 각각 놀란 순간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동은: 이원근 배우는 용준을 정말 많이 이해하고 있었어요. 이원근 배우가 이해하고 있는 용준이라는 캐릭터와 그의 감정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표현만 디렉팅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중반 이후부터는 특별한 디렉팅 없이 이원근 배우가 만들어가는 용준을 보면서 재미있기도 했고 감동받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용준수현의 애정신에서 용준이 미세하게 표정을 짓는 장면을 비롯하여 여러 장면에서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용준스러워서 참 만족스러웠습니다. 수현 역을 맡은 지윤호 배우는 의식불명의 상태로 누워있어야 하는 장면이 많아서 처음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표현을 하는 연기가 더 쉬울 수 있어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고 누워있어야 하는 연기라 더 힘들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지윤호 배우가 그 더운 여름에 환자 역할을 군소리 없이 밝게 해줘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힘든 계절을 겪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수현은 밝은 역할이어서 묘하게 밸런스가 잘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진행: 후반부에 용준수현이 만나는 장면은 배우와 관객의 몫으로 준 부분이 크다는 생각이 드는데, 배우님들이 캐릭터 표현에 있어 적정한 톤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지윤호: 말씀하신 부분은 배종옥 선배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장면이기 때문에 더욱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캐릭터와 상황에 맞게 용준을 바라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저한테는 많은 장면이 없었기 때문에 한 장면 한 장면이 더욱더 소중했고 더 잘 표현하고 싶었습니다.(웃음)

 

이동은: 원래는 전체적으로 풀샷이 많고 카메라도 거리를 두려 했기 때문에 콘티에서도 수현의 얼굴을 더 멀리서 잡았거든요. 그런데 그 장면에서는 수현의 감정이 워낙 중요했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가적으로 클로즈업 장면을 찍었습니다.

 

이원근: 특히 더 집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감정이 충분히 올라올 때까지 주변에서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아쉬운 부분이나 더 감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과 함께 이야기해가면서 촬영했습니다.

 

진행: 영화 속 식물들이 인상 깊습니다. 병원신에서 등장하는 수국도 그렇고 마지막에 셋이 누워있는, 꽃이 그려진 장판도 그렇고요. 조심스럽게 개화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듯한 영화여서 보면서 광합성을 받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렇게 식물성이 강하게 만든 이유가 있나요?(웃음)

 

이동은: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합니다.(웃음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초반에 미경으로 시작되다가 차츰 수현, 용준의 시선으로 옮겨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모노톤의 빈 공간에 있는 미경을 보여줬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여전히 힘든 계절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배경에는 꽃과 식물들이 많이 등장하고 다양한 색깔들이 나오길 원했어요. 색깔이 없는 차가운 블루톤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색깔이 많게 보이게끔 의도를 했습니다.

 


관객: 영화 속 결말이 열린 결말인데, 처음부터 정하고 쓴 건가요? 결말에 대한 배우님들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이동은: 결말을 아예 정해놓고 쓴 것은 아니지만 세 사람이 함께 삼각형을 이룬다는 그림은 구상하고 썼고 초고에서도 지금 결말과 똑같습니다. 마침표를 찍는 영화보다는 영화가 끝나도 영화 속의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우리 영화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로 다른 계절을 보낸 용준수현의 진짜 관계가 다시 시작되는 시점에서 영화가 끝을 맺는 식의 결말이 되었습니다.

 

이원근: 영화를 본 관객 분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결말을 만들어도 돼요. 저 또한 관객으로 생각해본다면, 차츰차츰 이 둘도 회복을 하고 조금 더 진심을 담아 그 이후에 둘만의 사랑이 또 이루어졌을 것 같아요.

 

지윤호:  살아가면서 항상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데, 마찬가지로 그런 상황에 놓인 채 끝나는 이 영화의 결말이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최고의 결말인 것 같습니다. 훗날 여러분들이 인생에 대한 고민하는 시기가 왔을 때 <환절기>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를 수 있다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행: 이 작품은 또한 미경용준의 우정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배종옥 배우님과 이원근 배우님의 호흡도 중요했을 것 같은데, 현장에서 어떻게 호흡을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원근배종옥 선배님은 훌륭한 배우이자 선생님이니까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설레고 감사했습니다. 촬영을 할 때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는데 선배님께서 처음에 캐릭터를 잡을 때만큼은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비웠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과정이 용준의 캐릭터에 녹아 들어서 더 적합한 캐릭터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지윤호:  평소 연기할 때 빼고는 긴장을 하지 않는 성격인데 배종옥 선배님을 만나 뵈니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많은 노력과 상황들을 지나오며 얻은 아우라가 있다는 것을 함께 작업하면서 느꼈어요가끔 나태해질 때마다 선배님의 열정적인 모습을 생각하며 많이 반성하기도 합니다. 연기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에 임하는 자세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모습을 많이 배웠습니다.

 

이동은: 처음에는 말씀대로 매체에서만 보던 배우님이다 보니 걱정이 많이 되었고 어떻게 작품을 해석하실지 떨리기도 했어요. 함께 작업을 하게 되면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가 생각해온 미경에 대한 해석이 선배님과 비슷했고 잘 통했습니다. 긴장되는 분위기에서도 선배님이 분위기 메이커로서 현장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웃음)

 


관객: 영화가 용준수현의 사랑을 굳이 특별하게 표현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감독님과 배우님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부분을 표현했나요?

 

이동은: 말씀하신 것처럼 두 사람의 특수한 관계가 포인트였지만 <환절기>는 그 관계에 집중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용준수현의 연인 관계를 넘어 그 이후에 그들이 각각 처한 상황에서 생겨나는 타인과의 관계에 더 집중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신 것 같습니다. 둘의 관계를 넘어서 또 다른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배종옥 선배님이 연기한 미경 또한 아픈 아들에 대한 간호가 먼저고 아들의 친구로서 용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와 같은 현실적인 고민이 먼저였습니다. 용준 스스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이유는 이미 그들은 정체성과 관계를 긍정하고 있었고 영화는 그 다음에 일어나는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원근: 사실 용준수현의 사랑을 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둘은 그저 사랑하는 사이인데, 그 관계를 왜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하고 연기를 하는 우리는 왜 그들을 특별하게 표현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받아들임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지윤호: 제가 빨간색을 좋아하고 다른 누군가가 초록색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저건 틀렸어가 아닌 나랑은 다르구나라고 생각하며 다름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운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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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의 시간에서 벗어나 영화적 감각으로 짜여진 세계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꿈의 제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11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조현훈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꿈의 제인>의 시간은 불친절하게 흘러간다사라져버린 사람이 다시 등장하는가 하면, 극 중 인물들의 관계가 뒤엉키기도 한다하지만 시간의 선형적 질서에서 벗어나 시청각적으로 표현된 영화적 언어를 받아들인다면 치밀하게 짜여진 <꿈의 제인>의 세계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많은 궁금증과 단서들이 오갔던 지난 밤의 기록이 나름의 이해와 해석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진행): 감독님과 GV 시작 전에 잠깐 얘기를 나눴는데요기분이 센티멘탈해지셨대요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요.

 

조현훈 감독 (이하 감독): 아마 오늘이 마지막 <꿈의 제인> GV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그런 느낌이 들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진행: 저는 마지막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아요인디스페이스에서 조만간 또 기회가 있을 거라 믿어요사실 지금쯤이면 감독님이 <꿈의 제인>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근데 말씀을 들으니 아직까지는 감정적으로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했나봐요.

 

감독사실 전까지는 감사한 마음이 구체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하지만 지금은 무엇이 감사한지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시기고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저번 주부터는 무엇이 감사한지에 대한 일기도 쓰고 있고요.

 

진행: 어떤 점이 감사한지 조금 공개를 해줄 수 있나요?

 

감독: 요즘 독립영화가 참 관객이 없어요우리 영화는 운 좋게도 많은 분들께서 봐주셨지만요관객 분들이 개봉 시기에 챙겨봐주셨다는 점과 지금까지도 꾸준히 지지를 보내주신다는 점이 정말 감사해요최근에는 또 스태프 분들이 생각나더라고요촬영감독님과 PD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떠올랐어요분위기가 약간 눈물의 GV로 흘러가는 것 같네요.

 


진행: 오늘 오신 관객 분들께 이따가 말씀을 또 드리겠지만어떤 마음으로 오셨는지가 궁금해요영화를 한 번 더 극장에서 보자는 취지도 있을 것 같고아직 감독님께 궁금한 점들도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요. 개봉 이후에 우연히 이 영화를 보신 분들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저는 이번 GV를 준비하면서 <꿈의 제인>을 또 봤는데정말 고심을 많이 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영화가 주는 매혹이라던가 압박감에 눌려있었는데그 감정에서 벗어나니 인물 하나 하나에 대한 감독님의 태도를 보게 됐어요. <꿈의 제인>은 굉장히 많은 사건들로 짜여진 복잡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복잡한 구조 안에서 컷 하나까지도 촘촘하게 설계된 영화예요감독님이 어떤 태도로 이 영화를 대했는지가 궁금해요.

 

감독: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과거를 추측하게 돼요작업을 하는 방식과 연결시켜 보자면 저는 스스로 먼저 꺼낼 수 없는 이야기나 믿지 않는 주제들로는 영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꿈의 제인>을 만들 때는 ‘아이들에게 스스로가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다짐이 제 마음속에 남아있었어요그 점이 가장 중요했고요지금도 여전히 작업을 하기 위해서 고민할 때는 적어도 제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작업에 담으려고 해요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 거예요때문에 다음 작업이 좀 오래 걸리겠구나 생각도 들고요.

 

진행: 감독님은 어미 하나까지 언어를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지고 어투가 주는 뉘앙스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그래서 '소현'의 내레이션이 풍부한 울림을 가질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요좀 느닷없는 질문이긴 한데감독님은 일기를 어떤 투로 쓰는지가 궁금해졌어요본인만의 글은 어떤 형식으로 쓰나요?

 

감독일단 반말로 쓰고요, 반성문처럼 써요주로 뭘 잘못하고 있고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사실은 거의 맨날 같은 말만 써요누가 만약 제 일기를 주워서 읽는다면 '이 사람은 왜 매일 똑같은 말만 하지?' 생각 할 정도로요똑같은 일상을 보내기 때문에 특별한 내용을 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진행: 영화를 본 분들 각자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이 다 다르더라고요보편적으로 처음에는 '제인'을 위주로 많이 보는 것 같고반복 관람하는 분들은 주변 아이들을 하나씩 보는 것 같아요저는 개인적으로 소현에게 이입을 많이 했고 감독님 또한 소현에게 가장 마음을 주면서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실제로는 어땠나요?

 

감독: '병욱'에게 시선이 가기도 하고 또 '대포'에게 마음이 가기도 해요캐릭터 하나 하나에 이야기를 부여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극중에서 주장 혹은 토론할 수 있도록 신경 썼는데소현이 기본적으로 제 마음을 대변해주는 아이였지만 병욱이나 대포 같은 아이들에게도 분명히 그런 면이 있어요반면에 유독 제가 감정을 주지 않았던 인물은 '정호'였어요정호만 멀찍이 떨어져서 봤던 것 같아요정호한테까지 이입을 해서 왜곡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진행: 그래서인지 영화는 정호 이야기를 유독 아껴서 보여주고 있어요불필요한 이야기들은 최대한 덜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정호의 컷들도 궁금합니다.

 

감독: 소현과 제인의 입장에서 정호에 대한 낭만적인 기억들 혹은 향수 같은 것들이 시나리오 상에는 담겨있었어요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들어내야 된다고 판단했던 거죠왜나면 제가 정호 얘기를 하는 것이 창작자의 나르시즘 같다고 느꼈어요아름답게 포장하는 방식이 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부정적인 쪽이라고 판단했거든요정호라는 인물을 냉정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또 대변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진행감독님이 어떤 면에서는 결벽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태도를 중시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정말 빈틈이 없다고 해야 하나요그래서 이 영화가 어떤 분들에게는 굉장히 무섭고 차갑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하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행복이나 희망에 대한 견해그리고 세상의 절망을 바라보는 시선이 저에게는 한없이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어요지금도 여전히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혹은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감독영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었어요순전히 제 생각인데사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이 영화를 봤을 거라 믿거든요비슷한 사람들끼리 생각을 공유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어요그렇다고 해서 제 생활이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그런 조금의 차이들이 제가 앞으로 만들 영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했고요


진행: 감독님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관객이 비단 저만은 아닌 것 같아요물론 이른 애기일 수도 있겠지만 감독님이 방금 차기작에 대한 단서를 던졌잖아요염치 불구하고 여쭤보겠습니다차기작 계획이 있나요?

 

감독: 일단 장편 시나리오는 계속 쓰고 있는 상태고요,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중요하게 잡아둔 부분은 있어요이 또한 가족의 관계 같은 것인데장편과 함께 그 내용과 연계된 단편을 촬영할 것 같아요. 각각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이야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어요이런 방식을 프리퀄이나 스핀오프라 하나요아무튼 단편은 전사(前史)를 드러내는 정도로 작업하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진행: 이렇게까지 주인공의 안 좋고 감추고 싶은 부분을 막 드러내는 작가는 드물거든요소현의 비겁하고 치사한 부분주인공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모습까지 보여주면서도 인물과 거리를 유지해버리는 카메라의 태도가 인상 깊어요그래서 저는 감독님이 소현에게 가장 이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거고요새로운 주인공에 대한 감독님의 태도는 어떨까 궁금해졌어요지금 쓰고 있신 주인공에게는 조금 덜 가혹한가요?

 

감독: <꿈의 제인>을 쓰던 당시에 저의 세계관이라 해야 할까요? 그땐 결국 희망이나 긍정적인 상황은 없다는 전제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지금 쓰는 시나리오도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가 될 것 같은데말씀하신 것처럼 <꿈의 제인>보다는 따뜻한 면들이 있겠죠

 

진행: 편집하며 컷을 붙이거나 넘어갈 때 가장 고심했던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감독: 현장에서 촬영한 분량은 다 사용했어요여력이 안되고 시간도 부족해서 촬영 단계에서 편집을 하면서 찍어가야 했거든요. 찍은 건 다 썼지만, 찍을 때 없앤 부분이 있어요. 때마다 고심했던 부분은 처음에 시나리오를 쓸 때 했던 고민들과 굉장히 유사했어요. '소현에게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시하는가?'라는 부분이에요. 가령 삭제된 장면 중 하나인데제인이 아이들 사이에서 소현이를 어떻게 데리고 왔는지 얘기하는 화기애애한 장면이 있었어요그런 장면이 저에게는 좀 불편했던 것 같아요환상 혹은 판타지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인데굳이 이 장면들까지 넣어서 이 아이의 낙차를 크게 하려는 연출자의 의도가 무엇인가,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그래서 많이 고민하고 삭제했던 것 같아요.

 

진행: 저에게 <꿈의 제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잔상이 또렷해지는 영화예요심리적이고 시각적인 모티브를 통해서 마음속에 깊게 들어가는 체험을 선사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거실에서 제인이 소현에게 휘파람을 불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그 장면의 공간이나 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는데처음에 제인이 휘파람을 불러달라고 했을 때만 해도 그 공간에는 그 둘만 존재하는 것 같잖아요하지만 카메라가 뒤로 빠지고 프레임이 점차 커지니까 아이들이 다 같이 모여있어요저는 그 순간 아이들이 유령 같은 존재라고 느껴졌어요미동조차 하지 않고 어떤 의식처럼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는데소현의 깊은 고독이나 감정들이 한 순간 너무나 크게 다가왔어요작년 6월 GV에서 이 장면에 대해 감독님은 소현이 마치 숲에 둘러싸여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했어요다음 장면은 제인이 투신해서 떨어져 있는 장면이죠. 그 다음은 다시 어두워진 가운데 미러볼이 돌아가고 침대에 누워있는 제인을 소현이 지켜보고 그 후경에 아이들이 미동 없이 앉아있는 장면이에요이 장면에 대한 감독님의 의도도 들어보고 싶어요.

 

감독: 일단 언급하신 장면들은 같은 방식으로 연출하진 않았어요휘파람을 부는 장면은 리허설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갔는데그 때 당시의 분위기가 우리가 보는 장면과 흡사했어요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소리를 듣고 있는가에 집중했고 그 감정들이 담겨야 된다는 것이 최우선이었어요유령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결국엔 초현실적으로 보여야 했고 그 공간이 이질적으로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아요그런 장면들이 영화 내에서 힌트나 열쇠가 돼야 하잖아요마치 숲 속에서 한 사람이 동물들에게 둘러싸여있는 듯한 이미지에서 시작을 했어요제인의 시신을 보고 있는 소현과 아이들 장면에서 명백하게 의도를 뒀던 지점은 죄책감이나 죄의식이었어요그 장면에서 '지수'는 드러나지 않거든요. '왜 지수를 숨기고 있는가? 제인의 죽음이 결국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나름의 원칙을 갖고 촬영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고요.

 

진행: 대포가 지수인 척 하고 나온 소현과 터널에서 대면할 때검정 비닐봉지를 씌우기 직전에 카메라가 한 번 터널 밖으로 빠졌다가 다시 들어가는 순간이 있어요터널 속의 대사처리는 사운드로만 들리고요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중간에 넣은 의도는 뭘까요?

 

감독: 어떤 의도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저 역시도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이 부분에서 감정적으로 동요가 많이 됐거든요소현의 말이 대포에게 전달이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에요대포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애당초 소현의 말을 거의 듣고 있지 않았던 거죠사람들은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대포는 조금 다른 아이인 것 같아요대포를 연기한 박강섭 배우가 제 학교 후배인데, 박강섭 배우는 정말 단순한 친구고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에요본인도 스스로가 의리 있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친구인데그런 면들이 저는 단순하다고 느꼈고 배우의 그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 반영됐어요. 대포의 행동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섬세하진 못 한거죠그 장면은 대포의 사고방식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생각해요.

 






관객: 영화 속 각각의 캐릭터들이 입체적이고 다양한 면모들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어요캐릭터에 대한 감독님의 감상을 들어보고 싶어요.

 

감독: 이제 겨우 한 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고, 영화 작업이라는 게 참 마음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제 나름대로 인물에게 양면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어요. 창작론은 아니고 제가 사람을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중 하나인 것 같아요실제로 더욱 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요인간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방식이 내 세계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고민을 해요일부러 원칙들을 신경 쓰면서 이야기를 구상하진 않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자연스레 담긴 것 같아요.

 

진행: 아무래도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모습의 등장인물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캐릭터의 풍부성이 곧 감독님의 태도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요? 함부로 단정짓지 않는 조심스러운 태도와 거리를 두려는 자세가 보여서 좋았어요. 

 


관객영화를 보는 내내 꿈을 꾸는 것처럼 기억들이 조각나 있다고 느꼈어요그렇게 느낀 이유 중 하나가 뒤죽박죽인 순서 때문인데이야기가 순서대로 정렬된 건지 궁금해요소현의 내레이션이 반복되는데, 영화 전후의 이야기를 분리해서 봐야 하는지아니면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서로 연관시켜서 봐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또 딸기케이크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케이크가 가진 상징적인 의미도 궁금합니다.

 

감독: 첫 번째 질문이 영화를 개봉하고 나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에요항상 하는 대답은 있는데요즘 생각과 연결시켜 답하자면, 제가 단편영화를 찍는 꿈을 계속 꿔요벌어지지 않은 일들에 고통스러워 하면서 준비도 안 되어있는데 뛰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 꿈에 나와요걱정하는 것들 혹은 희망하는 것들이 꿈에 반영된다고 생각해요긍정적인 관점에서 소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또 이 친구가 가장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영화적으로 표현해야 했어요. 소현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무엇을 이루지 못했는지어떤 것을 가장 후회하는지에 집중할 수 있게끔 순서를 구상한 것 같아요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엉키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반복되는 편집, 내레이션, 공간들은 나름대로 이야기를 풀어갈 열쇠나 힌트를 드리고 싶었던 것이고 케이크 또한 같은 의미를 가진 소품이죠많이 못 보시는 장면인데, 처음에 소현이 편지를 쓰는 모텔 방에서 천천히 카메라가 들어갈 때 먹다 남은 케이크가 보여요이 장면은 사실상 이후에 나오는 소현이 딸기 하나를 케이크에서 떼 먹는 장면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어요실제 시간이라기보다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원칙이나 방식을 제시한 것이고그런 것들을 단서로 삼아 본인 방식으로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영화를 통해서 권유한 거였어요.

 

진행: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정말 기대하고 있었어요개봉 당시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여러 방식으로 하거나 안 하려고 피했거든요저는 이 영화에 나름의 엄청난 원칙들이 있다고 생각해요굉장히 첨예하게 만들어 놓은 연결고리들이 있어요크게는 음악빛의 활용이 있죠소품 하나 대사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계산돼 있어요때문에 저는 영화를 보면 볼수록 소름이 돋는 순간이 많았어요.

 


관객: 제인이 미러볼이나 공 같이 둥그스름한 것에 집착해요그 소품들에 담긴 의도가 궁금합니다.

 

감독미러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이 말을 하는 게 민망한데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은 밝아진다는 주제의식을 반영하는 소품이에요소품의 특징을 제인과 연결시킴으로써 제인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고요미러볼과 공처럼 둥그스름한 것이 제인 그 자체다, 라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썼던 것 같아요.

 

진행: 구교환 배우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일 년 전쯤에 이런 답변을 했어요그 때 굉장히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동그라면 좋지 않냐고 하면서 동그랗기 때문에 모서리도모난 부분도 없이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제인과 닮았다고 이야기했어요.

 






관객: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제인의 매력에 빠졌는데그 다음에 볼 때는 모든 캐릭터가 눈에 들어왔어요각각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 저의 모습과 많이 겹쳐 보였어요때문에 감독님이 각각의 캐릭터를 단정짓지 않겠다고 한 이야기가 좋게 와 닿았고요캐릭터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나갔는지누구를 먼저 만들어냈는지 궁금해요.

 

감독아무래도 소현이란 인물이 제일 중요했고 그 다음으로 지수란 인물도 중요했죠원래 단편이 시초였는데단편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였어요지수가 팸의 가장이라는 설정이었고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는 내용이었어요그런 이야기를 쓰다가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로 가는 것 같아서 조금씩 수정해나갔어요인물들을 만들 때는 제인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며 쓰지는 않았어요. 제인이라는 인물 한 명만 방향성을 잡고 만들어 낸 캐릭터예요. 제인은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면서 약간 촌스럽기도 해요이런 부분이 분명히 필요한 특징이라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넣었어요.

 


관객: 영화에 트랜스젠더나 청소년들이 많이 등장해요하지만 대중들은 성적소수자나 소외계층의 삶을 잘 모르기도 하고 또 쉽게 관심을 주지도 않잖아요이런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감독: 결국 영화를 왜 만들고, 어떻게 만드는가로 생각이 이르는 것 같아요저는 홀로 남겨진 사람의 마음에 이입을 해요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알고 이해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에요그런 마음들이 이야기를 만들게 해요그렇게 시작을 하다 보니 인물의 곁에 두고 싶은 인물들이 하나 둘씩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죠그래서 제인을 만들어냈고 가출팸 아이들도 만나게 됐죠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소현 같은 인물이에요.

 

진행: 왜 그런지는 보는 사람들이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해요제가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영화에서 환지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환지증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감독: 두 가지 면을 생각했어요당사자가 아니라면 우리들이 판단할 수 없는 범위가 있어요그런 관점에서 편견이나 오해동정을 이야기하고 싶었고또 한편으로는 소현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소현이는 비뚤어진 시선들을 개의치 않아한다는 부분이물론 주제적으로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편견을 대하는 제 개인의 태도와 소현이의 태도가 많은 다른 사람들과도 닮아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환지증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진행: 지난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꿈의 제인>으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동료 선후배 감독들이 준 상이기 때문에 의미가 더 클 것 같아요마찬가지로 저 또한 <꿈의 제인>이라는 영화가 영화계 안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값진 자극을 준 영화라고 생각해요투자를 받기도 어렵고 관객도 모으기 쉽지 않은 환경에서또 독립영화가 독립영화답게 존재하는 것 조차 힘든 세상에서 몇 줄로 정리되지 않는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어요이 영화는 소리와 이미지가 하나의 덩어리로 운동하듯 다가왔고 영화적인 경험을 안겨준 좋은 영화였어요앞으로도 계속 이런 영화를 찍어주셨으면 좋겠어요감독님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감독: 긍정적인 희망이나 목표를 두고 영화 작업을 하진 않을 것 같아요하지만 분명 그런 시기도 있겠죠이 일은 공격적으로 해야 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를 좀 오해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산업이니까요그렇지만 정확하게 어떤 원칙을 갖고 이렇게 작업하겠다고 얘기할 순 없어요단지 고민이 많고, 조금은 침울한 상태로 작업에 임하고 싶다는 게 제 개인적인 목표예요못보고 지나치지 않도록또 놓치고 있는 것들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행: ‘침울한 상태로 있어야겠다라는 말이 굉장히 반갑네요무슨 의미인지 다 아실 거라 생각해요늦은 밤까지 자리해주신 관객 분들에게 마지막 인사 부탁드릴게요.

 

감독: 사실 오늘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고 그걸 목표로 이 자리에 왔어요개봉하고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에서 영화를 다시 보러 와주시고 또 늦은 시간까지 영화관에 남아주셨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마법 같고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이 영화를 택한 것 자체가 우연이라 할지라도요하지만 저에게 오늘은 절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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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직관의 시간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11일 오후 2시 30분 상영 후

참석 정재훈 감독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실험 영화의 범주 안에 포함되는 영화들을 관객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영화를 보기 전, 미리 얻을 수 있는 정보만으로는 어떤 영화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목부터 상영시간까지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만든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를 두고 어떤 이는 초저예산 SF 블록버스터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212분이 흐른 뒤, 출입구로 등장하는 감독의 얼굴이 그 어떤 관객과의 대화 때보다 반가웠다.





 

정지혜 평론가 (이하 정지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먼저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재훈 감독 (이하 정재훈): 휴가지에서 뒷산에 갔는데, 같은 장소를 빙빙 도는 것 같았습니다.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이런 걸 영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1부는 2005년에 찍은 것들입니다. 2부는 찍다 보면서 쌓인 것들을 가지고 편집했습니다. 2부를 먼저 만들고 뭔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찍어둔 것들을 찾아봤는데, 영상들이 있기에 1부에 사용하게 됐습니다. 이 두 개를 붙이니까 영화가 너무 길어서 휴식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 중간에 인터미션 영상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정지혜: 두 영상을 붙이게 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미션이 2부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키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정재훈: 1부의 경우에는 산이라고 하는, 혹은 멈춰진 상태라고 하는 것에 대한 경험적인 축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호흡의 작업물이 나오게 된 것이고요.

 

정지혜: 감독님은 이 영화를 ‘4DX 어드벤쳐물로 생각하고 접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SF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2부로 넘어가기 전 인터미션이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1부에서는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고 계속해서 흔들리거나 흐르는 것들을 찍었습니다. 시간이 변하고 있다는 걸 미세하게 보여주는 차원이었던 것 같은데요, 이런 장면들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정재훈: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했다기보다는 계속 변하는 것,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관객이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1부는 사운드가 통제되어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정재훈: 사운드를 넣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처음 장면인 일출 장면을 예로 들면, 인위적인 조작은 없었지만 소리만 통제하는 방식으로 편집했습니다.




 

정지혜: 2부는 공간이 주는 소리가 극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정재훈인터미션에서 사운드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적극적으로 사운드를 넣었습니다.

 

정지혜: 전작을 봐도, 영화를 통해 촉감을 자극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 등장한 지글거리는 사운드도 그렇고요. 사운드의 울림이 커서 몸에 진동이 오기도 해요. 그래서 실제로 신체에 자극이 온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 안에서 감각적인 자극을 주는 방식에 대하여 의도한 게 있나요?

 

정재훈: 2부에서 관객이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운드에 신경을 더 쓰는 편입니다. 영화를 상영할 때도 상영 기사 분들한테 사운드에 관해 부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지혜: 촬영 장비가 각각 달랐다고 들었습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영화 안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재훈: 유튜브를 많이 봅니다. 스트리밍 동영상을 보다 보면 인터넷 상황이 안 좋을 경우 화면이 문제가 뭉개질 때가 있는데, 이런 경험의 연장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크게 의미부여가 돼있는 건 아니었어요.

 

정지혜: 다른 상영회에서 감독님을 만났을 때, 감독님께 2부에 감독이 등장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감독님은 그때 맞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는데요.

 

정재훈: 사람이나 캐릭터는 영화를 만들 때 딱히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2부에서 사냥터와 조선소가 같이 나오는데, 사냥터에서 돌아다니는 개의 모습과 조선소에서 노동자가 일하는 모습이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동자를 넣게 되었어요.

 

 



관객: 영화가 어려워서 생각이 이것저것 많이 듭니다. 찍는 과정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1부는 다 카메라가 고정되어있는데, 찍으면서 화면만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2부에서 사냥꾼들과 조선소, 개를 찍으면서 힘들었던 점과 이런 소재를 선택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정재훈: 1부는 별 생각 없이 찍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산이고 23일정도 찍었습니다. 사람이 등장하는 모습은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촬영할 때 딴 짓은 딱히 안 했습니다. 조선소의 경우 촬영이 원래 안 되는데, 일했던 곳이라서 슬금슬금 촬영했습니다. 별 문제는 없었고요, 이 영화를 통해서 조선소의 노동환경 같은 문제는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업은 여러 포맷이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써서 작업하기도 하고, 배우와 함께 작업하기도 하고, 계기가 생겨서 특정한 장면만 찍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경우엔 다른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자료들이 쌓일 때쯤, 이 자료들 사이에서 추상적으로나마 선을 그리면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어 붙이게 됐습니다. 편집은 4개월 정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지혜: ‘이 영화는 감정을 갖고 접근한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전작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보였습니다. ‘말하지 않음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2부에서 사람이 등장할 때도 이름이 나오지 않고 대사도 없습니다

 

정재훈: 영화 안에 인간의 언어는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소리가 주는 질감을 언어체계화해서 전달하려고 시도해 봤습니다.

 

정지혜: 그래서 다른 사운드들이 감각적으로 전해지는 부분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2부에는 조선소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특이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후반부에 개의 모습을 확대해서 찍는 것도 역시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재훈조선소 노동자가 카메라를 쳐다보는 장면은 화질이 너무 낮아서 그렇게 되었어요. 쳐다봤다고 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관객: 감독님의 전작 <서울연애>(2014) <상냥한 쪽으로>에서도 산이 등장하는데요, 감독님에게 한국의 산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정재훈사실 큰 감정은 품고 있지 않습니다. 면적의 높은 비율이 산이니까 자연스럽게 계속 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산에서 찍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산밖에 없다라는 문구가 머릿속에 남아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지혜: 1부에서 카메라가 갑자기 고정된 숏에서 움직이는 때가 있었습니다.

 

정재훈: 뭔가 숲에서 움직였다거나 기척이 있어서 저절로 시선이 따라갔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한 건 아니고요, 시선에 감정이 깃들려고 하면 의도적으로 빠지고, 그런 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정지혜: 더 찍고 싶을 때가 있으면 어떻게 했나요?

 

정재훈: 나중에 편집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일단 더 찍었습니다.


정지혜: 인터미션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정재훈: 이 영화는 제가 재미있자고 만든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미션이 제일 재미없는데, 영화 안에 더 동적인 걸 넣어보자고 생각해서 만들 게 됐습니다. ‘파이널 판타지의 엔딩곡이 좋아서 게임 음악을 인용하게 됐습니다. 게임 안에서 전투 중 아이템을 얻거나, 소환수를 부른다거나, 공격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소리와 날씨예보, 고승덕의 주식투자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붙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직관적인 작업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파장, 웨이브와 같은 단어들이 반복되는 것은 인상 깊습니다. 제목에 등장하는 난기류라는 단어도 그렇고요.

 

정재훈: 주식투자 프로그램에서 쌍봉, 파장이라는 단어로 상황을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1부에서 나오는 기계적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카메라 워크에서 2부의 와이파이가 잘 터졌다 말았다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혹은 인위적인 형태지만 하나의 묶음으로 연결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212분이라는 시간이 만드는 입장에서 부담되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관객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정재훈: 주변에서 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많이 틀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랬습니다.

 




관객: 개도 많이 나옵니다. 마지막 눈 오는 장면에서도 그렇고요. 관객이 개의 시선을 공유하는 경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 뤽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2014)도 생각이 났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제거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야기를 배제하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미학인 것 같습니다. 무늬, 소리(기계음)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건지 궁금합니다.

 

정재훈: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영화도 준비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 경우엔 이야기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소화를 잘 못 시키는 타입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야기를 철저히 배제하려고 애쓰진 않았습니다. 정보라는 걸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데, 이런 마음이 영화에 반영된 것 같습니다.

 

정지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관심 있는 이야기는 어떤 게 있나요? 전작 <환호성>(2011)의 경우 지독하게 일만 하는 남자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서사로서의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재훈: 사랑과 우정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노동시간이 많아서 이야기를 가질 수 없는 게 지금 사회구조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환호성>에 넣었던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 다같이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를 틀어놓고 보는데, 문득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있을 수 있고, 이야기가 없는 전제조건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지혜: 마지막으로 인사 부탁드립니다.

 

정재훈: 이 영화를 첫 상영을 한 지 1년 됐습니다. 그 동안 4번 정도 상영했는데, 항상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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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달려온 여배우의 오늘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10일 오후 5시 30분 상영 후

참석 문소리 감독

진행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토요일 오후, 배우 문소리의 감독 데뷔작으로 화제가 되었던 <여배우는 오늘도>가 관객들과 다시 만났다. 상영이 끝난 후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의 인사말로 시작된 인디토크에는 첫 연출작에서 배우로도 활약한 감독 문소리가 함께했다. 바깥의 날씨와는 상반된 따뜻한 분위기에서 부지런히 달려온 그녀의 수많은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이하 진행): 개봉 직후부터 동료 여배우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은 영화다. 여성들이 영화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하게 된 게 멋지고 기쁜 풍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개적으로 나누었던 대화의 경험들은 어떻게 의미가 남았나?

 

문소리 감독(이하 감독): 많은 선배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아직까지도 그 내용들이 다이어리에 적혀있다. 다 갚지 못한 마음이다. 최근 영화계에 시끄러운 일들이 많지 않나. 미투 운동(#MeToo)도 있고. 나만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여배우들은 자주 모이지 않는다. 같이 작품을 하거나 미용실에서 오가면서 만나지만, 작품이 없으면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 영화를 도와주고자 많은 선배들이 와줘서 마음 안에 연결된 끈이 조금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행: 극중 문소리를 연기하는 배우 문소리를 보는 기쁨이 있었고 그것을 연출하는 감독 문소리를 보는 기쁨이 있었다. 그것이 보는 사람과 문소리라는 배우의 거리를 좁혀주는 느낌이 들었다. 또 이후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그 거리의 폭이 조금 더 줄어든 것 같다. 감독님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로 데뷔하고 임상수 감독님의 영화로 작품을 이어가면서 처음부터 친숙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니었다.(웃음) 무겁고 힘든 작품들이 많았다. 시작이 그래서 그런지 좁혀지기가 어렵더라. 그런데 영화를 만들며 내가 나한테 거리를 두고 보았더니 그 거리만큼 관객들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과 더 많이 공감하게 된 것 같다.

 

진행: 독립영화계에 대해 구석구석 알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감독: 큰 영화로 데뷔를 했지만 단편영화나 저예산영화, 인권영화도 찍어서 개인적으로는 독립영화가 가까운 느낌이다. <박하사탕>(1999)<오아시스>(2002) 사이에 일곱 편의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나한테는 그게 데뷔작만큼이나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 당시 함께 작업했던 분들이 다 독립영화인들이었고 그들에게 너무 많이 배웠다. 그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눴던 것들이 내 인생에서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낯설지가 않다. 마음이 많이 있었고 계속 인연이 있던 곳이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배급을 하는 과정을 보며 독립영화의 배급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한국 영화 전체에서 배급의 독과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도 더 절실히 느끼게 된 것 같고 공부하는 지점도 많았다.





진행: 지금에서야 보이는 작품의 한계나 단점이 있다면?

 

감독: 처음부터 장편으로 개봉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다. 한편 한편의 단편으로 시작했고 문소리라는 사람의 삶으로 세 이야기가 엮여있다. 그렇게 시작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극장에 와서 보시는 관객들에게 부족한 점이 느껴질 수 있겠구나 싶다.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며 찍은 영화다. 학생들이 영화를 만드는 평균 제작비에 맞춰서 찍으려고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에 맞춰서. 장소도 많이 왔다 갔다 했다. 2막에서는 장소가 너무 많아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 그래서 3막에선 장소를 줄여도 보았다. 조명을 많이 못 썼던 것도 큰 화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진행: 다시 학생 문소리로 돌아간 경험이 어떤 용기, 혹은 자신감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감독: 공부했던 시간들이 지나보면 참 좋은 것 같다. 그때는 이 비싼 학비를 내고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집에서 애는 울고 있는데.(웃음) 공부를 하는 것은 무언가를 회복하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시도였다. 어떠한 일로, 무엇이 무너져서 무엇을 회복하려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공부가 나한테 무언가를 줄 것 같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 당시엔 그냥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교정이나 강의실에 있던 그 순간들은 굉장히 평화로운 순간들이었다. 10여년 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 속에서 잘 쉬지 못했다. 하루 집에서 쉬라고 하면 꼭 가구를 옮기거나 김치 냉장고 안의 모든 것들을 꺼내보며 일을 만든다.(웃음) 잘 못 쉬는 사람인데, 그렇게 달려왔던 것들이 갑자기 조용해진 그 순간이 좋았다. 그리고 조금 자존감이 흔들렸던 시기였던 것도 같은데, 공부가 굉장히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교수님들이 좋은 가르침들을 많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해서 영화적으로 더 전문가가 되거나 더 아는 게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계속 공부를 하는 과정인데,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그 방법에 조금 더 친숙해진 것 같다. 이걸 조금 더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 경험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영화가 아니어도 될 것 같다. 누구에게든 어떤 공부가 그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진행: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여배우라는 개념으로 축소시켜서 생각을 해보자면, 작품이 여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선언하고 있단 느낌을 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작업 이후엔 여배우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하고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감독: 새로 정립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조금 진지해 보이고 까다로운 여배우로 생각했다면, 영화 이후에는 영화 일을 하는 사람이나 같은 동료로 더 많이 봐주는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보면 내가 여배우이기 때문에 갖는 마음들, 받는 시선들, 처해지는 상황들이 거의 죽는 날까지 여전할 것도 같다. 영화의 관계를 더 다양하게 평설하면 조금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시간이 좀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진행: 지금 이 시점에서 영화인 문소리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인가?

 

감독: 영화하고 사는 거다, 그냥.(웃음) 가장 큰 숙제 같기도 하다. 매일 밤 고민하며 잠들고 고민을 시작하면서 눈을 뜰 정도로 그런 숙제들이 많다. 그런데 그 숙제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스스로 하겠다고 한 것들이다. 그만큼 영화를 애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빼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만, 굉장히 텅 빌 것 같다. 부부 사이도 멀어질 것 같고.(웃음) 학교에서 영화 연기를 가르치고 있기도 한데, 거기서 영화를 빼버리면 내가 학교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영화를 안 하면 재미없어서도 못 살겠지만, 삶의 이유가 없어질 것만 같다.





관객: 1막에서 홍상수 감독 영화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감독: 여러 감독님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해외 영화제에서도 소주를 마시는 씬만 나오면 , 홍상수스러운 씬이었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1막 시나리오를 썼을 때, 여럿이 앉아 술을 마시는 씬이 나오니까 주변에서 홍상수스럽지 않을까하는 우려들을 했다. 그리고 촬영감독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찍었던 촬영감독이었다. 그 촬영감독에게 유일하게 주문한 것이 홍상수 영화 같지 않게 해줘였다.(웃음) 얼핏 보기에 술 마시는 분위기에서 홍상수 영화의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내 영화에서는 연애를 안 하지 않나.(웃음) 남자를 다시 만나 따로 2차를 가던가 해야 홍상수 감독 영화스러운 것이지 않겠나. 나는 딱 파하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집에 갔다.(웃음)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 세 가지 단편영화를 막()별로 배치했는데, 그 순서에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 1막에서는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여배우의 삶이 중요한 부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을 통해서 문소리라는 여배우를 보았다. 1막을 만들고 났더니 발만 살짝 담근 것 같단 기분이 들었다. ‘확 들어가서 다 젖으면 어때, 들어가서 어떤지 파헤치고 더 봐봐!’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2막에서는 그 사람의 삶으로 직접 더 들어가서 그녀가 겪는 직접적인 심경과 일들, 그리고 그녀의 가족을 담아보려고 했다. 3막으로 가니 이렇게 영화하는 삶을 살고 있는 이 사람이 결국 어디로 갈 것인가. 왜 이러고 사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장례식에 가 무언가를 보고, 겪고 나오는 이야기를 생각해낸 것 같다. 1막을 만들고 나서 2막을 만들고, 2막을 만들고 나서 3막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그때마다 생각의 과정들이 있었던 것 같다.

 


관객: 감독으로서 다른 배우들에게 디렉팅을 하는 과정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가?

 

감독: 제일 주안점을 뒀던 것은 어떻게 하면 편하게 해줄까?’였다. 배우로서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배우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을까, 지금 배우의 심경은 어떨까, 지금 배우는 뭘 해야 할까, 배우에게 뭐가 필요할까에 대한 답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거기에 맞춰주려 했다. 오랫동안 배우로 일해 왔기 때문에 연출을 할 때도 그렇게 머리가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관객: 세 개의 막에 모두 걸쳐 나오는 것이 불편한 사람과의 술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2차를 가자고 말한다. ‘2가 감독님에게 배우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다.

 

감독: 누가 2차를 가거나 3차를 가자 그러면 잘 거절하지 못한다. 그런 원래의 내 성격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2라는 것이 영화 안에서는 술자리지만, 우리는 계속 다음 영화를 찍어야 하고 다음 막을 살아야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끝이 나지 않는다. 한 컷을 찍었으면 다음 컷을 찍어야 하지 않겠나.

 


관객: 자전적인 내용인데, 작품이 현실을 어느 정도까지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 적당히 반영되어있다. 수많은 감독님들과 가졌던 술자리들이 있다. 그것이 다 모여서 하나의 씬으로 만들어진 거다. 실제로 영화 안에서와 똑같은 일이 있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전에 있었던 수많은 비슷한 일들이 조각조각 영향을 미치고 들어간 부분이 있다. 그래서 현실이 얼마나 반영되어있는지 수치로는 계산할 수가 없다. 굉장히 혼재되어 있다. 많은 것들을 섞어서 만들어놓은 것이긴 하지만, 만들어놓았다고 해서 허구라 생각하진 않는다. 기억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허구가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있지 않나, 확신을 못하겠는. 지금은 <여배우는 오늘도>를 많이 봐서 그 장면들을 내가 실제로 겪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살면서 팩트는 정확하지 않더라도 그때의 느낌과 감정, 생각은 명확히 기억나지 않나. 그것들을 담아내려 했다.

 


관객: 영화감독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감독: 배우도 굉장히 창의적인 직업이라 생각하는데, 감독이 해내야 하는 창의적인 어떤 것은 정말 차원이 다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배우가 연기를 하며 느끼는 책임감과 많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서 감독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운 직업이고 힘든 직업이라고 많이 느꼈다. 감독만 한 게 아니라 배우까지 같이 해서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다. 무엇을 먼저해야 하는지 순서도 모르겠는 경우가 있었고, 어떤 태도로 하고 있는지 헷갈리기도 했. 바로 오케이를 못 내리고 다시 모니터 앞으로 돌아와 확인을 해야 하니 시간이 걸리는 점도 어려웠다. 둘을 병행해서 어려웠던 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진행: 마지막으로 관객 여러분들께 끝인사 부탁드린다.

 

감독: 영화를 보러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2018년도 힘차게 달리길 바란다. 작년에 너무 달려서 올해는 신발 끈 좀 묶고 재정비를 해야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웃음) 좋은 영화로 또 찾아 뵙겠다. 감사하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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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긍정을 뒤덮는 혐오의 공기를 향한 분노와 근심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불온한 당신>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10일 오후 2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영 감독

진행 차한비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차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이름이 없었다고 해서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에 자신들의 삶을 꿋꿋이 지켜 왔던바지씨치마씨들이 혐오와 차별이 유행병처럼 번지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바지씨로 평생을 살아온 일흔 이묵 씨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불온한 당신> 인디토크에 차한비 한국독립영화 사무차장(이하 차한비)과 이영 감독(이하 이영) 함께 했다.

 

 

 




차한비 : 지난 2017년에 개봉해서 여름 내내 관객들과 뜨겁게 만난 작품이다. 개봉 끝나고 나서도 여러 자리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스크린 상영은 오랜만일 하다. 관련해서 소감을 여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