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노동자들, 그 투쟁의 기록  FoFF 2017 <가현이들>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 28일(화) 오후 5 10분 상영 후

참석 윤가현 감독 |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이가현(불꽃페미액션)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청년’하면 떠오르는 암울한 분위기들. ‘노동조합’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들. 이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지면 어떤 다큐멘터리가 등장하는 걸까. <가현이들>은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의 청년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기존의 노동영화와는 달리 무겁지만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또한 청년의 삶에 있어 우울한 단면뿐만 아니라 정력적이고 유쾌한 모습 또한 조화롭게 보여주었다. <가현이들>의 히로인, 세 명의 ‘가현이들’과 함께 인디토크를 진행했다.



진행(석자은 관객 모더레이터): 안녕하세요. 인사 말씀과 근황 이야기를 부탁드릴게요.


이가현(불꽃페미액션): 안녕하세요. 저는 이가현입니다. ‘알바노조’ 조합원이자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맥도날드에서 일을 했던 이가현이고요, 지금은 알바노조의 위원장으로 있습니다.


윤가현 감독: 시간 내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만든 윤가현 입니다. 


진행: 저는 노동영화를 꽤 많이 본 편이에요. 기존의 노동영화는 항상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는데, 이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 보기 편하면서도 주제에 대해 심도 있고 조화롭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어떻게 영화를 찍게 되었나요?


윤가현 감독: 저도 노동영화를 많이 보았는데요, 다큐멘터리 노동영화를 보면 힘들더라고요. 슬프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감정이 가라앉지 않고요. 이 영화를 만들 때, 다큐멘터리 노동영화를 전혀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영화의 분위기를 무겁지만은 않게 가져가야 했어요. 미디어에서 비추는 청년의 현실은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저는 항상 힘든 사람이 아니고, 그런 단면들만 보여주는 것이 청년들을 설명하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불쌍한, 애처로운 대상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찍은 이유도 있습니다.


진행: 알바노조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알바노동자들이 미디어를 통해 불쌍한 존재로만 소비될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행동을 통해 조금씩 상황을 변화시켜나가면서 ‘우리가 이런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느끼게 하는 것이 저의 목표였어요. 또 앞으로 얼마간 이것이 알바노조의 목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행: 여성이 찍은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화가 더 좋았어요. 그래서 이와 관련해 질문을 드리려고 해요. 같은 세대의 남성 알바노동자보다 여성 알바노동자가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이는 경우가 많아요. 복장과 화장 문제, 성범죄 노출 등의 문제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되죠.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이가현(불꽃페미액션): 작년에 알바노조에서 제기했던 여성 노동자 이슈 중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관 알바노동자들의 꾸미기 노동과 쥬씨의 외모차별공고입니다. 영화관 같은 경우 업무와 관련 없는 타이트한 치마와 구두를 착용해야하고 시선을 끌기 위해 빨간 립스틱을 발라야 해요. 남성보다도 특히 여성들이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여성들이 업무와 관련 없이, 사업장의 도움이 되어야하는 성적인 객체로 다루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꾸미기 노동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결정하지 못한 부분은 꾸미기 노동 시간에 대한 임금을 요구해야 할지, 아니면 꾸미기 노동을 아예 반대해야 할지에 대한 것이에요. 사회적 시선과 억압 때문에 꾸미는 분들도 있지만, 개인의 만족과 예술성의 표현으로 자발적으로 꾸미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그 ‘자발적’이라는 경계가 굉장히 모호한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진행: 저도 얼마 전에 알바를 구하려고 찾아봤는데, 성별 표시, 사진을 요구하는 곳이 많았어요. 그래서 나의 성별이 해야 하는 일에 영향이 있느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은 답변을 하지 않거나 편의상 그렇게 한다는 식으로 답을 하더라고요.



관객: 과거에 제대로 알바 임금을 받지 못한 적이 있고 신고하지 말라고 협박을 받기도 했어요. 혹시 알바노조 위원장님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저의 예를 들어볼게요. 저도 만약 혼자였다면 맥도날드에서 해고당했을 때 기분은 나빴겠지만 그냥 바로 다른 일을 구했을 것 같아요. 알바노동자들이 주휴수당 같이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개인의 용기 문제가 아니라 혼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맥도날드에서 해고됐을 때 알바노조의 어느 분이 ‘이곳부터 바뀌어야 네가 다른 알바를 구할 때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느냐’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제 주변부터 조금씩 바꿔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윤가현 감독: 덧붙여서 이야기하자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구두로 약속한 시급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알바노조에서 상근할 때 돈을 받지 못 했다는 상담전화가 정말 많이 왔어요. 그런 경우 알바노조에서 함께 임금을 받는 것을 돕거든요. 이렇게 떼인 임금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임금을 자꾸 떼이고 다른 일자리를 찾는 일이 반복되면 자존감도 낮아지고 부정적인 것들이 누적되거든요.


관객: 알바노동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 궁금합니다.


윤가현 감독: 이전의 노동영화들을 보면 직업의식이 투철한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알바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이 공간에 꼭 남아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워요. 예를 들어 사장과 싸울 상황이 되면 차라리 다른 알바로 옮기는 것이 편한 거죠. 안타깝게도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알바를 하는 시대가 왔어요. 안정성을 알바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정규직 또한 알바의 범주로 포함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해고되면 누구나 알바노동자가 될 수 있고요.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알바노동자들이고, 나도 알바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지점을 받아들이면서부터 이야기가 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알바노조가 인권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잘 통하지 않으니까, 현재는 ‘법을 지켜라’ 쪽으로 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언론에서도 임금 자체의 변화를 이야기하기보다는 현재 있는 법을 지켜야한다는 쪽에 중심을 두고 있어요. 저희의 언어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핀잔을 조금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가령, 알바천국에서 ‘주휴수당 주는 착한 사장님’이라는 광고를 했어요. 주휴수당은 당연한 거거든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이야기를 하고 계속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관객: 여성 감독이 두 번째 영화를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윤가현 감독: 주변에서도 여성 감독이 두 번째 영화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면서 빨리 하라고 해요. 사실 저는 이번 작품이 제 유작이 될 줄 알았어요.(웃음) 너무 힘들어서요. 하나하나 모두 힘들더라고요.(웃음) 제작지원이 있기는 했지만, 받은 금액의 세 배정도를 직접 투자했어요. 그런데 관객 분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지금껏 제 인생에서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더라고요. 그래서 하나쯤 더 해볼까 마음먹게 되었고 이왕 하는 거라면 빨리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작업은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갑니다. 하나는 여성의 꾸미기 노동이에요. 알바를 알바노동자라고 하지 않죠. 그래서 꾸미기를 꾸미기 노동이라고 부르는 그 자체부터 출발합니다. 또 하나는 고졸 분들 같이 미디어나 정책에서 이야기하는 청년에 포함되지 않는 청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그리고 요즘 영화계 내 성폭력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저도 다큐멘터리 내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포럼을 준비하고 있어요.


관객: 영화에서 등장하는 ‘꺾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어요. 그리고 최저 임금 만원을 요구하는 것보다 임금인상률을 높이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지 않나요?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맥도날드에서 나왔던 꺾기는, 예를 들어, 9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하기로 했을 때 예상과 다르게 손님이 적을 경우 일찍 퇴근을 시키는 것이에요. 법적으로는 휴업수당을 줘야하는데 주지 않고 있어요. 알바노동자는 더 일을 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일을 할 수 없는 것이죠. 이 밖에도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1개월만 고용하는 퇴직금 꺾기, 20분만 일을 시켜서 임금을 받지 못하게 하는 롯데시네마의 임금 꺾기 등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최저 임금 만원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업은 그만큼 많은 돈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 문제에서 계속 화두가 되는 것이 자영업자인데, 사실상 알바 고용하는 자영업자는 많지 않고요, 대부분 가족끼리 운영을 해요.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죠. 제 생각에는 이 경우 인건비 말고 본사가 가져가는 과다한 수수료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수입의 35-45%를 수수료로 먼저 주고 임대료를 내고 알바비를 지불하는 거죠. 건물주가 과다하게 책정하는 임대료도 문제가 되고요. 이런 부분들이 실질적 문제인데 자꾸 힘없는 알바노동자의 임금으로 화제를 돌리고 있어요.  



관객: 알바노조라는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알바연대'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알바노조가 만들어졌어요. 저희가 노조를 만든 이유는, 노조가 노조법 상으로 연대가 가지지 못하는 권리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예요. 예를 들어 노조는 단체 교섭도 가능하거든요. 알바노조는 세대별 노동조합이 아니에요.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었던 분들이 해고당하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알바를 하고 있죠. 앞으로 여태까지 이슈화 된 것들을 계속 추진해가면서 작은 승리들을 얻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관객: ‘가현이들’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윤가현 감독: 기획을 어떻게 했는지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단순히 알바노동자들에 대해 찍어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가현이’들과 찍어야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가현이들이 유달리 노동조합에서 주도적으로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우리 모두 ‘가현이들’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권리에 대해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가현이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관객: '우리는 땅을 밟고 서있어도 되는 것인지'라는 독백이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윤가현 감독: 노동영화를 만드는 다른 감독님은 공감이 안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그분들은 한 자리를 우직하게 지키며 농성을 하는 일이 많거든요. 그런데 알바노동자들은 노동 현장이 하나가 아닌 여러 곳일 수밖에 없는 거죠. 해고를 당하는 게 그만큼 쉬우니까요. 그래서 ‘나는 해고를 엄청 많이 당했는데 이 땅에 서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질문이었던 거예요. 노동의 무게라고 해야 할까요? 보통 알바를 되게 가볍게 생각하잖아요. 해고라는 단어는 어디에서도 가벼울 수 없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진행: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이가현(불꽃페미액션): 앞으로도 페미니스트로서 세상을 보다 평등하게 만들 거예요. 세상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가현(알바노조 위원장): 저도 많은 분들과 현장을 다니면서 노력할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쥬씨의 외모차별공고처럼 법으로 이미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혼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그 문제는 알바노조의 피케팅으로 쥬씨 본사에서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마무리됐거든요. 뭉치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윤가현 감독: 제가 있는 자리에서 알바노동자들을 계속 찍으려고 합니다. 오늘 영화 보러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해야한다. 별 것 아닌 일에 흥분하고 들고 일어나야한다. 사실 그런 일들은 전혀 사소하지 않고 별 것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핀잔을 주고 모두를 귀찮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움직임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로 이끌기 때문에. 당연한 것을 얻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 속 힘없는 개인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단합하고 합심하여 저마다 ‘가현이들’로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데에 힘써야 한다. ‘알바생’, ‘알바노동자’ 힘없고, 사소해 보이는 몇 글자가 가져온 위대한 한 걸음처럼.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비의 비상  <어폴로지>  인디토크


일시 2017년 322일(수)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

진행 박상근 영화사 그램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어폴로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건 한국인 감독이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캐나다 여성 감독의 열정으로 탄생한 영화는 역사의 피해자를 향한 우리의 무관심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깊은 공감의 눈길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대하고 살아가며 투쟁하는지 이야기한다. 할머니들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를 모시고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박상근 영화사 그램 대표(이하 진행): 인사 말씀 부탁드릴게요.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이하 윤): 안녕하세요. 영화로 할머니들의 삶을 공감하고 늦은 시간까지 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윤미향입니다.


진행: 영화를 보고 나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어요. 영화 제목이 ‘어폴로지’인데, 저는 스스로 사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일 놀라웠던 것은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캐나다 국적의 여성이라는 거죠. 2009년에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이 사안을 알게 되었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요. <어폴로지>는 특히나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다른 영화와는 다른 뚜렷한 장점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윤: 영화 촬영 이후 상황을 먼저 설명드릴게요. 영화에서 아델라 할머니와 함께 있던 분도 돌아가셨고 할머니들의 필리핀 쉼터도 방치되고 있어요. 원래 돌보미 역할을 하시던 ‘넬리아’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쉼터가 방치되고 있는 거죠. 티파니 슝 감독은 ‘위안부’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필리핀에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어요. 거동이 불편한 중국의 차오 할머니에게 의료기기를 전달하기도 했고요.


관객: 중국 정부나 필리핀 정부에서 지원을 하고 있나요?


윤: 대만 정부의 경우 지원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한 할머니에게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배정됩니다. 활동비는 정부가 부담하고요. 할머니들이 유엔(UN)이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경우의 경비 또한 모두 부담합니다. 네덜란드에도 피해자가 있습니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을 지배했는데, 이후 일본이 지배하게 되면서 그곳에서도 피해자가 발생하게 되었어요. 네덜란드 정부는 일본 정부에게 계속해서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 외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의 경우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고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어요. 중국의 경우에는 피해자 지원을 하지는 않지만, ‘위안부’에 대한 과거 자료를 축척하고 있어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되지 않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어요. 차오 할머니의 경우도 불을 켜지 않고 생활을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요. 90년대 초만 해도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어요. 94년에 유엔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졌어요. 국제적인 관심이 앞서자 정부도 반응을 하더라고요. 


진행: 어떤 동기로 수요시위를 끌고 가는지 궁금합니다.


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26년 활동의 역사 속에서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시위를 시작하려 일본 대사관으로 향할 때마다 중압감으로 마음이 힘듭니다. 그렇지만 돌아올 때는 모두 웃으며 돌아옵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도 물론 엄청난 힘이 됩니다. 초반에는 길가 한 귀퉁이에서 시위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는 ‘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저러고 있냐’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으니까 드디어 사람들이 할머니가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고 우리가 부끄러운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저를 지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대감인 것 같아요. 그만큼 여러분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관객: 우리나라도 베트남 전쟁에서 성폭력 가해자였는데,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정책이나 사업 등이 있나요?


윤: 이 질문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처음에 국내에서만 운동을 할 때에는 다른 나라 여성들이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지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유엔 활동을 하면서 외국의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세계를 아우르며 여성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할머니들이 달라졌어요. 처음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운동이었다면 이제는 ‘나와 같은 아픔을 물려줄 수 없다’는 메시지로 변화했어요. 2012년 여성의 날에 만약 일본 정부가 배상한다면 전액을 고통 받는 전쟁 피해자 여성에게 기부할 것이라고 발언을 하셨어요. 그렇게 ‘나비기금’을 만들었고 콩고 성폭력 피해자 여성들이 만든 단체 ‘마시카’에 후원했습니다. 2013년, 나비기금이 일주년이 되었을 때부터는 매년 베트남으로 사죄기행을 갑니다. 마을 입구에서 제사를 드리고 학살이 가장 심했던 학교에 지원을 합니다. 어찌나 잔혹했는지 정부 허락 없이는 마을에 들어갈 수조차 없습니다. 2015년, 베트남 정부의 허락을 맡아 마을 피해자 15분을 인터뷰하고 그 자리에서 사죄를 드리고 30명에게 매월 50불씩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성폭력으로 태어난 2,3세에게 땅을 평생 빌려서 농사지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해요. 그런데 작년부터 베트남 정부에서 한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제동을 걸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지속적으로 베트남 정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관객: 제목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나비의 눈물’이라는 제목이었어요. 지금은 왜 ‘어폴로지’라는 제목인가요?

 

진행: ‘나비의 눈물’이라는 제목이 감독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연약한 사람들이 아닌데 연약해 보이는 느낌이 싫다고 했어요. ‘나비’라는 단어는 괜찮은데 ‘눈물’이라는 단어와 함께 있으니까 연약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할머니들을 억지로 강하게 그려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연약한 분들은 분명 아니니까요. 그래서 영어 원제 그대로 ‘어폴로지’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관객: 일본의 다수가 어떤 식으로 집회를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윤: 대다수는 관심이 없고 아예 모릅니다. 왜냐하면 역사 교육에도 없고 언론에서도 제대로 된 사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30여 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가해국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 국회의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할머니들이 소송할 때 자원봉사 하는 변호사들도 있고 할머니를 후원하는 단체도 있습니다. 일부 일본인 학자들도 문제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일본의 대중매체에서 양심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보내지 않고 과격한 반일 운동으로 표현하여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본에서 양심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고립시킵니다. 지금도 우익 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국이 좋으면 한국으로 가라’고 쫓아다니면서 소리칩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일본의 젊은 세대와 적극적으로 교류의 기회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연구든 문화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역할을 해낸다면 장래에는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행: 티파니 슝 감독이 영화를 6년 동안 찍었어요. 그동안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윤: 사실은 가장 바쁘고 힘들 때 티파니 슝 감독이 찾아왔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기피했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길원옥 할머니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짊어지려고 해요. 티파니 슝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할머니가 수락했으니까 당연히 저희도 동의했죠. 그 이후, 티파니 슝 감독이 진정으로 함께 아픔에 공감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감독님이 몸이 아주 안 좋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에도 할머니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어요. 교감이 정말 끈끈했어요. 원래 길원옥 할머니가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데 티파니 슝 감독은 지금도 기억하세요. 그만큼 감독이 할머니에게 헌신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잘해내지 않았나 생각해요.


진행: 이제 마무리를 해봐야할 것 같네요. <어폴로지>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기록되는 영화이기를 바랍니다. 또한 <어폴로지>의 할머니들이 여러분들께 한 분의 할머니로 기억되는 시간이었길 바라요. 여태까지 ‘위안부’ 영화가 많이 있었지만, <어폴로지>가 알게 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윤: 여러분,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 주세요. 길원옥 할머니의 목소리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할머니의 기억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함께 외치고 함께 걸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홈페이지(www.womenandwar.net) 들어가면 1억인 서명운동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 9월 13일이 1300차 수요시위입니다. 그날 까지 300만 서명을 모아 유엔과 일본대사관에 제출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어폴로지’. 사과를 받기 위해 그들은 이미 너무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사과를 받는다 해도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노력해야만 하는 걸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이미 천회가 넘어버린 수요시위. 피해자들에게, 우리의 할머니들에게 사죄해야할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들인지도 모르겠다. 무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 더 이상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히 피해자만의 문제, 여성들만의 문제로 남아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7.03 소소대담] 봄, 이제 시작이다 


일시: 2017년 3월 17일(금) @인디스페이스
참석자: 송희원, 이현재, 박영농, 이지윤, 최지원, 김은정
('소소대담'은 매달 진행되는 인디즈 정기 모임 중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8기 소소대담 첫 모임을 했다. <눈길>, <눈발>, <녹화중이야>까지 세 편의 영화에 대한 인디즈의 더 깊은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촛불영화: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 등 인디토크를 기록하며 느꼈던 점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다보니 끝날 때쯤에는 서로 한층 더 가까워져 있었다. 상영 전 어색했던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얼마간 무언가를 함께 공유하는 듯 말이다.





[리뷰] <눈길>: 위태롭지만 단단하게 http://indiespace.kr/3330



송희원: 먼저 <눈길>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인디즈 최지원 님 리뷰에서 이나정 감독은 끔찍한 폭력의 순간을 영화적 스펙터클로 이용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고 피해 상황을 섬세한 연출로 묘사하려 노력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직접적인 묘사 장면은 적었고 소품이나 세트에서 폭력적인 상황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군들이 사용하는 콘돔을 씻는 장면에서 실제 상황을 그리진 않았지만 폭력적인 상황이 인지되더라고요. 

박영농: 재현의 윤리를 마주한 영화들은 꾸준히 논쟁이 이어져 온 것 같아요. 저도 <눈길>에 대해서 공감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분들의 고통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전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엔 의구심이 들어요. 과연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김새론 배우의 양장이 특히 눈에 띄기도 했어요.

최지원: 저도 그 말에 동의해요. 미화로 왜곡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 개봉한 <어폴로지>를 기대하고 있어요. 

박영농: 영화의 소재로 꾸준히 나온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신선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운 것이 있는데, 극이 현재로 넘어왔을 때 ‘종분’(김영옥 분)과 ‘은수’(조수향 분)가 서로 교감을 하며 이뤄나가는 서사가 있어요. 그 서사에서 조금 더 메시지가 부각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에 관해 얘기하면서요.

김은정: 영화를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이야기들을 들으니까 왜 그런 장면들에 대한 묘사가 없었는지 알 것 같아요. 일단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미화시키지 않더라도 조금은 보기 편한 정도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에 ‘위안부’ 영화라 했을 때 막상 보려고 하니 약간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최지원: 이 영화는 약간 거리를 둠으로써 좀 더 대중적으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생긴 것 같아요.



[리뷰] <눈발>: 눈이 오지 않는 마을에 눈발이 흩날리다 http://indiespace.kr/3334

[인디토크] 170317 <눈발>: 소리 없이 흩날리는 (참석: 조재민 감독) http://indiespace.kr/3349


송희원: 저는 <눈발>, <눈길> 두 제목이 처음에 좀 헷갈렸어요. 두 영화가 인디스페이스에서 같이 개봉을 하기도 했고요. 각각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을까 생각해봤어요. 저는 <눈길>에서의 눈은 따뜻함, 정, 고향길 같은 정서를 의미한다고 이해했어요. 그런데 <눈발>은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유추가 좀 어렵더라고요. <눈발>의 영어 제목은 ‘A Stray Goat(길 잃은 염소)’에요. 눈이 오지 않는 고성이라는 지역에 ‘민식’(박진영 분)이라는 이방인이 오고 나서 공동체가 약간 흔들리죠. 그래서 눈이 이방인이나 금기, 의외성, 돌출 등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이지윤 님 리뷰에서는 눈발을 위로라고 표현했더라고요. 다들 <눈발> 제목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박영농: 저도 그게 궁금해서 인디토크를 들으려고 해요. 궁금해서 찾아보니 눈발을 위로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하지만 이걸 위로로 해석하면 조금 문제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민식은 어쨌든 죄를 지은, 어떻게 보면 윤리적으로 문제적인 경험을 한 사람이잖아요. 약간 암시적으로 나오지만, 문제에 연루되어서 전학 온 것으로 설정이 되어있어요. 눈발을 위로의 장치로 이용해서 표현하려 했다고 하면 우리 모두가 ‘예주’(지우 분)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지윤: 보는 방식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눈발의 의미가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박영농: 종교와 눈을 내려주는 하늘의 이미지가 연결되었어요. 종교라는 것이 영화에서 인간의 갈등을 해결해줄 수 없는, 비관적으로 보이게끔 나오잖아요.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고작 하늘이 할 수 있는 것은 천진하게 눈을 내려주는 것밖에 없구나, 라는 식으로 읽었고 그래서 영화가 좋았어요. 삶의 딜레마를 잘 포착해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현재: 눈발은 내린다고 하지 않고 흩날린다고 하잖아요. 파편 같은 느낌이 드는데, 주인공과 고성이라는 마을이 혼재되는 상황 때문에 제목이 그 어수선한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생각했어요.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면 더 흥미로울 수 있겠다 싶었어요. 마지막 장면의 인상이 강한데, 여주인공을 퇴장시킬 때 아름답게, 과하지 않게 퇴장시키더라고요. 그때부터 남주인공의 이야기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고 여주인공은 앞으로 어떻게 되었을까 계속 생각했어요. 

김은정: <눈발> 제목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남주인공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영화고, 그 사람 입장도 이해되지만, 상황을 변명하려는 듯이 느껴져서 썩 기분이 좋진 않았어요. 

최지원: 염소를 대하는 태도가 흥미로웠어요. 민식은 처음 보고 귀엽다고 하고 구덩이에 내버려 두고 가잖아요. 그런데 예주는 보자마자 데리고 나가요. 민식은 딱히 염소를 구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이고 예주는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김은정: 영화 전반에서 민식은 항상 도망치는 반면 예주는 구해주는 역할이죠.

송희원: 이지윤 님의 리뷰에서 무너진 성은 공고했던 공동체가 와해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했잖아요. 성이라는 경계선 밖으로 소년과 소녀가 나가 자유로움을 추구하기도 해요. 그러다가 민식은 성 안, 교회 같은 공동체 안으로 다시 도망치기도 하고요. 성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서 포스터가 좋았어요.

박영농: 저는 제목이 차라리 ‘고성’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최지원: 성이 공동체를 상징한다고 보면, 일진 학생들 무리, 교회 공동체에서 민식은 보호받고 소속감도 가져요. 예주와 성을 나서니 오히려 불안해지고요. 반면에 예주는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피해자잖아요. 그래서 성을 나서면 오히려 자유로워지죠. 그런 대조적인 모습이 있었던 것 같아요.



[리뷰] <녹화중이야>: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윤리 http://indiespace.kr/3335

송희원: <녹화중이야>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인상적이었어요. 필모그래피를 찾아보았는데 <녹화중이야> 외에는 없더라고요. 아마도 감독이 연극판에서 오랫동안 봐왔던 실력파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연기가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느꼈어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인데, 만약 배우의 연기가 어색했다면 파열음이 났을 것 같아요. 연기가 자연스러워서 장르와 잘 부합하는 듯했어요. 그리고 박영농 님의 리뷰가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영화 시작에서의 설명(추모사)이 장르의 속성을 잘 구현해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장치 때문에 관객들이 착각하며 몰입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박영농 님 글에서는 실제 다큐멘터리에서 쓰이는 추모글을 페이크 다큐멘터리에서 장치적으로만 가져와 사용하는 게 윤리적으로 좀 문제가 있지 않냐 지적하셨더라고요.

박영농: 사실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실제 다큐멘터리와 비교한다는 것 또한 한편으로 우려되는 지점이 있어서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저는 리뷰에서 지적한 장면이 분명히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다른 분들과 함께 의견을 공유해보고 싶었어요.

송희원: 포커스가 나가고 이미지가 뭉개지는 장면이 많았어요. 그게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자연스러움을 구현해내는 측면에서는 당연한 장면들이었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연인이 서로를 촬영해서 클로즈업이 많았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친구가 촬영한 풀샷이 많았던 것 같아요. 주관적인 시점에서 객관적인 시점으로 이동한 건가 싶기도 했어요. 카메라의 시점 변화, 샷의 구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박영농: 아무래도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이 끝까지 함께 진행되기에 감독 입장에서 고민되는 지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특히 마지막에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민철’(최현우 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담아야 하는데, 서사 상에는 필요하지만,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 뜬금없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나가는 ‘우석’(서진원 분)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최지원: 저는 남자 친구 둘이 싸우는데, 그걸 찍고 있는 그 장면이 진짜로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연출하는 느낌이랄까요.

이현재: 카메라를 운용하는 게 어떤 부분에서는 영리한 것 같고 어떤 부분은 너무 순진한 거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여주인공의 연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설득력이 있었어요. 특히 웃는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럽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배우들과 같이 나오면 조금 어색한 장면들이 더러 있어요. 연출이 과했다고 생각했어요.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푸티지를 모아서 만든 홈 무비가 계속 충돌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 중에 하나고 무시할 수 없는 영화인 것 같기는 해요. 



송희원: 인디즈가 되자마자 개봉작과 인디토크를 보고 기록하느라 정신없이 달려온 느낌입니다. 약 두 달 동안 인디즈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점을 나누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독립영화를 더 관심 가지고 많이 보자는 생각으로 인디즈에 지원했습니다. ‘봐야지’ 생각만 하고 지나칠 수 있는 좋은 영화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하게 될 영화들이 많이 기대됩니다. 

김은정: 한국 독립영화를 볼 기회를 가지게 되어 너무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는 한국 영화 전반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았는데, 이번 계기를 통해 관심도 많이 생기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주목하는 삶이 아닌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영화화 된다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특히 ‘FoFF 2017’에서 본 <가현이들>이 기억이 많이 남는데, 영화뿐만 아니라 후에 진행된 토크를 통해서도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 대해 많이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박영농: 그동안 영화를 본다는 것에 매너리즘이 생긴 게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해보았습니다. 방금 본 영화가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습관처럼 영화를 소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인디즈 활동을 하면서 그런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습니다. 활동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영화에 몰입하고 인디토크에 참석하고 또 글을 쓰면서 왜 내가 영화 보기를 좋아하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이지윤: 인디즈를 시작하고 나서 개봉한 독립영화는 물론, 기획전 덕분에 지나간 독립영화도 볼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행복했어요. 물론 한 시간가량의 인디토크 녹취를 풀어내거나 영화에서 느낀 감동을 고스란히 리뷰에 옮기기 위해 여러 번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웃음) 그 복잡함조차도 즐거울 정도로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이현재: 세 편의 인디토크를 기록하고 한 편의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작성할 때는 마감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끝났다고 기뻐하며 ‘보내기’를 클릭하려 하면 늘 자신이 없었습니다. 특히 <나쁜 나라> 인디토크는 어떻게 기록하는 게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아직 글을 올리지 못했는데 가능한 최선의 상태로 수정해서 게시하고 싶습니다. 무엇 하나 올리는 데까지는 그런 지난함이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지난한 게 재미없는 건 아니니 지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빨리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시작했으니 남은 시간이 아직 깁니다.

최지원: 꼬박꼬박 개봉작을 챙겨보고 감상을 적고 또 관심 있는 독립영화를 골라서 ‘인디즈 초이스’로 글을 써보면서 영화에 대한 애정이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또 제 글이 인디스페이스 계정을 통해 게시되는 경험이 설레고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글을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에서 뜻밖의 공감대나 감동을 하는 순간이 너무 좋아서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봄도 인디즈도 이제 시작이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개봉으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슬기로운 해법>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3615





<슬기로운 해법> 리뷰: 언론, 그리고 창 너머의 진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2016년의 끝자락, 오랜 시간동안 모습을 교묘히 감춰오던 부정부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수많은 촛불들이 거리로 나왔다. 추악한 민낯을 드러낸 사람들과 그들의 탐욕이 줄줄이 세상 밖으로 쏟아졌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부정부패를 국민 앞에 꺼내놓고 있는 것은 언론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말도 안 되는 비리들에 침묵해온 것 또한 언론이었다. 언론은 때로 진실을 숨기기 위해 왜곡을 일삼기도 했다.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권력과 자본이라는 이해관계에 얽혀 ‘권력의 감시자’ 라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고, 명백한 현 세태의 공범이 되었다.





태준식 감독의 <슬기로운 해법>은 이런 언론의 현실, 특히 한국 사회의 주류 언론인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현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다큐멘터리다. 2014년에 개봉한 해당 작품은 다양한 기사들과 풍부한 통계자료, 언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설득력 있게 재조명한다. 작품은 5개의 장(章)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 5개의 장을 통해 차분한 어조로 언론이 지닌 문제점들을 모두 아우른다. 언론이 거짓말을 일삼는 ‘양치기 언론’이 된 이유, 언론재판을 부추겨 한 사람의 삶을 비극으로 치닫게 만든 총보다 강한 펜의 힘, 미디어 법을 통해 주류 언론사들의 방송 진출을 허가하고 특혜를 제공한 과거의 정권, 언론사의 수익 중 80%를 차지하는 광고 수익을 손에 쥐고 거침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과 현 상황에서 필요한 ‘슬기로운 해법’까지, 작품은 자본과 정치권력이 복잡하게 얽힌 언론의 문제를 알기 쉽고 명쾌하게 드러낸다.





<슬기로운 해법>은 언론이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기업화되는 과정을 다루며 어떤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삼성그룹과 언론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2007년,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삼성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적극적으로 보도한다. 그리고 보도 바로 직후인 11월, 삼성은 두 신문사에 대한 광고를 전면 중단한다. 독보적인 국내 최대 광고주인 삼성의 광고 중단으로 인해 한겨레와 경향, 두 신문사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된다.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절대적인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경향신문은 2010년, 삼성을 비판하는 논조의 칼럼을 미게재한 후 사과문을 올린다. 언론에서 일종의 굴복과 반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악순환의 사례는 단순히 기업화된 언론을 넘어서 언론 앞의 절대자에 대한 고민의 기회를 부여한다.





‘펜은 총보다 강하다’. 군사 독재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언론의 비폭력 저항을 상징하던 말이다. 언론은 사실을 밝혀 알리기 위해 존재했으며 사실의 전달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을 형성했다. 그러나 언론의 의미는 퇴색 된지 오래다. 2014년 <슬기로운 해법>이 개봉하던 당시에도 그랬으며 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되었던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고 침묵과 거짓의 기정사실화가 반복되며 ‘펜은 총보다 강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언론은 창(窓)과 같은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언론이라는 창을 통해 진실을 보곤 한다. 창이 맑고 깨끗할수록 진실은 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창에는 먼지가 쌓이고 물때가 끼곤 한다. 그렇게 더러워진 창 너머의 진실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온통 부옇게 보이게 된다. 다시 진실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창문을 닦고 또 닦아야 한다. <슬기로운 해법>은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 시민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치권력과 기업의 자본이라는 큰 이해관계 속에서 본질적인 변화는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고, ‘슬기로운 해법’을 찾아나서는 것 자체가 어쩌면 치열한 전쟁일 수 있다. 그러나 부패라는 무게에 눌려 무너지려는 언론을 감시하고 언론의 도구화를 인지하여 올바른 판단력을 구축한다면 언젠가는 깨끗한 창 너머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슬기로운 해법>은 언론의 도구화를 인지하게끔 하고 언론에 대한 고민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작품의 이런 특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한 해를 맞은 현 시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소리 없이 흩날리는  <눈발>  인디토크


일시 2017년 3월 17일(금)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조재민 감독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눈이 내리던 계절은 지나갔지만, 스크린 위에는 눈발이 흩날렸다. 흩날리던 눈발은 땅 위에 쌓이지 못하고 공중을 천천히 맴돌다 스크린 밖 관객들의 마음속에 살포시 내려 앉아 잔잔한 여운으로 변했다. 금요일의 늦은 저녁, 채 가시지 못한 먹먹한 감정을 안고 <눈발>의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작품을 연출한 조재민 감독이 함께했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안):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듣고 싶다.


조재민 감독(이하 조): 고성에 살면서 여러 가지 억압이나 죄의식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근처의 창원으로 가게 되었다. 스스로 갇힌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기 때문에 고성이라는 곳을 빨리 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한참이 흐른 뒤에도 이 기억들이 맴돌았고, 이야기해보고자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안: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


조: 친구들에게 벌칙을 받는 장면이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일 수 있고, 왜 당하고만 있나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기억에서 출발했다. 다른 이야기들과 합쳐지면서 덩어리가 생겨난 것 같다.


안: 마을의 인물들이 선한 모습의 탈 뒤에 잔인한 모습을 숨기고 있다. 인물들이 ‘민식’(박진영 분)을 둘러싼 모양으로 배치되어있고 그로 인해 남자 주인공의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이 강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짜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조: 우선 지역성을 중점적으로 굳혀가야겠다 생각했고 그것을 유일하게 흔들 수 있는 사람이 이방인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학 온 인물로 설정을 했다. 그가 지역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 안에 다시 갇히게 되는 아이러니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을 방관자적인 입장, 제 3의 시선으로 계속 끌고 나가려 했다.


안: ‘눈발’이라는 제목에서 담고자 한 것이 있을 것 같다.


조: 남쪽 지역에서 내리는 눈은 대부분이 진눈깨비다. 금방 녹아 없어져 쌓이지 못하는 신뢰 관계나 믿음, 구원에 대한 의미로 시작되었다. 흩날린다, 사라진다, 홀연히 떠난다는 뉘앙스를 주기 위해 ‘눈발’이라는 제목을 골랐다. 처음에는 ‘고성’도 생각했는데 <곡성>, <밀양>, <파주>가 이미 있었다.(웃음) 지역 제목이 많아서 그것은 피하고자 했다.


안: 민식을 연기한 박진영 배우가 인상적이다. 그 배우가 가진 표정들과 작품에서 보인 모습들이 <눈발>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데 크게 일조한 것 같다. ‘예주’를 연기한 배우 지우에게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것도 이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배우들을 캐스팅하게 된 사연이 듣고 싶다.


조: 박진영 배우를 처음 만났는데, 그가 마치 민식처럼, 전학생이 고성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맞닥뜨렸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표정과 말을 하고 있었다. 생각하고 있었던 캐릭터의 모습, 성격과 실제로 굉장히 비슷했다. 민식은 선한 친구다. 그렇지만 새로운 환경,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처가 약하고, 손을 내밀긴 하지만 본인이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을 가지고 있다. 박진영이라는 배우의 첫 인상이 그랬다. 인내심과 동시에 약간의 허약함도 느껴졌다. 박진영 배우는 진해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만났을 때 서울에 와 힘들었던 이야기를 했다.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에 적응해나가는 본인의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민식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그 점을 뒤집어 생각하면 잘 맞겠다고 느꼈다. 지우 배우 같은 경우 눈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있다. 첫 만남에서 지우 배우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게 많다고 했고 그 점에 나도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관객: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눈발>을 봤다. 그때 예주의 손에 카레가 부어지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과 함께 있던 민식이 “뜨겁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왜 그 장면이 편집되었는지 궁금하다.


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한 이후 편집을 하다 보니 바뀐 부분들이 조금 있다. 전체적으로 쳐질 수 있는 호흡에 대한 경계가 있었던 것 같다. 빼기 싫었지만 뺀 부분도 있고 빼길 잘했다 싶은 부분도 있다. 결이 많이 달라졌다. 질문주신 장면은 씬들 사이의 호흡과 워딩이 조금 걸려서 삭제되었다.


안: 다시 복구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조: 민식이 가족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장면이 영화 시작 부분에 있었다. 유일한,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빠졌다. 그리고 엔딩의 논두렁 씬 전에 민식이 버스 정류장에 예주의 흔적을 느끼려 갔다가 그의 흔적을 보고 상념에 빠지는 장면이 있는데, 다시 넣고 싶다. 아마 DVD로 제작할 때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관객: 민식이 예주에게 느낀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인지 궁금하다.


조: 민식은 처음에 예주를 연민으로 바라보다가 교감까지 가기 위해서 나름의 노력을 한다. 사랑까지는 아닌 것 같고 사랑 이전 단계라고 생각된다. 만약 상황이 괜찮아진다면 사랑까지 갈 수 있는 단계 같다. 그 과정에서 민식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예주에 대한 확실한 신뢰나 교감보다 아직 자기애가 조금 더 크기 때문이다. 본인을 억압해왔던 것들, 시골에서 일어난 사건들, 그리고 예주를 감당해내기에는 본인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관객: 맨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눈발의 의미를 민식에 대한 위로로 해석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조: 크게 보면 위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눈의 의미는 뭔가를 덮어주는 것, 치유해주는 것인 듯하다. 예주가 민식에게 눈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쌓여서 뭔가를 채워주기보다는 자기 앞에서 흩날리다 녹아 없어져버리는 눈 때문에 예주를 조금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안: 앵글, 샷들이 넓기 보다는 인물들의 미시적인 관계들을 보듯 상당히 답답한 구조를 띄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인물 하나하나를 가두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촬영을 할 때 어떤 원칙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조: 답답함을 느꼈을 것 같다. 화면 위아래의 사이즈를 조금 답답하게 가져갈까 고민을 촬영 바로 전까지 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눈을 기다리는 프레임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인물들의 거리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계속 16:9의 비율을 생각하고 있다가 화면 위아래를 잘라냈다. 극장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데, 실제로는 예주가 사라진 다음 컷부터 화면의 위아래가 열린다. 극장 배급 및 상영을 그렇게 하기는 힘들어서 화면 크기를 일관되게 했다. DVD가 나오면 예주가 사라진 컷부터 16:9로 바뀔 것 같다.


관객: 작품의 끝 무렵 황석영의 『바리데기』 한 부분이 등장한다. 특별히 그 소설의 구절을 넣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조: 『바리데기』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작가가 생각하는 것이 <눈발>과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는 소설이 아닌 고전시였는데, 톤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로 바꾸게 되었다.


안: 상징과 은유가 신화적인 부분이 있고 이야기의 서사 구조 자체가 상당히 고전적이다. 영향을 받은 감독이나 작품 등이 있는지 궁금하다.


조: 한때 고전에 심취해있었다. <눈발>이 영향을 조금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모리스 피알라의 <사탄의 태양 아래서>(1987)나 로베르 브레송의 <무쉐뜨>(1967), 그리고 루이스 브뉴엘을 좋아한다. 그리고 예주의 실제 인물이 <무쉐뜨> 속 소녀와 많이 비슷했다. 그래서 그 영화를 볼 때마다 힘들었고 많이 떠오르기도 했다.


관객: 이 작품이 감독님의 기억에서 시작된 영화이지 않나. 영화를 만들면서 과거의 기억을 많이 떠올렸을 것 같다.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그 때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졌는지 궁금하다.


조: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것 같다. 개봉 직전에 영화 속에 나왔던 괴롭히는 친구들의 실제 인물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영화 봐라. 옛날이야기들 나올 거다. 너희 캐릭터 다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 친구들이 기억을 못하더라. 당황스러웠다. 나는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관객: 민식은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하다. 민식의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감독님이라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조: 문지방에 걸쳐 서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미숙한 청소년들과 나이를 먹었지만 세상 밖을 못 보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문지방을 과감하게 건너라고 말하고 싶다. 중간에 있으면 본인도 피해를 입게 되고 주변 사람들까지도 곤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안: 영화가 개봉한지 3주 정도 됐다. 개봉하기까지 긴 과정들이 있었을 텐데,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다. 소회를 듣고 싶다.


조: 처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조금 시원한 부분이 있다. 아쉬운 것도 많고. 조금 더 잘했어야 했는데, 후회도 많이 된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너무 오만하게 썼다는 생각이 든다. 방심했던 것 같다. 다음번에는 의심을 좀 해야 할 것 같다.(웃음) 놓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다양하게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반성, 성찰을 많이 한 시간이었다. 


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조: 97년을 배경으로 IMF 직전에 카센터에서 일하는 인물이 겪는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다. 자본과 죽음, 인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느와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작품은 관객에게 기시감을 안긴다. 그리고 그런 기시감의 결말은 낙관적인 것이 아니다. 위로하듯 쏟아지지만 채 쌓이지 못하고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로 먹먹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촘촘히 구성된 시나리오와 세심한 연출은 이런 먹먹함을 또 다른 감동으로 느껴지게끔 만든다. 눈발은 소리 없이 흩어져 날아갔지만, <눈발>이 주는 여운은 오래도록 관객들의 마음속에 내려앉아 있을 것이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폴로지한줄 관람평

송희원 | 더 늦기 전에 사과를 요구한다

이현재 | 발언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동행한다. 앞서나가지 않는 것의 미덕.

박영농 | 위안부 문제에 대한 주목할 만한 접근법. 박수를 보냅니다.

이지윤 |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영화, 간직해야할 책임.

최지원 |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멈춘 적 없는 목소리

김은정 | 아픔으로 연대하는 우리 모두의 가족의 이야기




 <어폴로지> 리뷰: 더 늦기 전에 사과를 요구한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어폴로지>는 캐나다 국적의 여성 감독 티파니 슝이 6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가 된 길원옥 할머니(한국), 차오 할머니(중국), 아델라 할머니(필리핀)의 현재 모습과 증언을 가까이에서 담는다. 차오 할머니와 아델라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수치스럽다며 가족에게까지 함구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가족에게 용기 내어 고백한다.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 극우 혐한 시위대에게 “수치스러운 한국 할망구들”, “꺼져, 한국 매춘부들” 같은 갖은 모욕을 들으면서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세계 방방곡곡을 다닌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이다. ‘너무 늦기 전에’ 받아내려는 사과(사죄)는 어떤 의미인 걸까?  


‘어폴로지’(apology)는 사과(謝過), 사죄(謝罪)를 의미한다. 사과에는 사과를 받는(또는 요구하는) 주체와 사과를 하는 주체가 있다. 사과를 요구하는 주체는 역사의 증언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고 사과를 해야 할 주체는 당연하게도 일본 정부이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들은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공식 사죄, 법적 배상”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일본이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버티며 오히려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것을 보면 사과해야 할 사람과 받아야 할 사람의 입장이 뒤바뀐 듯한 착각마저 든다.  



영화에서 길원옥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기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2011년에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1,000차 수요시위(1992년부터 시작된 시민단체와 시민들과 피해 할머니들이 함께하는 정기 시위)에서 전쟁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역사적인 진실을 밝히길 촉구한다. 2013년에는 “전시에 성노예가 필요하다”는 일본 정치인의 망언을 규탄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다. 2014년에는 스위스 유엔인권이사회 공식 석상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증언하며 천오백만 명의 서명을 전달한다. ‘위안부’ 피해자의 범위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여러 국가 및 네덜란드 여성들에게까지 이른다. 이 문제가 비단 한일양국으로 축소될 사안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그것이 길원옥 할머니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세계 시민을 대상으로 역사의 증언을 반복하고 전 세계의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일본의 법적 배상은 마무리가 아니라 출발일 뿐이고 공식적인 사과를 통해 앞으로 미래의 후손들에게는 이런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눈물을 흘린다. 


김욱 교수는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에서 정치적 사과는 개인적 사과와 다르며 “과거의 결과이자 미래의 원인이며, 끊임없이 진화·진보하는 현재의 투쟁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정치적 사과는 진정성 없는 사과라 할지라도 일단 역사적 전투에서 승리한 승자의 전리품이며 미래의 역사를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정치적 사과는 “개인이 아닌 집단적인 차원에서, 자발성보다는 강요에 의해서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한국 정부는 일본에게 ‘정치적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정치적 사과가 개인이 아닌 집단적인 차원에서 얻어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폴로지>에서 한국 정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2013년 일본 정치인의 망언을 규탄하기 위해 일본 공항으로 떠나는 길원옥 할머니를 따라간다. 한 언론사는 그를 인터뷰하며 온 국민이 기대하고 있다고 그에게 각오 한마디를 요청한다. 공항에서는 수많은 취재진이 할머니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할머니는 휠체어를 탄 채 탑승구 앞에 홀로 있다. 취재진과 한국 정부의 마중은 딱 거기까지이다. 가상의 포토라인이 처져있는 것처럼 그들은 그곳에 서서 할머니를 떠나보낸다. 과거에 그들이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갔을 때처럼 말이다. 정부(국가)가 아닌 할머니(개인)가 자력으로 사과를 받으러 떠난다. 길원옥 할머니는 말한다.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라고. 영화 속 그녀의 작은 뒷모습, 작은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가시화되었다. 그 이후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이 계속 이어져 왔다. 그들의 증언이 가능했던 것은 그 말을 기꺼이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증언에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관심을 가졌기에 공식적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다. 차오 할머니, 아델라 할머니는 오랫동안 사랑하는 가족에게조차 증언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홀로 아픔을 묻어놓았다. 그들이 증언하지 못한 이유는 사람들이 무관심했고 그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 귀를 닫아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파니 슝 감독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단체와 시민들, 양심 있는 학자들이 그들의 증언에 귀 기울였다.  


역사에 대한 이해와 진실 해명은 그것을 추구고자 하는 이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 가능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빛을 보기 위해서는 상처를 공유하고, 그 아픔을 치유해 주기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 (서울독립영화제, 『21세기의 독립영화』, p.114) 


<어폴로지>는 시종일관 성치 않은 몸으로 많은 국가를 방문하며 피해 사실을 알리고 증언하는 길원옥 할머니와 그 곁의 사람들을 비춘다. 먼 곳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며 지지와 연대의 힘을 보내는 차오 할머니와 아델라 할머니, 그리고 영화에서 항상 그의 곁을 지키는 정대협 윤미향 대표와 수요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할머니들의 지속적인 활동은 연대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티파니 슝 감독은 할머니에게 자신을 카메라로 찍어 달라고 한다. 이 장면처럼 <어폴로지>는 끝났지만 이제 카메라는 우리의 모습을 찍게 될 것이다.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할머니들이 길거리에 서지 않아도 우리의 목소리로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게 촉구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들이 고통스러운 상처의 기억에서 조금이라도 놓여날 수 있게,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어폴로지> 포스터에 클로즈업된 소녀상의 두 주먹처럼 이제 우리의 두 주먹을 불끈 쥐어야 할 때이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내가 본 것, 그리고 네가 본 것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인디토크


일시 2017년 3월 15일(수) 오후 8 상영 후

참석 김경원 감독 | 배우 박정민

진행 김영진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영화는 종종 현실에 비유되곤 한다. 영화는 전통적으로 카메라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매체이고, 카메라는 조작하는 사람이 보는 것의 일부를 본뜨는 수동적인 기계이다. 때문에 영화는 간혹 보여주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이 정말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카메라를 조작하는 사람은 뷰파인더를 통해 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리얼’ 혹은 ‘진짜’는 ‘아티스트’들의 오랜 과제였다. 이런 과제에 용감하게 뛰어든 ‘아티스트’ 김경원 감독과 박정민 배우를 만나보았다.



김영진 평론가(이하 김영진): 안녕하세요. 김영진입니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초청으로 상영한 적이 있어요. 제가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애프터서비스 차원에서 나왔습니다. 


김경원 감독(이하 김경원):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연출한 김경원이라고 합니다. 


박정민 배우(이하 박정민): 안녕하세요. 저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에서 ‘재범’역을 맡은 박정민입니다. 반갑습니다.


김영진: 박정민 배우는 전주에 몇 번 왔었어요. <신촌좀비만화>(2014)가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을 때 제가 덕담을 한 마디 한 게 기억이 납니다. “박정민 배우는 조만간 뜰 것이다”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실감이 나네요. 뜬 거 같아요. 


박정민: 감사합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김영진: 아직 배고파요?(웃음) 먼저 김경원 감독님, 어떻게 이 이야기를 착상하게 되었는지요.


김경원: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고 썼기 보다는 제가 살아오면서 궁금했던 것들과 의아했던 것들에 대해 쓴 거 같아요. 가령 죽은 예술가의 미공개작이라던지. TV를 보는데, 어떤 배우분이 본인이 산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작가분이 정말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라고 반어적으로 강조하는 걸 보면서 살짝 살기 같은 것을 느꼈어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예술가의 이야기는 어떨까, 예술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상태를 바라보게 될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김영진: 굉장히 제목에 충실한 영화에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웃음) 박정민 배우는 이 영화를 제안 받았을 때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는지, 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박정민: 미술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조금 확장시켜보면 제가 하고 있는 일들과 맞닿아있어서 전달할 수 있는 게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결정을 하게 된 거고요. 근데 영화가 완성된 것을 처음 보고나서는 조금 속상했어요. 영화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저는 제가 나온 영화를 처음 보면, 정말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요. 저만 아는 실수들이 보이고 남들이 눈치챌만한 실수들도 보이고. 그래도 계속 보면서 영화를 느껴보려고 하는 중이에요. 류현경 배우와 이 영화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한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김영진: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자기 영화가 너무 좋아서 무지하게 많이 보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박정민 배우처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독님한테도 질문을 한 가지 드릴게요. 사람들의 소감이 다 다를 텐데, 제가 영화를 보고 잔상에 남은 것은 그림을 보는 프레임에 관한 것이에요. 그림을 정관하고 있는 장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김경원: 일단 이 영화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는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요. 영화 안 인물들이 그림을 바라보게 되고, 그림이 그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죠. 어떻게 보면 그게 신념을 다잡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스스로가 믿음을 갖게 되는 시간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김영진: 박정민 배우가 맡은 주인공 역할이 편하게 이야기하면 재수가 없는 인물이에요. 미술계에서 비교적 나이가 젊은데 닳고 닳았고 세속적이고 심지어 나중에는 극단적인 행동을 마다하지 않아요. 그 인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이 됐을 것 같아요. 시나리오로 받았을 때 불안한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박정민: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지젤’ 쪽에 이입이 됐어요. 저는 재범을 연기해야 하는데. 제가 맡는 역할이 미울 때가 종종 있어요. <파수꾼>(2010) 찍을 때도 처음에는 그 친구가 굉장히 미웠어요. 하지만 어쨌든 제가 연기를 해야 하는 인물이니까, 이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표현을 해야 하니까, 재범도 지젤이랑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나름 소신도 있고 신념도 있는데, 서로 하는 일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선택이 만든 결과물과 상황이 괴물을 만든 것뿐이다, 생각을 하고 접근을 하니 이 인물에 대한 측은함도 생기더라고요.


김영진: 영화 초반 상황이 좀 황당하지 않습니까? 술 먹고 취해서 잤는데 무모의 상태, 온 몸에 상처가 있는 채로 깨어나 통화를 해요. 인물의 톤을 잡으려면 이것저것 생각이 참 많았을 거 같아요. 토론하는 과정이 있었나요?


김경원: 큰 논의는 없었어요. 시나리오대로 정직하게 촬영을 했어요. 정민 배우가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죠. 예민하고 영민하게 연기를 해주었어요. 뒤에 나오는 ‘오인숙’이라는 캐릭터가 예측 불가한 인물이어야 했기 때문에 조금 엉뚱한 방법으로 드러냈습니다. 또 ‘제임스 곽’이 “쾌락의 끝은 고통과 맞닿아있다”라고 말하는 부분과 연결시켜 보면 이해에 조금 도움이 될 거 같아요. 


박정민: 그 장면이 아마 제 첫 촬영이었을 거예요. 처음 보는 스태프들 앞에서 옷을 다 벗어야 했죠. 하나의 해프닝을 대하는 재범의 모습으로 이 친구를 설명하고 싶었고,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 사건이 보통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는 썩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에게 그리 중요한 사건처럼 보이지도 않아요. 그런 톤으로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김영진: 그림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이 많았을 거 같아요. 그림을 돈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값비싼 그림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김경원: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미술감독님과 상의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다양하게 해석 가능한 그림이었으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주제를 관통하는 그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기본적으로 ‘만다라’였어요. 근데 12억짜리로 보이게 준비를 하려면 작화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더라고요. 여기에 나오는 작품이 열여덟 개정도 되는데, 작가가 거의 하루에 하나씩 작화를 해야 했어요. 크기도 굉장히 커서 디테일한 부분은 손 쓸 수가 없었어요. 욕심으로는 더 파워풀하게 하고 싶었지만,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진행하기로 했죠.


김영진: 마지막에 ‘박중식’이 TV쇼에 나오는데, 은근히 ‘뻥’이 센 거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그림 두 개 놓고 막 질러대는 느낌?(웃음)


김경원: 그 부분에서 재범이 씩 웃어요. 우주의 빅뱅 얘기 등이 나오죠. 현학적으로 해석하는 모습이 저에겐 유머로 느껴졌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약간 뻥으로 느껴져도 상관없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더 과잉되게 시나리오를 썼던 것 같아요.



김영진: 약간 블랙코미디의 톤이 있어요. 후반부에 기자 나오는 장면에서 나름 연기 연출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주인공을 보여줄 시간이 충분치 않고 기능적으로 들어간 장면이다 보니 액션이 별로 없어요. 정색하고 얘기하는 게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굉장히 성공적으로 인물을 묘사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요.

 

박정민: 이미 감독님과 상의가 다 된 장면이고 감정선 등 연기에 대한 것들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부담은 별로 없었어요. 다만 그 장면은 스테디 캠을 사용했는데, 저는 그게 좀 어렵더라고요. 제 주변을 돌고 있는 카메라와 호흡을 맞춰서 연기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나름 선방했다고 말씀해주시니 의미가 있네요.


김경원: 그 날 촬영이 굉장히 빠듯하게 진행되었어요. 미술관을 대관했는데 정해진 시간이 있었어요. 그 부분에서 조금 애로 사항이 있었던 거 같아요. 


김영진: 굉장히 잘 만들어진 장면이에요. 연출과 연기 전부 정확하게 계산하고 움직인 거 같아요. 


관객: 엔딩 크레딧에 여주인공 아역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영화에는 전혀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요. 또 지젤이 전생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자기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인지, 아니면 진짜로 전생이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초반에 ‘관수’가 재범에게 상업 화랑에서 일하는 거 같아 너무 힘들다고, 형도 너무 변한 거 같다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 재범의 단계에 대해서 생각해둔 것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경원: 지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교차편집으로 넣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 찍었는데, 잘 안 맞더라고요. 둘 모두 안 사는 것 같아서 버린 케이스에요. 그리고 지젤의 전생에 대해 답을 드리자면, 이 영화에서 만다라부터 십자가까지 종교적인 징후가 많이 나와요. 저는 예술의 영역이 종교와 많은 부분 맞닿아있다고 생각해요.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고요. 지젤의 집 벽에 “인간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은 ‘신의 의지’와 ‘예술의 경지’”라고 쓰여 있죠. 이 세상이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전생에 대해 자신만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젤을 설정했고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아까 정민 배우도 말했지만, 지젤과 크게 다를 거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재범이라는 캐릭터의 시작이에요. 그러다 변한 거죠. 처음에는 굉장히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본인의 신념 앞에서 떳떳한 아티스트였지만, 후에 조금 변질된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그 부분을 넣었습니다.


관객: 연기를 하면서 많은 부분이 흔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으로의 박정민과 아티스트로의 박정민의 균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평소에 어떻게 맞추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정민: 저와 배우 박정민이 다른 사람은 아니에요. 저는 정말 이 일이 좋아서 시작했어요. 앞으로의 방향은 제가 존경하는 선배들이 나아간 길을 똑같이 밟는 것이에요. 조금 아날로그적이기는 하지만, 소신을 크게 굽히지 않고 선배들을 그대로 따라가려고 해요.


















관객: 재범이 처음 그림을 봤을 때 굉장한 감동을 받았는데, 왜 나중에 그 태도가 변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어요. 지젤의 작품을 마치 자신의 작품처럼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작품을 갑자기 상업적인 의미로 다루는 것 같아서 그 점도 의문스러웠습니다. 나중에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김경원: 재범에게 중요한 건 본인이 선택한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이에요. 지젤이 살아나게 되면 그림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그림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재범이 만들어놓은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부정하는 거죠. 상업적으로 이용을 했다기보다는, 재범이 만들어낸 지젤의 가치가 떨어지는 게 힘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는 변질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박정민: 재범이 생각하는 가치 있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고, 또 그런 작가를 만났죠. 그런데 그 사람이 돌연 죽어버렸을 때, 큰일 났다는 마음도 들겠지만, 그 그림을 구매함으로써 죽은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물론 본인을 위해서 행동한 부분도 있죠. 나중에는 그 마음이 더 커져서 파국으로 치달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관객: 지젤이 덴마크까지 가서 동양화를 공부하고 오는데, 그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리고 재범이 마지막에 지젤을 찾아가서 보고 싶었다고 이야기를 해요. 혹 러브라인 같은 걸 넣을 계획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경원: 일단 러브라인은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보고 싶었다고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보고 싶었다는 표정은 아니잖아요. 만나러 온 명분이 필요해서 그냥 말했던 거 같아요. 그 장면에서 살기 같은 게 느껴지길 바랐어요. 돌려 말하는 것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 더 무서울 것 같았고요. 덴마크 설정의 경우, 덴마크가 가진 이미지가 어떤 이상향과 닿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만들 때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작가가 덴마크 작가였어요. 그리고 주인공이 이상향을 따라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반적인 뉴욕 같은, 성공을 위한 게 아니라 그냥 가고 싶은 곳을 갔으면 했어요.


관객: 예술가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고 결말에서 일상의 예술을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대중과의 호흡이라고 생각해서 나온 결말인지 궁금해요. 감독님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가치의 위치는 어디인지도 궁금합니다.


김경원: 이 영화의 결말에서 냉소적인 부분이 조금 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 진실을 이야기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추구하는 것이 대중과 함께하는 예술이라기보다는, 솔직함이거든요. 영화의 결말이 오인숙의 선택 안에서 스스로에게 솔직한 행위였다고 생각해요. 계속 뻥튀기가 되고 양념을 치게 되면서 조금씩 변질되는 부분이 제일 무섭죠. 스스로에게 솔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 장면을 넣었습니다.


관객: 처음에 재범이 박중식에게 지젤의 그림을 팔고나서 지젤이 어떻게 팔았냐고 물어보니 장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은 없애서 팔았다고 말해요. 근데 박중식은 작품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하고요. 왜 재범이 지젤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궁금합니다.


김경원: 재범이 박중식에게만 그림을 판 게 아니라 박중식에게 그림을 판 것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그림을 팔아요. 경매에도 나오죠. 재범이 지젤에게 박중식 선생‘도’ 사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겠죠. 이 부분들을 통해 이해를 하면 될 거 같아요.



관객: 마지막에 다양한 장소가 등장하는데 그 장소들의 연결점이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갤러리에서 사람들이 모여 지젤의 과거를 만들어요. 자극적인 단어, 소재들을 사용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경원: 먼저 두 번째 질문의 답을 드리자면, 자극적으로 보였으면 했어요. 실제 역사적으로 여류작가 중 성폭력과 관련지어 해석된 작가들이 꽤 있어요. 자극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해설을 듣고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이 다르게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런 오묘함이 블랙코미디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엔딩은 어떤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일반적인 다양한 장소를 등장시킨 것입니다.


관객: 사람을 죽이는 연기를 하는 게 굉장히 두려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정민: 개인적으로 상당히 어려워요. 진짜로 죽일 듯이 연기를 해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다치는 상황이 생기거든요. 스킨십을 과격하게 하니까요. 감정뿐만 아니라 테크닉에도 신경을 써야해요. 이 영화에서 제가 지젤을 죽이려는 장면은 류현경 배우의 리액션이 만들어낸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때리거나 맞는 장면들이 가장 어려워요. 그 당시에는 감정에 집중하려고 열심히 노력을 해서 잘 넘어갔던 거 같아요.


김영진: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거 같아요. 각자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경원: 짧은 시간에 정말 타이트하게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지금 되게 많은 응원을 받고 있는 것 같아서 감격스럽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그래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정민: GV 등으로 관객 여러분들과 소통할 때 감독님도 저도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들을 받는데, 그게 좋아요. 뚫어져라 봐주신 것 같아서요. 이런 자리가 항상 즐겁습니다. 아마 이 영화로 관객 분들을 만나는 것은 이 자리가 마지막일 것 같아요. 그동안 여러분 덕분에 많이 배웠고 이렇게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계속 만들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와 ‘가짜’는 구분하는 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래된 주제이자 많은 사상가와 예술가를 무덤으로 보낸 심각한 주제이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이러한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블랙코미디로 그려낸다. 이것이 코미디일 수 있는 까닭은 영화가 ‘가짜’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진짜’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러한 인식에 대한 질문 앞에서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믿음과 신념이라는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영화와 같은 현실을 실시간으로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아마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본 것을 믿었고 그 중 다수는 나름의 답을 찾으려 무던히 노력하였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본 것에 대한 나름의 믿음을 서로를 통해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통해 진짜는 중요하지 않다는 냉소와 알 수 없다는 허무를 딛고 일어설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개봉으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할머니의 먼 집>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3615





<할머니의 먼 집> 리뷰: 당신이 멀어져가도 변하지 않을 마음을 담아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사랑하는 할머니가 어느 날 자살을 시도했다” 이 영화에 이보다 강력한 문장이 있을 수 있을까. 나(이소현 감독)를 키워준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할머니가 계신 화순으로 내려가 그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먼 집>은 ‘할머니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카메라에 담긴 그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따스하다. “밥은 묵어쪄?” 묻는 할머니와 “잉, 먹었지.”하는 손녀의 대화에서 따뜻한 애정이 비친다. 할머니가 잡초를 캐는 모습, 낮잠을 주무시고 약을 챙겨 드시며 “요놈 하나 묵어”라며 나에게 카스테라를 내어주는 모습. 할머니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애정이 뚝뚝 흘러넘치고 이를 담아내는 카메라 역시 그렇다. 마치 일기와도 같은 사적인 기록임에도 보는 이는 영화를 따라 울고 웃게 된다. 





왜 죽으려고 했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성가신게”라고 답한다. 죽음은 할머니에게는 가깝고 손녀인 나에게는 가깝지 않아서 할머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가족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듯 죽음도 그러하기에, 나는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저 상처를 치료해드리고 가족 몰래 영양제를 놔드리고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이 영화는 특정한 메시지를 위해 설계된, 관객을 설득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할머니와 할머니에게 가까워지는 죽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나에게 가장 따뜻했고 다정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그 정서를 공유하는 영화다. 아흔 셋,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으나 나는 아직도 할머니, 할머니와 함께하는 삶을 사랑한다. 그러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도 이 기록으로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한줄 관람평

송희원 | 예술, 예술가 '진짜'로 거듭나기

이현재 | 고유성이라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

박영농 | 블랙코미디 - (스릴러) - 멜로드라마

이지윤 | 허상과 본질 사이에서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최지원 | 더 이상 내가 아니게 설계된 예술 속 '나'와 그 속에서 버텨내는 진짜 '나'의 블랙코미디

김은정 | 고상한 예술가인 척 하기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리뷰: 고유성이라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젤’(류현경 분)의 첫 모습은 당황스럽다. 덴마크에서 귀국했다는 그는 행인에게 담배를 빌리며 들고 있는 아메리카노에 대해 비판한다. 아메리카노의 기원을 알고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에스프레소를 마셔보라고 권유한다. 행인은 본인의 담배를 다 피우자마자 그 자리를 떠난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탄 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택시기사의 수다와 음악취향에 ‘다른 걸로 틀어주실 수 있냐’고 불만을 보이던 그는 본인이 입을 열 기회가 주어지자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낸다. 오늘날의 미술계는 예술가가 멸종하고 사기꾼들만 넘쳐나는 오염된 곳이라 이를 정화할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택시 또한 그가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집 앞에서 그가 처음 마주하는 것은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받은 미술대회 장려상 상장이다. 이후 어머니와 친구를 만난다. 이 만남들에서 그가 확인하는 것은 그의 능력이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젤의 첫 모습은 곤궁한 자신의 상황을 환상으로 합리화하려는 유아적인 에고이스트로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입사하려던 회사로부터 거부의 제스처를 확인한 그는 (비록 환상 속이기는 하지만) 그 제스처에 답한다. “저는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전생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아티스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첫 대답이다. 그의 대답은 ‘나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한 가지 주장을 은연중에 형성하고 있다. 그는 앞서 본인이 제시한 주장을 몸소 증명해보이겠다는 듯, 미술계 인사들이 모인 회식자리에서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가 ‘박중식’(이순재 분)에게 귓속말로 “선생님 그림 되게 과대평가 받은 거 아세요? 쪽팔린 줄 아세요.”라고 면박을 준다. 그러자 박중식은 “그런가?”라고 답한다. 이 대답은 그의 말을 반박하진 않지만, 참/거짓의 문제를 그에게 되돌림으로서 주장을 닫아버리는 기능을 한다. 결국 참/거짓의 문제는 그 안에 머무르고 발화되지 않는다.


그의 진술은 왜 그 안에만 머무르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필자는 그가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재범’(박정민 분)이 그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그의 작품으로 인해 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작가인 지젤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작품들을 자신의 갤러리로 가져온다. 재범은 그를 미술계 인사들의 공적인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박중식 앞에서 그를 “그림은 좋은데, 작가가 좀 그래요.”라고 평가한다. 이에 박중식은 “작가가 중요한가? 그림만 좋으면 됐지.”라고 답한다. 그리고 곧바로 그림을 산다. 이는 박중식이 지젤의 그림이 가진 가치를 알아보았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재범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후배 양성”이라고 답하기 때문이다. 가르침이 타자의 변화를 일으키는 목적을 가진 행위라 생각하고 박중식의 대답에 접근해보자. 그는 유일무이한 존재에게 필요한 변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양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가?



유일무이한 존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은 누구와도 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는 누구도 이해할 의지가 없는 상태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유일무이한 존재는 누구와도 같이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의 발화는 혼잣말이 된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발휘되어야 할 그녀의 재능이 기능 부전되는 이유이며, 동시에 그녀의 말이 그녀 안에 머무는 이유이다. 박중식이 지젤의 그림을 산 정확한 이유는 재범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재범은 박중식에게 지젤의 그림을 소개하며 ‘갤러리 비지팅도 끝난 상태’라고 말한다. 박중식에게 지젤은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한 작가인 것이다. 박중식이 지젤에게 원했던 것은 본인의 고유성을 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후배 양성’으로, ‘돈’울 주고 그림을 산 것이다. 박중식은 극중 지젤을 가장 정확히 이해한 인물이다. 그리고 돈은 그들의 언어이다.


그 이후는 지젤이 고유성을 잃어버리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를 견딜 수 없던 재범과 ‘제임스 곽’(문종원 분)는 ‘오인숙’을 죽이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표면적으로 작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도로 그려지나 그들의 대화나 태도에서 경제적인 가치창출을 바라는 것 이상의 잉여가 보인다. 특히 이는 재범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가 지젤을 발굴한 첫 인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어릴 적, 진품인 줄 알았던 물건을 가품이라고 판단하는 감정사가 멋있게 보이더라는 이야기를 제임스에게 하는 것과 같이 그의 욕망은 작품에 진릿값을 붙여서 고유성을 창출하는 데 있다. 그가 오인숙을 살해하려 한 이유는 그의 고유성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임스 곽은 극적으로 지젤이 고유성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또한 벌어진 사태를 어찌할 바 몰라 지젤의 그림을 기증하는 결말에 이른다.



모두에게 욕망의 대상이었던 고유성. 지젤의 그림은 결국 공적인 장소인 길거리로 나온다. 이 때 마지막 장면의 카메라는 누구의 시선인지 판별할 수 없다. 길거리 위 지젤의 그림은 사람들로부터 전과 같은 고유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외부의 자리에 어색하게 놓이고 고정된 자리 없이 떠도는 존재가 된다. 지젤의 그림은 어쩌면 영화라는 대중매체가 지닌 고유성에 대한 자기 파괴적이고 모호한 욕망에 대한 우화가 아닐까.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녹화중이야한줄 관람평

송희원 | 사랑하기에 간직하고픈, 평범한 순간들의 REC

이현재 |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홈 무비 사이에서 나는 파열음

박영농 |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윤리

이지윤 | 삶이 정지되었음에도 재생되는 수많은 순간들

최지원 |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 '머무름'을 이야기하다

김은정 | 끝을 향해가는 보편적인 사랑이야기



 <녹화중이야> 리뷰: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윤리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영화 <녹화중이야>는 말기 암 환자 ‘연희’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페이크 다큐멘터리형식으로 담았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등장인물들이 직접 촬영한 것으로 설정되어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아마 첫 장면에서 실제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고인(故人)의 영상을 취합하여 만든 것이며 그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내용의 추모사를 던지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극영화와는 다르게 초점이나 구도가 맞지 않도록 연출된 장면은 흡사 홈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실제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엔 너무 짜임새 있는 플롯 탓에 진짜라고 착각하던 관객들은 이내 페이크 다큐멘터리임을 알아채고 말았을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흔히 봐온 신파-멜로드라마의 장르적 문법을 차례로 밟고 있음을 직감하는 순간, 관객의 자세는 흐트러졌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지점에서 <녹화중이야>가 품고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영화는 고등학생 시절 암 선고를 받고 몇 년 째 투병 중인 인물을 중심으로 하며, 도중에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접근한 것은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방식은 이야기의 사실감을 극대화했으며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데에 성공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이미 성취한 것들에 만족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갔다는 사실에 있다. 바로 앞서 언급한 첫 장면의 추모사에 대한 윤리적 문제이다. 다큐멘터리적 연출을 완성하기 위해 고인에 대한 추모사를 영화의 첫 머리에 꼭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영화에서 탄생시킨 캐릭터를 영화 안에서 떠나 보내며 그 정도의 애도는 충분히 수사적으로 가능한 표현이지 않겠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지적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화두를 던지는 이유는 어쨌든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이하 <뚜르>)을 떠올려보자. 이 영화도 <녹화중이야>와 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말기 암 환자가 되어 투병 생활을 이어가는 인물을 다룬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뚜르>는 실제 인물 故 이윤혁 씨의 삶을 좇았다는 것이다. 이 두 영화의 첫 장면을 같이 놓고 비교한다면 <녹화중이야>의 그것은 결코 ‘수사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게 된다. 연희에 대한 추모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적 특수성 안에서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녹화중이야>가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한 것은 결국 관객들이 허구의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함이다. 초점이나 구도가 맞지 않는 장면들처럼 첫 장면의 허구적 추모사 역시 그런 목적을 기저에 둔 장치에 해당한다. 즉 실제 이야기처럼 보이기 위한 영화적 장치인 셈이다. 그로 인해 관객은 영화 속 캐릭터와 상황에 더욱 몰입하게 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추모행위를 소비시킴으로써 본질 그 자체의 의미는 사라지게 만든다. 실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이미 고인이 된 출연자를 추모하기 위해 첫 머리에 띄우는 자막은 영화 내부에 어떠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차용하는 것은 다큐멘터리 영화 속 그것의 고유한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이며 윤리성을 따져보아야 하는 지점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 고유한 영역을 구축하기까지 다양한 시도와 노력은 필수적이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고민지점에 대해 얘기하고 (상호)보완해간다면 낯선 영화, 새로운 영화들이 보다 풍성하게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격려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 연장선에 이 글의 목적이 있다. ‘좋다/나쁘다’, ‘재미있다/재미없다’의 구분을 떠나 모든 영화는 우리에게 이미 어떤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대답하는 것은 영화를 보는 큰 재미이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