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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거짓말
〈양치기〉와 〈좋은 사람〉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글입니다.
우리는 말로써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 말을 통한 소통의 기반에는 상대에 대한 믿음이 있다. 상대가 진실을 말하고 있으리라는 믿음, 상대가 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리라는 믿음은 소통을 이어가는 동력이 된다. 그러나, 모든 말이 믿음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진실’의 일부를 탈락시킨 말로 자신을 감추기도 하고, 타인의 말이 ‘진심’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거짓말은 말에 내재한 모순에서 탄생하였다. 우리는 말로써 ‘진실’과 ‘진심’을 드러내지만, ‘진실’과 ’진심’ 그 자체를 보일 수는 없다. 말은 추상적인 가치를 현실의 차원으로 꺼내는 통로일 뿐이다. 말이라는 필터를 거치며, ‘진실’은 왜곡되고 ‘진심’은 퇴색된다. 말 한마디가 진실을 가리고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거짓말은 말로 담아내지 못하는 내밀한 욕망의 표출이자, 말로 대변되는 현실로부터의 일탈이다. 현실의 관계가 복잡한 만큼이나, 거짓말의 양상 또한 다층적이다. 〈양치기〉에 나타나는 수현의 거짓말은, 어머니의 과거를 원하는 방식으로 수정하여, 남편과의 결혼을 원활히 치르고자 하는 욕망으로 읽을 수 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거짓말의 주체였던 수현은, 요한과의 관계에서는 거짓말의 객체가 되고, 요한의 거짓말은 수현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다.
요한의 거짓말에 휘말리기 전까지, 수현은 ‘좋은 사람’이었다. 반에서 발생한 문제에 이성적으로 대처하는 ‘좋은 선생님’이자, 남편과 결혼을 앞둔 ‘좋은 아내’였다. 요한의 거짓말은 수현을 한순간에, 학생을 학대하는 ‘나쁜 교사’이자 남편에게 거짓말을 일삼는 ’나쁜 아내’로 만들어버렸다. 요한의 거짓말로 몰락하는 수현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를 고민하게 한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흔들리는 ‘좋은 사람’의 모습은 정욱 감독의 영화, 〈좋은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교사 ‘경석’은 ‘좋은 교사’이자 ‘좋은 남편’으로 보인다. 어느 날, ‘경석’에게 교실 도난 사건과 딸의 교통사고라는 두 가지 사건이 닥쳐온다. ‘경석’은 학생 ‘세익’을 가해자로 의심하고 ‘세익’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건이 진행되며, 관객은 경석을 마냥 ‘좋은 사람’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경석도, 세익도, 사고 현장의 트럭 운전수도 선과 악 사이에 놓여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진실인 듯, 거짓인 듯 이어지는 인물의 독백 가운데 미궁으로 빠지는 듯한 사건의 전말은 결국 경석을 향한다. 경석은 여태껏 무시해 왔던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다. 거짓으로 숨겨왔던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진실과 마주하는 경석의 뒤로, 어스름한 새벽빛이 들어온다. 긴 밤을 지나온 경석은 아침이 도래하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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