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에서 나온 라이츄의 영원한 테마

 인디피크닉 2017 <구덩이> <라이츄의 입시지옥> <인류의 영원한 테마>  인디토크


일시 2017년 4 8일(토) 오후 1 상영 후

참석 <구덩이> 강산 감독, 윤정로 배우, 김수현 배우, 박선영 배우 /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내바다 배우, 김영세 배우 /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준 감독, 장영준 배우

진행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영화의 본령 중 하나는 카메라를 돌리면 그대로 찍힌다는 것이다. 그 말에선 무거운 고뇌와 힘겨운 노동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조악하고 게으르다고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창조력은 언제나 누군가가 욕하는 조악하고 게으른 자들에게서 나온다. 훗카이도 대학의 하세가와 에이스케 교수는 일하지 않는 개미가 종족의 장기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밝혀내기도 하였다. 근면한 개미만 모인 집단은 종족의 존속에 반드시 필요한 알의 뒷바라지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알을 위해 카메라를 돌리는 개미들을 ‘인디피크닉’에서 만나보았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하 김동현): 이렇게 따뜻한 봄에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또는 왜 이렇게 만들게 됐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배우 분들은 캐스팅까지의 과정, 또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의 느낌이나 본인의 캐릭터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구덩이> 강산 감독: 처음에는 관계에 대해서 다뤄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관계의 대표적인 형태가 결혼이어서 그 주제를 다루기로 했어요. 그래서 대중영화의 경향을 조금 정리해봤어요. 이혼 해주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차라리 찢어서 죽였으면 죽였지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하냐, 그런 사연이 많았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의 작품들은 되게 무겁고 우울한 게 많아서 재미있는 걸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찍었습니다.

 

<구덩이> 윤정로 배우: 박선영 배우님과 전에 작업해본 적이 있어서 편하고 좋았습니다. 감독님도 이 점을 미리 생각해 둔 거고요. 그리고 ‘미선’역을 고민하던 감독님이 “주변에 카리스마 있는 사람 없냐”고 해서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다 다음날, “잘 모르는 데 한 명 있다”고 김수현 배우를 추천했습니다. 건너 알던 배우분인데, 감독님이 한 번 보고는 바로 캐스팅해서 이렇게 모이게 되었습니다.


<구덩이> 김수현 배우: 조금 오래돼서 기억은 잘 안 납니다. 근데 되게 재밌었어요. 그래서 하기로 했고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의 모델은 저희 엄마에요.(웃음) 말투 등 엄마를 형상화하면서 연기를 했습니다.

 

<구덩이> 박선영 배우: 시나리오를 너무 잘 쓰셔서 잘 읽혔어요. 캐릭터에 대해서 감독님과 되게 많이 이야기했어요. 영화에서 제가 좀 과하게 귀여운 면이 있죠.(웃음) 감독님이 그런 연기를 펼칠 수 있게 많이 도와줬어요.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시나리오를 쓴 건 15년 4, 5월 즈음이에요. 남들이 별로 말하지 않은 것을 다뤄보자고 '박근혜 아웃' 같은 말을 쓰고 그랬어요. 그리고 ‘피카츄는 꾸준히 인기가 있으니까 라이츄 정도?’ 생각했는데, 이걸 찍고 나니까 진짜로 박근혜 아웃되고 포켓몬 고 유행하고 이러더라고요. 오늘 와서 보니 유행이 이미 다 지난 퇴물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아직도 약간 당황스럽긴 한데 처음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는 영화를 찍자는 생각으로 작업했습니다.


<라이츄의 입시지옥> 내바다 배우: 이거 정말 다 한국말로 해야 돼요? 그 정도로 잘하는 사람 아니에요. 아무튼 에이전시한테 연락을 받아서 나갔는데 콘텍스트 이해 안 됐지만 웃겼어요. It was funny. 그래서 연기 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 외에 다른 이야기는 지금 긴장해서 생각이 안나요. Hello 여러분.(웃음)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영세 배우: 피카츄, 라이츄 역할을 맡았습니다. 연기 지망생은 아니고 그냥 감독님 대학교 동기에요.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출연을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근데 영화를 보면 마지막에 삭발을 하잖아요. 저는 촬영에 삭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촬영 이틀 전에 알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찍자는 취지여서 그냥 하기로 했어요. 이런 영화가 될 줄은 몰랐는데 지금 봐도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준 감독: 자퇴하기 전에 추억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찍었어요.(웃음) 다섯 캐릭터가 나오는데 다 제 친구들이에요. 제 눈에 느낌이 좋은 친구들에게 시나리오를 주면서 “같이하지 않을래? 나 이제 곧 자퇴하니까 너희들 못 본다. 마지막으로 추억이나 남기자”하면서 찍게 된 영화에요.


<인류의 영원한 테마> 장영준 배우: 저도 그냥 찍었습니다.(웃음) 감독님과 형 동생 사이였어요. 



김동현: 몇 회차로 촬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또 촬영장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준 감독: 회차는 기억이 안 나요. 그 때 별로 돈이 없었고 제가 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장비 빌려서 여느 학생들과 같이 찍었습니다. 아마 스무 번 넘게 만났을 거예요. 촬영감독님이 스케줄이 안 되면 제가 카메라를 드는 날도 있었고요. 다섯 명의 배우들이 각자 스케줄이 있고 되게 바빠서 술집 장면을 제일 마지막에 찍은 것 같아요. 다 같이 만나기가 힘들어서요. 


김동현: 후반작업 기간도 꽤 길었을 거 같아요. 여러 효과들이 많고 색감도 좋잖아요.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준 감독: 오히려 편집은 당일로 끝났어요. 다른 감독님들도 아시겠지만 영상을 찍으면 빨리 만들고 싶잖아요. 빨리 편집하고 싶고. 그래서 한 씬을 찍으면 그날 바로 편집하고 음악도 넣어보고 그랬어요.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집과 집 앞에서 찍어서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어요. 대신 집 안에서 기물파손이 많았죠.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장면까지 약 3일 정도 찍은 거 같아요.


<구덩이> 강산 감독: 역시 영화는 현명하게 효율적인 공간에서 찍어야 하는데. 저는 4, 5회차로 찍었어요. 땅을 팔 수 있는 곳을 찾기가 되게 힘들었어요. 창고처럼 보이는 그 장면에서 실제로 집을 한 채 빌렸어요. 그리고 큰 구덩이는 마사토로 채워져 있어서 쉽게 팔 수 있는 곳이라고 주변 분들과 부동산 업자들이 이야기해서 시작했는데 중간에 도저히 못 파겠더라고요. 그래서 기계로 뚫다가 암반 지대가 나왔어요. 굴삭기를 구했는데 결국 굴삭기도 못 팠어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학교 주변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학교 뒷산 의릉이 유네스코로 지정되어서 함부로 팔 수가 없었어요. 영유권 분쟁이 없는 중간지대에서 다행히 삽으로 팠습니다. 그 때는 정말 돈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전에 굴삭기가 들어오다가 남의 밭을 다 훑었더라고요. 촬영하느라 모르고 있었는데 밭주인이 배상하라고 해서 저의 아이맥을 팔았습니다.


관객: <구덩이>에 <싸이코> 음악을 넣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치정 관계에 있는 역할의 이름이 ‘나타샤’인데 그 이름을 쓴 이유도 궁금합니다.


<구덩이> 강산 감독: 전부터 그 음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아직 저작권이 살아있어요. 그래서 ‘제 3세계에 사는 학생인데 쓰면 안 되겠냐’고 메일을 보내서 허락을 맡았어요.(웃음) ‘나타샤’는 저희가 리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름이에요. 백석의 시 중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있어요. 시인이 흠모하는 사람을 ‘나타샤’라고 칭해서 그렇게 지었어요. 



관객: <라이츄의 입시지옥>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노래의 가사가 너무 인상적입니다.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마지막 음악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여성 락밴드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게 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제가 쓰고 제가 불렀습니다. 


김동현: 그리고 이 작품에는 감독님이 카메오로 여러 번 출연해요. 어느 부분에 나왔는지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아요.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처음에 철학적인 척 할 때 컴퓨터 모니터에서 MGM 로고가 나오는 부분이 있어요. 거기서 사자 대신 제가 나와요. 엔딩 크레딧에서 '영화는 내 인생, 내 인생은 영화처럼' 이 부분에서도 제가 나오는 게 좋겠다 싶어서 넣어봤어요. 넣어보긴 했는데...(웃음)


관객: <구덩이> 캐릭터 세 명이 다 굉장히 독특하고 영악해요. 어디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구덩이> 강산 감독: 남성 캐릭터에 약하고 우유부단한 부분을 넣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남성을 데리고 사니까 여성은 굉장히 강해야 할 것 같았고요. 그리고 내연관계에 있는 캐릭터는 또 다른 면모가 있어야겠다 정도로 잡고 시작했어요. 나머지는 배우 분들 만나면서 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수현 배우의 사투리는 전부 배우님이 직접 만든 거예요. 나머지 디테일한 부분은 ‘네이트 판’을 되게 좋아해서,(웃음) 거기에서 참고를 많이 했습니다.


김동현: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영세 배우님은 전문 배우가 아니라고 했는데 감독님으로부터 디렉션을 받았나요?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영세 배우: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 힘들었어요. 같이 살던 사이라 촬영하기 두 달 전부터 매일 밤마다 검사를 맡았어요. 강약, 호흡, 악센트, 톤 등을 일일이 다 교정을 해줬어요. 모든 부분이 다 설계된 거예요. 너무 힘들었어요.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지금은 따로 살고 있습니다.(웃음)



김동현: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준 감독님은 어떻게 디렉션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인류의 영원한 테마> 장영준 배우: 감독님이 워낙 유능해서 배우들을 잘 케어했어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시피 다 아는 사이여서 현장이 굉장히 편안했어요. 그래서 서로 배려했고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어서 힘든 점은 따로 없었습니다.


<인류의 영원한 테마> 김현 감독: 배우 분들이 워낙 끼가 많아요. 그래서 딱히 디렉션 할 게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많이 관찰했어요. 색깔이 각기 다른 배우들이에요. 부분부분 되게 재미있게 묘사하더라고요. 


관객: <구덩이>와 <인류의 영원한 테마>는 그래도 중심에 스토리가 있는데 <라이츄의 입시지옥>은 내내 ‘이게 뭐지?’하면서 봤어요. 연출 의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라이츄의 입시지옥> 김현 감독: 사실 놀라실 수 있지만, 로버트 맥키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를 보면서 쓴 시나리오에요.(웃음) 웹툰에서는 ‘병맛’이 굉장히 큰 장르가 되어서 산업화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특히 한국에서는 영화에서 병맛을 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부분적인 요소로 쓰는 것은 종종 보지만 전반에 걸쳐서 쓰이진 않는 것 같아요. 단편영화는 자본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잖아요. ‘진짜 아무렇게나 찍어도 되는 건데 왜 이런 게 없을까?’라는 저만의 고민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더 이상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던 생각이 납니다.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는 여러 가지 층위가 있다. 그 중에서도 영화의 가장 기본적이고 솔직한 재미는 무작정, 원초적인 재미이다. 여기에는 누군가가 카메라를 작동시키면 그저 카메라가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절대적인 웃음이 있다. 이러한 웃음은 대중매체로 존재하고 있는 영화의 존재를 존속시키고 나아가 성실한 영화들은 미처 하지 못했던 영화의 알을 뒷바라지 한다. 누군가가 게으르다 욕하는 개미들에게도 각자의 역할과 기능이 있다. 영화는 이런 다양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존속이 가능한 재미있는 복합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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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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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언제나 거짓으로 진실을 말한다

 인디피크닉 2017 <플라이> <여름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인디토크


일시 2017년 4 9일(일) 오후 6 상영 후

참석 <플라이> 임연정 감독, 정하담 배우, 이혜미 배우 / <여름밤> 이지원 감독, 정다은 배우 /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안선영 배우

진행 배주연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영화는 종종 그 사회의 모습을 담는 거울이 된다. 카메라는 기계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눈을 연장시킨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살고 있는 일상을 풍경들을 남기기도 한다. 그것은 때때로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본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나아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모습을 본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을 확장시켜 더 나은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폴 발레리는 “용기를 내어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용기를 내 자신의 눈을 속이지 않고 대중의 눈이 닿지 않는 곳까지 바라보고자하는 감독과 배우들을 만났다.



배주연 평론가: 연출 의도와 만든 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플라이> 임연정 감독: 처음에 모두가 한 방향으로 걸어갈 때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여자 아이를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아이가 스스로를 극복할 만큼 강한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출을 했습니다.

 

<여름밤> 이지원 감독: 세대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로 연대를 다루고 싶었고 ‘소영’이 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통해 이 시대 어른들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레즈비언인 두 사람이 서로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욕망에 집중을 했어요. 


관객: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에서 차 앞 유리의 얼룩에 포커스가 맞춰지며 제목이 뜨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오프닝에서 이 영화의 전체적인 스탠스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반적으로 모호한 화면을 연출하려고 했습니다.



관객: 각 영화마다 계절감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그 계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배우 분들은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작품에 임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총 10회차 정도였는데, 겨울 3회차, 여름 3회차, 봄 3회차 정도로 나누어 구성을 했습니다. 현실과 과거가 9년이라는 시간차를 갖기 때문에 단순히 분장을 다르게 하기 보다는 계절감을 주어 관객들을 헷갈리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배우 분들과 스태프 분들이 이 일에 잡혀 고생을 조금 해야 했어요.


<여름밤> 이지원 감독: 더워서 지치는 여름밤이 이 소녀들의 지친 일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을 했고 둘이 모여서 화해를 이루고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분위기가 여름밤과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름으로 배경을 잡아두고 작업을 했습니다.

 

<플라이> 임연정 감독: <플라이>는 앞의 두 영화만큼 계절이 영화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은 것 같아요. 사실 마쳐야하는 일정이 있어서 그 때 찍은 이유가 가장 커요. 지나고 보니 영화 전체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로 적당한 때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주연 평론가: 이혜미 배우님은 <플라이>에서 배우뿐만 아니라 무술감독도 맡았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플라이> 이혜미 배우: 저는 현직 복서이자 스턴트우먼이에요. 복싱을 주제로 한 단편영화라고 해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여름밤> 정다은 배우: ‘민정’이 가난과 불행에도 어긋나지 않는 모습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안선영 배우: 예전에도 감독님과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시나리오를 받기 전부터 당연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 깜짝 놀랐어요. 술술 잘 읽혔고 여태까지 봐온 퀴어영화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어요.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지 생각이 들어서 이끌린 것 같아요.


배주연 평론가: 배우 분들께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을 거 같아요. 복싱을 배워야 했고, 여름밤에 계속 뛰어다녀야 했고,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에서는 다리에서 떨어지는 장면도 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그 장면은 스턴트 하는 분이 대신 해주었습니다.


배주연 평론가: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점, 그리고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플라이> 정하담 배우: 복싱 연습을 열심히 하고 곧잘 한다는 이야기도 듣고 촬영에 나갔는데, 캐릭터가 너무 역동적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소화하면서 조금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바쁘게 열심히 했어요.


<플라이> 이혜미 배우: 편집돼서 나오진 않았지만 저와 정하담 배우가 스파링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무술감독으로서 애정하는 장면이었고 저희 둘이 고생한 장면이라 기억에 남아요. 조금 아쉽습니다.


<여름밤> 정다은 배우: 뛰는 장면이 힘들기보다 굉장히 즐거웠어요. 기억에 남는 건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 장면인데, 처음 해봤는데도 재미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안선영 배우: 당시는 정말 힘들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힘든 게 아니더라고요. 동성애 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할 때는 자연스럽게 잘 됐어요. 키스신이나 베드신 정도가 생각이 나요. 준비하면서 힘들었지만 정말 좋았던 기억입니다.



관객: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는 귀여워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어요. 감독님이 남성이어서 깜짝 놀랐어요. 퀴어, 레즈비언 소재를 다루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소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만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맞아요. 정말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디렉팅을 해야 하는지, 시나리오 곳곳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실제 많은 분들을 오프라인으로 대면하면서 “이런 영화를 찍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기도 했어요. 콘텐츠도 많이 찾아봤고요. 배우 두 분이 따로 레즈비언 카페에 간 적도 있어요. 얼마 전에 <캐롤>(2015) 개봉했을 때는 만나서 표 2장 주고 저는 빠지기도 했습니다.


관객: <플라이>에서 감정의 클로즈업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는 전체적으로 섬세해서 놀랐습니다. 레즈비언을 소재로 한 퀴어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어떻게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플라이> 임연정 감독: 시나리오를 쓸 때 제일 처음 쓴 부분이 자판기 장면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작은 생명을 구하고, 자기를 구원하고, 복싱에 마침 플라이급의 체급이 있고, 그런 부분들을 모아 만들었어요. 그리고 정하담 배우가 들어오고 나서 더 제대로 만들어진 느낌이에요. 계속 가까이 갈 수 밖에 없더라고요. 클로즈업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정하담 배우의 얼굴이 너무 영화적이었어요. 그래서 그걸 계속 담아내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 같아요. 


배주연 평론가: 클라이맥스 직전의 장면으로 영화를 연 것은 처음에 시나리오를 그렇게 썼기 때문인가요?


<플라이> 임연정 감독: 편집할 때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리 클라이맥스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처음부터 퀴어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물론 장르로 따진다면 퀴어영화가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로 시작했어요. 



관객: 세 편 모두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데 그렇게 설정한 이유나 계기 혹은 의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여름밤> 이지원 감독: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제 영화에서 성별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생각했던 이미지가 같이 조는 장면, 마지막 엔딩 장면이었어요. 그런 이미지들을 생각하다보니 여성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제 영화는 여성의 입장을 크게 부각시키는 영화도 아니고 그냥 한국의 청소년과 젊은이에 관한 이야기에요. 두 명의 남성보다는 두 명의 여성이 분위기 상 더 좋을 거 같아서 자연스럽게 여성 캐릭터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플라이> 임연정 감독: 일단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삶이 더 궁금했어요. 그리고 영화 속에서 남성들을 너무 많이 보지 않았나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잡은 것 같아요.


관객: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감독님은 어떤 장면을 특별히 신경 썼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감독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정지윤 감독: 특별히 신경 쓴 장면은 웨딩숍에 가는 장면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거잖아요. 사실 떠나보내는 건 아닌데, 떠나보내는 것 같은 감정이 느껴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물론 현실에서는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어있지 않고, 둘이 아이를 낳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건 영화잖아요. 어떤 분들은 해피엔딩으로 볼 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새드엔딩으로 볼 수도 있겠죠. 


관객: <여름밤>의 두 주인공이 서로 너무 닮아있어요.


<여름밤> 이지원 감독: ‘소영’의 입장에서 ‘민정’이 자신의 과거일 수 있고, ‘민정’의 입장에서는 ‘소영’이 자신의 미래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명의 배우가 서로 닮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언제나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많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용기이기도 했고 서로의 연대이기도 했다. <플라이>에서 한별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까지 스스로 수많은 용기를 내야 했고 <여름밤>에서 소영은 남을 위한 용기를 내기까지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에서는 서로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서로를 마주할 용기를 내야만 한다. 언제나 깨어있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발레리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깨어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꿈은 우리에게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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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 일상 사이의 매력  인디피크닉 2017 <일어나기> <천에 오십 반지하>  인디토크


일시 2017년 4 7일(금) 오후 6 상영 후

참석 <일어나기> 김예은 배우, <천에 오십 반지하> 강민지 감독

진행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서울독립영화제 순회상영회 인디피크닉의 첫 소풍은 ‘신인류의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세 영화와 함께 했다. 세 영화는 각각의 신선한 시각으로 우리가 속한 시공간을 그려냈다. 영화 상영 후 <일어나기>의 김예은 배우, <천에 오십 반지하>의 강민지 감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하 김동현): 역시 <일어나기>의 주인공은 현 여자친구죠.(웃음) 제안 받았을 때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또 본인의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합니다.


김예은 배우(이하 김예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이게 완고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하더라고요. 당황스러워서 뭘 하면 되냐고 하니까 “그냥 거기 있는 대사 좀 읽어줘”라고 했어요.(웃음) 촬영이 끝나고 나서 꿈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들었습니다.


김동현: 이 영화를 여러 번 봤는데 봐도 봐도 알쏭달쏭한 점이 아직도 있기는 합니다.(웃음) 영화에서 굉장히 판타지하게 출연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장면도 시나리오에 설명이 되어 있었나요?


김예은: 설명이 거의 없었어요. 갑자기 블루스크린 앞에서 “환하게 해처럼 웃어봐”라고 했어요. 어처구니없죠.(웃음) 그렇지만 재밌는 장면이 됐습니다. 


김동현: 전쟁같은 생활을 영화화하는 것이 굉장히 고난스러운 과정이었을 텐데 강민지 감독님은 어떻게 <천에 오십 반지하>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강민지 감독(이하 강민지): 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하는 분들은 다 이해할 거예요. 그리고 집에 대한 환상과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것 같아요.


김동현: 다큐멘터리도 극영화와 마찬가지로 촬영 이전에 정교하게 기획을 합니다. <천에 오십 반지하>의 경우 사전의 기획뿐만 아니라 집을 알아보기 위해 몸으로 뛰면서 겪은 경험들이 영화를 풍부하게 채운 것 같아요.


강민지: 촬영을 시작하면서 ‘혹시 집이 구해지면 어떡하지?’ 고민을 했어요. 그러면 이 영화는 끝이잖아요, 희망찬 영화가 될 거고. 그러나 촬영 3일만에 ‘아 영화가 되겠구나’ 했습니다.(웃음) 


김동현: 처음부터 감독님이 출연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나요?


강민지: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려 했는데 기획 과정 중에 제가 주인공으로 나오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혹하는 마음에 그만.(웃음) 


김동현: 주인공 욕심이 있었군요.(웃음) 처음으로 촬영한 장면은 영화 맨 처음, 이사 가기 전에 방에서 화장하며 공간을 소개하는 그 장면인가요?


강민지: 제일 처음 촬영한 장면은 부모님과 같이 식사하면서 인터뷰한 장면이에요. 제 인터뷰는 촬영 시작한 지 세 달 지난 시점이에요.


김동현: 그렇군요. 첫 촬영에서 대단히 귀한 장면을 얻었네요.(웃음) <일어나기>는 여름에 촬영을 했어요. 주된 배경은 바닷가고요. 어떻게 보면 답답하기도 한 꿈이라는 설정을 공간적 대비를 통해 영화적으로 연출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예은 배우님은 좁은 방에서만 촬영을 했겠네요. 좀 덥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어요.(웃음) 클로즈업이 굉장히 많던데 밀착해서 찍는 게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김예은: 행복했습니다.(웃음) 상대 배우가 쾌활하고 성격도 좋고 연기도 잘하고 멋있는 배우라서 더위를 싹 잊어버리게 하는 행복한 현장이었어요. 촬영하던 방에 10명 정도가 같이 있어야 해서 정말 좁게 느껴지긴 했는데 분위기 자체는 되게 좋았어요. 감독님은 계속 걱정을 했지만.


김동현: 이 자리에 감독님이 없으니까(웃음) 어떤 부분에 대해 걱정을 하던가요?


김예은: 찍고 나서 본인이 뭘 찍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계속 하더라구요. 현실과 꿈을 어떻게 다르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관객: <천에 오십 반지하>에서 방을 뺄 때 부동산과 말이 안 맞아서 통화를 하던 장면은 어떤 상황이었던 건가요? 그리고 <일어나기>의 김예은 배우님은 현 여자친구를 어떤 마음으로 표현했는지 궁금합니다.


강민지: 계약된 기간 안에 방을 빼는 것에 대한 조항이 있었어요. 부동산에서 설명해주어야 할 부분인데 잘 설명해주지 않은 거죠. 어린 여성이다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김예은: 이 사람을 보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연애할 때 남자친구 보는 마음으로 연기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 <천의 오십 반지하>에서 처음 살던 방, 고시원, 그리고 한 달 정도 머문 방이 나와요. 영화 보면서 되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집을 잘 구해야 할 텐데, 생각을 했어요. 그 다음에 구한 방은 마음에 드는지 궁금합니다.

 

강민지: 결말을 보고 많은 분들이 ‘그래서, 이게 끝이야?’라고 해요. 영화에서 제가 그 다음에 살게 된 집을 보여주는 게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계속 보여준 불안의 상태로 영화를 끝내고 싶었습니다. 별개로 영화에 나온 셰어하우스에 잠깐 살았어요. 그러다 대구로 잠깐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관객: <일어나기>를 오랜만에 봤는데 사이다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궁금해졌어요. 그리고 <천의 오십 반지하> 감독님은 계속 서울에 사나요?


김예은: 원래는 감독님께 드려야 되는 질문인데, 지금 없으니까.(웃음) 제가 감독님 의견을 해치지는 않겠죠? 제 생각에는 전 여자친구와 나눴던 추억의 소품으로 사용한 것 같아요.


강민지: 지금은 서울은 아니고 경기도 의정부에서 살고 있습니다. 


김동현: 이번에도 부모님 도움 없이 방을 구했나요?


강민지: 잠깐 서울에서 작업실 같은 공간에 살며 보증금을 좀 모았어요. 의정부에서 오늘내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웃음)


김동현: 독립심이 뛰어난 것 같아요. 도와달라고 하면 그만인 거잖아요. 근데 어떻게 딱 잘라 자립을 했나요? 영화를 위한 희생이었나요?


강민지: 사실 영화를 안 찍었다면 지금까지 지원을 받았을 것 같기는 해요. 어머니도 제가 힘들다고 하면 도와줬을 것 같고요. 독립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웃음)



김동현: 김예은 배우님은 <일어나기>에서 세 인물 중 어느 인물이 가장 와 닿았는지 궁금합니다.


김예은: <일어나기>를 볼 때마다 항상 울컥해요. 마지막에 전 여자친구가 혼자 석양을 바라보면서 주저 앉는 장면에서요. 꿈이라는 세계 안에서 우리의 기억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는 게 마음이 아파요. 


관객: <천의 오십 반지하>는 다큐멘터리이고 현실을 그대로 담는 장르이다 보니 이에 대한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민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내가 나와야겠다고 결정을 했지만 굳이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맞는 건지, 필요한 이야기만 하면 되는 건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친한 친구에게 촬영 부탁을 했습니다. 근데 촬영 과정에서 내가 만들어내지 않아도 영화 같은 상황들이 터져 주어서 고민을 많이 덜었어요.


관객: <일어나기>의 배경이 바다로 설정된 이유가 있을까요?


김예은: 이것도 제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감독님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을 한 걸로 알아요.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공간으로 설정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동현: 감독님과 배우님의 관심사,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 이야기하면서 인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강민지: 지금은 다른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제 차기작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는 중입니다. 아직 고민 중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예은: 최근 저는 열심히 놀고 먹고 영화 보고 집에서 혼자 술도 먹고 하는 중입니다. 철권에 빠져있고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 손님>과 <소공녀> 둘 다 얼마 전에 촬영이 끝났어요. 언제 개봉할지는 모르겠지만 잠깐씩 나와서 못 보실 수도 있어요.(웃음) 감사합니다. 



차츰 날이 풀리고 조금씩 꽃망울이 피어나는 봄날.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한 극장에서 연달아 보기에 부담 없는 산뜻하고 신선한, 그러나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여운이 있는 영화들이었다. 우리가 숨을 쉬고 발을 딛고 있는 이 공간에 대한 환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꼭 거대한 스케일이나 위대한 교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느리지만 착실하게 감상과 고민들을 쌓아가다 보면 한 바퀴 둘러볼 여유와 나름의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 독립영화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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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악보가 다성악을 그리듯이  인디피크닉 2017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인디토크


일시 2017년 4 8일(토) 오후 3 20분 상영 후

참석 임대형 감독, 기주봉 배우, 고원희 배우, 오정환 배우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현대 영화가 엄청난 기술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흑백영화를 제작하려는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스펙터클로는 담아낼 수 없는 흑백영화만의 고유한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제한적 양식으로 인식될 수 있는 흑백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특히 인물들 사이 감정곡선의 교차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련의 독립영화들에서 더욱 자주 보인다. 암 선고를 받은 주인공 ‘모금산’의 엉뚱한 도전을 흑백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를 소개한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안): 이렇게 모인 게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소감을 부탁한다.


임대형 감독(이하 임): 올해 첫 상영이라 감회가 새롭다. 시간 내서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


기주봉 배우(이하 기): 봄날에 겨울영화다. ‘사형선고 받은 뒤에 뭘 해야 될까’라는 생각에 초점을 맞춰 연기했다. 모금산이 생에 꼭 남기고자 한 것은 영화였다. 그런 마음으로 이 영화를 찍었다.


고원희 배우(이하 고): 작년 이맘때쯤 크랭크업을 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반갑고 감사하다.


오정환 배우(이하 오): 날씨 좋은 날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안: 단편에서 출발해 확장시킨 영화라고 알고 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흑백 영화의 기운이 강한데, 이는 현대의 시공간에서 살짝 벗어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임: 말씀대로 무성 슬랩스틱 코미디 단편영화로 먼저 구상했고 장편으로 확장시킨 것이 이 영화다. 영화 속 공간인 금산이 고향이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공간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구상했기 때문에 현대 시공간에서 빗겨난 느낌이 묻어난 게 아닐까.


안: 어찌 보면 상투적인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주는 엇박자 리듬감 때문에 다층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정적인 연기와 대사의 타이밍, 그리고 컷 포인트까지 매우 계산적이었던 것 같다. 이런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걸 예상했는지?


기: 결과물에 대한 예상을 하진 않았지만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 잘 반영된 작품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무료함 속의 출구를 찾아간다는 메시지가 깊게 와 닿았고 연기를 하는 동안 '벗어남' 그 자체에 매력을 많이 느꼈다.


안: 고원희 배우는 <흔들리는 물결>(2015), <걱정말아요>(2015) 등에서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왔다. 이번 영화의 ‘예원’이 가장 본인다운 역할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고: 처음엔 마냥 재밌기만 했던 대본이 계속 보다보니 정말 와 닿아서 더욱 끌렸던 작품이다. 그리고 예원이라는 캐릭터와 실제의 내가 비슷해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잠든 장면을 연기하다가 진짜 잠이 들었을 만큼.(웃음)


안: 뮤지컬과 연극에서 주로 활동한 오정환 배우는 장편영화가 처음이다. 공연과 영화의 차이를 실감한 부분이 있는지? 영화 속 캐릭터에 대한 첫인상도 궁금하다.


오: 단편영화 출연을 통해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익혔다 생각했는데, 차이점이 분명히 있었다. 다른 배우 분들로부터 많이 배운 작품이다. 내가 연기한 ‘스데반’은 아버지와 자주 마찰을 겪는다. 연기를 하면서 실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감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안: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열혈스태프상을 받았다. 첫 장면부터 음악이 인상적이다. 감독님은 단편 <만일의 세계>(2014)에서 직접 음악 작업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음악이 두드러지는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임: 작업을 하면서 일 년 내내 캐롤과 블루스를 들었다. 이 영화의 정서와 블루스가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고 원래 좋아해온 뮤지션 하헌진 씨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다. 마치 무성영화를 만들듯 같이 영상을 보면서 작업을 했다. 그러다 하헌진 씨의 손에 물집이 잡혀 고생한 일화도 빼먹을 수 없다.


관객: 두 가지 질문을 드리겠다. 영화에서 모금산이 좋아하는 배우들을 나열한다. 이 명단에 기주봉 배우님의 취향이 반영된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모금산은 소통을 스스로 거부하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던 부분은 ‘자영’과 맥주를 마시는 에피소드다.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를 제외하고 첫 소통의 시도인데, 나중엔 본체만체하고 그냥 지나치지 않나. 그 심리가 궁금하다.


기: 혼자 지내다 보면 일상에서 쉽게 못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벗어나려고 했지만 결국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 말씀대로 모금산은 혼자 사는 데에 익숙한 인물이었을 것이고 자영을 통해 어떤 벗어남을 꾀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배경이 된 시골의 작은 마을은 소문이 매우 빨리 돈다. 영화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들의 관계가 어떤 면에서는 자영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외면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모금산이 읊는 배우 목록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 전화를 걸어서 아는 배우를 물어보니 줄줄 읊으시더라. 그 명단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리고 기주봉 배우님이 잉그리드 버그만을 추가했다.(웃음)


관객: 아날로그적인 따뜻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영화 속의 영화를 만드는 모금산에게 강냉이와 폭탄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고 다음에도 이와 비슷한 영화를 만들 것인지 궁금하다.


임: 모금산이 혼자 강냉이를 먹는 게 습관인데, 하루는 목에 걸리는 장면이 나온다. 모금산이라면 강냉이를 폭탄에 연결시키는 상상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차기작은 아직 고민 중이지만 심심한 코미디 영화를 좋아해서 그에 대한 관심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관객: 작품 속 인물 설정에 사적인 부분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실제로 모티브를 삼은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흑백영화인데 색보정 담당 스태프가 있는 것을 엔딩 크레딧에서 보았다. 색보정은 톤보정을 말하는 것인가?


임: 극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 영화 속에 영화를 찍는 인물이 등장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부터 나를 모티브로 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사적인 체험이 반영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의외로 흑백영화가 색보정 작업에 손이 많이 간다. 음영과 입체감 등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다. 컬러영화에 비해 명도와 패턴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작업했다.


안: 원론적인 질문을 드리겠다. 영화 속의 영화가 있고 캐릭터들이 각자 배우, 감독, 촬영 등의 역할을 맡지 않나. 배우님들에게 영화와 연기란 무엇인가?


기: 필름시대에 활동했기에 나에게 영화라는 것은 이미 지나간 것 같다. 연기는 아마 다른 배우들과의 감성이나 정서와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고: 드라마도 해봤지만 영화는 뭔가 다른 것 같다. 매번 연기를 할 때마다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할지 고민한다. 결국 연기가 연기 같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오: 일단 연기는 즐겁다.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연기를 직접 하는 사람으로서 연기란 영상에서든 무대에서든 뭐라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라는 생각이다. 



관객: 예원의 캐릭터가 매우 주도적이고 능동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스테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쌍화탕의 노른자를 깨는 행위나 왜 자신의 미래를 네(스데반)가 걱정하느냐는 대사가 특히 그렇다. 그래서 여성 감독의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남성분이어서 놀랐다. 예원이 사용하는 노트북에 페미니스트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페미니즘에 관한 의식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영화 속 라이언 고슬링의 담배 연기는 어느 영화에서 나오는 건가?


임: <드라이브>(2011)다.(웃음) 시나리오를 쓰기 이전에 페미니즘적 시각을 스스로 정체화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는 여성 캐릭터를 그냥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노트북은 실제 내 것이다. 극중 예원에게 잘 어울릴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그대로 썼다. 여성 스태프들의 자문도 많이 구했다.


고: 처음 이 영화에 임할 때 예원이라는 여성 캐릭터의 능동성에 따로 집중하진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공개되고 나서 예원의 주체적인 여성성에 많이들 주목해주셨고 그때부터 나도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자란 가정환경이 딱히 남녀의 성역할이 구분되어있지 않아서 페미니즘적 시각이 무뎠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고 집안일도 균형 있게 분담해서 한 편이다. 예원이 실제 나와 가깝기도 하고 본래 성격이 주도적인 편이라 캐릭터를 보다 주체적인 여성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관객: 아버지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롭다.


임: 아버지는 가수를 꿈꿨다고 한다. 실제 아버지에게 많이 물어보면서 작업을 했다. 이 영화를 통해 대상화된 아버지가 아니라 한 인간을 만난 것 같다.


안: 기주봉 배우님과 모금산이 매우 닿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기: 감독의 디렉팅이 매우 함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에 따라 표현하다보면 자연스레 한 캐릭터가 생길 것 같아서 편하게 작업했다.


안: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겠다.


임: 이 영화는 올해 서울독립영화제가 개막할 때 즈음 개봉하게 될 것 같다.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지내고 있다. 스펙터클하진 않지만 다정하고 소박한 영화니까 많이들 사랑해주시길 바란다. 감사하다.


오: 자리 채워주시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시간 할애해주셔서 감사하다. 개봉까지 시간이 좀 남았는데, 국내외로 여기저기서 상영될 것 같다. 이 영화로 이렇게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게 행복하다. 개봉까지 잊지 말고 기다려 주시길.


고: 오랜만에 관객 분들을 만나서 많이 떨었다. 여러분의 말 하나하나가 큰 도움이 된다. 감사하다.


기: 관객 분들 하시는 일 다 잘될 것이고 그러길 바란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독립영화야 말로 정말 멋진 통로라 생각한다. 겨울에 다시 뵙겠다. 감사하다.



이 영화는 딱히 슬픈 장면이 없다. 하지만 딱히 슬프지 않은 장면도 없다. 비록 영화는 다소 엉뚱한 해프닝을 다루고 있지만 그 서사의 전반에 담뿍 적셔진 흑백영화만의 정서가 관객들의 마음까지 스며들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딘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닮았다. 모 부자의 우여곡절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지지만 은은히 감도는 따스함이 짙은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흑백 화면과 어우러지는 배경음악은 그 어떤 컬러영화보다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게끔 한다. 마치 흑백의 악보가 다성악을 그리듯 말이다. 올 겨울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를 꼭 극장에서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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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가현이들’을 응원합니다  인디피크닉 2017 <가현이들>  인디토크


일시 2017년 4 9일(일) 오후 4 상영 후

참석 윤가현 감독

진행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가현이들>은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에서 만난, 감독과 이름이 똑같은 두 명의 가현이를 통해 알바노동자와 알바노조를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 섹션에서 소개된 장편 영화이기도 하다. 인디토크에서 윤가현 감독을 만나 스스로의 이야기를 구호로 만들어 외치며 연대하는 알바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이하 이): 먼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 그리고 과정들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윤가현 감독(이하 윤): 영화에서 보셨다시피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이하 알바노조)에서 1기 집행부 일을 하고 있었고 김미례 감독님의 <외박>(2009)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어요. 여러분들이 아시는 ‘송곳’이라는 드라마 이전에 <카트>(2014)라는 극영화가 있었고 그 이전에 <외박>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보고 나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바로 다음 날 알바노조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겁도 없이 만들게 되었어요. 집행부 일을 하면서 신문, 라디오 같은 언론 매체 인터뷰를 정말 많이 했어요. 다른 이야기를 해도 결국 나가는 것은 “한 달에 알바로 60만 원을 벌면 그중에 30만 원이 월세로 나가요” 같은 불쌍한 이야기더라고요. 삼각 김밥이나 컵라면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고요. 제 인생은 사실 그렇게 불쌍하고 초라하지 않은데 미디어가 그렇게 만들죠. 그래서 그렇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한 거예요.


이: 감독님의 첫 영화입니다. 영상 작업에 취미가 있었나요? 


윤: 2학기 정도, 잠깐 방송연출학과를 다녔어요. 그때도 카메라를 드는 것보다 과정이 즐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다큐멘터리는 전혀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미디액트에서 독립다큐 제작과정을 듣고 나서 바로 만들게 되었어요.


이: 저는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일하고 있어요. 다들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 거라고 생각하나 봐요. 모든 언론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취재하러 온 분으로부터 “컵라면 먹는 장면으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 한계를 많이 느껴요. 우리가 늘 컵라면을 먹는 건 아닌데. 선입견과 편견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외박>을 비롯, 노동을 다룬 독립영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현이들>은 다른 영화들보다 밝고 유쾌한 분위기에요.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볍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첫 영화라서 톤을 잡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윤: 영화를 굉장히 열심히 찾아 봤어요. 제가 염두에 둔 첫 번째 관객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들과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보통 다큐멘터리라 하면 ‘인간극장’이나 ‘다큐멘터리 3일’ 같은 방송을 생각하죠. 영화는 어쨌든 그것들과 조금은 달라요. 노동 소재 영화들을 보면 감정이 가라앉고 진정되지 않아 힘들죠. 그런 현실들은 뉴스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미디어에서 ‘불쌍한’ 노동자들을 많이 보여주니까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렇게 온 것 같아요. 


관객: 크레딧에 ‘고(故) 권문석 님’이 나오는데 어떤 의미가 있어 넣은 건지 궁금합니다.


윤: 고(故) 권문석 님은 같이 집행부 일을 하다가 과로사로 돌아가신 분이에요. 왜 최저임금이 1만 원이어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전략을 열심히 짜던 분이었는데 그때 과로를 하다 돌아가셨죠. 


관객: 십시일반 약자끼리 모여서 자본가에 맞서 싸우는 모습에 감동받았어요. 저도 영화를 만들려고 자료 조사하다가 경산의 씨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살해당한 사건을 알게 되었어요. 대표가 사과했지만, 사과 아닌 사과로 유가족 측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알바노조도 그 사건에 개입했습니다. 앞으로 알바노조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알바노조를 후원할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약간 설명을 해드리면, 경산 씨유 편의점 알바노동자가 살해를 당했고 봉툿값에서 시작된 사건이에요. 어떤 매장은 값을 받지 않고 봉투를 주기도 하지만 그 알바노동자는 봉툿값을 꼭 받아야했던 거죠. 그래서 취객과 알바노동자가 시비가 붙었고 취객이 알바노동자를 칼로 찔렀어요. 보통 편의점은 좁고 안에 물건을 많이 채우기 때문에 당시 알바노동자가 도망갈 곳이 없었던 거죠. 알바노조는 본사에게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책임을 지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사건이 뉴스에 나왔을 때 본사가 분명히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지금 전혀 달라진 게 없는 상황이에요. 본사가 나서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본사 앞에 가서 사과 요구도 하고 재발 방지 일인 시위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있어요. 알바노동자가 재수가 없어서 죽은 게 아니라 모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예요. 본사가 무엇을 약속하는지 지켜보고 계속 대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알바노조는 매해 책정된 최저임금을 최소 조합비로 내요. 온라인으로도 가입할 수 있어요. 만약에 노조에 가입하는 게 어렵다면 ‘알바연대’라는 단체도 있습니다. 알바연대로 후원할 수 있어요.  



관객: <가현이들> 첫 상영 이후 시간이 꽤 지났는데 가현이들은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 놀랍게도 맥도날드 해고 노동자 가현이는 알바노조 위원장이 되었어요. 또 다른 가현이는 ‘불꽃페미액션’에서 ‘페미들의 성교육(언니들의 성교육)’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가현이들은 영화 보고 뭐라고 하던가요?


윤: 처음에는 저랑 똑같았어요. 저는 눈을 가리고 봤거든요. 너무 창피해서요.(웃음) 두 가현이들도 되게 부끄러워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저랑 다르게 연예인 기질이 있어요. 카메라를 절대 두려워하지 않아요. 마이크 잡는 것도 그렇고요. 지금은 매우 좋아하고 만족해하고 있어요. 두 친구 모두 진행하는 사업이 바빠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어요. 


관객: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또 찍을 건지, 찍는다면 어떤 내용으로 찍을지 궁금합니다. 


윤: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영화 안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의 가장 큰 투자자는 저거든요. 돈도 시간도 많이 들었어요. 기획, 촬영, 편집 다 제가 했고요. 그런데 영화를 완성하고 나니 내가 나한테 보내는 위로의 편지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너는 하찮지 않아’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요. 저처럼 느낀 관객 분들이 많았나봐요. 이 영화가 큰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행복했어요.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제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더 해 봐도 되지 않을까 해서 한 번 더 만들어 보려고 해요. 두 가지를 준비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꾸미기 노동에 관한 이야기에요. 패밀리레스토랑이나 영화관에서 알바 할 때 화장이 의무고 머리망, 구두, 스타킹 등을 본인이 다 사야 해요. 어느 날 이사하려고 짐을 싸다 보니 머리망이 다섯 개도 넘게 나오더라고요. 검정색 단화가 종류별로 네 켤레나 나오고요. 다 제가 직접 산 거에요. 심지어 롯데시네마는 교육시간에 화장법에 대한 교육도 해요. 립스틱 색깔을 어느 회사의 제품 몇 호까지 지정해주기도 해요. 이런 꾸미기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어요. 두 번째는 청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 주위에 대학 진학을 거부한 친구들이 있어요. 미디어 또는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청년들은 4년제 대학을 나온 대상으로 국한되곤 하는데 저는 그 청년이라는 단어를 좀 해부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기본소득은 왜 청년 기본소득일까요? 줄 거면 다 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런 명칭 자체가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청년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가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배급 계획, 그리고 마무리 인사까지 부탁드립니다. 


윤: 공동체 상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각 단체로부터 알음알음 연락이 와요. 알바노조 지역분회에서도 공동체 상영을 하고 있어요. 페이스북에서 ‘가현이들’ 검색하면 상영 정보를 볼 수 있어요. 부담없이 연락주세요.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주변 분들과 같이 보고 얘기 나누면 좋겠어요. 최저시급 1만 원이라는 말이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구호라는 생각이 들어요. 허황되거나 어색하지 않아요.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수많은 가현이들, 그리고 감독님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가현이들>에는 국회, 명동 거리, 광화문 등지에서 “헬조선 탈옥 매뉴얼”,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피켓을 들고 외치는 수많은 ‘가현이들’이 등장한다. 부당한 기업 매장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외치는 세 가현이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정당한 요구를 당차게 해내는 가현이들. 그리고 이름은 다르지만,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가현이들’. 그들이 있었기에 알바노동자들의 상황이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다. 수많은 ‘가현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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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또 다른 얼굴  인디피크닉 2017 <분장>  인디토크


일시 2017년 4 7일(금) 오후 8 10분 상영 후

참석 남연우 감독, 안성민 배우, 홍정호 배우, 양조아 배우, 오도이 음악감독

진행 김경묵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문제가 전혀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당연한 문제라 하더라도 우리는 관대한 마음으로 그것을 이해한다는 교만을 떨기 일쑤이다. 그러나 그 일이 내게로 닥쳤을 때 과연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로 다가온다. 그것이 나의 친구, 심지어 가족 같은 아주 가까운 존재라 하더라도. 영화 <분장>의 다섯 인물들과 함께 인디토크를 진행했다.



김경묵 감독(이하 진행): 영화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남연우 감독(이하 남연우): 어느날, 술자리 옆 테이블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걸 들으면서 시작됐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이해한다’고 말했고 한 명은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이해한 것일까?’ 물음이 생겼고 영화로 만들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투자를 계속 기다리다가 작년에 꼭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제작까지 맡게 되었어요. 전 스태프, 배우 분들이 본인의 영화처럼 임해주었기 때문에 저예산으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진행: 각자 어떻게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세요.


안성민 배우(이하 안성민): 얼마 전에 대학을 졸업했어요. 감독님이 제 연기선생님이에요. 갓 제대했을 때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해 볼 생각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전에 무용을 배운 적이 있어서 제 역할에 이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양조아 배우(이하 양조아): 감독님과 동기에요. 학교에서 만났고 동료로 같이 성장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스타일의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홍정호 배우(이하 홍정호): 저는 감독님과 17년 지기에요. 처음 대본 받았을 때 너무 재밌어서 꼭 같이 하고 싶었어요. 참여하게 돼서 너무 영광입니다.


오도이 음악감독(이하 오도이): 사투리 쓰는 트랜스젠더 역할로 잠깐 출연도 했어요. 감독님과 홍정호 배우님과 저는 중학생 때부터 17년 지기에요. 감독님이 제주에서 처음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때부터 같이 작업을 했어요. 음악으로 이분들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영화 보면 아시겠지만 배경음악이 전반부, 후반부로 나뉘어요. 전반부에는 아름답고 선율적인 멜로디를 썼고 후반부에는 음악이라기보다 기괴한 소리를 많이 넣었어요.


관객: ‘송준’이라는 인물의 말투나 행동에서 남연우 배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데, 캐릭터와 감독님과의 공통점이 있나요?


남연우: 제가 연출도 하고 연기도 하다보니 자꾸 송준이 아닌 제 말투가 나오더라고요.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관객: 마지막에 집에 누워서 담배를 피우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또 주연배우이자 감독으로, 어떻게 디렉팅하고 이끌어나갔는지 궁금합니다.


남연우: 송준에게 공황장애가 와 집밖으로 나가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담배나 술에 의지할 것 같아서 그렇게 연출을 했어요. 연기를 하면서 연출을 하려니 너무 힘들었어요. 조감독님이 사인들을 해줬어요. 모니터링을 하기도 어려웠어요. 카메라 감독님에게도 부족한 부분들이 없나 물어보고 괜찮으면 오케이 했어요. 다시 영화를 찍게 되면 제작비를 충분히 마련해서 그런 부분들을 개선하고 싶어요.



관객: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구축할 때 어떻게 도움을 받았는지요.


홍정호: 성소수자 소모임이 있다고 들었는데 찾아가보지는 못했고 성소수자 분들이 있는 바를 찾아가서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그리고 성소수자 친구를 소개 받았어요. 그 친구와 한 달 동안 거의 매일같이 만났어요. 그러면서 움직임, 대사 등이 다 바뀌었어요. 많은 걸 배웠어요. 촬영 현장에 직접 와서 확인해주기도 하고요. 그 친구에게 정말 고마워요.


관객: 조연출 역할의 감초연기가 대단했어요. 어떻게 준비했나요?


양조아: 저는 연극을 많이 해왔고, 그러면서 만나게 된 분이 있어요. 말투나 목소리 같은 부분들을 배워서 연습하고 연기를 했습니다. 


관객: 영화에 등장하는 연극 ‘다크 라이프’의 줄거리가 어디까지 설계되어있는지 궁금합니다.


남연우: 디테일하게 대사를 쓰지는 않았지만 줄거리는 있습니다. 영화에 담아야하는 장면만 조금 더 세세하게 썼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크 라이프’라는 연극을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있어요. 실제로 연출하고 싶어 하는 분이 있어서요.


관객: 친구가 커밍아웃 했을 때와 동생이 성적 소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반응이 달라요. 다시 생각해보니 친구는 자신이 직접 이야기한 것이고 동생은 들킨 것인데, 만약 동생이 직접 이야기했다면 송준의 반응이 달라졌을까요?


남연우: 동생이 직접 얘기했어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겠지만 지금같은 폭력적인 반응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송준이 처음에는 분노했다가 그다음에는 죄책감에 시달려요. 그러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분노해요. 왜 죄책감에서 분노로 감정이 변한 건가요?


남연우: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에 익숙했던 한 인물이 그것이 자기기만이라는 것을 안 순간부터 파멸에 이르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마지막 장면도 분노라기보다 혼자만의 발악을 표현한 것입니다.



관객: 공연장에 찾아온 동생을 만나고 나서 조연출과 동료 배우에게 갑자기 사과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남연우: 공황장애를 가진 분들 인터뷰를 봤는데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송준은 모든 걸 잃었고 그래서 마지막 공연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무슨 행동이라도 해야 했을 것 같아서 그런 장면을 넣었어요.


관객: 왜 갑자기 ‘이나’의 태도가 변한 것인가요?


홍정호: 이나는 상처가 많은 친군데 점점 마음의 문을 열고 송준에게 많은 도움을 주면서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어요. 그렇게 믿었던 사람인데 결국 송준도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진행: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함께 인사 한말씀 부탁드릴게요.


오도이: 본업이 가수입니다. ‘소울 스테이지’라는 혼성그룹이에요. 5월에 앨범활동을 재개하려고 합니다. 응원 부탁드립니다.


홍정호: 연말이나 내년 초에 제가 직접 쓰고 연출하는 뮤지컬을 계획 중에 있어요. 다른 영화와 앨범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양조아: 그동안 성정체성에 대해 생각을 해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하면서 저의 무지함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가 제게 더욱 큰 의미가 있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분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 좋은 연기와 좋은 작품으로 만나 뵙겠습니다.


안성민: 졸업한지 3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해서 이 자리의 배우 분들, 감독님처럼 멋진 사람이 되겠습니다.


남연우: 연기하는 것이 정말 행복해요. 앞으로 계속 기회를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또 다른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저도 이 영화를 하기 전에는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뜻 깊은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극장 장면에서 자진하여 자리를 채워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고요, 끝으로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것의 결과는 아주 참담해서 끊임없이 후회하고 다른 가능성들을 돌이켜보지만 정작 마음의 위안이라는 작은 수확조차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그럴 때 우리는 낭떠러지에 선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해왔던 거짓된 행동들, 내가 아닌 척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나 자신과 마주한다. 극한의 상황에 치닫고 나서야 비로소 ‘분장’을 지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분장’인 줄만 알았던 나의 얼굴과 마주하는 것이다. 나 자체가 ‘위선’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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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벚꽃한줄 관람평

송희원 | 뮤지션 장범준, 그의 다음 음악을 앵콜 

이현재 | 모든 불행은 그 자신만의 방법으로 불행하지만, 행복은 모두 비슷하다

박영농 | 곧, 더워짐

이지윤 | 벚꽃 연금 수혜자의 본격 봄맞이 귀호강 영화

최지원 | 봄의 마음으로

김은정 | 장범준, 그라는 벚꽃이 피기까지




 <다시, 벚꽃> 리뷰: 봄의 마음으로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어떤 계절을 떠올리기만 해도 연상되는 노래를 부른다는 건 가수에게 어떤 의미일까.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은 발매된 이후 매해 이례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입춘이 아니라 ‘벚꽃 엔딩’이 음원 차트에 진입하는 때를 봄의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동시에 이런 현상을 두고 ‘벚꽃 연금’, ‘벚꽃 좀비’ 등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일종의 밈화 현상은 아마도 버스커 버스커의 활동 중단 이후, 솔로 1집 앨범에서 부진한 성적을 보였던 장범준의 행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다시, 벚꽃>은 장범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들려준다. 처음 버스킹을 시작했던 캠퍼스를 걸으며 이 노래는 벚나무 아래에서, 저 노래는 전 애인이 살았던 골목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동시에 배경으로 그의 음악을 재생한다. 장범준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장면들일 것이며 그렇지 않았던 이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영화 중반 이후에는 버스커 버스커의 장범준이 현재의 장범준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그려진다. 성적이 부진했던 솔로 1집 이후 장범준이 택한 것은 ‘더 많은 고민’이었다. 어떤 가수가 되어야 할지, 어떤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서야 할지, 계이름을 모르는 자신이 다른 뮤지션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그는 영화 내내 스스로에게 자격이 있는지를 고민하며 서슴없이 흔들린다. 그래도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음악을 찾는다. 자신의 가능성은 채찍질하고 방향성은 신뢰하면서 착실히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실제로 20대 청춘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방식과 너무나도 닮아있어 동세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단지 아쉬운 점은 영화가 장범준의 노력, 음악에의 애정을 솔로 2집의 성공으로 연결시키고 결국엔 희망찬 마무리를 보여주는 것이 크게 놀랍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그의 시간들이 거짓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서사가 으레 그렇듯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진부한 열정 드라마로 비춰질 가능성도 있으며 현재 청년세대가 공유하는 실제적 문제를 희석시킬 여지가 있음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벚꽃>은 관객으로 하여금 위와 같은 문제를 모른 체하게 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봄이라는 계절감과 특유의 감성, 백 그라운드에 깔리는 장범준의 노래가 더해져 탄생한 매력은 영화의 단점을 금세 가려준다. 그러니까, 봄이라는 계절이 이렇게 또 장범준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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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인행(三人行): 영화 공간 탐방기 

- <최악의 하루> 서촌, 남산 / <춘몽> 수색 / <혼자> 신당9재개발구역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형주, 최미선, 전세리 님의 글입니다.



때때로 영화 속 공간은 영화를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인물들의 행동, 벌어지는 사건, 흘러가는 시간 모두 공간 위에 적히고 쌓인다. 우리는 공간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보고, 나아가 그 영화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느낀다. 이렇게 기억된 공간은 그 영화 자체가 되기도 한다. 

인디즈는 2016년 하반기에 개봉한 영화 중 특히 공간이 돋보였던 세 편의 영화 <최악의 하루>, <춘몽>, <혼자>의 장소를 탐방해 보았다. 최미선 관객기자는 <최악의 하루> 속 서촌과 남산을 다녀왔다. 매일 연습실에서 나와 걷는 길에서 다시 한 번 살짝 벗어나 한여름과 초가을의 그 날을 문득 떠올릴 ‘은희’를 상상하며 그녀의 시점으로 새 하루를 구성해보았다. 한예리 배우의 발걸음이 향하는 또다른 곳인 <춘몽> 속 수색역 근처는 전세리 관객기자가 찾았다. 수색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와 시간성을 되짚으며 동네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번 기사의 제목으로 차용한 ‘삼인행’은 <춘몽>의 제목 후보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형주 관객기자가 <혼자>의 신당9재개발구역을 방문했다. 온전한 동네의 이름조차 잃어버린 이곳은 주인공 ‘수민’이 끝끝내 지우지 못한 기억들이 묻어나오는 곳이다. 구부러진 골목들 사이에서 길을 헤매다 문득 자신을 되돌아 보기도 했다.

이 세 공간 탐방에서 인디즈 '삼인'이 만난 스승은 작품에 한껏 밀착한 일상의 시간들이었다. 작품-나-공간의 교류가 매우 묘한 느낌으로 우리를 채워주었다. 이제 3인을 따라 작품 속을 걸어보자. 



1. <최악의 하루> 은희 따라 걷기


초록이 물든 뜨거운 여름날의 남산은 폭발 직전이던 은희의 하루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 시간으로부터 여러 달의 흐른 지금, 그곳은 오히려 흑백에 가까운 장소가 되었다. 어디서도 색깔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빼곡히 들어찬 앙상한 나무들과 그것을 실감케 하는 차가운 공기만이 가득했다. 어떤 아쉬움도 없이 이렇게 변해버린 계절 속에서 은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뜨거웠던 여름이 주춤하고 가을이 올 것만 같았던 날, 끝도 없이 걸었던 그 길을 은희가 되어 다시 걸어보았다.



아… 그날 진짜 최악이었지

‘서촌은 이제 나에게 익숙한 장소가 되었다. 연습이 끝나고 골목 골목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가끔 여기 오는 외국인이 길을 물어보는데 이젠 어디든 능숙하게 잘 찾아준다. 그때마다 그 일본인이 생각난다. 이름이 료헤이였던가? 아무튼.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은 하늘이 작정하고 나를 괴롭히나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렇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거짓말을 하는 일로 먹고 살고 여전히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다. 아,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날 이후로 SNS는 안 한다. 그 모든 일이 다 트위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지워버린 후 아직까지도. 좀 심심하지만 그 덕에 연기 연습에 더 집중하고 있다.’



여길 다시 올 줄은 몰랐다

‘몇 달 만에 다시 찾은 남산은 겨울이다. 절대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 이 길에서 그날을 회상했을 때 가장 나를 사로잡는 기억은 끔찍했던 삼자대면의 순간이 아니다. 하루의 끝에서 료헤이와 우연히 다시 만나 걸었던 어둑해진 산책로, 그리고 의미가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는 언어로 서툴게 나눴던 대화이다. 이곳이 여름을 잊은 것처럼 나도 그날을 지나 보낸 것일까.’



‘그러고 보니 그날 료헤이가 말해준 소설 속 여자도 이맘때쯤 이 길을 걸었을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눈을 맞으며 서 있다던 무표정의 그 여자. 어쩌면 그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좀 안심했는지도 모른다. 그 여자가 돌아보았던 캄캄한 산책로에 어떤 사연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이야기는 해피엔딩일 테니까.’



‘날씨가 좋다. 그날도 이 말을 했던 것 같다. 겨울은 그 계절만이 가질 수 있는 온도와 냄새가 가장 잘 느껴지는 계절인 것 같다. 바람이 코 끝에 닿을 때 괜히 공기도 좋게 느껴지는 정도의 냉기. 하지만 곧 계절은 변하겠지. 그런데 료헤이는 정말 그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마쳤을까? 얼마 동안은 서점에 들러 그의 이름으로 된 책을 찾을 것 같다. 팬레터를 보내야지.’ 



 INFORMATION 


제목: 최악의 하루

각본/감독: 김종관

출연: 한예리, 이와세 료, 권율, 이희준(특별출연)

개봉일: 2016년 8월 25일











 SYNOPSIS 


‘어떻게 오늘, 이래요?’

늦여름 서촌의 어느 날,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는  연기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 길을 찾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만난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이상하게 대화가 이어지는 료헤이와 헤어진 후 은희는 드라마에 출연 중인 남자친구 현오(권율)를 만나러 촬영지인 남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같은 시간, 한 때 은희와 잠깐 만났던 적이 있는 남자 운철(이희준)은 은희가 남산에서 올린 트위터 멘션을 보고 은희를 찾아 남산으로 온다. 오늘 처음 본 남자, 지금 만나는 남자 그리고 전에 만났던 남자까지 하루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 은희.

과연 이 하루의 끝은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2. <춘몽> 다음 계절이 봄이라 하니 


<춘몽> 주요 배경지인 수색에 다녀왔다.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수색은 흑백 정서를 가진 곳이다. 그는 5년 동안 상암에 살았지만 수색이 컬러로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상암은 신도시이고 수색은 개발의 손길이 덜 미친 곳이다. 이곳은 언뜻 서울 교외나 다른 지역에 다다른 느낌을 준다. 



수색역 옆 굴다리를 지나면 장엄한 신도시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나는 그곳에서 모종의 시간차를 느꼈다. 수색역 굴다리에 ‘수상한 굴’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기도 했다. 그 이름처럼 수색은 수상하고 오묘한 곳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거쳐 출퇴근 한다. 영화에서 ‘예리’와 세 남자는 수상한 굴을 통해 한국영상자료원에 간다.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산 없이 목도리를 뒤집어쓴 채로 잠시 거닐었다.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향수 비슷한 여운이 남는다. 입구에 채소와 과일을 잔뜩 내놓은 슈퍼마켓, 문방구 앞 뽑기와 게임기, 비 오는 날의 분식집, 아이들의 하굣길. 굴다리 하나만 지나면 만나게 되는 익숙한 풍경들이 아주 묘한 느낌을 주었다. 동네 이곳저곳을 거닐다 ‘주영’이 고양이 밥을 주던 주택 앞에 가보기도 했다. 그 집은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오르막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렴풋이 방송국 건물이 보이고 그 아래 사람들이 길을 오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예리와 세 남자가 앉아있던 슈퍼에 갔다. 가게 이름을 몰라 사진만 가지고 물어물어 갔다. 행인에게도 묻고 주민센터에 들어가 묻기도 했다. 덕분에 금방 찾을 수 있었고 간판에는 ‘윤창슈퍼’라고 쓰여 있었다. 이전 사진에는 가게 앞에 평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카시아 까페로 바뀌어 있다. 주민들은 그곳에 옹기종기 앉아 추운 몸을 녹일 것이다.   

다시 역으로 가는 길, 멀리서 역을 바라보다 역 계단을 내려오던 예리의 모습이 스쳤다. 밤이 되니 여름처럼 비가 쏟아졌다. 많은 비. 맑은 날 다시 가보고 싶다. 햇살 잔뜩 스미는 겨울 끝 무렵, 또는 어느 봄날에.



 INFORMATION 


제목 : 춘몽 春夢

각본/감독 : 장률

출연 : 한예리,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이준동, 이주영

특별출연 : 신민아, 유연석, 김의성, 김태훈, 조달환, 강산에

개봉 : 2016년 10월 13일












 SYNOPSIS 


 “바보 같은 꿈을 꿨어. 우리만의…”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농담 따먹기나 하는 한물간 건달 익준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하고 공장에서 쫓겨난 정범

어리버리한 집주인 아들, 어설픈 금수저 종빈

그리고 이들이 모두 좋아하고 아끼는 예리가 있다.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예리가 운영하는 ‘고향주막’은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오아시스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 그들만의 여신이라고 생각했던 예리의 고향주막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다.






3. <혼자> 기억도 철거될 수 있을까 


밤에 작업실에서 이곳을 보고 있으면 꼭 내 뇌, 머릿속 같아

<혼자> 속 수민은 이상한 꿈에서 계속 헤맨다. 깨도 깨도 다시 돌아오는 이 골목을 보며 그는 마치 자신의 머릿속 같다고 말한다. 그 대사처럼 <혼자> 속 공간은 분명히 기억, 트라우마가 재현되는 상징이다. 가파른 계단, 꾸불꾸불 끝없이 이어진 골목들로 이루어진 신당9재개발구역은 시대와 삶의 시간이 가득 배어있음과 동시에 기한 없이 연장되는 철거를 앞두고 버려지고 낡은 모양새로 묘한 긴장감을 품고 있다.



골목을 들어서면 종종 대문이 열린 집들이 보인다. 장독대와 빨래가 널려있어 마당인가 기웃대보면 또 다른 집으로 연결된 길이 숨어있다. 마당이자 마당 아닌 곳, 문이지만 닫을 수 없는 문들이다. 애초부터 계획적으로 지어지지 않은, 필요에 따라 들어오고 팽창하고 쇠퇴하며 남은 공간의 틈을 엿본다.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깡그리 다, 새로, 시작하게

다른 골목으로 들어오니 빨간 깃발들이 가득하다. 이 빨간 깃발은 재개발에 반대하는 표시이다. 현재 재개발 찬반이 강력히 대치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경각심이 느껴지게 묻는 분들이 있었고, 하루 아침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된 이야기를 처음 보는 나에게 하는 분도 있었다. 아마 ‘더 나은 삶’이 철거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명제는 현재의 부정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이 공간을 다 부수고 새 건물을 뚝딱 짓는다면 갖고 있던 모든 기억이 다 없어지는 걸까 궁금했다. 이곳에 수민의 아픈 기억들이 숨은 건 쌓인 시간들을 너무 일찍 놓아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골목을 돌다 보니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아까 지나친 곳을 다시 보았다. 뭉개지고 부서진 채로 원망의 눈빛만 쏘아붙이던 그들이 떠오르자 문득 내 한계의 잔해들도 자꾸 떠올랐다. 골목을 내려오며 나의 동네를 생각했다. 자로 잰 듯한 택지지구의 아파트. 7년의 시간 동안 번지르르해 보이던 대리석에 먼지가 끼고 위태하던 소나무는 결국 시들어 잘렸다. 시간이 쌓일 틈 없는 나의 장소에서 훗날 내 기억은 어디에 숨을 수 있을까. 


 INFORMATION 

제목 혼자 (Alone)

연출 박홍민

출연 이주원, 송유현, 이성욱, 윤영민, 김동현

상영시간 90분

관람등급 청소년관람불가

개봉 2016년 11월 24일









 SYNOPSIS 

“잘 생각해봐,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달동네가 배경인 다큐멘터리를 준비중인 한 남자,

우연히 건너편 옥상에서 벌어지는 살해 현장을 목격한다.

살해 장면이 남자의 카메라에 찍힌 것을 눈치챈 복면의 괴한들은

즉시 작업실로 찾아와 거대한 망치로 그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잠시 후 건너편 동네의 정자에서 알몸으로 깨어난 남자.

모든 게 이상한 꿈이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또 다시 괴한에게 죽임을 당하고

정신을 잃은 남자는 또 한 번 같은 골목에서 눈을 뜨는데…




스크린을 넘어 재생되던 영화들


이 세 공간은 재미있게도 모두 서울이지만 전혀 한 도시처럼 보이지 않는다. 남산은 겨울임에도 청명하고, 수색은 차갑고도 아련하며, 재개발 지역은 친숙하면서도 날카롭다. 이처럼 다양한 동시에 본질적인 정서를 담아낸 건 독립영화 특유의 깊고 분명한 시선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공간에 새로운 색칠을 한다기 보다 수북이 떨어져있던 낙엽 하나를 주워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것. 고인 바람이나 하수구의 악취 또는 창문에서 새어 나온 보글보글 끓는 찌개 냄새 같이 그곳에만 가면 나던 내음을 기억하고, 가만히 앉아 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쌓은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모습을 찾는 것. 독립영화가 공간을 직면하는 힘을 갖는 법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시간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화 속 공간을 방문한다면 영화의 확장이 이뤄질 수 있다. 각 영화의 주요한 영감과 정서를 만들어 낸 공간을 직접 방문하며 우리는 영화를 되새김과 동시에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하고 공간의 역할에 대해서 사유해보기도 하며 나아가 공간과 나를 직접 이어 보기도 했다. 우리의 감상이 영화를 얼마만큼 담았을 지는 모르지만, 스크린을 넘어 재생되는 영화를 엿보았던 건 분명하다. 다시 영화의 막이 내렸기 때문일까. 조금 씁쓸하지만 한 켠에 따뜻함을 갖고 위로를 받으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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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해변에서 혼자한줄 관람평

송희원 | 나답게 살려면 솔직해져야 해

이현재 | 나에게도 당신을 아파할 여유가 있다면 좋으련만, 헿

박영농 | 히치콕과 고다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홍상수

이지윤 | 수평선조차 보이지 않는 해변으로 밀려드는 무용한 문장들. 한데 모이는 아득한 고독

최지원 | 고독에 닿은 사랑. 홍상수식 고백적 문법의 경지

김은정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밤의 해변에서 혼자> 리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태도는 사뭇 달라진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된다. 공포 영화의 공포는 배가 되고 범죄 영화의 잔혹함은 더욱 깊숙이 다가온다. 영화는 더 이상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것이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우리의 흥미를 끄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화 시작 전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문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지만 관객은 자연스레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탐색하기 위해 한시도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것은 두려움에 떠는 공포 영화도, 마음 졸이는 범죄 영화도 아니다. 얼마 전 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두 사람의 영화이다. 그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 모두의 흥미를 끌기는 충분하다. 

이 영화를 논하기에 앞서 김민희라는 배우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둘의 호흡. 먼저 감독이 김민희라는 배우에 대한 이해력과 표현력이 정말 뛰어나다는 점이 느껴진다. 그 배우를 어떻게 써야 할지 잘 알고 있고 어떤 힘을 뿜어내는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다. 특히 지인들과의 술자리 장면에서 영화 자체가 ‘영희’라는 인물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고 관객은 그 존재감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김민희 배우는 영희라는 인물 그 자체가 되어 매우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그의 연기에 매혹 된 것인지, 영희라는 인물에게 빠진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배우인 영희는 한국에서 유부남 감독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외국으로 간다. 이후 영희는 한국에 잠깐 방문해 지인들을 마주한다. 그리곤 말한다. 아무도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세상에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그는 불륜관계로 손가락질 받는 자기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기 위해 저렇게 말한 것이었을까. 사랑이란 불가항력적인 이끌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자격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않고, 단지 자신은 사랑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한탄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던 걸까. 영희의 지인들 또한 그를 두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다. 어째서 사람들은 영희와 감독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거냐고. 영화 내에서 영희와 감독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물들은 그들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영희와 감독 자신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부남 감독과 여배우의 불륜이 아니라 두 사람 간의 사랑이라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사랑이 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는지에 대해 묻는다. 끊임없이 관객에게 호소한다. 이 관계는 사랑이 아니냐고. 

영화에서 영희가 해변에 혼자 누워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알고 보니 우연히 만난 감독과의 일은 그의 꿈에 지나지 않았고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에서는 감독이 약속했던 대로 그를 찾아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영희가 꾼 꿈에서 마주하게 되는 감독의 모습, 그리고 지인들과의 대화로 관객은 그가 오지 않았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영희가 한국에 와서 지인들에게 사랑에 대한 푸념을 털어 놓고, 해변가에서 감독과의 조우에 관한 꿈을 꾼 이유가 감독이 그를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라면. 그는 사실 감독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찾아오기를 바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영희와 감독의 관계가 사랑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유지했을 그 둘의 삶. 어쩌면 그 꿈은 그가 미처 표현할 수 없었던 아쉬움의 토로가 아니었을까.



영희는 이 세상에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자칫 피로하고 느슨해 보이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열정적으로 외친다. 우리를 인정해달라. 그러나 설득 당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는 것이었다면, 관객들에게 영희와 감독의 사랑을 호소하려는 목적이었다면, 관객들의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너무 솔직하고 필사적이기에, 천진한 아이 같은 모습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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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미니멀리즘의 삶  FoFF 2017 <천에 오십 반지하>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 27일(월) 오후 5 30분 상영 후

참석 강민지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대구가 고향인 감독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지낼 집을 구하기로 한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보증금도 가급적 최소비용으로, 월세도 자신의 알바비로 충당할만한 20만 원 선으로 조건을 정한다. 집의 필수 요건일 채광과 최소 면적, 부엌과 화장실 유무 등 비용에 맞춰 포기해야 할 옵션들이 되어버린 집(방)들을 보며 감독은 좌절한다. 집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울 청년들에게 집다운 집이란 곧 언감생심, '이상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웃풍이 드는 옥탑방, 부엌-화장실-방 공간의 구분이 무색한 원룸, 빛도 없이 옆방의 소음을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고시원 등 집을 구하려는 감독의 고군분투기에 관객들은 공감하며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서울에서 월세 20만 원으로 부모님께 보증금 천만 원 손 벌리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집이 있을까? 그 치열하고 답답한 현실에 대해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가져보았다. 



진행(민지연 FoFF 청년기획단): <천에 오십 반지하>가 집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보니 감독님이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 궁금합니다. 


강민지 감독(이하 강): 지금은 서울을 벗어나 의정부에 살고 있어요. 


진행: 제가 20대 초반이고 졸업을 일 년 앞두고 있어서 정말 공감하면서 봤어요. 지금까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어서 독립하면 자유롭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쉽지 않겠구나 싶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응원하면서 봤습니다. 보는 내내 제발 좋은 집을 구해서 안정적으로 정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말이 씁쓸해요. 의도한 건지 궁금합니다. 


강: 항상 GV를 하면 결말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처음 영화를 기획하면서 생각해둔 결말이에요. 길면 이 년, 짧으면 몇 개월 단위로 계속 이사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 내가 어디에 살게 됐는가가 과연 중요할까 생각이 들었어요. 저와 똑같이 영화의 결말도 불안의 선상에 두고 싶었어요. 지금 제가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진행: 지금 살고 있는 의정부의 집은 영화에 나오는 집들보다 괜찮은 환경인가요?


강: 조금 낫지만 거의 비슷하죠. 그래도 서울에서 벗어나니 집값은 좀 저렴해요. 


진행: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강: 서울에 학업 때문에 올라와 독립해서 혼자 사는 분들이 많잖아요. 집에 대한 부담이 제일 큰 것 같아요. 부모님께 지원을 받고 살아도요. 그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관심사였던 것 같아요.  


진행: 극적인 사건도 많고 감독님이 유쾌하게 등장해서 재미있었어요. 가족들이 신스틸러더라고요.(웃음) 편집의 역할도 큰 것 같아요.


강: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사실 그렇게 밝은 이야기가 아닐 수 있는데, 우울한 정서가 영화를 지배하게 두고 싶지 않았어요. 물론 우울하긴 하지만 현실이죠. 새로울 것도 없는 상황이고요. 나는 이렇게 살고 있고 아마 미래에도 이렇게 살 거예요. 영화 자체가 우울하게 점철될 수도 있었는데 그것만큼은 피하며 편집을 했어요. 


관객: 영화를 서울에서 찍은 건 굉장히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영화에서 친구가 대구에서 살면 되지 않겠냐고 할 때 감독님이 묘하게 설득이 된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서울에 있어야 하는지, 지역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집을 구해서 어떤 것들을 하고 싶은 지도요.


강: 서울에 있다가 대구로 내려갈 수도 있겠죠. 내려가는 게 해결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하고 내려가 부모님께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게 되니까요. 부담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가되는 거죠. 물론 친구의 그 말은 묘하게 설득은 되었지만 해결의 방안은 되지 못했어요. 왜 서울이어야 하냐는 질문에 답을 드리자면, 서울에서 독립을 시작하게 되었고,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가장 이슈화시키기 좋은 게 서울이기 때문이에요. 사실 영화를 만들고 작년에 잠깐 대구로 낙향했어요. 부모님 집에 몇 개월 있다가 의정부로 올라왔어요. 다른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올라왔어요. 생각만 하고 있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웃음)


진행: 혹시 가족이 등장하는 영화인가요? 


강: 가족 한 번 더 팔아먹으려고요. 어차피 팔아먹은 거.(웃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많더라고요. 역시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웃음)


진행: 영화를 본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강: 부모님은 아직 안 봤어요. 생각보다 제가 하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어요.(웃음) 계속 생업으로 바쁘고요. 고향에서는 상영한 적이 없어요. 하게 되면 아마 마음 아파할 것 같네요. 장남은 봤어요. 되게 싫어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크레딧에 오빠 이름을 안 넣었어요.



관객: 어쩔 수 없이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이인데, 감독님은 그런 스트레스에 긍정적인 것 같아요. 긍정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강: 카메라 앞에 있어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어요. 카메라가 없었으면 부정의 힘으로 살았을 거예요. 사기를 당한 상황들이고 만약 내가 다큐멘터리를 찍는 중이 아니었다면 되게 절망했겠죠. 그런데 찍는 중이니 뭔가 상황 하나 나온 것 같고,(웃음) 그 힘으로 일련의 과정들을 견딘 것 같아요. 


관객: 굳이 천만 원을 마다하고 방을 찾아다니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인지요?


강: 이 질문도 GV에서 많이 받아요. 청년 개인의 힘으로 오롯이 방을 구할 수 있느냐가 처음에 생각한 기획의도였어요. 천만 원이라는 금액은 막 사회로 나온 청년에게 불가능한 수치잖아요. 제 나름의 원칙을 세웠던 거예요. 천만 원을 가지고 시작했으면 물론 더 좋은 곳을 구할 수 있었겠죠. 


진행: 어떤 방법이 집을 구할 때 그나마 유용했나요?


강: 그냥 부동산에 직접 가는 게 나아요. 인터넷에는 허위 매물이 너무 많고 부동산을 거치지 않으면 휘둘리는 경우가 많아요.


관객: 처음부터 끝까지 셀프로 촬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촬영감독을 따로 두고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강: 되게 단순하게, 제가 나와야 해서요. 평소와 다른 모습이 나오면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촬영을 전공하는 제일 친한 친구에게 부탁했어요.


진행: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본인이 직접 출연한 계기가 있나요? 


강: 처음에는 다른 인터뷰이를 앉혀놓고 촬영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기획서를 보고 네가 나오면 어떻겠냐고 권했어요. 저도 제가 나오면 재밌겠다 싶었어요.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한 약간 쉬운 선택일 수도 있지만요. 


관객: 만약에 한 번에 좋은 집이 구해졌다면 영화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합니다.(웃음)


강: 저도 그런 고민했어요. 만약 구해졌으면 그 집에 살고 있겠죠.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겠지만. 그런 상황이면 영화가 나올 필요가 없는 거겠죠. 


진행: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그 전과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같은 20대 청년, 하우스 푸어 또래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강: 힘내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떻게든 같이 사는 수밖에는…. 희망적인 말을 건넬 수 없군요.



전체 소득 중 주거비 부담 비율(RIR)이 30%를 넘어가면 주거 빈곤층이라 한다. 현재 한국의 1인 청년가구 절반이 주거비로 소득의 20% 이상을 지출한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최소 공간, 최소 짐이라는 강요된 미니멀리즘의 삶을 살아야 하는 청년들. 감독을 비롯한 청년 관객들은 집을 얻는 일에서부터 자신의 꿈이 현실에 맞춰 재단 당하는 경험을 한다. 원룸, 고시원, 옥탑방, 반지하가 아닌 햇볕이 들고 부엌과 화장실도 있는 종합적인 집의 형태를 갖춘 공간에서 청년들은 언제쯤 ‘살’ 수 있을까. 청년들이 큐브(방)를 탈출해서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는 날은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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