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탄생! 우리 생애 첫 생리 도감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모두가 그 존재를 알지만, 누구도 많은 이 앞에서 그 이름을 크고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마법’, ‘대자연’, ‘ㅅㄹ’까지. 생리는 마치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우리의 입 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세상 절반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생리에게는 언어가, 이야기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 불필요한 금기에 반기를 들고 나선 영화 <피의 연대기>는 생리를 다룬 한 편의 도감과도 같은 유쾌한 다큐멘터리다. 생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기원을 찾아가보는 한편, 당장 여성이 직면해야 했던 문제들을 파고드는데, 시선이 생리 용품에서부터 무상 생리대 이슈로 이어지면서 자유로이 확장·전환된다. 김보람 감독의 네덜란드인 친구 샬롯과의 일화를 통해 왜 한국인들은 패드형 생리대를, 서양인들은 탐폰을 애용하는지 묻는 것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끝내 여성이 피 흘리는 자신의 몸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김보람 감독은 인터뷰 내내 ‘운이 좋았다’는 대답을 계속 했다. 운 좋게 좋은 기회들이 생겼다고, 좋은 스태프들을 만났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 끝에 운 좋은 관객들이 남은 게 아닐까? 드디어 생리의, 생리에 의한, 생리를 위한 한 편의 영화를 만나게 된 관객들에게 김보람 감독은 여러 뒷 이야기들을 전해왔다.







Q: 생리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어땠나요?


A: 친구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기대를 많이 했어요. 촬영 하면서 생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많이 이야기 해줬는데, 여자 친구들은 몰랐던 걸 알게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남자 분들 중에서도 지지해주시고 펀딩을 도와주신 분이 많아요. 택시 운전을 하시는 저희 아버지는 승객 분들에게 홍보도 한다고 합니다. 개봉한다고 하니 다들 설레며 좋아해주고 있어요.



Q: 다큐멘터리 영화의 형태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A: 극장은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공동의 경험을 하는 공간이잖아요. 생리라는 것이 공공의 영역에서, 문화의 영역에서, 서사의 한 형태를 갖춘 상태에서는 경험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이야기가 타인과 함께 모여서 볼 수 있는 매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Q: 영화로 기획하고자 했을 때 처음 한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A: 피를 어떻게 보여줄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이었는데, 진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기획 초반부터 했고, 여성 감독님들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찾아보다가 김승희 감독님의 <심경>(2014)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김승희 감독님을 섭외해서 애니메이션을 부탁 드리게 되었습니다.



Q: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A: 단편이라도 감독한 경력이 있어야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연출 필모그래피가 전혀 없다 보니 펀딩을 받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마켓에서 피칭했을 때도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극장에 걸기 힘들 거라는, 90분짜리로 완성되기 쉽지 않을 거라는 반응도 있었고요.



Q: 그래도 이 영화를 궁금해하는 관객층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었을 것 같아요. 생리를 하는 여성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요. 힘든 와중에도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계속해서 운이 많이 따라 준 게 힘이 됐어요. 한 번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뉴욕에 갈 일이 있었어요. 가는 김에 뉴욕시에서 무상 생리대 법안을 통과시킨 페미니스트 활동가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답이 오지 않길래 마음을 접어두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날 연락이 온 거예요. 게다가 그 날이 뉴욕 시장이 해당 법안에 사인하는 기념식이 있는 날이었어요. 그렇게 며칠 더 머무르면서 뉴욕 촬영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답장을 보내준 활동가 분이 저희에게 ‘잭팟 터졌다’고 하셨을 정도로 운이 좋았던 거죠. 그런 순간순간들이 ‘결국 이 영화는 완성될 거야’라는 용기를 준 것 같아요.



Q: <피의 연대기>는 이야기하는 내용도 새롭지만 형식도 꽤나 새롭게 느껴지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애니메이션과 모션그래픽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빠른 리듬의 편집이 인상적이에요.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편하고 재미있어야 의미도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금기처럼 여겨져 왔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이야기하기 불편한 주제잖아요. 그런 생각을 깨기 위해서라도 남녀노소 함께 볼 수 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무겁지 않은, 경직되어서 보지 않아도 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Q: 상큼발랄한 음악도 너무 좋았거든요. <소셜포비아>(2014), <셔틀콕>(2013) 영화음악에 참여한 김해원 음악감독이 작업했는데, 감독님의 특별한 디렉션이 있었나요?


A: 김해원 감독님께 편집본을 보여드리고 음악에 대해 처음 논의하면서 저희 둘이 통했던 게 있어요. 여성 목소리로 코러스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도 그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것 외에 따로 디렉션을 드린 건 없어요. 사실 저는 더 빠르고 강한 비트의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음악감독님 입장에서는 이 영화가 조금 슬프게 느껴졌나봐요. 그래서 좀 더 정서적인 톤이 가미된 음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이 없는데, 저희는 정말 복이 많아요.







Q: 또 하나 이 영화의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다양한 인터뷰이들의 참여예요. 엔딩 크레딧에 뜨는 인터뷰이 숫자를 세어봤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만 45명이고 영원중학교 2학년 4반 학생들까지 더하면 60명이 넘습니다. 인터뷰를 계획, 촬영, 편집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수고가 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부분이 어려웠나요?


A: 이미 페미니즘에 익숙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 보다는 크게 관심 없이 살아온 분들, 보수적인 집단에 있는 분들을 섭외하고 싶었어요. 육체 노동하는 분들도 인터뷰하고 싶었고요. 연령대별로, 직업별로 다양하게 여성 분들을 섭외하고 싶었죠. 그런데 100분께 부탁 드리면 10분 정도만이 응해주셨어요. 처음에 원했던 만큼 다양하게 인터뷰하지 못했던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Q: 제일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가 있다면?


A: 노동당 하윤정 후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언젠가 총선 후보들과 공약들을 소개해주는 시사팟캐스트 방송을 누워서 듣다가 ‘무상 생리대’라는 단어를 듣고 너무 놀라서 일어났어요. 근데 잠결에 듣는 바람에 그 공약을 건 후보의 소속을 ‘노동당’이 아니라 ‘정의당’이라고 들어버린 거예요. 한번 더 확인을 해봤어야 했는데, 총선 이틀 전이기도 했고 너무 흥분을 한 상태라 피디님께 당장 연락을 해서 그 다음 날 정의당 사무실에 가서 촬영을 하려고 했죠. 그런데 정의당에 그런 공약을 건 후보가 없다는 거예요. 그제서야 다시 확인을 해보니 노동당 하윤정 후보의 공약이었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에 저희 피디님이 운전을 하다 우연히 하윤정 후보를 길에서 본 거예요. 무작정 그 분을 쫓아가서 인터뷰를 부탁 드렸고, 결국 유세 장면도 찍고 인터뷰 장면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운이 좋아요.



Q: 중학교 교실 촬영 때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감독님의 예상과 달랐던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A: 촬영하는 날 학교 복도가 모두 ‘초흥분’ 상태였어요. 영화 촬영 왔다고.(웃음) 사실 불편해하는 아이들이 많을까봐 걱정을 좀 했는데, 굉장히 적극적이었어요. 일단 생리컵을 보여주니 여자 아이들은 알고 있더라고요. 인터넷에서, 특히 유튜브에서 이미 다 정보를 얻었다고 했어요. 문제는 새로운 정보들 틈에 ‘성경험이 있어야만 생리컵을 쓸 수 있다’라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처녀막이 손상된다’라든지 하는 잘못된 정보들도 아이들에게 같이 들어와있다는 거예요. 그건 아예 정보가 없는 것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전반적으로 아이들이 가진 정보를 제도가 못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들이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도 충족시켜줄 기회가 적다고 느꼈어요. 남자 아이들 같은 경우는 이 시간을 통해 생리 중에 여자들이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해요. 혹시나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을 놀린다거나 장난스럽게 임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직접 생리 용품들을 보고 사례를 들으면서 충격을 받더라고요. 질문도 많이 하고 굉장히 진지하게 임해줘서 좋았습니다.



Q: 영화에 감독님의 할머니와 어머니, 이모님들도 등장합니다. 가족들을 어떻게 섭외하게 됐나요?


A: 여성이 생리를 처리해온 역사를 담고 싶어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인터뷰 하려고 한 건데, 생각해보니 저희 이모님들이 40대부터 70대까지 다 있는 거예요.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원래는 다같이 모이기가 힘든데, 그 즈음에 해외에 거주 중인 삼촌이 한국에 와서 온 가족이 고향에 모이게 되었어요. 그 때 두 시간만 제게 달라고 부탁 드리고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리에 대해 세대 별로 이렇게 경험이 다르다니, 저도 신기했어요. 다들 너무 신나게 이야기 했고 재미있는 내용도 많이 나왔는데 영화에 다 못 담은 게 좀 아쉬워요.



Q: 감독님도 영화에 직접 등장 하는데요, 기획 단계에서부터 직접 인터뷰에 임할 생각이었나요?


A: 아니에요. 1년 째 찍을 때 까지도 제가 직접 등장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관객이 이 많은 정보를 따라가려면 화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지적을 받았고, 처음에는 화자 역할을 해줄 일반인 여성 분을 섭외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영화가 수많은 경로로 남겨지게 될 테고 시간이 지나면 출연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는 건데,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위해 계속 실험하고 취재해온 제가 하는 게 제일 자연스러울 것 같았습니다.



Q: 역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김독님이 직접 머리에 카메라를 착용하고 생리컵에 찬 피를 버리는 장면이에요. 이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나요?


A: 사실 머리에 고프로 카메라를 달고 찍겠다고 했을 때 영화적으로 화면이 예쁘지 않을 거라고 말리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촬영감독님이 저를 찍는 것도 너무 보여 주기 식일 것 같았어요. 생리는 온전히 여자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거니까요. 물론 다큐멘터리에도 연출이 있기 마련이지만 생리혈을 작위적으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재미있게,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 장면 또한 그냥 제가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고프로를 머리 맡에 두고 자고 일어나서 착용했고요,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 상태로 커피도 내리고 옷도 갈아입었어요. 그 이후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생리컵을 빼고 생리혈을 확인한 거죠. 촬영 실패도 했고 피를 다 쏟기도 했기 때문에 그 장면은 세 번의 주기에 걸쳐서 힘들게 건진 장면이에요.



Q: 그때 내레이션으로 “흐르는 피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왠지 모를 쾌감과 희열을 느꼈다”고 하죠. 이 쾌감, 이 희열은 어떤 감정일까요?


A: 아주 옛날 남자들은 여자들이 한 시기에 피를 많이 흘리고도 죽지 않는 것을 보고 여자들에게 초월적인 힘, 초자연적인 힘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대요. 실제로 생리혈을 약으로 쓴 역사도 있어요. 그런데 그 시기를 넘어서면, 여자가 특별해지면 안 되니 그 피를 폄하하는 역사로 이어지죠. 저는 한 번도 제 피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고 제 자신을 피 흘리는 존재로 생각해보지도 못했어요. 그때 컵에 가득 찬 피를 보니까 이렇게 피를 흘려도 건강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게 기특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내 몸에서 나온 피가 고스란히 모여 있는 걸 눈으로 확인하니 되게 시원했어요. 벅차는 감정을 느꼈달까요?







Q: 사소한 부분일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느껴진 부분이 있습니다. 인터뷰이들의 프로필에 이름이 모두 성을 뗀 채로 등장해요. 이재명 성남 시장까지 ‘재명’으로 자막이 뜰 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사실 저희 할머니 때문에 그렇게 하게 되었어요. 할머니나 어머니의 이름을 부를 일이 거의 없잖아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라는 영화 제목이 있듯이 한 사람을 고유한 인간으로, 단독적인 캐릭터로 비추고 싶었습니다. 인터뷰이가 많다 보니까 관객이 한 명 한 명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Q: 인터뷰이들의 직업이나 신분을 표현하는 프로필 자막으로 ‘가사노동은퇴’, ‘공부노동자’와 같은 문구도 등장해요.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A: 제게는 여성이 노동을 하면서 피를 흘린다는 것이 중요했어요. 저희 할머니의 경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고추를 따서 말리고, 빻고, 보관하고, 주말이면 뒷산 가서 식재료도 구해오고, 옷도 다 만들어 입는 노동을 해오셨어요. 그 와중에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서 썼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할머니의 직업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이제는 그 노동으로부터 은퇴했으니까 ‘가사노동은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Q: 그런데 자칫 이런 톡톡 튀는 문구들이나 편집 요소들이 시선을 빼앗지는 않을까 고민하지는 않았나요?  ‘생리 축하합니다’, ‘아 씨발 존나 귀찮아’ 같은 표현은 넣기까지 고민이 좀 있었을 것 같거든요.


A: 여성이 어떤 캐릭터로 등장할 것인가가 중요했기 때문에 프로필 자막은 연출의 한 요소였어요. 관객들이 인터뷰이를 한 명 한 명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결국 영화를 통해서 그들에 대한 어떤 인상을 갖게 될 텐데, 긍정적인 인상이 남아야 좋을 것 같았고 그런 문구들이 재미있는 요소로 역할 하기를 바랐어요. ‘씨발 존나 귀찮아’의 경우는 유목 생활하던 옛날 여자들은 어땠을까 상상하다가 나온 말이에요. 생리를 경이로운 일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엄청 귀찮은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때의 감정을 날것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서 넣었습니다.



Q: 비슷한 선상에서 댓글들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특히 부정적인 인식을 비출 때 댓글을 보여주는 방식을 많이 썼어요. 다 감독님이 직접 읽어보고 선별한 것들인가요?


A: 네. 댓글은 지금 한국 사회의 이슈에 대한 반응들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댓글 수집을 정말 많이 했고요, 욕설이나 패륜적인 표현들은 최대한 걸러서 영화에 넣었습니다.



Q: 아무래도 그런 말을 얼굴 들고 해줄 인터뷰이가 없었던 탓일까요? 혹시 그런 댓글 속 생각을 말로 할만한 사람을 찾아가 인터뷰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는지요?


A: 사실 남자 분들 인터뷰를 좀 했어요. 그런데 막상 카메라가 앞에 있으니까 날것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익명의 댓글들을 넣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영화가 이야기를 전환하고 확장해가는 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생리에 대한 고대부터의 인식을 이야기하다가 ‘그게 어떠하든 간에 여성들에게는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있다. 흐르는 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고 하면서 본격적인 생리용품 이야기로 들어가거든요. 어떻게 이야기를 맺고 끊을까 고민을 많이 헀을 것 같아요.


A: 처음에는 ‘내가 왜 생리대만 썼을까? 다른 용품은 뭐가 있을까? 그것들에 대해 왜 알 기회가 없었을까? 시장은 왜 한 가지만 유통했을까?’에 대해서 궁금했던 거예요. 그걸 취재하다가 우리나라에서 생리 용품이 획일화된 이유가 이에 대한 논의가 안 됐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었고 관심도 없었다는 걸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 금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쉬쉬하고 있다는 건 다 알지만, 왜 쉬쉬하게 됐는지 기원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서양의 종교가 생리를 죄악시했던 역사를 영화에 넣어야 했고 혐오하는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지하철 이야기도 넣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야 하잖아요? 어쨌든 현실을 이야기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내레이션을 써서 이야기를 전환한 거죠. 그렇게 다양한 생리 용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많은 선택지들이 과연 누구에게나 있는 선택지일까 물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무상생리대 이슈까지 끌고 오게 된 것입니다.



Q: 끝에 가서는 생리용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여성 스스로의 몸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끔 이끈 예시를 보여줘요. 작은 가슴이 콤플렉스로 느껴지다가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감독님 내레이션이 나오면서요. 사회가 제시하는 프레임에 맞서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가 느껴집니다. 처음부터 이런 의미의 확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나요?


A: 그렇게 이야기가 확장되리라고는 예상 못했어요. 제가 그런 인터뷰를 한 것도 기억을 못하고 있었어요. 찍어둔 영상을 다시 보다가 발견한 거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생리라는 행위와 여성의 몸에 대해서 긍정하게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여성의 몸에 대한)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춰가려고 노력했던 사람인데, 영화를 찍으면서 그 기준이 개인의 행복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나를 불행하게 만든 그 기준들이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 몸을 긍정하기도 전에 외부에서 끊임없이 좋지 않은 정보들이 들어왔던 거라고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청소년들, 20대 초반의 여성 분들이 많이 보고 몸에 대한 긍정의 기운을 받아가길 바라요.







Q: 남자 형제도 없고, 여자가 많은 예술중학교, 대학교 학과를 다니면서 여초 사회만 경험하다가 방송과 영화 일을 하면서 남성만의 문화를 경험하게 되었고, 거기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이제 막 사회를 경험하기 시작한, 조금씩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아요.


A: 제가 감히 어떤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 느꼈던 걸 말씀 드려볼게요. 여전히 미디어는 남성 중심적이에요. 특히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남자 연예인들은 글래머러스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되게 쉽게 해요. 그런데 만약 여자 연예인이 남성을 두고 비슷한 의미를 담은 말을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큰 논란이 된단 말이죠. 이건 여성의 언어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이 남성의 몸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문화 자체가 없는 것이잖아요. 저도 이런 점들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보이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와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봤을 때도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여성성을 다루는 콘텐츠가 현저히 부족해요. 그래서 저는 여성 분들이 기존의 매체들을 볼 때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라요. 결국 미디어가 많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감독님이 인상 깊게 본 여성 중심의 콘텐츠들을 소개해주세요.


A: 넷플릭스를 비롯한 미국 드라마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라는 드라마는 ‘위즈’라는 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했던 여성 작가이자 제작자인 젠지 코한의 작품이에요. 저는 여성을 다룬다고 해서 여성이 항상 영웅이거나 긍정의 이미지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드라마에는 여성들간의 배신이나 권력 다툼이 날 것 그대로 나오고 정신 나간 여자, 인종주의자, 종교에 미친 여자 등등 정말 무궁무진한 캐릭터들이 나와요. 그리고 일단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그레이스 앤 프랭키’라는 드라마도 추천하고 싶어요. 노년의 여성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가능할까 잘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굉장히 재미있고 세련되고 긍정적인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데, 이 시트콤을 보면서 좋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팍스 앤 레크리에이션’도 추천하고 싶어요. 저는 젠더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재미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 훌륭한 작품들이에요.

제 인생 소설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예요. 근미래에 불모지가 된 미국 땅에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의 기계로 취급되는 사회의 이야기를 다뤘어요. SF소설로 분류되지만 현실과 맞닿은 부분이 많다고 느꼈어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에요.



Q: 감독님께서도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책에 대한 소개를 부탁 드려요.


A: ‘생리공감’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생리 이야기만 담았다기 보다는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점들을 많이 썼어요. 특히 우리가 서로의 몸에 대해 너무 모르는 상태로 어른이 돼서 성폭행 문제, 단톡방 문제 같은 사건들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정선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합의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거라고 느꼈달까요. 이런 사회와 관련해서 제가 느낀 점들을 담은 책입니다.



Q: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시선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서 베스트 러프컷 프로젝트상을 수상했어요. 영화제에서 <피의 연대기>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늘 뜨거웠습니다. 기억에 남는 영화제에서의 경험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서울독립영화제 GV 대기 중에 한 자원활동가 분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되게 뭉클했는데 쑥스럽기도 하고 경황도 없어서 반응을 잘 못해드렸어요. 이렇게나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어딜 가든 자원활동가 분들이 많은 용기를 주셨습니다.



Q: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마지막 영화제 버전을 상영했고 개봉을 준비하면서 또 편집을 거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봉 버전으로 편집하면서 바뀌거나 추가된 부분이 있나요? 영화제에서 관람한 분들도 극장을 다시 찾을지 모르니까요.


A: 미공개컷들이 많이 들어갔어요. 그리고 영화제 버전을 본 분들 사이에서 생리컵 홍보 영화 아니냐는 반응이 좀 있었어요. 저도 고치고 싶은 부분들이 있어서 생리컵 이야기를 좀 줄이면서 면 생리대, 탐폰 등 다양한 생리용품 이야기를 보완했어요. 그리고 영화제가 끝나고 나서야 어떤 기회를 통해 다낭성난소증후군을 앓고 계신 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분의 생리와 관련된 경험도 인터뷰에 담았습니다. 음악도 엄청 좋아졌습니다.(웃음)



Q: <피의 연대기>가 첫 연출작인데, 전에는 어떤 일을 해왔는지 궁금합니다.


A: 원래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등단을 못했어요.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취직과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다 학교 선배로부터 시나리오 쓰는 일을 소개 받았는데, 그 영화가 다큐멘터리로 기획이 되어서 그 작품에 작가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일을 하면서 우포늪에서 일 년 정도 살았어요. 늪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분들을 만나면서 그 동안 제 문제에만 천착해있었다는 걸 느꼈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소설로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서 다큐멘터리가 좋아졌어요. 그렇지만 연출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피의 연대기>를 처음 구상할 때만 해도 제가 프로듀서를 하고 따로 감독님을 구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수소문한 감독님들이 다 작업을 하고 있었고 더 늦어지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제가 연출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거죠.



Q: 결과적으로 하길 잘했다고 느끼나요?


A: 무엇보다 재미있었어요. 영화는 글과 달리 공동 작업이잖아요.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제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실력 있는 스태프들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운이 좋게도 제 역량보다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기작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안 하려고요.(웃음)



Q: 스태프 분들께 100% 인건비 지급이 완료됐다고 들었어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바 있고 서울독립영화제 GV에서도 감독님이 직접 이야기해서 관객들이 박수를 많이 쳤거든요. 이 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A: 제가 작가로 일할 때 그런 문제와 관련해서 불편해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 작품에 임했느냐를 떠나서 그 사람이 한 작업, 고민, 자기개발을 포함한 모든 것이 작품이 되는 거잖아요. 그에 걸맞은 인건비를 주자고 처음부터 멋모르고 피디님과 약속했어요. 물론 제가 자신 있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더 드리고 싶었음에도 못 챙겨드린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돈이 있어야 차기작 하겠다는 말을 한 거예요. 인터뷰나 GV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강조한 건, 사실 정말 기뻐서예요.(웃음) 지급이 잘 완료된 게 영화와 관련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자랑 중에 하나입니다.







Q: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한 마디 부탁 드립니다.


A: 많은 분들이 편하게 즐겁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길 바라요. 이미 이 이슈에 대해 민감한, 고민해온 분들에게는 평이한 영화일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생리 이슈와 관련해서 <피의 연대기>가 초입이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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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말 못 한 이야기가 있다

 <파란 입이 달린 얼굴> 김수정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은 김수정 감독이 한 때 같은 곳에서 일했던 여성을 떠올리며 만든 이야기다.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던 그 여성이 허겁지겁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김수정 감독은 그녀에게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주로 사람 안에 숨어 살다가,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었을 때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 조심스러운 움직임은 이 영화의 방식과도 닮아있다. 인물의 뒤를 쫓다가 그의 심연을 통과해내기까지, 김수정 감독이 마주하려 했던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서울에 눈이 아주 많이 온 어느 날, 부산에서는 보기 힘든 눈을 오랜만에 보았다는 김수정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파란 입이 달린 얼굴> 제목이 특이합니다. 어떻게 짓게 되었나요?


A: 저는 원래 제목을 먼저 떠올린 다음 글을 쓰는 편인데 이번 시나리오는 제목이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나니 서영의 얼굴이 붓 터치가 드러나는 두꺼운 질감의 유화로 떠올랐어요. 소통을 잘 못 하는 상태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에 파란 입이라고 이름을 붙였죠. 어떤 단어보다도 그 이미지가 떠올라서 짓게 된 제목입니다.

 


Q: 독특한 제목과 달리 화면은 굉장히 정적입니다. 인물들의 위치, 공간의 구성이 매우 회화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방식으로 촬영했나요?


A: 논리적이기보다는 감각적으로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머리에 그려진 그림대로 시나리오와 콘티 작업을 했고, 여건이 힘들기는 했지만 준비된 콘티와 거의 똑같이 촬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촬영감독님께서 제가 짠 콘티를 많이 존중해주셨어요.

 


Q: 원래 희곡을 썼고, 2011년부터 영화 연출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 서영과 영준의 집을 180도 팬(pan)하는 장면은 마치 연극 무대를 훑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형식은 아닌데, 연극은 객석에 앉으면 무대를 전체적으로 보는 시선을 갖게 되잖아요. 이런 장면은 어떤 의도로 촬영한 건가요?


A: 기본적으로 제 작업에 연극적인 정서가 깔려있는 것 같아요. 타이트한 숏을 거의 쓰지 않고 공간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편입니다. 180도 팬 같은 경우, 그냥 그 장면에서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직관이 있었지만, 촬영감독님을 설득해야 했기 때문에 제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인물이 살아가는 환경과 관계를 한 눈에 보이도록 화면에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절에서는 책상을 두 개씩 쌓아 그 위에 올라가서 촬영했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화면을 잡을 수가 없었어요. 고생 끝에 나온 장면이에요.

 


Q: 전반적으로 컷이 길고 줌은 적어서 배우들의 연기가 오히려 돋보였습니다. 그런 연출 방식이 배우들의 연기를 더 자유롭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A: 배우들의 에너지를 관객 분들이 다 받아갔으면 하는 욕심이 있어요. 그건 연극에서보다 영화에서 더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에서는 연기뿐만 아니라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이 영화에서는 멀리서 인물과 공간을 함께 비추는 이미지가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그 안에서 최대한 배우의 진심이 관객에게 전달되길 바랐습니다.



Q: 서영 역의 장리우 배우와 영준 역의 진용욱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 했나요?


A: 두 분 다 전작을 보고 매력을 느꼈습니다. 장리우 배우는 <고갈>(2008)이라는 작품에서 너무 인상적이었고, 진용욱 배우는 <무산일기>(2010)에서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캐스팅하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과 <파란 입이 달린 얼굴> 속 캐릭터의 이미지가 닮았다기보다 배우 분들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끌리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빈곤과 노동

 


Q: 서영과 영준 남매의 상황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상황 전반에 걸쳐 가난에 대한 문제의식이 짙게 깔려있습니다. 전작 <달을 쏘다>(2013), <이매진>(2011)에서도 노동 문제를 통해서 인물들의 갈등을 형상화했고요. 빈곤과 노동 문제를 영화의 테마로 삼게 된 계기 혹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제 나름대로 생각해볼 때, 항상 예술이 조금 더 사회 참여적이었으면, 무언가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영화 속에서 그런 마음을 계속 표현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을 찍고 나니까 제 예술관으로 인해 표현에 한계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가진 시선 속에 제가 매몰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비로소 그런 강박을 인식하고 그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Q: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빈곤과 노동 문제의 구조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A: 교과서나 책처럼 설명하고 싶지 않았어요. 서영이 속해있는 조직의 이야기를 통해 제 나름대로 구조를 표현해본 것이고요, 사실 이것조차도 너무 설명적이지 않나 고민을 했습니다. 그들의 현재 삶을 더 충실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작품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A: 아무래도 가장 큰 건 재정적인 문제겠지만, 그보다도 이 영화가 받았던 시선 때문에 힘들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지원 사업의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낙관적인 이야기를 써도 될 것을 왜 굳이 이런 영화를 만드냐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주변사람들에도 독립영화에도 트렌드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트렌디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힘들었습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힘든 이야기를 하고자 할 때, 감독님께서 꼭 지키고자 했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인물을 표현할 때 상업영화에서처럼 눈물샘을 자극하는 포인트를 만들면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사실 저도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좋을지 혼란스러웠는데, 서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진심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추슬렀어요. 서영이라는 여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던 마음, 그걸 생각하면서 끝까지 작업한 것 같습니다.

 


Q: 그 박수는 서영을 향한 응원과 격려의 박수인가요?


A: , 맞습니다. 차가운 영화로 느끼셨을지 몰라도 저는 그런 마음이었어요.(웃음)



 




여성과 장애인

 


Q: 이런 신념이 엿보였던 것일까요? 2016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기분이 어땠나요?


A: 처음에는 의아했어요. 이 영화를 여성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냥 한 인간의 이야기로 만든 것인데, 많이들 여성에 초점을 맞춰서 접근해주시더라고요. 그동안 여성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놓인 여성 캐릭터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적기 때문에 이 작품에 그렇게 접근해주신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상을 받아서 기쁘고 즐겁기보단 나는 이 사회에서 얼마나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고 있지?’하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지금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도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Q: 주변에서 감독님의 여성 캐릭터들이 세다고 평가한다던데, 평소에 이런 평가는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A: 그만큼 여성들이 표현을 안 하고 살았나 생각이 들죠. 제 기준엔 별로 센 것 같지 않은데, 아직 우리에겐 이런 여성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Q: 씨네21 1126호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거칠게 말해 맛이 간 여자들에 관심이 많다는 표현도 했어요. 영화든 문학 작품이든, 아니면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든 감독님이 좋아하는 맛이 간 여자캐릭터가 있다면요?


A: 참 많아요. 프리다 칼로도 재밌고요.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도 정말 좋아합니다. <방랑자>(1985)라는 작품을 좋아해요. 그 분은 지금 연세가 많은데, 젊었을 때의 작품들을 보면 여성 캐릭터들이 험난한 상황에서도 꿋꿋해요. 감독도, 영화 속 인물들도 모두 인상적입니다.


 



Q: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의 서영도 가볍게 접근하면 맛이 간 여자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감독님은 서영이 관객들로부터 이해받기를 바랐나요, 아니면 그것과 상관없이 서영 그대로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요?


A: 저는 관객이 서영을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마다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감독의 이런 마음이 좋은 개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조차도 일상에서 이런 캐릭터를 만났을 때 이해하기 쉽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인물에게 적응을 하고 나면 어느 순간에 그런 인물에게도 호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런 순간을 떠올리면서 그들에게도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을 차갑게만 보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Q: 그렇다면 서영이라는 인물을 관객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어떤 형식을 마련하거나 연출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심적으로 서영이란 캐릭터에 많이 집중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후에 시나리오 상의 서영과 장리우 배우가 표현한 서영 사이에 질감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촬영을 할 때에는 또 그에 맞게 장리우 배우가 연기하는 서영과 연애하는 느낌으로 마음을 쏟아 부으려고 했어요.


 

Q: 장리우 배우는 서영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장리우 배우와 통화를 했는데, 몸이 다 틀어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장리우로 서있었다면 바른 자세일 텐데, ‘서영으로 살고 나서는 똑바로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 안 들고 온몸이 아프다고 했어요. 그리고 장리우 배우가 서영, 영준, 엄마를 표현한 그림들도 많이 그렸습니다.

 


Q: 영화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서영이 노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을 부르는 장면인데요, 이 장면은 마치 서영이 그동안 꽁꽁 숨겨온 마음을 살짝 비추는 것만 같습니다. 이 노래는 가사 때문에 삽입하신 건가요?


A: 꼭 가사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요, 시나리오를 한창 쓸 때 혼자 무안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그런데 무안이 여행지로 개발된 지역이 아니라 숙박시설이 열악해요. 여관에서 투숙했는데, 방문도 잘 안 잠기고 거의 무너져가는 불안정한 상태의 방이었어요. 오래 여행을 하는 중이라 빨랫줄을 따로 가지고 다녀서 그 줄로 입구를 묶어 문이 안 열리게 했습니다. 불안에 떨면서 방에 있는데, 텔레비전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조덕배가 나왔습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었어요. 저를 불안에서 탈출시켜준 노래였기에 시나리오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영준 역의 진용욱 배우는 어땠나요? 지난 달 개봉한 <프레스>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어요.


A: 제가 진용욱 배우에게 굉장히 고마웠던 것이 본인이 인물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납득할 수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섣불리 연기로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에요. 저는 배우에게 분명하게 연기 디렉션을 주기 보다는 배우와 제가 캐릭터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 통했다면 이후의 표현은 배우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진행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진용욱 배우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촬영을 이어나갔는데, 항상 진정성 있게 인물을 연기하려는 게 느껴져서 고마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Q: 영준에게 장애가 있다는 설정은 인물 구상 단계에서부터 있던 건가요?


A: 영화 작업을 하면서 만난 장애인 친구가 있어요. 이후로 그 친구와 자주 만나면서 이들은 바깥 활동을 할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나는 선입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애인들을 보호해야할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도 우리랑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해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Q: 영준이 도움 없이는 작업장에 들어가지 못한다든가 집에서도 화장실의 문턱 넘기를 힘들어한다든가 친구들끼리의 여행에서 자연스럽게 소외된다거나 하는 장면에서 장애인들이 마주하는 일상적인 폭력들이 드러납니다. 특히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들로부터 너랑 가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남겨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A: 앞서 말씀드린 친구와 생활하면서 많이 느낀 부분이에요. 같이 술을 먹으러 가면 남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조차도 갈 수가 없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장애인 택시가 활성화가 잘 안 되어 있어서 한두 시간 지나 택시가 오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도 불편함을 느꼈고 그 경험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바로 다음 장면에서 서영이 영준을 데리고 귀가합니다. 이때 영준이 서영에게 디자이너 진희와의 관계에 대해 과장하여 이야기합니다. 영준이라는 인물이 한 번 더 무너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소외된 직후에도 또 다시 관계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허풍을 떠는 것 같았달까요?


A: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무언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마술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영준에게는 진희와의 관계에 대한 희망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만든 장면입니다.

 

Q: 결과적으로 영준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정적인 이 영화에서 유독 직접적이고, 그래서 자극적인 방식으로 그려졌는데, 이유가 궁금합니다. 반드시 직접적인 표현 방식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한 건가요?


A: 많은 분들이 그 장면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사실 인물들 사이에 감정적으로 싸움이 끊임없잖아요. 서로 배려하려고도 하지 않고요. 갈등이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정서적으로 드러나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앞선 감정적 싸움들과 그 장면이 큰 차이가 없었어요. 여러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고요. 관객들을 괴롭히고 싶기도 했습니다. 불편한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들여다보자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관계 맺기의 어려움


 

Q: 결국 이 영화는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과도, 동료와도, 친구와도 서영-영준 남매는 뜻대로 관계를 다져나가지 못합니다. 어려운 상황들로 인해 인간관계로부터 인물들이 소외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건가요, 반대로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하기 때문에 인물들의 어려운 사정이 극대화되는 걸 그리고 싶었던 건가요?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같은 질문이겠지만,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감독님의 작품관이 어느 정도 설명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A: 하나의 입장을 갖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영화에서는 환경에서 오는 결핍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습니다. 태생적인 결핍이나 영화의 시간 외적인 곳에서 발생한 결핍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한데, 두 가지가 다 작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Q: 주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우선 남매의 어머니는 영화 초반을 지나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후에 제사 지내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어머니의 행방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면요?


A: 어머니가 잘 살아남기 바라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곳에서 잘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배우들과도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화 안에서 어머니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지 않은 이유는 관객에게 맡기겠다는 것 보다 굳이 이 부분까지 표현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Q: 어머니라는 존재가 두 남매에게 각각 다른 의미일 것 같습니다. 서영은 매몰차지만, 영준은 자신이 어머니를 찾겠다는 말을 하기도 하죠. 어머니가 아프기 전, 이 가족의 전사에 대해 생각해둔 부분이 있다면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이 부분도 배우 분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영이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고 반면에 오빠 영준은 장애가 있고 조금 더 어머니의 관심을 받고자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관심을 별로 못 받았을 것이다 정도로 이야기했습니다.

 


Q: 스님도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이에요. 족발을 시켜 먹기도 하고 서영을 도와주다가도 서영의 사정을 남들에게 말하고 다녀서 그녀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죠. 후에 노동조합 문제에 있어서는 다시금 서영을 동료들과 갈라서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스님은 어떻게 만들어진 캐릭터인가요?


A: 서영 같은 경우는 일을 하면서 만난 분이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분이 싫었지만 헐레벌떡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어떤 감정이 느껴졌어요. 영준의 경우 주변사람을 통해 제 선입견을 인식하면서 나온 캐릭터이고요. 스님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보통 스님하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살다보니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스님들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한 인물이 갖고 있는 입체적인 면, 다양성을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캐릭터를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Q: 서영의 직장 동료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대변하는 캐릭터 같았습니다. 관객이 서영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들을 그들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서영을 마주하죠. 서영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다가도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는 것까지도 마치 서영과 관객의 관계를 은유하는 것 같고요.


A: 특정한 의도는 아니었고요, 말씀드린 것처럼 서영의 모티프가 된 인물은 일터에서 모두가 싫어한 분입니다. 현실에서 그 분은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지만, 만약 사람들이 그분과 어울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어요. 저의 바람, 혹은 판타지 같기도 합니다.

 


Q: 서영이 직장 동료들과, 영준이 진희와 맺는 관계가 영화 속에서 두드러지는 관계입니다. 둘 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주인공들의 잘못 아닌 잘못으로 어그러지고 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칭찬을 매개로 주인공들이 상대방에게 마음을 연다는 점입니다. 서영은 탁구 실력을, 영준은 옷 만드는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비로소 웃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A: 그런 공통점들은 우연인 것 같은데 재밌네요. 누구나 생김이 다르잖아요. 사회에 잘 적응한 분들은 능력을 인정받아서 평안한 삶을 살지만, 그 능력이나 특정한 면이 노출되지 못하면 평가에서 밀리는 게 한국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다 잘하는 게 있고, 평가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 다른 모양으로 살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Q: 인물의 환상과도 같은 라스트신이 인상적입니다. 홀로 탁구를 치다가 멈춰버리는 흐름이 마치 110분인 영화를 한 컷으로 응축시킨 것 같았습니다. 담고 싶었던 의미가 궁금합니다.


A: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소통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의도는 서영에게서 공이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는 형태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랠리를 충분히 하다가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CG를 할 형편이 안 되어서 직접 치면서 촬영했는데요, 장리우 배우도 탁구를 잘 치고, 마주보며 공을 받아준 분이 탁구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탁구대 중간에 카메라가 설치되어서 촬영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일 랠리가 길게 된 장면을 쓰게 되었어요.

 


Q: 차기작 <해변의 캐리어>는 어떻게 작업 중인가요?


A: 촬영은 다 끝나고 편집 중인데, 이번 영화와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사회참여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서 탈피를 하고 만든 작품이어서 재밌게 작업했습니다. 작업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도 있었고요.

 


Q: 소설도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영화 작업의 연장에서 쓰는 건가요?


A: 소설은 영화와 별개의 작업입니다. 문자로 만들 수 있는 이미지와 영상으로 만들 수 있는 이미지가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여섯 편 정도의 소설을 썼는데, 그 중에 영화화할 수 있겠다 싶은 게 한 편뿐일 정도로 소설과 영화는 전혀 다른 매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의 경우엔 영상처럼 묘사의 제약이 크지 않다보니까 더 자유롭게 쓰게 돼요. 희곡, 소설, 영화를 다 작업해보았는데, 저에겐 각각 별개의 것으로 느껴져서 모두 다르게 접근하게 됩니다.



 




Q: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이 영화의 이야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공감할 수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이 영화가 조금 불편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마음을 열어주시면 서영이라는, 그리고 또 다른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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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연기 워크샵 한줄 관람평


이지윤 | 삶 같은 연기, 연기 같은 삶. 그 경계 위에서

박범수 | 삶과 연기, 숨김과 들킴을 오가는 교묘한 외줄타기

최대한 | 연기의 진정성과 광기 사이에서

이가영 | 마음의 기원을 쫓아서

김신 | 만화경처럼 증식하는 거울의 미로 속에서 사라진 출구 찾아 떠돌아다니기

남선우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배역의 쉴 곳 없네





 <나의 연기 워크샵 리뷰: 나 자신과의 아득한 거리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나의 연기 워크샵>에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진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연기 워크샵 수강생인 '헌', '은', '준', '경'이 처한 현실이고, 또 하나는 현실을 배경으로 그들이 연기를 하는 이야기다. 수업 커리큘럼에 따라 4장으로 구성된 서사는 타이틀에 충실하다는 인상을 준다. 몸의 긴장을 풀고, 상대와 교감하고, 자신이 던져진 상황에 대처하며 연기를 수행하는 순간, 수강생들은 본능적인 감정을 체험한다. 매번 상황극이 끝나면 연기 선생인 '미래'는 기분은 어땠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하고, 그들은 명료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적 소회를 털어놓는다. 이같은 미래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영화 속 현실과 허구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듯 보인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수강생들은 자신만의 논리로 캐릭터를 표현해내며 점차 연기를 완성시킨다. 그 논리란 살면서 경험해 온 시공간을 기반으로 구축된 것이기에 그들의 연기는 작위적일 수 없다. 극중 미래가 던진 질문과 조언들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우리를 흔들어댄다. '나란 존재를 관객에게 다 들켜서도 안 되고, 아주 감춰서도 안 된다', '진실된 연기를 위해서는 온전한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이제 수강생들은 굳이 수업시간이 아니더라도 감정을 따라 마음의 기원을 쫓아갈 수 있다. 내 기분이 어떤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래는 수강생들로 하여금 현실과 내면의 세계를 넘나들게 하는 동시에 미지의 심연을 탐구하도록 한 것이다.

 

미래는 수강생들에게 의 일기를 읽고 이 되어 마지막 장을 완성해 보기를 제안한다. , , , 경에게 각각 다른 페이지의 일기가 주어지고, 그들은 자신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을 생각하며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란 어렵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에게 대입하게 되고, 그 과정에는 그 동안 겪어 온 시간이 관여한다. 이때부터 영화의 시선은 차츰 헌, , , 경 개개인의 인생에 주목한다. 영화 감독의 술자리에 불려가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준,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 도무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 강인함 뒤에 분노를 감내해 온 . 일상의 반대편에서 욕망과 충동이 뒤엉킨 바로 그곳에 또 다른 ‘나가 있다.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몰라야 할 진실이 있고,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깊이 묻힌 채로 남아 있어야 할 기억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이 둥글게 모여 을 얘기하던 그날 밤, 그간 묵혀왔던 기억들이 터져 나온다. 어렵고도 용기 있게 털어놓은 아픔을 두고 을 앞세워 서로의 감정을 공유한다. 존재론적으로 확실한 분석 대상인 (타자)이 있기에 서로에게 함부로 동정심을 가지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다 같이 모여 얘기를 나누는 이 장면에서 지리멸렬하게만 느껴지던 현의 조각들이 마침내 하나로 맞춰진다. 이제 현실과 허구(연기)를 구분 짓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들에게 있어 은 타자인 동시에 또 다른 이다.

 

영화는 타인은 물론 자신의 고통 앞에서도 그저 무력감만을 느끼고 외면하는 현실을 경계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의 일기를 읽고 불가피하게도 불행한 과거를 떠올리는 이유는 그에게 유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연기 워크샵>이 위태로운 헌, , , 경을 통해 끊임없이 암시하는 바는 내 안의 괴로운 나(타자)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지의 심연에서 라는 사람의 진실을 발견해야지만 새롭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고 적당한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은 현실과 연기로 창조된 허구에 비유할 수 있는 나와 또 다른 나의 분열을 이 선택한 자기파멸을 통해 역설하는 듯하다. 언제고 내 안의 타자(또 다른 나)는 꿈틀댈 것이고 란 시스템은 분열되기 마련이기에, 보이지 않는 간극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버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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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의 진정성과 광기 사이에서  <나의 연기 워크샵>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12월 30일(토) 오후 2시 30분 상영 후

참석 안선경 감독 | 배우 김강은, 성호준, 서원경, 이관헌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대한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서슴없이, 인위성 없이 배우들의 감정들을 토해낸다. 이렇게 감정을 토해내는 과정에서 진정성과 광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나의 연기 워크샵>은 강렬한 인상과 혼란을 머릿속에 남겼다. 혼란이 채 가시기 전에 안선경 감독과 배우들의 인디토크가 이어졌다.

 

 



진명현 대표 (이하 진명현) : 오늘 많은 분이 자리해주셨습니다. 안선경 감독님부터 인사말씀 부탁 드리겠습니다.

  

안선경 감독 (이하 안선경) : 함께 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아주 작은 궁금증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좋은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강은 배우 (이하 김강은) : 연기를 시작하고 첫 작품인데, 이렇게 개봉을 해서 너무 기뻐요. 관객 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어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성호준 배우 (이하 성호준) : 1년 만에 영화를 다시 봤는데, 가슴이 너무 벅차요. 영화에 대한 감상을 편안하게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서원경 배우 (이하 서원경) : 이렇게 시간 내어 영화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함께 많은 이야기 나누는 좋은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관헌 배우 (이하 이관헌) :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너무 좋습니다. 관객 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명현 <나의 연기 워크샵>은 보는 동안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들과 어떻게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감독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안선경 : 저는 아직까지 영화를 만들 때 특별한 모델을 가지고 만들지 않아요. 제 삶에서 우러나오는 질문과 제 주변 사람들의 삶을 담아 보겠다는 단순한 욕망을 추구하거든요그러던 어느 날 여기 있는 친구들과 함께 연기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이 친구들이 성장하는 모습 속에서 좋은 드라마를 발견한 거예요. '지금 이건 굉장히 좋은 순간이고 매력적인 순간이다. 이걸 사람들에게 보여주자.'라는 감정에서 착안해 시작했어요.

 






진명현 : 영화에서 연기에 대한 배우들의 진솔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여기 앉아계신 배우 분들이 실제로 활발한 성격은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대부분 <나의 연기 워크샵>이 첫 영화 작업인데, 다른 누군가가 스크린을 통해 자신을 본다는 사실에 걱정을 좀 했을 것 같아요.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나요?

 

김강은 : 제가 처음에 안선경 감독님을 찾아간 이유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지만 저에게 용기를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감독님과 함께 연기에 대해 탐구하면서 용기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특히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각자의 삶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저는 이 시간이 감정적으로 힘들었어요. 이러한 과정을 극복한 후, 감정적 교류가 형성된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하니까 막상 촬영을 진행할 때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성호준 : 항상 안선경 감독님의 세계관과 태도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제가 이 영화를 잘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제 삶을 더듬으면서 연기를 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감독님과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제 삶을 더듬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연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서원경 : 제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특별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이야기가 관객 분들에게 보여지는 것 보단 스크린을 통해 제 자신과 대면하는 것이 두려웠어요.(웃음)

 

 

진명현 : 이제 <나의 연기 워크샵>을 통해 진짜 배우가 되셨잖아요.(웃음) 지금까지의 과정을 거쳐보니 어떤가요? 연기라는 건 재능인 걸까요, 아니면 배워가는 걸까요?

 

서원경 : 연기에 대한 주관은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어렸을 때는 연기라는 게 단순히 '쇼'라고 생각을 했는데, 감독님과 김소희 선생님을 만난 후 자기 자신과 소통하고 대사 한마디라도 나를 통해서 나와야 진짜 연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진정성만 있다면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호준 : 김소희 선생님은 저희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서 표정이 계속 실감나게 변해요. 이 표정의 변화가 연기에서의 관계 맺기라고 생각하는데요, 관계를 맺는 데 탁월한 사람은 연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진명현 : 감독님은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하고 연출자이기도 하잖아요.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나요?

 

안선경 : 항상 진지하게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든 일인 것 같긴 해요.(웃음) 왜 제가 이 일을 하게 됐는지 생각을 해봤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뭐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보다 사람간의 관계와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결핍에 굉장히 시달렸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들여다보면서 왜 오해가 생기고 상처를 받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연기가 관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관계에 대해서 끝없이 탐구하다 보니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관객 : 영화의 영문 제목이 'Hyeon’s Quartet'인데,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선경 : 배우가 어떤 대상을 연기할 때, 제 주관에는 주어진 대상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개념이 있지 않아요. 이 말은 어떠한 인물이 고정적이지 않다는 의미인데요, 누가 그 인물을 바라보고 누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인물들이 창조된다고 생각해요. 또 저는 관객에게 많은 선택지를 줄 수 있는 연기가 좋은 연기라고 생각해요. 영화 속 4명이 모두 '현'을 연기하면서 4명이 각자 다른 화음을 내서 연기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 것이 <나의 연기 워크샵>의 목표라는 의미로 현의 4중주’(Hyeon’s Quartet)라는 제목을 지었습니다.

 

 

관객 : 영화에서 의 이야기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4명의 배우가 연기에 대해 고민을 하는 데에 의 이야기가 왜 필요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선경 : 이 영화의 목표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 캐릭터로부터 공감지점을 찾고 가면에 숨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의 이야기라는 프리즘을 통해 4명의 배우 역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의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관객 : 김소희 배우의 대사 중에서 배우에게 숨을 잘 못 쉰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저도 숨을 잘 못 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요. 숨을 잘 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서원경 : 저도 사실 숨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어요.(웃음원래 제 본업은 사진을 찍는 일이에요.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서 안선경 선생님을 찾아갔고 연기 워크샵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살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제 자신을 찾고 싶은데, 연기를 그 도구로 찾은 거죠처음에 김소희 선생님이 저에게 숨을 못 쉰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방어벽을 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런 것들이 숨을 못 쉬게 하고 있더라고요그러다가 연기를 배우면서 어느 순간 숨을 쉰다는 게 무엇인지 느껴졌어요. 물리적으로 숨을 쉬려고 의식하다 보니 사람이나 주변의 환경이 저와 소통을 하는 게 느껴졌어요. 이렇게 의식을 하고 난 후 일상에서도 가끔 제가 숨을 쉰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물리적으로 숨을 한 번씩 크게 쉬어요.(웃음)

  

김강은 : 김소희 선생님이 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적이 있는데요, 선생님은 가까이 있는 사람의 숨을 따라 쉰다고 하더라고요. 즉 상대방의 리듬을 따라간다는 건데, 제 옆에 있을 때는 숨을 못 쉬겠다고 했어요. 선생님한테 말한 적은 없는데, 사실 숨 쉬는걸 힘들어 했거든요.(웃음주변과 제 자신을 의식하면서 숨을 쉬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사실 저는 아직도 뭘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르겠고 그게 저의 제일 큰 과제인 것 같아요.

 

 

관객 : 크레딧을 보면서 알게 됐는데, 각본 작업을 배우님들도 함께 했더라고요.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합니다.

 

안선경 : 처음에 배우들을 만나서 이야기 할 때 이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고 자세히 상상하고 싶어서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한 다양한 이야기를 일기 쓰듯이 자유롭게 써달라고 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배우들의 내면 궤적을 추적했고 기본적인 이야기의 구조를 만들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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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라는 가능성  인디돌잔치 <위켄즈>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12월 26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동하 감독 | 전재우 G_Voice 음악감독 | 김일란 감독

진행 박기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성소수자인권운동 단체인 친구사이에 소속된 게이 합창단 ‘G_Voice’(이하 지보이스)의 행적을 다룬 다큐멘터리 <위켄즈>에 잊기 힘든 장면이 있다. 2009년부터 쌍용자동차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파업 노조를 지보이스가 찾아가 응원 공연을 선보인 후 얼마가 지나 쌍용자동차 노조 측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찾아와 맞인사를 건네듯 응원 공연을 펼치는 장면이다.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는 각자의 집단이 오직 연대를 위해 우정 어린 교감을 나누는 이 장면의 감흥을 잊기 힘들다.


개봉 1주년을 맞아 다시 찾은 인디스페이스에서 지보이스 음악감독인 전재우는 앞으로도 지보이스가 위와 같은 연대를 펼칠 것이라 밝혔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노래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방식의 연대를 선보이는 것 또한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위켄즈>라는 다큐멘터리를 수식하는 적절한 메타진술이기도 한 이 성명은 별도의 사회과학적 부연 없이도 영화 예술의 존재의의를 날카롭게 지명한다. 한 편의 영화는 고립된 공간에서 상연되며 부르주아 관객들의 상찬을 받을 때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그늘진 곳에 위치한 누군가의 세속적 삶을 근심할 때 풍요로워진다.


개봉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위켄즈>5천명 이상의 관객을 만났다. 거대 자본과 스타 배우의 티켓 파워로 무장한 대중영화가 끊임없이 자본을 증식시키며 연말연초의 박스오피스를 장식하는 상황 속에서 이 영화의 작은 분투가 너무나도 왜소하고 미약해 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 예술이 사회의 외곽에서 분투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고 믿는 이 작은 영화의 굳건한 태도가 누군가의 심장에 도달할 것이라 믿는다. 2017년에 작별을 고하는 어느 추운 겨울날, 한 독립영화관 안에서는 그 기적 같은 내일의 도래를 믿는 이들의 대화가 따사롭게 점멸하고 있었다. 이동하 감독, 지보이스 소속 전재우, 박기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과 김일란 감독이 참석했다.


 

 


 

 

박기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사무국장(이하 박기호) : 오늘 인디토크에 게스트 세 분이 참석해주셨습니다. 각자 소개 부탁 드립니다.

 

김일란 감독(이하 김일란) : 안녕하세요, 저는 인디스페이스 역대 최다 관객 동원작 <두 개의 문>(2012)의 감독,(웃음) 김일란이라고 합니다.

 

전재우 지보이스 음악 감독(이하 전재우) : 안녕하세요, 저는 지보이스 음악감독 전재우라고 합니다.

 

이동하 위켄즈 감독(이하 이동하) : 안녕하세요, <위켄즈> 감독 이동하입니다. 1년만에 인디스페이스에 오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박기호 : 먼저 <위켄즈>가 개봉한 지 1년이 지난 지금의 근황과 소회를 밝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동하 : 우선 회사를 관뒀고요,(웃음)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든 영화가 <위켄즈>인지라 개봉 당시에는 많이 떨렸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심적으로 안정됐고 차기작을 구상하는 중입니다.

 

전재우 : 주변에서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오늘도 제가 병원에서 진료를 볼 때 환자분께서 절 알아보시고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공동체 상영 등 여러 기회를 통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고 알게 된 것만으로도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김일란 : 살이 좀 빠져서 최근에 예뻐졌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웃음) 그리고 제가 속해있는 단체 '연분홍치마'에서 만든 <공동정범>이 마무리되어서 개봉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박기호 : 얼마 전에 지보이스 단원들과 술을 마시는데 근래에 새로 가입한 분들을 '위켄즈 키드'라고 부르더라고요. 무슨 뜻이냐고 하니까 <위켄즈>를 보고 가입한 분들이래. 그 이야기를 듣고 <위켄즈>가 이성애자뿐 아니라 동성애자 내부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혹시 <위켄즈> 촬영 전후로 변화를 겪은 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동하 : 우선 4년 동안 촬영을 하는 와중에 옆에 있는 재우형, 그리고 객석에 앉아있는 철호형과 같은 많은 분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런 변화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또 좋았고요.

 

박기호 : 김일란 감독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사람들이 <위켄즈>를 보고 <종로의 기적>(2010)의 확장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위켄즈>를 보고 <종로의 기적>으로부터 변화한 지점이 있다고 느꼈나요?

 

김일란 : <위켄즈><종로의 기적>을 단순 비교하기는 좀 어렵지만 <위켄즈>가 진일보한 부분이 있기도 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퀴어 영화를 만들 때에는 인권운동이 성장을 해야 그에 따라 영화의 서사가 다양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예컨대 예전에 동성애 영화를 만들 때에는 사람들이 동성애라는 관념에 익숙하지 않았던 지라 인물들이 사랑에 빠지는 걸 쉽게 납득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동성 연인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몇 가지 전사와 원인을 넣어두어야 했죠.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라진 지금은 동성이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고 해도 많은 분들이 어렵지 않게 납득하는 거죠.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에 기여한 단체가 친구사이이고, <위켄즈>도 그 노력의 결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위켄즈>가 공개되었을 때, 지보이스가 다른 노동자 단체와 연대를 하는 대목에서 많은 찬사가 쏟아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한국 관객들 중에는 거시적인 연대보다는 개별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많았어요.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봤더니 베를린 같은 곳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국내보다 좀 더 진일보하다 보니 개별 인물들의 사사로운 이야기보다는 동성애자들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연대를 펼치고 있는지에 관심이 더 모이는 것 같더라고요. <종로의 기적><위켄즈> 사이의 변화에서 그간 친구사이를 포함한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의 운동이 확장된 지점들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런 인권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위켄즈>라는 성과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에 행복했어요.


  



관객 : 방금 김일란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신 다른 집단과의 연대를 영화에서 굉장히 인상 깊게 봤습니다. 지보이스가 앞으로도 이런 연대를 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재우 : <위켄즈>가 우리의 행보와 앞으로 걸어나갈 방향을 잘 정리해서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당분간은 그런 방향으로 또 다른 연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지보이스의 예술적 지향과도 공명하는 행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영화를 만들고 노래를 하는 것 말고 이런 방식으로 연대를 하는 것도 하나의 예술이 아닐까요?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다른 단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사연에 노래로 힘을 보태주고 싶습니다.

 

박기호 : 전재우 님께서 지보이스의 음악에 굉장히 많이 관여하시잖아요. 끊임없이 활동영역을 넓혀가며 작업도 하고 자기 일도 병행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요? 철호 씨는 아니겠죠?(웃음)

 

전재우 : 철호 맞아요.(웃음) 사실 제가 좀 나이가 들었잖아요. 마흔이 넘은 성소수자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국내의 풍토를 볼 때마다 많이 안타까워요. 친구사이 안에서도 나이가 들면 점점 활동을 적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뒤로 물러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뒤이어 오는 세대에 도움을 주면 좋겠어요. 어린 친구들은 윗사람들한테 일 시키는 걸 꺼려하기도 하던데 서로 잘 협력하면서 일을 했으면 해요. 이게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맞는지 잘 모르겠네요.(웃음음악도 그런 이유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으면서 하고 있습니다.

 


박기호 : 김일란 감독님은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많이 해오셨는데요, 앞으로 작업의 어떤 부분에 방점을 두고 싶으신가요?

 

김일란 : 사적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라면 있습니다. 'A급 배우'들을 주연으로 하는 레즈비언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분들이 퀴어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관객과 시장, 투자 판이 충분히 크게 형성되어 있다는 거잖아요. 주류 시장과 주류 문화 안에서 유명한 배우들과 함께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또 학생인권조례에 관해 성소수자들이 어떻게 운동하고 연대해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마침 오늘 페이스북에 '과거의 오늘'로 학생인권조례 통과를 위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시청 점거를 했던 날의 사진이 떴는데, 지금 사회를 보고 있는 박기호 씨가 혼자 뒤돌아보면서 여유롭게 브이자를 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있더라고요.(웃음) 그런 푸티지들을 활용한 영화를 언젠가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박기호 : 전 당시에 시청 점거를 못하고 그냥 쫓겨날 줄 알았어요. '오늘은 집에 일찍 가야겠군' 생각하고 있는데 들어가려고 하니까 아무도 안 막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점거하게 된 거에요. 이제 며칠 밤 새야겠군’하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네요.(웃음)

전재우 음악감독님께 또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위켄즈>가 개봉한 이후 지보이스에 들어온 친구들에게는 이 다큐멘터리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하네요.

 

전재우 : 사실 뒤풀이 자리나 공연 같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보이스의 역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위켄즈>를 보기만 하면 지보이스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해 잘 알 수 있으므로 영화를 보고 지보이스에 가입한 회원들은 지보이스의 목적과 지향에 대해 처음부터 숙고하면서 열심히 활동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위켄즈>가 크게 기여하고 있죠.

 

김일란 : 성소수자인권운동의 중요한 활동 중 하나는 이곳저곳에서 정치적인 운동을 펼치는 것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를 마련해주는 데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성소수자로서 내가 갈 곳이 있고, 나를 기다려주는 친밀감 있는 장소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친구사이가 그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느껴요. 외부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것과 함께 마음이 허전할 때 술을 같이 마시고 정서적 지지를 보내줄 수 공동체가 있다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박기호 : 이동하 감독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연출부와 지보이스 멤버들 사이, 아니면 지보이스 멤버 간에 갈등이 있을 때는 어떻게 풀었나요?

 

이동하 : 우선 제가 화를 잘 못 내는 성격이긴 해요. 그런 갈등이 있을 때는 아무래도 멤버들이 카메라 앞에서 말하기를 꺼려하니까 촬영을 진행하기가 힘들었죠. 그럴 때에는 한 달의 간격을 두고 다시 인터뷰를 실행했습니다.


 

관객 : 일반적으로 한국의 퀴어 영화는 섹슈얼하고 로맨틱한 주제를 다루는데 <위켄즈>는 음악을 소재로 한다는 게 좋았습니다. 인원이 많은 합창단을 대상으로 영화를 찍다 보면 개개인에게 일일이 출연 동의를 구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동하 : 일단 단체 숏을 찍으면 얼굴이 나와야 하기에 멤버 전부 다 출연 동의를 받았어요. 대신 '바스트 숏은 되지만 얼굴은 모자이크여야 한다’, '극장에서는 괜찮지만 공중파나 IPTV에서는 얼굴이 보이면 안 된다라는 식의 세부적인 계약을 했죠. 그런데 그런 걸 다 염두에 두면서 촬영을 하려니까 단체 숏에서 어떻게 카메라를 대야 하는지 난감한 거예요.(웃음) 그래서 일단 촬영을 진행하고 후반작업으로 모자이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진행되면 될 수록 처음에는 모자이크를 원했던 분들이 안 해도 괜찮다고 해주셔서 최종 편집본에서는 한 두 분을 제외하고는 모자이크 처리가 안 되어있죠.



관객 : 제목을 '위켄즈'로 한 이유가 있나요?

 

이동하 : 원래 계획했던 포스터의 카피문구가 사랑보다 짜릿한 우리들의 주말이었어요. 지보이스 연습을 주말에 해요. 평소에는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숨기지만, 지보이스라는 공동체에 모여서 서로 잡담을 하고 노래도 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주말인 거죠. 그 주말이 특별하다고 생각을 해서 제목을 <위켄즈>로 지었어요.


 



관객 : 김일란 감독님께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아까 A급 배우들과 퀴어 영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쌍화점>(2008)과 같은 대중영화를 보면 실제로 유명한 배우들이 퀴어를 다룬 영화를 촬영한 적은 있지만, 정작 영화에서 퀴어라는 소재는 두 배우의 파격 노출정도로만 소비되었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방향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 질문은,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할 때마다 정말 좋긴 하지만 우리만의 축제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동성애 관련 사안 법제화 등을 위해서는 더 많은 공감과 지원이 필요한데, 많은 이들의 관심을 얻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려운 질문이지만 이런 난관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김일란 : 60년대에 이태원의 한 남장여자와 파트너와 그들의 동생뻘 남장여자, 세 인물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린 적이 있어요. 서로 가족처럼 지내는 그 세 명이 미군에게 사기를 쳐서 검거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요. 기사로 접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 많은 이들이 그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오늘 이 곳에 오기 전 MBC 방송을 보는데 사장이 바뀌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더라고요. 방송에서 사형제도, 낙태죄 폐지,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내인식 조사보도가 나오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는 거의 찬반이 동일했고 동성혼에 관해서는 반대가 52퍼센트, 찬성이 48퍼센트로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어요. 이런 보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사안에 대한 실질적인 감각이 언론 보도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는 찬반의 차이가 크지 않더라도 혐오세력이 지나치게 많이 보도되다 보면 그 세력이 상상이상으로 크다는 착시효과를 발생시킬 수가 있으니까요. MBC의 오늘 보도를 보며 상황이 나름대로 긍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이런 인식을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EBS까칠남녀'처럼 방송에서 여성, 성소수자에 관한 의제를 보도하는 분들에게 지지를 보태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혐오세력이나 일부 기독교 관계자들에게 신상이 털리거나 피해를 입는 방송 관계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박기호 : 근래에 개봉한 <시인의 사랑>(2017)을 보면 양익준, 정가람과 같은 배우들이 출연했는데도 인물간의 에로티시즘이 거의 없었어요. 이런 경우는 긍정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세 분에게 마지막 인사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김일란 감독님께서는 곧 개봉 예정인 <공동정범>에 관한 한마디를 전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일란 : 인디스페이스 최다 관객작이었던 <두 개의 문>의 기록을 뛰어넘고 싶습니다.(웃음) 연말연초에 규모가 큰 영화들이 너무 많이 개봉하고 있어요. 그런 영화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니 힘이 들더라고요. 곧 있으면 용산참사 9주기가 됩니다. 125일 개봉하는 <공동정범> 많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전재우 : 추운 날에 오셔서 따뜻하게 이 자리를 채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영화를 통해 좋은 분들을 만나서 감사하네요. 마침 영화에 출연한 두 친구들이 제가 집에 혼자 갈 계획이라니까 저를 데리러 왔어요.(웃음)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동하 : 저는 감사할 분들이 너무 많네요. 지보이스도 그렇고 푸티지를 제공해주신 연분홍치마 활동가,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오늘까지 극장을 찾아와주신 관객 분들에게도 너무 감사합니다. <위켄즈>보다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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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한줄 관람평


이지윤 | 모금산 씨의 영화로운 순간들

박범수 | 결국 영화란 사람을 모으고 이어주는 것

조휴연 | 따뜻한 합의점이 만들어지다

최대한 | 통기타의 선율과 미스터 모의 일탈이 60년대 청년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새로움.

이가영 | 선하고 유익하고 따뜻하다.

김신 | 인간과 영화, 사물과 고요를 사랑한 이가 20세기의 공동체에 보내는 아련한 고별사 

남선우 | 조금만 더 버티자. 우리에겐 이런 영화가 있잖아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리뷰: 모금산 씨의 영화로운 순간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모금산 씨의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된다. 그는 면도를 하고, 작은 이발소에서 일을 하고, 수영장에 가고, 호프집에서 벽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강냉이를 집어먹으며 TV를 보고, 일기를 쓴다. 시종일관 무덤덤한 모습으로. 그러던 어느 날 마을 보건소의 의사로부터 위암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큰 병원을 가봐야 한다는 말에도 모금산 씨는 덤덤한 표정이다. 그리고 또 다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반복된다.

 




암이 의심 되는 상황에서도 영화는 극적인 흐름을 타지 않는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작품은 감정의 과잉을 피하며 인물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러한 거리는 인물들을 보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본다. 비극성이 도드라질 법한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때 카메라는 형상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그들을 비춘다. 이런 관조적인 카메라의 시선에 적당한 기분을 지닌 음악이 더해진다. 침묵이 주를 이루는 영화에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기타 선율은 작품이 어떤 감정으로도 치우치지 않게끔 돕는다. 카메라의 시선과 음악, 인물들의 침묵, 빛 바랜 흑백 영상은 계획적이고 짜임새 있게 결합하며 감정을 덜어낸다. 이 때문에 사람이 없는 텅 빈 공간을 바라보는, 무감정으로 애써 무장한 듯한, 그러면서도 적당한 유머를 잃지 않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주인공인 모금산 씨처럼 공허하고 외로워 보인다.

 


이런 공허함을 채우는 것은 바로 '영화'. 암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모금산 씨는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한때 영화를 찍었던 아들 스데반과 그의 여자친구 예원을 금산으로 불러 도움을 요청한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듯한 스데반은 아버지가 무슨 영화냐며 대놓고 툴툴거린다. 반면 예원은 모금산 씨의 시나리오에 관심을 보이며 그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진다.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묻는 예원의 질문에 수많은 고전 배우들의 이름을 줄줄이 꺼내놓는다. 모금산 씨가 가장 말을 길게 쏟아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영화에 필요한 소품과 의상을 준비할 때도 모금산 씨는 묘하게 가뿐해 보인다. 가뿐해 보이는 그의 움직임에서 그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해왔는지, 그리고 그 동안 영화가 어떻게 그에게 위안이 되어왔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렇게 완성된 모금산 씨의 영화가 크리스마스 당일 상영된다. 조촐한 상영회에 그의 지인들이 찾아왔다. 어색하게 떨어져 앉은 관객들을 앞에 두고 어색한 스데반의 인사말과 함께 영화가 시작한다.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하는 무성 영화다. 제법 능글맞은 모금산 씨의 연기와 그의 일상들이 어우러지며 영화는 스크린 안팎의 관객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안긴다. 관객들의 입가에 잔잔하게 번지는 미소는 어쩌면 그가 영화로부터 받았던 소소한 기쁨과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작은 기쁨과 위안이 될 수 있기에, 모금산 씨의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 영화(映畵)롭다.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에서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그의 반복적이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금산 씨는 상영회에 자리하지 못했다차가워 보이는 다인실 병동에서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커다란 창문을 등진 그의 뒷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허하고 쓸쓸해 보인다가만히 앉아있던 모금산 씨는 소품으로 쓰였던 사제 폭탄의 리모컨을 쥐고버튼을 무심히 툭 누른다잠시 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 밖에서 불꽃이 터진다반짝이는 밤하늘의 불꽃은 그의 얼굴 위로 아름답게 흩어진다이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에서 가장 영화적이고 환상적인 장면이다건조하고 빛이 바랜 일상 속에 영화가 선물한 이런 환상성은 모금산 씨에게도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도 위안을 안긴다.

 





모금산 씨는 스스로가 공허하고 외로운 사람이면서도 타인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위로가 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그들에게 말없이 위로가 되고 친구가 되어준다. 혼자 술을 마시지 말라고 손가락으로 잔을 붙잡아주고, 뜬금없이 로봇 춤을 추기도 하고, “자영 씨, 잘 자영이라는 썰렁한 농담으로 사람을 웃게 만든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기타 선율의 캐롤을 들으며, 어쩌면 모든 영화들이 모금산 씨와 닮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허함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빛 바랜 일상에서 그 자체만으로 소소한 기쁨과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제 폭탄을 삼킨 남자>처럼 외로운 누군가의 삶과 긴밀하게 맞닿아있다. 그렇기에 모금산 씨의 삶, 그리고 공허함을 마음 속 한 귀퉁이에 품고 사는 우리 모두의 삶은 영화롭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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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어지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  <초행>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12월 8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대환 감독

진행 봉준호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초행>은 사회초년생, 오래된 연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직 어리숙한 '수현'과 '지영'을 질책하지 않고, 선택의 결과를 운운하기 보단 경험을 응원하는 영화적 시선은 곧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태도로까지 이어진다. 봉준호 감독의 진행으로 김대환 감독이 함께 한 인디토크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봉준호 감독(이하 봉): 김대환 감독의 전작 <철원기행>을 보신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과반수가 보셨군요. 오늘은 <철원기행>을 봤다는 전제하에 GV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초행>은 섬세하고 한국적인 디테일이 충만한 영화이면서도 한편으론 굉장히 보편적인 영화에요. <철원기행>도 마찬가지고요. 외국인이 봐도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해외 영화제 수상 이력이 이런 부분을 입증해주고 있고요. 가장 단순한 질문부터 시작할게요. <초행>에 감독 본인의 얘기가 얼마나 투영 됐나요?

 

김대환 감독(이하 김): 영화와 저의 실제 모습이 닮아 있는 부분은 연애를 7년 동안 했다는 점과 인천이 배우자의 친가라는 점, 실제로 학원 미술 강사 경력이 있다는 사실 정도에요. 그 외에 인물의 성격 이라든지 가족 관계 등 세세한 부분은 모두 창작해낸 것입니다. 실제로 저의 양가 부모님은 화목하고 사이 좋습니다.(웃음)

 

: 시나리오를 처음 쓰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해요. <철원기행>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이 마치 <초행>의 '수현' 같았어요. 결혼을 전제로 고민하는 불안정한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철원기행>과 연관시켜 설명해주시죠.

 

: <철원기행> 편집을 하면서 '수현'의 다음 상황이 궁금해졌어요. 실제로 7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결혼 이야기가 슬슬 나오고 있었고, 스스로 돌이켜봤을 때 '수현'보다 제가 더 불안한 감정이었어요. 영화를 한 편 찍었지만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고 결혼함으로써 생기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요. 근데 저 뿐만 아니라 제 또래의 친구들이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 고민들을 듣는 순간 결혼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결심을 하고 시나리오를 써 나가는데, 당시 저는 결혼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상당히 오만한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시나리오에 제시된 큰 줄거리 안에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합이 중요했습니다.

 

: 소재와 줄거리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이 보였어요. 김대환 감독의 경우 재료를 손질할 연장을 고르기 전까지 재료 자체를 몇 시간 동안 가만히 지켜보는 느낌이에요. 그런 섬세함이 영화에서도 나타나요. 극적인 상황이 아님에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시나리오를 보면 구조화되어 있고 상당히 정제되어 있어요. 현장에서 연출 방식은 어땠나요?

 

: 개인적으로 영화에 다큐멘터리 느낌이 묻어났으면 좋겠다는 연출적 지향이 있었어요. 스토리 안에서 국면이 전환되는 지점만 정해놓고 그 외에는 항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테이크를 반복하며 찍어 나갔어요. 처음 가족의 식사 장면을 보면 아시겠지만 어머니가 하는 대사들은 제가 아무리 고민해도 나올 수 없는 표현들이 있거든요. 정말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대사예요. 이런 장면들은 첫 테이크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식사 장면의 첫 테이크만 45분을 촬영했어요. 여러 번 반복했고 정확한 타이밍을 찾아가며 가장 좋았던 것을 취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 촬영 도중에 씬 자체가 새로 추가되거나 연기를 통해 즉흥적으로 표현된 것이 있나요?

 

: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가 일출 장면이었는데, 원래 그 장소에서 일출을 담으려고 하지 않았고 두 컷으로 나누어 찍으려고 했어요. 일출 촬영을 새벽 3시부터 준비했는데, 계속 촬영하던 중에 칠흑같이 어두웠던 하늘이 점점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과정이 우연히 한 테이크에 담기게 되었어요. 일출의 과정이 한 번에 담겼다면 그 다음 장면을 굳이 넣지 않아도 되겠구나 판단했어요. 최종적으로는 너무 마음에 드는 장면입니다.

 

: 하루 중 일출과 일몰은 딱 한번의 기회인데, 롱테이크를 앞두고 배우들이 많이 초조했을 것 같아요. 그 장면에서 김새벽 배우가 "무서워"라고 외치는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에 표현된 대사였나요?

 

: 처음에 그런 액션과 대사는 전혀 없었어요. 촬영 중간 30분쯤 쉬는 시간을 가지며 얘기를 했고, 말씀하신 것처럼 딱 한 번뿐인 기회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서 김새벽 배우가 더욱 집중을 했던 것 같아요. 배우들의 자유의지가 절실했던 부분이기도 했고 동선 또한 전혀 정해놓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저도 그 당시에 김새벽 배우의 즉흥적인 액션을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해가 점점 뜨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지영이 차에서 나갔고 그런 대사를 내뱉은 것 자체도 굉장히 놀라웠어요.

 





: 캐스팅 과정도 궁금합니다. 사전에 김새벽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신 건가요?

 

: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김새벽 배우와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시나리오가 나오자마자 바로 전달해 드렸습니다. 김새벽 배우는 해외 영화제에서 처음 만나 우연히 대화를 나누었는데, 많은 전작에서 굉장히 착하고 지켜주고 싶은 여성으로 출연하잖아요. 실제로도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겼어요. 그렇지만 김새벽 배우에게도 분명히 극단적인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이면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캐스팅을 결정했어요. 또 가장 영화적으로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목소리였어요.

 

: 엄마와의 대화 장면에서 보면 암전 상태에서 스위치가 켜지고 '지영'이 한 덩어리처럼 누워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저는 이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그런 액팅 지시를 따로 했나요?

 

: 최대한 엄마와 엮이고 싶지 않고 대화를 하기 싫다는 모습으로 자고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고 그렇게 표현하길 부탁 드렸어요. 사실 그 앞의 숏이 굉장히 길어요. 편집 할 때 보니 김새벽 배우가 어둠 속에서도 계속 뒤척거리면서 움직이고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사실 초반엔 지금 영화 속의 카메라 워킹을 생각하지 않았고 엄마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워킹으로 장면을 구성했어요. 하지만 '지영'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표현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지금처럼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테이크를 몇 번 찍었어요. 빛이 변화하는 순간, 그 간극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좋더라고요.

 

: 조용한 가운데 흐르는 긴장감이 정말 강해요. 수현 역의 조현철 배우의 캐스팅 과정도 궁금합니다.  

 

: 조현철 배우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개인적인 호기심이 들었고 전작들을 봤을 때 캐릭터 설정인지 본인 자체인지 헷갈릴 정도로 굉장히 개성 강한 연기를 하더라고요. 연출도 영민하게 하고 실제로 만났을 때도 독특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 실제 모습도 '수현'과 비슷한가요?

 

: '수현'과 평소 말투는 비슷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수현'보다 훨씬 말수가 적어요. 연기 디렉팅을 할 때도 제가 이런저런 요구를 하면 고개만 끄덕였어요. 그 정도로 조용한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기대했던 것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었어요.

 

: 배우들과 캐릭터에 대한 기본적인 컨셉 내지는 연기 디렉팅 같은 경우는 배우들과 어떻게 맞춰 나간 건가요?

 

: 촬영 전에 대화의 시간을 굉장히 많이 가졌어요. ‘수현이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실제로 대안을 모색해 나가기도 했어요. 결론적으로는 영화 속 '수현'이 시나리오 상의 '수현'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고 귀여워졌어요. 그런 부분은 제가 생각해낸 것 보단 조현철 배우가 능동적으로 표현한 부분이었죠.

 



 

: 임신테스트기에 대해 방 안에서 두 모녀가 얘기하는 장면이 참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 순간을 두고 어떤 의논을 했나요?

 

그 어떤 장면보다 얘기를 많이 나눈 순간이었고, 실제 테이크도 가장 많이 갔어요. 사실 두 모녀의 대화 내용과 '수현'과 '지영'이 어떻게 집을 박차고 나갈 것인지 모두 정해져 있었어요. 하지만 임신테스트기에 대한 이야기를 과연 어떻게 꺼낼 것인가가 정말 고민스러웠어요. 잘못하면 상투적인 분위기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었거든요. 촬영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확신이 없었는데, 갑자기 문득 조경순 배우님(지영 어머니 역)께서 '팔순 잔치에 수현이 데려 오지마'라는 대사를 하셨어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였지만 너무 사실적으로 다가왔어요. 또 제 입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걸 상상하니 너무 서운하더라고요. 그 순간부터 이 씬의 목표 지점이 명확해졌어요. 한편으론 기분이 좋더라고요.

 

: 우리의 대배우 기주봉 선배님도 나오는데, 그네에서는 어떻게 넘어진 거예요? 이걸 슬랩스틱이라고 해야하는 건지혹시 지시한 건가요?(일동 웃음)

 

: 이 장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어요. 조경숙 배우님이 그네 씬을 촬영할 때 꼭 보러 오겠다고 하셨거든요. '지영'과 엄마의 대화 장면을 7시간 정도 촬영했는데, 기주봉 배우님도 그렇게 힘겹게 촬영하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신도 언젠가 한번 당하는 꼴을 보겠다’라고.(웃음) 실제로 촬영 현장에 찾아오셨어요. 아무튼 원래 제 계획은 그네를 타다 장인의 신발이 벗겨지고 그 신발을 다시 신겨주려는 어색한 사위의 모습이었어요. 엉거주춤하는 '수현'의 모습을 설정하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기주봉 배우님께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신발이 벗겨지게 할까 고민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실수로 넘어진 거죠. 모든 스태프들이 놀라서 뛰쳐 나가려고 하는 순간에 저와 피디가 막아 섰고, '수현'이 자연스레 대처하면서 결국엔 모든 촬영 통틀어서 가장 빨리 끝난 장면이 되었습니다.(일동 웃음)

 

: 그런 상황은 반복하면 진짜 즐거움이 안 나오잖아요. 보면서도 저거 왠지 실제 상황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극영화 속에 숨겨진 다큐멘터리 같은 순간이죠. 상대 배우의 반응은 어땠나요?

 

: 조현철 배우가 굉장히 영민하다고 느낀 적은 그 전부터 굉장히 많았지만, 한번 더 놀란 순간이었어요. 실제 상황에서도 프레임 밖을 안 벗어나고 집중해서 연기를 이어 나가길래 나중에 슬쩍 물어 봤거든요. 본인은 비상 상황을 항상 생각하고 준비한다고 답하더라고요. 사실 그네 장면 외에도 그런 순간이 한 번 더 있었어요. 차를 타고 삼척으로 넘어가면서 '수현'이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데, 딱 그 타이밍에 시커먼 까마귀 떼들이 날라 가잖아요. 그 장면도 우연이었어요. 삼척과 인천을 오가는 장면은 실제로 그 거리를 운전해 가면서 촬영했기에 촬영 분량이 굉장히 많았어요. 하지만 까마귀 떼를 목격하는 순간은 앞 뒤 컷에 상관없이 이 부분은 꼭 써야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 <철원기행>의 카메라가 고정적이고 프레임도 안정적인 반면 <초행>은 대부분의 장면이 핸드헬드로 촬영됐어요. 그래서 아까 <초행>8분짜리 일출 장면이 이질적이라고 얘기했는데, 그 씬 외에는 모두 핸드헬드인거죠? 왜 핸드헬드 기법을 선호했는지 궁금해요.

 

: 사실 8분의 일출 장면도 핸드헬드였어요. 다만 잘 버티고 있어서 흔들림이 적었던 거죠. 촬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촬영감독님과 계속해서 영화 컨셉에 대해 의논했어요. 제 의견은 스토리보드를 전혀 짜지 말고 촬영에 들어가자는 것이었고, 배우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동선을 그리는지에 대해서는 제약을 두지 않았으니 열심히 콘티를 짜더라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때문에 트라이포드를 아예 안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핸드헬드를 통해서 두 사람의 불안감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 <철원기행>을 보면 고정된 장면들이 의도적으로 어떤 조형미를 강조하려고 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묘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주거든요. 특히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눈 올 때 담배를 피우는 시퀀스의 미장센을 보면 가히 백미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감독님께서 가능성을 열어놓고 배우에게 맡긴다, 뭐 이런 표현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환 감독 본인이 가진 조형적인 욕구나 연출적 지향이 있잖아요. 그런 욕구들이 터져 나오려고 할 때 어떻게 억누르는지, 혹은 욕심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건지 궁금합니다.

 

: 개인적으로 담고 싶었던 미학은 이었어요. 어떤 서사를 완성하고 연출하든 간에 일몰과 일출의 장면을 꼭 넣고 싶었고요. 처음 시나리오를 기획했을 당시에도 그 지점과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순간에 주안점을 두고 만들어 나갔던 것 같아요.

 

: 감독님께서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에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잘 드러나요. 철원과 삼척은 감독님께 어떤 장소인가요?

 

철원은 어머니께서 잠깐 근무하셨던 곳인데, 제대하고 나서 가족끼리 하루 동안 한겨울에 관사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어요. 그때 기억이 인상 깊게 남아 있었고 영화를 하며 자연스레 떠오른 것 같아요. 그리고 삼척은 외가입니다.

 

: 강원도만큼 자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장소는 없을 것 같아요. 다음 작품들도 계속 강원도에서 촬영할 건가요?

 

다음 작품을 1월달에 춘천의 산속에서 촬영할 계획이 있고요. 내후년 봄에는 또 춘천을 배경으로 준비 중에 있습니다.

 




관객: 주인공이 각자의 부모님을 뵈러 가는 과정이 험난하잖아요.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험난함도 느낄 수 있어서 그 과정들이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힘든 과정을 상징적 의도로 설정한 건지 궁금합니다. 한가지 더 궁금한 점은 김새벽 배우가 극중에서 "같이 살아봐도 모르겠으면요?" 질문하는 부분이 있는데, 답을 듣지 못한 채 영화가 지나 가잖아요. 질문에 대한 감독님의 답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시나리오 상에서도 그렇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지점은 두 인물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때마다 굉장히 힘든 상황이 돼야 한다는 점이에요비록 삼박 사일 동안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결혼을 마음먹고 현실에 부딪히게 됐을 때 또 하나의 산을 만난다고 생각하거든요아직 결혼한지 50일밖에 안 됐고 깨가 쏟아지는 중이라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확히 할 수는 없어요.(웃음다만 제 경험을 토대로 답변 드리자면 저는 한번도 제 인생에서 무언가를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계속해서 도망치고 회피한다는 걸 느꼈고, 결혼에 대해서는 스스로 직면하고 싶었던 감정도 있었거든요고민 끝에 <초행>을 시작했고 영화를 다 만들고 나서 보니까 결혼을 해도 되겠다는 작은 용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 삶과 영화를 일치시켜서 큰 무언가를 극복 해냈군요정말 멋지네요.



관객: 제 또래 청년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테이크를 많이 나누지 않은 것 같은데요, 앞서 답변하셨듯이 다큐멘터리 느낌을 내기 위해 그런 방식을 택한 건지혹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 이 영화를 시작할 때 배우 분들에게 즉흥적으로 만들어나갈 것이고 매 순간 드는 궁금증은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어쨌든 컷을 나누면 배우들은 반복연기를 해야 하잖아요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원해서 그런 연출을 택했는데컷을 나누고 반복연기를 시킨다는 것을 제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가장 좋은 카메라 위치 또한 사전에 정해놓지 않아도 촬영을 진행하며 찾아낼 수 있으니까 한 테이크로 가자고 정했습니다.

 

: 그렇게 작업했을 때 편집 과정에서 따라오는 어려움도 있잖아요편집에 있어 여러 가지 제약들이 생길 수 있는데편집 과정은 어땠나요?

 

: 빼고 싶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어요좀 더 결단력 있고 과감해야 하는데이건 좋고 저건 아깝다는 제 사적인 감정들과 계속해서 싸워야 했어요전주국제영화제에서 제일 먼저 선보여야 했는데출품 일주일 전까지도 편집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관객: 탕수육과 짬뽕을 먹는 씬의 마지막 부분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들려요그 장면이 어떤 의미가 있나요?

 

: 그 장면은 제가 꿈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씬입니다부동산 문제로 많은 분들이 2년에 한번씩 이사를 다니잖아요서울 인근에 방을 잡아도 시간이 지나면 방값이 올라가고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죠그 상황이 수현과 지영에게는 미래가 될 수도 있고 현재 혹은 과거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어쨌거나 익숙해 지기도 전에 떠나야 한다는 패턴이 반복되고, 이에 대한 서운함의 감정이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두 사람 중 누구의 꿈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임신에 대한 불안감이 꿈에 투영되는 상황을 아기 울음소리를 통해 표현했습니다.


 

관객후반부 광화문 시퀀스와 관련해서 사람들은 카메라가 있으면 쳐다보기 마련인데 렌즈를 응시하는 분은 많지 않아 보였어요어떻게 눈에 안 띄게 촬영했는지 궁금해요.

 

: 저와 촬영감독, 사운드감독만 촬영에 들어갔는데 그 당시 광장 주변에 카메라가 굉장히 많았잖아요. 영화 촬영에 쓰이는 덩치가 큰 카메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그 누구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더라고요. 방송국에서 흔히 쓰는 카메라이기도 했고요. 운이 좋았습니다






극중 수현과 지영은 시종일관 길을 잃고 헤맨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다급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서로의 존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이 방황할 땐 다른 한 사람이 방향을 일러주고 마음을 잡아주기도 하며 삶이란 초행길을 걸어간다. 사회초년생 예비 부부, 사회가 이름 붙인 그들의 신분은 마냥 불안정해 보이지만, <초행> 속 수현과 지영은 둘이어서 온전해 보인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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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연애 이야기  인디돌잔치 <연애담>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11월 28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현주 감독 | 김보라 프로듀서 | 배우 이상희, 류선영, 박근록, 박주환, 임성미, 한사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두 사람이 낭만적인 첫 만남을 한다. 만남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달콤한 하루하루가 지속된다. 그러다 그들은 이별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찾아온 외로움과 공허함의 끝자락에서 둘은 재회한다. 특별할 것 없는 두 여성의 연애담이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가장 보통의 연애이기에 그것은 온기를 지닌다<연애담>1년 만에 돌아왔다. 38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비롯한 많은 선물들과 함께였다. 객석은 만석이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계자들이 자리했다. <연애담>의 인디돌잔치는 그야말로 잔치분위기였다.

 


 



김현민 영화 저널리스트(이하 진행): 인디돌잔치로 돌아온 소감 한 말씀 부탁 드린다.

 

이현주 감독: 이렇게 일 년 동안 <연애담>이 이어지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아무래도 관객 분들이 애정을 많이 주셔서 이런 자리들이 마련되는 것 같다. 일 년 동안 많은 곳을 다녔는데, 문득문득 떠올려 보면 굉장히 좋은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행: 김보라 프로듀서님은 오늘이 첫 GV 참석이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김보라 프로듀서: 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영화가 매진되었다는 얘길 듣고 놀랐었다. 그 후로도 관객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다. 정성을 쏟은 만큼 공감을 얻고 사랑 받았던 것 같다.

 

진행: 연애 영화의 하이퍼리얼리즘이라는 평이 있지 않나. 97번을 보았다는 분도 있고.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로 굉장히 큰 사랑을 받았다

 

이상희 배우: 작년 청룡영화제에서 <우리들>(2015) 윤가은 감독님이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너무 신나서 <연애담> GV를 윤가은 감독님 축하로 시작했었다. 내년에는 우리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자랑스럽게 이현주 감독님이 쟁쟁한 후보들을 사이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게 되어 좋다. 한결같이 응원해주고 애정해준 관객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류선영 배우: 영화계에서 여러 상을 휩쓸고 있어서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상희 배우도 수상은 못 했지만 후보에 오르고 좋은 연기를 계속 보여주고 있어서 함께한 파트너로서 정말 영광이다. 관객 여러분의 지속적인 사랑이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현주 감독: 상을 받을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 이상희 배우랑 나란히 앉아서 시상을 하러 나온 박보영 배우가 너무 예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웃음) 정말 남의 일처럼 생각하다가 받았다. 독립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상희 배우가 상을 못 받은 게 개인적으로 많이 속상하고 아쉬웠다. 그게 마음에 걸려 수상소감에서 이상희 배우만 이야기 한 거다. 류선영 배우를 비롯한 많은 배우들 이야기를 못 해서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해 기록에 남기려고 한다.(웃음) 다른 영화제들에서는 다 꼼꼼히 이야기했는데, 제일 크게 TV에 나갈 때 엄청난 실수를 해버렸다. 다음날 류선영 배우에게 연락을 했는데, 굉장히 짓궂게 나를 놀렸다. ‘지수200배 정도 되는 놀림이었다.(웃음)

 

이상희 배우: 너무 긴장되는 자리였다. 감독님이 수상하는 장면을 핸드폰으로 촬영했는데, 너무 떨었는지 다 찍고 보니까 영상을 2초만 찍었더라.(웃음)

 

진행: 이상희 배우님은 신인여우상 후보로 올랐다. 시상을 앞두고 다섯 명의 후보가 화면에 비치는데 엄청 부끄러워하더라. 어떤 기분이었나?

 

이상희 배우: 그렇게 비춰줄 줄 몰랐다. 알았으면 준비를 했을 거다.(웃음)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런 태도가 부끄럽다. 만약 다음에 그런 기회가 있다면 당당하게 있으려고 한다.(웃음)

 





진행: 박주환 배우님께 질문이 있다. 캐릭터를 받았을 때 어떤 식으로 방향을 설정했는지 궁금하다.

 

박주환 배우: 처음 병기라는 역할을 받았을 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감독님께 두 주인공의 사랑이 잘 흐르도록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특명을 받았다. 중심을 가지고 가되, 너무 무겁지 않고 현실에 있을 법한 개구진 선배를 상상하며 인물을 연기했다. 조금 허세가 있지만, 비호감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떤 것들을 연습해서 준비해가면 잘 수용해주셔서 더 신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완급조절을 감독님께서 해주셨다.

 

진행: 박주환 배우님을 캐스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현주 감독: 영화가 뒤로 가면 분위기가 많이 다운되기 때문에 앞에서 병기세아를 통해 밝은 톤을 보여주려고 했다. ‘톰과 제리같은 느낌을 원했다. 촬영감독님이 박근록 배우, 박주환 배우와 함께 <런던유학생 리차드>(2010)라는 단편 영화를 작업했다. 촬영감독님이 굉장히 과묵해서 어떤 배우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이 두 배우를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기에 만나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디션 때에도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해 오셨다. ‘어 병기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처음엔 원래 장병기 같은 사람인가보다란 생각도 했는데, 알고 보니 모두 준비해 온 것이었다. 현장에서도 정말 많은 애드리브가 버전별로 있었다. 그만큼 준비를 많이 해 왔고 현장에서 날아다니며 연기를 해줬다.

 


진행: 임성미 배우님께 질문 드리겠다. ‘영은이란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울 수도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유일하게 영화에서 두 인물의 사랑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기 때문이다. 인물의 선을 어떻게 잡았나?

 

임성미 배우: 너무 어렵게 접근하려 하지 않았다. 워낙 시나리오가 꼼꼼하게 완성돼 나왔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사랑을 계속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인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영은이라는 인물이 윤주를 밀어내줘야 그 다음 단계에서 윤주의 캐릭터에 힘이 더 실리기 때문에 기능적인 면에서는 그렇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결을 다르게 하려고 생각하진 않은 것 같다. 어차피 다 사랑에 관한,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이니까완급조절을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이상희 배우: <연애다큐>(2015)를 통해 임성미 배우를 처음 봤는데 깜짝 놀랐다. 너무 연기를 잘해서 이 배우를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감독님께 추천했다.

 

임성미 배우: 대본 리딩을 하는 날 이상희 배우님이 어딘가에서 기다리다가 말을 거셨다. 팬이라고.(웃음

 

이현주 감독: 이상희 배우가 먼저 캐스팅이 된 상황이었다. 어쨌건 영은윤주는 편안해야 하고 호흡 자체가 잘 맞았으면 좋겠고 둘의 이미지가 겹치지 않으면서도 친구처럼 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진행: 굉장히 생기 있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이상희 배우, 임성미 배우, 한사명 배우가 치킨을 먹는 장면이다. 한사명 배우에게 그 장면을 찍을 때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한사명 배우: 감독님께서 제 전작을 보셨고 배려를 굉장히 많이 해주셨다. 여러 차례 찍은 장면인데, 감독님께서 더 편하게 하라고 말씀해주셔서 장면 자체가 즐겁게 나왔다. 긴장을 많이 했지만 임성미 배우와 이상희 배우가 잘 맞춰줘서 즐겁고 재미있게 찍었던 장면이다.

 






진행: 김보라 PD님께 질문을 드리려 한다. 이런 독립 장편 영화를 이 정도의 예산으로 찍는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생한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다.

 

김보라 프로듀서: 육아도 못하고 가정은 엉망이 되고.(웃음) 제작비 때문에 집안 살림을 현장에 다 가지고 왔었다.

 

이현주 감독: 제일 좋아한다고 누누이 말하는 장면인 골목을 올라가는 장면에서 지수가 입은 코트가 김보라 프로듀서의 코트다. 영화 의상에 스태프들의 옷이 많은데, PD님의 옷이 지수에게 많이 갔다. 지수의 방이 세트였다. 그래서 PD님의 집에 봉고를 가지고 가서 물건을 그냥 다 집어넣었다. 잔뜩 가지고 와 세트에 넣어보고 아닌 건 빼다보니 집이 초토화되었다. 심지어 PD님은 그때 육아를 하셔야 했는데, 영화 일은 항상 정시에 끝나지 않는다. 고생을 많이 하셨다.

 

김보라 프로듀서: 서로 말을 못 걸었다.(웃음) 이 영화는 감독님의 영화니까 바깥의 부분을 끝까지 버티고 지키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내가 지키고 있어 끝까지 버텼다는 친구들도 있어서 , 이게 내 역할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현주 감독: 아카데미 장편은 영화 현장에서 굉장히 악명이 높다. 엄청난 저예산인데 독립영화라는 이름으로 예산 이상의 것들을 뽑아내려고 하는 감독들의 욕심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프로듀서를 구하러 다녔는데 계속 거절을 당하고 시간만 흘렀다. 연말까지 예산 같은 문제들을 다 마무리 지어야 했다. 김보라 프로듀서님은 아카데미 PD 전공 선배다. 나중에 극적으로 합류하게 되었는데, 시간에 쫓기고 준비가 안 되다 보니 현장에서 내가 굉장히 예민했다. 내가 급하니까 남들도 내 마음을 다 알 거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회차를 어기고 싶어지고 시간을 조금 더 주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단 마음에 현혹되기가 쉬웠다. PD님이 정말 대단하고 멋있는 부분은 '우리는 독립영화니까 서로 약속을 지켜야 하고 끝나기로 한 시간을 지켜야 한다'고 항상 옆에서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서운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나도 독립영화 현장 스태프였고 모두가 귀한 시간을 내서 오는 건데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그때 PD님이 그렇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나쁜 짓을 더 많이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프로덕션이 자신할 수 있는 건 회차를 지켜서 작업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 회차가 줄었다. 대신 날짜만 하루 미뤄졌는데, 그때 PD님과 조감독님이 스태프들에게 죄송하다는 양해를 다 구한 다음 페이를 드렸다고 알고 있다. 시작하는 사람이 욕심만 부리기 딱 좋은 과정이었는데, PD님이 어느 정도 전체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아무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관객: 영은이 영화 초반에는 털털하고 내추럴한 모습이었다가 후반에는 냉랭하고 시크한 모습을 보이며 말투와 행동이 확 바뀌는 게 인상 깊었다. 어떻게 연기했는가?

 

임성미 배우: 윤주의 감정을 따라가야지만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보단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그 관계를 지켜보는 1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영은이라는 인물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을지 고민했다. 윤주의 입장을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관객: <연애담>은 가끔씩 꺼내보고 싶은 영화다. 배우님들과 감독님은 관객들에게 <연애담>이 어떤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류선영 배우: 가끔씩 꺼내볼 수 있는 영화로 다가가길 바랐는데, 관객 분들이 그렇게 봐주고 있는 것 같다. 딱 지금 해주신 말씀 그대로다. 아 맞아, 그런 겨울이 있었고, 그런 영화가 있었지’하며 꺼내볼 수 있는 일기장 같은 영화이길 바라고 있다.

 

이현주 감독: 내가 혼자 앞에 나와 지휘한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실 무수히 많은 스태프들과 함께 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PD님이 나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연애담>이 만들어졌을지는 불투명하다. 누군가 현장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바라봐주지 않았다면 <연애담>은 없었을 것이다. 상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잘했다고 착각할까봐 지금 이 영화를 보는 일은 내게는 좀 어렵다. 이렇게 좋은 팀과 이 영화를 오랫동안 극장에서 상영한 경험,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1년이 지났는데도 함께하는 경험은 누리기 어려울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워질 거란 생각도 든다. 이제 이 영화를 꺼내보는 게 개인적으로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류선영 배우: <연애담>이 그리워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계속하고 있는 기분이다.(웃음) 어제도 여기 있었던 것 같다. 내일도 왠지 극장에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아직은 그립다기보단 연결되고 있는 <연애담>인 것 같다.

 


관객: 지수윤주와는 다른 퀴어 캐릭터들을 생각해둔 게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배우 분들은 혹시 배우로서 맡고 싶은 다른 버전의 퀴어 캐릭터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이현주 감독: <연애담>은 데뷔작이지만, 두 번째 영화를 위해서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 되었다. 한국 사회가 바뀌면 좀 더 다르게 살고 있는 윤주지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윤주지수50살 정도 되었을 때 각자 살고 있을지, 아니면 할머니가 되어서 같이 살고 있을지 상상하는 게 재미있다. 몇 십 년 지났는데 아무도 안 만들고 있으면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다.

 

임성미 배우: 하나 있다. '헤드윅' 트렌스젠더 같은 역할을 맡아보고 싶다. 그런 캐릭터를 여자는 하지 않고 있지 않나. 진심으로 욕심이 많이 난다.

 

이상희 배우: 자주 이야기했는데, <해피 투게더>(1997)의 장국영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

 

류선영 배우: <꿈의 제인>(2016)을 보고 나서 제인같은 역할을 맡아보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임성미 배우님과 비슷한 생각인 것 같다. 그리고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윤주지수의 나중의 모습, 마치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처럼 30년 뒤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진행: 이제 마무리 인사를 부탁 드린다.

 

박근록 배우:이 영화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청룡영화상 채점표를 봤는데, 네티즌 투표 부분도 있더라. 아마 우리가 상을 받았던 것도 관객 분들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애담> 10주년 때도 이렇게 모이지 않을까?(웃음) 사랑해주셔서 감사 드리고 더 열심히 하는 박근록이 되겠다.

 

박주환 배우: 평일이고 날도 추운데 멀리서 여기까지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건강하시고, 계획하는 일들을 모두 이루셨으면 좋겠다. 주신 사랑을 잘 기억하며 교만하지 않고 착각하지 않고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할 테니 행운을 빌어주시라.

 

임성미 배우: 시간 내어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영은이라는 인물을 이렇게 조금이나마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연애담>을 가끔가다 꺼내보면 추억에 많이 잠길 거다. 많이 봐주시라. 앞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해서 관객 여러분들과 더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 테니 지켜봐 주시라.

 

한사명 배우: 최근 <연애담>에 나왔던 제 모습을 보고 좋았다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그만큼 <연애담>이 뜻 깊은 작품이었던 것 같다. 1주년에 객석을 이렇게 꽉 채워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연애담>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해주면 좋겠다.

 

류선영 배우: 정말 감사하다는 이야기밖에 못 드리겠다. <연애담>으로 인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고 좋은 겨울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원래 겨울에 작업을 안 한다. 감독님께도 처음에 이야기했었다. 원래 겨울에 작업을 안 한다고.(웃음) 그런데 <연애담> 덕분에 올해와 내년에도 겨울에 작업할 수 있는 좋은 시발점을 마련하여서 여러분께 정말 감사 드린다. 앞으로 사계절 내내 열심히 일하는 배우 류선영이 되겠다.

 

이상희 배우: 관객 분들 덕분인 것 같다. 정말 감사 드린다. 이 영화를 통해서 내가 이렇게 많이 얻어가도 될지 가끔은 무섭기도 한데, 그냥 기쁜 마음으로 감사히 받겠다. 와주셔서 감사하다.

 

김보라 프로듀서: 2년 전쯤에 처음으로 점을 봤다. 우리 영화가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어봤는데, 상복이 없다고 했다.(웃음) 올해 개인적으로 조금 어려운 한 해였는데, 이렇게 관객 분들의 사랑과 관심이 뭔지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이현주 감독: <연애담>은 '내가 도와줄게'가 아니라 '내가 해볼게, 우리 같이하자'고 모여 시작한 사람들이 만들었다. PD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연애담>을 통해서 처음 장편 작업을 했다. 배우 중에도 그런 분들이 있다. 시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이 영화가 긴 기간 동안, 그리고 개봉도 못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개봉 1년이 지나서도 관객 분들을 상영관 가득 채웠다. 잘 못 한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지 않았나 싶다.함께 지켜보면서 다음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싶다. 관객 분들이 없었으면 좋은 기운은 없었을 거다. 이 자리에 계셔주셔서, 영화를 봐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하다.

 


 




인디토크가 끝나고 <연애담>의 팬들이 선물하는 예쁜 케이크가 전달되었다. 케이크를 선물 받은 감독과 배우들은 웃음 지었다. 인디돌잔치는 마무리되었지만, <연애담>이란 따뜻한 영화는 언제나 관객들의 곁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