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개봉으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할머니의 먼 집>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3615





<할머니의 먼 집> 리뷰: 당신이 멀어져가도 변하지 않을 마음을 담아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사랑하는 할머니가 어느 날 자살을 시도했다” 이 영화에 이보다 강력한 문장이 있을 수 있을까. 나(이소현 감독)를 키워준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할머니가 계신 화순으로 내려가 그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먼 집>은 ‘할머니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카메라에 담긴 그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따스하다. “밥은 묵어쪄?” 묻는 할머니와 “잉, 먹었지.”하는 손녀의 대화에서 따뜻한 애정이 비친다. 할머니가 잡초를 캐는 모습, 낮잠을 주무시고 약을 챙겨 드시며 “요놈 하나 묵어”라며 나에게 카스테라를 내어주는 모습. 할머니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애정이 뚝뚝 흘러넘치고 이를 담아내는 카메라 역시 그렇다. 마치 일기와도 같은 사적인 기록임에도 보는 이는 영화를 따라 울고 웃게 된다. 





왜 죽으려고 했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성가신게”라고 답한다. 죽음은 할머니에게는 가깝고 손녀인 나에게는 가깝지 않아서 할머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가족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듯 죽음도 그러하기에, 나는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저 상처를 치료해드리고 가족 몰래 영양제를 놔드리고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이 영화는 특정한 메시지를 위해 설계된, 관객을 설득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할머니와 할머니에게 가까워지는 죽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나에게 가장 따뜻했고 다정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그 정서를 공유하는 영화다. 아흔 셋,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으나 나는 아직도 할머니, 할머니와 함께하는 삶을 사랑한다. 그러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도 이 기록으로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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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한줄 관람평

송희원 | 예술, 예술가 '진짜'로 거듭나기

이현재 | 고유성이라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

박영농 | 블랙코미디 - (스릴러) - 멜로드라마

이지윤 | 허상과 본질 사이에서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최지원 | 더 이상 내가 아니게 설계된 예술 속 '나'와 그 속에서 버텨내는 진짜 '나'의 블랙코미디

김은정 | 고상한 예술가인 척 하기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리뷰: 고유성이라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젤’(류현경 분)의 첫 모습은 당황스럽다. 덴마크에서 귀국했다는 그는 행인에게 담배를 빌리며 들고 있는 아메리카노에 대해 비판한다. 아메리카노의 기원을 알고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에스프레소를 마셔보라고 권유한다. 행인은 본인의 담배를 다 피우자마자 그 자리를 떠난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탄 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택시기사의 수다와 음악취향에 ‘다른 걸로 틀어주실 수 있냐’고 불만을 보이던 그는 본인이 입을 열 기회가 주어지자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낸다. 오늘날의 미술계는 예술가가 멸종하고 사기꾼들만 넘쳐나는 오염된 곳이라 이를 정화할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택시 또한 그가 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집 앞에서 그가 처음 마주하는 것은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받은 미술대회 장려상 상장이다. 이후 어머니와 친구를 만난다. 이 만남들에서 그가 확인하는 것은 그의 능력이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젤의 첫 모습은 곤궁한 자신의 상황을 환상으로 합리화하려는 유아적인 에고이스트로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입사하려던 회사로부터 거부의 제스처를 확인한 그는 (비록 환상 속이기는 하지만) 그 제스처에 답한다. “저는 이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전생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아티스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첫 대답이다. 그의 대답은 ‘나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한 가지 주장을 은연중에 형성하고 있다. 그는 앞서 본인이 제시한 주장을 몸소 증명해보이겠다는 듯, 미술계 인사들이 모인 회식자리에서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가 ‘박중식’(이순재 분)에게 귓속말로 “선생님 그림 되게 과대평가 받은 거 아세요? 쪽팔린 줄 아세요.”라고 면박을 준다. 그러자 박중식은 “그런가?”라고 답한다. 이 대답은 그의 말을 반박하진 않지만, 참/거짓의 문제를 그에게 되돌림으로서 주장을 닫아버리는 기능을 한다. 결국 참/거짓의 문제는 그 안에 머무르고 발화되지 않는다.


그의 진술은 왜 그 안에만 머무르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필자는 그가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재범’(박정민 분)이 그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그의 작품으로 인해 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작가인 지젤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작품들을 자신의 갤러리로 가져온다. 재범은 그를 미술계 인사들의 공적인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박중식 앞에서 그를 “그림은 좋은데, 작가가 좀 그래요.”라고 평가한다. 이에 박중식은 “작가가 중요한가? 그림만 좋으면 됐지.”라고 답한다. 그리고 곧바로 그림을 산다. 이는 박중식이 지젤의 그림이 가진 가치를 알아보았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재범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후배 양성”이라고 답하기 때문이다. 가르침이 타자의 변화를 일으키는 목적을 가진 행위라 생각하고 박중식의 대답에 접근해보자. 그는 유일무이한 존재에게 필요한 변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양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가?



유일무이한 존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은 누구와도 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는 누구도 이해할 의지가 없는 상태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유일무이한 존재는 누구와도 같이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의 발화는 혼잣말이 된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발휘되어야 할 그녀의 재능이 기능 부전되는 이유이며, 동시에 그녀의 말이 그녀 안에 머무는 이유이다. 박중식이 지젤의 그림을 산 정확한 이유는 재범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재범은 박중식에게 지젤의 그림을 소개하며 ‘갤러리 비지팅도 끝난 상태’라고 말한다. 박중식에게 지젤은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한 작가인 것이다. 박중식이 지젤에게 원했던 것은 본인의 고유성을 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후배 양성’으로, ‘돈’울 주고 그림을 산 것이다. 박중식은 극중 지젤을 가장 정확히 이해한 인물이다. 그리고 돈은 그들의 언어이다.


그 이후는 지젤이 고유성을 잃어버리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를 견딜 수 없던 재범과 ‘제임스 곽’(문종원 분)는 ‘오인숙’을 죽이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표면적으로 작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도로 그려지나 그들의 대화나 태도에서 경제적인 가치창출을 바라는 것 이상의 잉여가 보인다. 특히 이는 재범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가 지젤을 발굴한 첫 인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어릴 적, 진품인 줄 알았던 물건을 가품이라고 판단하는 감정사가 멋있게 보이더라는 이야기를 제임스에게 하는 것과 같이 그의 욕망은 작품에 진릿값을 붙여서 고유성을 창출하는 데 있다. 그가 오인숙을 살해하려 한 이유는 그의 고유성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임스 곽은 극적으로 지젤이 고유성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또한 벌어진 사태를 어찌할 바 몰라 지젤의 그림을 기증하는 결말에 이른다.



모두에게 욕망의 대상이었던 고유성. 지젤의 그림은 결국 공적인 장소인 길거리로 나온다. 이 때 마지막 장면의 카메라는 누구의 시선인지 판별할 수 없다. 길거리 위 지젤의 그림은 사람들로부터 전과 같은 고유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외부의 자리에 어색하게 놓이고 고정된 자리 없이 떠도는 존재가 된다. 지젤의 그림은 어쩌면 영화라는 대중매체가 지닌 고유성에 대한 자기 파괴적이고 모호한 욕망에 대한 우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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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화중이야한줄 관람평

송희원 | 사랑하기에 간직하고픈, 평범한 순간들의 REC

이현재 |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홈 무비 사이에서 나는 파열음

박영농 |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윤리

이지윤 | 삶이 정지되었음에도 재생되는 수많은 순간들

최지원 |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 '머무름'을 이야기하다

김은정 | 끝을 향해가는 보편적인 사랑이야기



 <녹화중이야> 리뷰: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윤리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영화 <녹화중이야>는 말기 암 환자 ‘연희’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페이크 다큐멘터리형식으로 담았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등장인물들이 직접 촬영한 것으로 설정되어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아마 첫 장면에서 실제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고인(故人)의 영상을 취합하여 만든 것이며 그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내용의 추모사를 던지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극영화와는 다르게 초점이나 구도가 맞지 않도록 연출된 장면은 흡사 홈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실제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엔 너무 짜임새 있는 플롯 탓에 진짜라고 착각하던 관객들은 이내 페이크 다큐멘터리임을 알아채고 말았을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흔히 봐온 신파-멜로드라마의 장르적 문법을 차례로 밟고 있음을 직감하는 순간, 관객의 자세는 흐트러졌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지점에서 <녹화중이야>가 품고 있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영화는 고등학생 시절 암 선고를 받고 몇 년 째 투병 중인 인물을 중심으로 하며, 도중에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접근한 것은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방식은 이야기의 사실감을 극대화했으며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데에 성공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이미 성취한 것들에 만족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갔다는 사실에 있다. 바로 앞서 언급한 첫 장면의 추모사에 대한 윤리적 문제이다. 다큐멘터리적 연출을 완성하기 위해 고인에 대한 추모사를 영화의 첫 머리에 꼭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영화에서 탄생시킨 캐릭터를 영화 안에서 떠나 보내며 그 정도의 애도는 충분히 수사적으로 가능한 표현이지 않겠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지적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화두를 던지는 이유는 어쨌든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이하 <뚜르>)을 떠올려보자. 이 영화도 <녹화중이야>와 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말기 암 환자가 되어 투병 생활을 이어가는 인물을 다룬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뚜르>는 실제 인물 故 이윤혁 씨의 삶을 좇았다는 것이다. 이 두 영화의 첫 장면을 같이 놓고 비교한다면 <녹화중이야>의 그것은 결코 ‘수사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게 된다. 연희에 대한 추모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적 특수성 안에서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녹화중이야>가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한 것은 결국 관객들이 허구의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함이다. 초점이나 구도가 맞지 않는 장면들처럼 첫 장면의 허구적 추모사 역시 그런 목적을 기저에 둔 장치에 해당한다. 즉 실제 이야기처럼 보이기 위한 영화적 장치인 셈이다. 그로 인해 관객은 영화 속 캐릭터와 상황에 더욱 몰입하게 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추모행위를 소비시킴으로써 본질 그 자체의 의미는 사라지게 만든다. 실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이미 고인이 된 출연자를 추모하기 위해 첫 머리에 띄우는 자막은 영화 내부에 어떠한 효과를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차용하는 것은 다큐멘터리 영화 속 그것의 고유한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이며 윤리성을 따져보아야 하는 지점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 고유한 영역을 구축하기까지 다양한 시도와 노력은 필수적이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고민지점에 대해 얘기하고 (상호)보완해간다면 낯선 영화, 새로운 영화들이 보다 풍성하게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격려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 연장선에 이 글의 목적이 있다. ‘좋다/나쁘다’, ‘재미있다/재미없다’의 구분을 떠나 모든 영화는 우리에게 이미 어떤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대답하는 것은 영화를 보는 큰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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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발한줄 관람평

송희원 | 성 밖에서 소년, 소녀 덫에 걸리다

이현재 | 정갈한 클리셰와 기시감들

박영농 | 땅과 하늘은 닿아있지 않다

이지윤 | 무너져 버린 돌담 한 귀퉁이에 흩날리는 눈발

최지원 | 단단한 성벽과 구덩이 안, 눈이 내리듯 따스한 빛도 닿을 수 있기를

김은정 | 비겁하게 도망쳤던, 과거 그리고 현재의 나



 <눈발> 리뷰: 눈이 오지 않는 마을에 눈발이 흩날리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추운 겨울에도 눈이 오지 않는 마을이 있다. 하얀 눈의 흔적이 없는 탓에 햇살이 가득한 마을의 풍경은 어느 봄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고성’(固城)이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마을에 불길한 기운을 막아주는 견고한 성벽이 존재하기 때문일까. 바람과 햇살만이 감도는 마을에는 고요한 평화가 존재한다. 어느 날, 겨울이 봄처럼 느껴지는 평화롭고도 낯선 마을에 한 소년이 온다.



소년은 이방인이다. 마을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모든 것이 녹록치가 않다. 평화로운 분위기와 상반된 날 선 일상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소년의 눈에 한 소녀가 들어온다. 소녀에겐 살인자의 딸이라는 낙인이 있다. 충분치 않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버지는 살인자로 몰렸다. 그 무엇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소녀는 살인자의 딸이라는 낙인과 함께 마을 사람들의 비난과 동급생들의 가혹한 폭력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 상처투성이의 소녀에게 소년은 손을 내민다. 머뭇거리던 소녀는 이내 소년이 내민 손을 맞잡는다. 견고한 마을 안에서 상처 받은 그들은 교감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차가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길을 잃고 구덩이에 빠진, 자신들의 처지와 꼭 닮은 작은 염소를 보살피기도 하고 마을 외곽을 둘러 싼 높은 돌담을 따라 걸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과 소녀는 무너져 내린 돌담의 한 귀퉁이를 발견한다.


그들이 발견한 허물어진 돌담의 한 귀퉁이는 완성형이라 믿고 있던 공동체의 허점을 연상시킨다. <눈발>의 마을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약자에 대한 날 선 어조와 배타적인 분위기, 폭력을 용인한다. 지속되는 약자에 대한 가해는 ‘불길한 기운을 막아준다’는 성벽 그 자체로 둔갑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상처와 자기혐오, 눈물과 트라우마는 자연스럽게 묵인된다. 공동체의 구성원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그의 잔재를 짓밟고 올라 평화를 가장하는 모습은 위선적이고 아이러닉하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비단 작품 속 세상만의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작품은 이런 공동체의 위선과 아이러니를 한 시간 반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고스란히 드러낸다. ‘모든 이들을 위한 구원의 길’을 외치면서 소녀를 외면하는 교회의 모습은 작품 속에서 틈틈이 등장하며 사회의 위선을 꼬집는다. 소년이 건강을 위해 꼬박꼬박 챙겨먹던 보약은 그가 애정을 담아 보살피던 염소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살인자로 통하는 남자의 딸은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약자가 또 다른 약자를 희생시키며 삶을 영위하는 아이러니, 가해자와 피해자의 얄팍한 경계와 뒤바뀜에 대한 아이러니는 영화에서 주되게 다뤄지며 관객들에게 어떤 기시감을 안긴다.



작품 밖의 사회까지 흐르는 아이러니와 위선은 결말부에서 인간 본연의 나약함과 결부되며 비극적인 여운을 남긴다. 카메라는 소녀를 등지고 견고해 보이는 성벽 안으로 숨어버린 소년을 비춘다. 그리고 그 위로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 12장의 한 부분이 고요하게 흘러간다.

성 안의 천장 꼭대기는 하늘에 닿은 듯이 까마득한데 허엽스럼한 연기 같고 안개 같은 것이 잔뜩 서려 있다. 자세히 보니 아래서부터 까마득한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칸칸이 모두 벌집처럼 뚫린 방인데 다스리는 소리와, 다그치는 소리에, 대답하는 소리, 때리는 소리에, 비명 지르고 흐느끼는 소리들이 온갖 야수가 모여 울부짖는 깊은 밀림에 들어선 것 같다. 나는 가슴이 미어져서 쓰러질 것만 같다. 이번에는 까막까치의 도움말 없이 품안에 손을 넣어 넋살이 꽃을 꺼낸다. 그리고는 허공중을 향하여 힘껏 던진다. 꽃송이가 위로 오르더니 바람을 타고 천천히 맴돈다. 꽃이 펑하고 가볍게 터지면서 수만 개의 꽃잎이 흩어져 눈송이처럼 흩날리다가 밝고 흰 빛으로 변한다. 나는 저절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노래한다.



마지막 신에서 휘날리는 눈발은 분노와 저항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비극적인 현실에 지쳐버린 많은 이들을 위로한다. 눈발은 꽃잎이 흩어지는 것처럼 바람을 타고 맴돌다 무너져버린 돌담의 한 귀퉁이를 포근하게 덮는다. 어디론가 떠나버린 소녀의 마음속에서도 눈발이 흩날리다 밝고 흰 빛으로 변한다. 온갖 죄책감이 울부짖는 소리에 가슴이 미어지는 표정으로 쓰러진 소년 위로도 눈발이 흩날린다. 눈이 내리지 않던 마을에 그렇게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은 쌓이고 쌓여 모두를 위로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로는 마법 같은 변화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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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길한줄 관람평

송희원 | 일본군 ‘위안부’, 잊지 않아야 할 '우리'의 과거와 현재

이현재 | 모두가 알고 있는 고통을 굳이 전시하지 않는다. 필터링의 좋은 예.

박영농 |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소녀상마저 보전할 수 없는 우리

이지윤 | 과거에 맺혀 현재까지 흐르는 눈길, 그리고 죄책감

최지원 | 위태롭지만 단단하게

김은정 | 치유하기 위해 마주해야 할 커다란 아픔



 <눈길> 리뷰: 위태롭지만 단단하게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소녀들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얼음 위를 걷고 있다. 한 소녀는 죽기 위해, 한 소녀는 그 죽음을 막기 위해. 상처가 가득한 소녀들의 모습과 배경이 되는 설산은 더없이 위태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연상케 한다. 아슬아슬 눈길 위를 걷고 있는 이들과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에 대한 이야기, 영화 <눈길>이다.  



‘위안부’를 소재로 하는 영화는 분명 여타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부담감을 가진다. 지금까지 사회적 이슈로 남아있는 문제인데다 전쟁 성범죄라는 소재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눈길>은 같은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일지라도 <암살>(2015)과는 다른 종류의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눈길>은 <귀향>(2015)과도 다른 길을 택했다.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기 위해, 막연한 분노와 슬픔으로 결론짓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 눈에 보이는 영화이다. 이나정 감독은 “끔찍한 폭력의 순간을 '영화적 스펙터클'로 이용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그 폭력으로 아픔을 겪은 분들이 계시고, 그것이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생각은 영화 내에서 섬세한 연출로 구현되었다. 생존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희석시키지 않으면서 수용소에서의 생활적 면모와 그들이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게 했던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눈길>은 노골적인 피해 장면은 축소시킨 반면 수용소에서의 삶, 예를 들면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간식을 나눠먹는 장면들과 같이 구체적인 생활의 현장을 보여준다. 또한 수용소 벽을 두드려 신호를 보내고 어둠 속 등불에 의지해 같이 책을 읽으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모습에서 우정과 연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애틋하고 눈물겹지만 과도하게 슬픔을 끌어내지 않는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평면적으로 소비해왔던 기존의 미디어 방식과는 분명 다르다. 수용소에서도 삶이 있었고 생존자들은 서로 연대를 통해 위로받으며 버텨왔다는 사실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이해의 방식을 권유하는 것이다. 과거 시점과 현재 시점을 교차시켜 보여주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할머니가 된 ‘종분’은 계속해서 ‘영애’의 환영을 보면서도 나름의 생계를 책임지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의 삶 또한 보통의 삶처럼 지속되고 변화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소녀였던 종분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위안부’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분이 영원히 소녀로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위안부’ 사건을 과거의 일로 치부, 생존자들을 어리고 여린 소녀로서 소비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도 엿볼 수 있다. 



현재 시점의 종분과 ‘은수’가 보여주는 연대도 주목할 만하다. 종분이 은수를 보호하는 방식은 결코 연민이 아니다. 경찰서에서 종분이 은수를 감싸는 장면에서 두 인물 모두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라는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종분과 은수의 연대는 영애와 종분의 그것과 연결된다. 수용소에서 서로를 견딜 수 있게 한 것이 서로였듯, 노인이 된 종분은 다시 한 소녀를 견디고 살아갈 수 있게 돕는다. 이들은 고통스럽고 위태로울지라도 연약하지 않다. 연대로 서로를 치유한다. 서로를 구원하는 연대를 이룬 이들을 우리는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가. 이들이 걸어야 했던 ‘눈길’과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에 대해서 재고할 수 있는 영화, <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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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개봉으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부곡 하와이>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3014







<부곡 하와이> 리뷰: 삶을 재생하는 배우의 영화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형주 님의 글입니다.



어느 시골의 정신병원에서 두 여성이 탈출을 감행한다. 중년 여성 ‘자영’은 가끔 발작 증세가 있고, 아직 십대인 소녀 ‘초희’에겐 자살 시도의 흔적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 탈출 목적이 있다. 자영은 아들이 이민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으로 꼭 만나기 위해, 초희는 정신병원 원장으로 인해 임신한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 나가려 한다.



<부곡 하와이>는 이들이 병원을 탈출하여 목적을 향해 떠나는 로드 무비이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 길 위에서의 우여곡절, 그리고 이들을 쫓는 수사꾼까지 장르의 전형성이 모두 담겨있다. 영화는 특히 여성의 연대와 화합을 강조한다. 이들이 만난 남성들은 모두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며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만 한다. 어쩌면 너무 익숙한 길일 수 있는 이 영화의 여정에서 관객의 손을 잡아주는 건, 자영 역의 박명신, 초희 역의 류혜린 배우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 말하지 않은 슬픔까지 눈빛으로 담아낸다.



박명신 배우 특유의 야생적인 눈빛과 몸짓은 자영의 모성애가 부딪히고 깨졌던 시절을 복원한다. 자영이 주변을 위협하는 듯해도 결국 할퀴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반면 류혜린 배우가 그리는 초희는 아픔과 동시에 재생을 담아낸다. 삶을 멈추려 한 흔적이 가득한 그지만, 자영과 먼저 관계를 구축해가는 건 초희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과 관계를 충실히 복구해나간다.



<델마와 루이스>(1991)처럼 폭력적인 세상을 탈출하는 꿈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배우들이 만들어낸 두 여성의 모습만으로도 영화는 가치가 있다. 깊은 절망 속 어딘가에서, 삶을 재생해내는 배우들의 힘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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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대들이란’에 대응하는 “나도 힘들어!”  인디돌잔치 <소꿉놀이>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21일(화)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김수빈 감독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언젠가 한 인터넷 기사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말이 ‘요즘 세대들이란….’이라는 웃지 못 할 대목을 본 적 있다. 옛날 석기시대부터 인류는 다음 세대를 늘 못마땅해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많은 위계 설정을 감내하며 살아온 것도 언제나 한 시절의 ‘요즘 세대들’이었단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아내, 엄마, 며느리 등 ‘김수빈’이라는 이름 대신 누군가의 무엇이 되길 강요받는 일상을 여과 없이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소꿉놀이>의 ‘요즘 감독’ 김수빈을 만났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진행): 영화 <소꿉놀이>는 작년과 재작년에 장안의 화제였고 2016년 2월에 시네마달 배급사를 통해 개봉했다. 지인 중 한 명은 이 영화가 너무 현실적이라 보면서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고 한다. 나는 재작년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당시 매우 다양한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속 시어머니 연배의 분들은 "정말 집 지저분하게 해놓고 산다"는 식의 잔소리를 했다면, 젊은 세대들은 시어머니가 권위를 내세우는 장면에서 "헐"하며 놀라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나’라는 존재를 절대 놓지 않는, 당당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민의 끈을 결코 놓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점이 같은 여성으로서 큰 힘이 되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수빈 감독(이하 감독): 굉장히 즉흥적으로 시작했다. 처음 임신을 하고 잠깐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함께 어떡하면 좋을지 의논을 하다가 일단 찍자는 말을 했다.(웃음) 돌이켜보면 내가 영상학을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그 순간에 바로 소화되지 않는 것들을 일단 찍어놓고 나중에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매우 본능적이었다. 일은 벌어졌고,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될 진 모르겠지만, 우선 찍어놓고 보자는 거였다. 영화로 개봉을 하게 될 줄도 몰랐는데, 이렇게 돌잔치를 맞이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진행: 많은 사람들이 글로 일기를 쓰지만, 카메라를 가까이에 두고 있던 감독님은 영상으로 일기를 썼다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를 눈으로 두고 엄청난 분량을 찍었을 텐데, 매우 짜임새 있게, 기승전결까지 갖춘 형태로 다듬어 완성했다는 점이 놀랍다.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 같다. 육아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 아이의 성장과 예쁜 순간, 그 과정 속 부모로서의 변화 등에 집중할 수도 있는데,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 고찰이 잘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만들면서 염두에 둔 방향성과 편집 부분에서의 고민 등이 궁금하다.


감독: 6년 정도 촬영하고 편집했다. 카메라로 꾸준히 기록을 해두다 보니 내러티브화 할 수 있는 소재가 있었다. 처음엔 나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편집을 했는데, 다시 보니까 너무 내 얘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찍어보기로 했다. 편집할 때 모조리 다시 보면서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남편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 과정들을 몇 번 거치면서 편집을 여러 번 바꾸게 되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세월이 가며 얻는 깨달음이 있더라. 작업을 진행할수록 매번 다르게 이야기가 확장되어가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진행: 나이든 여성과 현대의 여성 사이 관계의 문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그 사이에서 ‘나’라는 주체로서 질문을 던지며 삶의 성찰로 이어진다. 관객들의 감상이 궁금하다.


관객: 영화 도중에 굉장히 큰 갈등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사이에 애니메이션이나 내레이션을 더했기 때문에 우울하지 않게,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지?


감독: 당장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차후에 어떤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을 촬영하는 작업은 계속하고 있다. 처음엔 멋모르고 촬영했는데, <소꿉놀이>를 통해 이런 영상들이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카메라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확실히 있다. 그래서 예전만큼 솔직하게 드러내기 어려워 고민이 많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가능한 것은 일상 촬영이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을 하고 있다.


관객: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무거웠다. 극장을 나간 후에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지금 겪고 있는 일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전에 어떠한 정보도 없이 봤다. 제목이 ‘소꿉놀이’라서 그냥 젊은 부부의 신혼생활을 담았겠구나 했는데, 예상외로 어떠한 테마를 가진 영화를 만난 것 같아 행복하다. 무거운 내용을 가볍게 커버하려는 의도를 가진 제목인 듯한데 제목을 지은 배경이 궁금하다. 오히려 이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은 영화 속의 "나도 힘들어"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등장인물 모두 힘들어하는 일상이 영화에서 완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감독: 제목은 영화의 말미에 나온 ‘인생은 다 소꿉놀이‘라는 시어머니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달관하여 쉽게 나온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 순간 매우 소름이 돋았다. 소꿉놀이는 아이들이 하는 놀이이고 저마다 역할을 정해서 하는 놀이이지 않나. 만약 인생이 소꿉놀이라면, 누가 부여한 것인지도 모르는 역할들을 더 이상 떠맡아 연기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소꿉놀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 분 말씀을 들어보니 가볍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누구의 딸 혹은 아들, 회사의 직책 등 정체성이 역할로만 명명된다는 것을 특히 결혼을 하면서 많이 느꼈다. 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며느리, 아내, 엄마 등의 직함을 달아주는 것에 이질감이 들었다. 시어머니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된 상황일 테니까. 결혼은 행복하려고 하는 것인데, 왜 서로를 구속하는지 의문이었다. 서로를 괴롭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모두가 편할 텐데, 너무 ’역할의 사회‘가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렇게 살기 싫다는 나의 외침이 반영된 영화다.(웃음)


진행: 이 영화를 여성/육아 다큐멘터리로 구분 지었을 때, 가장 기분 좋게 볼 수 있었던 점은 모성 이데올로기에 결코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게 신기하다. 어쩌면 잘 길들인, 학습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웃음)


감독: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카메라를 휴대전화처럼 항상 들고 다니니까 다들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인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별 것 아닌 게 되었다. 다들 적응한 것이다. 의식을 하지 않는 시점이 됐을 때, 속 얘기가 거침없이 나올 수 있었다. 적응하기까지의 기간이 꽤 길었다. 겪어보니 모성이라는 것은 성격처럼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른 법이다. 모성이라는 틀, 사회가 만든 이데올로기에 전혀 갇힐 필요도, 휘둘릴 필요도 없다.


진행: 분만실에서 출산 후 처음으로 아이가 산모의 배 위에 올려졌을 때 보통은 감격스러워 하거나 경이로워 하는데, 감독님은 ‘얜 뭐지?’하는 듯한, 낯설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관객: 영화를 보면서 결혼이 현실과의 타협 혹은 포기의 연속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도 육아에 묶여있는 상황이라 들었는데 앞으로의 계획이나 개인적인 꿈이 궁금하다.


감독: 나의 뮤지컬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작든 크든 작업물을 만들어내고 세상과 공유하는 일을 하고 싶다. 창작자로서의 활동은 다 재미있다. 요즘은 뮤지컬을 번역, 각색, 개사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진행: 영화가 가족들에게 미친 영향, 변화들도 있을 것 같다.


감독: 이 작품을 계기로 가족들과 더욱 견고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시절을 같이 보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희미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시간을 영상으로 남기니 매우 선명해졌다. 물론 나의 주관적 시선에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남편의 경우 안 좋은 댓글에 신경을 쓰기도 한다. 본인만 나쁜 사람이 되었다며 상심하는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다독여준다.(웃음) 내 입장에서 만든 영화라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덜 반영된 부분이 있다. 만들 때 옆에서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은 남편이다.


관객: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시집살이를 했다. 혹시 예비 며느리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감독: 최근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긴데, 나도 공감을 많이 했기에 이야기를 하자면, 친정이든 시댁이든 어려움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집값을 아끼는 것이니 그걸 급여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사장과 직원의 관계라 생각할 수 있다. 말 잘 들어야 한다. 사장님이 사옥을 내준 것이다.(웃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역시 좋은 점은 재정적으로 많은 부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잠을 편히 못 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긴장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결혼했을 당시 독립을 할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만약 했다고 해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다.


진행: 개인주의에 익숙한 인물이 가족 질서에 편입될 때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성에 대한 문제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이 시점에 엄마를 비롯, 다양한 역할이 주어진 김수빈 감독의 이야기는 분명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주변의 많은 여성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 이제 곧 남편이 일본에서 돌아오는데, 우리 가족은 어디서 살아야하는가 고민하고 있다. 현재는 눈치껏 가사를 도우며 친정에서 지내고 있지만 남편이 처가살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집살이를 되풀이 하고 싶지도 않아서 남편에게 어차피 시댁에 방이 남으니 각자의 집에서 따로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일주일에 다섯 번씩 만나기로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집안사람들 모두가 극구 반대하더라. 남편은 그동안 오래 떨어져 살았으니 이제는 함께 살고 싶다 했다. 솔직히 그게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 안 된다고 하니까 어쨌든 순응하겠지만, 앞으로의 주거와 가족 형태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한 번쯤은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제도적, 물리적 제약 때문에 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지 의문이다. 10년 쯤 지나면 떠오르는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웃음)


진행: 감독님 생각을 들으면 언제나 재미있다. 고민의 기저가 결코 현실에서 동떨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 둘째를 낳을 계획이 있는지?(웃음)


감독: 없다.(웃음) 몸이 너무 많이 상했다. 육체적인 문제부터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은 생각이 없다. 영화를 만들면서 여러 사례를 찾아봤는데 북극곰의 사례가 꽤 인상적이었다. 도저히 자기 새끼를 키울 환경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면 그 새끼를 잡아먹는다고 하더라. 자식을 키울 환경에 대해 신중히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행: 앞으로의 화두나 질문, 이야깃거리들이 궁금하다. 


감독: 신학에 관심이 많다. 관련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한다. <소꿉놀이>는 궁극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탐구하고 알아가는 과정, ‘나’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현실적 제약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관점에서 연장해보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삶만 살아간다. 옷 갈아입듯 인격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때때로 ‘내가 제일 잘났어’ 혹은 ‘내가 제일 힘들어’ 등의 교착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지나친 자기 애착은 상대방의 인생을 폄하하는 실수로 이어지고, 이는 보상 심리의 근거가 된다. 영화 <소꿉놀이>는 결혼과 출산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 속 갈등을 다뤘지만, 결국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입장 차이의 딜레마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요즘 OO들이란’의 비난에 대응하는 “나도 힘들어!”는 절대 나만 힘들어가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를 깎아내림으로써 어떤 위계를 설정해선 안 될 것이다. 이는 배려와 공존을 위해 개인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자세이다. 이렇게 ‘요즘 것들’의 이유 있는 반항에 “내가 이러려고 OOO을 했나….” 따위의 모노드라마로 받아치는 사회가 되지 않길 바란다. 나도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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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바라다  촛불영화: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 <종로의 기적>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9일(일)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이혁상 감독 | 주인공 소준문, 장병권, 정욜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장병권, 스파게티 가게를 운영하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합창단 G_Voice에서 노래를 부르는 故 최영수, 영화를 통해 성소수자를 알리는 이혁상 감독과 소준문 감독, 직장을 다니며 동시에 인권운동을 하는 정욜. <종로의 기적>은 2011년 6월 개봉한 게이 다큐멘터리이다. 감독과 주인공들을 오랜만에 ‘촛불영화: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 <종로의 기적> 인디토크에서 만나보았다. 



이혁상 감독(이하 이): 이게 블랙리스트의 힘인가요? 이제 대세 게이 영화는 <위켄즈>인데,(웃음) <종로의 기적>을 보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주시다니. 국정농단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웃음) 참고로 저도 블랙리스트에 올랐어요.(웃음) 이 정국이 낳은 기획전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종로의 기적>은 다운로드 서비스가 안 되어서 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오늘 같은 상영회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이하 진): 여기 관객 분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시네마달은 우리가 꼭 봐야 하는 작품들을 보여주는 일을 하는 영화사에요. 귀중한 일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응원과 지지를 부탁드려요. <종로의 기적>은 개봉 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어요. 근황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장병권(이하 장): 너무 많이 달라진 모습에 놀라지 않았는지요.(웃음) 지금은 ‘연분홍치마’(성적소수문화환경 모임) 꼬임에 넘어가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소준문(이하 소): 작년까지 계속 영화를 만들었고 지금은 시나리오 쓰고 있어요. <종로의 기적>은 잊힐만하면 상영을 해서, 연례행사가 된 것 같아요.(웃음) 저희끼리는 늙어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 같으니 그만 좀 하자고 얘기해요.(웃음) 그래도 자리들이 계속 생기니 좋아요. 


정욜(이하 정): 영화 찍을 때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어요. <종로의 기적> 개봉 즈음에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인권재단 사람’에서 모금과 관련된 일을 병행하면서 영화 속 주요 이슈였던 HIV/AIDS 활동을 여전히 하고 있어요. 성소수자 단체나 기관을 만드는 활동들을 했어요. 


이: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들고 있어요. 최근에 <공동정범>이라는 용산참사 다큐멘터리를 완성해서 영화제를 통해 소개했어요. 정국이 너무 어수선해요. 조기 대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대선 이후 개봉을 해볼까 싶어서 개봉 버전으로 수정하고 있어요. 병권 씨와 연분홍치마에서 계속 활동하다가 지금은 안식년으로 쉬고 있어요. 쉬면서 <공동정범> 관련된 준비도 하고요. 새로운 걸 좀 해볼까 하고 있어요.


진: <위켄즈>가 대세가 됐다고 하지만, <종로의 기적>과 <위켄즈>는 이어지는 부분도 있어요. <종로의 기적>이 ‘소녀시대’ 같다면, <위켄즈>는 ‘트와이스’ 같아요.(웃음) <종로의 기적>은 굉장히 용감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루는 이야기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모두 느꼈을 거예요.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다큐멘터리 영화, 특히 LGBT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개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개봉 당시 힘든 점이 있었나요?


이: 사실 <종로의 기적> 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던 것 같아요. 물론 이명박 정권이긴 했지만 초반이어서 이 정도로 시스템이 망가지기 전이었어요. 여기 주인공분들 비롯해서 시네마달, 연분홍치마 모두 함께 굉장히 노력하고 공을 들여서 7,000명 넘게 관람해주셨어요. 최근 <위켄즈>를 보면 알겠지만, 극장 잡기도 굉장히 힘든 상황이에요. 그때도 힘들었지만,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조금이나마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명박 정권 때 <종로의 기적> 상영이 중단되었던 적이 있어요. 틀지 말라고 국정원에서 지시를 내렸어요. 일단 성소수자 다큐멘터리라는 점이 심기를 건드린 것 같기도 해요. 병권 씨가 ‘이명박 퇴진’ 피켓을 들고 투쟁한 장면을 문제 삼았어요. 화가 많이 났어요.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이제는 국민의 힘으로 많은 것들이 밝혀지고 변화하는 모습이 보여서 다행이에요. 



진: 그만큼 시네마달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작품들을 소개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봉 당시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일상적인 행사는 아니어서 굉장한 추억으로 남았을 것 같아요. 당시의 경험들을 떠올려서 얘기해주세요. 


장: 성소수자 다큐멘터리이다 보니 당사자분들이 많이 극장에 찾아주셨어요.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하고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커밍아웃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봤던 것이 인상에 남아요. 실제로 성소수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관객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후원인이 많이 늘어서 2011년도 당시 상근자로 일할 수 있게 되었죠. 이 다큐멘터리의 힘이 크지 않았나 싶어요.


진: 소준문 감독님 같은 경우 극영화 연출자이기도 하고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기도 하잖아요. 낯설기도, 새롭기도 한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소: 영화를 통해서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웃음) 많이 부끄럽긴 하지만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정: <위켄즈> 팀도 관객과의 대화 후에 꼭 뒤풀이를 하더라고요. 당시에도 거의 매번 그랬던 것 같아요. 출연자와 관객의 경계가 뒤풀이 자리에서 없어져요. 성소수자로 살아가면서 생기는 고민들, 정체성을 알아가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되게 편하게 얘기했어요. 저는 당시 감염인 분들과의 접촉이 많지 않았어요. 이후 감염인 분들과의 만남이 수월해졌고 영화가 경로가 되어주었어요. 지금은 감염인 당사자 모임에서 간사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게 사실 쉽지 않아요. 늘 마주하는 분들이 감염인이니까요. 이 영화를 통해서,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달라진 점들이에요.  


이: 저는 뒤풀이 때문에 간이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웃음) 


진: 네 분 다 웃는 게 너무 예뻐요. 특히 욜 씨가 예쁘게 웃거든요. 저는 <종로의 기적>하면, 욜 씨가 웃는 장면이 계속 떠올라요. 이렇게 현장에서 오랜만에 웃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좋네요. 이제 관객 질문을 받겠습니다. 언제 또 올지 몰라요, 이 네 명의 ‘핑클’들이.(웃음) 


관객: 소준문 감독님의 <REC 알이씨>(2011)를 정말 감명 깊게 봤어요. 저는 소설을 써요. 감독님이 게이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저의 정체성도 소설에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감독님이 자신은 그냥 영화감독이 아니라 게이 영화감독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그냥 소설 쓰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만 정체성을 드러내고 작품을 쓰면 장애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요. 감독님은 자신의 성정체성이 창작 활동을 하는 데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나요?


소: 우선 감사해요. 스스로 굉장히 닫혀있던 상황들이 있었는데, 커밍아웃하면서 나와 보니 오히려 더 편하고 좋은 것 같아요. 내 작품이 퀴어영화, 게이영화로 보이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담았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들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거침없이 드러내는 게 되게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스스로 큰 자신감을 찾을 수 있게 해주고요. 저는 <종로의 기적>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잖아요. 그 이후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읽든 안 읽든 숨기려고 하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객: 제가 볼 땐 영화 속보다 훨씬 멋있어진 것 같아요.(웃음) 다운로드 서비스는 앞으로도 예정이 없나요?


: 만약 하려면 다시 한 번 여기 출연한 분들과 얘기를 해야 돼요. 개봉한지 오래됐는데 관객 분들이 많이 온 걸 보니 한 번 해볼까 싶네요.(웃음) 모든 성소수자 관련 다큐멘터리가 같은 경험을 할 것 같아요. 사회적인 커밍아웃이기 때문에 주인공들만 합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배경에 조금이라도 나오는 모든 분에게 확인받아야 하고, 안 된다고 하면 모자이크를 하나씩 해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너무도 보수화된 한국사회라서 겪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돌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한번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진: IPTV나 다운로드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DVD라도 만들면 팬들에게 좋을 것 같아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위켄즈>는 2차 판권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해외 영화제 버전, 국내 영화제 버전, 국내 개봉 버전, IPTV 버전 다 따로따로 판권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에요. 


관객: <위켄즈>를 보고 관련 영화로 <종로의 기적>을 알게 되었어요. 감독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 네 분의 이야기를 선정했는지 배경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영화를 찍으면서 종로로 나와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 같아요. 거의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종로에서 또 어떤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나이가 드니 종로에 나가는 일이 뜸해졌어요. 새로운 세대들이 종로를 주름잡기도 했고요. 게이로 나이 드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지금 젊은 세대들은 스스로를 일찍 긍정하고 즐겁게 삶을 꾸려나가는 것 같아요. 별개로 사회적 분위기는 굉장히 심각해지고 있는데, 계속해서 맞서 싸워야죠. 개봉 당시 네 명을 선정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때를 기억해보면 우선 예뻐서,(웃음) 그리고 저와 동년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30대 중반이었으니까 미래에 대한 고민을 서서히 하고 있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선정하려고 했어요. 그 과정에서 나름 평범한 삶을 사는, 보통의 관객들과 접속하기 쉬운 주인공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이들의 삶이 평범하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게이들은 출연 자체가 그 삶을 깨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캐스팅이 순조롭지 않았어요.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도 있는데, 그래서 제 주변의 친구들, 같이 인권활동을 한 친구들 중심으로 찍었어요. 원래는 5명이었는데, 한 명이 사회적 커밍아웃을 하면 염려되는 부분이 있어서 중간에 고사하게 되었어요. 만약 5명이었다면 편집할 때 미쳤을 것 같아요.(웃음) 각각 개성이 있고 메시지가 확실한 캐릭터들이에요. 첫 다큐멘터리를 축복 속에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 세 분은 출연 제안 받고 한 번에 승낙했나요? 


정: 바로 했던 것 같아요. 이혁상 감독 영상을 너무 좋아하는 팬이었어요. 사실 출연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어요. 처음엔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어서 쉽게 동의했어요. 물론 개봉을 준비하며 같이 이야기 나눴고요. 어디까지가 커밍아웃이고 어디까지가 커밍아웃이 아닐까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크게 염려하지 않으며 살면서도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디까지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을까 계산은 계속했거든요. 영화에 출연하고 노출되는 활동을 했지만요. 당시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상영까지의 과정 속 토론이 충분했어요. 예상치 못한 위험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데, 문제가 생겼을 때 개인이 아닌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말이 굉장히 힘이 됐어요. 


소: 어릴 적에 감독님을 좋아했다가 차여서,(웃음) 그래서 안 보던 사이였는데, 친구사이에서 커밍아웃 다큐멘터리를 기획 중이라며 제안이 왔어요. 당시 친구사이 홈페이지 내에서 릴레이 커밍아웃을 하고 있었거든요. 친구사이에서는 감독님 이름을 절대 얘기하지 않았어요. 저희의 관계를 알기 때문에 안 할까봐 철저히 비밀로 하다가 마지막에 감독님 이름을 얘기하더라고요.(웃음) 근데 감독님 때문에 해야겠다, 안 해야겠다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았어요. 이런 시도와 기획이 한국에서 없었고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감독님과 응어리를 풀어야 했던 상황들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관계 청산을 어떻게 해야 할까.(웃음) 근데 오랜만에 봤는데도 감독님이 친구처럼 대해줘서 이 다큐멘터리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이 달콤한 제안도 많이 했거든요.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했어요. 제 콘셉트는 사랑에 빠진 게이여서 진짜 소개팅도 했어요. 감독님은 찍고 저는 소개팅을 하고.(웃음) 저도 욜 님과 똑같이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당연히 있었고, 찍는 과정에서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큰 위안과 희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트러블 없이 잘 진행됐어요. 


: 이런 얘기 안 했던 것 같은데, 15년 전에 널 아프게 해서 미안해.(웃음) 다신 그 얘기는 하지 말아 줘.(웃음) 


장: 친구사이와 연분홍치마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저보다는 제가 몸담고 있는 단체들의 활동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게 가장 큰 동기였어요.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어떻게 서로를 잘 다독이면서 살아가는지, 성소수자 청소년들, HIV 감염인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사회적 제약들이 잘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이: 스파게티나(최영수)의 죽음을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마음속에서 부침이 굉장히 많았던 과정이었어요. 저도 이 영화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해야 했는데,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이 믿음직스럽게 버텨주어 두려움은 있었지만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객: 다큐멘터리는 기록의 장르인데, 추가하고 싶은 장면이나 빼고 싶은 장면이 있나요?


이: 여러분들이 본 버전이 제 나름의 최종 편집본이에요. 덧붙이기보다는 지금의 버전으로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정: 사실 영화가 잘 기억이 안 나요.(웃음) 일단 통편집을...(웃음) 


이: 왜냐하면 헤어져서...


정: 영원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영화 찍으면서 제일 걱정이었어요. 첫 기획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어요. 왜 계획대로 하지 않았는지 그 당시에도 몇 차례 감독님께 얘기했어요. 너무 오글거리고 만나는 친구와는 연락이 두절되었고.(웃음) 사람의 삶은 모르는 거죠. 남겨진 기록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일단 중요한 건 <종로의 기적> 안에서 HIV 이슈를 다뤘다는 점이에요. 너무 낯설고,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터부시하고, 어렵기도 하고, 입 밖으로 꺼내기 두려운 것이었는데, 영화가 굉장히 중요한 매개가 되었어요. 지금도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질병을 친근하게 다루는 활동들을 계속하고 있거든요. 그 시작을 영화가 잘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이 영화가 7,000명 관객으로 하여금 한 번쯤 생각해볼 기회를 준 것이니까요. 마지막 에피소드여서 더 큰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해요.


소: 손을 묶어 놓고 찍을걸.(웃음) 제 손이 너무 날아다니더라고요.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손이 너무 현란해요.(웃음) 감독님이 선택한 지점에 대해서는 믿고 가요. 다만 좀 아쉬운 부분이라면, 4명이 함께 모인 장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영수 형 에피소드를 볼 때 그런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희는 영화 개봉 이후 자주 만나는데, 빈자리가 있다는 게 가끔 느껴져요. 


장: 제 상반신 노출 장면을 뺐으면 좋겠어요. 그런 게 필요하다고 해서 연출했어요. 이용당한 거죠.(웃음) 


진: 되게 훈훈하게 시작했는데 이용당했다고 하고.(웃음) 만약 2차 판권을 준비한다면 또 상영회를 통해 네 분이 자리를 마련하면 재밌지 않을까요? <보이후드>(2014) 같이 ‘게이후드’로 20년, 30년 쭉 상영해도 좋을 것 같아요.(웃음) 그때도 이혁상 감독님과 소준문 감독님의 앙금이 남아있다면 더 재미있겠네요.(웃음) 늦게까지 자리 지켜준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네 분의 인사 말씀 들으며 자리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성소수자 인권이 나중에 처리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후보가 아닌, 좋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워야겠어요.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정: 지금의 성소수자 인권 토양이 저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중요한 쟁점이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고,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위치에 놓여있어요. 또 감시하는 역할도 하고 있잖아요. 2011년에 개봉한 영화지만 2017년에도 의미가 있다는 건, 그 과정 안에 수많은 커밍아웃과 고민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영화 밖에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면서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싶습니다. 


소: <종로의 기적>이 대통령 선거 날에 상영회를 가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충격의 도가니였어요. 그분이 대통령이 될 줄 모르고 축하의 자리로 흥겹게 상영회 자리를 마련한 건데, 제삿날이 되어버렸죠. 탄핵을 앞두고 또다시 상영되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기도 하고, 이걸 계기로 진짜 탄핵이 돼서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네요. <종로의 기적>이 그렇게 해주리라 믿어요. 이번엔 좀 밝은 쪽으로 인도해 주겠죠.(웃음)


장: 기쁘기도 한데요, 한편으로는 하나도 바뀐 게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요. 국가인권기본법으로 필요하다고 노무현 정부 말기 때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했는데, 잘 안 되었어요. 지금 10년째거든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시기상조다, 라는 이야기를 왜 지금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싶어요. 우리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였는데 계속 찬물을 끼얹고 있어요. 더 맞서 싸워야 해요. 저희는 계속 성소수자의 인권이 목숨과도 같다는 이야기를 해왔어요. 앞으로 더 많이 이야기해야 될 것 같아요. 성소수자들과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 끈끈한 마음을 갖고 운동을 해야 해요. 시네마달, 인디스페이스를 포함한 독립영화 진영에서 신념을 반영한 굳건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 <종로의 기적>이 연분홍치마 커밍아웃 다큐멘터리 3부작(<3x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 중 마지막이에요. 보통 삼세판으로 마무리하는데, 4부작으로 하나 더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장병권 주인공이 그 4부 연출을 하게 됐습니다. 네 번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성소수자 부모들이에요. <종로의 기적>보다 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네 번째 작품으로 이 자리에서 다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토리펀딩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라' 후원하기 >>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3011


감독과 주인공들은 <종로의 기적>이 개봉한 지 6, 7년이 되었어도 바뀐 게 하나 없는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관객들에게 끝나지 않는 숙제를 던져주었다. 성소수자들의 인권, 차별금지법, 표현의 자유 등은 우리가 계속 지켜보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이다. 오는 4월 25일까지 시네마달 스토리 펀딩이 진행된다. <종로의 기적>이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적을 불러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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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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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의 수치를 마주할 때, 우리는 

 촛불영화: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 <탐욕의 제국>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8일(토)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홍리경 감독, 권영은 반올림 활동가

진행 정지혜 씨네21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마음이 무겁다. 삼성반도체에서 직업병을 얻게 된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영화 <탐욕의 제국>은 여전히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영화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관람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탐욕의 제국’의 민낯이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우리는 지난한 투쟁을 얼마나 더 이어가야 하는 것일까. 홍리경 감독과 권영은 '반올림'(삼성 반도체 노동자 인권 단체) 활동가, 그리고 씨네21의 정지혜 기자가 함께했다.



정지혜 기자(이하 정): 주말이라 광화문 촛불 시위에 참여하는 분들이 많다. 반올림 활동가 분들도 한창 행진 중이라고 한다. 오늘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라 떡을 돌렸다고 들었다.


권영은 반올림 활동가(이하 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에 삼성반도체 백혈병 환자 故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님께서 떡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고맙게도 후원을 받아 오늘 거리에서 적은 양이나마 나눌 수 있었다. 악덕 기업이 더 이상 발 붙여선 안 된다는 기원의 의미가 있었고, 앞으로 더 힘내서 직업병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떡을 돌렸다.


정: 시기가 시기인 만큼 작품의 의미가 남다르다. 오늘 이 자리는 영화사 시네마달을 응원하며 시네마달에서 그동안 제작, 배급한 작품을 함께 보는 자리이다. 그 중에서도 삼성반도체 노동자 분들이 현장에서 직업병을 얻어 긴 시간 투쟁하는 순간과 그들 삶 속 목소리를 담은 작품 <탐욕의 제국>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이다. 영화를 만든 지 오래됐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소감이 어떤지?


홍리경 감독(이하 홍): 5년 만에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이다. 이 작품을 본지도 꽤 오래됐고, 영화로 담아낸 분들과 소통한 지도 오래되었다. 최근에 반올림과 함께 반도체 피해자들과 관련된 영상을 다시 만들면서 생각보다 쉽게 그 이야기들을 잊고 있었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던 차였다.


정: 사전에 여쭤보니 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는 두 분이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활동가님께 여쭸더니 매우 불친절한 영화라고 했다. <탐욕의 제국>은 노동자들의 어려움과 노동의 조건, 공정 등을 세세하게 짚어주지 않는다. 보통 그런 방식의 다큐멘터리들이 많은데, 감독님은 설명의 방식이 아닌 이미지, 가령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거대한 건물 혹은 컨테이너, 기숙사 등의 공간들을 매우 먼 거리에서 바라보며 그들의 목소리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감독님이 선택한 그 진행 방식에 대해 묻고 싶다.


홍: 실제로 힘없이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위치가 그랬다.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는 나의 위치 혹은 시선이 이런 방식의 영화를 만드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한다.


정: 편집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촬영도 2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편집의 방향에 있어 중심을 잡을 때 어떤 것을 가장 핵심으로 두었나?


홍: 촬영 당시 원칙으로 세운 것은 어떤 한 피해자를 영웅처럼 그려내거나 그 이야기를 감동적인 드라마처럼 엮어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 누구의 이야기든 나에겐 똑같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었고, 같은 무게로 전달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작품을 하면서 만났던 분들을 거의 다 등장시키려 노력했고, 이야기의 중요도나 주제 전달에 효과적이라는 기준으로 위계를 두지 않으려 했다.



정: 활동가님께 묻겠다. 활동 단체 내부에서 현재 삼성반도체 노동자 피해에 대해 어떤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는지, 영화에 등장하는 피해자 분들은 어떻게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권: 오늘로 농성에 들어간 지 500일이다. 반올림 활동이 시작된 지는 10년이 되었다. 이렇게 활동이 이어지는 이유는 여전히 어떠한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400명으로 늘어났다. 사망자는 삼성반도체만 해도 79명이다. 최근까지 피해자가 계속 나오는 형국이다. 이런 암담한 상황이 2007년부터 10년 째 계속되고 있는 거다. <탐욕의 제국>이 매우 큰 힘이 되었다. <또 하나의 약속>(2013)이라는 극영화와 더불어 삼성에 큰 압박이 되었던 것 같다. 삼성에서 대화를 제안했고 권오현 대표가 고개를 숙이는 장면도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었다. 그때부터 삼성 직업병 문제가 급물살을 타면서 마치 해결이 되는 듯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다. 삼성은 사과를 했다며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피해보상을 논의할 때 활동가들의 개입을 배제하려 했고 피해자들을 허술한 보상으로 유인하려 했다. 안타깝게도 영화에 등장한 몇몇 분들은 현재 우리와 함께 하고 있지 않다. 보상을 받았고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너무 어려운 싸움을 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다. 정말 나쁜 건 삼성이다. 돈으로 유인해 소송으로 가지 못하게 하고 사회적 문제화를 막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직업병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어쨌든 많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의 보상보다 많은 이들에게 투명하고 공평하게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뚝심을 가지고 함께하는 분들이 여전히 있다. 사회적 보상은 사과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자기들이 기준을 정하고 금액을 정하는 일방적인 보상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간다. 덧붙이자면 영화에 출연한 뇌종양 피해자 혜경 씨는 농성장에 꾸준히 나온다. 농성장의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삼성에서 나와 볼 법도 한데, 오히려 농성을 방해하기 일쑤다. 노동자들에게는 허술한 대처를 하면서 권력실세에게는 막대한 돈을 퍼다 준 삼성이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다.


정: 감독님께서 모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했는데, 그 마음이 충분히 느껴졌다. 한 주인공에 압도되는 작품이 있기도 하지만, 이 작품엔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놀라운 점은 그 과정에서 감독 스스로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것이 곳곳에서 느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농성 현장에서 카메라는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 얼마든지 가까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장을 그저 바라만 본다는 게 고통스럽기도 했을 것 같다. 어떻게 화면으로 구성하고 관객들에게 전달하려 했나?


홍: 영화를 찍으면서 항상 내 위치를 고민했다.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의 자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적으로 그때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모든 상황에 거리를 두고 멀리서 관조하듯 바라보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카메라와 대상 사이에 거리가 생긴 것 같다.


관객: 얼마 전, 피해자 서른 분 정도를 인터뷰 했다. 영화에 나온 분들을 대부분 만났다. 삼성 본관 앞에서 500일 넘도록 농성을 이어간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 감독님이 영상 작업을 하고 있다 들었는데, 어떤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지, 그 고민의 지점이 궁금하다. 또 작품 이후에도 여러 일이 있었는데, 어떤 식으로 반영하여 작업할 계획인지 묻고 싶다.


홍: 피해자 스무 분 정도의 인터뷰로 작업 중이다. 이번에도 같은 원칙, 한 분이라도 소외시키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자신의 고통을 내세우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쉽지가 않다. 그걸 허락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큰 용기를 내주신 분들을 소재로 하며 취사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최대한 많은 분들의 인터뷰를 담고 싶다. 투병을 하면서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다. 이야기 중심으로 편집을 하려하고, 이외의 다른 이미지 컷은 최대한 배제하려 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겪어보지 않은 삶에 대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간접경험으로 적절한 방법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정: 영화를 보면 소리를 의도적으로 연출한 점이 인상적이다. 노동자 분들의 음성을 화면 위에 입히는 방식을 사용할 때, 때때로 음소거 되는 부분이 있다. 마찬가지로 화면을 연출할 때도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처리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연출들은 우리가 그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게끔, 현장에 함께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들도록 한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구조, 혹은 그 너머의 자본논리라는 것을 마주했을 때 파악되지 않는 막막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홍: 윤정 씨 병상에서 얼굴 다음으로 산소 호흡기를 뿌옇게 비추는 장면이 나온다. 의도적으로 넣은 장면이긴 하다. 이 상황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어떤 일과를 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하지만 이미 퇴사를 한 이들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소리 같은 경우, 얼굴 말고 본인의 음성만 허락한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의 사연을 담고 싶어서 이미지 컷들 위에 음성만 입히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일하는 현장에서 방진복으로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병을 얻어 회사를 나와서도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정: 활동가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할까, 노동자들이 일을 하며 얻는 경험적 지식이 있겠지만, 실제로 현장 공정을 전반적으로 꾀긴 어렵지 않나. 특히 변호와 같은 법정 공방을 이어나갈 때 전문적인 자료를 얻는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감독님도 촬영하면서 현장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하는데.


홍: 사측과 교섭을 진행하던 중에 삼성에서 버스를 대절해줘서 갔다 온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공간(상영관)과 비슷했던 것 같다. 먹먹하고 기계 소리가 들리고 창이 없고. 사람이 살고 싶은 분위기는 아니지 않나. 사실 우리도 아까 밖에서 대기할 때는 엄청 수다스러웠는데 지금은 매우 차분해졌다.(웃음) 간접체험을 어렵사리 뒤늦게 했다. 그 이외의 정보를 얻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여러 전문가들의 교육을 받아도 잘 감이 오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배우는 것은 만드는 법이지 안전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본인들이 어떤 약품을 사용하는지 알 길이 없다. 산재 신청을 도와주는 분들이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바로 그 점이다. 노동자 증명이 필요한데, 그 분들은 그저 하얀색 통에 있는 것, 시큼한 냄새가 나던 것, 타는 냄새가 나던 것 등의 정도로만 알고 있다. 나중에서야 그 약품들이 자신의 생명에 큰 위협이 되는 것이었음을, 일급 발암물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중국의 신생 반도체 공장 피해자 분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들은 노란색의 바나나 우유처럼 생겼다고 ‘바나나 버터’라 제보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10년 동안 만나온 피해자들의 실상이다.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했을 때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자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영업기밀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민감한 부분을 대부분 지워 관련 기관에 제출한다. 그런데 너무 과하게 지워진 나머지 최근의 국정조사 과정에서는 자료에 잘못이 있음을 노동부가 시인하기도 했다.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가 기관의 실정이기도 하다. 오히려 삼성은 산재 없는 기업으로 보험료 부분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 반도체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약품이 200종이라고 하는데, 안전성이 검증된 것은 2% 밖에 되지 않는다. 삼성은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정보가 없으면 화학 약품이 유통될 수조차 없고 텍사스의 경우는 영업기밀이라 해도 무조건 공개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료를 받기도 한다. 정보가 한정적인 상황이라 공부를 많이 하고 있고, 연구 모임도 가지고 있다.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다. 정보의 격차가 여전히 크다.


정: <탐욕의 제국> 영문 제목은 ‘Empire of Shame’이다. 어떤 의미인가?


홍: 작업 시작할 때 제작지원을 받기 위해 구상안을 써야했는데, 당시 읽던 책 제목이 ‘탐욕의 제국’이었고 영문 원제가 ‘Empire of Shame’이었다. ‘수치’가 영화 속 기업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고민하다가 읽고 있던 책의 제목을 가져오기로 했다. 개봉할 때 제목을 바꾸려고도 했지만 마땅한 게 없어서 그대로 가져간 경우이다.


정: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과 자본 권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감독님의 의도를 살펴보면 개개인의 작은, 흔적 없이 지나갈 법한 사연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을 연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런 점에서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홍: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를 보고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아주 작은 일상이 참 귀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것들을 전하는 영화가 좋았다. 그래서 삶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장르를 택했다. 다큐멘터리로 내가 기록해야하는 삶은 멋지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이름 없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알리고 함께 나누고 싶었다.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행동하는 자아로서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푸른영상’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집단에 들어갔고,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삼성이라는 우리나라의 절대악 같은 기업을 비판하는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처음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들이 바로 이들의 삶에 있었다. 일을 하면서 병을 얻게 되고 그 병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그래서 그들이 꿈꿔왔던 삶, 살아 온 삶, 그리고 현재의 삶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삼성과 자본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가까이에 두고 자주 사용하는 것들을 만드는,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하다가 병을 얻고 소중한 일상을 잃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된 것 같다.


정: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영화의 마지막에 삼성 본사 앞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고 또 멀찍이서 바라보는 카메라가 있다. 2007년에 시작된 투쟁이 10년 째 계속된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지금의 행진을 보면 어떤 가능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해외의 반도체 노동자들을 비추면서 영화가 끝난다. 직업병 피해의 굴레가 비단 한국뿐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세계사회의 커다란 문제와도 이어진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권: 올해 3월 6일이 故 황유미 씨 10주기이다. 올바로 해결하라는 취지로 1만 명 서명을 받으려 한다. 많이들 함께 해주면 좋겠다.


정: 블랙리스트에 올라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고 있는 영화사 시네마달을 지키고 응원하기 위한 취지로 열린 기획전이다. 다음에서 스토리펀딩도 진행하고 있는데, 작게나마 힘을 보태 준다면 시네마달의 영화를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조심히 들어가시길 바란다.



스토리펀딩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라' 후원하기 >>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3011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면서 감독으로서의 권위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운 점이 영화 <탐욕의 제국>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되새겨본다. 요즘의 촛불 행진에서 어떤 가능성이 느껴지기도 한다는 정지혜 기자의 말과 더불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害)가 지지 않는 나라 ‘탐욕의 제국’이 어서 빨리 저물고, 노동자들이 편히 몸 뉘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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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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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개봉으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평범한 날들>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www.indieplug.net/movie/db_view.php?sq=1220







<평범한 날들> 리뷰: 사람도 사회도 더 이상 병들지 않길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하루 동안 우리를 스치는 수많은 얼굴들은 신기하리만큼 서로 다른 표정을 가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 뒤에 제각각 어떤 사연들이 감춰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평범해 보이는 누군가의 얼굴 뒤에는 그가 가진 것의 모든 숨결을 빼앗아버릴 만큼 아픈 것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평범한 날들>은 그런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처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 기억하지 않으려는 사람, 그리고 아픔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등장한다. 이 세 사람이 상처를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이지만, 그 상처의 근원은 모두 ‘죽음’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병들고 마침내 상처를 대면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Between> 평범한 직장인 ‘한철’(송새벽 분)은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린다. 일도 잘 안 풀리고 매번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실패의 연속이다. 그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누군가의 흔적을 더듬는다. 어느 날 아침, 그의 핸드폰엔 그 날이라는 알림이 뜬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강가에 있는 무덤이다. 비로소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내가 널 안아도 되겠니”  

<Among> ‘효리’(한예리 분)는 자주 가던 카페의 문 앞에 붙은 ‘근조(謹弔)’라는 메모를 보고 발길을 돌린다. 단어의 뜻을 찾아보다 문득 기억 너머의 어떤 사건을 흐릿하게 떠올린다. 어느 날, 5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 받은 효리는 설상가상 교통 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를 다친다. 상처가 다 나았을 무렵 잠에서 깬 효리는 어딘가로 뛰어가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이 이별이나 교통사고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만든 손수건에는 ‘상처를 기억하세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Distance> ‘수혁’(이주승 분)은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고아가 되었다. 숨을 거둔 할아버지 옆에 앉아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담배 한대를 태워 입에 물려드린다. 담담하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수혁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를 보고 화가 난 채로 그의 뒤를 쫓는다. 그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세 인물은 모두 상처가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평범해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상처를 한 순간 외면해 버린 후 그것은 고질적인 병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인식하지 못한 채 병들어가는 영화 속 세 인물은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ET가 그려진 시계나 근조가 적힌 메모, 그리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나뭇잎으로 표현되는 그들의 연결고리는 공통적으로 상실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지만 상처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상처를 망각하면 결코 치유되지 못한다. 잔인하리만큼 아픈 대면의 순간을 갖는 것에서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나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어야 하는 순간이다. 아픔을 기억하고 곱씹고 극복할 시간을 가지는 것은 상처 입은 사람들의 몫이니 빨리 잊으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개개인의 상처와 상흔이 무시되는 순간 사람도 사회도 병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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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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