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다음 삶의 현장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살아남은 아이>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9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신동석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생명에게 있어 살아남다라는 동사는 시간적으로 유한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살아남다라는 말에는 죽음을 모면하여 남아 있게 된다는 뜻이 있는데, 생명은 언젠가 기어코 온몸으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남는다는 표현은 오묘하다. 우리의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한편 찰나의 안도를 선사한다. 그것이 죽음 바로 옆에서 숨 쉴 때 더욱 그렇다.


<살아남은 아이>는 아들의 죽음 이후, 아들이 죽어가며 살려낸 아이와 설명하기 힘든 관계를 맺게 된 부부의 이야기다. 관계가 나고 자라는 동안 영화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까지 세 사람이 각각 상실을 마주하는 서로 다른 태도에 주목하여 인물 간의 간극을 때로는 분명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조절해나간다. 차이가 분명할 때엔 타인과 같을 수 없다는 허무를, 희미할 때엔 고통을 함께 녹일 수 있다는 위안을 준다. 관객은 그 과정에서 세 인물을 차례로 통과하게 된다. 그렇게 위로와 애도의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여운이 남은 자리,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와 신동석 감독이 함께 했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김현민) :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부터 가볍게 들어보고 싶어요.

 

신동석 감독 (이하 신동석) : 주변에서 이른 나이부터 죽음을 경험하는 경우를 봐왔어요. 그래서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어요. 가족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몇 차례 썼어요. 그 이야기들이 다 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 쓴 <살아남은 아이>는 괜찮다 싶었습니다. 이건 영화로 꼭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현민: <살아남은 아이>가 맘에 들었던 이유는 뭘까요?

 

신동석: 힘든 이야기를 할 때, 나도 쓰면서 아프기 싫으니까 아픔을 이상한 방식으로 돌려서 표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제게 불만이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이나 정서를 잘 녹여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김현민: 돌려서 표현하게 됐다는 게 이해가 되는 게,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나 하는 고민도 했을 것 같아요.

 

신동석: 그런 고민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영화를 볼 때 불편할 때가 있거든요. 조금 더 진중하게 아픔을 안아주면 좋을 텐데, 너무 가학적으로 그린다거나 냉정하게 바라보는 영화를 볼 때요. 그래서 이야기를 빠르게 만들었지만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에서 영화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고 스태프들에게도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김현민: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세 인물에게 차례로 이입을 하게 됐어요. 남편 '성철', 소년 '기현', 아내 '미숙' 순으로 제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게 되더라고요. 감독님이 관객에게 세 인물을 동일한 거리를 두고 경험하게 한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두 번째 봤을 때는 자칫하면 이런 구도가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도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 배우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합니다.

 

신동석: 초고를 쓰고 나서 캐스팅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일순위 배우들이 그 세 명이었습니다. 제가 원했던 대로 캐스팅이 돼서 좋은데, 이 세 사람을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성철, 기현, 미숙의 캐릭터가 있으니 그에 대입해서 뽑은 건데, 세 사람의 앙상블이 괜찮겠다고 짐작만 했지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거든요. 제가 기대한 것 보다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김현민: 특히 최무성 배우의 무감한 표정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거든요. 성유빈 배우는 경력이 길지 않고 나이도 어리지만, 큰 표정 없이도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스크린에 어울리는 배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여진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요. 감독님의 기대보다 좋았다고 했는데, 특히 배우 분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해낸 장면은 무엇이 있을까요?

 

신동석: 최무성 배우가 생각보다 장난기가 많아요. 현장에서 재미있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요. 처음에는 그런 장난기가 성철의 캐릭터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점들이 오히려 세 명의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서 좋게 작용을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성철의 약간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세 사람을 유사 가족처럼 보이게 하는데 크게 한 몫 했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저도 놀라웠던 장면은 기현이 미숙에게 사실을 고백하는 장면과 이후에 미숙이 기현의 원룸에 다시 찾아갔을 때의 장면입니다. 이 두 장면이 연기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모니터를 보면서 한동안 컷을 못 했습니다. 배우들의 아우라에 압도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김현민: 영화에서 유독 눈길이 갔던 부분은 도배를 하는 밝은 대낮 장면이에요.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잖아요. 원룸에서의 장면도 밝고요. 이런 지점이 조금은 의외인 느낌을 줬습니다. 어두울 수 있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밝기 때문에 인물들이 더 숨을 곳이 없다는 적나라한 느낌까지 줬고요.

 

신동석: 몇몇 특정 장면들이 밝다는 건 생각을 못 했네요. 역광이기를 바랐던 장면은 있어요. 창가를 등지고 기현과 미숙이 이야기하는 장면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주변이 밝더라도 표정은 어두울 수 있고, 그런 부분이 진실이 뭔지 헷갈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이렇다 해서 일부러 어두운 환경을 설정하는 게 더 작위적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김현민: 전체적으로 영화가 빛을 활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워요. 초반에 성철이 아내의 침실 문을 열자 침대에 앉아있던 아내가 약을 먹고 스탠드를 꺼 버려요. 이후 어둠 속에 성철이 우두커니 서있는 장면이 너무 좋았거든요.

 

신동석: 고맙습니다. 저한테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굉장히 현실적인 영화고 장르적인 설정을 넣기도 어려운 영환데, 자연스러운 관계에서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영화적 변화들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거든요. 영화적으로 무언가를 구현해내는 데 있어서 제약도 있고 해서 조심스러웠던 와중에 그런 장면이 하나 정도 있었던 것 같네요.

 

김현민: 정말 초반이잖아요, 그 장면이. 영화가 성철로 시작하기 때문에 성철이 초반에 관객이 이입돼서 따라갈 수 있는 주체잖아요.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아내를 바라보는 컷에서 성철이 가진 무게감이 확 느껴졌어요. 거기서 관객은 그가 가진 상실감을 짐작하게 되는 거죠. 현재를 살아가보려고 노력하는 것까지 느낄 수 있고요. 상실에 대처하는 자세에 있어서 성철과 아내 미숙의 대비가 크게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신동석: 미숙은 현재를 살아나가기 보다는 죽음을 느끼고 죽음과 함께 하면서 고통을 품을 수 있는 현재를 찾는다면, 성철은 현재를 유지시키면서 헤쳐 나가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대비를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현민: 이야기의 굴곡도 좋았어요. 처음에는 원만하게 나아가다가 진실을 밝혔을 때 급 커브한 후 상승해나가는 이야기의 굴곡이 있습니다. 과정 과정에서의 인물들의 감정선이 이야기의 굴곡으로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야기를 설계할 때는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신동석: 저는 이야기의 뼈대를 세워 놓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으니 기현이 언젠가 사실을 고백할 거라는 걸 알았겠죠? 그러다 보니 저한테는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 간의 감정을 쌓아가다가 그것 때문에 기현이 자기가 알고 있는 진실을 고백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의 굴곡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순서처럼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었던 거죠. 영화제에서 몇 차례 틀고 보니 어떤 분들은 이 영화가 2부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다고, 또 어떤 분은 3부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인물을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처음부터 죽은 사람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타인이 어떤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다가 생긴 이야기라 그런지 주제가 애도와 윤리, 이런 식으로 이야기 구도가 전환되면서 쪼개지기 보다는 하나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김현민: 저에게는 엄청나게 느껴졌던 장면이 성철, 기현, 미숙 세 사람이 소풍을 가는 장면입니다. 그 행복의 전시가 너무 인위적이고, 나아가 가증스러워 보였다고 할까요? 이 상황이 말이 되나 싶을 정도였어요. 소풍 이후 혼자 남은 기현이 갑자기 구토를 하잖아요. 그때 저는 기현의 감정에 이입하면서 기현이 두 부부의 자식인 '은찬' 덕분에 살게 된 아이인데 너무 큰 짐을 진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소풍 이전에 기현이 자격증을 따고 과일을 사서 오잖아요. 미숙이 주스를 주고 거실로 안내하는데, 그때가 처음으로 이 집에서의 밝은 씬입니다. 그때부터 소풍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느껴졌어요. 그 시퀀스의 의도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신동석: 기현이 미숙에게 사실을 고백하기 전까지는 기현이 자격증을 따고 미숙에게 과일을 사서 찾아가는 장면이 기현을 위한 거의 유일한 시퀀스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부부를 담는 데 할애됐기 때문에 그 장면들은 어떻게 보면 기현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설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처럼 느껴져요. 물론 제가 고집스럽게 이 영화를 최대한 부부의 관점으로 끌고 나가려 했지만, 기현의 시퀀스가 없다면 관객이 기현에 대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니까 서사적으로 용납할 수밖에 없는 시퀀스기도 했어요. 그때 기현이 이 부부에게 어떤 식으로든 사랑 받고 싶지 않았을까,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사실을 어떻게든 고백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고 그런 마음들 탓에 소풍까지 함께 가는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현민: 세 배우 모두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슬픔 속에 들어가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니까요. 특히 기현은 다른 인물들이나 관객을 교란시키는 비밀을 가진 캐릭터잖아요. 성유빈 배우와는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눴나요?

 

신동석: 기현 역할 같은 경우에는 이 사건 이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설명이 안 돼요. 그래서 유빈 배우에게 기현의 전사 같은 걸 많이 얘기해줄 필요가 있었어요. 기현이라는 인물이 다섯 살, 일곱 살 때부터 이런 일을 겪었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열일곱 살이 됐고, 여덟 살에는 이런 경험, 열 살에는 이런 경험을 했을 거다, 이런 걸 쭉 얘기해준 적이 있어요. 이 영화의 이야기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없을 수도 있는, 제가 구상한 기현의 이야기를요. 그리고 시나리오의 이 부분까지는 네가 죄책감이 전혀 없는 거야. 여기서부터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라면서 감정이 분별되는 지점들을 확실히 정리해서 설명해줬고 유빈 배우는 그에 따라 준비를 해줬습니다.

 

김현민: 이 부분이 기현의 감정의 분별점 중 하나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 기현이 처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던 지점이 있습니다. 기현과 성철이 자격증 공부 이야기를 하다가 기현이 성철에게 자신이 자격증을 따면 가게에서 쫓아낼 거냐고 묻는 장면입니다. 이 아이의 감정 상태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신동석: 그 장면에 대해서도 어떤 감정이어야 하는지 얘기했던 것 같아요. 이때부터 기현이 성철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김현민: 성철은 인테리어 일을 하는데, 인물의 직업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신동석: 부부가 같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플롯 상 같이 일하면서 마주쳐야 하기 때문에요. 그런 직업에 대해서 알아보니까 인테리어 가게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무, 회계, 실측은 부부 중에 여성이 하고, 공사 같은 경우는 남성이 하는 운영 방식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자료 조사를 하면서 보게 된 도배 장면이 되게 정서적으로 다가왔어요. 벽지를 거칠게 잡아 뜯을 때도 있고 매끈하게 발라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 모습이 상처를 치유하거나 죄책감을 씻어내는 행위로 보였습니다. 그걸 살려서 인물들을 표현하는 데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김현민: 그래서인지 안간힘을 다해 벽지를 뜯어내는 성철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해요. 뜯어내고 바라보고 낡은 것들을 들어내고. 이런 장면들이 굉장히 은유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기현이 하얀색 액체를 휘저을 때도요. 이 아이가 속죄하고 구원을 꿈꾸고 있다는 게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좋았던 것 같아요.

 

신동석: 아쉬운 장면 중 하나예요. 저는 노력했던 것들이 무위로 돌아가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뭔가 어설프게 나왔습니다. 풀죽이 원을 그리다 흩어지는 게 좀 더 선명하게 보였어야 했는데…….

 

김현민: 제가 그러면 감독님의 의도를 잘 캐치하지 못했네요. 클로즈업으로 찍었으면 더 좋았을까요?

 

신동석: 모르겠어요. 풀죽 양이 더 많았어야 했나? 점성이 더 좋았어야 했나?(웃음)


 


 



관객: 영화를 보면서 왜 과거의 장면이 하나도 나오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커다란 사건 이후를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 대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조각조각이라도 회상하거나 관객에게만이라도 진실을 보여주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아서 영화가 끝난 지금도 기현이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한 의도가 있나요?

 

신동석: 부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다 보니 과거 장면을 넣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부부는 은찬의 죽음을 상상해낼 수 있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잖아요. 물론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회상 장면을 넣었다면 시각적으로 이해하기는 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래도 부부의 관점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숙도 기현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혼란이 많았을 거라고 느껴요. 그 다음 날 저녁에야 성철에게 얘기를 하고 경찰서로 가잖아요. 그런 미숙의 감정과 동일하게 관객이 혼란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영화를 본 분들에게 기현의 고백 내용이 사실 같은지 아닌지 물었을 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사실인 것 같긴 하다는 답이 많이 나왔고, 제가 원했던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인 것 같습니다.

 

김현민: 회상 장면이 있었다면 그냥 너무나 편해졌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진실과 사실의 폭로나 해명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애도하고 위로해야 하는지에 더 집중하고 있는 영화기 때문에 그런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관객: 후반부에 세 명이 차를 타고 산으로 소풍 가는 장면이 있는데, 맨 처음에 룸미러로 기현 얼굴 한 번 보여주고 성철의 얼굴을 옆에서 보여주고 미숙의 얼굴을 보여준 후에 기현의 손과 가슴의 핀을 보여줍니다. 기현 같은 경우는 거울에 투영된 모습인데 성철과 미숙은 실제의 모습이 나옵니다. 저는 이게 기현의 죄책감이 반영된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카메라워킹에는 어떤 의도가 있나요?

 

신동석: 부부가 기현을 보려면 룸미러로 볼 수밖에 없는 거죠. 일종의 부부의 시점 샷입니다. 기현 그 자체보다는 부부가 바라보는 기현을 보여주고 싶었고 부부가 은밀하게 기현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정면으로 기현을 바라볼 수 없는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기현을 바로 비춘다면 그 복잡 미묘함이 사라지고 단순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찍은 것 같습니다. 기현의 옷핀은 성철과 기현의 연결고리입니다. 성철이 일하던 현장에서 옷핀을 사용하는 걸 보고 따라 한 거고, 손을 비춘 건 거칠어 보이는 손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고요.

 

김현민: 옷핀은 실제로 현장에서 보고 인상적이었던 단면을 쓴 건가요?

 

신동석: 취재를 하다가 인테리어 일 하는 분들이 그렇게 작업하는 걸 보고 그대로 썼습니다.

 

김현민: 그게 유독 인상에 남았던 이유가 뭘까요?

 

신동석: 일단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작업복마다 옷핀이 달려있고, 옷핀이 달린 작업복만 입는 사장님이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성철이 무뚝뚝해도 귀여운 모습을 갖고 있다는 걸 그걸 통해서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관객: 제목은 어떻게 정한 건지 궁금합니다. 혹시 후보 제목이 더 있었나요?

 

신동석: 다른 후보를 고민해본 적이 있긴 합니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이 너무 딱딱하거나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결국 더 좋은 제목을 못 찾았고요, 초고부터 썼던 제목이라 제가 그냥 계속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웃음) 영화의 설정을 알려주는 제목이기도 하고, 기현이 진정한 의미로 다시 살아남은 아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제목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되새김할 수 있는 제목이라고 자부하는데, 관객들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김현민: 영어 제목은 <Last Child>예요. 그 이유는 뭔가요?

 

신동석: <살아남은 아이>를 직역해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너무 서바이버(Survivor)’ 이런 식의 단어가 돼서 생존 경쟁에서 이겨낸 느낌이 들고 중의적인 느낌이 사라지더라고요. <Last Child>라고 하면 중의적인 설정을 좀 지킬 수가 있어요. 부부 곁은 지키는 아이라는 느낌도 있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아이라는 느낌도 주고요.

 


관객: 부부가 기현에게 복수하려는 내용이 초고부터 있었나요?


신동석: 네, 있었습니다.

 

김현민: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단순히 목 조르는 것 대신 직업적 특성에 맞는 어떤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성철만의 방법이요.

 

신동석: 저도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철한테 그 행위가 계획적인 것인지 우발적인 것인지에 대해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적어도 그것에 대해서 성철도 불투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획적으로 죽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방식을 처음부터 고수했습니다.

 






김현민: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았는데요, 심정이 어떤가요?

 

신동석: 모르겠어요. 일단 너무 좋은 일이고요, 베를린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도 됩니다. 그런데 저는 좀 소박하게 기뻐하는 중이에요. 오늘처럼 이렇게 영화를 트는 것도 좋은 일이고 감사하거든요. 너무나 오랜만에 영화를 만든 거라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기쁘고 즐거웠어요. 게다가 여러 영화제에 가니 그것만으로도 즐거워요.

 

김현민: 오늘 끝까지 진지한 영화, 진지한 이야기와 함께 해준 관객 분들께 한 마디를 하면서 마무리 할까요?

 

신동석: 긴 영화, 긴 GV였는데 다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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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고백들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 <벼꽃>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8일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오정훈 감독

진행 송윤혁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오정훈 감독의 <벼꽃>은 말이 없는 영화이다. 물론 서사적, 시각적 수사학을 들어내고 관조와 여백의 미학을 앞세운 결단 자체가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벼꽃>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하는 그 침묵의 부피가 마치 이 영화의 구조적 형식 자체를 이지러지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80분에 달하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채 열 마디가 들려오지 않는 화면 속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어떤 수사적 요설도 없이 사계절을 견뎌내는 벼라는 작물의 과묵한 생장기이다. 인간중심적인 서사는 물론 사람의 얼굴 자체가 화면 안으로 거의 틈입하지 않는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의 벽두를, 다른 어떤 이름도 아닌 가 장식하는 것은 어쩌면 자명한 귀결이다. 영화가 후반부에 이르면 카메라는 잠시 동안 농촌의 정경으로부터 눈을 돌려 농민집회가 벌어지고 있는 도심의 현장을 향하지만, 희부연한 화면 위로 희미하게 메아리 치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몇 마디를 들었다는 근거로 이 평화로운 영화의 정치적 전언에 감명받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평자 스스로의 도덕적 나르시시즘을 투영한 수상쩍은 자기기만의 진술일 테다.


벼의 말 없는 생장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것이 심오한 메시지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인간중심적인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운 영화 이미지의 자기완결적 순수를 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투명한 생장기가 진행되는 동안 극장은 마치 온갖 말들이 범람하는 이 소란스러운 속세의 시간이 잠시 동안 멈춘 것 같은 착각마저 선사한다. 하지만 영화관 바깥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작품의 외곽으로부터 찰나의 순간, 들려오던 농민들의 희미한 목소리를 흘려 들어서는 안될 듯하다. 영화는 끝났지만, 오정훈 감독에게는 아직 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있는 것 같다. '2018 으랏차차 독립영화기획전의 일환으로 28일에 진행된 상영 이후의 대담은 그 말해지지 않은 고백을 들을 수 있는 현장일지도 모른다. 오정훈 감독, 송윤혁 감독이 참석했다.






 

송윤혁 감독(이하 송) : 영화가 좋아서 할 말이 많은 작품이 있고, 영화가 좋은데 할 말이 없는 작품이 있다는 말을 감독님께 한 적이 있는데 <벼꽃>은 후자에 해당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를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처음 접했는데요, 심사위원 특별상과 관객상을 받으셨죠? 당시에 해맑았던 감독님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도시에서 계속 자라온 저로서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농사와 노동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제 몸의 일부가 되는 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요. 먼저 이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정훈 감독(이하 오) : 저도 벼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해서 찍으려고 한 것도 있어요. 벼농사가 우리의 삶을 크게 차지하는데 아는 건 별로 없잖아요. <벼꽃> 벼의 성장을 느껴보려고 한 영화입니다. 농민들의 삶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보고 난 뒤 밥을 먹거나 시골을 지나갈 때 영화에서 본 장면이 기억이 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 농사꾼으로 나오던 이원경 씨는 어떻게 만났고, 그 지역은 어떻게 찾아갔는지 궁금합니다.

 

 : 농민 생산자들 공동체 측에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분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했고,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거예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혼자 일을 많이 하거나 기계랑 같이 일을 해요. 친환경 농사를 한다고 해도 석유 자원을 아예 활용하지 않는 농사는 거의 불가능하고, 시골 지역은 사람도 많이 없기 때문에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농사를 짓기 어렵더라고요. 애초에 벼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이기도 했지만, 원경 씨가 말을 많이 하는 분이 아니어서 영화에 많이 안 나온 것 같기도 합니다.

 

 :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런데 벼가 익어갈 때 나오는 음악들이 생명의 탄생과 같은 주제와는 무관하게 약간 차분하고 우울하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이런 음악을 사용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 농사라는 게 하루 종일 들판을 질퍽질퍽 힘들게 돌아다녀야 하는 일이니 우울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노동뿐 아니라 수익을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 경기도에 친환경급식조례 같은 게 있어서 제도적으로 수익을 어느정도 보장해주기는 하지만 그것도 수익환경을 완전히 개선해주지는 못해요. 또 농사는 인간이 혼자 하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병충해가 없다던가 태풍이 없어야 한다던가 자연과의 조화가 잘 맞아야 하는 부분도 있거든요. 볍씨 하나를 맺는 데 정말로 많은 노동이 드는데 어쩌면 그런 부분이 우울하게 표출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관객 :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는 게 좀 힘들었어요. 벼에 관해 설명이 많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제목을 왜 벼꽃이라고 지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먼저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벼꽃을 촬영하는 중간에 보게 되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벼가 꽃을 피운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꽃이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피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요. 이런 인상 때문에 제목을 벼꽃이라고 지었습니다그리고 저는 평소에 영화를 친절하게 찍는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최근들어 더 친절하지 않은 영화를 많이 만들고, 그게 저에게 맞는다는 생각을 해요. 저분들은 1년 내내 저 지루한 일을 하는데 우리는 80분 남짓한 시간 동안만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도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관객 : 쌀이라는 매체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밥이라는 결과를 보지 그 과정을 많이 생각하지 못하는데 그 과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평소에 지루함을 경험할 일이 많이 없었기에 지루함 자체가 또 새로운 경험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 아까 농사와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 더 듣고 싶습니다.

 

 : 사실 8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하기도 어려웠고, 그렇게 하면 복잡할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농촌에는 이런 저런 제도적인 문제들이나 농협과 수협과 관련된 문제들, 도시와의 문화적인 격차와 같은 수많은 문제들이 있어요. 일단 벼만 관찰하자는 생각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후반부에서는 짧은 시위장면을 넣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시작으로 농사에 관한 관심이 생겨서 앞으로도 이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못다한 이야기는 거기에서 더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때는 덜 지루하게 만드는 것도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웃음) 농부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으로만 보는 관점이 있고 생태계를 유지시켜주는 핵심적인 공공재원의 하나로 보는 관점도 있는데요, 제가 만난 사람들은 후자의 가치를 많이 생각하는 분들인 것 같아요. 어떤 쪽이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농사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지지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혹시 농사를 직접 지을 생각도 있나요?

 

 : 사실 제가 지금 충북 괴산에 살면서 작은 텃밭을 기르고 있기는 해요. 아직 농사라고 하기는 어려운 규모지만요. 주변에 농부들이 많이 있는데, 농사를 짓지 말고 그냥 영화를 계속 만들어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알리라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하고, 반면에 농사를 많이 지으면서 농사에 대해 더 알아가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하더라고요.

 


관객 : 감독님과 이원경 농부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셨는지가 궁금합니다.

 

 : 원경 씨가 처음부터 신뢰를 많이 해주셨어요. 촬영을 한 시간이랑 농사를 한 시간이 거의 비슷할 정도로 농사를 돕기도 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같이 일을 해야 하는 건지 그걸 찍어야 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하더라고요. 왜냐면 그걸 찍고만 있으면 미안하거든요. 찍기도 하고 도와드리기도 하고 번갈아 가면서 했습니다.


 

 : 다음 작품에 관해 짧게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계획만 하고 있는데요, 아직 촬영 대상을 만나는 과정에 있습니다. 충북 괴산에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짓는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의 이야기를 찍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만들어진다면 이 영화와는 좀 다르게 유머가 있는 분위기로 만들려고요. 7인의 사무라이가 마을을 지키듯이 7명의 농부가 마을을 지킨다는 느낌의 발랄한 분위기를 생각하고 있는데요, 아직은 구상만 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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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에치던 방 한줄 관람평


이지윤 | 한 데 모이고 엉키는 실타래. 그것은 관계이자 위로이며, 나를 감싸 안은 시대.

박범수 | 잃어버린 것들을 더듬어 현실의 나를 오롯이 대면하다

조휴연 | 묘사와 배치의 깊은 틈새에 숨겨진 마음

김신 | 찰나의 온기를 기다리는 방식

남선우 | 기억 속 관계와 관계 속 기억이 뒤엉키는 경험






 <누에치던 방 리뷰: 찰나의 온기를 기다리는 방식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미희(이상희 분)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 10년간 고시에 매달렸지만 별다른 소득을 보지 못했다. 남자친구(이선호 분)는 홀가분하게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탐색해보라고 권유하지만, 줄곧 고시공부의 길만 걸어온 미희에게는 그것도 온당한 선택지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각자의 앞길을 응시할 힘도 고갈되어 이별의 순간조차 일상적이고 무상하게 흘려 보내는 이들의 초상은 스크린 바깥에서 고시원을 헤매고 있을 누군가의 삶을 되비치고 있을 것이다. 사법고시도 곧 폐지될 것이기에, 지금까지 함께해온 문제집을 폐기 처분하는 일은 미희로 하여금 차라리 눈 녹듯이 사라져버린 지난 십 년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애도하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영화의 또 다른 축은 김익주(임형국 분)과 조성숙(홍승이 분)의 삶이다. 학창시절부터 제도권 교육에 대한 불만을 품어온 이들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민중 미술가로 활동하거나 사회과학 계간지를 읽으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지만, 공동체의 재건과 혁명의 가능성은 어린 날의 생기와 함께 희박해져 버린 걸지도 모른다. 몇 가지 갈래로 분리된 <누에치던 방>의 여러 인물들은 의외의 계기를 통해 새로운 만남을 시작한다. 그 예상치 못한 조우의 순간에 25년전 성숙과 고등학교 단짝 친구였지만 죽음을 당했던 유영(김새벽 분)의 현신인 것처럼 보이는 동명의 고등학생(김새벽 분)이 관여하며 이 느슨한 서사를 매개한다.

 






영화는 환상과 현실,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가며 꼬여버린 사연의 조각들을 들여다보는데 몰두하지만, 시종일관 정적인 화면은 정작 복잡하게 꼬인 이야기의 구조에는 무관심하다는 듯이 멈춰있어 정물적인 아름다움을 현현하고 있다. 무심한 고요를 머금고 있는 영상의 아름다움이 갈피를 잡기 힘들게 꼬여버린 서사적 기획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은 <누에치던 방>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다만 그 두 가지 요소가 서로 상보적으로 작동하면서 이야기의 정조를 심화시키는 대신 모호화된 추상성을 향하길 원하는 자의식에 의해 각자 흩어져버리며 상쇄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은 아쉽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야기 속에서 조각난 파편들을 일일이 되돌아보며 끼워 맞추는 작업은 유의미한 결실을 얻지 못할 것이다. <누에치던 방>의 미덕은 한강역을 가로지는 지하철 내부로 스며드는 봄볕 같은 온기, 간혹 가다가 방문해오는 만남의 순간들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말해준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지하철에서 공연을 하는 일,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사회적 독서를 하는 일, 버거운 내일을 향해 있는 힘껏 살아가는 일은 메마른 우리의 삶을 적셔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찰나의 아름다움과 만남의 안식처가 곳곳에 숨어 아슴거리고 있기에 잿빛으로 물든 우리의 삶에는 아직 살아가야 할 이유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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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로서 함께 고통에 마주하다  <공동정범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4일 오후 3시 상영 후

참석 김일란 감독

진행 홍성수 교수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대한 님의 글입니다. 





2009120일 용산구 남일당 건물에서 5명이 거친 화염에 희생되었고 국민들은 분노하였. 국민들의 분노 속에 세상은 큰 변화를 맞이할 것 같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기억 속에 용산참사는 잊혀져 간다김일란, 이혁상 감독은 <공동정범>을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 희미해진 용산참사의 아픔을 마주본다. <공동정범>은 그날 참사로부터 살아남은 당사자들의 출소 후 이야기를 추적한다무거운 공기 속에 <공동정범>의 상영이 끝나고, 김일란 감독과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홍성수: 영화가 개봉한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요, 언론에서 호평이 많기도 했고 보도가 정말 많이 되었어요. 감회가 어떤가요?

 

김일란: 언론에서 용산참사와 <공동정범>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데요,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는 부끄럽지만 많은 평론가 분들께서 호평을 해주셨어요. 그에 비해서 관객 수가 너무 적지 않나 생각이 들면서 조금 아쉽습니다.(웃음큰 흥행은 되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 분들이 반복적으로 보면서 다양한 매체에 노출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분들도 그런 분들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홍성수: <공동정범> 이야기를 하려면 <두 개의 문>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요, 2009년에 용산참사가 있었고 <두개의 문>2012년에 개봉했어요. <공동정범>은 언제부터 촬영을 시작했나요?

 

김일란: 2013년 말에 용산 철거민 분들이 출소하셨을 때부터 촬영을 시작해서 2016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했어요. 제작 기간은 한 4년 정도인 것 같아요.

 

홍성수: <두 개의 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기획을 한 건가요?

 

김일란: 일단 기간 상으로는 그런 것 같아요. <두 개의 문>이 흥행을 하면서 감독으로서나 활동가로서 영광스러운 결과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그에 비해 현실은 많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 허탈했던 시점이 있었어요. 그때 우연히 유가족 한 분과 호주에 <두 개의 문>이 초청을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틀고, 저는 앞에서 많은 분들의 호응을 얻으며 주목을 받고 있는데, 유가족 분은 뒤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계신 거에요. '유가족'이라서 남들한테 잘 보이고 싶고 흠 잡히고 싶지 않아서요그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로만 존재해야 하는 유가족의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이런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결국 이 사건이 <공동정범>을 제작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홍성수: <공동정범>은 철거민의 갈등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요, 주위 분들이 이 점에 많이 반대를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선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김일란: 철거민들의 갈등을 작정하고 드러내겠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용산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목적으로 접근했고 당시 철거민 분들이 출소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막상 철거민 분들을 만났는데 이 분들의 관계가 좋지 않더라고요이들의 갈등이 공동정범이라는 기소 상황이 있었기에 발생했다고 느꼈고 국가 폭력으로 인해 이들의 갈등이 발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홍성수: 오늘 <공동정범>을 두 번째 보면서 촬영 분량이 엄청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감독님이 분명 엄청나게 심혈을 기울인 부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소개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일란이충연 씨를 묘사하는 부분에 가장 큰 심혈을 기울였던 것 같아요.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충연 씨를 볼 때마다 저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만 같았어요.(웃음다른 분들은 솔직하게 모든 걸 이야기 해주시는 것 같은데, 충연 씨는 솔직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어요. 항상 괜찮다고 이야기를 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근데 어떤 시점부터 충연 씨가 강하게 부정하고 방어하는 모습 속에 무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비슷한 감정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으로부터 받았던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 원인 모를 거대한 비극을 겪고 있을 때, 이 비극을 버텨내기 위해 정말 사소한 이유라도 꺼내어 자신을 탓하더라고요. 이를 계기로 충연 씨의 강한 부정과 방어벽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좋아서 웃는 게 아니고 감추려고 웃는 것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충연 씨를 이해하는 데 2년 정도 걸리고 마음을 여는 데 3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1차 집담회를 하고 인터뷰를 할 때 충연 씨와의 갈등이 정말 심했어요. 얘기 도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충연 씨가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데, 들어보니 그날의 일을 다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더라고요. 그 날 충연 씨가 제일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홍성수: 처음 볼 때는 이충연 씨가 정말 나쁜 사람으로 보여서 조금 걱정을 했어요.(웃음) 그리고 보다 보니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만든 원인은 더 멀리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 <공동정범>을 진행하는 주된 포맷 중 하나가 인터뷰라고 생각하는데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감독님이나 스태프 분들이 감정적 동화가 많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아픈 기억에 동화되면서 굉장히 괴로우셨을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이겨내셨는지요.

 

김일란: 일단 저의 경우에는 잘 동화되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인터뷰 할 때 다른 방식으로 여러 번 질문을 합니다. 제가 사건의 당사자들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순간 당사자들이 하는 인터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내용의 질문을 공격적으로 물어보기도 하고 시간의 순서를 뒤집어 물어보기도 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연대 참가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스스로 잘 설명하도록 진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관객: 감독님께서 작년에 암 투병을 하며 크게 아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공동정범>4년에 걸쳐 제작하는 동안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좋은 작품을 만드셨지만, 흥행이 조금 아쉽고 감독님의 건강이 걱정이 되기도 해요. 앞으로는 스스로를 어떻게 돌보면서 어떤 작업을 이어갈지 궁금합니다.

 

김일란: 작년에 조금 큰 수술을 받았는데, 저 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416미디어연대 활동을 하신 박종필 감독님도 작년에 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병을 겪으면서 개인의 탓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사회적인 것으로부터 건강에 영향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공동정범>을 찍으며 용산참사를 계속 마주하는 것도 그렇지, 박종필 감독님은 세월호 참사 현장에 가고 거리의 노숙인과 생활하고 강정마을 등의 소식을 들으면서 생기는 스트레스와 고민으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홍성수: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는데요,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김일란추운 겨울 이렇게 많은 분들이 극장에 찾아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저는 오늘 여기 오신 관객 분들이 타인의 고통에 함께 마주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타인의 고통을 보여주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엄청난 각오를 필요로 하는 일이에요관객 분들이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유가족 분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고 한 분 한 분이 극장에 찾아주실 때마다 유가족 분들에게 엄청난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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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을 더듬어 현실의 나를 오롯이 대면하다  <누에치던 방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2월 2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완민 감독 | 김새벽, 이상희, 이주영 배우

진행 이동진 영화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과거와 현실이, 그리고 낯선 인물들이 낯선 방식으로 얽히고설키기 시작한다. 모호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영화의 전개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것은 인물들이 겪는 상실의 감정과 과거를 통해 연대를 모색하는 새로운 관계의 출현이다. 잠실이라는 공간을 에워싼 특유의 분위기와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누에치던 방> 인디토크에 이동진 영화평론가, 이완민 감독, 김새벽, 이상희, 이주영 배우가 함께 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이하 진행) : 개봉 3일차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신지.

 

이완민 감독(이하 감독) :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데, 3월이 되면 알 수 있지 있을까. 그냥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진행 :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또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이상희 배우(이하 이상희) : 굉장히 디테일한 상황 환경 묘사가 많아서 대본을 읽기가 어려웠다. 감독님에게 솔직히 제 심경을 말했더니 모든 것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셨다. GV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해서 멋쩍은데 감독님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웃음닮고 싶고 곁에 두고 싶은 좋은 사람이다. 이 분과 함께 한다면 영화가 망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진행 : 김새벽 배우님께 질문 드리고 싶다. 전철에서 감독을 처음 만났고 두 분이 전화번호 뒷자리가 같다는데, 엄청난 인연이 아닌가 싶다. 영화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김새벽 배우(이하 김새벽) :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나온 다른 영화 시사회에서 처음 뵙고 같은 방향의 전철을 타게 되었다. 감독님께서 전화번호로 연락을 남겨주셨는데 뒷자리가 똑같았다. 제 생일과 전화번호 뒷자리가 같은데, 거기서 느낌이 왔다. 이 분도 생일이 같은 게 아닐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둘 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다.(웃음감독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다. 아주 짧은 쪽지였지만 거기서 사람이 느껴졌고 감독님께 반하기도 했다.

 

진행 : 이주영 배우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

 

이주영 배우(이하 이주영) : 단번에 이해가 잘 되는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연달아 두 세 번을 더 읽었다. 맥락의 측면도 있었고 생소한 단어도 있었고그래서 거의 공부를 하다시피 했다. 감독님을 처음 뵌 건 추운 겨울이었다. 여태까지 해온 작업과는 다른 작업이 될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팀과 함께라면 내가 그냥 뛰어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주저 없이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역할이나 분량에는 신경 쓰지 않았고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한 명이라도 빠진다면 이 퍼즐들이 어그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행 : 캐스팅이 흥미로운 영화다.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 면면이 연기가 탁월하다. 25년에 걸쳐 오고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12역과 21역이 있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기도 한다. 캐스팅을 할 때 원칙 같은 게 있었나.

 

감독 : 10대 역할과 30대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를 나누어 생각했다. 유일하게 12역을 한 김새벽 배우의 케이스는 조금 달랐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의도였다. 실제로 완전히 다른 무관한 인물로 봐도 되고 유령과 같은 존재로 생각해도 된다.

 

진행 : 배우 분들은 연기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했나.

 

김새벽 : 감독님께 (연기하는 인물이) 같은 인물인지 다른 인물인지 여쭤봤는데 어느 쪽도 상관없다고 하더라. 다시 물었더니 둘이 달랐다면 좋겠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확실하게 단언을 하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감독님이 준 몇 가지 키워드에 맞춰서 적당히 맞춰가려고 했다. 예를 들면 감독님이 자주 해준 말인 빡침’, ‘정념’, ‘자기 검열 없는 상태같은 단어다. 이런 단어들을 염두에 두고 연기했다.

 

이상희 : 과거를 표현하는 것 자체는 별로 문제가 없었는데, 어쨌든 고등학생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님이 머리를 묶으면 고등학생처럼 보일 거예요라고 하시더라. 자신이 없어서 가발을 사달라고 했더니 급하게 산 것 치고는 비교적 저렴하게 하나 구했다. 길이에 맞춰 감독님이 가발을 직접 잘라줬다. 거칠어 보일 수도, 티 날 수도 있는데 그게 나름대로 순수해 보이기도 하다며 합리화한다.(웃음)

 

이주영 :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홍승이 선배님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성인이 된 '성숙'의 습관이나 외모 같은 걸 모사해야 했다면 더 고민할 부분이 많았을 텐데, 감독님이 제가 고민했던 것들을 없애는 매개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좀 더 장면이나 감정에 집중하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홍승이 배우님보다는 김새벽 배우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해주셨다. 저도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하긴 하다.

 

감독 : 이주영 배우를 오디션에서 만났을 때 홍승이 배우님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질문 중의 하나가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결론이 없는 상태에서 인물이 어떻게 나아가는 지 한 번 보자는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어 갔다.

 

: 제목의 의미가 잠실의 뜻풀이인데, 영화의 주무대가 잠실에 있는 아파트다. 감독님의 개인적 추억과도 관련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굳이 '누에치던 방'이라는 우리말로 바꿔서 제목을 정한 이유가 있나.

 

감독 : 옥탑방이나 고시원 같은 공간과 연결 지을 수도 있고 잠실이라는 지역과도 연관시킬 수도 있다. 보다 직접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잠실에서 학교를 다닐 적에 창가에 앉아 딴 생각을 하다가 선생님이 잠실의 뜻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 때 잠실이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누에치던 방'으로 풀어 쓴 건 잠실이라는 지명과 과도하게 연결되는 상황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관객 : '성숙'과 '익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감독 : 공동의 기억을 가지고 동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결혼 관계가 아니더라도 그런 동거관계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관객 : 홍승이 배우가 맡은 '성숙'이라는 인물만이 유일하게 모든 캐릭터와 접점이 있는데, 어떤 생각을 하며 캐릭터를 구성했는가.

 

감독 : 처음 생각했을 때는 우리가 소위 운동권적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을 받아 주려는 의무감을 가진 캐릭터를 상상했다. 다만 찍는 과정에서 이런 인물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제기를 받았고, 이런 걸 무조건적으로 대상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을 해주셔서 그 인물에 대한 생각이 변하게 되었다. 그게 영화 속에서 드러난 것 같다.

 


관객 : 유독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감독 : 먹는 장면, 잠을 자는 장면, 휴식하는 장면이 일상과 가깝다고 생각해서 넣었다. 특별히 의식하고 넣은 장면들은 아니다.


 : 초판이 138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어떤 장면들이 삭제됐나.

 

감독 : 분량을 어떻게든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했다. 화장실도 다들 가고 싶어하실 것 같고.(웃음자의식 과잉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영화 문법과는 다르게 영화가 진행되는데, 길이까지 길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장면도 있다. 누군가가 '채미희'를 촛불동지라고 부르자 '조성숙'이 촛불동지는 부정적 뉘앙스가 아니냐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인데, (2016년의 촛불혁명 과정을 거친 마당에) 촛불동지라는 표현을 굳이 옹호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뺐다.

 






관객 : 포스터를 보면 배우들이 무채색 옷을 입고 있는데, 왼쪽으로 갈수록 색이 진해지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옅어진다. 김새벽 배우의 옷만 유채색인데 영화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감독 : 포스터는 제가 아닌 다른 분들이 제작했는데, 영화의 채도를 따라간 게 아닐까 한다. 현실을 찍은 장면은 낮은 채도로, 현실이 아닌 장면과 과거 장면은 누렇게 처리했는데, 현실과 비현실을 대비시키면서 과거는 환상이자 노스탤지어라는 생각을 담고자 했다.

 


관객 : 영화에서 남성이 두 명 등장한다. 남성 캐릭터를 굳이 등장시킨 이유가 궁금하다.

 

감독 : 여성적인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떤 목적의식이 있다기 보다는 늘 제가 마음속에 가졌던 반감의 표현이다. ‘여성이나 남성은 꼭 이런 이미지로 그려져야 해같은 게 있지 않나. 그런 제약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남성 캐릭터들을 넣었다.

 


관객 :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프레임을 짰다고 하셨는데, 추모나 애도가 아닌 희망의 메시지나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시선 같은 게 영화 속에 있는가.

 

감독 : 저는 이 영화가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직면하는 것 자체가 변화를 예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인물들이 과거에 매여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나.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변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다.

 


관객 :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 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다. '미희'가 '성숙'과 친구가 되는 와중에 '성숙'이 동거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미희'가 전에 만났던 남자를 '성숙'이 만나기도 한다. 남성 캐릭터를 그런 관계 속에 둔 이유가 궁금하다.

 

감독 : 인물이 너무 많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와 현재를 계속 오가기도 하고 새로운 인물들을 그리기가 모호해서 있는 사람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가자는 생각을 했다. 굳이 연애 관계에 집중한 건 아니다.







  : 마지막 인사말과 함께 GV를 마치고자 한다.

 

감독 : 해명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뭔가를 잔뜩 적어왔다. 영화가 좀 혼란스럽다는 의견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가 아무거나 막 던지는 건 절대 아니다.(웃음여러 고민들이 담겨 있다. 이 영화가 여러분이 각자의 삶에서 고민하는 부분에 대한 재료가 됐으면 한다.

 

이주영 : 관객 여러분들의 힘이 많이 필요하다. 감독님이 다음 작품도 멋지게 찍을 수 있게 좋은 입소문 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상희 : 독립영화를 많이 접하지 않는 분들이라면 영화를 어렵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려했다.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분명 있지만 그걸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으셔서 너무 감사하다

 

김새벽 : 시나리오에 사람을 그렇게 잘라내냐. 너는 나한테, 나는 너한테 영향을 줄 수 있는데 그냥 잘라내 버리면 아무 것도 못하지 않느냐라는 대사가 있다. 저에게는 그 대사가 이 영화의 전부다. 영화를 찍은 뒤에 과거의 불편했던 관계를 대면하는 계기가 생겼는데, 그게 겁냈던 것만큼 두렵지는 않더라. 여러분도 이 영화를 통해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와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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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정범 한줄 관람평


이지윤 | 아직도 불타는 망루 안에는 사람이 있다

박범수 | 지속 가능한 공동체와 연대를 질문하다

조휴연 | 가장 두려운 것은 희미해져 가는 기억과

최대한 | 연대로서 함께 고통에 마주하다

이가영 | 정작 스스로를 책망해야 할 자는 누구인가 

김신 | 공동체와 기억의 분열을 직시하고도 시선을 돌리지 않겠다는 대면의 윤리 속에서 혁명은 비로소 가능성을 얻는다

남선우 | 언젠가 카메라가 나를 비출 때 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공동정범 리뷰: 지속 가능한 공동체와 연대를 질문한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공동정범>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철거민들이 용산참사 현장에 얽힌 엇갈린 입장들을 하나 둘 씩 꺼내 놓을 때다. 전국 철거민 연합 회원들은 용산 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의 태도에 서운함을 표한다. 용산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었음에도 농성에 참여한 회원들의 희생이 외면 당했다는 것이다. 철거민 대책위원장이었던 이충연 씨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신세를 한탄하면서 철거민들끼리 의미 없는 모임을 가질 시간에 다른 집회 현장을 찾아 다니며 용산참사를 조금이라도 더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철거민들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순간, 용산참사의 본질을 국가 폭력에 맞서는 철거민들이라는 프레임만으로 이해하기는 다소 난처해 진다. 왜 철거민들은 국가 폭력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반목하는가. 이제는 순수한 연대는 커녕 생존과 정당한 권익을 위한 연대마저도 불가능해진 것일까.

 






철거민들의 갈등 이면에는 서로 말하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복잡하게 엉겨 붙어 있다. 경찰 진입을 막기 위해 뿌린 인화성 물질이 화재의 원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철거민의 고백이 있고, 동료들과 아버지를 남겨 두고 혼자 망루에서 뛰어내린 외면하고 싶은 기억이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 때문에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는 자책감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문제는 저마다의 고통을 드러내고 증명할 방법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모든 생존자들이 손으로 함석판을 짚고 불타는 망루에서 뛰어내린 상황은 똑똑히 기억하지만, 그 함석판에 길게 베인 손바닥의 상처는 아문 지 오래다. 생존자들이 6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억울하게 짊어지고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참사 현장은 재개발 계획에 의해 깨끗이 철거되었다. 참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지는 동안, 갈등과 상처들은 해소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곪아 들어가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공사가 중단되어 방치된 또 다른 재건축 현장에서 살아가는 삶, 한 때 누군가가 살았던 건물을 철거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삶, 동료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의 공론화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삶은 모두 그 황폐화된 내면의 풍경들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동정범>의 카메라는 수 년의 시간 동안 조금씩 무너져 가던 생존자들의 삶의 궤적을 충실하게 담는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멀리 나아가는 시도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폐허를 딛고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영화는 참사 당일의 현장을 기록한 경찰 채증 영상으로 돌아간다. 흔적으로만 남아있던 참사는 철거민들의 기억 속으로 다시 한 번 생생하게 소환된다. 그리고 마침내 각자가 마음 속으로만 품고 있었던 기억들이 조심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각자의 기억들을 채증 영상과 짜맞추어 보는 순간, 명백한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죄책감이 빚어낸 거대한 허상이었다는 것 또한 드러난다. 주관적인 감정으로 지탱해 온 불완전한 기억들은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 바로 잡힌다. 바로 잡힌 기억들 위에 형성된 공감대는 비로소 죄책감 너머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화재의 원인과 사건의 진상을 온전하게 밝히기에는 충분하지 않지만, 적어도 서로가 품고 있던 오해와 죄책감을 해소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환부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환부가 정확히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다.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는 참사의 궁극적 원인인 국가 폭력을 조명한다. 무리한 진압 작전을 승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6명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경찰청장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그 경찰청장의 상관들은 참사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자신들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영화는 진상규명과 연루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공동체와 연대가 어떻게 분열하고 해체되는 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동정범>은 좀 더 큰 의미를 가진 영화로 다가온다. 공동체와 연대의 문제를 철거민들만의 것으로 미뤄두기에는 그들이 겪었던 오해와 반목의 과정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다른 국가 폭력에 의해 제 2의 용산참사가 발생하더라도 공동체와 연대는 과연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공동정범>이 무겁게 던지는 진정한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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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션에 대한 야심찬 열망  인디포럼 월례비행 <뿔을 가진 소년>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1월 31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휘근 감독

진행 정지혜 영화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김휘근 감독의 <뿔을 가진 소년속 등장인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의문스러운 질병에 걸린다. 여러 인물들은 각자의 서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모두 헛헛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전문 의학의 손길 바깥에서 인간 녹용이라는 도시 괴담의 진원지를 찾아 헤맨다는 형편을 공유한다. 추격전과 스릴러라는 야심찬 시도를 선보이고 있지만, 두드러지는 상징을 통해 소비자본주의가 만연한 세정을 다소 직설적으로 환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도권 지역을 선회하는 2030세대의 고달픈 삶을 묘사해온 독립영화들의 경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다만 프로덕션의 전 과정을 홀로 작업하며 규모 있는 서사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고 있는 이 호기로운 감독의 행보에는 주목할만한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김휘근 감독, 정지혜 영화평론가가 함께한 대담은 그의 차기 행보에 관한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다.

 

 






정지혜 영화평론가 (이하 정지혜) :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게 된 정지혜입니다. 지난해 부산독립영화제 대상수상작인 <뿔을 가진 소년>에 대해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휘근 감독 (이하 김휘근) : 안녕하세요. 김휘근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참석해주신 것 같아 감사합니다.

 

정지혜 : 이 영화는 편집과 촬영, 시나리오까지 많은 부분을 거의 다 감독님이 도맡아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은 고등학생 때부터 동아리를 만들어 영화 작업을 해왔고 대학을 진학하지 않으면서 제도권 바깥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뿔을 가진 소년>은 굉장히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고 느꼈는데요, 그 점에서 대다수의 독립영화들이 주로 다루는 소재와 다른 점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요약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휘근 :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입대를 했어요. 그 전까지는 부산에서 청소년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얀색은 더럽다>(2014)를 작업 했는데요, 군대 안에 있었기 때문에 편집을 하거나 배급을 하는 데 부담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군대 안에 있던 2년 동안 영화와 관련된 활동을 하지 않으면 감이 무뎌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시달렸기에 틈틈이 작업을 했었습니다. 제대가 가까이 오면서부터 <뿔을 가진 소년>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정지혜 : 이야기는 건강원이라는 한국적인 보신 문화와 그를 둘러싼 욕망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요, 이런 소재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이전부터 뿔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싶기도 했고, 군대 안에서 자연이나 생로병사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많이 보면서 영향을 받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정지혜 :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이 자신의 작업에 관한 생각이 굉장히 뚜렷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상징이나 화법이 다소 직설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는 창작자들이 종종 피해가려는 방식이기도 하기에 오히려 눈에 띄었습니다.

 

김휘근 :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소품이나 배경에 특정한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요소들의 상징성이 서로 부딪치면서 빚어내는 에너지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에 불상이 자주 나오는데, 제가 이전부터 종교적인 상징물에 관심이나 애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요소들 안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상징을 벗고 자연스럽고 일상적으로 찍었을 때 어떤 방식의 결과물이 나올지에 관해서도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정지혜 : 영화에서 스릴러와 같은 장르영화에 대한 열망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많은 영화들을 레퍼런스로 참고하며 작업을 진행하지 않았을까 지레짐작을 해봤습니다.

 

김휘근 : 전 사실 영화를 많이 안 보는 편에 속합니다. 영화를 치열하게 보는 것보다는 다른 취미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주변 분들은 앞으로 영화를 보고 많이 공부를 해보는 것도 어떠냐는 조언을 해주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서사보다는 이미지에 관심이 많아서 이전부터 영상이나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보다는 뮤직비디오나 CF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정지혜 : 영화가 촬영 로케이션도 많고 인물도 많습니다. 촬영 회차도 40회차가 넘는다고 들었는데 이 거대한 규모를 홀로 짊어지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작 여건이 영화의 내적 요소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프리프로덕션 과정이나 스토리 보드 제작을 거의 하지 않고 현장의 즉각적인 기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행과정이 부족해서 스스로 아쉬움을 느낀 부분이 있어 이제 아카데미에서 프로덕션을 본격적으로 배우려고 합니다. 다음 영화인 <불발탄>은 전쟁에 관한 영화인데, 전쟁영화의 규모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투자를 받거나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정지혜 : 영화 속에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그들의 이야기를 편집을 통해 엮는 과정에서 고충을 겪진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원래 제가 이야기나 인물들의 감정선에 집중을 하기 보다는 이 장면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와야 박자에 맞을지, 혹은 박력이 있을지 고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음 영화인 <불발탄>6.25 전쟁 때 묻혀있던 폭탄이 새로 발굴된다는 내용의 작품인데요, 이 작품에서도 플롯이 세 가지로 갈라지고, 나뉜 플롯이 엔딩에서 같은 느낌을 공유하게 되는 방식의 작품일 것 같습니다.






관객 : 차기작인 <불발탄>을 위해 전쟁영화를 많이 보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영감을 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휘근 : 거의 모든 전쟁영화를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틈틈이 작품들을 찾아보고 있고요, 전쟁을 다루는 게임도 많이 플레이하고 있습니다.(웃음) 전쟁 속에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6.25와 관련된 사진들도 찾아봅니다. 전장을 촬영했던 기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카메라를 들었을지 생각하면서요.


 

관객 : 영화의 결말부에서 해석이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휘근 : 원래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개인이 자본주의 안에서 겪을 수 있는 아픔, 그리고 그것이 계속 윤회된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려고 했기에 마지막 장면도 그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정지혜 : 영화의 결말에서 인물들이 한강에 결집한다는 게 의미심장한 것 같습니다. 한강은 그간 한국영화에서 상징성을 가진 장소로 활용되어 왔어요.

 

김휘근 : 영화를 구상하면서 한강이라는 장소보다는 잠실에 있는 커다란 빌딩에 유념하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항상 그런 커다란 빌딩이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는데, 그 건물이 잘 보이는 장소가 잠실대교 남단 정도라고 생각을 해서 그 곳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정지혜 : 배우 분들과도 전작부터 계속 같이 작업을 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휘근 : 꾸준히 작업을 같이 해온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작업을 진행할 때 스태프가 적어서 고생을 했는데 그런 시기마다 배우 분들에게 의지한 점도 있습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많이 와주셨는데 배우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유쾌한 상황 속에서 작업을 하려고 노력을 해도 영화 작업이 고된 만큼 힘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그런 상황 속에서 제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저를 알고 있고 제 성장과정을 지켜본 배우 분들이 저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오늘 와주신 관객 분들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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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다는 것  <파란입이 달린 얼굴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120일 오후 740분 상영 후

참석 김수정 감독, 장리우 배우

진행 정지혜 영화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파란입이 달린 얼굴> 속 세상은 거칠고 고단하다. 인물들이 무표정할 수밖에 없도록 내몬다. 소소한 행복을 선물했다가도 공허함을 안기고, 기대를 품게 했다가도 절망 앞에 인물을 방치시킨다. 주저앉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들이 반복된다. 그러나 서영은 질기게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1월의 토요일 저녁, 정지혜 영화평론가의 진행으로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작품을 연출한 김수정 감독, 그리고 서영을 연기한 배우 장리우가 함께했다.

 


 




정지혜 영화평론가 (이하 진행): <파란입이 달린 얼굴>2015년에 만들어졌다. 개봉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관객 분들을 만나는 이 자리가 더없이 소중할 것 같은데, 소감을 들어보고 싶다.

 

김수정 감독(이하 김): 연출을 하고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관객 분들과 만나게 되었다. 영화를 다시 보았는데, 굉장히 놀랐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싶었다.(웃음) 내가 2년 전에는 더 젊었었나 보다. 과거의 나 자신을 대하는 게 새롭고 낯설었다.

 

장리우 배우(이하 장): 오랜만에 주인공을 했는데 개봉을 못할까봐 노심초사 했다. 그리고는 잠시 작품을 잊어버리고 있었다.(웃음) 서영을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그리고 이렇게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진행: 어떻게 서영이라는 인물이 탄생하게 되었나? 캐릭터가 중요한 출발이었을 것 같다.

 

: 처음부터 내러티브로 시작한 영화가 아니다. 무표정한 여자, 비호감인 여자, 장애인, 스님이란 캐릭터에 대해 스스로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조금씩 했던 것 같다. 서영이란 인물의 모티프는 마트나 도시락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분들에게 얻었다. 같이 생활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분들이었다. 내가 그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그런 나를 발견한 후 갖고 있던 편견을 조금 바꿔서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거기에 살을 붙여서 이야기가 탄생했다.

 

진행: 서영이라는 인물을 받아보았을 때 첫인상이 어땠는가?

 

: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런 역할을 아주 좋아한다. 그렇지만 도대체 감독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하는 고민이 있었다

 

진행: 두 분이 캐릭터를 만든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 캐릭터를 분석하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었다. 정말 이야기가 잘 통했고 합의가 잘 되었다. 그런데 배우님이 리허설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적다 보니 처음에는 걱정을 했는데, 리허설을 안 하겠다는 이유가 굉장히 좋았다. 이미 감독과 캐릭터에 대해 합의된 지점이 있고,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들이 배우님은 좋다고 했다. 그 말이 너무 좋아서 그렇게 가자고 했다. 그런데 전날 잠이 안 오더라.(웃음) 하지만 촬영에서 보여주신 모습들을 보고 첫날부터 좋아서 울었다.(웃음)

 

진행: 어떤 장면이었나?

 

: 첫날에 마지막 장면을 찍었다. 리허설, 리딩 등 정해진 대로 하다 보면 서영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한 거다. 서영이 뭘 원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되었으니까. 그리고 서영의 의상을 감독님과 사러 간 적이 있다. 홍대 구제샵에서 의상을 고르며 서영의 이미지가 확실히 다가왔다

 

: 옷을 보고 이걸 어떻게 입으라는 거냐고 짜증내셨다.(웃음) 수긍을 하는 과정들이 또 있었다.

 

: 영화에 저 의상들이 없었다면 서영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진행: 의상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 일단 의상을 구체화시키지 않고 구제샵을 돌아다녔다. 서영이 입을법한 의상들을 나름대로 골랐는데 옆에서 장리우 배우님이 너나 입어라라고 했다.(웃음조합을 어떻게 잘 하면 그래도 간지’ 나는 옷들이다. 아닌가?(웃음) 약간 촌스러운 느낌으로 조합을 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거다.

 


진행: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를 만드는 데 서영의 무표정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다. 무표정을 통해 이 인물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길 원했는지 감독님과 배우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 말도 하기 싫고 애써 표정을 만들고 싶지도 않은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다. 모티프가 되었던 분들도 그러했을 테고. 그런 감정들을 계속 이야기하면서 구축해가지 않았나 싶다.

 

: 그 무표정 안에 서영의 감정들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 속에서 나오는 울음, , 분노 등이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진행: 일자로 앞을 보고 서 있는 자세도 인상적으로 남았다. 각목 같다고 해야 할까. 그 자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 그 서영의 자세로 서있으면 허리가 많이 아프다.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남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야 하고, 내 것을 가져야 하니까 그렇게 서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세는 사실 서영에게 굉장히 불안하다. 마음을 감추고 서 있으니까.

 


진행: 카메라가 계속 삼각형의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그런 카메라 세팅을 지향한 게 아닐까 생각했고, 그 구도가 주는 불안감이 있었다.

 

: 컷을 많이 나누지 않았다. 정적인 화면 안에서 배우들과 카메라 앵글이 만들어 내는 불안과 불편, 관객이 마주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내 폭력성이 드러난 지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것들을 계속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배우들 간의 에너지도 컷의 변화로 보여주기 보다는 라이브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잘 표현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관객: 서영이 어머니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 카메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두 인물의 뒷모습만 보여준다. 그리고 나중에 오빠가 죽음을 맞이할 때는 철저하게 앞모습을 보여준다. 두 장면이 대비되어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연출의도가 궁금하다.

 

: 콘티를 짤 때 우리가 뒤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나 앞에서 마주하지 못했던 것들을 계속 찾아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뒷모습을 선택했고 오빠의 죽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앞모습을 선택했다.

 


관객: 세 명의 가족 구성원이 나온다. 엄마와 오빠는 죽음을 선택했다고 보이는데, 서영은 왜 그렇게 살고 싶어 했는지 궁금하다.

 

: 20대 때 좋아하던 작가가 있었는데, 요절했다. 그 분이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마음속에 많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그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어떤 시인 분이 내가 너무 그것을 미화시키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해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조금 충격을 받았었다. 어떻게 보면 서영은 굉장히 맹목적이고 동물적인 것 같다. 짐승이 아무 이유 없이 살려고 하는 것,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그 고비를 하나하나 넘는 것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응원하고 싶었다.

 


관객: 질문이 두 가지 있다. 먼저 제목의 의미가 궁금하다영화를 보는 내내 서영의 다양한 방면에서의 잠재성이 많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을 드러낸 이유 또한 궁금하다.

 

: <파란입이 달린 얼굴>이라는 제목은 시나리오를 다 쓰고 떠오른 서영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입술이 아닌 입이라 표현을 하니 굉장히 추상적이지 않나. 그런 느낌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봉 준비를 하며 배급사에서 주목한 장면이 있었다. 서영이 시루떡을 열심히 먹는 장면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생존을 위한 파란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중에 배급사 덕분에 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나 잘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개발되어 돋보이느냐, 돋보이지 않느냐 그 차이일 뿐이다. 내보이지 못하면 평가절하 되는 게 싫었다. 서영을 응원하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했다.

 


관객: 장리우 배우님께 질문이 있다마지막 장면에서 서영의 감정이 궁금하다.

 

: 두 가지 버전으로 찍었다탁구를 치는 것탁구를 안 치고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그 두 가지를 연기할 때 모든 감정을 떠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행: 입이라는 것이 주는 인물의 독특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 서영파란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 연기를 할 때 크게 생각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질문을 받고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먹고, 노래하고 이런 것들은 서영의 입장에서 굉장히 자연스러웠는데 입을 떼 말을 하는 것은 어려웠던 것 같다.

 

진행: 몸을 쓰는 일들도 굉장히 많지 않았나. 무릎을 꿇는 장면에서도 인물이 굴복하고 인정한다는 느낌보다는 그것이 이상한 방식의 저항처럼 보였다.

 

: 무릎을 꿇는 것도 먹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죄의 의미, 반항의 의미를 모두 제쳐두고 살아야 하니까.

 

진행: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중하고 사려 깊게 다가가려 했던 것 같다.

 

: 오히려 더 편하게 표현했다. 꾸밀 필요도 없이 그냥 본 대로만 하면 됐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옆에서 지켜보며 나 역시 편견을 지니고 있단 사실을 발견했다. 계속 베풀고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나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화들짝 놀랐다.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는 그 자체가 불편한 거다. 여기 나온 에피소드들은 그 친구와 함께 겪었던 불편함이다. 문턱이 있으면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택시를 부르면 두 시간 후에나 오고. 사소하게 겪었던 그런 불편함이 그대로 표현되었다.

 


관객: 장리우 배우님이 생각한 서영의 전사를 듣고 싶다.

 

: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지지리 가난하고 아버지는 온데간데없다. 서영에게 제일 중요했던 것은 오빠의 장애다. 그 장애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감독님과 이야기할 때 처음부터 장애가 있었던 게 아니라 어떤 사고로 인해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빠에게 사고가 난 지점, 그리고 엄마가 아픈 지점이 지금과 똑같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져 왔을 것 같다.

 


진행: 감독님은 영화작업 이전에 희곡작업을 먼저 했던 걸로 알고 있다. 영화에서 연극적인 연출이 돋보였다.

 

: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영화는 쇼트가 바뀌는 데서 오는 에너지가 있고 연극은 배우가 무대를 통째로 끌어가는 데서 오는 에너지가 있는데, 연극을 먼저 해서 그런지 후자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영화에서 그게 특히 많이 드러난 것 같다.



 




진행: 마지막으로 관객 분들께 인사 부탁드린다.

 

: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 차가운 영화를 2시간 동안 보셨지만, 따뜻해지셨으면 좋겠다.(웃음)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모르겠다.

 

: 몇 년 전 영화제에서 <파란입이 달린 얼굴>을 처음 봤을 때 뭔가 낯선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혼자 영화를 보았는데,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몰입해서 보았다. 너무 좋았다. 오늘 와주신 것도 정말 감사하지만, 시간이 된다면 한 번 더 보시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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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에 살어리랏다 한줄 관람평


이지윤 | 가장 뭣같은 순간에, 흥이 폭발한다

조휴연 | 개운치도 않게 씁쓸함이 남는 뒷맛

최대한 | 내려놓으니 유쾌하다

이가영 | 선택의 기로에 놓여도 신념은 잃지 말길 

김신 | 헬조선의 삶은 고단하고, '나만 힘들어죽겠어' 서사는 오늘도 타인을 응시하지 못한다.

남선우 | 속도감 있는 전개와 그 속도를 견디며 달리는 캐릭터들의 계급 소동극







 <반도에 살어리랏다 리뷰: 현실이라는 꿈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46세의 연극영화과 시간 강사 오준구는 상황에 따른 즉흥 연기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한껏 몰입한 채 주어진 설정에 맞는 대사와 몸짓을 선보인 그에게 학생들은 감탄한다. 맨 앞줄 학생 하나가 교수님, 요즘은 작품 활동 안 하시냐 묻자 준구는 대답했다. 연기자는 기다리는 직업이야.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준구의 기다림에 대한 세상의 짓궂은 응답과 이에 따른 준구의 반응이 빚어내는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이다. 어느 날 갑자기 꿈이냐 현실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 준구의 모습이 펼쳐지는 초반은 익숙한 딜레마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의 꿈과 현실은 각각 '드라마 출연'과 '정교수 취임'이다. 전자는 준구의 오랜 소망인데 반해 후자는 가족, 그 중에서도 아내의 염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인물을 두 갈래 길에 세워둔 채 어떤 길을 택하는 게 옳은 일일지 고민하게 하는 일에 집중하는 듯하다가 꽤 간단히 그 고민을 봉합해버린다. 자식의 사고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긴 준구는 끝내 오디션 장소인 길흥빌딩의 엘레베이터에 오르지 못하고, 노교수 최기호가 약속한 정교수 자리에 앉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준구가 안착한 현실조차 꿈과 같았다는 것이다. 그가 선택한 현실은 꿈의 포기가 아니라 다른 질감을 가진 꿈길로의 고난이었다. 노교수 최기호의 약속만 믿은 준구가 순진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 나간다. 이야기는 다시 그 약속을 있게 한 사건으로 돌아가 그 사건으로부터 파생된 관계들을 재정립하고, 현실 감각의 딜레마에서 도덕적 딜레마로 인물의 문제를 옮겨 간다. 재미있는 것은 준구가 마치 고민은 초반에서 이미 마쳤다는 듯 새로운 꿈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인물로 태세를 달리한다는 점이다. 이는 인물의 개성을 떨어트리고 감독이 준비한 결말을 향해 의도적으로 인물을 몰아가는 느낌을 주는 한편 제목에서 엿볼 수 있는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심슨 가족' 캐릭터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용선 감독의 취향과 장기가 녹아 든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이렇듯 속도감 있는 전개와 그 속도를 견디며 목적지로 나아가는 캐릭터들의 활용이 주가 된다. 주인공을 스쳐가는 행인과도 같았던 캐릭터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 스토리의 국면을 바꿔나가는 지점들이 흥미롭다. 가족들, 학교 사람들과 같은 조연 캐릭터들이 다소 전형적으로 스토리에 복무하지만, 각자 할 일을 해내면 미련 없이 자취를 감춘다는 점에서 최근 스타 캐스팅 덕으로 관객에게 여러 인물의 극중 역할을 쉽게 이해시킨 영화 <1987>의 장점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애니메이션이라 가능했던 몇몇 장면들이 가진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최기호를 쫓던 여학생 기쁨이 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의 다리를 기어올랐던 거미를 구두 굽으로 밟아 죽이는 장면은 은유적인 동시에 꽤나 직접적으로 분노가 표출되어 인상적이고, 영화 중간 중간 삽입되다 결말에 닥쳐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준구의 살풀이에 가까운 춤 장면은 실사와의 결합을 통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시각적 쾌감을 선물한다.

 

결국 이 영화는 계급에 대한 갈등, 계급 간의 갈등이 일으킨 한 편의 소동극이다. 영화는 복합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계급을 포착해낸다. 준구는 정교수의 계급을 동경하여 노교수 최기호의 치부를 감추는 데 동조하는 한편 준구의 아내는 이 동네는 전부 질 낮은 애들밖에 없다교수 집안이 될 자신의 가족이 처할 계급적 우위를 빌려 자신이 살던곳이 될 지역을 비난하고 나선다. 또한 두 사람 모두 계급재생산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는데, 아내가 더 적극적으로 이를 표현하긴 하지만, 준구가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딸 현서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꿈을 강조하다가도 학군을 고려해 이사를 하려는 아내의 결정에 함구하고 마는 것은 그도 결과적으로 계급재생산에 대한 두려움을 안은 반도의 부모라는 점을 보여준다. 최기호의 자동차와 준구의 아들 현준이 망가뜨린 자동차 모두 벤츠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극중 경제 계급 차의 판단은 힘들지만,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학생인 기쁨보다 우위에 있는 선생 준구가 끝내 기쁨에게 무릎을 꿇고 다시금 연기를 하고 마는 장면은 끝내 이 영화가 구심점으로 삼아온 계급 질서를 전복시키면서 계급에 목매고 달려 나간 인물의 자존심을 짓밟아 버린다. 결과적으로 가족 때문에 가지려고 했던 것(교수로서의 계급)을 잃으면서 가족도 함께 잃고, 준구 자신이 진정 갖고 싶어 했던 것(배우로서의 기회)을 작게나마 되찾는 결말은 인물에게 무엇이 꿈이었고 무엇이 현실이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게 만들며 관객에게 판단을 넘긴다. 물론 마지막에 준구와 현준의 대화를 통해 가족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언뜻 내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는 블랙 코미디의 알싸한 맛을 살리며 끝을 맺는다.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인물의 선택이 만든 이야기의 변곡점들에 어지러이 휘둘렸을 관객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다. 당신이 현실을 택한 것이 굴복이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으로의 진입임을 안다는 듯, 그 현실도 결코 쉽지 않아 꿈결을 헤매는 기분이겠거니 이해해주는 듯 말이다. 영화가 인물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물의 행동을 반도에 살어리랏다라는 제목 아래서, 나에게 비추어, 다시금 읽어보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어쩐지 한 해의 시작 1월에 어울리기도 하는 반가운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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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 연대기 한줄 관람평


이지윤 | 피의 연대(年代)로 또 다른 연대(連帶)를 이야기하다

박범수 | 섹스와 젠더의 굴레에 맞서는 유쾌한 앎의 투쟁, 그 안에 굳건히 자리한 인간 이성의 진보에 대한 믿음

조휴연 |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다

최대한 | 잔잔한 물결이 파도가 되기를

이가영 | 사회적 금기를 넘어 인류학적 성찰에 이르기까지

김신 |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긍정하기 위해서, 스크린 너머의 타자를 긍정하기 위하여 영화와 역사는 진보해야만 한다

남선우 | 축 탄생! 우리 생애 첫 생리 도감







 <피의 연대기 리뷰: 잔잔한 물결이 거대한 파도가 되기를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대한 님의 글입니다.






# 잔잔한 물결이 거대한 파도가 되기를

 

우리는 사회의 심층적인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사회 다큐멘터리라고 부른다. 찰스 퍼거슨의 <인사이드 잡>(2010)처럼 자본주의를 다루거나 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처럼 국가폭력을 다루는 것만이 사회 다큐멘터리인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장엄하고 거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 역시 사회적 다큐멘터리의 한 종류이다. <피의 연대기>왜 한국 여성들만 생리대를 사용할까?’라는 작은 궁금증으로부터 여성의 인권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확장해나간다.

 




 



# 간접적으로 여성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27살이 되기까지 어느 누구도 여성들의 생리에 대해서 알려준 적이 없었다. 사실 크게 관심도 없었고 차마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다. 생리에 대해서 아는 것은 미미했다. 약 한 달을 주기로 생리를 하고 생리 기간 동안 고통스럽다는 것뿐이었다.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들을 비롯해 세상 구성원의 절반이 여성이고 생리를 경험하는데, 그 사람들의 고통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무식했던 본인에게 <피의 연대기>는 간접적으로나마 여성들의 생리에 대해 알려준다. <피의 연대기>는 생리대의 역사에 대해 다루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큰 충격을 선사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과거에도 현재와 같은 생리대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생리대와 투쟁해왔고 오랜 투쟁의 결과물로 현재 사용하는 생리 용품이 등장할 수 있었다.

 

남성으로 살면서 여성들의 이러한 고통에 완전한 공감을 할 수 없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그녀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귀 기울일 수 있을 것만 같다.

 

 





 

# 모션그래픽과 다큐멘터리의 콜라보

 

최근 많은 영화들이 관객들을 사로잡는 방법으로 모션그래픽을 채택한다.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오프닝 시퀀스에서 등장한 모션그래픽이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어떤 모션그래픽보다 다이나믹한 박자감을 갖고 있었고 이를 활용하여 기존의 프레임과 또 다른 하나의 프레임을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측면에서 미학적인 아름다움도 가지고 있었다.

 

<옥자>의 모션그래픽이 미학적인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다면 <피의 연대기>에서 사용되는 모션그래픽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다. 오프닝 시퀀스가 끝난 후 적당한 리듬감으로 펼쳐지는 파스텔톤 텍스트 그래픽은 산뜻하고 편안하게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이어 모션그래픽이 주는 편안함으로 생리에 대한 거부감을 상쇄시키고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효과는 김보람 감독의 철저한 계산을 통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김보람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 <피의 연대기> 제작과정에서 주된 방향성 중 하나가 긍정적 느낌을 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를 위해 사용한 도구 중 하나가 모션그래픽인데, 이 적합한 도구를 통해 남성에게는 금기 같았던 생리라는 소재를 가볍게 전달한다.

 


 

 




# 작은 궁금증에서 확장하다

 

<피의 연대기>는 김보람 감독의 사소한 궁금증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네덜란드 친구 샬롯에게 생리대 주머니를 선물한 적이 있다. 평생 탐폰을 사용해왔던 샬롯은 생리대 주머니에 대해 신기해하고 의아해했다. 김보람 감독은 ‘왜 한국 여성은 생리대를 쓰고, 서구 여성들은 탐폰을 사용하는 걸까?’라는 궁금증으로 <피의 연대기>를 시작했다.

 

이 작은 궁금증에서 시작된 <피의 연대기>는 점진적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간다. 그녀의 작은 궁금증이 생리를 하는 여성들의 고통, 인권, 투쟁의 역사로 이어진다. <피의 연대기>는 미약한 궁금증으로 시작했지만, 끝은 전 세계의 반절인 여성들의 고통을 대변하면서 끝이 난다.

 

 

<피의 연대기>는 최근에 본 가장 이상적인 다큐멘터리였다. 김보람 감독은 사소한 궁금증을 시작으로 극을 진행해 나간다. 이러한 방식은 다큐멘터리는 소수의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앞으로 김보람 감독과 제작진이 어떤 시선으로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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