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날의 꿈> 개봉 6주년 특별상영 "기억" 


일시 2017년 6월 24일(토) 오후 5시 (상영 후 인디토크)

관람료 7,000원





<소중한 날의 꿈 Green Days>

안재훈, 한혜진 | 2011 | 애니메이션 | 95분 | 전체관람가


달나라에 인간이 도착한 그 해

나에게는 첫사랑이 찾아왔습니다.


김일의 박치기에 환호하고, 달나라에 간 우주인을 신기해 하던 그 때. 

달리기 실력 외에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한 여고생 ‘이랑’은 영화 <러브 스토리> 보다 더욱 아름다운 사랑을 하겠노라 꿈꾼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녀는 그저 헐렁한 교복이 불만인 인기 없는 소녀일 뿐이다. 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심지어 교복까지도 몸에 딱 맞게 입는 세련된 서울 전학생 ‘수민’과 친구가 되고 초라해진 자신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수민을 보기 위해 교실로 몰려든 남학생들 틈에서 우연히 ‘철수’와 마주치게 된다. 하늘을 나는 것이 꿈인 철수는 학교 옥상에서 비행실험을 하다 추락하는 사고를 겪게 되고 이랑은 이런 엉뚱한 철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라디오를 고치기 위해 전파상을 찾은 이랑은 삼촌 대신 수리를 맡고 있는 철수와 다시 만나게 되고 둘은 급격히 친한 사이가 된다. 자신의 발명품으로 가득한 아지트를 공개하고, 라디오를 가져다 주기 위해 직접 집까지 찾아오는 철수에게 두근거리는 감정을 가지게 된 이랑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설레임에 복잡하기만 하다. 


하지만, 우연히 수민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철수를 보게 되고, 수민 앞에서 몹시 긴장하는 철수를 보고 이랑은 ‘나는 그저 친구일 뿐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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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돌잔치 2017년 6 상영작 <우리들>



디돌잔치는 매달 마지막 화요일에 진행되는 인디스페이스의 프로그램으로, 1년 전 개봉한 독립영화의 1주년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스크린을 통해 그 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보세요!


인디돌잔치 2017년 6월 상영작 <우리들>(감독 윤가은)

● 일시: 2017년 6월 27일(화) 오후 7시 30분

● 입장료: 7,000원 / 후원회원, 멤버십 무료

● 상영 후 인디토크 (참석: 윤가은 감독 /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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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OF 발견과 주목 <플레이 온>

일시 2017년 6월 20일(화) 오후 8시

인디토크 참석 변규리 감독,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 | 진행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관람료 6,000원 (인디스페이스, 인디다큐페스티발 후원회원 무료 / 멤버십 5,000원)




<플레이 온 Play On>

변규리 | 2017 | 83min | Color

22회 서울인권영화제 국내작품 초청

22회 인디포럼 올해의 관객상 수상

17회 인디다큐페스티발 관객상 수상



 SYNOPSIS 


라디오 DJ로 변신한 SK브로드밴드 케이블 하청 노동자들. 정규직 전환을 위한 파업 소식을 알리기 위해 <노동자가 달라졌어요!>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한다. 하청노동자로 일하며 느끼는 서러움, 진상 고객들의 뒷담화, 꿈과 미래를 이야기 하는 이들에게 라디오 스튜디오는 또 하나의 삶의 무대다. 노동자들은 1차 하청업체의 정규직전환을 바라며 파업에 돌입한다. 6개월간의 파업 끝에 1차 하청업체 정규직이 된 이들. 그러나 월급이 반으로 줄어든다. 절반의 성공 앞에서 노동자들의 마음은 조금씩 복잡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노동조합 활동을 함께 했던 봉근은 일을 그만두게 되는데…….


저마다 독특한 케이블가이들의 사연이 전파를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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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교차로에서 태어난 <버블 패밀리>




천주희 (문화연구자)



도시, 가족, 그리고 욕망의 교차로에서: 버블 패밀리 탄생기 

<버블 패밀리>는 한 가족의 늦둥이 딸이자, 감독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0년대 서울 강남에서 ‘아파트 키드’로 자란 감독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강남’은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장소이다. 문화, 자본이 응축된 도시랄까. 그러나 감독인 화자는 성장할수록 자신이 강남과 어울리지 않고,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결국 그녀는 독립과 함께 강남을 벗어났고, 몇 년 만에 “온전히 나만의 삶”을 꾸릴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삶에 안착하는 듯했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1980년대 후반, 감독의 부모님은 경제성장과 건설업 부흥기에 소위 ‘집장사’라 불리는 중소건설업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다. 집을 짓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라 한 달에 억대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부모님은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했고, 중산층에 입성했다. 박정희, 노태우 정권에 부흥했던 부동산 시장은 부모에게 전성기를 선물했다. 화학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중소건설업 사장님이 되었고, 주부였던 어머니는 사모님이 되었다. 하지만 IMF 이후 몰락한 가족은 아파트 건너편 빌라로 이사했다. 부모는 15년 째 낡은 빌라에서 다시 아파트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고난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이미 부동산 붐은 끝났고, 더 이상 3저 호황의 행운이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건물을 분양받아 투자하면 다시 성공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를 바라보는 딸은 다른 세상에 산다. 학자금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고, 독립한 지 7년이 되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가 사는 강남에 집을 얻을 경제력은 없다. 겨우 얻은 집은 천장에서 물이 샌다. 부모가 거주하는 강남 집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집주인은 이사 갈 것을 권하고, 부모님은 다음 달 월세조차 버거워한다. 당장 이사를 하거나 대책을 세워야 함에도 아버지는 딸에게 제작비로 받은 돈 100만 원을 부동산에 투자하라고 권한다. 강남에 머물고자하는 욕망과 이를 비현실적으로 바라보는 딸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간다. <버블 패밀리>는 이런 간극의 지점에서 사회적 욕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위태로운 경제상황에서도 그 욕망이 지속될 수 있는지 포착한다. 

언제부터 서로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어긋남 사이에서 유일하게 가족을 잇는 건 ‘버블패밀리’라는 이름뿐이다. 버블 속에는 가족의 간극, 균열, 원망이 담겨있다. 엄마는 가족 몰래 딸 명의로 땅을 사두고, 딸은 그 돈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길 바라고, 아버지는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나지 않은 부채를 안고 산다. 하지만 감독은 이 어긋난 욕망을  ‘도시’, ‘가족’, ‘거품’이라는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새롭게 재구성한다. 가족은 아버지 명의로 경매에 넘어간 땅에서 조금이나마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기도 하고, 딸은 엄마가 자신의 명의로 사둔 땅을 보러 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감독의 태도가 부모의 관점이나 입장으로 전환한 것은 아니다. 과거 행복했던 가족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애쓰거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경제위기를 봉합하려 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는 서로 밝힐 수 없는 비밀이 존재하고, 긴장 속에서 공존의 길을 모색한다. 


여성의 시선으로 본 한국경제

한국의 경제사를 설명하는 데 <버블 패밀리>는 독특한 시선을 지닌다. 하나는 가족이라는 사적영역에서 출발해 거시적인 경제의 욕망과 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관점에서 버블경제를 조명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그동안 한국의 버블경제를 논하는 자리에서 드러날 수 없었던 시선이었다. 경제란 늘 거대한 통계와 지표로 움직이는 것이라 맹신하는 집단을 통해 말해졌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여성의 서사와 가족의 서사는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버블 패밀리>에는 엄마의 기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엄마는 중산층 주부의 시선에서 딸과 가족의 일상을 홈비디오에 기록한다. 중산층의 단란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외동딸에게 공주님처럼 분홍 드레스를 입히고, 호화로운 생일파티를 해주고, 유원지와 바다 여행, 발레 공연과 노래하는 모습까지 담았다. 그곳에는 화목한 가정이 있다. 하지만 1997년, IMF와 함께 엄마의 기록은 멈춘다. 그 후로 다큐 감독이 된 딸은 2010년 이후 가족의 모습을 담는다. 기록되지 않은 가족의 몰락사를 현재 가족의 언어와 풍경으로 복구시킨다. 거품이 꺼진 이후, 가족의 이야기는 엄마의 시선과 대비된다. 낡아서 누렇게 변색된 벽지, 망가진 싱크대, 고장 난 보일러, 연체된 세금 고지서, 아버지의 부채까지. 어느 하나 멀쩡한 것 없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미소 지으며 빨리 나오라던 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20년 전과 전혀 다른 가족의 모습이다. 

한편 <버블 패밀리>에는 아버지의 시선이 없다. 아버지는 늘 조연처럼 등장한다. 엄마에게는 출근하는 남편이었고, 딸에게는 집이나 종로를 배회하는 아버지였다. 그동안 경제 담론에서 전성기는 남성들의 서사로 채워진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실제로 거품의 전성기가 끝난 이후 뒷수습은 늘 여성의 몫이었다. 남편의 빚을 몰래 갚는 엄마의 이야기는 IMF 이후 여성들이 가족경제의 붕괴와 부채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남편이 벌여놓은 일을 수습하는 건 아내였고, 주부들은 대거 서비스직이나 노동시장으로 떠밀리듯 나갔다. 감독의 엄마도 그랬다. 텔레마케터로 일하면서 부채와 생계를 책임져왔다. 그리고 이 가족의 또 다른 여성인 딸은 결국 어려워진 집안 경제를 다시 수습하고자 집에 들어와 가장 역할을 맡는다. 

경제에도 시간이 있다면, <버블 패밀리>는 여성의 시선에서 거품경제의 낮과 밤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보낸 시간이 낮이라면, 딸이 보내는 시간은 밤의 시간이다. 가족을 바라보는 둘의 다른 시간과 시점은 <버블 패밀리>에서 만난다. 고성장기에 사업수완으로 덕을 본 부모는 가족이 가장 찬란했던 때를,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자녀는 가족이 가장 힘겨운 때를 기록하고 지탱한다. 다큐 후반부에서 어머니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딸에게 묻는다. “밤에 나오니까 어떻습니까?”라고. 오히려 그 질문은 어머니가 스스로 묻고 싶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고요해 보이지만, 다시금 무엇인가 움트기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에 그녀는 딸과 함께 서로를 비춘다. 

<버블 패밀리>는 과거와 현재 달라진 가족사진을 배경으로 끝난다. 이 가족의 행보가 궁금한 이유는 수많은 버블패밀리들의 현재와 미래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욕망과 개인의 욕망 교차로에서 태어난 ‘버블패밀리’는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경제라는 것은 한낱 거품과도 같아서 큰 행운도 큰 몰락도 없다는 것을. 하루하루 서로 마주하고 살아가는 관계양식 그 자체가 경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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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사라져가는 개개(個個)의 역사

<개의 역사>


정경희 (세컨드 필름 매거진 에디터)


“그 개가 어떤 개인데 다큐를 찍어요?” 영화 초반 개를 산책시키는 아주머니가 감독에게 묻는다. 동네를 떠돌다 잡아먹힐뻔 한 걸 지금은 사라진 대관령 슈퍼 할아버지가 거둬 돌보았다는 개. 기구하지만 흔한 사연을 지녔다. 사회가 주목할 만한, 뉴스가 다룰 법한 이야기는 아니다. 감독은 이 개를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었다. 관객 역시 감독에게 묻고 싶어진다. 왜 이 영화를 보아야 하느냐고.

감독은 애매하게 답을 유보한 채 개에 관한 주민들의 기억을 수집하려 동네를 돌아다닌다. 주민들의 기억은 대체로 개가 있다는 건 알지만 언제부터 있었고 어떻게 사는지는 모른다는 식이다. 오히려 개에 관한 헐거운 기억의 틈 사이로 동네에 얽힌 각자의 기억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개를 알고자 한 감독의 카메라에는 개와 주민들의 얼굴, 가파른 계단, 학교 앞, 비둘기, 고양이, 골목 모퉁이, 감독이 열 세 번째로 이사한 집이 담긴다. 십 년도 더 전 이 동네에 살았다는 친구의 목소리가 그 위를 흐르고, 오래 함께한 개가 죽었던 감독의 기억이 끼어든다. 여전히 왜 이 개인지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한 채 대상과 어긋난 카메라의 시선, 카메라의 시선과 어긋난 사운드가 얼기설기 이어 붙여져 교차한다. 감독의 시선도 주민의 증언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힘을 행사하지 못한 채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심에서 멀어져 언저리를 맴도는 영화 <개의 역사>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힘을 분산시키고 주변부를 끌어들인다. 개에 관한 각자의 느슨한 기억들이 그에 얽힌 주민들 자신의 역사와 후암동의 이곳과 저곳, 예전과 지금을 드러낸다. 감독이 이사를 가며 비슷한 결의 다른 시공간이 새롭게 개입되고 그곳에 사는 얼굴들과 발생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한 데 모인다.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에 의도치 않은 얼굴들이 들어왔다가 사라지고 관객은 그 난데없음에 카메라 밖 세계를 의식한다. “동시에 일어났던 다른 중요한 어떤 일들”이 있음을 고려한 감독의 연출, 편집 방식은 중심을 해체하고 주변을 수집해 조명한다. 개의 역사를 알고자 했던 영화는 개개의 역사들을 건드리고 교차시켜 새로운 서사를 구축한다. 하찮다 여겨지는 것들로 쓰인 이 새로운 서사는 도무지 하잖아 보이지 않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지워져 가는 시간들”을 보여준다.

영화의 말미 감독은 “백구의 역사를 알아내는 데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백구뿐만이 아니다. 이사 간 홍은동 집 이웃 할머니의 역사도, 정자에 모인 할머니들의 역사도 감독은 결국 알아내는 데에 실패한다. 이는 그가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새로운 분”이기 때문도, 그래서 “그동안에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도 아니다. 누군가를 제대로 완벽히 다 안다는 것은 필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파악할 수도 없는 수많은 개개의 역사가 새로 쓰이고 쉽게 묻혀버린다. 앎의 필연적인 실패는 알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 의문을 던진다. 어차피 무엇 하나 제대로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왜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개의 역사를 알아내는 일이 애초에 실패할 것이었다면, 감독의 노력은 무의미했던 것일까.

역시 영화의 말미 감독은 “삶을 사랑하는 법을 찾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삶을 사랑하고자 찍게 된 <개의 역사>는 무언가를 알기 위한 노력의 연속이다. 백구라는 개에, 이웃들에, 동네 구석구석에 관심을 가지고 살핀다. 무관심 속에 방치되지 않은 앎의 대상은 하나의 존재가 되어 다가왔고 촬영자와 피사체는 존재 대 존재로 관계를 맺는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걱정하며 오디션 지원을 돕기도, 개를 같이 묻으러 가기도 한다. 대상이 아닌 존재를 담는 카메라는 먼발치에서 뒤따르거나 지켜볼 뿐 알려달라고 강요하지도, 원하지 않는 걸 공개하지도 않는다. 결국에는 실패할 줄 알면서도 알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관계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보살피며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삶을 함께한 기억은 소중한 이의 마지막을 지키는 힘이 되고 “사라져가는 것들의 지워져 가는 시간들”을 지연시킨다. 감독이 <개의 역사>에서 수행한 사랑의 방식은 삶을 소중한 관계와 기억들로 채워 사랑하는 것이었다.

중심을 해체하고 주변을 조명해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 이성을 맹신한 채 안다고 믿으며 쉽게 정의 내리지 않는 것, 하나의 관점이 아닌 개개의 상황을 고려해 보살피는 것 모두 페미니즘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취하는 중요한 방식들이다. 흔히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로 오해 받는다. 남성 중심에서 여성 중심으로 세상의 구도를 옮겨 오자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요는 무언가를 중심에 두는 구도 자체를 타파하는 데에 있다. 만일 중심이 있더라도 이분법적 구도 하의 하나의 중심이 아닌 다원화된 중심을 추구한다. 이 영화는 여성의 권리를 전면에서 외치는, 흔히 떠올리는 페미니즘 영화와는 다르다. 그러나 “이름 없는 것들의 찾지 못한 이름들”을 발굴해 호명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페미니즘과 닿아있다. 그러면서도 여성 특유의 시선이라 단정 지을 수만은 없는 감독 자신만의 언어로 삶에 대한 고유한 통찰을 제시하며 작가적 성취를 이루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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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잎과 칼의 변증법적 동행을 느끼고 사유하다  

<난잎으로 칼을 얻다>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영화 <난잎으로 칼을 얻다>를 처음 볼 때 내 지각은 역사와 정치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보면서 나는 이북출신 실향민/이주민이었던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삶 이야기가 어렴풋이 함께 들리고 보이는 것을 느꼈다. 특히 아버지의 딸이었던 나는 정다훈 씨가 아버지와 나누는 모든 것들에 깊은 공감과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와 내가 이북을, 만주를, 중국을 함께 여행했다면 아버지는 그곳을 내게 어떻게 설명하셨을까. 

이 영화는 딸이 오랫동안 불화했던 아버지를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아버지가 남한의 지식인으로 성장하면서 품었던 신념과 꿈, 세계관을 이해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여성주의 인식론은 지식체계가 특정 언어주체들(현실 속에서는 남성들, 그 남성들 사이에서도 물론 더 많은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이 펼친 ‘자기만의 리그’였음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입장’과 ‘상황’에 입각한 상호교차적 지식 생산을 제안해왔다. 여성이 언어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늘 ‘남성 멘토들’의 허가와 승인이 필요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다시 읽으며 애드리안 리치는 행간에 깃들어있는 울프의 불안과 주저함에 한숨을 내쉰다. 서구에서 많은 여성 작가들은 아버지와의 복잡한 관계를 추적해왔다. 불화와 갈등의 사적· 공적 맥락들과 정황들, 정신분석의 도움을 받는 심층 분석, 그리고 이해와 화해 등으로 그 추적의 서사는 이어진다. 한국 텍스트의 역사에서 나는 치밀한 부녀 관계 추적을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근 40여년에 이르는 한국 여성주의 이론, 담론, 운동의 역사는 모성 이데올로기나 ‘어머니 역할’,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집중해서 괄목할 만한 결과들을 내놓았다. 천지에 깔려 있는 게 ‘아버지 목소리’ 아닌가. 귀를 틀어막아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그 목소리를 깊이 ‘듣고 싶어 할’ 열정도 시간도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목소리도 복수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환기시킨다. 장녀에게 자신의 꿈과 신념, 역사관을 ‘전승’하고 싶어 하는, 딸이 속한 세대에게 지킬 가치가 있는 관점이나 삶의 태도 하나를 어떻게든 남기고 싶어 하는 영화 속 아버지는 학자로서, 선배세대로서, 한 남성 개인으로서 진심을 다한다. <난잎으로 칼을 얻다>에서 사적 차원과 공적 차원의 분리는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딸이 강력한 언어주체로 등장하면서 아버지/아버지 세대의 해석 위치의 유동성을 명백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딸 정다훈씨가 말하는 아버지와의 불화는 딸이 부족함 없는 언어주체가 되어 ‘가부장적 상징질서 체계’ 속에서 당당히 제 몫을 하도록 이끌려는 멘토의 의지에서(‘평생 지도교수님 파파’!) 기인한다. 딸은 저항하면서 아버지와는 다른 가치관과 해석적 시각을 얻으려 고군분투했고, 그 다른 가치관과 해석적 시각은 명료한 민족주의적 가치관이나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읽고 쓰고 발표하는 국제적’ 지식인의 위치를 넘어선다. 딸이 이해하는 ‘국제’정치의 현장에는 상이한 역사관이나 가치관을 두고 논쟁하는 구체적 사람, 장소, 윤리, ‘진실’을 질문하기 등이 있다. 윤동주의 국적이 무엇이냐를 두고 (가부장적 국가/민족인) 중국과 한국이 힘겨루기를 할 동안 2015년 32세인 한국여성지식인 딸은 ‘열린 민족주의’를 제안한다. <아리랑>에 묘사된 독립운동가 김산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두고 딸은 조용히, 그러나 매우 명료하게 아버지와 자신의 입장 차이를 밝힌다. 아버지는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연도가 중요했고, 딸은 독립운동가 김산의 ‘개인 인격’에 주목한다. 아리랑 자체에 민족주의적 본질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펄펄 뛰는 혁명의 열정을 품고 국제적으로 행동하던 개인 김산에게 아리랑은 어떤 의미였으며, 탈제국주의적 탈영토화의 혁명 추구에 어떤 효과를 발생시켰는가가 관건이라고 보는 것이다. 

영화는 종종 멘토인 아버지가 묻고 멘티인 딸이 대답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아버지의 견해와 관점을 존중하면서도 조금씩 수정하거나 자신의 견해와 만나게 하는 딸의 후배지식인 위치를 드러내는 식으로 장면들은 이어진다. 아버지와 딸 모두 제3의 통찰에 이르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이제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힘’을 지닌 딸/딸 세대의 정치적 역량이 돋보인다. 더 이상 무조건 참거나 피하거나 고통당하지 않는 딸들의 이야기.   
(아주 개인적인 지각 하나. <아리랑>을 두고 부녀간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장면에서 시지각에 문제가 있는 아버지는 소파에 누워 딸의 무릎 위로 다리를 얹고 있다. 살갑고 다정한 이 장면 전에 아버지는 혼자 눈을 감고 소파에 누워있다. 붉은 소파는 내게 순간적으로 자기 분석이 이뤄지곤 하는 ‘붉은 소파’를 떠올렸고, 딸의 도움을 받아 ‘자기’를 분석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 다음 장면이 읽혔다.)              

마지막으로 나는 ‘동북아와 전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이 영화가 조명하고 있는 한 아버지/지식인/역사가/여행자/집필자/아픈 사람의 모습이 소중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이 아버지는 안중근과 그의 일본인 적 이토 히로부미와의 운명적 조우를 소개할 때도, 전 재산을 다 털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66세에 거사를 꾀하다 붙잡힌 이회영을 소개할 때도, ‘선구자’ 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연유를 소개할 때도 뛰어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인다. 그에게 역사는 ‘추구하고 느끼고 열망하며 자신을 기투하는 인격들의 삶 이야기’다. 민족의 비극이라는 거대 서사의 주제가 경직된 민족주의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체화된 역사이해 덕분일 것이다. 선구자 노래 한 소절만 부르려 해도 눈물이 나는 ‘아버지’를 15년 전과 달리 이제 이해하게 된 딸의 눈에서도 눈물이 배어날 때 ‘우리’도 잠시 ‘우리임’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열린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민족/민족주의란 오로지 정체성이 부인될 때 정치적 저항으로 내세워질 수 있을 뿐, 국가(혹은 여타의 승인된 정체성)가 건설된 이후라면 더 이상 주장될 수 없음을 가르치려들지 않으면서 느끼게 해주는 정동의 장면이랄까. 한반도, ‘통일’, 독립운동, 민족, 압록강, 두만강, 삼천리, 삼천만, 동포, 그리운 금강산, 비둘기, 조선, 선구자 등의 용어들이 정동적 흐름으로 용해되어 어떤 하나의 정치적 평화 미래 비전의 몸체를 얻게 되는 2시간 여. 이 시간 동안 ‘우리’는 ‘현재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 세대 윤리관이(물론 어떤 목소리로 전해지는가가 관건이다) ‘기록이 아닌 기억을 통해 미래를 마련하겠다’는 딸 세대의 윤리관과 어떻게 행복하게 만날 수 있는지 경험하며 기억하기의 방식들을 같이 고민해보자고 고개를 끄덕인다. 극장을 나선 뒤엔? 이 답은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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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삶’과 ‘노동’에 접속하기

<그녀들의 점심시간>


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 이지원


영화 <그녀들의 점심시간>에는 총 열 명의 여성들이 출연한다. 카메라는 별다른 사건이나 반전 없이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취업준비에 지쳐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모습, 직장에서 상사에게 지적받는 모습, 사람 없는 경로당에 누워 잠든 모습……. 우리는 연령도, 직업군도 모두 다른 그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식사하는 모습을 포착해낸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는 은밀하게 접속된다.

직업이 배우인 ‘그녀’는 임신 이후 난생처음으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삶에서 일이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에 미뤄왔던 임신을 한 그녀는 때로는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기도 했던 임신의 경험이 배우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녀에게 임신은 경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뤄왔던 것이지만 지금은 어머니로서의 행복과 배우로서의 자원, 양쪽 모두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어머니로서의 행복 이면에 있는 육아노동을 동시에 조명한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의 하루는 아이들을 깨워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빵으로 늦은 아침을 때우다가도 아이가 깨어 엄마를 찾으면 먹던 빵을 내려놓고 부리나케 달려가 아이를 얼러 안아야 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고 난 뒤 식사를 준비할 때에도, 아이들에게 밥을 다 먹이고 본인의 식사를 챙길 때에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엄마를 찾는다. 보기만 해도 엄청난 강도의 노동임을 짐작할 수 있으나, 그녀의 정신없는 식사시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것부터 질문해보아야 한다.

사회는 ‘그녀’의 하루에 노동이 있다고 이야기할 것인가? 육아는 어째서 ‘그녀’의 몫인가? ‘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노동임을 주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해보자. 모성애 없는 여자, 비정한 모정의 낙인이 찍힐 것이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집에서 놀고 먹으며, 떼로 몰려다니며 카페에서 비싼 커피를 마시고 아이 단속도 하지 않는 엄마”를 지칭하는 ‘맘충’ 서사가 대중화된 지금은 더욱 그렇다. 한국사회에서의 모성신화는 여성의 영역을 가정으로 규정하고, ‘육아’라는 엄청난 노동을 어머니로서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으로 포장해왔다. 이는 비단 육아 뿐 아니라 가사노동에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빛 좋은 개살구”, 골드미스인 ‘그녀’가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다고 느끼면서도 “가정에서의 ‘나’가 되는 것은 밥을 차린다는 것”이라고 통찰하듯이 말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밥 차리는 것’이야말로 젠더화된 노동이다. 누군가에게 식사시간은 휴식의 시간일 수 있겠으나 누군가에게는, 특히 여성에게는 식사시간이란 으레 노동의 시간인 것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그녀’는 타인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동안 “전쟁을 치른다.” 뒷정리까지 모두 마친 그녀는 늦은 시간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그 와중에도 손님맞이는 계속된다. 그녀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여유로운 점심시간은 사실상 그녀의 노동 위에 서있는 셈이다.

신발가게를 하는 ‘그녀’는 남편과 함께 식사할 때와 혼자 식사하는 지금을 비교하며 “그때는 반찬도 신경 써서 준비하고, 예쁘게 차려 먹”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남은 반찬으로 점심을 먹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여자는 가족을 먹이기 위해 요리”하는 것인데, 이것이 비단 그녀만의 생각인지 질문해보아야 한다.

취업준비생 ‘그녀’는 혼자 식사하는 또 다른 출연자다. PD의 꿈을 꾸고 있는 그녀는 강의를 듣는 등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되고 싶은 욕구만 남아있고, 실패한 기억 뿐”인 그녀에게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과정은 녹록치 않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돌아올지를 확신하기 어려운 채로 기약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취업준비생에게 식사다운 식사란 어쩌다 친구와 만났을 때에야 겨우 가능한 것이다. “이게 7일째 된 밥인가? 괜찮아. 먹고 소화하면 돼.” 되고 싶은 모습과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의 외로움과 불안함은 그러나 그 되고 싶은 모습이 된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의 행복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택시기사인 ‘그녀’는 “택시는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차 안에서 김밥으로 식사를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얼른 먹던 것을 멈춘다. 그러나 “운전하는 것도, 손님과 이야기 나나누는 것도,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아하는 그녀는 택시운전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여성 운전자로서 겪어야 하는 부당한 대접에도 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린다.

한편, 함께하는 점심시간을 통해 노동의 고단함을 잠시 잊어내는 경우도 있다. 경마장 청소노동자인 ‘그녀들’은 돈을 잃은 경마꾼들의 예민함에 힘든 노동의 시간을 보낸다. 관리자는 청소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불을 꺼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집에서는 맛이 없”던 밥도 “여럿이 먹으니 맛있다.”는 그녀들은 서로 반찬을 나누고, 너무 적게 먹는다며 핀잔을 주기도 하면서 서로를 챙겨주고 의지한다. ‘식구’의 뜻이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임을 비춰봤을 때, 그녀들에게 점심시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식구인 시간이다.

경로당의 ‘그녀’ 역시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아침도 못 먹고 온” 노인들의 식사를 챙긴다. 이틀 안 나오면 궁금해서 전화를 한다는 그녀는 그 이유를 “식구니까”라고 말한다. 그 말대로 경로당의 할머니들은 같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모여앉아 식재료를 다듬는다. 경로당이라는 공간에서 모두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음으로서 그들은 혼자가 아닌 그들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간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과 노동 속에서 그녀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누군가는 또래 여성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하드록, 블루스록 같은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들고, 누군가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저녁만이라도 맛있는 식사를 찾아 먹기도 한다. 또 함께 먹는 시간을 통해 서로에게 든든한 식구가 되는 ‘그녀들’이 있는가 하면, 고된 취업준비의 시간 속에서 간간히 친구를 만나 “밥다운 밥”을 먹는 ‘그녀’가, 자신의 일을 온 몸으로 즐기며 살아가는 ‘그녀’가 있다.

영화는 “점심시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생활의 기본적인 영역인 식사를 조명함으로서 여성들의 삶과 노동에 진하게 접속한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점심시간”을 통해 만나는 그녀들의 삶과 노동이 각자 분리된 듯 연결되어 있고, 어쩌면 ‘그녀들’을 바라보는 ‘나’의 그것과도 닮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맛있기만 한 것은 아닌, ‘그녀들’의 삶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진솔하게 와 닿는다.

영화 속 ‘그녀들’, 그리고 영화 밖의 ‘그녀들’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매일 먹는 밥을 짓고, 먹고, 나누며 ‘우리’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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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민주항쟁 30주년 특별상영회 <명성, 그 6일의 기록> 


일시 2017년 6월 9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인디토크)

관람료 무료





<명성, 그 6일의 기록 The Six Day Fight in Myong Dong Cathedral>

김동원 | 1997 | 다큐멘터리 | 74분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6일 간의 명동성당 농성투쟁에 관한 기록이다. 6월 10일 밤, 경찰에 쫓겨 명동성당에 우연히 모인 농성대의 갈등과 희망, 농성대를 둘러싼 당시 정치적 상황들이 풍부한 자료 화면과 증언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6월 항쟁의 가능성과 한계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면서 현재 우리의 희망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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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안녕 히어로>


한국독립영화협회와 함께하는 125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상영작은 한영희 감독의 <안녕 히어로>입니다. 관람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 내용을 살펴보시고 신청해주세요.


● 신청방법: https://goo.gl/forms/mlBl3JmGC9auxxrI3 에서 양식 작성 

(선착순 마감이며 조기 마감될 수 있습니다. 마감시 구글 신청서 페이지가 닫힙니다. )

● 초대일시: 6월 13일(화) 오후 7시 30분

● 장소: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 부대행사: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안녕 히어로 Good Bye My Hero>

한영희 | 2016 | Documentary | Color | 107min



SYNOPSIS 

14살 현우는 남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아이이다. 그런 현우가 오랜만에 집에 온 아빠와 함께 생활기록부를 쓰고 있다. 역시 가장 난감한 부분은 아빠의 직업란을 채우는 일이다. 사실 현우의 아빠는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후부터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복직을 위해 사람들 앞에 나서서 쌍용차의 정리해고의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현우의 심정은 복잡하다. 아빠가 복직이 되면 좋겠지만 아빠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아빠의 상황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현우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왜 아빠는 결과도 없이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 걸까? 왜 이렇게 아빠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걸까? 아빠를 바라보며 깨닫게 되는 현실 속에서 현우는 어떤 답을 찾게 될까?



DIRECTOR’S NOTE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정리해고에 대한 다양한 화두가 한국사회에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현실은 나아지지 못했다. <안녕 히어로>는 척박한 노동현실 속에서 함께 고통받고 있는 해고자 가정의 한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노동의 현실, 해고의 현실을 전하고자 한다. 우리사회에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피해야 할 비극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정리해고와 마주하여 의지할 힘은 어디에도 없다. 슬픈 현실을 우리도, 현우도 살고 있다.



DIRECTOR 

한영희

2009,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공동연출 홍지유)

2016, <안녕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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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돌잔치 2017년 5 상영작 <초인>



디돌잔치는 매달 마지막 화요일에 진행되는 인디스페이스의 프로그램으로, 1년 전 개봉한 독립영화의 1주년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스크린을 통해 그 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보세요!


인디돌잔치 2017년 5월 상영작 <초인>(감독 서은영)

● 일시: 2017년 5월 23일(화) 오후 7시 30분

● 입장료: 7,000원 / 후원회원, 멤버십 무료

● 상영 후 인디토크 (서은영 감독, 김정현 배우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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