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풍부하게 누리는 방법

 <춘천, 춘천> 장우진 감독, 김대환 프로듀서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마리솔 님의 글입니다. 





햇빛이 인물의 얼굴에 머물렀다 빠져나가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동안 어느 중년 여성과 남성이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대화는 빛과 절묘하게 닮아있다. <춘천, 춘천>은 여느 영화였으면 상상하지 못했을 방식으로 빛을 맞이하고 활용한다. 프레임 안으로 느닷없이 등장한 사마귀는 원래 거기에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존재감으로 머물러 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춘천, 춘천>은 순간순간의 우연이 만들어낸 필연들로 엮인 영화다. 억지로 더하거나 빼는 법이 없다. 우연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나아가 그것을 소중히 대한다. 9월 17일 언론시사회 직후 인디스페이스 관객라운지에서 봄내필름의 두 감독, <춘천, 춘천>을 연출한 장우진 감독과 프로듀서 김대환 감독을 만났다.



 

<춘천, 춘천>은 3년의 시간을 돌아 개봉하게 된 작품입니다. 무브먼트, 인디스페이스와 함께 서울 단관 개봉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까지 연출자와 제작자의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요, 개봉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장우진 감독(이하 장우진): 해외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뉴욕에서도 작년 9월에 일주일 간 상영을 했었어요. 그런데 국내 개봉은 잡히지 않고 비용 면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어요. 너무 안타까웠죠. 개봉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러다 운이 좋게도 콘텐츠판다에서 판권을 갖고 개봉을 진행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일반적인 사례보다는 이 영화에 어울리는 또 다른 형태는 뭐가 있을지 고민했어요. 해외에는 비슷한 지역 단관 개봉 사례들이 많거든요. 국내에서도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근래에는 드물었고 우리가 한 번 시도해보자고 이야기가 된 거죠. 배급사 무브먼트와 상의 후, 인디스페이스 측에서 흔쾌히 제안을 받아주셔서 좋은 기회로 개봉하게 되었어요. 이번 개봉이 좋은 케이스로 남아서 작은 영화들이 정기적으로 관객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고 비슷한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어서 하나의 문화가 되면 좋겠어요. 그럼 관객들도 더 많이 찾아주시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한 인터뷰에서 김대환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연출지향적인 시스템이다.” 이때 말씀하신 ‘연출지향적 시스템’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김대환 감독(이하 김대환): 어쨌든 저희는 둘 다 연출을 하는 사람이에요. 서로의 작품에서 프로듀서기도 하지만 우선은 연출자라고 생각해요. 연출을 하다보면 허용범위와 제한범위가 있죠. 프로듀서로서 작업 도중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맞닥뜨렸을 때 프로듀서보다는 연출자라는 마음으로 판단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보다 쉽게 연출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게 되고 거기에 맞춰서 준비를 할 수 있어요. <겨울밤에>(2018)도 그런 식으로 작업했고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춘천, 춘천>의 제작 과정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장우진: 솔직히 말하자면 일단 버릴 생각을 하고 기획했어요. 작품의 트리트먼트조차도요. 배우와 이야기해서 캐릭터를 만들고, 오늘 찍은 것에 영향을 받아서 다음날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창안했거든요. 김대환 감독과 저, 둘 다 첫 작품은 그런 시도를 해보지 못해서 이번엔 해보기로 했어요. 이 방식을 결정하는 순간 시나리오를 쓸 필요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딜레마는, 시나리오를 안 쓰면 투자를 못 받는다는 거예요. 억지로라도 시나리오를 써놓고 투자가 되면 시나리오를 제쳐두고 영화를 찍는 방법이 있어요. 아니면 그냥 바로 작업을 시작하는 방법이 있고요. 저는 후자를 택한 거예요. 그 시간을 차라리 프리프로덕션에 할애하자 싶었어요. 가을에 찍고 싶고, 때는 오고 있으니 무모한 선택을 한 거죠. 서울집의 월세 보증금을 빼고 그 돈에 맞춰서 진행하려면 촬영을 제가 하고 사운드를 김대환 감독이 하는 식이어야 했어요. 그렇게 시작했어요. 하다가 현재의 적은 예산으로 진행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는 순간 불가피하게 시나리오를 써서 지원을 받아야겠더라고요. 그 때 전주국제영화제의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에서 저희의 방식을 용인해줬어요. 사실 상업영화 시스템에선 불가능한 시도죠.



나고 자란 지역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익숙한 고향으로서의 춘천이 아닌, 새로 보인 춘천이 있는지요.


장우진: 저는 이 영화에 빗대자면 청년 지현의 입장이에요. 춘천에 있는 대학은 죽어도 가기 싫었어요. 이 지긋지긋한 호반의 도시, 고여 있는 것 같고 상경을 꿈꾸게 되고, 상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타 지역에 살아보고 싶었어요. 부모를 떠나 혼자 살아보고 싶었고요. 그렇게 서울에 와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환경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오랜만에 춘천에 왔어요. 살던 집의 보증금을 빼서 왔으니 아주 오랜만인거죠. 그러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춘천의 아름다움이나 춘천의 정서 같은 거요. 서울과 다르게 좋은 점들, 물론 단점도 있지만 좋은 점이 많이 더 보였어요. 그게 <춘천, 춘천> 속 중년 두 명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요. 춘천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느끼고 공부하게 된 것 같아요.





맑고 청량한 춘천보다는 스산하고 우울한 춘천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그러한 공기를 담고자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장우진: 이 영화의 전반적인 톤 앤 매너와 맞닿은 이미지예요. ‘쓸쓸함이 빛나는 계절이 있다’라는 말처럼 빛나지만 쓸쓸한 감정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청춘이 갖지 못한 게 있고 중년이 되돌릴 수 없는 게 있으니까요. 청춘도 말만 청춘이지 청춘을 갖지 못하죠. 춘천은 해무가 많은 도시인데, 그런 공기를 담고 싶었어요.



<춘천, 춘천>은 많은 우연을 포착한 영화입니다. 다큐멘터리 혹은 페이크다큐도 그러한 우연성을 포착하는데, 장우진 감독의 영화 속 우연성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 지 궁금합니다.


장우진: 맞닿아있는 지점도 있어요. 그래도 이건 극영화죠.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갖고 시작하는 영화예요. 예를 들어 촬영 3회차 때 사마귀를 봤다고 합시다. 사마귀를 매회차 보는 게 아닌데, 지금 이 이야기 속에서 사마귀를 보면 저한테 의미로 다가오는 거죠. 지금 가면 그 사마귀를 보지 못할 거예요. 마라톤 장면도 마찬가지예요. 일반적인 극영화 촬영이었다면 ‘내일 마라톤 대회 있어서 어떤 장면을 못 찍네. 다른 날은 숙소가 없는데 어떻게 찍나.’ 이런 고민을 할 거예요. 그렇지만 이 작업에선 ‘그럴 수도 있다. 우연이다.’라고 받아들이는 거죠. 이 이야기에서 우연이 필연이 되려면 의미를 획득해야하고요. 이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의미를 고민하게 돼요. 그러면 장애물 같았던 마라톤 대회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거예요. 햇빛이 들어오는 장면도 마찬가지고요. 빛은 매 시간 변하잖아요. 촬영감독 입장에서 ‘빛이 변하는데 어떻게 촬영을 합니까?’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과거의 회상, 청춘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의 청춘을 표현하는 효과로서 빛이 마술적 리얼리즘 같은 효과가 되었어요. 그 장면이 다른 영화에 들어간다면 NG컷이 되거나 빛을 가리고 찍었을 거예요.


김대환: 아니면 장소를 바꾸거나. 다큐멘터리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에서는 우연적인 무언가가 진행 중에 들어와도 웬만해선 기획하고 준비했던 길이 바뀌는 것 같진 않아요. 우리는 그런 게 들어오면 시나리오를 다시 써야하는 상황도 있어요. 사실 영화의 햇빛 씬이 그렇게 힘 있게 다가올 장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장면이 우연히 담기게 되면서 뒤의 이야기가 달라지는 거죠. 순서대로 촬영하다보니 뒤에 있는 어떤 부분은 걷어 내거나 바꿔야하는 상황이 생기거든요. 마법 같은 순간이 걸리면 시나리오가 변해요. 우리의 작업 시스템에선 가능했지만 30명, 50명이 넘어가는 규모가 되면 모두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해야하죠. 준비했던 무언가를 없애고 다른 걸 준비하는 상황이 생기니까요. 그런 시스템에선 이 방식이 불가능했을 거예요. 우리는 가볍고 기동성이 좋다보니 우리끼리 좋으면 되거든요. 그런 게 행복했어요.


장우진: 좀 더 보충하자면, 촬영 자체를 햇빛 씬이랑 중년 커플이 사마귀를 발견하는 장면을 먼저 찍었어요. 그런 다음에 중년 커플의 이야기를 용산역에서 끝낸 후 다시 지현을 찍기 시작했어요. 지현 부분을 찍는데 청평사에서 내려오다가 사마귀를 봤어요. 만약 4일 전에 중년 커플이 사마귀를 발견하는 장면을 찍지 않았다면 이 장면을 찍었을까요? 이 장면이 의미를 만들었을까요? 4일 전 찍었던 사마귀는 성충이었고 지현과 촬영 중 만난 사마귀는 어린 사마귀였거든요. 앞선 촬영 장면이 없었다면 이 장면은 큰 의미가 없었을 거예요. 



우지현, 양흥주, 이세랑 배우 캐스팅 비화를 들려주세요.


장우진: 우지현 배우와 양흥주 배우는 <새출발>(2014)을 같이 했어요. 호흡이 너무 잘 맞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어요. 처음 이 작품을 쓸 때부터 애초에 두 분을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흔쾌히 함께 해주셨고요. 다만 중년 여성 역할을 하신 이세랑 배우는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캐스팅했어요. <족구왕>(2013) 우문기 감독의 소개로 만나서 우리의 촬영 방식에 대해 말씀드렸어요. 이세랑 배우님은 익숙하지 않으셨지만 나머지 두 분이 익숙하니 셋이서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미지가 정말 좋았고요.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살아온 이야기나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듣다보니 제가 전달하고자하는 정서를 잘 이해하실 것 같아서 함께 하게 되었어요.



춘천역사 내 에스컬레이터, 소양강댐 등 극 중 지현과 중년 커플이 등장하는 장소가 자주 겹치는데요, 그 공간들이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요?


장우진: 그림이라는 게, 아예 다른 그림 두 개가 있으면 그 사이 공통점과 차이점을 볼 수가 없어요. 보려고 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비슷한 그림 두 개가 있다면 틀린 그림 찾기처럼 그 안에서 뭐가 다른지 찾게 돼요. 반복과 차이를 보게 되거든요. 그런 효과를 노렸어요. 처음에 셋이서 다함께 기차타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그게 청년과 중년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공간이지만 마주 볼 수 없는 다른 시간이요.





각각의 로케이션 선정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김대환: 오늘 계속 들었던 생각인데, 완전히 편집된 장면이 몇 개 있거든요. 그 중 하나가 ‘봉의산 가는 길’이라는 술집에서 찍은 장면이에요. 카페 겸 술집인데요, 몇 년 전까지 본가가 거기 근처였어요. 자주 그 앞을 지나면서 보다가 촬영하게 되고, 그 집의 곳곳을 보게 되니까 다시 한 번 오고 싶더라고요. 원래는 코앞에 있었는데도 그 안을 몰랐던 곳이죠. 청평사도 춘천에 살면서도 자주 가는 곳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촬영하면서 이곳이 어떤 분위기를 가진 공간인지 알게 되었고요. 가장 감회가 새로웠던 공간적 이미지는 한밤중 지현의 실루엣이 담긴 장면이에요. 폐허처럼 나오는 곳인데, 제가 그 자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재개발하느라 박살이 나있더라고요. 기분이 묘했어요. 제가 변한만큼 여기도 변하고 없어지고 있고, 그와 함께 제가 느꼈던 추억이 없어지고 망각으로 가는 것 같은, 고향에서 찍으면서 그런 감회를 느꼈어요.



<춘천, 춘천>이라는 제목에서 왜 같은 단어를 굳이 두 번이나 쓰셨는지 궁금해요.


장우진: 지금 질문하신 게 저의 의도 같아요. ‘왜 같은 말을 두 번 썼을까.’, ‘왜 1부와 2부로 왜 나뉘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영화를 보면 그 사이의 간극에 대해 생각하게 되잖아요. 닮은 점과 다른 점 사이에서 의미를 채우며 보게 되는 것이요.



영어 제목은 ‘Autumn, Autumn’, ‘가을, 가을’이에요.


장우진: 되게 단순한데, ‘춘천’하면 한국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정서나 추억이 있잖아요. 모든 사람은 아닐 테지만 분명 많은 이에게 있죠. 그렇지만 한국에 살지 않는 사람에게 춘천에 대한 정서를 기대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가을’에 대한 정서는 기대할 수 있어요. 시베리아에 사는 사람도 가을에 대한 정서는 있거든요. 그걸 노렸어요.



우연을 존중하며 통제 없이 찍으면 다양한 상황을 마주할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적은 없나요? 


장우진: 통제를 할 수가 없었어요. 스태프가 총 세 명이니까요. 운도 따라야 하는 것 같아요. 우선 그에 대한 생각을 반대로 했어요. 촬영 도중에 외부 사람이 저희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면 NG가 나죠. 그런데 소규모의 사람들이 소형카메라를 가지고 관광지를 찍으니까 사람들이 별로 의식하지 않았어요. 요즘 다들 그쯤은 들고 다니니까요. 


김대환: 과대하게 디테일한 많은 연출을 한다기보다는 현장 안에서 연출을 찾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요.  


장우진: 리허설 하다보면 잘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타이밍이죠.





<철원기행>(2014), <초행>(2017) 그리고 이번 <춘천, 춘천>에서도 가족의 해체와 결합에 대한 이야기를 연상할 수 있는데요, 이것이 봄내필름의 주요 화두인지 궁금합니다.


김대환: 가족 이야기인지 아닌지는 각자 생각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정확하게 어떤 모티브나 주제를 정해놓은 건 없어요. 그렇지만 공통적으로 관습적이지 않은 방식에 대해 고민해요. 형태를 고민하죠. 어떻게 하면 다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스태프들에게 이 영화가 휘발적인 노동이 아니라 기억에 남는, 함께 할 수 있는 형태가 될까, 그런 것들이요. 


장우진: 소재 위주의 접근은 하지 않고 그때그때 느끼고 관심 가는 것에 집중해요. 그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작업해볼까 고민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시도를 하려고 해요.



이전 대답에서 김대환 감독님이 말씀하신 ‘형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김대환: <춘천, 춘천>을 통해 느꼈던 건데, 결국 영화에서 시나리오는 중요해요. 어떤 스토리를 촬영할 때 대부분 계획하고 준비한 대로 찍으려고 하죠. 그렇지만 제가 경험한 좋은 순간들은 우연이 개입하여 시나리오가 바뀌는 그런 순간들이거든요. 그걸 찾아야한다는 이야기예요. 무얼 준비해왔든, 어떤 시나리오가 있든 간에 어떤 시점에서 변해야 할 때가 오면 유연해져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 같아요.


장우진: 쉽게 말하면, 물은 담긴 그릇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잖아요. 물을 얼려서 조각할 수도 있고요.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도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놉시스 쓰고 트리트먼트 쓰고 투자 받고 조명 치고 또 세트 짓고. 그 과정이 정답은 아니잖아요. 그냥 그런 작업이 있는 거죠. 


김대환: 카메라는 점점 대중화되고 좋아지고 관용도도 넓어지고 있는데, 현장은 그 전과 뭐가 달라졌는지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냥 해왔던 사람들이 해왔던 시스템대로 만들고 개봉하고, 개봉하는 방법도 다 비슷하고요. 왜 그렇게 모두 같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초행>도 마찬가지고, 저희는 매번 작업하면서 자유롭고 즐거웠어요. 물론 다른 작업처럼 저희도 힘든 점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두 작품을 하면서 느꼈던 희열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물론 용기가 필요하죠. 자유롭지만 책임을 져야하니까. 그런 화두를 던지고 싶었어요, 이 영화를 통해서.


장우진: 이렇게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이런 방식도 있다, 그런 거죠.


김대환: 외국에는 다양한 형태의 영화 작업이 많아요. 아이폰으로 촬영하는 건 이미 대중화되어있고, 어떤 감독은 CCTV 화면을 모아서 재편집하기도 하고, 혼자 작업하는 사람도 있고요. 되게 열려있어요. 우리나라는 영화라는 매체를 경직된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게 아닐지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어렵고, 대단한 사람들이 해야 하고, 돈과 힘이 많이 들고. 모두가 우려하는 지점도 그런 거죠, 돈벌이가 안 되는 거요. 동시에 이렇게 가볍게 영화를 찍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우진: 저희도 항상 해보고 싶었고요. ‘이게 될까?’ 하면서 시도하다가 되면 또 하는 거죠. <겨울밤에> 때는 그 와중에 조명도 치고 또 다른 걸 시도해봤고요.


김대환: 결국에는 자본의 형태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의 싸움인 것 같아요.



봄내필름에 다른 제작자를 영입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장우진: 저희는 연출과 프로듀싱 양쪽 다 해봤으니까 <춘천, 춘천>과 같은 프로젝트는 가능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전문 프로듀서가 필요해요. 다른 스태프와 같이 해보고 싶은 생각 있죠. 그런데 그러려면 <춘천, 춘천>이 잘 되어야 해요.(웃음)


김대환: 사람을 고용해야하니까.(웃음)



두 분의 차기작 계획이 궁금합니다.


장우진: 10월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 선정된 <마지막 사진>이라는 프로젝트 진행 중이에요. 트리트먼트 마지막 단계고 베를린에서 만난 북한 커플의 이야기예요. 100% 베를린에서 촬영하려고 계획하고 있고, 내러티브가 있는 다른 시도들도 하고자 해요. 그 전에는 별로 없었던 형식으로 제 세계에 내러티브까지 더하게 될 것 같아요. 해외촬영도 해보고 싶고요.(웃음)


김대환: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내년 봄에 춘천에서 촬영할 계획입니다. 엄마의 재혼에 관한 영화가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인디스페이스 관객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김대환: 영화를 보다 보면 가보지 않은 나라의 풍경을 여행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굉장히 소중한 영화적 체험인데요, 인디스페이스에 오셔서 <춘천, 춘천>을 보시면 춘천의 가을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많은 분들과 손을 잡고 춘천에 MT 가듯 인디스페이스에 오시면 좋겠습니다. 


장우진: 몇 안 되는 시간표를 쪼개어 보여드리지 않고 ‘<춘천, 춘천>이 보고 싶으면 인디스페이스로 가면 됩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어 기뻐요. 인디스페이스도 잘되고 저희도 잘되고, 그런 다음에 성과를 힘입어 지방 로드쇼를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Indiespace_Newsletter_20180918




Posted by 도란도란도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디즈 기획] 지금, 독립영화


오늘도 독립영화는 우리를 기다립니다. 극장에서, 집에서, 때로는 우리가 뜻을 모아 함께하는 공간에서, 독립영화는 우리와 만나고 있습니다. 여기 독립영화와 좀 더 가까이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립영화의 지금을 생생히 경험하는, 인디스페이스의 관객기자단 인디즈 10기가 전해드립니다.




독립영화가 포착하는 시간들





*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대한 님의 글입니다.



 

영화와 시간은 동일한 선상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를 변화시킨다. 이는 영화와 시간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임을 의미하며, 영화는 하나의 매체로서 시간을 포착하고, 영화가 포착한 시간은 미미할지라도 사회를 변화시킨다. 이러한 영화의 힘을 아는 사회 역시, 통제의 수단으로 영화를 종속시키고자 한다. 보이지 않지만 영화와 사회는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하며, 서로를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영화가 시간을 포착한다는 주장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에 잠식된 스크린 시장은 소수의 영화 제작사에 좌지우지되고, 대형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에는 온갖 히어로와 로봇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은 외계 혹은 악당의 침입으로부터 세계를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 영화들은 스펙터클의 연속으로서 오직 엔터테인먼트의 수단으로 작용하며, 세상의 시간을 포착하는 영화의 기능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미래의 영화를 보여준 스티븐 스필버그<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오직 가상의 시공간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영화가 포착하는 시간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밍량, 허우 샤오시엔과 같은 작가들은 여전히 영화로서 시간을 포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또한 국내의 독립영화들 역시 시간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에 밀려 뒷전이 된 국내의 독립영화들을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에서 본다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화려한 어트랙션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키지도 못하며, 관객들에게 이 영화들은 부족한 제작비로 인해 허점투성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들은 본래 영화가 가지고 있던 고유한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을 포착하는 것에 충실하다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에도 영화 속의 시간은 여전히 지속되고 흘러갈 것만 같다. 이 살아있는 시간으로 인해, 관객들은 스크린 너머의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인식하며, 영화는 강력한 힘으로 관객에게 작용한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시간, 즉 독립 영화가 포착하는 실재의 시간과 그 시간을 포착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 작가의 시간

<초행>(2017), <수성못>(2017)



때때로 관객들은 영화를 관람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흔적을 발견한다이 흔적이란 작가의 삶과 감정이 녹아져 있는 것으로작가의 자기 투영 혹은 본인이 체험해온 시간을 의미한다이러한 유대를 통해 관객들은 강력하게 영화 속에 동화되고그 영화는 관객에게 커다란 사적 의미를 형성하게 된다어떤 관객은 <초행>의 결혼을 앞 둔 수현과 지영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위태로움에 유대할 것이며, 혹은 <수성못>에서 죽음의 충동이 맴돌고 있는 인물들의 감정과 유대할 것이다. 이러한 유대를 통해 관객들은 강력하게 영화 속에 동화되고, 관객에게 커다란 사적 의미를 형성하게 한다. 이는 위태로움, 불안감, 죽음의 충동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관객 자신, 혼자가 아니라, 작가 혹은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관객들도 느끼는 감정이라는 안도감일 것이다.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치유되며, 불안하고 위태로운 감정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작가의 흔적들이 짙게 느껴질수록 스크린 너머의 시간은 가상의 시간이 아니라 실재의 시간에 가까워진다. 이는 작가 본인이 체험한 실재의 시간으로, 이 시간들은 스크린에 투사되는 순간 작가와 관객이 공유하는 실재의 시간으로 발전한다.


우리는 위의 두 영화, <초행><수성못>을 통해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작가의 흔적들이 짙은 이 두 영화는 작가가 느낀 감정과 시간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이 흔적들이 존재한다는 명백한 지표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풍기는 뉘앙스 혹은 작가의 인터뷰나 세계관을 바탕으로, 우리는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영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확신을 하게 된다.

 




스크린 속 7년차 커플, 수현과 지영이 다가온 결혼에 대해 위태로움과 불안감을 느낄 때, 이 둘을 매개체로 작가와 관객이 각자의 삶에서 느끼는 위태로움이 조우한다. 100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이 커플이 직면한 문제는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두려움, 현재의 직장과 벌이에 대한 문제, 복잡한 가정사를 비롯하여 다수의 문제가 여전히 안개처럼 그들의 앞을 가리고 있다. 그 안개 속에서 방향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그냥 걸을 뿐이다. 이 조우는 관객 혹은 작가에게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감정을 유대함으로써 우리의 앞에 닥친 시련을 극복할 동력을 얻는다.

 

<수성못>의 인물들이 느끼는 죽음의 충동 역시 관객과 조우한다. <수성못>의 인물들은 추구하는 무언가를 실패하거나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이 시련의 돌파구로 죽음을 선택하고자 한다. 하지만 죽음의 시도마저 실패하며, 죽음의 충동은 그들 곁에 맴돌기만 할 뿐이다. 죽음마저 선택할 수 없는 그들의 무기력한 삶과 조우하지만, 이 서사는 관객에게 무기력 감정만을 남기지는 않는다. 죽음의 충동이 맴도는 것은 관객 혼자가 아니며, <수성못>의 인물들과 작가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에 이들은 유대한다. 이 유대를 통해 죽음의 충동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보편의 감정으로 변화한다. 이 과정에서 <수성못>의 서사는 위로로 변하며, 관객들은 시련과 마주할 동력을 얻게 된다.

 

작가의 흔적, 즉 작가의 시간은 작가의 고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작가가 살아온 시간과 감정을 스크린에 고백함으로써, 작가와 관객은 유대한다. 이 유대를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큰 사적 의미를 지니고,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동력으로서 작용한다.







# 추모와 연대로서의 시간

<공동정범>(2016), <눈꺼풀>(2016)


 

이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연대는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다아픔 혹은 고통의 시간을 함께함으로써그 감정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다우리는 이러한 공유의 과정을 통하여각자의 방법으로 그들의 짐을 함께 부담하거나 위로하고자 한다이와 같은 맥락에서 연대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그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도 하나의 연대라고 할 수 있다누군가는 그들의 아픔 혹은 고통에 대해 목소리를 내거나 투쟁함으로써 연대하기도 하지만그들의 아픔 혹은 고통에 함께 슬퍼하는 것 또한 하나의 연대인 것이다.


연대의 과정에서는 다수의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필요로 하며, 영화 또한 그 중 하나이다. 이러한 측면은 특히 국내의 독립 영화들에서 돋보인다. <공동정범>은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시간을 기록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으며, <눈꺼풀>은 하나의 시가 되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다. 이 영화들은 그들의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스크린에 투사하고, 관객들이 그 시간을 마주하게 한다. 이 마주함을 통하여, 관객들은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다. 그리고 이 체험은 연대의 시작을 알린다.




 

우리는 10년 전 용산 참사의 비극에 대해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지만, 늘 그러하듯 이 비극은 우리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공동정범>은 희미해진 이 비극을 환기시킨다. <공동정범>의 카메라는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추적하고, 그들의 진술에 귀 기울인다. 카메라에 기록된 시간들은 극장의 스크린에 투영되고, 관객들은 잠시나마 용산참사 희생자들이 살아온 아픔과 고통의 시간에 마주한다. 작은 범위에서 잠깐의 시간 동안 관객들은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며, 크게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감정을 유지하고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알리기 위해 힘을 쓴다. <공동정범>은 용산참사에 대한 연대와, 그들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매체이다.


<눈꺼풀>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작용한다.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이 실제 피해자들의 시간을 포착했다면, <눈꺼풀>은 가상의 시공간을 만들어 은유적으로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펼쳐지는 미륵도에서 서사는 진행되며, 망령들은 주변을 배회한다. 때때로 과도한 은유와 추상적 표현으로 인해 관객들이 극의 정확한 흐름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는 슬픔은 가슴 한 구석에 남는다. <눈꺼풀>이 투영되는 스크린은 <공동정범>처럼 직접적으로 피해자들의 고통 받는 시간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이 또한 그들의 고통을 느끼게 한다. 간접적인 고통의 체험을 통해 피해자들과 작게나마 연대한다.

 





# 시대의 포착

<서산개척단>(2018), <5.18 힌츠페터 스토리 5.18>(2018), <해원>(2017)

 

지가 베르토프를 비롯한 다수의 소련 감독들이 과거에 영화를 혁명의 도구로 여겼듯이여전히 현재의 영화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텔레비전을 비롯해 다수의 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하는 등다수의 요인으로 인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은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여전히 다수의 영화들은 세상을 바꾸고자 목소리 내고 있으며위의 영화들도 그 중 하나이다이 영화들은 과거의 과오에 대해 추적하며이에 대해 바로 잡고자 한다.

 

한국사에서 20세기는 격동의 시기였다. 불과 100년 사이에 일제강점기를 겪고 독립을 이뤘으며, 무수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뤘다. 이 짧은 시간 동안 한국 사회는 다수의 사건을 겪었고, 큰 발전을 하는데 성공했다. 그와 동시에 다수의 사건들은 부작용을 일으켰고, 희생자들을 발생시켰다. 하지만 대의라는 명목 하에, 이 희생자들은 묵인되었다. 이 영화들은 이러한 과오에 대해 바로 잡고자 한다. <해원>은 해방 이후 남한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을, <5.18 힌츠페터 스토리>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벌어진 신군부의 학살을, <서산개척단>은 정부의 토지개발을 명목으로 일어난 사기극에 대해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카메라는 과거를 추적하며, 포착된 시간을 스크린에 투영한다.

 




하지만 이 과오의 시간들을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이 존재한다. 또한 과거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이 영화들은 피해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경우 힌츠페터가 카메라를 통해 기록한 진실의 역사들이 존재하기에, 나머지 두 영화에 비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나머지 두 영화의 경우 직접적으로 카메라를 통해 포착한 과거는 존재하지 않기에 전적으로 피해자들의 진술과 문헌의 기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재현된 시간은 카메라를 통해 포착한 실재의 시간에 비해 불완전하며, 때때로 관객들에게 불신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들을 불완전한 영화라고 판단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피해자들의 진술 혹은 문헌의 기록을 따라 과거의 시간을 재현하지만, 이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과거의 진실들을 포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포착된 시간이 극장의 스크린에 투영되는 순간, 관객들은 그 시간과 마주하고, 과거의 과오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또한 어떤 관객들은 의문을 품는 것을 넘어 그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 희미해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오직 시간을 포착한다는 것만이 영화의 참된 가치는 아니다. 이 글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최근 영화 시장에서 시간을 포착하는 영화들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와 동시에 시간을 포착하는데 충실한 것처럼 보이는 위의 영화들을 만났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이기도 하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이 영화들의 가치를 단순히 시간을 포착한다는 것만으로 단정지을 수 없으며, 이와 동시에 각자 특별한 가치들을 지니고 있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화려한 어트랙션 속에서 잠식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영화들의 그에 매료될 것이다. 하지만 건너편 작은 극장에서 시간을 포착하는 국내의 독립 영화들이 상영될 것이다. 또한 이 영화들은 빈자리가 듬성듬성 할 것이다. 이 현실에 대한 아쉬움에, 작게나마 국내의 독립영화들의 가치에 대해 서술했으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마무리 하고자 한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살아남은 아이>  한줄 관람평


김정은 | 애도와 죄의식용서에 대한 신중한 고뇌와 통찰

주창민 깊은 애도의 우물거기서 건진 것은 무엇인가

승문보 | 섬세한 감정과 균형을 잃지 않는 인물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윤리적인 고뇌

박마리솔 진짜 가혹한 것은 영화보다 가혹한 현실

권정민 | 가슴을 후벼 판다섬세하고 기민하게 인물 한명 한명을 담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윤영지 | 가라앉는 희망을 길어 올린다. 건져 올린다.





 <살아남은 아이>  리뷰: 깊은 애도의 우물, 거기서 건진 것은 무엇인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주창민 님의 글입니다. 




살아남은 아이가 있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영화 제목에서부터 존재와 부재의 공존을 다루고 있는 <살아남은 아이>는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장편상 수상,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 공식 초청 등 국내외 평단에서 호평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 균형 감각, 깊은 감정의 골을 보여주는 훌륭한 배우들, 애도에 대한 감독의 진중한 태도 등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허나 벗어날 수 없는 기시감은 무엇일까. 기본적인 서사와 연출방식은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과 파생적으로 연상되는 일련의 작품들과 많은 부분이 닮았다. 이러한 기시감은 비단 작품의 유사성에만 있지 않다. 한국 독립영화에서 우려되는 한 현상, 부모의 부재, 가난한 환경, 학교 폭력 등 열악한 환경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캐릭터들의 연속된 등장도 존재한다. <살아남은 아이>의 기현도 이러한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영화 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앞서 말한 기시감으로 평가절하하기보다는 <살아남은 아이>만이 지닌 결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살아남은 아이>의 카메라는 그 동안 무기력하게 덩그러니 놓여오던 카메라와는 달리 섣불리 그들을 판단할 수 없다는 듯 작중 인물들과 거리를 두고 따라가듯 움직인다. 영화는 사려 깊은 거리감을 통해 아들의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완전한 애도가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애도와 용서에 관한 질문들 속에 각자의 상실 공간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위치시키고,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의 골을 균형 있고 짜임새 있게 제시하고 있다다시 말해 영화는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태도를 거부하려 노력한다. 태도와 윤리에 대한 고민, 그것을 기반으로 <살아남은 아이>가 애도의 과정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지켜보고 이러한 강점들과는 반대로 마지막 장면에서 느낀 당혹감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애도 : 의미 있는 애정 대상을 상실한 후에 따라오는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과정.

 

헌 벽지를 뜯어내고 새로운 벽지로 도배하는 행위. 찢어지고 상처 난 자리를 하얀색 벽지로 덮는 이 행위는 애도와 많이 닮았다. 상흔을 무언가로 덧대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 기현에게는 죄책감이나 그동안의 상처들을 씻겨내고 깨끗한 천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도배 행위 자체는 기현에게 있어 생계 수단이다. 앞으로 혼자 살아가기 위해서는 배울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기현은 앞으로 살기 위해서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 비밀을 숨기고 버티고 또 버틴다.

 

애도란 상실감을 느끼고, 도배작업처럼 그것을 메우고 정화하는 과정일 것이다. 아들의 죽음은 마음 한 공간에 상실이라는 부재의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그 공간에 위치한 깊은 감정의 우물은 고뇌와 상실감으로 채워져 있다. 이 상실의 공간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따라 애도의 방식이 달라진다. 미숙은 이 상실의 공간을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려고 한다. 또한 아들을 상기시킴으로써 상실감을 나누려고 한다. 반면 성철은 아들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하고자 하고 그를 통해 상실에서 오는 씁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있다카메라는 서로 다른 애도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공감 없이 위로를 행하는 사람들, 타인의 죽음을 포장하려는 사람들을 보여줄 때는 경계하듯 새로운 거리감을 부여하고 너무 쉽게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해 역으로 상기시킨다.

 

영화는 섬세하게 성철과 미숙의 애도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균형감각 있게 기현의 위치와 상황을 그려낸다. 어느 순간 기현은 성철과 미숙의 애도 공간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기현은 비밀을 간직한 채 분명하게 그 상실의 자리에 들어온다. 기현은 기술을 다 배우고 성철의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단순히 제자가 아니라 성철의 모습을 모방하고 미숙과 성철의 생일을 챙겨주는 자식의 모습으로 남고 싶어 한다기현은 성철과 미숙의 상실의 공간 일부분을 차지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주변 생활환경에는 시비와 의심이 도사리고 있고, 편안해야 할 공간에는 살기가 있는 폭력이 꿈틀대고 있다. 기현의 공간은 불안정하고 주변에 의해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공간이다. 기현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 성철과 미숙의 상실은 아이러니하게 기현의 부재를 채운다.

 




죽음의 자리가 타자에 의해 대체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기현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상실감의 밀도는 조금이나마 희석된다. 그럴수록 기현의 죄책감은 더욱 커지고 기현을 흔들기 시작한다.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성철과의 약속, 죄책감의 무게감, 공모자들의 폭력 등 모든 것이 그의 존재 자체를 짓누른다. 기현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과거의 죄악들은 하얀색 벽지로 덮였었지만 얼룩이 생기고 찢겨진다. 다시 덮어낼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들어내고 새로 시작할 것인가. 기현은 후자를 선택한다.


기현의 고백으로 성철과 미숙의 용서와 윤리에 대한 고뇌는 더욱 커진다. 의사자는 피해자로, 살아난 아이는 가해자로, 친구들은 공범으로 변모하면서 모든 공간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성철과 미숙의 공간은 일그러지고 더 이상 그들의 공간에서는 애도행위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은 무기력하게 기현과 함께 영화 내내 바깥에 있던 환상의 영역(강가)으로 떠밀린다. 솔직하지 못한 공모자들의 모든 책임은 속죄하려던 기현에게 돌아간다.

 

성철은 현현해진 상실의 공간에서 인과응보를 실천하려 한다. 아들은 죽인 가해자를 벌하는 것이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진정한 애도의 방식인가, 아니면 가해자를 용서하고 구원해야 하는가. 그 고뇌의 끝은 정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진정한 애도도 완전한 용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과정만을 지켜볼 뿐이다. 그 속에 겹겹이 쌓여있는 감정들, 강가에 누워있는 기현을 바라보는 미숙의 눈에는 처음 성철이 기현을 바라볼 때와는 다른 감정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그런데 기현은 왜 이곳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기현이 한 행동은 씻을 수 없고 처벌받아야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절박한 환경에 던져진 기현만이 모든 죗값을 부여 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기현이 지르는 고성과 강으로 던져지는 돌멩이들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환경에 대한 분노로도 생각할 수 있다. 약자는 약자만을 심판할 수 있는가. 은찬에게 던져졌던 돌멩이들은 자신에게 돌아와 물속으로 가라앉힌다.

 

기현에게 스스로 속죄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이 아이는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죽음을 선택해야만 하고 다시 구원받아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기현이 살아남은 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상실의 깊은 우물에 자신의 몸을 던지고 구원받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성철과 미숙이 구원자가 되어야 끝나는 이야기. 차분하고 깊게 유지해오던 톤은 어긋나고, 줄곧 사려 깊다고 생각되던 거리감은 오히려 무심하고 힘없이 느껴진다. 마지막에 다다르자 작위적인 흔들림을 최대한 방지하고자 노력하던 움직임마저 사라져버렸다. 인물들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를 원했던 것일까. 개인적인 연민인지 아니면 가혹한 환경에 계속해서 던져지는 인물들의 모습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구분할 수 없지만, 이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우리는 영화가 끝난 후에 강물 밖으로 건져 나온 기현에게 너는 살아남은 아이야.’라고 단언하고 안도할 수 있을까. 미숙의 시선 끝에 불안하고 어정쩡한 감정이 서려 있는 기현의 초상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대관람차>  한줄 관람평


김정은 | 삶이라는 광활하고 아득한 우주 속에서 잠시 나를 찾아 흘러가는 로 표류해도 괜찮아

주창민 잔잔한 오사카의 풍류 속 이문세와 우주의 청춘

승문보 | 세상에서 표류 중인 모든 이에게 위로가 되어줄 어쿠스틱 선율

박마리솔 오사카라는 대관람차

도상희 | 이제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주인공이 행복한 영화를 보고 싶다

권정민 | 장점과 한계점이 같은 영화. 편안하고 개운하게 볼 수 있어 좋다

윤영지 |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애정






 <대관람차>  리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애정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영지 님의 글입니다. 




영화 <대관람차>는 미완성형이다. 이 영화를 채우는 것은 여백이다. 그리고 그 여백의 의도는 영화 곳곳에서 상당히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관람차>는 관객의 우주에, 그러니까 당신의 우주에 가닿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영화이다.

 

그래도 정말 괜찮아요?” 백재호 감독은 전작 <그들이 죽었다>(2014)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계속 그렇게 살아도 괜찮겠냐고, 이대로 괜찮겠냐고 말이다. 이희섭 감독과의 공동 연출로 개봉한 그들의 신작 <대관람차>는 <그들이 죽었다>에서 끊임없이 던지던 질문에 내놓은 해답 같은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 '우주'오사카 출장 중 홧김에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실종된 선배 '대정'을 찾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피어 34’라는 작은 바의 사장 '스노우'와 그에게 기타를 배우는 '하루나'를 만나며 그는 잊고 있던 음악이라는 꿈에 한발 다가가며 크고 작은 변화들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을 보다 또렷이 바라보고 타인에게 한 뼘 더 다가가게 된다.

 




영화 속, 국적도 언어도 다른 그들을 매개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상실의 아픔과 상처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음악 영화와 성장 영화의 구조를 띄고 있지만 그 기저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다.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세월호 참사를,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었다하지만 우리는 사실 서로가 가진 아픔에 대해 알 수 없다. 타인의 고통을, 그 상실의 크기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영화 <대관람차>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곳의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어색한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슬픔을 가진 인물을 동정이나 연민의 대상으로 떠밀지 않는다. 관객을 영화 속 인물들보다 우위에 위치시키고 그들을 내려다보게 하지 않고, 우리 각자가 마음속에 지니고 있을 그 각자의 아픔을 돌아보게 하도록 한다. 그러니까 <대관람차>는 눈물을 닦아주는 영화라기 보다는 손을 잡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방법을 택한다. 상실이나 상처를 온전히 치유가 가능한 대상으로 포장해버리지도 않는다. 정확히 우리가 타인에게 건넬 수 있을 만큼의 희망과 위로에 대해 집중한다.

 

 <대관람차>에서 인물은 늘 사건보다 앞서 있다. 거대한 사건 대신 사소한 선택이 있고, 큰 시련 대신 작은 변화가 있다. 인물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다. 그들과 발을 맞춰 걷는다. 카메라는 언제나 인물에게 한 걸음 떨어져있다. 무리하지 않고 작위 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천천히 다가가려는 시도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소중하고 애틋하다. 이 영화는 이렇게 삶 속의 사소하지만 소중한 순간들로 가득 차있다.

 




영화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환상성이다. 영화가 다루는 세부적 이야기는 현실적이지만 영화 속에는 자주 초현실적인 장면과 은유가 등장한다. 척박하고 환멸 나는 현실을 피하거나 이야기의 도구로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길로 우회해 될 수 있는 한 아름다운 방식으로 현실을 바라보기 위해 애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서 말이다.

 

영화는 모호한 지점에서 끝을 맺는다. 이것이 바로 여백의 이유가 된다. 우리는 모두 우주를 채워 넣을 수 있고 <대관람차>에 등장하는 대관람차는 각자에게 어떠한 의미로든 가 닿을 수 있다. 내가 느낀 대관람차는 위안과 희망이었다. 나는 대관람차를 타본 일이 있다. 도피성으로 혼자 떠났던 유럽 여행에서 처음 탔던 대관람차는 사실 내게 공포였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그렇게 높은 곳까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혼자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내 앞에 앉은, 생전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대답했다. 걱정 말라고. 그냥 이 풍경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나는 그제서야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 <대관람차>는 그때 내가 마주했던 나의 우주를 자연스럽게 환기시켜주는 영화였다.

 




<대관람차>는 동시에 가볍고 기분 좋게 즐기기 좋은 영화이기도 하다. 오사카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들과 루시드폴, 스노우의 음악은 마음을 따뜻하게 채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하게도 극장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이 아름다운 영화를 극장에서 만나기를 희망한다. 당신의 우주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Indiespace_Newsletter_20180911




Posted by 도란도란도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우리가 함께한 따뜻한 시간  <어른도감>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8월 25일(토) 오후 5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인선 감독 배우 엄태구이재인

진행 곽명동 마이데일리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올해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20회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땡그랑동전상을 수상한 화제작 <어른도감>823일 개봉하였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것은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삶의 삶의 일부를 주는 것이기에, 영화만큼이나 인디토크 현장에도 따뜻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김인선 감독과 엄태구 배우, 이재인 배우가 참석하고 곽명동 마이데일리 기자의 진행으로 인디토크가 시작되었다.

 




 

진행: 먼저 감독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이전에 단편 <아빠의 맛>(2014)<수요기도회>(2016)를 연출하셨는데요, <어른도감>과 연결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전작의 도움 또는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김인선: <아빠의 맛>어렸을 때 아버지와 헤어진 성인 여성이 엄마의 재혼을 앞두고 친아버지를 한 번 만나고 오는 이야기에요. <수요기도회>화장품 방문 판매원이 우연히 어떤 여자를 만나 도박에 빠지면서 생겨나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빠의 맛같은 경우는 주인공 한 명을 따라가는 영화지만 <수요기도회>는 두 여성 간의 연대와 관계성에 대한 영화다 보니 <수요기도회> 때에 다뤘던 관계성에 집중을 하면서 두 사람이 무엇인가를 해나가는 버디무비를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평소에 가족, 혈연, 비혈연 가족에 대한 관심이 많아 주제적인 측면은 <아빠의 맛>에서, 인물 간 관계는 <수요기도회>에서 배운 것들을 참고하여 발전시키게 된 것 같습니다.

 

진행: <어른도감>을 보면서 감독님의 온도가 조금 더 따뜻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럼 엄태구 배우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아마 춤 추고 노래하는 장면이었을 것 같아요. 그룹 고구려에서 유리왕자를 맡으셨고, 회식 자리에선 노래 제비처럼을 부르셨죠. 술을 거의 드시지 않는데, 이 장면을 위해서 맥주를 한 캔 드셨다고 들었어요.

 

엄태구: 일단 노래는 후보로 제비처럼’과 말하자면이 있었는데, ‘말하자면은 제가 춤을 소화하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제비처럼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감독님과 사전에 노래방을 세 번 정도 갔어요. 흥이 많은 연출부 분도 같이 오셔서 노력을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흥을 돋우려고 하면 할수록 제가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웃음결국 노래방에서는 아무런 성과도 거둘 수 없었어요. 해당 장면을 촬영 후반부에 찍어서 계속 노래를 들으며 걱정했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제가 준비한 것은 꽃가루였어요. 그리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죠. 마시고 나서는 정신이 없어서 나오는 대로 저질렀던 것 같습니다.





진행: 엄태구 배우가 촬영 들어가기 전에 구석에서 자기 몸을 마구 때리고 방방 뛴다고 해. <밀정>(2016) 때도 그랬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인만의 의식인가요?

 

엄태구의식은 아닙니다. 저는 교회를 다녀서 기도하고요, 아 농담입니다.(웃음제가 긴장을 많이 해서요, 최대한 완화하기 위해 <밀정> 때는 몸을 두드렸어요. <어른도감> 때는 캐릭터 상 업 되어있는 상태여야 해서 촬영 전 방방 뛰고 들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행이재인 배우님은 촬영하실 때 나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어요. 극 중에서는 경언이가 중학생이잖아요?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감정 잡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이재인: 생각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차이가 컸어요. 처음 교복을 입어 보니 되게 설레더라고요. 중학생의 예민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게 조금 어렵기도 했고,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진행: 초반에 경언이가 입고 나온 옷을 자세히 보셨나요? 토토로 옷이에요. 제가 여쭤보니까 직접 준비하셨다고 해요. 그 과정을 조금 설명해주세요.

 

이재인: 의상피팅을 해보는데 평소에 입는 옷들이 아니어서 조금 부자연스러웠어요. 진짜 내 옷들을 입으면 어떨까 생각해서 집에 있는 옷을 싹 다 긁어 모았고 그 중에서 어울리는 것을 찾았습니다.

 

진행: 후드를 너무 많이 장만하셨다고요.

 

이재인: 집에 색깔 별로 있습니다.(웃음)

 

 



진행: 감독님이 굉장히 강조한 원칙이 있어요. “소녀의 버디무비를 만들고 싶다.” 한국에는 그런 영화가 많지 않아요. 꼭 만들고 싶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인선: 영화 안에서 십대 여성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나 성적인 대상, 혹은 판타지로 그려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저는 경언이라는 친구가 현실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 중학교에서 1년 정도 시간강사로 일을 했는데, 그 당시에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영화 속에서 보고 있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가짜인가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그러면서 경언이라는 캐릭터에는 다른 소녀상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버디무비로 풀고 싶었고 소녀의 관점에서 그리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진행: 엄태구 배우님은 <아빠의 맛><수요기도회>를 보고 감독님의 장편영화에 출연하고 싶으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점이 좋았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엄태구일단 작품 자체가 제 스타일이었고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할 만하기도 하고 작품성도 뛰어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따뜻함도 같이 느껴졌고요. 출연하신 배우님들의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진행: 재민이 남산에 올라가서 경언이가 태어났을 때 안고 있던 엄마를 재현하는 모습을 보며 뭉클하기도 했는데요, 관객의 입장에서 그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태구상당히 고민을 많이 한 장면이었어요. 날도 엄청 추웠어요. 자칫 잘못하면 오그라들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어서 감독님과 계속 이야기했어요. 감독님이 원하는 방향으로도 촬영하고 제가 생각한 방향으로도 촬영했는데, 그런 과정 끝에 좋은 장면으로 편집해주신 것 같아요.

 

김인선: 사실 시나리오로 그 부분을 읽은 분들이 너무 오글거린다는 반응을 하셔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 장면을 보면 재민이 처음에는 장난을 치다가 갑자기 진지하게 말하는데, 장난을 치는 부분은 엄태구 배우님이 가미해 주신 거예요. 그 덕에 크게 민망하지 않고 진심 어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 장면 찍기 전에 저도 배우만큼이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찍자마자 바로 너무 좋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때 재인 배우가 눈동자 연기를 하는데, 화면에서 맑고 큰 눈동자 안의 감정이 느껴졌어요찍으면서 너무 좋은 장면이라고 스스로 자부했고 편집하면서도 너무 좋았습니다.

 

진행: 이재인 배우가 기자간담회에서 경언이랑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면이 많다고 했어요. 삼촌의 폰을 백업하는 주도면밀한 면을 뜻하는 것인지, 위기상황에서 삼촌을 아빠라고 말하는 순발력이 비슷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 아이큐가 143인지 궁금합니다.(웃음)

 

이재인: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경언이랑 제 성격이 조금 닮았지 싶었어요. 까칠한 면이나 중학생 또래의 느낌이요. 그리고 경언이가 눈치가 빠르기도 하고 눈치를 많이 본다는 느낌도 있어서 그런 평소의 나와 닮은 느낌을 잘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관객: 경언이 아빠한테 배웠다면서 참을 인()자를 세 번 써서 먹는 장면이 있는데, 일본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는 것으로 알아요. 이런 걸 가져온 이유가 궁금해요. 그리고 경언의 같은 경우 한국영화에서 십대 소녀가 보여주지 않은 독특함이 느껴졌고 영화를 다 보고나니 이 캐릭터가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재민은 성장했다고 하기엔 애매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인선: 먼저 참을 인 자를 세 번 쓰는 것은 저희 엄마가 참을 인 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며 참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셔서에요. 또 눈에 다래끼가 나려고 하면 발바닥에 천평(天平지평(地平)을 써주시기도 했어요. 가구를 새로 들이면 뒤에 ()자 쓰는 그런 미신을 지금도 믿는 분이에요. 사실 저도 그런 걸 실행하면 마음이 이상하게 편해지더라고요. 엄마랑 같이 살면서 보고 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경언이는 자기도 모르게 어렸을 때부터 참고 참아야 하는 환경 속에 놓여 있는 아이인데, 재민은 잘 못 참기 때문에 형과의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고 그 동안의 삶도 이런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누구 밑에서 일하는 것을 힘들어 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경언이가 삼촌 가방을 뒤질 때 보면 ‘자제력 책이 나오잖아요? 사실은 재민도 달라지고 싶었을 텐데, 사람이 쉽게 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런 두 사람의 차이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덜 참아도 될 텐데 참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아이와 참아야 될 텐데 잘 참지 못하는 성인의 대비를 이루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사실 저도 고민이 있었어요. ‘재민이 어떤 깨달음과 변화를 얻게 되었을까?’라는 지점에서요. 영화를 볼 때 어떤 인물이 영화의 끝에 도착했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기대하게 되잖아요. 재민은 어떻게 변화했을까를 고민해봤는데, 아주 드라마틱하게 변하면 이 이야기가 너무 가짜 같을 것 같더라고요. 그 동안 재민은 계속 이렇게 살아온 사람인데 하루아침에 변할까 싶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재민이 엄마에게 경언이를 데려다 주는 건 재민의 입장에서는 최선이에요. 경언이를 위해서 자기같이 못난 사람보다는 그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재민이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이후의 상황을 조금 더 기대하게 만들면서 끝내고 싶었어요. 영화 안에서 그 변화를 단정짓기보다는 그 이후를 기대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 지금과 같이 그리게 된 것 같습니다.

 

 


 


관객: 경언이가 점희를 찾아가 털어놓는 장면에서 경언이가 쪽지를 남겨놓는 것까지만 나왔는데, 경언이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을지, 그리고 세 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지가 궁금하고요, 그리고 이재인 배우의 실제 모습이 시나리오에 반영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인선: 경언이가 점희를 찾아간 것은 고백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어요. 경언이라는 아이는 이대로 자신의 본명도 알려주지 못하고 사과조차 못한 채 관계가 끝나는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고 죄책감을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가 받았던 감정들을 전하고 행복했던 시간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찾아갔을 것 같고요. 이 영화는 사실 사기극을 빙자한 관계 드라마이기 때문에 주어진 러닝타임 안에서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 보다는 인물들의 반응을 조금 더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 세 사람이 어떻게 됐을 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글쎄요, 어떻게 됐을 것 같나요? 배우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졌어요.

 

이재인: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세 사람이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예상해보고 있습니다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실제 성격에서 반영된 부분들이 꽤 많은 편인데, 경언이가 마냥 어른스럽다기보다는 그 안에 아이 같은 모습이 있기 때문에 삼촌이랑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평소에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사실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경언이가 어려운 상황들을 잘 풀어나가기 위해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참아내는 모습을 연기할 때 평소에 느꼈던 감정들을 반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행혹시 시나리오 쓰실 때 이재인 배우를 염두에 둔 건가요?

 

김인선: 쓸 때는 이재인 배우를 몰랐어요. 다 쓰고 이재인 배우의 다른 영화 오디션 영상을 보고서 이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재인 배우는 시나리오 속 경언보다 나이가 어렸는데, 보통은 역할보다 나이가 더 많은 배우가 연기를 하거든요. 실제보다 더 나이가 많은 역을 맡아서 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처음에는 이재인 배우가 너무 어린 게 아닐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재인 배우를 세 차례 정도 만나서 같이 이야기를 해보니 이 친구라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독해력도 뛰어났고 생각하는 것들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어요.

 

진행: 그러면 엄태구 배우는 캐스팅 과정에서 바로 떠오른 배우인가요?

 

김인선: 시나리오 쓸 때는 아니었어요.(웃음사실 생각도 못했어요굉장히 좋은 영화들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계셨고 저희 영화는 작은 영화잖아요. 그런데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규모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역할을 보는 신념이 있으시더라고요. 엄태구 배우님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두 배우님, 그리고 서정연 배우님과 같이 하게 된 게 너무 큰 행운인 것 같습니다.

 




관객: 영화의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빠와의 사진 같은 부분이요. 엄태구 배우님의 고구려춤 연습하는 장면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어요.(웃음) 댄스 실력도 수준급이시던데, 연습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엄태구그 장면은 촬영이 끝난 지 5개월 정도 후에 춤 선생님께 갑자기 배워서 찍었어요.(웃음몇 시간을 췄는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춤을 배운 게 처음이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건 물결 모양.(웃음그래도 아이돌 준비한 친구인데 잘 춰야 하니까 물결 모양에 집중을 했습니다.

 

진행: 극중 경언이 삼촌을 만나러 갈 때 거울 앞에서 물결 모양을 따라 추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결.(웃음)

 


관객: 이번 영화 만들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나 힘들었던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김인선: 차에서 찍는 장면이 많았어요. 중요한 대화들도 차 안에서 많이 이루어지고요처음에 엄태구 배우님께 혹시 운전을 하시냐고 여쭤봤는데, 면허는 있지만 장롱면허라는 거예요. 큰일났다,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배우가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슈팅카라는 장치를 알아봤는데 굉장히 비싸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배우님께 했더니 운전 연습을 하셨어요. 촬영할 장소를 미리 다 알아본 다음에 그 코스에서 주행연습을 했어요. 아까 말한 노래방에서 흥을 돋궈준 연출부 분이 운전을 잘 해요.(웃음) 그 친구가 옆에서 운전 지도를 하고 앞뒤로 차량이 한 대씩 붙어서 연습을 했어요. 저희 영화에서 운전하는 모든 장면은 실제 운전을 하면서 찍은 거거든요. 운전 자체도 집중을 해야 하는 건데, 연기 또한 집중을 해야 하는 작업이죠.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배우님께서 잘 해주셨어요. 

  

엄태구장롱면허는 맞는데, 그래도 운전을 곧잘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연습을 한 이유는 대사를 하면서 운전을 하면 너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저 혼자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재인 배우와 감독님도 타고, 카메라가 차 옆에 달려 있어요. 또 대사량이 제가 해온 작품에 비해 꽤 많아서요, 그런 걱정 때문에 최대한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연습을 했습니다.

 




진행마지막으로 끝인사 듣겠습니다.

 

김인선: 저희 영화 봐주시고 GV까지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이 시간을 나눈 것을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같이 찍으면 어떨까 하는데, 흔쾌히 임해주시는 거죠?(웃음) 너무 감사합니다.

 

이재인: 일단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소중한 인연을 만들며 찍은 영화입니다. 좋은 에너지 받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도감> 파이팅!

 

엄태구: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른도감>  한줄 관람평


김정은 | 아프고 서툰 서로의 공백을 채워주는 따뜻한 나날들

주창민 가장 무거운 책임은 함께 나눈 시간에 대한 책임이지 않을까

승문보 | 달콤하면서 쌉싸름하게 풀어낸 어른이라는 세계

박마리솔 어른도 어른은 처음이니까

도상희 | 어른 : '타인을 위해' 거짓말 할 수 있게 된 나이   

권정민 | 익숙한 이야기에서 신파를 걷어냈다. 담백해서 좋다.

윤영지 | 아이와 어른을 지운 자리에 사람과 사람을 적어넣기







 <어른도감>  리뷰: 아프고 서툰 서로의 공백을 채워주는 따뜻한 나날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열네 살 경언은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삼촌 재민을 처음으로 만난다. 엉성하고 철 없는 재민은 조카 앞에 남겨진 친형의 보험금을 가지고 도망갔으나 똑똑한 경언에게 보험금은 모두 잃은 채로 붙잡힌다. 재민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동네 약사 점희를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게 되는데, 경언에게 부녀로 가장하여 동업을 할 것을 제안한다.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하고 철 들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아온 경언은 생면부지의 삼촌이 금전적인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했음을 아마 눈치챘을 것이다. 쌀쌀 맞게 굴며 삼촌이라고 부르지도 않을지언정 재민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은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부모로부터 받았어야 할 보살핌과 사랑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심 품었을 테다. 재민은 경언의 외로움을 유치하고 시시콜콜한 장난과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식사로 채워준다.

 

발칙한 사기극의 대상인 점희는 내면 속 깊은 상처로 주변 사람들에게 내어 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기에 가벼운 접촉마저도 꺼린다. 그런 점희가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다정하게 구는 재민보다 경언이었다. 약을 챙겨주고, 친구가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조심스레 안아주고, 체조를 하며 서로의 등을 맞대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이야기해준다. 점희는 재민에게도 끝내 마음을 열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결국 재민과 경언의 사기극은 들통나고 셋은 뿔뿔이 흩어진다. 경언은 점희를 찾아가 자신의 본명을 알려주고 함께 나눈 시간이 행복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자신을 다시 홀로 남겨둔 채 떠나버린 철 없는 삼촌도 찾아간다. 재민은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지만, 경언은 삼촌의 곁을 지킨다.

 

경언은 한국 사회에서 그리는 전형적인 십대 여성의 이미지를 탈피한 캐릭터다. 보호받아야 하는 연약한 대상으로 그리지 않았고 경언과 재민을 동등한 위치로 설정하여 신선한 매력의 버디무비가 탄생했다. 그러나 재민과 경언의 동업이 사기극이었고, 윤리적으로 어긋난 행각을 벌이는 과정이 희화화된 것은 불편하게 다가온다. 또 아버지를 잃고 난 직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삼촌에게 남겨진 보험금마저 빼앗긴 경언이 처한 상황은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경언을 위험하게 방치하고 능구렁이처럼 점희를 속이는 재민에게 감정을 이입하기는 어렵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면 재민의 외로움과 따뜻한 면모가 기억에 남는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형의 엄격함이 걱정하는 마음에 우러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눈물을 삼키고 점희와 경언을 떠나 고된 일을 하면서 숨을 돌리는 틈에 외로움을 삼키는 모습. 그리고 별을 보러 가는 길에 경언이의 춥다는 한 마디에 담요와 핫팩을 가지러 뛰어가고 갓 태어난 경언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흉내를 내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들.

 




누군가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건, 다시는 돌려받을 수 없는 삶의 일부를 나눠주는 거야.” 재민과 경언이 함께 걸어나가는 앞날을 응원하고 기대하게 되는 이유는 두 사람이 같이 지내며 서툴게나마 진심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점희 또한 재민과 경언과 함께 한 행복한 순간들이 다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삶을 이어나갈 용기를 되찾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무엇인가 부족하고 어딘가 아팠던 서로에게 나눠 준 삶의 일부는 씁쓸하고 고독한 인생을 비추는 따스한 시간으로 남아 위로와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장군의 발톱>  한줄 관람평


김정은 | 전쟁과 국가권력으로 처참히 파괴된 순수와 평화

주창민 | 아름답고도 비극적인 우화극의 재현 vs 관심병사 오장군의 의식의 흐름

승문보 | 국가의 폭력에 의해 잠몰하는 개인의 삶

권정민 | 인물, 화면, 이야기, 방식 모두 어색하기만 하다







 <오장군의 발톱>  리뷰 : 국가의 폭력에 의해 침몰하는 개인의 삶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총이 무섭습니다. 총은 우리 편과 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여러 악조건 속에 시민 1000여 명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에 완성된 김재한 감독의 <오장군의 발톱>박조열 극작가의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이며, 73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개봉했다. 물론, <오장군의 발톱>은 연극과 달리 시간 및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이점을 갖고 있지만, 그 이점을 살리지 못한 큰 아쉬움을 낳는다. 하지만,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테러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아직도 휴전 국가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주제의식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오장군의 발톱>이 함의하고 있는 상징성에 주목한다면, 국가의 권력과 폭력에 의해 소모되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장군의 발톱

 

평화로운 시골에서 농사밖에 모르던 오장군은 잘못된 징집 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한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지만 오장군은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피비린내가 나는 전쟁터로 끌려간다. 왜냐하면 국가가 실수하든 안 하든 명령을 내렸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논리적 비약이 묵인되었기 때문이다.오장군은 훈련소에서 노모약혼녀 꽃분이에게 보낼 발톱을 깎는다. 카메라는 발톱을 깎는 그의 모습을 먼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지된 시선으로 전달한다. 이와 같은 시선은 한없이 어두운 공간의 가운데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서 극심한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는 오장군이 의인화된 순수성이 점차 빛을 잃어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

 




오장군의

 

극 중에서 종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린다.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오장군은 꿈을 꾼다. 꿈은 그가 유일하게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심리적인 공간이자 노란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다. 꿈에는 항상 보고 싶은 노모꽃분이가 등장하고, 때로는 애지중지 키우던 소 먹쇠도 나타난다. 이들은 오장군과 더불어 개인의 순수성과 이념이나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자연성을 체현한다. 그러나 오장군의 꿈은 길게 지속하지 않는다. 그가 꿈에 더 깊숙이 빠져들려고 할 때마다 위기 상황이 도래하거나 누군가 그의 앞에 서서 바라본다. 이는 곧바로 꿈과 극단적인 대조를 형성함으로써 오장군의 행동과 모습을 비웃을뿐더러 순수성과 자연성을 짓밟는 국가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오장군의

 

전쟁의 승리에만 혈안이 된 국가에 의해 이용당하던 오장군은 결국 버림받는다. 적의 포로가 되어 고문을 받고 죽음이 그의 곁에 다가온다. 그래도, 그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끝까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가 계속 찾는 건 다름 아닌 환한 빛이었다. 왜냐하면 빛은 그에게 유일한 한 줄기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햇빛 아래에 남은 건 그가 훈련소에서 깎은 발톱뿐이었다. 천에 얼굴이 가려진 채 황량한 들판에 놓인 오장군의 모습은 빛과 완전히 차단되었고, 이는 국가 권력에 의해 무기력하게 희생당하는 개인의 삶이 얼마나 처참하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영화는 끝까지 진정한 평화를 위한 방법을 관객들에게 직접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상징들과 의인화된 추상적 관념들을 곱씹어 생각해본다면 관객 스스로가 이에 대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디스페이스가 관객 여러분과 함께 마련하는 값진 상영회!

개봉 1주년을 맞이하는 작품 중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투표로 선정해주세요.

지난해에 아쉽게 놓친 작품이 있다면, 혹은 스크린을 통해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주저 말고 투표해주세요:-)


자, 2018년 9월의 '인디돌잔치'의 영광은 어떤 작품에게 돌아갈까요? (두근두근)


>> 투표하기 <<




● 후보작

① 안녕, 히어로 (감독 한영희 | 2017년 9월 7일 개봉)

② 시인의 사랑 (감독 김양희 | 2017년 9월 14일 개봉)

③ 여배우는 오늘도 (감독 문소리 | 2017년 9월 14일 개봉)

④ 땐뽀걸즈 (감독 이승문 | 2017년 9월 27일 개봉)

⑤ 분장 (감독 남연우 | 2017년 9월 27일 개봉)

⑥ 다시 태어나도 우리 (감독 문창용, 전진 | 2017년 9월 27일 개봉)


● 투표기간: - 9월 9일(일)

● 발표: 9월 10일(월) 이후

● 상영일정: 9월 27일(목) 저녁 

(관람료: 7,000원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후원회원 무료)


* 투표에 참여해주신 분들 중 5명(1인2매)을 추첨하여 초대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