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젊지만 이제 더 이상 어리지는 않은 

 촛불영화: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 <투 올드 힙합 키드>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8일(토) 오후 1 상영 후

참석 정대건 감독 | 주인공 허클베리피, DJ샤이닝스톤(재즈말), 김기현, 장지훈

진행 인디스페이스 안소현 사무국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거칠지만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인물들, 삶의 중심에 힙합이 뿌리내린 사람들의 세상, 작품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힙합 음악과 진솔한 가사, 숨길 수 없는 청춘의 서럽고 궁핍한 고민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들며 투박하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만들어낸다. 2월 18일 토요일의 한낮, 사회의 음지를 밝혀온 촛불, 영화사 ‘시네마달’을 응원하는 상영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5년 만에 <투 올드 힙합 키드>를 만날 수 있었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사무국장(이하 진행): 이 영화를 어떻게 찍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


정대건 감독(이하 감독): 찍게 된 배경은 다큐멘터리 안에 설명이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체계적으로 영상을 배워본 적은 없었다. 고민이 되는 지점들을 물어보고 싶었다.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상황을 보게 되지 않나. 나에게 그런 준거집단은 어릴 때 같이 힙합하고 놀았던 형들이었던 것 같아 그들과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시작했는데, 중간에 지원과 도움을 받게 되어서 좀 길게 찍었다.


진행: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할지, 아니면 불확실한 꿈을 가져야 할지를 고민하던 스물다섯 살에, 잘 다루지도 못하는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저분들을 찾아간 것이 아닌가.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어려운 게 대상들과의 접점들을 만들어 가는 것인데, 무작정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 이미 너무나 친숙한 사람들처럼 보이고 힙합이 가진 정신인 당당함과 자신감, 그리고 삶에 대한 각자의 고민들을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오픈한다. 카메라가 다가왔을 때 어땠는지, 첫 기억들을 들어보고 싶다.


DJ 샤이닝스톤(재즈말, 이하 샤이닝스톤): 정대건 감독이 처음 찾아왔을 때, 래퍼 ‘지조’와 '투게더 브라더스' EP를 작업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정대건 감독과는 모르는 사이였다. 당시 지조가 힙합 좋아하는, 영화 찍는 친구가 있다며 작업실에 초대해도 되는지 물었다. 그렇게 정대건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UCC 정도라 생각했다.(웃음) 영화가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줬다. 보여주기 싫은 모습들, 살찐 모습까지 있는 그대로.(웃음) 딱히 필터링 할 것도 없었다. 욕도 하고 술도 마시고, 그냥 재밌었다. 아니, 재미있기보다 ‘왜 이 사람은 여기 와서 날 찍을까? 이걸 어디다 쓸까?’ 싶었다.


허클베리피: UCC 정도도 아니고 아예 못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웃음) 정대건 감독이 처음에 잠깐 잠깐 촬영해도 되겠냐 정도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촬영기간이 그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그래서 짜증도 많이 났고 '죽여 버릴까' 생각도 많이 했다.(웃음) 사람들한테 인정도 많이 받은 참 좋은 영화지만, 그 당시에는 귀찮았던 게 사실이다.


장지훈: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도권 안, 부모님이 만들어준 환경에서 옆에 있는 친구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간다. 내게 있어 힙합은 그런 길 위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진짜 ‘나’이다.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시절이다. 과거로 묻어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다시 꺼내는 것도 아쉬운, 아린 상처 같은 느낌이다. 군대 다녀오고 거의 다 잊었을 때쯤, 형들은 유명한 래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과연 이 영화에서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많았다. 그런 생각 때문에 더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작위적으로 행동한 부분도 많이 있었는데, 촬영기간은 결국 스스로의 모습을 정말 객관적으로 보게 된 시간이었다. 지금은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 나중에 이 영화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마지막 청춘의 낙서 같은 의미로. 그렇게 촬영에 임했고 영화를 볼 때마다 굉장히 창피하기도 하다. 더 멋있는 모습을 내 아들에게, 미래의 나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가끔씩 보고 있다.


김기현: 정대건 감독과는 한참 같이 어울려 다니던 시절 이후 연락을 하며 지내지는 않았다. 허클베리피를 통해서 연락이 왔고 찍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이걸 찍으러 포항까지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무슨 생각일까 싶었다. 더 이상 힙합을 하지 않는 친구들 중에서 내가 가장 미련 없는 사람이다. 인터뷰를 하고 촬영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 같은 캐릭터가 필요했겠구나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중은 적지만 중립을 지킨 캐릭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스스로 생각했던 면과 맞닿아 있었고 그래서 재미있게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과정들이 재미있었다.


진행: 이 다큐멘터리의 흥미로운 지점은 힙합 하던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각각의 인생을 살고 있는, 힙합 하던 사람들을 찾아간 것이다. 그들의 고민이 단순히 ‘모 아니면 도’, ‘꿈 아니면 현실’의 구조가 아니라 힙합의 심정으로 하는 고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풍성한 울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힙합은 심장에서 흐르는 것, 태도라는 것이 힙합을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전달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관객: <투 올드 힙합 키드 2>를 만들 의향이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 막연하게 10년이 지나면 또 찍을 수 있지 않겠나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너무나 빨리 간다. 길게 카메라를 들고 찍으려면 어떠한 동력이 있어야 하지 않나. 삼십 대 중반이나 후반이 돼서 또 다른 형태의 고민이 생겼을 때 카메라를 들게 되지 않을까. 이전 작품과 똑같이 사람들을 찾아가 비교하는 것이 아닌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에 테마 같은 것이 생겼다.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카메라를 들고 이야기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더 구체화되어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찍고 싶다.



진행: 이십대 청춘의 고민들이 영화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힙합이라는 정신 자체에 중심을 두고 모인다. 이 영화를 찍고 난 후, 실제 삼십대의 시작에 선 현재의 자신에게 힙합이란 무엇인가? 힙합이 각자의 삶에서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김기현: 잘 모르겠다. 힙합을 했다기보다는 랩하는 걸 좋아했다. 힙합을 하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보니 나름의 정의를 내리는 것 자체가 좀 쑥스럽다. 여전히 소위 힙합 음악이라고 하는 것들을 듣는 게 좋고, 관계된 문화 콘텐츠들을 접하는 게 좋다. 남과 다르고 싶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가 생각한대로 즐거운 것을 계속 하면서 살아가는 게 어떤 부분에선 힙합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지훈: 과거에 힙합은 운명적인 것이었고 청춘이라고 대변할 수 있는 단어였다. 지금의 힙합은 허클베리피나 재즈말 같은 이들이 활동하고 성장하며 완성돼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 특히나 선택을 해야 할 때 고민을 많이 했다. ‘이러다 안 되면 어떡하지?’ 혹은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너무 컸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다. 정말 평범한 삶, 제도권에 편입되어 2, 3년 정도 뒤쳐진 삶을 따라잡으며 살아가는 선택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에 와서 힙합은, 아들에게 내가 이런 것들을 가르쳐줘야 할 시점이 오면 ‘그렇기 때문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빠가 해봐서 안다.’고 얘기해줄 수 있는 의미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허클베리피: 계속 힙합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정의하기가 어렵다.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뀌고 ‘이게 진짜 힙합이다’라고 했던 태도도 시대 상황에 따라서 바뀌니까 요새는 정말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힙합적인 태도로 진심을 드러내는 것이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JJK'가 정대건 감독이 카메라를 잡고 있지만 그것도 힙합이고 제일 힙합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래서 힙합, 태도 같은 말들이 어렸을 때는 크고 멋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솔직하고 당당하고 정직하고 정도를 지키는 것. 어렸을 때는 그런 부분에 굉장히 반했다.


샤이닝스톤: 허클베리피와 같은 생각이다. 계속 하는 일이니까 힙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하다. 스스로에게 너무 평범한 일이다. 다만 정대건 감독의 영화를 통해 랩, 비트 메이킹, 스크래칭, 디제잉 같은 대중적인 형태만이 힙합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투 올드 힙합 키드>는 억울하고 짜증나고 없고 힘들어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투 올드 힙합 키드 2>에 대한 질문을 들으면서 생각을 했는데, 만약 잘된 모습만 보여준다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을 것 같다. 만약 후속편을 만든다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처럼 죽기 직전 우리를 보여주는 것 정도는 해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웃음) 이제는 힙합이라는 말의 의미가 조금 더 라이프 스타일에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감독: 시간이 꽤 지났고 그 사이에 조금 멀어진 기분이다. 최근의 힙합은 성공이 큰 매력이 되어서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런 것들이 내면에서 상치될 때가 있다. 


관객: 요즘 힙합이 대중화되면서 랩을 잘하면 TV에 나오고 뜰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작품에서 래퍼 지조의 경우도 ‘오버’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을 반대하는 의견들도 있다. 오버로 가는 것이 멋있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상업적인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허클베리피: 우리가 아는 수많은 래퍼들, 흔히 멋있다고 말하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도 상업적인 래퍼다. ‘닥터 드레’(Dr. Dre)가 키워서 나왔다. ‘TDE’라는 레이블은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이 아니다. ‘투팍’(2pac), ‘스눕독’(Snoop Dogg)도 그러하다. 단순히 TV에 나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Fake’라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미디어가 힙합을 조종하는 태도에 대해 비판을 해야지, TV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열심히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멋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일단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한 적이 있고, 만약 ‘라디오 스타’에서 불러준다면 무조건 나갈 것이다. 너무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고 가서 웃길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웃음) 할 필요 없는 개인기를 하진 않겠지만, 가서 내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자신이 있다. ‘쇼미더머니’로 위시되는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 이유는 서바이벌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교육이 우리 사회에 경쟁이라는 것을 세뇌시켜서 망쳐놓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든 1등이 아니면 다 패배자라고 규정지어버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많은 래퍼들이 나갔고 개인적으로 다들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프로그램에 대해 큰 악감정은 없다. 다만 미디어에서 조장하는 성공 루트가 너무 뻔하고 똑같다. 그걸 따라가는 사람이 나쁜 게 아니고, 조장하는 사회 기득권이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간 래퍼들을 절대 욕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 이러한 소신을 가지고 있어도 벌어먹고 살기 때문에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루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누군가는 책임감에 너무 목매달고 사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사는 것이 개인적으로 재미있다. 분명히 적대심이나 거부감은 아니다.



진행: 삼십대, 자기 일에 있어서든 변화의 지점에 있어서든 살아내며 무르익기 위해 고민하는 단계 속에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어떻게 지낼 것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김기현: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고민이 많을 텐데, 영화에서 꾸준히 하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 그래야 후회가 없다.’이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오진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아직 밥도 못 벌어먹고 살았을 것이다. 다른 청춘들의 이야기가 본인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이 영화에 출연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좋을 것 같다. 모든 청춘을 응원한다.(웃음)


장지훈: 100명이 있으면, 모두가 원하는 의자가 세 개 정도고 97개는 평범한 의자인 것 같다. 97개 중 하나의 의자에 앉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산다. 스스로 그 세 자리에 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나중에 또 이러한 자리가 마련되면 자신 있게 그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기현: 여러분, 의자왕에게 박수 한 번 주시죠.(웃음)


허클베리피: <투 올드 힙합 키드>는 힙합 영화가 아니고 힙합을 소재로 한 청춘 영화다. 작년 6월에 발매한 ‘점’이라는 앨범을 만들게 된 계기 중에 하나가 이 영화였다. 어렸을 때는 같이 랩하던 친구들이 중간에 포기하면 ‘100%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열정이 부족한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 할 수 있었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오만했다는 것을 요 몇 년 사이에 깨달았다. 각자의 상황과 시간, 사건을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상태로 이야기 했던 것이다. 직업의 특수함이 그 사람을 멋있게 만드는 것이지 성공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만에 <투 올드 힙합 키드>로 친구들을 만나서 너무 좋다.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대건 감독에게 감사하다.


샤이닝스톤: 프로듀싱 DJ가 힙합씬에서 주인공이거나 반짝반짝한 느낌은 아니다. 일이 잘 되면 일이 잘 되는구나, 일이 잘 안되면 일이 잘 안 되는구나, 그냥 정말 평범하게 느끼고 있다. 음악을 하고 있어서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이 얼마 없다. 스스로의 몸에 잘 맞는 직업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여러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Peace Out.


감독: 그래서 요점은, <투 올드 힙합 키드 2>를 찍으면 출연할 것인가?(웃음)


허클베리피: 당연하다.


김기현: 오늘 이 자리는 시네마달을 응원하는 자리다. 역경을 잘 이겨내고 좋은 영화 많이 배급해주었으면 한다.



스토리펀딩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라' 후원하기 >>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3011


<투 올드 힙합 키드>에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 시선은 영화를 연출한 감독의 것이기도 하고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의 것이기도 하다. 힙합을 계속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도, 다른 일을 찾아 나선 이들도 모두 ‘힙합’이라는 중심에 모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힙합을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힙합은 자연스럽게 작품 너머, 아직 젊지만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청춘들에게도 손을 뻗는다. 끝나지 않을 고민을 지속할 청춘들, 그리고 그 시기를 지나간 사람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작품이 내민 손을 맞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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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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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찬란히 그늘진  촛불영화: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 <그림자들의 섬>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9일(일) 오후 4 상영 후

참석 김정근 감독, 은수미 전 의원

진행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배를 띄우며 죽은 동료를 보내는 마음으로 인사를 한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현장에서 평범한 꿈을 가졌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고, 또 무엇을 바꿨는지, 영화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획전 '촛불영화: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에서 <그림자들의 섬>을 만날 수 있었다. 김정근 감독과 은수미 전 의원, 그리고 진행으로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이 함께 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이하 김덕진): 우선 기획전을 마련해준 인디스페이스에 감사 인사를 드리면서 이야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정근 감독님과 은수미 전 국회의원님 모시겠습니다. 


김정근 감독(이하 김정근): <그림자들의 섬> 만든 김정근입니다. 반갑습니다.


은수미 전 의원(이하 은수미): 은수미입니다. 반갑습니다. 


김덕진: 요즘 두 분 어떻게 지내나요? 은수미 의원님은 굉장히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은수미: 저는 광장에 가서 김덕진 사무국장님을 자주 뵙죠. 사회 보시잖아요.(웃음) 멀리서 자주 뵙고 있습니다.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낙선하고 뭐하고 사냐는 질문인데요, 전국적으로 강의를 많이 다니고 있어요. 


김덕진: 감독님은 2016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내지 않았나요? 많은 찬사도 받았고요. 어떻게 지내세요?


김정근: 부산에서 촛불들을 기록하고 있고, 차기작이 지하철 관련 작품이어서 지하철 노조의 해고나 징계 상황을 촬영 중에 있습니다.


김덕진: 계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는군요.


은수미: 저도 질문해도 될까요?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게 힘든 일인데, 계속 하는 이유가 있나요?


김정근: 원래 배나 철도 같은 기계에 관심이 있어요. 또 거대하고 경이로운 구조물을 만드는 게 작은 사람이라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기계와 사람의 대결구도, 이런 관계가 재미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를 찍을 것 같아요.


김덕진: 한진중공업이 현재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받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많은 찬사를 받은 이유는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은수미 의원님은 영화 어떻게 보셨나요?


은수미: 처음 보고 너무 많이 울어서 다시는 안 봐야지 했어요. 여러분들도 많이 우신 것 같은데.(웃음) 조선업 노동자 20만 명 중 13만 명이 하청업체 노동자고, 대다수가 최근 대량해고 대상자잖아요.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기도 했고, 또 조선소에서 해고된 청년이 생활고 때문에 막걸리를 훔쳤다고 기사도 났죠. 그 아픔과 절망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 영화를 두 번은 안 봐야지 했는데, 막상 보니 잘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희망을 꿈 꿀 권리가 있으니까요. 또 울기는 했지만 정말 좋았습니다.



김덕진: 영화에서 진심이 느껴져 집중해서 봤습니다. 흥미로웠던 장면은 노동조합 위원장 취임식 장면입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도 아니고 지회장 취임식을 저렇게 크게 하나 싶었어요. 요즘도 그러나요?


김정근: 전국금속노동조합 단위가 워낙 커요. 당시 공장에 거의 3,000명 정도 있었고 그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일종의 대장이어서 좀 성대하게 보여주고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은 복수노조 상태고 조합원이 줄어 200명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크게 하지는 않습니다.


김덕진: 영화에 예전의 기록들이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 입수를 했나요?


김정근: 미디어 활동가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당시 노조가 힘이 있는 시기여서 가능했던 일이긴 하지만, 한진중공업 노조가 기록을 워낙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이라 부산에서 활동하는 독립다큐멘터리 촬영하는 분에게 기록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걸 입수해서 재구성을 한 거예요. 그 기록들이 영화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덕진: 많은 자료를 봤을 테고 직접 찍은 것도 많았을 텐데, 이 영화는 100분을 넘지 않는다는 미덕이 있죠. 딱 98분으로 마치는 미덕.(웃음) 그렇다는 건 찍은 장면들을 굉장히 많이 들어냈다는 거잖아요. 그게 쉽지 않은 건데, 대단한 것 같아요.


김정근: 제가 이 영화를 5년을 찍었고 한진 민주노조는 30년의 역사가 있어요. 이 영화는 쌓인 두께나 깊이보다는 너비가 중요한 영화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대로 현장을 다룬 장면을 덜어내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는데, 다시 보니 좋은 선택이었다고 느껴지네요.


김덕진: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오랜만에 정말 좋은 다큐멘터리가 나왔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상영은 블랙리스트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감독님은 혹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나요?


김정근: 리스트에 제가 없어서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가시방석입니다.(웃음) 그리고 블랙리스트 사안에 대해서 몇몇 분들은 놀랍고 충격적이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저는 별로 놀라지도, 충격 받지도 않았어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보통 제작 지원을 받는데, 잘 되지 않는 사례를 계속 겪다보면 은연중에 알게 돼요. 논리적으로 이해한다기보다는, 짐작컨대 그런 게 있구나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놀랍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진짜 무서웠던 건 그게 내면화되면서 자체검열을 하게 되는 거예요. 외부 지원을 생각하면서 영화 내 사회적인 발언을 줄이고 중립인 것처럼 바꾸게 되는 것이 진짜 무서운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덕진: 그 리스트가 굉장히 허술해요. 특정 인물이나 사안을 갖다 놓고 만든 리스트인데, 어느 정부든 그런 게 있을 거라는 짐작은 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충격이었던 게 문건으로 실존하고,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배제시켰다는 거였죠. 


은수미: 19대 국회에서 그래도 꽤 열심히 했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가짜 정치를 한 건가 싶더라고요. 나는 왜 그 중요한 최순실을 몰랐을까,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질 때까지 나는 뭘 했나 자괴감이 컸어요. 앞으로는 진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덕진: 영화를 보면 김진숙 위원님이 전혀 술을 못하는데, 박근혜 당선된 날 맥주 두 병 마셨다고 하잖아요. 그 날은 잊을 수가 없어요.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당시에 저는 대학로에서 밀양, 강정, 쌍용, 용산 농성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거의 3일에 한 번 추모식을 했어요. 박근혜가 당선된 후에 노동자 분들이 계속 목숨을 끊었어요. 대통령이 바뀌는 게 노동자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목숨을 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김정근 감독님은 그 때 영화 작업 중이었기 때문에 최강서 열사도 찍었을 텐데, 보다 가까이에서 어떻게 느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정근: 강서 형이 돌아가신 그 시점의 기억이 많지는 않아요. 솔직히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영안실의 공기, 시체를 촬영하던 기억을 떠올리기가 힘들어요. 영화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라 영화 안팎이 구분이 안 됐어요. 김주익, 박재규 열사 분들은 면이 없는데, 강서 형은 계속 함께 술 마시며 농담을 주고받던 사이였어요. 그런 사람이 한 순간 그렇게 되고 나니까 개인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분향소를 꾸린 분들이 느끼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 같고요. 대답을 하기가 곤란스럽네요.



김덕진: 최근의 퇴진정국이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공개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박근혜 정권이 4년 동안 시민들에게 준 수많은 절망과 고통이 누적되었고, 그게 정유라의 부정입학 등을 계기로 분출 된 거죠. 그리고 이걸 가장 먼저 짐작한 사람들이 투쟁 노동자에요. 영화에서 김진숙 위원장님이 자신은 최강서 열사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 지를 짐작한다고 하잖아요. 이미 한진 자본이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었고, 강서도 알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본, 재벌은 정권과 너무 밀접하게 얽혀 있어요. 최근 촛불정국에서 이런 문제가 개혁과제로 많이 거론되는데, 은수미 의원님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정부에서는 재벌개혁이 가능할까요?


은수미: 과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 일했던 분들 중에 제가 아는 선배님이 몇 분 있어요. 가끔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서 물어보죠. 왜 그랬냐고. 예를 들면 KTX 승무원 문제, 혹은 왜 삼성에게 그렇게 관대하냐고 질문을 하면 여러 대답이 나와요. 그 대답을 들어보면 당시 개혁세력이 국정을 주도하는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잘 몰랐고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두 가지가 달라졌어요. 첫째로 역량과 능력을 가진 개혁세력들이 꽤 생겨난 것 같아요. 어떤 사안에 대해서 예산까지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본 거예요. 결단 직전의 순간까지 만들어놓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난 거죠. 두 번째는 촛불입니다. 정말 달라졌어요. 대격변의 시기입니다. 사회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지경까지 왔기 때문에, 너무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의식을 갖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그런데 시민들이 명령을 하고, 촛불을 들고, 내가 나를 대변한다고 나선 거죠. 이건 굉장히 큰 변화에요. 다음에 어떤 정권이 들어오든 시민 의사를 반영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저는 좀 다른 설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덕진: 사실 광장에 있는 분들은 의문도 가지거든요. 지금이야 촛불 들고 새로운 시대 얘기를 하지만, 막상 대선 끝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은수미: ‘광장의 조울증’이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광장에 있을 때는 세상이 바뀔 것 같다가도 다시 출근하면 절망스러워져요.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요. 바뀌어봤자 틈새와 여지 정도, 악어의 입을 여는 정도죠. 하지만 이젠 시민들이 추종을 하고 기대를 하는 위치에 있지 않아요. 화살을 쏘는 건 우리에요. 계획을 세워 낼만한 힘이 이제 좀 쌓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정치인들이 시간을 벌어들이면 광장의 시민들이 일상이나 현장에서 그 변화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김덕진: 부산의 광장에도 변화의 희망 같은 게 느껴지나요?


김정근: 부산은 오랜 기간 동안 여당이 독점하고 있던 곳인데, 지난 총선부터는 대안을 고민하는 분들이 생긴 것 같아요. 최근 촛불집회에도 꽤 많은 분들이 와요. 달라지는 게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사실 여전히 보수적인 기운들이 있죠.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저울에 올려놓고 최소한 재어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봅니다. 


김덕진: 탄핵 이후로 대선 등 방향이 갈라지게 되면서 광장에서 하나로 모였던 사람들이 흩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함이 있어요. 


김정근: 최근에 문재인 후보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는데, 차별금지법 발언을 들어보면 사실은 후퇴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작은 문제들을 짚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부산은 서울처럼 다양한 의견이 올라오지는 못하는 공간이에요. 부산에서 광장에 가면 민주당 깃발이 쭉 있어요. 그런 걸 보면 저는 위험하다는 생각도 가끔 들어요. 그 안에 분명 수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그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가면서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대통령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김덕진: 누가 되든 박근혜를 잇는 사람이 아닐 거라는 믿음과 바람이 있어요. 후보들이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면 어떨까 싶어요. 지금까지의 소신으로 당당하게 해도 되는데, 자꾸 정치인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잖아요. 이제는 시민들의 수준과 힘을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갈게요. 보통 독립다큐멘터리와 다르게 특이한 점이 있어요. 바로 음악인데,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이 완곡으로 나와요. 어떻게 이 노래를 삽입하게 된 건가요?


김정근: 노래를 가만히 들으면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라는 가사가 나와요. 노무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 시절을 참여정부에 와 기억을 못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뉘앙스로 넣은 노래에요. 노동자의 편에 서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현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늘 탄압과 진압의 대상이었던 기억들을 불러오고 싶었어요. 사랑 노래이긴 한데 묘한 아이러니가 있을 것 같아서 배치를 했습니다.


김덕진: 마지막에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윤영배의 ‘위험한 세계’도 나와요. 


김정근: 뮤지션 윤영배 씨는 같이 술 마시며 영화 잘 봤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시네마달 등의 얘기도 했고요. 독립다큐멘터리들이 상영되고 양산되는 게 어려운 상황에 대해 인디 뮤지션으로서 공감되고 아쉽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게 맞닿아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덕진: 이 영화가 소중한 이유는 노조의 아쉬움을 계속해서 얘기하기 때문이에요. 김진숙 위원님이 투쟁의 성과가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하는데 집행부 소수의 것이 되어버렸고 결국 오만해졌다는 얘기를 하죠. 


은수미: 영화에서 우리가 배불렀다는 말이 나오는데, 저는 배 좀 부르면 안 되나,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에요. 배 좀 불러서 뭐가 나빠요.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위험한 현장에서 목숨 걸고 삼사십년 열심히 일해서 일억 버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불평등이 심화되는 문제의 책임을 노조에게 떠넘기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한국은 독특한 법을 하나 가지고 있어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9조에 따르면 노조는 근로자의 이익이 아니라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서만 교섭할 수 있어요. 전무후무한 법이에요. 예를 들어 정규직 노조가 하청이나 사업장이 다른 근로자를 위해서 파업하면 불법이에요. 우리나라는 이기주의 법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점점 불평등이 심해지다 보니 이 오랜 관행을 넘기 위한 노조의 노력도 있었지만, 결국은 실패했죠.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굉장히 취약합니다. 실제로 조합원의 전체 조직률이 굉장히 낮아요. 금속노조 산하의 조합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이 3퍼센트를 넘지 않습니다. 말이 안돼요. 모두가 배부르고, 하루 8시간, 일주일에 5일 일해 중산층으로 살 수 있는 것을 희망이라고 얘기해야 하나요. 기본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 정도는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다면 각자 뭘 해야 하나 생각해요. 그래서 노조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김덕진: 일부 노조가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면 또 대서특필되죠.


은수미: 물론 노조도 부도덕하면 안 되지만, OECD 중 우리나라는 산재, 자살률, 그리고 사기범죄 1위에요. 저는 삼성 같은 경우는 사기집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구속이 된 것이고 롯데나 현대 할 것 없이 굉장히 위가 많이 썩어있어요. 그러면 아래에서는 당연히 나 하나쯤이야, 먹기 살기도 힘든데, 이렇게 생각하게 되죠. 기업의 부도덕함이 세계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해요.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새로운 지표를 만들고 시도를 해봐야 되겠죠. 시민, 비정규직과 함께 하는 다른 시도가 정치에서든 노조에서든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덕진: 김진숙 위원님도 그 때 하청 문제 해결 못 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영화에서 해요. 예전에 현대자동차 노동 현장에서 정규직은 이름표를 가로로, 비정규직은 세로로 다는 방식으로 구분을 지었어요. 노동자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구도 속으로 빨려들게 만드는 거죠. 그래야 기업에서도 통제가 쉬우니까요. 이런 걸 깨고 변화시키려는 고민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촛불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얘기하는 자리에서 왜 성과연봉제 얘기를 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그게 이해가 가면서도 답답하죠. 박근혜 퇴진 후 뭐 할지 얘기 하자는 건데. 퇴진 이후를 얘기하지 않으면 결국 또 우리의 삶이 어렵고 처참하지는 거잖아요.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순수하게 퇴진 시위를 나온 건데 왜 자꾸 운동권들이 이슈를 가져오냐고 하죠.


은수미: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와는 엄청 달라요. 당시 비정규직 분들과 같이 시위에 나갔는데, 아예 시민 분들이 깃발을 내리라고 했어요. 광우병과 관련 없는 시위는 아웃이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모든 깃발이 허용되잖아요. 물론 지금도 목소리를 너무 키우지는 말라는 식이기는 하지만요. 서로를 계속 짓밟는 8년을 겪었지만, 우리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자신의 목소리를 얘기 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긴 것 같고요.


김덕진: 맞아요. 특히 차별 없고 평등한 광장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연사가 성차별적 발언을 하면 즉각 사과하고 조취를 취하는 모습은 사실 대규모 집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에요. 즉각 반영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건 많은 변화가 있다는 뜻이에요. 박근혜 이후, 정치도 시민을 믿고 시민도 정치를 계속 견인하고 힘을 실어주는 관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제 촛불집회에서 두 분의 발언이 있었는데, 이재용이 구속돼서 너무 좋은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자와 최경희가 구속돼서 너무 좋은 이화여대 학생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되게 비극이죠. 자신의 사장과 총장이 구속돼서 신난다는 것이요. 시네마달이라는 배급사 하나를 살린다고 해서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고, 시네마달이 망한다고 해서 나라가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네마달이 없어지면 <그림자들의 섬>과 같은 영화를 이런 공간에서 볼 수 없는 거죠. 이런 부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문화향유의 권리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고 다음에서 진행 중인 스토리펀딩에도 관심 가져주세요. 


김정근: 시네마달 같은 배급사가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없어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지지해주시고 함께해주시고 후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수미: 저는 다양한 의견이 세상을 살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국회에 있을 때 인권이나 존엄 이야기를 하면 새누리당 의원들로부터 월북하라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들었어요. 오직 하나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저는 국회에서 경험했습니다. 여러분도 겪어봤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색, 꿈, 욕망이 사라지는 공포를 박근혜 정권에서 경험했다고 보고요. 그런 점에서 시네마달 같은 배급사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지지하고 누구는 반대할 수 있지만,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있기를 원해요. 살아있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를 바꾼다고 생각해요. 시네마달을 후원하고, 스토리펀딩도 홍보하고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힘내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이길 겁니다. 정말 소중한 한 걸음을 하고 있어요. 이 힘든 사회에서 기적과도 같죠. 항상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덕진: 이렇게 좋은 영화를 제대로 느끼면서 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서울이 크다고 해도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의 수가 몹시 적어요. 이런 공간 또한 지켜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현장에서 카메라를 든 감독들이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동자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왜곡되지 않고 전해지기 위해서는 찍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하고, 그 작품들을 제대로 상영할 수 있는 공간과 배급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네마달 후원과 홍보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오늘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스토리펀딩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라' 후원하기 >>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3011


그림자처럼 지워지고 가려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자본의 그늘 속에서 얼마나 치열하고 절박한 역사를 만들어왔는지 그 투쟁의 역사에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동료가 죽어도 또 ‘내가 아닌 누군가’가 죽었구나 하며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것. 그 죽음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다는 마음. 그들은 그 마음에서 머무르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30여년의 시간동안 반성하고 연대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림자들의 섬>은 그들이 살아온 방식을 자극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인터뷰 형식을 통해 담담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현실은 여전히 잔혹하지만 결코 무기력하지 않게, 진득하게 응원하고 기록한다. 누구든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현 시점에서 노동과 인권의 가치는 더 이상 가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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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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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담을 떠나보내며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재꽃>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1일(토) 오후 7 상영 후

참석 박석영 감독 | 배우 장해금, 김태희, 박명훈, 정은경

진행 김민형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영화 <재꽃>은 인물들의 관계가 부각된 작품이다. 우리는 우연적이기도 하지만 때론 필연적인 관계들 속에서 항상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 나의 입장을 내세우기도 하고 상대방을 고려해 속으로 삼키기도 하면서 관계는 변하기 마련이지만, 어쨌든 관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삶이다. 그런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려는 박석영 감독과 직접 인물이 되어 상황에 뛰어든 배우들이 함께한 대화를 소개하려 한다.



김민형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이하 진행): 박석영 감독의 작품은 3부작으로 이어진다. <들꽃>(2014)과 <스틸플라워>(2015) 그리고 <재꽃>인데, 차례로 다 본 분들의 감상과 <재꽃>만 관람한 분들의 감상이 좀 다를 것 같다. 전작들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들꽃>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처한 현실에서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그러지 못하는 인간의 이야기 중심으로 진행되고 <스틸 플라워>에서는 조금씩 벗어나기도 한다. 주인공 하담이 탭댄스를 배우면서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 조금씩 선택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재꽃>에서의 하담은 비교적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다른 인물들은 여전히 선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개인적으로 전작들에 비해 <재꽃>은 그동안 감독님이 주목해 온 하담의 이야기에서 많이 벗어난 듯 보인다. 하담의 이야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하담을 벗어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고자한 배경을 묻고 싶다.


박석영 감독(이하 박석영): 전작 <들꽃>은 거리에 있는 소년, 소녀의 이야기였고 <스틸 플라워>는 <들꽃>에 나온 한 아이의 이야기였다. 하담이라는 캐릭터에 가장 마음이 갔기 때문에 다음 영화에서 단독으로 다뤘다. <스틸 플라워>에서 하담이 밤에 촛불을 바라보는데, <재꽃>은 바로 그 장면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어린 날을 떠올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꽃>에서 ‘하담’과 ‘해별’이 다른 인물로 등장하긴 하나 나는 해별이 하담의 어린 시절이라 생각했다. 물론 반드시 그렇게 볼 이유는 없지만, 자신의 과거 속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힘들었던, 아버지를 찾아다니던 본인을 만난다면 그에게 탭댄스를 가르치거나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싶어 했을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던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고 싶어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재꽃>을 찍었다. 이 영화에서 하담과 해별은 각자 독립된 인격이라기보다 서로 연결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이 연기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부분이라 고민을 많이 했지만,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 해냈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상대 캐릭터를 알아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하담의 기억에 관한 영화이다. 주변인들로부터 격리된 인물의 기억은 타인이 이해할 수 없으며 단편적이다. 하담은 스스로 과거와 화해하고 싶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영화의 결말은 두 사람이 떠나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를 세상과 화해하고 다시 나아가는, 떠나가는 것일 거다.


진행: <재꽃>만 본 관객들은 하담과 해별이 관계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영화가 판타지처럼 진행된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선 파국의 상황을 맞이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박석영: 이 영화는 <들꽃>을 찍으면서부터 생각한 이야기다. 특히 <재꽃>에서 하담이 엄마를 떠올리며 독백하는 장면, 엄마가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으며 본인은 이제 버려졌다는 사실을 자각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장면은 정하담 배우에게 <들꽃>의 오디션에서 주었던 대사다. <들꽃>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하담이란 캐릭터에는 이미 어떤 사연이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하담의 이야기로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담이라는 캐릭터가 실제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와 함께 그 캐릭터를 만들어 갈 때 실제보다 더 실제처럼 만나게 되기 때문에 3부작을 통해 꾸준히 하담의 이야기를 쫓았던 것 같다. <재꽃> 마지막에 하담과 해별을 비추는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나. 그리고 그들이 떠나갈 때 카메라가 더 이상 그들을 쫓아가지 않는다. 영화에서 만났던 하담이라는 인물을 이제는 영화 안에서 놓아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한 인물의 암울한 기억을 쫓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매우 가학적이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감독으로서 매우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진행: <재꽃>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들꽃>에서도 그렇다. 안전한 곳에서 살기위해 돈이 필요한 인물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스틸 플라워>도 마찬가지다. 하담은 탭슈즈를 구입하기 위해 부족한 돈을 놔두고 물건을 그냥 가져가기도 하는데, 이는 곧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지불해야하는 대가가 있다는 것이다. <재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돈을 필요로 한다. ‘철기’와 ‘명호’는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 돈에 얽히고설킨 관계 혹은 돈과 욕망에 대해 고려한 지점이 있는지?


박석영: 원래부터 그런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둔 건 아니다. <들꽃> 이전에 고려하던 작품이 있었는데 도중에 그만두고 ‘비행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는 언젠가 금요일 밤의 홍대의 놀이터의 사건이다. 그곳에서 영화 속 하담 또래의 아이가 여기저기 널린 빈병을 바닥에 던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취한 사람들은 처음엔 놀라다가 점점 환호하기 시작했다. ‘한 병 더, 한 병 더’를 외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마시던 맥주병을 줬고 그는 받아 던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그날의 정서적 충격으로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 타인에 의해 떠돌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때의 기억 속 그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까지 이어 온 것이다. 앞으로도 그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찍을지는 모르지만 여태까지는 그랬다. 


진행: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개인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되는데, 감독님이나 배우님들이 연기에 대해 세운 원칙들이 있을 것 같다. 인물들이 감정을 내보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배우님들 스스로 고려한 부분, 감독님이 디렉팅이 궁금하다.


박석영: 솔직히 연기 디렉팅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배우의 표현을 존중하는 편이기도 하고. 배우가 감독만큼이나 특별한 위치에 있는 역할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연기에 대해서 디렉팅을 하지 않았다. 배우의 표현에 대해 디렉팅을 하는 순간부터 배우와 감독은 어쩌면 서로의 일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가장 어린 배우부터 연륜이 많은 배우까지 나로서는 전혀 고민이 없었다. 있다면 단지 컷 안의 위치 설정 같은 부분이었다. 실제로 철기 역의 김태희 배우나 명호 역의 박명훈 배우는 주류 상사에 가서 실제로 일을 했다. 영화에 나오는 집은 우리가 직접 폐가를 고쳐서 만든 것이다. 한 달 동안 같이 그곳에서 지냈다. 이런 작업 환경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배우들을 만난 것은 나의 복이 아닐까 한다. 이 점에 대해선 배우들 각자가 할 말이 더 많을 것 같다.


진행: 해별 역을 맡은 해금 배우는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장해금 배우(이하 장해금): 감정연기 할 때 감정이 잘 안 잡혀서, 쓸데없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콩이 생각이 나서 어려웠다. 그래도 잘 마쳐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하담 언니와 탭댄스를 추는 장면에서 언니가 맨발로 나에게 탭슈즈를 신겨주려고 할 때 나는 그 영화 속에서 걱정했던 게 아니라 실제로 언니가 걱정되어서 내 신발을 건넨 건데, 감독님이 칭찬해 주셔서 좋았다.


박석영: 그 장면은 내가 디렉팅 한 게 아니다. 해금 배우가 스스로 느낀 대로 한 것이다. 정적인 연출이 많아서 모두 짜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한데,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장면이 많다. 잠자리를 가지고 노는 장면도 그렇다.


진행: 김태희 배우에게 질문하겠다. 철기는 진경과 명호 사이에서 낀 역할이다. 그 관계 안에서 연기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감정이입에 있어서 특별히 고려한 지점이 있는지 묻고 싶다.


김태희 배우(이하 김태희): 철기는 되게 애매모호한 성격이다. 속마음을 잘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할 말이 없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다. 본인이 말을 내뱉음으로써 주변이 받을 영향을 고민하는 것이다. 말을 삼킨다고 하지 않나. 그런 부분을 연기할 때 특히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최대한 현명하기 위해서 말을 아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낮추고 죽여야 한다. 그런 입장에서 연기를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진행: 박명훈 배우에게 질문하겠다. 영화에서 명호는 꽃밭을 언급하는 해별의 독백을 몰래 지켜보고는 ‘꽃밭은 무슨...’이라는 말을 남긴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바로 꽃밭을 만들기 위해 취한 채로 잡초 밭에 뛰어든다. 매우 모순적인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별의 등장이 다소 당황스럽고 불편하지만 내심 자기의 딸이길 바라기도 하는 그런 마음이 표현하기에 복잡했을 것 같다.


박명훈 배우(이하 박명훈): 어떤 일을 맞닥뜨렸을 때 항상 여러 가지 마음이 들지 않나. 특히 몰랐던 자신의 딸을 만났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본인이 상상하지도 못한 운명이 다가온 것이기 때문에 ‘꽃밭은 무슨...’이라고 말을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받아들여 연기했다.


진행: 정은경 배우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드리려 한다. 영화에서 아들 철기와 말을 아끼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나. 하지만 후반부 파국의 상황에서 중재자 혹은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정은경 배우(이하 정은경): 연기하기 전에는 고민을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는 고민을 하지 않는다. 시작 전에는 고민을 감독님과 상의하긴 한다. 사실 나는 영화를 많이 안 해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감독님도 확실히 자기의 것을 이야기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더욱 마음 편하게 자유롭게 작품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뭘 해도 감독님이 틀렸다 하지는 않겠구나 생각을 했다.(웃음)


진행: 영화의 마지막이 인상적이다. 모든 인물들이 모여서 파국의 상황이 전개되는데 이 장면을 구상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박석영: 인간으로서 정하담 배우를 믿는다. 3년이나 함께 작품을 해왔으니까. 마무리 대사는 하담 배우에게 구상한 것을 말해주면서 ‘장면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하담은 여기에서 모두를 맞닥뜨려야 한다. 하담이 한 마디를 남기고 갔으면 한다.’라고 전달했을 때 하담 배우가 직접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충분했다. 내가 만든 장면이 아니다. 그런 배우와 작업할 수 있는 감독이라 기쁘고 하담 배우에게 고맙다.



관객: 질문을 두 가지 드리겠다. 감독님의 전작을 모두 봤는데 <들꽃>과 <스틸 플라워>는 거칠고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듯한 인상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반면 <재꽃>은 전작들과 정반대인 듯하다. 정적이고 인물에게 위로를 건네는 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다르게 연출을 한 배경이 궁금하다. 그리고 장해금 배우로부터 연기에서 어려웠던 점을 더 듣고 싶다.


장해금: 어려웠던 건 딱히 없었던 것 같은데, 밤샘촬영 시 기다릴 때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질 때가 어려웠던 것 같다. (관객 웃음)


박석영: 나름 촬영환경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으나 아역배우와 함께 작업을 진행하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잘 버텨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세 영화는 본질적으로 같은 씨앗을 가진 영화이고 그 속엔 각기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리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피어난 것이다. <들꽃>은 전쟁터와 같은 현실에 던져진 인물들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에 마치 내가 전쟁기록자가 된 듯한 마음으로 찍었다. <스틸 플라워>의 경우는 우리는 저 인물을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따라갈 뿐이라는 생각, 혹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찍었다. 그렇기 때문에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윤리적인 고민이 있었던 작품이다. 이번 영화가 정적으로 느껴졌다고 하셨는데, 어쩌면 이 영화는 전작들에 비해 더 가혹한 작품일 수도 있다. 어린 소녀가 등장하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나는 훨씬 가슴 아픈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세 작품들이 다르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모두가 같은 자리에서 붙어 난 꽃들이라 생각한다. 


관객: 세 작품들 중 <재꽃>만 봤다. 이전의 영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만큼 한 작품 안에 완전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하다. 장면을 완성하기까지 배우들의 역할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서로가 얽히며 싸우는데,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궁금하다. 


진행: 덧붙이자면 그 장면이 참 멋있게 찍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연극처럼 연출됐는데, 구도나 구성을 짜기 위해 고려한 것이 있는지?


박석영: 자리를 잡지 않았다곤 할 수 없지만, 일일이 그 순간을 지시하기는 상당히 까다롭고 또 지치는 일이지 않나.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설정을 했으나 워낙 배우들이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몇 번 해보다 가장 좋은 것을 선택했다. 대부분 배우들 스스로 찾아낸 것이다. 임기응변도 많았고. 영화는 협업인 것 같다.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담아내는 것. 다들 나보다 훌륭하고 낫다. 


김태희: 지금까지도 내가 제대로 철기라는 캐릭터를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현장에서 그 장면을 촬영할 때도 ‘제가 한번 해볼게요’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장면의 상황이 논리적인 것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그냥 해볼 수밖에 없었다. 동선을 철저히 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버둥 쳐야 나올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정은경: 맞다. 미리 연습하고 설정하기보다 각자 몰입한 감정에 따라 움직인 것이었다. 사실 그날 엄청 추워서 빨리 찍고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웃음)


관객: <들꽃>은 못 봤고 <스틸 플라워>만 봤다. <재꽃>과 <스틸 플라워>는 모두 오프닝 장면이 캐리어를 끄는 여성이다. 특정한 이미지를 부여한 것인지 궁금하다.


박석영: <스틸 플라워>에서는 하담이 가출했기 때문이었고 <재꽃>의 해별은 과거에 가출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하담의 어린 시절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설정한 장면이다. (해금 배우에게)어땠나?


장해금: 음, 잘 모르겠다. 엄마한테 버려졌으니까 캐리어에 짐을 싸 아빠를 찾으러 가는 아이의 이야기인가보다 생각했다. (관객 웃음)


박석영: 특별히 상징적인 의미를 둔 것은 아니다.


관객: 달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달리는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해별은 처음에 달리는 것을 싫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담과 함께 달리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또 마지막엔 여전히 달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박석영: <재꽃>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달리는 장면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해별이 운동장에서 혼자 달리는 것이다. (해금 배우에게)어땠나?


장해금: 영화 속 해별은 하담 언니랑 자주 뛴다. 특히 감독님이 말한 그 장면에선 운동장에 하얀 원이 있었다. 원은 끝나는 지점이 없다. 그래서 하담 언니를 계속 생각하면서 끝없이 달렸던 것 같다. 옆에, 뒤에, 앞에 언니가 있는 것처럼, 밖으로 나가는 선 없이.


박석영: 디렉팅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연기하는지 몰랐다. 훌륭한 배우다. 하담 배우가 간절히 뛰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자신의 어린 날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하담이 해별을 잃어버린 후 그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는 영화인 듯하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그토록 뛰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었다. 내가 그런 장면을 마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스스로 마주하면서 더 나아지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배우들이 달리는 장면을 찍느라 많이 고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박명훈 배우님께 질문이 있다.(웃음) 후반부에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사나운 모습이 되게 인상적이었는데, 어떻게 준비했는지, 어떻게 연기한 건지 궁금하다.


박명훈: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꽃밭을 망가뜨리는 장면이었는데, 감독님께서 신신당부를 하셨다. 다시 꽃밭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한 번에 가야 한다며 함께 손을 잡고 기도도 했다. 기적처럼 성공했다. 그런 기적들이 많았기 때문에 완성할 수 있었던 영화다.


진행: 마지막으로 계획과 소감을 묻겠다.


박석영: <재꽃>은 5월이나 6월 즈음에 개봉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잘 준비해서 다들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이번 영화가 마음으로 다 마무리 되지 않아서 차기작은 좀 나중에 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장해금: 추운데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영화관에서 또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진행: 늦은 밤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시작 전에 나눠드린 이 장난감은 영화에서 하담과 해별이 서로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런 신호를 곱씹어보면 어떨까 한다. 조심히 돌아가시길 바란다.



하담을 생각하며 끝이 없는 원을 달리고 또 달렸다는 정해금 배우의 발언이 인상 깊다. 앞서 말한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관계에서 어떤 이상(理想)을 설정한다. 하지만 그런 완전한 종착점은 마치 원을 달리는 것처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원을 따라가다 보면 그 밖으로 벗어날 수 없듯 우리는 관계의 바깥에 설 수 없다. <재꽃>에서 하담이 세상 혹은 자신과 화해하길 바라지 않았을까, 라고 되묻는 박석영 감독의 말을 빌려 마무리하고 싶다. 모두가 그렇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길 바란다. 세상과 주변 혹은 자기 자신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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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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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약자를 편드는 순간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사람이 산다>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2일(일) 오후 2 상영 후

참석 송윤혁 감독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제 16회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송윤혁 감독의 <사람이 산다>는 용산 동자동에 위치한 '쪽방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쪽방과 거리를 오가며 생존을 이어가거나 에너지 빈곤층으로서 더위와 추위를 한 평 남짓한 방에서 온 몸으로 부딪혀야 한다.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의무를 지닌 국가도 이들을 쉽게 도와주지 않는다. 송윤혁 감독은 쪽방촌 현장에서 이들을 도운 체험을 바탕으로 활동가의 시선을 통해 이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안):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사람이 산다> 상영을 준비하면서 작년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이 영화를 본 기억이 떠올랐어요. 이 영화를 보고 감정이 너무 복받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민망해서 서둘러 극장을 나선 기억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저에게 준 것은 삶의 무게감과 단순히 쪽방촌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이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 자체가 나로 소급되는 어떤 것이에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자존과 존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제 첫 질문은 ‘이 이야기가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습니까?’라는 당연한 질문이에요. 타이틀이 뜨기 전에 서울역 앞 큰 건물이 나오고 카메라가 골목길로 우리를 인도해요. 카메라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보지 않는 쪽방촌이라는 동네가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게 될 4명의 인물을 소개하고 그 쪽방촌이 곧 철거될 위기라는 상황을 설명하면서 숏을 닫아요. 영화는 이 시퀀스로부터 시작을 하는데요, 이 영화의 시작에 나오는 서사가 감독님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감독님은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첫 만남은 무엇이었는지 먼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송윤혁 감독(이하 송): 일단 쪽방에 사는 홈리스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홈리스라고 하면 보통 거리에 사는 노숙인 분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나는 홈리스 분들은 범위를 좀 더 넓혀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저는 홈리스의 범위를 확장시켜나가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 단체를 통해서 쪽방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고 언젠가 이 쪽방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거리 노숙인 분들을 만나고 있었는데, 그분들이 ‘무언가 삶을 새롭게 시작할만한 공간을 찾고 싶다. 그곳이 바로 저기다.’라고 쪽방촌을 알려줬어요. 보증금 없이 월세 15-25만 원인데, 요즘에는 25만 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서울 시내에서 보증금 없이도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죠. 모금을 해서 25만 원이 모였어요. 아저씨 한 분을 모시고 쪽방촌을 처음으로 들어가 본 것이 벌써 10년 전 일인데, 공간이 주는 느낌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들이 정리되는 과정 속에서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안: 인물들을 어떻게 만나서 영화가 만들어졌나요?


송: 가장 먼저 만난 분은 ‘남선’ 아저씨에요. 거리에 계신 분들을 돕는 활동을 할 때 종각역에서 처음 만났어요. 2004년과 2005년 사이 겨울 즈음이었는데, 남선 아저씨는 쪽방과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분이었어요. 서울 시내에는 동자동 같은 큰 쪽방촌이 5군데 정도 있어요. 그 중 동자동 쪽방촌을 주된 배경공간으로 설정하게 되면서 그 곳에서 처음 만난 분이 ‘창현’ 아저씨에요. 그리고 창현 아저씨를 통해서 ‘일수’-‘승희’ 부부를 만났습니다. 


안: 감독님이 인물들과 상당히 가깝다는 것은 영화에서 카메라를 통해 잘 드러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잠시 미뤄두고 제목에 대한 질문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 이 영화는 4명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진 문제점, 그것이 주는 병폐들을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영화의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삶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 복지제도입니다. 이 제도로 인해 일어나는 자존의 문제, 인물이 가진 삶의 태도와의 충돌이 영화에서 보입니다. 특히 부양의무제와 장애인등급제의 문제점, 그리고 이 쪽방촌이라는 공간이 죽음과 굉장히 맞닿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어요. ‘사람이 산다’라는 제목은 상당히 큰 울림을 주는 제목인데, 이 제목을 사용한 이유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송: 이 영화의 최종 수정본이 나오는 순간까지도 제목은 ‘쪽방’이었습니다. 엔딩타이틀도 ‘사람이 산다’가 아니라 ‘쪽방’으로 들어가 있을 거예요. 이 영화는 쪽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어요. 처음에는 모든 게 그냥 신기했던 거죠. 쪽방촌의 화장실을 갔는데, 물을 내리는 방식이 아니었어요. 그 위에 공동세탁장이 있어요. 화장실과 연결이 돼서 빨래를 하면 그 물이 화장실에 있는 잔여물을 쓸어버리는 시스템이에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가끔 섬유유연제 향이 나기도해요. 그래서 상당히 쾌적하다고 느끼기도 했어요.(웃음) 그렇지만 겨울이 되면 점점 산처럼 쌓여요. 물로 처리가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거예요. 화장실이 정말 급할 땐 공원 화장실까지 가야해요. 이건 단편적인 일례고 주거공간으로서의 적절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빨래를 방 안에 널어야 하고, 밥도 방 안에서 만들어 먹고. 그래서 빨래에 김치 냄새와 된장 냄새가 항상 배어있어요. 최소한의 주거조건이 갖춰진 곳이 아니에요. 평균의 삶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달라서 신기함으로 처음 쪽방을 대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영화 제작을 위해 그곳에서 살다보니 쪽방의 모습들을 드러내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굉장히 열약하기는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최후의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적인 공간이기도 했어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어나가는 공간이니까요. 단순히 공간을 나타내기 보다는 사람들이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어떤 억압과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지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공간을 드러내고자 했으면 동정과 시혜의 시선을 벗어버리지 못했을 것 같아요. 사실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쪽방에 대한 공간적 정보가 너무 없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가능한 한 공간적인 부분을 덜어내려 했고 그 작업을 수행하면서 제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회적으로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지만,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다소 거칠지만 ‘사람이 산다’라는 제목이 나왔습니다. 



안: 감독님이 이 영화를 어떤 자세로 찍었는지 알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는 카메라의 위치에 따라 그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카메라가 인물들과 상당히 가깝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처음에는 쪽방이라는 공간이 워낙 좁으니까 화각이 대단히 좁아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쪽방 밖에서도 인물들과 상당히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 감독님이 인물들과의 거리를 어떻게 조절한 것인지 궁금했어요. 또 카메라가 가진 태도에서 감동했던 부분은 남선 아저씨가 부양의무제 때문에 부모님을 찾아갔을 때 카메라가 집 안으로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거절 의사를 듣고 난 뒤 남선 아저씨는 길에 누워있고 어머니로 추측되는 분이 그쪽으로 다가가는 상황에서 카메라는 그냥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감독님이 이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특별히 생각한 어떠한 태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에서 의외로 음악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 점이 대단히 놀랍습니다. 우리가 다큐멘터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중 하나가 음악대신 날것의 소리가 들려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존중의 태도인 듯 처음부터 음악이 잔잔하게 흐릅니다. 그 음악들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송: 음악부터 말씀을 드릴게요. 편집 시에 의도한 것은 아니었어요. 처음 장편을 만들다보니 여러 가지 어려운 지점이 있었어요. 제 친구가 영화를 보고 ‘너무 좋은데, 왜 음악이 하나도 없느냐’하면서 영화에 사용할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해주었어요. 영화음악은 몇 가지 테마로 적절히 삽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친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팅을 해서 타임라인에 음악을 얹으면 딱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줬어요.(웃음) 그래도 너무 고마웠어요. 왜냐하면 제가 영화를 만들었을 때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준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빼야 할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마워서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넣었어요.

저는 소위 말하는 작가의 관점, 미학 등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영화에 있어서는 공부가 부족해서 카메라의 거리나 시선 같은 것들을 의도적으로 설정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같이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이 영화가 어떤 시선인지 딱 알더라고요. 정확히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활동가의 시선이에요. 의도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런 시선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안: 이 영화에서 거리감이 주는 느낌 자체가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인물들과 감독이 가진 거리감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에 영화가 주는 울림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관객: 작품 잘 봤습니다. 마지막에 부부 인터뷰 하는 장면이 굉장히 찡했습니다.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사전 준비 작업을 상당히 해야 했을 것 같아요. 프로그래머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촬영자가 제 3자의 느낌이 아니라 대단히 밀접한 사람처럼 보여요. 쪽방이라는 공간에서 실제로 지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쪽방을 허물었잖아요. 지금은 그 곳에 뭐가 들어섰는지 궁금합니다. 


송: 일단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 답변하면, 그 쪽방이 철거된 자리는 다시 쪽방이 되었어요. 예전에는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되는 식의 개발이 자주 있었던 것 같은데, 동자동처럼 큰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올 수 없거나 자투리땅인 경우 굉장히 모호해요. 거기가 서울역 근처라 외국인 관광객이 엄청 많아서 쪽방을 리모델링해서 게스트하우스로 만들기도 해요. 더 큰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리모델링 형태로 재개발이 되고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최후의 공간들이 없어지고 있는 거죠. 쪽방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상당해요. 보증금 없이 월 25만원으로 살 수 있고 서울에서 ‘노가다’를 하거나 인력시장으로 들어가기 가장 용이한 지역이 아직까지도 역사 근처거든요. 그러다보니 역에서 멀어지면 살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닥치게 돼요. 역 근처에 이러한 공간이 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딱히 기획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쪽방에 계신 분들을 자주 만나기 위해 쪽방촌으로 들어가 노숙인 분들과 쪽방촌 분들을 계속 만났어요. 영화를 위해 촬영을 시작한 것이 1월 1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리고 그 다음해 1월 1일까지 살면서 촬영을 했어요. 처음 6개월 동안은 거의 촬영을 못했고 이후 6개월 동안 집중해서 촬영했어요. 서로 너무 가까이 지내다보면 좋지 않은 점도 보이더라고요. 다독이면서 나아가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재미있기도 했어요. 이전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때는 ‘아저씨’라고 부르던 분들을 ‘형’이라고 부르게 되는 경험이, 영화를 차치해도 굉장히 오래 남을 것 같아요. 


안: 마지막 질문을 하고 이 자리를 정리하려고 해요. 감독님은 왜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를 찍나요?


송: 말이 많은 시대인 것 같아요. 매체가 다양해지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어요. 역설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더욱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한 분들은 SNS 같은 것들을 사용하기 쉽지 않고,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시간을 가지고 진중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들이 없어지고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 특히 저는 홈리스 분들에게 관심이 있고 계속해서 그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는 여전히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이라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고 노숙인 분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일을 합니다. 옹호라는 개념이 모호해 보이지만, 명확한 개념이기도 해요. 옳고 그름을 살짝 떠나 편을 드는 일입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사실관계를 따지는 게 아닌 거죠. 편들어 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편을 드는 일을 하고 그것을 영상에 담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활동에서 선배들이나 동료들을 통해 배운 게, 아무도 편들지 않는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은 그 사람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첫 번째 관문이라는 점이에요. 차별과 배제 속에 있는 사람들의 편에서 소통하는 단추를 만들어 나가는 역할이 되고 싶습니다.



카메라는 스스로 켜질 수 없고 스스로 꺼질 수도 없다. 이러한 카메라의 독특한 기능은 카메라로 하여금 능동적인 위치를 점할 수 없게 하였다.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카메라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영화의 한 형태이다. 그래서 ‘카메라’와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두 개의 물리적인 조건이 존재한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사람이 카메라 뒤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를 결정해야 하는 영화의 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결정의 순간에 카메라 뒤의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람이 산다>는 이 질문을 두고 약자의 편을 들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은 과연 그 자체로 옳은 결정을 함의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의 산다>에는 카메라 뒤에서 그 고민을 했던 이의 모습이 재인되어 있는 순간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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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연대에 관한 이야기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여름밤>, <천막>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1일(토) 오후 2 상영 후

참석 <여름밤> 이지원 감독, <천막> 이란희 감독

진행 차한비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자신의 삶이 타인에 의해 피해 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청년세대. 그 치열한 경쟁사회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 고3 수험생 ‘민정’과 민정의 과외 선생님이자 취업준비생인 ‘소영’. 어느 날 민정은 소영에게 과외 시간을 바꿔달라고 부탁하고 그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던 소영은 그걸로 인해 자신의 일상이 무너지는 상황을 겪게 된다. 자신의 선택과 그로 인한 변화를 감수하면서도 인간다운 관계를 선택한 두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여름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3,169일째 날의 천막 농성장. 직장을 잃고 가장의 역할까지 잃은 세 명의 노동자에게 어느 날 터무니없는 소송비용 청구서까지 배달된다. D-1가 아닌 D+1, D+2, D+3….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전이 되어버린 투쟁에서 노래하고 연대하고 오직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며 천막을 지키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천막>.

서로 다른 듯 같은 상황, 같은 처지에 놓인 두 영화의 인물들을 통해 관객은 현대사회에서 너무 낯설고 어색해진 ‘연대’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너무 거대하고 어려워 보였던 연대의 모습이 영화를 통해 어떻게 가장 구체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올 수 있는지 <여름밤> 이지원 감독과 <천막> 이란희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차한비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원(이하 진행): 작년 한 해 여러 영화제를 통해 상영되었고 여러 사람들에게 화제작으로 거론되고 또 상도 많이 받은 작품들이에요. 어떻게 보면 두 영화가 다른 모양새지만, 이렇게 같이 놓고 상영하니 닿아있는 지점도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두 영화가 시간과 연대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또 그 속에서 좋은 어른으로 산다는 게 뭘까, 괜찮은 사람으로 산다는 게 뭘까, 이런 고민을 던져주는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시나리오를 구성하게 되었는지,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지원 감독(이하 이지원): 이 영화로 작은 연대를 통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어른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요즘 사회적으로 작은 손해도 용납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야기 하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런 지점이 잘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이란희 감독(이하 이란희): 어떤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2013년에 콜트콜텍 밴드 분들이 공연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된 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콜트콜텍 투쟁 이야기를 장편 시나리오로 작업했는데 잘 안 풀렸어요. 시나리오를 쓰려고 자주 천막에 가서 인터뷰를 했죠. 그런데 아저씨들이 인터뷰할 때 말이 되게 짧으세요. 받아 적을 만한 것이 별로 없더라고요.(웃음) 아저씨들과 더 오래 만나려면 뭔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천막> 전에 단편영화 3편을 더 찍었어요. 그렇게 영화를 같이 찍다 보니까 아저씨들과 영화제 같은 데에서 상영할만한 단편영화를 찍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장편 시나리오가 잘 안 써졌고요. 그래서 <천막>을 단편으로 만들게 되었어요. 아저씨들이 겪은 이야기들로 만들었고, 그래서 자극적인 사건들은 피해갔어요. 그러다 보니 일상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된 것 같아요. 


진행: 내가 나를 연기한다는 게 어떤 연기보다 힘든 것 같아요. 세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합이 잘 맞았어요. 작년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천막>으로 세 분이 연기상도 받으셨잖아요. 그때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그때의 수상 소식과 수상 소감이 되게 감동적이었거든요.


이란희: 대구단편영화제는 연기상, 촬영상, 작품상 등을 영화제에 출품한 감독끼리 모여서 반장 투표하듯이 뽑아요. 그때 제가 투표하는 자리에서 다른 감독님들한테 연기상에 <천막> 투표 좀 해달라고 사정했어요.(웃음) 많은 감독님들이 이 세 분이 처한 현실과 연기하는 모습에서 감동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어서 표를 준 것 같아요. 수상 소식을 콜트콜텍 아저씨들께 전하니 매우 기막혀하면서 영화제에서 어떻게 자기들한테 연기상을 주냐고 했어요.(웃음)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받으신 적이 있어요. 음악가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기타를 만든 노동에 대한 감사 형태로 공로상 비슷하게 받은 거예요.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것이 본인들이 생각하기에도 좀 부끄럽고 프로 배우들한테 미안하기도 했나 봐요.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수상 소감으로 열심히 살라는 격려와 지지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그때 객석에 앉아 있다가 좀 울컥했어요. 무뚝뚝한 분들인데 불쑥불쑥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걸 보게 돼요.


진행: 오늘 저도 영화 보면서 또 울컥했어요. 여러 가지 생각과 마음이 오고 가는 영화인 것 같아요. <여름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묻고 싶어요. 연기가 인상적이어서 필모그래피를 찾아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나요? 또 대사가 많지 않고 배우들이 이끌어가는 공기가 큰 영화여서 감독님이 적극적으로 디렉팅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지원: 소영(한우연 분), 민정(정다은 분) 둘 다 연기경험이 별로 없는 친구들이에요. 한우연 배우는 연기를 전공하는 대학생이었고 정다은 배우는 저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어요. 그 전에 영화를 한 편 정도 찍은 상황이었고요. 다은 배우는 그 전에 제가 봤던 영화에서 인상적이어서 캐스팅했고요, 소영 역할은 오디션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민정 역 캐스팅이 먼저 되었고 거기 맞춰서 소영 역을 뽑았어요. 두 인물이 알게 모르게 외적인 생김새가 닮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조합을 잘 찾기 위해 오디션을 꽤 많이 봤어요. 가장 먼저 한우연 배우 오디션을 봤어요. 처음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인상에 남았죠. 그 후에 열 명이 넘는 배우들을 만나보았는데, 이 둘의 느낌이 비슷해서 최종적으로 둘을 조합했어요. 연기 디렉팅은 현장에서 하기보다 사전에 많이 만나서 이야기했어요. 셋이 같이 만나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도 하면서 서로의 생각이 어떤지, 전체적인 영화의 느낌이 어떤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많은 부분 합의를 보고 들어갔기 때문에 배우들이 알아서 잘 해줬어요. 


진행: <여름밤> 속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둘이 나란히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 등 두 배우의 투샷이 나올 때마다 찡했어요. 음악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음악감독님이 이 영화를 위해 음악을 따로 만들었나요?


이지원: 학교 후배에요. 원래 음악 전공은 아닌데, 영화를 하면서 음악도 같이 하는 친구예요. 확실히 영화를 하는 친구라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적 감성을 훨씬 더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강점이 있어서 제가 부탁했고 잘 만들어 줬어요. 



진행: 두 감독님 전작을 비롯해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평소에도 계속 그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내는지, 그래서 시나리오도 그러한 방향으로 발전되는 건지 궁금해요.


이지원: <여름밤> 전에 찍은 두 단편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있었어요. 전부터 20대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 자연스럽게 그런 주제를 많이 생각하면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20대를 보냈고, 그런 불안감을 가졌기 때문에 관심이 많아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진행: 예전에 본 이지원 감독님의 <푸른 사막>(2011)도 오래 인상에 남았어요. 대사도 많지 않고 등장인물도 거의 없는 15분 남짓의 짧은 단편영화인데, 일자리를 구하는 여성의 한나절을 다뤘어요. 나중에 관객 분들도 기회 되면 꼭 한번 보면 좋겠어요.  


이란희: 드라마를 볼 때마다 작가들은 저 등장인물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신기함과 궁금증이 있어요. 예를 들면 대기업 간부, 상무, 전무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알까? 한 번이라도 만나봤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웃음) 어쩌다가 국회토론회 같은 데 가면 옆방에 국회의원들이 잠깐 들락거리는 걸 보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그런 경험은 거의 없어요. 제가 노는 물 자체가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거의 없는 환경이에요. 그래서 보고 듣고 사는 게 저랑 비슷한 분들, 소위 사회적 소수자라 일컬어지는 분들을 자주 봐요. 또 제가 시나리오를 쓰는 방식이 관찰에 의존하는 방식이어서 상상 혹은 전혀 모르는 세계, 예를 들면 조선 시대 보물섬이나 해적선 같은 걸 조사해서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는 거의 발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관찰한 것을 중심으로 쓰다 보니까 저랑 비슷하게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외국인이든 오랫동안 천막에서 농성하는 분들이든 제가 그분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저와 뭔가 비슷한 점을 느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해요. 


진행: 이란희 감독님의 <파마>(2009), <결혼전야>(2014)도 인상 깊게 봤어요. 이주민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파마>와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 속에서 유쾌한 지점을 잡아낸 <결혼전야>도 관객 분들이 나중에 함께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최근에는 어떤 것들을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이지원: 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방식의 상업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상업영화 시나리오는 처음이라 배우면서 쓰고 있어요. 지금까지 관심 있었던 주제, 제 강점들을 잘 녹여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란희: 콜트콜텍 장편을 쓰려고 하다가 지금 단편을 찍은 상황이에요. 사실은 <천막>이 1박 2일 짧은 이야기여서 담고 싶은 걸 많이 못 담았어요. 아저씨들도 영화 <카트>(부지영, 2014)처럼 카트 쫙 밀고 들어가는 그런 장면 없냐, 용역들이 와서 막 싸우고 문자로 해고당하는 장면 넣어야 관객들이 좀 알지 않겠냐 하면서 굉장히 원하셔요.(웃음) 콜트콜텍에 대해 조사한 세월이 있기 때문에 단편으로 마치기가 아까워요. 그동안 한 10개 정도 버전으로 써봤어요. 그런데 그것들이 10년 동안의 투쟁을 몰아넣은 다큐멘터리 같아서 주저돼요. 어떻게 하면 상영시간 100분 남짓을 투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등장인물과 같은 문제를 겪는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들까, 어떤 이야기가 그릇이 되면 그게 가능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꼭 장편이 아니더라도 단편이든 중편이든 못 다한 이야기를 더 할 수 있다면 영화 길이와 상관없이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에게 제작비를 준다는 사람이 없어서 꼭 써야 한다는 부담은 없어요.(웃음)



진행: <천막>을 왜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로 만들었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죠?


이란희: 미디액트에서 다큐멘터리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제 인성으로는 다큐멘터리를 도저히 만들 수 없겠더라고요. 친한 친구 세 명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중에 ‘너는 왜 알코올 중독이면서 마누라를 그렇게 힘들게 하느냐’는 핵심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질문을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콜트콜텍을 다큐멘터리로 찍는다면 아저씨들에게 별별 이야기를 다 물어봐야 했겠죠. 투쟁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는 다른 매체를 통해 알 수 있어요. 다큐멘터리에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래서 가정사는 어떻게 됐지?’,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지?’ 이런 것들일 텐데, 아저씨들한테 그런 답변을 속 시원하게 받기도 쉽지 않지만, 제가 담이 크지 않아서 그런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기는 힘들 것 같았어요. 이미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관련 다큐멘터리가 여러 편 나와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제가 인성에도 맞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할 필요가 없고, 또 잘 만들 거란 보장도 없지요. 극영화라는 형식이 사람 대 사람을 만나는 기분으로 볼 수 있는 형태인 것 같아서 극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진행: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이지원: 주말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이란희 감독님과는 작년에 영화제에서 꽤 많이 뵈었어요. 대구단편영화제 연기상에 주저 없이 투표했을 정도로(웃음) <천막>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감독님 전작들도 재밌게 봤는데, 이렇게 같이 상영을 하게 되어서 기분 좋아요. 추운데 조심히 돌아가세요. 


이란희: <여름밤>을 네 번 봤는데, 볼 때마다 느껴요. 사실 연대라는 말이 갖는 무게가 엄청나게 크잖아요. 조금 불편해지거나 본인의 몫을 가지지 못하면서도 인간다움을 선택하는 순간들이 연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는 주인공에 대해서, 저랑 나이 차는 20년 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굉장히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업준비생들에 대한 영화는 엄청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마음에서 그런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결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접근하는 영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천막>에는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윤리적 선택과 관련한 고민 같은 게 빠졌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 영화에 대해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해주는 영화였다고 느껴요. 영화제들이 거의 끝나가는 상황에서 <여름밤>, <천막> 두 영화를 함께 틀 기회를 갖게 되어 기분이 좋았어요. 오늘 바깥에 집회도 있는데, 보러 와주신 관객 분들께 감사드려요.



추운 겨울, 영화가 상영 중인 극장 밖 멀지 않은 곳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든 시민들의 연대가 한창이다. <여름밤> 가방 양 끈을 가슴 쪽으로 가깝게 끌어당기고 나란히 걷는 두 주인공과 장기전이 되어버린 투쟁현장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의지해 나가는 <천막>의 세 노동자의 모습이 닮았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지금, 여기 촛불을 든 시민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두 영화의 인물들은 같은 시간, 같은 처지로 우리 앞에 마주 서 있는 것이다. 두 영화의 인물들과 극장 밖 시민들이 든 촛불이 뿜는 그 연대라는 따뜻한 온기가 극장 안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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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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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딛고 선 마법 같은 순간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나의 연기 워크샵>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1일(토) 오후 4상영 후

참석 안선경 감독 | 배우 이관헌, 김강은, 서원경

진행 김숙현 감독 (<너는, 어디에도 없을거야>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연기와 현실이 혼재한다. 그것들은 끝없이 뒤엉키며 영화를 이끌어간다. 현실과 연기를 고루 거치며 흐르는 작품의 중심엔 헌, 은, 준, 경 네 명의 배우들이 있다. 그들은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내제되어 있던 불안과 마주하고 그것을 드러낸다. 고스란히 드러난 불안은 하나의 인물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관객은 구체화된 인물과 네 배우들의 경계에 서서 연기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품게 된다. 연기에 대한 애정과 고찰이 드러나는 <나의 연기 워크샵>을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김숙현 감독(이하 진행): 먼저 감독님께 어떻게 이 영화가 기획되었는지 여쭤보고 싶다.


안선경 감독(이하 감독): 90년에 연기를 배우면서 연극을 먼저 시작했다. 영화는 2000년부터 하게 되었다. 연극은 80퍼센트가 연기다. 그래서 연기에 대한 호기심, 배우에 대한 관심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있다.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으로 영화에서 본 것과 같은 영화 연기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배우가 되려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있고 그 사람들이 연기를 해나가는 과정을 계속 지켜보게 된다. 그런 과정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연기 워크샵에 찾아온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연기를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마음속의 곪아 있던 어떤 부분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자신의 욕망도 드러나는 그런 시놉시스를 하나 떠올렸다. 그런데 시놉시스로만 머물고 잘 진행이 안 되다가 실제로 연기 워크샵에 온 이관헌 배우를 만나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관헌이가 모델이 되어서 관헌이랑 같이 이 과정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배우들을 차례차례 연기 워크샵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고 또 일기 같은 글을 쓰게 해 그것을 공유하는 식으로 인물들을 만들어 갔다.


진행: 답변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큰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배우 분들이 어떻게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이관헌 배우(이하 헌): 아까 감독님이 말씀하셨듯이 감독님의 연기 워크샵을 들으러 갔다가 참여하게 되었다.


서원경 배우(이하 경): 영화에 나왔듯이 본업이 사진작가다. 아마추어 극단에서 연극 활동을 하고 있던 와중에 조금 더 연기를 깊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우연히 감독님의 워크샵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단순히 더 배우고 싶다는 의미보다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해서 연기를 택한 것 같다.


김강은 배우(이하 은): 사는 데 약간 갈증이 있기도 했고 연기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서 우연히 감독님의 워크샵 공고를 읽고 참여하게 되었다. 또 우연히 영화에서 연기까지 하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관객: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다. 우선 연극 ‘사중주’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또 ‘현의 일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꺼내어 보여주는 장면들이 대부분 좋지 않은 기억들이었던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좋지 않은 기억들을 끄집어내는지가 궁금하다.


감독: ‘사중주’는 우연이었다. 김소희 배우(극중 미래)는 예전 극단에 있었을 때 선배였다. 김소희 배우를 캐스팅하고 나서 공연을 보러 갔는데, ‘사중주’를 하고 있었다. 공연을 보다보니 <나의 연기 워크샵>의 구조적인 면과 굉장히 맞닿아있는, 아주 좋은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 실제 배우로서의 모습이 ‘사중주’ 공연을 통해서 보이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이유로 꼭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한 편의 책이라면 ‘사중주’는 책을 감싸는 표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현의 일기’가 우울한 이유는 연기를 하려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대부분이 굉장히 현실에 억눌려 있거나 분출하지 못하고 결핍된 것들로 인해 연기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것을 굳이 이야기 하지 않지만, 그들이 연기를 할 때 보면 굉장히 막혀 있거나 억눌려 있다. 그런 것들을 지적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면적으로 갖고 있는 어떤 상처 같은 것들과 맞닿게 된다. 연기를 하려는 욕구는 그런 상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 배우들의 모습 속에서 ‘현의 일기’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현의 일기’는 어디에서 뚝 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물론 ‘현의 일기’를 따로 쓴 친구가 있다. 배우들의 모습과 맞닿아있는, 어떤 경험들을 지닌 그 친구가 적임자라고 생각해서 일기를 써달라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배우들의 모습을 떠올려 그 경험들을 스스로 체화시켜서 쓴 것이 ‘현의 일기’다. 어떤 내용들을 선택해서 만든 게 아니라 작품의 구성원들 안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 연기하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 자기가 두려워하는 존재를 투명하게 보고 마주하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스스로의 두려움을 보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에서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관객: 작품을 통해 감독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가 궁금하다.


감독: 사람들이 처음에는 연기로 지금의 자기가 아닌 더 좋은 모습을 만들고 싶다는 환상을 갖고 들어온다. 사실 그것은 정말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을 해야 연기가 나온다. 연기 워크샵을 하면서 느낀 건 정말 자기가 꺼내기 어려운 어떤 것들을 꺼내고 그것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불편하고 두려운 걸 마주하는 어떤 순간부터 연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강렬한 감정이 생기고 그것이 관객으로 하여금 보고 공감을 하게 되는 에너지가 된다. 이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연기를 하는 과정이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삶, 허구의 인물들을 더 투명하고 성숙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연기가 그런 과정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 영화에서 흐르는 ‘현의 일기’가 좋았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현의 일기’에 대해서 배우 분들이 토론을 하는 장면이었다. ‘현의 일기’에 대한 배우 분들의 조금 더 깊은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


경: 방금 감독님이 한 이야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금 덧붙이자면 현의 에피소드가 네 개인데, 그 네 개가 어떻게 보면 특정한 누군가의 트라우마라기 보다 보편적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의 단편적인 부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배우들 네 명 다 진짜 나의 모습을 한 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모습을 연기하는,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방식의 영화다. 한약을 먹게 되면 명현현상(환자가 치유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증세가 심해지거나 다른 증세가 유발되었다가 호전되는 현상을 일컫는 한의학 용어)이라는 게 있지 않나. 배우들 네 명 다 어떠한 삶의 트라우마나 문제점을 가지고 감독님을 찾게 되었는데, 이 영화를 찍는 기간이 명현현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타지를 가지고 왔지만, 그러기 위해선 나 자신을 깨야하고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과 마주하며 부딪혀야 하는 기간이여서 굉장히 힘들었다. 영화를 보는 모든 분들이 누구나 한 번씩은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지 않나 싶다.


은: 각자 ‘현의 일기’를 읽고 모여서 이야기를 할 때 스스로 공감한 부분이 나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현이라는 인물에게서 네 사람을 관통하는 아픔이나 이야기가 있음을 느낀 게 너무 신기했다. 다같이 식사하는 장면에서 저마다 해석하는 게 달랐던 것도 정말 재미있었다. 다른 현장에서 연기를 할 때도 이런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될 것 같다. 현이라는 인물을 바라볼 때, 완전히 그 인물일 수는 없지만, 과거에 대한 이야기나 생각들을 다 헤집어보면 비슷한 점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 영화에서 서원경 배우가 아버지에 대해 했던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똑같이 하는 걸 본적이 있다. 조금 특수한 상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안에서 자기 이야기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이 일기를 대신 써줄 수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감독: ‘현의 일기’에서의 대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과정들은 실제로 배우들을 불러 모아 ‘현의 일기’에 대해 토의하는 과정을 녹취해서 대본화 한 것이다. 전체적인 연출과 구성만 했지 만들어낸 대사는 거의 없다.


진행: 배우 분들에게 궁금한 점이 있다. 워크샵에서 신체 움직임 같은 장면은 다큐멘터리를 연상시켰다. 다양한 방식의 연기 톤들이 이 영화 안에 들어가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조정했는지, 그리고 연기에 대해서 어떻게 자신의 생각들을 발전시켰는지 궁금하다.


헌: 시작하기 전에 톤을 어떻게 조정할지와 같은 예상은 할 수가 없었다. 시나리오가 없어서.(웃음) 워크샵 때도 그랬지만, 당장 내일 무엇을 시킬지 몰라서 불안해하고, 가서 시키면 하고, 그렇게 했다. 그냥 그 불안이나 두려운 것을 조금 없애려고 노력했다.


경: 연기를 막연하게 생각했을 때,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과 가상세계에서 다른 캐릭터로 살고 싶다는 판타지가 있었다. 그런데 워크샵을 하면서 철저하게 많이 깨져야 했다. 나 자신이 사회화가 많이 되어있고 너무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연기를 하거나 몸을 쓸 때 굳어있고 막혀있어서 굉장히 힘들었다. 김소희 배우님과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그런 걸 점점 깨가는 과정이 고통스러웠지만 즐거웠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이관헌 배우가 많이 도와줬다. 실제 현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을 연기하는 장면이었는데, 밤샘 촬영을 했다. 그 때 옆에서 많이 격려해주었다. 그 때뿐이었지만.(웃음)


은: 처음에 신체 운동을 할 때 꾸밈없이 스스로의 모습을 단순하게 보여주면 되는 거라서 그냥 시키는 대로 다 했다. 반대로 일기 속에서 존재해야 했을 때는 비록 스스로 한 이야기들을 해야 하는 거였지만, 현이라는 인물이 네 사람을 관통하는 만큼 그 궤도 속에서 현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항상 인식하고 있었다.


감독: 시나리오를 갖춘 상태에서 시작이 된 것이 아니라 전체 구성만 있었다. 첫날은 신체 프로그램들을 다 하고 둘째 날은 즉흥극을 하고 맨 마지막에는 장면 만들기를 넣는 식으로 연기 워크샵 단계를 만들어 갔다. 이 단계에서 분명히 발전이 있어야 하는데, 영화의 배우들은 연기 경험이 없었다. 그 점이 부담이 컸다. 사실은 연기를 정말 잘하는 사람들만이 이 단계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원래는 극영화를 포기하고, 이 친구들과 함께하려면 다큐멘터리 방식 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장에서 건드리면 용기가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당일에 무슨 수업을 할지 가르쳐주지 않았고 ‘현의 일기’, 즉흥극 주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반응을 했는데, 나중에는 속을 드러내고 깊은 이야기를 해야 했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점점 마음을 열도록 유도했다. 그래서 결말로 가면 갈수록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관객: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치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점이 연기 워크샵보다 상담소 같은 느낌이 조금 들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연기라는 게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연기는 치료와 다른 지점이 있을 것 같다. 그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감독: 처음에는 연기를 치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완전 처음 연기를 하는 사람들과 마주해서 진행을 하다 보니 연기를 방해하는 요소가 계속 보였다. 그 요소가 심리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었다. 치료라고 생각은 안 했지만, 그런 과정이 되긴 했다. 일부러 치부를 꺼내라고 하진 않는다. 그건 정말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연기를 하려고 오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자꾸만 자기를 방해하는 요소를 털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생기니까 상담의 과정과 비슷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떤 친구들이 갑자기 잠이 잘 온다던가 밖에서는 전혀 해소하지 못했던 것을 드러내고 해소할 수 있다는 면에서 치료가 분명히 되는 것 같다. 제일 강조하는 점은 연기가 소통이라는 것이다. 소통을 제대로 하려면 제대로 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결국에는 연기를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지 치료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접점만이 있는 것 같다.


진행: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워크샵 중인가?’ 생각하다가도 ‘아, 이건 영화지!’라고 자각하게 된다. 가상의 스크립트를 재현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배우들의 실제 경험에서 원천이 되어 나온 실제 상황인 것 같다는 혼란 안에서 영화를 계속 감당하게 되지 않는가. 감독님께서 그런 지점들을 더 고려했을 텐데, 그 때 동원되었던 요소들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모호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어떤 게 있었는지 궁금하다. 


감독: 이 영화의 주제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어떤 영화를 봤다. 제임스 딘을 그리는 영화였는데, 그 배우가 제임스 딘의 여러 가지 외적인 면을 상당히 세밀하게 모방을 하고는 있지만 제임스 딘의 매력은 없는 것 같았다. 좋은 연기란 뭘까 고민을 했다. 아무리 열심히 모방을 해도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제임스 딘이라는 인물을 표현해내는 배우의 숫자만큼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누가 제일 잘했다고 사람들이 말할 수는 있지만, 그저 다양한 방식으로 제임스 딘을 표현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연기란 굉장히 열려있는 것이고 다양하게 표현할수록 관객에게 굉장한 자유를 준다. 그런 철학을 갖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관객들이 볼 때 누가 현인지 헷갈리는 것이 성가실 수 있지만, 헷갈리라고 한 것은 아니다. 연기에 대해서 만약 편견이나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우리가 어떤 인물을 표현할 때, 그 인물은 과연 고정적인 인물일까? 그리고 이것은 나아가 실생활에서 타인을 볼 때도 그렇다. 사람을 더 알다보면 양파껍질처럼 다른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 이관헌 배우를 통해서 많이 느꼈다. 이관헌 배우를 알아 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잘 모르겠다.(웃음) 연기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타인을 볼 때도 타인이 하는 행동과 말이 다가 아니라 그 안에 더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는 것을 느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나의 연기 워크샵>은 연기라는 마법 같은 순간을 스크린에 그려낸다. 그리고 그런 마법 같은 연기의 메커니즘은 일상생활에서의 관계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소통하고 때로는 들켜주는 과정을 보며 관객들은 영화와 현실을 관통하는 어떤 울림을 받는다. 그리고 그런 울림은 <나의 연기 워크샵>과 연기가 갖는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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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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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한 적 없는 삶의 단면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이태원>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9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강유가람 감독

진행 박소현 감독 (<야근 대신 뜨개질>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이태원>은 이태원이라는 공간에서 몇 십 년을 살아낸 세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미군 달러가 지배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 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너무나 쉽게 지워지는 삶에 대해.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영화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이태원> 상영 후 강유가람 감독, 그리고 <야근 대신 뜨개질>의 박소현 감독과 함께했다. 



박소현 감독(이하 박소현):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박소현이라고 합니다. 


강유가람 감독(이하 강유가람): <이태원> 감독 강유가람입니다. 추운 날씨에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박소현: 날이 추워진 탓에 관객이 너무 적을까봐 걱정을 했고, 추우니 토크를 너무 길게 하지 말고 빨리 보내드리자, 저희끼리 이런 얘기를 나눴어요. 같은 작업실을 쓰고 있어서 감독님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 싸매며 고민하는 모습을 봤어요. 우선 관객 분들이 이 영화의 시작에 대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질문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강유가람: 이태원에 맛집, 핫한 예술 공간이 많지만, 독특하고 다중적인 공간으로 인지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약간 무서운 공간으로 인지하고 있었어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인데, 용산참사 이후 ‘후커힐(Hooker Hill)’이라 불리는 곳을 같이 걸어가며 이 지역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워크숍을 하고 영상을 만든 적이 있어요. 몇 년 후, 제 지인이 그 공간을 지원하는 단체에 있었는데, 그 단체를 통해 소개를 받았고 이들의 삶을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박소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인상적인 몇 가지 장면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오프닝이었어요. '삼숙' 님이 셀프카메라로 독백을 하면서 시작되고,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안개 속에서 '나키' 님이 등장하고, 그 안개를 배경으로 ‘이태원’이라는 타이틀이 나와요.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함축시킨 탁월한 구성의 오프닝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프닝에 대해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강유가람: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세 여성의 시선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삼숙 님 같은 경우에는 평소에도 본인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 관심이 많아서 실제로 직접 찍은 DVD를 자주 주셨어요. ‘유언 비디오’라고 하면서 주신 1시간 반에서 2시간짜리 DVD였는데, 인생에 대해 혼자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좋았고 인터뷰와는 또 다른 느낌이어서 꼭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안개는 메르스 당시 마침 소독차가 지나가서 촬영했던 것에서 가져왔어요. 안개 속에서 나키 님이 휙 튀어 나오는 느낌이 좋았고 그 장면이 흐려지는 여성들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님은 바로 집 앞에 재개발에 반대하는 플랜카드가 걸려있었고, 그 앞에 서있는 장면을 많이 찍었어요. 그 장면이 이태원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오프닝에 담았습니다. 


박소현: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오프닝에서 삼숙 님 뒤로 보이는 미군 남편분의 사진, 플랜카드 앞에 서 계신 영화 님의 뒷모습, 안개가 차는지 걷히는지 모를 애매한 틈으로 살짝살짝 보이는 성인용품 가게 같은 것들. 설명 없이도 장면 자체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삶의 모습과 닮아 보여서 좋았습니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가 계속 세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데, 중후반쯤에 청년 예술가들이 등장해 옥상에서 파티를 하고 나키 님이 오르락내리락 계단 칠을 하는 등 한바탕 왁자지껄한 장면이 지나가요. 그러고 나서 다시 바래진 계단을 나키 님이 내려오는데, 그 모습이 되게 강렬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왁자지껄함을 지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약간 애잔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계속 그 곳에서 살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이고 오프닝에서 느껴졌던 것과 같이 그들이 오롯이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 느껴졌어요. 청년이 등장하는 것에 대한 감독님의 의도와 고민이 궁금합니다. 


강유가람: 처음에 그 공간을 찾아갔을 때에는 청년들이 이태원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잘 몰랐어요. 촬영 중에 조연출 분이 플리마켓 등을 알려줘서 그 공간에서 정말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태원의 현재성을 표현하려면 이들도 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도 다양하게 했어요. 그 공간이 사실은 재개발 예정지였기 때문에 슬럼화 되고 낙후된, 치안이 안 좋은 상태였고 그분들은 이 공간을 밝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좋은 취지로 많은 활동을 했으나 워낙 역동적인 공간이다 보니까 그 활동들이 약간은 무의미해지는 지점이 있었어요. 월세가 많이 올라 초기의 상인 분들은 지금 거의 안 계세요. 이런 모습들을 세 여성의 삶과 대비시키고 싶었고 제 자신도 그 공간을 지나쳐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박소현: 제가 감독님의 작업을 옆에서 지켜본 바, 감독님이 장사꾼 분들과 세 여성을 엮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고 알고 있어요. 


강유가람: 먼저 ‘장사꾼’이라는 네이밍은 원래 그분들이 쓰는 말이에요.(웃음) 오해 없길 바랍니다. 그분들이 이 공간에 더 오래 살아온 세 여성의 삶에 대해서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게 드러나기도 했고, 그 모습이 굉장히 대비적이었어요. 이분들의 활동에 대한 시각이 너무 비판적으로 담긴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고 편집 과정에서 여성들의 삶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코멘트도 종종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걸 분리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공간이 섬처럼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굳이 넣었는데, 청년 분들이 영화를 보고서 더 빼달라고는 하시더라구요.(웃음)


박소현: 삼숙 사장님이 술집 40주년 생일 파티를 한다고 음식을 굉장히 많이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손님이 너무 없어 북적댔던 과거의 모습과 대조되면서 사장님이 애잔해보였어요. 나키 님이 계단을 내려올 때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요.


강유가람: 촬영 당일에 저희도 손님이 많이 올 줄 알았어요. 6개월 정도 홍보를 하셨는데, 생각보다 손님이 많이 안 와서 음식들을 다 저희에게 나눠주셨어요. 오히려 사장님이 밝은 척을 하셨어요. 가게를 마치고 가는 쓸쓸한 뒷모습을 찍고 싶었는데, 사장님이 너무 웃으면서 ‘그래, 잘 가~’하셔서 그런 분위기로 촬영도 마무리 됐습니다. 



관객: 영화에서 축제 장면이나 우사단길 등 젊은이들이 짧게 짧게 등장하는 장면과 세 여성이 등장하는 장면을 교차되게 편집한 이유가 궁금해요. 또 전통적인 한국 가부장제 밖의 삶을 산 세 싱글 여성 캐릭터에 대해 촬영 과정에서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강유가람: 교차편집으로 관객에게 이질적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분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는 길 근처에 살죠. 그분들이 이태원의 주민으로 살아온 부분들을 강조하고 싶었고 그들의 삶의 맥락이 그 산업에 종사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사람으로 정체화되는 것, 낙인찍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일반적인 주민으로 보이길 원했고 멀리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슈퍼에 가면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일상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교차편집으로 넣었습니다. 캐릭터 질문에 답하자면 삼숙 님 같은 경우는 DMZ에서부터 미군 장사를 시작해서 소위 ‘금맥’을 보고 이태원까지 온 분이고, 장사를 계속 하면서 장수 같은 이미지로 소문이 났어요. 늦은 결혼을 하기까지 쫓아다니는 남자들도 있었고 가게 운영을 방해하는 ‘조폭’들도 있었고 여러 힘든 점들이 있었어요. 그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욕도 많이 하지만 속은 되게 여려요. 본인의 취약한 부분을 가리는 방패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박소현: 세 여성이 가족을 대하는 모습이 이어진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 님이 PC방에서 남동생이랑 전화로 양육권을 두고 싸우다가 잠자고 있는 조카의 손을 어루만지는 클로즈업 신, 삼숙 님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내 인생을 바쳤는데 밥 먹자 하는 사람 하나 없다'고 말하다가도 '그래도 내가 챙기길 잘했다'고 하는 장면 등. 이런 게 연결되면서 영화가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전작 <모래>(2011)에서 감독님의 어머니가 ‘너 때문에 내가 다 참았어’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이번 영화와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게 많은 여성들의 삶의 모습이고 또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감독님도 전작과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했거나 이전과 변화를 주려고 한 부분이 있나요?


강유가람: 저는 계속 공간의 변화를 그 공간에 살아가는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 것 같아요. 이 여성들이 벌어들인 달러들이 한국사회에 흘러 들어와 밑거름으로 사용되었고 실제로 국가에서 관리도 한 일들인데, 그와 동시에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공적인 역사에서는 부끄러운 것으로 기록되는, 이런 것들을 확장시키고자 했어요. 삼숙 님만 봐도 가족을 부양하려고, 어떻게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노력한 분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아예 모른다는 것에 주목하고자 했습니다. 


관객: 세 여성이 큰 흐름 속에 있는 개인이기도 하지만, 연민의 대상이기보다 말하는 주체였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동시에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강유가람: 세 분 성격이 달라요. 나키 님은 원래 많은 얘기를 해주시는 편이 아니에요. 그리고 삼숙 님을 소개해주셨어요. 삼숙 님은 본인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편이었고 촬영에 원하는 방향이 있으신 것 같아요.(웃음) 영화 님은 처음부터 친밀하게 훅 들어오는 타입이었어요. 안 찾아가면 왜 안 오냐고 전화하시는. 원하는 대답을 얻으려고 의도하고 찍은 인터뷰는 거의 망했어요.(웃음) 일상 속에서 말하는 부분이 오히려 영화에 많이 실렸어요.


박소현: <모래>, <진주머리방>(2015), <이태원>까지. 공간을 채우고 있는 존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쌓이면서 계속해서 이야기가 쌓이고, 공간은 그 존재 자체로 많은 말을 걸고 있는데, 강유가람 감독님은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감독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감독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 다음 작품에 대한 코멘트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유가람: 개인적으로 세 분을 만나면서 많은 걸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감정의 교류가 무엇인지 생각을 많이 했고 삶을 견디고 극복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여성들의 에너지가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성의 삶의 역사가 좀 더 많이 이야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퇴진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하고도 싸우고 여성혐오와도 싸워야 하는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데, 이들의 에너지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의 이태원은 재개발 문제에 다시 부딪히게 된다.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예술가들이, 지금의 이태원을 만들어 낸 장본인들이 거대자본으로부터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자리’에 여성들의 자리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여성들의 삶을 만난 적 없거나, 본 적 있어도 못 본 체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영화를 통해 관객은 이전에는 마주한 적 없는 삶의 단면을, 이들이 치열하게 버텨온 날들을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영화 <이태원>은 여성의 삶을 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기록하면서 삶과 삶 사이에 만남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이것은 더 많은 이야기와 더 많은 만남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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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연애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연애담>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2일(일) 오후 4시 20분 상영 후

참석 이현주 감독, 배우 이상희

진행 김소연 감독 (<문영>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어떤 영화는 너무나도 쉽게, 보는 이 자신의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지난 해 많은 사랑을 받고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도 러브콜을 받은 이현주 감독의 <연애담>이 그렇다. <연애담>의 관객 중 누군가는 ‘윤주’가 되고 누군가는 ‘지수’가 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거기에 있다.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이라는 주제 하나에 집중하게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힘.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연애담>의 이현주 감독과 <문영>의 김소연 감독,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온 이상희 배우와 함께했다. 



김소연 감독(이하 김소연): 제가 <문영>이라는 영화로 한 달 전에 첫 GV를 했고, 그 GV를 이현주 감독님께서 진행해주셨어요. 덕분에 즐겁게 잘 했던 기억이 있는데, 정확히 한 달 만에, 이번에는 제가 <연애담> 진행을 맡게 됐습니다. 이현주 감독님께서 저를 무슨 생각으로 추천하셨는지 모르겠지만.(웃음) 혹시 오늘 <연애담> 처음 보신 분이 계신가요? 생각보다 꽤 있네요. 작년에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 영화를 애정 하는 분이 워낙 많은 지라 한 번 이상 보신 분이 대부분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GV를 굉장히 많이 다녔다고 들었어요.


이현주 감독(이하 이현주): 해외 영화제까지 해서 40번 이상 한 것 같아요. 아직도 남아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웃음)


김소연: 관객으로 <연애담>을 보고,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가득 채운 영화의 힘, 한눈팔지 않고 정직하게 다가가는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사랑 이야기가 낡은 주제일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꼈고요. 감독님께 사랑 이야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현주: 사랑이라는 주제가 제일 재미있지 않나요?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누가 누구를 죽이는 것보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이 더 흥미로운 일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게 굉장히 미묘하게 어긋나잖아요.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가까워질 수도 있고, 그러다가 거리를 두게 되기도 하고, 뭔가 변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까 단편부터 누가 누굴 좋아하다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내용을 많이 만든 것 같아요. <연애담>에서도 누가 누구를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고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갖게 되는,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저한테는 사랑이 아직까지 제일 흥미로운 주제에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일은 정말 기적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멜로를 제일 좋아하기도 합니다. 


김소연: 영화에 좋은 대사가 많았어요. 예를 들면 윤주가 품에서 고구마를 꺼내면서 “잘 보이고 싶어서”라는 대사를 하잖아요. 이 대사를 들으니 윤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지수는 두 사람이 한정식 집에서 밥 먹는 장면에서 “무슨 반찬 먹는 지 보려고”라는 대사를 하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께선 대사를 어떻게 쓰시나요?


이현주: 배우들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거의 제가 썼어요. 영화에 사랑한다, 좋아한다, 사귀자 같은 대사가 거의 안 나와요. 제일 직접적인 표현은 마지막에 나오는 “보고 싶었어”라는 대사죠. 좋아하면 어떻게 표현을 할까 생각을 하면서 대사를 썼는데, 사랑한다, 사귀자 이런 말을 하는 관계도 있지만, 대다수는 자연스럽게 이뤄지죠. 살다보면 자고 가, 자자 이런 게 아니라 다른 말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잘 보이고 싶어서”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죠. ‘너 주려고 샀어’라는 말보다 더 윤주가 할 것 같은 말, 더 자연스러운 말로 쓰려고 했습니다. 


김소연: 반면에 지수 같은 경우는 우회하지 않고 말하는 게 오히려 매력적이더라고요. 처음 편의점에서 만나서 자기가 일하는 가게로 오라는 대사가 있는데, 보통은 ‘한 번 오세요’ 이렇게 말할 텐데 안 그러고 꼭 오라고 하는 게.(웃음) 이건 안 갈 수가 없잖아요. 본능적으로 내가 지금 ‘꼬심’을 당하고 있구나 느끼게 하는.(웃음) 그리고 해뜨기 전이 제일 춥다는 말을 하다가 딱 “자고 갈래요?” 하잖아요. 지수는 윤주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그냥 올라가버리죠. 오지 않을 거라는 의심 전혀 없이. 이게 되게 매력적이었어요.


이현주: 류선영 배우가 캐스팅된 후 지수의 그 매력이 배도 아니고 제곱이 됐어요. 


김소연: 이상희 배우는 전작에서 만난 인연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부터 윤주 역으로 생각했다고 들었는데, 류선영 배우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이현주: <연애담> 오디션은 공통적인 신을 드리고 리딩을 했어요. 선영 배우님한테도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보통은 대본을 하나 하고, 상황 하나를 갑자기 만들어서 그 상황을 어떻게 넘기는지 봤어요. 즉흥 연기는 아니고, 예를 들면 어떤 백화점에서 물건을 하나 훔치다 직원에게 걸렸을 때 어떻게 모면할 것인가 하는 것이죠. 배우의 감춰진 모습을 보려고요. 선영 배우님을 보고 촬영감독님이 기본적으로 되게 안정적이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 이후에 카페에서 뭔가를 마시며 만났는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되게 재밌게 얘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지수가 이런 캐릭터면 좋겠다 생각을 했죠. 


관객: 윤주가 세아, 병기랑 술집에 찾아갔을 때, 처음에는 시무룩해 하다가 지수가 등장하면서 윤주의 표정이 밝아지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장면에서 세아가 병기에게 그만 좀 보라는 대사를 하는데, 그게 윤주를 향하는 말 같기도 하고 병기를 향하는 말 같기도 해서 그 의도가 궁금했습니다. 


이현주: 의도한 부분입니다. 사실 그만 쳐다보라고 하고 화장실 신으로 넘어가기 전에 병기가 '우리 같이 예술 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걸 볼 의무가 있다' 같은 말을 하는데, 그 때 윤주가 지수를 더 노골적으로 보는 장면도 넣을까 하다가 고민 끝에 걷어냈어요. 



관객: 최근 두 해외 영화제에 다녀온 걸로 알고 있는데 영화제에서의 반응이 궁금하고 DVD, 블루레이 등 업데이트 된 소식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현주: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영화제와 프랑스 끌레르몽페랑 국제단편영화제까지 두 영화제를 다녀왔어요. 예테보리는 <연애담>으로, 끌레르몽페랑은 <바캉스>로 갔습니다. 예테보리 영화제는 백 명 정도 들어가는 극장에서 상영을 했는데, 거의 매진이 돼서 저도 한 번 밖에 못 봤어요. 되게 웃으면서 보더라고요. 스웨덴은 동성결혼 합법이 된 지 삼 년이 됐다고 들었어요. 문화가 달라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이었는데, 사랑 이야기로 공감해준 것 같아요. 끌레르몽페랑에서도 <바캉스>를 재밌게 봐줬어요. 그리고 DVD, 블루레이는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출시시기를 조금 빠르게 하려고 했는데, 영화제에 다녀오면서 공백기가 생겨서 얘기를 못 드렸습니다. 코멘터리도 녹음을 했어요. 여름 안에 만들려고 해요. DVD, 블루레이 순으로 나올 거고 <바캉스>도 들어갈 겁니다. 


관객: 지수가 돌아와서 윤주가 먼저 자고 있는 걸 보고 자냐고 묻는 부분이 있잖아요. 윤주가 벽 쪽을 보고 자고 있고 지수가 등지고 누워서 자는데, 윤주가 다시 돌아누워서 팔을 걸치는 장면이요. 영화를 여러 번 보니까 그 장면이 되게 차갑게 느껴지더라고요. 윤주는 사실 안 자고 있고, 지수가 어떤 말을 해주길 기다렸는데, 그냥 등을 돌리고 자고. 윤주가 팔을 걸치는데도 별 반응이 없고요. 의도한 건지 궁금합니다. 


이현주: 침대 장면은 제가 의도한 걸 이해하신 것 같아요. 그 장면 전에 나오는 게 설거지 장면인데, 그때부터 뭔가 단절 되는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설거지 장면을 되게 좋아해요. 윤주가 처음에는 손님으로 지수 집에 왔지만, 이제는 주인만 쓰는 공간에 들어가게 된, 얹혀사는 사람처럼 되잖아요. 그런데 그 장면에선 서로 마주보지도 않고. 침대가 처음에는 몸도 섞고 같이 늦잠도 자던 공간인데, 점점 시간이 지나며 관계가 변해간다는 걸 생활 속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윤주가 안 자고 있었던 게 맞습니다. 원래는 그 이후에 지수가 잡아당기는 것까지 액션을 했어요. 근데 냉랭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뒤에는 잘라냈습니다. 


관객: 영은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의 흔들리는 카메라 워킹에 대해, 그리고 엔딩에 피아노 곡을 삽입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현주: 엔딩곡은 중간에 한 번 더 나오기는 합니다. 저와 음악감독님이 이 영화에는 노래가 많이 안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공통된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마지막에는 우리가 윤주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끔 곡을 삽입했습니다. 영화에서 제일 좋을 때와 제일 혼란스러울 때에 노래를 넣었어요. 그리고 이 영화는 컷이 별로 많지 않아요. 저는 이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관찰하는 입장에서 세밀하게 그려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장면은 거의 없어요. 커밍아웃한 후에 룸메이트가 피해가는 신에서도, 윤주는 룸메이트가 살갑진 않더라도 적어도 ‘왔어?’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슥 지나가 버리니까 ‘이게 무슨 상황이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윤주의 움직임을 따라 카메라도 움직여요. <연애담>에서는 인물의 행동이나 말, 휴대전화 소리에 맞춰 카메라가 움직이는 게 컨셉이었어요. 카메라가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도록. 그리고 추가적으로 말씀 드리면 처음에는 예뻤던 장면도 뒤에 가면 좀 더 현실적으로 바뀌도록 찍는 것도 컨셉이었어요. 교수실만 해도 처음 부분과 후반 부분에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김소연: 저도 느꼈어요. 교수실에서 처음에는 어깨 너머로 앵글을 잡다가 마지막에는 윤주 얼굴을 타이트하게 잡더라고요. 이 대화 장면이 똑같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카메라가 잡는 구도가 한계가 있을 텐데, 여러 고민 끝에 찍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카메라 얘기가 나와서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저는 이 영화에서 카메라가 인물들을 그대로 관찰하고, 이야기가 지나는 방식을 정직하게 따라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로서는 왜 여기서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을까 했던 부분이 두 지점 있어요. 첫 번째는 일흔 일곱 번째 여자라는 농담이 나올 때 술집에서 지수 어깨 너머로 카메라를 잡고 있는데, 지수와 윤주가 나란히 앉게 되면서 화면에 뒷모습만 나올 때가 있잖아요. 관객은 인물의 눈빛과 표정을 바라보고 싶은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죠. 감질나면서, 왜 이렇게 찍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이현주: 앞에서 찍은 컷이 있었어요. 모니터를 현장에서 했는데, 뒤에서 찍은 샷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초반에는 베드신도 있고 좋아하는 이야기들이 계속 붙어 있으니까 첫 번째 베드신과 두 번째 베드신도 차이를 두고 싶었고, 한정식 집과 술집 장면도 차이를 두고 싶었어요. 그 차이를 어떻게 둬야하나 되게 고민을 했어요. 뒤에서 보면 두 명의 알콩달콩한 모습이 궁금해지죠. 한정식 집과는 뭔가 다르게 생략을 하고 싶었어요. 흘깃 봐도 얼마나 좋은지를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바로 뒤에 지수가 화장실 따라가는 것도 이 둘이 그 안에서 무엇을 할지, 얼마나 좋을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 생략하고 넘어간 장면이에요. 근데 둘이 같은 장소에서 재회를 할 때는 완전 정 반대의 앵글로 들어가서 카메라가 같이 움직이며 이들을 더 천천히, 가까이 보여주도록 했죠.


김소연: 그 의도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사실 연출자는 잘 보여주고 싶잖아요. 정면 샷이 있었음에도 뒷모습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건 굉장히 과감하고 재밌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지수가 아버지 집으로 들어왔을 때 식사하는 장면에서 아버지만 보여주잖아요. 지수의 어깨만 나오고. 앞에서 찍은 샷이 분명이 있을 것 같은데.


이현주: 없습니다.


김소연: 없어요? 와, 대단하시네요.(웃음) 주인공인 지수가 안 나오고 아버지만 보여주면서 진행이 되니까 그게 되게 재밌더라고요. 지수가 자신의 공간이 아니라 아버지의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지수의 주체성이 보여지지 않는 느낌, 그래서 지수가 희미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현주: 촬영감독님이 내는 아이디어들이 이 영화에 굉장히 많이 반영이 됐어요. 이 영화의 주요한 인물들이 자연스럽지 않게, 조금 이상하게 시작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아버지가 지수에게 있어서 되게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왜 이 사람을 계속 보여주지?’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 식으로 촬영했습니다. 



관객: 윤주가 졸업을 미루고 졸업 작품을 철수했는데 그걸 왜 안 버리고 집에 그대로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상희: 모든 창작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비슷할 것 같아요. 잘 나왔든 습작이든 내 새끼 같은 마음이 있잖아요. 그 작업을 접기는 하지만 쉽게 버리지는 못할 거에요. 그렇다고 다시 쓰지는 않을 것 같은데. 작업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려는 확신이 들려면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직접 만든 것이기도 하고 실수한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요.


이현주: 그 작업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그 과정에 의미를 뒀어요. 사람들이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요. 윤주는 고물상 같은 데 가서 모은 재료들로 새로운 걸 만드는 인물이다 정도였어요. 나중에 교수님이 세아의 작품이 더 좋다고 하면서 가능성도 좋지만 완성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죠. 세아의 작품은 참신하지 않지만 노력이 보이는 작품이고 윤주의 작품은 오히려 가능성에 가까운 작품이에요. 윤주와 지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면 가능성이 많은 관계는 아니죠. 그런 걸 대사에 넣고자 했어요. 연애 때문에 작업을 못하게 되고 결국엔 망치게 되는. 


관객: 윤주가 지수를 많이 따라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화장을 하고 지수가 입는 것 같은 코트를 입고. 담배도 바뀌었나요?


이상희: 혹시 담배 피우시나요? 그럼 아실 텐데. 여간해선 안 바뀌잖아요.(웃음)


이현주: 여성 둘이 연애를 하면서 서로 닮아가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의도한 대로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관객: 윤주와 지수 사이에 대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 답답했기도 했어요. 그중에 가장 답답했던 건 모텔 장면이에요. 갈등의 최고조인데 대화는 더 없고. 이런 식으로 자제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윤주였다면 지수가 떠난 다음에 바로 모텔을 떠났을 것 같은데 왜 아침까지 기다렸을까요?


이현주: 기다렸겠죠. 문자 하나라도 기다렸을 거예요.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과 여기서 내가 나가는 순간 우리는 정말 끝이 날 거라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 같아요. 사실은 지수가 간 순간 끝이 난 거지만. 그래서 원래는 그 모텔에서 윤주가 밤을 지새우는 장면을 찍기도 했어요. 중복적인 느낌 때문에 빠지긴 했지만요. 제가 생각하는 윤주는 집에 못 갔을 것 같아요. 그리고 왜 윤주와 지수가 대화를 안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요즘 식의 영화가 아니라 옛날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메시지 같은 것도 잘 등장을 안 해요. 통화를 하더라도 상대방 목소리를 안 들려주죠.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 알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자 했고요. 윤주의 감정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희 조연출 분도 뭐 하나 부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웃음) 저랑 촬영감독님은 더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터뜨리고 싶은 유혹은 되게 많았는데 “보고 싶었어”를 위해 아껴놓은 느낌이었어요. 둘이 대화를 많이 했으면 영화 톤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김소연: 되게 세련된 영화인 것 같아요. 20년 뒤에 우리가 느낀 감정이 유효할까, 이 가치가 그대로 전해질까를 생각했을 때 이 영화는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오랜 시간 뒤에도 색이 바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연출자로서 배운 게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상희: 감독님이 외국을 왔다 갔다 해서 정신이 없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옆에서 힘이라도 되고자 급하게 왔습니다. 언제나 저희 영화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 또 새롭게 봐주시는 분들 모두 너무 감사하고 편안하게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현주: <연애담>은 되게 작은 영화인데 지난해부터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독립영화들이 많은데 지난 해 열심히 홍보하고 다닌 덕에 ‘으랏차차 독립영화’에 선정되었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되게 좋았어요. 몸은 힘들지만 기쁜 마음으로 왔습니다.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이곳 인디스페이스를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게 많지만 봐주셔서 감사하고요, 김소연 감독님은 <연애담> 10주년에 또 진행을 봐주시길 바라요. 감사합니다. 



<연애담>은 일상적이고 간결한 톤으로 사랑과 연애를 이야기한다. 아는 사람인 것 같은, 평범하면서도 섬세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겪는 연애감정, 그들의 친구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까지 엮어내며 담담하게 연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지수와 윤주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속한 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일상이 평범해 보이지만 얼마나 굴곡진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 연애관계는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모험적이고 드라마틱한 행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인물에 공감하고 이입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게 된다. 끊임없이 해석되고 확장될 여지가 충분한 이야깃거리로서 영화는 사랑받아 마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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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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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곳에 가닿다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철원기행>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0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대환 감독, 배우 이상희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가족 간의 어색하고 불편한 만남에서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가족보다 서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바쁜 움직임이 다정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 서로가 저마다 각자의 가족을 위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하나뿐이었던 가족이 둘이 되고, 셋이 되며 어른이 된다. 때가 되면 남는 것이 과거를 향한 추억뿐일지라도 우리는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너무 당연해서 무관심해지고 마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볼 영화 <철원기행>이다.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이하 진): 안녕하십니까. 오늘 진행을 맡은 진명현입니다. 김대환 감독님과 이상희 배우님 모시고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대환 감독(이하 김): 안녕하세요. <철원기행>을 연출한 김대환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상희 배우(이하 이): 안녕하세요. <철원기행>에서 ‘혜정’ 역할을 맡은 이상희입니다. 반갑습니다.


진: 이전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철원기행> 개봉을 했었죠. 오늘 <철원기행>을 다시 봤어요. 볼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영화인 것 같아요. 먼저 감독님, 오랜만에 관객 분들 만났으니 최근 어떻게 지내는지 말씀해주세요.


김: 최근에 촬영을 끝냈어요.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한 달 촬영했고, 지금은 편집 중에 있습니다. 아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진: 그 작품에 대해 조금만 더 설명해주세요.


김: 동거하는 커플이 결혼을 막중한 벽으로 느끼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양가인 삼척과 인천을 하루씩 오가는 내용이에요. 두 군데를 오가며 변하는 두 사람의 생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직 가제인데 ‘초행’이라는 제목을 지었어요.



진: 이상희 배우님에게 <철원기행>은 어떤 작품이었는지요.


이: 이전엔 혼자 정처 없이 떠도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철원기행>은 관계가 많이 얽힌 영화고, 그러한 관계들을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접했어요. 그래서 많이 헤매기도 했고 선배님들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찍은 영화 중 관객으로서 유난히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해요. 되게 많이 봤거든요. 거의 열 번 가까이 본 것 같아요. 제가 *블로킹 꽝이거든요.(웃음) 블로킹에 대해서도 배우고, 카메라 무빙에 대한 블로킹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고, 상대 배우와 호흡하는 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어요. 그 다음 작업을 할 때 많이 도움이 된 영화에요.

*블로킹(BLOCKING)영화에서 블로킹은 주로 카메라를 기준으로 배우가 서야하는 위치 등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될 수 있으나, 더 넓은 의미에선 카메라 구도 내에서 배우의 행동 전체 계획을 의미한다. 영화배우는 연극과 달리 카메라의 위치와 숏의 종류를 반드시 확실하게 파악하고 연기에 임해야한다. 특히 숏의 종류에 따라 자신의 행동폭, 블로킹의 폭을 조절할 줄 알아야한다.  -‘영화연출’ (송낙원)


진: 이 작품이 이상희 배우님에게는 해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게 해준 작품이기도 해요. 또 3대 영화제인 베를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된 작품이기도 하죠. 제가 이 영화에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중국집 장면이에요. 조용하지만 거의 전쟁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장면인데, 오늘은 그 장면에서 제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이상희 배우님의 연기를 봤어요. 둘째 아들에게 수저를 건네는데 받지 않으니까 표정이 시무룩해지고, 다시 수저를 받으니까 표정이 변하더라고요. 정말 좋은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이상희 배우님이 연기한 혜정 캐릭터를 감독님은 어떻게 만들었고, 또 이상희 배우님은 어떻게 구체화 했는지도 여쭤보고 싶어요.


김: 사실 이 시나리오를 처음 구상했을 때는 등장인물의 관계가 지금과 같지 않았어요. 첫째 아들이 결혼한 상태도 아니었고 아버지의 퇴임식을 배경으로 한 것도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둘째 아들의 군 면회를 가는 가족의 이야기로 구성을 했거든요. 혜정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았죠. 그런데 초고가 너무 저의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부분을 배제하며 극적인 부분을 끌어내기로 했어요. 물론 이야기 자체가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건들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와중에 극적인 부분을 이끌어내기 위해 아버지의 퇴임식이라는 사건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의 나이대가 올라가면서 결혼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혜정 캐릭터가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같이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분이 있는데, 여성이고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며느리는 절대 가족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부모님하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어요. 그래서 이 말이 정말 충격적이었고, 며느리 혜정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이 속에서 고군분투할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혜정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혜정의 성격, 직업적 특성과 연결해서 어떻게 표현할까를 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캐스팅이 된 다음부터는 상희 배우님이 이런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했고요.


진: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고 어떻게 혜정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이: 제 생각에 혜정이라는 친구는 되게 애쓰는 사람이었어요. 가족들한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가족끼리 함께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 하죠. 물론 돈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사실 이 영화를 찍을 때 혜정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어요.(웃음) 작품 속에서 며느리라는 상황이 저를 혜정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시어머니와 불편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으면서 가족이 되려고 노력하는 그런 것들 말이에요. 선배님 두 분이랑 작품 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실제로 제가 두 분 사이에서 연기하면서 약간은 며느리처럼 애쓴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표현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진: 개인적으로 오늘 아버지 역에 집중해서 봐서 그런지 감독님이 이 영화를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될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영화 끝에 나오는 소리가 아버지의 개인적인 삶을 축하하는 축포처럼 들렸어요.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 때 중심이 되었던 생각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김: 제가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아들은 아버지와 가까워질 수 없나’ 하는 개인적인 질문 때문이었어요. 저희 부모님이 실제로 다 교직에 있고, 아버지가 철원으로 발령이 났었어요. 그래서 영화를 찍기 위해 로케이션 헌팅 겸, 철원에 대해서 알아볼 겸해서 매주 철원에 가서 아버지와 함께 지냈어요. 저는 그 전까지 제가 아버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함께 지내다보니 정말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죠. 어떻게 보면 궁금해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본 관객 분들이 ‘나는 우리 가족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진: 이상희 배우님도 영화를 여러 번 보았으니 좋아하는 장면이 많을 것 같아요. 어떤 장면을 좋아하나요?


이: 좋아하는 장면이 많은데, 변하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면, 아버지하고 아들 둘이 감자를 먹는 장면이요. 볼 때마다 눈물 쏟으면서 봐요. 되게 ‘웃프다’고 해야 하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서글픈데, 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표현이 되어있는 것 같아서 그 장면이 정말 좋아요.



관객: 혜정이라는 캐릭터가 박복한 며느리의 표상이고, 그러면서도 마냥 착한 캐릭터만은 아닌데,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듣고 싶어요.


이: 제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혜정이라는 캐릭터가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부모님이 눈에 띄었어요. 둘의 곁에서 작업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해서 하게 됐어요. 사실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원래 제가 그렇게 무언가를 많이 생각하지 않는 편이거든요.(웃음) 


관객: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의견이 다른데, 결국 큰 아들은 감자를 좋아하는 건가요?


김: 누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어머니는 감자를 좋아했던 아들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고 며느리는 아들의 현재를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감자의 설정은 이런 거였어요. 좋아하는 것도 많이 먹으면 질리게 되잖아요. 저한테는 양갱이 그랬어요.(웃음) 어렸을 때는 좋아했는데, 언젠가부터 손도 안 대거든요. 마지막에 아들이 감자를 한 번 베어 문 것은 2박 3일의 기간이 가족이 극적으로 화해하고 봉합되는 시간은 아니지만, 한 입 베어 문 감자처럼 서로 조금 더 알게 되고 가까워졌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에요.


관객: 영제가 ‘End of Winter’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 가족끼리 함께한 2박 3일을 계기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서도 가족에 대해 한 번 쯤 더 떠올리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감정의 변화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겨울의 끝에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목을 정했어요. 또 아버지의 정년퇴임 이후 제2의 삶에 있어서도 그런 제목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배경음악이 많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김: 취향인 것 같은데, 저는 음악이 많이 나오는 영화를 봐도 어떤 음악이 좋았더라, 하는 생각이 잘 남지 않아요. 물론 음악이 너무 좋아서 모든 트랙이 기억나는 영화들도 있지만요. 음악을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잃게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 가급적 음악을 쓰지 않으려고 했고 한두 포인트 정도 인상적으로 사용하고 싶었어요.


관객: 영화 초반 부에 군인들이 지나가는데 섭외한 건가요?


김: 섭외한 것은 아니고요, 영화 1회차 촬영 때 운이 좋게 장병들이 지나갔습니다. 



















관객: 극중 혜정과 큰 아들이 반지 낀 손가락이 다른데, 이유가 있나요?


이: 저희가 결혼을 안 해봐서 어느 손가락에 끼워야하는 지 몰랐어요.(웃음) 촬영이 조금 진행된 뒤에 발견을 해서 당황했었죠.


김: CG로 지울까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 질문을 몇 번 받았는데, 때마다 난처합니다.(웃음)


관객: 대구에서 올라온 영화감독 지망생인데, 감독님이 어떤 계기로 영화감독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어릴 때부터 영화 일을 해야겠다는 꿈이 있었어요. 제일 좋아하는 것이 영화 보는 것이었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감정으로 시작해서 찍을 수 있는 환경으로 갔던 것 같아요. 영화를 배울 수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서 영화를 찍어봤는데 <철원기행>을 찍기 전에 찍었던 두 영화는 완전히 망했어요. 그 때까지 저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보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좋아하겠지’ 생각하면서 현란한 영화를 만들려고만 했거든요. 그래서 <철원기행>을 찍을 때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 저도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입장에서 보면 크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연기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영화를 만드는 일은 자신이 없었고,(웃음) 연기는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진: 그럼 혹시 연기 말고 영화 제작 과정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이: 영화에서 모든 분들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촬영이 굉장히 멋있게 느껴지더라고요.


진: 오랜만에 인디스페이스에서 귀한 자리를 마련해주셨어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인사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김: 추운 날씨에 찾아와 영화를 감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면 더 좋은 이유들이 있잖아요. <철원기행>이라는 영화는 특히 영화 속 풍광과 분위기 때문에 더욱 그런 영화인 것 같아요. 오늘 스크린으로 관객 분들과 함께 <철원기행>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겨울은 끝을 향해 가고 있지만 여전히 살을 에는 듯이 춥다. 잃어버린 봄의 온기라는 감사함을 일러주려는 것일까. 아버지의 이혼 선언도, 폭설로 갇혀버린 2박 3일도, 잊고 있던 가족을 알게 하는, 그저 지나가는 폭풍이었나 보다. 우리의 게으른 본능은 무척 빠르게 적응해서 따뜻한 곳에 오래 있으면 그 곳이 따뜻한 곳인지도 잊어버리고 만다. 지금이 겨울인지도 잊고 만다. 창문을 열어야 비로소 ‘아, 겨울이었구나’ 얼마나 따뜻한 곳에 서있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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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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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한줄 관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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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 연민이 아닌 죽음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리뷰: 연민이 아닌 죽음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윤혁’은 말했다. 자신이 이렇게 아프지 않았더라면 이런 꿈을 꾸지 않았을 것이라고. 죽음이라는 것은 개인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일까. 우리 모두 삶의 끝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이것은 목숨을 걸고 지키는 비밀도 아니고 누군가가 알아서는 안될 금기도 전혀 아니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면서 일상의 문제들에 치여 죽음에 대한 생각은 저 멀리 밀려나고 마치 오늘이, 우리의 삶이, 영원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간다. 죽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일상의 문제로 놓이지 않는 한 좀처럼 그것을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 끝이 있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만들기를,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내도록 독려한다. 윤혁의 경우에는 이 일이 프로 선수도 두려워하는 ‘뚜르 드 프랑스’ 완주였다. 모든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49일간의 여정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런 결심을 함에 있어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칫하다가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시한부 환자’로서의 ‘이윤혁’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이룩하려 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이윤혁’의 여정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흔하게 등장하는 내레이션을 생략하고 흐름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몇 가지 정보들만 자막으로 간결하게 제공함으로써 외부의 목소리를 최대한 배제하고 관객이 윤혁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동류의 많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환자의 비극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환자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성취는 뒤로 미루어두고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바쁘다. 그러나 나는 이 같은 전개방식이 환자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오는 이기적인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한다. 윤혁이 자신이 암환자라는 사실보다 그가 이루고자 하는 성취에 집중해서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도전을 강행했듯이 이 영화는 억지 감동을 뒤로 미루어 두고 그의 여정에 집중하면서 관객이 윤혁의 입장에서 영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성공적인 구성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암환자’라는 자극적인 소재보다 한 젊은이가 꿈을 향해가며 겪는 갈등과 고난의 과정, 즉 윤혁의 시선에 집중하게 한다. 



이렇듯 영화는 비극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며 더욱 사실적인 묘사를 가능하게 했다. 현실에서 누군가가 불행을 마주한다면 우리는 그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할 수는 있지만, 항상 그 불행을 마주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불행을 의식의 저편으로 밀어두고 웃고 떠들고 대화하다 어느 순간 불현듯 다시 불행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갑작스레 다가오는 불행의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윤혁은 세 번 눈물을 보인다. 레이스 중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서, 레이스를 완주하고 나서, 레이스가 끝나고 아픈 자신을 병문안 온 지인을 끌어안고서. 이 지점들에서는 눈물을 참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에게 연민을 가진다는 것은 무척 무례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윤혁의 입장으로 영화를 따라가고 나면 그의 죽음에 대해 대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지고 만다. 그도 그렇지 않았을까.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마지막을 어떻게 떠나 보내야 할지. 영화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윤혁을 통해 윤혁을 보게 하고, 관객들에게 죽음을 향한 통상적인 시선의 변화를 화제로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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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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