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반도에 살어리랏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월 26일(금)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이용선 감독

진행 송경원 씨네21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서울에 한파가 지속된 한 주, 시원 서늘한 블랙 코미디 한 편이 인디스페이스에 도착했다. 이용선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연극영화과 시간강사이자 46세의 가장 준구에게 일생일대의 진로 고민을 선사하는 듯하다가 그의 선택을 배반하는 사건들을 연쇄시킴으로써 그를 조여 온다. 그렇게 영화는 속도감 있게 달려 나가다 어느새 우리 마음 한 구석을 찝찝한 서늘함으로 채워버린다. 극장 안팎의 냉기에 지쳤을 관객들에게 이용선 감독이 찾아 왔다. 특유의 서글서글한 말솜씨로 금세 극장 안을 따뜻한 분위기로 만들어 준 이용선 감독을 만나보자.






 

송경원 기자 (이하 송경원): 첫 장편 데뷔를 하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이용선 감독 (이하 이용선): 아직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아요. 꼭 개봉을 해야겠다고 거창하게 생각한 게 아니라 '내 작업이 별로일 수도 있겠지만,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하다 보니 개봉까지 하게 된 거거든요. 요즘은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고요,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감당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송경원: <반도에 살어리랏다>라는 제목이 특이합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에서 메인으로 하기에 독특하고 애매한 인물이 주인공이에요.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게 된 건가요?


이용선: '반도'라는 단어에서 '헬조선'의 어감과 비슷하면서도 덜 부정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살어리랏다'는 곧 '살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고요. 영화에서 그려지는 세상은 우리가 별로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이죠. 그런데도 이곳의 문제들이 개선되어서 계속 살아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주인공 준구에게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송경원: 보통 40대 중년의 아저씨를 장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는 쉽지 않잖아요. 관객이 인물을 따라가기도 쉽지 않은데다가 외형도 아름답다고 하기는 힘드니까요.


이용선: 일단 저는 매력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했어요, 아저씨로 작품을 만들면 사람들이 안 볼 거라고요. 사실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장르의 주인공들이 다 아저씨여서 그렇게 표현한 게 있고요, 처음엔 한국판 심슨 가족을 생각하면서 가족 캐릭터들을 구성했는데, 결국에는 심슨 가족 중에서도 호머 심슨과 바트 심슨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블랙 코미디 장르를 재현해보고 싶었어요. 객관적으로는 외적으로 아름답지 않다고 보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모습의 캐릭터들이 더 블랙 코미디에 어울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송경원: 저예산으로 이렇게 짧은 기간에 제작이 가능했던 비결이 무엇인가요?


이용선: 단편을 네 편정도 만들었는데, 그 중 두 편의 러닝 타임이 30분 정도였어요. 한국에는 중편이라는 개념이 잘 없어서 다른 감독님들도 30분을 넘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2950초짜리로 작품을 만들곤 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이야기를 좀 더 길게 쓰다 보니 30분 정도 되는 작품을 한 거고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더 길게 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시스템적으로도 단편에 투자하는 시간을 들여서 장편도 만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느꼈어요. 제가 청강대학교에서 협업을 하면서 작품을 만드는데, 그때마다 팀을 꾸려서 단편 한 편의 제작 기간을 10개월 기준으로 잡아요. 프리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을 제가 하고 10개월의 기간을 팀원들과 메인 프로덕션 하는 시간으로 삼으면 충분히 장편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섰습니다. 진짜로 해보니까 돼서, 작품이 완성됐습니다.


송경원: 아까랑 비슷한 대답이 나왔네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거고, 하니까 된 거고. 말은 쉬워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제작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게 무엇이었나요?


이용선: 체력적으로는 작화가 제일 힘들죠. '왜 안 끝나지?' 하는 생각을 매일 갖는데, 이러다가 작품이 진짜 끝나지 않으면 어떡하나 불안하기도 했죠. 또 다른 감독님들이 만드는 장편은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이 투자되는데, '나같이 해도 되나?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장편이 없는데, 내 작품이 가치가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계속 있었고요. 물론 저는 제 방식이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세뇌를 많이 시켰는데, 불안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해요.


송경원: 어떻게 보면 뻔한 얘기지만, 산업적으로는 그런 다양한 작업 방식이 필요하죠. 다양한 방식이 있어야 작품에도 다양성이 보장되는 거니까요. 이런 부분에 지원이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이용선: 인식을 빨리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지도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보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안정적인 표현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성인으로서 그게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 관객의 연령대를 높이고 싶었어요. 성인 분들이 봐도 가치가 있을 만한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작품이 많이 없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도 물론 했지만, 제가 조금씩 보여드리면 관객 분들의 생각이 전환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렇게 작은 가능성을 보고 배팅했던 것 같아요.

 





관객: 간단한 시놉시스만 봤을 때랑 영화를 다 봤을 때 주인공 캐릭터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감독님이 주인공에게 갖고 있는 감정,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용선: 절대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 주인공을 학대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고요. 작화를 할 때는 '내가 왜 얘의 콧수염을 일곱 개나 그렸을까. 세 개만 그릴 걸'하는 생각을 했는데, 열심히 연기해주는 것 같아서 고마워하기도 했어요.(웃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작품의 주인공을 계속 응원하게 되는 측면도 있지만, 절대 응원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감정적으로 떨어져서 봐야 하기도 하잖아요. 이 주인공을 통해서 관객 분들이 무언가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들을 작게나마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송경원: 추가로 질문을 드리자면 원래 이야기 짜는 걸 훨씬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 인물에 대해서 가졌던 느낌과 작화를 하면서 가졌던 느낌이 좀 달랐나요?


이용선: 작화를 해본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당연히 미울 수밖에 없죠. 그리고 저희가 시간이 부족해서 캐릭터 연습을 안 하고 작화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작화를 해나가면서 캐릭터의 형태들이 잡혔죠. 형태가 잡히기 전까지는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제작할 때의 힘든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들이네요.


송경원: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서 선 굵기가 달라지잖아요. 그런 것도 연출적으로 의도한 건가요?


이용선: 눈에 띄게 달라지는 부분들은 캐릭터의 감정을 좀 더 강하게 표현하려고 의도한 거에요. 특히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준구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부분은 준구를 악마처럼 표현하고자 한 것도 있지만, 롱테이크가 주는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한 컷을 선 변화 없이 평이하게 이어나가기 보다는 변화를 주면서 끌어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 변화를 줬습니다.


송경원: 그런 부분이 되게 좋았거든요. 같은 이야기라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 때, 애니메이션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를 바라요.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확실히 보이는 것 같아요.

 


관객: 아들이 초반에 아파트에서 친구와 불꽃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와요. 이 장면에서 숨통이 트이는 게 느껴졌어요. 혹시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긴가요?


이용선: 어떻게 아셨죠?(웃음) 최초 고백이에요. 제가 초등학교 2, 3학년 정도 됐을 때 옥상에서 파이프로 불꽃놀이를 했는데 경찰이 왔어요. 처음으로 경찰을 대면한 순간이라 엄청 무서웠어요.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이렇게 쉽게 범죄자가 되는구나 싶었죠. 관객 분들이 공감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겪은 이야기라 넣어 봤습니다.


송경원: 그 외에도 감독님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갔나요?


이용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저도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제가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고요.(웃음) 실제로 교수님들 취재를 했더니 '우린 안 그런데 어디서 그런다더라.' 하면서 여러 이야기들을 해주셨죠. 뉴스도 참고했고요.

 






관객: 궁금한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준구의 춤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과 준구의 목소리를 맡으신 이승행 성우님의 캐스팅 포인트가 궁금합니다.


이용선: 준구의 춤은 처음에는 없던 부분입니다. 작업을 하다 보니 스토리에 인과는 형성돼있는데 왠지 미완성이라고 느껴지더라고요. 이야기상으로는 말이 풀려도 관객이 감정적으로 해소할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멀리서 바라볼법한 시선도 필요한데, 이런 것들이 없으니 작품이 타이트하게 보이지 않나 싶었어요. 준구의 직업은 연기강사니까 표현을 더 강하게 하면 춤으로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고 처음에는 한풀이 춤을 구상했어요. 그런데 작화를 하다 보니 여건이 안 돼서 좀 더 작은 동작으로 하되 실사와 결합하는 아이디어를 내고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이승행 성우는 <화장실 콩쿨>(2015) 때 만났어요. 사실 그때 저는 성우 분과 처음 작업한 거였어요. 세 번째 단편까지는 그냥 학생들에게 연기 연습을 시켜서 작업했거든요. 그런데 이승행 성우께서 캐릭터와 너무 잘 맞게 잘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반도에 살어리랏다>를 할 때는 미리 연락을 드려서 부탁을 드렸고 이승행 성우와 함께 작업해 오신 분들까지 섭외가 돼서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송경원: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화장실 콩쿨>을 꼭 보세요. <반도에 살어리랏다>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감독님의 세계관을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감독님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으실 겁니다.


이용선: <반도에 살어리랏다>처럼 풍자적이긴 한데 <반도에 살어리랏다>보다 조금 더 가볍습니다. 30분 정도 식사하실 때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송경원: 춤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면서 다양한 어려움을 돌파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잖아요. 실사와의 결합도 그렇고요.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냈나요? 피나 바우쉬의 춤도 모델링 했다고 했는데, 그런 작업 과정도 짧게 알려주세요.


이용선: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처음에는 한풀이 춤을 표현하려 했는데 작화가 되게 어렵더라고요. 많은 작화 양이 요구될 것 같아서 그런 식으로 하기는 제작 여건이 힘들었고, 작화를 줄이더라도 효과적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프랑스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아이디어를 부탁했죠. 그러더니 손을 이용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노교수 최기호의 재수 없는 손가락이 포인트가 돼서 준구를 괴롭히면서도 준구의 춤과 화합을 이뤄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줬어요. 그리고 피나 바우쉬라는 무대 연출가 겸 무용가 분을 소개해줬는데, 그 분의 영상을 보니까 현대적인 한풀이 춤 같은 느낌이 있더라고요. 작고 짧게 움직이면서도 한이 가득 맺혀있는 것 같은 춤이에요. 여러분도 답답할 때 피나 바우쉬 영상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송경원: 그런 춤 장면을 삽입하다 보면 움직임에 집중해서 리듬감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엔 모든 걸 단순화시킨 대신에 다른 요소들을 살린 것 같다고 느꼈어요.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편집도 리드미컬하게 살렸달까요.


이용선: 편집을 좋게 봐주는 분들이 간혹 계셔서 정말 감사해요. 본의 아니게 <라라랜드>(2016) 포스터를 패러디 했잖아요? 패러디 할 만한 요소들이 충분히 있어서 결정하게 되었는데, 제가 <라라랜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을 굉장히 존경해요. 얼마 전에 <라라랜드> 콘서트도 다녀왔는데, 사실 <라라랜드> 보다 <위플래쉬>(2014)를 더 좋아해요. <위플래쉬>를 보고 편집 타이밍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과감한 편집에도 관객들이 열광하는 걸 보고 설명적인 부분을 빼고 더 리드미컬해져도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여담이지만 제가 빠른으로 치면 그 분이랑 동갑이에요.(웃음) 공부를 하면서 자괴감도 느끼고 자극도 받았습니다.

 






관객: 블랙 코미디를 구상한 다음 스토리로 연결하는 과정, 이야기를 짜는 과정을 말씀해주세요.


이용선: 이 시나리오는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생각하면서 했어요. 제가 흥미롭게 봤던 것들, 예를 들어 미국 드라마 <오피스> 같은 작품을 떠올리면서 그걸 한국적으로 어떻게 변형시킬 수 있을까 고민해보는 거죠.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내가 제일 흥미롭게 생각하는 나이 대를 정하고 그 나이의 인물에 맞춰서 가족관계를 정해요. 그 다음 인물의 직업을 정해요. 그러고 나면 이 인물이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가 생기거든요. 더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사건들을 붙여나가요. 그 사건들의 흐름을 맞춰나가면서 관객 분들에게 감정적인 재미를 주기 위해 캐릭터가 가진 가치나 욕망을 괴롭히는 요소들을 만들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갑니다.


송경원: 요새 '한국적'이라는 표현에 꽂혀있어요. 뭐가 한국적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걸 봤을 때 이게 한국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반도에 살어리랏다>를 보면서도 그걸 느꼈거든요.


이용선: 관객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이 작품이 외국에서 상영되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한국 분들이 봐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분들이 영화의 요소요소들에 어떻게 반응할까를 고민하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송경원: 결국 지역 정서를 결정하는 것은 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죠. 이 영화의 제목, 그리고 캐릭터의 기괴함이 우리의 얘기처럼 와 닿아서 말씀하신 대로 성인용 블랙 코미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용선: 사실 한국에는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의 사례가 별로 없어서 이 작품을 통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습니다. 비슷한 작품이나 비교할 만한 작품이 많으면 함께 소개가 될 텐데 이 작품은 희귀한 사례이니까요. 일단 한국에서는 연상호 감독님이 장르적이면서도 장르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닌 애니메이션 작품 활동을 많이 하긴 했지만, 블랙 코미디는 아직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정서잖아요. 그래서 고민이 많았죠.


송경원: 연장선상에서 조금 짓궂은 질문을 드리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을 하는 이유,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산다는 것의 무게감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어요?


이용선: 무게감은 없어요. 무게감은 인기가 있어야 생기는 거죠.(웃음) 애니메이션을 계속 하는 이유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조심스러운데, 사실 자기가 정말로 뭘 좋아하는지 정확히 모르잖아요. 살면서 그걸 찾아내기가 힘들기도 하고요. 저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그런데 생각을 해봤더니 제가 처음으로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샀던 책이 애니메이션 책이더라고요. 그걸 나중에 알았어요, 처음으로 공부하고 싶어서 산 책으로 계속 공부하고 있었다는 걸. 제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는 걸 되새기면서 작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송경원: 앞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마지막으로 짧은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용선: 솔직히 말씀 드리면 앞으로 뭘 선택할지에 대해서 많은 유혹이 있어요장편을 그럴싸하게 만들어보고도 싶고시트콤이나 판타지도 해보고 싶고요<똑바로 살아라>라는 시트콤을 진짜 좋아하거든요그런 시트콤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게 제 작은 꿈이고요관객 분들에게 비주얼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는 판타지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오늘 진짜 춥더라고요제 머리가 얼어서 오늘 제대로 이야기를 못 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 드려요이 작품을 잘 이해해주실 관객 분들께서 와주신 것 같아서 다행이고요영화는 감독이 만든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라 관객 분들이 도와주셔야 가치가 생기는 것인데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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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연출, 연기  인디포럼 월례비행 <어딘가의 경계 : 연출 그리고 연기>  대담 기록


일시 2017년 12월 27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은선 감독, 정가영 감독, 김보람 감독, 박현영 감독

진행 송효정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여성 감독들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빼면, 4편의 영화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한 데 묶여 관객들을 찾아온 이유는 있지 않을까.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머리를 떠나지 않던 고민이다. 영화가 끝난 뒤 긴 시간동안 진행된 인디토크에서는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송효정: 연출도 하시고 연기도 하시는 네 분의 감독님들 모시고 이 자리를 마련해 봤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3편의 극영화, 1편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는데요, 모두 어떻게 영화를 만드시게 됐는지 긍금합니다.

 

김은선: 원래 배우를 하고싶었습니다. 연기를 배웠고 계속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는데 연락이 안 왔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전시회 검표 알바를 실제로 했는데, 전시회의 작품들을 보면서 '나라고 작품을 못 만들겠냐'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송효정: 정가영 감독님은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력도 화려합니다. 처음에 영화는 어떻게 시작했는지, 만들어 온 영화들은 어떤 영화들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정가영: 처음 <중고나라>라는 작품을 보고 좋은 느낌을 받아서 김은선 감독님에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장편 찍을때도 김은선 감독님이 많이 도와줬고, 실제로 친한 사이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함께 영화작업을 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다른 꿈들에 매진하다가 다시 영화를 찍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장편은 두 편, 단편은 열 편 정도가 됩니다. 한 해에 세네 개 정도 작업하는 것 같습니다.

 

송효정: 김보람 감독님은 <개의 역사>라는 다큐를 찍으셨습니다. 작품들이 대부분 사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인데요. 다큐멘터리에 입문했던 계기가 궁금합니다. 본인의 작품들을 엮어서 설명해주시면 자기소개가 될 것 같은데, 작품들의 내용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보람: 대학교 졸업하고 2년 반정도 취업을 못 했습니다. 시간이 남아서 극장에 많이 갔습니다. 혼자 가도 어색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독립영화를 많이 봤는데요, 당시 봤던 다큐멘터리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잡지사에 취업하고 나서 개인적으로 좀 힘들었는데, 회사 생활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미디액트에서 다큐멘터리 만들기 수업을 들었습니다. 영상을 찍다보니까 막혀있던 내 문제점들을 해소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하려고 했던 문제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볼 수도 있었고, 다큐를 찍으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 다큐를 찍고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독립의 조건>이라는 50분 짜리 작품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독립을 하기 위해 했던 생각을 담은 작품입니다. 당시가 서른 즈음이었습니다. 성인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왜 그게 안 되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했던 걸 담으려고 했습니다. <독립의 조건>을 찍을 때는 독립을 못 한 상태였는데 <개의 역사>를 찍을 때는 독립을 했습니다. 그 때 살던 동네에서 사람들과 백구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송효정: 감독의 인생이 설명되는 것 같습니다. 박현영 감독님은 배우를 오래 하셨습니다. 지금도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기도 하고요. 어떻게 영화를 찍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출연이력도 말씀해주세요.

 

박현영: 대학생 때인데요, 이 얘기 하면 너무 시조새라고 하는데. (웃음) 영화잡지 '키노'가 창간되고 이랬던 때에는 잡지들이 나오면 가판대로 달려가서 사고, 포스터 사고 이런 문화가 있었습니다. 낙원상가 가서 영화 보고요. 영화는 좋아해서 영화와 관련된 뭔가를 하고 싶은데 뭘 해야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때 신문 공고를 보게 됐습니다. ‘홍상수 감독 두 번째 영화 여주인공 공개 오디션이라는 단신을 봤습니다. 그 당시엔 한국영화가 지금처럼 대세가 아니었는데, 홍상수 감독의 첫 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빌려 봤습니다. 보면서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그 뒤로 연기 오디션을 오랫동안 봤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 캐스팅 된 듯해요.

 

 




송효정: 관객석으로 마이크를 넘겨보겠습니다. 궁금하신 점 있으면 손 들어주시면 됩니다.

 

관객 : <결혼전, 투> 김보람 감독님께 질문드립니다. 대본이 없이 찍은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김보람: 대본이 없었습니다. 7가지 정도 주제를 가지고 하루에 하나씩 이야기를 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중간에 싸워서, 그 중 2번인가 3번 정도 촬영을 하다 그만둔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7가지의 주제는 영화 안에 대부분 다뤄져 있어요.


송효정: 본인의 이야기를 찍기 때문에 어느정도 예상을 하고 찍게 되는데, 예상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면 편집할 때 고민이 생기진 않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람: 이런 작업을 하다보면 내가 얼마나 바보같았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찍으면서 내내 그랬던 것 같은데요, 이 작품을 만들 때는 예상치 못한 바보같은 부분을 최대한 넣으려고 했습니다.

 

송효정: 자학과 긴장 사이의 균형이 잘 맞춰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결혼전,투>의 촬영이 서로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나요?

 

김보람: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정확히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을 찍으면서 많이 싸웠어요. 작품을 찍고 한 달 정도 편집을 하는데 편집하는 내내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말도 당시 기분에 따라 바뀌었던 것 같은 기분이고요. 관계가 작업 과정에 영향을 줬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만들고 같이 보면서, 당시에 만나던 분은 자기의 뜻이 온전히 반영된 편집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의했던 건 서로 얼마나 바보같은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나 하는 지점입니다. 실제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정가영: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헤어진 상태에서 전남자친구 3명을 찾아가서 다큐를 찍은 적이 있는데요. 찍을때는 모두 동의했어요. 어디든 작품 내고 잘 쓰라고. 그런데 찍고 나서 편집본을 보내줬더니 말이 바뀌었습니다.

 

송효정: 다큐라서 사실이고, 극영화라서 허구고, 하는 구분법이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정가영 감독님의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는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많은 분들이 헷갈리실 것 같습니다.

 

정가영: 모두 붙여서, 끝을 내려 읽어야합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조인성이었습니다.(웃음) 시나리오에서부터 조인성만 생각하면서 작업했습니다. 실제로 <더 킹>을 본 뒤에 꿈에 조인성씨가 몇 번 나왔습니다. 장편영화를 준비하면서 기계처럼 움직이는 게 답답해서 충동적으로 이 시나리오를 만들고 조인성씨의 소속사에 연락을 해서 시나리오를 보냈습니다. 보내고 나서야 왜 또 사고를 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밤 11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감독님 저 조인성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렸고요(웃음). 그렇게 실제로 통화를 하게 됐습니다. 이야기가 애매하게 돼서 다음날 또 통화를 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일 이야기를 하다가, 사적인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영화 재미있는거 뭐 봤냐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송효정: 김은선 감독님의 <문화와 생활>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하루입니다. 주인공이 별 일 없이 생활하다가 저녁에 갑자기 학원을 찾아가는데, 그 계기는 뭐였을까요.

 

김은선: 별 건 아닌데, 예를 들어 같이 일하는 직원과의 대화 속에서 뭔가를 느꼈을 수도 있고, 팜플렛 같은 것들을 모아 보다가 느꼈을 수도 있고, 지나가다 구경한 발레 공연 같은 것들에서 느꼈을 지도 모르는. 그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주인공을 움직이게 했을 것 같습니다.

 

정가영: <문화와 생활>을 따로 봤습니다. 실제로 엄마가 편의점을 오픈했는데, 주인공이 영화 안에서 3만원 환불하는 거 보고 '어떻게 저런 디테일을 넣을 수가 있지' 라고 생각했어요.

 

김은선: 주인공의 하루 안에 사소한 아쉬움들을 더 주고 싶었습니다. 내가 취하고 싶었지만 친구가 취했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지만 못 만났고그런 작은 비극들을 겪게 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박현영 감독에게 궁금했던 점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연기를 하기 위한 방편으로 찍었다고 하셨습니다. 연출 작업을 해 보니까 연기와 연출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박현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못했습니다. 연출도 하고 연기도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릴거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특히 주로 스스로의 모습이 장면을 차지하니까, 내가 생각한 대로 스스로 혼자 하면 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아요. 다만 감독일 때는 모니터 뒤에 있어야 되고 배우일떄는 카메라 앞에 있어야 되는데, 오가는 게 잘 안돼서 모니터 앞에 계속 있으니 스탭들이 힘들어했습니다. 연기 하면서 모니터를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연출도 하면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니까 좀 힘들었습니다.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스스로가 카메라에 찍힌다는 경험 자체가 충격적이었는데, 이젠 편집하고 그러는 과정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생경하진 않습니다. 감독이 배우에게 원하는 것이 뭔지를 바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조금 더 생긴 것 같습니다.

 

송효정: 정가영 감독도 스스로가 많이 출연하지 않았으셨나요?

 

정가영: 반 정도 출연했어요.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는 실제의 나를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편하고 즐거웠습니다.

 

송효정: 시나리오는 실제로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정가영: 실제로 썼습니다. 다만 시나리오 상에서는 조인성과의 통화가 실제로 그렇게 길진 않았습니다. 촬영 과정에서 4번정도 테이크를 갔는데 조인성씨가 애드립을 많이 준비해줘서, 소스가 많아 편했습니다. 조인성씨가 영화를 아직 보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같이 술을 한 번 마셨는데, 1차에서 끝났습니다. 더 훌륭한 감독이 돼서 23차 갈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웃음)

 


관객: 감독분들 모두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이번 작품 뿐 아니라 혹은 평소에라도, 어떤 영화나 다른 감독들에게 영향을 받은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은선: 영화보다 연극을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서정적이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영화들을 좋아했습니다. 화가 마크 루스코나 니체에게 영향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김보람: <결혼전, 투>를 찍을 때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아녜스 바르다입니다.

 

정가영: 홍상수를 사랑하고 좋아해요. <더 킹>의 한재림 감독도. 아무래도 제 영화에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물들이 나오다 보니까 주변에서 캐릭터들을 더 많이 넣으라고 하는데, 그런 조언을 들으면 오히려 더 한정된 공간에서 더 한정된 캐릭터를 쓰려고 합니다. 이런 주변의 말들에서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박현영: 딱히 어떤 한 작품을 이야기하긴 힘든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고전영화를 좋아하고 흑백영화에 나오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흑백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여러 이유로 힘들게 돼서 차선책으로 색채를 많이 뺐어요. 신비주의 사상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송효정: <정화된 밤>은 많은 알레고리로 가득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전작인 <탈리타쿰>과 이어지는 작품이라고 느껴졌고, 이어지는 한 편이 더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관객: 김은선 감독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연기를 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는데, 영화를 만듦으로써 연기 철학에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연기를 하는 입장이랑 영화를 만드는 입장은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또 지금은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도 여쭤봅니다.

 

김은선: 이 영화를 찍으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똑같은 장면들을 가지고 다르게 편집하면서 위로가 됐습니다. 뭔가를 했다는 것 그 자체, 그 시간만으로도요. 어딘가에서 상영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고 이 과정 자체가 힘이 많이 됐습니다. 이 시기 이후로 욕구를 얼마간 해소한 느낌이 듭니다. 연기가 아니더라도 어떻게 인생을 채울지도 고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연출은 너무 겁 없이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출은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송효정: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은선: 추운날 따뜻한 차 드시면서 행복한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김보람: 다른 작업물들 보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가영: 조심히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조인성 배우님이 <안시성> 촬영중이라고 하는데요.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박현영: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도와준 인디스페이스, 인디포럼에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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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시켜준  <피의 연대기>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월 18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보람 감독 | 박이은실 작가 ('월경의 정치학' 저자)

진행 최지은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생리에 관한 얘기를 꺼낸다는 건 금기에 가까운 시절이 있었다. 감추고 숨기고 움츠러들수록 생리를 둘러싼 소문들은 무성해지고 생리를 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묘하게 뒤틀어졌다. 생리란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아무도 귀띔해주지 않았다. 생리통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온다는 사실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들은 일찍이 깨달았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삶의 한 패턴으로 자리잡은 생리라는 것이 일종의 생존반응이라는 것을 말이다. 생리란 인간이 숨을 쉰다는 논리만큼이나 사소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이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명백한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총 2년이란 제작기간과 90분의 러닝타임을 거쳐 한 시간 동안의 대화가 필요했다. 상영 이후 최지은 기자의 진행으로 김보람 감독, 박이은실 작가가 함께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최지은 기자(이하 최지은):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과 작가님께 궁금했던 점과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점에 대해 관객 분들과 이야기 나눠보고자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피의 연대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모두 봤으면 해요. 단지 교육적이고 좋은 영화임을 넘어서서 보는 재미까지 있었습니다. 우선 제목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싶고, 이 작품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보람 감독(이하 김보람): 영화 초반에도 등장하지만 제가 15년도 가을에 네덜란드 여성들과 우연히 생리에 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그들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의미로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파는 물건들이 거의 다 메이드 인 차이나더라고요. 근데 마침 저희 할머니께서 천을 엄청 떼와서 생리대 주머니를 만들고 계셨어요. '이거다!' 싶어서 생리대 주머니를 선물해줬고 그게 사건의 발단이 됐어요. 서구 여성들은 탐폰을 많이 쓴다는 사실을 어쩌다 들어보긴 했지만, 한국의 여느 친구들처럼 당연히 생리대를 쓴다고 생각했던 거죠.  서양여성들은 탐폰을 쓰고 한국여성들은 생리대를 쓰는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저는 연출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짧은 단편을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자료 탐색 차 구글링을 하던 중 우연히 2015년에 영미권 국가에서 엄청난 생리 이슈가 쏟아져 나왔다는 걸 알았죠. 그렇게 오프닝 시퀀스를 만들게 됐고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는 해볼 가치가 있다고 느낀 지점이 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어떤 자료가 있나 검색을 해봤는데 딱 그 시기에 출간됐던 책이 '월경의 정치학'이였어. 바로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선생님께 의견을 전했어요. 사실은 그 책이 저에게 있어 의지할 수 있는 근간이자 바이블이었고 영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결국은 2년의 시간이 지나 선생님과 함께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최지은: <피의 연대기>는 생리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들, 다양한 정보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영화에요. 여러 기사를 보면 생리에 대한 위키피디아이런 소개를 하기도 하는데, 흥미로웠던 부분은 감독님의 인터뷰를 보면 생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고, 마켓 피칭에 나가도 과연 이게 90분짜리로 만들어지겠냐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월경의 정치학' 서문도 월경에 대한 책을 쓰겠다 했을 때 주변 반응이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시작을 해요. 때문에 선생님께 어떻게 해서 월경을 주제로 한 권의 책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질문하고 싶어요.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나요?

 

박이은실 작가(이하 박이은실): 저는 여성학자로서 페미니즘을 주로 다뤄요. 페미니즘에선 여성의 몸과 그 차이에 주목하는데,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명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여성의 몸은 다르다는 입장에도 여러 가지 관점이 있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월경이라는, 매달 피를 흘린다는 사안은 오랫동안 종교와 과학, 의학 분야까지 영향을 미쳐서 중요하게 다뤄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연구는 지금까지도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과 차이가 어떻게 다뤄지는가를 꼭 연구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렇게 공부를 하고 책을 쓰게 되었는데, 출간되고 나서 얼마 후에 감독님이 찾아왔어요. 책에 관심을 갖는다는 자체가 너무 반가웠고 마치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그만큼 저 또한 힘이 되었고요. 독서를 안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니까 책은 접근성이 떨어질 위험성이 있어요. 이 영화는 중요한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다루면서도 전달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월경에 대해 얘기하는 이 영화의 존재가 너무 소중해요. 영화를 한 장소에 모여 다 같이 본다는 사실이 기쁘고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최지은: 영화 타이틀에서 '연대기'라는 단어가 'Chronicle(代)'로서의 연대기지만 여성들의 '연대(連帶)'라는 중의적인 의미도 있어요. 영화에는 사람들이 공적인 장소에 모여 월경을 화두로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많이 담겨있어요. 감독님이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도 내레이션을 통해 드러나고요. 월경에 대한 시행착오 역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들일 것 같아요. 두 분은 월경에 관한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나요?

 

김보람: 영화 스태프 중에 음악감독님만 유일한 남성분인데, 마지막 음악 수정작업을 진행할 때가 생리가 거의 끝나가는 시기였어요. 음악 작업실에서 작업을 마치고 안녕히 계세요하고 일어나는데 의자에 검은 점 두 개가 찍혀있는 거예요. 그걸 보고 설마 하고는 바로 화장실에 가서 확인했는데, 생리혈이 조금 새있더라고요. 그래서 음악감독님께 말씀 드려야겠다 하고서는 아직도 깜빡 하고 말씀을 못 드렸네요! 잊고 살다가 질문 받은 순간 생각났어요.(일동 웃음) 다음에 뵈면 꼭 말씀 드려야겠어요.

 

박이은실: 초등학생 때 겪은 일인데요, 제 위로 언니 둘이 있어요. 여동생들은 언니의 옷들을 자주 탐하잖아요. 그때 당시에 언니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예쁜 파카를 하나 샀는데, 밝은 색의 옷이었어요. 그 옷을 몰래 입고 나갔다가 실수로 생리혈을 조금 묻힌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고민하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서는 모른 척하고 옷을 걸어놨어요. 그 뒤로 아무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아마 엄청난 일이 있었나봐요.(웃음)

 






최지은: 감독님께서 영화 작업을 한 지난 2년 사이에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나면서 한국에서도 전에 비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는 계기들이 생겨난 것 같아요. 생리대 가격문제와 유해물질 파문도 있었죠.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이제는 좀 더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발전적인 상황이라 생각하는데, 정작 감독님께서는 영화 속 인터뷰이를 섭외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어요.

 

김보람: 초반에는 저희가 열 분 정도 섭외를 하면 한 분 정도만 응해주셨어요. 보수적인 조직에서 사회활동을 하시는 분들, 예를 들면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님 같은 분들 위주로 섭외를 시도했어요. 하지만 쉽지 않았고 결국에는 지인방사형으로 섭외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처음 섭외한 분은 PD님의 친구들이었고 두 분 모두 기혼자였어요. 그분들을 인터뷰 하며 참 재밌었던 게 ‘우리는 이미 결혼도 했으니까 상관없어하시면서 인터뷰에 응해주셨고, 또 다른 기혼자를 소개해주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아직도 결혼 전에 뭘 했는지가 한국 사회 여성들을 옭아매는 하나의 프레임이란 사실을 절실히 느꼈습니다나중에는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저희를 프로젝트 진행자로 소개하면서 연락을 드렸어요. 인터넷 상에서 찾은 사람들에게도 무작정 연락을 했고 해외 쪽도 마찬가지로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부탁했습니다. 운이 좋았던 게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생리가 이슈였던 시기여서 어떤 시점이 되고 나니 굉장히 흔쾌히 섭외에 응해주셨어요. 실제로 한 공무원 집단에 속한 여성분들께 섭외를 요청했는데, 인터뷰는 어렵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많다고 하시면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셔서 안타깝기도 했어요. 또 지방에 거주하는 여성분들, 그리고 육체노동직 종사자 분들을 정말 섭외하고 싶었지만 무산된 이유는 예산문제가 컸어요. 타지역에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관계를 쌓는 게 필요했지만 불가능했어요. 그 점이 영화의 한계점이자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해요.

 

최지은: 예산에 대한 얘기를 하셨는데, 2년이라는 제작기간 동안 큰 돈이 필요해서 '엄마펀드'에 손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는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예산 문제를 해결하신 과정을 여쭤보고 싶어요.

 

김보람: 피칭에서도 영화의 기획안을 보고는 반응이 안 좋았어요. 연출 경력도 없었고 영화적이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고요. 그래서 더더욱 영화 경력이 있는 스태프들로 팀을 꾸렸어요. 제가 작가 출신인데, 노동에 비해 받는 수당이 너무 초라하고 내 노동이 소진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때문에 일하는 모두가 억하심정을 가지면 안 된다, 우리는 절대로 열정페이로 일 안 한다, 스태프들이 어디 가서 합리적인 보수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게 하자고 PD님과 의논했어요. PD님과 제가 각자 돈을 준비해서 투자하고 엄마펀드의 힘을 빌리기도 하면서 버티다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와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어요. 투자형 펀딩이었기 때문에 수익이 나면 다시 돌려드리는 구조였습니다. 그렇게 해야 투자해주신 분들이 이후에 어떤 영화에 투자하더라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봐주실 것 같았어요.

 

최지은: 하지만 아직 감독님과 PD님은 본인의 인건비를 받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관객 수가 어느 정도 돼야 가능할까요?

 

김보람: 배급사에 여쭤보니 5만정도가 돼야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요 근래에 다큐멘터리가 5천관객 넘기기도 힘들거든요. 꿈의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최지은월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불결한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고, 또 여성들만이 하기 때문에 성적인 이미지로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월경을 하는 본인도 월경이 더럽기 때문에 감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여성성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경계심도 가지고 있죠. 월경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순간, 위협과 편견이 작용할 수도 있고 스스로가 성적 대상화가 될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월경을 감추고자 하는 강박이 생기는 것 같아요. 화장실을 갈 때 생리대를 감춰 들고 간다든지,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곳에서만 생리대를 사고 검은 봉투에 넣어간다든지, 암묵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감내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에도 보면 얼굴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여성 인터뷰이들이 있잖아요. 모자이크나 블러 처리를 한 게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표정을 살려서 보여주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서도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아요.

 

김보람: 영화는 일단 재미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또 생리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편안한 경험을 주고 싶었고 진입 장벽을 많이 낮추고 싶었어요.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지만, 극장까지 와서 영화를 봐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방송사에서는 일방적으로 구성을 주고 그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섭외하는데, 저희는 무조건 자신의 스타일과 표현력이 확고한 감독님을 섭외했고 대략의 구성과 내레이션 정도만 드리고 작가 분이 해석한 대로 작업하기를 요청했어요. 저 또한 삽입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요. 인터뷰 장면에서도 애니메이션으로 표정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게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거든요. 그런 사소한 부분들까지 관객 분들이 다 알아주신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감사해요.

 

최지은: 생리란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삶의 패턴인데, 남성들에게는 완전한 무지의 영역일 거라 생각해요. 여성들만이 하기 때문에 성적으로 보는 경우도 많이 목격했어요. 온라인에서 본 짤막한 글인데, ‘여자애들 중에 안 그럴 것 같은 순수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애들도 생리를 한다는 게 귀엽고 신기하다라는 글이었어요. 이런 뒤틀린 시선에 대해 한 페미니스트는 생리가 혐오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생리혈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자체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을 표했어요. 이와 똑같은 메시지를 담은 장면을 <피의 연대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죠. 감독님이 직접 이마에 카메라를 달고 생리컵을 비우는 장면을 찍었는데, 이 장면을 찍고 편집하기까지 여러 고민을 하셨을 것 같고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아요.

 

김보람사실 영화에 제가 등장할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처음에는 어떤 여성 주인공을 쫓아가는 형식으로 영화를 찍으려 했는데, 몇 년 후에는 그 분이 출연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취재를 가거나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카메라에 잡히게 되니까 주인공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느낌이 들어서 직접 나서기로 했어요. 생리컵을 비우는 장면에 있어서는 두 가지 옵션이 있었어요. 제가 직접 고프로를 머리에 차고 촬영을 하는 것과 촬영감독이 들어가서 저의 모습을 찍는 선택지가 있었는데, 생리는 정말 개인적이고 혼자 하는 일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그 부분을 살리고자 혼자 촬영하기로 결심했어요. 또 옆에 있는 카메라에 대고 생리컵을 보여주고 씻는 행위를 한다는 자체가 작위적으로 보여질 위험성도 고려했고요. 사실 그 장면을 저만 촬영한 게 아니고 저희 PD님도 참여하셨거든요. 저는 키가 작은 편이라 화면구도나 높이, 보여지는 정도가 딱 좋았는데, PD님은 키가 크셔서 화면도 많이 불안정했어요. PD님 컷은 결국 넣지 못했습니다.


최지은: 생리컵뿐만 여러 가지 다양한 생리 용품이 등장하는데, 어떤 것을 선택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의 선택지를 넓혀가느냐에 따라 그만큼 자유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어요. 여성들이 좀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면 불안감도 줄어든다는 것 또한 체험할 수 있었어요.

 






관객: 저 또한 월경에 대한 자료를 찾다 '월경의 정치학'을 읽게 됐습니다. 책에는 말레이시아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로 나와서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아쉬움이 채워진 기분이라 좋았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가족들과 함께 월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감독님께서 어떻게 가족 분들과 얘기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고, 작가님께는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여성들 사이에 비슷하거나 다른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를 질문하고 싶어요.

 

김보람: 그 촬영이 저희 가족 모두에게 좋은 경험으로 남았어요. 사실 영화가 아니었으면 그런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그 장면을 촬영하게 된 계기는, 연령대별로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희 가족의 연령대가 8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더라고요. 제작비도 아끼고 한 큐에 끝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싶었어요. 친척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다 모이는 게 쉽지 않았는데, 마침 외국에서 생활하던 삼촌이 한국에 오신다고 하셔서 다 모이게 됐어요. 영화에는 담지 못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정말 많았어요.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저희 집이 이모님들은 일곱 자매고 막내 삼촌이 한 분 계시거든요. 딸만 있는 집안에 아들이 태어나니까 너무 놀랍고 신기해서 이모들이 삼촌을 업어주려고 하는데 혹시나 성기 부분이 아프진 않을까 걱정했다는 얘기,(일동 웃음삼촌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막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마음 아팠던 이야기도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계속 딸만 낳으시니까 주위 마을 분들이 또 딸 낳았네라는 말을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나중에는 할머니께서 아이를 낳으면 아무도 안보는 새벽에 몰래 나가서 미역을 빨았다고 해요. 나중에 가서는 가족들끼리 막 웃다가 울고 난리가 났었죠.

 

박이은실: 말레이시아는 다문화 사회예요. 미국처럼 굵직한 문화가 있고 모든 나라가 흡수되는 그런 의미의 다문화는 아니지만, 각각의 문화들이 나란히 살고 있는 다인종,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에 문화 간 차이를 알아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 몸에 체화된 한국 문화들이 있죠. 한국에서 듣고 관찰한 문화가 한국만의 특징인지, 아시아 혹은 전세계적인 현상인지가 궁금했어요. 당시 80년대 영미권에서 나온 인류학적인 책들도 몇 권 있었지만 아시아를 다루는 자료는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월경을 다루는 책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했어요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차이는 단지 아주 약간의 차이였어요. 제 강의를 듣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여성들의 답변이 말레이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와 대동소이 하다는 판단을 했어요. 저는 굳이 피를 흘리는 주체를 여성의 몸이라고 표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어요. 그냥 월경을 하는 몸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아요. 왜냐면 여성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잖아요. 항상 월경을 하는 것도 아니고, 월경을 안 하는 여성은 여성이 아닌지도 생각해봐야 될 문제예요. 영화에서도 한 여성이 초경을 하고 축하해, 너도 이제 소중한 몸이 됐구나라는 소리를 듣고 월경을 하기 전 내 몸은 소중하지 않았나 의문을 가졌다고 증언하죠. 그렇듯이 월경이 중요한 사안이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해야 하는지도 굉장히 중요해요. 사회에서 월경에 대해 중대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죠. 그런 이유들의 가장 밑에 깔려있는 것은 여성의 몸이 표준이 아니라는 판단이에요. 표준의 몸이란 월경을 하지 않는 사람의 몸인 것이고 거칠게 표현하자면 남성의 몸인 거죠. 때문에 월경을 하기 전에는 표준의 몸에 가까웠다가 월경을 하기 시작하면 표준에서 탈락한 몸이 돼버리니까 부끄러워지고 감출 것도 많아진 거에요. 이제는 우리가 다르게 생각해봐야 해요. 우리 개개인의 몸이 타인의 몸과 다르다는 건 명백하고 당연한 사실이예요. 어느 몸도 표준이라 할 수 없어요. 또 표준을 정하고 거기에 부합해야 할 이유도 없어요. 그래야지만 언제든지 월경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 할 수 있어요. 어떤 분이 지하철에서 제 책을 읽다가 슬그머니 감췄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겉 표지에 월경의 정치학이라고 크게 써있으니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거죠. <피의 연대기>가 너무나 소중한 이유는 모두가 같이 앉아서 영화를 보고 월경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는 사실에 있어요. 내 몸이 표준의 기준에서 탈락된 몸, 이상적이지 않은 몸, 감춰야 할 몸이 아니라 이 몸도 괜찮다라는 생각의 경험이 중요해요.

 


관객: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큰 영화관에서 같이 봐서 울컥했어요. 생리통을 느끼면 여자들끼리는 아프다고 얘기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지만, 직장에서 남자 상사에게 생리통이라 아프다는 얘기를 쉽게 할 수 없잖아요. 때문에 진통제를 먹으며 참아내고 업무시간을 견뎌야 해요. 사실 친구들과 함께 생리통 얘기를 하면 항상 나오는 주제가 생리대 거든요. 근데 영화에선 생리혈을 받는 도구가 주로 등장해요. 취재하시면서 중요한 소재로 생리컵을 선택한 이유나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통증에 관한 다른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김보람: 일단 통증을 다루지 못한 아쉬움은 있어요. 다루지 않으려 했던 것이 아니고 90분짜리 영화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선택해야 했어요. 생리통이라는 하나의 주제만으로 90분 짜리 영화를 제작해도 될 만큼 사회역학적으로 많은 일들이 관련돼있더라고요. 15분 분량의 챕터 하나로 통증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고 느꼈고 통증을 깊게 다루지 못할 거면 아예 다루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통증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하고 오신 관객 분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마음이 무거워요. 저희가 알아본 것만 해도 통증의 원인은 몸의 문제일 수도 있고 환경이나 정신적인 문제, 식생활, 사용하는 제품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너무 넓었어요. 면생리대와 생리컵을 쓰면 생리통이 완화된다고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어요. 주변만 봐도 생리컵을 통증 때문에 못쓰는 분들이 계셨거든요. 어느 순간 저희가 통증에 대한 의견을 더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없는 지점들이 생겼고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만 이런 선택지도 있습니다정도였어요. 이런 자리를 할 때마다 항상 나오는 질문이 있는데 그렇다면 생리컵이 최선의 대안인가?’라는 질문이에요.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마다 다 달라요. 인터뷰이로 등장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생리컵을 본인이 케어할 수 없는 환경에는 질염이나 골반염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요. 질이나 자궁 모양에 따라서 아예 맞지 않을 수 있어요. 또 초기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모든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책이라고도 볼 수 없어요. <피의 연대기>가 인트로덕션 정도의 영화라고 소개하는 이유도 선택지의 폭을 알려주고 싶었고, 그 물꼬를 트고 싶어서에요. 그 지점이 바로 영화의 목표이기도 했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한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관객: 유쾌하고 해방감을 주는 영화라 좋았습니다. 여기 앉아있는 많은 여성분들 또한 감동받았으리라 생각해요. 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분들도 보셨으면 좋겠어요. 감독님께서는 영화가 남성들에게 어떻게 보여졌으면 좋겠는지, 또 개봉을 맞이한 지금은 어떤 바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람: 월경이란 결국 여성들만의 기억이고 경험이기 때문에 많이 공론화되고 보편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피의 연대기>의 기획단계부터 남성들을 고려한 부분이 있었어요. 남성들이 월경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고 그들에게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때문에 이미지로 기억될 수 있도록 일러스트나 음악에 더 신경을 썼어요. 신기하게도 매번 영화제 때마다 남성분들이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에 대한 질문을 하세요. 저는 책이나 시를 읽는 것처럼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삶을 알게 하고 간접경험을 선사하는 매체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냥 여성분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들어주셨으면 해요. 그것만으로도 본인의 세계가 많이 열리지 않을까요. 생리가 남성의 몸에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상생리대 논쟁이나 생리휴가 논쟁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남들과 똑같은 일상생활을 하는 와중에 계속 피를 흘린다고 생각해보면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려? 그럼 한 달에 한 번은 쉬어야지’라는 마음이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거기까지 이르지 못하고 월경휴가로 쉰다고? 나는 못 쉬는데 당신이 쉬어?’ 이런 반응으로 이어지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 계속 마찰이 생기고요. 경험이 없어서 자신의 입장으로 상황을 끌어오지 못하는 건 사실 그분들만의 탓이 아니라 사회 교육이 그런 기회를 전혀 마련해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제도 작가님과 오랫동안 이런 얘기를 나눴어요.

 

박이은실: 지금까지 표준 몸이란 어떤 몸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피의 연대기>를 단순히 월경 영화가 아닌, 우리가 표준 몸을 상정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야기되지 못했던 한 인류사회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또 저는 이 영화를 이렇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남사친과의 우정 확인 영화, 썸타는 사람이 있다면 관계를 필터링해 볼 수 있는 영화, 그리고 연인과의 사랑 확인 영화로요. 나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인류사회에서도 화두가 돼야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나는 모르고자 한다, 무식을 선택하겠다 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또 월경이 나에게 굉장히 중요하고 관심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안 보겠다 하면 그 분과의 헤어짐을 생각해보세요.(일동 웃음) 마지막으로 <피의 연대기>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완전히 확장시켜주는 영화에요. 영화를 보시고 많은 분들이 활짝 넓어진 이해의 장을 체감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지은: 이 영화에 대한 기사 댓글에는 매번 '생리충'이라는 단어가 등장해요. 이것이 지금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들었어요. 이 영화가 생리충이라는 말이 힘을 가진 욕으로 통하지 않도록, 비하나 혐오의 표현으로 쓸 수 없는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생들 모두가 봤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거죠

 






우리를 낳고 기른 건 강한 여성들이었다. 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여성들은 무수한 생리 주기를 거쳐야만 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찾아오는 통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여성의 일이었다면, 그런 여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피 흘리지 않는 몸들의 일이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생존을 위한 일종의 노력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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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입이 달린 얼굴 한줄 관람평


이지윤 | 결국 혼자 남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조휴연 | 위계화된 가난이 사람의 얼굴을 지울 때

최대한 | 표현의 과장이 거부감을

김신 | 병든 사회 속 영화는 앓는다

남선우 | 사연은 사람 안에 숨어 산다






 <파란입이 달린 얼굴 리뷰: 어깨 위로 올라탄 가난과 시선을 지고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가난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통계다. 남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격차, 부채수준, 부동산의 규모와 구성내용, 부동산을 마련하는데 걸리는 시간 등. 그 통계들이 모이면 가난에도 위계가 잡힌다. 가난한 사람들은 위계화된 가난 안에서 살아간다. 위계화된 가난은 통계와 같이 간단하지 않다.


 



'서영'은 가난의 위계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사람이다. 여성이면서 가장이고 가족들의 경제력은 전무하며 본인은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다. 어머니의 병원비로 인해 빚도 있다. 취향이랄 것도 없다.(생길 수 있는 계기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영화 내에서 헐렁한 가방을 매고 다니는 서영의 어깨가 유난히 처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언급한 가난의 위계들이 모두 서영의 어깨 위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가 닿은 인쇄소에서의 생활도 서영에게 쉽지만은 않다. 스님의 도움으로 인쇄소에서 일하게 됐지만, 스님은 인쇄소에서 서영으로 하여금 생활만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서영은 위계에 짓눌린 채 서영의 위계를 멋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짊어진다. 혼자 밥을 먹는 서영을 보고 이상하다고 피하거나 같이 있는 자리에서 나 같으면 엄마에게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식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서영이 엄마에게 떠나라고 말하게 됐는지 관심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영이 할 수 있는 발버둥은 거짓말과 물건을 훔치는 것 정도다. 서영의 오빠가 밤길을 걸어가는 동안 서영에게 일터에서 만난 여자와 잘 될 수도 있다는 거짓말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화 중반에서 등장하는 탁구라는 소재를 통해 가난의 위계에 짓눌린 서영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억지로 끌려오듯 한 회사 내 탁구 동아리에서 서영은 의외의 재능을 발견한다. 이 재능이 회사 동료들과 서영 사이의 인간적인 유대를 가능하게 한다. 동료들과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술자리에 얼굴을 비춘다. 항상 입는 바지와 티셔츠가 아니라 원피스를 입기도 한다. 인간적인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도 이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웃음을 보인다. 영화 전반에 걸쳐 말라 죽은 나무 같던 서영의 모습은 그녀가 선택한 게 아니라 켜켜이 쌓은 가난의 위계가 만들어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서영이 에어로빅 동아리를 꾸려 탁구 동아리 사람들의 모임을 방해하는 장면에서는 위계화한 가난이 얼마나 쉽게 한 사람의 인간적인 유대를 깨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먹고 놀던 사람들과 계속 같이 다니면 밥줄이 끊길 수 있겠다고 생각한 서영은 다시 표정을 지운다.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 요리를 잘 한 다는 칭찬에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먹고 다녔어야 해서요라는 서영의 대답은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단서다. 먹고 사는 일, 생활해 나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다른 일들은 끼어들 수도, 끼어들어서도 안 된다.







구조화한 가난을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불편함을 수반한다가난은 원래 불편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는 일은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서영이 겪는 수준의 가난을 바라보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하지만 가난이 편하게 읽혀서는 안 된다편하게 읽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어려운 문제는 어렵게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파란입이 달린 얼굴>은 이 점에 충실했다한국에서 가난을 다룬 영화들 중에서도 의미 있는 위치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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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도 위에서 춤을 춘다!

 <반도에 살어리랏다> 이용선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정교수가 될 것이냐, 연기를 할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놓인 남자가 있다. 두 가지 선택지는 기회를 가장한 채 그에게 다가왔지만, 점점 포승줄처럼 그를 옭아맨다.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 놓인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안 그래도 잔뜩 찌푸려져 있던 미간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 일그러진다. 그리고 반도에서의 삶은 절실한 그를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개봉이 바짝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반도에 살어리랏다>를 만든 이용선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추운 날씨와 상반되는 따뜻한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Q. <반도에 살어리랏다>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아울러 작품이 제3회 코펜하겐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소식도 들었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01.23 인터뷰 진행)

 

A. 너무 과분한 영광이에요. 전부 제 예상보다 훨씬 좋은 성과들이거든요. 축하를 받고 나면 항상 감사하다 말씀드리고 있는데요, 사실 감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 걸 했다는 현실감각이 없어요.(웃음) 아마 정신을 차리려면 꽤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굉장히 감사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야겠단 생각이에요.

 

 

Q. 우선 <반도에 살어리랏다>를 연출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A. <화장실콩쿨>(2015)로 스타일을 바꾸게 되었고 인디애니페스트에서 굉장히 좋은 성과가 있었어요. 자신감이 많이 생겨서 앞으로도 이 스타일대로 작품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야기 면에서는 많이 달라졌지만, 일단 이 작품은 <화장실콩쿨>의 연장선상에서 출발했어요. 30분 내외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제 스스로에게는 가치가 있지만, 사실 영화제에서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확실하게 장편 혹은 단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 같아요. 장편을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장편으로 넘어가게 됐어요.

 

 

Q. 주인공 오준구와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어떻게 구상된 것인가요?

 

A.준구40대 중반의 아저씨에요. 일단 제가 40대 중반의 아저씨를 좋아하기도 해요. 실제로 많이 보고 들어서 그런지 시나리오를 쓸 때도 아저씨 캐릭터를 설정하면 조금 더 쉽게 나오는 것 같아요. <반도에 살어리랏다>를 만들 때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빨리 기획 콘셉트의 결과물이 나와야 안심할 수 있던 상황이어서 더 잘할 수 있는 걸 선택했어요. 그것이 제가 하고 싶었던 것과도 많이 겹치긴 했지만요. 그리고 <화장실콩쿨>의 영향도 커요. <반도에 살어리랏다>의 경우 심슨 가족을 모티프로 가족 구성원을 만들었어요. 똑같진 않지만요. 절반은 심슨 가족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면 나머지 절반 정도는 <화장실콩쿨>을 업그레이드 시켜 표현한 게 아닐까 싶어요.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잘 쓸 수 있는 분야를 빨리 해보자는 생각이 컸어요.


 




 

Q.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제목이었어요. ‘반도에 살어리랏다’, 예사롭지 않은 제목이란 생각이 들어요.

 

A. 제가 제목을 잘 못 지어요.(웃음) 끝까지 고민한 부분입니다. 여러 명이 같이 지은 거예요. 선택을 제가 했지만요. 일단 제목으로 웃기고 싶었어요. 복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2어절 안에서 제목을 지으려고 해요. 많은 영화들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제목을 지으려고 조사해보았는데요, 요즘은 한 단어로 많이들 표현하더라고요. 더 강렬하게 남는 것 같아서 저도 한 단어 아니면 두 단어로 표현하려 했어요. 그런데 작품 자체가 손에 딱 잡히는 특정한 것을 주제나 소재로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인 삶을 다루는 제목에 가까우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 당시만 해도 헬조선이라는 단어에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어요. 그런 감성이 작품에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고요. 그런데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좋아하진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비슷한 감성을 뽑아낼 수 있는 단어들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그때 반도’, ‘대륙’, ‘열도와 같은 용어들이 한창 유행이었어요. 그런 유행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한국이니까 반도라 지은 거구나라 생각할 수 있고, 유행어를 아는 사람들은 웃을 수 있고. 이런 생각을 통해 반도라는 단어를 정한 다음 ‘이곳에서 살아나간다, 살고 싶다는 식의 단어들을 쭉 붙여보았어요. 반도라는 풍자적인 단어가 고전적인 살어리랏다란 단어와 붙으면 작품 전체의 콘셉트처럼 코미디적이고 풍자적인 요소가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두 단어를 붙이게 되었어요

 

 

Q. 물망에 올랐던 다른 제목들도 궁금해지네요.

 

A.아메리칸 드림에서 따온 코리안 드림이란 제목이 있었고요.(웃음) 무대에 있으니까 커튼콜이라는 제목도 있었어요. 그런데 동일한 제목의 영화도 있고 비슷한 게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 외에 다른 제목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Q. 포스터도 인상적이에요. <라라랜드>(2016)의 패러디잖아요. 정식개봉 이전 포스터는 조금 더 한국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포스터의 변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A. 준구가 연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것을 비주얼적으로 세게 표현하기 위해 연기 이상으로 춤까지 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춤까지 갔으면 한풀이 춤을 춰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런 콘셉트로 만들었어요. 마케팅사로부터 <라라랜드>란 아이디어가 나왔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풍자적인 개그코드를 넣은 패러디가 이 영화와 어울리는 부분들도 있고요


 

 




Q.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애니메이션은 직접 그림을 그린다는 특징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제작 과정에 대한 호기심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A. 기획은 똑같아요. 기획 단계에서 콘셉트와 관련된 것들을 다 그려놓아야 한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죠. 애니메이팅 릴은 요새 영화 쪽에서도 많이 만들어요. 저는 애니메이팅 릴을 굉장히 중요시해요. 그것을 만들고 프로덕션에서 그 릴을 기준 삼아 작화를 하게 돼요. 작화가 끝나면 채색을 하게 되고요. 그리고 작화와 동시에 배경 작업을 시작해요. 채색이 끝나면 완성된 배경 작업과 합성하죠. 크게 프리 프로덕션까진 영화와 똑같다 볼 수도 있는데요,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는 다 달라지는 거죠. 우리는 그림으로 그리는 거고 영화는 연기와 촬영을 하는 거고요. 최근에는 전체적인 작업들이 상당부분 디지털화 되었어요. 저 같은 경우엔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부분이 아예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컴퓨터를 사용해요. 시나리오도 컴퓨터로 쓰고 스토리보드도 컴퓨터로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전체적인 과정에 적은 예산이 들고 간결해지고 빨라지면서도 퀄리티가 올라가요.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면 수작업으로 작화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선 3~5분 정도 걸려요. 그런데 디지털로 하면 2~3초 정도가 소요돼요. 수정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수정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죠. 움직임에 대한 디테일을 잡아내는 것도 훨씬 좋아져요. 부족한 부분을 쉽게 포착해서 채울 수 있는 것이죠. 또 소리를 들으면서 작화를 하는 게 가능해요. 대사나 가녹음된 것들을 들으면서 작화를 할 수 있는 거죠.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싱크가 조금 맞지 않는데요, 그것은 가녹음과 후시녹음을 다른 사람이 해서 그런 거예요. 결과적으로 돈이 없어서 그런 거죠.(웃음)

 

 

Q. 저예산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과정에 있어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아요.

 

A. 돈이 많다면 애니메이팅 릴 단계에서 굉장히 여러 과정을 거칠 수 있어요. 그렇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가 픽사(PIXAR). 온갖 시도들을 다 해보는 거예요. 테스트란 테스트는 다 해보니까 움직임이나 컷의 자연스러움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어요. 제가 진행하는 제작과정의 특징은 수정을 안 한다는 거예요. 돈이 없어서.(웃음) 캐릭터 연습도 안 해요. 캐릭터를 콘셉트로 그려놓고 그것을 한 사람씩 맡겨요. 그리고 캐릭터를 맡은 사람에게 적당히 손에 맞게 변형시켜도 상관없다고 알려주고 최대한 변하지 않아야 되지만 과정에서 조금씩 캐릭터가 변해도 된다고 말해줘요. 처음부터 순서대로 그릴 것이니까요. 그러면 조금씩 변하니까 처음과 끝이 좀 달라도 보는 사람이 변화를 잘 눈치 못 채요.(웃음) 좋은 건 아닌데, 빠르게 만들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죠. 저는 무조건 순서대로 그려요. 궁여지책 같은 거죠.

 

 

Q.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해볼 수 없어요. 캐릭터들에 동질감을 느끼게 되다가도 그들이 한없이 얄미워질 때가 있어요.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이 얄궂고 밉살스러운 면을 지니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런 캐릭터 설정을 한 이유가 특별히 있나요?

 

A.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드라마에요. 드라마에서도 좀 더 현실적인 것들을 좋아해요. 캐릭터들이 다양한 면모를 가질수록 작품이 좀 더 현실성을 띠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정해져 있는 어떤 캐릭터가 아닌, 틀 밖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캐릭터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런 면에서 제 작품의 특수성이라면 특수성이랄 것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주인공을 응원할 수 없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잖아요. 그런 면모를 가진 주인공이 제 작품에 차별성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관객 분들이 원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분명 그런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도 들고 제 작품 속 캐릭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 비슷한 고민들로 인해 힘든 상황에 빠지는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해요. 마냥 감추기보단 준구의 처지를 보며 다시 한 번 나를 돌이켜볼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제가 추구하는 재미란 굉장히 현실적인 재미에요. 이번 작품에는 그런 면이 꽤 많아요. 그리고 드라마란 장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이 현실 공감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행복한 상황으로만 문제를 푼다면 일정 틀에 갇힐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영화에서는 교수 사회의 부조리함이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어쩌면 현실이 영화보다 한 층 더 부조리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이런 부조리함이 굉장히 사실적이고 디테일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극중 교수 사회는 어떤 기반을 통해 그렸나요?

 

A. 제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요.(웃음) 영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회식자리에서 교수직이 정해지는 건 사실 너무 튈만한 일이에요. 하지만 내정자가 있다던가, 형식적인 면접을 한다던가, 누군가의 아들이 특례입학을 했다던가 하는 일들은 정치 기사만 봐도 비일비재하잖아요. 그런 연줄관계나 비리들을 교수 사회라는 것에 대입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예요. 누구도 재촉하진 않았지만, 기회가 완전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작업을 빨리빨리 진행한 부분들이 있어요. 급한 상황에서 다른 분야를 조사하기 보단 디테일하게 알고 있는 분야를 준구의 직업으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안에 주변의 사회적 문제들을 넣는 거죠. 교수 사회가 드러나는 장면들은 연출이 오버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표현하고자 한 권력관계와 그 부조리함은 충분히 드러날 것이라 생각했어요. 관객 분들도 충분히 받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표현하게 된 거죠.

 

 

Q. 작품의 후반부에 가면 해학이 폭발하는 듯한 연출이 돋보여요. 춤을 추는 준구를 조롱하는 실사 손가락의 움직임이 해학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런 연출이 나온 과정이 궁금해요.

 

A. 맨 처음 시나리오에는 그 춤 장면이 없었어요. 제목을 지을 즈음 들어간 장면이에요. 이야기나 연출을 통해 극이 진행되는 동안 재미를 이끌어낼 수도 있지만, 보고 난 후의 여운과 작품 내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야 관객들에게 충족과 해소를 주고 완성도가 생긴다는 걸 깨달았어요. 불현듯!(웃음) 뭔지는 모르겠는데, 작품 자체에 뭔가 부족함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주인공의 욕망 때문인가 생각을 했고 욕망의 표현이 연기 정도론 약한 것 같았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 생각하다 보니 춤이라도 춰봐?라는 답이 나온 거죠. 음악도 사실 마찬가지인데요, 춤은 현실이면서도 예술이에요. 판타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면 감성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생겨요. 뮤지컬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면 일반적인 연기를 했을 때와 다른 특정한 감성이 충족이 되듯이 말이에요. 그래서 일단 춤을 넣기로 했죠.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생각으로 한풀이 춤을 추려고 했어요. 그런데 작화로 그것을 때우기엔 양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 그리는데도 시간과 역량에 한계가 있겠다 싶어서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고 그 씬의 일부분은 제 동생에게 맡겼어요. 프랑스에서 순수미술을 하고 있는 동생이 아이디어를 냈고 이야기에 맞춰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을 실사로 찍은 다음에 결과물을 보는데 작화와 느낌이 굉장히 다르고 새로워서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Q. 아무래도 직접 작화를 했으니 모든 장면에 애착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준구가 회식장소에서 상을 엎는 장면이 있어요. 어렵겠다,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 장면을 그렸어요. 잘 표현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씬 자체에 통쾌한 게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잘못된 것 같아서 깽판을 치고 싶어도 보통은 상상으로만 끝나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실제로 심각하게 일을 벌이니까 조금 통쾌한 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출적인 면을 떠나서 사실 그 때부터 준구의 얼굴이 자리 잡히기 시작하기도 해요.(웃음) 그 전까지는 준구의 머리가 동그랬다가 납작했다가 왔다갔다하는데, 그 부분부터는 아 이런 느낌으로 그리면 되겠다!’하고 감이 왔어요. 그래도 표정을 명확하고 심플하게 작업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까지 눈치 채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웃음)

 

 

Q. 마지막으로 <반도에 살어리랏다>를 보러 올 관객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A. 며칠 전에 <코코>를 봤어요.(잠시 정적) 잘 만들었더라고요.(웃음) 사실 이런저런 부탁을 하고 싶진 않은 마음이에요. 그냥 봐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욕할 게 있으면 해주시고요, 잘한 게 있다면 칭찬해주세요. 보는 대로 느끼고 이야기해주시면 저야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코코><반도에 살어리랏다>를 완전히 현실적인 의미에서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를 할 순 없을 거예요.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실적인 부분들을 감안하고 보시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실에 대한 고민이 들 때 한 번쯤 봐주신다면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준구는 춤을 춘다. 아무 것도 보지 않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땀을 뻘뻘 흘리며. 무엇인가에 절을 하듯 움직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뿌리치겠다는 듯 팔을 내젓기도 한다. 그 위로 등장하는 손은 준구에게 삿대질을 하고 그를 쥐어 잡아 흔들려 한다. 때로 반도에서의 삶은 그런 손의 움직임을 닮았다. 좀처럼 사람을 풀어주지 않고 있는 힘껏 옭아매고 조롱하려 든다. 어쩌면 춤을 추는 것은 그런 반도 위에서 버틸 수 있는 탁월한 방법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늘도 이 반도 어디에선가 또 다른 준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춤을 추고 있을 지도 모른다. 우스운 몸짓으로 고통을 애써 삼키려는 듯, 벗어날 수 없지만 이곳에서 벗어나려는 듯 그렇게.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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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을 지나 마주한 공동정범

 <공동정범> 김일란, 이혁상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사방에서 거센 물줄기를 퍼붓는다. 망루가 쓰러질 듯 위태롭게 휘청인다. 잠시 후 커다란 화염이 망루를 집어 삼키기 시작한다. 그 위로 온갖 소음이 밀려든다. 망루 안에는 사람이 있다. <공동정범>은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전작 <두 개의 문>(2011) 당시 ‘공동정범’으로 기소되어 듣지 못했던 다섯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비로소 카메라에 담아낸다.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늦은 오후, <공동정범>을 연출한 김일란 감독과 이혁상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철거민들이 망루를 짓고 점거농성을 시작한 날로부터 정확히 9년이란 시간이 흘러있었다.







<공동정범>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간단한 소감 한 말씀씩 부탁드려요. (2018.01.19 인터뷰 진행)


이혁상 감독(이하 이혁상): 전작 <종로의 기적>(2010)이 개봉한 게 벌써 7년 전이에요. 저도 젊었을 때였죠.(웃음) 그래서인지 지금은 몸이 좀 피곤하기도 해요. 김일란 감독은 더 그렇겠지만. 사회적으로 관심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이렇게 피곤할 정도로 바쁘다는 건 여전히 용산참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사라지지 않았단 신호인 것 같아서 조금 힘들어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김일란 감독(이하 김일란): 순간순간 ‘이 영화가 제대로 마무리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무리 된 시점에서는 ‘개봉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쨌든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 감격스러운 면이 있어요.




먼저 작품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김일란: <두 개의 문>을 마무리할 즈음 영화가 성취해낸 것과는 무관하게 이 작품이 사회적으로 조금 더 영향력이 있었으면 좋겠단 바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는 못 미쳤던 것 같아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철거민 분들이 감옥에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특별사면까지, 당시 이 세 가지를 걸고 상영활동을 했는데, 7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회적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후속작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기획이 있거나, 어떤 내용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진 않았어요. 그냥 막연하게 ‘두 개의 문 2’라는 작품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그러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철거민 분들이 2013년 1월에 출소하게 되면서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계속 이혁상 감독을 꼬셨죠, 같이 하자고.(웃음) 


이혁상: 저는 아주 선명하다 못해 충격적으로 기억하는 한 순간이 있어요. 2012년 대선 당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종로의 기적>을 상영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정권이 바뀔 거란 희망을 조금 가지고 있었어요. 마침 상영이 끝나고 GV가 진행될 타이밍이 딱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인디스페이스 스크린에 TV 화면을 띄웠죠. 축배를 들어야한다며 맥주와 안주를 손에 하나씩 들고 보는데 “박근혜 당선 유력”이 나오는 거예요.(웃음) 그 순간 희망으로 들떠있던 인디스페이스가...사람들도 나가고... 그래서 관객과의 대화를 중간에 취소했어요. 그리고 각자 술을 먹으러 갔죠. 그런 절망의 연속이 결국 <두 개의 문> 이후 무엇인가 해야겠단 마음을 먹게 만든 것 같아요. <공동정범>을 향해 운명의 수레바퀴가 데굴데굴 구른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 당시 상황이 너무 암울했기 때문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 같은 게 있었어요.


김일란: 서로를 위로하지 않으면 이 시대를 견딜 수 없겠다 싶은 일들이 쭉 있었어요. 그즈음 최강서 열사도 돌아가시고. 박근혜 정권은 너무 암울했죠. 







김일란 감독님은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 모두 연출로 참여했어요. 용산참사에 대한 작품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계기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김일란: 10년 가까운 시간에서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진 않아요. 하다보니까 이렇게 된 거예요. 어쩌면 당연하게 참사 현장에 갔고 그곳에서 미디어 활동을 했어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재판을 모니터링하며 용산참사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한 순간들이 있어요. 이야기 자체가 새롭다기보단 저의 경험치에서 새로웠던 거예요. 한 사건의 재판 모니터링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본 경험이 없었어요. 재판 시작부터 판사가 선고를 할 때까지의 과정들을 보니 용산참사를 바라볼 때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국가와 권력이 작동하는 원리로써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고,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경찰이라는 제복을 입은 시민들에게 인간이었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 경찰 특공대 역시도 용산참사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자괴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단 걸 재판 과정에서 본 거예요. 그것이 이야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두 개의 문>을 만들게 되었어요. 경찰의 행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다보니 그에 어울리는 형식을 고민하게 되었고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실험을 하게 되었죠. 그것이 의미와 만났을 때 갖게 되는 잠재력을 확인한 경험이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해보자 한 게 <공동정범>인 거죠. 혼자였으면 힘들었을 텐데 파트너가 있어 가능했던 것 같아요.




‘연분홍치마’, 그리고 함께 작품을 연출한 이혁상 감독님이 굉장히 든든한 파트너였던 것이군요.


김일란: 이혁상 감독은 상상한 것을 구현해주는 사람이에요. 제가 머릿속에서 뼈대를 만들면 이혁상 감독이 그 뼈대를 조각해주는 느낌? 디테일을 만져줘서 그 이야기 자체에 분위기를 불어넣어줘요. 그래서 <두 개의 문>도 가능했고요.(*이혁상 감독은 <두 개의 문>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 <두 개의 문>은 후반 작업을 통해서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공동정범>은 처음 기획 단계부터 그런 부분들을 함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이혁상 감독님은 <두 개의 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했고 이번 <공동정범>은 연출로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두 개의 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이혁상: <두 개의 문> 때보다 제가 숨을 수 있는 곳이 없죠.(웃음) 연출로, 공동감독으로 책임을 다 해야 하니까요. 제작부터 개봉까지 계속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게 좀 부담스럽기도 해요. 사실 <두 개의 문>의 후반 작업 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개봉하고 다시 보니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거예요. 정말 사소한 것에서부터요. 여러 가지 고민들이 다시 생겨나면서 다음번에는 모자란 부분들을 잘 채워봐야겠다고 계속 생각한 것 같아요. 그게 결국 <공동정범>을 하게 된 스스로의 동력이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두 개의 문> 때보다 좀 더 많은 것을 쏟아 부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때도 쏟아부었지만요.(웃음) <두 개의 문>은 후반 작업이 중요한 작품이었어요. 현장에서의 활동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이지만, 그걸 기반으로 한 후반 편집과 여러 가지 영상 효과 등이 현장 참여 비중만큼 중요했어요. 그런데 <공동정범>은 김일란 감독과 기획부터 같이 시작해야했죠. 그리고 인물 다큐멘터리잖아요. <두 개의 문> 때에는 하지 않아도 되었던 인물들과의 관계 맺기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어요. 그 안에서 캐릭터를 구축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지점이 제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등장하는 철거민 분들의 트라우마와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마음을 부여잡고 영화를 보았어요. 섭외는 물론,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김일란: 예전에 한동안 둘이 필담을 주고받은 적이 있어요. 인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메신저로 계속 쓰는 거예요. 인물들의 성격,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이 이야기 속 사건으로 연결되어야 할지에 대해서요. 만약 이것이 시나리오, 극영화라고 하면 캐릭터 분석 같은 거죠. 그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미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이야기로 갈지 전제가 공유된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크게 이견이 생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때로는 가공의 인물처럼 분석할 때도 있었고, 만약에 극영화라면 어떤 인과성으로 이 사람을 설명할까 상상하기도 했어요.






<공동정범>의 흐름은 <두 개의 문>과 사뭇 달라요. 등장하는 철거민 분들이 출소한 직후에 촬영이 시작된 거잖아요. 그러다보니 촬영 중에 작품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공동정범>이 지니고 있는 흐름이 계획된 것이 아닌, 찍어나가는 과정에서 완성된 게 아닐까하는 추측도 해보았거든요. 작품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이혁상: <두 개의 문>이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안에 있던 철거민 분들이 이미 구속된 상태였기 때문이었어요. 만날 수가 없었던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경찰의 시선을 통해 법정 증언자들과 여러 가지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재구성 했던 거고요. 처음에는 철거민 분들이 출소했으니 이들 버전의 '두 개의 문 2'가 나올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철거민 분들의 기억은 각기 다 달랐고 때로는 없어져버리기도, 왜곡되어버리기도 했어요. 계속 촬영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계속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연대 철거민들의 마음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어요. 틈이 너무나도 많은 이분들의 깨진 기억을 맞춰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게 너무 무모하다 싶었죠.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조각나버린 이들의 관계부터 맞춰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 감정에 귀를 기울여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연스럽게 이 다큐멘터리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무엇에 주목해야하는지, 또 이들로부터 어떤 변화를 볼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이후의 진상규명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기반이 될 거라 여겨졌어요. 많은 분들이 느끼는 것처럼 저희에게도 예상치 못했던 방향의 변화가 있었어요. 그것이 고스란히 영화 속에 드러난 것 같아요.


김일란: <두 개의 문>을 만들 때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을 다 구해서 거의 24분의 1초 단위로 쪼개 보았던 것 같아요. 경찰이 컨테이너를 타고 투입될 때부터 불이 날 때까지, 약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을 전부 다 맞춰보았어요. 불빛 하나를 놓고도 그것이 어느 각도에서 촬영한 것인지를 맞추며 편집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정말 집요했어요. 어디에서 불이 났을까, 왜 이것이 철거민 탓일까, 그런 단서를 하나라도 발견할까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 <공동정범>에 나오는 일정 부분을 밝혀내기도 했죠. 지석준 씨의 기억에 관한 부분들처럼요.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이성수, 윤용헌 열사가 망루 안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단 정도까지는 밝혀냈어요. 결정적으로 불이 어디서 났느냐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지만요. 그래서 이혁상 감독이 말한 것처럼 철거민 분들이 나왔으니 <두 개의 문> 때 집요하게 찾았던 것들이 뭔가 완성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당연히 되었죠. 초반에는 동선이 어떻게 되는지, 돌아가신 분들의 위치가 어딘지 가늠하기 위해 망루를 직접 지을까 구상도 했어요. 그런데 더 놓쳐선 안될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변하게 됐고 그대로 영화 안의 플롯이 된 거예요. 영화 초반에는 불이 어디서 났는지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철거민 분들이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또한 감독들이 헤맸던 시간을 관객들도 고스란히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플롯이기도 해요.




두 가지 방향을 가지고 많은 고민을 하셨군요.


김일란: ‘망루 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완전히 폐기되지는 않았어요. 지석준 씨의 기억을 역추적 하는 과정은 정말 중요한 문제거든요. 그가 7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죄책감이 있잖아요. 두 분이 자신을 살리고 돌아가신 게 아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석준 씨에겐 큰 의미거든요. 사실 그런 게 진상규명의 한 과정인 거잖아요. 그래서 그것은 무용하지 않았고, 그것 자체가 완전히 폐기되지도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것이 이 감정을 해결할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고요. 전체 기획 방향이 수정되긴 했지만, 이전의 방향들이 이야기 곳곳에 숨어있어요.




<두 개의 문>에서 촘촘한 재구성이 돋보였다면 이번 <공동정범>에서는 등장하는 철거민 분들의 감정을 과잉되지 않게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낸 것이 와 닿아요. 드라마틱한 장면들도 눈에 띄었고요. 


이혁상: 사실 인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는 <두 개의 문>에서도 굉장히 노력했어요. 저희가 확보할 수 있었던 건 법정에서 사용된, 경찰이 망루 안에서의 상황과 감정을 적은 자필 진술서였어요. 이것을 가지고 감정을 만들어내야 했던 게 그 당시 저의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화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자막의 글씨체와 사운드가 어때야 하는지, 어떤 색감과 밝기의 변화로 감정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어떤 면에서는 이번 작품보다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공동정범>에서는 인물들이 표현하는 감정을 카메라를 통해 포착할 수 있잖아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은 조금 다른 차원으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공동정범>은 인물 다큐멘터리이다 보니 인터뷰와 진술을 통해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결국 일상을 팔로우 업 하며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캐릭터를 특징지을 수 있는 어떤 단서를 찾아내야하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과 굉장히 자주 접촉했고 삶의 공간에 가서 촬영을 계속했어요. 자연스럽게 그분들이 지닌 삶의 패턴이 눈에 들어왔고 인물의 감정을 인터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공간에 들어가면 모든 정보를 스캔해요. 그것은 하나의 물건일 수도 있어요. 화초일 수도 있고 달팽이일 수도 있고 술 먹고 자는 모습일 수도 있고. 그런 조각들을 계속 확보해서 촬영한 거죠. 조각들을 붙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일상의 패턴들이 인터뷰와 만나게 됐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드라마틱한 구성이 가능해졌던 거예요.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굉장히 고민하며 시작한 다큐멘터리에요. 물론 팩트에 대한 초반의 증언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의 축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처음에는 감정을 드러내는 그런 연출들이 극영화의 어떤 것을 닮아있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그것들이 어쩌면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이란 생각도 들어요.


이혁상: 모든 다큐멘터리들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큐멘터리의 전통 속에서, 특히나 다이렉트 시네마의 전통 속에서 카메라를 통해 인물을 오랜 시간 관찰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잖아요. 다큐멘터리는 또 그런 방법론을 택해서 촬영하고요. 온전하게 다이렉트 시네마는 아니지만, 그런 관찰자로서의 위치를 활용하며 영화를 만들었어요. 사람들을 계속 반복해서 찍다보면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어요. 회고하며 외로움이나 아픔을 토로하지 않더라도요. 결국 그걸 취해서 편집하고 구성을 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이건 극영화적인 구성이라기 보단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인 관찰인 거죠.







작품에 등장하는 다섯 분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다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혁상: 지금은 각자 생계유지를 위해 계속 일을 찾는 상황이에요. 예전부터 하던 일을 다시 하는 분도 있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해서 전과 다른 분야를 찾은 분도 있고. 결국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요. 트라우마, 후유증은 있겠지만 일상을 유지해야하는 거죠. 천주석 씨는 계속 상도4동 현장에 있어요. 해결이 안 된 상황이니까 어떤 불안감들을 계속 가지고 있겠죠.




다들 만남을 이어가고 있나요?


이혁상: 오늘도 같이 기자회견을 했어요. 이명박 사무실 앞에서요. 진짜 공동정범인 이명박과 당시 서울 경찰청장 김석기를 <공동정범> 상영회에 초대하는 컨셉으로 기자회견을 하며 ‘진짜 공동정범을 찾아야하지 않겠냐’는 것을 알리는 자리였어요. 지석준 씨의 경우 일 때문에 자리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분들은 행사 등이 있으면 계속 같이 참석해요. 2016년에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하고 난 다음 여러 상영 기회가 있었고 주인공들 다 같이 GV도 몇 번 했어요. 어쨌든 그전보다 확실히 만남이 있다는 게 변화겠네요. 영화뿐만 아니라 그분들을 계속해서 호출하는 상황이나 사건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제도 청량리 쪽 재개발 문제 때문에 가서 발언도 하셨어요. 또 9주기가 되면서 인터뷰도 많이 하셨고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환기해야하는, 잊지 말아야 하는 상황들이 계속해서 발생한다는 느낌이에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두 개의 문>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어요. 맨 마지막 부분, 박진 활동가님이 던진 말이 기억에 남아요. “끊임없이 이런 폭력들이 이 정부 끝날 때까지, 아마 이와 유사한 정부가 온다면 또 오겠죠. 이게 너무나 무서운 거죠. 그런데 언제까지 이런 것에 대해서 시민들이 관용할 것인지 저는 참 궁금해요.” 2016년의 광장을 지난 후 이 말을 돌아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런 과정을 거쳐 과도기적인 단계에 와있다고 많이들 이야기하잖아요. 과도기적 단계에서 시작점을 회상하는 <공동정범>이 큰 의미를 지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동정범>이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의미를 지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김일란: <두 개의 문>의 경우 '국가란 무엇인가?'가 질문이었어요. 그리고 소위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국민들의 요구에 대해서, 설사 그것이 무리한 요구라 할지라도 국가는 국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가 핵심이기도 했어요. 국가가 저항하는 국민들, 그리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데에 공권력을 행사했잖아요. <공동정범>의 경우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가와 상관없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란 질문으로까지 나아갔어요. 결국 이 영화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국가는 어떻게 대하고 있나?'라는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무게가 이동하며 전환된 거죠.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오히려 '국가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혹은 거꾸로 '국가란 무엇인가?'를 통해 '사람이란 무엇인가?'로 나아가는 면이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공동정범>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줄 관객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려요.


김일란: 원래는 기대가 얼마 없었어요. 오리지널(영화제) 버전에는 엔딩에 ‘용산참사 현장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당신마저 기억하지 않는다면’이란 자막이 나와요. 어떻게 보면 낭만적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듯한 그런 엔딩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엔딩으로 바꾸며 기대하게 되는 것이 있어요. 어쨌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죠. 매년 이 시기쯤 되면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추모 기자회견을 해요. 올해는 국화꽃과 함께 장미꽃을 들었어요. 이 변화의 바람이, 바람이 아니라 실제적인 효과를 내길 기대하는 의미에서 장미꽃을 든 거예요. 이 영화를 보는 시민들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촉구해주면 현실적인, 손에 잡히는 정도의 결과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경찰 인권침해 감시의 차원으로 5대 사건 진상조사에 들어갔잖아요. 용산참사가 얼마나 무리하고 성급한 진압이었는지 밝혀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그리고 검찰개혁위원회에서 검찰의 잘못된 기소와 관련해 사건을 선정하는 중이고 용산참사만큼 검찰 기소가 잘못된 사건들이 반드시 선정되어야 해요. 그렇게 되려면 관객 분들이 정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야 됩니다. 예전에는 개봉할 때 별 기대가 없었는데 지금은 이 작은 희망이 약간 절실해지는 것 같아요. 그 기대가 오히려 절박하게 하는 부분이 있네요.


이혁상: 참사나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을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큰 참사의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참사가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를 단일한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숭고한 피해자, 엄숙한 피해자...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피해자의 모습을 박제화 시키죠. 그런데 피해자들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거든요. 하나의 인간에는 굉장히 다양한 모습들이 있잖아요. 선한 면도 있지만 악한 면도 있고, 어떤 부분에 욕심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부분에는 여유가 있어서 남에게 조금 더 베풀 수도 있고요. 하나의 거대한 스펙트럼이 한 사람에 존재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들에게서 하나의 모습만 보고 싶어 해요. 권력과 국가폭력에 의해 상처받아 슬프고 불쌍한 사람들로요. 그것이 애도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어떤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이 그들을 우리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아요. 물론 백퍼센트 온전하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저는 그런 식의 숭고한 박제화가 선을 만들어버린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우리가 피해자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란 것을 이해했을 때인 것 같아요. 그래서 피해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공동정범>이 조금이나마 고민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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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탄생! 우리 생애 첫 생리 도감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모두가 그 존재를 알지만, 누구도 많은 이 앞에서 그 이름을 크고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마법’, ‘대자연’, ‘ㅅㄹ’까지. 생리는 마치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우리의 입 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세상 절반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생리에게는 언어가, 이야기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 불필요한 금기에 반기를 들고 나선 영화 <피의 연대기>는 생리를 다룬 한 편의 도감과도 같은 유쾌한 다큐멘터리다. 생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기원을 찾아가보는 한편, 당장 여성이 직면해야 했던 문제들을 파고드는데, 시선이 생리 용품에서부터 무상 생리대 이슈로 이어지면서 자유로이 확장·전환된다. 김보람 감독의 네덜란드인 친구 샬롯과의 일화를 통해 왜 한국인들은 패드형 생리대를, 서양인들은 탐폰을 애용하는지 묻는 것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끝내 여성이 피 흘리는 자신의 몸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김보람 감독은 인터뷰 내내 ‘운이 좋았다’는 대답을 계속 했다. 운 좋게 좋은 기회들이 생겼다고, 좋은 스태프들을 만났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 끝에 운 좋은 관객들이 남은 게 아닐까? 드디어 생리의, 생리에 의한, 생리를 위한 한 편의 영화를 만나게 된 관객들에게 김보람 감독은 여러 뒷 이야기들을 전해왔다.







Q: 생리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어땠나요?


A: 친구들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기대를 많이 했어요. 촬영 하면서 생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많이 이야기 해줬는데, 여자 친구들은 몰랐던 걸 알게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남자 분들 중에서도 지지해주시고 펀딩을 도와주신 분이 많아요. 택시 운전을 하시는 저희 아버지는 승객 분들에게 홍보도 한다고 합니다. 개봉한다고 하니 다들 설레며 좋아해주고 있어요.



Q: 다큐멘터리 영화의 형태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A: 극장은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공동의 경험을 하는 공간이잖아요. 생리라는 것이 공공의 영역에서, 문화의 영역에서, 서사의 한 형태를 갖춘 상태에서는 경험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이야기가 타인과 함께 모여서 볼 수 있는 매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Q: 영화로 기획하고자 했을 때 처음 한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A: 피를 어떻게 보여줄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이었는데, 진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기획 초반부터 했고, 여성 감독님들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찾아보다가 김승희 감독님의 <심경>(2014)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김승희 감독님을 섭외해서 애니메이션을 부탁 드리게 되었습니다.



Q: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A: 단편이라도 감독한 경력이 있어야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연출 필모그래피가 전혀 없다 보니 펀딩을 받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마켓에서 피칭했을 때도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극장에 걸기 힘들 거라는, 90분짜리로 완성되기 쉽지 않을 거라는 반응도 있었고요.



Q: 그래도 이 영화를 궁금해하는 관객층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었을 것 같아요. 생리를 하는 여성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요. 힘든 와중에도 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계속해서 운이 많이 따라 준 게 힘이 됐어요. 한 번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뉴욕에 갈 일이 있었어요. 가는 김에 뉴욕시에서 무상 생리대 법안을 통과시킨 페미니스트 활동가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답이 오지 않길래 마음을 접어두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날 연락이 온 거예요. 게다가 그 날이 뉴욕 시장이 해당 법안에 사인하는 기념식이 있는 날이었어요. 그렇게 며칠 더 머무르면서 뉴욕 촬영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답장을 보내준 활동가 분이 저희에게 ‘잭팟 터졌다’고 하셨을 정도로 운이 좋았던 거죠. 그런 순간순간들이 ‘결국 이 영화는 완성될 거야’라는 용기를 준 것 같아요.



Q: <피의 연대기>는 이야기하는 내용도 새롭지만 형식도 꽤나 새롭게 느껴지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애니메이션과 모션그래픽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빠른 리듬의 편집이 인상적이에요.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편하고 재미있어야 의미도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생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금기처럼 여겨져 왔고 누군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