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동〉리뷰: 가리워진 곳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그 날 이후 송암동엔 여름엔 여느 때처럼 뜨겁게 내리쪼이는 햇볕이 있었을 것이고 폭풍우 몰아치는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겨울처럼 살갗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과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온세상을 뒤덮는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역사는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거나 씻겨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곳에 스며들어 남아있다. 그 날 광주에 파견 된 특전사 요원들, 총기 회수를 위해 인근 마을을 순행하던 시민군, 인근에 매복하던 계엄군, 송암동 일대의 주민들이 겪은 1980년 5월 24일 오후 2시부터의 타임라인과 핏빛 역사에 대해 〈송암동〉은 극영화의 형식을 빌려 다시 재현한다.
특수부대원과 계엄군 사이에서 발생한 오인 교전으로 11공수 63대대 부대원 9명의 사망과 40여 명의 부상, 그 후 어린 아이 2명을 포함한 10여명의 시민 학살을 포함해 수많은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송암동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물은 뚜렷하게 남아있지 않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제보 된 공수대원의 증언에서 출발한 사건에 대한 증언자의 시간은 개인의 영역에서 온전한 개별로 존재하기도, 동시에 상황과 사건을 공유한 집단으로서 시간을 공유한다. 비워진 시간을 누군가의 기억으로 메우고 동시에 겹쳐지는 시간들을 정리하며 완성된 영화는 치열한 조사와 증언 고증을 통해 송암동의 하루를 복원하는 것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가지는 분명히 증언되지 않는다. 그들은 왜 서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무고한 죽음을 발생시켰는가? 국군은 서로를 겨누지 않고 무고한 시민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깨트리는 그 모든 행위들의 동기는 무엇이었는가? 책임자 규명 과정에서 쓰임이 불분명한 마대 자루가 투입된 것에 대해 묻자 끝내 답변을 거절하던 당시 고위 간부의 모습은 다소 신경질적인 듯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면죄에 대한 욕망은 여과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부재하는 의식 속에서 면죄되는 것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했고 지나 온 불분명한 시간과 공간에 대해 〈송암동〉은 삶과 죽음 그 사이에서 발생 할 수 있는 죄를 비롯한 모든 것이 자연히 사라질 일이 될 것이라는 어떤 야속한 사실들을 영화 속 시간과 공간을 통해 구현하고 고정시킴으로써 부정한다. 기억과 기록의 의지가 있는 사람과 집단의 힘은 물리적인 영역에서만 존재하고 영향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거스르는 의지가 있는 이들은 끝내 모두에게 마땅함을 돌려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현명한 추적과 면밀한 발견을 통해 밝혀지지 않은 어둠을 거두어 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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