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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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목화솜 피는 날〉과 〈비밀의 정원〉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글입니다.
거대한 상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것들을 들여다본다. 괴로운 기억이 우리를 외로이 가둬둘 때, 그 안에서 무너져버린 것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다시 일어서보자고.
병호(박원상)와 수현(우미화)은 두 딸을 둔 평범한 가족이었다. 10년 전 그날 이후, 둘째 딸 경은(박서연)을 잃고 존재와 상실 사이, 그 어딘가만 무기력하게 맴돌고 있다. 파편처럼 흩어진 기억 속에 갇혀버린 병호, 놓쳐버린 아이의 존재를 지우면서 슬픔을 삼키는 수현. 누군가는 잊음으로, 누군가는 외면으로 10년을 버텨왔지만, 여전히 과거의 시간과 공간에 묶여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 중이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인 동시에 피해자다.
〈목화솜 피는 날〉이 참사 피해자들이 버텨왔던 세월을 이야기한다면, 〈비밀의 정원〉은 범죄 피해자가 홀로 짊어졌던 세월을 이야기한다.
정원(한우연)과 상우(전석호)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부부다. 어느 날 걸려 온 전화 한 통은, 정원의 일상에 희미한 균열을 내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이자 비밀을 수면 위로 다시 끌어온다. 10년 만에 가해자가 잡혔지만, 그날은 여전히 평생의 상처로 존재하고 그 속에서 크고 작은 혼란을 겪으며 정원과 주변 인물 사이의 관계도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목화솜 피는 날〉과 〈비밀의 정원〉은 영화에 낮게 깔린 사건 그 자체보다는,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삶에 더 무게를 둔다. 고통의 크기와 무게는 모두 다를 것이기에, 이를 받아들이고 치유하는 과정의 속도 또한 다르다. 그렇기에 두 영화는 다른 속도를 가진 이들을 급하게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더 속도를 내라고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저 스스로 마음을 열고 다시 다가와 주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바랄 뿐이다. 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 여겨졌던 인물들이 한 걸음 내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일말의 희망을 쥐어준다. 수현은 텅 빈 세월호 선체 안에서 딸의 마지막 흔적을 움켜쥐며 울부짖는 병호를 찾아간다. 자신도 고통스럽겠지만,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그를 안아준다. 정원도 그동안 발목을 붙잡고 있던 과거의 장소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과거의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 행동이 오랜 두려움을 조금은 밀어내주는 것만 같다.
그 끝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목화솜 피는 날〉과 〈비밀의 정원〉은 멈춰 있지 말고 같이 가자며, 같이 살아보자며 손을 내민다. 꽃이 지고 나서 피는 열매이자 너무 고와 두 번째 꽃이라고도 불리는 목화솜 이야기처럼, 힘을 주어 밀어내면 아주 조금씩 휘어가던 여느 나무처럼, 병호를 태운 버스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정원과 상우 또한 이전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함께 바닷가를 걷는다.
세월호 아이들과 유가족을 비롯한 모든 피해자가 목화솜처럼 다시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 이들이 더 이상 자책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길 바라는 작은 희망을 품은 채, 영화는 말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나의 곁에는 항상 네가 있다는 것, 우리는 언제든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서로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것, 이리저리 헤맬지라도 결국 우리는 다시 살아갈 거라는 것. 그 연대의 힘과 가능성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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