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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벌써 가을이야
〈늦더위〉와 〈얼굴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오는 전화가 있으면 받는다. 누군가 문득 생각나면 반대로 전화도 걸어본다. 어떤 날엔 덩그러니 공원에서 안면 없는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트고 함께 농구를 한다. 또다른 어떤 날은 비스듬히 마주친 사람들의 대화와 동선을 먼발치에서 그저 어색하게 좇기만 한다. 전에 만나던 여자친구와 나눈 대화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오랜만에 만난 군대 후임은 지금의 자신을 그 시절의 내가 만들었다며 나를 추켜세운다. 고향에 있는 친구들은 어제 만난 것처럼 익숙하면서도 각자 자신의 몫을 이미 충분히 해내고 있다. 다음 날 만나자고 했던 사람들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고 그곳엔 오히려 뜬금없는 우연이 있다. 오랜 시간 연락 하지 않아 집 주소 조차 모르는 부모님의 집에 용기내 찾아가 들어가도 보지만 인기척에 당황해 그대로 돌아간다.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에서 ‘동주’(기진우)는 물리적인 궤적을 그리며 계속 앞으로 걸어 나아가지만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를 조명한다.
온 힘을 다 한 여름이 마지막 열기를 풀어낼 때, 치열한 여름의 공기가 떠난 자리엔 약간은 메마르고 서늘한 가을의 공기가 들어선다. 서울을 떠나 근교를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닐 때 느낀 늦더위는 어느새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8년간의 수험생활을 끝마친 지금, 한여름 밤의 꿈처럼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더라도 지난 날들을 아우르며 이미 가을이 찾아온 서울로,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되돌아가 감으로써 느끼는 감정이 마냥 패배감은 아니었으면 한다. 돌아올 곳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여행의 조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주는 하나의 여행을 완성해냈다.
〈늦더위〉에서 동주가 그러했든 〈얼굴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역시 충실한 도시 보행자이다. 그들은 낮과 밤에 익숙하고 낯선 도시와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걸음은 애초에 목적성과 방향성을 결여한듯 존재하지 않는 시간 위를 떠도는 것처럼 보인다. 퇴사 후 식당을 준비하는 ‘혜진’(김새벽), 택배기사로 일하는 ‘현수’(운종석), 사보 작가 기자로 일하는 ‘기선’(박종환)을 비롯한 그들이 나설 때 가지고 있던 목적과 방향은 보는 사람에게도 혹은 스스로에게도 쉽게 잊히거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시간들을 우리는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한다. 권태의 반복과 무목적의 시간, 동시에 지나치게 무궁무진하고 찬란한 시간. 무엇을 바래야 할지도 차마 모를 그 시간 동안 거리를 머무는 사람들이 되돌아감을 선택할 수 있다면,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 여행의 끝을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또 다른 여행이 이따금 뒤로 걷는 사람처럼, 아직 옮겨 심어지지 않은 화분처럼, 어떤 새로운 희망의 관점이 그럼에도 그들을 보살필 수 있기를 조용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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