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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생츄어리〉: 흐릿한 걸음에 마음을 담아

by indiespace_가람 2024. 6. 25.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흐릿한 걸음에 마음을 담아

〈생츄어리〉 〈동물, 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움직일 때,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갈 때
직진하는 법을 터득한 여느 기계에, 몸을 실어본 사람이라면 도착 후 스멀스멀 덮쳐오는 미궁의 뻐근함을 호소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엔 여러 법칙이 있다. 우주의 원리부터 생명체 사이의 약육강식까지.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의 시간은 절대적이면서 선형적 굴레를 견고히 밟아주는 지표가 된다. 자연에서 잉태된 인간의 신체도 마찬가지로 자연의 숨을 유연히 따라가는데, 우연히 자연을 거스르는 빠른 속도를 마주할 때면, 자연의 호흡이 고파 밭은 숨을 뱉고, 에너지는 역류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발생한다. 타고나기를 자연의 속성인 인간에게 ‘자연과 공생하기’ 같은 혼란스러운 워딩의 난제는 왜 주어진 것일까. 

 

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야생 동물 보호 시설, ‘생츄어리’. 뛰어다니며 자신이 살아있다는 듯 넘쳐나는 생명력을 표출하는 야생 동물과 그 뒤를 쫓는 사람들. 뻗는 손은 아이들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붙잡으려는 듯 간절함이 서려 있다. 야생동물 구조자들은 다친 동물들을 구조하여 품 안에 두고 보호하지만, 그곳에서는 생명과 죽음이 반복되고 구조가 무력하게도 절반 이상의 아이들은 목숨을 잃고 만다. 작은 통에서 꺼내진 여러 마리의 고라니는 핏덩이가 된 몸과 축축 처지는 신체를 안은 채 잠들어 있다. 그들을 위하는 인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피어오르는 죽음의 기운을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야생 동물에 대한 의견은 동물, 자연, 인간, 사회를 넘나든다. 다큐멘터리의 통용되는 문법을 통해 사회적 윤리로 비집고 이 사항을 바라보려다 가도 야생 동물들의 날 세운 손톱과, 흐려진 눈빛을 마주하면 넘실대는 감정이 이를 앞지른다. 단순히 인간에게 있어 치료 가능한 병 수준인 디스크가, 동물에게 다가왔을 땐, 안락사로 가야 하는 원인이 되고 대의적 명분과 생명의 존엄, 그리고 개별 동물의 감정까지. 인간은 선택할 수 없는 기로에 서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그저 마음으로 지켜본다. 

이성적 판단으로 단순히 결정할 수 없는 고민은 지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다. 해마다 달라질 수 있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그들이 가장 중시해야 하는 것도 실상 뚜렷하지 않다. 의견은 지속해서 충돌되고, 아직 대한민국의 ‘생츄어리’는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영화의 마지막 품 안에 아이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장면이 연발된다. 작은 우리 속에서 그간의 치료를 받던 아이들은 세상 밖으로 뛰어오른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앞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작아져 점이 되어버린다. 남겨진 사람들, 미련스러운 건 인간이라는 듯 집요하게 그들의 뒤를 쫓는다.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자식의 독립이라는 말처럼, 자연이라는 이름 아래 인연으로 엮어진 세상과 우리는 어쩌면 서로가 스스로의 두발로 지탱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염원하는 데 있지 않을까. 미련없이 달려나가는 야생동물들의 길이, 부디 험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영화 〈동물, 원〉 스틸컷


〈생츄어리〉 왕민철 감독은 전작 〈동물, 원〉 (2019)을 통해 지속해서 동물의 대한 관심을 표해왔다.

사라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동물원, 과거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동물원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판단도 중요하지만 결국 동물원에 있는 생명들의 마음은 서로를 보살피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고 영화는 밝힌다. 더 나은 동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그 끝이 동물원의 존폐와 연관되어 있을지라도 중요한 건 한 걸음의 사려와 도전이 아닐까. 

* 작품 보러 가기: 〈동물, 원〉(왕민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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