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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다섯 번째 방〉: 나로 살아가는 법

by indiespace_가람 2024. 6. 17.

〈다섯 번째 방〉리뷰: 나로 살아가는 법

*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글입니다.

 

 

〈다섯 번째 방〉은 딸인 전찬영 감독의 시선으로 자기만의 다섯 번째 방을 찾아 나서는 엄마 김효정 씨의 여정을 따라간다. 독립을 위한 엄마의 투쟁기에서부터 시댁, 남편과의 크고 작은 충돌까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가부장적 세계 속 ‘가장 보통의 가족’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엄마의 독립’이라는 다소 어색해 보이는 조합에 의문을 품을 때쯤, 영화는 그 이유를 우리에게 납득시키며 가족을 돌보느라 정작 본인을 돌보지 못했던 우리들의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몇십 년 동안 ‘시댁에 얹혀사는 며느리’의 위치에서 살아온 효정에게 집은 불안하고 불편한 공간이다. 경제적인 독립을 먼저 이뤄내 집에서 가장 큰 안방을 얻어내고 후에 더 독립적인 본인만의 업무 공간이 필요해지자 2층까지 옮겨갔지만, 상담일을 하는 도중에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시로 공간을 침범한다. 또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그녀지만, 퇴근 후 그녀를 기다리는 건 밀린 설거지와 남편의 잔소리다. 힘들게 일을 하고 들어왔어도 집안일은 여전히 효정의 몫인 것이다. 

 

 

영화 〈다섯 번째 방〉 스틸컷

 


이렇게 오랜 시댁살이를 참고 가족을 위해 스스로 가장의 무게까지 짊어졌지만,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의 폭탄 발언과 친정아버지 장례식장에서의 남편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 꾹꾹 눌러왔던 효정의 울분은 결국 폭발하게 된다. 절망적이지만,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이 가족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효정에게서 각자 엄마의 모습을 겹쳐보게 된다.

그렇다면 효정에게 독립의 이유는 무엇일까? 효정은 단지 주거적인 의미의 독립만을 원하는 게 아니다. 효정이 자기만의 방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가부장적 사회 속 엄마라는 역할, 며느리라는 역할에서 스스로 독립해 해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구의 엄마, 어느 집안의 며느리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담긴 여정인 것이다.

 

 

영화 〈다섯 번째 방〉 스틸컷

 


엄마의 독립을 응원할 때쯤, 영화는 이 가족의 오랜 갈등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엄마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마음과 이제껏 가족에게 상처만 줬던 아빠를 가족이라는 이유로 온전히 미워하지 못하는 마음. 그 크고 작은 마음들을 솔직하게 담아내며 가족이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게끔 한다.

효정이 집 안의 다섯 번째 방에서 벗어나 온전한 집 한 채를 구해 독립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많은 역할에 치여 스스로를 잃어버렸던 그녀가 자기 자신으로서 내딛는 첫걸음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저절로 궁금해진다. 분명한 건, 〈다섯 번째 방〉은 단지 이 가족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가정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혹은 이미 어딘가에서는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임을 받아들인다면, 이 이야기가 불러올 공감, 그 공감으로부터 시작될 작은 움직임, 그 움직임이 모여 만들어낼 변화까지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변화를 꿈꾸며 자기만의 방을 찾는 이 세상 모든 엄마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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