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가시나들> 한줄 관람평
김윤정 | 마음이 팔팔하면 청춘이다!
성혜미 | 정성을 더하여 살 것을 소망한다
최승현 | 삶이 아른거리는 글씨와 눈물을 자아내는 그림들
승문보 | 잊고 있던 삶과 배움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그런 착한 다큐멘터리
오윤주 | 누구의 할머니도 아내도 아닌, "칠곡 가시나들"
송은지 | 연필로 눌러쓴 시 속에 노년의 고민과 배움의 설렘, 활기참이 꾹꾹 담겨있다
김정은 | 할머니들의 시에 담긴 사랑스럽고 따스한 삶의 조각들
이성현 | 눈부신 생의 운율
<칠곡 가시나들> 리뷰: 누구의 할머니도 아내도 아닌, "칠곡 가시나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칠곡 가시나들>은 나이 팔십 줄이 되어서야 경상북도 칠곡군의 ‘배움 학교’에서 한글을 처음 배우게 된 여성들의 삶에 대한 영화다. 그들은 모두 1930년대생으로, 일제강점기와 전쟁과 가난을 겪으며 혹독한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이다. 여자는 글 배울 필요가 없다며 배움의 기회조차 앗아갔던 시절에 태어나 누군가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할머니로서 어마어마한 몫을 해낸 그들은 이제 한글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누구의 할머니도 아내도 아닌, 그들의 이름 석 자로, 그저 "칠곡 가시나들"로.
가마이 보니까 시가 참 많다
여기도 시 저기도 시
시가 천지삐까리다
- 박금분
영화는 여성의 글쓰기,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까막눈이었던 그들은 한글 선생님 주석희 씨의 지도에 따라 한글을 배운다. 길거리에 걸려 있는 간판도 더듬더듬 읽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우체국을 방문해 아들에게 자필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시를 써보기도 한다. 처음 글을 배운 그들에게 온 세상은 시 그 자체나 다름없다. 글자를 모를 때는 그저 생각으로만, 흩어지는 말로만 향유했을 감정들이 네모난 글씨가 되어 그들의 일기장에 담긴다.
그들이 써낸 시는 사실 기성 문학 체계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기성 문학의 관점에서는 시로서의 예술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시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글들이다. 노래에도 법칙이 있고 영화에도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듯, 시에도 시만의 법칙이 있다. 칠곡의 여성들이 써낸 시는 시라기보다는 짧은 일기나 몇 마디 문장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시를 읽고 감동을 받고 힘을 얻는다. 그들은 이미 4년 전인 2015년에 『시가 뭐고?』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정말 시란 무엇일까? 글쓰기란 무엇일까? 또한 여성의 글쓰기란 무엇일까? 그들은 우리에게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여성의 글쓰기는 사실 척박한 토양에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내야 하는 힘겨운 작업이다. 언어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남성 중심적 체제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여성의 언어를 창조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칠곡의 여성들이 써 내린 시는 기성의 문법을 완전히 해체하고 깨부수는 새로운 시도이자 새로운 언어다. 그들만이 쓸 수 있는 방언과 언어로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역사에서 지워져 온 나이 든 여성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그 목소리를 젊은 세대에 전한다. 그 이야기는 죽지 않고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
영화는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그 존재 자체에 살아있는 역사가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노인 소외와 여성 억압의 교차점에서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 하루하루를 역사에 새긴다. 온당 누려야 할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아온 여성들이 그 권리를 되찾아오는 과정이야말로 한글 배움의 정치적 의미다. 글을 읽고 쓰는 여성은 위험하다. 그들에게는 주체적으로 생각할 힘이 있고 또한 체제를 뒤흔들어버릴 힘이 있다. 그렇기에 일제는, 남성이 지배한 세계는 여성들이 글을 배울 권리를 박탈했다. 그러나 칠곡에서는 젊은 여성의 입에서 나이 든 여성의 입으로, 또한 나이 든 여성의 입에서 우리들에게로 그들의 언어가 전승된다. 자연 속 모계 사회에서 여성의 언어가 새롭게 싹트는 눈부신 지점을 영화는 포착해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다른 누군가가 붙는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또 누군가의 할머니. 여성의 역할은 늘 집안 노동이나 돌봄 노동으로만 한정되어 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모든 수식어를 떼 버린 여성 한 명 한 명의 삶을 들여다본다. 영화 제목이 ‘칠곡 할머니들’이 아니라 ‘칠곡 가시나들’인 이유다. 영화는 철저하게 여성의 세계를 그려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중심인물은 여성뿐이다.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여성들이 연대하고 함께 도전하며 그들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이야기다. 노인을 향한, 그리고 여성을 향한 어떠한 편견도 시혜적 시선도 없이 그저 그들의 일상을 담아낸다. 그 일상이란 어쩌면 편견과 오해에 휩싸였던 우리를 부끄럽게 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감정들이다.
곽두조 씨는 평생 가수를 꿈꿔오다 지역 노래 대회에 처음으로 도전하게 되며 설렘과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한 후에는 감출 수 없는 실망감과 후련한 마음을 동시에 내비친다. 오랜만의 배움에 돌아서면 한글을 잊어버리지만 아픈 무릎과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한 자 한 자 한글을 적어내리는 끈기도 보인다. 한글 선생님 주석희 씨는 학생이 처음으로 그려준 삐뚤빼뚤한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감동과 고마움과 보람이 뒤섞인 눈물을 흘린다. 윤금순 씨는 명절에 자식 내외가 방문하고 떠나가자 갑작스레 찾아온 공허함에 며칠 씩 우울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울함에 집안에 틀어박힌 금순 씨를 선생님과 친구들이 찾아와 밖으로 끌어내 준다. 영화는 칠곡 여성들의 우울함, 허무함, 설렘, 기쁨, 행복, 긴장감, 사소한 취향, 우정, 사랑, 끈기, 도전 정신을 담아낸다. 팔십 세 이후에도 삶은 있다. 팔십 세 이후에도 원초적인 감정은 들끓으며, 팔십 세 이후에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어떤 모진 풍파를 겪어도 자연이 계속되듯, 팔십 이후에도 삶은 이어진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는 삶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칠곡의 자손들에게, 그리고 이 영화를 관람한 우리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던 이미지가 있다.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곡 'Hoppípolla' 뮤직비디오다. 뮤직비디오 속 나이 든 노인들은 벨을 누르고 도망가거나 요란스럽게 물장구를 치며 노는 등 유아적인 행동을 한다. 노인들의 해사한 미소는 어린아이를 연상케 한다. 그곳은 육신은 나이 들어도 영혼은 영원히 어린아이인 얼어붙은 동화 속 세계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어린아이에 가까워진다. 칠곡 가시나들을 가르치는 한글 교사는 마치 유치원 반 아이들을 보살피듯 그들을 챙긴다. 칠곡 가시나들은 보살핌이 필요했던 어린아이에서 자라나 남을 돌보는 어른이 되었다가 다시 보살핌이 필요한 노인이 되었다. 칠곡 노인들의 눈은 아이처럼 해맑고 순수하다. 그들의 시에도, 그림에도 어린 영혼이 깃들어 있다. 니체가 말하길 인간의 최고 단계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라고 했다. 칠곡의 여성들은 이미 그 어린 아이의 단계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고, 그것을 가감 없이 표현할 줄 알며, 도전을 서슴지 않고 배움을 놀이로 삼는다. 그들은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이다.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육신의 나이가 아니라 영혼의 나이다. 힘겨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삶이 계속되는 한 나는 칠곡의 여성들처럼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영원히 늙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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