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편의 단편영화가 하나로 묶여 전달하는 보편적인 서사의 힘 

 〈오늘, 우리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1월 3일(일) 오후 3시 상영 후

참석 부은주, 곽은미 감독 | 배우 이민영

진행 정가영 감독 (<밤치기>, <비치온더비치>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영화제, 기획전 등을 통해 찾아야만볼 수 있는 단편영화들이 개봉했다. 2박 3일〉, 5 14일〉, 〈환불〉, 〈대자보〉 네 편의 단편영화들이 하나로 묶여 〈오늘, 우리〉가 되었다. 네 편의 보편적인 서사를 가진 단편영화들이 하나로 묶여 그 의미를 더욱 확장시키는 〈오늘, 우리〉는 단편이 가진 매력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모더레이터 정가영 감독, 514일〉의 부은주 감독, 〈대자보〉의 곽은미 감독, 이민영 배우 그리고 이 네 편의 영화를 하나로 묶은 배급사 필름다빈의 백다빈 대표가 이야기를 나눈 인디토크를 소개한다.

 





정가영 감독(이하 정가영): 안녕하세요. 오늘 인디토크 진행 맡게 된 영화 만드는 정가영이라고 합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하고 재미있는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독님들, 그리고 배우님 소개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부은주 감독(이하 부은주): 안녕하세요. 두 번째 영화 〈514일〉만든 부은주라고 합니다.

 

곽은미 감독(이하 곽은미): 안녕하세요. 마지막 작품 〈대자보〉 연출한 곽은미라고 합니다.

 

이민영 배우(이하 이민영): 안녕하세요. 〈대자보〉에서 민영 역할 맡은 이민영입니다.

 

정가영: 단편영화들을 묶어서 개봉하는 일이 드물잖아요. 보통 단편영화는 영화제를 통해서 관객을 만나고 그 이후에는 보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영화 배급사 필름다빈에서 〈오늘, 우리〉라는 제목으로 여성 감독님들의 멋진 네 작품을 묶어서 개봉했는데,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소감이 어떠셨나요?

 

부은주: 처음에 전화로 너무나 무던하게 말씀해주셨어요. 저는 좋아서 괜찮은데 오히려 걱정이 되어서 수익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말했던 것 같아요(웃음).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임했던 것이, 단편영화는 영화제를 지나고 나면 외장하드 안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요. 소소하게나마 극장에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고 오늘 인디토크도 소소하게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곽은미: 부은주 감독님이랑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아요. 과연 우리의 영화가 극장에 걸렸을 때 영화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있을지 걱정되었어요. 영화제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단편영화를 보시는 관객분들이 많지만 정식 개봉을 하면 일반 관객분들이 보러 오실까 하는 우려가 있었죠. 제 입장에서는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기회를 갖는 것이 뿌듯하고 기쁜 일이지만, 배급사의 수익이 제일 먼저 걱정이 되었어요. 개봉하고 3일째 관객분들과 만나고 있는데, 영화제에서 관객분들을 만나는 것과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영화 개봉이 처음이라서 무언가 다른 느낌이었어요. 관객분들이 훨씬 냉정하게 영화를 봐주신 것 같고 솔직하게 질문도 해주신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런 부분들이 좋았습니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면 기분이 되게 좋더라고요. 온라인에 평점 하나하나 수시로 들어가서 보는데 기분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영화 보시고 리뷰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민영: 〈대자보〉가 영화제에 되게 많이 갔는데, 그 이후 1, 2년 동안은 영화관에서 볼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대자보〉라는 작품이 저한테는 되게 소중한 작품이에요. 다른 세 작품들도 너무 좋은 작품이어서 〈대자보〉와 같이 상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게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고 관객분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저도 제가 출연한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 건 처음인데 개봉하고 나니까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개봉 전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습니다.

 




정가영: 저도 제가 찍은 영화들이 몇 차례 개봉을 했는데 확실히 영화제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영화제 때의 축제 같은 반응, 나를 장동건처럼 바라봐주시는 반응들을 보다가 개봉하면 현실과 마주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러한 점에서 개봉이 갖고 있는 매력이 분명히 있어요. 관객수를 떠나서 이렇게 단편들을 묶어서 개봉하는 것 자체가 정말 유의미한 작업 같아요. 앞으로도 이런 작업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자면 514일〉과 〈대자보〉 두 작품 모두 강렬한 여운이 느껴져요. 두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 혹은 사건이 있었을까요?

 

부은주: 저는 생일이라는 날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 되게 많았어요. 매해 같은 날짜로 돌아오고, 제 생일은 한 해가 끝날 때 즈음이라 내가 태어난 날이라는 생각보다는 한 해가 지났다’는 식의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 생일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처럼 여겨져서 그날에 대한 감상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친구 중에 실제로 민정이란 친구가 있는데 생일이 55일 어린이날이에요. 그리고 그날 그 친구의 오빠가 결혼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그것을 시작으로 제 생일에 대한 감상을 펼치면서 〈514일〉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곽은미: 〈대자보〉 작업을 2017 1월에 시작했는데 그때 뉴스를 한참 많이 봤어요. 다른 분들도 뉴스를 많이 보셨을 거예요. 정유라 씨 사건 관련해서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대자보를 쓴 뉴스들을 보고서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대자보를 쓸 수 있었을지 궁금했어요. 어떤 단체에서 쓴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쓴 대자보들인데, 그 용기가 무엇일까 궁금했어요. 저도 그러한 감정을 대학생 때부터 계속 쌓아두고 있었거든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영화로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가영: 그때 당시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극 중에서 이민영 배우님이 대자보를 노래로 승화시키는 부분이 있는데, 감독님께서 이 부분은 배우님에게 직접 맡겼다고 들었어요. 그때 어떠셨나요?

 

이민영: 우선 저는 〈대자보〉에 나오는 혜리랑 민영의 역할과 성격이 굉장히 상반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민영이의 성격이라면 혜리가 쓰는 것 같은 대자보는 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 썼을 때 가장 민영이다울까생각했을 때 민영처럼 유쾌하고 밝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감독님이 직접 써보자는 제안을 하셨을 때 제가 글을 써본 사람이 아니라서 당황했거든요. 그런데 검색하고 찾아보니 4행시 형식으로 앞 글자를 따서 쓰는 것도 있고 다양한 방법이 있더라고요. 제가 그 시기에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좋아하기도 했어요. 이 드라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자보에 노래 가사를 써서 넣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정가영: 그런 식의 발랄함 혹은 가벼운 지점이 들어가면서 이 영화가 부담 없이도 멋진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느껴진 것 같아요.

 




관객: 〈대자보〉는 흑백 화면에 편집 없이 영화가 진행되어 주인공의 어두운 표정, 그리고 긴장감이 더 잘 느껴졌습니다. 이유가 궁금합니다.

 

곽은미: 저는 처음부터 영화의 내용보다 형식을 먼저 정해서 촬영했어요. 우선 원테이크 촬영을 너무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컷과 컷이 나누어지면 배우의 감정의 연결도 끊긴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이 롱테이크로 이어졌을 때 배우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새로이 발견해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관객분들이 대자보 쓰는 현장을 체험하듯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 원테이크의 가장 큰 의도였고, 대자보는 보통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쓰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도 흑과 백의 질감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흑백 화면을 선택했습니다.

 

정가영〈대자보〉의 몰입도가 정말 강렬했던 것 같아요. 25분을 끊지 않고 계속 이어서 촬영한다면 촬영, 연기, 연출, 모든 게 쉬운 게 없었을 텐데 원하시는 질감이 잘 표현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되게 끔찍한 일이잖아요. 원쇼트고, 해가 지기 전에 촬영이 끝나야하고. 하루 만에 작업하신 거죠?

 

곽은미배우분들이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본인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표정에 보였어요.

 

정가영: 감독과 배우들의 눈은 다르잖아요?

 

이민영: 감독님의 눈에서 보신 것 같아요(웃음). 농담입니다. 맞는 말씀이에요. 즐거웠습니다.

 




정가영: 이런 형식이 영화의 깊이를 다져주었어요. 저도 네 편의 영화를 보면서 느껴지는 게 많았던 것 같아요. 23일〉은 처음에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보았는데 그때는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하지 못했어요. 의아했죠. 그런데 2년 사이에 제가 호된 이별 통보를 당하고 나니 〈23일〉이라는 영화가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온 것 같아요. 상대는 이별을 준비해왔겠지만 이별을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감정을 놓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거라는 게 이제야 이해가 가요. 다른 분들은 23일〉을 어떻게 보셨나요?

 

이민영: 저도 〈23일〉보면서 정가영 감독님이랑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정수지 배우님이 연기하셨던 주인공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이미 상대방은 나한테 정이 떨어진 상태에서 내가 더 매달리면 상대방이 나를 더 구차하게 느낄 것 같았어요. 영화 보면서 남자친구 역할이 너무 짜증나고 화가 나고 한대 때려주고 싶긴 한데(웃음), 어떻게 보면 상대방 마음이 나랑 같을 수는 없으니까 그것도 이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가영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이기적인 것 같아요. 내가 차였을 때는 내가 가진 시련의 에너지로 23일 동안 너도 당해봐야 하는 거야라고 하지만 또 내가 찰 때는 그냥 담백하게 마음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하고 생각하니까요. 〈환불〉이라는 영화도 되게 인상 깊게 봤는데요. 마지막에 회사를 다니면서 입으려고 샀던 정장을 환불하지 않고 그냥 오는 게 인상 깊었어요.

 

부은주: 〈환불〉의 송예진 감독님이 많이 말씀하셨던 문장 중 하나가 사람도 환불이 되나요?’라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한 맞물림이 가장 재미있고 슬픈 포인트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곽은미: 〈환불〉을 한 번 봤을 때는 그 부분이 캐치가 안 되었어요. '누군가의 따뜻함이 힘을 주는구나' 이런 표면적인 감상이 있었는데 나중에 자신은 환불 당했지만, 환불하지 않는 모습을 알게 되니 그 감동이 훨씬 크게 오더라고요.

 

정가영: 그러고 보면 〈환불〉에서 옷가게의 사장님이 흔쾌히 정장을 환불해주는 호의, 따뜻한 마음 같은 것이 〈514일〉의 약과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환불〉의 스터디원들, 무언가 싸한 표정의 연기가 진짜 인상 깊었어요.

 

곽은미: 〈환불〉에서 교재를 폰으로 찍는 소리가 나잖아요. 그 소리가 정말 마음을 후벼 파는 것 같아요. 주인공의 심리도 잘 따라가지만 주변 인물들의 세팅이 잘 되어있는 것 같아요.

 

 



관객514일〉에서 설정을 부산, 그리고 석가탄신일로 잡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감정 표출을 잘 안 하다가 케이크의 편지를 보는 것을 기점으로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데 그 의미가 궁금합니다.

 

부은주: 주인공 민정이 자기가 태어난 생일에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게 저희 영화의 설정인데요, 그 설정을 이야기적으로 재미있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더 큰 이벤트가 필요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석가탄신일에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잖아요. 그래서 석가탄신일이라는 것과 결혼식의 신부라는, 너무나도 큰 이벤트의 주인공을 설정했어요. 514일〉이라는 영화 자체가 그 날 하루에 결혼식장부터 절까지 가는 로드무비 형식의 영화이기 때문에 도시와 자연이 가깝게 밀집돼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제가 제주도 사람이라 제주도에서 찍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는데 비행기 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바로 부산을 떠올렸습니다. 그날 민정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한 이유는 다른 주인공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민정이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민정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엄청난 걸 바라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성의 없는 케이크와 편지 같은 것들이 민정의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정가영: 결혼식장도 나오고 절도 나오는데 어떻게 촬영을 하셨는지 궁금했어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장소를 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촬영하셨나요?

 

부은주감사하게도 촬영감독님이 공간을 잘 담아주셔서 많은 관객분들이 이 영화가 굉장히 돈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고 생각하시는데, 비하인드를 잠깐 말씀 드리자면 결혼식장 같은 경우는 도저히 대관을 할 수 없었어요. 대관비만 1000만원이 넘었고 필요한 인력과 셋팅을 감당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결혼식 장면이 나오지 않으면 주인공의 서글픈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 신혼부부 커뮤니티 카페에 들어갔어요. ‘제가 학생인데 이런 영화를 찍고 싶은데 최대한 예식에 방해되지 않게 배우와 최소 스태프만 데려가서 찍을 거다. 대신 제가 결혼식 웨딩 영상을 제작해드리겠다라고 글을 올려서, 말하자면 교환을 했어요. 너무 좋으신 분들이 연락을 주셔서 저는 제 컷을 찍고, 웨딩 영상도 찍어드리고, 찍은 소스를 영화 안에도 활용했어요. 무료로 정말 좋은 장면을 촬영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정가영제작자로서의 머리가 돌아가셨네요(웃음).

 

부은주: 사람이 간절하니까 머리가 돌아가더라고요. 절도 되게 많은 곳에 가봤어요. 서울에 있는 절 다 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종교시설이니까 당연히 안 된다고 하시고, 연등이 달려있는 시기여야 하니까 석가탄신일 주변에 촬영을 해야 해서 더 거절당했어요. 그러다 어떤 절을 갔는데 나는 이 절 아니면 안 된다라는 게 딱 와서 한 세 번 찾아갔어요. 두 번 거절당하고 마지막에 큰 스님한테 찾아가서 울었어요. 진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결과적으로 허락 받고 조용히 찍고 나와서 좋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관객: 514일〉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주인공 민정에게 그날이 참 서러웠던 날인 것 같은데 감독님께서 느낀 가장 서러웠던 기억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부은주: 제가 잘 서러워지는 편이라서(웃음). 서러웠던 적이 너무 많아서 꼽을 수는 없지만 영화에 슈퍼 장면이 나와서 말씀드리자면 〈514일〉 시나리오를 썼던 당시 실제로 제가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며칠 되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엄청 날씨가 좋은 봄날이었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리는 거예요. 그때 저한테 우산이 없었고 기분이 안 좋아서 길에서 비 맞으면서 울면서 걸어 다녔어요. 혼자 청승맞게 가다 보니 가게가 보이더라고요. 들어가서 우산을 살 때도 울고 있었고요. 그 때 계산해주시던 아주머니가 저한테 좋은 봄날에 너무 예쁜데 왜 우냐, 울지 마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제 마음속에 굉장히 오래 남았어요. 그게 시나리오에 비슷한 형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정가영: 그분께서 〈514일〉을 보시면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나의 따뜻한 한 마디가 영화를 개봉까지 이끌다니이런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사람의 온기가 우리 같은 창작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어서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관객단편영화 여러 편을 묶어서 〈오늘, 우리〉라는 제목을 붙여주셨는데, 이것은 어떻게 만들어진 제목인지 궁금합니다.

 

부은주: 저기 필름다빈의 백다빈 대표님이 계시는데 잠깐 마이크를 넘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백다빈 대표(이하 백다빈): 먼저 어떤 영화들을 묶어야 한 영화처럼 전달이 될까 고민이 되었어요. 전제 조건으로 단편적인 서사에 충실한 '단편다운 단편 영화'를 묶자는 게 첫 번째 조건이었고, 두 번째로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에게 성립이 가능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보시다시피 네 편 다 개성이 강한데, 그러니 개성 있는 제목을 지었을 때 오히려 안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제목을 찾았어요. 네 편의 영화 모두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니 오늘이라는 단어를 넣었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우리를 붙여서 조합을 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들과 협의해서 〈오늘, 우리〉로 고르게 되었습니다.

 

정가영: 네 편의 순서가 어떻게 정해졌는지도 궁금해요. 고민이 많이 되셨을 것 같아요.

 

백다빈: 〈오늘, 우리〉를 처음 기획했을 때 〈대자보〉가 무조건 마지막이라는 직관적 판단에서 시작했어요. 전체 서사에서 〈대자보〉가 마지막이 되어야 이야기가 잘 구성된다고 생각했어요.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데, 여러 가지 회의 끝에 〈2박 3일〉, 514일〉, 〈환불〉, 〈대자보〉의 순서로 정해졌어요. 2박 3일〉이 코미디적인 요소가 있어서 편하게 시작을 즐길 수 있도록 처음으로, 〈대자보〉는 마무리를 하는 의미로 마지막으로, 그리고 〈514일〉과 〈환불〉의 순서를 고민하다가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정가영: 멋진 작품으로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분씩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말, 소감, 앞으로의 계획 등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민영: 우선 가족 같은 분위기로 인디토크가 진행되어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출연한 영화 두 편 〈교환학생〉, 〈연애편지〉가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 상영됩니다. 또 서울독립영화제엔 〈안부〉라는 작품이 상영됩니다. 많이 보러 와주시고 그전에 〈오늘, 우리〉 많이 봐주세요.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곽은미: 일요일 낮이라는 귀한 시간에 〈오늘, 우리〉를 보러 인디스페이스까지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장편영화 시나리오 쓰고 있는데요, 잘 준비해서 또 만나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은주: 저는 〈5 14일〉이 첫 연출작이고 작년에 〈우리집〉이라는 단편영화를 찍었습니다. 겨울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단편영화를 촬영하고자 준비할 예정입니다. 먼 걸음 정성스럽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 영화들과 엮여서 개봉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에요. 관객분들도 따뜻한 위로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가영충분히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많은 홍보, 관심, 사랑 부탁드립니다. 인디토크 마치겠습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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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  한줄 관람평 


정성혜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건 잠깐의 따뜻한 손길

송은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내 마음 뿐이다

임종우 단어의 조각을 모아 새로운 언어의 물결로

김윤정 | 가장 보편적인 오늘, 우리의 이야기

김정은 고단한 오늘의 작은 위로로 나은 내일을 그려 보는 우리의 이야기






 〈오늘, 우리  리뷰: 가장 보편적인 오늘, 우리의 이야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오늘, 우리〉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문득 영화 〈벌새〉의 카피가 떠올랐다〈벌새〉가 주인공 은희를 따라가며 1994년 '아주 보편적인' 서사로 큰 울림을 주듯, 〈오늘, 우리〉는 네 명의 주인공을 따라가며 가장 보편적인 지금 우리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오늘, 우리〉는 〈2박 3〉(감독 조은지), 〈환불〉(감독 송예진), 514〉(감독 부은주), 〈대자보〉(감독 곽은미)까지 네 편의 단편영화를 하나로 묶어낸 옴니버스 영화이다. 〈오늘,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겪는 보편적인 삶에 대해 네 명의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한다.

 



2박 3


2주년이 된 날, 애인인 민규의 집으로 찾아간 지은은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는다. 이별의 상황과 감정을 준비해온 민규와는 달리 지은은 이 상황이 믿기질 않는다. 해소하지 못한 자신의 감정들을 정리하기 위해 지은은 민규의 집에서 나가지 않겠노라 선포하고 이별로 인한 원망, 아쉬움, 속상함 등 자신의 모든 감정을 민규에게 23일간 쏟아낸다.


민규네 집에서는 또 다른 이별의 상황이 펼쳐진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 민규의 엄마와 그런 아내를 찾아다니는 민규의 아빠, 둘을 바라보는 민규와 동생 그리고 할머니. 거기에 타인의 이별을 바라보며 이별을 겪고 있는 지은까지 뒤죽박죽 섞여있다. 마음이 떠난 아내를 보며 울부짖는 아빠에게 감정이 동요하는 민규의 모습, 새로운 사랑을 위해 차갑게 이별을 고하는 엄마에게 분노하는 민규의 모습은 자신의 사랑을 단호하게 정리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어찌 보면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상황 속에서 〈2박3일〉은 이 모든 아이러니한 관계와 상황에 집중한다.


지은의 2박 3일간 한풀이는 민폐도, 미련한 것도 아닌 당연한 것이다. 지은과 민규, 사랑이라는 관계가 만들어낸 상반된 캐릭터이지만 우리는 누구나 지은이 될 수도, 민규가 될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게임 앞에 언제나 이기는 게임을 할 수는 없듯 ‘모두가 서로에게 한 스푼만 더 따뜻할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 모든 관계들이 아이러니하니 말이다.


 




〈환불


꿈꿔왔던 직장인의 삶. 수진은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입사 취소 통보를 받았다.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간 수진에겐 팍팍한 삶이 기다릴 뿐이다. 지낼 곳이 없는 상황, 모두 나눠주었는데 다시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필요한 책들, 당장 필요한 돈, 엄마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는 입사 취소 사실, 입사를 위해 사둔 정장까지. 모든 것이 막막한 때 수진은 자신의 짐을 싸들고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수진은 스터디 모임으로 향한다. 자신의 취업 책들과 스터디 모임비를 환불받는 것이 목표이다. 다른 스터디원 친구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수진의 모습에 친구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잘 따지면서 왜 회사에는 안 따지는거야?’ 결국 회사를 찾아간 수진은 부당 해고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회사라는 절대적인 위치 앞에 취준생 수진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회사를 나와 수진은 입사를 위해 구입한 정장을 환불하러 또다시 길을 향한다. 하지만 결국 수진은 환불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수진은 회사의 일방적인 취소 통보 후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많은 관계들을 환불하려 했다. 자신의 상황 속에서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 다녀온 후 수진은 변화했다. 비록 자신은 회사로부터 필요에 따라 환불 당했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자신의 물건에게 또 다른 환불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얽히고 얽힌 관계들 속에 그저 환불만 외치면 해결되는 손쉬운 방법은 없다. ‘사람은 환불되지 않으니말이다.





5월 14


514일에 열리는 동생의 결혼식, 부처님의 생일까지, 1년에 단 한 번인 514일 생일의 주인공인 민정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자신의 생일날 동생의 결혼식 케이크 심부름을 해야 하는 민정. 자신의 상황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욕심 속에서 결정타로 그저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한 애인 영기의 이기심을 직면하자마자 가족들, 애인, 동료까지 철저하게 축제의 중심에서 민정을 끌어내린다.


민정은 참고 참아온 모든 감정을 터뜨린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낯선 슈퍼에서 처음 만난 주인아주머니로부터 주인공이 된다. 성의 없고 일방적인 영기의 케이크와 편지 같은 선물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민정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진정한 생일선물의 의미는 슈퍼에서 주인이 민정에게 건넨 위로의 약과에 모든 의미를 담고 있다.  


나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이 오히려 나에 대해 가장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실망감은 나의 인생 곡선을 밑으로 곤두박질치게 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낯선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삶의 큰 울림이 되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준다.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며 살아가는 우리의 커다란 인생 그래프에 대해, 514일〉은 이 얄궂은 상호작용 속 우리에게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514일〉은 영화가 끝난 후 더 큰 울림을 선물해준다. ‘나는 누군가에게 약과를 건네는 사람일 수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나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보는 울림의 진동은 끝나지 않을 숙제이자 선물인 것만 같다.




 

〈대자보


대학생 혜리는 학내 비리 교수를 규탄하는 활동을 하며 비리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쓴다. 그리고 혜리는 비리 교수로부터 고소를 당한다. 영화는 고소 사실을 알게 된 혜리의 불안한 감정을 따라가며 시작된다영화는 25분의 러닝타임 동안 철저히 혜리의 감정을 따라간다. 동아리에 신입 부원이 찾아온 상황 속 혜리는 동아리 부원인 민영에게 교수에게 고소를 당한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민영과 신입 동아리 부원이 흥겹게 비리 교수에 대한 새로운 대자보를 써 내려간다. 흰 종이에 까만색 글씨가 채워진다. 검은 글씨로 인해 고소당한 혜리는 온통 검은 옷을 입고 고소 사실에 까맣게 속이 타들어간다. 〈대자보〉에 보이는 흑과 백의 색은 혜리의 심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혜리는 새로운 대자보에 이름을 넣지 말자고 말하고 민영은 돌변한 혜리의 태도가 혼란스럽다. 갈등의 상황 속 혜리는 결국 자신의 고소 사실을 이야기한다. 부당한 상황이 자신에게 펼쳐질 수도 있을 거라는 공포 속 세 사람 사이의 공백은 불안한 혜리의 감정을 더욱 잘 보여준다. 결국 신입 부원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혜리는 부당한 상황에 혼자 맞서기로 결심한다. 새로운 대자보에 자신의 이름만을 써서 밖으로 향한다. 하지만 혜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민영이 자신의 이름을 쓴 대자보를 들고 혜리의 옆을 지키며 초조한 감정 속 대자보 쓰기는 끝이 난다. 25분이라는 시간 동안 흑백의 질감과 원쇼트로 혜리의 불안한 감정을 온전히 따라가며 보여준다는 것은, 마치 관객을 대자보 쓰는 동아리방 현장으로 불러들인 듯한 효과를 준다.


‘25분의 시간을 함께하는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대자보에 써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변화를 위해 개인이 용기를 내야하는 모든 상황 속, 혜리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은 결코 낯설지 않으니 말이다.

 




〈오늘우리〉는 지은, 수진, 민정, 혜리 4명의 인물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지은, 수진, 민정, 혜리의 서사를 따라가며, 우리는 라는 하나의 이야기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인간도 환불을 외치는 부당한 세상에 대해, 얄궂은 우리 삶의 인생 그래프에 대해, 변화를 위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이 모두는 우리의 삶이라는 이야기를 전하며 마무리한다.


단편영화들을 새롭게 엮어 관객들과 만나는 이러한 시도는 또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며 신선함을 선사한다. 단편영화는 영화제에 찾아가야만 볼 수 있으며 '씨네필' 관객을 제외하고 일반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박 3일〉, 〈환불〉, 514일〉, 〈대자보〉 네 편의 단편영화들이 서로 합쳐져 보편적 서사가 주는 힘을 보여주었듯, 영화계 안에서 단편영화들을 새롭게 구성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이끌어주는 시도들이 이어지길 바라며, 단편영화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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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하는 또 하나의 방식, 균열   영화를 말하다 〈메기   기록


일시 2019년 10월 26일(토)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이옥섭 감독

진행 손희정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현준 님의 글입니다. 




원색의 두드러진 색감과 철 지난 소품들로 가득한 영화의 미장센은 키치할 뿐더러, 어른인 척 행동하는 인물들의 언행은 겉보기에 풋풋하고 귀여울 뿐이다. 하지만 영화 〈메기〉는 이런 키치함과 귀여움이 무색할 정도로 냉정한 기운이 기저에 짙게 깔린 작품이다. 이는 시종 재밌게 보다가 어느 순간 웃음이 뚝 끊겼다는 어느 관객의 평으로 대신할 수 있겠다. 〈메기〉는 농담이 어느 순간 진담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를 통해 불합리한 일들이 시시각각 벌어지는 한국사회를 싸늘하게 조망한다. 아마도 영화가 유발하는 유머는 그런 부조리한 상황들로 판을 치는 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누군가의 발버둥을 가리킬 것이다. 물론 그 누군가는 영화의 주인공인 윤영’(이주영)으로 상징되는 여성이다. 영화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란 말도 안 되는 일들로부터 버티고 버티는, 인고와 감내의 시간임을 깨닫게 해준다. 다만 영화는 말한다. “오해를 견디는 게 어른의 삶이라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메기〉는 노골적으로 부조리한 상황들을 방치한 사회에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간곡한 심정을 싱크홀이라는 하나의 균열 이미지로 제시한다. 참을 만큼 참아온 피해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 그리고 쉽게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힘든 이 사회에서 결국 믿을 수 밖에 없는 건 자신과 같은 처지의 다른 누군가의 존재라는 사실. 10 26일에 진행된 인디토크는 인고와 감내의 나날들을 보낸 수많은 피해자들의 진심이 영화 한 편을 통해서 보는 이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었음을 입증한 시간이었으며, 불신이 가득한 이 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음이라는 가치가 연대라는 이름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체감한 순간이었다.





손희정 평론가(이하 손희정): 안녕하세요, 손희정입니다. 제 옆에는 영화를 만드신 이옥섭 감독님이 계십니다.

 

이옥섭 감독(이하 이옥섭): 안녕하세요, 저는 〈메기〉를 만든 이옥섭입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즐겁게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손희정: 저는 〈메기〉를 인디스페이스에서 관람했는데요. 보고 난 후 올해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영화가 바로 이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관객 그리고 감독님과 편하게 나누고 싶은 마음에 세계에 균열을 내는 싱크홀로서의 페미니즘이라는 노골적인 제목을 걸고서 이번 대담을 준비했습니다. 편안하게 대화 나눌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요. 일단 제목 괜찮나요?

 

이옥섭: 너무 멋있어요!

 

손희정: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옥섭: 평론가님께서 그렇게 봐주시고 관객분들이 그렇게 봐주셔서 반가웠어요. 제가 한국에서 30년 이상 살았고, 그 삶 속에서 느꼈던 게 영화에 투영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오늘은 새로운 GV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손희정: 오늘 이 영화를 처음 보신 분들도 계시니까 말씀드리자면, 크레딧으로 보신 것처럼 영화 〈메기〉는 국가인권위원회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인권위에서 감독님께 청년문제를 다뤄달라고 제안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그 가운데 X-RAY 사진으로 드러나는 디지털 성범죄와 데이트폭력, 이 두 가지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것 같습니다. 왜 청년문제와 데이트 폭력, 그리고 디지털 성범죄를 연결시킬 생각을 했는지 세부적인 주제선정 과정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이옥섭이때가 2017년이었고 ‘청년의 인권과 삶이라는 키워드가 주어졌어요. 어떤 영화를 해야 할 지 고민하다가 그 당시에 저에게 와 닿는 말이 있었어요. 어떤 영화가 개봉을 하면서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말이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요. 저는 그 말을 듣고서 내가 사는 세계를 그려서 옮기면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걸 돌파구로 삼았습니다. 이 영화는 어항 속의 메기를 쪼그려 앉아서 보는 윤영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때 윤영의 얼굴이 어두워서 이 사람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거슬러 생각하다 보니 저 사람이 어디서 몰래 찍혔을지도 몰라란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찍힐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어서 모자를 쓰거나 고개를 숙이고 일을 보는 그런 삶을 우리 모두 살았잖아요? 그게 되게 익숙한 일로 느껴졌고, 그런 상황에서는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제가 연애를 이십 대 초반에 처음 했는데요. 첫 연애를 했을 때부터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위협을 당할지도 모르고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뉴스에서 남편이나 남자친구, 혹은 헤어지자고 말한 상대에게 목숨을 잃게 되는 소식을 많이 접하다보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로 찍진 않았지만 새로 만난 남자가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대한 장편 시나리오도 썼고요. 그걸 찍지 않아서 아마 〈메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 누군가를 때렸고, 그 사람이 나에게도 어쩌면 폭력을 행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캐릭터를 만든 것 같습니다. 제 속에 있던 불안들이 고스란히 윤영에게 투영되어서 지금의 작품이 완성된 것 같아요.

 




손희정: 구교환 배우님이자 PD님과 작업을 자주 해왔기에 아무래도 처음부터 팀으로 작업 제안이 왔을 것 같습니다. 청년 문제, 그 가운데서도 데이트폭력과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다고 이야기를 나눴을 때 구교환 PD님과의 논의 과정이 어땠나요?

 

이옥섭: 먼저 시놉시스 차원으로 시나리오 쓰기 전에 제 속에 있던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서 5장에서 7장 정도의 글을 제가 먼저 작성했습니다. 그 다음 시나리오로 다 같이 컨버팅하는데, 완성에 다다랐을 즈음에 구교환 선배가 이 이야기는 네가 더 잘 알 것 같다고 해서 제가 감독을 하게 되었어요. 보통 저희는 쓰면서 타협을 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려는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손희정: 타협이라면 이 주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닌, 중간에 멈추자는 식의 타협인가요?

 

이옥섭: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도 두려운 것이 없었고, 그냥 제가 더 윤영이를 잘 아는 것 같다고 구교환 선배가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좋다고 했고요. 선배도 좋은 것, 나도 좋은 것을 서로 합치다 보니까 조금 돌연변이 같은 글이 나와서 멈췄습니다.

 

손희정: 영화가 데이트폭력과 디지털 성범죄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잖아요. 거기다 싱크홀이라는 재난을 맞은 한국사회까지. 이것들을 되게 유쾌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재난인데, 말하자면 코믹하게 그려내는 방식에서 약간 〈엑시트〉(2019)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고요. 이와 관련한 감독님의 고민이 궁금합니다.

 

이옥섭저의 습관이 묻어 나온 것 같아요. 심각한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너무 힘들잖아요? 어떻게든 거기에 너무 매몰되지 않으려는 제 나름의 발버둥 같아요. 진지하게 풀어낼 수도 있지만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조금 우회해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혹시나 이런 경험이 있는 분들이 영화를 보신다면, 조금 거리를 두실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했고요. X-RAY 장면도 만약 피부와 얼굴과 살이 나오는 방식으로 묘사했다면, 그런 실질적 피해들을 영화를 보면서 떠올릴 수 있잖아요. 가능한 그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유머를 느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머는 항상 저에게 위로가 되었기에 이 영화도 유머러스하게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손희정: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어떤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와 비슷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과거의 큰 사건이 상기되지 않는 방향을 고민하신 것 같아요. 감독님이 이 주제를 다룰 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옥섭: 제 주변에도 당연히 이런 일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이런 모습들을 많이 봤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보니 머리로는 헤어져야지, 벗어나야지 하는데 그게 안 되는 순간들이요. 저 또한 누군가와 만나온 시간들을 되짚어 보고, 이 사람에 대한 어떤 희망을 가지려고 하고, 그로 인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마음을 뿌리 뽑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이 영화를 완성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제가 영화의 결말을 보면서도 성원과 헤어지는 것이 맞지만 차마 헤어지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컸었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보신 분들께 성원과 어떻게 헤어질 수 있는지를 여쭈어보고 싶었어요. 근데 이래서 대화가 중요한가봐요. 관객 분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도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내가 앞으로 이런 일을 겪고 있거나 혹은 주변에 누군가가 이런 일을 겪고 있다면 내가 강단 있게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선 것 같아요.

 




손희정: 저는 감독님이 대단히 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냥 빠트려버리는 구나, 아싸!”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웃음), 사실 어떻게 보면 내가 끊을 수 없기 때문에 빠트려 버린 것일 수도 있겠네요?

 

이옥섭, 무엇이라도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봐요. 내 힘으로 이 사람을 지나쳐 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어떤 분이 만약 싱크홀이 없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지 질문을 주셨는데, 그때 순간 헉- 했거든요. 뭔가 들킨 기분이 들었어요. 내가 그러지 못해서 이렇게 찍은 거니까요. 이후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과거의 저는 싱크홀 없이 성원이라는 사람을 지나쳐가는 여성을 저는 아직 그릴 수 없었던 거예요. 이제는 다짐도 생기고 마음도 단단해지면서 그런 캐릭터를 얼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과거의 저에게는 싱크홀이 최선이었던 것 같아요.

 

손희정어떻게 보면 윤영과 성원,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성원이 윤영을 때리나, 안 때리나, 이런 문제에 집중하게 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성원 뿐만 아니라 지연 씨나 부원장인 경진, 그리고 메기까지, 네 캐릭터와 윤영의 관계가 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관계를 구상하셨을 때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이옥섭: 아마도 윤영이란 인물을 제가 책임지고 싶었나 봐요. 영화가 끝나도 이 사람이 살아가기에 외롭지 않고 혼자가 아닌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경진 부원장은초반에 참으로 도움이 안 되잖아요(웃음). 또 이경진 부원장과는 절대 친구가 안 될 것 같은데 결국 윤영과 친구가 되고요. 메기도 방생할지 키울지 모르고, 지연과도 계속 연락하고 지낼지 모르는 일이지만, 중요한 건 사는 도중 문득 누군가가 떠오르면 그걸로도 감사한 일이잖아요.  세 명의 여자들이 윤영의 곁에 있다면 아쉬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관계를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 같아요.

 

손희정: 영화의 주인공들이 전부 청년들인데, 이경진 부원장만 청년이 아니잖아요. 참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인데, 제가 이경진 부원장에게 꽂힌 것 같아요. 이 캐릭터가 어떻게 보이길 바랐는지 궁금하고, 문소리 씨한테 너무 딱 맞는 역이기도 해서 어떻게 캐스팅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옥섭뭐랄까, 아예 복구가 안 되는 관계도 있잖아요? 포기하고 이제 등지고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도 살면서 많이 만났는데, 그 사람들과 조금만 가까이서 시간을 지내다 보면 내가 이 사람을 참 몰랐네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이경진 부원장이 바로 그 케이스예요. 같이 지내다 보니 이 사람도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지 알게 되고, 그걸 들어주고, 나도 무언갈 털어놓고, 그러면서 어떤 관계가 시작되기도 하잖아요? 여기에 좀 사랑스러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하하하〉(2010)였던 것 같은데요. 그 영화에서 문소리 선배님이 바람피운 애인과 헤어지기 전에 등에 업히라고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마음이 뭔지 모르겠으면서도 알 것 같았어요. 그 장면에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그리고 의외성 같은 것들이 동시에 보였어요. 지적인 모습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그런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문소리 선배님이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첫 번째 장편영화를 만든다면 문소리 선배님과 꼭 하고 싶다는 마음에 아예 처음부터 문소리 선배님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작성했습니다.





관객: 영화의 모티브인 류시화 시인의 시가 어떻게 보면 모순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글귀들이 영화에서 어떻게 작용하길 바라셨는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성원이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없는데, 직설적인 폭력에 익숙한 사람들은 성원이 싱크홀에 빠질 만큼 잘못했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감독님도 그 부분을 고민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옥섭: 영화 속 류시화 시인의 말씀은 제가 위로를 받았던 말이에요. 제가 견디기 힘들었던 시기에 위로를 줬던 말들을 영화 곳곳에 배치했거든요. “어른의 삶은 오해를 견디는 일이다같은 말들도 그렇고요. 윤영을 가혹한 상황에 몰아넣었잖아요? 그 때 이 친구가 견딜 수 있게 그런 메시지가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배치했어요. 그리고 성원이라는 인물의 폭력성을 어디까지 보여줄지 고민이었는데, 폭력의 전조는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분들은 이 결말이 반전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반전을 의도하진 않았고, 우리는 계속 성원이 때리지 않는 모습에만 집중하잖아요. 이미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에게 어떤 사정이 있을지 몰라’, ‘아닐지도 몰라이런 식으로 가해자 입장부터 생각하는 버릇이 저에게도 있었고 제 주변에도 있었어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성원에게 굳이 어떤 이야기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손희정: 지연씨는 왜 그렇게 기묘하게 그려졌나요? 비둘기가 어디선가 날아오고(웃음). 윤영에게 지연을 쉽게 믿을 수 없는 조건이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옥섭: 그런 공포가 있어요.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나에게 이야기하는데 못 알아채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이요. 피해자의 증언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계속 다른 생각을 하잖아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증언에서 이상한 지점들을 찾아내려는 모습도 있고요. 내가 진실을 외면할까봐 두려운 마음에 지연이라는 인물을 오히려 그렇게 묘사한 것 같아요. 비둘기를 머리에 올리고 있는 모습이 지연을 짧게 만난 윤영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참고로 성원의 사진을 보면 비둘기가 있거든요? 성원과 지연은 새를 좋아하고 서로를 찍어준 거고 지연을 오래 봐온 사람이라면 지연이 절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거예요. 낯선 모습 속에 진실이 있을 수 있는데, 일방적인 시선으로 누군가를 이상한 여자야라고 재단하는 현실에서 느껴지는 어떤 불안들을 지연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관객: 이 영화를 구성하면서 언제 처음 메기라는 생명체가 떠올랐는지, 그리고 왜 메기인지 궁금합니다.

 

이옥섭처음에 어항 속을 바라보는 윤영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제 눈길을 끌었던 건, 어항과 어울리지 않는 물고기가 들어있다는 느낌이었어요. 거기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얘는 뭐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지?'라는 의문이 들면서 제 마음 속의 이미지를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싶었고요. 그러면서 많은 상념에 잠겼는데, 실제로 제 주변에 뱀장어를 키우시는 분이 계셨어요. 그게 너무 신기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아마 영향을 줬을지도 몰라요. 되게 오래된 이야기예요. 제가 그 뱀장어를 보고 "얘는 뭐예요?"라고 물었는데 어항 속에 금붕어나 거북이나 열대어가 있으면 그러지 않잖아요? 익숙하니까요. 걔네들의 집은 어항이라는 생각이 제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었어요. 그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왜 어떤 것은 어항에 어울린다고 확신하고 있었지? 어떤 것이 관상이고 어떤 것이 식용이지?' 이런 차원까지 올라가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메기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어요. 윤영이가 사람으로부터 많이 치이잖아요? 성원으로 인해 혼란과 불안을 느끼고 있으니까 사람이 아닌 존재가 윤영의 곁에서 위로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위협 받지 않을 존재. 그래서 메기처럼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존재가 우리 곁에, 적어도 내 곁에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윤영은 앞일을 잘 알려고 하지 않아요. 자신에게 중요한 말이 될 수 있는 쪽지를 버리고 지나쳐버리는 사람인데, 그런 윤영을 위해 몸으로 튀어 올라서라도 그녀가 앞일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메기라는 친구가 되게 매력적이었어요, 신비롭고. 그래서 엔딩까지도 함께 해주고요. “저를 데리고 나가 주세요”라고 하는 것도, 어항이 너무 작고 답답해서 데리고 나가 달라고 했을 수 있겠지만, 어쩌면 윤영이 헤어진 후에도 성원을 만날지 모르고 그로 인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이야기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손희정: 듣고 보니 성원이 여자친구를 때린 적 있다고 말했을 때 메기가 튀어 오르잖아요? 그러면 메기는 싱크홀을 감지하는 게 아니라, 싱크홀을 만드는 존재 아닌가요?(웃음)


이옥섭: 그 생각도 했었어요. 메기가 튀어 오르면 땅이 그렇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요.

 

손희정: 신이네요?(웃음) 그런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 저는 성원에 대해 질문하고 싶은데요. 엄청 찌질한 남자잖아요(웃음). 반지 때문에 동료를 의심하고요. 그런데 마지막에 사실을 얘기해서 놀랐어요. 제가 아는 성원 같은 사람들은 보통 변명하거든요여자가 먼저 때려서 맞서 싸웠다든지, 그 여자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든지, 항상 레퍼토리가 있잖아요. 저는 당연히 성원이 변명하고 윤영이 흔들릴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두려웠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깨끗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나온 이유는 뭔가요?

 

이옥섭: 저희가 보기에는 찌질하지만, 나름 성원이는 윤영이 준 반지에 엄청 진지하게 임했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성원이 마지막에 덧붙일 말을 모르잖아요. 땅이 그렇게 꺼지는 바람에요. 그 뒤에 어떤 말이 붙느냐에 따라서 성원의 마지막 말은 인정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변명의 시작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차라리 변명을 하면 실망감에 이 사람을 지나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러지 못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 뒤에 어떤 말이 따라올지 무섭기도 했어요. 저 역시 혹시 사과하면 어떡하지? 그러면 더 흔들릴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성원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내 눈앞에서 없어져야 이 사람을 지나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사실 때렸어라는 성원의 인정 자체에는 의미를 두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손희정제가 느낀 이 영화의 가장 큰 모순은, 엄청 통쾌한 영화라 생각했는데 엄청 곤란한 영화라는 것이었습니다. 곤란 앞에서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감독님께서 분투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옥섭그랬던 적이 있었어요. 제가 어떤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제가 지금껏 봐왔던 그 사람의 모습은 항상 변명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거든요. 근데 그 사람이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니까 거기에 제가 너무 마음을 쉽게 풀었어요. 참 약하게도.

 


관객: 성원을 보면서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었음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지만, 마지막에 결국 인정하고 싱크홀에 빠지면서 단죄를 받잖아요. 근데 어떻게 보면 갱생의 여지없이 과거를 인정하자마자 사라지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어요.

 

이옥섭: 싱크홀을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벌어진 일일 수 있고, 아니면 윤영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명확한 단죄라고만 하긴 어려운 것이 싱크홀 안에서 성원이 살아나서 윤영을 만나지 않고도 살아갈 여지도 있을 테고요. 어떤 분은 얘는 살아선 안돼’ 하고서 윤영이 신고하지 않고 사라졌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관객 분들의 선택에 따라서 이야기를 열어둘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싱크홀에 빠지게 한 이유는 윤영이 그 후에 왜 때렸어?’ 혹은 어떤 일이 있었어?’라고 계속 묻지 않길 바랐던 거예요. 그 다음을 이야기해봤자 달라질 것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윤영의 삶을 더 응원하기 때문에 그 이후 가해자의 삶은 윤영이 아닌 가해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객분께서 빠진 성원을 구해내고 그 뒤를 상상하시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손희정이 작품을 보고 누구의 손을 잡을지는 관객의 몫이겠죠. 제가 지난 번 객석에서 감독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쨌거나 지금 한국사회는 너무 가해자의 말만 듣지 않나, 피해자의 머리 위에 비둘기가 있다고 해서 너무 외면해오지 않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수평을 맞춘다는 데에 의의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관객: 영화 보면서 지연에 대한 여성으로서의 연대가 되게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성원과 피부를 맞대고 살아온 일상의 시간이 있었는데도 지연이라는 낯선 인물의 말을 믿을 수 있었던 것에는 메기나 이경진 부원장처럼 윤영을 도와준 존재가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일상에서는 그러기가 굉장히 어렵고, 남자친구를 더 믿고 싶어 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영화 속 모습이 되게 부럽기도 했습니다.

 

이옥섭: 그래서 우리가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할 것 같아요. 윤영과 경진, 윤영과 지연, 윤영과 메기처럼 저희의 연결이 더 많아야 되겠단 생각이 드네요.

 




관객:세계에 균열을 내는 싱크홀로서의 페미니즘이라는 이번 대담 주제를 보면서 싱크홀은 재난이기도 한데 어떻게 돌파구가 되었을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감독님은 싱크홀이나 메기의 존재가 없었다면 윤영이 과연 그 관계를 끊을 수 있었을까 고민하셨다고 하셨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게 지구에 구멍이 뚫리는 모습처럼 보여서 윤영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장치가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부제를 붙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옥섭: 이 제목은 평론가님이 붙여주셨죠?(웃음너무 훌륭한 아이디어여서 제가 먼저 알고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손희정인디스페이스에서 〈메기〉를 처음 보자마자 써둔 제목이었거든요. 저는 이 영화가 노골적으로 페미니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싱크홀이 그야말로 재난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에서 그런 이야기 보셨을 거예요.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페미니즘부수어야 새로운 것이 나오잖아요? 부숴서 새로운 것을 쌓아가는 것으로서 페미니즘을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부수는 대신 구멍을 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 성원의 반지 에피소드는 데이트 폭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는데, 그 이전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믿음과 의심의 관한 이야기는 데이트 폭력과는 조금 무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믿음과 의심을 중심소재로 다룬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이옥섭: 관객 분께서 보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에 제가 의심이 많은 게 고민이었고 때로는 자책을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이렇게 관객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제가 의심이 많았던 것은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영화 속 에피소드들처럼 실제로 믿음과 의심은 사실 둘 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이 이야기는 윤영이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만나는 마지막 과정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관객: 영화에도 X-RAY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군지는 관심이 없다는 언급이 나오고, 끝까지 범인은 나오지 않는데요. 실제로 범인이 받은 죗값은 없는 것 같아요. 현실을 의도적으로 이야기에 반영하신건지 궁금합니다.

 

이옥섭: , 맞아요. 제가 서있는 세계와 윤영의 세계를 그리려면 지금 처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먼저라 생각했어요.

 

손희정: 혹시 감독님 마음속에 있는 범인이 있나요?

 

이옥섭그냥 평범한 얼굴을 하고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저에게는 그것이 공포예요.

 




관객: 처음에 X-RAY 사진이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있는 동상에 걸려 있더라고요. 하필 마리아 상에 남녀의 섹스 장면이 걸려있는 게 웃기더라고요. 관련 설정들을 어떻게 기획했는지 궁금합니다.

 

이옥섭: X-RAY 촬영본을 동상에 걸어놨던 건, 일련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마치 전시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언론 기사나 불법 사이트들이 사건을 관망하게 만드는 것 같고요. 그런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사랑병원은 되게 폐쇄적인 곳이라 생각했어요. 외부의 자극이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동떨어진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고요. 영화를 보시면서 이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길 바랐습니다.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곳곳에 심어놓았어요. 겉으로는 평화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점프해서 출근카드를 찍고, 아직도 간호사 캡을 쓰고 있고, 부원장은 철 지난 왕진가방을 들고 다니고, 거기다 벌레를 먹이로 주는 파리지옥까지. 그런 것들을 통해 공간을 지배하는 억압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변화될 기미는 안 보이는 후진 곳, 그런 부조리한 공간으로서 병원이라는 무대를 기획했습니다.

 

손희정영화 속 로케이션들이 정말 특이해요. 마리아사랑병원은 어디서 찾으신 거죠?

 

이옥섭: 예산이 한정적이어서 서울에서만 촬영이 가능했어요. 동시에 섬처럼 동떨어진 곳을 원했고요. 그런데 제작팀이 발로 뛰어서 찾아줬어요. 병원의 중앙에 마리아 동상이 있는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손희정: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찍은 아파트도 인상적인데, 그 곳에서 찍은 이유가 있을까요?

 

이옥섭: 그곳이 바람이 많이 불고 서늘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올려다보면 마치 내가 구덩이 빠진 듯한 느낌이 들고요. 구덩이 같은, 그런 특별한 느낌이 그 공간에 있었어요. 참고로 모두 서울이었습니다.

 


관객: 성원이도 일하는 동료를 의심을 하다가 결국 자신의 의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잖아요. 윤영이가 자신을 의심할 때 그 이야기를 꺼내는데요. 윤영의 의심과는 차원이 다른 것인데 그렇게 말하는 성원이 우스우면서도 짜증났어요. 그런 장면은 일부러 의도하신 건가요?

`

이옥섭성원은 그 반지를 윤영이 사줬다는 이유로 찾으려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이 윤영에게는 되게 좋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해요. 차라리 이 사람이 윤영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 보이면 쳐내기 쉬웠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끊어내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그런 식으로 성원이라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보여드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영은 앞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성원이 윤영에게 "메기 버린 거잖아" 그런 이야기도 하잖아요. 그게 진실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옳은 말을 한다고 느껴져서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끊어내고 싶은 제 자신의 모습이 장면에 반영되었던 것 같습니다

 




손희정: 밤이 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이쯤에서 그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옥섭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자신의 안전, 행복만 생각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상대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자신을 못 지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성원이 너무 착하잖아, 걔도 사정이 있을 거야'라는 마음이 윤영의 삶에서 우선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나 이 영화가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영화 속 한 장면이라도 떠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길 가다 도로 공사 현장을 보고서라도 〈메기〉가 떠오르면 참 좋을 것 같네요(웃음). 끝까지 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손희정앞서 이 영화가 〈엑시트〉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인상적인 건, 청년이야기를 해 달라청년인권을 보여 달라는 제작 요청이 있을 때 대다수 영화들은 〈엑시트〉처럼 남성의 얼굴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눠본다는 점에서 기록에 남을 만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끝까지 자리 지켜주신 관객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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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우리 서로 함께라는 사실만으로도,

 〈영하의 바람〉 김유리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유진 님의 글입니다.






거리에 겨울냄새가 나는 건 김유리 감독의 첫 장편인 〈영하의 바람〉이 극장을 찾아왔기 때문일까. 영화의 주인공 영하의 계절은 7년 내내 겨울이다. 가장 따뜻해야 할 집, 그리고 가족 안에서도 찬 바람을 느끼는 영하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친구인 미진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대상이 있고, 또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일 테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영하의 바람〉을 연출한 김유리 감독을 만났다.


 

 



영화제뿐 아니라 극장가에서도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연일 들려오는 요즘입니다. 〈영하의 바람〉 또한 이 반가운 파도에 힘을 싣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개봉 소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영하의 바람〉은 가정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침묵하는 한편, 경청하면서 자신에게 따뜻한 바람이 불기를 바라는 영하의 성장을 담은 이야기 입니다. 촬영을 끝내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개봉하게 되어 너무 감격스럽네요. 관객분들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실 지 생각하면 긴장되고 떨립니다.

 


마침 겨울의 초입에 개봉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배경도 모두 겨울인데요, 촬영 기간은 얼마나 되었나요?

 

촬영은 2017 12월 한달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한참 추울 때 서울 분량을 먼저 찍고 나머지 부산 분량을 찍었어요.


 

감독님의 전작인 〈자위전쟁〉(2008)이나 〈상실의 기억〉(2010), 〈저 문은 언제부터 열려있었던 거지?(2013)를 살피면 비참한 현실의 도전과 이에 대한 여성인물의 응전에서 다양한 부조리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야기에 특히 주목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우리가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제 마음 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성장하면서 좋고 나쁨의 뚜렷한 구분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이 명확한 목적이나 명백한 선악을 가지고 모습을 드러내기 보다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방식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찍을 때 자전적인 이야기든 그렇지 않은 이야기든 제가 살면서 경험한, 명확하게 선악을 구분짓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저를 지배하는 감수성들이 영화에 드러나는 게 아닐까요.


 

단편인 〈저 문은 언제부터 열려있었던 거지?〉와 〈영화의 바람〉을 나란히 보면 익숙한 공간을 떠나옴으로써 느끼는 감정들이 복잡하게 담겨있는 것 같아요. 비슷한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이사를 굉장히 많이 다녔어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익숙한 공간을 떠나 서울로 오게 됐고요. 어딘가로 떠나고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것이 저에겐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경험 중 하나인데, 서울에서 태어나고 정착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지 않은 정서가 제게 있는 거겠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영하의 바람〉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영진의 친딸인 은영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그려지지는 않지만 영진이 그를 소중히 여겼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영진에게 은영의 존재를 설정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영진의 고향 혹은 원래 살던 곳은 부산이었지만 어떤 계기로 서울로 올라오면서 은숙을 만나게 되었어요. 은숙과 영하가 그를 가족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본인도 소속감이나 마음의 안정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영진이 두고 온 가족이 없었다면 은숙과 빨리 결혼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두고 온 가족’이라는 맥락이 생기면서 영진에게 양가적인 감정이 생기는데, 이건 단순히 영진 뿐만 아니라 은숙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은숙이 영진의 아이에게 가지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은숙은 열두 살이던 자기 딸을 남편에게 보내버리기도 하고, 열다섯 살의 미진도 책임지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영진의 아이에게 책임감을 느껴요. 그걸 영하에게 말하기도 하고요. 은영의 존재는 은숙의 모순적인 상태를 보여주면서 영하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열두 살 때 버려질 뻔하고 열다섯 살 때에는 미진과 헤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은영을 책임지려고 하는 엄마를 보는 아이의 마음은 어떻게 분열될까? 그런 마음으로 연출했습니다.


 

대사가 아니라 장면을 통한 암시가 곳곳에 보였습니다. 특히 엄마인 은숙이 실종되기 전 불이 다 꺼진 부엌에서 묵묵히 서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이런 연출들을 사용하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 장면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 지 관객은 알지 못하잖아요. 은숙이 집을 나가는 매우 큰 사건인데 인과적으로 ‘왜 집을 나가는지’에 대한 답을 대사로 전달하기는 어려웠어요. 복잡한 감정인데, 말하면 할수록 꼬일 것 같고. 그렇다고 어떠한 장면도 없이 가버리면 은숙이 좀 서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가 떠나는 것에 대한, 머릿속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감정적으로는 헤아릴 수 있는 장면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은 그 장면 이후에 은숙이 집을 나갔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그 때 다시 이 장면으로 돌아와서 곱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은숙하고 영진은 항상 영하와 미진의 시선을 통해서 나오는데, 이 장면과 영진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독립적으로 가지는 장면이거든요. 그 두 장면은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나서 사건이 일어난 후에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이 두 캐릭터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속에서 쉽게 말할 수 없고 쉽게 정리될 수 없는 그런 감정들. 그 주체인 인물들조차도 지금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확실히 알 지 못하는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장면들은 어떤 감정으로만 느껴질 뿐이지 말로 형용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배우들도 ‘은숙이 왜 집을 나가는 거야?’ 그런 식의 질문은 아예 안 했어요. 집을 나가기 전에도 밥을 차려놓는 이 여자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이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영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땐 서성거리다 들어갈까, 아니면 바로 훅 들어갈까. 그런 식으로 겉도는 질문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연기를 하는 배우도, 찍고 있는 저도 그 감정을 확실히 알지 못하죠. 확실히 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요. 안다면 그 감정의 묘미가 사라질 것 같았어요.





영화 속 대부분의 사건들이 집에서 일어나고, 마지막에는 집이 텅 비어있는 모습을 통해 영하 가족의 해체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영하의 바람〉에서 집은 특히 더 복잡한 느낌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집이라는 공간을 담아낼 때 가장 고민하신 부분이 궁금합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고로 필요하고 중요한 게 집이잖아요. 영화 속 인물들이 결국은 최소한의 것도 갖지 못한 채 계속 떠돌아다니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고 슬픈 일인 것 같아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누는 게 집이잖아요. 화장실이나 거실을 같이 쓰면서 동시에 내 방처럼 개인적인 공간들도 있고. 그 개인적인 공간과 공동의 공간을 오가면서 문을 통과하고요. 그 문이 가진 것들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열려있는 문을 통해서 서로를 보는 것과 살짝 열려있는 문틈을 들여다 보는 것은 다르잖아요. 그런 디테일한 차이를 느끼면서 문을 사이에 둔 시선들을 통해서 감정이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문틈으로 보는 장면이 많죠. 후반으로 가면서 그들의 관계가 더 단절되면 대부분 문은 닫혀있고, 닫힌 문 너머로 소리를 듣고, 방어하고, 예민하게 구는 장면들이 있어요. 인물을 나누고 통과시키는 문을 가족들 사이에서의 연결로 드러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목사가 되고자 하는 은숙을 그리면서 조심스러운 부분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적인 부분이 서사에 크게 개입되지 않았다고 느꼈는데, 교회라는 키워드는 서사에서 중요했을 것 같아요. 교회와 관련된 부분들을 연출하면서 고민하신 점이 있을까요?

 

저는 종교가 없고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전혀 없어요. 다만 영화가 하나의 중심 사건에서 전개되기보단 긴 시간 동안 인물들이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며 여러 가지 일들을 겪는데 그 중 하나의 테마가 교회라고 생각해요. 주안점을 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잖아요. 사실 종교를 믿는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종교가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가령 미진이만의 기독교가 있고 은숙만의 기독교가 있는 거죠. 그런데 종교를 믿는 방식에 따라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일을 하거나 모순적인 행동을 하기도 해요. 그런 일들은 종교 자체보다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한 부분에서 종교를 믿는 은숙의 부조리함이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종교는 미진과 은숙의 연결점이기도 해요. 미진이는 은숙이 목회자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동경하는데, 나중에는 종교를 버려요. 그게 어쩌면 이 사람에 대한 기대를 버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했어요. 여러 테마 중 하나인 종교 또한 어떤 부조리함으로 수렴되는 부분에 대해 말하려고 했어요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여러 곳에 자문을 구했어요.


 



'영하의 바람'을 견디는 것은 영하뿐만 아니라 미진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두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제가 자매가 있고, 여고를 나왔어요. 또래 여성들과 뭔가를 나누는 것이 익숙하고요. 그래서 미성년의 시기를 이야기하면서 두 소녀의 이야기로 나아간 것 같은데요. 영화가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면 단지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제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를 보고 마지막 장면에서 정말 많이 울었는데, 결국 그렇게 어떤 갈등의 원인, 상처를 주는 사람으로부터 치유를 받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영하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그것이 엄마나 영진이 아닌, 같이 바람을 맞으면서도 함께 존재하는 누군가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짰어요. 그러면서 미진과 영하가 구체화되기 시작했고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명확히 어떤 사람이라고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미진만은 변하지 않고 영하의 곁에 있어줄 것만 같은데, 영화의 후반부로 가면 또 관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생각하면서 찍으셨는지, 영하를 불러 세운 미진이의 마음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하는 미진이가 돈을 가지고 가버린 상황을 모르고, 미진이는 영하가 새아빠 때문에 화가 난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시 만나잖아요. 사실 미진이는 영하보다 조금 더 빨리 시련에 내던져졌고, 영하보다는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마음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미진 역시 모두 이해하는 마음으로 영하를 찾아간 것이라기 보단, 결국은 미진이 옆에도 아무도 없었던 거예요. 영하마저 놓아버리면 자기 옆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영하를 위해서라기 보단, 우선 첫 번째로 자신을 위한 일이죠. ‘겪어보니까 내가 영하 옆에 있어주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가지 않았을까요?

 


영화의 엔딩에 ‘7년간의 사랑’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영화는 어떤 한 사건을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을 따라가는 영화이고 그것이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으로 펼쳐져요. 그렇게 다음 장이 시작되는 순간 어떤 것은 과거가 되어버리잖아요. 그렇게 영화가 끝나면 모두 지나가버린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했는데, 먼 훗날 영하는 이때 일을 생각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했어요. 과거를 털어버리고 보란 듯이 잘 산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7년간의 사랑’은 굉장히 담담하게 회상의 방식으로 7년간의 시간을 노래하는 곡인데, 영화에 담긴 부분의 가사가 영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이 노래가 영하 목소리로 나온다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이야기가 확장되는 느낌이 들 것이라는 바람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영하의 바람’을 뚫고 영화를 보러 오실 관객 분들께 영화가 어떤 의미로 다가왔으면 하시나요?

 

결국 영화가 서로 마주 선 두 소녀의 모습으로 끝이 나잖아요. 다들 경중은 있겠지만 가정에서 겪은 개인적인 사정이나 아픔, 비밀은 하나씩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시고 과거에 있었던 힘들었던 일, 옆에 있어줬던 사람들, 또 누군가 힘들었을 때 옆에 있어줬던 경험.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상처 난 가슴을 어루만져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기대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감수성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목표로 작업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요즘 감독님 안에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는 이야기는 어떤 건가요?

 

〈영하의 바람〉도 비슷한데요, 결국 영하와 미진이가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어른들이 하지 않은 일들을 대신 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휩쓸리는 인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을 닮아가지 않고 그들이 걸어간 길을 따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런 것들이 제 마음을 언제나 설레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어떤 장르의 누군가의 이야기이든 간에 계속이요.

 


마지막으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를 관람하실 관객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영하의 바람〉이 11 14일에 개봉합니다. 영화의 배경도 겨울인데 겨울의 문턱에서 개봉을 하게 됐습니다. 몰아치는 찬바람에 몸도 마음도 추우실 텐데 극장에서 〈영하의 바람〉 보시면서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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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밤은 누구의 낮보다 아름답다  인디포럼 월례비행 〈밤빛   기록


일시 2019년 10월 30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무영 감독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유진 님의 글입니다. 




처음부터 결말이 정해져 있는 영화가 가진 매력은, 결론에 다가서는 과정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밤빛〉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와 그 사실을 모른 채 따로 살아온 아들의 23일을 무심히 좇는다. 작품에는 두 사람의 대사도 많지 않을 뿐더러 음악은 첫 장면과 엔딩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김무영 감독은 배우의 연기도, 이미지도, 사운드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정지혜): 안녕하세요 월례비행 대담을 맡은 정지혜입니다. 김무영 감독님 모시고 이야기 나눌 텐데요. 오늘 와주신 관객분들 모두 영화 흥미롭게 보셨을 거라 짐작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는데요. 저도 이 작품이 관객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하는 기대와 아쉬움이 항상 남아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뵙는 관객분들께 인사말씀 부탁 드리겠습니다.

 

김무영 감독(이하 김무영): 〈밤빛〉 연출한 김무영입니다.

 

정지혜: 이 작품은 극장에서 꼭 보셨으면 하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특별히 극장이라는 공간의 암막 속에서 보기를 바라게 되는 경우였습니다. 제목도 이 이어져있는데, 더 자세히 보면 밤과 낮, 어둠과 빛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어둠 속에서 빛을 보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제목으로 밤과 빛을 붙이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김무영: '밤빛'은 제가 생각할 때에는 별빛이 될 수도 있고, 그리고 일출일 수도 있고 촛불일 수도 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런 빛이 저한테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어둠 속에서 빛나는. 희태(아버지)가 불안해하면서 빛()을 켜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예전에 제가 마음이 불안할 때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찍을 때에는 몰랐는데요.

 

정지혜: 이 영화를 보신 관객분이 어둠의 스펙타클을 보여준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스펙타클이란 것이 현란한 무언가 보다는 아마도 스펙타큘러’, 그 자체로서의 영화라는 말씀인 것 같아요. 어둠이 펼쳐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서의 광경을 이야기하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감정이나 정서를 말로서 전달하지 않고, 상당히 이야기가 많이 진행 된 중후반부에서야 말을 해요. 앞부분은 거의 자연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홀로 있는 단독자로서의 개인을 보여주고 풍광에 주목하는 의도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 어떤 시나리오 상의 고민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양새가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김무영: 시나리오는 처음이랑 많이 다릅니다. 찍으면서 이야기를 많이 바꿨고, 실제로 이 집에 사시는 심마니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랑 같이 있으면서 듣게 된 에피소드를 가져와서 영화에 넣고 그랬어요. 병원 부분은 그 분 이야기예요.

 




정지혜: 초반에 나타난 대화의 느낌으로 영화가 계속 가지 않고 인물의 행동, 상황이 척척 쌓여가면서 진행되는데요. 이게 전체적인 영화의 기본적인 톤인 것 같아요.

 

김무영: 상황을 계속 보여주면서 쌓아가는 방식으로 인물의 감성과 심리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정지혜: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문이 많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 현장에서의 변수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배우분들께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무영일단 사전에 스크립트를 확실히 정하지 않고 그냥 느슨하게 가지고 있었어요. 현장에 가서 배우들이랑 대화를 많이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슛이 들어가면 배우들에게 맡기는 식으로 했습니다. 톤이 올라가거나 페이스가 빨라질 때에만 제가 제 리듬으로 조절했습니다

 

정지혜: 그런 식으로 조정했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까요?

 

김무영누나 찻집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연기한 뒤에 톤이나 페이스 조절을 했었는데요, 마지막에 희태랑 아들이 대화를 하는 장면은 제가 여러 가지 해보려고 했는데 계속 상상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두 분께 알아서 해보시라고 놔뒀죠.

 

정지혜: 자연스럽게 해달라고 할 때 배우 입장에서 조금 난감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무영둘의 대화 장면은 거의 마지막에 촬영한 장면이었고 아마 이제 다 익숙해져서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촬영 초반이었으면 어려웠을 거예요.


 



정지혜: 저는 이 영화에서 접촉, 겹침이라는 게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을 해요. 사내와 소년이 함께 23일 간 반복되는 여정들에서 중첩이 진행되는데 겨울과 여름의 맞붙음은 시간적으로 급격한 변화잖아요. 처음부터 이 두 계절을 선택하신 건가요, 아니면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그렇게 찍으신 건가요?

 

김무영: 애초에 이렇게 하려고 했고요. 잘 드러날 지 모르겠는데 다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잖아요. 계절만 다르고 똑 같은 공간에서 여러 번 찍은 거예요.

 

정지혜: 중첩과 겹침에 대해서는 특히 엔딩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별이 쏟아지는 장면은 별에 제가 가까이 가는 듯한 느낌, 별이 저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어요. 감독님의 어떤 의도가 담겼다고 보면 될까요?

 

김무영개인적으로 어떤 환생한다는 느낌으로, 아버지가 아들로 환생한다는 생각으로 찍었고요. 초월적인 그런 장면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사운드 디자인도 처음에는 작은 풀벌레 소리로 시작해서 점점 확산되는 사운드로 만들려고 했어요.

 

정지혜: 23일의 짧다면 짧고 두 사람에게는 길었을 수 있는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면서 이들의 관계가 진척이 되거나 달라지거나 거리가 조금 더 좁혀졌다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어요. 서로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지만 여전히 가지고 있는 그 거리를 저는 중요하게 감지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가까워지려고 하면 다시 멀어지고.

 

김무영: 저는 어떤 관계가 항상 완성되어서 끝나지 않았으면 해요.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 공유하는 감정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뒤로 가면 아들이 아버지 행동을 따라하고, 아버지도 태도가 바뀌고, 이런 미묘한 변화가 보여졌다고 생각합니다.

 

정지혜: 아마 관객분들도 느끼셨을 것 같아요. 미묘한 그 포인트가 영화의 중요한 지점인데요. 저는 특히 지대한 배우의 아주 짧은 탄식 같은, 그 장면의 연출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었어요. 배우들에게 상당 부분을 맡겼다고 하셨는데 이 장면은 어떠셨는지요.

 

김무영그 부분은 제가 요구를 했어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찍었는데 정확히 왜 중요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네요. 깨어있는 순간이라고 생각을 했고, 아쉬움의 탄식이 아니었을까 해요.

.




정지혜: 엔딩과 관련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볼게요. 환생일 수도 있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다시 아들이 그곳에 왔을 수도 있고, 여러 가능성이 있는데요. 엔딩이 중첩이어짐이라는 이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를 응축해서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사운드 디자인도 신경을 많이 쓰셨고, 여름의 소리가 겨울의 장면으로 흘러 들어가는 연출을 생각하신 것 같은데요.

 

김무영처음에 그 아버지가 산에 올라가는 장면 있잖아요. 그 부분을 체크해서 거의 똑같이 해놓고 계속 찍었어요. 그리고 영화에 전체적으로 하강하는 이미지는 거의 없고요. 그런 것들은 일부러 연출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산이라는 공간이 중간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희태가 죽기 전에 아들이랑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들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요.

 

정지혜: 감독님 영화는 정서적이고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정적인 느낌인데 연출자로서의 고민은 형식적인 부분에 집중되어 있네요.

 

김무영: , 저는 밸런스를 잘 맞추려고 했어요. 물론 정서가 먼저고요. 그 다음이 형식이고요.

 


관객: 강아지가 출산하는 장면이 있는데 의도하신 장면이었나요?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어요.

 

김무영:시나리오 상에서는 개와 아버지의 유대관계가 더 드러나 있었어요. 아버지가 개를 데리고 다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돈이 없어서 그런 연출이 불가능했고요. 그래도 그런 환경에 있으면 사람이 제일 무섭잖아요. 그런 두려움을 덜어주는 역할로만 개의 역할을 축소했습니다. 마지막 꿈같은 장면은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고 개를 동네에서 데리고 왔는데 갑자기 출산을 한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땅을 파더니 새끼를 낳아서 찍게 됐죠. 촬영이 많이 거칠어요. 그래도 저는 그 순간이 좋았던 것 같고.

 


관객: 촬영 현장이 어쩔 수 없이 열악했을 것 같아요. 제작비도 충분하지 않으셨던 것 같고 스탭분들도 고생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감독님께서 직접 출연도 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김무영네. 언 강을 걸어가는 장면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접니다.

 




정지혜김보람 촬영감독님은 〈철원기행〉(2016), 〈컴, 투게더〉(2017)와 같은 작품들을 해오신 분인데요. 이 영화 작업 정말 힘들게 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감독님 뿐 아니라 전 스탭분들이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촬영에 있어서는 밤에 새어 나오는 빛을 어떤 식으로 담아낼 것인지가 중요한 포인트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촬영감독님과 고심해서 찍었거나 고민했던 장면이 있을까요?     

 

김무영촬영감독님 정말 대단하시고, 이 영화는 촬영팀, 조명팀이 따로 없어요. 최소한의 인원으로 영화를 찍었어요. 보통 감독은 로우키를 원하고 촬영감독은 밝게 하기를 바라요. 그래서 로우키가 필요할 것 같은 부분은 어둡게 갔고 전반적으로는 자연광을 사용했어요. 촛불도 사용하고. 조명은 한 두 개 밖에 안 쓴 것 같아요.

 

정지혜: 작년에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열혈스태프상도 받으신 걸로 알아요. 진드기에도 물리셨다고.

 

김무영: 여름에 촬영하다가 아예 하루 촬영중단하고 병원 바로 다녀왔었죠.

 

정지혜: 사운드 관련에서도 현장의 소리를 많이 담으시려고 한 것 같은데요.

 

김무영솔직히 사운드는 전문 스탭이 담당한 게 아니에요. 후반 작업에서 많이 손봤고 추가로 따로 녹음해서 쓰기도 했어요.

 

정지혜이 영화의 오프닝을 주목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은 사운드, 곡인데요. 사용된 서체도 그렇고 전반적인 영화의 무드에 주목을 하게 한 것 같아요. 영화에 음악을 많이 쓰는 것 같지는 않은데 상대적으로 덜 알법한 곡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김무영영화가 전반적으로 옛날 톤이에요. 서체도 예전 서체를 쓰고, 음악도 잔잔한 걸 쓰고. 배호 노래를 몇 번 들었는데 상당히 목소리가 좋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곡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정지혜감독님께서 미술작업도 하고 영화도 찍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상영하면 어쨌든 공간이 고정되어 있잖아요. 미술관은 오히려 반대의 재미가 있고. 그렇다면 〈밤빛〉의 극장 상영, 영화 상영을 통해서 담아내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무영: 이 영화가 저의 시간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시간을 공유하는 것처럼 생각했어요. 각자 사람마다 시간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의 시간을 영화를 통해서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 시간 안에서 최대한 이미지랑 사운드를 통해 어떤 경험, 영화관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 이 공간이 갖고 있는 경험과 가능성을 다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지혜: 오늘 끝까지 함께 자리해주신 관객분들께 인사말씀 드리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무영: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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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 번째 용의자  리뷰: 영화와 관객 사이의 현실 감각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종우 님의 글입니다.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는 왜 지금 관객에게 왔을까. 이 영화는 왜 지금 만들어져야 했던 걸까. 그리고 어떤 이유로 2019년 가을에 개봉했을까. 이러한 일련의 질문은 역사화된 시간을 영화로 재구성하려는 사람에게 동시대성, 유효성, 현재성 등의 문제로 부과된다. 포스트 세월호 세대의 관객 앞에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품고 등장한 벌새〉(2018 제작, 2019 개봉)처럼, 혹은 박근혜 정권 이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던 공동정범〉(2016 제작, 2018 개봉)처럼, 아니면 당신의 사월〉(2019)처럼 말이다.





열두 번째 용의자를 위한 지면임에도 양해를 구하고 잠시 벌새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돌이켜볼 때 영지는 영화의 시간 위에 쉬이 발붙이지 않는 인물이었다. 은희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듯 마치 미래에서 온 것처럼 등장하지 않았나. 은희의 마음을 가장 먼저 말한사람이었다. 영지는 감독이 투영된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는 1994년과 2019년 사이의 간격에서 부유하며 영화 속 인물과 오늘날 수용자의 현실 감각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픽션적 재구성물로서 영지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 타격을 받지 않고 관객의 보편적인 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다시 돌아와 열두 번째 용의자는 (종영하는 시점까지) 영화가 가진 장치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관객성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이 다방이라는 특정 공간 안에서 이루어졌고 다중의 등장인물이 그 안에서 영화의 시간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다. 여기서 이상한 점 하나는 인물 어느 누구도 주어진 상황에서 이탈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관객 또한 영화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형성한 연극성에 그다지 반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열두 번째 용의자속 인물은 심리적으로 다방의 밀실화를 허용했고, 관객은 작품 안에서 형성된 현실 감각에 동의하고 있다. 어떤 말과 노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정치적 낙인을 체화한 사태랄까.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하면 열두 번째 용의자는 한국사회 블랙리스트의 전사를 구체화한 셈이다. 덧붙여 인물들은 용의자로 호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추리장르 서사처럼 다른 용의자를 확실한 범인으로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일을 충실하게 수행할 뿐이다. 어느 누구도 범인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여전히 고민스럽다. 홀로 남겨진 박인성의 표정과 몸짓을 2019년의 타임라인에서 번역하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끈질긴 레드 콤플렉스의 유령인 걸까. 그럼 마지막에 열두 번째 용의자는 그것을 향한 대항의 의지를 작게나마 암시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영화가 이 부분에서 다소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지금 우리의 현실 감각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 열두 번째 용의자이후의 시간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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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말하지 않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SIDOF 발견과 주목 〈섹션 2: 당사자성 너머의 역사, 영화적 재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0월 12일(토) 오후 4시 30분 상영 후

참석 권아람, 임철민 감독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SIDOF의 섹션 3당사자성 너머의 역사, 영화적 재현이라는 주제로 권아람 감독의 463 poem of the lost와 임철민 감독의 야광을 엮었습니다. 463 poem of the lost은 잘 알려지지 않은 태국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록입니다. 감독은 한국인 463명을 포함한 일본군 위안부들의 기억을 찾아 태국으로 떠납니다. 야광6~90년대 남성 성소수자들의 크루징 스팟으로 기능하던 극장들을 찾아갑니다. 극장에 대한 관심이 영화라는 매체 자체로 확장되고, 기억을 영화적으로 재현해낸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정지혜): SIDOF 발견과 주목은 최근의 독립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관객 분들께 소개드리고 싶은 영화들을 묶어서 기획전의 형태로 상영을 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마지막 섹션이고요, 권아람 감독님의 단편 463 poem of the lost와 임철민 감독님의 장편 야광두 편을 엮어봤습니다. 아마 독립 다큐멘터리를 챙겨봤던 관객 분들이라면 생소한 조합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올해 3월 인디다큐페스티발 영화제에서 하나의 포럼을 열었습니다. ‘당사자성 너머의 역사적 재현이라는 주제, 이른바 후속세대라고 할까요?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그 이후 세대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영화적 관심인 역사적 사건을 지금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고 재현하고 있는가, 라는 주제로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네 편의 한국 영화 김군, 리틀보이 12725, 나의 노래 메아리, 기억의 전쟁을 중심으로 포럼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상영한 두 편의 영화도 이 포럼의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겠다는 기획 의도가 있었구요. 오늘은 그 기획 의도 하에 초점을 맞춰 시작하되 이 영화들이 갖고 있는 큰 장점과 궁금한 점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두 분의 감독님 먼저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권아람 감독(이하 권아람): 안녕하세요, 463 poem of the lost를 연출한 권아람이라고 합니다.

 

임철민 감독(이하 임철민): 안녕하세요, 야광을 연출한 임철민입니다.

 

정지혜: 앞서 들어보니 두 분이 실제로 만난 적이 처음이라면서요. 이 조합이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렇지만 권아람 감독님은 야광을 이미 3번 정도 봤다고 하셨고요, 임철민 감독님도 463 poem of the lost는 오늘 처음 보았지만 권아람 감독님의 전작을 보셨다고요. 두 분 인사 좀 나누세요.(웃음)

 

권아람: 안녕하세요.

 

임철민: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뵀지만 권아람 감독님 전작 퀴어의 방〉(2018)을 재미있게 보았고, 새로운 영화가 나왔다고 해서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하고 있었어요. 오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영화를 보러 왔습니다.

 




정지혜: 야광의 경우는 극장에 얽힌 개인적인 경험과 감각을 시작으로 역사적인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안에 있었을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인데요. 저는 야광이 그야말로 극장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고, 굉장히 시네마틱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SF3D 영화 못지않은 시네마틱한 순간들을 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지점들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권아람 감독님의 작품은 역사적인 공간과 집단적인 기억에 대한 영화입니다. 현장에 직접 가서 기록하고, 인터뷰를 비롯해 다양한 인물들이 들어왔다 나가고, 그 과정에서 감독님의 시적 나레이션이 들어가면서 다양한 구성을 하나로 엮어내는 방식입니다. 그런 면에서 두 영화가 굉장히 다른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대담이기도 하니, 두 분이 서로의 작품을 어떻게 봤는지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권아람: 제가 야광을 세 번 봤다는 것을 앞서 이야기해주셨는데(웃음) 좋아하는 작품이고요. 제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 있어요. 화면이 엔딩 크레딧으로 바뀌며 음악이 나올 때의 경쾌함이 좋고, 제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저한테는 중요한 레퍼런스이기도 해서 반복적으로 관람했어요. 저는 어떤 시공간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라는 방식으로 1차 재료를 모으고, 그것들을 구성하고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해왔던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임철민 감독님의 작업을 보면서는 그 공간에 얽힌(크루징 스팟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가 없지만, 감각적으로 그 공간의 이야기를 느끼고 감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재미있었어요. 특히 음악으로 넘어가는 지점에서 경쾌해지면서, 말로 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확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임철민: 오늘 영화가 붙어서 상영이 되었잖아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작품이 굉장히 다른 방법으로 대상이나 사건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맞닿아 있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굉장히 구체적인 진술이나 목소리들이 쌓이면서 영화가 진행되고, 화면은 바깥을 비추기도 하고 인물들을 비추기도 하는데 굉장히 구체적인 진술임에도 불구하고 시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들이 좋았어요.

 

정지혜: 인터뷰라는 방식에 대해 얘기해주셔서. 463 poem of the lost의 경우는 직접 역사적 경험이 있는 당사자 혹은 주변인, 목격자를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는 익숙한 방식으로 기본 소스를 만들어 주셨잖아요. 반면 야광에서는 단 한 번의 인터뷰도 나오지 않고, 짐작하건대 임철민 감독님은 인터뷰에 큰 관심도 없으셨을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인터뷰라는 방식을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임철민: 처음에 영화를 기획할 때 출발은 극장에 대한 관심이었어요. 예를 들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주된 공간 중 하나인 파고다 극장은 당시에 일반 극장으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그 위에 다른 층위로 남성 성소수자들이 크루징을 하고 있던 거였으니 하나의 공간이 다양한 차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공간을 경험했던 일반 관객들의 경험 및 체험과 크루징을 하기 위해 그 공간을 찾았던 성소수자들의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사실은 아는 사람들만 알죠. 워낙 비밀스럽고 은밀했으니까.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성소수자들이 어느 정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만 했던 상황들, 거기서 선택하게 되는 정치적인 어떤 것들. 이런 공간의 속성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됐어요. 인터뷰를 하긴 했었고, 그것들을 직조해서 분명한 어떤 것들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한편으로는 있었지만, 마냥 서사나 인터뷰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사실 인터뷰를 진행할 때 당사자 분들이나 극장 관계자 분들이 굉장히 협조적이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말하고 싶은 게 많고 크레딧에도 남기고 싶지만, 드러나고 싶지는 않다, 어떤 식으로든 영화에 도움을 주고 싶지만 드러나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말씀들을 해주셨던 게 기억에 남아 영화도 공간이나 이 공간을 점유했던 당사자들의 속성에 맞춰서 가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긴 했지만 사전 자료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던 부분들을 가이드로 따라가되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정지혜: 반면 권아람 감독님의 경우에는 인터뷰 대상자가 전하는 말들이 비슷하고 공통된 지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다르게 들리기도 했어요.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상황을 다르게 인식하고 있고, 그런 지점들을 의도적으로 더 넣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감독님의 전작 퀴어의 방을 보셨다면 인터뷰가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들어가 있고, 다음 작품에서도 인터뷰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하셨어요. 감독님이 이번 영화에서 구현했던 인터뷰의 확장된 관심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권아람: 우선 태국에 남아있는 위안소 공간들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여러 얽힌 이야기나 태국에 남아있는 여성의 증언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중국이나 다른 국가에는 증언이나 기록이 많이 남아있는 반면, 태국에는 남아있는 것들이 많이 없어서 굉장히 제한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위안소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연구를 통해 증빙된 장소들을 찾아가고 그 장소와 얽힌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간이 담고 있는 분위기나 그 공간이 현재 맥락에서 달라진 모습, 단편적이거나 퇴색된 이야기일지라도 그 시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것은, 대부분 그렇게 디테일한 기억이 아니고 그들은 한국처럼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한국과 태국은 온도차가 굉장히 커요. 전쟁 당시에도 태국은 중립국에 가까웠지만 일본 치하에 가까운 입장이었고, 멜로 드라마에 일본군이 멋있는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그 시절에 대한 감각이 우리와는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런 사회적 맥락 위에서 인터뷰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퇴색된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죠. 그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뷰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어요. 전통적으로 인터뷰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지 않은 것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아주 오래된 책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기억이라는 것은 계속 변화하는 사회에 따라 갱신되어야 하고 새롭게 해석되고 변화하면서 생동감을 얻게 되는 것인데, 그 기억을 직접 갖지 않은 후속 세대로서는 사회의 맥락에 따라 기억이 점점 다르게 만들어져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또 다른 감각들을 할 수 있게 되잖아요. 그런데 인터뷰 대상자들은 사실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에요. 그래서 구성도 책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구성했어요.

 

정지혜: 아까 임철민 감독님께서 다른 방식이지만 그럼에도 공통된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혹시 어떤 건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임철민: 방금 말씀을 듣고 보니, 단순히 인터뷰를 녹취하고 구성에 따라 배치를 하는 식으로 되어있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나 사건을 접하고 한 번 더 아웃풋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부분이 닮아있지 않나, 감각적인 부분에서 닿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지혜: 권아람 감독님도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을까요?

 

권아람: 특히나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맞이하게 되는 조건인데, 이 이야기를 드러내서 어떤 영화적인 결과물로써 관객들과 공유하고 그 시대에 있던 일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창작자로서 들지만, 그 안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등장하는 사람들은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영화를 도와주고 싶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도 드러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의 전작 퀴어의 방또한 비슷한 조건들이 있어서 그러한 형식이 나온 것이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업도 여성 퀴어들의 공간들을 담는 작업이라 이 역시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거든요. 얼굴이 나오고 싶진 않다는 인터뷰 대상자들이 있고, 필연적으로 인터뷰를 어떤 방식으로 가공을 하거나 인터뷰 소스에 기반에서 아예 다른 화면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비슷한 점을 느꼈어요. 임철민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감춰지고 그렇지만 드러나고, 전면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감각적으로는 다가오고, 밀면서 당기기도 하는, 그런 시각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고 그런 감독님의 태도가 저한테는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정지혜: 야광의 경우에는 다양한 레이어가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의 전략이 잘 떼어내기라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라는 것이 배우의 목소리, 화면, 이런 요소들이 결합돼서 하나의 장면으로 구현되고 우리는 합쳐진 장면을 보지만, 야광에서는 그 요소들을 하나하나 떼어내서 그 요소들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거든요. 요소들을 하나하나 잘 떼어낸 이후에 다시 잘 붙여서 충돌하는 방식이라서 흥미롭게 봤습니다. 반면에 463 poem of the lost의 경우는 그 요소들을 잘 붙여보기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붙이는 과정에서의 시적인 나레이션이 그것들을 꿰어내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을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철민: 앞서 말씀드린 대로 자료 조사, 극장을 찾아가면서 이 영화의 형식이 만들어졌고요. 영화에서 어떻게 공간이나 극장을 재현하고 또 영화를 매개로, 시간이나 공간을 매개로 그 모습을 어떻게 펼칠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갈래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영화를 썰어서 요소들이 좀 더 드러나게 배치를 하고 그 과정을 가져갈 수 있게끔 하는 방식이었어요. 범위를 좀 더 확장해볼 수 있도록 피디님, 스탭들과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떼어내기의 방식이 중요했습니다.

 

정지혜: 특히 인물에게 같은 구간을 반복하게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나중에는 대사와 목소리, 화면, 이런 것들이 다 따로따로 떨어지고,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니까 이상한 느낌을 받는 상태까지 가면서 하나하나의 요소들이 다 보이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권아람: 저는 조각들을 모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기억들을 모아보고, 내가 그 기억을 직접적으로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서 기억을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뭘까 고민했어요. 일단 재료들을 모으고 붙여서 한 방향으로 가져가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기억을 기억한다는 게 뭘까.’라는 게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로드 무비를 촬영하며 느꼈던 마음을 나레이션으로 표현했어요. 기억을 기억하는 입장에서, 기억한다는 걸 우리가 너무 쉽게 말하는 건 아닐까. 기억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해지는 걸까. 이런 질문들로 귀결되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질문들이 텍스트로 제시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은 자료가 너무 제한적이었고, 그 경험을 직접적으로 가진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기억을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많았어요. 저는 작업을 하는 길을 걸어왔지만, 다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의 말과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증언을 딛고 기억을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그렇게 배치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정지혜감독님뿐 아니라 다른 현지인들의 나레이션도 들어가 있잖아요. 그 선택도 독특하고, 또 자막처리의 방식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라고 했다.’ 이런 자막 처리가 나오면 몰입해있는 감독님의 위치에서 한 발 떨어져 나오면서, 화면과 거리감을 확 줘버리는 급작스러운 온도차가 느껴졌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얻고자 하는 효과가 있으셨나요?

 

권아람: 각 요소들을 모아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붙여나가는 방식은 맞지만 계속 질문은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이것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것이 당연히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저의 뜨거운 마음은 나레이션으로 드러났지만, 후세대 여성으로서 그 경험을 바라본다고 했을 때 또 너무 전형적인 위치는 얻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레이션의 주체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을 기억하려고 하는 전형적인 후세대의 젊은 여성으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주체를 흐트러트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라고 했다.’ 이런 부분도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정지혜: 이제 관객 분들께 질문을 받아볼게요. 감상도 좋구요.

 




관객: 야광감독님께 질문 드릴게요. 영화 자체가 크루징 스팟이 됐던 공간들을 보여주며 남성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고, 중간에 형식적으로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분해하는 과정이 있었잖아요. 그런 내용과 형식이 어떤 식으로 관계되는 건지 듣고 싶습니다.

 

임철민: 이 영화는 극장에 대한 관심, 그러니까 영화를 만들고 있는 입장에서 좋아하는 것이 상영되는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것인데. 그런데 영화,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 빛이나 어둠 같은 것들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것들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이 영화가 타이트한 구성과 완결된 형식을 가지고 출발한 건 아니었어요. 대략적인 시나리오도 있었고 어떻게 취재를 하고 공간을 다룰지, 이런 기획 정도는 있었지만요. 영화를 하면서 인터뷰를 하거나 공간을 직접 찾아갔을 때 들었던 생각이나 감각이 처음에 상상했던 것과는 되게 달라서 처음의 결처럼 영화를 만들 수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인터뷰 같은 것들을 활용하면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 공간의 속성에 맞춰서 영화의 형식도 같이 가야 된다는 판단이 섰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썼던 것도 스코어라는 방식으로 바꾸게 됐어요. 수행자나 스탭들이 좀 더 참여할 수 있도록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과정을 드러내기로 판단한 것도 영화가 가지고 있고 다루고 있는 대상이나 속성하고도 연관되어 있고요. 영화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다가 그런 형식을 가지고 영화를 완성하게 된 것 같아요.

 


관객야광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영화에서 여자가 산 속에서 눈을 감고 있고 그 여자를 향해 빛을 비추는 장면이 있잖아요. 저는 그 장면을 볼 때 폭력적으로 느껴졌었는데요. 여자가 정물처럼 서 있고 그 주위를 남자들이 둘러싸고, 그게 영화를 보고 있는 여성 관객으로 이어지는 점에서 그러했는데, 저는 이 영화의 설명을 보고 오질 않아서 끝나고 나서야 남성 성소수자의 크루징 스팟에 대한 영화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이 영화에 여성 인물만 등장한다는 게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임철민: 처음 시나리오에는 남성 성소수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있었는데요. 그런 방식이 영화와 맞지 않다고 판단이 돼서 걷어내면서 그럼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스코어의 방식을 따르게 됐어요. 간략한 텍스트, 분명한 수행문도 있는 반면 한편으로 모호하고 시적인, 구멍이 난 것 같은 이미지나 텍스트가 함께 있는 스코어였어요. 결국 수행자의 몸을 통해서 그 공간을 읽어내는 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그러면 이걸 누가 수행할 것인지가 되게 중요해진 거예요. 저희는 영화를 만들 때 어떤 틈들을 만들어내고 그 틈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진행했어요. 말씀해주신 부분들도 그런 틈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어요. 처음 계획은 남성 성소수자를 재연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려고 했는데 영화의 성격이 바뀌면서 다시 고민하게 되었던 거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희가 영화를 펼치고 이런 기획, 이런 과정, 이런 맥락들로 영화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주변에 오픈하자 이상하게 여성분들만 관심을 주셨어요. 그러면서 여성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생기고, 남성 성소수자들의 공간을 다루는데 여성들이 주로 퍼포먼스를 수행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스탭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어요. 저희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실제로 퍼포먼스를 하는 퍼포머 분도 있고, 아닌 분도 있고, 다양한 계기로 영화의 맥락과 맞닿아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기 때문에 제가 어떤 한 가지로 재단하긴 조심스럽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는 결국 소수자성 같은 것들이 이 영화가 가진 맥락과 공명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이런 상황들이나 질문들을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하고, 어떤 게 퀴어한 선택인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렇게 가는 것이 영화가 가진 방향성에 맞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정지혜: 저희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번 기획은 역사적인 주체, 당사자성을 넘어서는 작업들에 초점을 맞춰 시작된 것입니다. 지난 인디다큐페스티발 포럼에서 다룬 4편의 작품을 보셨거나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혹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어떤 사건을 다루고자 한다면 창작자로서 고민을 해보셨을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오늘 섹션 주제에 대해서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사자성 너머의 역사, 그리고 그것을 재현하는 창작자들의 고민과 돌파 가능성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권아람되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일단 463 poem of the lost에 대해 생각해보면, 역사적인 다큐멘터리는 이미 끝나버린 시간이나 이미 사라진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항상 맞닥뜨리는 지점이 있어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제가 생각했을 때 역사적인 트라우마나 사건을 재현할 때는 영화 바깥의 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작업을 하면서 태국에서 아주 짧은 촬영 기간을 가지면서 영화 맨 처음에 나왔던 463명의 명단, 그게 놓여져있는 내셔널 아카이브를 찾아갔어요. 그곳은 태국 군부에 의해 운영되는 국립 아카이브이고, 거기 들어가려면 카메라 같은 것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신분을 명확히 해야 했어요. 거기 들어가서 빨간 상자 위에 놓인, 바스라질 것 같은 종이 위에 잉크는 사라지고 압력으로만 남아있는 463명의 이름들을 봤어요. 그걸 보고, 만지고 하는 경험이 저한테는 이 작업을 완성하게끔 하는 중요한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내가 살아가면서 하는 고민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기억, 트라우마들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주관적이고 순간적인 지점이기도 하지만, 영화 외적인 시간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강렬한 순간들이 있고, 그 순간들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그런 강렬한 계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임철민: 야광을 시작할 때 생각했던 중요한 지점과 지금 포럼의 주제가 맞닿아 있어요. 야광의 경우에는 제가 체험하지 않았던 공간이나 역사에 대해서 영화로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할 때 창작자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방식, 어떤 것들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거든요. 지금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면 다양한 고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르기도 하고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정지혜: 마무리 말씀 한 마디씩 해주세요.

 

권아람: 다음 작품으로 70년대 여성 퀴어 공간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기대 많이 해주시고,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철민: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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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을 재현하는 방식

 SIDOF 발견과 주목 〈섹션 2: 일장춘몽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0월 12일(토) 오후 2시 상영 후

참석 김무영, 오재형, 이재임 감독

진행 이완민 감독 (〈누에치던 방〉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정기 상영회 발견과 주목이 지난 10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세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기획전으로 진행됐다. 그 중 섹션 2. 일장춘몽을 통해서 김무영 감독의 랜드 위드아웃 피플, 오재형 감독의 모스크바 닭도리탕, 이재임 감독의 강릉여인숙세 작품을 함께 상영했다. 세 작품은 모두 낯선 공간에서 떠도는 이방인의 감각 또는 그들이 남긴 흔적에 주목하고 있다. 랜드 위드아웃 피플은 미국 엘에이에 사는 서류미비자 수창과 그의 아내 지은이 어느 날 살던 아파트를 잃을 상황에 처하며 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재연의 방식으로 연출했고, 모스크바 닭도리탕은 몽롱한 내레이션과 여행지에서의 이질적인 이미지들, 화려한 프레임의 조합이 기이한 감정을 전해주며, 강릉여인숙은 폐광된 이후의 태백에서 감독이 느꼈던 어떤 감정에서 시작하여, 50년이 된 할머니의 여인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개인들의 기억, 옛 시절의 아카이빙 이미지 등으로 공간의 기억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느껴졌다. 이완민 감독의 진행과 함께 세 작품의 감독들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완민 감독(이하 이완민): 랜드 위드아웃 피플, 모스크바 닭도리탕, 강릉여인숙세 편의 영화 어떠셨는지요. 인디다큐페스티발 그리고 인디스페이스가 준비한 이번 발견과 주목 기획전에서 세 작품은 일장춘몽이라는 타이틀 하에 함께 상영하게 되었는데요. 김무영, 오재형, 이재임 감독님들 모시고 영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 가져보겠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이완민이라고 합니다.

 

김무영 감독(이하 김무영): 랜드 위드아웃 피플연출한 김무영입니다.

 

오재형 감독(이하 오재형): 반갑습니다. 모스크바 닭도리탕만든 오재형입니다

 

이재임 감독(이하 이재임): 강릉여인숙연출한 이재임입니다.

 


이완민: 이미 느끼셨겠지만, 절대적이고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영화들이 아니라 상당히 생각이나 감각의 여지가 열려있는 영화입니다. 그런 만큼 관객분들께서 편하게 참여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공통 질문으로 시작할게요. 어쩌면 연출 계기를 묻는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 이런 질문은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서, 이 질문을 조금 다르게 여쭤보겠습니다. 감독님들께서 이 작품을 시작하실 즈음에 사로잡혀있던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여쭤보고 싶고요. 지금 배치되어 있는 다양한 요소들 중에 최초의 조각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무영: 아무래도 한 개인이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느끼는 고립감이랄까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놓여있을 때 느끼는 고립감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마지막 엔딩도 그렇게 개인의 어떤 상황에 맞춰서 끝내는 게 맞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처음의 조각은 초반부에 등장한 마사코 할머니였습니다. 그 분의 이야기가 저한테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오재형: 제가 그 때 느꼈던 감정은 누구나 느낄 법한 가벼운 우울 혹은 무기력이었습니다. 작업하시는 분들은 다 공감할 텐데, 외부적인 일이 없는 시기에 그런 지난한 날들이 지속되면 뭔가 좀 우울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감정을 느꼈고요. 그 때 마침 부모님께서 북유럽 패키지여행을 같이 가자고 해서 갔습니다. 아시다시피 패키지여행이라는 게 내내 버스를 타고 잠깐 내려서 식사하고 관광하고 이런 식인데. 어르신들은 한국음식을 꼭 먹어야 하잖아요. 여행에서 처음으로 간 곳이 모스크바였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갔던 지하 식당에 닭도리탕이 준비되어 있는 거예요. 그걸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모스크바 닭도리탕이렇게 써서 올렸는데 그게 최초의 조각이 됐고요. 그걸 보고 사람들은 너 지금 어디야, 장난 치지마이런 식으로 반응하여서 제가 계속 헬싱키 제육볶음이런 식으로 먹었던 음식 사진을 올렸어요. 사람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려 하는 게 재밌기도 했는데요. 이 영화를 만들 생각은 그 당시에 없었고, 그 패키지여행에서 저만의 재미를 찾고자 모스크바 닭도리탕이라는 놀이를 시작한 게 어떻게 하다 보니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재임: 영화를 찍은 계기 이전에, 영화를 찍으면서 계속 느꼈던 감정을 떠올려보면 없어질 것 같다는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도 없어질 것 같고, 공간도 없어질 것 같고. 이 공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그 기억들이 어떤 식으로 정리가 되고 또 어떤 식으로 남을까, 이런 아쉬운 또는 아까운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고요. 처음에 이 영화를 어떻게 연출을 해볼까 고민할 때, 제가 선전영화 찾아보는 걸 좋아해서 옛날 뉴스 클립들, 흑백뉴스 클립들을 취미삼아 찾아보는데 거기서 태백의 선전영화 혹은 선전뉴스들을 보게 됐어요. 강릉여인숙에도 나오는 사택 앞에서 풀 뜯는 소녀와 같은 이미지를 보고 태백에서 자랐던 저 혹은 할머니, 엄마, 가족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이미지를 활용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완민최초의 조각들에 대해서, 또 사로잡혀있던 감정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연출 계기를 묻는 질문을 달리 여쭤본 것은 각 영화가 각자의 방식으로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로 활성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인데요. 구체적으로 한 영화씩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랜드 위드아웃 피플의 김무영 감독님께,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감각했던 혹은 충격을 받았던, 영화로부터 뛰쳐나온다고 느껴졌던 순간들은, 다른 분들도 많이들 느끼셨겠지만 슬레이트가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또 슬레이트보다는 좀 덜 명확하게 지나가지만 붐마이크가 교회씬에서 등장하고요. 그리고 인물이 프레임 아웃한 후에 카메라가 교회를 향해 팬하는 샷도 존재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숨기기 위해서 인물 동선을 따라가거나 하는데, 자의적으로 카메라가 움직이는 데서 오는 충격을 받았어요. 이 세 가지 요소들에 있어서 재밌는 점은 이들이 다른 것들과 공존한다는 것이었어요. 음이 소거된 상태의 수창과 수창의 아내 지은의 뒷모습이 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샷들이 각각 존재하는 데요. 이 뒷모습을 통해서는 인물들의 감정을 느끼고 극 안에 몰입하게 만드는 느낌을 받는데,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요소를 통해서는 여기로부터 오히려 벗어나는 느낌을 받게 되어서 긴장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교과서적으로 얘기하자면 모큐멘터리 혹은 페이크 다큐라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한편으로는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이 가지는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양자가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고 느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작업을 하셨는지,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해야 했던 순간도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무영: 글쎄요. 저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어떤 하나의 주제를 리서치하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고요. 그렇기 때문에 한 쪽의 의견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시선을 보는 사람들이 최대한 잘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정서를 보여주고도 싶었고, 다양한 생각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관객의 몰입을 최대한 방해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재연이란 사실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완민: 모스크바 닭도리탕의 오재형 감독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프레임이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그림의 프레임이 보이지 않도록, 즉 그림이 화면 안에 가득 차도록 찍는 지점이 있는 반면에 인위적인 액자를 씌우는 장면이 공존하는데, 이 두 가지가 배치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차이점이 있다면, 액자가 씌워진 부분에서는 내레이션이 들리지 않아요. 그 외의 순간들은 끊임없이 내레이션이 등장을 하고요. 이건 제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그림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 내겐 그게 없었다. 짐승 시체 같은 것그리고 화염 이미지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 때의 감정이 가장 강렬했던 것 같아요. 제가 정신분석을 하는 건 아니지만(웃음), 전체적으로 영화 속 마음의 목소리는 지금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 뭔가 잘못된 무언가를 바로잡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액자 안에 담겨진 풍경들이고. 여행에 몰입하지 못하고 그런 전쟁 같은 상태에 오히려 몰입하고 있는 상태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웃음) 당연히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고요. 다만 제가 궁금한 것은 그런 프레임을 그렇게 구성하는, 그림 안에 그림을 화면 가득 담는 것에 있어서 감독님의 기준, 원칙이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오재형: 우선 해석이 재미있네요.(웃음) 영화를 만들고 나서 몇 분이 글을 써주셔서 읽은 적이 있는데 어떤 분은 이 영화는 수직과 수평의 이미지에 대한 영화라는 평을 해주셔서 재밌기도 했어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재밌는데요. 내레이션은 어느 날 자다가 꿈을 꾸고 일어났는데 꿈이 너무 생생하고 재밌어서 녹음을 했어요. 이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옆에 핸드폰이 있어서 바로 녹음을 했고 그게 저 내레이션이에요. 사실 아무 뜻이 없어요.(웃음) 의미를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신데, 저도 몰라요. 그냥 제가 잠에 취해서 중얼거린 내레이션을 저기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삽입한 것이고요. 푸티지를 찍을 때 원칙은, 보통 여행가서 사람들이 찍는 이미지의 핵심은 장소성이잖아요. ‘나는 다른 곳에 와있다는 사실을 찍는 게 핵심인데요. 저는 당시 사로잡혀있던 무기력, 우울 이런 감정과 패키지여행의 노잼인 부분, ‘모스크바 닭도리탕포스팅처럼 그런 허무한 이미지, 농담 같은 이미지처럼 여행지지만 장소성이 제거된 이미지들을 찍었어요. 미술관에 그림이 있으면 일부러 햇빛에 반사되어서 얼굴이 안보이게 찍는다든지 아니면 관광객분들이 한국 노래를 떼창을 하는 곳이 코펜하겐 운하라는 게 전혀 드러나지 않게 찍는다든지. 그런 허무한 이미지들에 이끌렸고 농담 같은 풍경을 찍으면서 중간부터 이건 작업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더 열심히 찍었는데요. 나중에 편집할 때 인위적인 프레임을 갖고 온 건, 그냥 이렇게 하면 더 재밌겠는데? 어딘지도 모를 풍경을 화려한 액자 속에 넣어두면 더 허무해보이고 더 재밌게 보이지 않을까?’라는 의도였어요. 그 외에 내레이션이나 의식의 흐름에 따라 편집한 건, 그 전의 영화들은 힘을 주고 계획에 맞춰 의도대로 넣었다면 이번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생각했어요. 꿈 얘기를 하는 거니까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도 되고, 그냥 이쯤에 어울린다 싶은 걸 넣어보자 해서 만들었어요. 부담 없이 만들었고 재밌게 작업했습니다. 원칙 없는 게 원칙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완민: 강릉여인숙의 이재임 감독님께도 질문 드리겠습니다. 복잡하게 얘기하기 이전에 딱 다가왔던 건 변기였어요. 이불에 감싸져 있는 변기 이미지가 강렬했고, 어떤 아카이빙 이미지와 같이 병치되었을 때 받는 어떤 쾌감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복잡하게 이야기하자면 강릉여인숙의 경우에는 개인의 기억, 그러니까 텍스트로 풀어진 나의 기억들, 외할머니의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구술적인 기억들, 공공 아카이브에서 드러나는 공동의 기억들이 동시에 존재하죠. 근데 동시에 존재하면서 뜬금없는 순간에 최소한의 연관성을 가지고 그것들이 교차 편집되거나 사후침투하는 순간이 보였습니다, 마치 감독님께서 연출의도에 쓰셨던 검정이 묻어날 것만 같았다라는 표현을 연상케 했는데요. 계속 묻어난다는 거죠. 개인의 서사 속에서 계속해서 공공의 이미지가 드러나는데, 재밌는 것은 최소한의 연결로 인해서 공공의 기억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약간의 저항감 같은 것이 개인적으로는 느껴졌는데요. 여성 노동자의 이미지 등 태백 역사에 있어 역사적으로 여성들의 존재가 폐기되지 않길 바라는 느낌도 받았고 한편으로는 공공 아카이브 이미지의 신화에 대한 반기를 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재밌는 것은, 현재에 있는 어떤 아카이브성 이미지, TV로 뉴스 화면이 보이는 것도 재밌었는데요. 같은 질문으로 기준과 원칙에 대한 것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런 개인과 공동의 기억들을 배치함에 있어서 어떤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재임: 원칙과 기준이라기보다 말씀하신 그대로인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면 되게 뜬금없잖아요. 할머니 인터뷰는 방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할머니가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지는 않으면서 예전 기억 혹은 자기가 계속 앉아 있는 방 이야기만 하는데, 어떻게 여기서 그 이야기들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겪었던 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그 흉흉한 태백의 모습과 대거 실업자인 아버지를 두고 가정불화를 겪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문득문득 떠올리게 되는데, 이런 것들을 어떤 식으로 엮을까 고민하다가 발견한 이미지들이 그런 아카이브의 한 귀퉁이였던 것 같고요. 선전영화라는 게 되게 명확한 메시지와 문장을 전하려고 만든 것이긴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 속에 트레이닝 되지 않은 미숙한 연기자들과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잡히는 모습들이 재밌다고 느껴져서 어쩌면 이런 모습이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사실 엄청 오래전에 작업한 영화지만 돌이켜 보자면 그런 계기들로 만들고 엮었던 것 같습니다.

 


이완민: 제작기간에 대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앞선 질문에서도 구성에 관한 이야기가 간단하게 나왔지만, 전반적인 구성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더불어 전체적인 제작기간과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배치했는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것만큼은 꼭 넣어야겠다고 느낀 순간이라든지, 반대로 소극적으로 빼고 빼다가 남은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무영제작기간은 한 3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만든 영화라서, 학교 다니면서 시간 날 때 마다 조사를 많이 했죠. 영화에는 많이 안 나오는데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도시계획 기관에 계신 분도 인터뷰를 했고 찍기도 다 찍었어요. 그렇지만 맥락에 맞지 않아서 뺐어요. 그리고 제가 사실은 교회 측 입장과 시 측 입장을 모두 찍으려고 계획하고 준비도 마쳤는데,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었고 당시에 에너지도 많이 떨어지고 돈도 없어서 거기까지는 못 갔던 것 같아요. 지금 봐도 그 장면들이 있어야 마무리가 되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완민: 그럼 구성안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세우고 가셨는지요? 전체적인 구조(수창에서 수창으로 끝나는 구조)라든지 어떤 음악을 사용하고 매치를 할 것인지에 대해 계획을 먼저 하셨는지 아니면 후반 작업을 통해 정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김무영대부분 촬영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정했던 것 같아요. 오래 전에 만들었다보니 정확히 기억이 잘 안 나긴 하지만 처음에 정하고 들어가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촬영하고 리서치하면서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원래 영화를 음악을 거의 쓰지 않고 만들고 롱테이크로 많이 찍는 스타일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기존에 해왔던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 시작해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좀 많이 움직이고 컷도 이전보다는 많이 가고 음악도 많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했습니다.

 




이완민: 오재형 감독님께도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전체적인 제작기간, 푸티지 등의 배치는 언제 어떻게 하게 됐고. 또 푸티지들을 어떻게 찾으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내레이션 역시 잠에서 깨어나서 한 녹음을 사용한 것인지 여러 날에 걸쳐 작업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오재형: 우선 내레이션도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인데, 전작에서 내레이션을 해보니까 저는 안 되더라고요. 연기하는 것도 너무 어색하고 말하는 것도 잘 안 돼서 잠결에 녹음한 게 더 자연스럽고 좋았어요. 다음에 한 번 더 자고 일어나서 해볼까 싶었는데, 다시 하려니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좀 꾸미게 되기도 하고요. 재녹음을 시도를 안 한 건 아니었지만, 내레이션은 최초의 녹음을 그냥 쓴 것이고요. 제작 기간은 패키지여행을 갔던 2주 동안 촬영하고, ‘이 때쯤 되면 인디다큐페스티발 공모가 슬슬 오겠구나라고 생각하고(웃음) 편집만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렸을까요. 되게 빨리 만든 편이었습니다. 영화 처음과 끝에 줄에 매달린 사람들은 서울거리예술축제라고 가을마다 하는 축제의 한 장면인데, 제가 그곳에서 촬영하는 일을 했어요. 공중에 사람들이 우주복 같은 것을 입고 매달려서 하는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제가 SF물을 좋아해서, 나중에 그런 영화를 만들면 어딘가에 인서트로 쓰지 않을까 싶어서 찍어두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 어울릴 것 같아서 사후적으로 앞뒤에 배치를 했습니다.

 

이완민: 영화 속에서 외계인 마스크를 쓰고 계신 분들은 실제로 그 가면을 쓰고 계셨던 건가요?

 

오재형: 크루즈 안이었고 실제로 갑자기 코스튬하시는 분들이 아빠한테 악수를 청하기에 너무 웃겨서 찍었습니다.

 

이완민앞뒤 이미지가 우주선 같은 느낌을 줘서 그 분들이 등장이 그 이미지와 재밌게 연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재형: 제가 외계인들을 좋아하거든요. 전작도 외계인이 나오는 다큐멘터리고요.(웃음)

 

이완민: 하나 더 질문이 있는데요. 내레이션 관련해서 다른 사람을 캐스팅해서 내레이션을 할 생각은 없으셨는지요.

 

오재형: 제가 다큐멘터리를 주로 하는 이유가, 혼자 다 퉁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거든요.(웃음)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일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방에서 혼자 뭔가를 만드는 걸 더 좋아하는 타입이라서요. 부족하면 혼자 연마해서 작업을 한다든지 그런 식의 작업을 즐깁니다. 또 남에게 맡기면 다 돈이 들기 때문에(웃음)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혼자 하려고 합니다.

 


이완민: 이재임 감독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강릉여인숙에서 텍스트가 등장할 때 4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아요. 무지, 무음을 배경으로 나의 기억을 서술하는 듯한 텍스트, 하단에 해쉬태그 형식으로 쓰여진 텍스트, 그리고 노란 텍스트, 이는 아마도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하신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이미지 한 가운데에 등장하는 듯한 텍스트입니다. 보고 있으면 각각 텍스트들의 어떤 차이가 짐작되지만 관련해서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또 구성과 연관 지어서, 제작기간과도 연관 지어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특히 해쉬태그 같은 경우는 영화를 네 부분으로 나누는 기능도 하는 듯한데, 그런 구성은 처음부터 정하고 작업하신 것인지 후반작업 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재임: 명확한 기획을 가지고 태백을 찾고 촬영을 시작한 것이 아니고, 저도 학교를 다니면서 틈틈이 촬영한 걸 바탕으로 1년 반 동안 방학 때 집중적으로 촬영했어요. 할머니가 50년 동안 해왔던 여인숙을 중심으로 주로 할머니를 찍지만 할머니가 공간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 분은 아니시잖아요. 어쨌든 태백의 역사나 설명이 필요하니까 동시에 이것저것 촬영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폐광이 되고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강원관광대라는 대학교를 하나 지어줬는데 카지노딜러학과가 있어요. 그런데 제 친구들이 거기에 많이 진학을 한 거죠. 그 친구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실제 여인숙에 거주하시던 분들에게 어쩌다 태백에 왔는지 등의 인터뷰를 따기도 했는데요. 그런 것들이 들어가면 다른 영화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 이런 설명적인 부분을 텍스트로 처리를 하고 심플하게 여인숙이 광산이나 도시의 역사에 따라 변모해가는, 여인숙에 오는 사람 또는 기능의 변화를 담아내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아주 예전에 탄광이 부흥했을 때는 엔터테인먼트를 담당하는 도시의 기능, 예컨대 성매매, 유흥업이 발달했고 그 안에서 여인숙 거리라는 게 존재를 했거든요. 이런 기억에서부터 할아버지의 사업이 망했을 때 할머니가 여인숙으로 돈을 벌어서 엄마 대학을 보냈다는 이야기나, 폐광이 되면서 찾는 사람이 없고, 관광지라고는 해도 아무도 허름한 여인숙에 오지는 않는 상황에서 여인숙이 도시의 빈민들의 쪽방이나 주거 외 거처로서 기능하는 모습들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관객: 저는 고등학생인데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고 싶고 연출하고 싶어서 많이 보고 있는데요. 항상 보면서 카메라에 인물을 담을 때 대상화를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이 점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오재형: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해주셨는데요.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거예요. 왜냐면 영화를 찍는 사람, 특히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은 매번 그것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자기 검열을 하는데요. 매번 대상화하지 않는 것에서 실패하고 결국 자책을 하거나 내가 작품을 이용했다는 마음을 감독들은 가지게 돼요. 이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계속 토론해야 할 문제이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질문하신 게 다큐멘터리의 핵심인 것 같긴 해요. 어떤 소재가 있고 이를 찍고 싶을 때 바로 카메라를 들이대면 피사체에게 폭력적일 수도 있고 진솔한 답을 얻을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아는 몇몇 친구들 이야기를 하자면 송윤혁 감독은 쪽방촌의 삶을 찍기 위해 찍기 전부터 1년 동안 거주를 했고요. 또 제주 강정마을을 찍은 김성은 감독은 꼭 작품 촬영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제주에 이주를 해서 5년 동안 산 뒤에야 겨우 카메라를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태도들은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게 하나의 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완민: 관련된 질문일 수도 있겠는데요. 강릉여인숙에는 할머니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의 목소리가 가끔 등장을 하는데요. 충분히 뺄 수도 있었을 텐데 빼지 않은 이유가 있으신지요.

 

이재임: 사실 제 목소리는 최대한 뺄 수 있는 부분은 다 뺀 것인데요. 할머니란 존재는 찍기 쉬운 존재잖아요. 너무 죄송한 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