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  한줄 관람평


김윤정 | 당연한 것을 말하면 당돌해지는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하여

성혜미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은 변했고, 변했으면 하는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최승현 | 시대의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승문보 |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다

송은지 계약서 쓰자는 말에 화가 나고, 욕을 먹는 우리가 사는 세상

김정은 만성적인 분노와 비관 속에 버텨 내는, 내가 사는 부당한 세상

이성현 때로는 '우리'보다 '내가' 사는 세상임을 잊지 않기





 <내가 사는 세상>  리뷰: 시대의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승현 님의 글입니다. 





영화와 사회는 맞닿아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영화는 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으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때로는 카메라의 고요한 시선으로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도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리얼리즘 영화라 부른다. 리얼리즘 영화는 고통받는 인간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인간과 사회를 향해 카메라를 꼿꼿이 세움으로써 우리 삶에 잔재하는 찌꺼기들을 망설임 없이 영화에 담아낸다. 그러나 영화는 무력하다. 사회는 영화보다 거대하다. 영화는 사회를 반영하지만 사회는 영화를 반영하지 않는다. 영화는 거대한 성벽 앞에서 무릎 꿇고 잠잠해지기 마련이다. 영화가 인간을 구원하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이며,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란으로 바위 치는 영화들이 있다. 특히 자본에 구속받지 않는 독립영화에서는 리얼리즘이 주된 축이다.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접목해 소확행을 제시한 <소공녀>부터 공시생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월>까지. 최근 한국 독립영화의 경향은 청춘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다. 여기엔 <내가 사는 세상>도 포함된다. 전태일 재단이 지원한 이 영화는 예술계 종사자들이 처한 상황과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에 초점을 둔다. 영화를 만든 최창환 감독은 전작에서도 노동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젊은 예술가 커플 민규(곽민규)와 시은(김시은)은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한다. 민규는 퀵서비스 일과 클럽 DJ 일을 병행한다. 그는 퀵서비스 업체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해 월급에 구멍이 나는 상황이다. “다 이유가 있겠지라며 월급 문제를 넘기려는 그는 사장의 영악한 속셈을 눈치채고 결국 사장에게 근로계약서를 부탁하지만, 사장은 그를 단칼에 잘라버린다. 시은은 미술학원 시간강사다. 그녀는 학원에서 별도 수당 없이 업무 외 일을 도맡으며, 클럽을 운영하는 민규의 친한 형으로부터 공연 포스터를 무료로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두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욕지거리뿐이다. ‘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의 목소리가 비정상적인 요구로 들리는 법이다. “우리가 남이가따위의 말로 의리를 내세우며 노동을 착취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노력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길 기대하지만, 우리의 노력은 누군가에게 종속되어서 남을 위한 희생에 머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보수 없는 수고를 강요하는 문화는 한국 사회에 만연하다.

 




<내가 사는 세상>은 노동에 관한 영화지만 무겁고 지루한 영화는 아니다. 흑백영화인 데다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색채가 영화에 깔린 것은 사실이지만 곳곳에 존재하는 청춘의 얼굴과 몸짓들은 영화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이 영화는 노동영화이면서 청춘영화이기도 하다. 민규와 시은의 아슬아슬한 연애와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민규의 처절한 일상은 페이소스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계급 질서와 친분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물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 상황에서는 영화적 긴장감이 은근히 배어 나온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67분이지만 짧은 만큼 흡인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편안한 문법으로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영화다.





영화 속 등장하는 불꽃놀이 장면에서는 아름다움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회사에서 잘린 민규는 같이 일하던 친구와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맥주를 들이킨다. 어느새 맥주캔 대여섯 개를 찌그러뜨린 두 사람은 술김에 불꽃놀이를 시작한다. 손끝에서 불꽃이 터져 나오자 두 사람은 소년처럼 환하게 웃는다. 아스팔트만 바라보던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이때 영화는 슬로우 모션으로 펼쳐진다. 밤하늘, 불꽃이 천천히 흩어진다. 영화는 악력을 가하는 듯, 불꽃놀이 장면을 붙잡음으로써 그들의 지친 하루에 작은 위로를 건네려는 듯하다. 영화의 윤리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아름다움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유는 아름다움이 곧 소멸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시대의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삶의 아름다움은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다. 불꽃은 어둠을 조금 비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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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노동 이야기  <내가 사는 세상>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3월 6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최창환 감독배우 곽민규, 김시은

진행 뮤지션 김간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정정당당하게 일하고 싶은 주인공 민규와 시은은 그들이 일하는 직장에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근로 계약서 쓰기, 부당한 대우하지 않기, 당연한 것들을 요구하면 당돌한 놈이 되는 세상, 영화 <내가 사는 세상> 속 세상은 내게 결코 낯설지 않았다. 민규와 시은은 꿈을 이루기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일하며 사는 세상은 부당계약, 정리해고, 열정페이의 세상이다. 그 속에서 두 인물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사는 세상> 속 흑백의 화면, 끊임없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의 움직임, 객관적인 카메라의 앵글, 컷의 긴 호흡은 불안정한 삶 속에 놓여있는 민규와 시은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 속 여러 장치들은 내가 마치 민규와 시은의 불안정한 삶을 옆에서 지켜보게 만든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영화 배역의 이름이 실제 배우의 이름과 같다는 것까지 <내가 사는 세상>은 영화 속 부조리한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이 세계의 수많은 민규와 시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노동 영화를 찍는 사람이라는 최창환 감독님의 뚝심 있는 스타일을 들을 수 있는 인디토크는 열정페이라는 용어를 만든 뮤지션 김간지의 진행으로 시작되었다. 

 

 



뮤지션 김간지(이하 김간지):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모더레이터를 맡은 김간지입니다 반갑습니다. 영화를 세 번 정도 봤는데 오늘 영화 속에 있는 인물들을 실제로 만난다는 생각에 너무 떨렸습니다. 먼저 감독님과 배우분들을 모시겠습니다.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최창환 감독(이하 최창환): 안녕하세요. 감독 최창환입니다. 내일이 개봉인데요, 미세먼지를 뚫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곽민규 배우(이하 곽민규):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세상>에서 민규, DJ 밍구스 역할을 맡은 곽민규입니다.

 

김시은 배우(이하 김시은): 시은 역할 맡은 김시은입니다.

 

김간지: 제가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영화와 이 영화의 주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먼저 저의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전형적인 질문부터 드릴게요. 감독님께서는 왜 이 영화를 만들기로 했는지, 배우님들은 왜 이 영화를 출연하기로 결정하셨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요.

 

최창환: 이전에 노동자들에 관한 단편영화를 찍고 난 후 장편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 때 이 영화의 권현준 프로듀서로부터 전태일 재단에서 제작하는 영화를 찍어보면 어떻겠냐는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내용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민규 배우한테 전화해서 시간 비워라, 같이 작업 하나 하자’하고는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곽민규: 감독님과는 2017년 대구독립영화제에서 인연이 닿아서 친해졌어요. 그때 감독님이 "내 영화에 출연해줄 거지?" 물어보셨는데 이렇게 그 기회가 빨리 올 줄 몰랐고, 감독님의 전작을 잘 모르는 상태였어요. 출연을 결정하고 나서 감독님께서 이전 작품들을 보여주셨고, 저한테 시나리오를 주시면서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데 사랑이 엄청난 영향을 준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더욱 확신이 생겨서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김시은: 저한테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는 시나리오가 정확히 있었고 곽민규 배우가 캐스팅이 되어있는 상태였어요. 작품을 하기로 결정하고 감독님께서 전에 찍은 단편 영화 두 개 보내주시면서 나는 노동 영화 찍는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호명인생>(2008), <그림자도 없다>(2011)라는 단편영화였는데 영화들이 너무 좋더라고요.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삶 전체를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더 확신이 생겼습니다.

 




김간지: <내가 사는 세상>이라는 영화가 열정페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이 영화에 출연하신 배우분들께 여쭤볼게요. 페이 다 받으신 거죠, 확실히?

 

곽민규: 원래 주신다는 금액보다 더 많이 주셨어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영화는 4회차만에 완성된 영화고, 밤을 샌다거나 촬영 시간이 오버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김시은: 그리고 저희는 계약서도 썼어요.

 

김간지: 제가 한 잡지에 기고하면서 '열정페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서 썼어요. 열정페이라는 단어를 제가 만들고 또 열정페이를 받아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리고 조연배우분들도 모두 감독이거나 영화 작업 하시는 분들이라고 들었어요. 이 부분도 말씀 좀 해주세요.

 

최창환: 모두 대구에서 모은 감독들입니다. 뱁새 역할로 나오는 강동완 감독은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2017)라고 김시은 배우와 곽민규 배우가 나오는 영화의 감독님이에요. 강동완 감독이 실제로 밴드를 하는 걸 알고 있었고, 출연 좀 해달라고 부탁해서 이렇게 출연해줬습니다. 퀵서비스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는 용삼 역할의 김용삼 감독(<혜영>(2016) 연출)은 실제로는 곽민규 배우보다 형인데 어린 이미지가 있어서 민규와 같이 일하는 동생 역으로 출연하게 되었어요. 김용삼 감독이 울산에 있는 조선소에서 그라인더공을 하면서 영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영화에 나오는 작업복과 안경 모두 김용삼 감독이 실제 일할 때 쓰는 것들이에요. 그리고 미술학원 원장 지영 역할로 나오는 유지영 감독(<수성못>(2017), <너와 극장에서>(2017) 연출)은 미대 출신이고 실제로 옛날에 미술학원 강사 일을 많이 했어요. 시나리오 완성되기 전에 출연하기로 허락을 받았습니다.

 

김간지: 인프라를 잘 쓰셨네요. 영화의 장르가 중요하지 않지만, 이 영화의 장르는 드라마에 가까워요. 저는 사실 <내가 사는 세상>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났거든요. 등장인물이 미워질 정도로 영화 속 주인공들이 처한 사례들을 보며 열이 받았는데, 이러한 현실적인 사례들을 어떻게 찾고 시나리오에 반영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최창환: 영화 속에 민규와 시은이 처한 상황이 꼭 어딘가에서 찾아야만 찾을 수 있는 사례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게 보편적인 일이라는 게 너무 화가 나는 거죠. 일부로 찾은 건 아니었어요.

 

김간지: 돈을 못 받는 경우들이 너무 디테일해서 여쭤봤어요. 보험금이란 명분으로 횡령하고, 서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고, DJ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클럽에서는 공연을 못하게 하는 등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디테일해서 주변에 당한 분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최창환: 제가 미술을 하지 않아서 미술 학원 내의 일에 대해선 디테일하게 몰랐거든요. 원래 시은이라는 인물의 설정을 편의점에서 일하는 시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면 좀 더 뻔한 느낌이 되었을 것 같긴 해요. 그런데 <내가 사는 세상>에서 미술을 담당했던 친구가 미대 출신이어서 미술학원 설정을 디테일하게 할 수 있었고, 연구작과 관련된 이야기 등은 그 친구한테 도움을 받았죠.

 




김간지: 영화에서 보면 민규는 모든 상황에서 엄청 갑갑해요. ‘왜 그렇게 사람이 착하고 자기가 다 하려고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은은 굉장히 똑부러져요. 실제 배우님들의 성격과 영화 속 캐릭터의 성격이 비슷한가요?

 

곽민규: 비슷한 부분도 있고 안 비슷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얼마 전에 영화를 다시 보니까 민규의 성격이 너무 답답했고 '과연 이게 착하다고 이해받을 수 있는 부분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김시은: 영화를 찍기 전과 후에 변한 부분이 있어요. 배우를 업으로 삼으니까 계약서를 쓰는 등의 절차가 일을 할 때 정확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그냥 다 참고 뒤에서만 화를 낸다던가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가치관이 바뀌어서 정당하게 일을 한 것에 대해서는 말을 해요. 어떻게 작업을 할 것인가, 돈은 어떻게 지불될 것인가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 민망한 일이 아닌데, 상대쪽에서 민망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유연하게 이러한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전에는 저도 약간 극 중에 나오는 민규처럼 답답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곽민규: 저도 변화한 부분이 있는데요, 차기작이 잡혔거든요. 근데 독립영화 쪽이 사정이 안 좋다보니 지불될 비용이 처음에 이야기 된 것 보다 적게 진행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예전 같았으면 연기를 하고 싶으니까 예, 알겠습니다.라고 했을 텐데 이번에는 <내가 사는 세상>을 찍은 배우인데 그러면 안되겠다 싶어서(웃음)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렸어요. 그쪽에서도 흔쾌히 제 입장을 생각해주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편하게 많이 나와야 건강한 관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간지: 예술을 업으로 하는 계통에서 돈을 말하면 속물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음악이 좋지만 돈도 좋거든요. 여러분들 모두 돈을 확실히 요구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느끼기에는 영화의 결말이 굉장히 절망적이었어요. 민규는 다 잃었지 않나 싶어서요.

 

최창환: 저는 절망적이라고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영화의 결말대로 끝나더라도 민규는 다시 일어나서 더 열심히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김간지민규가 디제이인데 핸즈프리 이어폰을 끼고 다니잖아요. 음악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음악을 듣는다는 게 참 짠했어요. 화면도 조금씩 흔들리고, 영화 전체가 흑백인데 어떠한 것을 의도하셨나요?

 

최창환: 일단 민규가 항상 음악을 듣는다는 설정을 했어요. 좋은 이어폰을 쓰고 싶었으나 퀵서비스 일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고 돈이 없기 때문에 민규는 핸즈프리 이어폰을 낄 수밖에 없죠. 그리고 흑백으로 영화를 표현한 것은, 종이로 된 신문에서 보이는 흑백의 이미지가 저에게는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사는 세상>처럼 사실적인 영화를 찍을 때 흑백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카메라가 흔들리는 것은, 4회차 안에 찍어야 하기 때문에 촬영 감독님하고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 결과 삼각대를 빼고 핸드헬드로 촬영하게 되면서 생긴 부분이에요. 조금씩 흔들리는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 누군가 계속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관객: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체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감독님한테 여쭙고 싶은데요, 어떻게 노동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최창환: 전작도 그렇고 영화를 찍을 때 항상 생각한 것이 솔직하자’, 그리고 무조건 쉽게 이야기하자였어요. 예전에 만든 <이만원>(2006)이라는 단편영화가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이전에 작업을 할 때는 액션이나 뮤직비디오 같은 화려한 영상도 만들었는데 그게 제 것처럼 안 느껴지더라고요.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일들을 사람들한테 보여주자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여러 곳에서 일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일을 하고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기분을 보여주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관객: 감독님께서 이 시간에도 힘겹게 살아가는 민규, 시은이라는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최창환세상의 모든 민규, 시은들, 무조건 버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관객: 이 영화가 노동법에 대한 교육 목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최창환: 너무 설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어디에서라도 정확한 정보를 얻어야 자기가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잖아요. 청년유니온 노동법률상담을 통해 정보를 듣고 퀵서비스 사무실에 가서 올바르게 말하게 된다는 의도가 중요했기 때문에 설명적이라도 넣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청년유니온이 생긴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일단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연대를 해야 할 것 같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지금도 겁을 별로 안 먹고 있는데, 많이 연대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넣었습니다.

 





김간지: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배우님들 앞으로의 계획 있나요?

 

곽민규: 저는 일단 <내가 사는 세상홍보를 열심히 할 계획이고요장편영화를 준비 중입니다.

 

김시은저는 없어요계속 작업을 해와서 일단 좀 쉬어가기 위해 여행 계획하고 있어요.


김간지: 그러면 마무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일부터 <내가 사는 세상> 전국 개봉하니 여러 번 보러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인디토크 기록을 마치며. <내가 사는 세상>은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돈 아래 놓여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답답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있다. 지극히도 개인이 겪어 나가는 일이지만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겪을 수 있는 부당한 노동에 대한 담론이 해당 영화를 통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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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곡 가시나들>  한줄 관람평


김윤정 | 마음이 팔팔하면 청춘이다!

성혜미 | 정성을 더하여 살 것을 소망한다

최승현 삶이 아른거리는 글씨와 눈물을 자아내는 그림들

승문보 | 잊고 있던 삶과 배움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그런 착한 다큐멘터리

오윤주 | 누구의 할머니도 아내도 아닌, "칠곡 가시나들"

송은지 연필로 눌러쓴 시 속에 노년의 고민과 배움의 설렘, 활기참이 꾹꾹 담겨있다

김정은 할머니들의 시에 담긴 사랑스럽고 따스한 삶의 조각들 

이성현 눈부신 생의 운율







 <칠곡 가시나들>  리뷰: 누구의 할머니도 아내도 아닌, "칠곡 가시나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칠곡 가시나들> 나이 팔십 줄이 되어서야 경상북도 칠곡군의 배움 학교에서 한글을 처음 배우게 여성들의 삶에 대한 영화다. 그들은 모두 1930년대생으로, 일제강점기와 전쟁과 가난을 겪으며 혹독한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이다.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며 배움의 기회조차 앗아갔던 시절에 태어나 누군가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할머니로서 어마어마한 몫을 해낸 그들은 이제 한글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누구의 할머니도 아내도 아닌, 그들의 이름 자로, 그저 "칠곡 가시나들".





가마이 보니까 시가 많다

여기도 저기도

시가 천지삐까리다


- 박금분



영화는 여성의 글쓰기, 여성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까막눈이었던 그들은 한글 선생님 주석희 씨의 지도에 따라 한글을 배운다. 길거리에 걸려 있는 간판도 더듬더듬 읽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우체국을 방문해 아들에게 자필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시를 써보기도 한다. 처음 글을 배운 그들에게 세상은 자체나 다름없다. 글자를 모를 때는 그저 생각으로만, 흩어지는 말로만 향유했을 감정들이 네모난 글씨가 되어 그들의 일기장에 담긴다.


그들이 써낸 시는 사실 기성 문학 체계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기성 문학의 관점에서는 시로서의 예술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시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글들이다. 노래에도 법칙이 있고 영화에도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듯, 시에도 시만의 법칙이 있다. 칠곡의 여성들이 써낸 시는 시라기보다는 짧은 일기나 마디 문장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시를 읽고 감동을 받고 힘을 얻는다. 그들은 이미 4 전인 2015년에 『시가 뭐고?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정말 시란 무엇일까? 글쓰기란 무엇일까? 또한 여성의 글쓰기란 무엇일까? 그들은 우리에게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여성의 글쓰기는 사실 척박한 토양에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내야 하는 힘겨운 작업이다. 언어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남성 중심적 체제를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여성의 언어를 창조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칠곡의 여성들이 내린 시는 기성의 문법을 완전히 해체하고 깨부수는 새로운 시도이자 새로운 언어다. 그들만이 있는 방언과 언어로 그들만이 있는 이야기를 한다. 역사에서 지워져 나이 여성의 목소리를 기록한다. 목소리를 젊은 세대에 전한다. 이야기는 죽지 않고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

영화는 세상에서 지워진 존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존재 자체에 살아있는 역사가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노인 소외와 여성 억압의 교차점에서 하루하루를 무사히살아낸그들이 어떻게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창조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하루하루를 역사에 새긴다. 온당 누려야 권리를 빼앗긴 살아온 여성들이 권리를 되찾아오는 과정이야말로 한글 배움의 정치적 의미다. 글을 읽고 쓰는 여성은 위험하다. 그들에게는 주체적으로 생각할 힘이 있고 또한 체제를 뒤흔들어버릴 힘이 있다. 그렇기에 일제는, 남성이 지배한 세계는 여성들이 글을 배울 권리를 박탈했다. 그러나 칠곡에서는 젊은 여성의 입에서 나이 여성의 입으로, 또한 나이 여성의 입에서 우리들에게로 그들의 언어가 전승된다. 자연 모계 사회에서 여성의 언어가 새롭게 싹트는 눈부신 지점을 영화는 포착해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다른 누군가가 붙는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할머니. 여성의 역할은 집안 노동이나 돌봄 노동으로만 한정되어 왔다. 하지만 영화는 모든 수식어를 버린 여성 명의 삶을 들여다본다. 영화 제목이칠곡 할머니들 아니라칠곡 가시나들 이유다. 영화는 철저하게 여성의 세계를 그려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중심인물은 여성뿐이다.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여성들이 연대하고 함께 도전하며 그들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이야기다. 노인을 향한, 그리고 여성을 향한 어떠한 편견도 시혜적 시선도 없이 그저 그들의 일상을 담아낸다. 일상이란 어쩌면 편견과 오해에 휩싸였던 우리를 부끄럽게 정도로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감정들이다


곽두조 씨는 평생 가수를 꿈꿔오다 지역 노래 대회에 처음으로 도전하게 되며 설렘과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한 후에는 감출 없는 실망감과 후련한 마음을 동시에 내비친다. 오랜만의 배움에 돌아서면 한글을 잊어버리지만 아픈 무릎과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한글을 적어내리는 끈기도 보인다. 한글 선생님 주석희 씨는 학생이 처음으로 그려준 삐뚤빼뚤한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감동과 고마움과 보람이 뒤섞인 눈물을 흘린다. 윤금순 씨는 명절에 자식 내외가 방문하고 떠나가자 갑작스레 찾아온 공허함에 며칠 우울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울함에 집안에 틀어박힌 금순 씨를 선생님과 친구들이 찾아와 밖으로 끌어내 준다영화는 칠곡 여성들의 우울함, 허무함, 설렘, 기쁨, 행복, 긴장감, 사소한 취향, 우정, 사랑, 끈기, 도전 정신을 담아낸다. 팔십 이후에도 삶은 있다. 팔십 이후에도 원초적인 감정은 들끓으며, 팔십 이후에도 새로운 시작을 있다. 어떤 모진 풍파를 겪어도 자연이 계속되듯, 팔십 이후에도 삶은 이어진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는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칠곡의 자손들에게, 그리고 영화를 관람한 우리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던 이미지가 있다. '시규어 로스(Sigur Ros)'의 곡 'Hoppípolla' 뮤직비디오다. 뮤직비디오 나이 노인들은 벨을 누르고 도망가거나 요란스럽게 물장구를 치며 노는 유아적인 행동을 한다. 노인들의 해사한 미소는 어린아이를 연상케 한다. 그곳은 육신은 나이 들어도 영혼은 영원히 어린아이인 얼어붙은 동화 세계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어린아이에 가까워진다. 칠곡 가시나들을 가르치는 한글 교사는 마치 유치원 아이들을 보살피듯 그들을 챙긴다. 칠곡 가시나들은 보살핌이 필요했던 어린아이에서 자라나 남을 돌보는 어른이 되었다가 다시 보살핌이 필요한 노인이 되었다. 칠곡 노인들의 눈은 아이처럼 해맑고 순수하다. 그들의 시에도, 그림에도 어린 영혼이 깃들어 있다. 니체가 말하길 인간의 최고 단계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라고 했다. 칠곡의 여성들은 이미 어린 아이의 단계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고, 그것을 가감 없이 표현할 알며, 도전을 서슴지 않고 배움을 놀이로 삼는다. 그들은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이다.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육신의 나이가 아니라 영혼의 나이다. 힘겨운 세상이지만, 그래도 삶이 계속되는 나는 칠곡의 여성들처럼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영원히 늙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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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순간을 담다  인디포럼 월례비행 <벌새>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2월 27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보라 감독 

진행 송효정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성혜미 님의 글입니다.



 

전부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지거나 사라지는 이질감 혹은 모호함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고정된 프레임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인물들은 삶의 본질, 즉 스스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깊이 탐구한다. 수많은 관객과 함께했던 2272019 인디포럼 월례비행 두 번째 영화 <벌새>는 송효정 평론가, 그리고 김보라 감독과 함께 했다.

 





김보라 감독 (이하 김보라): 안녕하세요. <벌새> 연출 김보라입니다. 영화가 되게 길고, 대담도 보통 한 시간 가량 진행한다고 해서 늦게까지 다들 힘드시진 않을지 걱정입니다. 아무튼 영화 잘 보셨기를 바라고, 좋은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송효정 평론가 (이하 송효정):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상영되고,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14 플러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셔서 많은 관객들이 관심을 가진 작품이에요. 첫 번째 장편이라고 들었어요. 벌새를 만들기 전까지의 영화도 궁금하지만, 김보라 감독님도 어떤 분일까 궁금해서 이 자리에 오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영화감독을 시작했고, <벌새>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알려주시면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아요.

 

김보라: 동국대에서 영화과를 전공했고,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과정에서 영화를 전공했습니다. 졸업영화로 <리코더 시험>이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그 영화가 연출 김보라라는 사람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리코더 시험>에는 9살의 은희가 나와요. 어떤 관객 분께서 그 아이가 어떻게 성장할지가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영화의 캐릭터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그 아이를 봐주시는 게 좋았어요. 또 <리코더 시험>이라는 영화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내밀하게 다룬 첫 단편이어서 걱정도 많이 했는데 관객 분들이 저를 되게 친밀하게 대해주시는 걸 느꼈어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주시기도 했는데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되게 감사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2013년부터 <벌새>라는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송효정: 첫 장편으로 감독님의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있는 작품을 하겠다고 이전부터 생각해오신건지, 영화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김보라처음부터 장편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유학생활을 하러 처음으로 미국을 갔던 거였거든요. 영어 공부도 유학을 가기 전에 급하게 한 거라 1학년 1학기가 되게 힘들었어요. 마치 뿌리 없이 떠다니는 그런 불안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인지 그 때 중학생으로 돌아가는 꿈을 계속 꿨었어요. 마치 수능을 다시 보는 것처럼 무서운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이 시기에 대한 저의 심리가 궁금했어요. 스무 살 때부터 명상을 시작하면서 자기 탐구나, 꿈 이야기나, 제 자신에 대한 성찰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적었거든요. 그 꿈 또한 적었어요. 중학교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어떤 말들이 나에게 상처가 됐고, 어떤 순간이 충격이었는지 이런 것들이요. 나 자신에 대한 탐구로 시작한 걸 영화로 만들게 되었어요. 그래서 <리코더 시험>을 만들고, 그 다음에 마저 남아있던 중학교 시절 이야기로 <벌새>를 하게 됐어요.

 




송효정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때 맞닥뜨릴 수 있는 두려움 같은 것들을 기나긴 과정을 거쳐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습니다. 제목이 <벌새>잖아요. <벌새>라는 제목을 지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라벌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입니다. 그렇게 작은 새가 작은 날개 짓을 1초에 80번 정도 하면서 먼 거리를 날아 꿀을 찾아다닌다고 들었어요. 저는 그게 굉장히 신화적이라고 느꼈어요. 또 벌새라는 동물이 상징하는 의미를 찾아보면 희망, 아름다움, 즐거움, 사랑 등 좋은 것들이 많더라고요. 포기하지 않는 것들. 그래서 벌새라는 단어가 맘에 들었고, 은희 역시 영화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지 않고, 기대하고, 좌절하더라도 또 다시 일어나는 모습들이 있잖아요. 그런 캐릭터에 맞고, 영화에 맞겠다 싶었어요.

 

송효정: 1994년도, 대치동에 사는 5명의 가족이 주된 인물이잖아요. 그 다섯 명의 가족이 보여주고 있는 인물 군상이 각각 그 시대의 사회적인 관념을 보여주고 있는 듯해요. 대치동의 소시민이고, 학원가가 즐비한 공간이지만 그 동네의 완전한 주민이 되지 못하는 느낌이에요. 어떤 시나리오 과정을 거쳐 대치동이라는 공간에서 방앗간을 하는 다섯 명의 가족을 구상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라실제 촬영한 떡집이 저희 부모님이 하셨던 떡집이었고, 그래서 방앗간 집 딸은 제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였어요. 그 과정에서 느꼈던 것들이 있었어요. 부모님의 직업이 알려진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죠. 저는 거기 살면서 내가 2등 주민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도 있었거든요. 예전에 타워팰리스 지부에 현수막이 걸려있던 비닐하우스 촌들이 있었어요. 저는 항상 그곳을 지나서 등교를 했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걔는 거기서 등교한대. 걔는 달동네에서 등교한대.’ 하는 이야기가 오간 거예요. 어린 시절이 지나서야 이러한 것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 내가 굉장히 기이한 동네에 살았었구나.’하고 말이죠. 그래서 그 곳에 살았던 것이 제게는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살면서 정말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 받는 게 무엇인지,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이유로 서울의 익명의 동네가 아닌 대치동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송효정: 대치동이라는 설정을 통해서 1994년도의 한국사회가 압축적으로 제시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고 하니까 굉장히 흥미롭고요. 영화의 시작 장면도 궁금한데요. 긴 복도식 아파트에 사는 은희가 잘못 찾아간 집에서 엄마를 찾고 문을 두들기는데, 이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하게 된 의도가 궁금합니다.

 

김보라오프닝의 줌아웃 샷은 촬영감독님의 생각이셨어요. 저는 처음에 공포영화 같은데? 영화와는 잘 안 맞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편집할 때 보니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인간 군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촬영감독님께 정말 감사했어요. 은희가 902호가 자기 집인 줄 알고 왔는데 아니었을 때, 엄마랑 친한 사이면 엄마한테 가서 엄마, 나 그런 일이 있었다. 벨을 잘못 눌렀어.”라고 말할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잖아요. 말하지 못하는 것들, 그리고 줌아웃 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 역시 가지고 있는 말하지 못하는 역사와 개인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런 부분들을 흥미로운 순간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은희라는 캐릭터가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봤습니다. 은희에게 영지가 남기고 간 것이 어른으로서 줄 수 있는 희망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그리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라각자의 다른 해석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영지가 산타처럼 보이지는 않길 바랐어요. 처음에 은희가 오빠한테 맞는다고 했을 때 표정은 변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잖아요. 이처럼 영지는 섣불리 타인의 삶에 관여하거나 침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결국 서로의 관계가 쌓이고 병원에 찾아가서 네가 싸워야 한다.”고 말해요. “내가 해결해줄게가 아니라. 그 후에 영지가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죽게 되는데 저는 이 사건이 은희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죽음이 좋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것 하나가 떠나가면서 은희 스스로 이 세계를 맞닥뜨려야 한다는 걸 알게 해 주는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은희 또한 새롭게 태어나는 상징으로 그려 넣고 싶었어요.

 

 

관객: 가지고 있던 혹을 떼어낸 후 은희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 전환점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김보라사람들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 이야기 구조가 기승전결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혹을 영화 속의 척추가 될 수 있는 소재로 선택했어요. 이 아이가 혹을 떼는 과정에서 홀로 외롭게 병원을 가는데, 유일하게 이 병원이라는 공간에 있는 아주머니들한테 굉장한 사랑을 받아요. 저는 이 장면에 굉장히 힘을 주고 싶었어요. 은희가 집이나 학교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인데 이 아주머니들은 애가 혼자 고생하네.’하면서 음식을 나눠먹는 모습이 따뜻하게 그려지길 바랐어요.

 


관객: 은희가 엄마를 힘겹게 부르는 장면에서 엄마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잖아요. 이 장면을 어떠한 의도로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보라엄마에게 힘을 주고 싶었던 장면이 세 개 있었어요. 오프닝과 질문해주신 장면, 그리고 엄마가 감자전 먹는 은희를 가만히 바라보는 장면이에요.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한테는 정말 대단한 존재잖아요. 그래서인지 엄마라는 대상은 엄마로만 불리지,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아요. 그러한 엄마가 가정이라는 사적공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있는 공공의 장소에 있을 때 드디어 엄마라는 가면을 벗고 자기만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따라서 오프닝은 엄마로서 자신만의 고독과 삶의 허무감이라든가, 균열을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고, 질문해주신 장면을 통해서는 장바구니를 들고 세상을 구경하듯 엄마가 엄마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는 순간의 발견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은희로서는 엄마가 설명해주지 않은 세계니까 답답할 수밖에 없죠. 외치고 불러도 엄마가 오지 않는 모습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송효정: 엄마가 감자전을 먹는 은희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김보라엄마들은 아무리 바빠도 딸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아시더라고요. 저희 엄마도 제가 아주 힘든 일이 있었을 때, 바로 알더라고요. 이렇게 너무 신기했던 경험들이 있어요. 은희의 엄마도 계속 바쁘다가 오늘만큼은 딸한테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걸 깨달았을 테죠. 그래서 처음으로 이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관객: 문이나 창문이 많이 나오고, 역광으로 찍은 장면이나 실내외를 찍을 때 어떠한 원칙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연출하실 때 특별한 생각이 있으셨나요?

 

김보라저는 문을 흥미로운 피사체라고 생각했어요. 문을 보면 일단 열고 싶잖아요. 나가고 싶기도 하고요. 문을 두드렸는데 열리지 않으면 답답하고 슬프잖아요. 그래서 오프닝에서 외삼촌이 나간 후의 문을 길게 보여줬는데, 저는 그게 많은 것들이 지나가고 난 자리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그 외에 다른 문들에서도 비슷하게 인물과 공간의 정서를 보여주기 위해 문을 많이 활용했던 것 같아요.

실내인 집을 촬영할 때에는 최대한 조명 없이 촬영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는 따로 조명이 없잖아요. 촬영감독님과의 논의를 통해서 어두운 느낌을 선택했어요. 실외에서 찍은 장면 중 은희가 데이트 하는 장면은 초록색이, 아이들이 놀 때는 무지개색의 조명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야외 장면은 생동하는 느낌으로 그렸습니다.

 

송효정: 창에 대한 질문도 해주셨는데 학원의 복도라든지, 영지의 집이라든지, 창과 관련된 장면들이 많아요. 어떻게 그리고 싶으셨나요?

 

김보라햇볕과 초록이 드는 공간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게 창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도시의 엠비언스(분위기) 같은 것들이 굉장히 아름답게 들릴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싶었어요. 에드워드 양의 영화를 레퍼런스로 삼은 것도 있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의 애잔한 정서가 있잖아요. 성수대교 무너진 날의 창이 많은 교실의 텅 빈 공간이나 은희가 퇴원하고 왔을 때 커튼이 날리는 창문의 모습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애수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런 이미지들을 의도해서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관객: 타임머신을 타고 1994년으로 갔다는 느낌일 정도로 그 시대를 잘 포착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그 중에서도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가져오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김보라저희 언니가 실제로 무학여고를 다녔었고, 수희처럼 버스를 늦게 타서 살게 되었어요. 언니의 졸업앨범을 봤는데 죽은 학생들의 사진에는 영정 띠가 둘러져 있었어요. 언니는 살아남았는데 언니 친구들은 죽었던 그 사건이 제게는 상당히 아프고 큰 기억이었어요. 나의 중학교 시절 가장 몸서리 쳤던 순간을 어떻게 영화와 만나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 다리의 물리적 붕괴가 우리가 살면서 겪는 붕괴와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에서 은희는 사람들과 단절되고, 관계에서 붕괴를 경험하고, 하루의 일상 안에서도 기분이 좋았다가 오후에는 기분이 붕괴되기도 하잖아요. 또 우리가 대학이라든가, 돈이라든가 어떤 조건으로 사람들을 분별하는 것에서 오는 붕괴, 단절, 분리 같은 것들이 그 시대와 지금을 이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삶에서 찢겨져 나가는 것들이 물리적으로 발현된 사건이 뭐가 있나 하고 생각했을 때 저에게는 그게 성수대교 사건이었던 것 같아요.

 

 

관객: 은희 역이랑 영지 역 둘 다 왼손잡이잖아요. 캐스팅을 하실 때 염두에 두셨던 부분인가요?

 

김보라좋은 우연이었어요. 한문학원 첫 장면에서 새벽(영지 역)씨가 칠판에 글씨 쓰는 걸 봤는데 왼손잡이더라고요. 지후(은희 역)도 왼손잡이였거든요. 그 조그만 한문학원 공간 안에 왼손잡이가 세 명씩이나 있다니 너무 좋다, 이런 우연이 있구나 했어요. 영화적인 마법이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관객: 영화 속의 한문학원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공간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김보라그 공간을 찾기 위해 스텝들이 굉장히 노력을 했어요. 서울에 있는 오래된 느낌의 한문학원을 다 뒤졌거든요. 개포동에 있는 한문학원인데, 주변 풍경이 너무 좋았어요. 따뜻하고 위로받는 느낌이 있었어요. 은희가 집과 학교에서 힘들다가 그곳에 가면 관객도 나도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그 공간 앞에 숲 같은 게 많아요.

 

 



송효정: 저희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긴 하지만요, 차차 자리를 정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께서 영화에 대해서 하시고 싶으신 말씀 혹은 이후에 어떤 작업을 준비하거나 생각하고 있는지, 차기 작업의 방향까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합니다.

 

김보라영화 만드는 게 저한테는 너무 어려웠거든요. 만들면서 되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렵지?’ 그리고 왜 이렇게 이걸 좋아하지?’ 싶어서요. 좋아하니까 더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벌새>는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했거든요. <벌새>를 만드는 동안, 좀 쉽게 만들고 싶은데, 나라는 사람에게는 영화 만드는 건 거대하고 힘든 일이라 안 맞는 건 아닌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영화를 할지, 안 할지, 또 하게 된다면 내가 어떤 걸 할지 정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다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만약에 한다면 스페인에 가서 경험했던 느낌을 담고 싶어요.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에서 정말 아름다운 문구를 보고 막 울었어요. ‘어떠한 것을 해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사랑이고, 그 다음은 기술이다.’ 이 문장이었거든요. 그 성당은 세상에 이런 성당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공간이었는데,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건축가 가우디가 가장 필요로 했던 건 사랑이었구나 했어요. 그래서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너무 기뻤어요. 제가 정말 사랑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다면 그런 장인의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게 저의 바람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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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한강을 마주하다  인디포럼 월례비행 <한강에게>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1월 30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박근영 감독ㅣ배우 강진아, 한기윤, 최원용, 강길우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주창민 님의 글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위에 그날의 감정과 생각들이 강물처럼 밀려들어 온다. 최선을 다해 슬퍼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며 가능한 것일까. 장면 하나하나는 한 행이 되고 그 사이는 행간이 되어 결국 <한강에게>라는 영화 혹은 시가 된다. 한 편의 서정시를 읽는 것처럼 영화의 감정과 구조 그리고 영화의 의미 있는 선택들을 곱씹으며 바라보면 시를 다루는 여타 다른 영화와 다른 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꿈처럼 침투하는 시간은 결국 우리를 한강으로 데리고 왔다. 그 강을 바라보며 시를 쓰는 행위, 슬픔에 대한 자세에 대해 생각해본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정지혜): 오늘 게스트 분들이 많으셔서 옹기종기 모여서 진행해보겠습니다. 강길우 배우님께서는 조금 이따가 합류하신다고 합니다. 감독님부터 인사 부탁드립니다.

 

박근영 감독(이하 박근영): 추운 날씨에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강에게]를 만든 박근영입니다.

 

강진아 배우(이하 강진아): <한강에게> 출현한 강진아입니다.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한기윤 배우(이하 한기윤): 안녕하세요. <한강에게>에서 기윤 역할을 한 한기윤입니다. 반갑습니다.

 

최원용 배우(이하 최원용): 안녕하세요. <한강에게>에서 출판편집자 역을 연기한 최원용이라고 합니다. 저녁에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지혜: 제가 비평원고에 시가 되는 영화라고 이름을 붙여보았는데요, 감독님께서 국문과를 나오시고 시를 꽤 쓰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시에서 영화로 작업을 옮기고 병행하는 과정이 무척 궁금했고, 그 과정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도 오랜만에 시집들을 보게 됐고요. 작품에 나오는 시를 찾아보는 경험도 하게 되었어요. 일단은 감독님께 시의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여쭤보겠습니다.

 

박근영: 이 영화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들어간 영화인데요. 이십대 때의 저를 기억하는 의미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십대 때 시를 열심히 쓰던 시절이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시인들과 시들이 있었고, 그리고 사랑했던 친구들이 있었고, 한강을 다니면서 놀기도 하고 거기에서 큰 상처를 입기도하고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품고 있다가 3년 전 쯤에 결심을 하게 돼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정지혜: 시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종종 봤고, 특히 독립영화에서는 시를 읊고 시를 짓는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이 영화는 시를 쓴 사람과 그 사람이 쓰는 시를 알게 되는 과정이지만 결정적인 시 쓰기 장면은 오히려 보여주지 않는데요. 같은 의미로 큰 상처, 비극적인 사고, 혹은 사건이랄 만한 순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그 앞뒤의 시간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그게 플래시백의 방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병렬의 구조로 둔다는 점에서 영화가 시적이라고 느껴졌어요

 

박근영: 일단은 단순히 시인을 다루고 시가 나오는 것 이상으로 영화 자체가 형식적으로 시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장면 장면이 시의 한 행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장면과 장면 사이가 행간처럼 느껴져서 행간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랐고요. 서사나 내러티브보다는 감정과 감정, 장면과 장면 사이의 느낌이 연결이 되면서 어떤 인상이 형성되는 영화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습니다. 어떤 힘든 일을 겪을 때 우리가 그 기억을 지금부터 떠올려야지, 하고 떠올리는 게 아니라 기억이 문득문득 침입해오잖아요. 진아의 일상 가운데 침입해오는 진아의 기억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파편들, 단상들을 생각하면서 장면들을 교차시켜 나갔던 거 같아요.

 

정지혜: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 이미 배우 분들이 합류를 결정을 하시고, 이 작업을 위해서 긴 시간동안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시 수업도 들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경험들을 오늘 얘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영화에 등장하는 기도라는 시는 진아 배우님이 직접 쓰신 건가요?

 

강진아: 영화 앞부분의 낭독 장면에서는 다시 봄이 올 거예요라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분이 쓴 수기집 일부를 읽었고요. 실제로 작가 분들이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416분에 세월호 희생자분들을 떠올리며 시를 직접 쓰거나 골라 와서 낭독하는 낭독회가 있는데요. 그 낭독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시를 처음으로 써봤고, 그 시는 영화에는 담기지 않았고 낭독회 책자에는 담겨 있습니다. 영화 참여하면서 감독님 덕분에 이영주 시인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어요. 시를 써야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시를 쓰기 위해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저한테는 흥미로웠거든요. 그리고 극중에서 강의를 할 때 학생들한테 이야기하던 내용들은 이영주 시인께서 수업시간에서 하셨던 말씀을 참고해서 제 방식으로 이야기 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지혜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시 한강에게는 감독님의 시이기도 하고 극중 진아의 시이자 사실 강진아 배우님의 시이기도 하잖아요. 이 영화 자체가 배우 분들, 감독님, 극중 인물들이 시를 쓰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떻게 이 과정을을 준비하셨는지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근영: 일단은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상황을 연출해두고 촬영에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담아내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배우들도 저도 현장에서 유연하게 감각하려면 일단 강진아 배우에게는 시인으로서의 몰입도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직접 시도 써보고 시에 대해 공부도 해보고 시인 분들도 많이 만났는데, 그럴 때 강진아 배우와 함께 하면서 시인들이 쓰는 말투나 어휘를 눈 여겨보며 신경 쓴 것 같습니다.

 




정지혜: 강길우 배우님이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인사 부탁드릴게요.

 

강길우 배우(이하 강길우): <한강에게>에서 길우 역할을 한 강길우 입니다. 앞서 다른 영화 상영이 있어서요. GV를 하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반갑습니다.

 

정지혜다른 분들은 감독님의 전작에서 같이 작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강길우 배우님은 이번에 처음 만나셨잖아요. 어떻게 이 작업에 합류하게 되셨는지 여쭤볼게요.

 

강길우: 그 때 제가 연극작품 때문에 극장에 있었어요. 무대 셋업을 하고 있는 날이었는데, 문자로 아는 분이 영화를 찍는데 너를 소개해도 되겠느냐고 연락이 왔어요. 알겠다, 고맙다고 해서 소개받아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소개해주신 분이 강진아 배우님입니다.

 

박근영: 만나서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냥 좋았어요. 느낌이나 인상, 분위기나 말하는 모습이 다 좋고 잘 맞을 거 같아서 같이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거 같아요.

 

정지혜: 한기윤 배우님은 굉장히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기윤이라는 역할이 쉽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한기윤: 일단 시나리오에 대사 자체가 명시되어 있지 않았어요. 오늘 오랜만에 보면서 기윤이라는 역할이 제가 보아도 외로워 보였거든요. 눈치도 없고 행동이나 말도 계속 모호하고. 연기를 할 때도 모호했던 거 같아요.

 

정지혜: 시나리오 상에서도 대사가 없었다는 것은 기윤이라는 역할만 유독 그랬던 건가요, 아니면 전체적인 감독님의 연출방식인가요?

 

박근영일단은 시나리오의 형태가 많이 변모했어요. 처음에는 소설 쓰듯이 쭉 썼고, 그 다음에는 대사가 있는 시나리오로도 쭉 썼고, 그러다가 촬영을 준비하면서 대사들을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정리했었어요. 그 사이 사이에 배우들의 즉흥연기가 들어가기도 하고 촬영하면서 이 대사는 없는 게 좋겠다, 혹은 이런 대사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식의 얘기를 하면서 만들갔습니다. 대사를 다 지우기도 하고 처음처럼 남겨놓기도 하고 여러 방식이 혼재돼 있었거든요. 싸우는 장면은 처음에는 대사가 있다가 나중에 촬영할 때 다 지우고 간 장면이라 어떻게 기윤을 퇴장시킬까 고민을 꽤 많이 했었어요. 기윤의 성격 자체가 쭈뼛대고 머뭇거리는 성격이다 보니깐 이렇게 담기게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퇴장하는 게 재밌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원용 배우님은 출판사 편집자 역할을 하셨어요. 저도 출판사의 언저리에 있었던 적도 있는데 처음에는 정말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예전에 본 영화의 주인공이셔서 깜짝 놀랐어요. 적역이었던 거 같아요.


최원용: 저는 옆에 있는 주연배우들처럼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은데 정보를 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조금은 다르면서 어딘가에 있을법한, 또 그렇다고 상투적이지 않은 그런 캐릭터로 보여지기를 원했어요. 영상이나 매체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많이 참고했어요. 특히 박준 시인 분을 중점으로 해서 인물을 다듬어 나갔구요.

 

박근영: 기본적인 설정이 편집자면서 시인이라는 설정이었어요. 박준 시인이 실제로 편집일 하면서 시 쓰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박준 시인의 인터뷰나 동영상 같은 것을 많이 참고했고요. 그러는 와중에 이제 캐릭터를 만들면서 좀 소심하고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성격이 진아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정지혜: 영화 타이틀이 뜨기 전에 크게 두 개의 장면이 가이드처럼 제시됐던 거 같아요. 하나는 세월호 낭독회와 관련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누워있는 진아의 모습인데요. 저는 그 두 장면이 내내 영화를 끌고 가는 이미지 같았어요. 그러면서 시와 잠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은유적으로 보면 닮아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감독님이 생각하는 시와 잠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근영: 감정적으로 굉장히 괴로울 때 그 시간을 견디는 게 힘들어서 몇 달이고 잠만 자던 때가 있었어요. 영화에서도 감정적으로 진아의 상태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1차적으로 있었고요. 그런 와중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기억들이 침입해오는 순간들을 영화가 다루고 있는데, 잠을 자고 꿈을 꾸는 행위가 일종의 무의식 발현이잖아요. 내가 의도한 회상이 아닌 무의식적인. 그런 부분들이 이 영화의 형식과 감정의 흐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잠자는 장면과 과거 장면이 있을 때 이것이 마치 꿈같기도 하고 단순한 회상처럼 보이지 않고 좀 더 묘한 느낌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정지혜: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님과 <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님이 등장하기도 해요. 전고운 감독님이 그렇게 연기를 잘하실 줄 몰랐어요. 굉장히 긴 테이크로 찍은 인상적인 장면인데요. 감정적으로 진아에게 굉장히 중요했던 장면인 거 같아요. 감독님이 다큐와 극을 넘나드는 작업방식에 흥미에 있다고 하시는데, 그 장면을 예로 들어서 어떤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었는지 궁금합니다.

 

박근영일단은 처음부터 전고운 감독님이 그 장면을 찍기로 한 것은 아니었어요. 원래 시나리오 상에는 선배 작가를 만난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촬영을 진행하는 도중에 낭독회 장면을 찍을 때 전고운 감독님과 이요섭 감독님, 권오관 감독님이 와주셨거든요.

 

정지혜: 안슬기 감독님도 계셨던 거죠?

 

박근영: , 안슬기 감독님은 처음부터 캐스팅한 거였어요. 그러던 와중에 원래 선배 작가로 등장하시기로 한 분이 출연이 어려워졌고, 전고운 감독님이 흔쾌히 하겠다고 해주셨어요. 집에 놀러 와서 찍자고 하셔서 실제로 차돌박이를 사가지고 놀러갔어요. 요리 해먹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찍었는데요. 일단 자연스럽게 찍으려고 했고, 두 분을 만나서 같이 막걸리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데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게 될 만큼 그 시간이 좋았거든요. 혼자 영화를 찍다보면 연출하는 입장에서 고달파지고 외로워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걸 너무 잘 이해해주시는 거예요. 영화 대사처럼 전고운 감독님이 연민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제가 한참 넋두리하다가 , 맞다. 촬영해야지 이제.’ 하면서 촬영을 시작했어요. 영화에서 쓰인 것은 한 10분 정도인데 원래는 한 테이크 당 15분 정도 됐어요. 한 테이크 찍고 조금 얘기 나누고 다시 찍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그러면서 특별히 대사를 지정하지는 않고 테이크 마다 주제만 정해놓고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이요섭 감독님께 신호를 드리면 나가고, 둘이 남았을 때 진아의 현재 상태에 대한 대화가 오가는 식으로 하자는 정도만 작전을 세우고 촬영을 했습니다. 그 장면의 긴 대화들이 사실 영화 상으로 전부 필요한 얘기는 아닐 수 있죠. 그렇지만 20,30대 때 내가 지나온 시절의 분위기, 공기 그리고 그 당시의 생각이 많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일종의 기록물이라 생각하면서 만든 측면도 있어서요. 당시에 결혼에 대한 생각들이나 우리가 겪은 시대의 아픔에 대한 감정들이 녹아져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부분을 담기 위해 노력했어요.

 




정지혜: 진아 배우님께도 여쭤볼게요. 그러한 방식의 작업이 실제 연기를 하시는 배우의 입장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배우에겐 어떤 경험이고 어떤 감각으로 다가오는지 궁금합니다.

 

강진아: 할 얘기가 많은 질문인거 같아요. 박근영 감독님과 단편 작업을 할 때 제 기억에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철저히 쓰셨던 분이였거든요. 그러다가 현장에서 겪는 즉흥적인 사건들로 인해 시나리오를 뒤집게 되는 경험도 하시고 <한강에게>까지 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시나리오에 대사가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큰일났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박근영 감독님이 해왔던 방식과 달랐고 그래서 재밌었고 호기심도 있었던 거 같아요. ‘, 나도 독립장편 주인공이다.’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 편으론 어려워서 전고운 감독님과 이요섭 감독님이 제발 나왔으면 좋겠다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어요. 저하고 이미 관계가 많이 쌓여져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영화에 나오는 방식으로 자주 놀거든요. 이요섭 감독님이 본인의 연기가 맘에 안 든다고 하시긴 했지만 제가 보긴 연기도 너무 좋고 일적인 면에선 둘다 프로예요. 워낙 일을 많이 해봤던 사람들이라 흐름상의 대사도 잘 파악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는 저보다도 훨씬 적극적으로 임해주셨고 그래서 제가 오히려 기대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어요. 그 장면에서 내가 진아로서 이 흐름에서 어떻게 해야 될까 어려워 하던 부분들을 감독님이 잘 봐주셨어요. 어려움도 있었지만 자유로움도 있었고 이런 현장은 아마 없을 거 같아요. 자유롭게 해보고 그 안에서 조절을 해주는 이상적인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이걸 대본이 철저히 쓰여 있는 작업에서도 접목시킬 수 있게 되더라고요. 연기를 할 때 가장 경계하는 게 배우가 대사를 친 후 다음에 어떤 대사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읽히면 안 되거든요. 새 작품들을 만날 때 마다 이 대사가 없을 때 진짜 나는 어떤 말을 하려고 할까라는 고민들을 하면서 저한테 큰 변화를 준 작업이었어요.

 

박근영: <사일런트 보이>는 배우가 강진아 배우밖에 없었어요. 다 비전공 배우들이었고 비전공 배우들한테는 시나리오를 안 드렸거든요. 근데 강진아 배우한테는 시나리오를 보여드렸죠. 그 시나리오에는 다 대사가 쓰여 있었는데, 그래서 강진아 배우가 촬영을 위해 순창에 내려왔을 때 제가 대사를 제발 외우지 말고 상황만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뒤에서 다 외우고 있더라고요. <사일런트 보이>를 하고나서 이런 것들을 장편으로 배우들과 함께 해보면 참 재밌겠다 싶었고, 대사가 있으면 내가 아무리 외우지 말라 해도 배우들이 외우니 대사를 지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였어요.

 

정지혜: 이런 감독님이 배우님들 입장에서는 얄미울 때도 있을 거 같아요.

 

박근영: 배우들한테 어필했던 지점은 저희가 굉장히 제약이 많고 소규모의 시스템이었지만 우리가 시간은 많다는 거였어요. 우리끼리만 모여서 찍으니까 회차가 아무리 늘어나도 예산이 크게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시간을 맞춰나갈 수 있고 한 장면을 찍어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찍을 수 있다고고 어필을 했습니다. 그게 어필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도 그렇게 했던 거 같아요.

 

 



관객: 영화 잘 봤고요. 질문이 두 개 인데요. 첫 번째 질문은 감독님께 드리는 질문인데, 극 중에서 길우가 혼수상태잖아요. 근데 영화자체가 상실과 그 상실을 느끼고 있는 진아를 보여주는데 혼수상태라는 것이 저한테는 완전한 상실도 아니고 상실을 준비하는 애매한 상태라고 보였어요. 왜 그렇게 설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두 번째 질문은 배우님들에게 드리고 싶은데, 영화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이 모두 리듬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캐릭터 마다 색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듬감 같은 것들이 비슷하게 느껴졌는데 실제로도 배우 분들이 연기를 하시면서 느끼셨는지, 혹은 감독님의 영향인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근영: 일단 두 번째 질문부터 제가 먼저 말씀 드리면, 가끔 배우들한테 우리가 좀 닮았다고 말했거든요. 제가 조금 차분한 사람을 좋아해요. 아까 강길우 배우와 이야기하다가 섭외를 결정했다고 했는데, 차분하더라고요. 그런 게 좋았던 거예요. 그러다보니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으신 측면이 있는 거 같습니다.

혼수상태를 설정한 이유는, 분명히 말하자면 상실 직전의 시간과 상실을 겪은 이후의 시간이 모두 있을 텐데, 진아에게, 또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가장 심정적으로 혼란스러운 때가 이미 예감하고 있지만 그 시간을 기다려야 되는 때더라고요. 그 시간에는 오히려 이 감정이 뭘까 싶더라고요. 죄책감과 자책감, 그 와중에 이제 뭔가 이별을 준비해야하는 슬픔과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은 벌써부터 극복과 치유를 얘기하는 상황. 나는 엄청 괴로운데 슬픔을 극복하려는 마음 자체가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슬퍼하고 싶은데 그건 또 무엇인지 이런 생각들을 그 시간 동안 했어요. 제일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했던 시간들이기도 해서 이런 시간이 영화에 담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정지혜: 배우님들도 말씀 부탁드릴게요. 서로 닮은 듯한 기분이 드셨나요?

 

강길우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듣고 보니까 닮은 거 같기도 해요. 감독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캐스팅을 하다 보면 본인과 비슷한 사람들을 모으게 되는 거 같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저희 다 차분한 편이긴 한 거 같아요.

 

강진아제가 좀 덜 차분하고 기윤 배우님은 많이 차분하시고, 차분 그 자체이시고. 원용 배우님은 차분한데 유머가 있는 스타일이시고. 저희는 다 차분합니다.

 

최원용: 저도 그 말에 동의하는데요. 영화에서 같은 농담을 하더라도 등장할 때 마다 조금 색깔이 달라 보였으면 좋겠어서 처음에는 약간 소심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가 두 번째는 오지랖 넓은 모습을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뒤끝이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끝내려고 했어요. 근데 그런 사람이 하는 농담이 가벼울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농담을 하지만 의미심장한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농담도 좀 진지하고 차분하고 조곤조곤하게 낮은 톤으로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근영: 사실 제 어릴 때 친구들이랑 오랜 지인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제일 많이 하는 소리가 영화에 나온 사람이 다 너 같아라는 말이에요.

 

강진아: 영화제 뒷풀이에서도 가장 구석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저희예요.

 

정지혜그래도 끝까지 남아계셨던 거 아니에요?

 

박근영: , 맞아요. 사실 다 쫄보들이고 구석에서 밤새도록 우리끼리 얘기했습니다.

 




관객: 영화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는데요. 아무래도 전고은 감독님과 이요섭 감독님의 장면이 연기였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좀 충격적이었는데, 그런 것처럼 다큐처럼 배우님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현실과 극을 분간할 수 없는, 따로 분리할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한 영화였습니다. 이렇게 배우님의 이름을 배역의 이름으로 차용하는 영화를 볼 때마다 보통 감독님께 왜 배우의 이름과 역할의 이름을 같게 쓰셨는지 여쭈어 보았는데 한편으로는 배우님들은 원래 이름과 배역의 이름이 같을 때 어떻게 분리하고자 노력을 하실까 궁금하더라고요. 또 물 흐르듯이 합을 맞추기 위해서 조화가 중요했을텐데 한편으로는 감독님의 흐름에 반하여 고집을 드러내게 될 때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박근영 일단은 제가 픽션과 다큐가 혼재되는,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은 것들이 서로 간섭하면서 생기는 느낌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잖아요. 두 감독님들이 현재 본인의 경험이 녹아져있는 얘기를 하는 와중에 명확히 지금 연기 중이란 것을 인식하는 것처럼, 낭독회에서 강진아 배우도 실제로 낭독 중이지만 배우로서 카메라가 있다는 것도 본인도 알고 있고 연기적으로도 분명히 의식하는 지점이 생겼을 테죠. 그러면 영화의 형식적으로나 인상적으로 경계가 모호해지지만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에서도 연기와 실재가 모호해지는 지점이 있는 거죠. 그런 순간이 영화 속에 담길 때 그 묘한 느낌이 매번 저를 사로잡는 거 같아요. 그에 대해 유연하게 반응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려면 결국 본인의 이름을 써야하죠. 강길우 배우님 같은 경우에도 촬영 당시에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공연의 리허설을 가서 찍었거든요. 그때도 실제 강길우라는 배우로 연극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촬영을 해서 극영화에 쓴 거죠. 연기에 있어서 모호해지는 지점에 대한 생각은 배우 분들에게 들어보겠습니다.

 

강진아: 이렇게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 늘 경직되곤 했는데 지금 진짜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얘기를 듣다보니 내가 이렇게 해왔구나, 하고 정리하게 되어서 재밌는데요.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이름보다는 이 인물의 행동이나 마음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느껴지면 충분한 거 같거든요. 그런 순간들이 자연스러웠던 현장이었어요. 자연스러운 현장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게 뭔지 명확하게는 모르지만 정말 자연스러운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사람들 눈에 띄고 싶어할 때 말고는 제 이름을 딱히 앞세우고 살았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 나는 강진아 시인인데.’라는 마음보다 나는 지금 낭독회를 진행해야 하고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 거구나. 근데 나는 이런 걸 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그게 가장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이름을 잊게 되는 거 같아요.

 

강길우저는 초반에 제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되게 불편했어요. 극중에서는 내가 아닌데 내 이름을 부르면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경계를 하면서 참여했던 거 같아요. 이름은 나지만 내가 아니다 생각하면서. 근데 촬영을 하다보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진 거죠. 자연스러워졌어요. 제 이름을 부르고 각자의 진짜 이름을 부르는 게 언젠가부터 오히려 되게 편하다는 느낌까지 들었어요. 그전에 감독님이 저희 다 불러서 한강에서 놀고 이랬던 시간이 도움이 됐던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영화에서 제 이름으로 저의 모습을 써버리면 어떻게 보면 끝나는 거잖아요. 다시는 나로 연기할 수 없죠, 겹치니까요. 그래서 되게 경계를 했던 거 같은데 자연스럽게 고민이 없어졌던 것 같고 결과물을 봤을 때는 영화 속 길우가 나도 아닌 것 같고 내가 아닌 것도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결론적으로는 극 중 인물을 잘 보여주었던 거 같습니다.


한기윤: 전 잘 모르겠어요. 지금도 잘 모르겠고 촬영하는 당시에도 잘 몰랐던 거 같고요. 극중 기윤을 연기하는 건지 실제 나를 연기를 하고 있는 건지 굉장히 모호했고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방식과는 달랐고 영화를 보면서도 예상이 잘 안되더라고요.

 

최원용저는 이름을 쓰지 않고 출판편집자라는 배역으로 연기를 했었는데요. 앞서 길우 배우님 말씀에 매우 동감을 해요. 자기가 스크린에 투영되는 순간부터는 다음에 이 카드를 쓸 수 없다는 문제가 있으니까요. 배우로서 내가 나를 연기하면 자연스럽고 리얼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일이고, 또 창작을 하는 예술가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요령을 피우게 된다고 생각을 해요. 저 스스로 자의식을 놓는 순간 최원용이 튀어나오니깐 마음속으로 항상 중심을 잡고 연기를 했던 기억이 나요.

 

박근영: 또 트러블에 대한 질문을 주셨는데 육체적으로 힘든 날은 몇 번 있었던 거 같아요. 특히 밤 촬영하는 날. 야간 촬영이 많지는 않았는데 마지막에 싸우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되게 육체적으로 힘들었거든요. 만족스러운 오케이 컷이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연기에 대한 의견이나 디렉션에 대한 의견으로 인한 충돌은 사실 없었어요. 시간은 많으니깐 배우들은 마음껏 연기적으로 시도해보고 저는 그걸 본 뒤 제 의견을 반영하기도 하면서 서로 같이 춤추듯이 만들었던 거 같아요. 하고싶은 것 다 해본 뒤에 결이 안 맞거나 과한 부분은 편집할 때 결정하면 되니까 촬영하는 시간은 가능성의 시간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또 현장에서 무지개가 비치고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추고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다 잡아내기 위해서 늘 열린 마음으로 작업을 하려고 애를 썼던 거 같아요.

 




정지혜: 이 영화는 결국 시와 잠을 통과하여 한강을 보기까지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과거의 한강과 현재의 한강을 그리는 방식이 감독님이 생각하는 과거와 현재 사이 큰 사건의 공백을 바라보는 방식과도 이어지는 거 같아요. 더불어 마지막 질문으로 이 영화의 엔딩에서 진아가 길 위로 가서 돌아간다는 점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근영: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나서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진아가 한강을 보면 어떤 감정들일까. 그 질문을 향해서 가는 영화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진아가 한강 앞에 다시 서기까지의 시간이요. 엔딩은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그런 장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아픔을 어떻게 기억하고 살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진아가 이 슬픔을 어떻게 기억하고 살게 될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흘러나오는 시가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시인 것처럼 영화도 그렇게 진아가 아픔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기억해 나갈지를 생각해보면서 여운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지혜: 그러면 인사를 드리면서 이 시간 마무리 하겠습니다. 원형 배우님부터 인사 부탁드립니다.

 

최원용: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또 저희가 말을 잘했는지 모르겠네요. 동문서답을 한 것 같긴 한데 잘 봐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여기저기 입소문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기윤: 재밌게 봐주셨을 거라고 믿고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강길우늦은 시간에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영화는 4월 달에 개봉을 합니다. 오래 기다렸는데 개봉 전에 또 개봉하면 보러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강진아: 요즘에 제가 쉴 때도 잘 못 쉰다고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근데 이 영화가 어딘가에 머물기도 하고 또 시를 이야기하는, 시와 닮아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런 시간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오늘 와주셔서 진짜 감사드립니다.

 

박근영: 와주셔서 감사하구요. 4월 달에 개봉하는데요. 벚꽃피고 벚꽃 떨어질 때 그 기분에 취해서 관객 분들과 얘기를 나누면 좋을 거 같아요.

 

정지혜: 신작 만드시는 게 있나요?

 

박근영: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는데 열심히 박차를 가해보려고요. <정말 먼 곳>이라는 영화인데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전주영화제 때 열심히 뛰어볼 거 같아요.

 

정지혜: 이 영화와 결이 좀 비슷한가요?

 

박근영: 결이 비슷한 지점도 있고 새로운 도전처럼 생각하는 지점도 있어요. 열심히 해봐야겠죠.

 

정지혜: 오늘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 월례비행은 다음 달에 또 흥미로운 작품과 함께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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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의 왕>  한줄 관람평


김윤정 | 영화 속 모든 것들의 국경을 넘나드는, 모험이자 여행

오윤주 | 물리적인 국경 너머 현실과 무의식을 오가는 꿈과 환상의 세계

송은지 만나고 흩어지길 반복하며 부유하는 국경의 유령들

성혜미 | 그래서 나는 꿈을 조각내 영화를 쓴다

최승현 시공간을 종횡무진하면서 유령이라는 희미한 힘을 좇다

승문보 | ‘우연’이 가진 신비로운 힘이 만들어낸 나만의 영화

김정은 익숙함과 낯섦 경계를 넘나드는 모호하지만 풍부한 감정들

이성빈 처음 본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는 내 발이 정하는 법이다

이성현 |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전혀 당연하지 않게 될 때 





 <국경의 왕>  리뷰: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당연하지 않게 될 때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성현 님의 글입니다. 





전작 <라오스>(2014)에 이어 임정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국경의 왕>에서는 영화를 공부했던 유진(김새벽)과 동철(조현철)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도시를 여행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인물들의 좌충우돌 여정을 담은 로드무비, 혹은 단순한 드라마로 칭하기엔 장르가 마땅히 품어야 할 서사가 빈약하다. 사실 이 영화의 방점은 서사를 지연시키는 틈새에서 공기처럼 작동하는 이미지이자 어떤 느낌에 있다. 영화의 제목이 '국경의 왕'이지만, 과연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경계에 군주가 존립할 수 있는 것인가. 제목에 결합된 낱말들의 모순, 그 짧은 인상에서부터 출발한 영화는 관객과의 첫 대면에서 불어넣은 어딘가 낯설고 괴이한 느낌을 끝까지 이어간다.


 



영화는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전혀 당연하지 않게 될 때, 동요하는 우리의 시선에 주목한 듯하다. 그런 면에서 <국경의 왕>은 관객의 시선을 하나의 역할로 염두해두고 설계한 프레임의 실현으로 느껴지는데, 그 프레임 속 한 데 병치된 것들-우중충한 잿빛 하늘과 붉은 꽃, 고전 양식의 건축물, 마약사범과 게임 '포켓몬 GO', 죽음, 술과 음식, 유령-과 더불어 12역의 배우들은 '국경'''의 확장된 이미지로 다가온다. 일상 언어가 갖지 않은 리듬과 역설로 조합된 존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영화는 이국적인 풍경 위에 낯선 상황들을 중첩하고 평범한 일상을 투영한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떤 정보도 흡수하지 않은' 상태의 관객의 시선을 통해 구현되는 생경함을 포착하려 한 것이다.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발화되는지 마저 불분명한 서사를 따라가려 애쓰는 관객들은 불친절한데다 괴랄하기까지 한 상황들의 연쇄가 실로 불편해진다. 갑작스러운 원식(정혁기)의 실명과 세르게이(박진수)의 죽음에서 불편함에 대한 영화의 의도는 확실해지고 인물들의 비극이 코미디로 느껴지게 할 만큼 과장된 연출은 이를 증폭시킨다. 이런 껄끄러움은 극을 현실의 환각처럼 느끼도록 했던 사실주의 연극을 반대하고 연극은 연극임을 분명이 하고자한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외침을 연상시킨다. 막을 걷어 올려 조명과 세트가 모두 보이는 극장에서처럼, 관객들은 극 중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극 속에 함몰되지 않고 낯설게 보기[각주:1]를 실현하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반추하고 당연하게 여겨오던 일상의 풍경에 대해서 다시금 질문하도록 요구한다.

 




물론 그러한 요구에 순순히 응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관객보다 앞서 영화를 완성해나간 배우들은 촬영 현장에서 순간순간 경험한 낯섦을 끌어안고 자신만의 화두로 가져와 영화 속에 풀어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결국 <국경의 왕>은 영화를 만드는 영화다. 언뜻 보기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그 결과물로 상정된 이야기'2막 구조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지만, 서사는 단 한 번도 둘 사이의 공극을 열어주지 않는다. 도리어 탄탄한 폐곡선을 그리며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현실 사이의 무한 굴레 속에서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또 어디까지가 감독의 디렉션인지를 무수히 더듬고 가늠하게 만들 뿐이다. 그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생산되는 답이 없는 물음들은 감독이 관객에게 선물한 나름의 즐거움일 것이다.

 




  1. 낯설게 보기 (소격효과) : 극작가 브레히트가 말한 이론으로, 극적 환영을 깨뜨림으로써 무대 위의 사건에 대한 낯선 태도를 갖게 하는 것. 관객이 허구적 사건에 대해 거리감을 갖게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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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계속 회자될 한국적 애니메이션  <언더독>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2월 23일(토) 오후 4시 상영 후

참석 오성윤, 이춘백 감독

진행 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언더독>은 영화제 상영 당시 9초 만에 매진이 된 기록적인 애니메이션이다. 인디스페이스에서 2월 23일 진행한 배우 유지태와 함께 독립영화 보기’ 14번째 행사를 통해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언더독>이 먼 훗날 계속 회자될 한국적 애니메이션이라는 주장에 당연히 동의할 것이다. 이날 인디토크에 오성윤 감독과 이춘백 감독이 참석했으며, 어느 때보다 <언더독> 제작 과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이하 모은영): 안녕하세요. 영화 재미있게 보셨죠? 두 감독님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겠습니다. 두 감독님의 인사 먼저 듣고 시작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성윤 감독(이하 오성윤):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전용관이고, 유지태 배우님이 독립영화를 후원하는 취지에 따라 그동안 이런 행사를 진행해왔는데, 이번에 저희 영화를 선정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정말 감사했어요.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힘겹게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젊은 영화인도 많은데 저희 영화가 상영되다 보니 송구스럽더라고요. 오늘 인디토크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이춘백 감독(이하 이춘백): 안녕하세요, 공동감독 이춘백입니다. 잘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처음에 워낙 영화 개봉 성적이 안 좋다 보니까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오늘 <언더독>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반갑습니다.

 


모은영: 두 감독님께서 힘들게 말씀하셨지만,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 자체가 아주 힘들게 만들어지고 있어요.

 

오성윤: 이 영화를 제작할 때 투자를 잘 받을 줄 알았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2011) 이후 성공 사례가 없다보니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이 심해졌어요. 투자를 받기 힘든 상황에서 적은 제작비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저희가 단독 제작을 하던 중 배급사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배급사 덕분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은영: <마당을 나온 암탉>22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죠. 한국 창작 애니메이션 부문 1위 성적인데, 아직도 그 기록이 안 깨지고 있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그리고 <언더독>이 개봉하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그 또한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이 어렵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아요. 그에 더해서 오랜 제작기간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기간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8년이라는 긴 시간이 단순히 투자를 받기 위한 시간일 거라고 보이지는 않아요.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릴게요.

 

오성윤: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한국 극장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이 흥행할 수 있다는 게 검증되면서 유럽의 B급 만화가 들어오고, 디즈니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1,000억 이상 돈을 들여 완성도를 높인 영화도 점점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은 주로 영·유아를 위한 애니메이션이 많이 제작되거든요. 해외 애니메이션이 많이 유입되는 상황에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오리지널 창작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봐요. 이를 위해서는 시나리오가 중요하고요. 저희는 온 연령대가 좋아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수 있어도 저희만의 차별화 전략이 있었어요. 저희는 2.5D라고 부르는데, 사람이 직접 손으로 그린 배경에 3D 애니메이션이 올라탄 거죠. 많은 가공을 거쳐서 일반적인 3D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2D 애니메이션 느낌을 살렸어요. 이런 전략으로 <언더독>을 만들었어요. 저희는 작업이 잘 됐다고 생각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측에서도 제 전작보다 훨씬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잘 안 됐어요. 왜 안 됐지?(관객 웃음) 저는 좋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200만 명은 넘기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모은영: 반성하고 있습니다. 오성윤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신 차별화 전략에서 이춘백 감독님이 특별히 더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춘백 감독님은 전작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참여하셨다가 이번에는 공동연출을 맡으셨어요.

 

이춘백: 저희 둘 다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하다 보니 사람이 손으로 그린 그림의 가치를 믿고 있었어요. 그래서 관객들이 이에 공감하기를 바랐고 일러스트레이션 풍으로 가고 싶었어요. 손으로 그린 그림을 큰 화면으로 보여줬을 때 관객들이 큰 감동을 느끼길 바랐어요. 배경은 연필로 세밀하게 드로잉하고, 그 다음 컴퓨터로 채색하며 효과를 입히는 과정을 거쳤어요. 캐릭터 애니메이션의 경우 3D로 만들었는데, 어느 정도 2D처럼 보이고 싶었죠. 그래서 1년 동안 여러 리서치 과정을 통해 저희 스타일을 찾았어요. 다른 애니메이션과 달리 외곽이 살아있고, 소프트한 배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아트 스타일을 만들어냈죠.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 풍경에 신경을 썼고 답사도 많이 다녔어요. 영화에 나온 모든 배경을 답사한 다음 만들어냈어요. 최고의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고 싶어서 많은 스태프의 노력과 열정이 투입되었고 마음이 안 들면 지체하지 않고 계속 수정 작업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영화를 완성하는데 긴 시간이 걸렸어요.

 

오성윤: <마당을 나온 암탉>도 어떻게 보면 거의 공동연출을 한 셈이에요. 애니메이션 연기를 체크하다 보면 한계에 부딪히게 되거든요. 사람이 일일이 종이에 그려서 연출했기 때문에 애니메이터에게 리테이크(retake, 재촬영)를 부탁하는 게 어려워요. 그동안 그린 걸 다 버리고 새로 그려야 하니까 어렵죠. 그렇게 애니메이터에게 부탁을 드렸는데도 만족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경쟁력이 있고 어른들을 만족시키려면 캐릭터 연기가 굉장히 수준 있게 가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 작업 때는 그 작업을 잘하자고 결심했어요. 이번 영화에 3D 애니메이션을 잘 도입한 것 같아요. 3D를 도입한 덕에 첫 작업을 갖고 오면 경우에 따라 리테이크를 계속 요청할 수 있었어요. 극영화를 찍을 때도 힘든 리테이크 작업을 13번까지도 했으니까요. 덕분에 캐릭터의 감정 연기에 많은 신경을 쓸 수 있었어요. 작년 말에 잠깐 일본에 시사를 하러 갔어요. 일본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이 저희 영화를 보고나서 조금 놀란 눈치더라고요. 그날 시사회에 오신 분 중에 한 애니메이션 감독이 저희에게 개 캐릭터를 구축할 때 모션 캡처(motion capture)를 한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캐릭터가 인간이 아닌 동물이다 보니까 모션 캡처를 할 수 없어서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다고 하니까 굉장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그리고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에 출품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언더독>을 출품했는데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아서 3월 초에 영화제 참석을 해야 해요.(관객 박수)

 




모은영: <언더독>이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에 초청을 받았고, 중국에서도 상을 받았어요. 보통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애니메이션 기법에 대해 이야기를 덜 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오늘은 자리에 맞게 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봤고요. 캐릭터 연기를 언급하셨는데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 연기를 어떻게 작업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면서 눈에 띈 특징이 모든 개의 시선이 아래를 향하고 있더라고요. 사람이 아닌 개의 시선을 잡는 섬세한 설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이춘백: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행동을 조금 더 과장을 해야 하고, 더 빨리 해야 해요. 죽어있는 그림이 살아있게 보이려면 실제 액션보다 과장을 해야 움직이더라고요. 이번에는 개가 주인공이니까 관찰을 더 많이 해야 했어요. 보통은 거울을 갖다 놓고 자기 얼굴을 보면서 그려요. 근데 이번에는 주인공이 개인데 사람이 거울을 보면서 연기를 할 수 없잖아요. 저는 개를 키우고 있는데, 사람을 따르는 개들이 하는 기본적인 행동은 큰 개나 작은 개나 똑같아요. 그래서 제가 키우는 개를 참고해서, 특히 사람들이 귀여워하는 행동을 담아냈죠.

 

오성윤: <마당을 나온 암탉> 때는 100분짜리 콘티를 짜서 동영상으로 편집을 했어요. 배우 분들과 저희가 먼저 잡은 골격에 따라 선녹음을 했더니 목소리 연기자들이 본인 연기를 못하더라고요. 원래 선녹음은 목소리 연기자의 자유로운 연기를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죠. 그래서 이번에는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을 따라 배우들은 시나리오만 보고 그림 없이 자기 연기를 했어요. 저희는 연기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 다음 콘티를 짰어요. 콘티를 짤 때 각색을 했고요. 필요에 따라 보충 녹음도 했어요. 전작보다 1.5배 혹은 2배 더 노력을 부었어요.

 

모은영: 덕분에 캐릭터의 개성이 살아났네요. 보통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를 거론할 때 입 모양과 목소리의 일치 여부를 따지는데 <언더독>은 캐릭터의 입 모양과 목소리가 일치해 놀랐어요.

 

오성윤: 이게 애니메이션 제작자의 숙원이거든요. 이번 영화에서 목표치의 80%를 달성한 것 같아요.

 

모은영: 캐스팅 과정도 궁금한데요. 목소리 연기자를 캐스팅할 때 전문 성우를 캐스팅할지 아니면 배우를 캐스팅할지에 대한 문제가 흔히 이야기되죠. 근데 이 작품은 그런 이슈가 거의 없었어요. 어떻게 캐릭터에 맞게 캐스팅을 하셨나요?

 

오성윤: 제가 주로 캐스팅 담당을 맡았는데 영화 <카트>(2014)를 볼 때 도경수 배우 연기가 정말 인상 깊더라고요. 툭툭 던진 몇 마디 안에 감정이 다 들어가니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도경수 배우를 염두에 뒀거든요.

 

이춘백: 도경수 씨 같은 경우 첫 회 녹음 때에는 캐릭터에 맞지 않게 너무 진지했어요. 그래도 굉장히 빨리 습득을 하더라고요. 과장해야 하는 목소리 연기에 금방 적응을 해서 놀랐어요. 박소담 씨는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톤이었어요.

 

오성윤: 논란이 아예 없지는 않았어요. 근데 저희 영화에 맞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요. 저희 영화가 사실주의 애니메이션이라서 어린 캐릭터는 실제 그 나이에 맞는 아역 배우가 했어요. 보통은 젊은 여성 성우가 가성으로 연기하죠. 개코 역은 환갑이 넘으신 강석 선생님이 진성으로 연기하셨어요. 물론 배우만을 캐스팅하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판단 하에 성우를 캐스팅도 했고요.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게, 주류 애니메이션도 여러 분류가 있잖아요. 주로 관객은 미국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한국의 영·유아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데, <언더독>은 그런 결의 영화와는 다른 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찾아보기 힘든 계열의 영화이지 않을까 싶어요.

 




모은영: 그래서 저희가 이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했죠. 전작도 그랬고, 이 작품은 어딘가를 탈출해서 자신을 찾아가는 로드무비이자 성장영화잖아요. 처음에는 뭉치가 목줄에서 자유로워졌음에도 소리를 내지 못 하지만, 공을 놓으면서 이를 계기로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고요. 이런 성장 이야기를 선호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오성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원작이 있고 <언더독>은 없지만 테마는 비슷하죠. 제가 나이는 있지만 여전히 자유에 대한 갈망을 끝없이 갖고 있어요. 과연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지, 누리고 있는지에 대한 제 스스로의 이야기가 영화를 만들다 보면 많이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DMZ 설정을 넣은 건 하나의 프레임이 있다고 느껴져서예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지 못하는 생각이나 표현이 많다고 느끼거든요. 그런 중의적인 의미에서라도 DMZ라는 억압적인 프레임을 확 넘어가고 싶은 욕구가 있고, 이를 영화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제가 계속해서 밀고 있는 표현이 있어요. DMZ닫혀 있는 성장판처럼 느낀다고 말해요. 이게 열리는 순간 경제적 효과도 굉장히 크겠지만, 알고 모르게 억눌린 우리의 자유, 가치관이나 행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봐요.

 

모은영: 이 영화가 8년 전에 기획된 것이지만, 이야기가 딱 지금의 상황이잖아요. 반려동물 논란도 담겨져 있고요. 개농장에 대한 이야기, 로드킬 문제 등 우리 사회에서 현재 두드러지게 이야기되는 문제들이 여기에 다 내재되어 있어요. 어떻게 현재 화두가 되는 사회문제를 담아냈는지 궁금합니다.

 

오성윤: 8년 전에 시나리오를 썼고, 2017년에 이 영화를 개봉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래서 DMZ를 배경으로 하는 결말을 만들면서 되게 센세이셔널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전 정권 때 개봉했어야 했는데 개봉이 늦어지고 시대가 바뀌니까 센세이셔널함이 반감되었네요. 심지어 저희가 예상했던 댓글도 올라오지 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왜 개들이 북으로 가냐는 흔한 댓글도 올라오지 않았어요.(웃음) 그래서 아쉬웠고요.

 

모은영: 공을 물고 있던 뭉치가 공을 버리는 장면과 DMZ에서 수류탄을 물고 있는 후반 장면이 엮이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 장면을 통해 하고 싶으셨던 말씀이 있었나요?

 

이춘백: 수류탄 터지는 장면에서 고민이 되게 많았어요. 자칫하면 뭉치가 죽은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노란 꽃도 공중에 날리다 보니 저희 의도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봤어요. 사실 처음에는 꽃을 뭉치 주변에 날리려는 생각을 안 했어요. 근데 꽃이 없으면 무리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들국화 꽃이 뭉치를 보호하듯이 떠받쳐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아이디어를 잘 낸 것 같아요. 아쉬운 점은 만발한 꽃이 온 화면을 메우기를 원했지만 꽃 하나하나 집어넣다 보면 제작비가 비싸져서 어쩔 수 없이 만족할 만큼은 못 넣었어요.

 

오성윤: 공중에 있는 뭉치 장면은 시뮬레이션으로 돌리면서 만들었는데, 꽃을 더 넣을수록 만들기가 어렵고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해서 원했던 만큼 꽃을 넣지 못했죠. 아쉽죠. 테니스 공은 주인이 뭉치를 데리고 놀 때 쓰다가 버리는 도구고, 뭉치가 이 공을 버림으로써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과정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데요. 수류탄은 뭉치가 당연히 수류탄이라고 인식을 못했겠지만, 인간이 공에 집착하니까 이번에 뭉치가 역으로 인간을 끌고 다니는, 반대 현상을 일으킨 거죠. 재밌는 게 병사들이 수십 명 나오잖아요? 원래 병사들이 몸에 달고 있는 게 많잖아요. 근데 총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장면에 담아내면 돈이 많이 든대요. 그래서 총을 다 뺐어요.(웃음) 이것도 어떻게 보면 잘했죠. 왜냐하면 현재 남북한이 비무장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잖아요.(웃음공뿐만 아니라 철망의 이미지도 중요해요. 철망의 이미지가 계속 커져요. 초반 울타리와 작은 철망에서 염소농장의 철망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DMZ 철망을 넘어가는 프레임까지 설계를 했죠.

 

이춘백: 뭉치에게 공이 인간과 개를 이어주는 매개체인 반면, 짱아의 경우 인형이 그런 역할을 했죠. 뭉치 같은 경우 성장하면서 공을 버리지만, 짱아는 계속 인형에 집착해요. 그만큼 인간의 끈을 마음에 지니고 있는 개였음을 보여줘요. 그래서 긴 여정 끝에 도착한 집에서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데, 이를 통해 개들이 추구하는 행복이 여러 가지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개는 늑대가 아니니까 사람과 같이 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 생각을 짱아에 투영했고요. 덕분에 내용이 더 풍부해진 것 같아요.

 

오성윤: 원래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게 반려견의 다수 의견일 텐데, 뭉치의 무리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나아가는 게 공동 목표가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짱아의 생각은 소수 의견이 되어버렸죠. 원래 짱아가 조금 더 강하게 나오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모은영: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두세 분 정도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오성윤: 벌써요? <마당을 나온 암탉> 때는 GV를 많이 했는데. GV가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어요.(관객 웃음)

 

 

관객저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보고 있어요. 전작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주인공 잎싹이 배고프지? 날 먹어라고 하는 부분이 충격적이었어요. 방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개는 인간친화적으로 탈바꿈한 동물인데, 캐릭터들이 인간과의 삶을 포기하고 자유를 만끽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잖아요. 감독님이 이번 영화에서도 자연 친화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으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오성윤: 보시다시피 저는 도시형 인간이긴 한데요, <마당을 나온 암탉> 때 아쉬운 게, 원작과 달리 애니메이션에서 잎싹이 그 말을 내뱉을 수 있게 되기까지, 온전히 자신을 이해할 정도의 깨달음이 관객들에게 전달되어야만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어요. 그런 후회가 있어서 그런지 <언더독>에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본질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계속 캐묻다보면 개에게 어떤 자유의 본질이 있을지 궁금했어요. 또 제 스스로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하면서 영화를 계속해서 만든 것 같아요.

 

 

관객: 전작에서 마지막에 족제비의 아이들을 보여주면서 족제비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셨잖아요. 애니메이션이 캐릭터의 입체적인 모습을 표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그런데 이번 <언더독>에서는 개장수 캐릭터가 평면적으로 느껴져요. 어떤 의도로 캐릭터를 묘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오성윤: 아픈 지적이에요. 시나리오를 완성한 다음 주변에서부터 모니터링을 시작했는데, 제 아내가 시나리오를 보고 지금 관객 분과 같은 지적을 했어요. 개장수도 시야를 넓혀서 보면 그런 직업을 갖게 된 원천적인 이유가 있을 텐데 시나리오에서는 개장수의 인상이 너무 평면적이라는 대답을 했어요.

 

모은영: 그래도 이 영화에는 제주도에 계신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인물도 나오고, 개들에게 밥을 나눠주는 외국인 노동자도 나오고, 되게 많은 유형의 인물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개별적인 인물보다 그룹으로 엮어서 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오성윤: 그렇게 인간군으로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 인물은 평면적이었으나 이 영화가 인간 대 개의 이야기니까 그렇게 본다면 다양하고 입체적인 인간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춘백: 맞아요. 인간이 개에게 가하는 악의 총체를 상징적인 인물인 개장수로 표현했어요. 사실 특정 캐릭터의 평면적인 문제를 해결을 못했어요.

 

오성윤: 저희가 원래 후반부에 나오는 부부 목소리 연기를 이효리 씨와 이상순 씨에게 부탁하려고 했어요. 근데 제주도로 내려간 지 얼마 안 돼서 두 분을 캐스팅하지 못했어요. 다른 분에게 목소리 연기를 부탁드렸죠. 근데 나중에 내부적으로 기술 시사회를 할 때 다 알아보시더라고요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과 오버랩되는 모습이 많다 보니까 금방 아시더라고요. 그래서 효리네 민박 PD님에게 연락을 드려서 해당 장면을 보여드린 다음 허락을 받았죠. 응원도 받고요.

 




관객: 질문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다른 영화는 촬영을 하고도 나중에 버리는 장면이 있다고 하는데 애니메이션에도 그런 경우가 궁금하고요.

 

오성윤질문 두 개를 동시에 받으면 항상 까먹어서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드릴게요. 저희는 우선 콘티부터 짜요. 그 콘티를 갖고 계속 수정을 해요, 마음에 들 때까지. <언더독>의 경우 콘티를 1년 동안 짰어요. 그래서 PD한테 혼났어요. 그 후 완성된 콘티를 갖고 그대로 찍어요. 애니메이션의 경우 편집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버리는 장면이 많이 없어요. 버리는 게 없다 보니 저희는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편집해서 붙여 보고, 녹음도 넣어보고, 믹싱도 해보는 등 영화 한 편을 다 만들어요. 그런 다음 극장에서 시사회를 하고 편집해요. 그때 아니면 나중에 뒤에 가서 편집을 못해요. 그리고 장면이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요. 자신이 키운 나무라서, 가지치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과수원 주인처럼 장면을 저희 손으로 버리는 건 힘들더라고요

 

관객: 두 번째 질문은 봉지라는 개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는데 잡혀가면서 사라지잖아요. 이후 장면에서 뭉치랑 밤이가 탈출할 때 철장에 갇힌 개들을 꺼내줄 때 봉지도 같이 탈출했을 거라 기대했어요. 그 모습이 나오지 않지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춘백: 의외로 봉지에 매력을 느끼는 관객이 많더라고요. 원래 이 영화가 성공하면 2탄에 등장시키려고 했어요. 봉지는 죽지 않고 탈출한 걸로 설정하려고 했고요. 그런데 2편을 만들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지뢰를 밟은 개장수 앞에 봉지가 나타나 오줌을 갈기고 가는 쿠키 영상을 만들려고 했다가 시간과 돈 때문에 못했어요.

 

오성윤: 2탄을 제작한다면 봉지를 등장시킬게요.


모은영: 이 영화는 여러 번 관람해야 할 정도로 디테일한 요소가 많아요. 맨 처음 나오는 사료에 언더독이 적혀있고, 인형도 <마당에 나온 암탉>에 나온 인형이고요. 이외에 이 영화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스터 에그가 많거든요. 이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성윤: 아까 짱아 이야기를 했는데, 짱아의 아지트가 원래 짱아가 자신과 함께 살던 가족의 집이었어요. 재개발하면서 가족이 짱아를 버렸죠. 그래서 아지트 안 장식장 뒤에 보면 짱아와 그 가족이 찍은 사진이 걸려있어요. 그 사진은 짱아와 인간 간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음을 보여줘요. 또 숨어 있는 게 뭐가 있죠? 우리 별로 숨긴 게 없는데.(관객 웃음)

 

이춘백: 관객들이 찾아내라고 넣었다기 보단 배경을 그리는 스태프나 다른 스태프들이 작업을 하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걸 많이 집어넣었어요. 한 스태프는 수입 맥주를 좋아해서 골목에 뒹구는 수입 맥주 박스를 그려 넣었어요.

 

오성윤: 에필로그에 뭉치랑 밤이가 새끼를 낳잖아요. 원래는 극 중에서 밤이가 갈대숲에서 낳는 설정이었어요. 근데 그렇게 하려면 그때부터 밤이의 캐릭터성이 줄어들고 활동 반경도 줄어들어서 불만족스러웠어요. 그래서 에필로그에 뭉치와 밤이, 그리고 새끼의 모습을 넣었어요.

 

 



모은영: 정말 아쉬운데 마무리 인사와 함께 이제 슬슬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영화는 한 번 보면 계속 생각이 나는 작품이고, 다행히 인디스페이스에서 계속 상영을 해준다고 하시니까 또 보러 오시면 좋겠고요.

 

오성윤: 개봉이 늦어져서 아쉽지만, 요즘 정세를 고려했을 때 나중에 대중 예술 교류를 통해 북한에도 저희 영화를 소개하고 싶어요. 북한에서도 <언더독>을 보면서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모은영: 관객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춘백저희 영화는 행복을 찾아가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사실 소시민들은 주어진 조건에서 살 수밖에 없죠. 그런 상황에도 행복을 꿈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반려동물을 버리지 않는 문화와 사회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은영: 박수로 오늘 이 자리 마무리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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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페이스가 관객 여러분과 함께 마련하는 값진 상영회!

개봉 1주년을 맞이하는 작품 중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투표로 선정해주세요.

지난해에 아쉽게 놓친 작품이 있다면, 혹은 스크린을 통해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주저 말고 투표해주세요:-)


자, 2019년 3월의 '인디돌잔치'의 영광은 어떤 작품에게 돌아갈까요? (두근두근)


>> 투표하기 <<




● 후보작

① 환절기 (감독 이동은 | 2018년 2월 22일 개봉)

② 바나나쏭의 기적 (감독 송우용, 지혜원 | 2018년 3월 8일 개봉)

③ 소공녀 (감독 전고운 | 2018년 3월 22일 개봉)


● 투표기간: - 3월 14일(목)

● 상영일정: 3월 26일(화) 저녁 

(관람료: 8,000원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후원회원 무료)


* 투표에 참여해주신 분들 중 5명(1인 2매)을 추첨하여 초대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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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군대의 '기억'  2019 으랏차차 독립영화 <군대>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2월 17일(일)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박경근 감독

진행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도상희 님의 글입니다.




<군대>는 한 사람 '우철'의 '군인 1'로서의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인디스페이스의 ‘2019 으랏차차 독립영화’ <군대> 상영 후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박경근 감독과 관객이 나눈 대화를 옮겼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이하 김보년): 안녕하세요, 김보년입니다. <군대>는 보고나면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인데, 감독님 모시고 이야기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경근 감독(이하 박경근): 반갑습니다. 일요일 이 시간에 이렇게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보년: 이 영화를 보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첫 번째는 이 영화에 대해서 내가 어떤 태도, 입장을 가지면 좋을지 고민했고, 두 번째로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군대 이야기 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끔찍한 기억도 있고, 저도 군대에서 좋은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돌아보기 싫은 기억이 있어요.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면 군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태도로 이야기를 해야 할까 또 고민했습니다.

먼저 저는 이 영화가 두 가지 때문에 힘들었어요. 첫 번째는 군대가 나오니까 제가 옛날에 겪었던 기억이 나서요. 저는 요즘도 악몽처럼 군대 꿈을 꾸곤 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장면들이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군대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네요.(웃음뒤로 갈수록 우철 씨가 힘들어하면서 마음이 같이 무거운, 조이는 느낌이 들어서 힘들었고요. 두 번째는 조금 더 복잡한 지점이었는데, 이건 제가 못돼서 그런 건데, 이 안의 군대가 저에게는 편해보였습니다. 당연히 카메라가 있었으니 그 영향도 있었겠지만 저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흠칫흠칫 놀랐어요. 잊었다고 생각했던 논리구조를 갖고 와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중으로 곤란한 시간을 가졌고 지금도 마음이 복잡합니다. 제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를 드렸고요. 이런 마음을 접어두고 영화를 보다 보면 '어떻게 저렇게 찍었지?' 궁금해지는 부분들이 있었을 텐데요, 제작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16분 버전의 짧은 버전도 있었고 설치미술로 전시된 적도 있었던 작품이라고 알고 있어요. 언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고 어떤 결과물을 거쳐서 지금 우리가 영화판 <군대>를 보게 된 건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박경근: 군대를 늦게 갔어요. 제대를 했을 때가 2010년 정도였는데, 그때부터 내 경험에 대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구체화 되지가 않았어요. 군대에서의 시간의 의미가 뭔지 방향이 안 잡혔어요. 시간이 지나고 2015년 정도부터 작업을 시작한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제가 찍고 싶었던 것은 의장대였어요. 의장대라는 게 그야말로 장식적인 부대이거든요. 실전에서의 의미보다는 퍼포먼스를 하고 군대의 장점을 보여주는 역할이죠.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전쟁을 치르지 않기 위해서 힘을 과시하면서 긴장감을 주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요. 제가 봤을 때 군대의 역할 중 가장 큰 부분이 힘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느꼈거든요. 과시를 통해서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전쟁이 안 나게 하는 메커니즘이 아닐까 생각을 했고요, 동시에 제가 군대에 있었을 때 모든 게 퍼포먼스고 보여주기 식으로 느껴져서 저의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이래가지고 진짜 전쟁을 치룰 수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래서 군대의 공작새라 할만한 의장대를 찍고 싶었어요그래서 1년 동안 국방부 쪽에 촬영 허가를 신청했어요. 계속 안 되다가 프레젠테이션 할 기회가 생겨서 이야기 된 것이 뭐냐면, 군대에서 만든 영상은 재미가 없으니까 재밌게 만들어달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좀 더 재밌게 만들려면 음과 양을 동시에 보여줘야지, 멋있으려고만 하면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거죠. 그 다음에 군대의 언어로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게 좀 어려웠어요. 군인의 마인드로 해야겠더라고요. 거짓말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군인의 언어로 설득시키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1년 정도 그런 과정이 있었고 그분들과 제가 서로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면서 원하는 것을 가져가는 과정이었어요.

 




김보년: 말하자면 납품을 하셔야했던 거잖아요.

 

박경근: 그래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젊은 세대의 언어로 디지털적인 감각의 영상을 만들겠다, 그리고 그걸 해외 영화제에 출품 예정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근데 제가 그들의 언어를 쓰게 되기까지 심리적인 어려움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 작업은 군대를 나쁘게 만들려는 것도 아니고 홍보하는 것도 아니고 내 입장, 감정,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