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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한강을 마주하다 '인디포럼 월례비행' <한강에게> 대담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9. 3. 13.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한강을 마주하다  인디포럼 월례비행 <한강에게>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1월 30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박근영 감독ㅣ배우 강진아, 한기윤, 최원용, 강길우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주창민 님의 글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위에 그날의 감정과 생각들이 강물처럼 밀려들어 온다. 최선을 다해 슬퍼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며 가능한 것일까. 장면 하나하나는 한 행이 되고 그 사이는 행간이 되어 결국 <한강에게>라는 영화 혹은 시가 된다. 한 편의 서정시를 읽는 것처럼 영화의 감정과 구조 그리고 영화의 의미 있는 선택들을 곱씹으며 바라보면 시를 다루는 여타 다른 영화와 다른 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꿈처럼 침투하는 시간은 결국 우리를 한강으로 데리고 왔다. 그 강을 바라보며 시를 쓰는 행위, 슬픔에 대한 자세에 대해 생각해본다.



 


정지혜 평론가(이하 정지혜): 오늘 게스트 분들이 많으셔서 옹기종기 모여서 진행해보겠습니다. 강길우 배우님께서는 조금 이따가 합류하신다고 합니다. 감독님부터 인사 부탁드립니다.

 

박근영 감독(이하 박근영): 추운 날씨에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강에게]를 만든 박근영입니다.

 

강진아 배우(이하 강진아): <한강에게> 출현한 강진아입니다.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한기윤 배우(이하 한기윤): 안녕하세요. <한강에게>에서 기윤 역할을 한 한기윤입니다. 반갑습니다.

 

최원용 배우(이하 최원용): 안녕하세요. <한강에게>에서 출판편집자 역을 연기한 최원용이라고 합니다. 저녁에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지혜: 제가 비평원고에 시가 되는 영화라고 이름을 붙여보았는데요, 감독님께서 국문과를 나오시고 시를 꽤 쓰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시에서 영화로 작업을 옮기고 병행하는 과정이 무척 궁금했고, 그 과정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도 오랜만에 시집들을 보게 됐고요. 작품에 나오는 시를 찾아보는 경험도 하게 되었어요. 일단은 감독님께 시의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여쭤보겠습니다.

 

박근영: 이 영화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들어간 영화인데요. 이십대 때의 저를 기억하는 의미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십대 때 시를 열심히 쓰던 시절이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시인들과 시들이 있었고, 그리고 사랑했던 친구들이 있었고, 한강을 다니면서 놀기도 하고 거기에서 큰 상처를 입기도하고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품고 있다가 3년 전 쯤에 결심을 하게 돼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정지혜: 시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종종 봤고, 특히 독립영화에서는 시를 읊고 시를 짓는 주인공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이 영화는 시를 쓴 사람과 그 사람이 쓰는 시를 알게 되는 과정이지만 결정적인 시 쓰기 장면은 오히려 보여주지 않는데요. 같은 의미로 큰 상처, 비극적인 사고, 혹은 사건이랄 만한 순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그 앞뒤의 시간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그게 플래시백의 방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병렬의 구조로 둔다는 점에서 영화가 시적이라고 느껴졌어요

 

박근영: 일단은 단순히 시인을 다루고 시가 나오는 것 이상으로 영화 자체가 형식적으로 시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장면 장면이 시의 한 행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장면과 장면 사이가 행간처럼 느껴져서 행간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랐고요. 서사나 내러티브보다는 감정과 감정, 장면과 장면 사이의 느낌이 연결이 되면서 어떤 인상이 형성되는 영화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습니다. 어떤 힘든 일을 겪을 때 우리가 그 기억을 지금부터 떠올려야지, 하고 떠올리는 게 아니라 기억이 문득문득 침입해오잖아요. 진아의 일상 가운데 침입해오는 진아의 기억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파편들, 단상들을 생각하면서 장면들을 교차시켜 나갔던 거 같아요.

 

정지혜: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 이미 배우 분들이 합류를 결정을 하시고, 이 작업을 위해서 긴 시간동안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시 수업도 들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경험들을 오늘 얘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영화에 등장하는 기도라는 시는 진아 배우님이 직접 쓰신 건가요?

 

강진아: 영화 앞부분의 낭독 장면에서는 다시 봄이 올 거예요라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분이 쓴 수기집 일부를 읽었고요. 실제로 작가 분들이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416분에 세월호 희생자분들을 떠올리며 시를 직접 쓰거나 골라 와서 낭독하는 낭독회가 있는데요. 그 낭독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시를 처음으로 써봤고, 그 시는 영화에는 담기지 않았고 낭독회 책자에는 담겨 있습니다. 영화 참여하면서 감독님 덕분에 이영주 시인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어요. 시를 써야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시를 쓰기 위해 모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저한테는 흥미로웠거든요. 그리고 극중에서 강의를 할 때 학생들한테 이야기하던 내용들은 이영주 시인께서 수업시간에서 하셨던 말씀을 참고해서 제 방식으로 이야기 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지혜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시 한강에게는 감독님의 시이기도 하고 극중 진아의 시이자 사실 강진아 배우님의 시이기도 하잖아요. 이 영화 자체가 배우 분들, 감독님, 극중 인물들이 시를 쓰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떻게 이 과정을을 준비하셨는지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근영: 일단은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상황을 연출해두고 촬영에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담아내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배우들도 저도 현장에서 유연하게 감각하려면 일단 강진아 배우에게는 시인으로서의 몰입도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직접 시도 써보고 시에 대해 공부도 해보고 시인 분들도 많이 만났는데, 그럴 때 강진아 배우와 함께 하면서 시인들이 쓰는 말투나 어휘를 눈 여겨보며 신경 쓴 것 같습니다.

 




정지혜: 강길우 배우님이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인사 부탁드릴게요.

 

강길우 배우(이하 강길우): <한강에게>에서 길우 역할을 한 강길우 입니다. 앞서 다른 영화 상영이 있어서요. GV를 하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반갑습니다.

 

정지혜다른 분들은 감독님의 전작에서 같이 작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강길우 배우님은 이번에 처음 만나셨잖아요. 어떻게 이 작업에 합류하게 되셨는지 여쭤볼게요.

 

강길우: 그 때 제가 연극작품 때문에 극장에 있었어요. 무대 셋업을 하고 있는 날이었는데, 문자로 아는 분이 영화를 찍는데 너를 소개해도 되겠느냐고 연락이 왔어요. 알겠다, 고맙다고 해서 소개받아 감독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소개해주신 분이 강진아 배우님입니다.

 

박근영: 만나서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냥 좋았어요. 느낌이나 인상, 분위기나 말하는 모습이 다 좋고 잘 맞을 거 같아서 같이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거 같아요.

 

정지혜: 한기윤 배우님은 굉장히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기윤이라는 역할이 쉽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한기윤: 일단 시나리오에 대사 자체가 명시되어 있지 않았어요. 오늘 오랜만에 보면서 기윤이라는 역할이 제가 보아도 외로워 보였거든요. 눈치도 없고 행동이나 말도 계속 모호하고. 연기를 할 때도 모호했던 거 같아요.

 

정지혜: 시나리오 상에서도 대사가 없었다는 것은 기윤이라는 역할만 유독 그랬던 건가요, 아니면 전체적인 감독님의 연출방식인가요?

 

박근영일단은 시나리오의 형태가 많이 변모했어요. 처음에는 소설 쓰듯이 쭉 썼고, 그 다음에는 대사가 있는 시나리오로도 쭉 썼고, 그러다가 촬영을 준비하면서 대사들을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정리했었어요. 그 사이 사이에 배우들의 즉흥연기가 들어가기도 하고 촬영하면서 이 대사는 없는 게 좋겠다, 혹은 이런 대사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식의 얘기를 하면서 만들갔습니다. 대사를 다 지우기도 하고 처음처럼 남겨놓기도 하고 여러 방식이 혼재돼 있었거든요. 싸우는 장면은 처음에는 대사가 있다가 나중에 촬영할 때 다 지우고 간 장면이라 어떻게 기윤을 퇴장시킬까 고민을 꽤 많이 했었어요. 기윤의 성격 자체가 쭈뼛대고 머뭇거리는 성격이다 보니깐 이렇게 담기게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퇴장하는 게 재밌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지혜: 원용 배우님은 출판사 편집자 역할을 하셨어요. 저도 출판사의 언저리에 있었던 적도 있는데 처음에는 정말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예전에 본 영화의 주인공이셔서 깜짝 놀랐어요. 적역이었던 거 같아요.


최원용: 저는 옆에 있는 주연배우들처럼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은데 정보를 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조금은 다르면서 어딘가에 있을법한, 또 그렇다고 상투적이지 않은 그런 캐릭터로 보여지기를 원했어요. 영상이나 매체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많이 참고했어요. 특히 박준 시인 분을 중점으로 해서 인물을 다듬어 나갔구요.

 

박근영: 기본적인 설정이 편집자면서 시인이라는 설정이었어요. 박준 시인이 실제로 편집일 하면서 시 쓰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박준 시인의 인터뷰나 동영상 같은 것을 많이 참고했고요. 그러는 와중에 이제 캐릭터를 만들면서 좀 소심하고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성격이 진아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정지혜: 영화 타이틀이 뜨기 전에 크게 두 개의 장면이 가이드처럼 제시됐던 거 같아요. 하나는 세월호 낭독회와 관련된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누워있는 진아의 모습인데요. 저는 그 두 장면이 내내 영화를 끌고 가는 이미지 같았어요. 그러면서 시와 잠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은유적으로 보면 닮아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감독님이 생각하는 시와 잠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박근영: 감정적으로 굉장히 괴로울 때 그 시간을 견디는 게 힘들어서 몇 달이고 잠만 자던 때가 있었어요. 영화에서도 감정적으로 진아의 상태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1차적으로 있었고요. 그런 와중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기억들이 침입해오는 순간들을 영화가 다루고 있는데, 잠을 자고 꿈을 꾸는 행위가 일종의 무의식 발현이잖아요. 내가 의도한 회상이 아닌 무의식적인. 그런 부분들이 이 영화의 형식과 감정의 흐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잠자는 장면과 과거 장면이 있을 때 이것이 마치 꿈같기도 하고 단순한 회상처럼 보이지 않고 좀 더 묘한 느낌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정지혜: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님과 <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님이 등장하기도 해요. 전고운 감독님이 그렇게 연기를 잘하실 줄 몰랐어요. 굉장히 긴 테이크로 찍은 인상적인 장면인데요. 감정적으로 진아에게 굉장히 중요했던 장면인 거 같아요. 감독님이 다큐와 극을 넘나드는 작업방식에 흥미에 있다고 하시는데, 그 장면을 예로 들어서 어떤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었는지 궁금합니다.

 

박근영일단은 처음부터 전고운 감독님이 그 장면을 찍기로 한 것은 아니었어요. 원래 시나리오 상에는 선배 작가를 만난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촬영을 진행하는 도중에 낭독회 장면을 찍을 때 전고운 감독님과 이요섭 감독님, 권오관 감독님이 와주셨거든요.

 

정지혜: 안슬기 감독님도 계셨던 거죠?

 

박근영: , 안슬기 감독님은 처음부터 캐스팅한 거였어요. 그러던 와중에 원래 선배 작가로 등장하시기로 한 분이 출연이 어려워졌고, 전고운 감독님이 흔쾌히 하겠다고 해주셨어요. 집에 놀러 와서 찍자고 하셔서 실제로 차돌박이를 사가지고 놀러갔어요. 요리 해먹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찍었는데요. 일단 자연스럽게 찍으려고 했고, 두 분을 만나서 같이 막걸리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데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게 될 만큼 그 시간이 좋았거든요. 혼자 영화를 찍다보면 연출하는 입장에서 고달파지고 외로워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걸 너무 잘 이해해주시는 거예요. 영화 대사처럼 전고운 감독님이 연민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제가 한참 넋두리하다가 , 맞다. 촬영해야지 이제.’ 하면서 촬영을 시작했어요. 영화에서 쓰인 것은 한 10분 정도인데 원래는 한 테이크 당 15분 정도 됐어요. 한 테이크 찍고 조금 얘기 나누고 다시 찍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그러면서 특별히 대사를 지정하지는 않고 테이크 마다 주제만 정해놓고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이요섭 감독님께 신호를 드리면 나가고, 둘이 남았을 때 진아의 현재 상태에 대한 대화가 오가는 식으로 하자는 정도만 작전을 세우고 촬영을 했습니다. 그 장면의 긴 대화들이 사실 영화 상으로 전부 필요한 얘기는 아닐 수 있죠. 그렇지만 20,30대 때 내가 지나온 시절의 분위기, 공기 그리고 그 당시의 생각이 많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일종의 기록물이라 생각하면서 만든 측면도 있어서요. 당시에 결혼에 대한 생각들이나 우리가 겪은 시대의 아픔에 대한 감정들이 녹아져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부분을 담기 위해 노력했어요.

 




정지혜: 진아 배우님께도 여쭤볼게요. 그러한 방식의 작업이 실제 연기를 하시는 배우의 입장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배우에겐 어떤 경험이고 어떤 감각으로 다가오는지 궁금합니다.

 

강진아: 할 얘기가 많은 질문인거 같아요. 박근영 감독님과 단편 작업을 할 때 제 기억에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철저히 쓰셨던 분이였거든요. 그러다가 현장에서 겪는 즉흥적인 사건들로 인해 시나리오를 뒤집게 되는 경험도 하시고 <한강에게>까지 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시나리오에 대사가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큰일났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박근영 감독님이 해왔던 방식과 달랐고 그래서 재밌었고 호기심도 있었던 거 같아요. ‘, 나도 독립장편 주인공이다.’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 편으론 어려워서 전고운 감독님과 이요섭 감독님이 제발 나왔으면 좋겠다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어요. 저하고 이미 관계가 많이 쌓여져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영화에 나오는 방식으로 자주 놀거든요. 이요섭 감독님이 본인의 연기가 맘에 안 든다고 하시긴 했지만 제가 보긴 연기도 너무 좋고 일적인 면에선 둘다 프로예요. 워낙 일을 많이 해봤던 사람들이라 흐름상의 대사도 잘 파악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는 저보다도 훨씬 적극적으로 임해주셨고 그래서 제가 오히려 기대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어요. 그 장면에서 내가 진아로서 이 흐름에서 어떻게 해야 될까 어려워 하던 부분들을 감독님이 잘 봐주셨어요. 어려움도 있었지만 자유로움도 있었고 이런 현장은 아마 없을 거 같아요. 자유롭게 해보고 그 안에서 조절을 해주는 이상적인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이걸 대본이 철저히 쓰여 있는 작업에서도 접목시킬 수 있게 되더라고요. 연기를 할 때 가장 경계하는 게 배우가 대사를 친 후 다음에 어떤 대사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읽히면 안 되거든요. 새 작품들을 만날 때 마다 이 대사가 없을 때 진짜 나는 어떤 말을 하려고 할까라는 고민들을 하면서 저한테 큰 변화를 준 작업이었어요.

 

박근영: <사일런트 보이>는 배우가 강진아 배우밖에 없었어요. 다 비전공 배우들이었고 비전공 배우들한테는 시나리오를 안 드렸거든요. 근데 강진아 배우한테는 시나리오를 보여드렸죠. 그 시나리오에는 다 대사가 쓰여 있었는데, 그래서 강진아 배우가 촬영을 위해 순창에 내려왔을 때 제가 대사를 제발 외우지 말고 상황만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뒤에서 다 외우고 있더라고요. <사일런트 보이>를 하고나서 이런 것들을 장편으로 배우들과 함께 해보면 참 재밌겠다 싶었고, 대사가 있으면 내가 아무리 외우지 말라 해도 배우들이 외우니 대사를 지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였어요.

 

정지혜: 이런 감독님이 배우님들 입장에서는 얄미울 때도 있을 거 같아요.

 

박근영: 배우들한테 어필했던 지점은 저희가 굉장히 제약이 많고 소규모의 시스템이었지만 우리가 시간은 많다는 거였어요. 우리끼리만 모여서 찍으니까 회차가 아무리 늘어나도 예산이 크게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시간을 맞춰나갈 수 있고 한 장면을 찍어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찍을 수 있다고고 어필을 했습니다. 그게 어필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도 그렇게 했던 거 같아요.

 

 



관객: 영화 잘 봤고요. 질문이 두 개 인데요. 첫 번째 질문은 감독님께 드리는 질문인데, 극 중에서 길우가 혼수상태잖아요. 근데 영화자체가 상실과 그 상실을 느끼고 있는 진아를 보여주는데 혼수상태라는 것이 저한테는 완전한 상실도 아니고 상실을 준비하는 애매한 상태라고 보였어요. 왜 그렇게 설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두 번째 질문은 배우님들에게 드리고 싶은데, 영화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이 모두 리듬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캐릭터 마다 색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듬감 같은 것들이 비슷하게 느껴졌는데 실제로도 배우 분들이 연기를 하시면서 느끼셨는지, 혹은 감독님의 영향인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근영: 일단 두 번째 질문부터 제가 먼저 말씀 드리면, 가끔 배우들한테 우리가 좀 닮았다고 말했거든요. 제가 조금 차분한 사람을 좋아해요. 아까 강길우 배우와 이야기하다가 섭외를 결정했다고 했는데, 차분하더라고요. 그런 게 좋았던 거예요. 그러다보니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으신 측면이 있는 거 같습니다.

혼수상태를 설정한 이유는, 분명히 말하자면 상실 직전의 시간과 상실을 겪은 이후의 시간이 모두 있을 텐데, 진아에게, 또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가장 심정적으로 혼란스러운 때가 이미 예감하고 있지만 그 시간을 기다려야 되는 때더라고요. 그 시간에는 오히려 이 감정이 뭘까 싶더라고요. 죄책감과 자책감, 그 와중에 이제 뭔가 이별을 준비해야하는 슬픔과 그러면서도 주변 사람들은 벌써부터 극복과 치유를 얘기하는 상황. 나는 엄청 괴로운데 슬픔을 극복하려는 마음 자체가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슬퍼하고 싶은데 그건 또 무엇인지 이런 생각들을 그 시간 동안 했어요. 제일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했던 시간들이기도 해서 이런 시간이 영화에 담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정지혜: 배우님들도 말씀 부탁드릴게요. 서로 닮은 듯한 기분이 드셨나요?

 

강길우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듣고 보니까 닮은 거 같기도 해요. 감독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캐스팅을 하다 보면 본인과 비슷한 사람들을 모으게 되는 거 같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저희 다 차분한 편이긴 한 거 같아요.

 

강진아제가 좀 덜 차분하고 기윤 배우님은 많이 차분하시고, 차분 그 자체이시고. 원용 배우님은 차분한데 유머가 있는 스타일이시고. 저희는 다 차분합니다.

 

최원용: 저도 그 말에 동의하는데요. 영화에서 같은 농담을 하더라도 등장할 때 마다 조금 색깔이 달라 보였으면 좋겠어서 처음에는 약간 소심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가 두 번째는 오지랖 넓은 모습을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뒤끝이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끝내려고 했어요. 근데 그런 사람이 하는 농담이 가벼울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농담을 하지만 의미심장한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농담도 좀 진지하고 차분하고 조곤조곤하게 낮은 톤으로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근영: 사실 제 어릴 때 친구들이랑 오랜 지인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제일 많이 하는 소리가 영화에 나온 사람이 다 너 같아라는 말이에요.

 

강진아: 영화제 뒷풀이에서도 가장 구석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저희예요.

 

정지혜그래도 끝까지 남아계셨던 거 아니에요?

 

박근영: , 맞아요. 사실 다 쫄보들이고 구석에서 밤새도록 우리끼리 얘기했습니다.

 




관객: 영화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는데요. 아무래도 전고은 감독님과 이요섭 감독님의 장면이 연기였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좀 충격적이었는데, 그런 것처럼 다큐처럼 배우님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현실과 극을 분간할 수 없는, 따로 분리할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한 영화였습니다. 이렇게 배우님의 이름을 배역의 이름으로 차용하는 영화를 볼 때마다 보통 감독님께 왜 배우의 이름과 역할의 이름을 같게 쓰셨는지 여쭈어 보았는데 한편으로는 배우님들은 원래 이름과 배역의 이름이 같을 때 어떻게 분리하고자 노력을 하실까 궁금하더라고요. 또 물 흐르듯이 합을 맞추기 위해서 조화가 중요했을텐데 한편으로는 감독님의 흐름에 반하여 고집을 드러내게 될 때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박근영 일단은 제가 픽션과 다큐가 혼재되는,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은 것들이 서로 간섭하면서 생기는 느낌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잖아요. 두 감독님들이 현재 본인의 경험이 녹아져있는 얘기를 하는 와중에 명확히 지금 연기 중이란 것을 인식하는 것처럼, 낭독회에서 강진아 배우도 실제로 낭독 중이지만 배우로서 카메라가 있다는 것도 본인도 알고 있고 연기적으로도 분명히 의식하는 지점이 생겼을 테죠. 그러면 영화의 형식적으로나 인상적으로 경계가 모호해지지만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에서도 연기와 실재가 모호해지는 지점이 있는 거죠. 그런 순간이 영화 속에 담길 때 그 묘한 느낌이 매번 저를 사로잡는 거 같아요. 그에 대해 유연하게 반응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려면 결국 본인의 이름을 써야하죠. 강길우 배우님 같은 경우에도 촬영 당시에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그 공연의 리허설을 가서 찍었거든요. 그때도 실제 강길우라는 배우로 연극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촬영을 해서 극영화에 쓴 거죠. 연기에 있어서 모호해지는 지점에 대한 생각은 배우 분들에게 들어보겠습니다.

 

강진아: 이렇게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 늘 경직되곤 했는데 지금 진짜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얘기를 듣다보니 내가 이렇게 해왔구나, 하고 정리하게 되어서 재밌는데요.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이름보다는 이 인물의 행동이나 마음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느껴지면 충분한 거 같거든요. 그런 순간들이 자연스러웠던 현장이었어요. 자연스러운 현장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게 뭔지 명확하게는 모르지만 정말 자연스러운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사람들 눈에 띄고 싶어할 때 말고는 제 이름을 딱히 앞세우고 살았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 나는 강진아 시인인데.’라는 마음보다 나는 지금 낭독회를 진행해야 하고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 거구나. 근데 나는 이런 걸 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그게 가장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이름을 잊게 되는 거 같아요.

 

강길우저는 초반에 제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되게 불편했어요. 극중에서는 내가 아닌데 내 이름을 부르면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경계를 하면서 참여했던 거 같아요. 이름은 나지만 내가 아니다 생각하면서. 근데 촬영을 하다보다가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진 거죠. 자연스러워졌어요. 제 이름을 부르고 각자의 진짜 이름을 부르는 게 언젠가부터 오히려 되게 편하다는 느낌까지 들었어요. 그전에 감독님이 저희 다 불러서 한강에서 놀고 이랬던 시간이 도움이 됐던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영화에서 제 이름으로 저의 모습을 써버리면 어떻게 보면 끝나는 거잖아요. 다시는 나로 연기할 수 없죠, 겹치니까요. 그래서 되게 경계를 했던 거 같은데 자연스럽게 고민이 없어졌던 것 같고 결과물을 봤을 때는 영화 속 길우가 나도 아닌 것 같고 내가 아닌 것도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결론적으로는 극 중 인물을 잘 보여주었던 거 같습니다.


한기윤: 전 잘 모르겠어요. 지금도 잘 모르겠고 촬영하는 당시에도 잘 몰랐던 거 같고요. 극중 기윤을 연기하는 건지 실제 나를 연기를 하고 있는 건지 굉장히 모호했고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방식과는 달랐고 영화를 보면서도 예상이 잘 안되더라고요.

 

최원용저는 이름을 쓰지 않고 출판편집자라는 배역으로 연기를 했었는데요. 앞서 길우 배우님 말씀에 매우 동감을 해요. 자기가 스크린에 투영되는 순간부터는 다음에 이 카드를 쓸 수 없다는 문제가 있으니까요. 배우로서 내가 나를 연기하면 자연스럽고 리얼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일이고, 또 창작을 하는 예술가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요령을 피우게 된다고 생각을 해요. 저 스스로 자의식을 놓는 순간 최원용이 튀어나오니깐 마음속으로 항상 중심을 잡고 연기를 했던 기억이 나요.

 

박근영: 또 트러블에 대한 질문을 주셨는데 육체적으로 힘든 날은 몇 번 있었던 거 같아요. 특히 밤 촬영하는 날. 야간 촬영이 많지는 않았는데 마지막에 싸우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되게 육체적으로 힘들었거든요. 만족스러운 오케이 컷이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연기에 대한 의견이나 디렉션에 대한 의견으로 인한 충돌은 사실 없었어요. 시간은 많으니깐 배우들은 마음껏 연기적으로 시도해보고 저는 그걸 본 뒤 제 의견을 반영하기도 하면서 서로 같이 춤추듯이 만들었던 거 같아요. 하고싶은 것 다 해본 뒤에 결이 안 맞거나 과한 부분은 편집할 때 결정하면 되니까 촬영하는 시간은 가능성의 시간이라고 생각을 했고요. 또 현장에서 무지개가 비치고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추고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다 잡아내기 위해서 늘 열린 마음으로 작업을 하려고 애를 썼던 거 같아요.

 




정지혜: 이 영화는 결국 시와 잠을 통과하여 한강을 보기까지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과거의 한강과 현재의 한강을 그리는 방식이 감독님이 생각하는 과거와 현재 사이 큰 사건의 공백을 바라보는 방식과도 이어지는 거 같아요. 더불어 마지막 질문으로 이 영화의 엔딩에서 진아가 길 위로 가서 돌아간다는 점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근영: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나서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 진아가 한강을 보면 어떤 감정들일까. 그 질문을 향해서 가는 영화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진아가 한강 앞에 다시 서기까지의 시간이요. 엔딩은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그런 장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아픔을 어떻게 기억하고 살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진아가 이 슬픔을 어떻게 기억하고 살게 될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흘러나오는 시가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시인 것처럼 영화도 그렇게 진아가 아픔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기억해 나갈지를 생각해보면서 여운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지혜: 그러면 인사를 드리면서 이 시간 마무리 하겠습니다. 원형 배우님부터 인사 부탁드립니다.

 

최원용: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또 저희가 말을 잘했는지 모르겠네요. 동문서답을 한 것 같긴 한데 잘 봐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여기저기 입소문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기윤: 재밌게 봐주셨을 거라고 믿고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강길우늦은 시간에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영화는 4월 달에 개봉을 합니다. 오래 기다렸는데 개봉 전에 또 개봉하면 보러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강진아: 요즘에 제가 쉴 때도 잘 못 쉰다고 느끼면서 살고 있어요. 근데 이 영화가 어딘가에 머물기도 하고 또 시를 이야기하는, 시와 닮아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런 시간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오늘 와주셔서 진짜 감사드립니다.

 

박근영: 와주셔서 감사하구요. 4월 달에 개봉하는데요. 벚꽃피고 벚꽃 떨어질 때 그 기분에 취해서 관객 분들과 얘기를 나누면 좋을 거 같아요.

 

정지혜: 신작 만드시는 게 있나요?

 

박근영: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는데 열심히 박차를 가해보려고요. <정말 먼 곳>이라는 영화인데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전주영화제 때 열심히 뛰어볼 거 같아요.

 

정지혜: 이 영화와 결이 좀 비슷한가요?

 

박근영: 결이 비슷한 지점도 있고 새로운 도전처럼 생각하는 지점도 있어요. 열심히 해봐야겠죠.

 

정지혜: 오늘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 월례비행은 다음 달에 또 흥미로운 작품과 함께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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