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왕> 한줄 관람평
김윤정 | 영화 속 모든 것들의 국경을 넘나드는, 모험이자 여행
오윤주 | 물리적인 국경 너머 현실과 무의식을 오가는 꿈과 환상의 세계
송은지 | 만나고 흩어지길 반복하며 부유하는 국경의 유령들
성혜미 | 그래서 나는 꿈을 조각내 영화를 쓴다
최승현 | 시공간을 종횡무진하면서 유령이라는 희미한 힘을 좇다
승문보 | ‘우연’이 가진 신비로운 힘이 만들어낸 나만의 영화
김정은 |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호하지만 풍부한 감정들
이성빈 | 처음 본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는 내 발이 정하는 법이다
이성현 |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전혀 당연하지 않게 될 때
<국경의 왕> 리뷰: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당연하지 않게 될 때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성현 님의 글입니다.
전작 <라오스>(2014)에 이어 임정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국경의 왕>에서는 영화를 공부했던 유진(김새벽)과 동철(조현철)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도시를 여행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인물들의 좌충우돌 여정을 담은 로드무비, 혹은 단순한 드라마로 칭하기엔 장르가 마땅히 품어야 할 서사가 빈약하다. 사실 이 영화의 방점은 서사를 지연시키는 틈새에서 공기처럼 작동하는 이미지이자 어떤 느낌에 있다. 영화의 제목이 '국경의 왕'이지만, 과연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경계에 군주가 존립할 수 있는 것인가. 제목에 결합된 낱말들의 모순, 그 짧은 인상에서부터 출발한 영화는 관객과의 첫 대면에서 불어넣은 어딘가 낯설고 괴이한 느낌을 끝까지 이어간다.
영화는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전혀 당연하지 않게 될 때, 동요하는 우리의 시선에 주목한 듯하다. 그런 면에서 <국경의 왕>은 관객의 시선을 하나의 역할로 염두해두고 설계한 프레임의 실현으로 느껴지는데, 그 프레임 속 한 데 병치된 것들-우중충한 잿빛 하늘과 붉은 꽃, 고전 양식의 건축물, 마약사범과 게임 '포켓몬 GO', 죽음, 술과 음식, 유령-과 더불어 1인 2역의 배우들은 '국경'의 '왕'의 확장된 이미지로 다가온다. 일상 언어가 갖지 않은 리듬과 역설로 조합된 존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협화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즉 영화는 이국적인 풍경 위에 낯선 상황들을 중첩하고 평범한 일상을 투영한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떤 정보도 흡수하지 않은' 상태의 관객의 시선을 통해 구현되는 생경함을 포착하려 한 것이다.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발화되는지 마저 불분명한 서사를 따라가려 애쓰는 관객들은 불친절한데다 괴랄하기까지 한 상황들의 연쇄가 실로 불편해진다. 갑작스러운 원식(정혁기)의 실명과 세르게이(박진수)의 죽음에서 불편함에 대한 영화의 의도는 확실해지고 인물들의 비극이 코미디로 느껴지게 할 만큼 과장된 연출은 이를 증폭시킨다. 이런 껄끄러움은 극을 현실의 환각처럼 느끼도록 했던 사실주의 연극을 반대하고 ‘연극은 연극임’을 분명이 하고자한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외침을 연상시킨다. 막을 걷어 올려 조명과 세트가 모두 보이는 극장에서처럼, 관객들은 극 중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극 속에 함몰되지 않고 낯설게 보기 1를 실현하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반추하고 당연하게 여겨오던 일상의 풍경에 대해서 다시금 질문하도록 요구한다.
물론 그러한 요구에 순순히 응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관객보다 앞서 영화를 완성해나간 배우들은 촬영 현장에서 순간순간 경험한 ‘낯섦’을 끌어안고 자신만의 화두로 가져와 영화 속에 풀어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결국 <국경의 왕>은 영화를 만드는 영화다. 언뜻 보기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그 결과물로 상정된 이야기'의 2막 구조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지만, 서사는 단 한 번도 둘 사이의 공극을 열어주지 않는다. 도리어 탄탄한 폐곡선을 그리며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와 현실 사이의 무한 굴레 속에서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또 어디까지가 감독의 디렉션인지를 무수히 더듬고 가늠하게 만들 뿐이다. 그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생산되는 답이 없는 물음들은 감독이 관객에게 선물한 나름의 즐거움일 것이다.
- 낯설게 보기 (소격효과) : 극작가 브레히트가 말한 이론으로, 극적 환영을 깨뜨림으로써 무대 위의 사건에 대한 낯선 태도를 갖게 하는 것. 관객이 허구적 사건에 대해 거리감을 갖게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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