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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내가 사는 세상>: 시대의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by indiespace_한솔 2019. 3. 19.






 <내가 사는 세상>  한줄 관람평


김윤정 | 당연한 것을 말하면 당돌해지는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하여

성혜미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은 변했고, 변했으면 하는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최승현 | 시대의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승문보 |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다

송은지 계약서 쓰자는 말에 화가 나고, 욕을 먹는 우리가 사는 세상

김정은 만성적인 분노와 비관 속에 버텨 내는, 내가 사는 부당한 세상

이성현 때로는 '우리'보다 '내가' 사는 세상임을 잊지 않기





 <내가 사는 세상>  리뷰: 시대의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승현 님의 글입니다. 





영화와 사회는 맞닿아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영화는 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으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때로는 카메라의 고요한 시선으로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도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리얼리즘 영화라 부른다. 리얼리즘 영화는 고통받는 인간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인간과 사회를 향해 카메라를 꼿꼿이 세움으로써 우리 삶에 잔재하는 찌꺼기들을 망설임 없이 영화에 담아낸다. 그러나 영화는 무력하다. 사회는 영화보다 거대하다. 영화는 사회를 반영하지만 사회는 영화를 반영하지 않는다. 영화는 거대한 성벽 앞에서 무릎 꿇고 잠잠해지기 마련이다. 영화가 인간을 구원하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이며,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란으로 바위 치는 영화들이 있다. 특히 자본에 구속받지 않는 독립영화에서는 리얼리즘이 주된 축이다.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접목해 소확행을 제시한 <소공녀>부터 공시생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월>까지. 최근 한국 독립영화의 경향은 청춘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다. 여기엔 <내가 사는 세상>도 포함된다. 전태일 재단이 지원한 이 영화는 예술계 종사자들이 처한 상황과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에 초점을 둔다. 영화를 만든 최창환 감독은 전작에서도 노동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젊은 예술가 커플 민규(곽민규)와 시은(김시은)은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한다. 민규는 퀵서비스 일과 클럽 DJ 일을 병행한다. 그는 퀵서비스 업체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해 월급에 구멍이 나는 상황이다. “다 이유가 있겠지라며 월급 문제를 넘기려는 그는 사장의 영악한 속셈을 눈치채고 결국 사장에게 근로계약서를 부탁하지만, 사장은 그를 단칼에 잘라버린다. 시은은 미술학원 시간강사다. 그녀는 학원에서 별도 수당 없이 업무 외 일을 도맡으며, 클럽을 운영하는 민규의 친한 형으로부터 공연 포스터를 무료로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두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욕지거리뿐이다. ‘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의 목소리가 비정상적인 요구로 들리는 법이다. “우리가 남이가따위의 말로 의리를 내세우며 노동을 착취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노력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길 기대하지만, 우리의 노력은 누군가에게 종속되어서 남을 위한 희생에 머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보수 없는 수고를 강요하는 문화는 한국 사회에 만연하다.

 




<내가 사는 세상>은 노동에 관한 영화지만 무겁고 지루한 영화는 아니다. 흑백영화인 데다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색채가 영화에 깔린 것은 사실이지만 곳곳에 존재하는 청춘의 얼굴과 몸짓들은 영화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이 영화는 노동영화이면서 청춘영화이기도 하다. 민규와 시은의 아슬아슬한 연애와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민규의 처절한 일상은 페이소스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계급 질서와 친분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물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 상황에서는 영화적 긴장감이 은근히 배어 나온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67분이지만 짧은 만큼 흡인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편안한 문법으로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영화다.





영화 속 등장하는 불꽃놀이 장면에서는 아름다움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회사에서 잘린 민규는 같이 일하던 친구와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맥주를 들이킨다. 어느새 맥주캔 대여섯 개를 찌그러뜨린 두 사람은 술김에 불꽃놀이를 시작한다. 손끝에서 불꽃이 터져 나오자 두 사람은 소년처럼 환하게 웃는다. 아스팔트만 바라보던 두 사람은 처음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이때 영화는 슬로우 모션으로 펼쳐진다. 밤하늘, 불꽃이 천천히 흩어진다. 영화는 악력을 가하는 듯, 불꽃놀이 장면을 붙잡음으로써 그들의 지친 하루에 작은 위로를 건네려는 듯하다. 영화의 윤리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아름다움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유는 아름다움이 곧 소멸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시대의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삶의 아름다움은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다. 불꽃은 어둠을 조금 비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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