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마디로 기억 될 영화들: 2015년 하반기 독립영화 명대사 결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필름시대사랑>, <울보 권투부>, <거짓말>




*관객기자단 [인디즈]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어느덧 12월이다. 2015년을 갈무리할 일 년의 마지막 달이 성큼 다가왔다. 올 한 해도 개성 강한 독립 영화들의 등장이 줄을 이었다. 인디스페이스 역시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울고, 또 같이 웃으며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의 매력 중 하나는 단연 심금을 울리고 가슴을 콕콕 찌르는 강렬한 말 한 마디일 것이다. 2015년 하반기, 인디스페이스와 함께 한 영화들 중 네 편을 골라 오래 기억될 명대사들을 정리해봤다.



1. “우린 다 그냥 할 만큼만 하고 사는 거예요. 뭘 더 원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감독 홍상수) 



러닝 타임 내내 진실성이 의심되었던 함춘수(정재영 분)의 이 말 한 마디로, 관객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그의 진심을 엿보게 된다. 자꾸만 해석과 부연 설명을 바라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함춘수, 그리고 홍상수의 통쾌한 이 대사가 자꾸만 귀에 맴도는 건 우리 역시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 세상에 조금 지쳐있기 때문이 아닐까. 




2. “사랑을 믿으세요?”  <필름시대사랑> (감독 장률) 


영화 제작 현장에서 감독의 촬영 방식에 불만을 품고 현장을 뛰쳐나온 조명부 퍼스트(박해일 분)가 마지막 장면에서 옆 자리에 앉은 낯선 노인(남명렬 분)에게 건네는 말이다. 영화, 그리고 필름에 대한 사랑을 담은 장률 감독의 <필름시대사랑>에서 필름과 사랑은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사라져가는 필름의 가치와 당도할 곳을 잃은 사랑에 대한 여전한 믿음. 이 둘을 아우르는 이 마지막 말 한 마디야말로 영화 속 최고의 한 마디일 것이다. 




3. “마음으로 지지 마라!”  <울보 권투부> (감독 이일하) 


재일동포 고등학교 권투부의 사연을 담은 <울보 권투부> 중, 링 위에 올라가기 직전 제자들을 격려하는 코치 선생님의 말이다. 제자들이 승부의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단련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선생님의 응원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특성상 연출된 대사가 아니라는 점이 이 말 한 마디를 더욱 진실하게 만든다.





4. “그러면 넌? 너는 어디까지가 거짓말인데!”  <거짓말> (감독 김동명



끊임없이 거짓말로 자신을 숨겨온 아영(김꽃비 분)의 광기가 극에 달하는 순간, 애인 태호(전신환 분)는 말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인데!” 그런 그에게 아영은 답한다. “그러면 넌? 너는 어디까지가 거짓말인데!” 자신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아영은 조소를 날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를 힐난하는 당신들은 얼마나 깨끗한 사람들이냐고, 그리고 얼마나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명확하기에 떳떳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영화의 가치를 높이는 요소들은 많다. 영화의 제목부터 작품의 정조를 여실히 전달해주는 음악, 배우들의 열연 등 그 수를 전부 헤아리려면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만큼 영화의 매력은 끝이 없다. 단언컨대, 그 중에서도 대사는 이 모든 것을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2015년 한 해도 좋은 영화들, 좋은 대사들과 함께 해서 행복한 일 년이었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나쁜 나라>줄 관람평

차아름 | 세월이 멈춰버린 그 날의 뼈아픈 기록

김수빈 | 무시하고 왜곡하고 기만하는 나쁜 나라의 초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심지원 | 우리는 아직 한참 멀었다

추병진 |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슬픔의 기록

김가영 | 가슴 아픈 그날의 기억을 위한 기록




<나쁜 나라>리뷰

<나쁜 나라> : 가슴 아픈 그날의 기억을 위한 기록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가영 님의 글입니다.


벌써 일년 반이 넘었다.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그 많은 아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배를 버리고 간 선장, 사태의 심각성을 일찍 파악하지 못한 국가, 그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부모들. 사고 이후 이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랬기에 힘 없는 엄마 아빠들이 자식 잃은 슬픔을 껴안은 채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단지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가에 대한 진실이었다. 하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사고의 진상규명 투쟁이 이제는 이 사건이 시간 속에 묻히길 원하는 이들과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영화 <나쁜 나라>는 이처럼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자, 기억하려는 자와 기억을 덮으려는 자의 첨예한 갈등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특별조사위원회에서 파견된 국회의원들이 진도 팽목항에 찾아와 유가족들을 만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유가족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입장과 곤란하다는 입장은 계속해서 대립하기만 하고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그 대립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희생자 가족들과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정부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나마 가족들의 얘기를 조금이라도 더 들어주려 했던 야당조차 여당에 굴복하였고, 결정적으로는 여야간 합의, 특별법 제정에 있어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있어서 당사자가 누구인지, 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모든 것이 윗선에서 해결되고, 그들이 선택하고 정한 방식에는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그들의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한다. 



세월호 안에 있던 아이들, 구조될 수 있었고, 가족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 아이들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희생자 가족들은 그것이 알고 싶은 것이다. 사고 당일 왜 구조대가 바로 투입되지 못한 채 4일 동안 그 앞에서 대기만 해야 했고, 당시 주변에 구조를 위한 배 한 척조차 있지 않았던 것인지, 언론에서는 사실보다 앞서나가는 이야기들을 보도하고 고작 5명이 구조를 진행하는 사실은 숨긴 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는지, 어째서 진실을 말하지 않고 사고를 덮기에 급급하였는지 말이다. 사건의 총책임자가 없어서 구조 상황을 학부모들이 직접 전달해야 했던 것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 모든 의문에 대해 지금까지도 금전적 보상만을 제시하며 입을 닫고 있는 정부는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간혹 왜 영화 제목이 <나쁜 나라>이냐고, 국가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족들이 진상규명이 아닌 금전적 보상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이거나, 희생자의 가족이었더라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참 궁금하다. 믿을 수도 없고 이제는 믿어서도 안 되는 언론들의 거짓 선동에 휘둘려 진상규명을 위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가족들을 돈에 눈이 먼 것처럼 매도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 더욱 이 나라는 <나쁜 나라>가 맞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 정부가 어떻게 이에 대처하였는지, 얼마나 그들이 눈치를 보느라 더디고 굼뜨게 행동 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이 그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언론플레이만을 진실로써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들의 눈에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자신이 보고 싶은 측면에 부합하는 내용이면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는 진실이 될 터이니.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아직도 세월호에서 ‘엄마’를 외치며 울부짖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내뱉었을 ‘엄마’라는 말 때문에 아이들의 엄마, 아빠들은 더욱 이 싸움을 그만둘 수 없다. 그들은 우리들의 이웃이자 친구이고, 가족이다. 그 말은 절대 이 사건이 우리들과 결코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다. 그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대표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싸우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기억을 잊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비추는 여러 카메라들 중에서 100% 사실만을 보여줄 수 있는 카메라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카메라의 한계이기도 하다. 영화 <나쁜 나라>도 물론 그러한 점에 있어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희생자 가족들을 비추는 수 많은 폭력적인 카메라들 사이에서 가장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카메라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파닥파닥>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TXD2o0







<파닥파닥> :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남으려 하는 걸까요?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가영 님의 글입니다.


이번 인디즈 초이스에서는 애니메이션 강대국인 일본과 미국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보석 같은 한국 애니메이션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미니언즈>(2015)나 <인사이드 아웃>(2015) 못지 않은 영상미를 지니고 있는 애니메이션이자, 다분히 철학적이고도 뭉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이다. 바다에서 잡힌 고등어 한 마리가 횟집 수조에 들어왔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답답한 수조 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고등어는 매일매일 수조 유리에 머리를 부딪히며 탈출하려 애를 쓰고, 그 모습을 보며 같은 수조 안에 있던 물고기들은 그에게 ‘파닥파닥’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자연산 횟집’이라는 횟집 간판과는 다르게 횟집 수조에는 파닥파닥을 제외하고는 모두 양식장에서 잡혀온 물고기들로 구성되어있다. 유일한 바다 물고기인 파닥파닥이 탈출하기 위해 수조 유리에 머리를 쿵쿵 박는 것과는 달리 다른 물고기들은 저마다의 생존법칙을 터득한 듯 하다. 회를 먹으러 온 사람들이 등장하면 ‘비상이다, 비상이다!’를 외치며 배를 뒤집은 채 죽은 척을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파닥파닥은 사람들의 상에 올라가기 위해 물고기가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리운 바다를 생각하며 더욱 필사적으로 탈출을 꿈꾸게 된다.



오직 죽음만이 그들을 기다리는 이 곳의 특이한 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처럼 엄격한 서열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올드 넙치’는 정화 뚜껑 밑에 숨어 있다가 먹잇감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맛을 보고 나머지 물고기들에게 엉터리 수수께끼를 내주며 서로의 서열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가 권력자가 된 것은 바로 그가 ‘바다’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인데, 파닥파닥의 등장 이후 얼마 못 가 그 또한 양식장에서 잡혀오게 된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파닥파닥이 해주는 바다 속 이야기는 양식장에서만 생활하던 물고기들에게 꽤나 매력적인 이야기로 다가오지만 그들에게는 현실의 벽이 너무나도 높다. 그들에게 바다 생활이라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벽을 넘을 수 있느냐 없느냐, 권력자의 말이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들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그곳에 남아있으려 한다. 그곳을 벗어나느니 유리감옥에 갇혀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는 쪽을 택하는 그들은 파닥파닥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파닥파닥에게 호의적인 물고기인 ‘돌래미’는 어느 날, 살아남는 데에나 신경 쓰라 말하는 올드 넙치에게 이러한 물음을 갖게 된다. ‘이렇게 살아남으면요? 그 다음에는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사실은 횟집 수조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같은 수조에 있던 물고기가 인간의 손에 넘어가 잔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남은 물고기들은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모습은 우리가 사회 속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도태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유감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수조 속 물고기들처럼 우리들은 권력을 가질 만 한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자에게 권력을 내주고, 또 그 권력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살아남는 것 이외에는 신경 쓰지 않고 싶어하고 있다. 진실을 말해도 욕을 먹는 세상, 씁쓸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파닥파닥>은 이제는 먹고 살기 바쁘다고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의 삶에 있어서 과연 무엇을 위해 그렇게도 살아남으려고 애쓰는가에 대한 물음을 제시하는 듯 하다. 



영화 <파닥파닥>은 이처럼 우리 사회와 결코 멀지 않은 이야기들을 횟집 수조 속 물고기들을 통해 전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데에 있어서 중간중간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와 상황, 꿈을 표현하기 위해 설치된 뮤지컬 씬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암울한 현실은 3D로, 환상 속의 모습을 담은 뮤지컬 씬은 2D로 표현해냄으로써 독특한 작화 방식들을 나타내고 있다. 성우들의 실감나는 연기와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노래들은 단연 <파닥파닥>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여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파닥파닥>을 통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탄탄한 스토리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실력을 감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기 보다는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는 평이 지배적일 정도로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동시에 마음속 깊은 여운을 남기게 될 것이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잊혀져서도 안되고 잊을 수도 없는 이야기  <나쁜 나라>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5년 12월 3일(목) 오후 7시 30분

참석: 김진열 감독, 정일건 감독, 호성 어머니

진행: 안보영 시네마달 PD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가영 님의 글입니다.


12월 3일, <나쁜 나라>의 개봉을 맞아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나쁜 나라>의 첫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였다. 개봉 첫날 <나쁜 나라>의 마지막 회차 상영이 끝난 뒤 이번 영화의 책임연출을 맡은 김진열 감독과 공동연출 정일건 감독,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 호성 어머니께서 자리해주셨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참여로 더욱 의미가 깊었던 그 현장을 그대로 담아보았다.



안보영 시네마달 PD(이하 진행): 호선 어머니도 영화 같이 보셨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호성 어머니: 저는 영화를 보면서 아, 우리가 자식을 잃고 이렇게 돌아다녔었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 4월 16일 이후 세상은 아무일 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슬퍼요. 국민들과 유가족만 소리를 지르고, 국가는 아무일 없듯이 그냥 살라고 하는데, 저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우리 부모들의 겉모습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것은 그냥 소리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자식들이 하루아침에, 수학여행 잘 갔다 오라고 뽀뽀하고 그 인사를 끝으로 사라져 버렸어요.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아이들을 왜 구하지 못했는지 그것을 알려달라고 해도 그 이유를 묻지 말라고 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안개 낀 그 바다를 왜 그 배만 떠났나. 저도 직접 가봤습니다.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주변에 섬마을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해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어야 했는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저것은 울부짖음이자 피눈물입니다. 그냥 있는 화면 그대로 보지 마세요. ‘왜 저 사람들이 저러고 돌아다니지? 보상은 돈만 받으면 되지.’ 아니에요. 부모들의 마음과 구조가 달라져버렸어요. 세월호 참사가 대한민국 전반의 사고를 바꿔놓은 거에요. 진실을 밝혀줘야 부모들은 회복이 돼요.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겁니다.


진행: 말이 1년 8개월의 시간이지, 그간의 아픔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감독님 두 분께 어떻게 이 작업을 하게 되셨는지,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일건 감독: 저 같은 경우 안산에 이사를 해서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월호 사고가 났고, 김진열 감독님께 제안을 받았어요. 이 사건을 기록하자, 가족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는 작업을 하자고해서 참여하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가족 분들 만나기가 두려웠어요. 너무 큰 고통에 직면해 계시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저 또한 버틸 수 있을까 많이 걱정을 했었죠. 근데 막상 6월달쯤 촬영하러 가니까 다들 그냥 같은 동네 아저씨아줌마들이셨어요. 또 가족 분들께서 서로 위로해주는 수다를 하시는데, 영화에도 잠깐 나오는 성복이 아버지께서 성복이 동생이 단원고를 가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우셨던 적이 있어요. 근데 그때 옆에 영석이 아버지께서 자신은 학교에 보낼 애가 없다고 하시면서 웃으니까 성복이 아버지도 울다가 웃으시더라고요. 전 되게 감동받았어요. 이렇게 서로 많이 의지하고 계시는 모습 보면서 저도 잘 버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김진열 감독: 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안산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자기표현을 하도록 하는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왔다갔다하던 곳이었어요. 어쩌면 오가면서 그 아이들을 마주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카메라를 들고 있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했어요. 근데 한편으로는 기록을 하는 데에 있어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자식들을 먼저 보낸 큰 슬픔에 빠지신 분들 앞에서 카메라를 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죠. 그렇지만 기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어 결국은 카메라를 들게 되었어요. 유가족 분들을 분향소에 가서 뵙고 나니까 다들 너무나 평범한 분들이었습니다. 또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워낙 잘 챙겨주셨어요. 그런 모습들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유가족 분들하고 친밀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한동안 가족 분들 앞에서 카메라를 드는 것 자체가 힘들었는데, 가족 분들께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잘 참여해주셨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관객: 저는 사고 이후에 SNS를 통해서 분노를 많이 표출했습니다. 일년 반 동안 유가족 분들께서 힘겹게 싸우신 것을 지켜봤는데, 가장 걱정스러운 게 졸업한 3학년 친구들과 이제는 2,3학년이 되는 아이들의 행보가 굉장히 염려스럽더라고요. 남은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그것을 한번 여쭤보고 싶었어요.


호성 어머니: 어른들이 아이들의 상처를 감추려고만 하니까 잘 지내는 것 같이 보이는데요, 희생자 가족들끼리도 걱정을 많이 합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우리나라는 잊혀지게 하기 위해 감추려고만 하지, 그 상처를 치료하려고 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그랬죠. 대학특례입학이니, 군대 특혜니, 모든 걸 그런 식으로 무마시켜서 해결하려고 했어요. 지금 그 아이들도 상처를 받을 만큼 받은 아이들이에요. 그 고통 속에서 살아나온 아픔이 있죠. 또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돈과 좋은 대학이면 된다는 식으로 말을 해요. 그 애들은 단원고를 나온 자체가 싫다고 해요.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 무슨 문제만 생기면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아이들’, 그런 수식어가 붙어나옵니다. 호성이 형은 세월호로 주목 받는 게 싫대요. 내 동생이 그렇게 비참하게 갔는데 위로는 커녕 말이 너무 많다고요. 희생자들의 목숨은 물론이고 희생자의 가족, 생존자들까지 국가는 하나도 책임져주지를 않아요.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아요. 국가는 돈 주면 다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그게 아니거든요. 지금 그렇게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데,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고 희생자 부모들은 할 일이 너무 많아요. 밖을 나가면 뭐든지 부모보고 앞장서래요. 내새끼 먼저 보낸 것도 억울한데. 무엇부터 해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아파죽겠는데,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만을 알고 싶은 건데,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두 손 놓고 방관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정일건 감독: 어머니 얘기대로 배보상이나 특례 같은 것으로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 거잖아요. 근데 그것만 가지고 그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너무 화가 나요. 저는 세월호가 사고 외에도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짚어주는 것 같거든요. 


호성 어머니: 저는 그냥 평범한 엄마였어요. 다 구조해줄 줄 알았어요.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데, 이렇게 울고불고 애원하고 싸우면 다 될 줄 알았어요. 많은 국민들이 4월 16일에 목격한 사실이고, 그날 TV를 통해서 아이들이 산채로 수장 당하는 것을 전세계가 봤는데. 그래서 우리가 잘못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책임이 있다, 우리가 끝까지 책임질게, 난 이럴 줄 알았어요. 나라가 앞장서서 나서줄 줄 알았어요. 그래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 하루 이틀, 일년 지나고 나니까 이게 내가 원하던 세상이 아닌 거에요. 저는 제 가족, 내 새끼만 반듯하면 대한민국이 다 잘 돌아갈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에요. 제가 이런 자리에 나오고 하는 이유는 힘들게 간 자식들 좋은 길로 인도 해 줄까봐, 그리고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질까봐.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산채로 매장이 되었는데 대한민국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건 정말 썩은 나라인 거죠. 이 희생된 아이들로 인해서 이 국가가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죄를 조금 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숨쉬기 위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배울 만큼 배웠으면서 왜 이렇게 무기력에 빠졌을까 싶어요. 다들 ‘대한민국에서는 안돼’ 라는 생각을 하고 있나 봐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곳인데, 왜 이렇게 무기력하게 방관하고 살지, 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대한민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저렇게 무기력에 빠져 살 수 있을까. 너무 답답해요. 이건 국민이 바뀌어야 해요. 대통령이 바뀌겠습니까? 정말 국민들이 소리쳐야 합니다. 우리 세월호 부모들을 밟고 일어나세요. 우리는 자식들이 다 가버려서 누구를 의지하고 살 수가 없는데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월호를 밟고 일어나서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다 뒤집어야 해요. 내 새끼가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민들이 올바른 말을 해야 해요. 미루지 말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진짜 앞장서야 해요. 우리 엄마아빠가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관객: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었어요. 저도 안산에 살고 있는데 세월호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에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제주에 갔다 왔었고, 저도 그 전년도에 세월호를 탔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 사고의 피해자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단원고에 친구도 많이 있고, 배 안에 있던 후배들도 많이 알았기 때문에 영화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어쩌면 정부의 압력이 없지 않았을 거 같은데 그런 면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무엇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진열 감독: 지금 <나쁜 나라>는 현재 독립영화관에서만 상영을 하고 있어요. 멀티플렉스 같은 경우는 대관을 하려 해도 쉽지가 않아요. 근데 이런 게 국가에서 압력을 행사해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세월호와 관련되어있으면 좀 피해를 받지 않을까, 하는 내재적인 생각이 암묵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영화작업에서도 그런 게 있었어요. 세월호 관련된 작업에 참여를 하면 다음작업을 할 때 정부지원, 제작지원 신청할 때 리스크가 올라간다 하는, 물론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들을 하죠. 세월호 문제를 다루는 작품은 지원을 받기 어렵다 하는 것들이 이제 공공연히 서로 이야기가 돌고 있는 상황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영화를 찍는 도중에 다른 기관에서 압박이 오거나 한적은 없었어요. 그리고 원래 독립다큐멘터리 작업하는 사람들이 그런 거에 크게 힘들어하거나 걱정하는 것은 아니라서 그런 면에 있어서는 크게 지장 받지 않았습니다. 배급사 측에서는 저번에 말씀하는걸 들어보니까 <나쁜 나라> 개봉관 수가 배급했던 영화들 중에 가장 적은 규모라고 하더라고요. 극장들이 문을 잘 안 열어주고 있어서요. 극장이나 외부적인 면에서는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세월호 사건에 대해 관심 갖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아직 많구나 하는 힘은 받았어요. 그 힘은 가족 분들에게도 큰 힘이 된 것 같고요. 저는 이 영화가 세월호 유가족 분들에게 있어서 다시 시민들을 만나고 거기에서 힘을 얻어 움직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진행: 저희 시네마달 배급사가 <다이빙벨> 개봉을 했고 1년 반 만에 <나쁜 나라> 배급을 하고 있어요. 예전 박정희 시대처럼 억압적이지는 않지만, 직접적인 압력이라기 보다는 아까 말씀하셨던 제작지원이라는 문제, 그리고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 상영으로 부산시에서 감사가 들어온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있는 거죠. 문화예술 전반적으로 세월호에 관련된 혹은 정부에 반하는 내용이라면 불리해지는 거에요. 그래서 세월호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가 바뀌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 저는 세월호 싸움은 망각에 저항하는 싸움, 즉 기억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덮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나 활동이 있을 수도 있겠고 기억의 매개가 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 교실이라는 공간이 지금까지는 유지하는 형태로 두었는데 이제는 새로 들어온 학생들도 있고 해서 다 정리하고자 한다는 얘기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가족의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보시고 어떻게 대처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호성 어머니: 아직 선생님 두 분과 학생 네 명이 돌아오지 않았잖아요. 저는 그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유가족들과 함께 상의 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아직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유가족들에게 그곳은 너무나도 아픈 곳이에요. 저희는 그 아픈 마음으로 진상규명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당연히 교육청과 단원고에서 나중에 미수습자가 다 올라왔을 때 교실 얘기를 꺼낼 줄 알았어요. 엉뚱한 말들은 많았지만 우리 가족들은 신경 쓰지 않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배려쯤은 해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요. 총 10반이 있는데 8개 반의 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교실에서 공부가 될까요? 저는 누구를 위해서 그 교실을 채워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교육자라는 분들이 무엇을 위해서 그리 빨리 서두르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빨리 잊혀지게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른 아이들을 위한 것도 아니고 다른 학년 아이들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빨리 서두를 장소가 아니라는 거에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이렇게 빨리 서두르는 거죠? 내 자식들이 가버렸는데, 왜 교실까지 부모들이 보호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부모들의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교육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존재해도 되지 않을까요? 



관객: 감독님들께서는 두렵기도 했지만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제작하게 되셨다고 하셨는데, 어떠한 감정과 마음으로 제작하시게 된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김진열 감독: 선뜻한 것은 아니었어요. 기획하고 있던 작업이 있기도 했고, 세월호 참사라는 게 워낙 큰 사건이라서 독립다큐멘터리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작업하기가 어려운 작품이기도 했어요. 상황들이 정리된 후에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기록할 수는 있겠지만 참사가 벌어진 직후에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있었고요. 하지만 그 당시 가족 분들을 비추는 카메라들이 굉장히 폭력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었고, 안산시에서도 말이 나왔던 것이지만 10년, 20년 뒤에도 시민들이 원하면 볼 수 있는 자료로서 기능을 했으면 좋겠다, 라고 해서 개인적으로는 그런 측면에서의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제가 카메라를 들고 안산으로 갈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정일건 감독: 저도 비슷해요. 처음 제안을 받고 물론 고민을 했지만 사고가 났을 때 언론에서 사실과 다른 기사들이 보도되는 것들이 가족들에게는 마치 세상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상황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했어요. 가족들 입장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카메라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성 어머니: 당시에 저희 부모들이 의심병이 걸렸었어요. 그래서 감독님들께서 저희가 활동하는 것들을 촬영 하시는 데 어려움이 많으셨을 거에요. 일단은 부모들과 먼저 친해져야 해요. 그래서 처음에는 감독님들께서 감독님인지 봉사단인지 모를 정도로 우리 얘기 들어주시고 정말 노력 많이 하셨어요. 그런 분이셨는데, 조금 아쉬운 게 우리 부모들에게 실례가 될까봐 섬세한 것까지는 못 찍으셨던 것 같아요.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어요. 


관객: 현재 가족 분들이 가장 중요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호성 어머니: 일단은 교실문제에요. 결국은 또 유가족들과 재학생가족의 싸움이 될 것 같아요. 이미 언론에서 그런 말들이 나옵니다. 이상하게 말려들고 있는데요, 저는 부탁 드리고 싶은 게 이게 희생자 가족과 재학생 가족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에요. 우리 불쌍한 아이들 다 흩어져있는데, 한곳으로 모아놔야죠. 그런데 언론은 부모들이 욕심을 낸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온라인 서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그 교실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서명운동에 참여 해주세요. 우리 부모들은 힘이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인 금요일 6시~8시 사이에 부모님들이 금요일마다 피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제 바람이 있다면, 대한민국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인 피케팅이 진행되어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원교육청에서 교실 지키기 피케팅을 하고 있어요. 


김진열 감독: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온라인 서명 해주시고, 시간되시는 분들은 수원 교육청에서 함께 피케팅 해주시면 좋겠어요. SNS 활용해서 <나쁜 나라> 많이 홍보해주세요. 극장이 없는 지역에서는 공동체 상영이라고 해서 소규모로 모여 상영이 가능해요. 영화보고 싶다고 연락 주시면 저희가 함께 달려가니까 좀 더 가깝게 가족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영화도 볼 수 있어요.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일건 감독: 현재 인양하는 과정들을 가족 분들이 직접 보고 감시하고 있는 일을 하고 계시는데 사실 그것도 참 가슴 아픈 일인 것 같아요. 왜 그런 일까지 직접 하셔야 하는지. 추운 날씨에 정말 고생하시는데도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인양하는 작업들까지 관심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진행: 가족 분들께서 관객 분들 만나면 그런 얘기를 꼭 하셔요. 길을 지나가다가 노란 리본을 보게 되면 그게 그렇게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노란 리본 꼭 달아주세요.


호성 어머니: 일단 아이들 보러 많이 와주세요, 분향소가 너무 썰렁해요. 엄마들이 어느 분들이 올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교실에 한번 가보세요. 그리고 왜 여기가 남아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세요. 분향소에서는 호선이 엄마가 노란 방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화 상영 중 객석 여기 저기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와 탄식하는 소리는 우리 모두가 같이 분노하고 슬퍼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쩌면 우리에게 조금씩 희미해졌을 그 참사의 충격과 슬픔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각성하게 하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인디토크가 끝난 뒤 호성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들 역시 우리의 부모님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소시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렇게 용기 내주어 감사하다며 포옹을 나눌 때에는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잊혀져서는 안되며, 잊을 수도 없는 그날의 기억을 위한 기록인 <나쁜 나라>가 더 많은 이들에게 각성의 기회를 줄 수 있도록, 그렇게라도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길 바래본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논픽션 다이어리>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LQnAn2







<논픽션 다이어리> : 그들을 호명한 것은 누구?



*관객기자단 [인디즈] 추병진 님의 글입니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지존파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1994년에 일어난 지존파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심야토론에 나온 패널들은 지존파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한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는 봉준호 감독의 <지리멸렬>(1994) 속 한 장면처럼 궤변을 늘어놓는 것에 가깝다. 언론에서는 인륜이 바닥으로 추락한 세태를 비판하며 인성교육의 강화를 강조한다. 지존파의 잔인하고 끔찍한 범행 과정에 여론은 분노로 들끓고, 이에 따라 사법부는 그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이처럼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 사건을 둘러싼 당시 사회의 모습들을 자료화면을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러닝타임이 흘러갈수록 영화는 지존파 사건에서 한걸음 물러나며, 뒤이어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주목하며 이 두 사건과 지존파 사건을 연결하기 시작한다. 이때 강력 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수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한 두 사건들에 비해서 상당히 큰 수준이었다. 따라서 지존파 일당은 검거된 지 1년 만에 사형대에 올라갔고, 두 붕괴 사고의 책임자들은 그보다 작은 처벌을 받는 것으로 끝났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에 대해서 의문을 던진다. 



수많은 인명피해를 직·간접적으로 초래하고도 징역형을 받은 이들과, 한순간에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존파 일당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또, 5.18 민주화운동의 책임자인 두 전직 대통령은 어떻게 사형을 피하고 특별사면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임기 말에 사형수 23명을 한 번에 사형시킨 김영삼 정권의 결정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사형 제도가 사실상 폐지된 대한민국의 현재를 되돌아본다. 사형 제도는 기능을 멈추었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끊이지 않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하나 둘씩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렇듯 <논픽션 다이어리>는 하나의 사건에서 출발해서 대한민국 사회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을 하나 둘씩 호명한다. 과연 우리들이 잊고 있었던, 혹은 없는 것으로 치부하던 과거의 끔찍한 기억들을 다시 불러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역으로) 혹시 자꾸 되풀이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들이 도리어 <논픽션 다이어리>를 수면 위로 끌어낸 것은 아닐까.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완벽히 이해할 순 없지만, 완벽히 사랑하는 가족의 이야기

 SIDOF 발견과 주목 <소나무씨에게>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5년 11월 25일(수) 오후 8

참석: <소나무씨에게> 김희봉 감독,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 장윤미 감독

진행: 최민아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차아름 님의 글입니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에 몸이 움츠러들었던 지난 25일 수요일, ‘SIDOF 발견과 주목’의 11월 상영작으로 <소나무씨에게>와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가 소개되었다. 두 작품은 모두 가족을 주제로 이야기 하고 있다. 가장 잘 알고 있다 믿었지만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던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가족의 이야기지만 왠지 마음 한켠이 따듯해지는, 영화 속 차마 다하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민아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장(이하 최): 두 작품은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상영한 작품들이에요. 일단 작품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이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희봉 감독(이하 김): <소나무씨에게>는 제가 독립다큐멘터리 제작과정을 수료하면서 만든 수료작이었는데, 과정을 수료하고 6개월 정도 보충촬영을 해서 만든 작품이에요. 처음에 어떤 작품을 찍을까 고민했어요. 항상 둘째조카를 담고 싶었고 그 아이의 모습을 지켜봐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 찍게 됐어요. 종민(첫째 조카)이나 언니 이야기도 많이 담고 싶었는데 단편으로 이야기를 만들다보니까 많이 쳐내면서 둘째 조카에 집중해서 만들게 됐어요.  


장윤미 감독(이하 장):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는 보시다시피 설과 추석에만 찍은 작품이에요. 어머니가 계속 마음에 남았어요. 최근에 몇 년간 힘들면서 인상적인 게 뭘까 생각해보면 평소에 매일 전화로 어머니를 가르쳐 드린 과정이거든요. 그 일을 겪으면서 힘들기도 하고 엄마는 왜 지금 공부를 하려고 할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또 쉽게 찍을 수 있을 거라는 느낌도 있었어요. 정작 찍을 때는 쉽지 않았지만.


최: 보통 어머니한테 자식들이 공부를 가르쳐 주는 경우를 많이 봤었는데, 전화로 가르쳐 드렸단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네요.


장: 저희 어머니 캐릭터가 되게 독특한데, 공부를 못해서 자신감이 없다고 말씀 하시지만 엄청 당당하시거든요. 몰래 공부하시는 어머니들도 많은데 저희 어머니는 당당히 요구하시고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화내시고. 그런 캐릭터가 좋았어요.


최: 두 분 다 가족을 작품으로 만들었는데, 가족이라 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겠지만 막상 찍으면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모르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촬영하면서 어떤 것들을 발견하게 됐고 기억에 남는지 말씀해주세요. 


김: 그런 게 너무 많았어요. 언니는 제가 고등학교 때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기 때문에 저는 어렸을 때의 언니밖에 모르는 거예요. 언니가 아이한테 화내는 모습을 봤을 때, 왜 아이한테 저렇게 신경질을 낼까 했었는데, 따라다니면서 엄마로서의 언니를 관찰하다보니까 (언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커졌어요. 그리고 내가 어디까지 담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쨌든 타인에게 보여주는 작업을 하는 거니까요. 가장 쉽게 접근했지만 내가 잘 아는 사람을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까를 결정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장: 저도 비슷해요. 그래서 저는 영화에 힘들어하는 장면들이 들어갔어요. 엄마한테 혼날 때는 정말 기분이 상하거든요. 그럴 때는 안 찍기도 하고 엄마의 지저분한 책상을 찍기도 하고 또 엄마가 뭐라 하시면 쭈뼛대며 뒤로 물러나기도 하고 카메라만 만지다가 할머니를 찍기도 하고 그런 과정이 편집과정에서 드러나게 하려고 했어요. 어쨌거나 설과 추석에 카메라를 들고 내려가서 찍었는데 완성된 후에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으니깐 마음이 홀가분하더라고요. 


관객: <소나무씨에게>는 가족의 이야기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는 게 부모입장에서 꺼려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혹시 설득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저는 오히려 장애를 보여준다는 것에 있어서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가족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언니에겐 과제물로 찍는 거라고 인터뷰해야 한다면서 계속 집에 찾아갔어요. 그래서 설득하는 과정이 따로 있진 않았어요. 동생이 얘기를 들어주고 조카들과 놀아주니까 자연스럽게 동의를 해줬던 것 같아요. 상영을 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좀 불편해한 게 있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거부감을 드러내진 않았어요. 오히려 재민(둘째 조카)이가 자기를 찍는 걸 되게 싫어했어요. 눈치도 빨라서 제가 무슨 질문을 하면 제 의도를 너무 빨리 파악을 하는 거예요. 재민이한테 질문하는 부분을 보면 다 엄마가 셀프카메라로 하는 것들이에요. 재민이가 기분이 좋거나 마음이 풀어졌을 때 질문을 던지고 주로 엄마가 찍어줬어요. 



최: 말씀하셨지만 처음엔 자유롭게 찍어도 상영을 하게 되면 또 다르게 다가올 것 같은데 영화에 나온 분들이 영화를 다 보셨나요. 


장: 극장에서는 아니고 출품하기 전에 보여드렸어요. 


최: 뭐라고 하시던가요?


장: 내가 생각보다 말을 잘하네? 이러셨어요. 


최: <소나무씨에게>는 제가 인디다큐페스티발 상영 전에 여쭤봤을 때, 재민이는 영화를 못 봤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봤는지요.


김: 첫째 언니 가족 빼고는 다 봤어요. 언니한테도 보러 오라고 말을 했는데 당일에 일이 있어서 못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좀 꺼려하는 건가 싶었어요. 파일로 보여주려고 해도 어물쩍 넘어가서 못 보여줬어요. 재민이 경우에는 현재 마음치료를 받고 있어서 이걸 보여줘도 되는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근데 재민이도 알고는 있어요. 며칠 전에는 저랑 잘 놀다가 “이모 나 그 영화 볼래.”이러는 거예요. 왜 갑자기 보고 싶어졌냐고 했더니 “이젠 마음의 준비가 됐어.” 이러더라고요. 너무 웃겼어요. 그 때 파일이 없어서 못 보여줬는데 이제 보여 주려고 해요.


최: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는 문장자체가 중의적인 표현을 담고 있는데, 영화 안에서 그 문장을 표현하면서 어떤 중의적인 느낌을 표현하려고 하셨는지 이야기 들어보고 싶습니다. 


장: 제목은 영화 시작부터 생각했던 제목이에요. 처음에 찍으면서 생각했던 이미지가 있었어요. 하나는 엄마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면서 오십대 후반의 아줌마가 큰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타고 공부를 하러 다니는 모습, 또 하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방에 많이 계셔서 제가 집에 가도 등 돌리고 누워있는 모습. 제가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마냥 행복한 삶을 살진 않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후에 저도 나이를 먹으면서 엄마가 그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엄마가 방에서 공부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기도 하는 것 같기도 해서 제목을 그렇게 정하게 됐습니다. 


최: <소나무씨에게> 연출의도에는 ‘우리 언니의 가족과 재민이는 어떤 아이인지 궁금했다’는 말을 적어주셨는데, 제가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아빠가 재민이한테 엄마 말 잘 들어 줘야한다고 말하고, 재민이가 나가서 서있는 뒷모습을 한참동안 찍은 장면이 재민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언니의 인터뷰가 주로 나오고 종민이와 형부의 이야기는 잘 나타나 있진 않은 것 같은데, 언니의 가족에서 ‘언니’에게 마음이 더 가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영화 속에서)언니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의도가 있으셨던 건지, 또 작품 찍으면서 종민이나 재민이에 대한 어떤 생각의 변화나 정리된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 사실 처음에는 언니 가족을 중심으로 찍었었어요. 언니 가족 전체를 찍었는데 아무래도 언니와 이야기를 하고 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니까 언니의 삶이 계속 보이더라고요. 첫 편집본에는 언니의 이야기가 더 많거든요. 언니가 공부하는 모습들, 아이들을 양육하는 모습들을 많이 담고 싶었었어요. 영화에서 보면 언니가 엄격한 엄마로 나오잖아요. 근데 그 이면의 모습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다 넣자니 분량도 많고 설명할 것들도 많아져서 배제시키게 돼서 언니한테 미안한 것도 있어요. 인터뷰를 할 때 동생이 하니깐 아무래도 감정을 많이 없애고 말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쉽게 할 수 있는 말들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깐 이해가 되는 말들이 많았어요. 



관객: 영화를 보면 재민이가 서있는 뒷모습이 나오잖아요. 그리고 바로 이어서 소나무 장면이 이어지는데, 촬영하시면서 소나무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하셔서 그렇게 이으셨는지 아니면 나중에 결정을 하신건지 궁금합니다. 


김: 그건 편집 때 결정을 내린 거예요. 재민이가 서있었던 그 모습을 본 이후에 언니가 소나무 얘기를 해줬던 거라서 그때는 어떤 모습을 연상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재민이가 그렇게 혼자 서있는 모습을 처음 봐서 저도 당황한 탓에 카메라가 많이 흔들려요. 일단은 찍고 보자는 마음에서 찍었어요. (재민이가) 치료실에 가는데 촬영 중이어서 제가 데리고 가는 거였거든요. 근데 혼자 성큼성큼 가버린 거예요. 그래서 따라 나갔는데 얘가 그렇게 서 있더라고요. 아마 저를 기다린 거겠죠. 근데 애기가 그렇게 서 있는 게 낯설기도 하면서 생각이 많아보였어요. 편집을 할 때는 사실 연결이 잘 안돼서 소나무를 따로 찍었어요.


최: 지금 질문에 의하면 매우 연결이 잘 됐던 것 같아요.(웃음)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를 보면 여러 풍경, 집안에서 바라본 풍경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던 게, 설과 추석에 찍으셨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자막이 없으면 이게 서로 다른 때라는 생각이 잘 안들 것 같아요. 기차에서 이주노동자를 찍은 거라든가,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장면이라든가 그런 모습이 명절 때 보이는 특징적인 이미지기도 하지만 인상적으로 남았던 느낌이 있었던 건지요?


장: 음식 장면은 사진처럼 찍어서 이미지로 넘긴 거예요. 이주노동자분들은 제가 산만한 것 같기도 한데, 제가 집에 내려가면서 명절 때마다 봤던 사람들이여서 관심이 가고 눈이 가더라고요. 제가 항상 기차 예매를 못하는데 버스를 타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입석을 타고 가는데 그때마다 계시더라고요. 그분들은 그때가 유일하게 쉬는 날이어서 부산 같은 곳으로 놀러 가시는 거 같았어요. 어쩌다 보면 말을 하게 되고 그래요. 딱히 의미가 있어서 넣은 장면은 아니에요. 그것도 집에 내려가는 길이었다는 점에서 연결되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최: 두 작품 다 나오시는 분들이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소나무씨에게>는 처음에 재민이가 찍은 장면이 나오고 언니가 재민이를 인터뷰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렇게 일정부분 가족들한테 카메라가 주어졌던 시간이 있었어요. 가족 분들에게 직접 카메라를 맡기시면서 감독님이 찍는 것과 다른 모습들을 생각하신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 경우에는 산책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카메라가 가잖아요. 처음부터 그런 의도는 아니셨던 것 같은데 어머니가 찍은 장면을 편집과정에서 보면서 어떤 특별한 느낌이 있어 그것들을 사용 하셨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어떤 느낌으로 촬영에 작용을 했는지 두 분이 비슷하지만 다른 경우라서 각각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 주말에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유일하게 형부가 집에 있는 주말을 담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언니랑 재민이한테 가족의 모습을 서로 찍어달라고 맡겼던 거였어요. 그리고 카메라가 대상을 찍는 힘? 그걸 믿었던 것 같아요. 제가 카메라를 드는 이유, 좋아하는 사람들을 찍는 이유가 카메라로 보면 또 다르게 보여서에요. 제가 몰랐던 걸 발견하기도 하고 대상에 대한 감정적인 변화를 느끼거나 이해하게 되는 그런 작용들을 재민이가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카메라로 엄마를 찍으면서 엄마를 이해해봐라.(웃음) 이런 마음이 컸고 언니는 언니가 재민이를 찍으면서 또 다시 이해하는 것들이 있겠지 했는데 사실은 거의 찍지 않았고 저것들은 3일정도 찍은 거예요. 제가 한 5~6개월 정도를 맡겼었는데. 


장: 말씀대로 저는 계획했던 건 아닌데 계속 물어보셔서 자연스럽게 넘겼던 거에요. 후에 제가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생각을 해보니까 엄마의 삶과 그녀의 힘든 것, 좋아하는 것들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고, 엄마도 저에 대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이십대 내내 어머니하고는 거의 투쟁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엄마한테 공부를 가르쳐 줄 때는 힘든데 카메라를 가르쳐 줄때는 신이 났어요. 엄마가 얘기하는 건 건성으로 듣고 있다가 가르쳐달라는 말에 놀라면서 기분 좋게 가르쳐줬던 것 같아요. 엄마도 저한테 서울 가서 대체 뭐하는지 모르겠다, 왜 카메라를 드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지만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시고 궁금해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그 전에 등불 올라가는 장면에서도 가르쳐달라고 하시는데 그때는 못 들었어요. 편집과정에서 들었는데 마음이 좀 짠했어요. 아무튼 카메라가 좋은 수단이 되었던 것 같고 또 말씀드리고 싶은 건 초반에는 아는 사람한테 되게 비싼 DSLR을 빌려서 찍었던 거고 후반에는 빌릴 사정이 안 돼서 미디액트가서 캠코더를 빌려서 찍은 거거든요. 그 카메라가 있어서 기동성 있게 다니면서 엄마한테 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 연출자가 여러 가지 의도를 갖고 촬영하게 되지만 대상이 직접 카메라를 들게 되거나 말을 하거나 할 때 예상하지 못했던 서로간의 작용이 생겨나고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 두 분 모두 이후로 작업하고 계신 것들이 있는지, 혹시 계획한 게 있는지 듣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 조연출을 하는 게 있어요. 장애를 가진 아이와 어머님들에 관한 작품이구요. 계속 이런 주제들을 공부해가지고 다음 작품을 이어가볼까 계획하고 있어요. 


장: 하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아는 사람들이 아닌 완전한 타인에 대한 작품을 하고 싶어요. 우연찮게 영화에 나온 할머니 할머니가 시골에 계시는데 약간 치매 증상이 있으세요. 할머니 계시는데 가서 찍은 것들이 있어서 편집을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가장 가깝지만 또 가장 먼 사람이 가족일 때가 있다. 두 감독의 처음 역시 가족이라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기획했지만 촬영과 편집 과정 속에서 잘 알지 못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여전히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벽하게 사랑하는 가족의 이야기라서 더 따뜻한 영화들이 아니었나 싶다. 후에도 이와 같이 가족의 이야기 혹은 가족으로부터 출발한 주제로 작품을 기획하고 있는 두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람에 대한 믿음, 변화에 대한 믿음으로 작업한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 이마리오 기획전 대담 기


일시: 2015년 11월 23일(월) 오후 7

참석: 이마리오 감독,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진행: 김수목 감독(신나는 다큐모임 / <니가 필요해>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이마리오 감독은 뚜렷한 문제의식을 창의적 접근방식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초반과 후반을 장식했던 그의 작품 세 편이 11월 9일과 23일에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됐다. 제27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독불장군상을 수상한 <주민등록증을 찢어라>(2001)는 주민등록증 제도의 파시즘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미친 시간>(2003)은 베트남 전쟁동안 한국군에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기억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바람이 불어 오는 곳>(2008)은 한국독립영화협회 10주년을 맞아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독립영화인들의 일상과 고민을 녹여낸 작품이다.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의 상영이 끝난 뒤 세 편을 아우르는 대담이 진행됐다.





김수목 감독(이하 김): 우선 두 분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본 후 관객 분들과 얘기 나누겠습니다.


이마리오 감독(이하 이): 기획전에서 세 작품을 고르라고 했는데, 이 세 작품 외에는 제가 혼자서 연출한 게 없습니다. 굉장히 많이 작업한 느낌이지만 세 작품밖에 없고요.(웃음) 오늘 <바람이 불어 오는 곳>를 오랜만에 봤는데 새롭네요. 7년밖에 안 지났는데 굉장히 오래지난 거 같아요. 영화에 등장한 인디스페이스, 미디액트를 비롯한 많은 공간에 변화가 있어서 느낌이 남달랐던 것 같고요.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이하 채): 첫 번째 작품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부터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도 주민등록증 문제 관련해서는 아르바이트 격으로 기자회견을 찍으러 다니다가 우연히 알게 돼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영화에서 이 문제가 다이렉트로, 공격적으로 드러날 때 제가 겪었던 충격이 떠오르면서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기분을 받았어요. 주민등록증이라는 게 자기 존재와 같이 가는 것이고 근본적으로 세계를 보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큐를 보고 상당히 세다고 느꼈습니다. 그걸 논리적으로 진행함과 동시에 감독님 개인의 경험담을 엮은 게 치밀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미친 시간> 같은 경우는 앞이 옆을 따르지 않고 그냥 그 분들의 이야기만 듣는 방식이었어요. 전쟁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하는 게 아니라 그 분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바로 ‘학살’과 맞물리는 걸 보고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와는 접근방식이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살 한 부분만을 건드리면서 자기검열없이 강하게 국가를 비판하는 태도를 동시에 읽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은 달랐어요. 감독님이 세게 나갈 거라고 생각했고 또 개인적인 고민과 엮어서 이 영화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전작들과 달리 따뜻한 태도가 드러나서 조금 놀랐어요. 독립영화의 미래에 대해 따뜻한 믿음이 담겨 있고 낙관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2008년이 배경이기 때문에 촛불집회 정국 같은 게 담겨 있지만, 세 가지 작품 접근 방식이 다 다르고 국가가 국민과 결합되어 있다는 환상을 무너뜨리면서 같이 가는 사람들과의 행보에 대해서 감독님이 상당히 따뜻한 태도를 가지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가와 민중을 구별하는 태도가 현재에는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2008년 이후 작업을 안하다보니 이런 자리가 낯서네요. 작업을 할 때마다 기저에 담겨있는 것들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음에도 시간이 지나니 ‘내가 뭘 고민했었나’, ‘어디까지 고민했었나’ 잊어버리게 돼요. 요즘에 작업준비를 다시하고 있는 건 국정원 대선개입에 관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어이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이지만 언론들에 가려진 사건에 대해 작업을 하게 되면서 ‘내가 왜 처음에 다큐멘터리를 하려고 했었나’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하구요. 그리고 거창하게 작품 세계 이런 표현 쓰시는데 그런 거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앞뒤 재지 않고 하는 스타일이라 보니 그렇게 작업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 하는 작업은 과거보다 오히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오히려 용인하는 범위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기에요.


채: 작품들을 보면서 기가 막힌 우연인가 아님 엄청난 촉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세 작품 다 무척 타이밍이 좋아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가 나올 때는 마침 정보가 한창 전산화되는 시기였고, <미친 시간> 때는 이라크 파병 시기였고,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의 배경인 2008년은 촛불집회라는 새로운 시위문화가 나왔던 시기라 다양한 사람들이 한 거리에 나와 있는 모습이 영화에 담겼습니다. 사회이슈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이: 대부분의 다큐멘터리가 비슷할 거라고 봐요. 다큐멘터리가 담는 게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이다 보니까 당시의 사회 공론이나 중요했던 순간을 다루게 되죠. 현실에 발을 딛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현실은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에 담기는 것 같아요. 그게 다큐멘터리의 매력 중 하나이고요. 의도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채: 사회 이슈와 맞닿아가는 것과 또 하나 중요한 게 개인의 경험을 작품에 담는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성찰이 영화에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사회문제와 개인의 경험을 섞는데 고민은 없으셨나요?


이: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처음 기획단계에서는 제가 등장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킬 계획이었는데 촬영 섭외하는 과정에서 그게 안 된 거죠. 그러다가 우연히 제 모습이 영화에 잡힌 적이 있는데 ‘내가 등장해야겠다’ 하고 그 순간에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 1인 시위를 하고 경찰서를 찾아가기도 했는데 사실 그거 때문에 촬영감독과도 많이 싸웠어요. 영화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게 말이 되냐는 거죠. 그렇게 만들고 난 후에 결과물을 보고 나서야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구나’ 싶으면서 말이 된 것 같았어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등장했으면 남의 얘기로만 느껴질 수 있었던 거죠. 상영을 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좋은 접근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느껴졌어요.



채: <미친 시간>은 학살 희생자들을 만나며 기획된 건가요?


이: 1999년 한겨레21에서 베트남 민간 학살 문제를 기사화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그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어요. TV등 여러 매체에서 많이 다뤄졌는데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으면 좋겠다, 학살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게 한국 사람들에게 공유가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기획하게 되었어요. 굉장히 시간을 길게 보고 시작했습니다. 이걸 보는 한국 사람들이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별로 좋지 못한 감정을 갖고 시작했어요. 물론 생존자들이 느끼는 감정에 비하면 몇 천분의 일도 안 되겠지만. 그러면서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감정을 전하고 싶었어요.


채: 이전 작품과 접근방식이 조금 다른데 더 말하고 싶었던 게 있으셨나요?


이: 베트남 가서 촬영현장에 있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으면 말은 못 알아듣지만 얼굴표정이나 눈빛으로 감정상태가 전해지거든요. 촬영이 끝나고도 그게 계속 남아서 힘들었어요.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는 분들의 작업이 정말 힘들다는 걸 느꼈고요. 또 희생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인터뷰로나마 응어리들이 좀 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느꼈던 것들이 영화에서도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감정을 느꼈어요.


관객: 저는 베트남에서 왔습니다. 7년 만에 감독님을 보러왔어요. 저는 이 문제와 관련된 사회운동을 계속 하고 있어요. <미친 시간>을 보면 감독님의 촬영이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정부의 허가 같은 걸 얻기도 힘들고 촬영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이렇게 영화 만드는 게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너무 잘 만드신 것 같아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는 <미친 시간>밖에 없어요. 제가 청소년 교육 관련된 일을 하는데 유일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미친 시간>이예요. 오늘 <바람이 불어 오는 곳>도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이마리오 감독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 아닌가 싶고요.(웃음) 이마리오 감독님 봬서 영광입니다.


이: 저도 촬영하고 나서 4,5년 동안 관련활동을 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고. 한국에게는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가 숨기고 싶은 역사인데 그런 부분들이 적극적으로 얘기가 돼야 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회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죠.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다양한 예술과 역사적인 정리도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관객: <미친 시간>을 보면 참전한 분들 인터뷰도 계속 나오는데 그 분들 반응이 궁금해요. 섭외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그 때 당시 학살 문제를 인정한 유일한 참전 군인들이시죠. 근데 그 분들도 베트남 전우회 소속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사업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 해서 쉽지 않았어요. 그 분들이 드러내는 걸 주저하셨는데 그 중에 한 분이 마산에서 10년 동안 주민등록증 날인 거부 운동을 하고 계셨어요. 그걸로 설득이 굉장히 쉽게 된 거죠. 영화제 할 때 모셔서 영화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어쨌든 만족하셨던 것 같아요. 그 분들 말고 다른 베트남 참전하셨던 분들이 보시면 좋을 텐데 그런 기회가 없죠. 지금 나이에 <미친 시간>을 만들었으면 참전 전우회에서도 상영을 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시는지에 대해 얘기하면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을 거 같고요. 나이를 먹은 게 다 나쁜데 이런 좋은 부분도 생기는구나 싶네요.


관객: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을 보면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부드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08년 당시 상황을 꼬집는 식으로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한국독립영화협회가 10주년이 됐고, 마침 저도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한지 10년이 됐었죠. 협회 10년을 기념할만한 다큐멘터리를 부탁받았는데 제작기간은 6개월이 주어졌어요. ‘6개월 만에 만들어서 10주년 기념하는 날에 상영을 할 거다’해서 만든 거죠. 그 이전에 <변방에서 중심으로>(1997)라는 한국독립영화에 대한 굉장히 깊이 있는 다큐멘터리가 나와 있는 상태였어요. 저는 그만큼 깊이 있게 다룰만한 실력도 시간도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다가 공동프로젝트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형태를 가져와 보기로 했죠. 독립영화인 여섯 명을 선정하고 그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촬영을 하면 내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식으로 기획하고 작업을 했어요.


관객: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여섯 명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요?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조연출: 선정회의를 많이 했습니다. 경순 감독님과 김태일 감독님 같은 경우는 십년 이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신 분들이죠. 이 분들을 투톱으로 선정했어요. 최진성 감독 같은 경우는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독립영화인같은 느낌이었어요. 본인이 다큐에서 말한 것처럼 영화제에서 얼굴이 잘 안보이게 된 이유가 본인이 참여를 덜한 것도 있고 상업영화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도 변화의 시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종필 감독은 몇 년 전의 최진성 감독처럼 <불을 지펴라>(2007)로 각광받으며 당시 막 시작한 느낌이죠. 활동가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도 함께 하게 된 거고요. 지역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 박광수 정동진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도 넣게 됐습니다. 



관객: 새로 하는 작업 때문에 한국 사회가 더 퇴보됐다고 느낀다 하셨는데 7년 만에 이 작품을 다시 보는 소회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새로 작업하시는 과정도 듣고 싶네요.


이: 생각보다 더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웃음) 한국독립영화협회 10주년 되는 날 실제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을 했었거든요.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이 영화에 나오니까 다들 빵빵 터지고 난리가 났죠. 하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재미가 굉장히 반감될 수밖에 없는 그런 작품인 거 같아요. 오랜만에 다시 보니까 좋네요. 화면에 등장했던 공간들은 다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늘 그 자리에서 꾸준히 있으니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은데, 표현하는 방식이나 그런 공간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다 사라진 게 큰 변화구나 싶어요. 점점 더 위축이 돼가는 것 같아요. 예술영화, 독립영화 극장들에게 ‘선정한 것들만 틀어야 지원해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내놓고 있고. 이렇게 내몰리는 상황들이 불과 7년 만에 더 늘어난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많이 퇴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작업하는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도 굉장히 민감한 문제잖아요. 정보기관도 관여돼있고. 어려울 거라는 걸 예상은 했는데 제작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굉장히 겁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본인 개인이 아니라 회사 이름이 제작지원에 들어가는 순간 문제들이 발생할 거고 그런 거에 대해서 겁먹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들이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김: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품고 시작하셨다가 좌절을 많이 느꼈다고 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몇 년 만에 다큐멘터리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두 작품을 만들고 나니 저의 바닥이 보였어요. 만들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이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난 이후 다음 작품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공동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직접 작업은 안 해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하나의 작업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고 같은 고민들을 하고 함께 만드는 과정이 있더라고요. 그걸 보며 힘을 얻은 것 같아요. 그렇게 공동 작업을 하며 얻은 힘으로 작업을 계속 하게 되었어요. 관심 있는 주제가 사람에 대한 거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첫 번째 이유는 아무도 안하니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잘 만들어야겠는데 어떻게 잘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이번에는 개봉하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하지만 실제로 만들다보니까 어려움이 생겨요. 개봉을 안 하면 돈이 안 드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개봉을 하려면 법적, 제도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거기서 어려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왕 시작했는데 개봉을 해야겠다 싶어요. 내년 정도에 크라우드펀딩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어떤 형태가 될지는 당시 상황을 봐야겠지만 지금은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태예요. 공식적인 곳에서 나서줬으면 좋겠는데 과연 어느 곳에서 나서서 하려 할까 하는 생각을 해요.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관객: 감독님은 서울에 사시다가 강릉으로 이사하셨다고 들었는데 삶이 어떻게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어떤 식으로 나아가려고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강릉에 미디어센터가 생기면서 그 쪽에서 일을 하겠다는 훌륭한 핑계를 대고 서울에서 내려가게 됐어요. 서울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주변에 늘 보는 사람밖에 없어서 내가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빠지면 미안한 생각이 드는 상황이죠. 강릉에 내려가서는 사람들과 자그마한 커피가게를 하면서 2층에선 영화 상영을 하고 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사람들, 지역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협동조합도 계획하고 있어요. 이런 저런 활동을 하면서 지역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재밌죠. 지금 하고 있는 작업 같은 경우엔 PD빼고 다 강릉 출신 스텝들이예요. 제작비가 많았으면 다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텐데.(웃음) 주변에 촬영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 영화를 하고 있는 친구들, 미디액트에서 알고 있는 사람들과 작업을 하고 있죠. 그렇게 나의 생활과 작업이 섞이는 건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서울에서 살던 것 보다는 확실히 여유가 있어요. 오늘도 서울에서 사람들 만나려고 일찍 왔는데 다들 정말 바쁘게 살더라고요. 뭔가에 쫓기듯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지방에 가면 안 그래도 돼요. 훨씬 더 마음의 여유, 정신적인 여유를 충분히 누리면서 살 수 있어요. 경제적인 여유를 조금만 포기하면 돼요. 포기라는 게 심각한 정도는 아녜요. 나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연친화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자연이니까. 생각하는 지점들이 더 넓어지고 여유 있어 지는 것 같아요. 사건이든 사람이든 날카롭게 본다기 보다는 부드럽게 보게 돼요.


김: 강릉에 ‘봉봉방앗간‘이라고 있는데 1층은 까페, 2층은 상영공간이에요. 너무 좋아요. 상영을 생각하시고 계시다면 강추합니다. 커피도 맛있고요.(웃음)


채: 저는 <바람이 불어 오는 곳>의 정동진독립영화제를 배경으로 한 마지막 장면에서 힘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영화에 나왔던 것 같은 그런 여유를 감독님이 품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그런 부분이 있죠. 있으니까 다음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영화를 믿는다기보다는 사람을 믿어요. 그리고 한국 사회가 힘들지만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런 믿음이 없다면 굳이 한국 사회에 발 딛고 작업을 하는 이유가 없죠. 저 말고도 여전히 창작을 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굳건히 살고 있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그런 변화의 지점은 각자에게 다 있다고 생각해요. 꿋꿋이 버티고 작업을 하다보면 7년 전의 <바람이 불어 오는 곳>에서 느껴졌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도 또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등장하는 사람들, 혹은 등장인물들과 잘 아는 사이의 독립영화인들이 영화관을 많이 찾은 듯 했다. 때문에 영화를 상영하는 두 시간동안 상영관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마냥 유쾌하진 않았다. 스크린 속 그들이 말하는 영화와 사회에 대한 고민은 곧 스크린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점으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작업과 활동을 이어나가는 사람들. 사회를 향한 변화의 바람은 그들에게서 불어오는 것이라 확신한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해에게서 소년에게>줄 관람평

차아름 | 홀로 맞닥뜨린 믿음의 허상

김수빈 | 동경과 증오는 한 끗 차이

심지원 | 파도에 맞서던 소년은 바다가 되었다

추병진 | 칼을 꺼내든 소년이 바라본 뒤틀린 세상

김가영 | 가장 큰 비극은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





<해에게서 소년에게>리뷰

<해에게서 소년에게> : 홀로 맞닥뜨린 믿음의 허상


*관객기자단 [인디즈] 차아름 님의 글입니다.


현재 교사로 재직 중인 안슬기 감독은 교직생활을 하며 느꼈던, 10대 아이들의 고민과 그들의 불우한 환경을 영화 속에 담고자 했다. 그들이 느끼는 여러 감정의 대상을 부모와 어른 나아가 신과 운명으로 확장시키면서 이 영화가 탄생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보편적으로 10대가 주인공일 때 이야기하는 학교 혹은 청소년 문제가 아닌 ‘기도원’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어 다소 신선하게 다가온다.  



사진의 한 부분을 칼로 잘라내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시완(신연우 분)이 자른 사진 속 주인공은 엄마를 죽음으로 내몬 전도사 승영(김호원 분)이었다. 사진을 잘랐던 칼을 품고 시완은 승영이 지내고 있는 진숙(김영선 분)의 PC방을 찾아간다. 하지만 시완이 찾아간 승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이비 종교의 전도사와는 상당히 다른 이미지의 사람이다. 훤칠하고 반듯한 외모를 가졌으며, 사기꾼 같이 교묘한 말솜씨로 사람을 꾀어내지도 않는다. 시완을 대할 때 역시 억지로 위로하려 하거나 감히 이해하는 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그를 대한다. 이에 분노로만 가득 찼던 시완의 마음은 점차 누그러지고 마음을 연다. 시완의 말투는 여전히 까칠하지만 승영에게 기타를 가르쳐달라 말하고, 자연스럽게 형이라고 부르기 까지 한다. 진숙 역시 늘 시완에게 친절하고, 어딘가 당돌한 그녀의 딸 민희(김가현 분)도 마음에 든다. 시완은 그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해가며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얼마 되지 않아 무너지고 만다. 어떤 사건을 반환점으로 승영은 다시 교단의 부흥을 위해 전도를 시작하게 되고 마음을 표현했던 민희도 시완을 외면한다. 끝내 찾아간 아버지의 소식도 더 이상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그 사건을 계기로 시완을 승영과 떨어뜨리려는 진숙과 형과 엄마의 죽음으로 그 교단을 끔찍하리만큼 증오하는 시완에게 간증을 부탁하는 승영까지. 시완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다. 결국 시완은 극한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게 된다. 



영화는 퍼런 화면 톤에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를 줄곧 유지한다. 주인공 시완이 형과 엄마를 잃고 아버지마저 떠난 후 맞닥뜨린 현실의 공기가 그러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엄마가 자살 한 후 그의 시신을 확인하는 것도 시완의 몫이었다. 시완은 엄마의 시체를 확인한 후 이를 감당하지 못해 달려 나온다. 불안한 시선과 흔들리는 카메라는 그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고작 10대 소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내던져진 것이다. 시완은 엄마처럼 형의 병을 낫게 하리라는 기적적인 믿음도, 어떤 대단한 신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다만 승영을 만나면서 정말 평범한 삶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것이다. 여름방학이 지나면 또래 친구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풋풋한 첫사랑을 키워가는 그런 평범한 삶을 이제는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그런 시완을 어른들은 잔인하게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 동안의 믿음이 허상이었음을 확인하게 된 시완에게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세상에 홀로 버려진 슬픔과 분노만이 남은 그는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소셜포비아>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liKONf







<소셜포비아> : SNS, 신세계의 전장(戰場)



*관객기자단 [인디즈]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이하 SNS)를 주제로 한 영화들이 늘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2010)로 시작해 <디스커넥트>(2012), <언프렌디드: 친구삭제>(2014)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SNS 문화가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최근작으로 올수록 SNS의 어두운 측면이 영화에서 다수 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셜포비아>는 이러한 흐름을 같이 하는 독립영화다. 올해 상반기 개봉한 한국 독립·예술 영화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이 영화의 흥행 요인으로 변요한 배우 역시 들 수 있겠으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 가능한, 최신의 트렌드가 반영된 이야기라는 점 역시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소셜포비아>에는 최근 경향을 반영하는 키워드가 몇 가지 등장한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 ‘악플’은 고의적 악의가 드러나는 비방성 댓글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다소 낯선 ‘키워’는 ‘키보드 워리어’의 줄임말이다. 막상 현실에서는 별 힘을 쓰지 못하지만, 인터넷 상에서만큼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가며 악성댓글을 생산하는 전사(戰士)가 되는 이들을 일컫는다. 이 전사들은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러나 SNS 안에서 만큼은 모두 신분을 벗고 대등한 위치에 선다. 실제로 <소셜포비아>에서 민하영(하윤경 분) 현피 사건에 연루되었던 멤버들은 경찰 준비생(변요한, 이주승 분), 인터넷 방송 BJ(류준열 분), 남고생, 군인 등 그 층위가 매우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소위 네임드 된 키워 장세민(전신환 분) 역시 현실에서는 고급 호텔 사장이며, 미해결 사건 카페 운영자(이강욱 분)는 컴퓨터 엔지니어다. 이처럼 SNS에서 신상의 층위가 모두 사라진다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보다 자유로이 펼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키보드 워(War)를 가능케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기술이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다시 새로운 문화가 발생한다. 영화 <소셜포비아>는 다소 폭력적이기 까지 한 이 세계의 문화를 문제적 사건으로 삼는다. 



‘현피’는 ‘현실’의 앞 글자인 ‘현’과 Player Kill의 앞글자인 ‘P’의 합성어로,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일이 실제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영화 <소셜 포비아>는 레나(민하영) 현피 이후로 모든 사건이 촉발되었던 만큼, 현피는 영화의 핵심 소재다. 현피가 대체 어떤 의미이기에 그들은 그토록 집착했던 걸까? BJ 양게를 필두로 한 현피 멤버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는데, 개별적 정체성을 숨긴 채 무리로 존재해야만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현피 때문에 민하영 자살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계속 타겟을 변경해가며, ‘또 다른 현피’로 그 죽음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정작 그 원인이 자신들임은 망각한 채 말이다.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그들은 정의를 부르짖는다. 그들은 이를 전쟁이라 일컬으며, 스스로가 ‘전쟁 영웅’이 되었다는 착각 그리고 도취에 빠져든다. ‘무조건 사과 받아낸다고! 왜? 정의를 위해서!’



왜 그들은 미워하고, 또 미움을 받게 되었을까?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이 사건의 본질은 잊혀진지 오래다. ‘미워하는 이들’은 망각의 상태에서 마녀사냥에 몰두하고, ‘미움 받는 이들’은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하지만, 어쩌다 그 방어의 방법조차 또 다른 마녀사냥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앞서 SNS라는 새로운 소재가 영화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정말 흥미로운 사실은 따로 있다. 새로운 이야기처럼 보일지언정, 그 본질은 지금껏 인간이 구축해왔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들도 독립영화인: 거장들의 독립영화 
-<지리멸렬>,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심판>,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여행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추병진 님의 글입니다.


봉준호, 홍상수, 박찬욱, 류승완, 이창동.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감독들이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의 롤모델인 이들. 그들의 시작도 독립영화였다.



1. 봉준호 감독 <지리멸렬>(1994)



<지리멸렬>은 1994년 당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었던 봉준호 감독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이다. 세 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로 구성된 이 영화는 조롱과 풍자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작품이다. 비교적 짧고 단순한 스토리로 이루어진 각 에피소드 안에는 봉준호 감독의 재치 있는 유머가 녹아들어있다. 또한 각 에피소드는 서로 다른 분위기와 스타일로 만들어졌는데, 특별히 주목할 만한 점은 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역동적인 움직임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플란다스의 개>(2000),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등)를 보면 인물들 사이에 쫓고 쫓기는 추격 장면이 의외로 자주 등장하는데, <지리멸렬>에서도 긴박감 있는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하지만 고작 30분밖에 되지 않는 분량을 굳이 세 개의 에피소드와 한 개의 에필로그로 나눈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연결된 세 개의 에피소드가 끝나고 마지막 에필로그에 도달하면 그 이유가 명확히 드러낸다. 그것은 청년 봉준호가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는 우리 사회를 보며 던졌던 어떤 제스처일 것이다. 영화는 즐겁지만, 영화의 바깥으로 벗어나면 마냥 웃을 수 없는 씁쓸한 현실. <지리멸렬>은 영화 안의 세계와 영화 밖의 세계를 교묘하게 연결하면서 우리 사회를 냉소적으로 응시한다.

덧붙여서, 졸업 작품인 <지리멸렬>은 소수의 스탭들과 16mm 필름으로 만든 저예산 영화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 속에는 봉준호 감독이 시도한 다양한 영화 기법들이 엿보인다. 그중에서도 트래킹 쇼트, 180도 팬, 핸드헬드 그리고 의외로 긴 롱테이크 등이 돋보이고, 재치 있는 장면 구성과 편집이 인상적이다. 그의 꼼꼼한 장면 구성은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홍상수 감독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지난 20년 동안 홍상수 감독은 열일곱 편의 장편영화와 세 편의 단편영화를 찍었다. 스무 편의 필모그래피에도 여전히 홍상수 감독 영화에 대한 감상은 언어로 풀어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독특한 작업 방식에서 나오는 영화의 자연스러운 톤,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의 특징 등 감독의 영화에는 고유한 스타일이 있다. 이런 스타일은 스무 번의 체험을 통해 관객들에게 체득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낯선 감독과 낯선 영화를 처음 극장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고 국내의 어떤 시상식에서도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기자와 평론가들은 홍상수라는 인물의 등장을 ‘한국영화사의 일대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세모의 세계에 등장한 동그라미는 도형의 역사를 다시 썼으며, 이 영화는 그 시작이 되는 작품이다(홍상수 감독은 보통영화들이 삼각형이라면 자신의 영화는 원형이라고 말한 바 있다).

효섭(김의성), 동우(박진성), 민재(조은숙), 보경(이응경)은 내연과 짝사랑으로 얽힌 사이다. 영화에는 인물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시점이 등장하며 암전으로 시점이 바뀐다. 홍상수 감독은 네 명의 공동 각본가에게 인물 별로 시나리오를 담당하게 했다. 촬영현장에서 바로 시나리오를 쓰는 홍상수 감독의 현재작업방식과는 꽤 다르다. 선한 인상과 나긋한 말투로 등장한 소설가 효섭이 점차 살기를 띄어가는 모습이 초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송중기를 떠올리게 하는 서른 살의 배우 김의성은 성공하지 못한 소설가가 현실을 향한 분노를 쌓아가는 모습을 점증하는 연기로 표현한다. “우리가 문학을 얘기하는데 왜 고기굽는 사람들이 끼어듭니까”처럼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찌르는 대사를 비롯, 인간의 본원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홍감독 특유의 대사들은 데뷔작에서도 등장한다. 처음 40분간 아예 나오지 않던 음악은 스릴러에 어울릴 법한 무드를 띄며 뒤로 갈수록 짧게 자주 쓰인다. 아니나 다를까, 제 5의 인물이 개입하며 치정극의 익숙한 결말을 따르지만 결말을 보여주는 방식이 신선하다.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는, 흡인력이 대단한 영화다.




3. 박찬욱 감독 <심판>(1999)



<심판>은 박찬욱 감독이 <달은... 해가 꾸는 꿈>(1992), <3인조>(1997)를 연출한 이후에 만든 단편영화이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배우와 연기의 중요성을 이해한 것이 <심판>을 찍은 이후”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안실에 안치된 시신이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한 쌍의 부부와 장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도 미묘한 웃음을 유발하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유머가 돋보인다. 한편으로는 영안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친절한 금자씨>(2005)의 교실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영화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와 행위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와 장면 구성이 돋보인다. 영화의 주요 인물들-담당 공무원, 기자, 장의사, 한 쌍의 부부 그리고 여성의 시신-이 어떻게 조화롭게 이야기를 펼쳐나가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이 실마리가 되어, 이 영화의 예측 불가능한 결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제목 <심판>에 걸맞게 이 영화는 묵시록에 가까운 기묘한 순간을 만들어내는데, 그 지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휴머니즘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즉, 현실과 상상의 미묘한 접점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4. 류승완 감독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중학생 류승완은 동시상영관에 박혀서 하루 두 편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게 일상이었다. 상영관에서 살다시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는 스크린 속 세계를 동경하게 됐다.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은 후 고등학생 때는 점심을 거르고 모은 돈으로 캠코더를 사 초등학생 동생(류승범)과 영화를 찍고, 성인이 된 후엔 생계를 위한 일과 연출부 생활을 병행하며 데뷔의 꿈을 키워나갔다. 1996년, 류승완은 첫 단편영화 <변질헤드>(1996)로 감독이 됐다. 그리고 2년 후, 또 하나의 단편 <패싸움>(1998)을 만들었다. <패싸움>이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하자 류승완 감독은 그 상금을 바탕으로 다음 단편을 만들었다. 한 작품의 성과를 다음 작품의 밑천으로 삼는 식으로 연달아 네 편의 단편영화를 완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편들이 모여 그의 첫 장편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가 됐다.

<패싸움>, <악몽>, <현대인>, 그리고 단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까지, 영화는 독립된 네 편의 단편영화로 구성돼있지만 하나의 중심 플롯이 작품들을 관통한다. 우연히 살인에 휘말리게 된 두 친구가 서로 다른 길을 택하며 벌어지는 비극이 주된 내용이다. 영화 곳곳에서 저예산의 비애가 드러난다. 감독 본인이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밝힌 바 있듯 화면 내에 붐마이크가 등장하기도 하고, 마지막 씬에서는 이전과 달리 갑자기 눈이 내린 설원이 등장하나 돈이 없어 재촬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렌즈에 먼지가 묻어 멀리 있는 주인공이 안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제작상의 어려움이나 자잘한 실수들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진다. 대사가 끝나는 지점에 타이밍을 맞춘 화면 전환, 빠른 속도의 교차편집으로 재기발랄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뿐만 아니라 질서 없는 막싸움부터 정교하게 합을 맞춘 액션까지 다양한 액션을 선보인다. 마지막 장면의 충격적인 비주얼까지. 데뷔작품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한 사람의 영화에 대한 지독하고도 뜨거운 열정이 영화가 된다면 이런 모습일 테다.




5. 이창동 제작 및 공동각본, 우니 르콩트 감독 <여행자>(2009)



<여행자>는 이창동 감독이 공동 각본 및 제작으로 참여하고, 우니 르콩트 감독이 연출한 첫 번째 장편영화이다. 이창동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중점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여행자>를 선택하였다. 이 영화는 아버지에 의해서 보육원에 맡겨진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니 르콩트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에 픽션이 더해진 이 영화는 정적인 스타일을 통해 주인공 진희와 보육원 사람들의 모습을 매우 섬세하게 담아낸다. 특히, 주인공 진희의 얼굴을 담은 클로즈업 장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서글픈 정서를 전달한다. 또한 이 영화 속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특정 장면들은 그 횟수가 거듭될수록 주인공의 감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 이러한 요소들은 아마도 이창동 감독의 섬세한 시나리오 작법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여행자>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주인공 진희와 우니 르콩트 감독이 하나의 인물로 겹쳐 보이는 착시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니 르콩트 감독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보육원 안의 이야기는 상당수 픽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인물에 다가갈 필요가 있다. 또한 우니 르콩트 감독은 이 영화가 단순히 감독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관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진희를 따라 각자 자신의 경험을 투영할 것이다.



데뷔 감독이 독립영화로 시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탄탄한 자본을 등에 업고 시작하는 행운은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부족한 자본의 한계에도 자신만의 세계를 얼마만큼 구현해냈는가 하는 것이 능력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테다. 지금도 숱한 연출지망생들이 미래의 거장을 꿈꾸며 영화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이들을 비롯해 어떤 분야든 꿈꾸는 곳을 향해 막 출발선을 떠난 사람들. 이 글은 그들을 위한 것이다. 




신고
Posted by indiespace_은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