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줄 관람평

김은혜 |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속에 존재하는 듯한 삼례라는 곳

박정하 | 데미안에 푹 빠진 어느 중2의 일기

김민형 | 길을 잃어버린 여행

위정연 | 꿈속을 유영하듯 펼쳐지는 몽환적 이미지와 감정들

김수영 | 채석강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비밀과 켜켜이 쌓여가는 궁금증



 <삼례리뷰: 길을 잃어버린 여행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시네마란 지도에 추가된 또 다른 나라와 같다.” 영화비평가 세르주 다네는 말한다. ‘위대한 여행가’, ‘영화 지도를 그린 유목민’이라고 칭해지는 그는 영화를 본 뒤 글을 쓰는 것이 여행한 뒤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하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그 나라로 찾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작업이다. 시나리오는 여행가(관객)가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밑바탕을 제공한다. 관객은 영화라는 낯선 세계를 여행한다. 한편, 영화 속 주인공이 무작정 낯선 장소로 향하기도 한다. 영화 <삼례>가 그렇다. 승우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삼례라는 낯선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희인을 만나면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승우의 여행으로 <삼례>는 길을 만들고 지도의 밑바탕을 그린다. 그러면 관객은 <삼례>라는 “지도에 추가된 나라”에서 무엇을 발견하나.



미로처럼 짜여있는 <삼례>에서 길을 찾기란 어렵다. 주인공 승우도 종종 영화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 닭장이 즐비해 있는 시장 통에서 갑자기 바다로 향하고, 희인의 방에 머물다가 뜬금없이 가수 강산에가 노래하는 술집에 간다. 이 여행은 삼례라는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우주까지 확장된다. 은하수, 해와 달을 표현하는 환상적인 이미지가 삼례라는 공간에 이질적으로 삽입된다. 인물이 공간을 이동하는 명확한 이유를 단번에 알아채기 쉽지 않다. 단지 인물의 감정과 꿈,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흘러가는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정확한 목적지를 두지 않고 여행을 떠난 사람처럼, 영화는 극적인 정점 없이 여러 풍경 속에서 떠돈다. 어쩌면 그렇기에 주인공을 스치는 많은 지역민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현실에 불쑥 등장했다 꿈으로 그치거나, 꿈인 줄 알았는데 현실로 등장한다. 애초에 지역과 공간을 조망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고 느껴진다.



말하자면 <삼례>는 서사와 공간의 인과적 연결을 파괴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물의 특정한 시선에 더 묶이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희인은 승우가 서울에서 온 외지인임을 알게 되자 “아저씨는 구경하는 동시에 구경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승우는 구경하는 위치에 머무를 뿐 일방적으로 구경당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는 승우의 시선을 넘어서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그 누구의 시선도 아닌 쇼트가 배열된다. 이때 삼례의 지역민을 바라보는 쇼트는 명확히 위계를 가지고 짜인다. 일례로, 시장에 초라하게 앉아있는 할머니를 보여준다. 이들은 얼굴을 들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죽어가는 닭은 계속해서 잔인하게 보인다. 지역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쇼트는 비슷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이와 반대로 승우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인물들은 지역과 동떨어진 분위기를 지녔다. 저승사자 옷차림을 한 남자, 속옷 차림의 여자는 승우에게 시선을 던진다. 이들은 삼례와 동떨어져 존재한다. 



<삼례>는 외지인으로 기능하는 승우와 카메라의 시선에 묶여있다. 지역민은 영화에서 주체적인 시선을 가지지 못한다. 어쩌면 당연하다. 승우가 삼례라는 낯선 곳에 도착하면서 영화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례 지역민으로 제시되는 희인은 어떤 존재인가. 희인도 분명 자신만의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지역민의 이야기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를 인물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찾아본다. 삼례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지역민들은 모두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그런데 태어나 지금까지 삼례에 살았다는 희인은 왜 정확한 서울말을 구사하나. 단지 서울을 동경해서 그렇다고 넘기기엔 가볍지 않다. 희인이라는 캐릭터는 겉으로만 지역민으로 포장했을 뿐 철저히 외지인의 시선으로 그려졌다. 그렇기에 지역적 색채는 철저히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묶여있다.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 <삼례>는 삼례의 공간과 역사를 재조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조명의 주체가 항상 지역민이 아니라 외지인이어야 하나. 지역민 스스로 이야기를 그리지 못하고, 외부의 구원자를 통해서 역사와 장소를 조망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되물어야 한다.



영화라는 ‘나라’에 들어오는 길을 만들 때 굳이 정돈된 길을 만들 필요는 없다. 서사와 공간을 인과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과감한 파괴와 생략이 특정한 이미지의 종속으로 결론지어지는 것은 우려스럽다. 영화는 여러 사회적 관계를 재설정한다. ‘지방의 식민지화’란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영화 <삼례>는 철저히 외부에 종속된 시선으로 읽혀진다. 이미지 간의 위계는 명확히 존재한다. 지역의 풍경을 곡예 하듯 바라봐야 했나. 지역민은 마치 몰래 찍혀진 것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전시되었어야 했나. 낯선 지역을 여행하는 외지인의 시선을 영화에서 어떻게 그리는 게 옳은 태도일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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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와 우리에게 따뜻함을 물들이다

 <우리들>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6월 25일(토) 오후 1 상영 후

참석: 윤가은 감독, 곽노현 전 교육감

진행: 김수연 칼럼니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영 님의 글입니다.


개봉 일주일 만에 1만 관객을 돌파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상영관은 줄었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과 호평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특별 게스트와 함께 영화의 감독과 곽노현 전 교육감이 인디스페이스를 방문했다. 영화 <우리들>의 인디토크 현장을 지금 만나보자. 



김수연 칼럼니스트(이하 김): 오늘 이 자리는 교육 전문가이신 분과 함께해서 더욱 특별한 자리가 될 것 같아요. 우선 곽노현 ‘징검다리 교육감’ 님은 영화 <우리들>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곽노현 전 교육감(이하 곽): 초등학교 4, 5, 6학년의 눈높이에 맞고, 아이들의 일상이 녹아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학교폭력 예방 영화가 나왔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 <우리들>을 전국방방 곳곳의 4, 5, 6학년,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학교폭력 감수성을 기르는 취지하에 틀어줬으면 좋겠어요. 학교가 만 천개쯤 있어요. 한 학교에 한 명씩 이런 고통을 겪고 있으면 만 천명이고요. 한 반에 한 명씩 잠깐이라도 이런 고통을 겪는 아이가 있다면 지금 현재 이 순간 이십삼 만명 정도의 아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아이들끼리의 관계에서요. 아무튼 현실적인 피해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가해자라는 이름으로 공격성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고 방관자라는 이름의 아이들도 있어요. 영화를 통해서 가르치지 않는 가운데 저절로 자신의 역할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나는 나실 방관자였구나’, ‘나는 사실 가해자였구나’, ‘그런데 피해자들이 저렇게 가슴 저린 경험을 하는구나. 나는 그냥 웃으면서 하는 일이 저 아이들은 저렇게 힘들어 하는구나’와 같은 것들을 저절로 알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아주 강력한 교육적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절로 공감을 일으키고 그럼으로써 절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교육 자료를 갖게 됐다고 생각해요. 


김: 역시 교육전문가가 영화를 바라보는 프레임은 차원이 다르네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소녀시절의 감수성 혹은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로 이 영화를 받아들였는데, 이렇게 직접 수치화된 숫자들, 사회적 프레임으로 말씀을 해주시니까 영화가 주는 깊이와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네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감독님께서 말씀에 대한 화답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웃음)


윤가은 감독(이하 윤): 사실 제가 교육자도 아닐뿐더러 어떤 비전을 가지고 만들진 않았거든요. 정말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영화 제작 과정 중에 곽노현 선생님을 친한 동기분이 소개해주셨어요. 소개를 해준 목적은 저희가 초등학교에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초등학교를 섭외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어려움이 있어서예요. 전체 30회차 촬영이었고 학교 씬만 10회를 찍어야 하는데, 어떤 학교에서 그렇게 빌려주겠습니까. 그런 가운데 곽 선생님이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도와주실 수도 있을 거라고 말씀을 들어서 ‘선생님을 통해서 로케이션을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만남을 가졌어요. 선생님께서 당연히 도와주셨고요. 그것 이상으로 시나리오 단계에서도 도움을 받았어요. 시나리오 단계에서 제가 그리는 학교 안 선생님들의 모습이 조금 전형적이었어요. 제 머리 속에선 선생님이 전형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쩌면 아이들에게 나쁠 수 있는 선생님을 그렸던 거죠. 그런데 제가 곽 선생님과 곽 선생님을 통해서 만난 교육청 선생님들을 뵙고 ‘내가 어른을 잘 못 그리고 있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한 반에 기본적으로 학생이 25명에서 30명 정도가 있고 아이들의 이런 깊은 내면까지 들여다보기가 어렵잖아요. 실제론 선생님들이 굉장히 애쓰고 계세요. 그리고 저희 배우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선생님 정말 애쓰시고 계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애쓰시는 것도 알지만, 선생님이 우리를 100% 도와줄 수 없다는 것도 알아요”라고 말해줬어요. 제가 원래 그리려고 했던 선생님이 아니라 일선에서 노력하는 선생님의 모습으로 바꿔나가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가지로 곽 선생님께 도움을 받았죠. 


김: 말씀을 들으면서 영화는 사람이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두 분의 만남을 통해서 영화의 로케이션이 가능하게 됐고 선생님 캐릭터도 변화가 있을 수 있었죠.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어서 재미있고 뿌듯하네요. 교육감님께서는 영화를 보시면서 궁금했던 점이 혹시 있으신가요?


곽: 아마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은 관객 여러분이 하고 싶은 질문과 같을 거라 생각해요. 여러분은 어떤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셨나요?


관객: 영화 속 주인공들이 어린아이들이었잖아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님은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 아이들이 싸우고 화해하고 그러면서 크는 거지”라고 하는데 사실 아이들은 그 와중에 엄청난 심경 변화를 겪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부분을 많이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곽: 2주 전에 영화를 보고 소감을 말씀해달라는 인터뷰에 저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었어요. 그리고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정말 자연스러워서 놀랐어요. 도대체 어떻게 연기지도를 하셨나요?


윤: 일단 저희 배우들은 보조출연과 같은 작은 경험들은 있었지만, 카메라 앞에 처음으로 완전하게 서보는 분들이었고 정말 백지 같은 상태였죠. ‘연기를 처음 하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은 없었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 당시 저는 장편영화가 처음이었어요. 돌이켜보면 배우 친구들은 제가 많이 불안했을 거예요. ‘저 초짜 감독이 우리를 뽑아놓고 뭐하려고 그러는 거지?’라는 생각도 했을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처음일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친해지고 서로 연대하는 상황에서 함께 연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연기를 하지 않았던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단점보단 장점이 많다고 생각했죠. 배우라는 자의식이 없을 때, 자신이 카메라 앞에 어떤 각도로 서야 예쁠지를 모를 때, 상황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표정과 감정이 나올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의 역할은 그런 감정을 배우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감정을 자신의 표정과 대사로 표현할 때 편안함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거였어요. 저는 끊임없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럴 때 감정은 어때?”, “이렇게 하면 편하니?”와 같이요. 배우가 불편해 하는 것을 연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할 때 자신이 불편해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분노나 짜증이라도 본인이 본인에게 맞는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그게 배우에게 편한 방식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하게끔 하려고 노력했어요. 때로는 친구 같이요. 사실 저희 배우 분들은 현장에서 저를 ‘쌤’이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지금도 ‘감독님’이라 불러야 할 지 ‘쌤’이라고 불러야 할 지 헷갈려하죠. 



김: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비전문배우들이 영화 촬영하면서 배우가 된 케이스의 영화잖아요. ‘쌤’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정말 ‘쌤’이 맞으신 점이, 영화 촬영자체가 하나의 연기 교육이었던 것 같아요. 


곽: 윤 감독님 단편영화도 그렇고 이번에 개봉한 장편영화도 그렇고 모두 아이들의 이야기가 소재인데요. 그래서 아동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거나 아동기를 진하게 보내신 것 같아요. (웃음)


윤: 그 때 폭풍 같은 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물론 현재 영화를 하고 있기에 지금이 훨씬 더 폭풍 같겠죠. (웃음) 어렸을 때는 어떤 경험들이 다 새롭고 처음이잖아요. 새롭고 처음일 때의 충격도 있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는데, 제가 그런 것들에 대한 기억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어른들은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을 다 잊잖아요. 아이들이 단순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어른들은 어른들 나름의 사정이 있으니까 면밀히 못 들여다보는 부분도 있고요. 저는 당연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어린 제게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와 같은 일종의 억울한 마음이 있었나 봐요. 그런 마음의 내면, 뭔가 말하고 싶고 억울한 마음들이 아직 남아있기에 그것을 자꾸 끄집어내서 영화의 원동력으로 사용하는 것 같아요.


곽: 영화를 보다 보면 한 장면에서 모든 관객이 일제히 웃는 장면이 있어요.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든 윤이에게 선이가 왜 맞고만 있냐고 묻자, 윤이가 “그럼 언제 놀아?”라고 하는 장면이죠. 이 명대사를 어떻게 시나리오로 쓰셨는지 궁금해요.


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 머릿속에서 나온 대사는 아니에요. 20대 초반, 입시 지옥을 뚫고 왔지만, 삶은 전쟁 같고 매일매일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상처받고 인생이 안 풀리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시기에 지인 분이 웃긴 이야기가 있다며 그 분의 자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유치원 다니는 아들이 있는데 자신이 맞고 나서 신나게 놀았다는 이야기를 했대요. 그래서 “이 바보 놈아. 맞고만 있으면 어떡해!”라고 했더니 엄마, 아빠를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그럼 언제 놀아요?”라고 했대요. 지인 분은 그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하셨는데, 저는 한 방 맞은 것 같았어요. ‘나는 계속 인생이랑 사람들이랑 놀지도 않고 싸우기만 했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때 이후로 ‘놀면서 살아야지’라고 마음에 담아뒀었죠.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선이가 딛고 일어섰으면 좋겠는데,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보내고 난 후의 모습과 더불어 동생이 한 방을 날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대사가 나왔죠. 사실 저희 스텝끼리 내부 시사회를 할 때는 그 장면에서 아무도 웃지 않았어요. 누가 거기서 웃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상영을 한 이후에는 한 동안 웃음의 의미를 알아내느라 시간이 걸렸어요. 


관객: 지인과 이야기하다가 발견한 건데 영화 속에서는 선이가 지아를 위해서 봉선화를 빻는데 포스터에는 지아가 봉선화를 빻고 있어요. 혹시 의도하신 부분이 있으신 건가요?


윤: 저희 포스터는 ‘빛나는’의 박시영 실장님이 제작해주셨어요. 사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저도 이번 주에 들었어요. 영화 속에서는 선이가 지아에게 봉선화 물을 들여 주고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 선이가 지아에게 다가가죠. 실장님께서 후에 ‘과연 지아는 선이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토대로 영화의 뒷이야기까지 확장을 해서 포스터에 담으셨다고 해요. 


관객: 영화 정말 잘 봤어요. 영화를 정말 보고 싶었어요. 서울에 상영관이 열 개 정도 있는데, 매일 한 회 정도만 상영을 하더라고요. 입소문 타서 상영관이 많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이 캐릭터는 정말 최고 같아요. 어떻게 저렇게 멘탈이 강할 수 있는지. 선이가 따돌림을 당하는데도 늘 다가가는데 어떻게 그 캐릭터를 그리셨는지 궁금해요.


윤: 일단 정말 감사합니다. 퐁당퐁당 상영이라 하는데 저희는 진짜 ‘퐁’ 상영에 가까워요. ‘당’도 없고요. 저도 제 영화를 보기 힘든 상황인데, 이런 자리에 와주신 관객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우리들>의 이야기가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라서 제가 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선이를 그린 것도 있죠. 그런데 그 당시의 저를 생각해 봤을 때 선이가 착해서 선이가 아니에요. 어쩌면 되게 소심하기도 하고 겁도 많고 친구 사귀는 기술이 서툰 친구들이 있잖아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런 면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는 내가 익숙하고 친하게 나설 수 있지만, 새로운 집단에서는 적응하기가 힘든 경우가 있잖아요. 모두가 선이처럼 친구 사귀기가 어렵고 힘들고 두려운 입장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랬을 때의 마음들을 그리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고 특히 선이는 집안의 맏이잖아요. 부모님이 이 아이를 나름의 사랑으로 돌보긴 하지만, 집안의 각자의 어려운 사정들이 있고 맏이는 그걸 특히 내면적으로 많이 받아들여서 그게 멘탈을 강하게 하는 것도 있다고 봐요. 사실 아이들도 이야기 하지 않을 뿐이지 집안의 문제를 눈치 보며 저절로 알게 돼요. 우리도 그렇게 컸고요. 모든 아이들이 집안에서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멘탈이 강하다고 느끼셨다면 우리 아이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고 아마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시는 거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많은 것들을 맞닥뜨리면서 이것을 소화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 같잖아요. 근데 저는 한편으론 어른이 되면서 그걸 포기한 것 같아요. 싸우고 부딪히면서도 어릴 때는 그 관계를 회복하고자 많이 노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마음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을 아이들에게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느꼈고 그래서 아마 선이라는 캐릭터가 태어난 것 같습니다. 


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인디토크는 여기서 마무리 지을게요. 여러분들을 위한 서프라이즈 선물이 하나 더 있어요. 영화의 빛나는 주인공들이죠. 최수인, 설혜인, 강민준 배우가 여러분들 만나러 무대인사 왔습니다.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최수인: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들>에서 선 역할을 맡은 최수인입니다. 더운 여름에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강민준: 안녕하세요. 저는 윤이 역할을 맡은 강민준입니다. <우리들> 영화 많이 소문내주시고요. <우리들> 파이팅!


설혜인: 안녕하세요. 저는 지아 역할을 맡은 설혜인입니다. 저희 영화 보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저희 영화 많이 칭찬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흔히들 나이가 들면 감성보다 이성의 힘에 지배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때론 어른이 되기 위한 필수요건으로 감성보다 이성을 추켜세우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감정은 묻고 차가운 이성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이 됐다. 그런 우리에게 영화 <우리들>은 잊힌 어린 시절의 감정을 되새김질 해준다. 더불어 너와 내가 봉선화물로 물들여져 우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딱딱했던 마음에 붉은색 감정을 지펴줬다. 우리의 마음에 덧입힌 <우리들>의 따뜻함이 첫 눈이 내리는 날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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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스폰지하우스, 씨네코드 선재, 미로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정하,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작년 11월 30일 씨네코드 선재가 <마스터> 상영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약 3달 후,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또한 휴관 소식을 알렸고, 그로부터 약 한 달 반 뒤에는 미로스페이스가, 또 한 번의 한 달 뒤에는 스폰지하우스가 폐/휴관 소식을 알렸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 약 7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안녕에 처음에는 안타까움이 몰려왔지만, 그 안녕이 두 번째, 세 번째가 되자 점점 미안함이 몰려왔다. 강릉 신영은 지역을 핑계로 한 번도 찾지 못했으며, 그 외의 극장들을 찾은 횟수도 한 손에 꼽는다. 그간 입으로만 독립예술영화와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사랑한다고, 지지한다고 말해온 것만 같아 창피했다. 그리고 그 힘든 시간 동안 꿋꿋이 다양한 영화를 상영해주었던 그들이 새삼 고마웠다.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는 이 기사를 통해 그간 좋은 영화를 상영했던 극장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고자 한다. 






1.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2012년 5월 18일 개관 후 2016년 2월 29일까지, 1383일 동안 강릉씨네마떼끄에 의해 운영되어온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강원도 내 유일한 예술영화관이자 최초의 비영리극장이었다. 정부 기관과 기업의 도움 없이 민간의 힘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인디스페이스의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서울에 피카디리와 단성사가 있었다면, 강릉에는 신영극장이 있었다. 50년대부터 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강릉시민들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선 후에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란 간판을 달고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개관과 휴관이 있던 2012년, 2016년을 제외하고, 매년 약 100편 이상에 달하는 영화를 상영했다는 사실을 통해 강릉시민들에게 영화적 다양성을 제공하기 위해 그들이 했던 노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신영극장에서 휴관 소식을 알리자 많은 사람이 앞으로의 다양성 영화 관람을 걱정하기도 했다. SNS에선 부모님은 물론이거니와 외조부모님까지도 신영극장을 이용했다는, 이곳의 긴 역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글도 있었고, 화면비가 좁은 영화에는 그에 맞게 스크린 옆 천막 커튼을 조정해주곤 했다는, 영화를 향한 신영극장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글도 있었다. 그 어떤 극장들보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힘주어 말했던 만큼, 약속했던 대로 올해 안에는 신영극장의 재개관 소식을 꼭 들을 수 있길 바란다.






2. 스폰지하우스


스폰지하우스는 2006년 4월 <카모메 식당>을 첫 상영으로, 압구정에 문을 열었다. 이후 종로(시네코아)와 명동(중앙시네마)까지 그 세력을 넓혔고, 2007년 12월 1일에는 광화문에도 둥지를 틀었다. 광화문 스폰지하우스는 다른 극장들과 달리 갤러리와 작은 키친이 함께 있는, 국내 최초의 복합 극장 공간이었다. 이 명성에 걸맞게 <해피 해피 와이너리> 개봉 시 이벤트로 상영 시작 전 관객들에게 와인을 한 잔씩 나눠줬는데, 와인 때문에 상영 중 조는 관객들이 많았다는 웃지 못할 후일담도 있다. ‘좋은 영화는 관객들이 먼저 알아본다’라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양한 영화를 소개해주었던 이곳은 일본 인디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특히 더 소중하고 애틋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SNS 상에는 특히 스폰지하우스에서 일본영화를 보았던 추억과 그 영화들을 이곳에서 볼 때의 그 감칠맛을 곱씹으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안녕이 독립영화예술관이 수입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연히 일어날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유명한 일본영화 제목과 같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스폰지하우스가 재개관하고, 재개관한 스폰지하우스에서 일본영화를 볼 수 있는 기적이.






3. 씨네코드 선재


씨네코드 선재를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았다. 고즈넉한 한옥 골목을 빠져 나와 한 건물로 향했다.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몇 층인지 확인하며 헤매다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계단을 내려가 오래된 매표소를 마주했다. 북촌 특유의 색에 잘 어울린다고 잠깐 생각했다. 로비 안, 긴 복도에는 감각적인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생소한 영화와 포스터도 더러 있었다. 멍하니 포스터를 바라보다 보니 영화 상영 시간이 다가왔다. 표를 확인하고 극장에 들어섰다. 소극장을 개조한 듯한 극장 내부에 놀라며 한편으론 궁금해졌다.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극장일까? 씨네코드 선재는 2008년 9월 19일 첫 영화를 선보인 뒤 8년간 한 자리를 지켜오다 작년 11월 30일 마지막 상영으로 막을 내렸다. 영화사 ‘진진’이 극장을 운영했다. 처음엔 대학로 극장 ‘하이퍼텍 나다’와 같이 운영하다, 대학로 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씨네코드 선재의 운영에 집중하게 됐다. 여러 좋은 기획전이 많았다. 특히 ‘북촌 영화 산책’은 지역과 함께 하는 훌륭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간 쌓여온 만만찮은 적자와 건물주의 리모델링 요구로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SNS를 통해 씨네코드 선재를 추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곳에서 좋은 영화를 많이 봤다는 이도, 예쁜 영화엽서와 팸플릿이 많았다는 이도, 속상함과 미안한 기분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씨네코드 선재라는 공간은 사라지지만, 극장을 드나들었던 관객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4. 미로스페이스


광화문은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엔 가지각색의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여러 색의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도 꽤 있었다. 2006년 처음 문을 연 미로스페이스도 그중 하나였다. 단순히 영화를 파는 극장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숨 쉬고 즐기고 싶은 열망으로 미로스페이스는 생겨났다. 문화 예술적인 시간과 공간의 문지기가 되고 싶다는 의지도 비쳤다. 미로스페이스는 극장 임대를 적지 않게 했다. 특히 2012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이곳에서 관객을 만나며 좋은 추억을 쌓았다. 이런 점에서 미로스페이스는 독립영화계의 숨통을 틔워줬다고 볼 수 있다. 2015년 6월 인디스페이스가 서울극장으로 옮기면서 미로스페이스는 사운드 특화관이라는 특색을 가지고 재개관했다. 그러나 재개관한 지 8개월 만에 다시 휴관하게 됐다. 처음에는 영사기 문제로 상영을 취소하더니 얼마 가지 않아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했다. 극장 관계자는 ‘잠깐의 휴식’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기약 없는 이별이라고 보는 게 맞다. “나만 알고 싶은 영화관, 그러나 나만 알면 안 되는 영화관 : 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다”는 미로스페이스의 문구와 달리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또 하나 사라졌다. 이런 사실을 접한 뒤 많은 이들이 SNS로 아쉬움을 표했다. 그곳은 좌석과 사운드 시설이 좋았다고 하는 이도, 꼭 돌아오기를 바라는 이도, 안타까움과 서운함을 털어놓으며 정부의 문화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며 미로스페이스가 그간 쌓아온 뜻 깊은 궤적을 찬찬히 돌아본다.





사회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할 때 건강해진다. 자유 사회의 기본은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삶을 획일화하지 않는 것에 있다. 현재, 극장을 지키기 위해 이와 비슷한 목소리를 외치고 있다. 독립예술영화관이 차례차례 무너지고 있고, 인디스페이스와 광주극장도 비슷한 위험에 처해있다. 문화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고 획일화된 상품만 만들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만큼 건강한 영화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산업적 논리에 따라 ‘작은(혹은 어설픈)’ 영화는 상영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누군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산업의 영역에만 있지 않다. 영화는 문화이며 예술이고 복지의 영역에 위치한다. 올해 영화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그동안 영화 산업에 집중됐던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지역 영상문화 전반으로 확대한다고 개정 이유에서 밝히고 있다. 정리하면, 그동안 ‘영상산업’에만 법의 목적을 국한했다면 이제 ‘영상문화’ 전반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그간 해온 독립예술영화관 지원정책을 뒤집어버렸다. 어설픈 꼼수로 독립영화계를 압박하며 다양성을 말살하고 있다. 서두에서 밝힌 고마움, 미안함, 부끄러움은 글쓴이의 사적인 고백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왜 미안하고 고맙고 부끄러운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거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나눌 건지, 건강한 사회와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같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어렵다. ‘독립영화와 표현의 자유, 당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디스페이스의 손을 잡아야 한다. 후원 캠페인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 인디스페이스 크라우드펀딩 후원하기 bit.ly/1TgtliH 

    주춧돌(CMS 정기후원) 신청하기 bit.ly/28Kt5wO 


☞ 강릉씨네마떼끄 정기후원 신청하기 http://ow.ly/XPref


☞ 광주극장 후원회원 신청하기 bit.ly/1S1JW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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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와 여자줄 관람평

김은혜 | '원래부터'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

박정하 | 재현 없이 어떻게 폭력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모범적인 답안

김민형 |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용기와 연대의 기록

위정연 | 뿌리깊이 박힌 잘못된 문화, 그 속을 낱낱이 파헤치다

김수영 | 한 개인의 삶을 옭아맨다면 그것은 전통이 아닌 악습





 <소녀와 여자리뷰: '원래부터'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혜 님의 글입니다.


매년 우기가 시작되는 시기에 여성할례도 시작된다. 할례를 마친 소녀는 얼굴에 흰 파우더를 바르고 몸에 장식을 걸고, 모두가 그녀의 주변을 에워싸고 마을을 행진하며 전통춤을 춘다. 이제 여자가 되었고 시집보낼 수 있다며 가족들은 즐거워한다. 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에서 여전히 전통으로 남아있는 여성할례는 소녀에서 여자로 넘어가는 과정, 그리고 마을 사회에 안전히 안착할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매년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소녀들에게 ‘할례를 해야만 여자가 될 수 있다’, ‘전과는 행동이 달라지고 똑똑해질 수 있다’, ‘여자가 되었기에 결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런데 성기를 절제하는 할례가 그것들과 무슨 상관이었을까?



할례 시술자는 한 사람당 칼을 하나씩 쓰고 약국에서 약품을 구매한다고, 전보다 합법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고 인터뷰에서 말하지만, 사실 치료제라고는 소의 오줌이나 똥이 전부이다. 박테리아가 많아 감염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 주민들은 소에 대한 친밀감이 상당하여 소똥이 상처 난 부분을 지혈해준다고 믿고 있다. 그렇게 ‘전통’이라는 명목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에게 집중했던 카메라는 이제 할례 반대 캠프로 이동한다. 할례 기간 동안 캠프로 도망쳐 피신한 소녀들은 내 몸에 상처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배운다. 친구들과 함께 뛰노는 그 아이들은 영락없이 철부지 소녀 같아 보여도 자신을 어떻게 지켜 나가야할지 고민하고 도전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영화는 할례 시술자부터 시술받은 소녀, 그리고 할례를 반대하는 캠프의 소녀들과 NGO, 정부 국회의원들까지 여성성기절제(FGM)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소녀와 여자>가 담고자 하는 내용은 FGM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할례’로 보느냐 ‘여성성기절제’로 보느냐의 차이를 통해 뿌리 깊게 박힌 전통이 얼마나 그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할례를 하지 않고 결혼했으나 시어머니와 주변의 눈치에 못 이겨 결혼 후에 할례를 한 여자, 할례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었는데 너의 잘못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외면당한 여자, 할례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가족에게 마을 사람들이 들이닥쳐 신체의 일부를 잃은 아버지까지. 작게나마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마저 얼마나 힘든 것인지 각각의 입장을 번갈아 가며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먼 얘기 같아 보이는 여성성기절제가 주된 내용이지만, 신체에 흠집을 내면서까지 여성의 정조를 강요하는 성역할에 반대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아마 최근 국내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떠오르며 많은 생각이 들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속에서도 함께 알게 모르게 뿌리 박혀 있는 관습은 없었을지. 그리고 소신 있게 ‘No'를 외친 소수의 사람들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고통 받고 있지 않을지 성찰해야할 때이지 않을까. 모든 것이 ’원래부터‘ 그렇게 있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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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줄 관람평

김은혜 | 팔찌, 색연필, 매니큐어만으로도 치열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박정하 |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영화

김민형 | 너, 나로 흩어지는 개인이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

위정연 | 이다지도 강렬한 장편 데뷔작

김수영 | 관계는 출발선부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마냥 어려운 것은 아니야



 <우리들리뷰: 관계는 출발선부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마냥 어려운 것은 아니야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영 님의 글입니다.


간혹 어린 사촌 동생들과 함께 있을 때가 있다. 그 때, 그들을 지켜보면 ‘왜 저런 사소한 것에 울고 웃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 역시 동생들처럼 사소한 것에 울고 웃던 시절이 있었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아이의 감성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데, 그러한 아이의 감성을 영화에 반영하는 감독이 있다. 바로 단편영화 <콩나물>(2013)의 윤가은 감독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는 감독이 이번엔 전학생 ‘지아’와 따돌림을 받고 있는 ‘선’의 우여곡절을 담은 영화 <우리들>로 돌아왔다.



주인공 선은 활발하기 보단 조용하고 공부도 그리 잘하진 않기에 학급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다. 그리고 별 이유 없이 반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보라’의 패거리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다. 그런 선은 방학식 날, 우연히 전학생 지아를 만나고 둘은 서로에게 듬직한 친구가 되어간다. 서로를 알아가는 와중에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의지하는 장면이 괜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러나 즐거웠던 시간도 잠시, 둘 사이에는 간극이 생기기 시작한다. 엄마와 떨어져 사는 지아는 엄마와 함께 있는 선의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끼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선은 부유한 지아를 보며 복잡 미묘해진다. 거기에 보라 패거리의 이간질까지 더해지자 둘의 관계는 파국에 치닫는다. 관계가 형성되고 관계에 장애물이 생기는 과정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별 다를 것이 없다. 내게 없는 것을 타인에게서 찾을 때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마련이고, 그 박탈감이 상처를 자아내는 촉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서로를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한 번 등을 돌리면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선과 지아처럼 서로 다른 너와 내가 우리가 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다. 아이들은 관계의 맺고 끊음이라는 연속선상의 출발점에서 관계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어쩌면 관계에 있어서는 우리도 같은 출발을 했을 것이리라. 그리고 당시의 시작점에서 두 소녀처럼 깨달았을 것이다. 때리고 때리면 놀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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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깨는 어떤 욕구에 관하여

 김경묵 감독 특별전 : 이것이 우리의 끝이 아니다 <줄탁동시>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6월 19일(일) 오후 2 30분 상영 후

참석: 김경묵 감독

진행: 장건재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위정연 님의 글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1년 2개월 간 수형생활을 한 김경묵 감독이 지난 19일 <줄탁동시>(2011) 인디토크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영화를 상영하고 얘기를 나눠보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라는 감독은 약간은 상기되면서도 긴장된 표정으로 자리에 참석했다. 이번 인디토크에서는 <줄탁동시>에 관한 질문들과 더불어, 지난 해 동안 감독이 보고 느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오고갔다.  



장건재 감독(이하 장):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를 만드는 장건재라고 합니다. 오늘 보신 <줄탁동시> 연출하신 김경묵 감독님 오셨는데요, 작년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시고 옥중에 계셨어요. 


김경묵 감독(이하 김) : 반갑습니다. 출소한 지 3개월 쯤 됐어요. 지금은 사람도 만나고 사회를 다시 배우면서 지내고 있고요. 이런 자리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얘기하는 게 오랜만이어서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장: 감독님의 그 전 영화들 <유예기간>(2014)이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2013)는 개인적인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영화였다고 한다면, <줄탁동시>는 김경묵 감독 자신을 깨는 듯한 영화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새로운 김경묵 감독의 데뷔작 같은 영화 같더라고요.


김: <줄탁동시>의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두 인물이 자신의 삶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처럼 저도 알을 깨고 나오고 싶었던 게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장: 근황 토크부터 먼저 해볼까요.(웃음) 출소하신 뒤에 영화는 많이 보셨어요?


김: 나오기 전에는 많이 보고 싶었는데, 막상 나오니깐 사회를 다시 배우고 사람을 다시 만나면서 생각만큼 혼자 지낼 시간이 없더라고요. 감옥에 관한 영화들은 봤었어요. 특히 <사형수 탈출하다>(1956)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제가 독방에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깐 소리에 굉장히 민감해지더라고요. 직원들의 발자국 리듬이라든지 특정한 소리들을 다 알겠더라고요. 그런데 <사형수 탈출하다>를 보면 사운드가 예민하게 디자인되었어요.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독특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안에 있는 사람의 입장이 되니깐 그제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또 <쇼생크 탈출>(1994)도 보고요. 다 탈출하는 영화들이네요.(웃음) 공감을 많이 하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장: 나오시면 뭐를 제일 하고 싶으셨어요?


김: 영화 보는 것 다음으로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통영에 있었는데, 통영이란 곳이 관광도시로 참 잘 되어있어요. 구치소 바로 옆에 바닷가가 있어서 봄날의 기운도 느껴졌고요. 바깥의 세계와 안의 세계가 너무 달라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약간 당황스러웠어요. 그렇게 출소 후 통영에서 여행을 3박 4일 정도 했습니다.


장: 감독님께선 출소하고서 다시 한 번 감옥에서 만나는 느낌 같다고 얘기 나눴었어요.(웃음) 세상이 진정한 감옥이니까요. 감독님 앞으로의 방향성 같은 것이 궁금합니다.


김: 감옥 안에서 저를 많이 비우고 온 것 같아요. 그래서 다시 채워가는 시기이지 않을까 해서 급하게 뭘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차근차근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관객: 작품 잘 봤습니다. 궁금했던 게 준이랑 순희랑 주유소에서 도망칠 때 여러 가지 장소들이 나오는데, 그런 장소들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준이가 길을 계속 걸어요. 그 장소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 저는 인물을 설정할 때 공간이랑 같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등장하는 친구들은 정주지 없이 계속 야외를 돌아다니잖아요. 이 친구들이 탈출했을 때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그 공간이 어쩌면 관광지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두 친구가 자국민과는 다를 바 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광지 안에서의 모습이 묘하게 다가오는 게 재밌겠더라고요. 


관객: 제가 김경묵 감독님을 처음 뵌 게 2013년도에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GV 할 때였어요. 그 때 감독님이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인물들 상황이 자기 상황과 비슷하다고 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 감독님이 감옥에 가신다는 기사를 접하고 그때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감독님은 어떤 이유나 계기로 그 선택을 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김: 그 고민은 사실 오래 된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군대에 갈 수 없는 사람이겠구나‘ 라고 인식을 했었어요. 그 이후에 스무 살부터 양심적 병역거부 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활동에 깊이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제가 그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여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이 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징병제에 관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를 했는데요, 정권이 바뀌자마자 대체복무제 뿐만 아니라 모든 게 무효가 돼버렸어요. 그 때의 활동이 다 물거품이 되면서 제가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외적으로 발언을 많이 했습니다. 


관객: 저도 그런 취지로 감독님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감독님께서 독방을 쓰셨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감옥에 가게 되면 다 독방을 써야 되는 건지 아니면 본인이 선택을 하신건지 궁금합니다.


김: 독방을 쓰게 된 건, 어떤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수감 초기부터 나올 때까지 거의 독방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책 읽는 거나 글 쓰는 것 밖에 없어서 주로 책을 읽었어요. 과학책을 열심히 읽었어요. 어릴 땐 과학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책들과 멀리 지내고 있더라고요. 한 8개월가량 과학책만 계속 읽었던 것 같아요. 고민을 안 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했고요. 어떤 분들은 저한테 엄청난 시나리오가 나올 거라는 기대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일부러 영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 안에서의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기보다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보내고 싶었어요.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없애고 싶다는 마음에 저와 아무 관련이 없는 과학책이나 심리학책 같이 잡다한 책들을 많이 읽었어요. 그런데 막상 출소를 하고 보니 제가 너무 멀리 있다 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하다못해 영어 공부라도 하고 나왔어야 했나.(웃음) 


관객: <줄탁동시>를 포함해서 모든 작품에 임하실 때 효과음이나 배경음악 등 사운드 배치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김: 사운드는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노출이 되진 않지만, 연출자가 가지고 있는 의도를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일상적으로 우리는 보는 것에 대해선 인지하긴 쉽지만, 들리는 것에 대해선 잘 인식하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고 있죠. 저는 그 점을 영화라는 매체에 적용한 것 같습니다.


장: 마지막으로 오늘 찾아주신 관객 분들께 인사드리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김: 처음엔 긴장이 많이 됐는데, 넓어 보였던 공간이 가깝게 느껴지고 재미있게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원래 옛날엔 유머가 많았었는데요.(웃음) 한번 갔다 오니깐 사람이 확 삭아서 농담을 잘 못하게 됐어요. 오늘 편하게 자리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줄탁동시>의 인물들은 어디에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유한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세계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지만, 동시에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한다. 영화를 만들 당시 김경묵 감독은 영화 속 ‘준’처럼 자신도 알을 깨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마주보는 것, 맞서서 발언하는 것.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고 멋있게 돌아온 김경묵 감독과 함께 한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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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시선 사이>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6월 18일(토) 오후 5 상영 후

참석: 이광국 감독 | 배우 박주희 

진행: 김민아 국가인권위원회 팀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정하 님의 글입니다.


올 여름도 어김없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작품이 우리를 찾아왔다. 올해는 최익환 감독과 신연식 감독, 이광국 감독의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과대망상자(들)>, <소주와 아이스크림>이 <시선 사이>라는 제목으로 한데 모였다.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던 토요일 저녁, 세 단편 중 가장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 <소주와 아이스크림>의 이광국 감독과 박주희 배우가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인디스페이스를 찾았다.



김민아 국가인권위원회 팀장(이하 김): 제가 같이 작업을 해보니, 감독님이 정말 섬세하시더라고요.(웃음) 시나리오를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영화 제안 받고서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광국 감독(이하 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13년동안 진행했고, 좋은 감독님들이 많이 참여하셨던 프로젝트여서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고독사에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어디서부터 잘못됐길래 사람들이 점점 더 고립되는 걸까,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곤경에 처해있는 한 아주머니가 먼저 떠올랐는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아서 한 주인공의 이상한 하루를 통해서 다양한 것들을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험설계사도 감정노동자니 그분들의 어려움도 간접적으로 다뤄볼 수 있겠다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김: 박주희 배우님은 <어떤 시선>(2013)으로 민용근 감독님과 같이 작업했었어요. 인권영화 제안이 또 들어왔을 때 어떠셨나요?


박주희 배우(이하 박): 또 ‘인권’이라 달랐던 점은 없었어요.(웃음) 감독님한테 먼저 시나리오 좀 봐줬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고독사에 대한 이야기인데, 시나리오 보고 얘기 해달라고 하셨죠. 저는 사실 고독사를 다룰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마냥 진지하고 어두울 줄 알았는데, 감독님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 신선해서 놀랐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아서 빨리 만나서 감독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관객: 소주와 아이스크림, 이 두 개가 서로 느낌이 너무 다른데, 소재로 가져오신 이유가 궁금하고 소주병에 바람을 불어넣는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여름에 아버지와 같이 산책하면서 "아버지, 아이스크림 드실래요?" "돈 있어?" 이런 대화를 여러 번 했었어요. 사소한 건데, 저한테 뭔가 남았는지 그때부터 아이스크림을 소재로 할 수 있겠단 생각을 이미 가지고 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권영화 제안 받았을 때 막연하게 ‘아이스크림’이 제목에 들어가겠구나 싶기도 했고요. 아이스크림을 제목으로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보니 단어 자체가 주는 달달함 때문에 이야기랑 동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반대의 것을 같이 붙여야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소주가 생각났습니다. 또 실제로 제가 아는 분이 알코올중독 상태까지 가셨는데, 그분이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안주로 술을 마시기도 했었어요. 그 잔상도 영향이 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이라는, 긴 소주병을 보면서 아버지의 한숨 같은 것을 느꼈다는 뉘앙스의 시가 있어요. 종이컵에 실 묶어서 전화하는 것처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그런 끈이랄까요? 소주가 줄어들수록 마시는 사람의 깊은 한숨, 숨소리 같은 것들이 전달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관객: 옴니버스 영화인데, 감독님 세 분이 같이 모여서 방향을 잡거나 조율하신 부분이 있었나요?


김: 감독마다 성향이 달라요. 주제를 한정해주면 그 주제 안에서 고민해보겠다는 분도 있고, 본인 생각대로 해보겠다는 분도 있어요. 이번에는 감독님들께서 각자 원하시는 주제를 잡으셨어요. 저희가 사실 약간 나 몰라라 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웃음) 제작하는 입장에서 그것이 어떤 이야기가 됐건 감독님들께서 진심을 다해서 최선으로 만들어주시면 그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생각해서 크게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 말씀 드리지 않고 감독님들의 자율에 맡기는 편입니다. 


관객: 우리나라가 OECD 자살률 1위에요. 근데 그 중에서도 청소년이나 청년보다 노인 자살률이 약 2배 정도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고독사 문제가 심각한데요. 청년이자 이 영화에 참여했던 배우로서 박주희 배우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는지, 그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 처음에 고독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압감 때문에 막연하게 어렵고 힘들겠다 생각했어요. 고독사에 대한 뉴스나 기사를 많이 봤지만, 참고할 만한 게 많지 않더라고요. 근데 사실 이 영화 내용에는 가족해체에 대한 문제도 있고 결국에는 개인의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래서 거기에 중심을 둬야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저도 표현하기 쉬워지더라고요.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감독님이랑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 덧붙여 대답하자면 고독사를 떠올렸을 때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층이 노인일 것 같잖아요. 저도 이야기 만들면서 깜짝 놀랐는데, 생각보다 중년 남성분들의 고독사가 많더라고요.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이 그 출발일 텐데 그렇다면 가족이 왜 해체될 수 밖에 없을까도 생각해봤어요. 결국은 모든 가치의 기준이 돈에 맞춰져서 돈을 왜, 얼만큼 벌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남들이 저만큼 버니까 나도 이만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맞춰지고, 사람들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러다 보니까 당장 매일 보는, 나랑 제일 가까운 사람이 지금 어떤 곤경에 처해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지 못할 정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관심이 있다 해도 가족끼리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약간 낯설기도 하죠.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 같아요. 기술 발전으로 우주도 갈 수 있고 당장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전화도 할 수 있지만, 정작 사람 마음을 아는 일은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고요. 여러 면에서 살기는 편해졌지만, 필요 이상의 편안함 때문에 자신에게 더 중요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잃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관객: 타인은 고독사하는 사람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기 힘든 문제일 수 있다 생각해요.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다면 단순히 피해자라기보다는 피의자로 볼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피의자로서의 고독사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언론 시사회 때 어떤 기자 분이 저한테 여기 나오는 인물들 중에 집주인 캐릭터가 제일 불쌍하다고, 나머지 인물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를 끼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셨어요.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답답해졌었는데요, 우리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언젠가는 아플 수 있고 사고로 인해 장애가 생길 수도 있는 거고 정말 알 수 없는 문제인데, 마냥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게 첫 번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이기 때문에 살면서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는 건데, 지금 내가 당장 그렇지 않다고 해서 영원히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내 잘못으로 힘들어지고 고독하게 죽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옆에서 그래도 한 번 봐준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저도 영화를 만들 때 고독사로 죽는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연민은 피하려고 노력했고 꼭 피해자/피의자 둘로 나눌 문제가 아니라 결국 둘 다 힘든 문제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냥 불쌍하니까 도와줘야 된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되게 폭력적일 수 있거든요. 그 둘 사이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가 다소 거칠게 끝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떤 의도에서 그러신 건지 궁금합니다.


이: 마지막에 세아(박주희 분)가 언니한테 안아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과연 언니가 안아줬을까? 저는 아니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어요. 어차피 안아주지 않을 건데 그 이상을 보여주는 건 의미 없고 가족한테도 외면 받고 궁지에 몰려있는 세아의 아픔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실 거기 나오는 인물들 모두가 결국 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여지를 두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 박주희 배우는 마지막 장면 찍을 때 어떠셨어요?


박: 사실 마지막에 세아가 쏟아내는 저 부분 대사가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마음에 드는 대사를 찾기가 힘들어서 현장에서 부딪혀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미뤘거든요. 이 장면 촬영을 앞두고 언니(윤영민 분)랑 감독님이랑 셋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대사들이 금방 나왔어요. 촬영도 한두 테이크 만에 끝났고요.


관객: 소주병을 통해 어떤 소리가 들리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이: 주인공과 아주머니와의 관계가 좀 모호하잖아요. 환영을 만나는, 현실과 비현실이 섞여있는 상태인데, 이 둘을 어떻게 이어줄 수 있을까 고민을 했었어요. 그래서 비현실의 아주머니와 현실의 주인공을 연결해주는 연결고리로 생각하고 찍었던 것 같아요.


관객: 먼저 이 세 영화 중에서 감독님 영화가 제일 인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지 않다고 느꼈는데, 어떤 의도로 그러신 건지 궁금해요. 아주머니의 딸 목소리는 박주희 배우가, 세아의 엄마 목소리는 서영화 배우가 녹음하신 것 같은데, 이 부분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인권영화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이 주는 중압감이나 선입견이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저는 이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영화는 모름지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서 그 타이틀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제가 하고자 하는 걸 하면 어떻게든 인권과 연결이 되지 않을까 했어요. 자칫 잘못해서 어떤 교훈을 주거나 뻔한 결과로 안내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서 하던 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전화통화는 아주머니의 상황이 세아의 어머니가 놓여있는 상황과 별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주머니와 딸의 대화가 세아와 엄마와의 상태나 관계를 다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 어떻게든 인권과 연결될 것이라 생각했다는 이광국 감독의 대답이 가슴에 콕 박혔다. 듣고 보니 참 당연한 말인데, 그간 나의 이런저런 행동들을 인권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그간 ‘인권’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던 이미지들-어려움, 무거움 등-은 전부 우리의 편견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권위가 ‘시선 시리즈’를 통해 13년동안 우리에게 해온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하나씩 지울 때마다, 인권은 우리 삶에 한층 더 깊숙이, 한층 더 만연히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라본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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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연대의 기록  <소녀와 여자>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6월 16일(목) 오후 8 상영 후

참석: 김효정 감독 

진행: 신지혜 아나운서 (CBS 라디오 [신지혜의 영화음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여성 할례에 대한 이야기라 했을 때 여러 충격적인 이미지를 예상했다. 몸이 움츠러들면서 그 공포를 마주하기 꺼려졌다. 영화를 보기 전 윤리적 재현에 관해 비판적으로 보겠다며 다짐했다. 그러나 영화는 예상했던 모든 것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공포를 마주하는 대신 희망을 보고 연대의 감정을 뭉클하게 느낀다. 신지혜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지난 16일, 김효정 감독과 <소녀와 여자>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신지혜 아나운서(이하 진행): 아프리카에 있는 여성들의 삶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는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효정 감독(이하 감독):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한다. 사막 여행을 주로 다니면서 그곳에서 자아를 찾았고, 내 자아를 찾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쯤 2010년에 개봉한 <데저트 플라워>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처음 여성 할례를 공개하는 모델의 이야기인데,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나만을 위했다는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내가 잘하는 일로 이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


진행: 자아를 찾아가는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와중에 주변을 돌아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에서 할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여자가 되고, 어른이 된다.’ 논리적인 근거를 가진 말이 아니라 주관적 감정 혹은 문화와 관습에 따라 익혀진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취재하고 촬영하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감독: 처음에는 취재 보다는 여행으로 갔었다. 제대로 된 자료를 알지 못했다. 그 후에 자료를 찾다보니 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가게 된 거다. 나름 조사를 하고 갔는데, 차이가 있었다. 아프리카 북동부에 있는 케냐, 우간다, 에티오피아를 취재했다. 모두 여성 할례를 하는, 같은 지역이라 생각해서 갔는데 정작 가보니까 달랐다. 케냐와 에티오피아는 80~90%의 여성이 할례를 경험했지만, 우간다는 그 비율이 0.6%에 불과했다. 사실 부족 간 차이였다. 하는 부족과 안 하는 부족, 부족 안에서도 반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다양한 면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할례를 했다고 해서 그 분을 나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흔히 아프리카 하면 가난하고 기아에 시달리며 위생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미디어에서 그런 모습을 접하지 못했을 뿐이다. 진짜 아프리카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진행: 육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으면서까지 ‘내 딸은 할례를 시키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인터뷰를 보면서 용기를 떠올리게 됐다. 어떤 분은 친척들에게 얘기해서 그 아이들만큼은 할례를 시키지 않도록 한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전통이나 문화로 할례를 얘기하기 시작하면 건드릴 수 없는 터부가 된다. 이걸 깨려는 사람들, 특히 할례 반대 캠프에선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할례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 용기를 전염시킨다는 생각을 했다.


감독: 어른들이 먼저 용기를 내고나니 아이들도 용기 내서 할례 반대 캠프까지 온 거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야기를 용기 내어 하고 꿈을 펼치기 위해서 말이다.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이라 안타까운 감정도 들지만, 이후에 그녀의 삶은 찬란하기를 바란다.


진행: 할례 반대 캠프가 용기를 전염시키는 일을 하는 게 아닐까. 그 뜻에 동참하는 게 연대라는 감정인 것 같다. 감독의 마음과 시선이 영화 안에 녹아들면서 연대의 감정으로 뭉클하게 다가왔다. 이 감정을 조율하는데 음악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음악 작업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궁금하다.


감독: 훌륭한 음악 감독님과 함께 작업했다. 처음엔 흔히들 생각하는 아프리카 음악을 해주셨고 아이들이 도망치는 장면에는 슬픈 음악을 깔아주셨다. 그런데 난 아이들을 그렇게 그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슬프고 아픈 이야기이지만, 슬픔을 더 강조해서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음악으로 불쌍하다는 감정을 강요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음악 감독님에게 오히려 더 밝은 음악을 부탁했고 감독님께서 잘 표현해주셨다.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장면이 떠올라서 괜스레 기분이 좋다.



관객: 예전에 할례 관련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봤던 다큐보다 덜 충격적이다. 이런 악습을 깨우칠 충격을 주기 위해 사실적인 장면이 필요하지 않았나. (성기 절제 장면을 왜 넣지 않았나) 실제 장면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오디오라도 들어가야 하지 않았나 싶다.


감독: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고, 친구들 모두 성기절제 장면을 찍지 않겠다고 의견을 맞춘 뒤에야 촬영을 시작했다. 일단 FGM(여성성기절제)을 유튜브나 구글에 검색하면 적나라한 영상과 사진이 넘쳐난다. 이미 해외 영화에선 숱하게 다뤄온 장면이다. 이런 영화는 충격적인 장면을 노출하면서까지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러한 연출 방식이 벌써 10년 전에 나왔고, 더는 식상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생생한 이야기를 증언해주는데, 그 증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절제하는 장면을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촬영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아이에게 다가가서 “이 장면 찍어도 돼?”하고 물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기 절제를 하는 적나라한 자료화면을 봤을 때 나는 꼬박 하루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도 못 청할 정도로 힘들었다. 화면일 뿐인데도 그랬다. 그런 공포를 전시하고 싶지 않았고 이 영화를 보러 오신 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관객: 영화를 보고 난 뒤 어떠한 교훈으로 잘 다가오지 않는다. 난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할 수 있는 운동 같은 게 혹시 있는지 궁금하다.


감독: 최근 어느 기자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 “요즘에 공감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나(기자 본인)는 공감이란 말에 공감할 수 없다, 공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게 물어왔고 이런 대답을 드렸다. 2010년에 영화 <데저트 플라워>를 보고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떠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영화밖에 없었고 내가 느꼈던 공감을 알려보자 해서 영화를 시작했다. 비로소 6년이 지난 후에야 <소녀와 여자>를 개봉하는 이 자리에 있게 됐다. 저 감독은 6년 만에 뭘 했네 대단해,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공감을 표현해주면 된다. 많은 분들이 웹에서 공감을 해주신다. 그 중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움직이는 분들이 생길 것이다. 여기 와 계신 분들 중에도 이 분야의 활동가를 꿈꿀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단 몇 명이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에서부터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나 싶다.


진행: 시간은 힘이 있다. 사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공감과 생각이 모여 세계관과 가치관을 탄탄하게 할 것이다. 꼭 이런 방향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러한 연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힘이 있다. 영화를 통해 스스로 내면을 성찰할 수 있고 외연을 넓혀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감독: 영화 제목이 <소녀와 여자>다. 여성성기절제를 하지 않아도 소녀에서 여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여성성기절제를 했다고 해서 여자가 아닌 것도 아니다. 이 영화는 여성성기절제에 집중했지만, 세상에는 소수자들이 많다.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등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분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단지 소수로만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로 봐주면 어떨까? 그래서 영문 제목이자 부제가 ‘Where am I?’이다. 소녀든 여자든, 노인이든 어린 아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온전한 사람 그 자체로 본다면 차별에 대해 토론할 이유도 없다. 서로를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변해갈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꼭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세계관과 가치관을 탄탄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을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누구든 온전한 사람 그 자체로 본다면 차별에 대해 논쟁할 이유도 없다는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적어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성찰하고 고민하면서 조금씩 외연을 넓혀가려 한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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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 사이줄 관람평

김은혜 | 문틈 사이로 시선 한 번 보내주기만 해주어도 좋으련만

박정하 | 어디에나 있어야 하지만 아무데도 없는 인권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김민형 | 무모한 상상 속에서 손을 내민다

위정연 | 너와 나, 우리들의 시선 사이

김수영 | 일상적 인권과 우리 사이의 이야기




 <시선 사이리뷰: 너와 나, 우리들의 시선 사이


*관객기자단 [인디즈] 위정연 님의 글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제작한 13번째 작품 <시선 사이>는 ‘인권’을 주제로 총 3편의 에피소드를 엮은 옴니버스 영화이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꽤나 무거운 내용일 것 같지만, 예상 외로 유쾌하고 기발한 설정들로 시종 즐겁게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편의 단편영화는 각각 최익환 감독, 신연식 감독, 이광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인권에 대한 세 감독들의 접근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이 다채로운 작품들을 서로 비교하며 보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시선 사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담아내고 풀어냈을까. 그들이 바라본 시선 속 인물과 이야기는 우리와 얼마나 가깝게(혹은 멀게) 존재하고 있을까. 지금 그 이야기를 만나러 가보자. 



영화의 첫 포문을 여는 에피소드는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감독 최익환)이다.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처럼 내용 역시 귀엽고 발랄하게 흘러간다. 여고생 지수(박지수 분)는 친구들과 학교 앞 ‘떡뽀끼’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는 느닷없이 성적 향상을 목표로 교문을 폐쇄하고 학생들의 성적을 집중관리하기 시작한다. 떡볶이에 대한 욕망을 도저히 견딜 수 없던 지수는 학교에 소심한 반항을 벌이게 된다. 영화는 지수의 시선으로 내내 위트 있게 펼쳐지지만, 학교가 잘못된 방향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서슴없이 ‘좀비’라고 부르고, 규칙에 의문을 품거나 질문을 하는 학생들의 말은 일절 듣지 않는다. 학교는 학생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본인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도록 강요한다. 필자의 학생 시절, 모든 말과 행동이 ‘공부’로 귀결되던 그 때가 떠올랐다. 어른들이 하라는 걸 곧이곧대로 해야만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듣던 시절. 왜인지 그 당시엔 나 역시 질문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학교 담을 넘어 기어코 떡볶이 집을 향해 달려가는 지수의 뒷모습이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과대망상자(들)>(감독 신연식)이다. 우민(김동완 분)은 길거리를 지날 때도, 일을 할 때도, 심지어 집 안에서조차도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간다. 그가 계속 되뇌는 혼잣말(‘분노 금지, 젖은 낙엽처럼’)은 우민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자기만의 법칙이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 어느 날부터 수상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GAP(갑)’의 통제를 벗어나고자 모인 ‘WANGTA(왕따)’ 조직이라고 설명한다. 우민은 그들로부터 사회기득권자들이 그동안 사람들을 제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들은 과연 과대망상자(들)인걸까? 혹은 정말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조직인 것일까? 조직의 황당하고 엉뚱한 말을 듣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들이 주변 모든 일을 의심하고 확대해석하는 모습은 다소 과장되어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사회기득권층의 통제는 정말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일까?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너무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신연식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세상을 의심해보는 사람들이 되레 과대망상자 취급을 당하는 것을 비틀고 싶었다’고 말했다. 모든 발전은 한 사람의 작은 의심에서부터 시작된다. 현실에 안주하기만 하는 사람들만 있는 한 이 사회의 발전은 없을 것이다. 영화는 그런 지점을 풍자로 꼬집어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을 장식한 에피소드는 <소주와 아이스크림>(감독 이광국)이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세아(박주희 분)는 누군가에게 보험 하나 팔기가 영 쉽지 않다. 마음은 심란한데 자꾸만 전화로 돈을 재촉하는 엄마 때문에 짜증만 겹겹이 쌓인다. 세아는 열리지 않는 언니네 집 앞에서 서성이다 우연히 만난 아주머니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참에 보험을 팔아보려는 마음으로 아주머니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런데 현실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아주머니의 현실을 엿보게 되고, 그 사실은 세아의 마음이 변화하는 계기가 된다. 사실 세아와 아주머니는 정 반대의 입장을 지닌다. 세아는 부모의 연락을 피하는 입장인 반면 아주머니는 가족의 연락이 절실히 필요한 입장이다. 각자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있기에 누가 더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따질 수는 없다. 모두 다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정작 소중한 것은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내 살길만을 좇느라 가까운 가족은 등한시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아주머니의 죽기 전 모습은 세아에게 그런 점을 일깨워준다. 아주머니는 가족이 있음에도 고독사 했다. 일주일 간 아무도 아주머니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사소한 관심, 전화 한 통만 있었더라도 그런 안타까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세아가 울먹이며 언니에게 건넸던 마지막 대사는 어쩌면 지금 관심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나 한번만 안아주면 안 돼?”  


세 주인공들에게는 각각의 벽이 존재한다.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의 지수에겐 학교 교문이 그렇고, <과대망상자(들)>의 민우에겐 소통의 문제, 그리고 <소주와 아이스크림>의 세아에겐 언니네 대문이 그렇다. 벽을 허물기 위해선 본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이해해주는 사회의 따뜻한 시선 또한 필요하다. <시선 사이>는 시선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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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에 부는 바람줄 관람평

김은혜 | 엄마 말 알아듣고 있으리라는 가장 소박한 소망

박정하 | 미지의 세계에서 불어온 따스한 바람 한 줄기

김민형 | 예지의 우주에는 바람이 분다

위정연 | 마음과 마음이 닿는, 그 따스하고 빛나던 순간들

김수영 | 소리 없이, 마음이 완성하는 소통



 <달에 부는 바람리뷰: 예지의 우주에는 바람이 분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우주를 머리에 지니고 살아간다.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이기에 다른 이가 함부로 가늠할 수 없고, 자신 또한 그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우주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여주며 소통한다. 여기 그 누구보다 광활한 우주를 지닌 소녀 ‘예지’가 있다. 관습화된 언어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녀의 우주를 보고 들을 수 없다. 일부분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만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러 방식으로 계속 말을 걸고 있다. 종종 거실에서 빙글빙글 돌며 희미한 미소를 짓곤 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승준 감독의 <달에 부는 바람>은 이 모습을 보여주며 예지의 우주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예지의 우주를 담는 것이 가능할까? 예지는 시청각 중복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무엇을 보고 들은 적이 없기에 그것을 표현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예지는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엄마와 선생님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그 행동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매 순간마다 일정한 교감이 미흡하게나마 이뤄진다. 엄마 미영 씨는 예지를 안고 쓰다듬으며 궁금해 한다. 예지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을까? 어떤 우주를 머리에 이고 있을까? 감독은 언어로 매개되지 않은 교감을 보여준다. 동시에 미영 씨가 기르는 화초를 계속 비춘다. 미영 씨는 겨울이 오자 춥지 않게 화초를 집에 들이며 정성껏 배치한다. 때때로 화초를 다듬는 미영 씨를 길게 바라보게 한다. 언어로 매개되지 않은 또 다른 교감의 순간이다. 화초를 기르는 모습과 예지와 교감하는 모습을 교차하며 관객에게 생각할 지점을 던진다.



이런 교감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 순간은 효과적으로 연출된 사운드와 비주얼의 결합으로 이뤄진다.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연출을 극대화할수록 예지가 이 영화를 보고 들을 수 없다는 아이러니함 또한 부각된다. 영화 관람의 장벽을 낮추는 ‘배리어 프리’ 영화로 정교하게 재편집된다고 해도, 예지는 이 영화를 느낄 수 없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자기 삶을 담은 영화를 볼 수 없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영화인가. 예지를 바라보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 너머로 무얼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생각해본다. 감독의 시선 자체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발화하지 못하는 이의 특별함을 쫓는 것이 영화에서 어떻게 정당화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달에 부는 바람’을 인터넷 검색창에 치면 ‘달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문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지의 우주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다. 얼굴에 바람이 스치면 희미하게 미소를 띠곤 한다. 그 우주의 달에선 바람이 분다. 엄마 미영 씨의 바람도 있다. 영화 마지막, 미영 씨가 예지에게 “너 다 알아듣지? 다 알아들으면서 모른 척하는 거지?”라고 말하며 “제발 그래라”하며 자신의 바람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이 바람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마음을 느낄 뿐이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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