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공간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  <거미의 땅>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월 23일(토) 오후 7 상영 후

참석: 박경태, 김동령 감독

진행: 신은실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세 명의 여성과 그들의 생활공간, 그리고 폐허가 된 옛 기지촌 동네. 영화 <거미의 땅> 카메라에 담기는 전부다. 자신의 과거를 짧게 증언하는 박묘연씨를 제외하고 두 여성은 카메라를 향해 자신의 과거나 현재를 체계화된 언어로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연기를 하고 춤을 춘다. 화면 밖으로는 자녀에게 편지를 쓰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낭독한다. 이건 과거를 재현하고 현재를 표현하는 세 인물만의 방식이다. 감독은 규정화된 작업 방식으로 세 여성과 공간에 얽힌 기억을 낱낱이 기록하는 대신, 과감히 주인공들의 방식을 따른다. 또한 공간을 끈질기게 응시함으로써 관객들이 감각하는 대신 생각하고 상상하게끔 만든다. 이 지점이 <거미의 땅>를 특별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한파로 거리가 온통 얼어버린 시린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는 <거미의 땅> 인디토크가 열렸다.


신은실 평론가(이하 신): <거미의 땅>의 박경태, 김동령 감독님 모셨습니다. 


박경태 감독(이하 박): 김동령 감독과 저는 기지촌에서 영화 작업을 하다 만나서 공동 연출을 하게 되었어요. 김동령 감독은 2008년 <아메리칸 앨리>라는 외국인 여성에 관한 다큐 작업을 했고 ‘두레방’이란 시민단체에서 활동했어요. 저는 2002년 <나와 부엉이>라는 작업을 하면서 기지촌 현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나오는 박인순 씨와 함께 작업을 했고요. <거미의 땅>을 통해 많은 혼혈인들, 어머니들과 만나고 촬영하면서 점점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어요. 저희가 이전에 활동할 때는 ‘기지촌’이라는 게 동두천이나 특정한 지역만 지칭했는데 알고 보니 경기 북부 모든 지역이 5-60년대, 그러니까 주한미군이 철수하기 전에 기지촌이었더라고요. 이전에 활동하면서 남성 혼혈인 박명수씨라는 분을 만났는데 그 분 기억을 쫓아서 두 번째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기획을 했어요. 사라진 공간을 어떻게 재현할지에 대해 김동령 감독과 투어를 다녔죠. 사라진 공간에 대한 기록을 아카이브로 만들고 동네 분들 얘기를 들으면서 현장을 조금씩 찾았던 것 같아요.


신: 이 영화의 영문제목 ‘Tour of Duty‘에 여러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고 들었는데 감독님 말씀을 들으니까 하나 정도의 의미는 깨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영화는 맨 끝 자막에도 나오지만, 이 영화가 박명수씨를 기리는 작품이란 걸 알 수 있어요. 우선 영화의 인물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말씀해주셨듯이 처음 언급해주셨던 <나와 부엉이>에서는 박인순 씨가 그림 작업하는 게 이미 등장했죠. 또 김동령 감독 전작 <아메리칸 앨리>와 연결시켜서 생각해보게 됐는데,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K라는 여성이 등장하잖아요. 생몰연도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보니까 K씨가 안성자씨가 찾던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실제로 생물학적 어머니라기보다 역사적으로 두 분이 인연이 있어서 연결된 것 같다는 생각을 혼자서 영화를 보면서 상상해봤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세 분의 이야기가 마음을 뒤흔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고 큰 인상을 주는데 이 세분을 어떻게 만나고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셨는지 김동령 감독께 얘기를 듣고 싶어요.


김동령 감독(이하 김): 사실 박경태 감독과 저는 영화를 찍다가 만났다기보다는 사실 의정부에 있는 기지촌 여성단체에서 박경태 감독님이 먼저 일하고 있었고. 저는 학교 졸업하고 자원봉사를 하러갔다가 발이 묶여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다가 나중에 풀타임으로 하게 되면서 감독님을 만났는데 제가 담당했던 일은 외국인 여성에 대한 것이었어요. 필리핀과 러시아 여성과 주로 관계 맺기를 하고 있었고 그 결과물이 <아메리칸 앨리>이었어요. <거미의 땅>에 나온 분들은 박 감독님이 실태 조사를 하거나 해서 첫 만남이 이뤄진 경우였어요. 비화를 얘기하자면 기지촌에 계시는 나이든 여성들은 당시 저처럼 젊은 여성을 품에 안아주지 않아요. 권력관계가 생기다보니. 저한테는 쌀쌀맞았는데 박 감독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랑받았어요.(웃음)


박: 성격도 싹싹해야 해요.(웃음)


신: 제가 보증합니다. 박 감독님은 성격도 싹싹하시죠.(웃음)



김: 영화에 나오는 분들 말고도 10년 동안 알고 지냈던 분이 많은데 이 세 분만이 카메라를 받아들이셨고 카메라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하길 원했기 때문에 세 분과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신: 첫 시퀀스의 박묘연 씨가 하는 얘기는 카메라 앞에서 하기 힘든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전에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분이 촬영 이전에 관계를 맺어 가실 때에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거나 촬영 이전에 사전에 약속한 부분이 있었나요?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작업이 행해졌나요?


김: 바비 어머니 같은 경우는 6-70년대 양색시들의 회장이셨어요. 포주나 경찰 등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민들레 협회’의 회장을 20년 정도 하셨어요. 그 분이 카리스마가 대단하셨어요. 파주 지역의 혼혈인이나 양색시들은 전부 다 바비 엄마를 알고 있고 마을의 일을 추진할 때에나 문제가 생겼을 때 바비 엄마를 찾아갔어요. 저희는 한 번도 바비 엄마의 일생에 대해 물어볼 수 없었어요. 함부로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어떤 게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다가 10년 정도 됐을 때 우리가 이러이러한 영화를 찍고 있는데 해주실 수 있냐고 말을 꺼냈고 흔쾌히 하겠다고 하셨어요. 선유분식에 매일같이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맨날 의자 찍고 설탕 찍고 간판 찍고 그러고 있으니까 어머니가 하루는 밤에 전화해서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오라고 할 때 “바깥양반은 집에 있고 자네만 오게”하시면서요. 그 때 ‘아,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해서 카메라를 들고 갔고 그 이후에 몇 번 인터뷰를 했는데 영화에 나오는 건 첫 번째 인터뷰예요.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처음에 갔을 때 바비 어머니가 기생에 관한 ‘화류춘몽’이란 노래를 한 수 쫙 부르시더니 살아온 얘기를 하셨어요. 어머니가 오히려 더 답답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물어볼 것 같은데 안 물어보니까.


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바깥양반’이 박경태 감독입니다.(웃음) 박 감독님과 오래 작업하셨다는 박인순 씨는 바비 어머니와는 대비되는 성격이신 것 같아요. 두 분 다 존재감이 대단하시지만 박인순 씨는 바비 어머니처럼 지역 사회에서 오래 활동하시거나 사회적 관계가 강하다기보다는 그림을 통해서 본인의 자아나 경험을 이야기하시고 시카고에 있는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본인의 감정이나 체험을 주관적이고 압축적이고 문학적으로 표현하시는, 예술가적인 심성을 많이 갖고 계시다는 게 느껴져요. 이 영화에서 <나와 부엉이>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담장 너머까지 가셔서 먹을 것을 뿌리면서 보통 우리가 쓰는 말 외에 다른 소리를 많이 내시기도 하고 몸이나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소리로 들려주더라고요. 그 다른 종류의 언어가 인상적이었어요. 박인순 씨는 평소에도 그림 그리는 것 외에 고수레를 많이 가시는지, 그걸 촬영하는 데에는 동의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 생각을 해보면 바비 어머니 같은 경우는 삼고초려 하셨어요. 친해지기 힘들었어요. 사회적인 관계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고 외부 시민단체나 기자, 영화하는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 명확하게 아셨죠. 촬영이 어떻게 소비되실지 다 아시고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영화라는 것으로 협업하는 과정이 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서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어색한 사이였죠. 그런데 하루는 밥을 해주셨는데 딱 반찬이 저희 고향에서만 나오는 희소한 반찬들, 예를 들어 제사 끝나면 콩나물이랑 생선들 모아서 어젓들 가지고 조림 비슷하게 만드는 반찬이 있는데 그런 걸 내주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같은 고향인 거죠. 거기에다가 어린 시절 갖고 있었던 협소한 동네의 문화, 음식에 관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일사천리로 풀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허물없이 지내기 시작했어요.


신: 먹는 걸 통해서 접근하셨군요.(웃음)


박: 원래 자막 끝에 종철 씨라는 분도 나오는데 이 분도 영화에 모티브가 됐던 분입니다. 정신지체가 있는 혼혈분인데 바비 어머님이 보살펴주셨어요. 그런데 뉴타운 때문에 외부에서 깡패가 들어오고 이 사람들이 술 먹고 두드려 패다가 이 분이 죽는, 살인사건이 일어난 거예요. 바비 엄마가 너무 억울해서 저에게 전화해서 이걸 외부로 알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때 형사들도 강력사건이 아닌 과실치사로 처리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제가 시사인 기자를 섭외해서 경찰서 가서 따지기도 하면서 기사화 됐죠. 그 때 바비 엄마가 풀리신 것 같아요. 본인도 이런 거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셨던 것 같고. 어쨌든 찍자고 한 적은 없었어요. 항상 거리를 유지했죠. 그러다가 본인이 먼저 다가오셨고 그러다보니 구술사적인 방법이었죠. 자신의 기억을 서사적으로,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경험담을 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죠. 인순 아주머니는 반대로 기억을 풀어내는 방법이 다르셨어요. 전쟁고아시다 보니 글자를 배우지 않으셨어요. 사람을 봐도 직감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신기로 받아들이는 거죠. 제가 어렸을 때 인순 할머니는 술을 드시고 맨날 고함지르고 다니시는 분이셨어요. 고통이 너무 심해서 심리 치료를 받으셨어요. 처음에는 항상 칼 들고 다녀서 무서웠어요. 분노의 표현을 많이 하고 계셨어요. 점점 저랑 작업을 하다보니까 (믿음 같은 게) 쌓인 것 같아요. 저랑 메뚜기 같은 거 잡으러 다니며 같이 놀기도 했고요. 

<나와 부엉이>를 보며 많이 비판을 했어요. 다큐라는 형식을 잡고, 그 때의 모토가 대상화시키지 않고 낯선 존재를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목표였어요. 결과적으로는 치료되는 과정에 정서적 위안감 등으로 관객들이 불편한 감정에서 탈출하는 걸로 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변화가 없는 거죠. 몇 년 뒤에 찾아가도. 문제는 거기서 생기는 거예요. 다큐멘터리라고 만들었는데 실제와는 다른 거죠. 오히려 저희는 <나와 부엉이>로 더 큰 픽션을 만든 게 아닌가 싶었죠. 영화가 어떤 의미에서 더 큰 픽션이라면 더 과장해서 그들의 트라우마로 들어가자 싶었어요. 바비 어머니는 바비 어머니의 방식대로. 바비 어머니의 구술사도 어떻게 보면 픽션일 수도 있어요. 자기가 경험한 시간을 압축적으로 서사화 시키는 과정이니까. 말을 잘하는 사람이 전달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인순 할머니는 그림을 통해 더 극화시켜버리는 거죠. 하지만 문제가 뭐냐면 안성자 씨 얘기가 나오겠지만 몸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가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까지 역사라는 것, 팩트라는 것, 다큐라는 건 언어로 증언되고 체계적으로 전달되는 것에 한해서 인정해왔는데 그러다 보니 역사 속에서 비명소리, 그림, 몸으로 행동하는 것 같은 주관적인 건 인정되지 않은 거죠. 이번 기회에 공간 속에서 새롭게 다시 채집했어요. 그래서 문제제기 했던 건, “<나와 부엉이> 같은 것들이 다큐지만 오히려 픽션이다”며 솔직해지자 싶었어요. 첫 번째 방식은 구술사 적으로 증거를 모으는 것, 좀 더 나아가 버려지는 것,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 아우슈비츠 같은 데에 보면 긁힌 흔적들을 최근에서야 발굴해서 채집하고 역사 자료로 보존하잖아요. 몸짓이나 비언어적인 부분이 오히려 사실이다 싶었어요.



신: 저도 그래서 특별히 더 <거미의 땅>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경우에 따라 글을 쓰기도 하고 말로 설명하며 여러분을 만나는데, 말이나 글은 영화를 보고 느꼈던 걸 표현했을 때,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말로 뭔가를 잡으려 할 때 손가락 사이로 많이 빠져나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 박인순 씨, 세 번째 안성자 씨를 찍을 때 새로운 방법론, 미학적인 부분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어요. 앞서 얘기해주셨듯이 언어 말고 다른 방식으로 본 자아를 표현하거나 존재하는 방식이 개성적으로 있다는 걸 느꼈어요. 안성자씨는 몸짓으로, 춤을 통해서도 얘기하시지만 춤 외에도 몸짓, 표정 같은 걸로 배우처럼 표현하시죠. 오히려 배우를 능가하는 연기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영화를 통해서 들었어요. 박인순 씨가 본능적으로 외치는 고함과 몸짓뿐만 아니라 안성자씨가 몽키하우스로 짐작되는 공간을 돌아다닐 때 쾅 소리가 나서 놀라서 돌아가는 장면이 연극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두 분을 촬영할 때 감독님이 임하는 방법론이 달랐을 것 같아요. 어떻게 작업하셨나요.


김: 바비 엄마와 박인순 씨 경우는 방법이 정해져있었어요. 카메라에서 취하는 포지션이 정해져 있었죠. 그 포지션을 어떻게 잘 살려서 촬영하느냐가 우리의 관건이었어요. 안성자 씨 같은 경우엔 가장 나중에 주인공 중 한 분으로 선택했는데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우선 말씀을 정말 많이 하세요. 한번 이야기하면 쉼표 없이 세 시간을 말씀하세요.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상한 얘기가 많이 나와요.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고, 시간이 바뀌기도 하고, 이 얘기가 안 끝났는데 다음 얘기로 넘어가기도 하고요. 말하자면 인터뷰의 퀄리티로는 너무 안 좋은 거죠.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박인순 씨를 촬영했던 방식처럼 그 분을 찍어보러 갔는데 가면 안성자 씨가 다 세팅을 해놓는 거예요. 원래는 보통 집안에서 머리를 감잖아요. 근데 아침에 가서 대문을 열어보면 마당에서 막 남편의 머리를 감겨 주고 계신 거예요. 사실 이 분이 ‘애니의 사랑’이라는 타이틀로 [인간극장]에 시리즈로 나왔던 분이예요. 혼혈인들이 얼마나 슬픈지, 한이 뭔지 전형적인 TV 다큐로 오래 찍으셨던 분이라 영화를 같이 찍는다고 했을 때 똑같은 걸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남편의 머리를 열심히 감기고난 후 그 머리를 빗으면서 “회장님, 오늘은 성경구절을 읽어주세요.” 이러면 남편 되시는 분이 성경을 막 읽고, 그런 식의 설정들이 있어요. 그걸 막 찍다보니까 안 되겠는 거예요. 근데 그래도 너무 찍고 싶었어요. 이 분이 사실은 알코올 중독인데 한번 드시기 시작하면 매일매일 일주일을 드세요. 그렇게 술을 많이 드실 때 저희가 찾아가면 괴성을 지르면서 난리를 치시기도 하고 그러는데 술이 깨면 저희한테 “미안하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꽃잎하나 들 힘이 없었다.”고 하기도 하고요. 그 분이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거나 전하시는 말이 저한테는 너무 괴상한 거예요. 박인순 씨와 안성자 씨 다 외부에서 보면 미친 사람이에요. 그런데 안성자 씨가 가진 과장된 몸짓이 저한텐 예뻐 보이는 거죠. 그래서 이 분을 찍고 싶은데 인터뷰도 안 되고 일상도 팔로우가 안 됐어요. 그럼 연기하고 세팅하는 걸 좋아하시니 그렇게 들어가 보자 싶었어요. 그래서 본인의 이야기와 본인이 들었던 이야기 등 여러 가지가 섞여서 이야기가 완성이 됐던 거예요. 현장에서도 이 분과 어떻게 작업해야 할지 몰라서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안성자 씨는 뭘 하길 원하시는지 그걸 알아차리긴 힘든데 본인이 의지가 굉장히 강하세요. 본인이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거예요. 다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박 감독은 약간 좀 과격하고 진보적이라 그런지 마음대로 하시라고 하는 스타일 이예요. 그러면 저는 막 뿔이 나고 그러는 거죠. 현장에서 신경전이 많이 있었어요. 앵글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웃겼냐면, 안성자 씨 찍을 때 앵글이 서로 잡은 게 마음이 안 들면 지나가다 카메라를 쓱 쳐요.(웃음) 안성자 씨는 허구를 가지고 찍는데 제일 즉흥적이었어요. 약간 도박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찍을 때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찍었어요.


신: 이 영화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게, 안성자 씨를 통해 들어갈 수 있었던 ‘애니와 세라의 이야기'예요. 안성자씨가 시제나 인칭 같은 게 오락가락하면서 본인의 언어를 구성하는 방식이 애니와 세라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이미지를 구성하고 보여주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엔 빨래를 할 때 물을 뿌리면서 “세라야”하고 부르실 때는 ‘저 분이 좀 이상하신가? 귀신을 보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애니와 세라의 이야기 처음에는 본인이 애니이고 세라를 회상하는 방식이어서 그렇게 생각하고 따라갔는데, 몽키하우스에서 하얀 옷을 입고 방 복도를 걸어갈 때는 ‘저 분이 애니만 되는 게 아니라 세라도 되는 거구나’ 싶었죠. 나중에 홀하우스를 찾아갈 때는 애니와 세라를 자유롭게 오가기도 하다가 나중엔 아이를 낳고 미군에게 맞았던 얘기를 할 때는 이전에 출연하셨던 박묘연, 박인순 씨의 삶과 겹쳐졌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애니 얘긴지 세라 얘긴지만 따라가다가 나중엔 세 분의 이야기가 결합되기도 하고, 세라가 사라졌다는 내용이 나온 뒤 다시 16살 때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세라의 흔적을 찾고 기억하기 위해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존재, 집단기억의 대표로서의 존재로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안성자 씨 속에서 태어난 애니와 세라 이야기가 재밌었어요. 애니와 세라 이야기는 극적인 장치면서 보통 다큐에서 등장하지 않는 방식이고 다큐에서의 픽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장면에 공간, 창문이나 문이 많이 보일 때는 액자로 느껴지기도 해서 재밌었는데 그 부분을 구상하고 내레이션 하는 과정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박: 바비 어머니의 이야기에도 듣다보면 액자식 구성이 있어요. 지미를 자기가 입양해온 이야기가 있고 다시 낙태한 얘기가 있죠. 그 인터뷰가 파워풀해서 쓴 이유도 있지만 뭔가 고통이 많고 트라우마가 많은데 그것들이 덧대어지면서 표현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안성자 씨의 애니와 세라 얘기는 10년 동안 들었지만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근데 이게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고통을 감당하는 하나의 방법이에요.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하거나 종교에 귀의하는 방식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덧대어가는 거죠. 그 구조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리고 세라와 애니 얘기만 하다가 기지촌을 기억하는 것들을 넣기 시작했어요. 시간적인, 연대기적인 구성은 여기서 의미가 없어요. 오늘은 몽키하우스를 찍어보자고 하면 세라가 죽은 뒤의 먼 뒷얘기일 수도 있고 세라의 초기 얘기일수도 있는 거죠. 안성자 씨도 그 곳을 아니까 가서 이야기를 만들어요. 대강의 이야기 흐름에 맞게. 연기 같은 경우도 한 장면 한 장면 찍으면서도 조금씩 바꾸기도 했어요. 


신: 이 영화에서는 세 인물로 대표되는 역사적 기억이나 사건 외에 공간도 기억을 머금는 느낌이에요. 처음에 바비 엄마가 햄버거를 몇 십년동안 만들었다는 선유분식도 일상적으로 가는 분식점과 다르지 않지만 바비 엄마의 굴곡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보는 그 공간은 뭔가 다른 느낌을 줘요. 박인순 씨가 다니는 골목도 일상의 동네 골목 같은데 ‘라스베가스 클럽’같은 이름이 쓰인 간판들이 있어요. 이를 테면 오즈 야스지로 감독 영화의 간판이 다른 느낌을 주는 것처럼 간판들이 특별한 느낌을 줘요. 또 고수레하러 들어가는 공간도 마찬가지에요. 나무에 붉은 팻말이 붙어있는데 거기에 번호가 쓰여 있어요. 그 번호에는 어떤 의미와 기억이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안성자 씨의 경우에도 예수님 액자라든지 그릇 정리하는 찬장 등 집 구석구석 마찬가지고요. 김 감독님의 말을 들으니까 더 많은 상상이 가능해요. 경기도에 남아있는 기지촌 건물들도 많은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최근 TV에서 박정희 정권의 몽키하우스가 나왔는데 영화에 나오는 곳이 같은 곳인지 궁금했어요. 홀하우스라고 불리는 곳도 서로 비슷해 보이는데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거기에서 수첩도 발견하고 발견한 옷을 입고 춤추기도 하죠. 공간들을 발견하는 영화적인 작업과정이나 촬영하면서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세요.


김: 영화를 시작하면서 사실 세 분의 주인공이 정해지기 전엔 공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만들자고 했어요. 중간에 실패한 것 같아요.(웃음) 사실은 다큐멘터리를 더 이상 찍기 싫어서 책을 만들기로 한 적이 있어요. 파주나 연천 같은 경기 북부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그 때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어요. 지도를 펼쳐서 거기 나와 있는 모든 마을 중에 큰 곳은 다 기지촌이었다는 거죠. 경기 북부 기지촌을 다닐 때도 매우 쇠락해 보이는 데 뭔가 이상해서 물어보면 마을 이장이나 노인분이 여기 양색시가 500명이 살았다고 증언하세요. 옛날에 소설가 김승옥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대요. “남한 전체가 기지촌이었다”라고요. 쇠락한 마을에 시멘트로 만들어진 집이 있다, 그럼 느낌이 오는 거죠. 물어보면 그 곳은 보건소였다고 그래요. 양색시들이 강제적으로 검진을 받으러 가는 보건소가 마을마다 있는 거죠. ‘개미집’이라는 곳도 있는데, 복도가 있고 안에 방이 엄청 많고 방에 다 번호가 쓰여 있어요. 대부분 비어있고 노인들이 살고 계시는데 그 때 느껴지는 시간차는 마치 화석의 지층들을 연구하는 느낌이에요. 아무튼 그래서 공간을 주인공으로 하겠다는 기획서도 열심히 쓰고 그랬는데 공간만 찍으니까 정말 재미가 없더라고요. 폐허 포르노란 말이 있잖아요. 폐허만 찍으면 힙해보이는 뭔가가 있는데 그런 느낌을 야기하다보니까 ‘이건 아니구나’ 싶었죠. 공간만 주구장창 찍는다고 해서 기억을 복원해낼 수는 없겠더라고요. 어쨌든 공간이 기억과 연결돼야겠다 싶어서 다시 인물들을 찾아 나섰어요.


신: 이 영화 주인공이 ‘공간’이라는 생각이 확 들었던 게, 후반부에 나왔던 개발 부동산 가건물이 나오는 장면들에서예요. 그 직전 인서트 샷에 공사 안내 표지판에서 미군 철수 반환지역 안내가 나오면서 다른 장면이 들어가고 미군이 철수한 지역에 부동산이 개발되어서 파주에 큰 아파트나 건설회사 자본이 들어와서 대형 브랜드가 있는 부동산들이 들어서는 징후들을 보여주는데 그걸 통해서 공간이 단순히 폐허로 남아있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고 기지촌의 현재적 의미가 다가왔어요. 실제로 전선에 가까웠던 경기 북부에 기지촌이 많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닌데 평소에 그걸 잊고 살면서 기억의 공간이 투기나 이윤으로 환원되고 기억이 소거되었다는 점이 그 숏을 통해 확 전해졌어요.



신: 오늘 <거미의 땅> GV가 마지막이 된 것이, 감독님 두 분이 곧 다음 작품 때문에 먼 데 가셔서라고 들었어요. 이 작품과도 연관이 있는 프로젝트라고 들었습니다.


김: 준비한지는 꽤 오래 되었어요. 두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인순 할머니가 딸을 찾아서 미국에 가는 내용으로 준비 중에 있어요. 다음 주에 저희가 미국에 먼저 갈 예정이에요.


신: 시카고에 딸이 계신건가요? 2014년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다음 작품을 미리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셨어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라는 가제가 유효한지요.


김: 이 제목은 박인순 씨가 그린 그림 중 하나의 제목이에요. <거미의 땅>에 그 그림이 나옵니다.


박: 딸을 찾아가는 것과 미국에서 거리의 여성으로 살았던 걸 비슷한 방식으로 역추적하면서 만들어진 장면이 들어갈 것 같아요. 미국에서 한국을 찍은 아카이브도 찾아봐야 할 것 같고요. 일단 가봐야 할 것 같네요.



두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정한 협업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두 감독 모두 활동가로 기지촌 여성 공동체 곁에서 생활하다가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다큐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영화 작업의 화두를 이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과 감독 간에는 단단한 유대가 형성되고 소통의 다리가 놓였을 것이다. 때문에 세 여성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곧게 기억을 꺼내보였고, 감독도 기꺼이 그들의 방식을 따름으로써 결과적으로 귀한 시각과 태도를 가진 영화가 탄생했다. 두 감독의 카메라는 계속해서 기지촌 여성들을 향한다. 이들의 끈덕진 관심과 진심이 얼음장 같은 현실에 균열을 내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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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는 현재 진행형: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미래 

<창>(2012), <나무의 시간>(2012), <화장실 콩쿨>(2015)



*관객기자단 [인디즈]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곧바로 눈에 띄지 않지만 꾸준하다. 그것이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이 개척해오고 있는 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길의 미래를 말할 수 있는 것일 테다. 이번 기획기사는 최근 인디스페이스에서도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화장실 콩쿨>의 개봉과 더불어, 놓쳤다면 지금이라도 보고 지나가길 권하는 애니메이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세 편의 단편작을 통해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이 가리키는 미래를 함께 응시해보자.



1. <창 The Window>(2012) 감독: 연상호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큰 흐름을 주도해 온 연상호 감독의 대표작이다. 그 어떤 장르의 영상물보다 대한민국 남성들의 군 생활을 짧은 시간에 리얼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꾸준히 회자되어온 바 있다. 모 포털 사이트 네티즌 평점이 9점대라는 지표가 <창>에 대한 관객들의 공감의 정도를 여실히 반영한다.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가해자로 지목된 정철민 병장을 무조건 비난할 수 없도록, 그리고 분명한 피해자처럼 보이는 홍영수 이병 역시 마냥 동정할 수 없도록 만든다. 모두를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 불합리한 구조에 일침을 가하는 꽉 찬 30분.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2. <나무의 시간 The Hours of Tree>(2012) 감독: 정다희



한국의 유일한 독립애니메이션 영화제로 지난해 11회 행사를 개최했던 인디애니페스트, 그 가운데 2013년 9월에 열린 9회 행사에서 ‘인디의 별’이라는 이름의 대상을 거머쥔 작품이 바로 정다희 감독의 <나무의 시간>이다. 영화제 당시 해당 작품의 대상 수상에 심사위원 모두가 의견을 같이했을 정도로, 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압축된 ‘나무와 사람의 시간’은 강렬하지만 온화한 인상을 남긴다. 순간의 독특하고 난해한 작화조차 따스한 시선이 흐르는 그 지점에서 지금까지 모든 사건들이 담고 있었던 의미를 인지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3. <화장실 콩쿨 Toilet Concours>(2015) 감독: 이용선 



기러기 아빠의 고군분투기를 코믹하게 담아낸 이용선 감독의 <화장실 콩쿨>은 그 기획의도에서 ‘헬조선 직장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다. 지난 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헬조선’이라는 단어에 조소를 띄워 넣었다면, <화장실 콩쿨>은 현실에 대한 비난보다, 그 현실을 살아내는 직장인들에 대한 위로를 담아 넣었다. 딸을 ‘윈터 스쿨’에 기어이 보내고야 마는 아내의 씀씀이에 멋쩍은 미소를 짓다가도, 수화기 너머 울려 퍼지는 딸의 바이올린 연주 소리에 왈칵 눈물을 쏟는 기러기 아빠의 모습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저력이 수면 위로 오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으로 제65회 칸영화제에서, 정다희 감독은 <의자 위의 남자>(2014)로 동명 영화제의 67회 행사에서 감독주간 단편부문에 공식 초청된 바 있다. 지난 7일 개봉한 <화장실 콩쿨> 역시 최근 상영관 개수가 확대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비단 위 세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한국 독립애니메이션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이들의 행보에 기울이는 귀와 꾸준한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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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의 땅줄 관람평

차아름 | 거미처럼 사라져간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

김수빈 | 폐허마다 매여 있는 삶, 고여 있는 한(恨)

심지원 | 고스란히 흉터로 남은 그들의 상처

추병진 |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과거를 재현할 수 있구나

김가영 | 화려한 경제성장의 그늘 속, 마침내 유령이 되어버린 그들의 이야기 



 <거미의 땅리뷰

<거미의 땅> : 거미처럼 사라져간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



*관객기자단 [인디즈] 차아름 님의 글입니다.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미군 위안부와 관련된 끔찍한 역사적 사건인 '몽키하우스와 비밀의 방'을 다룬 적이 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며칠 동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프로그램에서 다룬 역사적 사건과 맞닿아 있다. ‘뺏벌’이라 불리는 반환미군기지의 기지촌에 살고 있는 세 여자, 박묘연, 박인순, 안성자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첫 장면은 꽤 오랫동안 풀벌레 소리와 함께 먼 풍경에서 시선을 멈춘다. 그러다 점점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공간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시각적 공간이 안으로 들어올수록 소리 역시 풀벌레 소리에서 훈련 소리로 추정되는 남자들의 무리 소리로 바뀌어 간다. 처음 시작을 여는 이야기는 분식집을 운영하는 박묘연의 이야기다. 셔터 문을 몇 차례에 걸쳐 올려야 겨우 올라갈 만큼 낡은 분식집에는 한때 빼곡히 적혀있던 메뉴판 위에 손 글씨로 적어놓은 네 가지 메뉴만을 판매할 뿐이다. 카메라는 느린 시선으로 한곳을 오랫동안 담아내며 대화도 없이 TV소리만 공허하게 화면을 채워낸다. 이처럼 영화는 매우 정적이며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 또한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어떤 질문을 했고 무엇에 대한 답변인지 알 수가 없지만 한탄스레 뱉어내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구한 사연이 절절하게 담긴다. 박인순은 세 등장인물 중 가장 큰 분노와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미군남편을 따라 시카고로 떠났지만 결국 딸을 남겨두고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녀. 미군을 상대하며 성병을 얻고 평생 딸을 그리워하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분노가 치밀어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처절하다 못해 섬뜩할 정도로 안타깝다.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박스를 모아 파는 걸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그 박스 위에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그녀가 유일하게 고통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이다. 반면 안성자는 세 인물 중 가장 유쾌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반려견과 장난을 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혼혈인인 그녀는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에게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한 영화의 후반부인 ‘애니와 세라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이다. 



전반부에는 박경태 감독의 목소리로 유령을 빗대어 기지촌이 형성된 배경과 그 곳의 아픔을 담담하게 전한다. 앞서 말했듯 안성자의 시선으로 이끌어가는 후반부는 김동령 감독의 목소리를 빌려 ‘애니와 세라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라고 하기엔 연출자의 의도가 다분히 들어간 재연으로 보여준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몽키하우스, 홀하우스 등 그 때의 세라가 거쳐 갔던 과거의 기억을 관객의 눈앞으로 불러낸다.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기지촌에 대한, 그리고 그 곳의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때문에 이슈가 되었던 '몽키하우스'도 많은 충격을 안겨준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는 필요에 의해 ‘쓰여진’ 여성과 또 필요에 의해 ‘버려진’ 여성들에 대한 소름끼치도록 아픈 역사를 돌이켜보게 한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미 되풀이되고 있는지 아니면 되풀이될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관심은 갖는 것,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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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7주기 추모상영회: 국가폭력 특별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두 개의 문>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월 20일(수)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일란 감독, 이혁상 감독

진행: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시간은 흘러감과 동시에 그 위로 또 다른 숱한 시간들을 쌓아 올렸다. 그렇게 모든 것이 흐릿해져 갈 즈음 영화 <두 개의 문>은 그 때의 기억을 다시금 수면 위로 올려 놓았다. 용산참사 이후 어느덧 7년의 시간이 흘렀다. <두 개의 문>의 감독과 참사 당시 철거민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열린 7주기 추모상영회 현장을 전한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이하 진행): 용산참사 7주기를 맞이해 이렇게 <두 개의 문>을 인디스페이스에서 다시금 상영하게 되었는데요, 김일란 감독님의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김일란 감독(이하 김): <두 개의 문> 마지막 GV를 인디스페이스에서 했었죠. 오늘 이렇게 보니까 정말 오래 전 일이구나 싶네요.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진행: 7주년을 추모하며 열린 이 [국가폭력 특별전]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혁상 감독님은 <두 개의 문>이 오랜만에 극장에서 상영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이혁상 감독(이하 이): 저는 지금도 영화를 보면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들어요. 조금 잘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지금 <두 개의 문> 속편을 만들고 있습니다. 1편을 뛰어넘는 2편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잠깐 들었어요. 


진행: 참 잘 만든 영화죠. 독립 다큐멘터리로서는 ‘대박’인 7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IPTV 등 까지 합치면 10만명이 넘을 거 같아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2편으로는 어떤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습니까? 저도 여러 가지 재판 과정을 함께 참여했지만, 굉장히 편파적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두 개의 문>을 통해 그것들을 이야기하셨고요. 다시금 속편을 만들고 계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 2013년 1월 30일로 기억을 하는데, 그때가 출소자 분들이 나오신 날짜에요. 여전히 그 분들에게는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속편을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어요. 이혁상 감독의 말처럼 이 작품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자신도 없었고요. 근데 출소자 분들이 사시는 걸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니, 각자가 겪어오셨을 7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고, 아직 용산 참사는 끝나지 않았음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존자 분들 중에 5분께 부탁을 드려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었습니다. 


진행: 언제쯤 영화가 나올 것 같나요?


이: 저희가 이번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영화제는 9월 즈음 열리는데요, 거기서 최초 공개될 예정입니다. 



진행: 제목은 <두 개의 문 2>인가요?


이: 가제로는 그렇고요, 여러 후보들이 있습니다. 


진행: 속편을 기대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1편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것이었나요? 진실의 실체를 밝혀내고 싶으셨나요? 마지막 기자가 했던 이야기가 감독님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요. 


김: 100분이라는 시간 동안 재판에서 어떤 쟁점을 가지고 공방이 벌어졌는지, 25시간의 진압 과정이 어땠는지를 최대한 정교하게 보여드린 다음에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어요. 기자님이 말씀한 것처럼 정말 중요한 것은 ‘국가가 국민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하는가’인 거죠. 100분의 시간은 결국 이 중요한 한 마디를 하기 위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왜 그렇게 무리하고 성급한 진압 작전을 해야 했는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하는 것이 1편의 주된 이야기였다면, 2편은 생존자 분들의 경험이 왜 또 다시 중요해지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편은 생존자 분들의 마음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진행: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네요.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관객 여러분도 2편에 대해 기대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용산참사가 일어난 첫 날부터 순천향대학병원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시신을 두 눈으로 확인했던 사람인데요, 영화 속에는 유가족들이나 철거민들의 주장, 이야기가 거의 드러나지 않더라고요. 참사 이후의 진상 규명에 대한 처절한 모습도 그려지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의도나 방향이 개입된 건가요? 


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사실에 대한 입증이나 표현들을 담는 것은 이전에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충분히 다뤄줬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가해자라고 이야기되는 경찰의 입장에서 참사를 재구성하고 바라보고, 가해자조차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인지한 상태에서 투입이 됐다는 사실이 더욱 그 비극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국가 폭력의 밑바닥에 있는 경찰 특공대원들의 입장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조차도 공포에 휩싸여 지금쯤 많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 않을까 싶고요. 이런 구도로 풀어낸다면 오히려 철거민, 투쟁에 함께 하셨던 분들의 입장이 잘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진행: 상영회 직전 용산참사 참배에서 지난 12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쓰러지신 백남기 어르신의 따님 백도라지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근데 거기서 용산 유가족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더라고요. 용산참사 때 그 못된 공권력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혼을 내줬어야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았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입니다. 그 분들 역시 피해자임에도 그런 마음이 들어서 따님을 만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서, 용산참사가 단순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얼마나 큰 트라우마로 남았느냐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관객(파란집 용산참사동지회 소속): 저는 망루 밑에 있었던 동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실제 망루에서 생사를 오고 갔던 당사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오늘 7주기를 맞이해 두 감독님과 김덕진 국장님께서 용산참사 식구들을 위해 노력해준 것에 대해 굉장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서민을 외곽으로 모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잘못된 일들이 횡행하기 때문에 동지들은 살기 위해 망루 위로 올라 갔고, 죽어서 내려왔고, 엉뚱하게 살인 누명까지 뒤집어 썼습니다. 여전히 믿을 수 없고, 정신적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어요. 아직까지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감독님들이 노력해준 덕분에 항상 감사하다고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진행: 감독님들께 부담감이 더 생기셨겠네요.(웃음) 오는 23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신용산역 남일당 현장에서 추모대회를 엽니다. 철거된 장면 보셨죠? 6년 동안 그곳은 공터로 남아있습니다. 유료 주차장으로 활용해서 쓰고 있었는데요, 공전상태에 있다가 기업에 의한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름 즈음에는 착공이 들어가기 때문에 현장에서 추모 대회를 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올해 7주기를 그렇게 준비했고요, 백서 발간도 준비가 되고 있습니다. 이혁상 감독님께 다시 여쭤보고자 합니다. 속편에 다시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 김일란 감독과 홍지유 감독이 편집과 완성의 과정에서 저 역시 큰 역할을 했다고 이름을 올려야겠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저는 사실 어떤 자리에 대한 욕심보다는 용산참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책임, 연대 활동가로서의 책임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책임과 욕심을 모아서, 이름을 올린 만큼 잘 만들어 보겠습니다. 


관객(파란집 용산참사동지회 소속): 남들하고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살아나왔는가를 이야기한 적도 없습니다. 지금처럼 눈물을 흘리게 될까봐 였습니다. 저는 용산참사 당시에 망루 4층에서 시커먼 연기 하얀 연기를 못 참아서 망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뛰어내릴 당시 기절을 했습니다. 망루 바닥에 떨어졌고. 아무도 저를 구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차장 옆에 30~40초 정도의 시간 동안 거꾸로 엎어져 있었습니다. 그 망루가 다 탈 때까지 저는 기절해있었습니다. 불길이 휘어지고 나서야 저는 깨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깨어나면서 제 얼굴은 다 망가졌고 다리는 걷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라도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그 불을 끄던 소방관한테 애원을 했습니다. 살려달라고, 살고 싶다고. 저는 그 뜨거운 화염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꿈이었으면. 그제서야 경찰특공대가 두 명이 올라왔습니다. 경찰 특공대가 올라와서 한다는 말이 ‘걸을 수 있냐, 걸어라.’였습니다. 제 오른쪽 다리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한 말입니다. 용산참사는 살인진압이 맞습니다. 철거민이 몇 명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이제서야 드리는 것은 아무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지라는 이름을 함부로 파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7년째가 됐습니다. 마음을 주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믿음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감독님들이 마음을 열어 줬습니다. 철거민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살아남아 증언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고 마이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김 국장님은 제가 원래 팬이고요.


진행: 김 국장은 저를 말합니다.(웃음)


관객: 이 분들을 빨리 믿지 못했다는 것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감독님들이 소중한 작업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뿌듯합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들께서 7주기를 맞은 소회를 간단히 말씀해주시면 인디토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오늘 오랜만에 영화로 여러분을 뵈니까 후속작에 대한 책임감이 들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감사를 표현해주셨는데 사실 저희 후속편에 나오셔서 지금의 삶이 어떠한지 알려주시는 주인공 분들이야말로 저희가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 분들인 것 같아요. 주인공 네 분께서 와 계신데 박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시는 많은 철거민 분들이야 말로 정말로 감사를 드려야 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잘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김: 비슷한 이야기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두 개의 문> 두 번째 이야기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참사의 경험이라는 게, 공간이 없어지면 그것을 두고 기억할 만한 것이 없어지게 된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이 아픈 부분인데요. 남일당 터가 없어진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 현장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정말이구나 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곳에 원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했던 공터,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있었던 공터에 빌딩이 들어선다고 생각하니 기억의 의미들을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관객 분들과 철거민 분들과 모든 분들께 조금만 같이 힘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인터뷰에 지치셨을 테지만 조금만 힘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생존자 분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느냐가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그 고통을 우리의 경험으로 잘 소화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참사 이후 7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우리가 겪어온 사회를 되짚어 보자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용산참사의 비극이 여전히 각기 다른 모양새로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 그 상한 뿌리를 뽑아야 함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를 위한 독립영화계의 노력 역시 올해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아픔이 끝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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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영화처럼줄 관람평

차아름 | 한 편의 순간을 따로 또 같이

김수빈 | 흥미로운 스토리들, 아쉬운 결말들

심지원 | 인생은 영화처럼, 영화도 인생처럼

추병진 | '시간'으로 묶인 네 가지 세상

김가영 | 같은 시간 속, 다른 순간들에 대한 단편선집




 <프랑스 영화처럼리뷰

<프랑스 영화처럼> : 같은 시간 속, 다른 순간들에 대한 단편선집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가영 님의 글입니다.


<러시안 소설>(2012), <배우는 배우다>(2013), <조류인간>(2014) 등을 통해 꾸준히 새로운 얼굴들을 소개해온 신연식 감독이 이번에는 옴니버스 영화 <프랑스 영화처럼>(2016)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전부터 <배우는 배우다>의 이준, 단편 <내 노래를 들어줘>(2015)의 크리스탈과 같은 아이돌 출신 배우들과의 작업을 통해 그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씨스타의 다솜과 포미닛의 전지윤, 미국드라마 <워킹 데드>의 스티븐 연과의 작업으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들의 낯선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타임 투 리브>, <맥주 파는 아가씨>, <리메이닝 타임>, <프랑스 영화처럼>까지 총 네 편으로 구성된 이번 옴니버스 영화 <프랑스 영화처럼>에는 같은 시간 속 다른 순간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 <타임 투 리브>는 인생의 마지막 3일을 딸들과 함께 보내고자 하는 한 엄마의 이야기이다. 죽음을 앞두고 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들은 그렇게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지만 그 ‘평범함’을 즐기는 것이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극중 엄마 역을 맡은 이영란 배우의 차분한 연기도 인상적이지만, 나머지 네 딸들의 어색한 듯 서먹한 연기도 가족간의 어색함을 잘 표현해냈다. 선택에 의해 예정된 죽음 앞에 남겨진 시간을 바라보는 그들 각자의 시선은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두 번째 에피소드 <맥주 파는 아가씨>는 맥주가게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달달한 로맨스이기보다는 사회비판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맥주 집에 가면 흔히 우리는 서로 속내를 터놓고 진심을 주고받는다. 영화 속 그들도 자신의 진심에 대해서, 더 나아가 서로의 진심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만 맥주 파는 아가씨에게 그들의 진심은 허무맹랑하게만 느껴진다. 고달픈 삶, 힘든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하는 그녀에게는 그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 그 순간들이 그들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 <리메이닝 타임>은 함께 할 시간이 100일밖에 남지 않은 커플이 남은 시간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용한 점쟁이로부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100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남은 100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한다. 예정된 헤어짐을 앞에 두고 시작된 고민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어눌한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스티븐 연 만의 언어는 이 에피소드의 백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의 언어는 둘 사이의 심각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주며 영화에 재미를 더한다. 영화는 점쟁이에 의해 정해져 버린 만남의 시간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 또 그게 나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상상해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네 번째 에피소드 <프랑스 영화처럼>은 좋아하는 여자와 이도 저도 아닌 관계를 유지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좋아해주는 한 남자와 이도 저도 아닌 관계를 유지하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녀는 소위 ‘밀당’을 통해 주인공을 몇 년 간 괴롭히고 있다. 주인공은 항상 그녀의 연락 대기조 역할을 하고 있고 가끔은 서로의 관계에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굳이 벗어나려 하지도,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처음 그녀를 좋아하게 된 순간 느꼈던 느낌 그대로 그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한다. 그녀와 그의 시간은 그렇게 유지된다.



언뜻 보면 연관성 없게 느껴지는 4편의 에피소드들은 이처럼 교묘하게 ‘시간’과 ‘순간’을 매개로 연결되어있다. 신연식 감독에 의하면 이 에피소드들 중 <맥주 파는 아가씨>와 <프랑스 영화처럼>은 자신이 고등학생 때 썼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다른 두 에피소드들과는 조금 다른 감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확실히 다른 에피소드들보다 독백이나 연극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고도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화 연출에서부터 신인 배우들의 연기 워크숍까지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연식 감독. 그의 전작 장편영화들이 장편소설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면 이번 <프랑스 영화처럼>은 그의 전작과 신작을 묶어놓은 단편선집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준, 크리스탈, 다솜과 전지윤에 이어 그의 ‘배우 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또 얼마나 많은 신인 배우들이 탄생하게 될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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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꿈보다 해몽>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NjRjFC








<꿈보다 해몽> : 해몽이 꿈보다 좋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차아름 님의 글입니다.


가끔 너무 좋거나 나쁜 꿈을 꾸면 어딘지 모르게 뒤숭숭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때문에 이 꿈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해석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꿈을 해몽하고 싶은 이유는 나쁜 꿈을 꾸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기대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에서 그렇듯 이 영화는 주인공 연신(신동미 분)과 우연(김강현 분)의 꿈과 그 꿈을 해몽하는 형사(유준상 분)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또한 잠을 자면서 꾸는 ‘꿈’외에 이뤄지길 희망하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풀어내고 있다. 



여배우 연진이 출연하는 연극에는 관객이 단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평일 이른 시간에 연극을 보러 올 사람이 만무했고, 딱히 열의도 없어 보이는 단원들에 화가 난 연진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하필이면 이때 잘나가는 배우 친구가 전화를 걸어 꿈자리가 사납다며 안 그래도 뒤집힌 속을 긁어낸다. 그러다 우연히 꿈을 해몽할 줄 안다는 형사를 만나 어젯밤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데, 놀랍게도 형사는 과거의 연애사까지 족집게처럼 맞춘다. 그녀의 꿈은 이랬다. 자살을 시도하려고 번개탄과 소주, 수면제를 준비하고 차창 문틈을 청테이프로 막아버린 차에 연진이 타고 있다. 이때 트렁크에서 소리가 들려 열어보니 누군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남자가 손발이 묶여 갇혀있는 것이었다. 이런 꿈의 내용은 반복되고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되면서 영화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 간다. 대표적인 것이 꿈속에 등장하는 ‘하얀 차’이다. 이 차는 현실에서도 발견되고 우연의 꿈에서도 등장한다. 즉, 갈대밭에 하얀 차가 덩그러니 서있는 모습이 꿈이란 걸 알겠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어디까지가 꿈인지 다시 어디부터 현실이 시작했는지 애매한 경계에 서있게 만든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 우연은 이상적인 꿈속에 사는 인물이었다. 연진은 그런 그가 답답하게 느껴졌고 결국 현실적인 문제로 이별을 한다. 하지만 이별 후 여태까지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연진이었고 우연은 연극을 포기하고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영화에서는 이 둘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이상적인 희망으로의 꿈 이야기를 함께 풀어낸다. 이러한 꿈에 대한 이야기는 우연의 집주인 아들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이는 벽에 낙서를 하면서 등장하는데 그의 그림은 제법 훌륭했고, 우연은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아이가 자신만의 예술을 실현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들을 둔 집주인의 생각은 달랐다. 돈도 안 되는 그림보다야 영어 한 문장이라도 더 아는 현실적인 아이가 되길 바란 것이다. 영화가 어떤 삶을 선택하라고 제시했다기보다 늘 꿈과 현실을 고민해야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라 생각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꿈같이 흘러간다. 과거와 현재가 오가고 꿈과 현실이 오가며 그 구분이 모호해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굳이 해석하려거나 집착할 필요 없이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에서의 꿈이 좋은 꿈인지, 나쁜 꿈인지 딱히 구별이 되지 않는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개꿈이 될 수도 혹은 의미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의 꿈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꿈을 꾸면 꿈으로 ‘욕망이 실현됐구나’ 하고, 나쁜 꿈을 꾸면 ‘꿈은 반대야’ 하고 털어버릴 수 있는. 어쩌면 ‘꿈’은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잘 지낼 수 있게 하는 ‘해몽’이야말로 진짜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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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월 개봉작 감독 집중탐구 

<화장실 콩쿨> 이용선 감독, <거미의 땅> 박경태·김동령 감독, <프랑스 영화처럼> 신연식 감독, <하프> 김세연 감독, <울보> 이진우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차아름,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올해 1월,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다룬 독립영화들이 연이어 개봉을 하고 있다. 단편 애니메이션부터 다큐멘터리, 옴니버스 영화까지 그 어느 때보다 개성 있는 풍성한 영화들이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1월 개봉작들이 독특한 소재와 뚜렷한 개성의 영화들인 만큼 기획기사를 통해 작품을 연출한 감독들이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주제 혹은 소재와 그들의 이력, 작품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화장실 콩쿨> 이용선 감독












상영시간 삼십분에 불과한 단편 애니메이션 <화장실 콩쿨>은 2015년 제 11회 인디애니페스트에서 관객심사단상, 관객상, 독립보행상을 수상하였다. <화장실 콩쿨>은 단편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7일 개봉하였다. 이용선 감독의 첫 정식 개봉작이다. 그는 2010년 <얼론>을 시작으로 총 네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발표하였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기억하려하다>(2011)는 오래된 연인을 기억하지만 끝내 얼굴을 떠올리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로, 흑백 톤 화면과 흔들리는 선들로 캐릭터의 불안한 심리와 극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2014년도 작품인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는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부문에 진출하기도 한다.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는 아니지만, 몽롱한 색감과 흐릿한 이미지로 그만의 독특한 서정성을 구현하고 있다. 

앞선 작품들과 달리 이번에 개봉한 <화장실 콩쿨>의 그림체는 다소 귀여운 캐릭터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귀여운 캐릭터의 움직임과 투박한 선이 ‘헬조선 직장 코미디’로 40대 직장인의 애환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다.  




2. <거미의 땅> 박경태, 김동령 감독







지난 14일 개봉한 <거미의 땅>은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박경태, 김동령 감독은 <거미의 땅> 이전부터 기지촌에 대한 영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우선 박경태 감독의 작품 <나와 부엉이>(2003)는 그동안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늘 외면 받고 감추고 있었던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그들의 일상을 세세히 보여주며 그들의 삶도 평범한 삶과 다르지 않음을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이에 <나와 부엉이>는 2003년 반미영상제의 폐막작과 제7회 인권영화제 국내상영작으로 선정되었고, 인디포럼,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비엔날레 부문에 소개되었다. 

김동령 감독 역시 전작인 <아메리칸 앨리>(2008)에서 기지촌의 현재를 보여주었다. 과거 외화벌이를 위한 양공주의 모습이 아닌 그곳에서 나이 들어간 할머니들과 새롭게 이주해온 필리핀, 러시아 여성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과거의 기지촌과 현재의 기지촌의 모습에서 반복되고 있는 기지촌 여성의 삶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에 <아메리칸 앨리>는 2008년 제 1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와이드앵글 부문, 제 34회 서울독립영화제 초청상영에서 소개되었고, 이어 2009년 제 9회 인디다큐페스티벌, 제 14회 인디포럼에서도 소개되었다. 제 11회 야마카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는 뉴 아시안 흐름-오가와 신스케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처럼 기지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는 두 감독이 만나 연출한 <거미의 땅>은 지난 14일 개봉했다. 이미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수상경력이 있는 김동령 감독은 이 작품으로 박경태 감독과 함께 다시 한 번 제 13회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국제경쟁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앞서 기지촌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제작했던 두 감독이 이번에는 어떤 시선과 깊이로 그들의 모습을 담아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3. <프랑스 영화처럼> 신연식 감독






신연식 감독은 각본, 연출, 제작을 전천후로 소화하며 한국영화계에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감독이다. 초기작부터 범상치 않았다. 초저예산이라 할 수 있는 300만원의 제작비로 찍은 세 시간짜리 흑백영화 <좋은 배우>(2005)는 큰 주목을 받았다. 연극배우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내며 연기의 본질을 묻는 이 작품을 통해 신연식 감독은 제31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영화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다. 이후 사랑에 직면한 50대 남자의 성장담 <페어러브>(2009)를 통해 상업영화까지 영역을 넓힌다. 제작사를 찾기 힘들었던 감독은 전세금 1억 원을 빼 직접 제작사를 차린다. 제작사의 이름은 영화를 이루는 기본 요소, ‘빛과 소리’라는 뜻의 '루스이소니도스(Luz y Sonidos)'. 이후 감독은 스스로 작품 제작을 도맡으며 적은 예산에서도 얼마든지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증명해내고 있다. ‘예술과 인생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신연식 감독 영화의 화두다. 젊은 소설가가 27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깨어나 보니 대문호로 이름나 있다는 설정에 기반을 둔 영화 <러시안 소설>(2012)과 <러시안 소설>의 주인공이 썼던 소설을 영화화한 <조류인간>(2014)은 모두 예술과 구원을 이야기한다. 그 가운데 김기덕 감독의 각본을 바탕으로 신 감독이 “상징이 아닌 서사에 기반”해서 만든 영화가 <배우는 배우다>(2013)다. 감독의 수작들은 각종 영화제에 단골 초청되고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등 권위 있는 상들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아왔다.

신연식 감독의 품이 닿은 영화 중 새해 처음 개봉한 영화는 지난 14일 개봉한 <프랑스 영화처럼>이다. <프랑스 영화처럼>은 처음의 설렘과 그리움, 애틋함을 전하는 이야기 네 편이 모인 옴니버스 영화다. 할리우드에서 활약 중인 스티븐연이 출연하는 첫 한국영화이자, 다솜, 전지윤, 신민철, 정준원 등 신예들의 발굴로 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받는 작품이다. <프랑스 영화처럼>은 단편의 형태로 감독이 아주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이야기며 신연식 감독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올 2월에는 신연식 감독이 각본과 제작으로 참여하고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동주>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성실함을 무기로 부지런히 이야기를 쓰고 빛과 소리에 이야기를 담아온 감독 신연식. 그가 품어온 열정의 흔적들을 서둘러 만나고 싶다.




4. <하프> 김세연 감독





1월 21일 개봉을 앞둔 <하프>는 김세연 감독이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어느 성에도 속하지 못한 ‘그’녀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로 사회가 그은 경계선 위를 살아가는 트랜스젠더의 삶을 다룬다. 감독은 “<하프>는 특정 소수자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힘든 사회 속에서 차별 받는 우리 모두가 소수자라는 점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다”며 영화가 지닌 보편적인 주제를 강조한다.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서 상영된 바 있으며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2014) 등과 함께 39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김세연 감독은 <도시 비둘기>(2007), <데뷔>(2010) 등 인상적인 단편들을 내놓으며 만만한 재능을 증명해 온 감독이다. 〈도시 비둘기〉는 매일 천안행 지하철을 타고 소일하는 김영감과 윤여사의 로망을 다룬 영화로 제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1회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6회 시네라이페스티벌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촉망받는 신예 감독의 등장을 알렸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됐던 <데뷔> 또한 많은 관객들의 뇌리에 선연한 인상을 남겼다. 뮤지션의 꿈을 잃어가던 30대 중반의 남자가 변두리 노래방에서 만난 소녀의 목소리에 반해 꿈을 되살린다는 내용으로, 감독이 제작의도에 남긴 말처럼 ‘꿈을 향해 억척스럽게 질주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또한 열정을 품고 살지 않는 이들에게 반성과 다짐’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영화다. 이외에도 2012년작 김준성 감독이 연출한 단편 <불륜>에서는 제작, 각본, 편집을, 2014년 이동삼 감독이 연출한 <왓니껴>에서는 조감독과 각본을 맡는 등 현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꾸준히 활동해왔다.




5. <울보> 이진우 감독












마지막으로 1월 28일 개봉하는 <울보>의 이진우 감독이 있다. 이진우 감독은 그간 <Lady First>(2006)라는 2분짜리 초단편 영화를 비롯해 호기심 많은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궁금해요 그대 팬티>(2007), 구교환과 함께 작업한 29분짜리 단편 <겨울잠>(2012) 등 개성 강한 단편들을 선보이며 실력을 다져왔다.

<울보>는 이진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모범생, 날라리, 양아치로 꼽히는 세 명의 친구들이 모여 험난한 세상에서 우정을 쌓아나가는 이야기다. <야간비행>(2014), <거인>(2014), <들꽃>(2014)에 이어 청소년의 삶과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보듬는 영화다. <울보>는 개봉 이전부터 국내외 영화제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특별언급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뿐만 아니라 제63회 산세바스찬국제영화제 신인감독경쟁 후보에 올랐으며 제31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영화진흥위원회와 경기영상위원회 지원작으로 선정되었던 작품이다.


작년 12월 3일에 개봉한 김진열 감독의 <나쁜 나라>를 포함해 <화장실 콩쿨>, <거미의 땅>, <프랑스 영화처럼>, <하프>, <울보> 이 여섯 작품과 함께 인디스페이스는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에 개봉한 다섯 작품의 여섯 연출자들의 공통점은 오랜 시간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도 꾸준히 작업해왔다는 점이다. 영화 곳곳에 녹아있는 그 지극한 끈기와 열정이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열정 가득한 1월의 인디스페이스를 많이 찾아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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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시간 29분 59초의 비밀에서부터 캐릭터들의 탄생 비화까지!

 <화장실콩쿨>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월 9일(토) 오후 3시 10분 상영 후

참석: 이용선 감독

진행: 나호원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가영 님의 글입니다.


이용선 감독의 전작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화장실콩쿨>을 보고 이게 과연 같은 감독의 작품이 맞는지 의아해했을 것이다. 전작들이 조금은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였다고 한다면, 이번 작품은 매우 ‘귀엽다’. 1월 9일 이용선 감독이 참여하고 나호원 감독이 진행한 이번 인디토크에서는 영화 속 목소리의 주인공이신 성우 분들도 함께 객석을 채워주었으며,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상영시간의 비밀에서부터 다양한 캐릭터들의 탄생 비화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나호원 감독(이하 진행): 지난 인디애니페스트에서 세 부문 수상을 석권하셨어요. 이러한 성과 이후에 크게 달라진 점이 있으신가요? 


이용선 감독(이하 감독): 3관왕을 할 수 있게 된 이유는 일단 영화가 길어서였던 것 같아요.(웃음) 보통 긴 영화는 제일 마지막에 상영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앞에 봤던 다른 영화들을 다 잊어버리셔서 제 영화가 기억된 것 같아요. 수상 이후에 엄청 바뀌었죠. 일단은 제가 작업할 때 주변에서 알아보는 것, 또 극장 개봉했다는 것 자체가 그렇죠. 애니메이션은 일반관객들이 잘 안 보는데, 일반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정말 모든 게 다 변한 것 같습니다.


진행: 3개의 상 중 두 개가 관객상이었어요. 이처럼 나름대로 관객들하고 가장 소통이 되었고 지지를 받았던 작품이었고, 그 덕분에 이렇게 영화관에서 상영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영시간이 길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29분 59초’에요. 여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감독: 29분 59초로 만든 이유는 일단 한국 애니메이션 기준이 30분 이내의 영상만 단편으로 치고, 장편으로 가려면 최소60분 이상 90분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갭이 너무 크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맞추게 됐어요. 저는 사실 성우 분들께서 고생 많이 해주셔서 엔딩크레딧에 성우 분들 한 분 한 분 등장하게 하고 싶었는데, 보셨듯이 엄청 빠르게 지나갔죠. 초를 맞추려고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에 양해를 구합니다.


진행: 그 직전에 만드셨던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2014)는 30분이더라고요. 


감독: 그 작품의 경우는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고,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는 초청을 못 받았어요. 일반 영화제에는 그러한 기준이 없거든요. 근데 배급사에서 이렇게 하면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출품이 안 된다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것도 엔딩크레딧을 빠르게 해서 줄여가지고 딱30분에 맞춰서 다시 제출하게 된 거죠.


진행: 방금 엔딩크레딧 말씀하신 것처럼 이전 작품들에는 나름대로 엔딩크레딧이 길고 여유 있게 흘러가는데, 특별히 여기에 신경을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감독: 일단 첫째로는 제가 길게 만들고 싶어한다기 보다는, 저랑 같이 작업하는 음악 하시는 분들이 엔딩크레딧에 음악을 길게 넣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으셔요. 음악을 만들 때, 보통은 다른 음악들은 작품의 의도에 맞추잖아요. 근데 엔딩크레딧은 조금은 작가적인 기질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작화를 하다 보면 대부분 지치고 회의에 빠지게 돼요. 그래서 <기억하려하다>(2011)의 엔딩크레딧의 경우에는 재미있는 시도를 해서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찾아주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진행: 엔딩크레딧에 있어서는 작가님들마다 다르게 막판에 분량을 채우기 위한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일관성을 위해서 먼저 작업하시는 경우도 있는데, 이용선 감독님의 경우에는 후반에 모두가 지쳤을 때 작업을 하신 건가요?


감독: 네, 이건 일종의 거짓말을 한 건데, 엔딩크레딧까지 치면 31분인 작품을 같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에는 ‘31분짜리 작품을 할거야’ 보다는 ‘30분짜리 작품을 할거야’라고 얘기하는 게 더 낫잖아요. 그리고는 다 만들고 나서 ‘사실 뒤에 엔딩크레딧을 조금 더 만들어야 해’ 라고 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웃음)


진행: 최대구 스타일로 작업을 하신 거네요?


감독: 굉장히 위험한 거죠.


진행: 이번 작품은 카툰 스타일의 말랑말랑한 느낌이었다면 이전 작품들은 조금 차갑거나 스타일리시합니다. 이야기적인 면에서도 전작들은 상당히 자기독백적이고 내면의 성찰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러한 변화에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일단은 제가 이전작품들로 노미네이트 된 적은 있지만 상은 못 탔었어요. 한국애니메이션 판에서 세 작품 이내에 상을 타지 못하면 사실 끝났다고 봐야 해요.(웃음) 하지만 저는 그만두지 않고 상을 타기 위해 꾸준히 준비했죠. 그래도 어떻게든 운 좋게 노미네이트가 되다 보니까 관객 분들과 함께 앉아서 제 영화를 보게 되는데, 거기 앉아서 보고 있으면 관객 분들이 힘들어하시는 게 보여요. 그래서 저는 보다 쉽게 애니메이션을 전하고, 그리고 감성적인 표현 보다는 좀 재미있게 해서 애니메이션자체가 다른 것도 표현할 수 있지만 재미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전체적으로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바꿨죠. 그리고 사실 이 그림 체가 제 그림 체에요. 전 작품들이 감성이라는 측면에는 맞을지는 몰라도 그림 체들은 조금 무거웠던 거죠 그래서 저는 그림 체의 면에서는 제 정체성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진행: 졸업은 하셨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작업을 하시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감독님을 위해 따로 마련해놓은 제작환경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일단 저는 1년에 한 작품씩 만들어야 하는 시스템하에 있어요. 왜냐하면 다들 졸업 작품을 만들 때 같이 만드는 거거든요. 졸업 작품을 할 때 학생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1년에 한 작품씩 만들어야 해서 사실 그렇게 퀄리티가 높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학교에서 특별히 마련해주는 다른 시스템 같은 것은 없어요.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는 독립적인 제작지원을 받기가 힘들기 때문에 학교에 남아 학생들과 같이 작업을 하면 인건비가 얼마 안 들잖아요. 그리고 학생들이 좋은 작품을 같이 하는 것에 대해 뜻 깊어해서 서로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따로 마련된 시스템은 없지만, 학교라는 곳이 이정도 길이의 작품을 만들 때, 특히 금전적으로 부담 없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 스텝 구성 할 때는 몇 명 정도로 하시나요?


감독: 저는 5명이 제일 이상적인 구성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작업할 때 사람과의 관계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두 각자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원이 더 많아지면 복잡해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저까지 포함해서 딱 5명이면 관리하기 괜찮은 것 같아요. 


진행: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이 작품처럼 밀도 있고 찰진 관계를 맺는 경우도 흔치 않은데, 등장인물들이 원래 의도하고 맞아 떨어져서 갔는지, 혹은 추가되거나 빠진 인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결정 된 게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을 했고, 의도한 것도 없었어요. 의도한 것이 있다면 주인공으로 40대 아버지를 잘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또 그 주인공 캐릭터의 기본적인 환경에 있어서 제가 전 작품들에서도 외로운 주인공들을 기반으로 했었던 것처럼 일단 코믹한 내용을 다룰 것이지만 외로운 캐릭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기러기아빠’라는 설정으로 갔던 거에요. 그 다음에는 계속해서 재미있는 상황들만 생각해냈죠. 인물들간의 최초의 관계들, 이 캐릭터가 아내랑 어떠한 관계에 있을까, 얘가 딸이라면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는 것들을 계속 열어놓고 끊임없이 짰던 거에요. 처음 계획에서 가장 크게 바뀐 게 있다면, 처음에 시나리오를 짤 때 최대구를 잡으러 상민이 혼자 가는 것을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나머지 세 명이 같이 잡으러 간다면 한 앵글에 네 명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근데 네 명이 무조건 뛰어가야 한다는 걸 한 친구가 주장했고 제가 그걸 꺾지 못해서 네 명이 뛰게 했어요. 정말 다행입니다. 네 명이 제각기 뛰어가서.(웃음)


진행: 처음에 <화장실콩쿨>을 만든 이용선 감독이 제가 아는 이용선 감독과 다른 감독 일거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전 작품들은 20대의 감수성을 가지고 만든 것이었다면 <화장실콩쿨>의 경우는 주인공처럼 40대의 감수성을 갖고 있어서예요. 그리고 오늘 이렇게 제가 인디토크를 진행하게 된 것도 독립애니메이션협회 인력 중 40대 아저씨 대표로 오게 된 것이거든요.(웃음) 작품 보면서 이 작품을 만든 동명이인의 감독은 30대 후반일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영화제에서 제가 알던 이용선 감독님이 나오셔서 놀랐었어요. 혹시 평소에 아저씨들과 친한가요?


감독: 아니요, 별로 안 친합니다. 친하다면 환상이 깨지겠죠. 저는 아저씨에 대한 큰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망일수도 있고요. 되게 안타까운 로망이에요. 제가 생각하기에 30대는 본인을 위한 꿈을 갖고 있는데 40대만 되면 본인을 위한 꿈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꿈이 희생으로 바뀌어요. 그게 아저씨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노력을 하긴 하는데, 그게 본인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자기가 지켜야 하는 다른 것들을 위한 노력이에요. 거기서 나오는 매력이 다른 캐릭터들보다 더 매력 있고 색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단편치고는 캐릭터들이 참 많이 나오고, 다양하고, 성격도 분명한데, 캐릭터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탄생비화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감독: 제가 재미있게 봤던 ‘음악의 신’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유명한 프로그램은 아니라서 아시는 분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이 프로그램에 범죄자들이 많이 나와요. 그 주인공이 룰라의 이상민이었고요. 룰라의 이상민은 원래 독불장군 같은 스타일,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스타일인데, 거기서는 다 놓고 스스로를 포기하고 나오더라고요. 저는 그 모습이 좋아서 많이 닮지는 않았지만, 주인공 상민으로 차용을 했고요. 최대구 같은 경우는 백윤식 배우에요. 백윤식 선생님을 제가 매우 존경합니다. 일단 색도 분명하고 연기도 잘하잖아요. 근데 백윤식 선생님이 특히 욕을 맛깔스럽게 잘합니다. 그래서 성우 분들께도 백윤식 선생님 동영상 편집한 부분 보여드리면서 ‘이렇게 욕해주세요’하고 부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비서 같은 경우는 ‘똑바로 살아라’의 서민정 배우에요. 계속 웃으면서 사람 되게 열 받게 하거든요. 그 모습이 딱 이라고 생각해서 차용하게 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이런 게 장점이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그 배우 분들을 어떻게 감히 모시겠습니까. 그림을 그리니까 가능 한 거고, 나중에 성우 분들이 같이 표현해주면 그게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관객: 저는 감독님의 전 작품들을 다 봐왔는데요. 이번에 그림 체가 달라져서 캐릭터가 확 바뀐 것은 있지만, 보면서 주인공과 감독님이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예전의 감수성을 보여주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감독: 일단 <화장실콩쿨>의 전작인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의 주인공은 여자에요. 소녀입니다.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를 만들고서 가끔 여자가 만든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살짝 기분이 좋아요. 내가 여성의 감수성을 잘 표현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전체적으로는 사실 잘하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여자 주인공의 감성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게 아직은 하면 안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뉘우침을 준 작품이기도 해요. 감성적인 측면이 들어간, 거기다 색이 조금 더 분명한 작품들을 하고 싶어요. 지금 차기작을 준비 중이긴 한데, 저는 시나리오를 탄탄하게 쓰고 나면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 그 작품에다가 색을 좀 더 넣어서 작품을 유니크 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이번에도 계속해서 만들면서 느끼고 있어서 앞으로 차차 넣어갈 생각이에요. 다음 작품에서는 지금 작품보다 조금은 더 보일 것 같아요. 일단은 제일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의 탄탄함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유지하면서 작품의 색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 <화장실콩쿨>은 후속작도 가능하고 이야기 내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풀어나갈 수 도 있을 것 같은데, 일종의 시트콤처럼 풀어가실 생각은 없나요?


감독: 있습니다. 저는 기회만 주시면 정말 잘 만들 수 있습니다.(웃음) 일단 저는 장편을 한 편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화장실콩쿨>로 많은 관심을 받게 된 이 시점에 잽싸게 장편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시트콤 관심 있어요. 미국드라마 중에 ‘오피스’라는 시트콤 드라마가 있는데, 그게 되게 재미있거든요. 그 영향을 많이 받아서, 충분히 잘 만들 수 있습니다. 관계자 분들 혹시 계시다면 연락주세요.(웃음)


관객: 왜 굳이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설정하셨는지,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강아지가 처음에는 귀가 있다가 나중에는 귀가 사라지는데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감독: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사실 큰 이유는 없는데, 말하자면 화장실이라는 유머러스 한 공간에서 심각한 문제들을 풀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주인공의 내면과 밀접한 관계가 있죠. 그 집은 방도 두 개나 있는데, 주인공은 일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가죠. 그리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그러니까 방이 넓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거죠, 이 친구한테는. 그런 의미에서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주인공의 내면을 더 잘 드러낼 수 있을 거라는 욕심 같은 것은 있었는데, 잘 표현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강아지 같은 경우는, 처음 등장했던 강아지가 지혜죠. 지혜는 뒤에 나오는 강아지랑은 다른 종입니다. 지혜는 제가 계속 밀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계속 관심 가져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지혜는 제가 이전에 짧게 그린 만화에도 출연을 하고요, 차기작에도 출연할 예정입니다.(웃음) 뒤에 나온 강아지는 완전히 실패했어요. 그 강아지는 다른 종인데, 귀가 없는 게 아닙니다. 귀가 있어요. 단지 털에 가려진 것이지. 근데 털을 하나씩 표현하다 보면 굉장히 힘들거든요. 그래서 그걸 그냥 동그랗게 그렸어요. 이를테면 최대구 수염 같은 경우도 굉장히 길게 그리고 싶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냥 점으로 찍었습니다.(웃음)


진행: 관객에 대한 얘기를 더 하고 싶어요. 관객들 모두를 충족시키는 작품이 있으면 좋겠지만, 감독님이 특히나 공을 들이는 관객층이 따로 있나요?


감독: 저는 일단 성인 애니메이션이 인정받아야 전체적인 애니메이션 시장자체가 인정받는다고 생각해요. 스무 살이 넘은 성인들이 애니메이션을 재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해요.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유아용 애니메이션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너무 치우쳐져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어른들이 애니메이션을 봤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좀 더 명확한 표현과 깔끔한 연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 어떤 방식으로 관객들하고 만날지에 대해 큰 고민을 하고 계실 것 같아요. 감독님 작품이 어떻게 관객들을 찾아가야 할까요?


감독: 제가 극장에서 상영하고 싶다고 해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죠. 인터넷에 뿌리는 방법도 있긴 한데, 그것은 사실 운이 많이 따라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연령층이나 타깃층에도 신경을 써야 하겠지만, 사람들이 보고 실망할만한 작품은 하지 않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 많은 애니메이션 작품들의 엔딩크레딧을 볼 때마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에 우리의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과 그들의 노력이 투입된다는 것에 감탄한다. 그들의 노고가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관객들의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용선 감독과 같이 한국 성인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감독들의 노력에 힘입어 앞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이 더 크게 성장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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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소리굽쇠>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OQWAKr








<소리굽쇠> : 끝나지 않은 이야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가영 님의 글입니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정부 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상 타결이 이루어졌다. 갑작스러운 협상타결 소식에 위안부 할머니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어리둥절해 했고, 협상의 내용은 피해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일방적이고 졸속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아베 내각총리 대신은 “위안부로서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혔지만 이어지는 내용들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금전적인 ‘지원’과 사업의 진행,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발언을 자제할 것을 확실히 하는 내용이다. 어디에도 법적 책임을 물거나 국제적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알리려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뿐인가? 한국 측 협상 내용에는 일본의 우려를 생각해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으며, 이에 반발하는 시민들은 소녀상 앞에서 철거 반대 시위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시민들은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해 크게 반발하며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그저 방관하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위안부 문제 말고도 그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들은 더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이번 협상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찾아보려 하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같다. 나는 이럴 때일수록 콘텐츠의 힘이 발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택한 인디즈 초이스는 영화 <소리굽쇠>다. 



<소리굽쇠>는 위안부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아니다. 원폭문제와 실향민문제도 함께 다루고 있다. 영화는 세 가지 문제를 다루면서도 제법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끌려가 모진 수모를 당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귀임’할머니는 그녀의 손녀 ‘향옥’만을 유일한 희망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향옥은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후 우연히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연을 듣게 되고, 할머니를 꼭 한국땅으로 모시고 오겠다는 꿈을 갖는다. 그러나 순진한 그녀에게 한국생활이 순탄치만은 않다. 그런 그녀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주는 ‘덕수’는 향옥과 함께 덕수의 아버지의 유품이자 귀임할머니의 사연이 담긴 물건인 소리굽쇠로 인연을 이어간다. 시간이 흐른 뒤 중국으로 다시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향옥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영화는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계속해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귀남’할머니가 중국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모진 수모를 당할 때,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인 여성을 몰래 방에 숨겨주고 그녀의 탈출을 돕는 장면이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같은 처지의 그들은 서로 그렇게 소통하고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런 그들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처와 피해를 ‘협상’이라는 틀에 가두어놓고 다시는 꺼내지 말자고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 일일까? 역사적 문제는 덮어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을 알리고, 기록해둠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리굽쇠>는 국내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극영화인 동시에, 배우와 제작진의 재능 기부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영화는 짜임새가 있으며, 색다른 반전으로 고리타분함을 없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원폭과 실향민 문제와 함께 적절히 드러냄으로써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무게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영화, 더 나아가 콘텐츠라는 것은 이처럼 ‘시대’를 담아야 한다. 시대에 대한 고찰 없이 우리는 발전해나갈 수 없다. 최근 SNS상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두 번 째 극영화인 <귀향>(2015)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어려운 제작환경으로 인해 개봉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2월 초에 정식으로 개봉 할 예정이라고 한다. <소리굽쇠>와 <귀향>과 같은 ‘시대’를 담은 영화들이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질 수 있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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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콩쿨줄 관람평

차아름 | 한국사회에서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

김수빈 | 버텨도 답없는, 헬조선의 변비 같은 삶

심지원 |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함

추병진 |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김가영 |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아저씨인 40대의 '희생'에 대하여





 <화장실콩쿨리뷰

<화장실콩쿨> :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관객기자단 [인디즈] 추병진 님의 글입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독립·단편·애니메이션이라는 세 가지 조합은 영화관에서 상영되기 힘든 최악의 조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화장실콩쿨>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여건을 뚫고 관객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독립단편애니메이션’에 낯선 당신이 이 작품을 그저 그런 애니메이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화장실콩쿨>은 러닝타임 30분 내내 관객을 완전히 몰입시키는 구성을 자랑한다.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재미는 물론이고 긴장감 있는 서사와 관객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만드는 결말은 이 영화의 결정적인 힘이다.



어린 딸과 아내를 미국으로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 상민은 지독한 외로움과 극심한 변비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딸의 귀국은 연기되고, 점점 불어나는 딸의 유학비용에 상민은 좌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상민은 회사로부터 권고 사직서를 받는다. 느닷없는 권고 사직에 항의하고자 상민은 본부장을 찾아간다. 그러나 이미 내연녀와 여행을 떠난 본부장 최대구는 모든 연락을 무시해버린다. 다음 날, 참다못한 상민은 회사 동료들과 함께 본부장을 찾으러 인천공항으로 향한다. 각자 분노로 가득 찬 이들은 혈안이 되어 본부장을 찾는데...



<화장실콩쿨>의 매력 중 하나는 단순하면서도 일관된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다. 한 눈에 봐도 인물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단순한 외모, 각 인물 특유의 독특한 대사와 목소리는 극의 재미를 살린다. 또, 전체적으로 유머를 겸비한 이 작품은 저마다의 매력을 자아내는 인물들을 통해 권고 사직이라는 진지한 문제를 다소 부드럽게 순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악역을 담당하는 본부장 최대구는 직원들을 내쫓는 악덕한 상사라기보다는 내연녀와의 관계에 집착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부각된다.



하지만 이 영화를 관통하는 유머는 주인공 상민의 해피엔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상민에게는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 한층 늘어난 딸의 연주 실력은 오히려 상민의 슬픔을 극대화한다. 몸을 내던진 상민의 희생은 어쩌면 딸의 유학을 연장시키는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어떻게 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기러기 아빠의 삶은 여전히 낫지 않은 변비와도 같다. 그러므로 제목 ‘화장실 콩쿨’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최후의 슬픔을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29분의 희극이 끝나면 결말에 해당하는 1분에 비극이 찾아온다. 이 작품의 매력이 29분에 모두 담겨있다면, 이 작품의 진짜 목소리는 나머지 1분에 담겨 있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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