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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버텨내고 존재하기〉: 버텨내서 존재하기

by indiespace_가람 2023. 11. 14.

〈버텨내고 존재하기〉리뷰: 버텨내서 존재하기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 님의 글입니다.

 

 

지난 11월 원주 아카데미 극장의 철거가 진행됐다.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전국 54개 영화단체가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지만, 지자체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개발과 이익이라는 정체가 불분명한 이기를 앞세워 60년의 유산이 무너졌고, 원형의 가치는 사라졌다.

 

우선순위가 달랐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철거 후 재건이 더 중요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지난날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 보전이 필요했을 것이다. 각자의 우선순위가 치열하게 부딪히는 사회 앞에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개인과 공간을 조명한다. 곽푸른하늘,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고상지, 정우, 그리고 N명의 아티스트들. 알 사람은 아는 인디밴드들이 ‘광주극장’이라는 알 사람은 아는 극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다수결과 합리성의 원칙으로 직조된 사회 속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존재 자체가 선언이자 ‘버텨야’하는 사람과 공간을 다룬다. 그들은 사회가 정의한 우선순위나 성공의 정의에 들어맞는다고 보기 어렵다. 아이돌처럼 17주 연속 음원사이트 1위를 차지한 것도, 음악프로그램 그랜드슬램을 이룬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불나방처럼 화려하게 데뷔하고 사라지자는 모토를 가진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은 18년째 밴드를 하고 있고, 취미로 시작한 음악은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돼 있었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 스틸컷

 

 

끊임없이 내 음악의 가치를 설득하고, 젊은 날의 치기가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했던 사람들의 노랫말과 입을 통해, 〈버텨내고 존재하기〉는 영화의 의미, 그리고 광주극장의 존재 이유를 교차시킨다. 지난 6월, 서울 문화재단 발표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민이 가장 많이 즐긴 문화생활 영역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 56.2%, 응답자 과반이 공연-전시를 선택했다. 멀티플렉스 업계는 꾸준한 적자를 내고 있고, 영화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모두가 영화가 아닌 다른 경험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문화적 인프라를 박탈당한 비수도권 지역의 광주극장은 관객에게 무슨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이를 인디밴드라는 비주류의 삶을 통해 그려낸다는 점에서 ‘버텨내고 존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하게 된다.

 

 

영화 〈버텨내고 존재하기〉 스틸컷

 

 

영화는 형식적인 면에서도 범상치 않다. 다큐멘터리라고 보기에는 인터뷰가 적고,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음악과 관계없는 질문이 등장한다. 선형적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노래와 상황만으로 영화를 채운 도전적 시도는 다시 말해 이들이 어떤 노래를 하고 있는지와 어떤 공간에 서 있는지를 조명하는 것만으로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따뜻한 색감과 프로 미스트 필터를 낀 듯한 뿌연 화면, 노랫말을 통해 전달되는 각자의 삶에 대한 고찰 가운데 관객은 초연해진다.

 

화면 아래 흐르는 음악은 〈모던 타임스〉의 OST라고 한다. 자본과 세상이 정한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독립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삶을 얘기하는 와중 자본주의 내 개인의 소외를 상징하는 〈모던 타임스〉의 노래는 상징적이지 않은가. 그렇게 존재만으로 선언이 되는 사람들은, 다시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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