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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너와 나〉: 꿈의 조각을 되찾아

by indiespace_가람 2023. 11. 7.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너와 나〉 스틸컷

 

꿈의 조각을 되찾아

〈너와 나〉〈프랑스여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글입니다.

 

 

 

잠깐 꿈이라는 무의식을 헤매다 깨어났을 뿐인데, 그 무의식은 우리의 하루를 지배하고, 하루 동안의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나날들이 있다. 그 무의식이라는 여운은 꽤나 부드럽고도 강력해서,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게 하기도, 혹은 내 마음을 애써 삼켜내게도 한다. 바람이 부는 창가 자리에 엎드려 잠든 세미(박혜수)는 영문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고개를 든다. 꿈이 그렇듯, 눈을 뜸과 동시에 휘발된 기억에 왜 흘러나왔는지 아직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눈물을 닦아내고 무의식의 여운에 수학여행 전날 하루를 온통 맡겨 버리는 세미가 〈너와 나〉에 있다.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컷

 

 

모두 입을 모아 프랑스가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여자, 미라(김호정)는 한국에 들어와 지내는 동안 오래전 함께했던 공연예술아카데미 친구들을 만나 ‘오랜만’이라 반가울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반가움으로 나누는 익숙한 여러 이야기들을 어제의 일처럼 나누는 친구들 사이에서 미라는 도통 잘 기억해 내지 못하고 길을 잃는다. 그러다 미라는 대화에서, 혹은 공간에서 자주 슬쩍 빠져나와 어딘가로 걸어간다. 그렇게 홀로 걸어간 공간 속에서 화장실의 문을 열고, 몰래 들어간 미술관의 문을 열고, 으레 가던 술집의 문을 연다. 그 문 너머에는 미라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그토록 원했던 과거의 어떤 순간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게 꿈인지 싶은 시공간의 교차점이 있다. 우리가 꿈에서 어떤 곳에 놓이던, 누구를 만나던 그리 놀라지 않고 대담해지는 것처럼 이내 당시의 사람이 되어 무의식에 몸을 맡겨 발화하는 미라가 〈프랑스여자〉에 있다.

 

 

눈을 뜨자마자 빠르게 날아가 버린 꿈의 기억을 찾는 〈너와 나〉의 세미, 20년 만에 돌아온 익숙한 공간 사이에서 기억의 조각들을 배열하지 못하고 헤매는 〈프랑스여자〉의 미라. 이 두 영화는 그렇게 선형적인 현실구조에서 기억을 되찾다가도 어느새 흐르는 시간 속에 무의식을 삽입하여 기억의 조각을 찾음과 동시에 현실과 꿈의 구조를 아스라이 뒤섞어 놓는다.

 

 

〈너와 나〉 속 세미가 꾼 꿈의 여운은 곧장 세미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 길에서 만난 새를 고이 묻어준 채 다시 빠른 발걸음으로 향한 곳엔 하은(김시은)이 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세미의 꿈은 하은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담아 온 하루의 상태를 지배해 더욱이 오늘도, 내일도 함께하고 싶다는 일차원적인 마음을 내 비추다 결국, 오래도록 품어왔던 너와 나, ‘우리’이고 싶은 마음을 고백하며 하루가 마무리된다.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으로 행하는 고백의 하루를 담은 영화는 마음과 마음이 닿는 그 과정을 표면에 두고 관객들에게만 닿아오는 불안을 숨기지 않는다.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세미와 하은 앞에 아슬하게 놓인 물컵이라던가, 하루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자주 잡아내는 시계 포커스라던가. 하지만 우리는 물컵을 안전히 들여놓고 다시 세미와 하은의 손을 맞잡은 형태로 만들어 줄 수 없고, 흐르는 시계를 멈추게 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뇌는 온갖 바람과 염원은 2014년, 무력하게 화면만을 바라보던 그 순간에 우리를 다시금 놓아둔다.

 

 

영화 〈프랑스여자〉 스틸컷

 

 

〈프랑스여자〉는 건조하고 어두운 영화적 촉감을 타고 좀 더 파괴적인 불안을 장면화한다. 익숙한 친구들 사이 해란(류아벨)만이 현재 함께하지 못하고, 그런 사실로 미라와 친구들은 남은 사람들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이들을 그렇게 두지 않는다. 미라가 어떤 문을 열고 나올 때면 해란의 얼굴을 하고 등장하는 인물은 몹시 불안한 형태로 묘사되어 미라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어쩌면 미라가 그려내는 해란의 얼굴들일지도 모르는 장면들에서 두 사람은 여러 겹이 얽힌 채로 그렇게 관계 맺어 왔음을 시사한다. 미라의 불안은 점점 더 해란의 얼굴에 투영되어 더욱이 파괴적이며 연극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이때까지도 미라의 불안은 프랑스인 남편과의 이혼 혹은 해란을 다시금 마주하며 떠오른 해란과 성우(김영민) 그리고 자신의 미묘한 관계성 때문이라고만 추측된다. 그런 추측을 가로막지 않은 채 영화는 다시금 오프닝 시퀀스로 돌아가 프랑스에서의 미라를 보게 한다. 영화가 시공간의 교차점으로 사용하는, 이제는 불안함 속에서도 익숙한, 화장실 거울은 그렇게 다시 미라를 투영하고, 이내 큰 파열음을 가져온다. 그 파열음이 그동안 미라를 시공간의 교차점에 데려다 놓은 원인이었으며, 해란을 마주한 공간이었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남은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만 있을 수 없음을 들려준다.

 

미라와 눈이 마주치는 〈프랑스여자〉의 마지막 순간을 〈너와 나〉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본다. 울려 퍼지는 “사랑해”라는 말 속에서 감고 있던 눈을 뜨는 세미의 얼굴. 그 얼굴을 고이 바라본다. 그리고 되뇌어본다.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슬퍼하고 애도할 것이다. ‘남은’ 사람들로 우리 스스로를 타자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같은 방향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불안을 거부하지 않은 채 함께 공유할 것이다. 그렇게 언제나 꿈과 기억의 조각을 되찾아 다시 손을 잡고, 서로를 안고 싶다는 이 염원을 소망할 것이다.

 

* 작품 보러 가기: 〈프랑스여자〉 김희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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