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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우리가 우리가 된다는 것은

by indiespace_가람 2023. 11. 2.

〈두 사람을 위한 식탁〉리뷰: 우리가 우리가 된다는 것은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주체로서 객체를 바라보는 행위 자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객체로의 전이를 뜻하는 것이다. 즉, 완벽한 이해의 경지는 내가 아닌 너가 되는 행위이고, 동시에 너가 내가 되는 행위이다. 하지만 각자의 삶에서 주체인 우리는 서로가 될 수 없기에 충분히 이해받지 못해, 이해하지 못해 슬프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엔 이해의 영역에서 필연적인 실패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두 사람, 정확히 말해 두 모녀가 등장한다. 영화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듯이 어느 날 불현듯 채영(박채영 분)을 찾아온 섭식장애에 대해 당사자로서 채영과 목격자로서 상옥(박상옥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 속에서 서로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절망과 두려움을 낳았고 이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게도 단절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컷

 

 

영화는 오랜 시간이 지나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르는 과거와 그런 과거로부터 어긋난 것 같은 현재의 관계를 두 사람을 통과하는 섭식장애라는 가장 고통스러운 주제를 매개로 두 사람의 기억과 마음을 이어 붙인다. 이 과정에서 상옥은 자신과 채영의 관계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대립 관계가 아니었음을, 둘의 갈등과 싸움이 무의미했음을 깨닫는다. 섭식장애를 통해 상옥의 눈에 비친 것이 채영의 죽음이었다면, 채영은 자신의 삶과 존재의 방식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일치와 뒤틀림은 지나온 날 들에서 상옥의 삶과 존재 방식이 채영에게 소외를 주었고, 채영의 삶과 존재방식이 상옥에겐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처럼 어쩌면 우리의 모든 문제는 같은 시간과 경험을 나누었다는 것이 두 사람의 인생을 맞닿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우리 각자의 인생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외할머니의 차례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처럼 평생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이다.

 

무수한 다름을 전제로 하는 세계에서 동일한 것은 결국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을 헤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들을 찾아내고 사건으로서 엮어내야만 한다.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너는 더욱더 나의 삶의 일환으로서 나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하며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세계를 이해하는 ‘우리’의 방식으로서 작용할 수 있도록.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컷

 

 

 영화에서 이 세계에서 우리가 함께 존재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방식은 섭식장애와 그것을 겪은, 혹은 겪고 있는 사람들을 다룬 주제와는 역설적이게도 ‘식사’와 ‘음식’이다. 그것들은 두 모녀로 하여금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또 가끔은 그들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역할을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영은 누군가를 위한 식사와 음식을 만듦으로써 다시 세상과 연결된다. 채영이 양쪽 끝이 예쁘게 잘려 있는 외할머니의 고구마가 정성의 상징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이해할 수도, 상옥이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 하고 싶지도 않았던 엄마의 두부 부침 레시피를 따라 하고 차례상에 올릴 때, 결국엔 우리 모두가 다른 방식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고 서로를 위한 식탁에서 마주 앉게 될 때, 지독한 애증의 관계에서 새로운 방식의 연대가 피어오른다.

 

 김소연 시인의 저서인 『시옷의 세계』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절망과 두려움은 밥처럼 마주 앉아 나누어 먹는 것이다. 나누는 사이로 희망이 끼어들어 이유를 완성한다.   말은 어쩌면 소화할 없는 마음을 가진 우리 모두가 서로의 절망과 두려움을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사이에서 나눌 있는 희망은 우리가 같아질 없더라도 당신이 당신으로서, 나는 나로서 존재할 있다는 사실 자체와, 단절된 형태인 같은 각자의 평행선 같은 인생이 우리만의 방식으로 나란히 이어질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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