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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우리와 상관없이〉: 관객의 수동성과 능동성을 넘나들며

by indiespace_가람 2024. 7. 8.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관객의 수동성과 능동성을 넘나들며

〈우리와 상관없이〉 〈옥희의 영화〉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지 님의 글입니다.

 

 

오프닝 크레딧이 켜지자마자 형광 녹색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무심한 폰트로 〈우리와 상관없이〉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관객에게 이 화면이 어떻게 비칠지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다. 관객은 받아들이는 존재다. 감독이 선택한 구도와 이야기의 방식이 수동적으로 전달된다. 〈우리와 상관없이〉에서 그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화령이다. 화령은 죽음에서 부활한 인물로 삶을 다시 재구성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죽음에서 ‘꺼내지고 던져진’ 존재로서 화령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 방안으로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영화에 대해 질문한다. 

 

영화 〈우리와 상관없이〉 스틸컷


하지만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화령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이들에게 영화는 ‘쓰잘데 없는 소리’이자 ‘와닿지 않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시달리느라 바쁘고 무언가를 원하기만 한다. 화령에게 영화는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장치다. 하지만 밤에 꿈처럼 찾아온 감독은 영화가 멋대로 가두고 잘라내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화령은 붙잡을 것을 찾고 있건만 감독은 변덕이 살아있는 사람의 특권이라며 다독인다. 뒤이어 방문한 두 남자배우와의 대화에서 화령이 알고 있던 영화 구조는 뒤집어지고 이야기는 산발적으로 흐트러진 채 2부로 넘어간다. 〈옥희의 영화〉 중 첫 단편인 〈주문을 외울 날〉에서 남교수는 자신의 영화 GV에 참석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살아있는 무언가와 비슷하게 계속 바뀌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 관객이 사생활에 대해 질문하며 감독 개인의 이야기를 돈 내고 보는 관객은 그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남교수는 당신 같은 사람들 보라고 영화 만드는 게 아니라고 내지른다. 
이 두 편의 영화는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영화는 의미를 주어야 할까? 누구 보라고 영화는 만들어질까? 남교수의 외침과 다르게 영화는 관객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예술이다. 이때 관객이 가지는 수동성은 〈우리와 상관없이〉에서 이야기의 뒤틀림으로 인해 흔들린다. 영화가 특정 주제를 주입하기를 거부하면서 저쪽 세상에 보이기를 포기할 때, 영화는 관객과 마주할 수 있다. 

영화 〈우리와 상관없이〉 스틸컷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나 이동 중간에 어두운 골목길을 비추는 샷이 자주 삽입된다. 골목길은 영화 전반에 걸쳐 어떤 기능을 수행한다. 골목길을 지나가는 인물들을 트래킹하며 쫓아갈 수도 있지만 카메라는 고정된 위치에서 패닝하며 인물의 뒷모습을 쫓기를 선택한다. 정선이 골목길을 지나갈 때 무언가 발목을 잡은 것처럼 비틀거리는데 이러한 모습들은 골목길에 존재하는 지박령과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 고정성은 관객 및 화령의 수동성과 맞닿아 있어서 영화 전반에 사용되는 골목길 인서트는 그 어둠 속에 있을 관객의 존재를 상정한다. 

 

영화 〈우리와 상관없이〉 스틸컷


골목길 속 어둠은 화령이 2부에서 이야기하는 어둠을 상기시킨다. 그 어둠 속에는 두 개의 세상이 있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과 완벽하게 자신을 위한 세상. 2부에서는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며 교차한다. 이 전개 방식은 〈옥희의 영화〉 중 마지막 단편에서 옥희가 만든 영화와 겹쳐 보인다. 옥희는 1년의 간격을 두고 만난 두 남자와의 경험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 아차산이라는 같은 공간을 서로 다른 남자와 걸으며 한 경험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마찬가지로 교차한다. 이 마지막 단편은 앞선 단편에서 시선을 받는 존재였던 옥희가 (진구는 옥희에게 예쁘다는 말을 반복한다) 보는 존재로 변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진구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자 사진이 찍히는 사람, 보이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옥희 역시 보는 존재이자 보이는 존재로 순환한다. 〈우리와 상관없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화령은 감독과의 대화 후 걸어가다가 어둠을 응시한다. 화령의 반대편에 있는 어둠 속 카메라가 줌인을 하면서 우리는 화령의 시선을 스크린을 빠져나와 마주한다.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변화한 것이다.

결국 〈우리와 상관없이〉는 이야기를 뒤틀고 카메라를 응시함으로써 관객에게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찾지 않아도 되는 순간, 그런 독자성을 이 영화가 제시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우리가 스크린 속 인물들과 진정으로 마주했을 때 더 이상 사는 게 지겹고 민망하지 않은 순간이 올 것이다. 

 

* 작품 보러 가기: 〈옥희의 영화〉(홍상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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