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상관없이〉리뷰: 그 스크린의 뒤에 존재하는 것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넌지시 들여다본 스크린, 영사기가 돌아가며 현현되는 빛에 투영되는 이야기, 관객은 환영받으며 입장한다. 남발되는 이야기에 자신의 삶도 무시한 채 빠져들던 중 어느새 영화는 막을 내리고 다시 그 안쪽에 흰 벽이 나타난다. 마치 여태까지 본 것은 시선을 가로막은 하나의 벽이라는 듯, 피상적인 한 겹의 껍질이라는 듯 흘러가는 사건이 사라지자 벽만이 고상하게 우리를 쳐다본다.
우리가 이제까지 들여다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의 삶이었을까. 우리의 꿈일까. 파생된 경험일까. 고고하게 남겨진 벽은 살아있는 시간을 어떻게 선사하였는가.
그렇다면 과연 그 속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뇌경색으로 죽음을 거쳐온 여자 ‘화령(조현진)’은 생의 시간과 상이한 죽음의 생채기를 맞은 탓 인지, 살아있음을 명료하게 밝힐 인과관계(이야기)에 대한 도약을 반복한다. 그 대상은 상이한데, 몸을 뉘인 여자를 찾아온 네 인물을 통해 자신이 찍던 영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추궁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에게 밝혀질 이야기는 살아 숨 쉬는 타인의 삶이며, 추상적이지만 세계를 그려나갈 추동의 잔재로 기능한다. 그러나, 4번의 만남 속, 사람들은 살아있는 이야기를 부정하며 세계를 잘라내어 의미 없는 무엇이라 고한다.
상대에게서 밝혀지는 영화 속 이야기는 여자가 만남을 반복하고 여과할 때, 더 모호하고 비상해진다. 이는 〈우리와 상관없이〉 영화와 함께 걸어가는 데,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발설되고 쌓여지지만 지층은 고르지 못하고, 고정된 의미는 설계되지 못한 채 땅 위를 실금을 긋는 행위만을 반복한다.
영화는 이처럼 불명확성의 힘에 기대어 있음을 전면으로 드러내고, 흐름을 박탈시켜 안정성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 선을 따라 집합되던 대상들은 사방으로 획을 그려대는 선들의 틈새에 껴 자신의 정체성을 다양화하는데, 인물들은 장면이 변화할 때마다 다른 옷을 입은 타인이 되며, 상이한 정체성이 발화되어 엉뚱한 목소리 내기를 반복한다. 쇼트가 변화할 때마다 중심이 상이해진다.
정립하기를 부정하는 영화의 태도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의지하며 조합되고 있다. 기존의 영화 속 쇼트들의 구성은 새로운 완성을 위한 목적을 두고 선형적 구성에 자신의 존재성을 단서 마냥 기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본 영화는 그 흐름성을 전복해 대상만을 덩그러니 두고 있다. 결국 그 속에서 밝혀지는 것은 우리가 보여지는 것에 쉽게 현혹되어 따라가게 된다는 가설이며, 관객의 눈은 쇼트들의 연발 속에서 가상의 이야기를 혼합시켜 개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영화는 관객에 따라 새로운 세계를 생성시키는 매개가 된다. 서사의 기능은 관객을 부추기지만, 각자의 시각에 따라 영화는 상이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와 상관없이〉가 더욱 돌출되어 느껴지는 까닭은 영화가 완결성을 부수고 형태가 모호한 돌을 쌓아 집을 만들려는 태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피사체만이 남겨진 영화를 통해 우리는 무수한 가지치기와 변수를 통해 벽돌을 틈새를 맞추려는 데, 추상성을 뒤 감은 이야기가 전면에 내세워지자, 관객은 정황을 무수히 번복해 극을 바라보게 된다.
관객 본연의 시각을 밝히기 위해, 드러나지 않는 대상 사이의 긴밀한 관계에 집중하라는 듯 영화는 고한다. 2부는 ‘화령’이 질병을 겪기 전 찍었다는 영화를 보여주는 데, 앞서 숨겨지듯 밝혀지지 않던 것들이 무수히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자 의식에 기저에 깔려 있던 다양한 사건과 정황들이 충돌하여 무한한 기록으로 완성된다. 그렇게 ‘화령’이 보지 못한, 기억하지 못할 영화는 펼쳐진다.
다시 돌아와 그렇다면 이 영화 속 스크린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쇄되는 질문은 ‘존재’란 영화라는 단어와 결합할 수 있는 대상인가이다. 어떠한 결합 속에서 ‘삶’이란 생을 쟁취하는 영화는, 오로지 영화 속에서 새 생명, 새 공간, 새 이야기,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낸다. 빈 벽을 오랜 시간 들여다봐도 그 깊숙이에 존재하는 것은 각자가 가진 답에 따라 상이하다. 숨기듯이 보여지지 않았던 것들은 되려 공(空)의 상태에 있을 때, 더욱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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