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삶, 그 뒷이야기 <불안한 외출>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5년 12월 17일(목) 오후 8시 10분
참석: 김철민 감독, 주인공 황선, 박래군 소장(인권재단 사람)
진행: 김일란 감독(<두 개의 문>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불안한 외출>은 국가보안법의 적용을 받아 15년에 걸친 수배 및 수감 생활로 인해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야만 했던 윤기진과 그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출소 후 기쁨도 잠시, 그는 수감 생활 동안 주고받았던 편지들로 인해 다시금 재판의 기로에 서게 되고 영화는 그 과정 역시 추적하고 포착한다. 지난 목요일,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영화의 감독과 윤기진의 아내 황선, 그리고 인권운동가 박래군과 함께 하는 인디토크 자리를 마련했다.
김일란 감독(이하 진행): 영화를 보고 있자니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궁금한 부분도 많은데요. 뻔 한 질문이긴 하나, 제일 먼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국가폭력, 그리고 인권침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저희가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는 막연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세 분은 국가폭력, 인권침해를 자신들의 경험 속에서 어떻게 정의하고 계시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황선(이하 황): 글쎄요. 딱 한 마디로 이걸 정리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학교 다닐 적부터 많이 들어왔고 써 왔던 표현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다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김철민 감독(이하 김): 제가 정의 같은 걸 잘 못해서……. 저는 자신들의 기준과 잣대로 국가가 그것을 범죄시하고 구속하려는 것이 국가폭력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토론과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만들어갈 수 있는 문제들을 자신과 조금 다른 생각이라고 범죄시 하는 것이 특정인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생각을 구속하고 얽매는 것이야 말로 국가 폭력 중에서도 심각한 것이 아닌가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기도 하고요. 질문이랑 좀 안 맞나요?(웃음)
박래군 소장(이하 박): 요즈음 한창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 더 큰 폭력은 따로 있거든요. 최근 백남기 씨 같은 경우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데, 계속 언론에서는 이 시위를 불법 폭력 시위라고 부각하죠. 사실 제도에 의한 폭력, 공권력에 의한 폭력, 법에 의한 폭력 등이 가져오는 결과들이 더 끔찍하고 굉장히 크거든요. 엄청난 폭력들이 자행됨에도 그 본질이 가려져 있습니다. 더욱 끔찍하고 심각한 폭력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지 못한 채로 있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에 굉장히 익숙해있어요. 그런 면에서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게 이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배경이 된 문제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지 않나 싶어요.
진행: 얘기를 듣다보니 국가폭력이라는 말이 알 듯 다가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거리감이 있고 조금 추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만 그런가요?(웃음) 이 영화를 통해 또 문득 들었던 생각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두 분이 어떻게 연애를 했을까‘였고, ’그것을 불안하게 했던 것이 국가폭력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의하시나요?
황: 사실 수배 중에 연애를 한다는 게 굉장히 극단적이었죠. 만나는 순간마다 1분이 늦어지고 5분이 늦어지면 그 짧은 시간까지도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매번 만나는 순간이 소중하고, 오늘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한 번의 만남을 잘 해야 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굉장히 높았던 것 같아요. 만난 횟수에 비해 싸움도 많이 했어요.
진행: 어떤 걸로 싸우셨나요?
황: 수배자랑 만나는데 왜 늦었느냐 라던가.(웃음) 사정이 있어서 늦은 건데 말이죠. 또 전화를 하기 위해서는 공중전화를 얼마 이상 이용하지 못하고, 이 동네 저 동네로 이동하면서 이용해야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배터리가 없다던가 하면, 제 잘못도 아닌데 서로 열 받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이 참 안타까웠죠. 영화에 담지 못한 더 리얼한 삶들이 많습니다.
박: 영화를 본 지는 오래 됐지만 기억에 남는 것이 아이들 모습이거든요. 감옥에 있는 아빠를 만날 때의 그 모습들, 아이들이 좀 어색해 하잖아요. 굉장히 안타깝죠. 10년 동안 수배당하고 감옥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그런 일들이 얼마나 불안했을까 싶어요. 일상 자체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맘대로 못 만나고, 아이들도 맘대로 못 안아보고. 면회실에 가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이크를 통해 대화를 하잖아요. 아이가 바로 앞에 있는데 만져볼 수가 없는 거죠. 그런 부분이 굉장히 안타까운데 이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어릴 때부터 겪었던 거예요. 그런 것들이 국가 폭력의 잔인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진행: 최근 종북이라는 말이 어떤 특정한 정치 세력이나 운동의 조직이나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보다는 혐오의 수식어로 활용되기도 하잖아요.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뜻을 지닌 말처럼 사용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경험이 듣고 싶습니다.
황: 이 말이 불쾌한 것은, 다른 사람이 나랑 똑같이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고 스스로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전혀 존중하지 못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현대 사회를 돌아보면, 어휘로 사람들을 규정하고 왕따 시키는 것이 권력을 계속 쥐고 있는 사람들의 유일한 무기거든요. 그들은 전혀 새로운 것을 공부하거나 자기 계발을 하지 않아요. 이런 것들이 굉장히 가슴 아팠고, 이 영화를 통해 감히 함부로 누군가의 머리를 재단하고 강요하는 질문을 던질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약간이라도 일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상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보장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우리 의식이 좀 높아져야한다는 생각과, <불안한 외출>을 많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김: 네. 많이 좀 도와주십시오.(웃음)
진행: 감독님은 어떠세요?
김: 저는 유명하지 않아서 공개적으로 공격받지는 않는데요, 영화 개봉하고 나서는 댓글이 되게 많이 달리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놀랍긴 했어요. 제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다보니까 같이 활동을 하시는 분들조차도 가끔 물어 오실 때가 있거든요. ‘너의 진짜 사상은 뭐니?’라고요. 농담이시긴 한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안에서도 연대해서 국가폭력이나 인권문제에 같이 대항해야 하는데, 선뜻 다가서기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아닌가, ‘이 쪽에서 같이 하면 우리까지 곤란해질 수 있어’라고 생각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행: 제가 알기로는 김철민 감독이 영화 개봉을 위해 다양한 준비들을 하셨는데,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이 영화의 메시지를 곡해하거나 나쁜 말들을 일부러 사용하시는 경우들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감독님이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말이죠.
관객: 윤기진 씨께서 명지대를 다니셨고, 황선 씨는 덕성여대 다니신 걸로 알고 있는데 두 분이 어떻게 만나서 어떤 연애를 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수배당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신 건지, 그 러브 스토리를 듣고 싶어요.
김: 잘생겨서 결혼하셨대요.(웃음)
황: 윤기진 씨가 한총련 의장일 때는 제가 감옥에 있을 때라서 못 봤고요. 제가 출소하니까 이 사람은 수배자로 있었고, 한 단체에서 일하게 됐어요. 수배자니까 몰래 만나야 되잖아요. 그래서 몰래 자주 만나서 회의를 하고, 둘이 수다도 많이 떨고, 주량이 비슷해서 술도 많이 먹다가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웃음)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를 하셨죠. 골치 아픈 건 저 하나로 충분한데 사위까지 수배자를 데리고 온다니까.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먼저 임신을 했습니다.(웃음)
진행: 역시 사랑 이야기가 가장 재밌네요.
관객: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편지를 썼던 것 때문에 다시 재판을 받는 과정이었는데요. 영화 보는 과정에서는 고민할 필요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 결과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에 지장을 받는 걸 보면서 정말 무서운 거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이 와 닿았습니다. 감독님께서 국가보안법을 영화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셨지만, 실제로 다뤄져야 하는 이야기들이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 제가 영화에서 드리고 싶었던 이야기는, 국가 폭력이 우리 일상에 어떠한 불안한 삶을 만들고 있는지 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본인의 뜨거웠던 마음으로 대학 시절 시작했던 학생 운동이 계속 범죄시되고 탄압 받죠. 한편으로는 바보처럼 지키려 했던 양심 때문에 그렇게 살고 있죠. 만일 거기서 무너졌다면 삶은 조금 편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들이 원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권력에 맞서 양심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 현실인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어요. 보고 돌아가셔서 의문을 품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기도 하고요.
진행: 세 분께 들어야 할 이야기들이 정말 많지만,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말씀 들으며 마무리할까 합니다.
황: 당분간은 영화를 통해 관객 분들을 많이 만나려고 하고요. 영화 속 과거 연대 항쟁 부분들을 보면서 최근의 소외되고 몰린 것들이 많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때의 그 현실에서 오늘의 우리 사회는 과연 얼마만큼 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지 않은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모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김: 선배들이 오늘만 살 것처럼 살라고 다그쳤어요. 영화 개봉하기가 참 쉽지 않더라고요. 저희 영화 주변에 많이 소개해주세요. 많은 분들이 후원도 해주셨는데, 후원받은 걸로 최대한 많은 관객 분들을 찾아뵈려 노력하려고 합니다. 주변에 후기 남겨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영화 끝나면 다른 영화 만들려고 계획 중이고요. 너무 처참한 스코어가 나오면 고민이 될 것 같습니다.(웃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영화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 4.16연대 활동을 하며 내년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들 계속 해 나갈 거고요. 다들 주눅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폭력이 들어먹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고,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를 강제로 막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저항도 있을 수 있지만 작은 저항도 해 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불안한 외출>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5년의 세월은 본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불안한 외출’의 끝이 가족의 품일지, 아니면 다시 제자리걸음일지 아직까지도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불완전한 삶 속에서 평범한 남편으로 그리고 가장으로 살고 싶은 한 남자의 이야기, <불안한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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