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죽지 않는다 <그들이 죽었다>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5년 12월 11일(금) 오후 7시 30분
참석: 백재호 감독 | 배우 김상석, 이화
진행: 김조광수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추병진 님의 글입니다.
<그들이 죽었다>는 백재호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배우로서 연기 활동을 하다가 (심지어 단편도 아닌 장편영화) 연출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백재호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끈기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일 것이다. 그동안 백재호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온 김상석 배우와 <그들이 죽었다>에서 감초 같은 역할을 맡은 이화 배우를 모시고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조광수 감독 (이하 진행): 첫 연출작을 극장에서 개봉하게 된 소감이 어떠신가요?
백재호 감독 (이하 백): 영화를 만들고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어려운 일인지는 몰랐어요. 관객 분들을 극장으로 모시는 게 엄청나게 힘든 일이더라고요. 어쨌든 제가 처음에 영화를 찍으면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서 저는 지금 이 상황이 만족스럽고 행복합니다. 이 영화를 만들 때처럼 열심히 해야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아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진행: 페이스북을 보니까 어제 서울에 있는 거의 모든 상영관을 돌아다니셨더라고요.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으세요?
백: 저는 관객 분들을 실제로 뵙고 인사도 드리고 싶어서 즐겁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진행: 김상석 배우님은 이 영화에서는 배우로 연기만 하셨지만 그 전에는 연출(<별일 아니다>)도 하셨잖아요. 연출과 연기를 함께하면 힘들지 않으세요?
김상석 배우 (이하 김): 힘들지 않은 이유가 저희를 찾아주는 곳이 그렇게 없어서,(웃음) 시간이 많이 비어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러느라 딱히 힘들지는 않아요. 저희가 뜻하지 않게 연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이게 정말 만만한게 아니구나’, ‘한번 슬쩍 해보고 그만 둘 수는 없구나’ 라는 것을 저도 그렇고, 백재호 감독님도 느꼈어요. 그런 면에서는 어렵기도 해요. 예전에는 치기어린 마음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나를 안 찾아주지?’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를 만들어보니까 저희가 어떤 면에서 부족한지 알 수도 있었습니다.
진행: 연기를 하던 배우들이 팀을 이루어서 연출을 하고 서로 출연도 하고, 연출부, 제작부 역할도 품앗이하면서 작품을 만들고 계시잖아요? 연기를 하다가 굳이 연출까지 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백: 저나 상석이나 아까 말한 대로 정말 시간이 많이 남아요. 그러던 중에 내가 정말 영화를 하고 싶은데 왜 계속 기다려야 하나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자, 최소한 만들면 어찌되었든 공부는 될 테니까요. 또 제가 어느 단편영화제에 갔는데 영화 관계자 분들이 많이 오셨더라고요. 영화가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이름을 적어가고요. 그래서 단편영화 하나를 잘 만들면 여기저기 프로필을 돌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겠다 싶어가지고 시작한 것이기도 합니다. 김조광수 감독님이 말씀하신대로 영화로서는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배우로서는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진행: 백재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조연이고,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감독 입장에서 배우 백재호에게 관심이 생겼는가 하면... 솔직히 말해서 미지수입니다.(웃음) 감독 백재호로는 충분히 매력이 있죠. 그런데 이화 배우님은 원래 이분들과 같은 멤버인가요?
이화 배우 (이하 이): 아니요. 사실 저는 되게 잘 팔리는 배우에요.(웃음) 이분들과는 다른. 농담이고요. 단편영화를 하나 만들면서 이 두 분과 만나게 되었어요. 김상석 배우님과는 학교 선후배 사이고요. 어쩌다보니 잘 엮인 것 같습니다.(웃음)
관객: 포스터를 보면 두 분의 뒷모습이 나와 있는데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저는 옥상에서 이화를 찾아가는 장면이 상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선 살고 싶다고 말하잖아요? 굳이 지구를 멸망시킨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백: 저희가 영화 스틸 컷이 없어요, 영화 현장에 스틸 기사가 없었기 때문에. 영화 캡쳐 이미지를 쓸까 생각했다가 홍보 방향이나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이화의 모습은 숨기기로 했어요. 포스터에 나온 남자 둘의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었습니다. 저희가 영화를 찍고 있는 모습을 제가 아는 형님께서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그리고 살고 싶다고 말했는데 지구를 멸망시킨 이유는,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별로 괜찮지 않은 친구들이나 이 세상을 모두 없애고, 상석이나 여기에 있는 우리들이 관객들 앞에 딱 나타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별로 괜찮지 않은 그 세계가 다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진행: 이 작품은 약간 집단 창작과 비슷하잖아요. 엔딩에 대해서 이견이나 논란은 없었나요?
김: 사실 재호가 비밀스런 연출을 견지해서 촬영 전날이나 그날 아침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알려주었거든요. 반론이 있어도 바꿀 수 없었어요.
진행: 천재들만 한다는 시나리오 없이 창조하는...(웃음)
김: 이러이러한 장면들을 찍을 거야, 정도는 말해주는데 몇 번씩은 계속 바뀌어요. 재호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들이랑, 또 겪어가면서 실제로 경험했던 것, 그리고 편집하고 생각하면서 바뀐 것들도 그렇고. 저희 반론이 있지 않았는데 좀 놀랐죠. 마지막에 운석이 떨어진다고 해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죠. “독립영화에서 무슨 운석이냐.” 그런데 진짜 CG까지 넣더라고요. 초벌 CG를 했을 때에는 약간 아쉬웠는데, 막상 마지막 결과물을 보니 정말 좋았어요. 또 운이 좋게도 그 장면을 촬영하던 때가 눈이 가장 많이 내린 날이기도 했고 여러 가지 것들이 잘 따라주었어요. 결국 영화를 보고난 다음에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되었고, 관객 분들도 그 장면을 많이 이야기해주셔서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 이화 배우님은 엔딩에 대해서 알고 계셨나요?
이: 알고 있었나? 기억이 잘 안나네요.(웃음) 저도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무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의견 표현을 잘 안했던 것 같아요. 그 점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에요.
진행: 시나리오 없이 즉흥적으로 찍는 것이 쉽지는 않잖아요. 굉장히 어려웠을 텐데요.
백: 영화의 전체 제작 기간이 3년 정도 걸렸는데, 처음 시나리오 쓴 이후에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겪은 일들이 계속 생기잖아요. 촬영하면서도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그래서 그때마다 시나리오를 다시 쓰는 걸 반복했어요. 마지막 버전의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도 한 번에 다 보여준다기 보다는 뒤의 이야기를 차츰 차츰 알려드렸어요. 우리도 앞으로의 인생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 장면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은 뒤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도 모르고 있었죠.
관객: 영화를 촬영할 때 실제로 아이폰으로 촬영한 부분도 있었나요? 또 영화를 만들면서 생겼던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백: 실제 아이폰 소스를 사용한 것은 성북동의 재개발 구역에서 촬영한 장면이에요. 앞부분이 화질이 떨어지거나 색감이 부족하다고 느끼셨을 지도 모르는데, 페이크 다큐 부분은 일부러 색감을 많이 떨어뜨리고, 화질을 좀 이상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것 자체가 친구들이 그냥 만들고 있는 영화, 자기들이 서로 찍은 셀프 비디오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아이폰으로 찍은 것처럼 보여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뒷부분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상석의 상상 부분을 잘 만들면 앞부분이 이상하더라도 오히려 뒷부분이 더 아름답고 이쁘게 보이지 않을까 싶었고, 그래서 아이폰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 것 같아요. 예산이 적다보니까 많이 열악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끈끈합니다. 또 영화를 좋아해서 시작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큰 사고나 싸움이 벌어지지는 않고요. 독립영화 현장이 불편해보일 수는 있는데 실제로는 아름다운 현장입니다.
세상은 멸망하고, 그들은 죽는다. 생전에 그들이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또 정말 우리는 세상이 멸망하기를 바라고 있을까? 영화가 끝나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게 된다. 백재호 감독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결과물 역시 기존 영화들과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는 지구가 멸망하면서 끝을 맺지만, 그의 영화 세계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배우와 감독의 역할을 겸하는 백재호 감독의 상상력과 그의 고민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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