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기자단 [인디즈] 추병진, 김가영 님의 글입니다.
영화를 연출하는 것도 모자라 본인 스스로 연기까지 수행하는 감독들. 한국의 독립영화계에는 대표적으로 양익준, 박정범, 조현철, 구교환 등이 있다. 대다수의 감독들이 자신의 모습을 꽁꽁 감추며 카메라 뒤에 서 있다면, 이들은 카메라 앞에 등장하면서 관객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과감히 노출시킨다. 영화의 연출 방식이 감독마다 각자 다른 것처럼, 이들 역시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 때문인지 이 감독들은 관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연기와 연출을 겸하게 되었을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1. 양익준
이제 우리는 영화에서는 물론이고 TV드라마를 통해서도 양익준 감독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장편영화 데뷔작 <똥파리>(2008)를 통해 주목을 받은 이후로, 그는 지속적으로 단편영화를 연출함과 동시에 여러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독보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대중과의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다. 친근한 외모에서 우러나오는 다양한 감정과 표정들은 배우 양익준의 작품들을 기대하게 만들며, <똥파리>에서 보여준 극적인 이야기와 맛깔 나는 대사는 감독 양익준의 두 번째 장편영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양익준 감독은 공주영상대학 연기과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하였다. 상업영화에서는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독립영화에서는 주로 주·조연 역할을 맡았다. 그러던 중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허우 샤오시엔의 마스터클래스에 감명을 받고나서 영화를 직접 연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수행한 단편 <바라만 본다>(2005)를 계기로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그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하였다. 그 후 몇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마침내 완성한 장편영화 데뷔작 <똥파리>(2008)를 통해 국내·외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고 단숨에 주목받는 배우이자 감독으로 떠오른다.
<똥파리> 이후, 배우 양익준은 여러 상업영화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고, 감독 양익준은 단편영화 <미성년>(2011)과 <Departure>(2011), 그리고 일본에서 촬영한 <시바타와 나가오>(2012) 등을 연출하였다. 그는 주로 연출자보다는 연기자로서 다수의 작품에 임했는데,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에서는 개성 있는 목소리 연기로 극의 몰입감을 한층 더 끌어올렸고, 양영희 감독의 <가족의 나라>(2012)에서는 갈등에 빠진 인물의 복잡한 심정을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또한 그는 영화 현장뿐만 아니라 TV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등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1975년생인 배우 양익준은 자신이 경험한 삶을 영화 속에 그대로 표현해내는 배우이다. 평소 우리는 유쾌하고 장난기 가득한 그의 일상적인 얼굴을 보다가도,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는 냉철하고 잔인하다 못해 고독한 그의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감독 양익준은 이 양면적인 요소를 자신의 영화 안에 끌어들인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웃음과 그 속에 감추어진 쓸쓸한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그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 낼 새로운 영화는 어떤 모습일지 여전히 궁금하다.
2. 박정범
박정범 감독의 얼굴은 인상이 강해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무산일기>(2010)의 주인공 ‘승철’이나 <산다>(2014)의 주인공 ‘정철’ 역시 유난히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딱딱하고 굳은 표정은 이미 배우이자 감독인 박정범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양익준 감독처럼 연기를 전문적으로 하는 감독은 아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영화에서 대체 불가능한 주인공 역할을 직접 소화해낸다.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이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박정범 감독은 주인공이 느끼는 피로와 고통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끌어들인다.
박정범 감독은 연세대 체육교육과에 재학 중인 시절, 영화 교양수업을 들으며 <사경>(2000)이라는 단편영화를 처음 연출하였다. 이 작품은 그해 연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였고, 그 다음해에 만든 <사경을 헤매다>(2001)라는 단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주목을 받은 그는 영화 제작사에서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쓰지만 정작 영화로 탄생하지는 못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온갖 육체노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출품한 영화들은 영화제에서 번번이 떨어졌고, 막노동을 전전하는 생활은 약 7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본인이 직접 연출하고 주인공 역할을 맡은 <125 전승철>(2008)이 미장센 단편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면서 박정범 감독은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창동 감독의 <시>(2010) 제작 현장에서 조감독 역할을 맡는 행운을 얻었다.
<시>의 조감독 활동 중에 쓴 <무산일기>의 시나리오는 동국대 영상대학원 졸업작품으로 제작되었고, <무산일기>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으며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다. 이창동 감독의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적인 스타일을 통해서 탈북자 전승철의 삶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내었다. 실제로 위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본인의 친구 ‘전승철’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는 주인공 역할을 직접 맡았다. 그 이후 전주국제영화제 숏!숏!숏!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단편 <일주일>(2012)에서도 그는 주연 및 연출을 맡았고, 올해 개봉한 두 번째 장편영화 <산다>에서도 막노동을 통해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청년 ‘정철’을 연기하였다.
박정범 감독은 ‘결국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의식 속에서 영화를 만든다. 그는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냉혹하고 처절한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 스스로 배우를 자처하고 스크린 안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 세상은 고단한 육체노동과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그는 영화 속에서 정말로 고된 일을 수행하고, 맞는 척이 아니라 정말로 구타를 당한다. 이것은 ‘정말 그런 것처럼 따라하는’ 연기가 아니라 현실을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처럼 박정범 감독의 영화는 가짜나 단순히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을 완전히 배제시킨다. 이것이 바로 박정범 감독이 추구하는 사실적인 영화의 기본 조건이며, 동시에 본인 스스로가 연기를 자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 조현철
<차이나타운>(2015)에서 지적 장애인 ‘홍주’역을 맡은 배우를 기억하는가? 그가 바로 <두근두근 영춘권>(2010)에서 박희본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던 배우이자 <척추측만>(2009)을 연출한 감독 ‘조현철’이다. 영화 속 그의 모습은 항상 뭔가 어눌하면서도 약간 덜 떨어진 느낌이 많이 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와중에 또 그런 연기가 매우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영화 속 어눌한 모습과는 달리 조현철은 영화계의 수재라고 불리는데, 서강대 인문학부를 다니던 그가 한학기만에 자퇴서를 내고 전부터 가고 싶어 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갔다는 것만 보아도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학교에서 연출을 전공하였기에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2009년부터 많은 단편영화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무뚝뚝하면서도 매력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윤성호 감독의 <두근두근 영춘권>에서는 박희본 배우와 함께, 김수지 감독의 <잠복기>(2010)에서는 지금 ‘응답하라 1988‘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배우 이민지와 함께, 최아름 감독의 <영아>(2012)에서는 동문이자 <차이나타운>에서 맹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김고은과 함께 출연하며 남다른 여배우 복을 자랑하기도 했다.
조현철은 연기뿐만 아니라 연출로도 이미 인정받은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주요 연출작으로는 <척추측만>, <로보트:리바이벌>(2015), <뎀프시롤:참회록>(2014) 등이 있다. 특히 직접 주연을 맡은 <척추측만>은 제 36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수상하기도 하여 감독으로서의 면모를 확인시켜주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현재 <뎀프시롤:참회록>의 장편화를 위해 공동 각본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소속사 ‘프레인TPC’에 들어가게 되어 양익준, 김무열, 류승룡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친형이자 힙합 뮤지션인 매드클라운의 뒤를 이어 승승장구할 모습을 기대해본다.
4. 구교환
감독 겸 배우, 구교환. 그는 서울예술대학 영화과를 나와 2008년 <아이들>과 <죽기 직전 그들> 등을 통해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들에 참여하여 그만의 독특한 연기를 선보였고, 2011년에는 대변 대신 거북이를 배설하는 영화 <거북이들>에서 처음으로 연출과 주연을 맡아 제 13회 정동진 독립영화제에서 땡그랑 동전상을 수상하는 등, 연출력과 연기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거북이들> 이후에도 그는 연출과 연기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2014년부터는 <4학년 보경이>를 통해 이옥섭 감독과 함께 작업을 시작하여 <오늘영화>(2014), <방과 후 티타임 리턴즈>(2015)를 통해 연이어 공동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배우로서의 구교환은 아주 독특한 캐릭터이다. 각진 얼굴과 개성 있는 헤어스타일, 그리고 그만의 특유한 하이톤의 목소리는 예상 외로 신선한 조화를 이루고, 그의 맛깔 나는 연기는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웰컴 투 마이 홈>과 <왜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2013)는 유쾌한 그의 모습이 아주 잘 나타나있는 작품으로, <왜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는 13회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희극지왕 최우수상을 타게 되면서 그만의 색채를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감독으로서의 구교환은 배우로서의 구교환에서 나온 느낌이 강하다. 대체로 우연적인 것들로 구성이 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은데, 감독으로서의 구교환도 그러한 우연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우연성에 기반을 둔 연출과 연기가 관객들로 하여금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게 하는 하나의 장치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옥섭 감독의 <라즈 온 에어>(2012)를 보고 그녀의 작품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그녀와의 작업들은 구교환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4학년 보경이>에서부터 오늘날 서울독립영화제 개폐막 영상 연출자로 선정되기까지, 둘은 서로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감독 겸 배우로서의 구교환이 이를 통해 영화계에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감독 겸 배우로서 활동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의 매력을 모두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감독으로서의 고충을 모두 이해하고, 좀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들로 인해서 한국영화의 미래가 더욱 밝게 빛나는 것 같다. 영화를 찍고, 찍히는 그들 양익준, 박정범, 조현철, 구교환은 그야말로 진정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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