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2 - 이승준 감독 기획전 대담 기록
일시: 2015년 8월 17일(월) 오후 7시
참석: 이승준 감독, 최광희 영화평론가
진행: 권효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가영 님의 글입니다.
전날 언제 폭우가 쏟아졌냐는 듯이 화창했던 월요일 오후, 뜨거웠던 해가 조금씩 식어갈 때 쯤 인디스페이스에서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2 - 이승준 기획전] 마지막 작품 <달에 부는 바람>(2014) 상영과 함께 대담회가 열렸다. <신의 아이들>(2008)과 <달팽이의 별>(2012)로 잘 알려진 이승준 감독의 기획전에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들부터 이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감독까지 다양한 관객들이 참석하였다.
권효 감독(이하 권): 먼저 감독님께서 세 편의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씀해주신 다음, 이에 대한 최광희 평론가님의 평론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승준 감독(이하 이): 저는 다큐멘터리감독입니다. 방송다큐멘터리를 99년도부터 쭉 해왔지만 따로 영상공부를 한 것은 아니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다큐멘터리, 그중에서도 방송다큐가 좋아서 그저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근데 졸업을 하고 인도에 일 년 정도 가게 되었고, 그때 선배랑 <보이지 않는 전쟁>(2000)이란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들었죠. 이후 다큐멘터리 잡지사에서도 있었고요. 단편 작업도하고 방송도 하고 다양하게 했어요. <신의 아이들>(2008)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다고 말할 수 있어요. 완성도 측면에서도 그렇고, 그 작품으로 해외영화제에도 나가서 아 이런 세계도 있구나 알게 된 거죠. <신의 아이들>의 제작자는 재작년에 돌아가신 이성규 감독님이었어요. 감독님 덕에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아요. 그리고 <달팽이의 별>(2012) 같은 경우는 너무 과분한 성과를 내서 저에게 있어 감독으로서 굉장히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달에 부는 바람>(2014)은 처음에 열에 아홉은 하지 말라고 했었거든요, 왜 또다시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이야기를 담느냐고요, 저는 연출을 할 때, 이야기를 결정할 때 가장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들의 시간 속에 들어가고 싶다’ 하는 마음이 끌리는 쪽으로 작품을 만들어요. 제 마음대로 했어요. 그래서 더 의미가 있죠.
최광희 평론가(이하 최): 제가 이승준 감독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달팽이의 별>이었어요. 저는 다큐멘터리를 극영화보다 선호하는데, 왜냐하면 극영화는 진짜처럼 만든 가짜이기 때문이에요. <달팽이의 별>이라는 작품을 처음에는 장애를 다룬 작품이라고만 알고 있었어요. 사실 극장 다큐멘터리를 접하거나 방송 다큐, 휴먼다큐를 볼 때 짜증이 날 때가 있어요. 감동을 억지로 쥐어짜고 지나치게 시청자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려고 연출된 화면 때문에요. 출연자가 눈물 흘리면 클로즈업으로 들어가는 이런 방식이 저는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그것을 보면서 사유의 주체로서 내가 감동을 만들어 낼 여지를 주어야하는데. 이런 휴먼다큐의 상투적인 방식이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측면에 있어서 불만이 많던 차에, 게다가 또 장애를 다룬다고 한다면, 아 이건 뻔하겠구나 하는 편견이 있었어요. 장애를 다루는 많은 다큐멘터리가 비장애인들이 장애를 갖지 않은 것에 안도하면서, 저런 사람들도 열심히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하는, 그러니까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삶의 희망에 사용하는 방식을 이용하죠. 그걸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얘기하면 장애를 착취 하는 거죠. 저는 그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장애를 다룬 다큐에 대한 그런 편견이 있었기 때문에 관객들 스스로를 위안하는 매체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저의 그런 편견을 깨줬어요. 오히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영철씨가 비장애인이 느끼지 못한 차원의 느낌을 느끼고 있어서 그 느낌이 무엇일까 유추해보게 하는 방식의 연출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두 사람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뛰어넘어서 그들이 감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좀 더 보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승준 감독이 대상에 다가가는 방식이 이렇구나 하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고 이후에 다른 작품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다른 작품들 모두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승준 감독이 단순히 소재주의에 함몰되어있다고 판단하기에는 상당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큐멘터리 시작점은 서구인들의 민족지향적인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됐거든요. 그래서 우리 보편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대상에 다가갈 때 그러한 자기중심적인 시선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성찰의 필터링을 거쳐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폭력적인 다큐멘터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 감독이 대상에 어느 정도의 개입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여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진정성이라는 생각이 들고, 2008년의 <신의 아이들>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승준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일상성을 것을 중요시해서 그 사람들의 기본적인 삶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그 안에서 드라마를 추출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이 돋보여요.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응시하게끔 만드는 촬영을 하죠. 내레이션을 등장인물들이 다 하고요. <신의 아이들>에서는 엘레스라는 꼬마가, <달팽이의 별>에서는 영찬씨가, <달에 부는 바람>에서도 예지 어머니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데 그것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포착하는 대상을 다큐멘터리의 주체로 끌어올리는 듯한, 동시에 형식적으로 자기 고백적이라는 면에 있어서 다큐감독이 대상과 거리를 두는듯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굉장히 밀착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또 작품에서 수중촬영신이 많이 등장합니다, <신의 아이들>에서 망자의 유품들이 흘러나올 때 물위와 물아래를 넘나들며 찍은 장면이든, <달팽이의 별>에서 베란다 파이프에서 물을 만지는 장면이든, <달에 부는 바람>에서 꽃이 피는 것을 지켜보는 그런 형식은 맥락적으로 보면 예지 엄마와 예지 사이의 갈등 내에서 그렇게 중요하진 않거든요. 그러한 장면들이 맥락 없이 들어가 있는 것 같지만, 그런 장면으로 인해서 인물들의 삶을 약간 우주적인 차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대상으로 우리의 울타리 안에 밀어 넣는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달에 부는 바람>에서 선인장이나 달이 나오는 장면에 대한 해석은 제가 혼자 한번 해본 것이고요. 감독님의 의도와 다를 수 있어요. 그런 장면들이 다큐멘터리의 주제의식과 어떻게 유기적인 연관이 있는 것인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일상’인건 맞아요. 다큐멘터리를 처음 시작할 때 운 좋게도 일상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당시에 다큐멘터리 잡지사에서 작업을 했던 게 있어요. 전기도 안 들어오는 강원도 산골에 할머니 두 분이 계신데, 함께 사신 지 30년 정도 되셨고 그분들 하는 일이 해 뜨면 일하고, 밥해먹고, 밭 메고 감자 캐고, 저녁 먹고, 자는 거예요, 주관하신 분이 이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일상이 절대 무료하지 않을 거라고, 굉장히 재미있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지속적으로 촬영을 하다보니까 어느 순간에 보이더라고요. 두 분이서 얘기하는 것들에서 작은 지혜들이 보이고, 옛날이야기들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느껴지니까 더 이상 무료한 일상으로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 이후로 계속 일상이라는 것을 키워드로 작업해왔던 것 같아요. 저는 다큐멘터리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이야기는 일상 속에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잘 발견하는 게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달에 부는 바람>에서 식물들은 어머니의 유일한 낙이고, 꽃을 키우고 물주는 그런 일상적인 행위를 보면 하루하루는 변함이 없죠. 그런데 2년 정도 촬영을 하다보니까 변화가 있어요. 꽃이 피고, 잎의 위치가 바뀌고 하는 것들. 사실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예지는 매일 똑같아요. 1년 전이나 1년 후에도. 근데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얘가 변했어요” 그래요. 몇 년 전하고 비교해보면 처음엔 신발도 혼자 못 신었는데 어느 순간 혼자 신발을 신더라는 거예요. 그러한 어머니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고 마침 그게 어머니의 일상 공간 속에 있었던 거죠. 저는 그런 것을 발견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달팽이의 별>에서 물방울도 마찬가지였고요. 베란다에 있는 물방울은 늘 있는 것이고, 그 친구는 계속 만져보는거고, 거기서 제가 해석한 이야기를 집어넣고 싶었던 거죠. 그럴듯한가요? (웃음)
최: 어떻게 보면 일상의 연장에서 그런 장면들을 찍으셨다는 말씀인데, 그런 장면들이 굉장히 특별해보여요. 그저 일상의 한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바로 다큐멘터리의 매력인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또 예지의 어머니의 모습과 중첩이 되면서 선인장에 쏟았을 어머니의 애정이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 또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은 감독님의 작품들의 제목이 뭐랄까요, 쓸데없이 거창합니다, (웃음) ‘신’의 아이들, 달팽이의 ‘별’, 달에 부는 ‘바람’ 이런 식으로 범우주적인 제목들을 선호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 곱씹을 점도 많습니다. 영화의 내용과 상호작용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제목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달에 부는 바람이 도대체 뭘까요? 이러한 제목을 생각한 동기가 있다면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어요.
이: 좋지 않나요? (웃음) 저는 최대한 과하지 않게, 그러나 특별하게, 이게 기본 콘셉트이에요. 그리고 정확하게 원칙을 가지고 짓는다기보다는 <달팽이의 별>에서 달팽이는 시청각중복장애인 자신들을 지칭하는, 소통도 느리고 모든 것이 느린, 그리고 달팽이의 촉수가 두 사람이 손가락으로 대화하는 것과 비슷해서 가져온 것이고, 별은 제가 어린왕자를 좋아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어린왕자 같은 면이 있어서 ‘달팽이의 별’이라고 지었어요. <달에 부는 바람>은 영어제목부터 지었어요. wind on the moon. 사실 정확하게 의미가 하나라고 말씀드리긴 힘들고요, 달이 여성성을 나타내기도 하고, 달에는 바람이 불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어머니한테는 있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예지가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아이라고 하는데, 어머니는 달라요, 어머니한테 예지는 할 줄 아는 게 많은 아이에요, 근데 안하려고 한다는 거죠.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는데 어머니한테만 있는 것, 그렇게 해서 만든 거예요. <신의 아이들>은 네팔에 있는 화장터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어떻게 보면 신에 의해 버려진 아이들, 하지만 그 안에서는 허용이 되는 것이죠, 부장품을 훔쳐가고, 제삿밥을 훔쳐 먹는 것이 허용되는, 그런 의미에서 이 아이들은 신에 의해 버려진 것이 아니라 허락받은 그 공간 안에서 삶을 허락받은 아이들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어요. 최근에 단편 하나 찍었는데 그 제목은 굉장히 쉬워요. 제목이 ‘얘기해도 돼’에요. 괜찮나요? (웃음)
권: 오늘 다큐멘터리 작업에 관여하고 준비하고 계신 분들이 오셨다고 알고 있는데, 혹시 제작하실 때 기본적인 원칙 같은 것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이: 대상에 대한 ‘존중’이요,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것은 일종의 관계 맺기와 관련이 있고, 내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와도 관계가 있어요. 저는 구성안에 맞춰서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뭘 찍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대부분은 그냥 그분들의 집에 가서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촬영해왔죠. 근데 주인공들이 싫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주인공들이 거부하는 날은 촬영을 안 해요. 설득하지도 않고. 보통 촬영기간이 길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아도 크게 지장이 없더라고요. 나는 감독이고 당신들은 촬영을 당하는 사람이라고 그 사람들이 인식을 해버리게 되면 그분들이 마음을 여는 것도 그 정도 까지만 되는 것이거든요. <달팽이의 별> 같은 경우, 처음에 되게 어색해 하셨어요. 밥 먹는 씬을 찍을 때에도 굉장히 어색해하시고, 근데 한 일 년 쯤 지나니까 걸어가는 씬이 있으면 지나가면서 ‘감독님, 한 번 더 할까요?’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편해지니까 저도 촬영하기가 쉬워졌죠, 그래서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관계를 잘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최: 평론가의 입장에서 볼 때 윤리성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봐요. 그래서 촬영과정에서 감독의 개입방식에 대한 타당성의 여부, 앞서 말씀드렸듯이 억지 감동을 위한 연출에 대해 상당히 까다롭게 보는 편이에요. 예전에 <워낭소리>(2008)라는 영화를 봤어요. 거기서 가족들이 모여서 소를 파느니 마느니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너무 연출된 티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 굉장히 질타한 적이 있었는데, 워낭소리 관객이 300만명이 들어서 (웃음) 역시 한국관객들은 울려야하는구나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워낭소리>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데 어느 경우에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대상에 밀착하고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고, 이를 통해서 대상의 삶이 바뀌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이를테면 <웨이스트 랜드>(2010)라는 다큐멘터리는 브라질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 ‘카타도르’들이 쓰레기로 자신들의 자화상을 만들어가는 예술작업을 감독이 시키고, 그 과정을 찍고, 나중에 작품을 보여주니 그 사람들이 쓰레기를 줍는 자신들의 일에 대해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희열을 맛보게 해주는 장면들이 등장하거든요. 또 최근 작품 중에서는 <액트 오브 킬링>(2012)이라는 작품도 감독이 취재대상의 삶을 바꿔놓죠. 감독님도 혹시 작품을 찍으면서 생긴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신의 아이들> 같은 경우에 배경이 되는 지역이 네팔이고, 최근에 큰 지진이 있었죠. 얼마 전에 연락이 닿았는데 다행히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신의 아이들>이 네팔의 영화제에서도 상영됐어요, 아이들이 그걸 영화제에서 봤고, 영화를 본 한 네팔 여자가수는 막내를 기숙사학교에 보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3남매의 큰오빠는 초반에 본드도 하던 친구였는데 그 영화를 보고 마음이 동했는지 이제는 더 이상 안한다고 하고요. 그리고 지금은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고 있고, 둘째는 아직도 뭐 그러고 있고. 그 작품은 여건상 3달 정도 찍었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찾아가보지 못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이런 소식들 덕에 안심이 되었고, 작품을 보고 변했다고 하니까 더욱 다행이다 싶었어요. <달팽이의 별> 같은 경우도 그분들이 알려지게 되면서 시청각중복 장애인들을 위한 정부기금을 받기도 하고, 지금도 그런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대상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나 합니다.
관객: 국내에 시청각복합장애인분들이 꽤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굳이 예지라는 아이와 그 어머니를 선정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혹시 그 이후에 예지에게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예지는 지금도 똑같습니다, 여전히 학교 다니고 있고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국가에서 조사한 적이 없어서 시청각중복장애인이 한국에 몇 명인지는 몰라요. 그중에서도 예지는 아주 특수한 경우죠. 흔히 시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헬렌 켈러를 떠올리면서 단순히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정도가 되게 다양해요, 조금 들리고 조금 안보여도 시청각장애인이에요. 그 편차가 다양하거든요. 그런데 예지 같은 경우는 국내에 유일하다고 알고 있고요, SBS 솔루션 프로그램에도 예지의 이야기가 한 번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 목적이 예지부모님께서 예지 같은 아이를 가진 부모님이 있으면 만나고 싶다는 거였는데,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고 해요. 나중에 의사선생님들께서 솔루션을 제시해주는 거였는데, 선생님들도 두 손을 드셨어요. 예지에 대해서 설명을 못 하는 거예요. 혹시 예지에게 정신적인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조사할 수가 없어요. <달팽이의 별>에 나오시는 분과 예지를 시청각중복장애인이라고 똑같이 생각하실 수 있는데, 분명히 달라요. 아마 우리들은 상상하기 힘들 거예요, 시각과 청각을 완전히 거세 했을 때의 그 느낌을 우리는 알 방법이 없어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어머니하고 교감하는 것들을 보면 뭔가 오간단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 장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엄마와 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죠, 아주 극단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했어요. 그래서 예지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거예요.
관객: <달팽이의 별>과 <달에 부는 바람>에서 주인공들이 바다에 간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바다가 나오는 장면에서 편안한 느낌을 받았는데, 주인공들도 편안해보이기도 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도 같고, 장애와 바다 사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이: <달팽이의 별> 같은 경우는 주인공이 수영을 좋아했어요. 장애인들에게 수영이 굉장히 좋아요, 안전하니까, 물속에서의 자유를 즐기는 거예요. <달에 부는 바람>의 예지 부모님이 예지를 되게 많이 데리고 다니셨대요, 대부분은 잘 안 데리고 다니려할 것 같잖아요. 근데 두 분은 일부러 다녔대요, 예지가 바다가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장애와 연관이 되어서 그것 때문에 촬영을 간 것은 아니고 촬영을 하다 보니까 물이라는 것이 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굉장히 자유로운 느낌을 줄 수 있는 공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죠.
관객: 촬영 시 장비들을 들고 움직이려면 스태프들과 계속해서 함께 움직이셨을 것이라 생각해요. <달팽이의 별> 예지 같은 경우는 시청각중복장애인이라 하더라도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현장에서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예지는 저를 몰라요. 예지한테는 손에 잡히는 사람만 있는 것이거든요. 가족들과 선생님은 인식을 해요. 근데 제가 가서 인사를 하면 저를 한 번 잡고는 너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 하고 저를 밀쳐내요. 그러니까 예지는 저도 모르고 같이 갔던 스태프도 모르죠, 그래서 더 편하게 작업했어요.
관객: 촬영기간이 대체로 긴데, 그 기간은 촬영을 하다가 이제 어느 정도 됐다 싶을 때 멈추는 건지, 미리 정해놓고 촬영을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이: <신의 아이들>은 제작비가 제대로 마련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제약으로 두세 달 밖에 찍지 못했고요, 나머지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2년을 잡아요, 1년 정도 찍으면 그 사람들의 일상이 나온다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 특별한 사건이 있다 싶으면 그것까지 찍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한 1년 정도를 같이 지켜보면 다 나오지 않나 생각합니다.
관객: 멀리서 촬영하다보면 관찰하는 입장에서 순간순간 궁금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럴 때는 인터뷰를 통해서 바로 궁금증을 해소하시는지, 아니면 긴 촬영기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아 가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저는 사전 인터뷰를 많이 해요, 평소에 차 한 잔 하면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상대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잘 알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현장에서 이 이야기는 인터뷰에서 써야지, 이럴 때는 이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하는 것들을 대충 예상할 수 있죠.
권: 끝으로 지금 어떤 작품을 하고 계시고, 앞으로의 방향은 어떻게 되는지 말씀 나누면서 대담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최근 단편 다큐멘터리를 하나 끝내면서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을 하게 되었어요, 힘들었지만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잘 모를 때는 무작정 시작하게 되는데, 조금씩 아는 것들이 늘어가면서 시작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은 장편에 대한 계획은 없고, 계속 고민 중입니다.
이승준 감독은 우리에게 억지스러운 감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존경받을 만하다. 이와 동시에 기존 한국 다큐멘터리의 관습적인 눈물 짜내기 식 연출 방식을 맹렬하게 꼬집어낸 최광희 평론가의 말은 한국 다큐멘터리에 대한 우리의 가려움을 말끔히 해소시켜주었으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 이승준 감독의 작품들이야 말로 앞으로 한국 다큐멘터리가 나아가야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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