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처럼 남겨진 잔상 인디돌잔치 <야간비행>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8월 25일(화) 오후 7시 30분
참석: 이송희일 감독
진행: 김도란 인디스페이스 기획운영팀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빈 님의 글입니다.
여름의 끝을 알리는 비가 내리던 저녁,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영화 <야간비행>의 돌잔치가 열렸다. 오랜만에 ‘용주’와 ‘기웅’을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았다. 이 영화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해 한창 이름을 알리고 있는 두 주인공, 배우 곽시양, 이재준은 스케줄 문제로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송희일 감독이 참석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애정 어린 궁금증들을 풀어 주었다. 위트 넘치는 감독님 덕에 시종일관 웃음이 함께 했던 인디토크 현장을 전한다.
김도란 기획운영팀장(이하 진행): 이번 인디돌잔치 투표에서 <야간비행>이 압도적인 지지율로 선정돼 상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감을 한 마디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송희일 감독(이하 감독): 미모순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진행: 홍보를 개별적으로 하셨나요?
감독: 투표하는 건지도 몰랐어요.
진행: 영화가 다들 보셨다시피 굉장히 길죠. 원래는 8부작 드라마를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쓰셨다고 들었는데 그걸 한 편의 시나리오로 압축하는 과정이 어떠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감독: GV를 한 지 좀 오래됐어요. 그래서 이렇게 근본적인 질문이 들어오면 이전에 만든 영화들이랑 헷갈려요. (웃음) 요즘 한국영화가 천만 명 들고 그러잖아요. 2007년에서 2008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제가 이 영화를 쓸 때쯤은 한국영화 상황이 별로 안 좋았어요. 60퍼센트 정도에 달하는 기술스태프들이 충무로에서 나갈 정도로요. 독립영화라는 게 상업영화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상업영화판이 힘들면 독립영화판도 같이 힘들어지거든요. 독립영화 하면서 먹고 살기 힘들겠다 싶었어요. 지금은 케이블 드라마가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고 4%넘으면 대박이라고 하는데, 당시만 해도 자체 제작을 하지 않았거든요. 대안적인 형태의 8부작 정도의 드라마로 공중파에서 소화하지 못할 내용을 도전을 한번 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좀 빨랐던 것 같아요. 요즘은 웹드라마 형태로 제작비도 좀 적게 들이고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포맷이 있는데 당시만 해도 케이블 TV밖엔 없었어요. 보시는 것처럼 기웅, 용주, 그리고 영화엔 소개하지 않았던 파일럿, 노동자. 이렇게 네 명의 성장에 관한 대안적인 드라마로 8부작으로 썼었어요. 근데 어떤 투자사에서 프리퀄처럼 극장용 영화랑 드라마가 같이 나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8부작 중 1화 내용이 용주와 기웅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었는데 그 부분을 확대 시켜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당시엔 기웅과 용주의 러브스토리에만 국한되어 있었어요. 그러다가 모든 프로젝트가 물 건너가서 서랍에 던져 놓고 있었는데, 2013년 겨울쯤에 이걸 끄집어내서 다시 한 번 영화로 만들자고 프로듀서가 제안했어요. 그 때 학교 폭력 문제가 크게 불거졌었어요. 영화에 잠깐 소개되었었지만 ‘대구 중학생 엘리베이터 사건’이 어떻게 보면 시나리오를 다시 서랍 속에서 다시 꺼내게 된 배경 중에 한 사건이었어요. 그 장면을 보셨던 모든 분들이 마음이 아프셨을 텐데, 저도 역시 마찬가지로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어요. 러브스토리에 국한된 이야기를 학교 폭력과 연결지어보자 싶어서 다시 재구성해 영화화 하게 되었습니다.
진행: 그러면 다시 드라마 형태로 재도전해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감독: 나중에 나이가 들면... (웃음) 기웅이와 용주의 고등학교 이야기가 주축이 되는 게 아니라 원래는 네 명 중에 가장 주축이 되는 인물은 파일럿이었어요. 그래서 비행기가 나오는 드라마였고, 제목이 야간비행이었던 것도 맨 마지막에 네 명이 야간비행을 하는 구조여서였거든요. 어떻게 보면 지금의 야간비행과는 조금 다른 구조예요. 웹드라마처럼 요즘은 제작비를 적게 들여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포맷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어서 장편 두 세편 정도 더 찍고 난 후에 드라마 형태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헐리우드 감독들이 드라마에 많이 도전하잖아요. 영화든 드라마든 결국엔 하나의 이야기를 다루니까요. 지금 당장 실제적으로 계획을 꾸릴 생각은 없습니다.
관객: <야간비행>이라는 제목에 어떤 의도가 있으셨는지요?
감독: 금방 말씀드린 것처럼 8부작 드라마를 보면 제목이 ‘아, 야간비행이다!’ 하고 바로 떠오를 수 있는 구조였는데, 거기서 파생해서 시나리오를 써야 해서 고민했습니다. 프로듀서랑 고민을 하다가 저도 제목을 바꾸는 쪽으로 방점을 찍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거의 끝날 때 쯤 되어서 제목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게이바 ‘야간비행’도 사실은 제목 때문에 넣은 거예요. 드라마자체는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에 빚진 게 많아요. 제가 20대에 읽고 굉장히 감동을 받았던 책의 정서들을 최대한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야간비행’의 첫 장이 노을 장면이에요. 비행에 들어가기 전에 불타오르는 황금빛 들판에 대한 묘사를 생텍쥐페리가 굉장히 아름답게 하거든요. 저도 노을 같은 거 많이 잡고 싶었어요. 나중에 편집을 했는데 노을 장면이 열 한 장면이나 되더라고요. 주인공보다 더 공들여서 찍은 것 같아요. (웃음) 날마다 날이 좋은 게 아니라 쉽게 찍을 수가 없어요. 카메라 가지고 다 준비를 하고 있다가 날이 흐려서 못 찍는 경우도 있었고요. 최대한 어둠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화면들을 포착하고 싶었어요.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형상은 아니지만 야간비행의 정서를 가져가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소설가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라는 학자가 있어요. ‘장미의 이름’이라는 책이 있죠. 그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서 왜 제목이 ‘장미의 이름’이냐고 사람들이 계속 물어보니까 움베르토 에코가 그냥 자다가 생각난 거라고 답한 적이 있죠. 영화가 내용에 딱 부합되는 제목도 있겠지만 조금 더 여백을 남겨두고 싶은 제목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진행: 감독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연기를 처음 시작하거나 연기를 한지 얼마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간비행>에 출연했던 두 배우는 지금 TV 드라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될 성 부른 떡잎을 잘 알아보는 능력이 있으신 건지요. 감독님이 선택한 배우들이 잘 되는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감독: 퀴어 내용을 담고 있으면 사실 캐스팅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이미 트레이닝이 되어있고 대중적인 티켓팅 파워를 갖고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싶죠. 그래야 개봉했을 때 영화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고. 현장에서도 제가 연기 선생이 될 필요는 없거든요. 그런데 조금 알려진 배우들은 회사에서 미리 다 잘라요. 아무리 캐스팅을 해도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경우도 있고, 호모포비아 적인 생각 때문에 회사에서 해야한다 해도 도망간다든지 하는 그런 우여곡절이 있었죠. 하지만 신인들은 잘 모르잖아요. 회사에서 하라고 하면 그냥 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대부분이 트레이닝이 안 되어 있다 보니 현장에서 제가 너무 힘들어요. 사실 <야간비행>을 끝으로 당분간 퀴어 장르를 쉬고 싶다고 선언하듯 얘기했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영화 연출이라는 게 연기 선생 역할만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현장에서 윽박지르며 연기 선생 역할만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야간비행에서 터져버린 거죠. 영화적인 투자란 생각은 들어요. 나중에 배우가 굉장히 큰 스타가 되면 제가 투자받기도 용이하지 않겠습니까? (웃음) 사실 캐스팅할 때 영화적인 이미지를 많이 보는 편이예요. 잘 생긴 얼굴은 이미 많지만 영화적으로 봤을 때 매력적인 얼굴인지를 많이 보고 노력을 많이 기울이죠.
관객: 감정선이 섬세하게 표현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배우 각각의 표정연기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었을 텐데 감독님께서 노을만큼이나 많이 찍으신 게 실루엣이라고 생각합니다. 빗물 고인 곳에 비친 반사상 등을 많이 이용하신 것 같은데 특별히 그런 것들을 이용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두 번째 질문은 주인공들이 왜 남쪽으로 가는 건지, 가는 곳이 왜 여수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여수는 서울에서 출발했을 때 가장 먼 곳이에요. 기차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죠. ‘주인공이 배타고 뭐 이러면 지저분할 것 같은데, 육지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 어딘지 연출팀에게 알아보라고 했죠. 그랬더니 여수라고 해서 여수를 하게 된 거지 제가 특별히 여수항을 좋아한다든지 여수 음식을 좋아한다든지 하는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웃음) 천만 영화가 많이 늘어날수록 좋은 게 아닌 게 대기업이 모범답안처럼 영화 형식을 강제해요. ‘이렇게 비싼 배우들을 데려다가 클로즈업을 팍팍 써야지’라는 식이거든요. 연기 잘하고 비싼 몸값을 가지고 정말 잘 알려진 배우들을 클로즈업으로 끌고 가면 감정 이입이 쉬워요. 하지만 사실은 이야기에만 샷들이 종속 되는 거죠.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는 아무래도 여백을 많이 신경쓰다보니 한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패턴을 보기 위해 풀 샷이 많다든지, 감정을 담고 있는 사물의 빛깔을 포착하려고 노력하죠. 결국 여백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A라는 감정으로 촬영하고 편집해서 넣어 놓으면 관객들은 B라는 생각을 하시기도 하고 그래요. 여백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많은 우주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진행: 실제 촬영 때 감독님께서 직접 물뿌리개를 들고 다니면서 장면을 연출하실 정도로 장면마다 공을 들였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진행하셨는지요.
감독: 상업영화에서 쓰는 더 좋은 카메라를 쓰면 빛을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최선을 다해야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 조명을 최대한 썼는지 안 썼는지 알거든요. 이명세 감독님이 조명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세요. ‘영화는 빛을 깎는 예술이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조명 다 켜놓고 세세히 빛을 깎으시죠. 그래서 풍성한 빛의 디테일이 살아나죠. 밤 장면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세요. 바닥에 물을 뿌렸는지 안 뿌렸는지를 보면 연출자나 촬영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어요. 밤 장면은 물을 얼마나 뿌리고 윤기를 내느냐에 따라 심도나 빛에서 차이가 나요. 그래서 공들인 영화들의 밤 장면들은 대부분 물이 다 뿌려져 있죠. 사실은 리얼리티가 떨어져요. 비는 안 오는데 바닥에 물이 잔잔히 흐르니까. 하지만 실제적으로 관객들은 빛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죠. 현장에서 한 손에 물뿌리개를 쥐고 물을 계속 뿌리고 다녔어요. 용주네 집 감나무 같은 경우는 제 손이 안 닿은 데가 없을 정도로 다 닦았죠. 물기가 있으면 아무래도 카메라 안에서 나뭇잎 형상들이 더 구체적으로 보이니까요. 그런 작업들은 사실 모든 감독들이 신경 쓰는 부분이죠. 독립영화다 보니 고집을 피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관객: 영화 초반에 보면 소나기가 많이 내려요. 그 때 용주가 우산 없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나오는데 뒷부분에선 용주가 비가 안 오는데도 빨간 우산을 쓰고 가더라고요. 의미가 따로 있는지요.
감독: GV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 중 하나예요. 시나리오를 쓸 때 다들 알겠지, 하고 생각하고 쓴 장면인데 많은 분들이 질문해 주셔서 서로 생각의 차이들이 있구나, 하고 느껴요. 처음에 용주는 우산이 없는데 기웅이 혼자 쓰고 가 버리잖아요. 나중에 비도 안 오는데 용주가 우산을 쓰고 있는 건 ‘너 옛날에 그랬잖아’하는, 사실 고등학생 같은 어린 생각이죠. 용주에게 앳된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건데 그날 밤 잘 보시면 비가 와요. 시나리오 상에는 비가 절대 안 오고 앳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용주가 우산을 쓰고 가는 건데, 자세히 보시면 사실은 비가 오고 있습니다. (웃음)
관객: 새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 이유가 있나요. 그리고 기웅이가 물을 왜 이렇게 많이 마시는 건가요?
감독: 시나리오에는 새가 날아간다는 장면이 없었어요. 촬영을 하는데 계속 새떼들이 날아다니더라고요. 시간은 없고 해는 지고 그래서 ‘그렇게 방해할 것 같으면 너희들을 온전히 담아보리라’하는 생각에 한 신 내에 새들이 날아가는 장면 같은 걸 감아서 감정적인 장면들을 몽타주처럼 엮어보고 싶었어요. 기웅이가 물을 많이 마시는 건, 연기가 안 돼서 물을 혼자 다 마신 건 아닐까요? (웃음) 배우들이 하는 애드리브 중에 언어로 표현하는 애드리브도 있지만 공간을 채우는 몸짓, 손짓도 일종의 애드리브에요. '레디, 카메라, 액션'은 조연출이 하고 '컷'은 감독이 외쳐요. 그런데 감독이 컷을 안 할 때가 있어요. 그 때 배우들은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되지 않습니까. 베테랑은 그 순간을 채워요. 컷하기 전까지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대사 이후로도 감정에 충실해서 이미 약속되어 있는 대사 외에도 다른 것들을 채워주는 거죠. 그런 것들을 노리기 위해 어느 순간 굉장히 좋다 싶으면 컷을 외치지 않고 길게 찍어요. 좋은 감독들은 컷을 외치지 말아야 해요. 나중에 편집과정에서 그 장면을 쓰지 않게 되더라도 최대한 배우들이 감정표현을 할 수 있게 열어주는 게 좋다고 생각을 하죠. 근데 신인들은 약속된 것을 쫓아가는 것조차 힘들어요. 재준(기웅 역)이 같은 경우에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어쩔 줄 몰라 해서 시나리오 상에는 없었지만 담배를 피우게 한다든지, 물을 마시게 한다든지 많이 시켰던 것 같아요.
관객: 기웅이와 용주가 토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둘이 토하는 이유가 다를 것 같은데, 어떤 의미를 각각 담고 있는지요.
감독: 우리가 술을 너무 많이 먹거나 약을 잘못 먹어서 토하는 신체의 지극히 당연한 생리현상이 아닐 경우, 감정적으로 굉장히 힘들 때에 토하는 일도 있잖아요. 근데 한 가지 감정 때문에 토하진 않을 것 같아요. 자기 몸을 케어를 못할 정도로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훅 치고 들어왔을 때 아닐까요. 굳이 이야기를 한다면 용주는 학교에서의 일이 괴롭거나 더러워서 그랬다면, 기웅이는 복합적일 것 같아요. 애정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친구관계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관계가 떠올랐을 거고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도 있었을 것 같아요. 기웅이 토하는 장면 같은 경우 많이 바뀌었어요. 사실 토를 하지 않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트레이닝이 된 배우들 같은 경우엔 ‘너는 어떤 감정이었을 거냐’고 하면 배우들은 자신이 생각한 걸 들고 와서 제안을 해요. 그게 더 풍성한 경우도 많아서 저는 다 받는 편이예요. 재준이 같은 경우는 얘기를 하지 않아요. 토하지 않는 신도 시켜보기도 했는데... 그냥 토하기로 했어요. (웃음)
관객: 어떤 인터뷰에서 이재준 배우가 연기 면에서 많이 혼났다는 내용을 봤습니다. 재준 배우는 그 전에는 필모그래피도 별로 없었던 배우라 걱정되는 부분도 많으셨을 텐데 어떤 점을 보고 배우를 캐스팅 하셨나요?
감독: 다시 하라고 하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재준이 경우엔 ‘시라노 연애 조작단’이라는 드라마에서 고등학생 역할로 출연한다고 해서 그 부분만 캡쳐된것을 봤어요. 이미지가 괜찮더라고요. 모델 활동 했던 것들을 쭉 살펴보고 나서 만나기로 하고, 만나서 어떻게 살아왔고 왜 연기자가 되려고 하는 건지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사실 오랫동안 모델 활동을 하고 무용을 해서 많이 경직되어 있었어요. 보통 많은 시간이 걸려서 깨지는데 예상보다 훨씬 딱딱하더라고요. 영화 작업들어가기 전에 리딩을 하는데, 처음으로 제 입에서 큰 소리가 났어요. 재준이가 현장에서 많이 혼나기도 하고 고생 많이 했죠. 안 해보던 감정을 표현하려니까 힘들었을 거예요.
관객: 시나리오도 감독님이 쓰셨는데, 시나리오 쓰면서 가장 공들였던 부분, 막혔던 부분, 아니면 촬영현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젠가요?
감독: 밤 장면이 제일 힘들었어요. 서울에 단독주택에 감나무가 있고 창문에서 담이 멀지 않은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어요. 시나리오 쓸 때는 공간까지 생각까지 하면서 쓰는데 ‘이런 것들이 과연 가능할까’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했어요. 장소 찾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게 용주네 집이었죠. 현장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재준이와 항상 힘들었어요. (웃음) 시양(용주 역)이도 같이 혼나야 하는데 재준이만 혼내다가 시양이를 덜 혼낼 때도 많고... 배우들이 안 오니까 재밌네요. (웃음)
관객: 개봉1주년 축하드리고, 좋은 작품 감사드립니다. 기웅이네는 창밖으로 보이는 배경, 용주네 집은 담장 같은 것들이 기억이 남는데 장소를 섭외하실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어딘가요?
감독: 월트 휘트먼이라는 시인이 있어요. 1920년대 미국에서 자유시 형태를 고착시켜서 국민 시인이란 타이틀을 얻게 되신 분이예요. <죽은 시인의 사회>(1989)란 영화를 보면 작고하신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마지막에 시를 읊잖아요. 그게 월트 휘트먼의 시예요. 링컨 대통령의 친구였고 링컨이 죽을 때까지 함께했어요. 그 월트 휘트먼이 게이예요.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게이였죠. 그 분이 썼던 시 중에 ‘누군가 자고 있는데 창문으로 넘어와서 벽에 그림자가 비쳤다가 사라진다’는 내용의 시가 있는데 야간비행에서 그 장면을 꼭 구현하고 싶었어요. 아파트에선 힘들죠, 떨어질 수 있고. (웃음) 단독주택은 약간 올드해보일 수 있지만 단독주택이어야 가능하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용주 집 찾기가 어려웠어요. 기웅이네 집은 상대적으로 못사는 집이다보니 연립주택이나 아파트는 피해야겠다 싶었어요. 실제로는 용주네 집과 기웅이네 집은 바로 옆이에요. 20m거리에 있는 한 마을이에요. 지금은 다 철거가 되었죠. 철거 직전의 재개발 지역에 들어가 사정을 해서 미술팀이 사람이 살만한 공간으로 꾸민 다음에 촬영을 했습니다.
진행: 감독님께서 현재 하고 계신 작업이나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찾아주신 관객 여러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을 들어보고 자리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감독: 제가 요즘에 배가 많이 나왔어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특정한 일이 없으면 잘 안 나오거든요. 3개월 동안 세 번째로 나오는 것 같아요. 아예 50m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 칩거하고 살아요. 지금 계속 진통을 하면서, 애 낳기 위해서 힘주고 있는 상황이에요. 멜로영화에 도전하고 있어요. 서두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당분간 퀴어는 안하고 계속 여러 가지 써보고 있는 중입니다. 빨리 얘기가 돼서 촬영에 들어가면 제 뱃살이 다시 빠질 거예요. 미모도 다시 원상복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마지막으로 사실 오늘 화요일이라 장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잘 안 되는 날인데 많은 분들이 오셔서 의외예요. 많은 분들과 같이 얘기 나눠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날도 궂고 그런데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야간비행>은 자주 등장하는 노을 장면처럼 짙은 여운을 지닌 영화이다. ‘여백에서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진다’는 감독의 말처럼 곳곳의 여백이 깊은 여운을 만들어내는 듯했다. 두 주인공의 마지막 뒷모습을 곱씹으며 극장 문을 나서는데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말끔히 개여 있었다. 시원한 밤공기를 가르며 주인공들이 어디에선가 야간비행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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