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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정순〉 인디토크 기록: 정순에, 정순에 의한, 정순을 위한

by indiespace_가람 2024. 5. 20.

정순에, 정순에 의한, 정순을 위한

〈정순〉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4월 27일(토) 오후 4시 상영 후

참석 정지혜 감독, 이랑 작가

진행 셀럽 맷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 님의 기록입니다.

 

디지털 성범죄와 중년 여성,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두 가지 키워드가 공장이라는 땀의 공간에서 부딪히기 시작한다. 가장 내밀한 사이였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 통제되지 않는 시선, 흔들리는 관계 속 정순은 어떻게 자신의 삶을 되찾아갈까. 얼마나 모진 풍파가 그를 맞이하든, 정지혜 감독이 주목하는 사람은 오직 한 명 뿐이다. 이 극의 주인공은 정순 뿐이기에.

 

 

 


셀럽 맷: 안녕하세요,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를 진행하고 있는 셀럽 맷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오늘 함께 해주실 뮤지션 이랑님 인사 부탁드릴게요.

뮤지션 이랑 (이하 이랑): 안녕하세요, 오늘 GV 함께 하기로 한 이랑입니다.

셀럽 맷: 그리고 떨고 계시는 감독님, 영화 〈정순〉 연출하신 정지혜 감독님. 박수로 맞아주세요.

정지혜 감독 (이하 정지혜): 안녕하세요. 〈정순〉을 연출한 정지혜입니다. 반갑습니다.

셀럽 맷: 이렇게 행복하고 날씨 좋은 토요일에 〈정순〉 보러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보고 할 이야기가 매우 많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GV가 굉장히 기대되는데요. 2021년에 찍으시고 2022년에 영화제 돌기 시작해서, 2024년에 개봉해 관객 분들을 만나보고 계시는데 지금 소감이 어떠신가요? 

정지혜: 2년 전 영화제 통해서 관객 분들 뵐 때는 마냥 신나고 배우 분들과 같이 가족 여행하듯 너무 재미있게 관객 분들을 뵀었던 것 같은데요. 개봉 앞두고는 긴장도 많이 되고 한 분이라도 저희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개봉을 기다렸었고 지금도 관객분들께서 저희 영화를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셀럽 맷: 정순이라는 중년 여성이 성범죄 피해를 보고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인데요. 사실 성범죄 피해자라고 하면 낮은 연령층의 여성들을 많이 떠올리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도 편견이 있었다는 생각이 좀 많이 들더라고요. 영화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게 되신 건지 궁금해요.

정지혜: 제가 저희 영화 배경이 되는 그런 식품 공장에서 생산직 아르바이트를 한 1년 가까이 했었는데, 그때 저와 같이 일을 하셨던 분들이 정순처럼 중년 여성 근로자분들이 대부분이셨거든요. 그 분들이랑 좀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계속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막연하게 있었어요. 그때 대학교 휴학 시절에 그렇게 아르바이트 했었는데 복학을 하고 나서 저희 학교 선배가 같이 장편 시나리오를 쓰는데 같이 좀 작업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하셔서 그 작업에 참여하게 됐어요. 근데 그 시나리오 소재가 데이트 폭력이랑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 이야기였어요.
그때 자료 조사를 하면서 알지 못했던 현실들을 많이 알게 됐죠. 그중 하나가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 중에 굉장히 높은 비율을 중년 남성이 차지하고 있었고 저조차도  디지털이라는 그런 특성 때문에 되게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요.
공장이라는 공간은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나 다른 요식업계와는 굉장히 다른 노동 환경이더라고요. 몇 년 전, 저희 어머니도 종사하신 적이 있으신데, 중년 이모님들은 저희 부모님과 비슷한 세대시거든요. 그때는 엄마가 공장에서 일을 한다는 게 세세하게 그려지지 않았는데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까 이분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보이더라고요.
작게 봤을 때는 공장이라는 공간이지만, 다른 세대 여성으로서 중년 여성들이 삶을 살며 그런 처우 받는 비슷한 순간들을 얼마나 자주 겪었을지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셀럽 맷: 아르바이트하시면서 이모님들이라고 불리는 여성의 대화를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요. 그 중 영화에 참고하신 대화가 있을까요?

정지혜: 영화 속 중간 관리자인 ‘도윤’이 정규직 전환 앞두고 예민하다는 소문이 돌거든요. 근데 항상 예민했는데 더 예민한 건 무엇일까, 원래도 조심했는데 얼마나 더 조심해야 하는가 하는 정답 없는 고민이 많이 담긴 것 같아요. 별거 아닌 것으로 보여도 그 안에서는 되게 큰 문제로 다가오거든요.

이랑: 극 중에서 약간 세대가 분리돼 친분을 맺는 걸로 보이는데, 거기서 이모님들과 가깝게 지내는 젊은 여성 한 분 있잖아요. 그분은 어떻게 만들어진 캐릭터인가요?

정지혜: 일단 제가 이모분들과 가깝게 지냈어요. 제 또래에 오래 일하는 친구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저보다 더 오래된 다른 언니들이랑 같이 계모임도 친근하게 지냈거든요. 그래서 그 언니들이랑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랑: 보통은 나이별로 친해지는 게 흔한 케이스인가요?

정지혜: 네, 아무래도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은 보통 방학 2개월 정도만 짧게 하고 가는 경우가 많아서요. 오래 일 하셨던 분들끼리는 이미 관계가 형성돼 있고. 그리고 텃세라고 해야 할까요? 약간 배척하는 문화가 있는데, 저도 개월 수가 조금 차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일하시는 분들은 본인이 관리자 평가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자리라고 느끼시는지라 젊고 체력적으로 나아 보이는 존재들에게 자연스레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있어요.


영화 〈정순〉 스틸컷

 


셀럽 맷: 제목이 〈정순〉인데 극 중에서 이름이 불리는 순간은 아침 출석 체크할 때밖에 없잖아요. 근데 영화 제목을 정순이라고 하신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했어요.

정지혜: 맨 처음에 주인공 이름을 정할 때 여성에게 잘 붙여지는 이름이길 바랐어요. ‘순’자 돌림이라든가. 정순의 뜻은 곱고 착하게 살라는 이름인데, 뭔가 태어날 때부터 정체성을 부여받고 그 정체성을 되게 착실하게 따르면서 살아온 인물이 영화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동시에 이름이 그 사람을 가두는 틀로서 장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근데 이야기를 쓰면서 보니까 이 정순이라는 사람이 자기를 가두는 이름으로라도 불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면 어떨까 해서 영화 제목도 정순으로 했고, 나중에 원래 하고 싶었던 운전면허를 따러 갔을 때 정순 씨라고 불리는 모습들을 넣었습니다.

셀럽 맷: 배우분들이 연기를 잘해주셨어요. 전반적인 캐스팅 과정도 좀 궁금해요.

정지혜: 김금순 배우님 같은 경우, 제가 〈돌아오는 길엔〉이라는 단편 영화에서 처음 배우님을 뵀어요. 되게 감탄하면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었거든요. 현실적인 캐릭터인데 금순 배우님이 가진 캐릭터성을 영화 내내 잃지 않고 가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 배우님은 누구일까? 아주 궁금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는 정순을 지금 금순 배우님보다 한 10살 많은 인물로 설정 해서 떠올리지 못하다가 PD님이 시나리오 보고 금순 배우님을 추천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금순 배우님의 작품 목록을 다 살펴보게 됐는데 〈사바하〉에서 굉장히 강렬한 무당 연기를 하시고 다른 작품들에서도 되게 다양한 얼굴을 많이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영화는 정순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끌고 가야 하는 영화인데 금순 배우님이 영화를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제의를 드렸어요.
또 선배님이랑 만나 뵙고 얘기하면서 더 좋았던 것은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하셔서 연극 생활도 굉장히 오래 하셨는데, 정순이 마지막에 공장을 찾아가는 신이 어떻게 보면 연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라 생각해서, 저는 그 장면이 정순에게 제일 어렵다고 느꼈거든요. 근데 금순 배우님이시기에 소화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랑: 정순이 극 중에서 여성 노숙인을 여러 번 마주치면서 감정 상태가 변하잖아요. 어떠한 설정이었는지 궁금해요.

정지혜: 맨 처음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유는 정순이라는 사람이 영수와 관계가 발전하면서 반응이 변화하는 것을 담고 싶었어요. 윤리적으로 문제 되는 관계가 아님에도 정순이 동네 토박이로 살면서 남들에게 소문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스스로 검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 동네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일지라도 내가 계속해서 영수 달방에서 나오는 걸 지켜보고 있다면 정순은 어떻게 느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캐릭터였고요.
근데 인물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노숙 생활을 하는 분들은 불특정 다수의 시선에 계속 노출된 분들이잖아요. 정순이 사건을 겪고 자기 영상을 누가 봤는지 모르는 두려움에 휩싸이면 노숙인분과 자기가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될 것 같았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금순 배우님께서 본인과 자매 연기를 하신 적이 있는, 비슷한 연령대에 생김새도 비슷하신 이은희 배우님을 추천해 주셔서 캐스팅하게 됐죠.

이랑: 너무 좋았어요. 배우 얘기가 나와서 궁금했던 게, 대놓고 못된 역할을 해야 하는 배우를 캐스팅할 때 어떻게 설득하시는지 궁금해요. 영화를 보면서 관리직을 맡고 있는 도윤이가 너무 짜증 나잖아요.

정지혜: 감사하게도 배우님들께 제의 드렸을 때 현우 배우님, 용준 배우님 다 흔쾌히 같이하고 싶다고 해주셨죠.
일단 도윤 역 같은 경우에는 공장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권력을 왕처럼 뽐내고 싶어 하고, 되게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하는 인물로 설정했는데 그 인물이 외형적으로 위압감이 있는 인물이 아니라 상반된 이미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의를 드렸어요.
용준 배우님이 또 비슷하게 냉동식품 다루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경험이 있으셔서 도윤이라는 캐릭터를 잘 이해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설득 드릴 필요 없이 같이할 수 있었고요.
현우 배우님 같은 경우, 처음 뵈었을 때 연기를 쉬다가 다시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어요. 원래 상업 영화를 주로 하셨던 선배님이셨고 같이 하고 싶은 마음으로 제의를 드렸는데 시나리오 읽고 너무 좋았다고 해서 바로 만나자고 답이 오셨어요. 그래서 만나 뵈러 갔더니 너무 하고 싶어 하셨고 직접 시나리오를 인쇄해서 리딩도 해주셨어요. 지금은 살이 많이 빠지셨는데 리딩 당시 본인 체형이 괜찮은지, 이런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주셨어요. 저는 영수가 빌런으로 그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친근하게 그려져서 악의 평범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터라 오히려 포근해지신 배우님 모습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배우님은 촬영 진행 중에도 한 번씩 전화가 왔어요. 영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나눴고요. 남성 세계에서 나이로 확실한 위계가 있는 상황에서, 그걸 허물고 도윤이라는 아이가 들어온 거잖아요. 어디까지 도윤이의 농담에 웃고 기분 나빠해야 하는지, 그 균형을 좀 어려워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와 같이 이야기 많이 나눴었어요.

셀럽 맷: 악의 평범함을 얘기하셨는데 저는 1차 가해자인 도윤이는 좀 격하게 말하자면 그래 저 사람은 그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현우는 그 안에서도 정순과 같이 약자의 위치에 있잖아요. 근데 또 흔히들 약자끼리는 서로 보듬을 것 같다는 그런 이상적 생각이라는 게 있으니까, 처음 정순이 영수한테 호감을 보인것도 자신의 무리로 끌어들여주려고 한 배려일텐데 더 배신감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정지혜: 고민이 많았었거든요. 영수 서사를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지. 왜냐하면 영수는 정순에게 가해를 저지르는 인물인 동시에 정순과 사랑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영의 서사를 어디까지 보여드리는 것이 적절할까? 또 영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가해를 저지르게 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 과정이 균형 있게 전달되어야만 관객분들께서 그 영화를 보시는 데 불편함이 없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셀럽 맷: 자세, 걷는 것, 표정이 모두 영수 캐릭터가 자신감을 잃은 상태라는 것을 잘 그려내서 보는 내내 좀 고통스러웠어요.굉장히 답답했거든요.
그리고 궁금했던 게, 정순의 노출이 있잖아요. 근데 생각해 보니까 평범한 중년 여성이 속옷만 입고 있는 모습이 영화로 잘 볼 수 없는 모습인 거예요. 평범하게 이렇게 군살도 있고 약간 이런 몸을 보는 것이 되게 신선했다고 할까? 그런 생각이었고 그리고 혹시 조금 부담스러워하시지 않으셨는지도 궁금했어요.

정지혜: 금순 배우님이 큰 용기 내주셨는데 제가 오히려 좀 더 조심스러워 했었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 보시면서 엄청 적극적으로 노출 범위라든지, 섬세한 요소들을 얘기 해주셨거든요. 저한테도 되게 적극적으로 필요한 부분 편하게 말해달라고 해주셨고요.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나면서 영상이 유포될 때, 노출 수위에 따라 가해의 정도를 나눈다는 게 되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배우님과 고민하며 논의했습니다. 
 
이랑: 이모라고 불리는 시점이 언제부터 있지, 그런 걸 생각을 하면서 봤어요. 정순과 영수가 둘이 함께 있을 때 당신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거기에서 나는 아직 살면서 당신이라는 말을 써본 적이 없는데 당신이라는 말이 나오면 중년인가, 막 이런 생각을 하고 호칭에서 왜 당신을 선택했는지도 궁금했었거든요.
중년은 뭘까, 어디부터 중년일까? 왜 어느 시점에는 이모라고 불러도 익숙할까? 왜 언제부터는 익숙하지 않고 언제는 익숙해질지, 이런 게 되게 고민이 되더라고요.

정지혜: 근데 작가님 말씀하셨으니까 떠오른 건데 공장에서도 되게 애매했던 것 같아요. 어떤 호칭이 결정되는 게 애매했었던 것 같은데 그때 공장에서는 약간 자녀의 유무로 결정됐던 것 같아요.

이랑: 자녀가 없으면 이모, 없으면 언니로요?

정지혜: 네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이랑: 영수와의 호칭에서는 자기가 아니라 당신이 주로 나와요. 이유가 있을까요?

정지혜: 사실 정순과 영수의 연애가 언제 깊어질지 고민했었어요. 아직 두 사람이 서로를 당당하게 알릴 수 있는, 그러한 연인관계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자기’는 아직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자기보다 조금은 먼 표현을 찾다가 당신이 나왔던 것 같아요.

셀럽 맷: 감독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정지혜: 저도 그렇고, 금순 배우님도 그러신데…. 유진이가 엄마 집에 들어가려고 짐을 싸는 장면을 볼 때마다 약간 울컥해요. 유진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기대려고 만든 캐릭터라고 할까요? 정순이 주인공이지만 어쨌든 저와 다른 세대 여성이기도 하고, 제가 쓰면서 도전 정신이 강했다면 유진이는 편하게 쓸 수 있는 인물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렇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점점 이야기가 진행돼 갈수록 오히려 유진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내가 유진의 상황에 놓였다면 엄마한테 어떻게, 어디까지 해줄 수 있겠느냐는 고민을 하면서 유진이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진이 힘이 드니까 예비 남편에게도 표현이 좋지 않게 나가는데, 남편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제야 숨겨왔던 진심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하게 일종의 안심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있어요. 촬영 일정상 그 장면을 첫날 첫 씬으로 촬영하게 돼서 배우분들께 너무 죄송했는데, 촬영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첫 장면의 부담감이 무색하게 두 분 다 서로한테 위로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장면을 볼 때가 많은 생각이 든 것 같아요.

이랑: 첫 촬영인데 친밀한 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면 진짜 어려울 것 같아요.

정지혜: 제가 쓴 시나리오기도 하고, 촬영 감독님과 프리프로덕션을 한 달 가량 진행하면서 제 이야기에 빠져있다 보니 현장에서 제가 정한 포맷 내에서만 영화를 결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촬영 전, 정말 열심히 준비한 것도 맞지만 현장에서는 배우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수용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받아들이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죠.

이랑: 배우 의지로 동선이 가장 많이 바뀐 씬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지혜: 정순이 공장을 다시 찾아간 장면이 클라이맥스다 보니, 촬영 감독님과도 콘티를 되게 촘촘하게 준비했었어요. 근데 막상 현장에 가니, 저희가 실제로 가동 중인 공장에서 촬영을 진행하다 보니 물리적 시간이 너무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현장 리허설을 토대로 우리가 준비했던 거 다 버리고 정순 캐릭터를 따라가자고 결정했죠. 촬영 감독님이 카메라를 너무 잘해주셨어요. 다른 기사님들도 촬영 감독님 뒤에 딱 붙어서 공장을 같이 돌아다니면서 뮤직비디오처럼 촬영했죠.

이랑: 짜릿했을 것 같아요.




셀럽 맷: 관객 분들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관객: 영화 속에서 영수만큼이나 나쁜 놈으로 나오는 게 도윤이고 눈에 거슬리는 거로 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굉장히 거슬리는데, 정순이 도윤에게 주먹을 내리꽂는다든가 회사에서 잘려서 몰락하는 식으로 확실하게 처벌 받는 결과를 생각해 보신 적 없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정지혜: 영수와 도윤의 처벌 수위가 시나리오에서 가장 고민됐던 지점 중 하나였어요. 저희가 바라는 이상적인 결말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결말에 도달하는 분도, 도달하지 못하는 분도 계실 텐데 저희 영화에서 어떤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실제 사례를 조사해 보니 법적 진행 과정이나 처벌에 있어서 초범인 경우, 대부분 처벌 수위가 굉장히 낮더라고요.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직장이나 거주지를 옮기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래서 이러한 현실을 영화에서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어떤 현실이 존재하는지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정순의 의지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 사람은 삶의 주도권을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았다는, 선언 같은 장면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장으로 찾아가는 장면을 삽입했습니다.

관객: 정순이 처음에 조수석에 타다, 직접 운전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며 정순은 피해 사실을 인지하되 피해자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캐릭터로 성장한 것 같아 너무 잘 봤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두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조금 지엽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질문인데요. 여성 노숙인 캐릭터가 나오잖아요. 영화 중후반부에 들며, 정순이 직접 여성 노숙인에게 본인 옷을 덮어주는데, 정순이 어떤 마음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두 번째는 영화 전반적으로 생활 사운드가 잘 담겨있다고 느꼈어요. 특히 유진이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유진 목소리만 도드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목소리와 섞이는 게 현실감 있게 느껴졌고요. 사무실에서 정순의 영상 소리가 흘러나오며 장르가 바뀐다는 느낌도 들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사운드에 집중하게 됐는데요. 감독님이 사운드를 작업하시면서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지혜: 감사합니다. 먼저 여성 노숙자에게 범퍼를 벗어주는 정순의 마음은, 이전에 그 노숙인이 영수에게 담배를 달라고 하면, 영수가 그분을 굉장히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피하면서 올라가 버리거든요. 정순이 이 모습을 보고 따듯한 마음이 발동됐다고도 느꼈고, 아까 말씀드렸던 것과 같은 동질감을 느낀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또 재밌었던 게, 관객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수는 여전히 그 달방에 살고 있고 노숙인도 달방 앞자리를 지키고 있잖아요. 근데 사실 정순은 영수가 떠나겠다는 약속을 믿고 선처를 해준 것인데, 결론적으로 영수가 약속을 어긴 거니까 정순이 무언가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더라고요.

이랑: 맞아요. 저도 무언가 영수에게 신호를 남기려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정지혜: 저랑 금순 배우님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었는데, 이런 얘기를 하셔서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영화 속 시간이 흘렀다면, 영수가 정순의 점퍼를 봤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정순 입장에선 나 여기 왔다 갔다, 알고 있다. 이런 느낌으로…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었고요. 사운드 같은 경우, 모든 부분에 있어서 현실감을 살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폐차장 촬영은 사실 작업 쉬는 날에 진행돼서 사운드적으로 녹음됐었는데요. 후반 작업하면서 실제 작업 중인 폐차장 느낌이 나면 좋겠다 싶어서 일부러 소스들을 넣었어요. 공장 촬영 때는 업무 하고 계시는 분들이 화면에 나오셔서 그 사운드를 그대로 가져가기도 했고, 아님 다른 층에서는 공장이 가동되고 있어서 그 실제 사운드를 많이 넣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이랑: 후시 녹음 비중이 어느 정도 되나요? 자동차 장면도 후시 녹음이었을까요?

정지혜: 대사 명료성이 떨어지는 장면은 대부분 후시 녹음으로 진행했어요. 현장에서 일단 녹음 하되, 작업 기사님이 보시고 불분명하다 싶으면 후시로 녹음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영화 〈정순〉 스틸컷



셀럽 맷: 감독님 차기작 준비하고 계시다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한데요.

정지혜: 재미가 없을까 걱정인데, 일단 다음 얘기를 코미디 영화로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단편 작업 때부터 코미디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는데, 저는 코미디라고 썼는데 남들은 코미디인지 모르는 단편을 제작했었거든요. 이번에는 남들이 알아주는 코미디를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이랑: 제작이 결정된 상태로 쓰고 계시는 걸까요?

정지혜: 제작이 결정된 상태가 아니어서 제 목표는 올해 시나리오를 마무리하고 내년에 촬영 준비를 하는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셀럽 맷: 다음 작품 코미디라고 하시니까 너무 기대가 되네요. 〈정순〉 너무 좋은 영화니까 다른 분들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거든요. 오늘 와주신 여러분들께서 입소문을 좀 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보고 할 이야기도 많은 영화고, 보고 나서 SNS를 통해 얘기하는 것도, 친구들과 함께 얘기 나누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잖아요. 그래서 다른 분들과 함께 영화 정순 너무 좋고,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꼭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GV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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