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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인디토크 기록: 붉은 마음의 윤을 마모시키지 못하도록 둥글게 안아 드는 울음

by indiespace_한솔 2022. 10. 7.

 

붉은 마음의 윤을 마모시키지 못하도록 둥글게 안아 드는 울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인디토크 기록

 

 

일시 9월 25(오후 3시 상영 후

진행 윤가은 감독

참석 부지영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해수 님의 글입니다.

 

 

 

나는 줄곧 홍옥과 닮은 원망을 폐에 콕, 박아두고 자랐다. 쑥스럽지만 알을 몇 개 떼어 말해보려 한다. 흔히 정의하는 정상성의 식구 규격에 항상 반대의 깃을 꽂고 싶은 충동이 컸다. 그 모양과 동일하지 않아도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충만히 배웠다. 바를 정, 항상 상. 무엇도 바르게만 항구적일 수 없음에도, 타자의 존재와 형태를 함부로 단언하는 이 세계가 괴로웠다. 동시에 화자의 통증이 명백히 기립해 있음에도, 결국 무르게 안아버리는 가족 서사에도 질려있었다. 이 물컹임을 아직도 꾸리며 살던 와중에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보았고, 명은에게 이 해가 닫힐 무렵까지 포옹을 청하고 싶었다. 붉게 닳아버린 나의 슬픔. 미워하는 마음을 막지 않으려는 기세. 사과를 거듭 받아도 개운해지지 않을 시절임에도, 그들에게 영영 요구하게 될 미안에 관한 망()까지. 내가 통과한 연도들이 이 영화에 앉아 있었다. 이 영화엔 사랑과 기분을 카랑하게 높여 설명하는 방식과 할큄과 피를 똑똑 흘리는 일을 표하는 인물의 선이 크게 등분되어 있지 않다. 모두가 뒹굴며 나의 당장을 얼마나 더 긴 언어로 뽑아낼 수 있는지 서로 인지해가는 로드무비이다. 슬픔에 있어 열렬히 동작해야만 다음 사랑으로 갈 힘이 마련되기도 하니까. 마음으로 횡단하기 위해 딛는 명은의 새 걸음엔 사랑이 있다. 이것을 확언할 수 있어 무척 좋았다. 이 영화를 관람한 후, 유일한 다짐을 하게 되었다. 탐스러운 나의 욕망을 도르르, 깎지 않으려고 애쓰겠다는 것.

 

 

윤가은 감독(이하 윤가은): 안녕하세요, 영화 재미있게 보셨나요? 저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감독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윤가은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감독님 모셨으니 인사 말씀과 오늘 관객분들 만나신 소감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부지영 감독(이하 부지영): 안녕하세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연출한 부지영이라고 합니다. 너무 화창하고 좋은 가을인데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영화 즐겨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재미있는 GV 됐으면 좋겠네요.

 

윤가은: 영화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이야길 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14년 만에 재개봉을 한 영화인데, 혹시 2009423일 개봉 당시에 보신 관객분들 계신가요?

 

부지영, 윤가은: (손 드신 관객분들을 살핀 후) 와, 감사합니다.

 

윤가은: 저도 그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는 호사와 영광을 누린 관객 중에 한 명이에요. 전 십 대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 오래 고민하며 시도한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도가 다 좌절되어서 영화를 접어야겠다, 하던 시기에 이 영화를 봤어요. 그러고 나서 부지영 감독님께서 단편영화를 6개월간 만드는 프로그램에 책임 강사로 온다는 공고를 본 거예요. 이 영화를 너무 감명 깊게 봐서 내 인생에 마지막으로, 단편영화를 만들어 선물해주고 이 꿈을 접어 보내야겠다.’ 결심했어요. 6개월 동안 감독님 밑에서 영화를 배웠고, 그 수업에서 제 인생의 거의 첫 번째 단편영화를 만들었거든요. 부지영 선생님이라 "부쌤" 이렇게 불렀으니 저의 첫 영화 선생님이시죠. 가장 힘든 시기에 감독님 영화를 보았고, 수업을 들었으니 너무 감사한 반면, 힘들 때는 너무 원망스러운 거예요. 왜 그때 이렇게 재미있고 좋은 영화를 만드셔서 나를 이렇게…(웃음) 원망하는 문자를 보낸 적도 있고요. 이 이야길 꼭 하고 싶었어요. 2009년 개봉하실 때의 소회와 지금 다시 관객분들 만날 때 느낌에 변화가 있으신지 듣고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부지영: 윤가은 감독은 제가 만났던 제자라면 제자인 건데, 청출어람이에요. 저보다 훨씬 뛰어난 감독님이고,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오늘 이 원망을 꼭 이야기해야겠다고 하셔서 잠깐 시간을 드렸습니다.(웃음) 일단 2009년에 봐주시고 또 보러 와주신 관객분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이 영화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다는 주변의 이야길 듣고 저도 좀 편하게 보고 싶어서 어려운 과정을 통해 리마스터링을 해서 재개봉까지 왔는데요. 이게 이렇게 길고, 지난한 과정이라고 생각을 못 하고… 배급사 분들도 노력을 많이 해주셔서 사실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가볍게 봐야지 했는데 스코어도 보게 되고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들어가서 관객수를 계속 확인하는데 하루 300명 이러고, 새삼 개봉의 쓴맛을 보고 있어요. 그래도 오늘 많은 분께서 와주셨고, GV에서 관객분들께서 해주시는 재발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혼자 행복하려고 개봉을 하고 있구나(웃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윤가은: 저희 다 같이 행복해졌기에, 이런 기회를 주셔서 관객으로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저장 매체가 많이 변해서 특히 2000년대에 찍은 굉장히 좋은, 우리와 가까이 있던 영화들을 좋은 화질로 볼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잖아요. 이번 기회를 통해 고화질로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지금 질문이 쏟아지는데, 마침 제가 처음으로 드리려고 했던 질문을 해주셨어요.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와 영감을 어디서 얻으셨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어요. 전 이 이야기의 시작점이 굉장히 궁금했어요.

 

부지영: 제가 2002년에 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했는데요. 졸업하면서 일종의 대소사를 많이 치렀어요.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요. 영화 연출을 해야 하는데, 4-5년을 영화와 멀게 살았어요. 영화 아카데미 졸업을 할 때 유의미한 단편을 찍어야 저를 많이 찾아주실 텐데, 그런 과정도 없었고요. 영화를 하기로 스스로 결심하고 어떻게든 만들려던 차에 우연히 친언니랑 여행을 가게 됐어요. 서른 살 넘어서 둘이 처음으로 여행을 가게 된 거예요. 그렇게 대판 싸우게 될 줄 몰랐죠. 그게 오래 기억에 남았고, 과정에서 영화가 생각이 났어요. 영화로 어떻게 만들어볼 수 없을까, 하고요. 무언갈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꽉 차 있었던 차여서 언니와 드라마틱한 것들을 겪으면서 이게 영화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작은 극단적으로 다른 자매의 로드무비가 컨셉이었어요. 제가 속해 자란 가족들이나 제가 봐온 사람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한 같은 것을 풀게 된 듯해요. 첫 영화로요. 한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제가 편모슬하에서 자랐어요. 영화의 크레딧 올라갈 때 故 강영화, 강순영 할머니 두 분이 나오세요. 그분들이 제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예요. 그 두 분과 엄마와 언니와 나. 다섯 명의 가족으로 지내왔기에 이 가족이 제겐 굉장한 안정감을 줘요. 좋은 가족이었어요. 물론 그 안에 여러 갈등도 있지만 여느 가족 부럽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 언니가 왜 우리 집엔 아빠가 없어, 이런 이야기를 가끔 했었거든요. 그런 것도 제겐 중요한 창작의 시작이었어요. 두 자매가 여행을 가면서 가족의 비밀이 밝혀진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어요. 무언가를 찾으러 가면 그걸 찾지 않고 다른 걸 찾고 오잖아요. 혹은 가까운 데에 그게 있었거나. 그런 플롯을 이 이야기에 가져다 쓰게 됐어요. 제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시작했어요. 그 영화제는 제게 단비 같은 영화제였어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양한 여성 서사와 퀴어 서사를 발견할 수 있었고요. 그런 것들의 수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영화가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으로 가게 된 것 같아요.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찾아가지만, 그 아버지는 지금 가까운 데에 있고 다른 모습으로 있을 수 있다는 서사적인 결론을 내게 된 거죠. 이게 한 큐에 딱 결론이 난 건 아니고요. 20051월에 쓰기 시작했고 드문드문 수정하다가 2006년 말에서야 영진위 제작 지원사업에 냈거든요. 2년 가까이 쓴 셈이죠.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스틸

 

윤가은: 많은 감독이 자기와 연결되는 이야기로 첫 영화를 만들잖아요. 특히 독립영화도요. 이 영화는 독립영화의 형태로 제작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거잖아요. 지금 봐도 놀라운 캐스팅인데, 그 당시엔 진짜 충격이었거든요. 최고의 젊은 두 배우를 한 영화에, 그것도 작은 예산의 영화에 캐스팅하신 거잖아요. 영화를 꿈꾸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었죠. 사실 여자들의 이야기잖아요. 여자 주인공으로 끝까지 끌고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강력한 희망을 품어준 영화이기도 해서 어떻게 캐스팅이 가능했는지 궁금하고요. 애초에 쓰실 때부터 이 배우들이랑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부지영: 이게 용감하니까 무식하고, 무식하니까 용감하다고. 저는 어떤 걸 상상하면서 해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일단 나오는 대로 썼고, 누가 캐스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계산도 사실 못했어요. 그래서 캐스팅을 할 때 정말 멋모르고 인기 배우들한테 막 돌리고 그랬어요. 당연히 쉽지 않았고 오랜 시간 캐스팅 침체기가 있었어요. 두 달 정도 안 되었고, 다른 걸 준비했어요. 당시에 신민아 배우께서 기존과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나중에 들어보니 많은 시나리오를 다 찾아 읽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영화에 두 명의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젊은 여자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었기에 그분께서 먼저 연락을 하셨어요. 저에게 그 연락은 완전히 천운 같은 거였어요. ‘이걸 보고 만나러 온다고?’(웃음) 신민아 배우에게 가졌던 저의 스테레오 타입도 그 순간에 무너졌어요. 본인의 고유성, 본인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계속 찾고 있다는 걸 강렬하게 느꼈어요. 매스컴에 많이 보여졌던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상의 무언가를 되게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가령 '보좌관'의 진지한 이미지라거나' 갯마을 차차차' 속 까탈스러움 그 모든 것이 있었어요. 전혀 이견 없이, 첫 만남에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공효진 배우는 신민아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빠르게 합류하게 되었어요. 참 운명처럼 만나게 된 거죠.

 

윤가은: 역시 시나리오가 좋으면 캐스팅이 쉽나 봐요. 어렵다고 하셨지만 저는 역시 시나리오가 좋아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습니다. 2개월을 침체기라고 말할 수 있나요.(웃음) 캐스팅이 진짜 어려운 과정이죠. 구 현식이자 현아 역할인 김상현 배우의 캐스팅이야말로 저는 신의 한 수처럼 느껴지고, 까다로운 캐스팅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사실상 한 사람인데 어떻게 영화적으로 드러낼지, 트랜스젠더 여성을 어떻게 재현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서, 두 인물로 가는 게 좋을지 등 여러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김상현 배우를 캐스팅하셨는지에 관한 질문도 들어와서 같이 질문드립니다.

 

부지영: 생물학적 남성일 때와 생물학적 여성일 때의 역할은 사실 한 사람이 할 수도 있고 각각 나눠서 할 수도 있는, 세 가지 정도의 선택지를 놓고서 고민을 했어요. 사실 김상현 배우는 지금도 굉장히 유명한 성우예요. 그런데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에 갔다가 백승빈 감독님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 출연하신 걸 본 거예요. 그 영화를 보고 강력한 이미지에 깜짝 놀랐어요. 이 목소리와 이미지를 지닌 분을 도대체 어떻게 찾으신 거지, 해서 여쭤봤어요. 그렇게 만나서 해결이 된 거죠, 자연스럽게. 그분이 연극 동아리를 하셔서 연기를 하셨더라고요. , 이거 너무 잘 풀린다.(웃음) 캐스팅 정말 잘 풀리는데, 싶었죠. 관객만 안 들었지, 과정은 너무 행복했어요. 김상현 배우님도 흔쾌히 받아주셔서 함께 하게 되었어요.

 

윤가은: 사실 제가 김상현 배우님 동아리 후배예요. 동아리에서 진짜 연기 잘하시는, 멋있는 선배 언니로 유명하셨어요. 성우로도 워낙 활동을 많이 하시고요. 최근엔 〈헤어질 결심〉의 서래 핸드폰 앱 목소리로 출연하셨어요. 익숙한 목소리이실 거예요. 명연기를 보여주셔서 이만큼 적확한 캐스팅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영화로 조금 들어가 보면, 그 지점이 되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두 자매가 각각의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에서 다름이 분명히 드러나잖아요. 자매가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한자리에 모여 아버지를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계기가 되는 어머니의 죽음이 들어온 설정은 처음부터 있었던 건지,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서 넘어가는 구상을 어떻게 만드셨는지 궁금합니다.

 

부지영: 처음부터 있었어요. 그렇다고 쉬운 선택은 아니었어요. 보신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캐릭터가 혜숙이에요. 과연 현실에 있을 수 있는 캐릭터인가. 그 캐릭터가 돌아가심으로써 많은 비밀이 남겨진 채로 있잖아요. 현아가 해명해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편의적인 결정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요즘도 해요. 이들이 만나는 시작에 있어 중요한 계기는 있어야 했고, 그걸 어머니의 죽음으로 잡은 거죠. 사실 플래시백이 서사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어떤 면에선 되게 편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거든요. 그 부분을 다 해결할 수는 없는 거죠, 엄마의 비밀에 대해서. 꼭 필요한 것들만 선택했고 엄마의 죽음으로서 묻히는 건 있을 수밖에 없는 듯해요.

 

윤가은: 타당한 흐름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다시 볼 때 그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 시점에 명은이는 왜 아버지를 찾아가려고 할까, 그것과도 연결이 될 것 같더라고요.

 

부지영: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께서 엄마와의 관계가 어떠셨냐며, 엄마에 관해 물으시더라고요. 공적인 자리는 아니었고요. 엄마는 좀 강력한 분이셨다. 집의 경제권을 가지고 계셨으며 가장이나 다름없었고, 말을 거역하는 게 어려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게 명은이에게 정확하게 투영이 된다는 거예요.(웃음) 명은이 편지를 찾아갔더니 엄마가 나가라고 하잖아요. 화나지만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마음이 있잖아요. 엄마는 네가 이모가 없냐, 엄마가 없냐, 뭘 더 바라냐는 이야길 하지만, 그건 엄마의 입장이죠. 명은 입장에선 불만을 쌓아오다가 방해자인 엄마가 사라지면서 여행을 하게 되는 거죠.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스틸

 

윤가은: 저는 명은이가 왜 아버지를 찾지 싶다가도 이 가족에 자기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나 했어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나와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무언가를 찾아서 가게 되나. 그럴 수밖에 없는 시작이란 생각이 저는 들었어요. 질문들이 엄청 쏟아지고 있는데요. 어떤 분께서 제가 질문으로 적어온 것을 거의 똑같이 해주셨어요. 명은이 이 여정을 통해서 마지막에 깨닫게 되잖아요. 회전그네에서요. 그 장면 연출이 굉장히 인상적이셨대요. 소리 없이 과거가 교차하면서 스스로 깨닫게 되는 중요한 장면인데, 어떻게 연출을 하신 건지 궁금하다고 하시네요. 생각보다 덤덤하게 이모였음을 깨닫게 되잖아요. 사실 우리가 논리적으로 퍼즐을 맞추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느낌으로 결론에 도달할 때가 있잖아요. 모든 것이 굉장히 감정적이고 직관적으로요. 그걸 영화적으로 설명하는 게 되게 어려운 연출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걸 여기서 하시더라고요.

 

부지영: 이게 잘 된 거예요?

 

윤가은: 그럼요!

 

부지영: 뭔가 부족해서 질문하신 것 같은 느낌이어서요.(웃음)

 

윤가은: 아뇨, 이 장면이 좋다고 하신 분들이 꽤 많아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논리적으로 이런저런 증거를 수집하는 연출도 가능했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다른 방식을 선택하셨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궁금해요.

 

부지영: 지금도 이 영화를 보면 너무 용기 있었네하는 부분이 이 장면과 비 오는 날 운전하면서 사운드가 켜졌다가 꺼졌다가 하는 장면이에요. 싸우고 나서 몽타주가 흐르는데 자매의 여정을 돌이켜보는 식으로 전개가 되잖아요. 정확하게 누구의 시점인지도 모르면서 계속 이미지가 나열되고요. 논리보다는 시청각적인 언어로 마음을 흔들어보자는 의도가 있던 거예요. 관객분들께 이해가 되고 받아들여지니 다행이지만, 너무 아찔해요.(웃음) 저렇게 과감하게 결정을 할 수 있었구나, 어떤 면에서는 패기라고도 볼 수 있죠. 사실 영화를 아는 사람들은 저걸 보면 웃지 않을까 하는 자격지심도 생기는 장면이에요. 이 로드무비에서 쌓아왔던 건 물리적인 공간의 여행이라기보다 시간 여행 같은 거예요. 과거로 계속 가거든요. 영화는 움직이는 언어잖아요. 영화 안에선 사람도 카메라도 움직여야 하는데, 이 움직임으로 더 가속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멍하게 회전그네에 타서 돌다 보면 머릿속이 정리되는 순간이 있었음 좋겠다 한 거죠. 그냥 서 있는 이미지에서는 아무리 해도, 플래시백을 붙여도 말이 안 되었어요. 돌아가는 이미지에선 뭔가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한 거죠.

 

윤가은: 젊은 패기가 굉장히 새롭고 대담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영화를 더 알게 되고 나이 들수록 눈치를 보게 되잖아요. 저는 그 장치가 충분히 납득이 갔어요. 여지없이 그 장면이 되면 마음에 오는 게 있어서요. 이것도 젊은 피의 힘을 받으셨구나, 생각이 들어요. 엠뷸런스가 갈 때 문이 탁 닫히면 당신의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가 뜨잖아요. 이 미술을 어떻게 생각하셨지 싶더라고요. 이걸 해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웃음)

 

부지영: 현장에선 감독이 여러 생각을 하느라, 모니터 앞에 앉아야 화면이 제대로 보인단 말이에요. 엠뷸런스가 와서 슛 들어갑시다, 하고 앉았어요. 문이 닫혔는데 당신의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가 쓰여있는 거예요. 저도 그 순간에 같이 놀랐어요. 너무 좋았어요. 이거야말로 바로 영화 책에서 나오는 해피 액시던트(happy accident)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윤가은: 잘 될 영화는 잘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진심을 다해서 영화를 찍으면 영화의 신이 와서 안 될 것도 되게끔 도와주고, 영화가 더 좋아지게 순간 찍히는 것들이 있구나 싶어요. 영화 제목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로 짓게 된 계기가 궁금하시다고 하시네요.

 

부지영: 초고의 제목은 정말 재미없었어요. 〈자매 여행〉이었는데요. 다 웃는다.(웃음) 제가 정말 제목을 못 지어요. 그걸 ‘Sisters On The Road’ 영제로 지으니 뭔가 있어 보이는 제목이 되더라고요. 국문 제목을 지으려고 시집을 몇 권을 봤나 모르겠어요. 제목만. 결국 못 얻었고, 불현듯 지금의 제목이 떠올랐어요. 명은이 마지막에 내레이션을 하잖아요. 그게 제목을 짓게 된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아요. 지금, 앞으로 여행을 하겠다고 하잖아요. 이 여행이라는 건 마음에서 마음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거죠. 아빠, 엄마, 이모를 향해 가는 여행. 여기서의 아빠는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뜻하고요. 거기에 방점을 두고 제목을 생각했어요. 쉼표를 반드시 찍어주어야 하고요.

 

윤가은: 네. 쉼표의 위치가 중요하죠. 당시 트랜스젠더의 개념이 제대로 있지 않을 때이고, 오해나 편견이 더 많았을 텐데 소재로 갖고 오시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고 하셨어요.

 

부지영: 돌이켜보면 2001년에 하리수 씨가 화장품의 모델로 나왔을 때 굉장히 혁명적이었어요. 이미 존재하고 있던 분들인데 가시화되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 처음 본 거죠. 그 이후에도 그렇지만 서사에 등장하는 일은 드문 일이죠. 〈하이힐〉과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라는 영화에도 나옵니다. 저도 나름 일찍 서사의 인물로서 트랜스젠더를 선보인 셈이죠. 서사를 생각할 때 제가 그간 본 영화들과 제 가족이 시나리오로 잘 섞이는 지점은,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존재해도 역시나 가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어요. 명주 입장에선 선택적인 가족이죠. 혈연이 아닌. 사실 혈연도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가족의 형태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므로, 서사적인 결론은 제게 필연적으로 와닿았던 거죠. 할 말은 되게 많은데 딱 하나의 이유만 꼽기엔 어려워요. 여러 원인이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이고요. 지금과 다른 각색 버전 시나리오를 한 번 쓴 적이 있어요. 그 버전은 자매의 로드무비 사이에 훨씬 대과거가 많아요. 현식과 혜숙, 현아와 혜숙의 관계가 많이 나오는 거였어요. 모니터링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어요.(웃음) 현식이 수술을 받고 돌아와서 현아가 됐을 때 혜숙과의 관계가 더 돈독할 거란 생각을 했어요. 더 사랑하는 관계일 수도 있겠다는 설정을 했죠. 목욕하는 장면도 넣고 과감하게 썼던 기억이 나요. 기획팀이 회의에서 그걸 읽고 자매의 로드무비가 많이 보이는 버전이 좋다고 하셔서, 이 부분은 상상으로 여지를 두었죠. 이 결정은 혜숙의 결정이지 현식의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식이라는 인물이 성전환을 하고, 실은 여기로 돌아올 이유가 없잖아요. 성전환을 하고도 가족을 이루고 살 수 있는 터전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혜숙이 하지 않았을까. 혜숙의 결정은 누군가는 이기적인 결정이라고 말을 했습니다만, 인간애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해요. 헤테로섹슈얼의 이성애적인 사랑이 아니라요. 그래서 오히려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각색 버전에서도 둘은 거의 연인으로 그려지거든요. 원제인 자매 여행의 자매가 둘에게도 해당이 돼요. 명은, 명주도 자매지만 이 둘도 ‘Sisterhood’(자매애)라고 생각을 했어요. 물론 레즈비언으로도 볼 수 있고요.

 

윤가은: 당시에 봤을 때도 미래에서 온 영화란 느낌을 받았는데, 말씀 듣고 보니까 더 많이 앞서 나가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의 유품인 초록 원피스를 입었던 이모의 모습은 여성이자 어머니의 삶을 직접 선택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요?’ 이렇게 질문을 해주셨어요.

 

부지영: 네. 정확한 해석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성전환을 하고 돌아왔을 때 이미 여성은 되었지만,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몫까지 해야 하는 사람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힌 장면이죠.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스틸

 

윤가은: ‘Sisters On The Road’라는 제목만큼 로드무비란 생각이 드는데 십 년도 더 지난 기간 동안 여성 로드무비가 딱히 나오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어요. 여성 로드무비를 다시 찍을 의향이 있으신지 여쭤보셨어요.

 

부지영: 여성 감독들에게 질문하면 백이면 백 ‘Yes’라고 하지 않을까요? 원하죠. 누구나 다요. 시사회 할 때 윤단비 감독을 만났을 때 윤단비 감독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 영화 만들기 전에 보았던 〈델마와 루이스〉도 저한테는 가장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윤가은: 아직도 저희가 〈델마와 루이스〉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부지영: 남성 감독님이 그렇게 잘 만드셨잖아요. 물론 시나리오 작가는 여성이지만요. 저는 당연히 찍고 싶고요. 재개봉하면서 많은 분이 여성 로드무비 이야길 하시길래 아 그렇구나, 그동안 많이 없었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염두에 두고 기획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윤가은: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네요.

 

부지영: 감독님, 다음 영화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윤가은: 저도 로드무비 해보고 싶어요. 이 영화를 보는데 너무 설레서요. 여자 배우들이랑 다 같이 다니면서 영화 찍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모든 감독님들이 모이면 이런 이야기 한 번씩은 하는 것 같아요. 이미 첫 영화로 찍으셨는데 다시 찍으실 의향이 있으시다고 하시니까 저도 과감하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독님이 제주도의 귀족이라는 부 씨세요. 그래서 혹시 영화의 배경이 제주도인 걸까요, 영향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이런 질문을 주셨어요.

 

부지영: 제주 토종 성씨 고량 부중 하나이긴 하죠.(웃음) 제주도에서 15년 살았고, 대학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서 쭉 살고 있는데요. 친척들은 다 제주도에 계세요. 제주도 여자들의 기질… 저희가 모계 가족이긴 했지만, 주변을 봐도 여자분들이 굉장히 당당하세요. 저희 할머니들도 목소리가 되게 크셨고요. 그런 게 제게 문화적인 DNA로 남아있는 것 같고요. 이 영화에도 당연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윤가은: 이건 꼭 이야기해야 할 좋을 질문이네요. 영화에서 예전 한국의 모습들과 미술, 의상들이 너무 좋으셨대요. 벌써 14년 전이 되어서 이 안에서 과거의 모습을 찾으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 같아요. 명주 의상에 대한 컨셉을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물어보셨어요. 당시에 제가 되게 자주 입고 다녔기도 하고요. 어떻게 컨셉을 잡으셨나요.

 

부지영: 캐릭터들이 의상에서 많이 반영되고 드러나잖아요. 의상 감독님하고 노골적이더라도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시작했어요. 영화를 찍을 때 시청각적인 언어들이 많은데, 시각적인 언어는 도드라져야 관객들이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대략적으로 묻어있으면 그게 판단이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저는 옷을 보고 얘는 얘, 쟤는 저런 얘 이렇게 딱 보이길 바랐어요. 명주는 제주도에서 쭉 자랐기 때문에 제주도 자연의 좋은 색을 의상에 많이 반영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너무 편을 가르는 것 같기도 한데, 명은은 도시에 살기에 세련된 무채색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도드라지고 차별적인 색을 각각 입히게 된 거죠.

 

윤가은: 그걸 오프닝에 소개를 해주셔서 확실히 와닿은 상태로 영화를 시작하니까 캐릭터를 받아들이기가 더 수월했어요.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2009년에 이러한 형태의 가족을 다룬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을 것 같아요. 2022년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느껴지는데, 감독님께서는 10년 이상이 흐른 지금의 사회와 사람들의 관점이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부지영: 재개봉 후 아직 많은 관객분을 만나 뵌 건 아닌데요. 어제 같은 경우는 전혀 정보 없이 처음 본 관객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두 주연 배우의 모습이 변하지 않아서 최신작인 줄 알고 보신 분도 계셨어요. 시나리오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장면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거 없이 굉장히 흥미롭게 봤다는 이야길 해주셨어요. 저는 14년의 시간이 공으로 흘러가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변화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긴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많은 분이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시는 게 일단 저는 변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자매의 로드무비라는 게 큰 맥락이지만,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족의 비밀이나 형태들이 더 신선하고 중요하게 다가왔다는 평이 제겐 14년 후의 시사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가은: 14년이면 꽤 세월이 지났고, 그사이에 수면 아래에 있던 게 올라와서 굉장히 많은 변화가 느껴지잖아요. 이 영화로부터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새로 개봉한 것처럼 관객분들이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재개봉하고 스코어가 올라가는 맛을 또 감독님이 느끼실 수 있잖아요. 그게 엄청난 힘을 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SNS에 홍보 많이 해주세요.

 

부지영: 너무 잘한다.(웃음)

 

윤가은: 사실 너무 재미있잖아요. 이야기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라 영화관에서 즐겁게 관람하실 수 있으니까요. 오늘 날씨가 좋더라고요. 일요일 너무 소중한 시간이잖아요. 마지막으로 이 날씨에 극장 찾아주신 관객분들께 한 말씀해주세요.

 

부지영: 여러분, 해 지기 전에 나가셔서 맛있는 것을 드시고 계절을 만끽하셔야 되는데 말이에요. 끝까지 한 분도 안 나간 것 같아서 되게 떨리고 감격스러운데요. 이야기 나눠주시고 들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절친이고, 최애 감독님이고, 저의 청출어람인 윤가은 감독과 즐거운 시간 함께 해서 너무 좋고요. 여러분, 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윤가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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