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리뷰: 열리지 않는 방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주연 님의 글입니다.
〈누룩〉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영화다.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양조장 딸이자 고등학생인 다슬은 매일 특별한 누룩으로 지은 막걸리를 마시며 살아간다. 다슬에게 누룩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자신을 지탱하는 방식이자,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중심에 가깝다. 그러나 이 믿음은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친동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슬의 시선에서,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그대로 드러난다. 다슬에게는 너무도 분명한 존재 이유가, 다른 사람에게는 지나친 행동에 불과하다. 이해받지 못한 믿음은 반항이라도 하듯 몸집을 불려간다.

문제는 이 집착이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다슬이 누룩을 붙잡으려 할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그 안에서의 의미만 증폭된다. 누룩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밀어낸 선택은, 다슬을 더 좁은 세계로 몰아넣는다. 문 하나만 열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지만, 끝내 열리지 않는 방과 같은 자리다.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이는 영화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거리이기도 하다. 어쩌면 〈누룩〉이 끝내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 자체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타인의 믿음은 언제나 바깥에서 관찰될 뿐, 내부의 논리로 완전히 들어갈 수 없다. 이해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표면에서 미끄러지고, 그 자리에는 해소되지 않는 낯섦만 남는다.

형식 또한 이러한 거리감을 강화한다. 다슬과 다현 남매의 시선을 나누어 진행하지만, 어느 쪽도 완전한 설명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특히 이들을 바라보는 기자의 태도는 영화의 시선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사건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지켜보는 쪽에 가깝다. 때로는 조력자의 위치에 서기도 하지만, 완전히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이 시선은 관객의 위치와 닮아있다. 이해하려 애쓰지만 다가가지는 못하고, 일정한 거리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슬은 알고 있다. 무엇이 있었는지, 왜 누룩을 되찾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끝내 좁혀지지 않는다. 영화는 어떠한 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에 묻는다. 누군가에게 전부였던 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어디까지 그를 이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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