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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
〈세입자〉와 〈홈리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프랑스 실용주의 디자인 선구자 장 프루베의 작품 중엔 〈6x6 Demountable House〉라는 작품이 있다. 본 작품은 세계 2차 대전의 폭격으로 인해 집을 잃은 전쟁 유랑민들을 위한 임시 주택이다. 하루하루 위험에 노출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쓸모를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은 최소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조립과 분해가 세 사람이 하루 만에 지을 수 있다. 그는 집이란 파괴와 이동이 유동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닳아 없어져야 하는 구조물이라고 답했고, 거주의 의미가 대지를 잠시 점유하는 것일 뿐 점령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공간이라는 개념은 시대에 따라 형태, 양상 기능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했다. 개중에 ‘집’은 시대적 맥락에 따라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도래할 미래에는 우리가 평면적으로 인지했던 ‘집’의 형태가 파괴되어 주객이 전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움직임은 벌써 나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21세기 현재, 본질이 무너진 우리의 집은 공허한 지표가 된 채 부유하고 있으며 부동산의 논리에 맞춰 유토피아와 그 반대급부의 형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집’은 무엇이며, 그 속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영화 〈세입자〉의 주인공 신동(김대건)은 보금자리에서 쫓겨날 처지다. 공기의 질은 흑백으로 영화에서 표현된 만큼 이미 지독하게 오염되었고, 멈출 리 없다는 듯 치솟는 물가는 계속해서 삶을 옥죈다. 겨우살이를 하던 그에게 거주하는 집의 어린 주인마저 건물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며 나가달라는 통보를 전한다. 학대적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남자는 근미래에는 있는 참신한 제도 ‘월월세’를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의 사는 집에 한 구석을 월세로 돌려 새로운 입주자를 받는 방식으로, 계약으로 묶인 관계이기 때문에 집주인도 어찌하지 못할 거를 예상한 남자는 안도한다. 입주자 공고를 올리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보러오는 이들이 생기고 기이한 모습의 세입자 부부가 그를 맞이한다. 특이한 차림새의 부부, 그들의 모습의 위압감을 느끼기도 잠시, 화장실로 입주하겠다는 그들의 제안해 응한 남자는 한 지붕 아래 알지도 못하는 타인과 얇은 문을 사이에 둔 동거를 시작한다.
자신의 집에 새로운 이들이 오가는 구역이 생기자 남자는 휴식을 취해야 할 자신의 집에서마저도 불편함을 느끼는데, 어느 날 직장에서 공기가 좋은 신도시로 이주할 기회가 주어지게 되고 남자는 성과까지 부풀리며 집을 떠날 생각에 기쁨을 만끽하려 한다. 하지만, 계약상 묶여 있는 화장실 월월세 세입자로 인해 발목이 잡히고, 마찬가지로 월월세 부부도 천장세로 세입자를 입주시킨다. 화장실의 천장은 신동의 집 전 구역과 이어져 있고, 경계를 나눌 수도 없는 좁은 구역 속 수상한 인물을 향한 불쾌함만 점차 자라난다.
SF 장르의 가장 큰 기능은, 무한한 상상을 이끄는 저 멀리 이상 공간을 빌려 환상의 세계를 표현함과 동시에 인간의 인문학적 감수성을 내재하여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이다. 근 미래의 풍경을 SF 문법에 착안해 꾸린 〈세입자〉의 영화적 배경은 편안한 보금자리로서 기능해야 하는 ‘우리 집’ 공간의 본질을 긁어내려 동시대 사회의 주객 전도된 주거 환경에 대한 모순을 꼬집는다. 자신의 방 하나조차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현실, 구성원으로 완성되어야 할 사회를 점묘화한 구성은 개인주의가 치달아 오른 현실을 표한다. 월월세와 천장세로 생을 사는 이들은 편히 누울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고 각자의 입장에서 계약 관계로 묶여 서로의 이해관계를 강요하게 된다. 자신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꾀를 쓰는 이들은 밀려날 틈새에 타인을 집어넣어 막아내려 한다. 점점 더 어둡고 좁은 구석으로 사람들은 밀어 넣고 일조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천장세의 권리보다, 건축 시에 빈 틈새 공간을 확장해 구조를 설계하는 데에서 정부의 관심이 더해지고, 개인의 삶은 파괴된다.
새 삶을 위해 계약을 철회하고 집을 떠나야 하는 그. 그러나 천장세를 사는 이의 회신이 없다면 그의 노력은 무력화될 뿐이다. 결국 신동은 천장으로 직접 올라간다. 사회적 차별 구조상 계급과의 소통을 위해 하강을 시도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는 부재한다. 그러나, 신동의 하강(물리적인 상승(천장))의 태도는 그의 상상에 가려져 있던 반전의 현실을 유추하는 메타포로 기능한다. 결국 이 구조의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일 뿐이라는 경고가 울린다.
장르적 힘을 빌려 현실에 대한 일침을 가한 영화 〈세입자〉는 월월세, 천장세와 같은 도시계획 제도가 되려 사회의 분열을 가하는 마모화를 야기하고 있음을 밝힌다. 개인의 권리와 구역은 전부 침범당하고, 일상의 안온함을 벗어난 보금자리는 휴식과 정체성을 발화하는 고유의 공간이자 사적영역에 설계를 방해한다. 사회와 개인 모두 병들어가고 있음은 이젠 공기조차 봐 줄 수 없다는 듯 회생하려 들지 않는 듯하다. 현실은 더욱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영화 속 세계가 지금의 우리와 많이 달라 보이는가. 어쩌면 곧 진입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쾌한 상상이 이어진다.
거주 공간에 대한 욕망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습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존재성을 드러낸다. 영화 〈홈리스〉는 보증금 사기를 당해 홈리스가 된 어린 부부를 뒤쫓고 있다. 계급 우화를 보여줬던 〈세입자〉가 부동산 지옥에 점철되어 주객이 전도된 현실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면, 〈홈리스〉는 생존을 위한 맹목적인 가치가 된 ‘내 집 마련’에 대한 집착과 범죄의 수단이 되어 개인과 사회의 분란을 야기하는 오늘날을 비추고 있다. 부동산 사기는 점차 빈번해지고 있고, 노동으로 마련한 자산을 농락하는 현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처 없이 떠도는 어린 부부는 갓난아이를 업은 채 거리를 전전한다. 일상을 노동으로 가득 채워 안정된 삶을 꿈꾸지만, 빈곤한 현실을 떨쳐내지는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남편 한결(전봉석)은 잠시 거주해도 된다는 한 이름 모를 할머니의 집을 아내(박정연)에게 소개한다.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은 위태롭게라도 그곳에 머무르려고 하는데, 다른 타인의 구역을 침범해서라도 사적 공간을 설계하려는 욕망은 섬뜩함을 자아낸다.
절박한 우리의 현실, 보금자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질문이 연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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