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낼 시간〉리뷰: 지워지지 않을 힘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지 님의 글입니다.
학부 시절 한 교수님과의 대화 중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교수님은 ‘열심은 당연한 거고, 잘해야지’라는 대답을 했다. 나의 마음을 모두 쏟아붓는다 해도 마지막 모습이 평가를 결정한다는 사실이 조금 쓰렸다. 보이는 게 전부인 세상에서는 나의 노력, 성향, 마음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잘 해내야만 하는 곳에서 나라는 사람은 점점 지워진다.
수민, 사랑, 태희는 그렇게 오랫동안 밀려나다가 결국 떨어진 사람들이다. 원래의 자리에서 동떨어져 들어온 세상은 낯설다. 어색한 지도 앱을 붙잡고 헤매던 이들이 그나마 가진 것도 잃어버리고 새롭게 마주한 세상은 그러나 생각만큼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 받은 정산, 생각지도 못하게 마주한 팬. 강박적인 완벽주의와 웃음, 마비로 무장했던 세 사람은 상표와 소윤을 거치며 과거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특히 소윤은 세 사람에게 과거를 직접 들이미는 존재인데, 그와 함께 춤을 추고 싫어하던 노래를 함께 부르는 과정을 통해 이들은 아픔을 딛고 떠오르는 해를 마주할 준비를 마친다.
이때 전직 아이돌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의 화려한 과거 이미지는 영화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음성으로만 처리된 플래시백, 그리고 서로의 대화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단순히 아이돌의 특수한 문화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특정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야 하는 청년들에게 보편적 위로를 전달한다. 그렇다면 이 친구들은, 나아가 청년들은 어떤 힘을 내야 할까. 거대한 산업 구조에 비해 개인이 낼 수 있는 힘은 너무 미약하다. 그래서 상승으로서의 힘은 이들에게 부당한 강요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아주 작은 힘이라면, 자신의 자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여기에 있을 정도의 힘이라면 낼 수 있지 않을까. 사라지지 않을 정도만. 딱 그만큼의 힘만 내주기를 수민과 태희와 사랑이에게 조심스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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