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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단평] 〈힘을 낼 시간〉: 괜찮다는 말 한마디

by indiespace_가람 2024. 12. 31.

*'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괜찮다는 말 한마디

〈힘을 낼 시간〉 〈경로를 재탐색 합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서민서 님의 글입니다.

 

 

주위를 둘러본다. 모두 치열하게 앞을 향해 가고 있는데 정작 나는 제자리에 멈춰있기만 혹은 어딘가 홀로 뒤처져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그렇게 거대한 무기력함은 한순간에 우리를 덮쳐온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앞만 보며 달릴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럴 필요 또한 없다. 어쩌면 지금 내가 남들보다 느린 이유는 잠시 숨을 고르며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힘을 낼 시간〉과 〈경로를 재탐색 합니다〉는 바로 그런 시간을 따라가는 영화다.

 

영화 〈힘을 낼 시간〉 스틸컷

 

〈힘을 낼 시간〉의 수민(최성은), 태희(현우석), 사랑(하서윤)은 소위 말하는 실패한 아이돌이다. 이들은 학창 시절 가지 못했던 수학여행을 늦게나마 떠나보기로 한다. 하지만 사랑이 버스에 캐리어를 두고 내리는 바람에 여행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가지고 있던 돈 마저 전부 잃게 되면서 무작정 귤 따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행 같지 않은 여행을 이어간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여행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들의 첫 여행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채로 흘러가기만 한다.

 

영화 〈 경로를 재탐색 합니다 〉 스틸컷

 

〈경로를 재탐색 합니다〉의 수현(오은재)은 연기를 그만두고 택배기사 일을 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물건을 모두 배달해야 하지만, 오늘따라 순조롭지 않다. 고객은 빨리 택배를 수거해 가라며 재촉하고, 중고 거래를 하기로 한 사람은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디션을 보러 가던 지영(하영주)과 접촉 사고까지 난다. 시간에 맞춰 오디션장에 도착해야 했던 지영이 수현의 택배차를 얻어 타게 되면서 두 사람의 낯선 동행이 시작된다.

 

〈힘을 낼 시간〉과 〈경로를 재탐색 합니다〉 속 인물들은 모두 삶의 목적을 잃고 무기력하게 세상을 부유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연예계에 뛰어들어 아이돌로서의 성공을 꿈꿨지만 거대한 산업구조의 불합리성을 직접 마주하며 정신적, 정서적으로 망가져 버린 세 사람은 지금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조차 서투르다. 수현 역시 마찬가지다. 꿈을 포기했기에 스스로 정해진 삶의 경로를 이탈했다고 생각하며 그저 체념하고만 있다. 신경 쓰지 않아 자주 잔고장이 나는 택배차는 왠지 수현의 모습과 닮아있다.

 

영화 〈 경로를 재탐색 합니다 〉 스틸컷

 

수민, 태희, 사랑은 짧은 수학여행을 끝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무사히 오디션장에 도착한 지영을 내려주고 수현은 다시 길을 떠난다. 앞으로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숨기기 바빴던 상처를 서로 보듬어 줄 수 있도록 선물처럼 나타난 유실물 센터 직원 소윤(강채윤)과 상황이 꼬여도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라 믿으며 자기만의 길을 향해가는 지영 덕분에, 그동안 멈춰 있었던 이들은 각자의 삶에 있어서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지 않았을까.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여정은 스스로를 마주하며 잃어버렸던 삶의 의지를 되찾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오는 길과 가는 길은 다르니 조금 헤매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힘을 낼 시간〉 속 내레이션이 영화가 끝나고도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불안해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듣고 싶은 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느리더라도, 잠시 길을 잃고 멀리 돌아가더라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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