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 깃든 죽음들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어멍〉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5월 24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고훈 감독ㅣ어성욱 배우
진행 심광진 감독(〈작은 형〉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예로부터 돌, 바람, 그리고 여자가 유명하다는 남쪽 섬 제주도. 제주의 척박한 환경을 일구어 내고 가꿔온 근간에는 여성의 노동이 있었고, 그 중심에 해녀가 있었다. 〈어멍〉은 거친 파도와 싸우며 물질을 해서 가족과 지역 사회를 부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도 이해받지도 못하고 소외되어 왔던 해녀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다.
심광진 감독(이하 심광진): 저는 오늘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본 것 같은데, 오늘 보니까 대사가 좀 들리네요. 여러분들 제주도 사투리 반은 못 알아듣지 않으셨나요? 보셨다시피 제주도에 관한 영화고, 제주도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개인적으로 제가 이 작품을 좋아했던 이유는, 굉장히 슬픈데도 코미디 같아요. 저는 보면서 계속 낄낄 웃었어요. 문희경 배우님이 열연하시는 장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은 아이들이 슬픈 순간에 까불고 뛰어다니잖아요. 제사를 지을 때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런 걸 보면 감독님이 전체적으로 미장센도 신경 쓰시고 어떻게든 신파로 가지 않으려고 꽤 애를 쓴 작품 같아요. 먼저 여쭤볼게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미지예요. 먼저 삼촌의 무덤이 나올 때요. 제주도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삼촌’이라고 부르잖아요. 현기영 선생님의 『 순이 삼촌 』도 여자 이야기인데요. 〈어멍〉 에서 삼촌을 매장하는 장면을 디졸브를 거셨더라고요. 뒤에 오름이 같이 걸리게. 어떤 의미로 그런 그림을 만드신 거죠?
고훈 감독(이하 고훈): 무덤을 제주도에서는 ‘산’이라고 하는데, 무덤이 있는 장소에 오름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어릴 때부터 벌초를 하러 가면 무덤의 모양이 제주도의 오름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무덤의 모양과 제주도의 오름의 모양을 중첩시켜서 비슷한 이미지로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광진: 뒷부분에 아버님 벌초할 때도 멀리 오름이 중첩되는 그림이 있었잖아요. 초저예산 영화인데도 미장센에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아요. 비밀을 폭로하자면 제작비를 중형차 한 대 값에 끝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연, 학연을 잘 이용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저예산 영화인데 무덤까지 진짜로 파잖아요. 자막을 보니 제주 고씨 묘라던데.
고훈: 저희 가족 공동 무덤입니다.
심광진: 요즘 한국 영화는 여건이 안 돼서 납골당에 가는데 무덤을 포크레인으로 파길래 깜짝 놀랐습니다.(웃음) 허락 받고 하신 건가요?
고훈: 제가 고씨 종손이기 때문에 제일 어른입니다. 허락 받지 않았고, 통보만 했죠.(웃음)
심광진: 어성욱 배우님도 고향이 제주도죠? 배우분들이 프로필을 주실 때 특기란에 사투리를 쓰신 분이 많아요. 부산 사투리나 연변 사투리라든지. 근데 제주도 분들은 절대 특기에 제주도 사투리라고 적지 않더라고요. 배우님이 제주도 분이라 캐스팅이 된 부분이 크죠?
고훈: 문희경 선생님을 처음 섭외했을 때, 시나리오를 보고 이 역할은 제주 사람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어성욱 배우를 추천하셨고, 배우님의 제주도 사투리나 정서나 다 좋았기 때문에 캐스팅하게 되었습니다.
심광진: 감독님의 연출력도 좋지만, 문희경 선생님과 어성욱 배우님의 ‘케미’가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정말 한 가족 같고. 작업하셨을 때 어떠셨어요?
어성욱 배우(이하 어성욱): 이전에도 한번 문희경 선생님과 작업을 했는데, 그때도 엄마와 아들로 연기했어요. 워낙 선생님이 편하게 잘 해주셔서 편하게 연기했습니다. 너무 좋으신 분이어서 인간으로서도 배우로서도 많이 배웠던 것 같습니다.
심광진: 저는 제주도 사투리의 어떤 단어들은 알겠는데 어미 부분은 전혀 모르거든요.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다 정확히 맞는 건가요?
어성욱: 정확하죠.
고훈: 이 자리에 제주도민 분 오셨는데 검증하시면 됩니다.
어성욱: 저는 젊은 세대의 제주도 말을 구사했고, 문희경 선생님은 어른 분들의 제주도 언어를 구사하셨죠.
고훈: 배우 분들이 제주도 사투리를 너무 잘 구사하시니까,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구상했던 그림들이 그대로 나왔어요.
심광진: 배우의 힘이 정말 큰 작품인 것 같네요. 배우님은 영화를 보시면서 개인적으로 자신의 연기가 좋았다고 느꼈던 장면이 있나요?
어성욱: 제가 봤을 때는 다 아쉬웠던 것 같아요.
심광진: 그래도 본인이 연기했지만 본인 스스로에게도 다가오는 뭔가가 있지 않나요?
어성욱: 뚜렷하게 내가 봐도 괜찮다 싶은 이런 장면은 없었던 것 같아요.
심광진: 배우 분들도 그렇군요. 실제로 감독들이 의자에 앉아서 영화를 잘 못 봐요. 너무 창피하니까. 이번에는 감독님께 몇 가지 여쭤볼게요. 영화에 오브제로 몇 가지 죽음과 관련된 것들이 나오는데, 독특한 매우 낡은 차가 나와요. 그 차의 정체가 뭔가요?
고훈: 일단 설정 자체는 예산을 떠나서 아주 낡은 차를 하려고 했던 건 맞구요. 촬영에 쓸 낡은 차를 준비해뒀는데, 마침 영화에 등장하는 카페 주인 분께서 차 매니아셨어요. 그분이 프라이드에 폭스바겐 로고를 박아놓고 계시더라구요. 그래서 저희 렌트카랑 바꾸시죠, 라고 제안해서 그 차를 출연시키게 됐죠.
심광진: 저는 이 작품이 어머니의 암, 죽음, 아버지의 죽음처럼 매우 슬프고 끔찍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즐겁게 볼 수 있을까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메타포가 많은 것 같아요. 어머니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 같은 낡은 차가 있고, 카페 주인 같은 경우에도 바닷가로 밀려온 나뭇가지로 희한한 짓을 하잖아요. 영화가 촘촘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도 우리에게 직접적인 감정을 쏘아붙이지 않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구요. 극중에서 어머니가 굉장히 붉고 촌스러운 의상을 입고 노래를 하시잖아요. 왜 그 빨간 옷을 골랐나요?
고훈: 문희경 선생님과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문희경 선생님 본인도 굉장히 활발하시고 당당하신 분이에요. 제주도의 어머니나 해녀 분들도 대부분 그런 이미지시고, 관객들이 그렇게 느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통 ‘어머니’ 하면 떠오르는, 아들을 위해 희생하고 옷도 대충 입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 옷도 예쁘게 잘 차려입고 화장도 잘 하는 어머니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영화에서 무대 의상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붉은색 계통을 많이 썼어요. 이 집안은 암과 죽음이라는 아픔을 갖고 있는데 화려한 붉은 색을 씀으로써 피, 그리고 죽음과 연결시키는 아이러니함을 담고 싶었어요.
심광진: 저같은 즉물적인 인간이 생각하기에는 노래 ‘동백꽃’의 붉은색을 바로 갖다 붙이신 게 아닌가 했는데 깊은 뜻이 있었군요.
고훈: 그것도 추가하겠습니다.(웃음)
관객: 저는 제주도 말을 전반적으로 잘 알아들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알아듣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고요. 그런데 영화에서 제주도민끼리는 제주도 말을 쓰는데, 외지인이나 아는 선배, 제주도 동창인 카페 주인분하고는 서울말로 대화하더라고요. 그것도 설정을 하신 건지, 아니면 다른 어려움 때문에 그런 건지 궁금합니다.
고훈: 그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적응을 잘 해서 어디 가면 그 지역 말을 배워와요. 제주말로 이야기하면 못 알아들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서울 사람이나 외지인이 오면 표준말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서울에 오래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울 말투를 쓰게 되더라고요. 아마 저와 비슷한 나이대의 제주도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성욱: 보통 서울에서 살다 오면 아예 서울말을 쓰더라고요. 근데 저는 서울 말투를 쓰면서도 제주도 억양을 조금 남겨서 연기하긴 했거든요.
관객: 이전에도 제주 해녀를 다룬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영화에는 자막이 있었어요. 이 작품에는 한글 자막이 없는데, 안 넣으신 이유가 뭔가요?
심광진: 제가 대답할 건 아니지만, 감독이 원래 성격이 굉장히 불친절해요.(웃음) 저 같으면 넣었습니다.
고훈: 좀 불친절한 것도 맞고요. 사실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 영화를 관객 분들이 보실 때 대사를 충분히 못 알아들으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나 감정을 캐치하지 못하실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영화제에서 관객 분들을 만나면 어떠셨냐고 꼭 여쭤보기도 했는데요.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자막을 넣으면 불편한 게, 방해가 돼요. 자막으로 눈이 내려가니까. 그래서 실험적으로 한 번 한글 자막을 빼봤어요. 지금까지 제주도 영화를 볼 때는 늘 한글 자막과 함께 봤을 텐데, 이번에는 실험적으로 관객 분들과 소통을 해보자 하고요. 근데 다행히 자막이 없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반응이 많더라고요. 어떠셨어요?
관객: 제주도 말을 알아듣는 입장에서는 훨씬 더 차지게 다가왔다고 해야 할까요. 더 재미있게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고훈: 성공이네요.
심광진: 감독님 영화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다 이해를 바로 하시는 분들인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지만 자막을 잘 달아놨으면 10만명은 왔을 거예요.(웃음)
고훈: 그런 선택은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만약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 받고 상영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겠죠. 제주도에서 이 영화를 상영했을 때, 제주도 분들이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정말 좋았지만 다른 지역 분들이 못 알아들을 수도 있으니 자막을 다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건 제가 최종까지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관객: 저는 이 영화가 해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사실 해녀가 잠수하는 장면을 기대하고 봤거든요. 근데 그런 장면이 계속 안 나오길래 언제 나올까 기다리면서 보는데 마지막에 해녀의 일인칭 시점으로 딱 한번 나오더라구요. 여건 때문에 찍지 못하신 건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찍고 싶으셨던 건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고훈: 이 영화의 기획 의도에서부터 시작이 된 거예요. 지금까지의 제주도 영화나 해녀 영화들을 보면 말씀하시는 그런 그림이 많이 나오잖아요. 아름다운 제주 바다 속으로 잠수하는 역동적인 해녀의 모습. 저는 그런 장면을 좀 배제하고 싶었어요. 마지막에 일인칭으로 잠수하는 장면도 산호초가 있는 아름다운 바닷속을 보여주기 보다는 진짜 저희 어머니가 실제로 물질하러 들어가는 바다에서 찍은 거예요. 황폐하기도 한 그 바닷속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마지막에 숙자가 보는 바닷속의 모습을 그대로 관객들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광진: 궁금했던 게, 거기 나오는 집이 실제 감독님 집인가요?
고훈: 저희 집 옆옆집입니다.
관객: 이전의 작품들도 보면 감독님 본인의 이야기나 주변 가족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요. 이 영화에는 얼마나 많은 감독님의 진짜 이야기가 섞여있는지 궁금하고, 앞으로의 영화 계획도 알고 싶습니다.
고훈: 저의 이야기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습니다. 어차피 가상의 이야기니까요. 저의 경험과 생각이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확실하게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고. 제 나이 또래라든가, 제주도 사람, 영화라는 일 혹은 어머니가 반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끔 제 경험과 생각을 담았구요. 앞으로의 계획은 영화를 또 하나 찍고 후반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올해 개봉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을 많이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배우님 차기작은 어떻게 되시나요?
어성욱: 상업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고 있고, 독립영화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심광진: 개인적으로 제가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 제주도에 언제까지 계셨던 건가요?
어성욱: 스무 살 때까지 있었고 대학교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심광진: 그럼 언제부터 연기를 꿈꿔오셨나요?
어성욱: 원래 중학교 때부터 꿈꿔왔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못하다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건 군대를 다녀온 후 스물 세 살 때부터였어요.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시작했습니다.
심광진: 이 작품의 역할이었던 감독으로서 감정이입이 잘 되셨을 것 같아요.
어성욱: 그런 부분에서는 공감이 많이 되었죠.
심광진: 저도 감독이지만, 이건 디렉팅이 아니라 배우 분이 알아서 해주시는 자연스러운 습관이나 리액션 같더라고요. 그런 리얼함이 잘 표현된 작품인 것 같아요.
관객: 배우 분이 출연하신 전 작품도 봤는데, 처음에는 같은 분인지 못 알아봤어요. 그만큼 느낌이 다른 연기를 잘 해주신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는 무뚝뚝하게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부분을 인상깊게 잘 표출해내신 것 같습니다.
어성욱: 감사합니다.
심광진: 첫 주연작이시죠? 바라건대 이게 대표작이 되시면 안 되고요. 더 질문이 없으시면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몇 번 봤지만 여전히 따뜻해요. 저희 어머니도 팔순이 넘었는데 똑같아요. 아직도 싸워요. 영화 그만두라고 계속 말씀하시고요. 그래도 어머님께 맛있는 것 좀 사드리러 가야할 것 같아요. 이 영화가 가족과 잘 지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훈, 어성욱: 감사합니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로컬시네마를 말하다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대구 단편〉 인디토크 기록 (0) | 2019.06.07 |
---|---|
[인디즈 Review] 〈김군〉: 당신이 기억하는 것을 우리도 기억합니다 (0) | 2019.06.04 |
[인디즈] 단편의 모양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광주 단편〉 인디토크 기록 (0) | 2019.06.03 |
[인디즈] 초여름을 부르는 영화 〈보희와 녹양〉 안주영 감독 인터뷰 (0) | 2019.05.29 |
[인디즈]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에 대하여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이태원> 인디토크 기록 (0) | 2019.05.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