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에 대하여
독립영화 반짝반짝전 〈이태원〉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5월 18일(토) 오후 2시 상영 후
참석 강유가람 감독
진행 김보라 감독 (<벌새>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공간의 서사 속에서 우리는 그에 발맞춰 살아간다. 그 속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고 함께 숲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사는 것이고, 우리의 공간이 ‘살아가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용산부터, 지금에는 을지로까지 불안정한 공간에 대한 서사의 시작은 그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강유가람 감독의 <이태원>은 기지촌의 역사를 가진 ‘이태원’이라는 공간에서 살아온 삼숙, 나키, 영화라는 세 인물을 통해 이태원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주말에 많은 이들이 찾아와 ‘소비하는 공간’이 아닌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 ‘퀴어’한 것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의 서사에 대해 감독은 이야기한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가진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 속 삼숙, 나키, 영화 세 인물의 캐릭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각자의 매력이 넘친다. 다채로운 공간과 인물의 색이 녹아있는 <이태원>이라는 작품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며, 강유가람 감독과 김보라 감독이 함께한 인디토크를 소개한다.
김보라 감독(이하 김보라): 오늘 대담을 진행하게 된 김보라입니다. 강유가람 감독님 소개 먼저 듣고 시작을 하겠습니다.
강유가람 감독(이하 강유가람): 날 좋은 토요일 오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태원〉 연출한 강유가람입니다.
김보라: 팬으로서 감독님의 여러 작품들을 보았는데요, 10년에 걸쳐서 공간에 대한 작업을 하고 계시잖아요. 〈이태원〉이라는 영화 또한 공간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처음 기획하실 때의 의도와 완성하고 나서의 결과물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강유가람: 영화를 시작하기 전, 처음에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인물을 만나기 전까지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지인을 통해서 나키라는 인물을 만나며 이 분의 이야기를 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기지촌에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 삶의 굴곡이나 아픔 같은, 제가 상상하는 상이 있었고 이런 것들을 영화 속에 많이 담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편견이었을 수도 있는데, 이 인물들을 만나기 전 저의 생각들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실제로 〈이태원〉의 영화 속 인물들을 만나고 나니 이분들이 자신의 삶을 피해자처럼 보여주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고 저 또한 이 여성분들이 한 시기에 기지촌 여성의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이후에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들에 대해 한정적으로 묘사를 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네 사람, 이웃 주민으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김보라: 〈이태원〉에 나온 세 명의 캐릭터가 각각 다 다르잖아요. 예를 들어 나키나 영화가 기지촌에서의 경험에 대해 솔직하게 긍정하는 반면에 상숙은 계속해서 자신이 ‘양갈보’라고 불리우는 것에 거리를 두는 말을 하고,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리고 또 우사단로에 문화를 만들어가는 청년들은 다른 입장이 있고요. 저는 영화를 보며 마음에 남았던 것이, 청년 한 분이 ‘윤락여성과 윤락업소에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표현을 쓰시는데 그 표현을 쓰시기 전에 약간 머뭇거리세요. 그런 표현을 쓰면서 자신들이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라 생각을 할 때, 이 영화 속 세 명의 노년 여성들을 보고 그들이 어떤 마음들을 가졌을까 궁금해요. 그들이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어요?
강유가람: 일단 청년들이 공동체를 만들어가면서 우사단로라는 공간이 밝아지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전에는 어딘가 무서운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오면서 활기가 넘치는 우사단이 된 건 사실이거든요. 저도 그분들의 의도는 좋았다고 생각을 하는데, 말씀하신 부분처럼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어떤 분들이 살고 계시는지에 대한 이해는 제가 생각하는 부분과는 맞지 않는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이태원〉 촬영을 하면서도 제가 세 명의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얘기도 드렸기 때문에 영화 보러 오셨을 때엔 그 부분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을 하지는 않으셨어요. 영화를 보시고 실제로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기지촌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역사와 관련된 분들이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인지하고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너무 소비하지 않는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깊이 나누지 못했어요.
김보라: 감독님께서 영화 속 인물 중 어떤 분에게 가장 이입하여 이 영화를 찍었을까 궁금해요. 저는 오프닝부터 삼숙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나오니까 처음에는 삼숙님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태원〉에서 인상 깊은 것 중 하나가 자주 등장하는 클로즈업 장면인데요, 그런 장면은 주로 나키에게 있더라고요. 나키의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발톱, 속눈썹, 칫솔이 담긴 컵, 싱크대의 때, 그리고 깎다 만 사과 같은 것들요. 그리고 봉급이 깎였을 때의 나키의 옆모습 장면은 너무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제가 극영화를 하다보니 그런 것들이 더 눈에 보였는데, 다른 캐릭터 보다는 유독 나키에게 그런 지점이 보여서 개인적으로 궁금하더라고요. 클로즈업으로 찍으실 때 어떤 의도를 하셨는지, 그리고 영화를 만드시면서 어떤 캐릭터에 이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강유가람: 다큐멘터리를 찍다보면 출연자분들이랑 굉장히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태원〉을 찍으면서도 세 분 다 캐릭터가 너무 다르고 각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더욱 그랬어요. 나키님을 만날 때는 저도 모르게 짠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나키님의 삶의 조각들을 보게 되었어요. 나키님께서 굉장히 열심히 사시거든요. 치킨집 알바도 하시고 주점 알바도 하시고 종교활동, 몸을 돌보는 활동까지 되게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하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저에게 주는 울림이 있어서 클로즈업을 통해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삼숙님 같은 경우는 되게 대장부 같은 스타일이고 굉장히 멋있는 캐릭터잖아요. 그런데 저한테 묘한 감정을 일으켰던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해 거리를 두고 ‘다른 기지촌 여성들과 나는 달라’라고 처음부터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영화 속에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영화를 보여드릴 때도 떨면서 보여드렸고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걱정이 되었죠. 영화님 같은 경우는 되게 거침없으신데, 삶에 대한 쿨한 태도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그런 삶을 살았던 게 뭐 어때서’라는 태도고, 어떠한 연민도 없는 태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김보라: 아마 다른 분들도 많이 공감하셨겠지만 〈이태원〉에 나온 세 분의 캐릭터가 너무 매력 있잖아요. 너무 생생하고 매력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 사람들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된 것이 기쁘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지인분의 소개로 이 분들을 만나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건지 궁금하고, 다른 선택지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세 분만 나오시게 된 건지, 그리고 그 마을에 감독님의 작업실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세 분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영화의 완성까지 오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강유가람: ‘드롭인센터’라고 각 지역 여성에게 물품 지원, 각종 상담, 법률 지원을 하는 센터에 저의 지인이 계셨고, 그것을 계기로 나키님과 굉장히 길게 관계가 있었어요. 나키님이 처음에는 촬영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셔서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만났고, 나키님이 자기 말고 이태원에 대장부 같은 여자 있는데 만나보라고 하시면서 삼숙님께 저를 데리고 가셨어요. 그렇게 삼숙님을 만났는데 40분 정도 자신의 삶의 역사를 쏟아내시고, 그 포스가 있어서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제안을 드렸어요. 오프닝에 등장하는 영상은 삼숙님께서 직접 찍으신 거예요. ‘내 유서다’라고 말하고 주셨는데(웃음) 그만큼 삼숙님께서 기록에 대한 열망이 있으셔서 카메라를 어려워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영화님도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는데 좀 친해지면서 영화님도 다큐멘터리에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났던 분들이 한 네 분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캐릭터를 찾아가면서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서, 최종적으로 세 분을 카메라에 담게 되었어요. 지역 공간의 변화를 따라가고 싶은데 당시 제 작업실이 용산 쪽에 있어서 우사단로에 작업실을 운영하시는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곳에서 공간을 쉐어하는 방식으로 머물다가, 후커힐 쪽의 작업실로 이동하면서 찍었어요. 청년분들의 경우에는 마을회의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했던 것 같은데, 그 회의에 가서 촬영해도 되겠냐고 여쭤보고 담게 되었습니다.
김보라: 나키님이 삼숙님을 소개해 주셨다고 하셨는데, 어쩐지 두 분은 서로 안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두 분의 관계는 어땠을까 궁금해요.
강유가람: 그것도 〈이태원〉 속에 담지는 못했는데 두 분은 처음 이태원 왔을 때부터 오래 알고 지내셨어요. 삼숙님이 예전에 현재 바 2층에 하숙집 같은 것을 하셨나 봐요. 그래서 거기에 나키님이 사셔서 원래 알던 사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삼숙님께서 나키님 걱정을 많이 하시죠. 자기처럼 미군이랑 결혼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시기도 하고요. 두 분이 서로 안부는 주고받지만 엄청 친하지는 않은 그런 관계인 것 같아요.
관객: 영화 잘 보았습니다. 저는 감독님의 〈모래〉(2011)를 보았을 때 가족들, 특히 아버지가 영화의 끝에서 되게 많이 변한다고 느껴졌는데, 친밀한 관계였기 때문에 같은 시간 안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변할 수 있는 거라고 느꼈거든요. 그렇게 내밀하게 찍을 수 있었던 건 가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태원〉을 보면서 그분들과 가족처럼 신뢰관계를 깊게 쌓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카메라 밖에서 영화 속 캐릭터들과 어떻게 신뢰 관계를 구축했는지 궁금합니다.
강유가람: 사실 저는 〈모래〉에서는 가족, 아버지를 촬영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촬영하는 것에 대해 겁 없이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여성분들을 만났을 때는 제가 잘 모르는 분들이기도 하고 감히 제가 상상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낸 분들이라는 생각을 해서 너무 조심스러웠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카메라를 들고 갈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방문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차차 촬영해나갔죠. 그런데 삼숙님 같은 경우는 얘기하는 걸 좋아하셔서 카메라가 있건 없건 기본 1시간은 쭉 말씀하시거든요. 일하는 모습이나 표정처럼 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을 많이 담고 싶어서 인터뷰가 없어도 계속 가서 카메라 들고 가서 촬영했죠. 본격적으로 촬영 시작했을 때부터는 일주일에 세 번씩 돌아가면서 만났어요. 저 스스로 편견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제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 기지촌 여성으로 이태원에서 살아가면서 어떠한 감정과 갈등을 느꼈는지 등을 여쭤보는데 그런 인터뷰들의 결과물을 나중에 들었을 때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상상했던 답변이 아니라서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뭔가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저 스스로도 부끄럽기도 하고 그분들도 그에 응하지 않으셨죠. 그래서 그분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위주로 편집하게 되었어요. 그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김보라: 강유가람 감독님께서는 계속해서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작품을 만드는데, 영화 속에서 분명히 말하지 않은 것들이 있을 것 같거든요. 삼숙님께서 계속해서 미군이나 미국 사람들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씀하시는 게 인상 깊기도 했고요. 나키에게 미군들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대상인데 둘의 기억이 너무 다르잖아요. 말하지 않은 서브텍스트 안에서 어떻게 그것들을 조율하셨고 어떤 입장을 취하셨을까요?
강유가람: 삼숙님 같은 경우는 소위 말하는 ‘양갈보’라는 낙인에 대해 오히려 가장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 중에서 미군 남편이랑 길에서 양갈보라는 이야기 듣고 다시는 남편과 밖에 안 나갔다고 했잖아요. 그만큼 주변의 시선에 속박되셨던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이나 미군에 대해서 호의적인 감정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면에는 또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실제로 기지촌에서 사셨던 분들 모두 자신의 위치에 따라 가지는 경험치가 다른 것 같아요. 사실 삼숙님은 클럽주였기 때문에 본인이 웨이트리스를 관리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 변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클럽을 운영하면서 실제로 한국 조폭들과 갈등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경험 또한 삼숙님의 견해를 만들었을 테고요. 나키님 같은 경우에는 클럽 운영도 하셨고 웨이트리스로 사셨던 적도 있는데, 삼숙님이 운영했던 클럽보다 작은 소규모 클럽이었으니 또 다르게 미군들과 부딪히는 일들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각자가 가진 경험에 따라 각자의 생각이 달랐던 것 같아요.
관객: 영화를 보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이 나오고, 지금의 청년들이 소비하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이 등장을 하잖아요. 소비되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 이태원의 이면과 역사를 알게 하고, 기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일단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노력이 없으면 이태원이라는 공간은 더 빨리 쾌락적이고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공간으로 변화할 것 같은데, 감독님은 개인적으로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신지, 또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강유가람: 사실 이태원을 직접 가기 전 제가 가진 이태원에 대한 인상은 공포의 공간이었거든요. 미군 범죄가 난무하고 큰일 날 것 같은 공간이었는데 어느 순간 달라졌던 것 같아요. 촬영하면서도 잘 아니까 찍는다기보단 모르니까 알아가는 마음으로 임했고, 제가 영화 속 우사단길 청년분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방문자 혹은 이방인 같은 존재였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낯선 느낌을 많이 포착해서 영화 속에 담았던 것 같아요. 이러한 곳에서도 보통 동네 주민인 여성들이 살고 있는데 미리 다르게 보기 때문에 낙인 찍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무섭다기보다는 친근한 방향으로 변화된 것 같아요. 지금은 이태원 재개발이 잠시 주춤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님이 사는 보광동 같은 경우에는 옥수동처럼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지 않을까 싶어요. 이처럼 소거해버리는 방식으로 이 지역을 없애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남을 수 있게끔 변화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이와 같은 상생이 참 어렵다는 생각은 들어요.
김보라: 이어서 질문을 하자면 삼숙님께서 그런 얘기를 하시잖아요. “미국 사람들은 역사적인 걸 좋아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헐어버리잖아” 그 말이 저는 감독님께서 〈이태원〉에 담고 싶은 것과 많이 연결된다고 느꼈어요. 감독님께서 〈모래〉(2011), 〈진주머리방〉(2015), 그리고 〈이태원〉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위태로운 시기에 놓인 공간의 역사성을 포착하고 계시잖아요. 거의 10년에 걸친 시간 동안 공간에 대한 변화와 떠나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늘 감독님 영화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간에 대한 서사를 말하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강유가람: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너무 많이 다녔거든요. 아버지 건설회사 일 때문에 공사하는 지역으로 따라다녀서 항상 발붙일 곳이 없는 느낌을 굉장히 많이 가졌어요. 그래서 그런지 어떤 지역이라던가 공간, 제가 잠깐이라도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기록을 붙들려고 하는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저만의 공간을 꾸리고 싶었는데 그게 어렵다 보니까 공간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에 대한 감각이 생긴 것 같고, 어떤 동인이 있다기 보다는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보라: 마지막 장면을 인상 깊게 보아서 질문 드리고 싶어요. 석양이 지는 클럽 모습으로 마지막을 마무리 지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강유가람: ‘그랜드 올 오프리’의 불이 켜지면서 영화가 끝이 나는데, 삼숙, 나키, 영화라는 이 세 분이 참 열심히 삶을 사시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분들이 삶을 사는 방식이 특별하다는 게 아니고, 이렇게 일상을 계속 살아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일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계속 살아오신 것, 그리고 그것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마지막에 불 켜진 ‘그랜드 올 오프리’의 간판을 통해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관객: 개인적인 호기심인데, 공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위한 제작지원비가 나온다면 다음엔 어떠한 공간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싶으신가요? 2019년 지금 감독님이 관심 갖는 지역이 있을까요?
강유가람: 다시 이태원을 찍고 싶을 것 같아요. 이전에 있었던 미군 클럽들은 쇠락의 끝이라고 봐야할 것 같고, 그 지역에 다른 방식의 유흥산업인 트랜스젠더 클럽과 같은 공간이 늘어나고 변화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또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로 이태원이란 공간을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김보라: 계속해서 공간에 대한 작업을 하고 계신데요,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차기작이 있으시다면 간략한 소개를 들으며 자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유가람: 90년대 말 활동했던 3,40대 페미니스트가 지금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작업 중이고 올해 작업을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이태원〉을 만들면서 영화 속 세 분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저 스스로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이었는데, 다음 작품에서도 저의 주변 분들을 통해 새롭게 배워나가는 과정을 이어나갈 것 같습니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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