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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김군〉: 당신이 기억하는 것을 우리도 기억합니다

by indiespace_한솔 2019. 6. 4.







 〈김군〉  한줄 관람평


성혜미 | 모든 영화적 관계는 스크린 밖의 관객과 만난다

이성현 | 당신이 기억하는 것을 우리도 기억합니다

최승현 | 서스펜스와 진실의 묘한 공존

오윤주 다큐멘터리에 서사를 덧입혀 훌륭한 서스펜스를 창조해내는 무모하고 세련된 방식

김정은 개개인을 겨냥한 멈추지 않는 왜곡에 대항하는 첨예한 추종과 분석

김윤정 그 시대의 주인들의 입을 통한 ‘진짜 역사’ 써내려가기

송은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다른 증언을 따라가는 오월의 이야기
이성빈 격하게 흔들릴만한 이야기, 어떻게 흔들리는가는 대중의 몫







 〈김군〉  리뷰: 당신이 기억하는 것을 우리도 기억합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성현 님의 글입니다. 



 

역사는 권력자의 아카이브다.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억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이 문서화된 기록보다 실체적 진실에 훨씬 가까울 때가 있다. 2018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작이자 강상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김군1980년 오월 그날의 광주를 왜곡하는 시선에 맞서 모두가 김군이었던 무명 시민군들의 기억 하나로 진실을 대답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 당시를 포착한 한 사진에서 시작한다. 군용 트럭 위 군모를 쓰고 무기를 든, 날카로운 눈매의 사진 속 남성. 군사 평론가이자 극우 논객 지만원은 그를 북한특수군 '1광수'로 명명하고 '1광수', '2광수' 600명에 달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북한군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5.18을 겪었던 사람 중 지만원이 칭한 '1광수''김모 군'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영화는 '김군'의 행방을 쫓아간다. 청년 시절 김군과 함께 무장하고 그와 같은 차를 탔던 시민군 생존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아픈 기억을 조심스레 더듬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우리가 겪었던 일을 왜 우리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지' 분노에 차서 되물을 수밖에 없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1980년 오월의 광주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청년 김군들을 눈앞에 마주하게 된다.

 




사라진 김군에 대한 추적은 당시 발행되었던 신문의 조각 기사에서부터 동아일보 이창성 사진기자가 찍은 필름 사진 원본, 시민군 생존자들과의 개별 인터뷰, 그리고 청문회 영상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아카이브가 바탕이 된다. 그러나 감춰진 진실여부를 파헤치기 위해 자료와 증언을 조각조각 이어 모으는 퍼즐 맞추기식 전개를 펼치는 게 아니다. 영화 안팎에서 진실은 이미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스터리한 인물 김군의 행방을 쫓는 것은 관객을 이야기 내부로 깊이 끌어당기기 위한 영화적 장치다. 기존 광주서사가 주는 감정적 부담을 덜어낸 대신,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된 처음의 끌림과 호기심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극적 서스펜스를 구축한 것이다.


이처럼 영화 김군은 강상우 감독과 신연경, 고유희 PD를 필두로 5·18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그날의 광주를 기억하고 연대하는 젊은 시선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차별화된 매력이 있다. 자칫 관객에게 특정 감정을 강요할 수 있는 작가적 시선을 최대한 배제하였지만, 영화는 드러나지 않는 위치에서 나지막이 그리고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 시민군 인터뷰이의 말을 빌려, '설혹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도, 부디 왜곡만은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이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켜켜이 쌓인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을 축적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날의 광주를 좀 더 많이 기억하고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일개 김군이었던 무명 시민군들을 향한 개별 클로즈업은 그저 그날 사실에 대한 진술의 역할, 그 소임을 다하며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로부터 발화된 개인의 기억들은 곧 사회 전체의 공유 기억을 이루는 토대로 환원된다. 이것이 오롯이 그날 광주를 몸으로 겪은 사람들의 눈빛과 목소리로만 가득 찬 이 작은 영화가 무한한 이유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기억하는 것을 기억한다. 마치 어제 일처럼 1980년 오월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광주를 함께기억한다.


거짓에는 무한한 조합이 있지만 진실의 존재 방식은 하나뿐이다. 5·18을 겪지 않은 세대까지,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된 그날의 기억은 그 어떤 폄언이 틈타더라도 진실이 진실일 수밖에 없는이유에 대한 단 하나의 근거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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