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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그럼에도 지금을 사는 우리 <할머니의 먼 집>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6. 10. 16.

그럼에도 지금을 사는 우리  <할머니의 먼 집>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6년 10월 1일(토) 오후 2 상영 후

참석: 이소현 감독

진행: 최지은 아이즈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전세리 님의 글입니다.



“할머니, 내가 영화 열심히 찍을 테니까 다 보고 돌아가셔. 그 전에 돌아가시면 안돼." 나를 키워준 할머니가 어느 날 자살을 시도했다. 손녀 소현은 화순 할머니 집으로 내려가 할머니와의 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 출처: 상상마당시네마 트위터)


최지은 아이즈 기자(이하 최): 영화 보시면서 손수건이나 티슈를 가지고 올 걸 그랬다 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저도 영화 보고 울 것 같아서 시사회 때 급히 화장실 휴지를 뜯어갔었어요. 제 양 옆 분들께서 막 우시는데, 차마 드릴 수는 없어서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어요. 마음에 남는 영화인 것 같아요. 박삼순 할머니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이소현 감독(이하 이): 3개월 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해 계세요.

 

최: 요즘도 자주 함께 보내시나요?


이: 한 달에 한 번씩은 내려 가는데, 병원에 계시기 때문에 찾아 뵈면 2-3일 정도 시간을 보내고 옵니다. 


최: 할머니랑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는 상황인가요?


이: 네, 감사하게도 항상 저를 알아봐 주시고 극장에서 개봉한다고 말씀 드렸어요. 


최: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이: 개봉이라는 개념이 할머니께 없으니 "그게 뭣이더냐?" 하셨어요. 할머니께서 이 영화를 서울(서울독립영화제) 올라와서 보셨는데, 마침 인디스페이스였고 관객과의 대화에도 모셨어요. 그래서 이 극장에서처럼 다른 극장에서도 영화를 틀게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뭣허러 사람들이 이걸 보러 온다냐" 하시더라고요.(웃음) 


최: 어떻게 보면 할머니와 손녀의 알콩달콩한 추억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러 온 분들도 많으실 것 같은데, 영화는 할머니의 자살 시도로부터 비롯 되잖아요.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떻게 영화로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에서 잠깐 소개되지만, 저는 당시 취업준비 중이었어요. 서울에서 일반적인 취업준비생의 생활을 했지요. 그러다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할머니께서 키워주셔서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자살 소식도 그렇지만, 할머니도 언젠가 돌아가시겠구나, 라는 생각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할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야겠다 생각했고 어차피 취업은 계속 준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단 내려가게 되었어요. 어릴 적 할머니와 찍은 사진이 참 많은데, 커서는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할머니랑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다 생각하다가 카메라 동영상으로 조금씩 찍었어요. 이것을 단편으로 만들어 영화제에 출품을 하고 할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우리 할머니의 삶이 아름다웠다고 박수를 쳐주시면 다시는 죽겠다는 말을 안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화순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제가 전주국제영화제인데, 떨어져서 장편으로 찍게 됐습니다. 


최: 노인 분들의 자살 시도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미 돌아가신 분께는 왜 그랬는지 물을 수 없지만, 왜 시도를 했는지 언제 물어보실 수 있게 된 건가요? 


이: 3개월 정도 지나고 여쭤볼 수 있었고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게 쉽지 않았어요. 할머니께서는 별 일 아닌 것처럼 말씀하셨어요. 옥상에서 할아버지 묘가 보여요. 죽음은 원래 너무 가까이 있죠. 몸을 전처럼 부지런하게 움직일 수 없고 손주들도 다 키웠고 이제는 삶을 정리해도 된다는 생각에 오히려 가볍게 행동으로 옮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 단편에서 장편으로 만들게 되었는데, 기간도 오래 걸리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가족의 이야기이고 할머니의 생활과 밀착해야 했을 텐데 그 과정은 어렵지 않았나요?  


이: 어려운 점은 되게 많았어요. 영화를 전공하기는 했지만, 졸업 후에 영화 일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주변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해 스태프로 함께했어요. 외숙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단편 작업으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찍게 되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겠다 싶어서 그 작업을 접으려 했는데, 외숙의 아들이 49재 전날에 연락해서는 내일 우리 아버지가 정말 하늘 나라로 가시는데, 네가 기록을 해주었으면 한다 부탁하셨어요. 그래서 그것을 찍게 되었어요. 이미 이 이야기가 나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최: 할머니와 일상을 함께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돌이켜 봤을 때 특별히 남는 기억이 있나요?


이: 영화에도 나오지만, 제가 게을러서 중간에 잠도 자고 느지막이 일어나 낮잠도 자면서 찍었어요. 촬영하지 못한 아름다운 순간들이 많아요. 그 중 아쉬웠던 것은 저희 할머니 집 앞에 건물이 들어섰는데, 센서등이 있었거든요. 불이 저절로 꺼지고 켜지는데, 저녁 먹고 집 가는 길에 센서등이 켜지니까 할머니께서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집 주인께 인사를 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아, 내가 귀가 안 들려서 집 주인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들어가자."라고 하셨어요. 할머니는 그것이 센서등인지 모르시는 건데, 차마 말씀 드릴 수는 없었어요.(웃음) 참 재미 있었는데, 그 순간에 카메라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최: 할머니의 낡은 시계를 고치려다 새 시계를 선물하셨잖아요. 좋아하시던가요?


이: 너무 좋아하셨고 온 동네에 자랑하고 다니셨어요. 


최: 감독님과 할머니는 60세의 나이 차이가 난다고 알고 있어요. 저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함께 살았는데, 요즘은 다 커서까지 노인과 함께 지내는 일이 많지 않잖아요. 사람이 늙어간다는 것, 나이 들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생활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더욱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 귀가 어두우니 전화가 소용이 없어지는 일 등 몰랐던 것들을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감독님께서 할머니와 생활하시며 느낀 '나이 들면 불편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 할머니 발이 파랗게 멍이 들어서 병원에 간 적이 있어요. 의사가 발을 보더니 노인 분들은 원래 멍이 잘 드니 약국에서 파스 사 붙이지 병원에 왜 왔느냐며 돌려 보냈는데, 늙으면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 들이는 것에 화가 많이 났었어요. 후에 큰 병원에 모시고 갔는데, 뼈가 부러져 있어서 그렇게 아프셨던 거였어요. 그래서 많이 화가 났고 병원 홈페이지에 글을 쓰기도 했고요.(웃음) 내가 아니었다면 할머니는 병원에 가시지도 못했을 거에요. 혼자인 어르신들은 국가에서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 가족 간의 갈등도 등장시키는데, 어려움이 없으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이: 영화 작업을 하며 할머니는 빨리 죽고 싶어 하시고, 어머니도 할머니를 빨리 보내드리고 싶어하죠. 그러나 나는 할머니가 오래오래 내 곁에 있었으면 하고요. 이런 부분들이 결국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벌어진 각자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크게 깨닫고 배운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저는 영화 찍기 전에 죽음이라는 것이 나쁘고 무서운 것이라 생각했어요. 할머니께서 "인자 가자, 깐다깐다 구경 잘 했다. 어디 먼 길 구경 온놈메."라고 끝에서 말씀하셨잖아요. 이는 삶을 마무리 할 때, 인생을 열심히 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태도가 아닌가 싶었어요. 이렇게 삶을 살아온 할머니에게 감사하고 제게 큰 선물을 주셔서 참 행복해요.  


최: 관객 분들께 어떤 말씀을 가장 하고 싶으신가요? 


이: 영화를 보신 관객 분들이 제게 메일이나 SNS로 인사를 주셨어요. 더 많은 분들께 가족이나 할머니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먼 기억을 더듬는 손길, 애정에 감사하는 따뜻한 마음씨가 내내 돋보였다. 그 안에서 우리 각자의 먼 집을 가늠하기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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