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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기획] 한국 B급 영화의 흐름

by indiespace_은 2016. 10. 18.

 한국 B급 영화의 흐름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불청객>,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형주,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지난 8월 개봉했던 백승기 감독의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은 자신의 정체성을 C급 영화로 정의했다.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지만, B급 영화를 비틀어 홍보하는 점이 재미있었다. 그렇다면 B급 영화란 무엇인가? 우리는 보통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를 'A급 영화'라고 지칭해 부르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구분한 'B급 영화'는 그 자체의 가치나 호불호에 관한 평가 등급은 아니고 그보다는 영화 매체적 성격에 관한 용어다. 일반적으로 영화가 현실을 재현하는 매체라면 B급 영화는 재현의 역할을 포기하고 자신이 허구임을 숨기지 않는다. 또 동시에 사회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파격적인 소재나 인과성을 포기한 줄거리를 사용하고 자본은 물론 소재의 제약 없이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몇몇 B급 영화는 좀비나 살인 같은 특정한 소재나 형식이 굳어져 소수의 지지 관객층을 형성한 컬트 장르로 불리기도 하고 이것은 하나의 전반적인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따라서 B급 영화는 영화 산업 전반에 다양성을 부여하고 사회 속에 금기시되는 관습들을 건드린다.


대한민국에 B급 영화가 대중들에게도 알려지게 된 것은 비디오 문화의 부흥과 함께였을 것이다. 이전에도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처럼 컬트 장르로 구분되는 영화들이 있었으나 대중성과 재현의 완성도는 항상 담보해야 했다. 그러나 극장에서 성공하지 못해도 더 저렴한 비용으로 배급과 유통이 가능해지면서 제작과 자본의 측면에서 더 독립적인 영화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또한 해외의 비디오들이 보급되면서 영화적 상상과 표현이 전파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화’라는 기준이 다양해지게 된다. 이러한 영향들은 국내의 영화 산업과 사회와 맞물려 시대를 비추는 또다른 훌륭한 표현이 된다. 각 시대상을 대표하는 작품을 골라 한국 B급 영화의 흐름을 되짚어 보자.






1.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양병간, 1993



한국에서 B급 영화에 대한 개념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전부터 이미 국내 영화시장에는 B급 영화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양병간 감독의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이다. 남편과 사별하고 매일 독수공방 신세를 지내던 ‘한과부’(김문희 분)는 오랜 기도 끝에 마치 남자의 그것처럼 묘하게 생긴 나무토막 하나를 얻게 되는데, 그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는 주문을 외우면 멋진 사내로 변신해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영화의 시작에 앞서 자막으로 언급하듯이 이 영화는 당시 여인들의 성생활을 억압했던 사회적 풍속을 비판하고 있다. 주문을 외우는 즉시 우스꽝스러운 효과음과 함께 건장한 사내로 변하는 것이 황당하기도 하고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연장을 들고 살벌하게 사투를 벌이는 여인들이 우습게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는 작품이 갖는 의도가 B급 코미디라는 장르적 요소를 만나 아주 유쾌하게 풀어진다. 또한 미풍양속을 해치는 그 음탕한 물건을 처단하기 위한 사또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남는 그 물건을 보면 ‘남녀 일이란 나라님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라는 이방의 말이 백 번 옳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90년대 당시 사회상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소재로 여성의 자유로운 성생활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는 것이 발칙하기도 했을 것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는 이름만으로도 익숙한 <변강쇠>(1986)나 <애마부인>(1982)이 갖는 끈적한 에로티시즘에 <영구와 땡칠이>(1989)의 코믹한 요소가 뒤섞여 있다. ‘성’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도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재치를 보면 당시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망을 엿볼 수가 있다. 






2.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남기웅, 2000



제목이 긴 영화로 회자되는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이하 <대학로에서>)는 당대에 폭발적인 영화 산업의 에너지와 함께 탄생한 작품이다. 2000년대 들어 영화 산업의 거대한 성장과 함께 다양한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1998),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등은 기존의 영화 문법과는 어딘가 다른 자신만의 색을 띈 새로운 영화였다. 이렇게 영화의 표현 방식과 내용이 계속해서 확장되어 가는 와중에 나온 <대학로에서>는 (윤리적으로든, 산업적으로든) 금기 시 되어왔던 영역마저 모두 허용할 밀레니엄의 분위기와 맞물려 탄생한다. 영화는 대학로에서 매춘을 하는 여고생이 담임 선생님에게 매춘을 묵인 받는 대가로 성관계를 맺지만, 배신당하고 사이보그가 되어 복수를 하는 줄거리이다. 어른들의 위선과 아이들을 사각지대로 내모는 사회를 고발한다는 제작 의도가 있지만, 사실 이보다 상상을 구현해낸 방식이 훨씬 흥미롭다. 길거리의 매춘, 총격전, 사이보그, 등 다양한 상상들이 영화 내내 어두움 속에 반짝이는 조명들 틈에 마음껏 펼쳐지는데, 어두움을 핑계로 정확히 구현하지 않아도 상상들은 오히려 이미지로서 더 훌륭히 전달된다. 또 재즈부터 인디음악, 오페라 등 끊임없이 나오는 음악들은 거친 영상들을 매끄럽게 잇는 도구적 역할을 넘어 극의 진행을 지시하거나(갑자기 시작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영상과 아이러니한 매치로 B급 정서를 만들어 낸다. 이제 우리에겐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싸이보그 여중생 Z’처럼 여학생과 사이보그의 결합, 성기를 사용한 복수 등은 사실 더 이상 새롭지 않은 하나의 전형일 수 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시대의 자신감을 엿보는 색다른 감상을 할 수 있다. 






3. <불청객> 이응일, 2010



포스터에서부터 B급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초저예산 SF 영화 <불청객>은 이응일 감독의 데뷔작이다. ‘은하계를 가로지르는 허튼 소리!!’라는 문구를 자신 있게 써 붙이고 등장한 이 영화는 한동안 뜸했던 한국 B급 SF영화에 한 획을 긋는 아주 발칙한 데뷔작이었다. 손바닥만한 자취방에서 돈도 계획도 없이 하루하루 빈둥대는 세 명의 백수들에게 어느 날 뜻밖의 소포가 도착하는데, 생각 없이 열어본 소포에서 ‘은하연방 론리스타 수명은행’ 포인트맨이 등장한다. 그는 다짜고짜 수명을 내놓으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는 세 명의 백수들을 은하계로 납치하고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한 세 백수의 사투가 시작된다. 하나같이 어설픈 연기는 물론이고 은하계를 둥둥 떠다니는 자취방이나 포인트맨, RGB광선빔 등과 같이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특수효과는 <불청객>이 가지는 색깔을 뚜렷이 나타낸다. 특히 극의 절정으로 치닫는 백수들과 포인트맨의 치열한 결투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B급 영화만이 가지는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맘껏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기억되는 <지구를 지켜라!>(2003),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의 뒤를 잇는 ‘한국형 토종 B급 SF영화’라니 그 등장 자체만으로도 반갑기만 하다. 그러나 단순히 B급 영화의 등장으로만 생각하기엔 이 영화가 갖는 의미가 상당하다. 고시생과 백수로 대표되는 88만원 세대의 무기력함을 이야기 하기 위해 SF라는 장르를 선택한 신선함, 그 용기는 SF영화의 불모지인 한국 영화계에서 소재와 장르의 제한 없이 새로운 시도와 자유로운 발상이 가능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4.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김선, 2009



2009년에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자가당착>은 현재 시대 정신을 말할 가장 좋은 B급 영화일 것이다. 제작 후 5년 동안 사실상 상영 금지를 의미하는 제한상영가 등급과 싸우며 쟁취한 극장 개봉은 한국의 문화 검열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끝까지 사과할 줄 모르는 치졸함마저 드러냈다. 물론 유력 정치인의 목이 날라가는 장면이 문제였겠지만, ‘스크래치가 많아서 상영 금지’라는 말이 한 국가의 영상등급위원회에서 나올 수 있다는 신기함을 보여주었다. 국가의 기관이 스크래치 따위의 표현 방식을 상영 금지의 이유로 언급하는 게 가당한 일인가? 그러나 이같은 표현의 자유 또는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담는 시대상 말고도 영화는 여러 독특한 관점의 시대정신을 그려낸다. 영화의 주인공 포돌이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를 부모로 섬기며 자신에게 다리를 조립하려 한다. 그러나 쥐들이 나타나 다리를 긁어먹고 이들을 소탕하려 고군분투한다. 영등위와 관계자들의 걱정과는 달리 이 영화는 정치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폭발을 그리는 영화다. 영화 속에선 사회적 현상에 대한 함의와 비유들만이 나올 뿐 정치적 대안이나 시민들의 단합을 주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당시 촛불 시위의 시민들을 쥐로 표현하는 점이 놀라운데, 쥐를 대통령과 시민으로 비유하는 이중적 상징은 폭발의 잔해처럼 거칠지만 날카롭다. 이 영화에서 자가당착은 맨날 말을 바꿔대는 권력자뿐만 아니라 뜨겁게 폭발하지만 권력자의 아들로 변모하는 사회의 이중적 모습이다. 이를 구현한 모션 스톱 애니메이션과 필름 스크래치라는 오래되고 고생스러운 방식은 자가당착의 시대를 맨 정신으로 볼 수 없는 감독의 저항 같아 보인다. 또한 역으로 눈 뜨고 보진 못하겠고 가만 있을 수도 없는 감독 스스로의 자가당착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처럼 국내에는 다양한 소재와 색다른 방식으로 B급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져 왔다. 우스꽝스러운 설정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거나 괴기스러운 전개로 사회를 풍자하고 SF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가지고 세상을 이야기하며 신랄한 비유로 개인과 사회의 자가당착을 말하기도 한다. 그 기발한 상상력과 뻔뻔한 구현은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성의 가치를 증명해낸다. 그것은 다양성이란 가치가 너무도 당연하게 존중되어야 할 영화계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소재와 주제의 제한이 심해 사회적으로 민감한 것들은 거부되는 현실 속에서도 세상엔 여전히 알려야 할, 알려져야 할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어떻게 하면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것이 B급 영화이다. B급영화는 시대를 담고 사회를 그린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있기에 우리 영화계는 앞으로도 점점 더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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