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s 페이스 (Indie's Face)
상영 후 감독 배우들과 함께하는 인디토크와 인터뷰, 상영작 리뷰 등 인디스페이스의 다양한 소식들을 전하는 인디스페이스 기록 자원활동가 입니다. 극장 안 이야기들을 전하는 인디스페이스의 얼굴, <인디's 페이스>와 더욱 알찬 소식 만나세요 :D
영화 : 레바논 감정_정영헌
일시 : 2014년 3월 5일
참석 : 정영헌 감독, 배우 김진욱 김재구 장원영
진행 : 장건재 감독 (잠 못 드는 밤)
영화 <레바논 감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물음표를 짓게 만드는 영화다. <레바논 감정>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제일 먼저 피어 오르고, 이후에는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인물들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GV내내 카리스마 있는 자세로 일관한 감독처럼 <레바논 감정>은 다소 거친, 친절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신선한 연출로 잘 녹여낸 작품 <레바논 감정>의 인디토크를 지금부터 시작해본다.
진행 : 먼저 인사 한마디씩 부탁드릴게요
감독 : 이렇게 추운 날씨에 영화 보셨으면 더 추워지셨을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김진욱 : 안녕하세요. 여자역을 맡은 김진욱 입니다.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재구 : 저수지 수호신 역의 김재구입니다. 감사합니다.
장원영 : 가죽남자역의 장원영입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 엔딩 크레딧을 보면 ‘최정례 시인의 시를 따왔다.’ 이렇게 나와있는데요. 제목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영화를 딱히 설명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또 이야기나 인물 배경들이 친절하게 설명 되고 있지도 않고요. 그렇게 만든 의도나 영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감독 : [레바논 감정]이라는 시의 제목을 가져왔고요. 시가 갖고 있는 정서나 목적성이 제가 찍고 있는 이 영화와 같은 좌표를 바라본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영화를 찍고 있을 당시에 답을 찾을 수 없는 힘든 상황을 견뎌내고 있었는데, 이 시가 저한테는 위로가 된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 하지 말고, 그런 힘든 감정들을 그냥 전부다 <레바논 감정>이라고 하고 앞으로 좀 잘살아 보자.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찍은 이유는 제가 장건재 감독의 <잠못드는 밤>에 배우로 출연했는데 그 때 소규모로 정말 즐거운 경험을 하고,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찍게 됐어요.
진행 : 배우 분들에게도 질문을 드릴게요.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인물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 배경이 워낙 지워져 있는데,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진욱 : 일단은 경험하지 못했던 인물이잖아요. 참고자료로 보내주신 <로제타> 라는 벨기에 영화를 봤어요. 극중에서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 아이의 눈빛과 꾸밈 없는 표정 그리고 행동들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김재구 : 저는 연기를 할 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학교에서는 방법론을 배웠다면 지금은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분석하고, 연구해보면서 즐겁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시놉시스로 인물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면 감독님 답변 받아 다시 연구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캐릭터를 만들어 갔어요.
장원영 : 감독님이 시나리오도 없이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 라는 형태만 알려주셨어요. ‘이게 뭐에요 어떻게 해야 해요’ 라고 여러 번 물어봤었는데, 그 때마다 ‘모르시면 감독을 믿으시면 되요.’ 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두 번 째 리딩 때 감이 잡히지 않아서 포주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으로 연기를 했는데, 감독님 의견을 듣고 정신이 들면서 천천히 인물을 찾아갔어요. 첫 강원도 촬영 때 시간에 쫓기면서 여러 번 촬영이 반복되다 보니 저도 악이 받치더라고요. 그러면서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진행 : 감독님이 배우 분들을 괴롭히는 방법을 잘 아신다는 생각이 조금 들거든요.(웃음) 영화를 보니 추위가 느껴지는 영화인 것 같아요. 남자 주인공이 눈 속에서 뒹굴고 하는 장면은 어땠나요.
감독 : 솔직히 배우도 정말 힘들어하니 그렇게 까지 찍을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그 땐 저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본의 아니게 화를 많이 낸 것 같아요. 앵글을 잡고 보니까 멀쩡하게 누워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위에 눈을 뿌리기 시작했어요. 그날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고 눈이 휘몰아쳤는데, 남자 배우는 찍고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성호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하고, 고마워요. 나중에 영화를 다시 찍게 되면 배우들을 배려하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관객 : 사냥꾼이 총을 두 발 쏘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사냥꾼이 계산적인 인물이라고 느껴져서 그가 총을 쏘는 것은 오히려 손해가 된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감독 : 총이 느닷없이 등장하잖아요. 사실 여자가 멈추게 하려는 의도로 총을 쏘려는 것이었어요, 그런 위협을 가했을 때 여자가 멈출 것 같다는 생각에서 총을 쏘게 했고, 지금 들어보니 정말 맞췄으면 손해였겠네요.
관객 :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는 평이할 수 있는데, 레바논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진행 : 레바논 감정이 뭔가요?
관객 : 아. (웃음) <레바논 감정>이라는 시를 찾아 봤는데, 영화와 정말 분위기가 비슷해서 ‘아 이게 정말 <레바논 감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영화를 만드셨다는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영화에서 덫이 나오잖아요 원래 노루를 잡기 위해 설치한 건데, ‘덫에 노루 걸리면 연락해라’라는 대사의 의미가 애매모호해서 질문을 드려요.
감독 : 대사에 ‘고라니 이거 비싼 거다’ 라는 부분이 있어요. 돈이 꽤 돼서 사람들이 고라니 사냥을 한다고 해요. 그래서 산에 마구 덫을 놓던 시기가 있었어요. 돈이 되니까 잡히면 연락해라 그런 의미였지 다른 특별한 의미는 없었습니다.
관객 : 영화 잘 봤고요. 여자가 발을 다치고 남자도 마지막에 발을 다치잖아요. 발을 선택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 단순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하려는 의도에서요. 자꾸 그 사람들이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없도록 막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밖으로 나가는 장면으로 끝이 나죠.
관객 : 배우 분들 연기를 정말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 가죽남자가 전화 한 통으로 찾아올 정도로 집착이 심한 역할이잖아요. 여자가 마지막에 큰 돌로 내려찍으려 할 때 왜 확인사살은 하지 않고 살려두었는지 궁금해서 질문 드려요.
김진욱 : ‘여자’에게 ‘가죽남자’는 아빠처럼 보살펴준 사람이잖아요. 근데 이 사람도 저를 사랑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상황이 조금 폭력적이었고 거칠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약간 애증의 관계 같은 거에요. 더는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지만 어떻게 아빠를 죽일 수 있겠어요. 그래서 위협만 하되, 죽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돌을 빗겨 내리친 것 같습니다.
진행 : 이 영화는 작년 전주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소개가 된 후에, 무비꼴라쥬 상을 수상하고 모스크바에서도 수상했죠. 해외 영화제에도 소개가 되었는데, 외국 관객들은 어떤 반응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감독 :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제일 많은 관객을 만났어요. 반응은 극과 극이었는데, 좋아하시는 분들을 열광했고 싫어하시는 분들은 저주했어요. 어떤 독일 평론가가 와서 ‘네 영화는 라스폰트리에가 가장 나쁜 연출을 하는 것만 베껴와서 찍었다.’ 라고 하더라고요. 도대체 이 영화에는 레바논이 등장하질 않는데 왜 레바논감정이라는 제목을 썼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은 손에 관한 것 이었는데, 영화에서 엄마의 손과 여자의 손이 클로즈업 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 손이 저한테는 어떤 이별과 만남의 상징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마지막 순간 어머니를 떠나 보낼 때 손을 잡았었고, 처음 사랑했던 여자도 손을 잡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손이 그런 의미였고, 영화에서도 그런 의미로 사용이 되었죠. 그런데 그렇게 읽어주신 분이 있어서 굉장히 반가웠어요.
진행 : 배우 분들이 TV나 연극 등 여러 매체에서 활동하고 계신데 이 영화작업을 하시면서 어떤 장단점을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특히 이 영화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없어서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김진욱 : 저는 연극만 하다가 영화를 처음 찍어봤는데, 연극은 연습기간을 지내다 관객을 만나서 한 순간에 쫙 풀어지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 매력을 느꼈는데, 영화도 나름대로 매력적인 점이 많더라고요. 완성된 뒤에 상영관에서 처음 봤을 때 ‘내가 정말 저렇게 했었나’ 싶을 만큼 뿌듯한 장면도 있었고, ‘더 잘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연극과 다른 점은 선물 같이 남겨진다는 것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계속 하고 싶어요.
김재구 : 저는 개인적으로 독립영화라고 하는 것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삶을 협력하면서 보낼 수 있는 그런 느낌을 받거든요. 그러다 보면 영화도 더 잘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독립영화, 연극 모두 먹고 살 수 만 있다면 굉장히 하고 싶어요.
장원영 : 배우는 그저 연기할 수 있음에 감사한 것 같아요. 더군다나 고마운 것은 정영헌 감독님이 각본을 쓰셨기 때문에 제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과물이 나오고 나서 제 역할이 주요한 관통 선을 갖고 있는 인물인 것을 보고 저 스스로 깜짝 놀랐어요. 캐릭터의 목표만 따라갔지, 작품에 얽혀있는 관계에 대해선 소홀했던 것 같아요. 저와는 너무나도 다른 캐릭터라 촬영하는 동안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런 부분을 감독님이 뚝심 있게 밀어붙여 주셔서 감사 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진행 : 마지막으로 배우 분들과 감독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 듣고 싶어요.
장원영 : 네. 저는 얼마 전 모든 것을 끝내고 백수의 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에 조금 더 쉬고 싶네요. 이렇게 추운 날씨에 오셔서 영화 봐주시고 끝까지 이 자리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김재구 : 정말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김진욱 : 다른 작품 이어서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배우의 끈은 놓지 않을 것 같고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독 : 이렇게 개봉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고 오늘 이 자리에도 ‘관객이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 했는데..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저는 현재 차기작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고요. 올해 가을쯤 촬영을 해서 내년 개봉을 목표로 주력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해서 많은 분들께 작품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강렬한 느낌을 풍기는 영화 <레바논 감정>. 인디토크를 통해 처음 가진 의문점이 특별한 방향으로 풀리게 되었다. 감독은 <레바논 감정>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도 없다고 한다. 세상엔 많은 감정들이 있고, 그 감정들이 모두 다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아닐까?
정리/유승민 자원활동가(iamyise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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