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없이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을 모든 오리배에게  <수성못>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4월 28일 오후 3시 30분 상영 후

참석 유지영 감독ㅣ배우 이세영

진행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채영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화창한 날씨의 토요일이었다. ‘배우 유지태와 함께 독립영화 보기13번째 작품으로 <수성못>이 상영되는 날이었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뜻 깊은 일을 고민하다가 상업 영화 한 편을 찍으면, 독립영화 한 편을 지원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유지태의 관객 초대 이벤트는 올해로 벌써 7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수성못>은 대구에서 자란 필자에게 아주 반가운 영화였다.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도 친숙했지만, 마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이 그 곳에서 내가 했던 고민이 담겨 있었다. 수성못이 실재하는 지명인지 몰랐을 관객까지도 모두 영화 속 '희정'에게서 자신의 일부분을 발견했을 것이다. <수성못>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수수께끼와 여운 속에서,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 기자의 진행으로 유지영 감독, 희정 역의 이세영 배우와 함께 하는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이세영(이하 이세영): 안녕하세요, <수성못>에서 희정 역을 맡은 이세영입니다.

 

유지영(이하 유지영): 안녕하세요, <수성못> 연출한 유지영이라고 합니다. 재미있게 보셨기를 바라면서 질문 많이 부탁드립니다.

 

이은선(이하 진행): 저는 진행을 맡은 영화전문 기자 이은선입니다. 먼저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여쭤보겠습니다. 왜 대구의 수성못인가요?

 

유지영: 석촌호수여도 사실은 문제가 없는 스토리긴 하죠. 그런데 제가 대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거든요. 저는 영화를 만들 때 장소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20대 초반에 힘들 때마다 수성못으로 새벽에 산책을 많이 갔는데 그 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화 속 희정 같은 삶을 살면서 대구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독립하고 싶었고,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시기였거든요. 수성못을 대구라는 도시에 빗대어 말하면, 그 안에서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지만 앞으로 가봤자 제가 못 안에 갇힌 오리처럼 느껴졌달까요. 그런 마음들이 작업노트에 기록이 되어 있었고 첫 장편 영화를 만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게 딱 눈에 들어왔습니다. 첫 장편은 내 얘기였으면 좋겠고, 내가 나고 자란 장소에서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수성못>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진행: 수성못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겠다는 결심을 한 후 처음 생각한 시나리오는 현재의 영화와 같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전에 생각했던 스토리가 혹시 또 있나요?

 

유지영: <수성못>이라는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는 대사가 많이 없고 장소 위주의, 말하자면 포토제닉한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전위영화에 가깝다고 할까요? 수성못을 배경으로 영상미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구상 중에 저의 20대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어요. 그러면서 희정이라는 캐릭터를 구상하여 그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서른다섯인 제가 보는 이십 대의 제 거울이랄까요. 처음엔 이미지 중심으로 구상되었던 영화가 희정의 등장과 함께 스토리 중심으로 나아갔던 것 같아요.

 

진행: 희정이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치열하게 사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주변에도 그 치열함을 강요하는 사람이기도 한데요, 솔직히 조금 피곤할 것 같기도 하죠?(웃음) 희정이라는 인물을 처음 대했을 때의 배우님의 마음이 어땠을 지 굉장히 궁금해요.

 

이세영굉장히 오지랖이 넓고,(웃음자기도 모르면서 쉽게 말하고, 자기 세상에 갇혀있는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한 편으로 시나리오를 받고 촬영을 할 때 저랑 굉장히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고 충분히 이해가 가더라고요. 또 열심히 살고 있는 20대 청춘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허투루 보여주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진행: 그 노력의 일환이 영화 속 대구 사투리겠죠? 사실 감독님이 이세영 배우에게 대구 사투리를 꼭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해요. 이세영 배우가 희정을 그 캐릭터처럼 치열하게 준비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희정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배우가 아이디어를 제공한 부분이 있나요?

 

유지영: 이세영 배우와 제가 유머코드가 되게 잘 맞아요. 극 중 오리배 관리소장님한테 거짓말로 엄마 아프다고 하면서 뒷걸음질 치면서 나가잖아요. 그런 유머코드들이 세영 배우의 아이디어였어요. 가끔 스태프들은 그게 뭐냐고 핀잔도 주는데 저는 너무 웃긴 거예요. 각 씬, 각 쇼트마다 함께 논의하며 촬영했고 연기에 있어서는 제가 이세영 배우에게 의존한 것도 많았다고 봐요.


 



진행: 이 영화에서는 내가 모르는 것은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느껴져요. 특히 인물들의 마지막을 처리하는 방식이 그렇죠. 각 인물들에게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도 있지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결론을 모두 열어 준 것도 감독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이 난 섣불리 희망 같은 건 얘기 하지 않겠어라는 굉장히 단호한 의지인데요, 실제로 영화를 만들면서 가져가고 싶었던 목표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유지영: 저는 미대를 나왔어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영화도 만드는데 이런 창작의 과정에서 항상 경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예술로써 메시지를 던지는 거예요. 저도 희정이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모르고 저에게도 인생은 한 번뿐이고 모든 것이 첫 경험인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예술의 몫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항상 예술이란 사회 혹은 개인의 거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 때도 ‘2015년도 대구의 어떤 젊은이의 풍경으로 큰 퍼즐 속 한 조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비전이 있었어요. 차이밍량 감독이 했던 말 중에 “세계의 미래를 걱정하면 상업 영화고, 나의 미래를 걱정하면 예술 영화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되게 와 닿아요. 내가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 서툰데 영화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서툴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모르는 것까지 내가 말할 수 없고, 저 역시 어떤 사람에게 악한 사람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모호하다는 얘기를 듣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정답을 내리는 영화를 만들진 못하고 오히려 질문을 드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진행: 감독님이 얘기하는 부분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는 생각에 드네요. 동시대를 얘기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단 나부터 스스로를 굉장히 열심히 들여다 봐야 하는 작업이거든요. 내가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아니면 내가 이 주인공을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치열하게 해야 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상당히 깊숙하게 들어가는 작업일 수 있는데요, <수성못>이라는 치열한 과정을 두 분이서 통과하면서 각자에게 어떤 식의 위로가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이세영: 희정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또 저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아쉬운 부분이 많은 사람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고 그런 과정을 지나면서 저도 제 스스로가 부족한 면을 좀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됐어요. 내가 희정이랑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나도 착하지만은 않구나, 나도 오지랖이 넓은 스타일이구나, 그렇게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영화를 촬영하던 당시에도 희정이랑 너무 비슷하게 살아서 누가 연락하면 바쁜데 왜 전화해!” 이런 식으로 굴었거든요.(웃음) 모두 다르다는 걸 알고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유지영: 이 영화를 통해서 통과의례를 지난 것 같았어요. 단편을 6편 작업하고 이게 첫 장편작인데, 다 제 이야기를 했거든요. 저에 대한 이야기, 혹은 제가 투영된 이야기를 했는데, <수성못>을 찍고 나서는 이제는 내 이야기를 그만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 것 같아요. 또 개봉일에 <수성못>을 보면서 참 희정이를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20대 때의 저를요. 그 때는 정말 힘들고 치열하게 살았는데, 누구도 너 정도면 괜찮지 않니하며 저를 위로해준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그 때는 힘들어서 몰랐지만 지금 영화를 보니 희정이를 안아주고 싶었어요. 그러면 제 자신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진행: 이 영화는 청춘들의 얘기잖아요. 젊은 세대를 그려내는 영화에서는 그들을 둘러싼 기성세대를 묘사하는 방식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기성세대들은 주인공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구체적으로 미치지 않는 모호한 인물들입니다.

 

유지영: 강신일 배우가 연기한 박 씨라는 인물은 말씀하신 대로 이 젊은이들의 곁을 끊임없이 맴돌면서도 어떤 긍정적인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인물이에요. 어른들이 없는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서 그런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박 씨의 입퇴장이 굉장히 우스꽝스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희정의 엄마 같은 경우는 희정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어른들이 없는 세계라는 것은 박 씨를 통해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어른들은 스치듯 지나가게 연출을 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빠도 있지만 없는 듯한, 대구의 가부장 같은 느낌으로요.

 





진행: 희정이가 서울에서 '퍽치기' 당하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어쩌면 그 장면을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는 관객 분들도 있을 거예요. 잘 해결해나가면 될 것 같은데, 왜 한 번 더 이런 시련을 만들까 하고요. 그런데 이런 방식이 감독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대 순탄하지 않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어쩌면 이 감독의 장기라고 느껴졌는데요, 편안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상황들이 싫어요?(웃음)

 

유지영: 시나리오를 쓸 때 수정을 거치면서 여러 장면이 바뀌잖아요. 그런데 그 장면만은 처음부터 쭉 있었던 장면이었어요. 오히려 거기서 거슬러갔겠죠. 목표가 없이 인 서울만을 바라보고, 내가 무슨 과를 가고 싶은지, 왜 편입을 하고 싶은지, 왜 서울을 가야 하는 지 모른 채 가던 이 아이에게 네가 '뭣이 중헌지' 알아야 한다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영화에서 감독은 어쩌면 이 세계를 창조해낸 신이잖아요. 여기서 심리적인 타격이 있는 방식으로 각성을 한 번 주고 싶었어요. 너에게 세상이 녹록하지 않고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이상 서울에 온 것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진행: 그 씬을 중심으로 거꾸로 이 영화를 돌아보면 굉장히 다른 느낌으로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장치가 있어요. ‘영목이 만들고, 결국엔 희준까지 가세하게 된 자살클럽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중요한 축인데요, 나이브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들에게 죽음은 삶에 대한 예찬과 또 다른 방식의 매혹적인 소재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럼에도 작품 안에서 죽음을 다루려면 굉장히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 할 텐데요, 게다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동반자살이라는 소재는 무겁고 대하기 어렵고 극으로 만들려면 난감한 이야기인데 자살클럽은 어떤 의도로 연출했나요?

 

유지영이 영화는 희정을 중심으로 따라가는 플롯인데, 영목희정과 대비되는 위치에 있어요. 희정이 빛이고 삶을 의미한다면, 영목은 그림자, 죽음을 감염시키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희정과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따라서 죽음의 무게를 대변하는 입체적인 요소가 필요했는데 그 때 떠오른 소재가 동반자살이었어요. 항상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거나 혹은 충동적으로 죽으려고 하는데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나서 나의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들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자살예방센터에 취재를 갔을 때 처음에는 기록일지들을 보면서 좀 더 드라마틱한 아이템을 시나리오에 끌어오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들은 내 옆에서 내일 죽는다고 해도 내가 알아채지 못할 만큼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평면적이고 피상적인 묘사는 피하려고 했어요. 이를테면 내가 지금 목을 매려고 자살을 시도하는 그 순간에도 바퀴벌레가 있으면 '왁' 하고 놀랄 수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저에겐 중요했습니다. 영목과 자살클럽은 관객에게 죽음을 상기시키는 기능을 같이 하길 원했죠.

 

진행: 마지막 장면 이후 희정의 모습을 관객은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희정의 마지막 표정을 보며 쟤가 바로 집으로 갈까?’ 아니면 설마 수성못으로 걸어 들어갈까?’하며 아리송해지죠. 배우도 그 장면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많았을 텐데요.

 

이세영: 마지막 장면 촬영을 앞두고 대사 수정을 계속 했어요. 그런데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것은 저도 싫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에도 저는 5050이다, 희정은 살았을 수도 있고 금방이라도 물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습니다. 물에 뛰어 들어도 죽는 것조차 쉽지 않아서 다시 살 수도 있으니까요.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어요라는 대사가 있잖아요. 수성못의 물을 바라보면서 정말 모르겠다는 감정으로 연기를 했어요.

 




관객: 영화 속 희정은 곧 제 모습이었어요. 저도 대구에서 어떻게든 서울에 오겠다고 졸업하고 올라와서 살고 있는데, 꼭 목표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요새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동생 희준이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이 무슨 책인지 궁금했습니다.

 

유지영: '이방인'이라는 책입니다. 희준이 읽었던 부분은 마지막 구절인데요, 그 장면에서 희준이 도서관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잖아요. 그 장면을 희준이 이후에 자살클럽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한 복선처럼 생각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방인'이 계속해서 사회의 대열의 이탈자로 살면서 편입되지 못하는 사람이 대중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어주겠다며 조롱하는 내용이거든요. 그것이 희준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영화를 보면서 영목의 심리에 대한 갈피가 잘 잡히지 않았는데요, 영목이 왜 그렇게 자살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적극적으로 자살클럽을 만들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동영상을 찍지만 그게 단순히 공감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인지, 영목에 대해서 감독님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유지영저도 처음에 시나리오 쓸 때 굉장히 고민을 했던 부분입니다. 우선 희정과 영목은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인데, 둘의 공통점은 목표가 없이 실행한다는 거거든요. 영목 역시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죽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중증 우울증을 가진 미루라는 여자친구한테 우울증이 감염이 된 거죠. 그래서 무기력하고 만성적인 죽음,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죽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희정도 맹목적으로 인 서울만 하려고 하잖아요. 그 둘이 그렇게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면서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제 의도였습니다. 영목의 전사(前史)를 넣은 적도 있어요. 아픈 어머니가 있고, 요양원에 있고, 여자친구는 우울증이고, 삶이 너무 우울하고, 그런 내용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넣다 보니까 영목의 드라마가 너무 강해지면서 습관적으로, 또 만성적으로 자살에 젖어있는 모습에 방점이 찍히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작은 단서인 미루 하나만 남겨놓고 그 원인을 보여주는 대신에 자꾸 죽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주인공이 묻지마 폭행을 당한 후에 씩씩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와서 울어버리잖아요. 그런데 지갑을 뺏겼는데 어떻게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었는지(웃음)

 

이세영: 예리하시네요. 저도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가방 안에 굴러다니는 동전이라거나 바지 주머니에 천 원 몇 장이 있었겠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사 먹었다고 설정을 했는데, 사실 그때 당시 나온 신제품을 먹었거든요. 촬영이라고 좋은 걸로 주시더라고요. 감정연기를 하면서 햄버거를 먹는데 치즈가 막 늘어지고 이걸 후루룩 해서 먹을 수도 없고 우는데 치즈가 막 흘러가지고 더럽다고 NG나고.(웃음) 저도 햄버거에 굉장히 의문을 많이 가졌거든요. 왜 그랬나요?

 

유지영: 저는 항상 주머니에 천 원짜리를 갖고 다녀요. 지갑은 잃어버려도 집에는 가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너무 자연스럽게 그렇게 설정을 해버린 것 같고햄버거의 경우는 저희가 7000만원으로 만든 저예산 영화 아닙니까.(웃음) 가게를 섭외하는데 그 조건으로 신상품이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근데 치즈가 쭈욱 늘어나고 우는데 질질 흐르고도저히 안 되겠어서 여섯 번 정도 찍다가 햄버거를 바꿨습니다. 그 햄버거가 아니면 섭외가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웃음)

 

 




관객: 희정이 엄마랑 싸우고 나서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희준에게 듣는 말은 여자라서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인데요. 영화 속 희정은 여성을 향한 폭력에 다양하게 노출되지만 남자형제에게 여자라서 편하게 사는 거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장면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유지영: 그 상황에서 보면 희준이란 인물은 군대 문제로 정체가 되어있는 인물이잖아요. 희정영목은 그냥 목표가 없이 달려나가고 있다면, 희준은 그 중간에서 머무르고 있고 그런 상황들이 숨막혀오는 인물인데, 자기 입장에서 보기에는 달려나가는 사람이 부러운 거죠. 그게 순간 자기 안에서 꼬인 거였어요. 그 씬은 희준의 감정에 제가 이입을 해서 썼는데, 희준의 입장에서는 그 순간만큼은 누나가 부러운 거예요. 누나의 모든 걸 알지도 못하니까요. 누나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희정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른 채 얘는 목표도 있고, 달려나가고, 꿈도 있는데 나는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주인공이 호수에서 헤엄치면서 날갯짓을 해야만 바다로 갈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자각한 오리배처럼 느껴졌는데요, 혹시 지금의 두 분이 극 중 희정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유지영: 달리다가 넘어져도 되니까 그냥 너무 힘들 땐 콱 넘어져버려서 옆에 뭐가 지나가는 지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고속도로를 달리면 풍경들이 쌩쌩 지나가잖아요. 그런데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들꽃도 보이고 하늘도 볼 수 있고 창을 내려서 향기도 맡을 수 있죠. 그렇게 비포장도로 가듯이 좀 천천히 가고, 힘들면 좀 세웠다 가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이세영: 저는 희정과 굉장히 비슷했어요. 맹목적으로 발버둥치고 열심히 하면서 목표가 여기서 벗어나자인 거요.(웃음) 다이어리 앞장에 항상 한 해를 다짐하면서 쓰는 글이 있는데, 2015년에 써놓은 걸 보니 가끔 앞만 보고 가면 맞게 가고 있는지 모른다. 잠깐 멈춰서 맞는 길로 가고 있는지 뒤도 한 번 돌아보고, 주변을 좀 돌아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도 된다는 말을 썼더라고요. 누가 쫓아오는 거 아니니까 좀 여유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진행: 우리는 관성적으로 젊은 세대들은 꿈 꿔야 하고, 도전해야 하고, 뭔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잖아요. 뭔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스스로 굉장한 실패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매체도 그런 것들을 강요하죠. 최근 젊은 감독들이 만든 작품들을 보면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반가운 시선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유지영: 많은 관객분들이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다 눈에 담아서 가겠습니다. 저희 영화와 배우들, 영화 속 희정, 영목, 희준을 마음에서 오래오래 안아주시길 바라며 조심히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이세영: <수성못> GV를 하면서 가장 많은 관객분을 만난 것 같습니다. 감사드리고, 저희 영화 오래오래 기억해주세요.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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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운동하는 세계를 응시하는 일  인디포럼 월례비행 <박홍렬 촬영감독 단편선>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4월 25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박홍렬 촬영감독

진행 변성찬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연 님의 글입니다.



모래사장 위에 더미가 놓여 있다. 하늘과 바다, 모래사장, 더미의 모습. 카메라는 동일한 장소를 분해해 요소 하나하나의 제각기 모습을 훑는다. 이처럼 영화는 영화만이 취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현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시선의 중심엔 카메라가 있다. 우리의 지각 여부와는 관계없이 세계는 움직임을 이어 나간다. 운동하는 세계 속에서 유의미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전부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이다. 무궁무진한 운동의 연속에서 어떤 상황과 풍경을 마주할지 택하는 카메라인 만큼 변화에 민감해야만 한다. 미세한 손짓으로도 빛의 색채는 달라지곤 한다. 달라지는 삽시간을 정확히 응시해야만 관객도 그를 그대로 맞이할 수 있다. 변화하는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기, 촬영이라는 행위란 그런 것이다.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지긋이 카메라를 주시해 온 사람이 있다. 박홍렬 촬영 감독이 인디스페이스에 함께해 본인의 영화 세계를 나누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변성찬 평론가(이하 변성찬): 상영이 제작 순서로 이뤄지진 않았다. 2013년에 선보인 <더 바디>가 처음에, 그 다음으로 2017년 발표된 최근작 <산나물 처녀>, 그리고 2004년의 <빛과 계급>이 마지막으로 상영됐다. 세 영화의 촬영 감독. 박홍렬 감독님이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셨다.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출연해 창문을 열심히 닦기도 했다.(웃음) <하하하> 이후로 홍상수 감독님과 촬영을 꾸준히 함께 했다.

 

박홍렬 감독(이하 박홍렬): <하하하> 이전까지는 김형구 감독님이 촬영을 맡으셨다. 나는 필름에서 디지털로 촬영 방식이 변화하던 시기에 부탁을 받아 홍상수 감독님과 함께하게 됐다. 단편까지 포함해 11편을 같이 찍었다.

 

변성찬: 마지막에 상영된 <빛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실험영화이자 독립영화이다. <더 바디>는 미스테리이자 스릴러라는 컨셉을 잡은 대중영화에 가깝다. <산나물 처녀>는 선녀와 나무꾼을 귀엽게 비튼 우화이고. 각 영화의 톤 앤 매너가 굉장히 다채롭다. 박홍렬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왼쪽과 오른쪽 양쪽 끝을 아우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촬영감독뿐만 아니라 시네아스트로서 직접 연출도 겸한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는 다큐멘터리까지 연출했다. 활동의 폭이 그만큼 크고 변화무쌍하다. <빛과 계급>2000년대 초의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급진적인 실험성을 보여준다. 마치 다른 시대를 보는 것마냥 느껴졌다. 근데 감독님은 앞서 말한 큰 활동 폭 때문인지 필모그라피를 카운트하기가 힘들다.

 

박홍렬: 카운트는 따로 못했다. 포털사이트에 이름이 올라간 영화는 50편이다. 현대미술 작품도 했었는데, 다 포함해서 추정한다면 200~300편까지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98년부터 20년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독립영화가 활발하던 시기에 촬영을 시작했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그를 감독님들과 함께 고민할 수 있어 운이 좋았다. <빛과 계급>16mm로 촬영한 작품이다. 영화창작집단 곡사가 가장 활발히 활동할 때 찍은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작품에 녹일 수 있을까 논의를 많이 했다. 가령, 자본론 세미나를 두 달 동안 했었다. (웃음)


 



변성찬: <빛과 계급>에 대한 물음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빛과 계급>16mm 필름으로 촬영한 후 디지털라이팅을 한 작품이다

 

박홍렬: 필름으로 촬영은 했지만 상영은 HD로 전환될 시기였다. 다섯번째 챕터에서 속도가 빠르게 변한다. 근데 이걸 필름으로 찍으려면 비용이 꽤 든다. 김곡 감독님의 지향점은 영화 안에서의 간격을 표현하는 것이다. <빛과 계급>은 이런 작업을 위해 필름과 디지털이 적절히 잘 만난 영화이다. 김곡 감독님은 필름의 물성, 질감의 힘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최근 개봉한 <곤지암>에도 김곡 감독님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빛을 중심으로 다뤘지만 빛보다 중요한 게 질감이었다. 디지털라이팅을 할 때 그 간격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핵심이었다.

 

변성찬: <빛과 계급>은 촬영 감독과 연출 감독의 경계가 모호할 수도 있는 작업이다. <빛과 계급> 속에는 필름으로는 불가능한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장면 속 움직임이 카메라의 움직임인지 프레임의 움직임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런 장면들은 어떻게 작업했는가.

 

박홍렬: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뤄졌다. 편집의 부분에서만 디지털에 의존했다. 필름이라는 매체를 통해 빛이라는 물리적인 성질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요지였다. 빛이 자본이라는 세뇌를 감독이 두 달 동안 했다. (웃음) “빛이 자본이다라고 생각을 하면, 빛이 사람을 언제 비추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또 영화에서는 거울과 유리상을 활용한다. 우리는 평면을 보고 있지만 그 평면 안에는 깊이가 있다. 거울과 유리로 인물과 인물이, 인물과 카메라가 마주보고 있다. 이 모든 장면은 CG가 사용되지 않았다. 모든 동선엔 의도가 있다. 영화는 고정되지 않았다. 나는 영화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고민을 많이 한다. 변화는 새로운 것을 만나게 해준다. 그 도구로써 거울과 유리가 활용됐다. 카메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타이밍을 맞춰가며 거울과 유리, 인물의 움직임을 조정했다.

 

변성찬: 감독과 세미나 외에 공유한 점은 없나. 그리고 챕터가 다섯 개로 나뉘어 있음이 영화 후반에 제시된다. 나머지 장면은 챕터의 구분도 모호하다. 엔딩 크레딧에 가서야 각 챕터의 제목이 등장한다. 이 모든 게 의도된 편집인가.

 

박홍렬: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김곡 감독님만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그 의도를 제작자가 말할 필요는 없다. 무책임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빛이 자본일 필요도 없다. 마지막 자막에 주어지는 내용이 이미지와 결부되었을 때가 중요하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빛과 계급>이며 공산주의의 미래인가, 갑자기 생각하게 된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게 영화의 의도이다.

 

변성찬마지막 장면의 구도는 인물을 횡축이 아니라 종축으로 배치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초점 이동이 미세하게 이뤄진다. <빛과 계급>뿐만 아니라 <산나물 처녀><더 바디>에서도 반복해서 드러난다. 우연인가, 아니면 감독이 선호하는 방식인가?

 

박홍렬: 영화에 대한 취향은 없다. <빛과 계급>의 초점 이동은 감독님의 완벽한 의도다. 여성의 몸이 흔들리고, 거울이 흔들리고 이동하는 것들 말이다. 밖에서 사람들이 직접 거울을 흔들었는데, 연습이 필요했었다. <빛과 계급>의 포커스 이동도 같은 개념으로 작용했다. 표현하는 단계에서 많이 논의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곡사의 경우는 영화를 위해 감독들이 공부를 많이 한다. 그를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이를 익숙하지 않은 서사의 틀로 다루길 원한다.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서사의 틀이 관객으로 하여금 주체적으로 응시하길 어렵게 만든다. 그 틀에서 벗어나기란 어렵다. 서사의 틀에서 벗어날 때,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때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된다. 상업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변화는 카메라일 수도, 인물일 수도 있다. 촬영은 내 역할이다. 그리고 한 쇼트 안에 서 몽타주를 다룰 때 어떤 변화를 줄지 생각한다. 나는 심도를 가장 깊이 조절한다. 공간의 깊이를 관객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 영화를 촬영할 때 나는 서사의 틀을 따라가면서도 그를 어떻게 위반할 수 있나를 고려한다. 어떻게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부단히 움직이면서 새로운 현상을 만나면,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프레임이 깨진다. 우리는 하늘을 볼 때 하늘다운 것을 연관 지어 의미를 유추해낸다. 그러나 새로운 것들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것, 그것이 움직임이다. 배우의 움직임은 촬영 감독이 컨트롤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포커스 같은 촬영 방식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오늘 상영한 세 영화는 그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서사에 종속되어 있으면 새로운 것을 만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론가가 언급한 촬영 방식은 취향이라고 이야기할 순 없다.


 




변성찬: 평균적인 쇼트보다 롱테이크로 흐름을 길게 가져가느냐, 혹은 포커스를 종축으로 이동하며 두 개의 쇼트를 담을 것인가. 이는 배우 혹은 감독에게도 큰 문제이다. 촬영 감독의 지위가 어찌 보면 최상위에 있지는 않다. (웃음) 감독과 어떻게 의견을 조율하는가?

 

박홍렬: 영화는 정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관객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상업영화도 똑같다. 그래서 영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 시나리오 안에서 영화적이며 만드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려 한다. 감독들은 이에 많이 공감하는 편이다. 만드는 사람, 즉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중요하다. 만드는 이가 정성을 들여 새로운 것들을 만나면 실제 영화도 새로워진다. 필연을 기반으로 한 우연이다. 준비를 많이 할수록 우연을 만날 가능성도 커진다.

 

변성찬: 가장 상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더 바디>의 박진성, 박진석 감독이 인터뷰에서 박홍렬 감독을 유순하고 고집이 세지만, 그만큼 부지런하다고 표현했다.

 

박홍렬: 내가 연출감독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독보다도 영화를 더 많이 본다. 어떤 감독을 만날지 모를테니까. <간>이라는 사극을 촬영하기 위해 2005년에서 2013년 사이의 모든 한국 사극을 숏 단위로 보았다. 중국에서 SF 영화를 촬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2008년도부터 2015년도에 사이의 SF 영화를 100편은 본 듯하다. 그러고 어떤 SF 영화를 만들 것일지에 대해 4시간 동안 발표를 했다. (웃음) 감각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려 노력한다. 가령 다른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해 양자물리학 책을 3권 읽었다. 물론 영화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 (웃음) 이러니 감독들이 내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객: 오늘 상영한 영화 외에서 질문을 드리고 싶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대개 즉흥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들었다. 촬영 감독께서는 보편적인 방식과 홍상수 감독만의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떻게 준비하는지, 두 가지 방식 간에 차이가 있다면 어느 점이 다른지를 여쭤보고 싶다.

 

박홍렬: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홍상수 감독,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서사로만 보면 다른 영화가 맞다. 그러나 형식적, 매체적 특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산나물 처녀>의 콘티가 다르다 생각하지 않는다. 상업영화는 자본의 안, 그러니까 계량적 틀 속에서 편집을 거쳐 영화가 비슷해질지라도 현장에서 만들어진 소스는 모두 다르다. 촬영 감독이 할 몫은 어느 영화든 동일하다. 어떤 변화를 만날지 모르니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첫 테이크와 두번째 테이크 간 빛의 결이 다르다. 콘티가 있다면 미리 준비하지만 미리 준비해도 현장에선 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달라진 상황을 맞이하는 건 어느 촬영장이나 동일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보통 테스트 촬영도 없고, 성능이 좋지 않은 카메라를 사용한다. 밝기를 다루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니 카메라에 대한 기술적인 측면을 미리 숙지해야 한다. 결국 겉으로 보이는 건 다르지만 그 안의 맥락은 같게 표현하려 한다.

 

변성찬: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포커스가 아니라 줌을 사용하는데. 홍 감독의 고집과 박 감독의 고집이 만났을 때 어떨지 궁금하다. (웃음)

 

박홍렬: 나는 내가 고집스럽다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촬영장에서 나는 감독이 아니라 배우라고 생각한다. 홍 감독의 영화는 프레임이 이미 정해져있다. 촬영자의 몫은 그의 리듬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하하>부터 <밤의 해변에서 혼자>까지 줌이 다 다르다. 그 차이를 홍 감독님이 알고 찍는 게 아니다. 감독님은 리듬 안에서 줌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신다. 줌은 배우의 연기를 따라간다. 줌이 들어갈 때 내 어깨를 치시는데(웃음) 가끔 테이크가 길게 이어질 땐 다른 생각을 하다가 줌이 늦게 들어갈 때도 있다. 근데 홍 감독님은 그 예상치 못한 리듬을 마음에 들어하셨다.





관객: 극영화의 경우에는 다양한 시도가 보장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는 다를 것 같다.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현실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었나. 극영화와 차이가 있나?

 

박홍렬: <산나물 처녀>에서 산을 포착하는 장면이 여럿 있다. 동일한 산을 카메라만 돌려서 찍은 것이다. 그 뒤엔 바로 농장이 있다. 조금 내려가면 국도가 있다. <더 바디>에서도 똑같다. 다른 장소들로 인식되지만 실은 동일한 장소이다. 틀 안에서 보면 다른 것을 다르다고 여기지 못한다. 다큐멘터리도 똑같다. 다큐멘터리도 열려있는 상황을 포착해야만 한다. 작년에 <늑대부대를 찾아서>의 촬영을 위해 일본으로 갔었다. 1975년도에 반일운동 단체가 미쯔비시라는 기업을 상대로 무장테러를 행한 적이 있다. 테러의 주체는 자성하던 젊은 일본인들이었다. 그 사건을 이유로 작년까지도 독방에 갇혀 40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분이 자살한 동료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장면을 촬영했었다. 감옥에서 40년간 있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촬영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나는 카메라의 거리감과 같이 촬영 윤리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두 분이 만나러 가는 것을 찍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근데, 그 날은 나도 모르게 친구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주인공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냥 들어간 것이다. 일본말을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 주인공 분이 양해를 구한 후에는 울음을 터트리셨다. 당시에는 혼란스러웠다. 그런 변화를 찍는 행위가 폭력적으로 느껴질까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도 그 장면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순간에는 교감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변화의 순간을 어떻게 포착할지는 다큐에서도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

 

변성찬: 다큐의 경우가 더 긴장될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를 오늘 상영에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기회가 된다면 볼 수 있는 건가?

 

박홍렬: 후속편을 만들고 있다.(웃음) 완성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영화는 목표가 아니라 도구다. <빛과 계급>이 그를 잘 드러내 선택한 것인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라는 구분에 상관없이 영화가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지 여전히 고민을 한다. 그래서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2>를 찍고 있는 중이다.

 

변성찬: <늑대부대를 찾아서>는 아마 내년에 신작 개념으로 선보여질 것 같다. 다들 한 번 봐주셨으면 좋겠다. <늑대부대를 찾아서>는 통역 없이 촬영을 한 것인가?

 

박홍렬: 김미례 감독님이 6년 만에 만들기로 결심한 영화가 <늑대부대를 찾아서>. 그러면서 일본을 다니는 와중에 일본어를 띄엄띄엄 배우셨다. 그 후 함께 촬영하게 됐다. 반일운동을 하는 분들 대부분이 반성하기 위해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말을 배우기도 한다. 그 분들의 도움으로 촬영이 순탄히 이뤄졌다. 그 중 한 분이 석탄을 외부로 실어 나르는 야적장을 소개해주셨는데,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이 강제 징용을 당한 장소였다. 그 곳에서 여우를 만났다. 도시 한 가운데 바닷가였는데, 여우가 안개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선 사라졌다. 이처럼 믿음을 갖고 영화를 만들다 보면 신기한 경험을 맞이하게 된다.

 




변성찬: <더 바디>하고 <산나물 처녀>는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은 느낌이다. (웃음) 이 두 영화의 분위기가 상반됐다.

 

박홍렬: <더 바디>의 경우 심도를 많이 조절했다. <산나물 처녀>는 심도를 깊게 가져간 영화이고. 뭘 먼저 보여줄지 결정을 한 후에 촬영자로서 감독님 몰래 영화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심도 조절이다.(웃음) 그래도 다들 좋아하시더라. 모든 영화에 똑같은 렌즈와 심도를 가져가려 한다. 나의 색깔을 보이는 게 싫다. 그래서 각 영화마다 다르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더 바디>의 경우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가 한꺼번에 드러나면 스릴러의 분위기가 사라진다. <산나물 처녀>는 우화다. 그를 공간 안에서 관객이 즐겨보게 하는 건 어떨까 싶었다.

 

변성찬: 차기 작품에 대한 질문인데, <이것은 다큐멘터리다2>는 시간 날 때마다 제작하는 프로젝트인가?

 

박홍렬: 데드라인이 있다. 황다은 감독과 함께 만들고 있다. 610일까지 만들어야 한다. 제작 지원을 받고 싶기도 하고. (웃음) 영화 제목은 중의적이다. 후속편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이것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라는 의미이다. 20년 만난 친구가 있는데 선거 때만 만난다.(웃음) 길 건너편에 사는데, 이번 구의원 선거에 친구가 출마한다. 그 홍보 동영상의 개념으로 제작 중이다. 영화보단 홍보 동영상의 느낌이 강하다.

 

변성찬: 대중 영화도 만들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개봉 시기는 어떻게 되는가?

 

박홍렬 감독: 8월에 크랭크인일 것 같다. 6월에는 <꼭두>라는 국립 국악원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순 감독님과도 함께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재현하는 부분에만 도움을 줄 듯하다.

 

변성찬이 답에서도 느끼시겠지만, 박 감독의 활동 스펙트럼이 넓다. 거짓말이 아님을 빼곡한 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넘나드는 시도를 여전히 하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으셨다. 감사하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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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RMATION 


제     목: 홈 (home)

각본/감독: 김종우

출     연: 이효제, 허준석, 임태풍, 김하나 외

제     작: 아토ATO

공동 제작: 큐브이미지웍스

제공/배급: 리틀빅픽처스

장     르: 가족/성장 드라마

러닝타임: 102분

등     급: 전체관람가

개     봉: 2018년 5월 30일




 SYNOPSIS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가족!

열네 살 소년의 행복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동생 성호, 성호의 친아빠 원재, 그리고 원재의 딸 지영까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식구가 생긴 준호는 매일매일 행복 뿜뿜이다.

준호를 아들처럼 챙기는 원재와 친형제처럼 따르는 동생들 덕이다.

“우리 이렇게 계속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준호의 말에

당연하다는 듯이 “같이 있다 아이가”라며 웃는 동생들.

이제 막 새 가족 속으로 골인한 준호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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