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운동하는 세계를 응시하는 일 인디포럼 월례비행 <박홍렬 촬영감독 단편선>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4월 25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박홍렬 촬영감독
진행 변성찬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연 님의 글입니다.
모래사장 위에 더미가 놓여 있다. 하늘과 바다, 모래사장, 더미의 모습. 카메라는 동일한 장소를 분해해 요소 하나하나의 제각기 모습을 훑는다. 이처럼 영화는 영화만이 취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현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시선의 중심엔 카메라가 있다. 우리의 지각 여부와는 관계없이 세계는 움직임을 이어 나간다. 운동하는 세계 속에서 유의미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전부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이다. 무궁무진한 운동의 연속에서 어떤 상황과 풍경을 마주할지 택하는 카메라인 만큼 변화에 민감해야만 한다. 미세한 손짓으로도 빛의 색채는 달라지곤 한다. 달라지는 삽시간을 정확히 응시해야만 관객도 그를 그대로 맞이할 수 있다. 변화하는 세계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기, 촬영이라는 행위란 그런 것이다.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지긋이 카메라를 주시해 온 사람이 있다. 박홍렬 촬영 감독이 인디스페이스에 함께해 본인의 영화 세계를 나누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변성찬 평론가(이하 변성찬): 상영이 제작 순서로 이뤄지진 않았다. 2013년에 선보인 <더 바디>가 처음에, 그 다음으로 2017년 발표된 최근작 <산나물 처녀>가, 그리고 2004년의 <빛과 계급>이 마지막으로 상영됐다. 세 영화의 촬영 감독. 박홍렬 감독님이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셨다.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출연해 창문을 열심히 닦기도 했다.(웃음) <하하하> 이후로 홍상수 감독님과 촬영을 꾸준히 함께 했다.
박홍렬 감독(이하 박홍렬): <하하하> 이전까지는 김형구 감독님이 촬영을 맡으셨다. 나는 필름에서 디지털로 촬영 방식이 변화하던 시기에 부탁을 받아 홍상수 감독님과 함께하게 됐다. 단편까지 포함해 11편을 같이 찍었다.
변성찬: 마지막에 상영된 <빛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실험영화이자 독립영화이다. <더 바디>는 미스테리이자 스릴러라는 컨셉을 잡은 대중영화에 가깝다. <산나물 처녀>는 선녀와 나무꾼을 귀엽게 비튼 우화이고. 각 영화의 톤 앤 매너가 굉장히 다채롭다. 박홍렬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왼쪽과 오른쪽 양쪽 끝을 아우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촬영감독뿐만 아니라 시네아스트로서 직접 연출도 겸한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는 다큐멘터리까지 연출했다. 활동의 폭이 그만큼 크고 변화무쌍하다. <빛과 계급>은 2000년대 초의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급진적인 실험성을 보여준다. 마치 다른 시대를 보는 것마냥 느껴졌다. 근데 감독님은 앞서 말한 큰 활동 폭 때문인지 필모그라피를 카운트하기가 힘들다.
박홍렬: 카운트는 따로 못했다. 포털사이트에 이름이 올라간 영화는 50편이다. 현대미술 작품도 했었는데, 다 포함해서 추정한다면 200~300편까지도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98년부터 20년째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독립영화가 활발하던 시기에 촬영을 시작했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그를 감독님들과 함께 고민할 수 있어 운이 좋았다. <빛과 계급>은 16mm로 촬영한 작품이다. 영화창작집단 곡사가 가장 활발히 활동할 때 찍은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작품에 녹일 수 있을까 논의를 많이 했다. 가령, 자본론 세미나를 두 달 동안 했었다. (웃음)
변성찬: <빛과 계급>에 대한 물음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빛과 계급>은 16mm 필름으로 촬영한 후 디지털라이팅을 한 작품이다.
박홍렬: 필름으로 촬영은 했지만 상영은 HD로 전환될 시기였다. 다섯번째 챕터에서 속도가 빠르게 변한다. 근데 이걸 필름으로 찍으려면 비용이 꽤 든다. 김곡 감독님의 지향점은 영화 안에서의 간격을 표현하는 것이다. <빛과 계급>은 이런 작업을 위해 필름과 디지털이 적절히 잘 만난 영화이다. 김곡 감독님은 필름의 물성, 질감의 힘을 알고 있는 감독이다. 최근 개봉한 <곤지암>에도 김곡 감독님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빛을 중심으로 다뤘지만 빛보다 중요한 게 질감이었다. 디지털라이팅을 할 때 그 간격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핵심이었다.
변성찬: <빛과 계급>은 촬영 감독과 연출 감독의 경계가 모호할 수도 있는 작업이다. <빛과 계급> 속에는 필름으로는 불가능한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장면 속 움직임이 카메라의 움직임인지 프레임의 움직임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런 장면들은 어떻게 작업했는가.
박홍렬: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뤄졌다. 편집의 부분에서만 디지털에 의존했다. 필름이라는 매체를 통해 빛이라는 물리적인 성질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요지였다. 빛이 자본이라는 세뇌를 감독이 두 달 동안 했다. (웃음) “빛이 자본이다”라고 생각을 하면, 빛이 사람을 언제 비추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또 영화에서는 거울과 유리상을 활용한다. 우리는 평면을 보고 있지만 그 평면 안에는 깊이가 있다. 거울과 유리로 인물과 인물이, 인물과 카메라가 마주보고 있다. 이 모든 장면은 CG가 사용되지 않았다. 모든 동선엔 의도가 있다. 영화는 고정되지 않았다. 나는 영화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고민을 많이 한다. 변화는 새로운 것을 만나게 해준다. 그 도구로써 거울과 유리가 활용됐다. 카메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타이밍을 맞춰가며 거울과 유리, 인물의 움직임을 조정했다.
변성찬: 감독과 세미나 외에 공유한 점은 없나. 그리고 챕터가 다섯 개로 나뉘어 있음이 영화 후반에 제시된다. 나머지 장면은 챕터의 구분도 모호하다. 엔딩 크레딧에 가서야 각 챕터의 제목이 등장한다. 이 모든 게 의도된 편집인가.
박홍렬: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건 영화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김곡 감독님만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고. 그 의도를 제작자가 말할 필요는 없다. 무책임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빛이 자본일 필요도 없다. 마지막 자막에 주어지는 내용이 이미지와 결부되었을 때가 중요하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빛과 계급>이며 ‘공산주의’의 미래인가, 갑자기 생각하게 된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게 영화의 의도이다.
변성찬: 마지막 장면의 구도는 인물을 횡축이 아니라 종축으로 배치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초점 이동이 미세하게 이뤄진다. <빛과 계급>뿐만 아니라 <산나물 처녀>와 <더 바디>에서도 반복해서 드러난다. 우연인가, 아니면 감독이 선호하는 방식인가?
박홍렬: 영화에 대한 취향은 없다. <빛과 계급>의 초점 이동은 감독님의 완벽한 의도다. 여성의 몸이 흔들리고, 거울이 흔들리고 이동하는 것들 말이다. 밖에서 사람들이 직접 거울을 흔들었는데, 연습이 필요했었다. <빛과 계급>의 포커스 이동도 같은 개념으로 작용했다. 표현하는 단계에서 많이 논의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곡사의 경우는 영화를 위해 감독들이 공부를 많이 한다. 그를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이를 익숙하지 않은 서사의 틀로 다루길 원한다.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서사의 틀이 관객으로 하여금 주체적으로 응시하길 어렵게 만든다. 그 틀에서 벗어나기란 어렵다. 서사의 틀에서 벗어날 때,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때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된다. 상업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변화는 카메라일 수도, 인물일 수도 있다. 촬영은 내 역할이다. 그리고 한 쇼트 안에 서 몽타주를 다룰 때 어떤 변화를 줄지 생각한다. 나는 심도를 가장 깊이 조절한다. 공간의 깊이를 관객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 영화를 촬영할 때 나는 서사의 틀을 따라가면서도 그를 어떻게 위반할 수 있나를 고려한다. 어떻게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부단히 움직이면서 새로운 현상을 만나면,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프레임이 깨진다. 우리는 하늘을 볼 때 하늘다운 것을 연관 지어 의미를 유추해낸다. 그러나 새로운 것들이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것, 그것이 움직임이다. 배우의 움직임은 촬영 감독이 컨트롤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포커스 같은 촬영 방식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오늘 상영한 세 영화는 그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서사에 종속되어 있으면 새로운 것을 만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론가가 언급한 촬영 방식은 취향이라고 이야기할 순 없다.
변성찬: 평균적인 쇼트보다 롱테이크로 흐름을 길게 가져가느냐, 혹은 포커스를 종축으로 이동하며 두 개의 쇼트를 담을 것인가. 이는 배우 혹은 감독에게도 큰 문제이다. 촬영 감독의 지위가 어찌 보면 최상위에 있지는 않다. (웃음) 감독과 어떻게 의견을 조율하는가?
박홍렬: 영화는 정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관객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상업영화도 똑같다. 그래서 영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한다. 시나리오 안에서 영화적이며 만드는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려 한다. 감독들은 이에 많이 공감하는 편이다. 만드는 사람, 즉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 중요하다. 만드는 이가 정성을 들여 새로운 것들을 만나면 실제 영화도 새로워진다. 필연을 기반으로 한 우연이다. 준비를 많이 할수록 우연을 만날 가능성도 커진다.
변성찬: 가장 상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더 바디>의 박진성, 박진석 감독이 인터뷰에서 박홍렬 감독을 “유순하고 고집이 세지만, 그만큼 부지런하다”고 표현했다.
박홍렬: 내가 연출감독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독보다도 영화를 더 많이 본다. 어떤 감독을 만날지 모를테니까. <간신>이라는 사극을 촬영하기 위해 2005년에서 2013년 사이의 모든 한국 사극을 숏 단위로 보았다. 중국에서 SF 영화를 촬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2008년도부터 2015년도에 사이의 SF 영화를 100편은 본 듯하다. 그러고 어떤 SF 영화를 만들 것일지에 대해 4시간 동안 발표를 했다. (웃음) 감각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려 노력한다. 가령 다른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해 양자물리학 책을 3권 읽었다. 물론 영화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 (웃음) 이러니 감독들이 내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객: 오늘 상영한 영화 외에서 질문을 드리고 싶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대개 즉흥적인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들었다. 촬영 감독께서는 보편적인 방식과 홍상수 감독만의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어떻게 준비하는지, 두 가지 방식 간에 차이가 있다면 어느 점이 다른지를 여쭤보고 싶다.
박홍렬: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홍상수 감독,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서사로만 보면 다른 영화가 맞다. 그러나 형식적, 매체적 특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산나물 처녀>의 콘티가 다르다 생각하지 않는다. 상업영화는 자본의 안, 그러니까 계량적 틀 속에서 편집을 거쳐 영화가 비슷해질지라도 현장에서 만들어진 소스는 모두 다르다. 촬영 감독이 할 몫은 어느 영화든 동일하다. 어떤 변화를 만날지 모르니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첫 테이크와 두번째 테이크 간 빛의 결이 다르다. 콘티가 있다면 미리 준비하지만 미리 준비해도 현장에선 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달라진 상황을 맞이하는 건 어느 촬영장이나 동일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보통 테스트 촬영도 없고, 성능이 좋지 않은 카메라를 사용한다. 밝기를 다루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니 카메라에 대한 기술적인 측면을 미리 숙지해야 한다. 결국 겉으로 보이는 건 다르지만 그 안의 맥락은 같게 표현하려 한다.
변성찬: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포커스가 아니라 줌을 사용하는데. 홍 감독의 고집과 박 감독의 고집이 만났을 때 어떨지 궁금하다. (웃음)
박홍렬: 나는 내가 고집스럽다 생각하지 않는다. (웃음)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촬영장에서 나는 감독이 아니라 배우라고 생각한다. 홍 감독의 영화는 프레임이 이미 정해져있다. 촬영자의 몫은 그의 리듬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하하>부터 <밤의 해변에서 혼자>까지 줌이 다 다르다. 그 차이를 홍 감독님이 알고 찍는 게 아니다. 감독님은 리듬 안에서 줌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신다. 줌은 배우의 연기를 따라간다. 줌이 들어갈 때 내 어깨를 치시는데(웃음) 가끔 테이크가 길게 이어질 땐 다른 생각을 하다가 줌이 늦게 들어갈 때도 있다. 근데 홍 감독님은 그 예상치 못한 리듬을 마음에 들어하셨다.
관객: 극영화의 경우에는 다양한 시도가 보장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는 다를 것 같다.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현실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었나. 극영화와 차이가 있나?
박홍렬: <산나물 처녀>에서 산을 포착하는 장면이 여럿 있다. 동일한 산을 카메라만 돌려서 찍은 것이다. 그 뒤엔 바로 농장이 있다. 조금 내려가면 국도가 있다. <더 바디>에서도 똑같다. 다른 장소들로 인식되지만 실은 동일한 장소이다. 틀 안에서 보면 다른 것을 다르다고 여기지 못한다. 다큐멘터리도 똑같다. 다큐멘터리도 열려있는 상황을 포착해야만 한다. 작년에 <늑대부대를 찾아서>의 촬영을 위해 일본으로 갔었다. 1975년도에 반일운동 단체가 미쯔비시라는 기업을 상대로 무장테러를 행한 적이 있다. 테러의 주체는 자성하던 젊은 일본인들이었다. 그 사건을 이유로 작년까지도 독방에 갇혀 40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분이 자살한 동료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장면을 촬영했었다. 감옥에서 40년간 있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촬영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나는 카메라의 거리감과 같이 촬영 윤리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두 분이 만나러 가는 것을 찍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근데, 그 날은 나도 모르게 친구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주인공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냥 들어간 것이다. 일본말을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 주인공 분이 양해를 구한 후에는 울음을 터트리셨다. 당시에는 혼란스러웠다. 그런 변화를 찍는 행위가 폭력적으로 느껴질까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도 그 장면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순간에는 교감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변화의 순간을 어떻게 포착할지는 다큐에서도 똑같이 고민하고 있다.
변성찬: 다큐의 경우가 더 긴장될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를 오늘 상영에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기회가 된다면 볼 수 있는 건가?
박홍렬: 후속편을 만들고 있다.(웃음) 완성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영화는 목표가 아니라 도구다. <빛과 계급>이 그를 잘 드러내 선택한 것인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라는 구분에 상관없이 영화가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지 여전히 고민을 한다. 그래서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2>를 찍고 있는 중이다.
변성찬: <늑대부대를 찾아서>는 아마 내년에 신작 개념으로 선보여질 것 같다. 다들 한 번 봐주셨으면 좋겠다. <늑대부대를 찾아서>는 통역 없이 촬영을 한 것인가?
박홍렬: 김미례 감독님이 6년 만에 만들기로 결심한 영화가 <늑대부대를 찾아서>다. 그러면서 일본을 다니는 와중에 일본어를 띄엄띄엄 배우셨다. 그 후 함께 촬영하게 됐다. 반일운동을 하는 분들 대부분이 반성하기 위해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말을 배우기도 한다. 그 분들의 도움으로 촬영이 순탄히 이뤄졌다. 그 중 한 분이 석탄을 외부로 실어 나르는 야적장을 소개해주셨는데,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인들이 강제 징용을 당한 장소였다. 그 곳에서 여우를 만났다. 도시 한 가운데 바닷가였는데, 여우가 안개 속에서 우리를 바라보고선 사라졌다. 이처럼 믿음을 갖고 영화를 만들다 보면 신기한 경험을 맞이하게 된다.
변성찬: <더 바디>하고 <산나물 처녀>는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은 느낌이다. (웃음) 이 두 영화의 분위기가 상반됐다.
박홍렬: <더 바디>의 경우 심도를 많이 조절했다. <산나물 처녀>는 심도를 깊게 가져간 영화이고. 뭘 먼저 보여줄지 결정을 한 후에 촬영자로서 감독님 몰래 영화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심도 조절이다.(웃음) 그래도 다들 좋아하시더라. 모든 영화에 똑같은 렌즈와 심도를 가져가려 한다. 나의 색깔을 보이는 게 싫다. 그래서 각 영화마다 다르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더 바디>의 경우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가 한꺼번에 드러나면 스릴러의 분위기가 사라진다. <산나물 처녀>는 우화다. 그를 공간 안에서 관객이 즐겨보게 하는 건 어떨까 싶었다.
변성찬: 차기 작품에 대한 질문인데, <이것은 다큐멘터리다2>는 시간 날 때마다 제작하는 프로젝트인가?
박홍렬: 데드라인이 있다. 황다은 감독과 함께 만들고 있다. 6월 10일까지 만들어야 한다. 제작 지원을 받고 싶기도 하고. (웃음) 영화 제목은 중의적이다. 후속편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이것‘도’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라는 의미이다. 20년 만난 친구가 있는데 선거 때만 만난다.(웃음) 길 건너편에 사는데, 이번 구의원 선거에 친구가 출마한다. 그 홍보 동영상의 개념으로 제작 중이다. 영화보단 홍보 동영상의 느낌이 강하다.
변성찬: 대중 영화도 만들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개봉 시기는 어떻게 되는가?
박홍렬 감독: 8월에 크랭크인일 것 같다. 6월에는 <꼭두>라는 국립 국악원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순 감독님과도 함께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재현하는 부분에만 도움을 줄 듯하다.
변성찬: 이 답에서도 느끼시겠지만, 박 감독의 활동 스펙트럼이 넓다. 거짓말이 아님을 빼곡한 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넘나드는 시도를 여전히 하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으셨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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