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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인디돌잔치 〈그 겨울, 나는〉인디토크 기록: 두 번째 클라이맥스

by indiespace_가람 2023. 12. 9.

두 번째 클라이맥스

〈그 겨울, 나는〉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년 11월 28일(화) 오후 7시 40분 상영 후

참석 오성호 감독, 권다함, 권소현 배우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진하 님의 글입니다.

 

 

겨울은 클라이맥스가 되기 좋은 계절이다. 가장 절박하게 움직였던 때를 지나, 따뜻한 방에 몸을 뉜 후에야 터져 나오는 감정이 있다. 〈그 겨울, 나는〉이 착실히 쌓아 올린 외로움과 서러움은 치열한 살아남기 끝에서 터져버린다. 정신없이 지나갔을 촬영과 개봉 후 1년, 조용히 숙성된 마음은 두 번째 클라이맥스를 맞이한다. 조금 더 진해진 마음과 기억을 안고 이 겨울 극장에서, 우리는.

 

 

 

 

 

진명현 대표(이하 진명현): 네. 인디스페이스가 옆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파란 공간에서 빨간 공간으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극장 오시면서 느끼셨겠지만 오늘 정말 빼도 박도 못한 겨울 날씨잖아요. 눈도 살짝 왔었고, 영화 보시는 내내 겨울을 만끽하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먼저 오성호 감독님부터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성호 감독(이하 오성호): 반갑습니다. 오성호입니다. 작년 11월 30일에 개봉하고 1년 만에 다시 관객분들을 만나게 됐는데요. 너무 감사합니다.

 

진명현: 이번에 인디돌잔치 투표가 엄청 치열했다고 해요. 작년 11월에 워낙 화제작들이 많았어서. 1등을 차지하신 것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여기 다 투표해 주신 분들이세요. 저는 어제 영화를 다시 보고 왔는데 볼 때마다 저를 슬프게 하고 술을 먹게 하는 영화예요. 그럼 경학을 연기한 그 남자, 권다함 배우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다함 배우(이하 권다함) :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학을 연기한 권다함입니다.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겨울마다 한 번씩 만나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아마 올해가 마지막일텐데 오늘 최대한 많이 즐기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진명현: 왜 올해가 마지막입니까? 5주년 상영, 10주년 상영도 할 텐데. 그런 말씀 거둬주세요. (웃음)

 

권다함: 거두겠습니다. 네.

 

진명현: 그리고 우리 권소현 배우님도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소현 배우(이하 권소현): 안녕하세요. 저는 혜진을 연기한 권소현이라고 합니다. 겨울마다 이 영화를 다시 추억할 수 있어서 너무 좋고요. 덕분에 관객분들하고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까지 생겨서 정말 감사드리고 5주년 때 또 뵀으면 좋겠네요.

 

진명현: 네. 세 분에게 다시 한 번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걸 여쭤볼 때마다 늘 계시긴 하더라고요. 오늘 〈그 겨울, 나는〉 처음 보신 분 계신가요? 그렇죠. 재상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 작품을 세 번 이상 봤다? 세 번 이상 보신 분들도 꽤 많습니다. 저는 재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보고 그 이후부터 주변 사람들한테 좋아한다고 누누이 얘기를 해 왔었어요. 볼 때마다 조금도 덜 좋아지지가 않더라고요. 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저랑 비슷한 마음으로 생일을 축하하러 와주신 것 같아요. 정말 뜨거운 영화여서, 이렇게 차가운 겨울에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좀 기쁘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영화를 만들어주신 세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독립 영화를 챙겨보시는 분들은 이렇게 보석같은 영화를 발견할 때마다 눈이 아플 정도로 기쁘실 거예요. 특히 〈그 겨울, 나는〉은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너무 모든 것의 순도가 높았었어요. 가난의 순도, 사랑의 순도, 아픔의 순도까지 높아서 베일 것 같은 심정들이 드는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그만큼 이 영화를 만드신 분들이 정말 사력을 다해서 만드셨겠다고 오랜만에 다시 생각했습니다. 오늘 스크린 통해서 다시 마주하신 분들도 그런 순간을 많이 목격하셨을 것 같고요. 일단 세 분 다 작년 개봉 때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지셔가지고 마음이 너무 좋아요. 우선 감독님한테 여쭤보고 싶은 게 사랑을 많이 받기도 하셨고 첫 장편 데뷔작인 만큼 개봉일이 꽤 큰 의미를 갖잖아요. 감독님께서는 지난 1년간 〈그 겨울, 나는〉이 어떤 힘이 되었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영화 〈그 겨울, 나는〉 스틸컷

 

 

 

오성호 감독(이하 오성호): 일단 〈그 겨울, 나는〉을 통해서 좋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만났고 아직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거든요. 좋은 사람들과 알고 지낸다는 것 자체가 되게 좋아요. 풍족하다고 해야 하나 든든하고요. 첫 독립 장편을 찍으면서 저라는 연출자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고 단편 같은 경우에는 GV를 여러 명이서 하는데 장편은 혼자 하잖아요. 모든 게 첫 경험인 거예요. 개봉이랑 시사회 같은 것들을 다 처음 해보니까. 많은 걸 경험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진명현: 좋은 자양분이 됐네요. 배우님 두 분 같은 경우에는 오래 연기를 해오셨고 신인이 아닌데도 이 작품을 통해서 재발견했다는 관객이 많았었어요. 처음에 영화를 봤을 때는 제가 가난한 남자였던 때를 떠올리면서 경학이한테 이입을 엄청 했었는데요. 어제 다시 봤을 때는 권소현 배우님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얼마나 섬세한 연기를 해서 경학이라는 캐릭터를 빛나게 해주었는지. 둘의 지분이 정확히 반반이구나, 두 사람의 영화구나 이런 생각을 다시 했어요. 이후로도 끊임없이 연기를 해오셨고 앞으로도 보여줄 작품도 많이 있으실텐데요. 이 작품을 통해서 관객들뿐 아니라 평단으로부터도 많은 칭찬을 받았던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것들이 연기 생활이라는 지난한 시간들에 좀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다함 배우님 어떠세요? 이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도 수상하셨었잖아요.

 

권다함: 상보다도 다른 드라마나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게 있어요. 감독님한테 며칠 전에 얘기했었는데, 〈그 겨울, 나는〉의 현장이 너무 그립더라고요. 왜냐하면 감독님, 저, 소현이, 다른 배우분들이나 스태프분들이 진짜 영화를 잘 찍으려고 발악을 했거든요. 영화가 잘 됐으면 좋겠다 이런 것보다도요. 엄청 두려워하면서. 이렇게 온도가 강렬하고 뜨거운 작품을 만나는 게 인생에 몇 번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해가 지날수록 많이 들어요. 진짜 다행인 것 같아요. 한 번이라도 이 온도를 겪어봤으니까, 나의 기준점을 높여준 소중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진명현: 권소현 배우님은 어떠세요?

 

권소현: 저도 독립 장편 영화를 〈그 겨울, 나는〉으로 처음 해봤는데요. 촬영할 때는 진짜 힘들게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찍었던 영화였어요. 그때는 솔직히 힘들었던 기억도 있는데요. 이후로 독립 장편을 세 편을 더 찍었는데, 그때마다 〈그 겨울, 나는〉이 저의 기준이 되어 있더라고요. 연기하는 법이나 사람을 대하는 법, 배우들과의 소통 같은 여러 가지에서 그때의 추억과 힘듦과 아픔과 시간이 나한테 좋은 자양분이 됐구나. 요즘 연기할 때 '성호 감독님이 제 연기를 보면 어떨까'를 생각하며 연기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그만큼 저한테는 어떤 기준점이 된 영화인 것 같아요.

 

진명현: 두 배우님의 현장에 감독님의 혼령이 따라붙어서 지켜보고 있네요. (웃음) 근데 아마 감독님도 앞으로 작업할 때 두 배우님이 그렇지 않을까요? 감독님도 현장에서 두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감동받은 순간들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혹시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으세요?

 

오성호: 일단은 두 배우만큼 저의 말을 경청해 주고 같이 고민해 주고 시간을 보내는 배우는 없지 않을까 싶고요. 어느 정도였냐면은 촬영할 때 매일 콜타임보다 일찍 만나서 그날 찍을 분량에 대해서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거든요. 보통 촬영할 때 콜타임보다 빨리 모이기가 쉽지가 않아요. 쓸 수 있는 시간이 짧아서 휴식할 시간도 부족하고 잠도 더 자야 되는데. 거의 매 회차마다 빨리 나와서 같이 고민해 주고 촬영 끝나서도 얘기 나누고, 거의 1~2시간씩 통화하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진명현: 콜타임 덕에 캐릭터의 피폐함이 더 잘 부각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감독님의 치밀한 복선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사실 처음에 영화 보기 전에는 조금은 흐린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설명이었어요. 왜냐하면 독립 영화고, 힘든 상황이고, 사랑을 하는데 또 찢어지게 가난한 연인이야. 사실 설명만 봤을 때는 정말 클리셰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근데 아닐 거라는 기대가 들었던 게 오성호 감독님이라는 이름이었었어요. 왜냐하면 감독님의 〈눈물〉이라는 단편을 보면서 짧은 시간 안에 큰 충격을 받았었거든요. 이 사람은 정말 사랑을 많이 했거나, 사랑을 한 번도 안 했는데 하루 종일 사랑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로. 진짜 절절 끓는 멜로였어요. 독립, 상업 떠나서 이렇게까지 사랑에 대해 순도 높은 이야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장편이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 감독님의 장편이라면 다르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영화 시작하고부터는 배우님들이 그 걱정들을 지워주기 시작했어요. 결국에는 우리가 클리셰라고 생각했던 걸 정면으로 부딪혀서 돌파해내면 그 벽이 깨지는구나. 이게 수많은 좋은 영화 중에서도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이런 얘기하는 게 좀 쑥스러울 수도 있겠지만은 또 생일잔치니까, 감독님은 본인 영화의 어떤 점을 칭찬해 주고 싶으신가요?

 

오성호: 대표님 말씀이 되게 공감이 가는 게 저라는 사람이 좀 상투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편인 것 같아요. 단편도 그렇고 장편도 그렇고,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나서 이 상투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되나. 물론 앞으로는 새로운 이야기도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이게 내 최선이니까. 그런 판단을 하고서 이걸 극복하려면 뻔한 것 안에서 나름대로 깊이 파고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수 있는 방법은 배우의 연기, 캐릭터 디테일이지 않을까. 보신 분들이 어떻게 평가를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 나름은 그 부분에 집중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진명현: 두 배우님은 어떤 거를 좀 자랑하고 싶으세요? 아직도 세상에는 이 영화를 못 본 분들이 많을 거잖아요. 만약 이 영화를 자랑한다면 이것만은 꼭 봐줬으면 하고 생각하는 지점 있으신가요?

 

권소현: 저는 우리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 하이퍼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랑을 해봤거나, 짝사랑이든 어떤 관계를 맺었다면 분명 보시는 분들한테 무언가 남길 수 있지 않을까. 볼 때마다 다른 것들이 많이 느껴지는 지점들.

 

권다함: 처음에 영화를 꿈꿨을 때 2000년대 초중반 영화들을 보면서였거든요. 뜨거운 영화들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상투적이고 투박할 수도 있는데, 진심으로 때려버리는 영화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 배우님들도 되게 많았고 그런 연기를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요즘 관객으로서 다른 작품들을 보거나 할 때 느끼는 게, 그렇게 뜨거운 걸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스타일리시하거나 자극적인 작품들이 사랑받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중에 저희 영화를 보시면 예전에 뜨거웠던 영화들의 향수를 조금은 맡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진명현: 최고급 뚝배기 같은 영화.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서 결코 식지 않는 뜨거움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 겨울, 나는〉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그 겨울, I am'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어제 볼 때는 이게 겨울을 나는 이야기구나. 겨울 나기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었었어요.

 

오성호: 오성호 : 일단은.. I am이 맞고요. 영어 제목 때문에 그렇게 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목은 사실 좀 무심했어요. 반대가 좀 있었는데 좀 체감했던 게 제목을 헷갈려 하는 분이 아직도 많아더라고요. '그 겨울에 나는' 이러면서. 잘못 지었나 싶기도 한데 일단 무심히 시나리오를 쓰면서 툭 나왔던 제목입니다. 더 좋은 게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

 

진명현: 중의적인 게 좋더라고요. 그 '나는'이 경학과 혜진 시점에서 보면 조금씩 다르든요. 또 계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시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아요. 막혀버린 것 같은 관문을 통과하는 사람들한테는 모든 계절이 겨울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단순히 물리적인 겨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구나. 감독님도 이 영화 속의 인물들도 어떤 시기를 정말 힘겹게 통과하고 지나가는 이야기구나. 그런 부분 때문에 더 마음이 아린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관객들의 이야기가 있을까요?

 

오성호: 연출자로서는 경학이, 혜진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결국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진명현: 편집하는 과정에서 우신 적 있으세요?

 

오성호: 한 번도 운 적은 없고 오히려 촬영 때는 웃으면서 했던 것 같아요.

 

진명현: 무서운데요. 이런 영화 찍으면서 그 추운 겨울에 웃었다니. 근데 아마 감독 입장에서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흐뭇해서 막 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두 배우님은 혹시 본인 영화 보면서 운 적 있으세요?

 

권소현: 저는 〈그 겨울, 나는〉 보면서 울었어요. 볼 때마다 좀 다르게 터지거든요. 어쩔 때는 저의 연기에 그때 상황이 생각나서 슬플 때도 있고. 오랜만에 보니까 다른 인물들한테 눈물이 터지기도 하는 거예요. 원래 경학이가 우는 씬에 저는 눈물이 안 났었거든요. 혜진이로 생각해서 좀 더 그랬었나 봐요. 근데 오랜만에 봤을 때는 터지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가 주는 다른 매력들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진명현:  혜진한테서 살짝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나의 경학이 아니라 그냥 경학이로. 제대로 이별을 했네요.

 

권소현: 그런 것 같아요.

 

권다함: 저는 감독님이랑 비슷하게 좀 많이 웃긴 했어요. 마지막에 우는 컷을 찍을 때 울음이 서서히 그치는 것도 잡혔었거든요. 그러니까 한참 울다가 뻘쭘해지는 순간 있잖아요. 다 울어가지고. 이 사람을 보면서 그냥 울음이 멈추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나가지고. 영화에는 없었지만요. 그리고 너무 치열했어서 그런지, 볼 때마다 슬프다기보다 너무 다행이다. 찍어서 다행이고 영화제에서 상영해서, 개봉해서 다행이고. 우리가 정말로 겨울을 통과해서 잘 만들었고 이게 참 오래 기억에 남겠구나. 저는 아직도 객관적으로는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진명현: 감독님이랑 다함 배우가 좀 T같죠. 다함 배우님 T이시죠?

 

권다함: ENTP입니다.

 

진명현: 감상이 너무 T같은 감상이에요. 둘 다 뭔지 알겠네요. 저는 극심한 F라서 노트만 만져도 울어요. 경학이가 노트 있는 데까지만 가도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알잖아요. 혼자 생각하다가 경학이가 울기도 전에 먼저 울어버리게 되는. 노트 앞에 서 있는 경학이에게서 많은 걸 봤거든요. 이 사람의 마음을 알겠다 싶은 게 노트를 바로 짚지 못하고 멈춰 있는 순간이 마음을 완전히 건드려서 울게 돼요.또 혜진이가 코트만 입어도 눈물이 나려고 그러니까. 코트를 입는다는 게 경학이의 솜털 나온 패딩이랑 대비가 되면서. 되게 아무렇지 않은 장치들이거든요. 영화 속의 의상이나 식탁 위에 음식들도 진짜 하이퍼리얼리즘이에요. 영화 속이라고 생각이 안 드는 부분들이 많아요. 정말 저렇게 밥을 먹고 저렇게 옷을 입고 저렇게 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또 처음에 대놓고 베드신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너무 솔직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몇 년간 독립 영화들에서 연인의 사랑을 묘사할 때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 표현하는 영화를 잘 못 본 것 같은데요. 이 영화에서는 가감없이 이 둘이 여러 면으로 얽혀 있어서 떨어지기 힘들다는 걸 보여주는 게 강렬하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이 그래도 좀 염려가 되는 장면이긴 하잖아요. 시나리오 쓸 때도 좀 고민하셨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오성호: 행복했던 때가 없이 시작하자마자 점점 추락하잖아요. 두 사람이 사랑하는 연인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베드신을 좀 빨리 보여드렸습니다.

 

진명현: 처음부터 있었던 거네요. 배우님들은 경학이랑 혜진이 둘이 어떻게 만났을까 이런 얘기 서로 나눈 적은 없으세요?

 

권다함: 저희는 같이 공무원이라는 꿈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같이 살 수 있었고 맞는 부분도 많았다고 생각하면서 촬영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저희 개인사 얘기를 서로 나누면서 혜진이나 경학 같은 면들을 최대한 캐치하려고 했었어요. 제가 느끼기에 소현 배우는 저보다 어른스러운 면이 강하더라고요. 그렇게 상상했던 게 경학이한테는 엄마의 부재가 되게 클 것 같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엄마 같은 여자친구를 바라는 남자친구들을 되게 싫어한다고. 얘는 그런 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또 혜진이는 만나면 안 되는 남자애를 이렇게 챙겨주는 그런 캐릭터. 아마 그런 면들 때문에 시작하지 않았을까.

 

권소현: 맞아요. 저도 딱 노래방 신에서 경학이 웃는 모습이 가장 경학이다운 모습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런 모습 때문에 경학이를 사랑했겠구나. 어떻게 보면 혜진이는 그렇게 집안이 어렵거나 돈이 궁핍하거나 하진 않잖아요. 경학이한테 끌렸던 건 순수하고 나를 좋아해줬고 그렇게 아이 같았던 모습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노래방 씬이 너무 슬펐어요.

 

 

 

 

 

진명현: 농담으로 만나지 말라고 했지만 사실 둘이 너무 잘 어울리잖아요. 경학이랑 혜진이 자체도 잘 어울리고 두 배우님도 너무 잘 어울려요. 그냥 만날 수밖에 없는 커플이었구나. 만날 수밖에 없는 배우들의 합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의 연기가 무르익었던 것 같아요. 어떤 씬에서는 두 배우 사이에 틈이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완전히 밀착돼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감독님도 현장에서 '이거다, 신난다' 이런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두 배우님이 나오는 신이 90% 이상이더라고요. 두 분 보면서 언제가 가장 뿌듯하셨는지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오성호: 일단 두 배우가 저와 같이 고민을 함께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주고 같은 편이라는 기분이 들 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니터를 보면서 연기를 보면서도 너무 행복했어요. 제가 어떤 디렉션을 내리더라도 하나하나가 다 먹혀 들어가니까. 같이 얘기한 것들을 점점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그런 환경이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두 배우를 너무 잘 만난 것 같습니다.

 

진명현: 혹시 마지막 촬영이 어떤 씬이었어요?

 

오성호: 경학이랑 혜진이 싸우고 혜진이가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경학이를 찾아다니는 그 장면이 맨 마지막 촬영이었어요.

 

진명현: 컷 하고 나서 공기는 어땠나요?

 

오성호: 대사 없이 내려오는 장면이었는데 테이크를 되게 많이 갔어요. 포커스가 내려올 때마다 맞았어야 되는데 그게 안 맞았어서. 그래서 사실 OK 하고 조금은 뜨뜨미지근한 느낌이었어요. 그날 소현 배우가 마지막이니까 OK 좀 시원하게 한번 해달라고.

 

권소현: 맞아요. 한 번만 OK를 시원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진명현: 평소에 오케이 어떻게 하시길래.

 

권다함: OK 소리가 안 들리는데 옆에 와 있어요. 연기가 아직 안 끝났는데 모니터에서 뛰쳐나와서 옆에 있을 때도 있고. 뭔가 작은 소리로도 들어본 기억이 없는 느낌.

 

진명현: 옆에 와서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그렇다면 첫 촬영 장면은 어떤 장면이었나요?

 

권다함: 삭제된 장면인데 계단에서 싸우면서 내려오는 거였어요. 연인 간에 투닥거리는 싸움이 원래 영화의 시작이었어요.

 

오성호: 싸우는 게 너무 많아가지고.

 

진명현: 삭제된 게 낫네요. 그런 거 있잖아요. 감독님 머릿속에는 이 연인들을 훨씬 전부터 그려놓으셨을 거고, 이들이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하신 다음에 시작점을 여기로 결정하신 거잖아요. 머릿속에 있었던 것 중에 이들이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어요?

 

오성호: 혜진이가 영화에서는 취업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전에는 경학이랑 같이 노량진에서 경환이는 경찰 시험 9급, 혜진이는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설정한 건 영어 수업에서 만나서 학원에서 꽁냥꽁냥 데이트를 했었다는 과거가 있었어요. 그때 가장 좋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진명현: 지금 제일 행복해 보이세요. 만면의 미소를 가득 담고서. 상상만 해도 좋기는 합니다.

 

권소현: 그래서 촬영도 했었어요.

 

오성호: 엔딩으로 가장 좋았을 때를 찍었었는데 너무 클리셰 같아서 그냥 덜어냈습니다.

 

진명현: 5주년 때 꼭 틀어야겠는데요. 5주년 때 컵밥 먹으면서 봐도 너무 좋을 것 같네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나누니까 몇 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세 분의 얼굴에도 그때 추억을 감지하는 눈빛이 보여서 참 좋습니다. 여러분들도 궁금한 것들이 있으실 것 같아서 질문이나 돌잔치 축하 소감, 멘트들 주실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그 겨울, 나는〉 스틸컷

 

 

관객: 우선 저는 오늘 이 영화를 처음 봤고요. 일단 좋은 영화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넷에 로맨스라고 되어 있는 거만 보고 왔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단순히 로맨스는 아닌 것 같아요. 사람이 살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고독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자식 이름으로 2천만 원 빌려놓고 갚지도 않은 어머니한테 의지할 수도 없고, 막노동하면서 몸 다친 아버지한테 의지할 수도 없고, 애인과도 헤어지고. 그리고 오토바이를 판 친구하고도 사이가 틀어지고, 직장 사람들과도 계속 충돌이 생기고. 그 모든 것들이 한데 뭉쳐져서 맨 마지막에 터진 게 경학이의 눈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혹시 감독님이나 배우분들도 살면서 그런 순간이 있으셨는지. 있으셨다면 어떤 방식으로 지나가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진명현: 마음 아프게 그러세요. 어떻게 지나가셨는지 얘기해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오성호: 저는 지금도 지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물론 다 다른 경험이지만 그래도 거치다 보면서 어느 정도는 좀 매뉴얼도 생기고 내성도 생기고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저도 좀 힘들어서. 저 같은 경우는 북악산 밑에 사는데 등산도 거의 매일 가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러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그냥 그때그때 고비를 넘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권다함: 저 같은 경우는 계절이 돌아오는 것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욕심이 원래 많은 사람이라,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해서 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거든요. 한번 진지하게 연기를 그만두는 상상을 한번 해봤어요. 이 일이 너무 큰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나 불안감을 주는 순간들도 있어서. 한 번도 이거를 놓으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안 해봤었는데요. 이번에 제주도에 갈 일이 있어서 잠깐 연기를 그만뒀다 상상을 해보고 일주일을 지내보자. 그렇게 한번 가짜지만 멀어져 봤거든요. 잠깐 훌훌 털어버리듯이. 그랬더니 나름 괜찮은 것 같더라고요. 가끔씩은 그냥  연극 치료처럼 나 혼자 상황극을 하듯이 어떻게 되겠지 이런 마음으로 며칠 지내보는 것도 새로운 생각들이 들어오게 하는 것 같아요.

 

권소현: 제 인생에 딱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때가 2016년 11월이었거든요. 그때 뭔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선택도 없고. 그래서 말이 안 통하고 먼 나라로 갑자기 떠나고 싶었어요. 그때 태어나서 처음 혼자 여행을 해 봤는데 그때 모르던 저를 많이 발견한 거예요. 나는 생각보다 드라이한 사람이구나. 멋있는 걸 봐도 무덤덤한 사람이구나. 그러다가 여행의 끝자락에 욕조에서 반신욕이나 하고 가야지 하고 딱 몸을 담궜어요. 그러고 '고생했다 소현아' 한마디를 했는데 눈물이 터진 거예요. 혼자 울면서 저한테 처음으로 칭찬이라는 걸 좀 해줬던 것 같아요. 내가 지금까지 나한테 칭찬을 한 번도 안 해줬구나. 이 세상에 어떻게 보면 내 편이 없을 수도 있는데 나라도 내 편이 되어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 돌어와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나라도 내 편이 되어줘야지' 하는 생각이 있어서 그 힘으로 지금까지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진명현: 매년 11월이 소현 배우님께 중요하네요.

 

권소현: 맞아요. 〈그 겨울, 나는〉도 11월에 개봉했고. 그런 경험들이 연기를 하거나 그럴 때 버티게 해주는 힘이에요.

 

진명현: 세 분 말씀 듣다 보니까 공통점이 있네요. 건강하고 단단하고 자기 기준이 높은 사람들. 아마 그래서 이런 영화를 세 분이 만들게 되지 않으셨을까 싶은데요. 세 분 말씀 안에 관객분이 궁금해하신 것들에 대한 약간의 답도 있는 것 같아요.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는 거고, 감독님처럼 매일매일의  고비들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소현 배우님 이야기처럼 어느 순간에 확 왔을 때 나랑 대화를 제대로 해보는 방법도 있을 것 같아서. 저도 이야기 세 분 이야기를 잘 기억하게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영화 〈그 겨울, 나는〉 스틸컷

 

 

 

관객: 일단 추운 겨울이랑 잘 어울리는 영화 너무 보기 좋았고요. 저는 지금 대학교 1학년인데 영화를 좋아해서 학교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단편 영화도 찍고 있어요. 근데 캐릭터 설정이 가장 어렵더라고요. 감독님께서는 배달 기사들 중에 영민이라는 사람의 죽음으로 장치를 설정하셨던데, 왜 영민으로 설정하셨는지 궁금해서 질문드려봤습니다.

 

오성호: 시나리오 쓸 때는 영민이를 경학이2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영민이도 원래는 경학이 같았던 때가 있었을 거고 경학이는 시나리오가 진행되면서 점점 영민이처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민이의 죽음이 어떻게 보면 경학이가 죽은 거랑 같다. 경학이가 죽었을지도 모르고. 또 경학이가 여러 가지를 겪면서 내면이 많이 황폐해졌는데 그런 경학이가 죽은 것과 같다는 생각으로 이야기 했었습니다.

 

진명현: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김신비 배우도 아주 인상적인 얼굴을 보여주죠. 실제로 정말 귀여운 귀공자 같은 사람인데 무서운 얼굴을 하고서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관객: 저는 조금 엉뚱한 질문이긴 한데 강아솔 님을 음악 감독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했어요. 또 1년 전에 경학이의 미래에 대해서 다함 배우님한테 여쭤봤을 때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답변을 해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 경학이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혜진이의 미래도요.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이 영화는 볼 때마다 이입하는 배역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경학이의 고립과 영민이의 죽음이 안타까웠었고 혜진이의 상황들이 너무 마음에 와닿았었거든요.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영화 너무 감사했습니다.

 

오성호: 예전에 단편 영화 심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어떤 단편 영화의 엔딩곡이 강아솔 음악 감독님의 '사라오름'이라는 곡. 그러니까 지금 엔딩에 쓰인 곡이거든요. 그때 그 단편 영화를 보고 음악이 너무 좋아서 무조건 다음 영화에 써야겠다. 해서 그 음악을 들으면서 시나리오를 썼고 음악 감독님한테 부탁해서 같이 하게 됐습니다.

 

진명현: 아마 강아솔 님의 신보가 12월 1일에 나오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궁금한 분들은 찾아서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재미있는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시인들이랑 같이 책을 만드셔가지고 음악을 책으로 읽을 수 있는 작업도 있으니까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분 미래에 대해서 얘기해주시죠.

 

권다함: 엔딩에서 경학이가 단단해지긴 했지만 저는 이게 분명히 뭔가를 포기한 거라고 생각해요. 꿈일 수도 있고 열정일 수도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타협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는데, 이상하게 저한테 부정적인 단어처럼 들려요. 포기하는 느낌이 조금 있어서. 근데 경학이는 어른스럽게 타협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밖에 없고 꿈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을 택할 것 같아서. 그런 의미에서 저는 경학이가 제 기준에서 배드 엔딩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 친구가 안 쓰러지고 계속 싸우길 원했거든요. 가끔 모나면 어때요? 누구랑 싸워도 자기 생각이 올곧은 사람들이 저는 되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요즘은 타협을 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좀 들긴 해요. 타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조금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다. 왜냐면 제가 상업 작품을 리딩을 가거나 촬영장에 가면 제가 혼자 삐지는 일들이 많더라고요. '왜 이렇게 안 뜨겁게 찍지' 막 이런 생각을 해요. 다들 집에 가고 싶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드니까 아무도 삐지게 한 사람이 없는데 혼자 삐졌던 순간들이 몇 번 있었어요. 나이가 많이 먹었는데도 그런 거 보면 타협이란 단어에, 어렸을 때 생각했던 부정적인 의미보다도 좀 어른스러운 속뜻이 숨어 있을 수도 있겠다. 그 정도로 바뀐 것 같습니다.

 

권소현: 저는 혜진이가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잘 산다는 게, 경학이와의 이별 같은 변화의 힘을 원동력으로 사용할 때가 있잖아요. 더 잘 살아야 돼. 보란듯이 잘 지내야 돼 하는 힘으로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지금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까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잘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악착같이 살거나 나를 성장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으로 좀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질문을 받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진명현: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잘 살았으면 좋겠는 사람들이라서. 아마 관객분들도 같이 그러실 것 같고. 경학이는 아마 세상이랑 조금 화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거든요. 화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너무 연속적으로 던져졌기 때문에. 세상을 더 오해할 수밖에 없는 시련들이 계속 왔었고. 시간이 지나서는 분명 화해하는 법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너무 세상이 이 친구를 오해하게 만들어 놨어요. 세상이 다 그런 데는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시간이 저는 꼭 왔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일단 차갑지만 따뜻하고 포근하지만 냉정한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너무 잘 봤고요.  가벼운 얘기지만 촬영을 하면 캐릭터에 몰입을 하게 되잖아요. 아예 모든 촬영이 끝나고 나서 내가 지금 했던 행동은 경학이, 혜진이 같았다거나 촬영 중간에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하고 느꼈던 부분들이 있었을지. 비하인드가 궁금해서 질문을 해봤습니다.

 

권소현: 저는 되게 감사하게도 혜진이와 닮은 점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떠한 행동을 하고 대사를 하고 이럴 때 제 생각과 그렇게 어긋나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이 끝났을 때 잔상과 감정은 남아있지만 나의 한 모습과 이렇게 닮아있는 캐릭터를 만날 수 있었나 할 정도로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권다함: 개인적으로 연기할 때 최고의 장점이, 저의 어떤 시절을 남겨놓을 수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나의 어떤 시절, 어떠한 생각이 있었던 시기. 경학이를 볼 때는 제 20대 초반의 시기가 남아있는 것 같요. 의지하는 법도 잘 모르고 화해하는 법도 잘 모르고 화도 이상하게 내고. 그런 것들이 저한테도 분명히 존재했었고. 지금이야 제가 능글능글하게 잘 살아오다 보니까 많이 사라지긴 했는데 정말 투박했을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다 남아 있었어요. 최대한 그것들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했어요. 가끔 악평이긴 하지만 '남자 새끼 답답해서 못 보겠다' 이런 게 있어요. 근데 저도 되게 공감되거든요. 왜냐하면 저도 저 애를 보면 답답해 죽겠어요. 어쨌든 그런 모습도 저희가 다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좀 부끄러워하지 않고 꺼내보려고 많이 노력했고요. 감독님이 진짜 많이 도와주셨어요. 처음에 제가 되게 부끄러워했거든요. 막 이상한 애교 부리려고 하는 것도 그런 성격이 아니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는데. 나한테도 이런 것들이 있고 그걸 보여줬더니 사람들이 답답해하고, 좋다는 기분을 받았던 것 같아요.

 

진명현: 캐릭터와 닮아 있는 배우들 같아요. 썼던 인물들이 구현되는 모습에서 얼마나 즐거우셨을까 짐작이 될 정도로. 시간이 마무리할 때가 되었는데 초반에 말씀드린 것처럼 5주년, 10주년 상영있을테니까 영화 오래오래 잘 사랑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외롭고 슬픈 날 컵라면에 물 붓고 소주 한 병 딱 꺼내서 반병까지만 먹자 하고 볼 수 있는 그런 영화이기 때문에. 언제든 이 뜨거운 사람들의 온도로 여러분들을 녹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무엇보다도 세 분의 다음 행보가 너무 궁금하고 기다려져요. 언젠가는 세 분이 꼭 다시 한 번 만나서 결과물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고 자기 기준 높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은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좀 더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세 분의 또 다른 시도를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감독님과 배우께 인사 말씀 청해 들을게요.

 

오성호: 극장을 찾아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특히나 이렇게 추운 날씨에. 〈그 겨울, 나는〉의 개봉 1주년 기념 상영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권다함: 오늘 갈 때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그 겨울, 나는〉 GV 하러 간다니까 아직도 그걸 해? 3년 동안 〈그 겨울, 나는〉만 찍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진짜 많은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답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지치지 않고 열심히 작업해서 더 좋은 작품들로 인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사계절 중에 봄 같은 느낌이에요. 짧지만 따뜻했고 같이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권소현: 인디 돌잔치에 저희 영화가 딱 당선됐다고 했을 때 굉장히 좋았거든요. 저한테 독립 영화의 힘도 알게 해줬고 연기의 힘, 배우의 힘, 무언가 에너지들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영화였어요. 앞으로 배우로서나 사람으로서 나아갈 수 있게 힘을 줬던 영화였는데, 이렇게 촬영하고 개봉하고 또 1주년까지 이 힘을 계속 얻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오늘 굉장히 추웠는데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좋은 영화로 찾아뵐 수 있게 배우로서 열심히 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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