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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흠, 나의 힘, 나의 형제
〈언니 유정〉그리고 〈나의 X언니〉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한들 님의 글입니다.
“가장 최종적인 형태의 돌봄, 최고 난도의 돌봄은 '돌봄 받기'다”*
이 문장을 유정과 소희에게 선물하고 싶다.
〈언니 유정〉에는 고3 동생 기정을 돌보는 유정이 있고, 〈나의 X언니〉에는 중3 언니 소진을 돌보는 소희가 있다. 유정과 소희는 형제를 보살피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어느 날, 유정에게는 기정이 영아 유기를 자수했다는 소식이 닥쳐온다. 소희는 선망하는 X언니가 소진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조롱하는 말을 듣게 된다.
익숙함이 늘 능숙함을 보장하지는 않고, 이들의 돌봄은 난관에 부딪힌다.
기정이 영아 살해범이 되느냐 마느냐의 길목에서 유정은 긴급하게 묻고 싶다. ‘정말 네가 그랬어? 그렇다면 왜 그랬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정은 깨닫는다. 이 대화는 가로막혀 있으며 기정에게 어떠한 대답도 듣지 못하리란 사실을. 둘 사이에는 지금까지 유보된 너무 많은 질문과 답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정은 필연적으로 밀린 질문들을 마주한다. 그 질문들에는 이런 것이 있다. 기정아, 너는 달콤한 음식을 좋아해 싫어해? 기정아, 너의 장래희망은 뭐야? ……기정아, 너는 엄마가 보고 싶어?
유정이 기정의 그것들에 대해 모른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정 또한 유정의 그것들을 모른다는 의미이다. 오랫동안 유정은 기정에게 ‘언니, 엄마가 보고 싶어?’라는 질문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아왔다.
기정이 태어남과 동시에 유정은 엄마를 떠나보냈고, 그 사건은 유정의 인생에서 중대했다. 하지만 혹은 그래서 유정은 그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기정과 나누지 않았다. 유정에게 기정은 늘 돌보아야 할, 슬픔을 나누기엔 알맞지 않은 상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진실일까? 돌봄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질까? 기정은 잠든 언니 머리맡의 TV를 조용히 꺼주는 애다. 어떤 존재를 ‘아예 몰랐던 것보다 못 보게 되는 게 더 슬프겠다’는 걸 알아주는 애다.
마침내 자매가 마주앉는다. 오래된 동시에 오늘의 것인 얘기들이 오간다. 유정이 기정을 알아가는 것만큼 반가운 일은 유정이 기정에게 자신을 알아가게 하는 일이다. 엄마 이야기를 꺼내는 유정의 말이 이렇게 바뀌어 들린다. ‘기정아. 나의 그리움을 돌봐줘.’ 그 말을 기정이 꼭 듣고 싶었으리라 믿어진다.
〈나의 X언니〉 속 소희도 비슷한 질문에 봉착했다. 소희는 소진의 밥을 차려줘야 하고, 앞머리도 잘라줘야 한다. 소진의 생활을 돕느라 집안에 갇혀야 한다. 소진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X언니를 잃어야 하고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그 모든 의무를 지고도 모자라 엄마한테 잔소리까지 들어야 한다. 소희의 이런 서러운 인생을 안아주는 사람 누구일까? 그 또한 소진이다. 소희가 악을 쓰며 펑펑 울 때 소진은 지치지도 않고 ‘울지 마’를 되뇐다. 소희는 그때 알게 됐을 것이다. 소진의 품에 자신의 눈물을 묻히는 법을. ‘내가 너의 앞머리를 잘라줄게. 너는 나를 안아줘.’라고 말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자신의 일부를 서로에게 기대어두는 두 자매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 몸들 혼자일 땐 네모나더니 둘이 되니 굽고 둥글구나, 알게 된다.
*『친구의 표정』 (안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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