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유정〉리뷰: 우리가 비워둔 공간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지윤 님의 글입니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가장 깊은 곳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시간을 상상한다. 그 상상에서 우리는 의자를 마주놓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보며 앉아 있다. 입을 떼고 먼저 시작한 이야기에 돌아오는 답 없이 상상에만 머무는 마음은 전해질 길 없이 서로의 눈을 피하고, 자리를 뜨고, 공간을 비워둔다. 비워둔 공간에 우리가 다시 마주 앉는 일은 언제일까. 마주 앉아 서로의 진심을 건드리며 나의 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질 수 있게 되는 날은 언제일까.
〈언니 유정〉은 그동안 우리가 비워둔 공간을 다시 찾게 되기까지의 여정이다. 그 길에 고독과 적막은 우리의 손을 스치고, 꽁꽁 싸매둔 기억과 감정은 너와 나의 진심을 불러일으킨다. 유정(박예영)과 기정(이하은)은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이다. 기정이 어느덧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간호사로 일하는 유정의 계속되는 나이트 근무 탓에 두 사람은 한 집에서 눈을 맞추어 본 적이 오래다. 거실에서 암막 커튼을 치고 잠든 유정의 얼굴을 등교하는 기정이 잠시 바라볼 뿐, 기정과 유정의 시간은 도통 영화 속에 존재하기란 어렵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마주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이다. 학교 내 영아유기 사건으로 기정이 수감되면서부터 경찰서를 오고가며 유정과 기정은 그 안에서 그제서야 서로를 마주한다. 경찰서의 한 테이블에서 수갑을 찬 기정과 그 앞의 유정을, 영화는 처음으로 한 프레임에서 바라본다. 낯선 공간에서 마주하는 서로의 얼굴. 본격적으로 새로 만들어내는 두 사람의 공간은 우리가 만들고 함께 움직이고 있다 생각했던 울타리 안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각자의 궤적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유정은 현관문에 용돈을 걸어두고 그 돈을 기정이 챙겨 등교하는 것으로 배웅을 대신해 왔다. 어린 유정의 얼굴을 보며 매일 용돈을 주었다던 엄마의 방식을 유정은 기억하며 기정을 대해왔지만,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그 차이는 현재의 유정을 괴롭혀 온다. 기정의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보호자로서 요구받고, 스스로 그 책임을 요구하며 그동안 지나쳐온 공백에 어려움을 겪는 기정 앞에는 오히려 타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자리한다. 기정의 친구, 희진(김이경)과 유정이 담당하는 환자, 수진(한해인)과의 대화는 유정에게 있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희진과의 대화에서 알게 되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기정의 모습 그리고 수진과의 대화에서 유정이 건네는 자신의 이야기는 오히려 스크린 밖에서 유정과 기정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유정 또한 희진과 수진이라는 다른 세계를 통해 한 걸음 밖에서 기정을 이해하게 되는 그 순간, 유정의 발걸음은 기정을 향하고 기정을 품에 안는다.
우리 사이의 간격을 다시 되짚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때까지,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다시 보고, 다시 읽어내기까지, 〈언니 유정〉이 취하는 이해의 방식을 들여다본다. 조금은 먼 곳에서 시작하여 서로의 손을 맞잡아도, 타인이라 불리는 다른 세계를 거쳐 나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어도,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아 말로는 못 할 이야기를 전하듯 진심을 전하는 발걸음이 있다. 그리고 그 발길은 서로를 향해 있음을 우리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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