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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24] 〈퀸의 뜨개질〉 조한나 감독 인터뷰

by indiespace_가람 2024. 7. 27.

썸머프라이드시네마2024 〈퀸의 뜨개질〉 조한나 감독 인터뷰
춘자, 한나, 에브리원 캔 비 애니띵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 님의 글입니다.

 


춘자 Can Be Anything. 춘자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할머니를 향한 찬사 아닌 환호, 신나는 비트와 어지러운 화면. 유쾌하지만 우습지 않은 주인공의 담담한 고백은 만다라 매드니스라는 작품을 통해 비로소 관객 그리고 과거의 주인공과 맞닿는다. 나레이션을 통해 재해석되고 배열되는 푸티지, 6천 미터의 뜨개질과 6천 미터의 편집을 통해 풀려나간 이야기 조각의 원류를 만났다.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와 손녀의 인생이 교차하는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가족 내 여성 계보를 다루는 데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할머니를 그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 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전작에서) 모녀 관계를 한 번 다뤘어요.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는 내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첫 작품 끝나고 2~3년이 지나도 저는 여전히 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졸업도 있었고, 작품을 만들어야 했고. 그래서 일단 다른 사람을 찍기 전에 나를 다 보여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먼저 까발려야지만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제 주변 이야기를 찾다 보니까 뜨개질이 떠올랐고, 그게 할머니와 연결돼 있었어요. 처음부터 할머니에 대해서 크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할머니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던 작품이죠.


원래 할머니와 사이가 가까우셨어요?

90년대생들이 보통 할머니 손에 키워지잖아요. 엄마 아빠 둘 다 일하시니깐. 저도 ‘춘자’라는 할머니 손에서 컸어요. 근데 할머니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멋진 할머니는 아니었고, 약간 전통적 할머니. 돈 아끼고, 쓸 줄 모르는 재미 없는 할머니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할머니의 다른 측면을 알아간 것 같아요. 그전에는 몰랐어요.


영화를 준비하시면서 다양한 영상 소스를 수급하는 것부터 감독님 본인만의 내러티브를 정리하는 등 다양한 사전 작업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어려우셨던 지점은 무엇인지, 또는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첫 기획은 뜨개질밖에 없었어요. 제 과거 서사가 들어오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나는 누구를 위한 뜨개질이 아니라 나만의 뜨개질을 한다.” 제목도 〈나를 위한 뜨개질〉 이런 거였거든요. 그래서 과거 언급이 없었는데, 작품을 제작하면서 리서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에 있는 영상을 다 뒤졌어요. 근데 제가 모르고 있던 영상이 너무 많이 나온 거예요. 저는 다큐멘터리과를 나왔다 보니 저희끼리 하는 얘기 중에 다큐 금수저와 다큐 흙수저가 있거든요. 어렸을 때 푸티지가 많은 사람들은 금수저. 근데 저도 몰랐는데 아버지가 영상을 엄청 많이 찍어 놓으셨던 거죠. 심지어 백업까지. 그거를 발견한 순간 딱 맞춰지잖아요.

 

영화 〈퀸의 뜨개질〉 스틸컷



뜨개질과 유년 시절을 교차시켜야겠다는 아이디어도 그때 생각하신 걸까요?

네, 그래서 그때 어렸을 때부터 나의 서사를 뜨개질과 엮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래 뜨개질이 완성돼 가고 엔딩 장면이 나오잖아요. 엔딩 장면을 제외하고 한나는 자란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엔딩에 가서 가장 어린 한나와 가장 나이 많은 한나가 만나는 거죠.
제가 처음 기획했던 건,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한나가 있고 뜨개질하면서 점점 나이 드는 한나가 있어서 마지막에 제일 나이 많은 한나가 제일 어린 한나를 만날 수 있는 구성이었어요. 근데 해보니까 그렇게 설득력 있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엔딩장면을 제외하고는) 시간순으로 배열했죠.


만다라 오브 매드니스는 직접 뜨신 거죠? 얼마나 걸리셨어요?

영화에도 나오는 데 총 6개월 걸렸거든요. 근데 하루에 한 2시간. 최소 2시간에서 4시간은 했었어요. 그리고 실을 다 풀면 6천 미터래요. 실값만 100만 원. 뜨는 데 걸린 시간이 6개월이니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가치가 상당하죠.


영화 말미 등장하는 ‘춘자’ 노래 파트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과장된 젠더 역할 수행이 마치 드랙퀸과 드랙킹을 떠올리게 했는데, 춘자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여성 인물의 가능성을 제의적으로 풀어낸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 있어 남근, 턱수염과 같이 남성 이미지를 차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춘자’ 노래 파트에서 드랙퀸과 드랙킹을 둘 다 했어요. 남근과 턱수염이 강조돼서 사람들은 드랙킹만 했다고 느끼시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둘 다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보통 여성처럼 보이는 사람은 드랙킹을 하고 반대는 드랙퀸을 하니까 보이는 거에 따라서 해야 하는 역할이 정해지는 거잖아요. 내가 여자처럼 보이면 나는 킹(King)을 해야 해, 반대의 개념을 해야 해. 근데 저는 지정 성별이 사람들한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보이지 않는 룰을 굳이 따르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어떤 드랙킹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을 때, 꼰대스럽고 가부장적인 남자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과감하게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반대로 드랙퀸을 할 때는 되게 어렵더라고요. 제가 드랙 레이스 보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거기서는 자유롭고 과감하게 여성성을 비판할 때가 있어요. 보기에 이거 좀 아닌데 싶을 정도로요. 근데 저는 드랙킹은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 드랙퀸을 우스꽝스럽게 그릴 수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멋지고 아름다운 드랙퀸을 하자라는 생각을 떠올랐던 것 같아요.


영화 〈퀸의 뜨개질〉 스틸컷



영화 제목과도 연관 되는 아이디어일까요?

그렇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제목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아요. 왜냐하면 “왜 퀸인지 모르겠다.”, “한나의 뜨개질 아니냐?”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사실 ‘퀸’이라는 건 제 자아 중 하나에요. 이제 제 친구들은 사람들이 한나 퀸인 거 모르네. 이러는. (일동 웃음)


결말에 이르러 춘자와의 교차점이 아닌 한나로서의 본인을 어린 시절 푸티지로 얘기한 것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결말에서 담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저는 약간 촉으로 많은 것을 하거든요. 그래서 엔딩은 순전히 촉, 센스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편집했던 것 같아요. 저는 푸티지를 처음 발견한 날이 뇌리에 박혀있거든요. 제가 발굴했다 그랬잖아요. 아무것도 안 적혀 있지 않은 공테이프였어요. 다른 것들은 약간 한낮, 여름 이렇게 쓰여 있었는데 그건 아무것도 안 적혀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버리려고 하다가 플레이를 눌렀는데 그 장면이 팍 나오는 거예요. 옷을 벗고 엄마가 이렇게 씻겨준 다음 뽀이 뽀이하고 있고 “한나야”, “한나다” 이렇게 부르는 장면이 찍혀있었어요. 그때 약간 얘는 엔딩이다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엔딩으로서 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별거 없고, 그냥 촬영본 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한나와 가장 어린 한나를 만나게 하고 싶었어요.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냥 촬영이 힘들었어요. 촬영을 좋아하시는 감독님들도 매우 많아요. 근데 저는 촬영 자체가 스트레스였고 스태프도 많지 않았거든요. 그냥 한 명 있었어요. 촬영 감독 한 명과 저 둘이었는데 그 상황이 너무 힘들었죠. 근육통 오고.
저는 편집을 너무 좋아해서 촬영 빨리 끝내고 편집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일 힘들었던 장면은 ‘춘자’ 뮤직비디오. 이 장면을 찍기 위해서 제가 리허설을 거의 3개월 했어요. 술 먹고도 해보고. 왜냐하면 제가 쇼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해야 하는 거예요. 리허설도 세 번 찍고, 촬영 카메라 테스트도 다 해보고. 마지막 날에서야 찍을 수 있었는데 준비 과정이 참 힘들었어요. 드랙킹용 압박 밴드도 해봤는데,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요.

 

영화 〈퀸의 뜨개질〉 스틸컷

 


한국 영화에서 음악을 뮤지컬적 요소로 활용하는 게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춘자송을 넣고 싶던 이유가 있으실까요?

춘자에게 접속하고 싶던 마음이 제일 컸어요. 그리고 저는 항상 작품의 음악이 중요한 편이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은 뭔가 다 같이 즐기고 환호하는 장면으로 터지면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끔 어떤 상영관에서는 소리 지르면서 같이 볼 때도 있었어요. 저는 그런 걸 원했던 것 같고.
가사를 제가 썼는데 래퍼 된 것처럼 지하철에서 쓰고 ‘자’자로 끝나는 게 뭐가 있는지 고민하고 이랬죠. 너무 신기한 게, 어느 순간 또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를 보고 있는데 “엘레간자 엑스트라바간자”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내가 잊고 있었는데 이것도 자로 끝나는구나, 미쳤다.’ 이렇게 됐던 것 같아요.




관객한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셨다면 무엇일까요?

기획 의도에 쓰여 있기로는 경계에 있는 사람들한테 경계에 머물러도 괜찮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가능성에 한계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근데 웃긴 거는요. 저는 이 작품을 만들면서 굉장히 뭔가 많은 것을 표현하고 설명했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걸 보고, 제가 ‘어떤 사람일 것이다’라고 쉽게 생각하시는 것도 있더라고요. 근데 웃긴 거는 저는 이 작품을 만들고 나서도 바뀌었어요. 저는 이 영화 속에 있는 사람으로 머물고 있지 않은 거예요.


어떻게 변하셨나요?

좀 유해진 면도 있고. 그전에는 뭔가 “확정 지어야 해”, “한계를 두지 말아야 해”, “다들 할 수 있어” 이런 식이었다면 이젠 “못해도 괜찮아”로 변했어요. 정체성도 계속 바뀌고 있는 것 같고, 뭔가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만큼 영화를 발표하고 나서 주변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관련해서 남긴 코멘트가 있을지, 또는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친구들은 쉬웠어요. 그냥 ‘너 같은 영화 만들었다.’ 이런 느낌이었고, 엄마 아빠 반응이 좀 재밌었죠. 제가 작품 만드는 내내 엄마 아빠한테 한 번도 공유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졸업 상영회 때 와서 처음 보시게 된 건데, 너무 무서웠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 작품으로서 엄마에게 공개하는 게 되게 많았거든요. 어렸을 때 친구한테 고백하는 장면뿐만 아니라 오토바이 타는 거, 담배 피우는 거. 다 말한 적이 없었는데 모든 걸 이 영화 한 편으로 소개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졸업 상영이 크게 축하받는 자리니까 엄마를 안 부를 수는 없었고요. 여수 사시는데도 오시겠대요.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회 했었거든요. 엄마랑 아빠랑 같이 봤어요.
부모님 두 분이 지금 30번 넘게 보셨어요. 전국 영화제를 다 같이 갔거든요. 대구도 가고, 서울도 엄청 많이 오고, 울산도 가고. 제가 전주에서 대상 받았는데 그때도 같이 오셨거든요. 제가 엄청나게 울었어요. 엄청나게 울고 감사합니다, 이러고 있는데, 영어 선생님이신 저희 엄마가 종교가 없으신데도 같이 울면서 “오 마이 갓 감사합니다, 땡큐” 이러시더라고요. 아무튼 엄청나게 좋아하세요. 큰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서 더 좋아하시지 않으셨나. 인정받으니까 더 좋아하셨죠.


이번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에 참여하는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치열한 여름날, 다 같이 퀴어 영화들이 모여서 너무 좋고요. 여름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끈적끈적하니 좋잖아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과 같이 상영되더라고요.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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