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우주를 들여다보면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7월 25일(목)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김보원 감독, 박서윤, 심규호, 오동민, 심태희 배우
진행 박동수 평론가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기록입니다.
보통은 여러 개의 얼굴로 존재한다. 누군가는 보통이 되기 위해, 누군가는 보통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평균이 되기를 꿈꾸는 여고생과 평범한 건 죽기보다 싫은 거지는 보통의 기준 앞에 흔들리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보통의 선을 넘으려 애쓰는 이들에게 영화는 그들의 뜀박질이 그 자체로 찬란하다고 말한다. 보통이 아니면 어떻고, 보통이면 또 어떤가. 우주에서 경계는 지워지고 찬란한 뜀박질만이 반짝인다. 보통이라는 선 앞에 무너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의 인디토크 현장에 함께했다.
박동수 평론가(이하 박동수): 저는 오늘 인디토크 진행을 맡은 영화평론가 박동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인디토크 시작에 앞서, 간단하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김보원 배우(이하 김보원): 영화 연출한 감독 김보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심규호 배우(이하 심규호): 안녕하세요. 거지역을 맡은 심규호입니다.
심태희 배우(이하 심태희): 안녕하세요. 저는 짝꿍역과 선미역을 맡은 배우 심태희라고 합니다.
오동민 배우(이하 오동민): 진실 역할 맡은 오동민입니다.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서윤 배우(이하 박서윤): 여고생 역할을 맡은 배우 박서윤입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동수: 먼저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영화 1부의 제목인 〈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이 별도의 독립영화로 등재되어 있더라고요. 2019년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때부터 시작해서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가 나오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편 영화부터 시작해서 오늘 라스트 GV라는 이름의 인디토크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굉장히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대한 소감을 여쭈면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김보원: 말씀해 주셨다시피, 첫 번째 에피소드인 〈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이 단편으로 완성돼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을 했었어요. 제가 당시 영화를 만들면서 남들보다 잘 만들어야 창작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압박을 느꼈고 끊임없이 우열이 나누어지는 세계에 고통을 받았어요. 그러한 감정을 승화시킨 영화를 만들었는데요. 창작 활동의 생명이 끝나기 전에 장편영화를 완성하고 싶었는데, 고민이 많았어요. 저희 영화를 보셔서 알겠지만, 독특한 면이 있잖아요. 이런 형식의 영화는 제작 지원받는 게 쉬운 건 아니라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마침, 넷플릭스에 〈카우보이의 노래〉라는 코엔 형제의 옴니버스 단편영화를 봤어요. 서부극 6편의 영화가 하나로 묶여 있는 옴니버스 영화인데요. 마지막 에피소드가 5편의 이야기들을 묶어주면서 하나의 장편영화로 느껴지게 하는 옴니버스 영화예요. 제가 그 영화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나도 아직 첫 번째 에피소드에 담았던 보통의 사람들을 주제로 할 이야기가 더 남았다. 저 방법이라면 나도 장편을 찍을 수 있겠다 싶어서 두 번째, 세 번째 에피소드를 동시에 기획하고 제작에 들어갔어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는 두 번째 에피소드를 찍을 때가 코로나가 무서운 시기였어요. 2020년 말에 찍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엎어질 위기에 처한 적도 많고요.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박동수: 코로나로 인해 많은 영화의 제작 기간이 늘어났잖아요. 그런 기간들이 감독님의 영화에도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배우분들께도 질문드릴게요. 단편 영화 때부터 출연해 주신 세 분의 배우님이 자리해 주셨는데요. 여고생 역할로 나오신 박서윤 배우님, 거지 역할의 심규호 배우님, 짝꿍과 선미 역으로 나오신 심태희 배우님께 질문드리고 싶어요. 단편 영화 때부터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해주신 만큼, 마지막 GV에 참석한 소감을 여쭙고 싶습니다.
심규호: 저는 감독님이랑 처음 알게 된 게 꽤 오래전이었어요. 2018년에 독립 영화를 같이 만들던 선후배였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가 이런 자리에 함께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거든요. 저희 영화가 코로나를 거치면서 좋은 일, 나쁜 일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는데 시간이 지나, 어느덧 마지막 GV를 하게 되었네요. GV를 하면서 관객분들께 제가 더 많이 배워가는 시간이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고 앞으로의 행보를 위해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태희: 저도 감독님하고는 학창 시절부터 선후배 관계로 만나 뵀었고요. 2014년, 갓 20살이 되었을 때, 감독님과 만나서 다양한 독립 영화들을 함께 해왔는데, 10년 만인 2024년에 감독님과 배우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고 많은 관객분과 함께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감개무량하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네요. 오늘 함께 자리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박서윤: 첫 에피소드의 배경이었던 학교가 제가 실제로 다녔던 학교이고 반에 짝꿍 빼고는 다 제 실제 친구들이에요.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제가 20살, 세 번째 에피소드는 21살에 찍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 고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되는 과정까지 빠짐없이 기록해 둔 영화여서 애정이 많이 갔던 작품이고 GV를 할 때도 늘 진심으로 관객분들과 마주 봤던 것 같아요. GV는 오늘이 마지막이라 너무 아쉽고, 앞으로 또 다양한 곳에서 찾아뵙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박동수: 오동민 배우님은 3부에만 출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영화와 어떻게 함께하게 되셨는지 간단하게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동민: 처음 만났을 때, 감독님의 에너지가 너무 좋았어요. 그때 이 사람과 함께하면 어떨까 하는, 기대에 가득 찬 에너지가 기억나고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림이 어떤 식으로 그려지는지 잘 상상이 안 갔어요. 감독님을 만나 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나고 나서 이 사람이라면 내가 믿어도 되겠다는 포근함과 따뜻함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관객: 여고생 역할이 첫 에피소드에서는 18등을 하다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20등으로, 성적이 더 떨어진 것으로 나오는데요. 저는 여고생이 나이를 먹으면서 숫자가 늘어난 것같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성적이 떨어졌다는 의미로 설정하신 건지, 아니면 어떤 상징성이 담겨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보원: 사실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 여고생이 18등이 아니에요. 자신과 이름과 자리가 비슷했던 그 누군가가 18등이었던 거고, 여고생은 18등도 안 되어서 분노했던 건데요.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또 다른 멀티버스에 있는 여고생의 등수가 20등이라고 말해줌으로써, 처음의 여고생도 20등이었다는 걸 넌지시 보여주고 싶었어요.
관객: 배우분들께 질문이 있는데요. 진실을 아는 자를 연기하신 오동민 배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배우님은 실제로 주변에 진실을 아는 자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행동하실지 여쭤보고 싶어요. 또, 짝꿍 역할을 맡으신 심태희 배우님의 대사가 착 달라붙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극 중에서 짝꿍이 하는 비속어는 애드리브인지, 대본에 나와 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오동민: 제가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고 그림이 잘 안 그려졌던 이유가 진실이 인간의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거든요. 인간처럼 말하는 느낌이 전혀 안 났고 진실만을 말한다는 게 낯설게 느껴졌어요. 주변에 실제로 진실이 같은 사람이 있다면 좀 힘들 것 같아요. (웃음) 그래도 진실이는 나쁜 아이는 아닐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할 때도 진실이의 좋은 면을 바라보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심태희: 저도 실제로는 욕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는 편이고요. (웃음) 애드리브는 아니고 실제로 대본에 나와 있던 대사를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박동수: 영화에서도 3부에 진실을 아는 자가 많이 맞고 다니잖아요. 저도 주변에 진실이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좀 힘들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엉뚱한 느낌의 캐릭터들이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해요. 이어서 질문을 드리자면, 각 부의 주인공이 여고생, 거지, 진실이인데요. 각 캐릭터가 유치하게 하나에 몰두해있다고 생각해요. 여고생은 갑자기 유전학과 진화론에 빠져서 혼자 자율학습을 떠나고, 2부의 거지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허황된 목표를 쫓아가는, 어떻게 보면 순진한 인물이고요. 3부의 진실이는 소시오패스 같은 면도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역시 순진한 면을 가진 인물인데요. 엉뚱하면서도 순진한 매력을 가진 인물들을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김보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대학원 시절 영화를 찍을 때 남들보다 잘 찍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굉장히 고통스러웠어요. 우열을 나누는 심리 기제가 있기 때문에 우열이 중시되는 세상이 만들어진 거라 생각했고 경쟁과 우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제 감정에서 시작해서 조금 치환을 했어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열이 나누어지는 시기를 떠올렸더니 고등학생이더라고요. 성적이 나뉘어서 줄 세워지는 가장 직관적으로 우열이 가려지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 보면, 사이비 과학자가 너의 성적도 외모도 줄 세워진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외모라는 요소에 있어, 남성보다 여성이 더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해서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했고요.
2편 ‘거지의 왕’에서는 누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울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첫 번째 에피소드에,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번째 에피소드 속 거지는 잘못된 철학으로, 완전히 밑바닥으로 가게 된 인물이죠. 그런 거지 캐릭터를 가져와서 평범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삶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근데, 사실 사람은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목표에는 만족하지 못하잖아요. 자기가 어떤 거에 만족하며 행복했는지 깨달았음에도 자신의 어린 시절에게 너는 그래도 왕이다. 거지의 왕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의 심리 기제를 직시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조금은 엇나가면서도 끝에서는 통합된 느낌을 주는 사람의 심리 기제를 선택하고 싶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믿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거든요. 진실이는 자신은 진실을 말하고 다닌다고 생각하지만, 자기조차 진실을 왜곡되게 받아들이잖아요. 자신이 믿는 것만 진실로 여기는 보통 사람의 특성을 담은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극의 전체적인 흐름과 연결되게, 진실의 잘못된 믿음이 첫 번째 에피소드의 사이비 과학자로 연결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과학자가 자신은 우월한 유전자라고 이야기하고 다니잖아요.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하다 보니 진실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박동수: 영화 마지막에 뛰쳐나간 진실이가 첫 에피소드의 과학자로 연결되는, 일종의 순환구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김보원: 네, 맞습니다. 진실이는 과학자의 다중우주 버전인 거죠.
박동수: 그렇군요. 1.2.3부에서 주인공을 맡아주신 배우분들은 각자의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소화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박서윤: 여고생 캐릭터는 각 부의 주인공 중,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나 열등감을 느껴 다른 사람을 부러워해본 경험이 있을거라 생각해서 그런 포인트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저는 우열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여고생의 서사가 충분히 납득이 됐는데요. 평균에 도달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자꾸만 뒤떨어지니까. 당연히 우열에 대해 생각하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큰 어려움 없이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심규호: 저는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극의 주인공이 진짜 보통사람같다고 생각했어요. 안타깝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것 같아요. 다음으로는 꿈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는데, 영화 속 거지의 꿈이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맨 마지막에는 거지의 왕으로 끝나잖아요. 거지가 지나온 과정이 저와 굉장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저는 대통령을 꿈으로 가진 적은 없지만, 영화 연출자로서의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가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마주하고, 깎이기도 하는 모습이 저와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이야기 상으로는 거지이지만, 당시에는 상처받으면서 지나온 제 자신을 생각하면서 연기를 했고 영화 전체적인 맥락에서도 제 삶을 투영해서 바라보았던 것 같아요.
박동수: 우리는 각자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바깥에서 볼 때의 그 목표는 황당무개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영화에서 거지가 ‘빌’이라는 친구를 사귀고 “우리 정경유착하기로 했잖아”라는 대사를 하기도 하고요. 황당무개하면서도 재밌는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오동민: 저는 찍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GV를 돌면서 철학적인 담론을 다시 곱씹게 되고,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진실이처럼 살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늘 들었거든요. 감독님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자신이 우월한 유전자라고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의 심리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한편으로 자신을 잘 알고 자기의 행복을 위하는, 자기감이 높은 사람이야말로 보통이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실이는 맞아가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인 것 같아요. 물론 진실이처럼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건 잘못이지만, 마지막에도 진실이는 내가 행복한 방식으로의 해석을 하잖아요. 어찌 보면, 요즘 시대에 진실이가 던지는 화두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나는 어떤 요소로 이루어져 있나,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깊이 알고 있어야 자존감 그리고 행복감까지 올라간다고 하는데요. 남의 시선이나 평균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실이 같은 덕목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박동수: 저도 공감하면서 들었는데요. 진실이와 같은 덕목이 삶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어서, 심태희 배우님께 질문드리고 싶은데, 작품에서 여러 역할을 맡으셨어요. 1부에서는 짝꿍, 2부에서는 거지의 여자 친구인 선미, 3부에서는 지나가는 짧은 단역으로 출연하시는데요. 여러 역할을 하나의 작품에서 맡는 일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심태희: 처음에는 옴니버스식 장편영화가 될지 몰랐어요. 각각의 단편으로 참여하게 돼서, 각 캐릭터에 집중하며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보통의 우주는 찬란함을 꿈꾸는가?〉라는 한 편의 멀티버스 영화가 되고 나서는, 가장 주인공들에 대비가 되는, 현실에 맞닿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1부에서는 현실적인 여고생 역을 연기했고, 2부에서는 굉장히 큰 꿈을 꾸는 거지와는 달리 현실적인 꿈을 꾸는 캐릭터로 나오죠. 굉장히 현실적인, 여러 명의 인물을 연기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동수: 1부와 2부에서 주인공과 어느 정도 대비가 되는 캐릭터를 연기해 주신 것 같습니다. 질문 이어서 드리자면, 멀티버스라는 주제가 영화 쪽에서 많이 나오고 있어요. 멀티버스라는 소재만 들었을 때는 SF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영화에는 할리우드 멀티버스 영화에 나오는 SF적인 비주얼은 등장하지 않죠. 다만, 여고생은 같은 배우가 같은 옷을 입고 연기하지만, 1부와 2부, 3부에서 조금씩 다른 존재로 등장하고요. 거지 같은 경우도 1.2.3부의 거지가 다른 뉘앙스를 주는데요. 각 부에 조금씩 다른 컨셉의 개인이 등장하기도 하고, ‘한 개인이 하나의 우주이기에 개인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은 다중우주고 멀티버스다’라는 게 이 영화의 주장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 세계 자체가 멀티버스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습니다. 감독님은 어떻게 멀티버스라는 컨셉을 가져올 생각을 하셨는지, 배우분들은 멀티버스라는 소재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보원: 멀티버스로 한 이유는 각각의 개인이 하나의 우주라는 은유를 하고 싶었고요. 1단계 다중우주 이론이 ‘우주가 무한히 있다’는 내용인데, 우주가 무한히 있고 우리 한 명 한 명이 우주라는 은유를 하고 싶었어요. 또, 저희 영화가 블랙 코미디인데 멀티버스라는 구조가 블랙 코미디적으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에 나오는 감정들이 우리가 평소에 직시하고 싶은 감정들은 아니에요. 우열에 고통스러워한다거나,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더 큰 것만을 원한다거나, 내가 믿는 것만 진실로 생각한다는 그 감정들을 직시하는 게 즐겁지는 않죠. 그런데, 내가 사는 여기 말고 다른 우주에서도 그렇다고 하는 순간 재미있어지거든요. 그런 면에서 블랙 코미디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저는 되게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멀티버스라는 소재가 슈퍼히어로물의 전유물처럼 쓰이는 게 싫었거든요. 보통 사람들을 위한 멀티버스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만든 영화입니다.
오동민: 저는 멀티버스 영화라고 했을 때 되게 흥미로웠고, 장편이 된다면 더 많은 관객분을 만날 수 있으니까 좋았어요. GV를 다니면서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영화가 우리가 마주하고 있지만 직시하고 싶지는 않은 현실들, 실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추악한 진실들을 끄집어내고 그것들을 멀티버스 안에서 연결해 냈다는 점이 대단한 것 같아요.
박서윤: 저는 첫 번째 찍고 두 번째 영화를 찍을 때까지 멀티버스 영화인 줄 몰랐어요. 감독님이 이번에 단편 영화를 찍게 됐다고 하셔서 갔는데, 〈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이랑 똑같은 옷이랑 가방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여고생 캐릭터를 다른 작품에서 쓰시려는 건 줄 알았어요. 분명히 그때도 멀티버스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을 텐데, 제가 멀티버스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것 같아요. 세 번째 영화를 찍을 때, 이게 무슨 내용이고 어떻게 진행된다는 걸 알게 됐고 너무 재밌고 흥미로운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님 덕분에 저도 요즘 유행하는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탑승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태희: 저도 멀티버스인 줄 모르고 작품에 임했다가 감독님이 말씀을 해주셨을 때, 감독님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웃음) 학창시절에 함께 했던 영화 중에 〈거지 분노의 추적자〉라는 단편이 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거지와의 인연이 시작된 건가? 어디까지가 멀티버스인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규호: 안 그래도 제가 감독님 영화에 나중에도 거지가 나올 것 같아서 미리 말씀을 드렸어요. 앞으로 감독님 영화의 거지는 나로 써달라 미리 말씀을 드렸고요. (웃음)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이 끝난 뒤였고 감독님이랑 저랑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어요. 그때, 감독님이 지금 영화의 2부, 3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여고생의 기묘한 자율학습〉이 장편이 될 것 같아서 너무 좋았고 감독님께 이대로 추진하자고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박동수: 영화의 멀티버스라는 설정이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많이 만들어주었네요. 다시 객석으로 마이크 넘기겠습니다.
관객: 세 가지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 있잖아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이 타인의 반응에 의해 좌절이 될 때, 거지의 입을 통해 ‘우리가 타인에게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우리 자신은 빛이 나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신다고 느꼈어요. 근데, 첫 번째 에피소드의 거지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잖아요. 그렇다면, 사람이 살아갈 때,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야만 빛인 나는 건지, 아니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정답은 없는 문제이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보원: 제 영화가 첫 번째 에피소드이든 두 번째, 세 번째 에피소드이든 관객에게 해답을 주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끊임없이 우열을 가리는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보려 했는데 숙제만 밀려버리고, 두 번째 에피소드는 어떻게 하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깨달았지만, 자신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거지의 왕’을 꿈꾸고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거지가 큰 틀에서 이야기를 해주죠. 저는 그 장면을 모든 사람은 존재만으로 빛이 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로 넣은 것이기는 한데요. 또 하나의 메시지를 관객분들에게 주입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바로 뒤에 진실이 장면을 넣었는데, 진실이가 거지의 말을 왜곡해 받아들이면서 한 번에 무시해 버리잖아요. 결국,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각자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해서 영화가 영감은 줄 수 있어도 해답을 줄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저 자신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거지의 말을 통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위로를 전하고 저 자신도 위로받고 싶었어요. 제 의도를 정리하면,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 찬란하다는 의미로 넣은 장면은 아니었어요. 거지가 우리는 사실 모두 별 먼지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우리는 존재 자체로 의미 있다는 위로를 전하고 싶어서 넣은 에피소드인 것 같습니다.
관객: 영화 속 배우분들이 모두 직업이 있는데, 진실이의 직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보원: 저는 철학자라고 생각했어요. 진실은 일종의 과학자이자 철학자로 생각하고 만들었고,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온 과학자의 다중우주 버전이기도 하죠. 첫 번째 에피소드의 과학자가 왜곡된 진화 생물학을 말하는데, 안타깝게도 왜곡된 이론이 우리의 인식과는 더 맞닿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학·철학자가 사상을 탐구해 나가는데, 왜곡된 철학에 빠져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캐릭터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박동수: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진실을 알리려는 모습이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를 떠올리게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사람들에게 진실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진실이의 직업이 철학자라는 게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질문 있으실까요?
관객: 실제로 멀티버스가 존재한다면 그 세계의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보원: 저는 멀티버스가 있다면, 진실이 같기는 한데 진화생물학과에 갈 것 같아요. 제가 진화생물학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심규호: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거든요. 감독님은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저는 영화 속 거지처럼 살아보고 싶어요. 풀밭에 누워 있는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한량처럼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심태희: 실제로 저는 짝꿍 역할과 달리, 학창 시절에 열심히 공부했었어요. 짝꿍은 영화에서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더라고요. 멀티버스에 제가 있다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것을 그때그때 하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동민: 저는 매일매일 생각하는데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요. 어느 순간에 갈라지는가의 문제여서 너무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박서윤: 실제로 다중우주가 어떤지 모르다 보니까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재미없는 답일 수도 있는데, 저는 다른 멀티버스에서도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조금 더 치열하게 연기하고 연구하는 연기자이고 싶어요.
박동수: 배우님들 모두 영화 속 캐릭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상상하고 계시는데요. 어찌 보면, 영화 속 모습이 배우님들의 멀티버스 속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지 캐릭터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영화에서 인생사 전체를 보여주는 인물이 거지밖에 없잖아요. 거지가 다른 캐릭터에 비해 강조된 캐릭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요. 거지가 인생의 끝에 서 있다는 느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에 달관한 현자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분명히 있었거든요. 특히 거지와 진실이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거지가 철학자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거지 캐릭터에 강조점을 부여한 이유나 의도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보원: 일단 거지는 철학자가 맞습니다. 자기 입으로 철학자라고 소개하기도 하고요. 거지가 중심을 잡는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구상한 게 맞아요. 거지는 제 영화의 유일한 성장캐인데요. 첫 번째 에피소드보다 두 번째, 세 번째에서 더 나은 철학을 이야기해요. 옴니버스 영화의 약점이 에피소드 간의 접점이 너무 느껴지지 않을 때라고 생각해서 연관성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점점 발전하는 철학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거지라는 캐릭터를 상정하게 되었습니다.
박동수: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 여쭈면서 오늘 GV 마무리하겠습니다.
박서윤: 늦은 시간까지 자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서울에서의 GV는 오늘로 마무리되었지만, 저희 영화 주변에 많이 알려주시고 한 번씩 더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통의 우주도 찬란함을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꿈을 꾸면서 살아가야 또 사는 것 같아요. 꿈을 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그 모습 자체가 찬란하니까, 여러분 모두 화이팅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동민: 저는 요즘 진행하는 촬영이 오늘 우천으로 취소가 되면서 여기 올 수 있었는데요. 저는 이번 작품을 계기로 좋은 인연을 너무 많이 만났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들인 것 같아요. 함께 한 배우들 덕에 행복한 우주를 일굴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어요.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태희: 저도 마지막 서울 GV에 완전체로 참여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저희 영화 많이 사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동료분들인데, 찬란하게 빛날 10년 후의 우주도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심규호: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니 아쉽네요. 또 좋은 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요즘 연출자로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각자의 작품 열심히 준비해서 동료로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GV를 하며 힘을 많이 받는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보원: 오늘이 서울에서 하는 마지막 GV인데 슬프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배우들과 얼굴 볼 수 있어서 반가웠고 너무 든든했습니다. 제가 생각한 이상으로 캐릭터를 구현해 주신 배우분들께 감사한 마음이고 좋은 GV 될 수 있게 객석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동수: 오늘 인디토크 마무리하겠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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