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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24]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감독 인터뷰

by indiespace_가람 2024. 7. 26.

썸머프라이드시네마2024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감독 인터뷰
간격을 뛰어넘어 마주 잡을 손을 위하여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원 님의 글입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아파트를 배회하는 냄새, 고립된 존재 그리고 삶에 스며든 죽음의 웅덩이들은 보이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럭키, 아파트〉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반쪽을 응시한다. 잊힌 존재에게 이름을 건네고, 삶을 기억하고 죽음을 애도하는 일에 관해 이야기한다. 강유가람 감독의 카메라에서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너와 나 사이의 경계는 흐트러진다. 간격을 넘어 연결되는 마음을 보고 있자면, 연대의 힘을 믿고 싶어진다. 삶과 죽음 중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시대에, 〈럭키, 아파트〉의 강유가람 감독과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보려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럭키, 아파트〉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선정되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관객분들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전주 이후, 2024 썸머프라이드시네마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관객분들을 만나게 된 소감을 여쭙고 싶습니다.

썸머프라이드시네마가 개최되는 여름은 퀴어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계절이기도 한데요. 썸머프라이드시네마에 저희 영화가 포함되어 영광스럽고 기쁜 마음입니다. 영화가 어떻게 보면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관객분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합니다. 특히, 서울에서의 첫 상영인 만큼 떨리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럭키, 아파트〉는 한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썸머프라이드시네마의 포문을 여는 작품입니다. 작품을 보며, 여름의 계절감을 온전히 담아낸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감독님께서 여름이라는 계절을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하신 이유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영화의 핵심적인 컨셉이 냄새인 만큼, 냄새가 잘 전달되는 계절을 생각했어요. ‘냄새’하면 연상되는 썩기 쉽고 밀착되고 끈적거리는, 감각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겨울보다는 여름에 심해진다고 생각했어요. 또, 여름은 사람들의 불쾌지수가 올라가 불쾌감을 느끼기 쉬운 계절이기도 하고요. 여름이라는 키워드에서 연상되는 감각들을 감안해서,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여름을 배경으로 설정하였습니다. 


여름이 냄새를 표현하기 최적화된 계절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아파트를 둘러싼 문제의 시작은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냄새’입니다. 보이지 않는 ‘냄새’를 스크린의 너머의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연출적으로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냄새에 민감한 편인데요.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내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 선우가 청소를 강박적으로 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제가 냄새를 인지했을 때 하는 행동들을 참고해 구상한 장면입니다. 집에서 냄새가 나면 의심 가는 공간들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쓰레기통이라든지, 싱크대와 같은 공간들이요. 그런 공간을 마주할 때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긴장하게 되거든요. 그런 심리적인 압박감을 구현하려 노력했어요. 또, 아파트라는 공간이 주는 느낌을 활용했어요. 개인적으로, 아파트가 좋은 삶의 조건을 갖춘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파트는 허공에 떠 있고, 옆집이랑 지나치게 밀착해 있기도 하죠. 영화에 나오는 아파트 소독은, 아파트가 환기하는 긴장감을 보이지 않는 냄새와 연결하는 장치입니다. 
또, 하나는 음악입니다.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스릴러적인 느낌이 나는 기묘한 음악을 깔고 싶었어요. 음악 감독님께 영화 초반, 묘한 뉘앙스와 분위기를 주는 음악을 부탁드리기도 했고요. 음악과 더불어, 화면의 느낌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초반에는 어둡고 축축한 느낌이, 후반에는 따듯한 느낌이 나도록 색감 차이를 분명하게 두려 노력했어요. 

 

영화 〈럭키, 아파트〉 스틸컷



아파트라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에요. 〈이태원〉(2016) 개봉 당시, 인터뷰를 통해 “여성의 이야기를 계속 기록하고 공간성을 탐구해 보고 싶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럭키, 아파트〉는 아파트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선우와 희서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선우와 희서에게 아파트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지 여쭤보고 싶어요.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거주의 의미보다는 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자, 부의 상징으로 기능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에는 물론 거주의 편의성도 있지만, 아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학군이나, 재개발과 같은 문제들이 집적되어 있으니까요. 아파트를 한국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선망의 공간으로 이해한다면, 선우와 희서에게 아파트는 ‘행운의 공간’인 셈이죠. 두 사람이 안전과 보안을 기대하며 입주한 공간이고, 아파트를 구매하며 더 큰 부를 얻길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을 테니까요. 누구나 그렇듯이, ‘잘 살고 싶은’ 선우와 희서의 소시민적 욕망이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문제는 그들의 부푼 꿈과 달리, 그렇지 못한 상황이 연속된다는 건데요. 아파트로 이사한 이후, 선우와 희서는 그동안 외면해 왔던 핵심적인 문제들에 가닿게 되죠. 예를 들면, 선우와 희서의 계급 격차가 두드러져요. 빌라에 살았을 때는 둘의 계급 격차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파트에 오며 큰 자금을 부담해야만 했고, 그 자금을 희서의 어머니가 주면서 문제가 커지게 되죠. 아파트라는 공간이, 선우가 계급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작품의 제목에도 아파트가 등장합니다. ‘럭키, 아파트’라는 제목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다른 후보가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다른 후보는 없었고 처음부터 단일후보였습니다. ‘럭키’와 ‘아파트’ 사이 쉼표를 찍은 이유는 아파트라는 공간의 모순성을 환기하고 싶어서였어요. ‘과연 아파트라는 공간이 행운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요. 영화를 보면 행운이, 행운이 되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이어지잖아요. 선우와 희서는 ‘럭키’를 바라고 들어온 아파트인데, ‘과연 럭키 아파트였는가?’라는 의문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냄새의 문제를 마주한 선우와 희서의 태도 차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우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냄새를 해결하려 하고 희서는 상대적으로 무던하게 반응합니다. 냄새라는 문제를 대하는 두 인물의 반응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요?

아랫집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악취가 나는 사건을 선우와 희서가 같은 공간에서 같이 겪잖아요. 한 명은 냄새의 원인을 파헤치고 싶어 하고 한 명은 ‘그냥 참자’라는 입장인데요. 처음에 둘의 입장은 ‘이 냄새가 싫다’ 정도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선우가 다리를 다치고 경제적인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선우의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거라 생각했고 선우를, 냄새의 문제에 더 집착하고 냄새를 없애야겠다는 강박을 가지게 된 인물로 설정하게 됐어요.


선우와 희서는 사건을 겪으며 변화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변화의 속도는 다르지만, 점차 신임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되는데요. 선우와 희서가 변화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정한 사건을 기점으로 한다면, 언제부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선우가 처음부터 냄새의 원인을 규명하고 싶어 하지는 않아요. 선우는 냄새에 있어서, 주변인들과 크게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단순히, ‘냄새를 없애고 싶다.’ 정도였죠. 그러다, 신임과 정남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크게 변하게 되죠. 두 사람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어요, 아래층의 신임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냄새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넘어, 그들을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그게 신임과 정남을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희서 같은 경우에는 거의 마지막에 변화하는데요. 희서는 벽장 속에 갇혀 있는 인물이고 선우한테 ‘편하게 살자’고 말하는 만큼, 둘만 행복할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은 감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에요. 희서는 혐오의 시선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기도, 둘만의 안전한 공간이 공격받는 상황을 겪기도 하고, 가족들이 선우의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여태껏 이뤄온 관계가 허상의 관계로 치부되는 상황을 겪는데요. 아파트 단톡방에서 이어지는 사이버불링이나 가족들의 시선이 희서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그러다, 희서 역시도 사진을 보며, 선우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거죠. 희서가 아랫집 할머니를 돕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신임과 정남의 과거를 상상하게 되면서 감정적인 동요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선우와 희서가 변화하는 기점에는 신임과 정남의 사진이 있었네요. 사진은 선우와 희서 커플, 신임과 정남 커플의 관계를 드러내는, 주요한 장치로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사진이라는 소품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진이라는 매체가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했어요. 사진은 기억이자 기록이고 무엇보다, 정체성을 이미지적으로 드러내는 매체인데요. 성소수자들은 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없는 부분 때문에 찍은 사진을 공개할 수 없는 문제에 놓이기도 하고, 사회적 편견에 의해 정체성이 재단되고 가려지기도 합니다. 기록물이면서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는 사진의 특성을 통해, 퀴어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SNS상에서 자신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퀴어 분들을 많이 보았는데요. ‘이전 세대의 퀴어들도 사진으로 기록할 자유를 보장받았는가?’라는 시대적 배경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영화에 신임과 정남, 선우와 희서의 사진이 함께 나오잖아요. 선우와 희서는 청년의 퀴어 커플이지만, 관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노년에 접어든 신임. 정남과의 연결점을 가지고 있어요. 그들에게 사진은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증거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감추어야 하는, 이중성을 지닌 매체로 기능하는 거죠.


‘사진으로 기록할 자유’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자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데요. 영화에서 선우가 이름 대신 아파트 호수로 불리기도 하죠. 퀴어 커플이 직면한 이름과 명명의 문제를 영화에 어떻게 녹이셨는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장면은 아파트라는 공간의 문제와도 연결되는데요. 아파트에서 개별적인 존재로 불리기보다는 숫자로 불리는 개인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사실, 호칭에 대한 문제는 희서의 동생이 선우를 ‘그쪽’이라고 명명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나죠. 이름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름을 기억해 주지 않는 상황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영화 〈럭키, 아파트〉 스틸컷

 


〈럭키, 아파트〉를 신임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여정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들은 신임을 ‘화분 할머니’라고 부르더라고요. ‘화분 할머니’라는 명칭을 사용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화분 할머니라는 이름을 통해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싶었어요. 홀로 돌아가신 분들이 자신의 삶을 방치하거나, 방만하게 살아갔다고 생각하는 편견 같은 것들이 우리 안에 있잖아요. 근데, 화분을 애지중지 가꾸며 햇볕을 쬐어주는, 어떻게 보면 귀찮은 행위를 하는 신임에게서 그녀가 가진 삶에 대한 애착이 드러나는 거죠. 그들도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살아갔다는 것을 ‘화분 할머니’라는 이름을 통해 특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신임이라는 인물이 가질 수 있는 전형성을 깨보고 싶기도 했고요.


신임과 정남의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기는데요. 두 사람의 서사가 짧게만 등장하여 아쉬웠습니다. 신임과 정남의 전사가 있을까요?

영화에 나왔듯이, 신임과 정남은 오래전에 사귀던 사이였어요. 두 사람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사회적 편견이든 경제적 이유이든 간에, 모종의 이유로 헤어진 설정이었고요. 정남이 조금 아팠는데, 두 사람이 헤어졌음에도 신임이 정남에게 계속해서 병원비를 지원해 준 거죠. 정남이 미안함을 느끼고 연락을 피해서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는 설정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전사가 있었고, 전사를 설명하는 대사도 있었지만,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어 편집의 과정에서 삭제했어요. 신임과 정남의 로맨스를 관객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기도 했고요. 정남이 사진첩을 받아보면서 자기 사진만 있다고 우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대사보다는 장면을 통해, 신임이 정남을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했는지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신임과 정남의 전사가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이 신임과 정남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 안에 젊은 퀴어 커플의 이야기와 노년에 접어든 퀴어의 이야기가 공존한다는 점이 좋았는데요. 두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영 감독의 〈불온한 당신〉과 권아람 감독이 제작한 〈홈그라운드〉라는 다큐멘터리를 인상 깊게 봤어요. 나이 든 레즈비언분들의 모습을 보며, 윗세대 레즈비언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 치마씨와 바지씨라는 이름으로 분명히 존재했고,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인데, 역사적으로는 기록되지 않는 존재인 거죠. 윗세대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현재의 레즈비언과 연결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초고에서는 아랫집 여성이 윗세대 레즈비언으로 설정되어 있지는 않았어요. 결혼을 하지 않은 비혼의 여성이라는 설정이었는데요.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단계에서, 선우가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영화에 보면, 냄새에 반응하는 선우의 행동이 주변 인물에 비해 크잖아요. 신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기도 하고요. 선우의 적극적인 행동을 끌어낼 수 있는 인물,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의 배경이 아파트인 만큼,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조연으로 지나간 이웃들의 이야기 중, 길게 풀어내지 못해 아쉬운 서사가 있을까요?

영화에 빌런으로 등장하는, 명희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명희는 영화에 나오는 동대표이자, 딸 은주를 키우는 싱글맘이에요. 이전에는 진보적인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지만 아이를 키우고, 또 삶을 이어 나가면서 점차 보수화되어 가는 인물로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를 쓰며 명희 캐릭터를 살리고 싶었고 실제 촬영까지 한 장면도 많은데요. 예를 들면, 명희가 딸의 양육비를 지원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거나 딸을 지키기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분량의 문제도 있고 영화의 완성도를 고려할 때, 주인공들의 서사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삭제하게 되었습니다.
은주의 서사도 있었는데요. 은주는 영화에서 제일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자, 미래의 희망 같은 캐릭터죠. 아파트 놀이터에서 은주가 선우와 그네를 타면서 같은 반 친구 이야기를 하잖아요. 어쩌면 은주도 자신의 친구를 좋아했을 수 있다는 뉘앙스의 대사가 있었지만, 분량상 빠지게 되었어요.


영화의 엔딩 장면에 이르면, ‘잘 기억하는 일’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데요. 영화의 엔딩을 통해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선우와 희서에게 신임과 정남은 자신의 미래일 수도 있을 노년의 퀴어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남이잖아요. 그런데도 돌아가신 분의 파트너를 돕는 두 사람을 통해, 현대인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어요. 고독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누군가를 애도한다는 게 어떤 식으로 가능할까?’ ‘내가 죽었을 때 나를 애도해 줄 사람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누군가는 나의 죽음을 사진 한 장으로, 꽃 한 장으로 애도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과 기대로 답하고 싶었어요. 전혀 모르는 타인과도 연대할 수 있다는,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연대로 나아갈 용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래〉(2011), 〈이태원〉(2016)과 〈우리는 매일매일〉(2019)까지 다큐의 형식을 빌려, 잊힌 시간을 기록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럭키, 아파트〉는 감독님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라고 알고 있는데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모두 제작해 보신 입장에서, 어떠한 지점이 다른지 여쭈어보고 싶어요.

다큐멘터리는 연출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존하는 인물의 입을 빌어서 하는 것이죠. 그분들의 입을 통하기는 하지만, 연출자의 편집을 거치며 연출자의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극영화와 다른 지점은, 다큐에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해요. 출연자의 입을 통해 나오는 대사를 찍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 출연자의 이야기를 통해 연출자로서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를 깨닫기까지의 시간을 감내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출연자와의 신뢰 관계가 더욱 중시되기도 하고요. 자신이 만들어낼 수 없는 장면을, 출연자의 삶 속에서 발굴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극영화는 자신의 상상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작업이죠. 다큐와는 다르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대사를 전부 창작해야 하고요. 배우들과의 소통, 음악적인 부분, 이미지적인 부분을 모두 컨트롤하는 작업이라서 새로운 영역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감독님께 〈럭키, 아파트〉는 어떠한 작품으로 기억될까요?

제 고민이 녹아 있는 영화예요. ‘비혼 여성으로 홀로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극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풀어낸 작품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영화 상영 이후, 관객분들이 선우와 희서 중, 어떤 인물처럼 행동할 것 같은지를 물어보셨는데요. 왠지 희서처럼 행동할 것 같더라고요. ‘선우처럼 나도 용기를 내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이기도 했어요. 아직은 용기가 없지만 용기를 내보고 싶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관객분들께 〈럭키, 아파트〉가 어떠한 작품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시나요?

희서와 선우가 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적 욕망을 가진 퀴어잖아요. 우리 주변에 일상적인 욕망을 가진 소시민 퀴어들이 살고 있고, 그들에게도 사회적인 안전망 속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앞으로 더 말하고 싶은 이야기,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계신다면,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앞으로도 계속 여성의 역사와 기록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하고 싶어요. ‘애프터 미투’ 프로젝트를 하면서 〈애프터 미투〉라는 다큐를 만들었는데요. ‘스쿨 미투’에 대한 이야기를 시나리오화하면 어떨까 싶어서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럭키, 아파트〉 시나리오 수정 단계에서, 장르물 형식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어요. 레즈비언 커플이 아랫집의 죽음의 원인을 추적하며, 재개발에 대한 거대한 음모를 맞이하는 내용이었는데요. 인물 수를 줄이고 각색을 좀 더 코믹하게 해볼까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KTX 여승무원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2000년대 초반에 KTX 여승무원들이 투쟁을 했던 역사가 있는데요. 그분들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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