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란과 연덕, 그리고 호러 썸머프라이드시네마 2018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7월 28일(토) 오후 2시 상영 후
참석 김조광수 청년필름 대표
진행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권소연 님의 글입니다.
2015년,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개봉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하 <경성학교>)이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 2018'로 우리들을 다시 찾았다. 뜨거운 햇빛으로 모자라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는 요란한 날씨와도 어울리는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아이들>의 인디토크에 영화를 제작한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와 이은선 저널리스트가 함께 했다.
이은선 저널리스트(이하 이은선): 대표님도 영화를 오랜만에 보셨을 텐데요, 어땠나요?
김조광수 대표(이하 김조광수): 3년 만에 보았습니다. 이 영화가 2015년 6월에 개봉한 영화인데 그 해 10월 즈음에 마지막으로 보았어요. 오늘 보면서 반성을 많이 했죠.(웃음) ‘이렇게 하면 안 되었구나’, ‘아, 저렇게 했어야 했어’ 등의 반성을 한 것 같습니다.
이은선: 제작 당시 기억을 떠올려 볼 때 이 영화에 대해 어떤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불안을 안고 있었나요?
김조광수: 처음 기획 단계였던 2010년 즈음에는 감독님이 없는 상태여서 저희 회사 프로듀서하고 같이 기획했습니다. 처음 제목은 ‘그림자’였는데, 소녀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주인공 소녀 한 명이 있고 그 옆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다른 소녀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두 명의 소녀라는 소재를 가지고 장르는 공포로 하겠다고 마음먹었죠. 공포라는 장르에 두 소녀로 어떤 영화를 만들까 하다가, 한 소녀가 한 소녀를 집착하면서 따라하는 이야기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출발을 했어요. 그러다 많은 과정을 거치면서 애초의 기획은 많이 사라졌고 지금과 같은 영화가 나왔습니다. 처음 기획 단계의 소녀들 이야기와 호러라는 장르가 조금 더 남아있고 나머지는 많이 변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은선: 제작사 청년필름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조선명탐정>의 대성공 이후에 나온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청년필름 내에서 장르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을 것 같아요.
김조광수: 저희가 예전에 <분홍신>(2005)이라는 호러영화를 했어요. 그 전에는 작가주의, 예술영화를 주로 하다가 처음으로 대중성이 있는 장르영화를 해보겠다는 시도였어요. 그런데 <분홍신>이라는 영화도 결과물이 시작단계와는 달라진 영화에요. 출발은 자매, 20대 초반의 언니와 10대 후반의 동생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언니가 죽게 되면서 벌어지는 호러영화였는데 기획하는 과정에서 <와니와 준하>(2001)의 김용균 감독님이 합류하게 되면서 모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당시에 <가발>(2005)이라는 영화가 다른 곳에서 기획 단계에 있었는데 플롯이 <분홍신>과 비슷했어요. <분홍신>을 빠르게 제작해야 했기 때문에 감독님이 자신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 다음에 찍는 영화는 소녀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하게 된 것이죠.
말씀처럼 장르영화에 자신이 있을 때는 아니었고요,(웃음) 청년필름이 장르영화를 꾸준히 하는 회사로 남고 싶은 욕심과 희망이 있을 때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해영 감독님이 들어오면서 초능력과 일제강점기라는 설정이 생겼어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많은 인체실험을 했잖아요. 그렇게 실험을 당하는 소녀에게 초능력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공포영화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에는 관객들이 여고괴담 류의 학원 공포영화인줄 알고 왔다가 당황하는 반응이 꽤 있었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은선: 공포영화를 만들겠다는 꾸준한 관심은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인가요?
김조광수: 저희가 <귀>(2010)라는 옴니버스 공포영화도 제작한 적이 있어요. 궁금하면 찾아서 봐주시면 좋겠고요.(웃음) 말씀 드린 것처럼 초창기에 작가주의 계열의 예술영화를 하다가 장르 안에서 완성도를 내면서 재미있는 영화, 대중적인 영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게 되었어요. 그 중에 하나로 공포영화를 해보고 있는 건데, 무엇보다 그 기저에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공포영화를 좋아하던 기억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13일의 금요일>이나 <엑소시스트> 등의 영화들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며 자라와서 공포라는 대중적인 장르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던지면서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은선: 2000년대 초반부터 매년 의례적으로 공포영화가 나오는 흐름이 형성되었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가 나올 때 즈음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 흐름이 어느 정도 사라졌고 공포라는 장르에 대해 의심하던 시기여서 이 영화가 용감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시장 상황에 대한 걱정도 있었나요?
김조광수: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일본의 J호러, 한국 공포영화가 인기였던 시기가 있었는데, 한국 공포영화가 꺾이던 시기는 기획이 안일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J호러에 많이 나오는 꺾기 귀신이나 깜짝 놀래키는 요소들이 관객들에게 식상해지기 시작한 거죠. 장르를 기대하고 있는 관객이 있는데, 그 장르 안의 이야기 혹은 캐릭터의 새로움을 채워주지 못해서 실패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경성학교>를 찍을 때는 귀신이 나오지 않는 공포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초능력이라는 것이 과연 공포영화랑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가 고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공포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게 느닷없는 초능력이 좋게 다가간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고요. <곤지암>(2016)의 흥행을 보며 예전에는 한국 공포영화가 여름 방학 시즌의 청소년들을 겨냥한 기획이었다면 이제는 계절 상관없이 여러 연령층으로 대상이 넓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은선: 비슷한 맥락으로 최근에 <마녀>(2018)가 잘되고 있는 중인데, 이런 점에서 보면 <경성학교>가 너무 빨리 나온 것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사실 이런 설정들이 ‘아키라’ 류의 설정이라고 할 수 있죠. 일본영화에서 파생된, 실험을 당하는 아이들 혹은 이용당하는 개체들을 다루는 작품이니까요. <경성학교>의 소녀들이 초능력을 쓴다는 SF적인 설정은 감독의 합류로 생긴 아이디어라고 하셨는데, 처음부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나요?
김조광수: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요. 그 설정이 공포영화랑 맞을까에 대한 의문은 있었죠. 어울릴 수 있다는 감독 덕분에 밀어붙이게 되었어요. 저도 <마녀>를 보면서 생각해보니, 영화 속 피실험자인 아이들이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마지막에 죽으며 끝나는 것이 관객들에게 슬프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강렬한 액션으로 그들과 맞서면서 관객들이 분노하는 지점을 채워주면 어땠을지 고민해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는 저희 영화가 대중성이 떨어지는구나 싶었고 그 점에 대해 많이 부족했다고 반성했습니다. 호러영화였다가 소녀들이 히어로로 변신해서 싸우는, 친구들의 아픔을 복수하는 등의 그런 영화를 했다면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았을까요?(좌중 웃음)
이은선: 말씀을 들어보면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호러장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좋았던 점들도 분명하지만 저는 소녀를 그리는 방식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체제의 희생양인 소녀를 대상화시킨 것이 아쉬웠어요.
김조광수: 원래는 제목이 ‘소녀’였는데, 독립영화 중에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어서 결국 공포영화스럽게 제목을 바꾸었어요. 소녀가 주인공이고 후반부에 가서는 주도적인 역할이 되지만, 중간에 소녀들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저희 스스로도 여기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소녀들을 탐미적으로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대상화시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이해영 감독님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되면서 어느 정도 그런 염려를 덜 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부족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요.
이은선: 이 영화는 보기에도 미술에 공을 들인 영화잖아요. 예를 들면 화면에 보이지 않아도 속바지 하나하나 레이스를 떠서 만드는, 미술로 욕심을 부릴 만큼 부린 영화인데요,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있을 것 같아요.
김조광수: 상업영화가 보통 순제작비가 40억대인데, 저희는 순제작비가 28억이었어요. 예산이 부족했는데, 감독님이 이 영화는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처럼 가지고 있었어요.(웃음) 영화가 현시대를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새로운 배경을 만들어야 했어요. 감독님도 아름다움이 공포영화랑 만났을 때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예산을 확보하고 그 예산 안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인데, 처음에는 그런 부분에서 의견이 다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잘 서포트를 할 것인지로 고민의 방향이 바뀌면서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한아름 미술감독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돈도 넉넉지 않았는데, 미술팀이 아름답게 해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은선: 영화가 개봉할 당시에는 주란과 연덕의 관계에서 보이는 퀴어코드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히려 관객들이 발견하고 찾아냈는데, 당시에 그 코드를 많이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조광수: 만약 청년필름이 마케팅을 했다면 퀴어코드가 있는 영화라고 홍보했을 것 같아요. 아마 그 당시에는 퀴어코드를 내세우는 것이 영화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거예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도 당시에 레즈비언 영화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던 영화인데, 레즈비언 영화라고 했을 때 오히려 관객들의 폭이 좁아질 것을 우려했을 거예요. 이번에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개봉할 당시에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만든 사람들은 분명히 퀴어를 생각하고 만든 영화거든요. 감독도 지금이라면 조금 더 솔직하고 대담하게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일정 때문에 못 오셨는데, 나중에라도 꼭 이해영 감독과 이 영화에 들어있는 여성들 간의 사랑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관객: 영화에서 소녀들이 처한 상황이 갈 곳이 없는 것으로 나오는데, 도쿄에 가는 것 때문에 시기질투가 발생하잖아요. 도쿄라는 설정이 사랑하는 친구와 단둘이 가는 환상을 가지게 하는 것인지 혹은 소녀들의 갈등을 일으키는 맥거핀으로 작용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영화 속 도쿄라는 환상이 어떻게 설정되었는지 역시 궁금합니다.
김조광수: 시나리오 단계에서 '소녀들이 어디를 동경하게 만들까?'가 화제였어요. 여러 가지 생각해 둔 것들이 있었어요. 서울도 있었고요. 그런데 바다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곳이 무언가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도쿄로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장소가 주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주란의 부모가 주란을 버리고 가는 곳이 도쿄라는 설정도 있었기 때문에 주란에게는 도쿄를 간다는 것에 대한 동경도 있지만 아빠를 만나러 간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죠. 거기다 ‘연덕과 꼭 같이 가겠어’라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은선: 오랜만에 <경성학교>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늘 어땠나요?
김조광수: 제가 연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거리감을 가지고 영화를 볼 수 있었고, 제작자로서 이런 저런 반성과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미안함이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영화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새로운 생각들이 떠올라서, 오늘 관객분들과 함께 보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발걸음 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자리였어요. 앞으로 청년필름에서 영화를 얼마나 만들지 모르겠지만 공포영화를 또 하고 싶은데, 그 영화를 만들 때 오늘의 자리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기획] 다큐멘터리로 연대하기 <소성리> 박배일 감독 인터뷰 (0) | 2018.08.16 |
---|---|
[인디즈] 여성의 얼굴들 '썸머프라이드시네마2018' <단편: 마지막 첫사랑> 인디토크 기록 (0) | 2018.08.13 |
[인디즈] 아시아에서 10대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썸머프라이드시네마2018'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인디토크 기록 (0) | 2018.08.09 |
[인디즈 Review] <행복의 나라>: 삶과 죽음의 방랑자 (0) | 2018.08.08 |
[인디즈 소소대담] 2018.06 재연과 재현, 영화가 취하는 아슬아슬한 경계 사이에서 (0) | 2018.08.07 |
댓글